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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길을 찾는 책읽기

    청소년들에게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어른의 눈높이로 어려운 책을 권하거나,아니면 어른이 읽을 만한 책보다 쉬워야 한다거나 분량이 짧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기 쉽다.그동안 청소년 단체 등에서 권장도서 목록을 제시해 왔지만 그런 유의 작업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청소년을 독서의 주체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을 찾는 책읽기(김학민 지음,아침이슬 펴냄)’는 그런 고민을 해본 학부모에겐 물론,청소년들에게도 길잡이가 될 만하다.저자는 몇년 전 고등학생이던 두 딸에게 ‘민족의 교과서’라고 생각했던 ‘백범일지’를 읽도록 권했다가,아이들이 서너쪽을 읽지 못하고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듣고 청소년에게 읽힐 만한 책을 정선할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그 후 지금까지 고전의 쉬운 해설서,고전의 축약본을 중심으로 골라냈다.저자는 ‘길을 찾는 책읽기’에 소개된 100권의 책은 어렵고 지루한 고전으로 가기 위한 ‘다리’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도서출판 한길사 편집장을 거쳐 현재 도서출판 학민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100권의 책은 20년 동안 책을 읽고 만들었으며,그 자신이 책을 내기도 했던 출판인인 저자가 읽은 책 중에서 고른 것이다.현재 대학생이 된 두 딸과의 대화가 책 선정의 출발점인 만큼 곳곳에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배려가 깔려 있다. 청소년에게 책을 권장하는 방법은 책을 매개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저자는 ‘다리’가 되어주는 방법으로 100권의 책에서 마음에 닿은 인용문을 뽑아 소개한 뒤 책 전체를 개괄하는 간략한 해설을 붙여 독서 욕구에 불을 지핀다. 이를테면 이누카이 미치코의 ‘성서 이야기’를 소개하는 글에서는 모세가 홍해 바다를 둘로 갈라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키는 기적을 소개한 뒤,서양 문화의 두가지 축,즉 헤브라이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서를,헬레니즘을 알려면 그리스 신화를 알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책은 ‘문화적 상상력 벼리기’ ‘세계 시민으로 살기 위하여’ ‘역사 지식보다 역사 의식’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십대의 힘,눈부신 감수성’ 등 크게 6편으로 나눠 편마다 15권 남짓의 책을 소개하며 2∼3쪽씩 할애했다. 선정한 책은 고전과 신간을 망라한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데미안’ 같은 소설과 ‘진달래꽃’ ‘미라보 다리’ 같은 시집 등은 신간 중심의 요즘 청소년 추천도서에는 거의 들어 있지 않다.그런가 하면 소유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인디언 추장들의 목소리를 담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류시화 지음,김영사 펴냄)와 같이 2003년에 나온 책들도 있다.청소년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을 때 들춰보면 언제든지 골라낼 수 있는 지침서가 될 만하다.관련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학자나 교수가 아니라면,100권의 책은 성인들에게도 교양 또는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을 것 같다.8500원. 김종면기자 jmkim@
  • [편집자문위원 칼럼] 다시 난 ‘서울신문’에 바란다

    새해부터 대한매일이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바꾼다고 하니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든다.하나는 대한매일이란 제호로 표방해 온 강소지(强小紙)와 독립신문으로서 이미지의 퇴색이다.즉,보수적 신문들과 차별되는 성격을 표방하던 신문이 예전의 정부기관지적 성격으로 원대복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물론 서울신문이 대한매일보다 인지도에서 앞선다는 조사도 있고,복귀해서도 대한매일의 정체성을 계승하겠다는 다짐도 있지만 대한매일이 표방해 온 프랑스의 르몽드와 같은 성격의 신문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서울신문으로의 복귀는 최근 언론산업 변화의 판도를 잘 읽은 판단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신문사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우리 언론이 앞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들 중의 하나가 바로 특화된 신문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어떤 신문은 성격이 보수적이고,어떤 신문은 정보가 많은 신문이고,어떤 신문은 진보적일 수 있는 만큼,또 어떤 신문은 정부관련 정보를 가장 많이 전달하는 신문으로 기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언론산업,특히 신문산업의 경우 ‘모델링 이론’이 적용된다.즉,큰 신문사가 어떤 경영형태나 편집방향,그리고 내용의 성격을 결정하면 후발주자인 작은 신문사들은 이들 큰 신문사들을 모델로 삼아서 유사한 형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작은 신문은 자신만의 고유한 특색을 유지하면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생존의 근간이 된다.왜냐하면 신문이 비슷비슷한 경우 독자들은 대개 부수가 많은 신문을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새로운 서울신문이 좀 더 친근한 내용으로 채워졌으면 한다.무엇보다도 ‘독자의 소리’란이 확대개편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지난주 대한매일의 경우 많아야 하루에 2건 정도,그리고 아예 안 실리는 날도 있었다.이는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없거나 반응이 있다고 하더라도 독자의 소리에 신문이 너무 귀를 기울이지 않은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신문의 성공여부는 결국 ‘충성스러운 독자를 얼마나 확보하는가’ (retain loyal customers)가 관건이라는 점에서 어느 쪽이든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독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어야 할 것이다. 또 서울신문이라 하면 여전히 딱딱한 느낌이 든다.따라서 인간적 냄새가 느껴지는 기획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최인호의 소설 ‘유림’과 조정래의 칼럼,박완서의 산문,그리고 종교인들이 쓰는 칼럼은 발 빠른 기획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 같다.이와 더불어 정치,경제,사회와 같은 하드 뉴스보다는 주변의 환경감시적 정보를 많이 전달하고 계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특히 무심코 넘기다가 대형사고로 발전하는 위험성을 미리 점검하고 이에 대한 대책의 미비점과 문제점들을 지적해 주어야 할 것이다. 결국 서울신문으로 거듭 태어나는 대한매일은 정부관련 정보 등 공적인 정보를 여타 언론보다 많이 다루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근함이 느껴지는 정보들을 균형 있게 전달해야 하며 주변의 안전점검 장치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 참신한 기획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며 독자들이계속 충성스러운 고객으로 남아있도록 이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재 진 한양대교수 신문방송학
  • 책꽂이

    ●大백제왕(정찬주 지음,아래아 펴냄)성철스님 일대기를 다룬 ‘산은 산 물은 물’의 작가가 5년여 동안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왜곡된 백제 역사의 진실을 규명.성왕과 왕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일본에 고급문화를 전하는 과정을 그린다.전2권.각권 8000원. ●맛동산 리시브(양선미 지음,문이당 펴냄)98년 등단한 작가의 첫 소설집.표제작 등 8편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삶의 막판에 몰렸거나 깊은 내면의 상처를 지닌 인물.이들의 사연을 맛동산,용 문신 등 다채로운 소재에 담아 부조리한 현실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8500원. ●교수(샬럿 브론티 지음,배미영 옮김,열린책들 펴냄)‘제인 에어’의 작가가 쓴 첫 장편으로 국내 처음 번역.산업혁명 후에 상업과 사무적 인간관계가 횡행하는 영국 사회를 견디지 못한 한 청년이 벨기에로 건너가 사랑하고 일하면서 홀로서는 과정을 다룬다.9500원. ●숭어 도둑(이청준 지음,디새집 펴냄)‘흙으로 빚은 동화’라는 부제가 말하듯 중견 작가가 어린 시절 겪은 자연과 사람에 얽힌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준다.자신의 문학의 질료였던 시골체험을 바탕으로 자연의 아늑함과 인간의 정이 물씬 풍기는 내용을 대화와 구술 형식으로 전개.8800원. ●몽골 현대시선집(이스.돌람 외 지음,이안나 옮김,문학과지성사 펴냄)국내 처음 소개되는 현대 몽골 시문학.이데올로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서정성을 중시하는 60년대 몽골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4명의 작품과 해설 수록.9000원. ●무릉리 이야기(김숙희 지음,함께읽는책 펴냄)아동문학가인 저자가 한적한 시골마을을 소재로 사람사는 훈훈한 이야기를 동화처럼 형상화.강첨지와 선덕의 시선을 빌려 다양한 인물을 관찰하면서 농촌의 연대의식 등을 들려준다.7000원. ●오뚝이 신화(안문길 지음,와이겔리 펴냄)91년 늦깎이로 등단해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의 소설집.경쟁 위주의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현실을 냉정하게 짚어보자는 메시지를 던진다.9000원. ●쓰시마 유코 소설집(유숙자 옮김,문학과지성사 펴냄)69년 등단이후 사회적 소수파 입장에서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의 작품집.15편의 단편이 서로 연결되는 형식에다 일본 전통의 구비문학과 사소설 기법을 섞어 원초적 인간과 샤먼의 목소리 등을 담았다.8000원. ●미겔 스트리트(V.S.나이폴 지음,이상옥 옮김,민음사 펴냄)200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대표작.직접 살았던 트리니다드 섬 주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17편의 작품에 담았다.그들의 좌절과 광기를 다루면서 따스한 공감의 눈길을 보낸다.8000원.
  • 반가워 땡땡/佛대표만화 땡땡 24권 국내 첫 완간 10대 소년기자의 좌충우돌 모험그려

