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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가 본 옐리네크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주로 독일 로볼트 출판사에서 많은 소설과 드라마를 발표해 왔으며,그녀의 드라마는 독일의 연극 무대에도 활발히 올려지고 있다. 옐리네크 문학의 특징은 특유의 시적이고도 산문적인 언어의 흐름에 있다.그녀가 소설과 드라마에서 드러내 보이는 독특한 언어 감각은 마치 독백조의 목소리와,그에 반향하는 다른 목소리가 서로 얽혀지고 동시에 서로 밀쳐내는 듯한 구조를 가지고 계속 이어지는 특성을 보여준다.또 팽팽한 긴장감을 가진 옐리네크 언어의 음악적인 멜로디는 동시에 찌르는 듯한 예리함으로 ‘익살’과 ‘풍자’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옐리네크가 독일과 오스트리아권에서 중요한 문제작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무엇보다 그녀가 가진 사회 비판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칼 크라우스,호르바트,특히 최근에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와 같은 오스트리아 작가들이 가졌던 오스트리아 비판적 성향이 옐리네크에 이르러 더욱 첨예하게,그리고 문학적으로 극단화되어 형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그로테스크하면서도 스타카토식 언어로 권력지향적·남성중심적 사고를 냉소적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오스트리아 사회 속에 가려진 사회적 관습의 부조리함을 차갑고 냉정한 시선으로 가차없이 폭로한다. 한때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던 옐리네크의 시선으로 볼 때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왜곡되어 나타나는 일상의 폭력과 사회의 강제적인 측면은 문학이라는 통로를 통해서도 통렬하고 집요하게 고발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일상’과 ‘비정상’,이 두 가지가 결국 한 곳에 속한다는 인식이며,다른 것,다른 생각,그리고 권력의 바깥에 놓인 모든 것들에 대한 더 넓은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홍사현(서울대 강사·독문학)
  •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건 바로 인간 자신입니다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건 바로 인간 자신입니다

    ●착한 일 보기만 해도 건강해진다? ‘테레사 효과’라는 게 있다.테레사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에서 유래한 의학용어로,착한 일을 하거나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몸 안에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물질이 생겨난다는 것이다.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연구에 따르면,자신의 몸만을 생각하며 사는 암환자의 평균수명은 19개월인 반면,자원봉사 생활을 하는 암환자의 평균수명은 37개월로 거의 2배를 더 산다고 한다.남을 도우면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되고,이때 체내 면역성도 강화되면서 몸이 건강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실제로 테레사 수녀는 인도의 빈민가에서 여든일곱까지 살았으며,슈바이처 박사는 전염병이 들끓는 열대우림 아프리카에서 아흔 살을 살았다.그런가 하면 한국 입양아의 대모 바서 홀트 여사는 아흔여섯의 나이로 봉사의 삶을 마쳤다.이들의 건강하고 긴 생애는 단지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이들에겐 모두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나눔과 상생의 삶을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존과 상생 되짚어 본 에세이집 ‘당신에게 좋은 일이 나에게도 좋은 일입니다’(최재천 등 지음,고즈윈 펴냄)는 공존과 상생,조화의 의미를 각 분야 전문가들의 눈으로 살핀 15편의 글을 묶은 에세이집이다. 얼마전 우리 법원에서는 도롱뇽과 도롱뇽의 친구들을 원고로 한 소송이 기각된 적이 있다.도롱뇽이 소송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 주된 이유다.반면 일본에서는 홋카이도 다이세쓰산 국립공원 인근의 주민과 환경단체가 터널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다이세쓰산에 서식하는 ‘우는 토끼’를 원고로 소송을 제기,30년만에 승소한 일이 있었다.선진 외국에선 이와 유사한 판례들이 적지 않다.그러면 우리의 도롱뇽은 정말 소송당사자가 될 수 없으며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일까.이 책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필자 가운데 한 명인 숲해설가 유영초는 해월 최시형의 말을 인용,공존과 상생의 의미를 강조한다.“제비의 알을 깨뜨리지 아니한 뒤에라야 봉황이 와서 거동하고,초목의 싹을 꺾지 아니한 뒤에라야 산림이 무성하리라.” ●‘호모 사피엔스’ 대신 ‘호모 심비우스’ 제안 책의 필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처럼 자연의 순리를 따르라는 것 혹은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로 요약된다.