    사례 하나.샤를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절대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그런 드골 대통령은 재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소설가 앙드레 말로에게 자신의 인기를 이렇게 자랑한 적이 있다.“내 라이벌은 ‘땡땡(Tintin)’ 하나뿐이여∼!” 사례 둘.1982년 벨기에 천문학회는 목성과 화성 사이에서 발견된 소행성에 ‘에르제(Herge) 행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자국 만화가 ‘에르제’(본명 조르즈 레미,Georges Remi,1907∼1983)의 75회 생일을 기념하자는 천문학자들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사례 셋.지난 1월말 열린 세계적인 만화축제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 개막식은 프랑스 남서쪽 보르도 인근의 소도시 앙굴렘의 ‘마렝고 광장’을 벨기에 만화가 에르제의 이름을 따 ‘에르제 광장’으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프랑스가 ‘허구의 아들’로 입양한” ‘땡땡’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국내 최초로 완간 동그란 얼굴에 닭벼슬 머리,키 140㎝의 10대소년 기자 땡땡은 프랑스가 전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영웅이다.프랑스 일간지 ‘르 주르날 드 디망쉬’에 따르면 프랑스 가정의 절반이 땡땡 시리즈를 소장하고 있고,50여개 언어로 전세계 60여개국에서 3억부 이상 팔렸다. “땡땡은 디즈니의 모든 캐릭터를 합친 것보다도 의미있다.”(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는 말이 허풍처럼 들릴 수 있지만,미국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이를 그대로 긍정한다.“땡땡은 내 작품 세계에 디즈니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이 최근 국내의 솔 출판사를 통해 24권 전량이 최초로 번역·완간됐다.1980년대 중반 월간 소년만화잡지 ‘보물섬’을 통해 부분연재되거나,90년대 중반 출판이 시도됐었지만 전편이 완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지난 99년에는 MBC에서 ‘틴틴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21편이 방영되기도 했다.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교재로도 쓰여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소년 기자 땡땡이 흰강아지 밀루와 함께 동서고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겪는 모험담형식이다.콩고 이집트 티베트 페루 등 유럽인들에게 이국적인 지역들을 주무대로,나중에는 바다밑,극지,사막,심지어 달까지 악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간다.조지 루카스가 “영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땡땡의 모험’을 원형으로 했다.”고 고백할 정도.여기에 각국의 지리·역사·문화·과학 등을 재미있게 녹여내 프랑스 초등학교에서는 교재로도 사용된다.팔레스타인 문제,남미의 정치·경제적 상황,영국의 인도 식민지 문제 등 20세기 세계사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담겨 있다. 땡땡은 1929년 당시 21세의 젊은 만화가 에르제가 벨기에 가톨릭계 보수 일간지인 ‘20세기’의 어린이잡지인 ‘르 프티 벵티엠’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필명인 에르제는 본명의 머리글자 ‘GR’를 거꾸로 해 불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벵티엠’을 통해 ‘소비에트에 간 땡땡’으로 처음 시작한 땡땡 시리즈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인기가 높아졌다.1930년 첫 출판 당시 고작 5000부가 팔렸던 ‘소비에트에…’는 지난 81년 재출간때는 3개월 만에 10만부가 팔려 나갔다.에르제는 1930년부터 1976년 ‘땡땡과 카니발 작전’까지 벨기에의 카스테르만 출판사를 통해 23권의 땡땡 시리즈를 내놓았다.24권인 ‘땡땡과 상어호수’는 원작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에서 스틸 컷을 뽑아 만든 것이다. ●‘땡땡 스타일’의 핵심은 명료성 에르제는 생전 ‘소심하다’느니 ‘결벽증 환자’라는 놀림을 살 정도로 ‘명료성’에 집착했다고 한다.미려하고 깔끔한 외곽선을 얻기 위해 종이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선을 반복해서 긋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에르제의 ‘명료성’은 작화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이야기 전개방식,칸 구성,인물 창조 등 곳곳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명료함은 ‘땡땡 스타일’이라는 별명을 낳았다. 1969년 미국이 유인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기 15여년 전에 그려진 ‘달 탐험 계획’(1953년)과 ‘달나라로 간 땡땡’(1954년)을 보면 왜 유럽 과학자들이 동호회까지 만들어가며 땡땡 시리즈에 열광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정확한 과학기술 지식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달 착륙 과정은 지금보아도 실감이 날 정도.이것 말고도 로켓,수륙양용전차,가변익 비행기,잠수함 같은 복잡한 기계들을 정확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상상,만화적이지만 정교한 그림으로 묘사해냈다. ●땡땡의 정치적 성향? 땡땡은 종종 서구중심적·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초기작인 ‘소비에트로 간 땡땡’에서처럼 구소련을 부정선거와 납치,고문이 자행되는 나라로 그리는가 하면,‘서구가 미개한 동양을 개화시켰는데도 은혜를 모른다.’는 식으로 동양 식민지인들의 독립운동을 폄하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은 에르제의 한계라기보다는 당시 유럽인들의 한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히려 땡땡 시리즈는 뒤로 갈수록 ‘푸른 연꽃’(1946년)에서처럼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변화된 시선을 담아낸다.일본의 남만주 기차선로 폭파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푸른 연꽃’은 제국주의로 경도되는 일본과,그를 지지하는 서구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다. 땡땡은 ‘티베트에 간 땡땡’(1960년)에서는 중국인 친구 창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한다.달라이 라마는 “서구인들이티베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소중한 책”으로 ‘티베트에…’를 소개하기도 했다.기본적으로 땡땡은 다른 문화의 소중함을 이해·포용하려고 노력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다. 사실 땡땡의 ‘색깔’은 프랑스 국회에서도 공식적인 격론을 벌이는 문제다.국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캐릭터인 만큼 각당의 ‘영입 경쟁’이 치열한 것.프랑스 우파 제1당인 공화국 연합당은 “특출한 애국심과 역사관으로 볼 때 땡땡은 우리 당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이에 맞서 온건 좌파인 사회당은 “중국인 소년 창을 구하고 동지로 삼는 반인종주의적 행동으로 볼 때 땡땡은 사회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쨌든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의 땡땡에 대한 의견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의 한 마디로 통일되는 듯 싶다.“고마워요,에르제.” 채수범기자 lokavid@
  • 고독·동성애·가족해체 그 속에 꿈틀대는 새 삶/ 김숙 소설집 ‘그 여자의 가위’

    무엇이 40대 중반의 작가에게 우리 사회를 이토록 음울하게 그리게 했을까? 김숙의 소설집 ‘그 여자의 가위’(여성신문사 펴냄’)를 읽다 보면 마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대변되는 홍상수의 우울한 영화를 보는 듯하다.그 깊고 넓은 고독의 늪에 침잠하다 보면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것 같다. 표제작은 아버지의 외도와 사고,가출 등 어두운 과거를 지닌 미용사 주인공이 미용실이란 공간에서 살핀 사회의 모습을 다룬다.누나를 사랑한 죄의식에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남자,인터넷을 통해 섹스·동성애 등 어른의 세계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열두살 소녀 나리 등을 통해 “너무나 풀기 어려운 그들만의 기호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사회적 고독’을 이야기한다.작가는 그 주인공 나리의 20살 모습을 다른 작품 ‘스무살의 MOTEL’에 주유소 아르바이트생으로 등장시킨다.방황하는 친구들과 주인공이 세파에 몸을 실어가는 과정을 통해 가족 해체라는 사회의 다른 생채기를 그린다. 결국 작가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퍼즐식으로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절대 고독,가족해체,성문제,동성애,비루한 일상 등의 조각난 퍼즐을 침울하게 맞추다 보면 어느새 현실이라는 완성품이 나온다. 작가는 이런 현실에 대해 자신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다만 냉정하고 담담하게 현실을 그린다.그러면서 주인공들에게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고 새 삶을 꿈꾸게 한다.그런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역설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성큼 다가온다.“고단하지만 아름다운 인생들을 하나씩 글로 옮기기로 마음먹는다.”는 작가의 말이 활자 속 인물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살아 움직인다. 이종수기자
  • [길섶에서] 빙점

    물이 어는 온도를 빙점(點)이라고 한다.이것을 사람의 마음에 대입시키면 심오한 의미를 띤다.사람은 저마다 건드리면 아픔으로 다가오는 약점 비슷한,그러면서도 지키고 싶은 자존심 같은 것,즉 마음의 빙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소설이나 영화 제목으로,또 대화에 자주 등장하는지도 모르겠다. 수양이 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에 차이가 나겠지만,빙점이 있기에 항상 말에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나에겐 아무렇지 않은,살갑게 느껴져 무심코 던진 농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안타까운 일이다.유난히 섭섭함을 느끼게 만들고,정겹던 이가 갑자기 낯설어지고,버럭 화나게 하는 것도 마음의 빙점을 자극한 탓이리라. 역지사지(易地思之).조금만 배려하면 그냥 넘어갈 일을 크게 상심하게 만드는 어리석음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착각이다.저녁때 상가집에 들른 탓에 약간 취기가 오른 목소리로 아내에게 수능시험을 치른 아이 문제로 농을 던졌는데,금방 뾰로통해진다.내일 당장 친정집 나들이라도 나설 태세다.지천명(知天命)의나이인데,나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에 술이 확 깼다. 양승현 논설위원
  • 러시아 겨울 녹인 ‘한국의 정서’/성곡오페라단 기획 ‘이순신’ 초연 작곡서 연출까지 모두 러시아인

    러시아 작곡가 브라디슬라바 아가포니코프의 오페라 ‘이순신’이 14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발틱하우스 페스티벌 극장에서 초연됐다.러시아의 연출가와 성악가,오케스트라 합창단이 러시아 극장에서 공연한 글자 그대로의 ‘러시아 오페라’다. 이 작품은 이순신 장군을 주제로 한 오페라의 세계화를 꾀하고 있는 성곡오페라단(단장 백기현 공주대 교수)이 위촉한 것.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가 ‘나비부인'과 ‘투란도트’로 일본과 중국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듯이,‘이순신’을 통하여 한국문화를 세계에 부각시키겠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국립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작곡과장인 아가포니코프는 이미 체호프의 ‘반카 주코프와 호리스트라’(2001)를 비롯한 5편의 오페라로 호평을 받은 러시아의 중견 작곡가.러시아 국민주의 오페라의 전통을 이으면서,현대적 감각을 입힌 ‘이순신’에서는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읽혔다. 이번 ‘이순신'은 한국을 소재로 한 오페라 가운데 국제 수준에 이른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를 받을 것 같다.성곡오페라단은 1998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 작곡가에게 ‘이순신’의 작곡을 위촉했지만,‘수준 미달'이라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반면 새 ‘이순신’에 나오는 이순신과 박초희의 ‘사랑의 이중창’은 명곡만 모아놓는 ‘갈라 콘서트’에 당장 내놓아도 좋을 만큼 인상적이었고,우리 노래 ‘뱃노래’의 리듬을 이용한 ‘병사들의 합창’도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또 ‘아낙들의 합창’은 멜로디를 ‘새야새야 파랑새야’에서 따오는 등 한국적 정서를 적극 반영했다.그러면서 러시아 오페라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은 것은 “한국음악에는 무언가 러시아적인 것이 있다.”는 아가코니코프의 느낌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이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벗어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데는,소설가 김탁환(한남대 교수)의 대본이 큰 역할을 했다.대하소설 ‘불멸’로 이순신의 생애를 다루기도 했던 그는 이순신과 원균에 얽힌 기존의 갈등구조를 화해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바꾸어 놓았다. 굳이 이순신이나 원균의 관계,나아가 조선시대나 임진왜란이 아니더라도 어느 시대,어느 나라에 대입해도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극적 구성을 보여준다.그런 점에서 ‘이순신’은 매우 현대적인 감각의 작품이었다. 이날 발틱극장을 찾은 사람은 500명 안팎.830석 짜리 극장인 만큼 대성황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관객들이 뿌듯한 표정으로 극장문을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 출연진의 호연도 큰 몫을 했다. 국립 예르미타제 오케스트라와 모스크바 시립 블라고베스트 합창단은 완벽에 가까운 앙상블로 뒷받침했다.이순신 역의 테너 콘스탄틴 톨로스트브로프와 박초희 역의 소프라노 갈리나 보이코,원균 역의 바리톤 블라디미르 빌리,선조 역의 베이스 비탈리 등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오페라 ‘이순신’은 15일 김남두 정병화 백현진 박태종 안병근 등 한국성악가의 공연에 이어 16일 한국과 러시아 성악가의 합동 공연으로 러시아 초연무대를 모두 마무리했다. 백기현 성곡오페라단장은 “러시아 공연을 성공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만큼 내년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국내 음악계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면서 “꾸준히 보완하여 ‘이순신’이 표준 레퍼토리로 자리잡을 때까지 국내외에 알리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서동철기자 dcsuh@
  • “50살이 넘으니 봄날이 가더만…”/이청준 산문집 ‘그와의 한 시대는‘

    “40대까지는 ‘봄날은 온다.’고 생각했는데 50살이 넘으니 ‘봄날은 간다.’는 게 실감나더군요.” 이 소설 같은 표현은 지난 5월 소설가 이청준의 자택을 찾았을 때 그에게서 들은 말이다.가는 봄이 아쉬웠을까? 최근 펴낸 산문집 ‘그와의 한 시대는 그래도 아름다웠다’(현대문학 펴냄)는 지난날에 대한 기억이 가득하다.그 느낌은 한국화가 김선두 중앙대교수의 그림과 어우러져 더 따뜻하다. 작가는 40여년의 소설인생에서 만난 이런저런 사연을 들려준다.담담하게 문학 인생을 술회하는 글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작가 특유의 느릿느릿하고 차분한 말을 듣는 듯한 느낌에 젖어든다.글이 곧 말인 셈이다. 작가는 돌·강·나무와 글친구들을 징검다리 삼아 그에 얽힌 ‘아름다운 시절’을 현재로 불러낸다.그의 책만큼이나 집안을 메우고 있는 수석은 돌이되 돌이 아니다.그 하나하나에는 동행한 문인들과 주고받은 이야기와 따스한 인간미가 담겨 있다.울릉도의 현무암 조각에선 홍성원·김병익·김원일 같은 문우들과의 심한 풍랑 속 항해와 멀미의 기억을,제주도 화산석에선 시인 오규원과의 건강했던 갓 40대의 한 시절을(…) 떠올리곤 하는 식이다.나무와 강물도 스쳐가는 그저 풍경이 아니라 그와 교감한 이들의 숨결이 배어 있다.시인 오규원과의 우정을 다룬 표제글 ‘그와의 한 시대는 그래도 아름다웠다’에서 ‘그’는 오규원만이 아니라 ‘문학’으로 읽힌다. 이윽고 작가는 소설을 쓰게 되는 과정을 반추한다.시골에서 자란 그가 중학교때 광주란 도시와 맞부딪친 주눅듦은 서울의 대학생활에서도 이어진다.도회에 대한 낯섦과 서투름은 감성이 풍부한 젊은이의 정서를 부끄러움과 두려움,주눅듦으로 채색했고 마침내 자신을 다독이려고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는다.책의 말미에 이르러 자신의 ‘소설질’을 이렇게 회상한다.“나에게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어떤 실패나 소외로부터도 나를 견디고 넘어서게 하는 보람스러움과 자긍심을 지켜가고,어떤 지위나 영예보다도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자산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게 한다.” 비록 목소리는 낮지만 작가의 옹골찬 고집이 묻어난다. 이종수기자
  • 이런 책 어때요 / 연애의 시대-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

    권보드래 지음 현실문화연구 펴냄 ‘개조론’ 혹은 ‘개량론’이 풍미하던 1920년대 전반의 문화와 유행을 연애라는 프리즘을 통해 조명.당대의 신문기사와 연재소설,삽화,광고 등을 통해 일상에 파고든 연애의 감각을 되살려냈다.저자는 “세계 개조의 목소리가 높던 시절,연애는 개조론의 대중적 변종이었고 행복에 이르기 위한 주요 통로였으며 문화·예술·문학의 유행을 자극한 주원천이었다.”고 말한다.연애의 대두는 3·1운동 이후 여성들의 향학열과 무관찮다.1923년 보통학교의 학생 수가 서당의 그것을 역전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남녀의 공동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1만 3000원.
  • [편집자문위원 칼럼]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 새롭게 조명