이러한 정신은 홍세화(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의 글 ‘다름=틀림의 견고함에 대한 소고’의 톨레랑스 개념이나 최재천(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이 소개하는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us)’라는 개념에 잘 드러나 있다.공생은 인간의 생존 자체를 결정하는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하는 최재천은 인간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처하며 붙인 호모 사피엔스 대신,21세기 새로운 인간상으로 ‘공생인’을 뜻하는 호모 심비우스라는 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신화연구가이자 소설가인 이윤기의 상생의 철학은 어떨까.이윤기는 물길도 바로잡고 땅의 선도 만들고 싶어 양평에 2000평가량의 땅을 샀는데,결국 “물길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건 물 스스로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토로한다.자연의 순리를 실천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다.그는 고추를 직접 재배하면서 “물은 석 자만 흘러도 스스로를 맑게 한다.”는 이치를 깨닫게 됐다고도 말한다. 책은 자연과 생명에서 세계평화의 차원으로까지 시야를 넓혀간다.세계평화에 위협적인 존재로 종종 비쳐지는 이슬람에 대해 이희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그동안 왜곡돼온 진실을 밝힌다.우리가 익히 들어온 ‘한 손에는 칼,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말은 그가 늘 주장하듯 서구가 이슬람을 정복하면서 만든 허구다.이슬람이야말로 공존과 상생이라는 뿌리 아래 성장한 ‘평화의 종교’라는 것이다.이슬람은 주변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화함으로써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이같은 포용력과 융화력은 이슬람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필자는 한 예로 1099년 예루살렘에 입성한 십자군들은 무슬림과 유대교도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한 반면,1187년 살라딘 장군이 이끄는 이슬람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 그들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던 사실을 든다. ●“기차가 달릴 수 있는 건 평행선 덕분” 이 책에는 생명과학자와 신화연구가가 나오고 역사가,시인이 등장한다.이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우리에게는 너와 내가 따로 있지 않다고.책 끄트머리에 실린 정호승의 시 ‘정동진’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존과 상생의 가치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생생하게 그려보인다.“…또다시 해변을 따라 길게 뻗어나간 저 철길을 보라/기차가 밤을 다하여 평생을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서로가 평행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우리 굳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평행을 이루어 우리의 기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 1만 28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80년대 이후 한국문학 발자취

    1980년대부터 2004년 현재까지의 한국 현대문학을 진단한 문학비평서 ‘엽기ㆍ패러디 시대의 한국문학’(박태상 지음,지식의날개 펴냄)이 나왔다.지은이는 한국방송통신대학 박태상 교수.‘북한문학의 현상’‘북한의 문화와 예술’ 등의 전문서를 펴냈던 그는 “언어예술인 문학은 당대 사회에 대한 보고서”라고 전제하고 시대적 요구의 결과물로서의 문학작품들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책은 1부에서 먼저 1980년대 문학의 태생적 배경을 짚어낸 뒤,이후 각 시대 문학의 성격과 시대상황을 개괄적으로 훑어나간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집중분석은 2부에서부터 본격화된다. 저자는 1980년대 한국문학을 무엇보다 ‘지배전략에 맞선 저항의 논리’로 보았다.2부 ‘한 낭만주의자의 현실초월과 극복의 목소리’편에서 저자는 1980년대의 대표작가로 소설가 이문열을 꼽고 그의 작품에 논의의 초점을 맞췄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불꽃이 타오르던 1980년대 김지하 김남주 등 시문학 작가들과 임철우 한승원 등 소설가들의 작품도 살핀다.여성해방운동의 흐름을 타고 출현한 문학서들도 챙겼다.윤정모의 1988년작 ‘고삐’를 중심으로 차츰 여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문학의 발자취를 되짚었다. 1990년대 문학을 집중조명한 3부에서는 문학비평서로서의 역할을 한결 더 충실히 한다.그 시대 문학의 기능을 ‘불확실성 시대의 존재확인’으로 명명한 지은이는 ‘자아상실’‘현실체험’‘실존적 성찰’‘가족소설의 양상과 인간소외’ 등으로 범주를 나눠 작품들을 정리했다.1990년대의 문을 연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을 비롯해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순원·하성란의 소설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양상과 ‘X세대’라는 세대의 출현,세기말을 경험한 문학의 모습 등을 찾아낸다. 디지털 시대의 한국문학은 4부에서 조명됐다.신진작가군 가운데 장르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형식 실험을 거듭하는 김연수,텔레비전과 아파트 등 대중문화의 코드를 소설에 도입하는 백민석 등의 작품에 저자는 특히 주목했다.1만 4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명박-손학규의 ‘동네사랑법’