    전에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슬프거나 감동적인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곤 했다.그러나 요즘은 신문만 봐도 눈물이 흐른다.그만큼 가슴아픈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이나 충남 아산 세원테크의 이해남 노조 지회장의 자살 소식,장기적인 불황에 따른 실업률 증가,급증하는 이혼율 등은 그 어떤 영화 속 내용보다도 가슴 아프다.그리고 이런 문제가 가족해체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슬픈 현실이다.생계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택하는 자살과 가출,이혼 등으로 인해 그 자녀들은 가족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대한매일이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집중기획으로 조명한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은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조부모 대리양육’은 우리가 평소에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중요한 사회문제다.‘지난 6월 말 현재 위탁아동은 할아버지·할머니와 사는 아이 2655명,친·인척에 맡겨진 아이 3562명,친척이 아닌 남에게 위탁된 아이 495명 등 모두 6712명’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10월28일 1면). 이 기획은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을 직접 만나 그 사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이러한 사례를 통해서 있는 그대로의 사회현실을 목격하고,그 문제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또 감정적인 호소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각적인 원인분석과 해법 측면에서 접근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기획연재 첫 회에서는 ‘가정해체 원인·문제점’을 다루면서 통계청의 지난해 이혼율 자료와 경남가정위탁지원센터의 ‘경남도내 가정위탁 세대 현황’ 등 객관적인 자료를 들어 문제의 원인을 찾고자 애썼다.또 실질적인 생활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허술한 사회안전망의 문제도 지적했다(10월28일 11면). 2회에서는 ‘선생님이 바라보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을 교육현장에서 직접 접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한 선생님은 “정상적인 가정의 아이들은 사교육에 눌려 치일 정도인 반면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은 방치되다시피 해 학습부진과 특기·적성 개발에도 한계를 드러낸다.”는 점을 꼬집었다(10월29일 17면). 이 말은 아이들이 생계뿐 아니라 학습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며,조부모 대리양육이 단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시켜준다. 또 3회에서는 ‘가정위탁’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 ‘양육수당’의 현실화 및 ‘가정위탁아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체계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10월30일 11면). 조부모의 대리양육은 과거부터 존재해왔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그런데 이번에 대한매일에서 이 문제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그 실태를 알리는 데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문제 해결의 주체를 정부의 경제적인 지원 쪽에만 초점을 맞춘 점은 조금 아쉽다.사실 조부모 대리양육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의 경제력 부재로 인한 생계의 위협일 것이다.그렇다면 이 문제를 고령화가 심각해져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또다른 문제와 연계해 노인들의 일자리 지원 등의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었을 듯싶다. 마지막으로,기사에서도 대안으로 제시했듯이 이를 더욱 공론화시키고 사회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대한매일이 앞장서주기를 바란다. 임 지 혜 명지대신문사 前편집장
  • 데뷔 30년 “음악으로만 말해요”/‘추억의 가수’ 옥희 첫 단독콘서트 권인하·신효범등 실력파가수 출연

    “뒤늦게 웬 호들갑이냐고 면박을 줄 사람도 있을 거예요.그렇지만 노래를 부르고픈 욕망이 나이가 들수록 더 솟구치는 걸 어째요? 하나님이 목소리로 먹고 살라고 정해주셨으니 소명대로 살 겁니다.” ‘나는 몰라요’‘이웃사촌’‘눈으로만 말해요’ 등의 히트곡으로 1970년대 가요계의 한 부분을 장식했던 추억의 가수 옥희(49)가 예사롭지 않은 공연을 갖는다.오는 31일 오후 6시 그랜드하얏트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여는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그에겐 “눈물이 날 정도로” 각별한 무대다.그동안 밤무대나 미사리 라이브 카페를 돌며 짬짬이 마이크를 잡아오긴 했다.그러나 대형무대에서 이렇게 내놓고 ‘공고’를 한 채 노래 부르기는 데뷔 이후 처음이다. “한창 잘 나가던 데뷔 5년째에 스캔들이 나버렸잖아요.그때는 연예인들의 스캔들에 지금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냉담하게 반응했어요.젊은 시절 오랫동안 그 기억은 상처였죠.지금은 다 풀렸어요.아마 세상도 그걸 아련한 옛이야기로 접어뒀을 것 같아요.” 중학교 3학년때인 1968년 미국인 기획자의 눈에 띄어 도미(渡美),라스베이거스의 팝송무대에 처음 섰다.국내 가요계에 데뷔한 것은 그로부터 6년 뒤인 1974년.77년까지 방송 3사의 가수왕을 휩쓸며 최고 인기를 누리다 복서 홍수환씨와의 스캔들로 무대를 떠나야 했다.“작고 귀여운 체구여서 옛날엔 ‘키티 킴’이라고 불렸다.”는 그는 “한때는 파격적 옷차림을 히트시킨 패션리더이기도 했다.”며 좋았던 시절을 돌이키며 웃는다.통굽 구두에 통바지,반지를 서너개씩 끼고 치렁치렁 액세서리를 매다는 과감한 패션을 유행시킨 주인공이 그다. “디자이너 하용수씨의 격려와 도움으로 첫 개인콘서트를 열 엄두를 냈다.”는 그는 “이번 무대를 통해 옥희가 그렇게 초라하게 살진 않았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신감이 넘칠 만하다.콘서트를 함께 꾸밀 얼굴들이 하나같이 쟁쟁한 후배가수들이다.권인하·박상민·신효범·박미경 등이 동참하고,사랑과 평화가 연주를 맡는다.“별명이 ‘까불이’였을 정도로 화려한 무대율동을 좋아한다.”는 그는 “재즈무용가 전미례씨에게 특별수업을 받으며 죽기살기로 ‘몸’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며 웃었다. 지난 5월 그는 소리소문없이 새 앨범을 발표했다.16년만에 내놓은 9집 음반이었다.“타이틀곡이 ‘소설같은 사랑’인데,라틴풍을 처음 시도했다.”며 “새 앨범의 재킷을 산뜻하게 단장해 공연에 맞춰 출시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번 콘서트를 제2의 무대인생을 여는 열쇠로 삼을 작정이다.“내 주특기는 팝송인데,한창 활동하던 70년대엔 사회금기에 눌려 제대로 불러보지 못했다.”는 그다.오비스 캐빈 같은 명동의 음악살롱에서 잔뜩 주눅들어 선보였던 장기를 속시원히 펼쳐보이고 싶단다.‘Proud Mary’‘Crazy Love’‘Diana’등 추억의 팝송들을 연습하느라 요즘 여념이 없다. 대중앞에 다시 서는 날만 갈망하며 살았다.오죽했으면 그가 운영하던 방배동 갈비집 지하에 전용 노래방을 다 만들었을까. “무대를 기다리는 신인처럼 너무너무 떨립니다.나이 든 가수는 트로트나 불러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야죠.록무대도 자신있어요.” 연륜과 음악적 깊이를 함께 더해간 프랭크 시내트라,토니 베닛.그가 누구보다 좋아하는 가수들이다.1544-1555. 황수정기자 sjh@
  • “우리 비평계는 작품분석에 갇힌 꼴”‘문명’읽는 비평의 눈 길러야/방민호교수 세번째 비평집 ‘문명의 감각’

    “오늘 한국 비평은 어제에 대한 반정립 또는 타자 부정을 통한 자기 긍정에 머무르는 한계를 보이는 것은 아닐까.또 문학사적·역사적 주제를 옆에 밀쳐두고 작품 분석·설명·해석 등에 국한하거나 서구 이론의 현학적 수용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닐까.”(27쪽) 93년 제1회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비평가 방민호(사진) 국민대교수의 세번째 비평집 ‘문명의 감각’(향연 펴냄)은 도전적이다.비록 목소리는 낮지만 작품분석에 갇히거나 비생산적 논쟁에 휘말려 신음하는 한국 비평계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대안은 비평의 시선을 문화에 가두지 말고 ‘문명’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임화·김기림 비평의식 계승 못하고 축소 그는 자신의 논거를 위해 일제시대와 해방공간으로 에둘러 간다.프롤레타리아 문학론의 테두리를 벗어나 조선 문학의 아이덴티티를 고심하며 쓴 ‘신문학사의 방법’에서 “해방 이전 한국비평의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 임화와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라는 비평문에서 ‘문화의 운명’으로나아가며 근대 한국사를 동양이라는 문명사적 맥락에서 파악하려한 김기림의 앞선 걸음에 주목한다.이 두 사람이 미완으로 남긴 문제의식을 해방 이후 우리 비평계가 계승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축소했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세계 문학사의 전개’를 쓴 조동일의 방법론에서 문명사적 시각의 부활을 목도하고 최원식에게서 문명론적 시각의 단초를 확인한다.이어 임화,김윤식 등 비평계 거봉을 등반한 지은이는 문학의 보편성을 향한 여정의 중간에 잠깐,‘불문학 비평가’인 황현산과 박철화의 존재의미를 점검하며 한국 비평의 줄기를 넓힌다. 이같은 작업은 저자가 국문학의 테두리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 문학비평,나아가 문명비평의 관점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이를 위해 그는 ‘대상과 거리두기’를 시도한다.“재일교포 문인과 한국 문학을 연구하는 일본인 학자들은 한국,한국 문화,한국 문학의 의미를 상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19쪽)는 지은이의 고백은 “경계인들의 사상에서 많은 것을 더 얻게 되리라.”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백민석·오수연 문명의 새흐름 인지 지은이의 잣대는 2부와 3부에서 현장비평으로 구체화된다.소설가 백민석에게서 “그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이해”(214쪽)를,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하여 불문학을 공부했기에 불어로 사유하고 표현하는 작가 정양에게서는 “이중의 인연·언어·식성을 갖고 두 개의 세계 속을 자유롭에 유영하면서 유목민처럼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230쪽)을,인도 경험을 토대로 ‘부엌’을 쓴 오수연에게서는 “세계를 향해 열린 새로운 주체로 거듭남”(244쪽)을 발견한다.이들은 덜 영글었지만 세계사 흐름을 주시하면서 미래에 걸맞은 새 시민을 싹틔우려는 작가들. 지은이가 이들에 거는 기대는 비평가인 그에게도 오롯이 걸린다.그의 두번째 평론집 제목의 일부처럼 ‘납함(여러 사람이 일제히 고함을 지름)’만이 가득한 시대에 냉철한 현실분석과 생산적이고 미래 지향적 대안을 내놓은 그의 목소리는 그에게 걸린 기대이자 그가 짊어질 과제이기도 하다. 이종수기자 vielee@
  • 새만금 사람들 이야기 문학적 그물에 주렁주렁/조헌용 첫 소설집 ‘파도는‘

    개발이냐 환경이냐? 뜨거운 논란을 빚었던 새만금 간척사업 건은 법원으로 넘어가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아 있다.시끌벅적한 소용돌이 속에 정작 새만금 주민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새만금 사람들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신인작가 조헌용의 첫 소설집 ‘파도는 잠들지 않는다’(창비사 펴냄)는 간척사업을 둘러싼 여러 인간들의 반응을 섬세하게 반영해 눈길을 끈다. 표제작등 8편의 중단편은 모두 새만금 간척사업을 둘러싼 인심(人心)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작가는 신춘문예 당선작을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소고’로 삼았을 정도로 새만금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자란 곳이 그곳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소박하게 말하면서도 “순하고 착한 사람들이 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너무 쉽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환경·개발이라는 거대담론이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새만금의 오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새만금에 대한 미시적 보고서’로 읽힐 만한 이 작품집은 보상금을 둘러싸고 달라지는 세태 등을 추적한다. 그렇지만 작품집은 소재주의에 갇히지는 않는다.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구성과 인물 묘사로 녹록지 않은 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차를 산다 집을 고친다 보상이 나오기도 전부터 사람들은 흥청망청 들떠”(252쪽)있는 분위기 속에서 보상금을 날려버린 사람들의 좌절을 다룬 ‘오늘의 날씨’를 비롯,간척으로 삶의 터전인 포장마차를 철거하려는 시청직원과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학미로 버무린 ‘전국노래자랑’ 등 다양한 사연들이 조헌용의 촘촘한 문학적 그물에 주렁주렁 걸려온다. 평론가 유보선은 “바다의 신화성에 주목하거나(천승세),벗어나지 못한(한창훈) 해양문학과는 달리 근대성의 옷을 입은 ‘탈마법화된 바다’라는 낯선 풍경을 그리면서 문학사의 새 항목을 추가했다.”며 “기존의 문학적 관습을 근본적으로 전복시키려는 패기로 가득찬 소설집”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종수기자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시리즈를 마치며

    지난 7월18일 ‘북의 최인훈’을 시작으로 일성을 터뜨린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시리즈가 25일 ‘남의 박경리’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현재를 전환기 혹은 과도기라고 합니다.낡은 것과 새것이 공존하는,완전히 낡지도 전적으로 새롭지도 않은 이 ‘지나가는 시대’는 그래서 혼란스럽습니다.이번 시리즈에서 우리 시대의 대표적 문학지성 10인이 들려준 목소리는 사회 여러 분야에 나타나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패러다임이나 그 단초가 될 것입니다. 이 작업은 그 발판이 문학이기에 가능했을지 모릅니다.문학은 사회문제·철학·역사·경제·정치 등 모든 것을 끌어안기 때문입니다.무엇보다 문학은 총체적 삶에 관한 것으로서 삶의 본질을 다룹니다.그래서 늘 시대정신의 진실을 추구하고 억압과 질곡과 싸워왔습니다. 시리즈에 참가한 10명의 문학지성들은 평생동안 문학이란 넓고 깊은 사색의 바다에서 닦아온 지혜로 혼미한 시대를 헤쳐나갈 고견들을 들려주었습니다.한 분야에 일가를 이루면다른 분야가 보인다는 말이 있듯 당대 최고의 문학지성들의 화두는 단순히 문학 그 자체에 멈추지 않고 시대의 본질을 꿰뚫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나아가 차가운 이성만으로 무장하다 보면 자칫 딱딱하고 난해해지기 쉬운 사상이나 분석틀을 문학 특유의 상상력과 감성으로 부드럽게 감싸주면서 이해하기 쉽게 들려주었습니다. 그 속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의 흐름을 진단한 뒤 현실적 과제로 젊은 세대들의 자율과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원로 소설가의 화두를 접했습니다(최인훈).세계의 관심이 언어와 문화로 이동하고 있다며 동북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문화틀로 보라는 당대 최고의 평론가의 당부도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김윤식).동서고금 사상을 넘나든 뒤 ‘붉은악마’와 ‘촛불 시위’에서 새세대의 문화적 창조의 싹을 보는 논리는 황홀했습니다(김지하). 한 우물만 파고 한 마리 토끼만 쫓으라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뒤흔든 문명비평가의 발상의 전환(이어령),시대를 초월하여 중심을 잡아야 하는 지성의 역할을 강조한 비평가의 낮지만 소중한의견(김우창),새로운 의미의 민중이 존재하기에 여전히 평등의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는 시인의 충고(신경림),남북한 문제를 형과 아우로 비유하며 보듬고 가야 한다는 소설가의 진단(현기영) 등 현대의 혼란한 항해를 비추는 등불은 시리즈 어느 곳에서나 발견됐습니다. 우리가 만난 문학지성은 자신의 방법론에 바탕하여 늘 새로운 삶의 방식과 해석을 꿈꾸고 있었습니다.그것은 제 자리에 머무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세계와 가능성의 그림을 그리는 문학의 정신이기도 했습니다.시리즈를 마치며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혼돈의 시대일수록 연륜에서 묻어나는 지혜로움이 빛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바쁘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문학지성과 그들의 값진 말씀을 하나라도 더 담기 위해 동분서주한 방민호 교수의 노고가 없었다면 이 시리즈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독자 여러분께도 그동안 뜨거운 호응을 보여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종수기자 vielee@
  • 개인사에서 작품세계까지 서정인의 문학 40년 함축/文友들이 펴낸 ‘달궁 가는 길’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교과서격으로 손꼽히는 작가 리스트에 서정인과 오정희는 ‘단골’(?)로 오른다.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문체에 기대 덜 여문 문학열정을 숙성시키곤 한다.치밀하고 엄정한 문체를 자랑하는 서정인(65) 문학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책 ‘달궁 가는 길’(서해문집 펴냄)이 나왔다. 동료인 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가 작가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본인의 ‘방해와 간섭’을 무릅쓰고 엮었다.”는 이 책은 평론가들의 작가론과 작품론을 묶었다.이들의 전문적이고 상세한 분석에 힘입어,‘난해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는 서정인의 문체와 작품세계는 두꺼운 옷을 벗는다. 작가론에서 평론가 조은하는 서정인의 작품세계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즘”으로 정리한 뒤 작품분석을 통해 “작가가 진지하게 추구한 것은 서민 생활과 그들의 저력에 대한 믿음”(59쪽)이라고 결론짓는다.이경수 원광대 교수는 인터뷰를 곁들여 “한 인물의 생애에서 맞닥뜨리는 당대의 온갖 유형의 호적을 재현시키려는 발자크적 열정과 씨름하고 있는 셈”(68쪽)이라고 평가한다. 또 고인이 된 평론가 김현을 비롯,유종호 황종연 정호웅 우찬제 김종욱 김태환 등이 글품을 보탠 작품론은 서정인의 문학세계를 다각도로 비춘다.서정인 소설의 가장 큰 특색을 문체라고 파악했던 고(故)김현은 “귀중한 돌을 갈듯이 그는 말 하나하나를 경건하게 다듬는다.”며 “작가가 뼈를 깎듯 힘들게 깎아 남긴 말들은 독자에게 팽팽한 긴장을 맛보게 하지만 그 문체를 통하지 않으면 서정인 소설의 즐거움의 대부분을 놓친 것”(123쪽)이라고 적고 있다. 유종호 연세대 특임교수는 서정인의 작품세계를 “우리말로 된 가장 행복스러운 단편소설의 지복상태의 하나를 드러낸다.”며 “야무진 주제,꽉 짜인 구성,단 몇줄로 선명하게 작중인물을 떠올리는 성격묘사 등은 단편소설 지망생의 모범”이라고 분석한다. 전집의 압권은 신광철 전남대 철학과명예교수의 ‘술친구 서정인’.이 글은 작가 본인이 그토록 고사한 ‘개인 서정인’이야기를 담고 있다.그 속에는 신 교수가 30년 지기로서 가까이 살펴본 인간 서정인의 이야기 예컨대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맵시있는 모습,자기 연구와 강의에 충실한 표정,사투리에 대한 작가 서정인의 애정,진정한 술꾼으로서의 서정인 등 작가의 면모를 정밀하게 묘사한다.부록으로 곁들인 작가의 수상소감도 그의 눈부신 문체를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이다. 서정인은 1962년 단편 ‘후송’으로 사상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대표작인 장편 ‘달궁’등의 작품활동으로 김동리문학상,이산문학상,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다.“나는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왜 쓰느냐는 이 캄캄한 미로를 벗어나기 위해서고,어떻게 쓰느냐는 그 길을 찾는 것과 같다.” 이종수기자 vielee@
  • 밑바닥 인생들의 삶 작가로서 외면못해/소설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 펴낸 최인석

    시류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고수해온 중견작가 최인석(50)이 8번째 장편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창작과비평사)를 내놓았다.86년 등단 이후 낸 작품집까지 합치면 13번째 결실이니 꾸준히 글밭을 일궈온 셈이다.더구나 내는 작품마다 고른 수준으로 ‘대산문학상’ 등을 받아 반향을 일으킨 걸 감안하면 그의 소설적 성취에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하다. 서울 둔촌동 그의 자택 인근에서 신작 이야기 등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보았다.소감을 물었더니 “후련하다.”고 말한다.지난 99년 계간 동서문학에 연재할 때 미진한 게 너무 많아 께름칙해하던 중 다시 취재에 나섰다는게 이번 작품 태동의 배경.작품 무대인 이태원 토박이를 만나 자상한 설명을 듣고 5∼10차례 개작해 마음의 짐을 훌훌 털게 됐다고 한다. 최인석의 작품은 추악한 현실을 매우 촘촘하게 겯으면서 신화·전설·민담을 차용해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구성이 특징이다.1600매 분량의 이번 장편의 내용과,그에 나타난 현실관과 유토피아 등을 중심으로 대화를 엮어본다. 주인공 심우영은 아비가 도둑질하다가 죽자 술주정뱅이 어머니에 의해 고아원에 맡겨졌다.비리투성이인 원장과 싸운 뒤 고아원을 나와 이태원으로 흘러들어 클럽에서 일하며 간음·대마초·혼음에 젖어산다.왜 이리 우울하게 현실을 그릴까? “세상 생김생김이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도 허용하지 않습니다.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현실은 가족·우정·사랑 등 모든 관계를 상품과 거래관계로 둔갑시켰습니다.쪽방 사람들로 대변되는 ‘장기적 사형’에 가까운 밑바닥 인생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을 작가로서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세계관은 작품에 그대로 반영된다.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소설적 대안’은 직접적 투쟁이 아니라 알레고리로 우회한다.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한 신화 등으로 유토피아를 그리는 것이다.이번 작품에는 중국 신화의 ‘열고야(列姑射)’라는 나라가 등장하는데 큰 틀만 빌렸고 구체 상황은 작가가 재구성했다.곁에서 늘 주인공을 도와주는 ‘밥어미’(작은 년)는 유토피아 ‘열고야' 에서 온 간첩이라고 주장하며 지구 반대편까지 우물을 파면 이 세상은 평화만이 가득할 것이라는 꿈을 설파한다.추악한 현실에서 알레고리로 꿈을 제시하는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다. “작가로서 80년대 말 고비를 겪었습니다.머리 속 글과 실제 글의 괴리가 너무 심했죠.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지,내 문장이 현실을 제대로 그려내는지 등 의문에 빠져있을 때 신화가 구원의 밧줄을 내려줬습니다.단순한 옛날의 재미·낭만의 세계가 아니라 엄격하고 냉정한 플롯이 있더군요.해피엔딩도 억압의 삶을 벗어나려는 민중의 비원이 담긴거죠.” 작품 속 밥어미도 싸우지 않는다.“우리 무기는…우리의 존재 자체,삶 자체여.이곳에 와서 살다 감옥살이하고 처형당하는 것,여기가 아닌 곳,떠나온 조국을 그리워하는 것,그게 우리 무기여”(322쪽)라는 열고야의 또다른 간첩 ‘택이 아비'의 말처럼 밥어미는 우영의 연인 영순을 대신해 감옥에 가고 도 우영을 지키려다 죽는다.죽음으로써 유토피아의 믿음을 실현하기,그것은 작가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인간의 상상력이 집약된 신화 등으로 제 문학을 번성시킨다는 애초 도정에 반쯤 왔다.”는 낮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다음 작품은 기다려진다. 이종수기자 vielee@
  • [열린세상] 해빙기의 아침

    광복절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시내나들이를 한 나는 공교롭게도 두 집회의 가운데를 지나가게 되었다.한쪽은 예비역 군인들의 차량 행진이었고,다른 한쪽은 젊은 대학생들의 집회였다.이 두 집회는 경찰과 버스로 완벽하게 격리되어 있었다.그 장면을 뒤로 하고 지나면서 아직 여름이 한창인 그때 나는 좀 엉뚱하지만 ‘해빙기의 아침’이라는 한수산 작가의 오래 전 소설 제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길고도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사로운 햇볕과 훈풍이 부는 봄이 온다.그러나 겨울과 봄 사이에는 해빙기라는 지나야 할 문이 있다.해빙기에는 예기치 않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겨우내 꽁꽁 얼었던 얼음이 녹으면서 축대가 무너지기도 하고,얼음놀이 하던 아이들이 물에 빠지기도 한다.두꺼운 외투를 벗으면서 변덕스러운 날씨에 겨울보다 오히려 감기에 걸리기 쉬운 때가 해빙기이다. 세계적인 냉전체제가 해체된 지금에도 한반도의 냉전체제는 완전하게 해체되지 않고 있으며,냉전문화라는 형태로 우리의 일상에서 재생산되고 있다.그래서 혹자는 우리 민족의역사시계는 세계사의 그것보다 늦게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역사의 시계 속에서 한반도의 냉전 상황을 극복하고 봄을 향해 가야만 한다.이와 같은 점에서 햇볕정책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남북관계는 과거에 비해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상징적이나마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고,‘금강산 한번 가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은 이제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남북철도의 연결과 개성공단 사업도 현실화되고 있다.또 부산 아시안게임에서의 작지 않은 감동도 이전에는 상상할 수 있던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남북관계가 발전하는 것과 정비례해서 우리 내부의 문제들이 증폭되어 나타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대북정책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은 일상화해 버렸고,보수와 진보 진영은 서로를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주한미군의 주둔과 철수라는 상반된 주장의 시위가 같은날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야당은 여당의 대북정책이 문제라고 하고,여당은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에 올바른 대북정책의 수행이 어렵다고 탓한다.보수는 진보가 위험하다고 말하고, 진보는 보수 때문에 개혁이 지체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가지는 혼란스러움과 우려를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금강산 사업을 지휘했던 한 기업인의 자살을 두고 그 이유에 대해 많은 해석이 있었다.그러나 아직도 해체되지 않은 한반도의 냉전구조와 냉전문화의 일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 모두가 진정한 이유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보·혁간 분열상이 심각한 수준을 넘고 있다고 우려한다.그러나 냉전이라는 겨울에서 민족화해라는 봄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빙기를 거쳐야 하고,지금의 상황은 ‘해빙’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로 해석되어야 한다.보·혁이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두 세력간의 공존이 어렵다는 현실이 문제인 것이다.우리 스스로 화해하지 않으면서 남북의화해를 이룰 수 없다.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해빙기의 위험들을 잘 극복해야만 한다.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관용하는 시민사회의 노력과 언론의 진지한 고민,그리고 사회 지도층과 정부의 적절한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냉전의 자폐에서 벗어나 정상성을 회복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우리 모두는 냉전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겨울이 지나면 봄은 반드시 돌아오고,우리 역사시계의 봄도 멀지 않다.그래서 이 ‘해빙기의 아침’에 ‘성찰’이라는 단어의 진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조 한 범 통일연구원 북한기초연구사업 본부장
  • 김주영·박형진씨 산문집/스피드에 갇힌 세태 ‘느림의 미학’ 느껴봐!

    현대문명의 과속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담은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세상은 여전히 ‘느림의 미학’에 귀를 기울이지 않지만,그런 세태에 제동을 거는 것이 문학의 역할의 하나다.위험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부는 상상력의 방식은 달라도 늘 세상의 문제점을 들춰내고 대안을 찾으려는 것이 작가의 자리다. 최근 나온 소설가 김주영의 ‘젖은 신발’(김영사)과 시인 박형진의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디새집)도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두 산문집은 각각 과거와 농촌,현재와 어촌이라는 다른 풍경을 소재로 삼았지만 그 속에 점점이 담은 메시지가 ‘느림이 주는 순박함’이라는 점에서 빼닮았다. ●‘젖은 신발’=지난날의 힘 32년 문학 인생 동안 토속적 정서의 형상화에 탁월한 경지를 이뤘다는 평을 듣는 작가 김주영의 첫 산문집.39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작가는 까까머리 소년 시절부터 찍어온 기억의 사진첩을 꺼낸다.일견 성장소설로도 읽을 수 있는 이 산문집에서 김주영은 사진 작가 임인식이 공들여 찍은 흑백 사진 위에다 소중한 풍경을 한땀 한땀 수놓는다. 1부는 오래된 우물.작가는 옛 우물가로 가서 두레박을 내린다.그곳에 달빛 아래 마을,원두막,멱감기,젖먹이를 포대기로 업고 들밥을 들고 가는 아낙네,소에게 꼴 먹이는 소년 등 비록 궁핍했지만 마음만은 부유했던 시절의 가슴 시린 장면들을 길어올린다. 정감어린 추억여행은 2부 ‘기적소리’에 실려간다.빨치산에 어린 기억,을씨년스런 피란시절,한국전쟁 이후 노천 교실 등 사회현실을 얼핏 보여준 뒤 겨울보리,장터 풍경 등을 정밀 묘사한다.김주영이 환기시키는 추억은 과거로 박제되어 있지 않다.그것은 여유를 가져다 주면서 현재의 힘으로 되살아난다. ●‘모항 막걸리집의…’=지난날,지난날이 돼가는 현재 글로 표현하는 것이 무색할 때가 있다.그 사람의 삶 자체가 글이 줄 수 있는 감동을 이기는 경우인데 ‘모항…’의 지은이 박형진 시인도 그런 사람이다. 서해의 넉넉한 품에서 살아온 시인이 꾸밈없이 들려주는 ‘울퉁불퉁한 변산 사람들’(1부)의 이야기는 정겨움으로 출렁인다. 글모음에 나오는 주인공은 자맥질 선수 종태,봉구 형님 등 바닷가 마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소박한 이웃들이다.시인은 그들 곁에 살면서 느낀 점들을 소탈하게 그려낸다.주요 무대는 시인이 사는 변산 앞바다 모항 입구의 막걸리집.그곳에서 만나는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인은 세딸 푸짐·꽃님·아루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생활 속 지혜도 들려준다.고구마 하나로 사시사철을 설명하고,보리고추장에 비벼먹는 보리밥,콩에 얽힌 다양한 세시 풍속 등 이제 막 지난날의 더미에 묻힐 이야기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지난날 모아둔 어린 시절의 그림일기를 꺼내든다.바랜 표지 속에는 갈피마다 구수한 이야기가 기다린다. 이종수기자 vielee@
  • “다시 태어난다해도 가수 될것”/70년대 가요스타 정훈희 씨

    ‘안개’(70년 동경국제가요제),‘무인도’(75년 칠레국제가요제),‘꽃밭에서’(79년 칠레국제가요제). 7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스타가수 정훈희씨의 주옥같은 히트곡 들이다. 어느덧 50을 훌쩍 넘겼지만 정씨의 노래에 대한 ‘끼’와 애착은 여전하다.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 임랑해수욕장 바닷가에 자리한 아담한 2층 건물 카페 ‘꽃밭에서’에서 주말마다 자신의 히트곡과 관객들의 신청곡을 열창하는 라이브 공연을 5년째 하고 있다. 카페 ‘꽃밭에서’는 정훈희·김태화 부부가 5년 전 지었다.한때 그룹 리드싱어로 활발한 활동을 했던 남편 김씨가 지킨다. 이 카페가 문을 연 뒤부터 정씨는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일요일 오후 3시,5시부터 1시간씩 인근 부산,울산,경남지역 음악 팬들에게 노래를 선사하고 있다. 공연 때마다 50평 남짓한 카페와 바깥 테라스에는 100명이 넘는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앙코르를 외친다. 전성기와 다름없는 시원시원하고 활달한 몸짓과 목소리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공연을 보러오는 사람들은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족단위가 대부분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자리다.차 한잔을 해도 되고,안 해도 그만이다. “김태화 아저씨도 노래 잘 하는데 한번 들어볼래요?” 관객들을 부추겨 남편을 무대로 불러내 마이크를 잡게 하기도 한다. 두 아들과 서울에서 살고 있는 정씨는 주말 공연을 위해 매주 금요일 내려와 월요일 서울로 올라간다.일 때문에 떨어져 지내는 주말 부부지만 부부애는 변함이 없다. 정씨는 “나이탓인지 이제는 TV에 출연하는 것은 귀찮아 되도록 안나가려 한다.”면서 “그렇지만 행사초청이 많아 전국을 다니느라 바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잘 먹고 노래하며 열심히 살다보니 건강도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67년 가수로 데뷔해 37년째 무대에 오르고 있지만 노래할 때의 즐거움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스타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노래도 잘 해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그런 점에서 그는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반짝 스타가 아닌 실력있는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재능을 타고나야 하고 노래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질을 따져보지 않고 다른 분야에서 얻은 인기에 기대어 가수가 되려는 욕심은 곤란한다.”고 충고한다. 방송에서 원로 가수들이 설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줄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이해했다. “젊은 후배들의 최신 노래도 가사만 알면 겁날 게 없는데 가사 외우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정씨는 노래하는 가수로 계속 활동하면서 새 노래도 준비할 생각이다. 한번 책을 들면 좀처럼 놓지않는 책벌레로 요즘은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속의 주인공이 되는 즐거움에 날을 새기도 한다.틈틈이 영화관도 찾는다. 파도여 슬퍼 말아라/ 파도여 춤을 추어라/ …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카페 안팎을 오가며 관객과 바다를 향해 온몸으로 ‘무인도’를 열창하는 동안 노랫말처럼 카페 앞 바다에서는 바람이 불고 파도가 춤을 춘다. 가요계 스타로 화려한 시대를 보냈던 정훈희,주말마다 그는 바닷가‘꽃밭에서’ 노래로 팬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노래에 대한 열정과 애착을 “다시 태어나도 가수가 될 것”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글·사진 기장 강원식기자 kws@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5)이어령-세계사 새 조류와 한국 지성인

    “우리는 지금 하나의 벽화 앞에 있다.그것을 너무 떨어져서 또는 너무 가까이 가서 바라보면 안된다.적당한 거리가 필요할 것이다.말하자면 형상의 윤곽만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원거리와 반대로 어느 부분의 디테일만 보이는 근접된 거리에 서지 않는 것이 좋다.”(이어령 ‘저항의 문학’(1959)중에서) 전후문학(戰後文學)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어령 선생의 글을 접한 적이 있다.무덤 속에서 죽은 이상(李箱)을 깨워낸 그는 당대의 한국문학에 현대성과 보편성이라는 화두를 던졌다.그리고 지금도 그는 한국사회의 한 끝에 서 있다. 어느 날 아침 라디오에서 기업가들을 앞에 놓고 세계사의 향방을 이야기하는 선생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그 젊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하시는 말씀이 최신식이었던 까닭이다.나는 오늘도 그런 기대를 안고 선생을 찾아갔다. “문명비평가로서,중앙일보 고문으로서 선생님의 근황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내 나이가 이제 고희를 지났습니다.새로 시작하기보다는 정리하는 쪽으로 하려고 합니다.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어요.하나는,내가 본래 문학평론을 했기 때문에 현암출판사 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와 소설을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방식으로 정밀 분석하는 시리즈를 내려고 합니다.두 번째는 10월부터 일본문화연구소의 초청으로 일본에 장기체류하게 되는데 거기서 동아시아 문화 읽기를 시리즈 방식으로 써나가려고 합니다.마지막은,서양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한국의 입장에서 새 문명의 지도를 그려보려는 뜻에서 세계 각국을 주유하면서 석학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특히 마지막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잘 알다시피 영국·미국·호주·필리핀·싱가포르·일본 이런 나라들은 해양 국가들입니다.미국이라는 게 큰 대륙이지만 문명사적으로 보면 유럽에서 떨어져나간 섬이죠.일본이 대륙권 문화에서 떨어져나간 섬처럼 말이죠.소위 섬들의 문화입니다.그런 해양 세력 하고 유럽 중심 속의 유라시아 하고 우리나라·러시아·중국 등을 대비해 보려고 합니다.그러니까 사실상 문명 충돌은 헌팅턴이 본 것처럼 이슬람 대 기독교,이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지정학적인,지리적인 위치에 따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부딪치는 관계인 거죠.우리는 반도라는,양립성을 가지고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세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자신감에 차 있다.선생을 문명비평가라 칭한 것은 잘한 일 같다. “선생님께서는 1934년생이신데요.어느 누구보다 부단한 갱신을 이뤄 오셨습니다.이를 가능케 한 시대나 세대상의 배경은 없을는지요?” “내가 성장하던 시대는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게 없었던 시대였죠.서울의 도시체험이라고 하는 것도 첨단 도시가 아니라 완전히 폐허의 도시였어요.전쟁 때문에 울타리도 없고 길거리도 없고.한마디로 우리 세대는 자기 정체성마저도 상실된 시대이기 때문에 제로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그리고 나는 이것이 굉장한 불행인 줄 알았는데 내 일생을 살아가는 데 귀중한 체험이 되었습니다.연필이 왜 좋은가.만년필이 있고 볼펜이 있는데.지울 수 있기 때문이죠.한번 쓰면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게 요즘 젊은 세대들이 아닌가 해요.386세대,한총련세대 전부 지워지지 않는 볼펜 같습니다.우리 세대는 확실하게 지워질 수 있었습니다.끝없이 자기를 소거했던 거죠.내가 컴퓨터를 좋아하는 것은 아무리 어마어마한 것이라 해도 컴퓨터는 딜리트 키 하나만 누르면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이 쾌감이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겁니다.이것이 지금까지의 내 문학이론의 기본적인 바탕입니다.끝없이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 자기를 몰입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은 말을 끊을 사이도 없이 숨 가쁘게 말씀을 이어간다.나는 선생의 어조와 표정에서 씌었거나 들린 사람의 표징을 본다. “선생님은 문학비평에서 문명비평으로 그 폭을 넓혀 오시지 않았던가요?” “내가 역사나 사회로부터 도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요.문학이라는 것은 사회개혁의 수단이 아니라고 이야기한 것이지 내가 사회와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소리는 아닙니다.나 보고 직함이 많다고 하는데,그러나 나는 너무나도 단순하게 살아왔습니다.창조적 상상력을 위해서 일평생을 바쳤고,그것이면 뭐든 가리지 않고 지적 호기심을 바쳤다고 할 수 있지요.책도 그렇게 읽었고.다만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 사람이에요.인생이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재미없게 왜 한 우물만 파느냐.토끼도 수십 마리 쫓아라,놓쳐도 좋다,수백 개의 우물을 파라는 겁니다.끝없이 수맥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우물을 하나 파서 마십니까.나는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고 토끼를 잡는 사람도 아니고 토끼를 쫓고 우물을 파는 사람,창조가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습니다.진짜로 토끼를 잡아서 놔주면 내 작업은 끝난 거예요.이것을 잡을 때까지 전심을 다하는 그 긴장을 나는 사랑하는 것이지 토끼 잡아서 뭐합니까.내가 목마름의 갈증이 있는 한 나는 또 하나의 우물을 파지만 우물을 파서 마셔도 내 갈증이 없어지지 않는데 내가 왜 한 우물만 팝니까.우물 파기와 토끼 잡기,이것이 내 평생의 일이지요.” 이제 나는 질문을 선생의 문명비평 쪽으로 돌려본다.“선생님께서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쓰신 칼럼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불러일으켰던 것으로 아는데요.” “내가 그 칼럼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오늘날 전쟁이 뭐냐 하는 것이었어요.새로운 시대에 있어서의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평화다,반전이다,참전이다를 가릴 것 없다는 거죠. 우리의 생활 곁에 끝없이 선고받은,종전 없는 전쟁이 들어섰다는 거죠.부뚜막에 전쟁이 올라와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죠.그것을 갖다가 모럴문제,환경문제,발전문제로만 보는 것은 좁다 이거죠.그러니까 새롭게 보아야 하는 것이죠.” “오늘날 세계는 이라크 전쟁,북한의 핵문제 같은 ‘낡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가 하면 초국가적인 기술 발전으로 인해 나날이 새로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과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는지요?” “오늘날 어느 나라를 보든지 세계 시스템이라는 것은 국민국가예요.국민국가라고 하는 틀이 점점 커져서 글로벌화하다 보니까 다민족 국가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어요.중국 같은 나라가 55민족이 사는 나라가 아닌가 말이에요.미국도 다민족 국가고.스위스도 조그맣고 말레이시아도 조그마하지만 전부 다민족 국가예요.언어도 다 다르고.그게 바로 네이션 스테이트예요.그런데 지금 남들은 그런 국민국가에서 벗어나서 국민국가 자체가 허물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국민국가는커녕 통일도 못하고 있단 말이죠.그런 와중에도 한국은 세계적인,소위 보편적인 시스템에 들어서 있습니다.한국은 지금 세계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이 보편 시스템에 들어와 있는 걸 거부할 수가 없어요.인권,보편주의,보편성,합리성,자유,평등 이걸 거부할 수가 없어요.북한은 80%의 질서 속에 남아 있고 우리는 20%의 질서 속에 들어와 있어요.지금 남한은 20% 중에서,세계 IT 국가 중에서도 최강국이다 이거예요.이걸 잘 알아야 된단 말이죠.그러니까 민족주의적 감상으로 보면,핵문제 등에서 물보다 피가 더 짙다고 얘기하면서,정권이 뭐 민족이냐 이런 디테일한 문제를 따지기 전에 그냥 진짜 민족이다 우리끼리,그러니까 남의 나라가 위협하면 같이 싸워야 된다,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현실적으로는 북핵문제라든지 이웃나라와의 공조문제라든지 했을 때는 20%에 속해 있으면서도 80%에 남아 있는 북한을 아우르는 데에서 오는 사고의 편차,물질적 경제적인 편차,국제적 외교관계들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상황이 그렇다면 우리 한국의 지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요?” “소위 ‘엔드 오브 히스토리(end of history)’, 역사는 결론이 났다.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렇게 보았습니다.헤겔식 절대주의죠.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충돌론에서 정반대로 문화는 상대주의다,어느 하나가 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나는 후쿠야마도 헌팅턴도 잘못됐다고 봅니다.문명충돌이라고 할지라도 이슬람 하고 이렇게 싸우는 것이 아니죠.명색은 지금 이라크와 미국이 붙어서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이 싸우는 것 같지만,그러면 왜 유럽이 미국하고 손잡고 싸워야 하는데 안 그러느냐.왜 이슬람국가들이 다 같이 싸우지 못하고 방관하는 나라가 있느냐는 거죠.지금은 소위 지정학적 내셔널리즘이 지배하고 있어요.글로벌까지도 아니에요. 지역 컬처입니다.그럼 지역 컬처는 뭐냐.크게 보면 대륙문화권과 해양문화권의 충돌입니다.그러니까 세계를 좀더 복합적으로 크게 보아야 합니다.이런 눈으로 우리 반도를 보면 우리는 국내적으로가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볼 수 있어요.그렇다면 혼자,일국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어딘가와 연맹을 지어야 하는데 이념적 연맹이 아니고 세계 시장질서 속에서 하나의 경제권이라는 연맹을 맺어야 해요.쉽게 말하자면 세계시장이 글로벌리즘으로 바뀌면서 경제내용이 바뀌었다는 거지요.물동 중심의 경제가 지금 문화 콘텐츠 중심 경제로 바뀌고 있어요.배고픈 경제로부터 눈 고픈 경제,귀 고픈 경제로 바뀌고 있어요.이러한 경제를 공유할 수 있는 문화 공유권을 만들어야 합니다.이것은 정치이념이나 경제이념 하고는 달라요.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 위에 경제 공동체가 생기고 그것이 한 단위가 되어 세계시장에 참여하게 되는 거지요.그러니까 결론은 창조적인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화석처럼 굳은 사고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강렬한 해체를 통해서 재창조해야 합니다.” 선생의 사고는 크고 넓다.그 속에서 나는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대선배들의 세계관을 엿본다.386이라는 이름으로 한정된 세계관으로는 이 세계관에 맞서 양립할 수가 없음이 명약관화하다.큰 사고가 없이는,우물 안 사고로는 한국사회는 이미 대적할 수 없는 괴물이 돼 버린 것이다.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문명비평가 이어령 ●긴장감 부르는 예리한 눈매·맺힌 입술 이번이 몇 번째 만남인가.나는 선생을 기억하지만 선생은 기억이 없으시다.‘구운몽’에 그런 구절이 있다.귀인은 잊기를 잘 한다고.귀해 보이는 인상이다. 그리고 귀가 긴 선생.집안이 원래 대대로 장수를 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었는데 앞에 우뚝 선 모습이 칠순의 연세에 그렇게 단단해 보일 수가 없다. 옛날 1950년대,1960년대 문학잡지에 나오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모습에서 그렇게 변한 게 없다.안경 너머로 눈매가 날카롭다.맺힌 입술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갖게 한다.저 모습 어디서 그 예민한 비평 감각이 솟아오르는 것인가. ●한국문학에 현대성·보편성 척도 제시 1934년생 충남 아산 출생.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 시절부터 28세로 요절한 천재 이상(李箱)의 문학을 재발견해 냈다. 1950년대 후반에 걸쳐 김동리,조연현,서정주 등 이른바 문협 정통파의 전통주의,복고주의에 대해 전통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구세대 문학에 대한 전후세대 문학의 독자성을 주장했다.(‘저항의 문학’)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특히 문학의 창조적 측면에 언어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비평활동을 전개하면서 김수영 등과 이른바 불온시 논쟁을 벌이면서 ‘문학적’ 저항을 주장했다.소설가 남정현이 ‘분지’로 필화를 겪을 때 증인 신분으로 변론을 맡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오랫동안 이화여자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장군의 수염’ 등을 위시한 소설 창작,‘문학사상’ 창간,이후 문화부장관,중앙일보 고문 등을 지내면서 다방면에 걸쳐 광범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현대 한국문학에 현대성·보편성의 척도를 제시해온 비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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