    이명박-손학규의 ‘동네사랑법’

    두사람이 중원에서 먼길을 가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다. 이 시장은 청계천복원,뉴타운건설 등 ‘서울개조론’으로 바람을 일으키고,이에 맞서 손 지사는 외자유치 등 ‘경제살리기’에 힘을 내고 있다.인구가 밀집해 있는 서울에서는 아무래도 대규모 토목공사가 적격이다.반면 각종 공장이 몰려 있는 경기도에서는 경제체감온도가 중요하다.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의 두 사령탑을 탐구해본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수도이전 등 공동 현안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지역간 이해관계가 얽힌 민원에 대해서는 대립각을 세운다.때로는 ‘용호상박’하다가 때로는 ‘적과의 동침’도 마다않는 이중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손 지사가 먼저 영어마을을 만든다고 발표하자 이 시장도 강북에 영어마을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도에서 안산 공무원 수련원을 개조해 영어마을을 조성하자 서울시도 서둘러 송파구 풍납동에 영어마을을 만들고 있다.아무튼 경기도는 영어마을을 국내 최초 운영하는 자치단체가 됐고 서울뿐 아니라 강원도·충청도 등 다른 자치단체의 벤치마킹 행렬이 쇄도하고 있다. 이들이 영어마을을 만든 이유는 “우리의 살길을 찾아보자.”는 데 있다.자체 자원이 거의 없는 네덜란드가 유럽의 중심국가로,국제적인 비즈니스 센터로 성장한 것은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영어 때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먼저 출발한 경기도는 안산 영어마을에 자극 받은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내용의 영어교육을 실시하면 우리나라 전체의 영어교육 수준과 내용이 달라진다고 말한다.경기도는 지난해부터 매년 1000억원씩을 투입해 특수목적고 설립을 지원하고 농어촌 좋은 학교 만들기 사업,특성화고 지원,과학 선도학교 육성 등 다양한 교육여건 개선사업을 벌이고 있다.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영어마을 조성에 나선 이 시장과 손 지사는 “교육이야말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인프라가 된다.”는 철학을 강조한다. 이들은 2002년 당선 직후 서로 만나 환경문제 등 광역적인 관심사에 대해서는 손을 맞잡기로 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지하철 연장운행을 비롯한 각종 사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등 이상기류가 생기는 일도 적잖다.임기 초 공동으로 추진하겠다던 사업이 현실화된 사례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수도이전 반대에는 마치 한사람처럼 목소리를 내고 있다.이들은 지난 16일 수도이전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국론분열을 가중시키는 행정수도 이전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소속 정당인 한나라당에 대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국민적 여론 수렴 없이 처리한 책임을 따진 점에서도 경쟁자이면서도 협력자라는 묘한 관계를 읽을 수 있다. 수원 김병철 서울 송한수기자 kbchul@@seoul.co.kr ■ 원세훈 제1부시장이 오른팔 이재오의원은 ‘원내 대리인’ 원세훈 행정1부시장을,전면으로 나선 이명박 시장의 인맥으로 첫 손에 꼽는 데 망설이는 사람은 서울시에서 별로 없다.이 시장이 취임 이후 내내 강조하는 ‘실·국 책임제’에 따라 인사담당 부시장인 그에게 거의 전권이 주어졌기 때문이다.시에서 몇 안되는 ‘마당발’로 일컬어진다.이 때문에 중앙정부 부처 등 차관급들 가운데 늘 리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따라서 서울시장의 장관회의 배제 등으로 중앙정부와의 연결고리가 끊긴 공백을 메우는 몫도 크다. 또 다른 축은 정당 인맥이다.시장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은 이 시장이 전면에 나서기 힘든 수도이전 반대운동에 ‘대리인’ 역할을 할 정도로 깊은 관계다.이 의원은 당론이 분명히 결정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지난 17일 서울시의회 주도로 시작된 ‘수도이전 반대 1000만명 서명운동’에 원내에서 유일하게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시장 선거대책위원회 유세본부장을 맡은 같은 당 홍준표·비서실장 정두언 의원과 불출마를 선언하고 야인으로 돌아간 당시 대변인 오세훈 전 의원도 ‘이명박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양윤재 행정2부시장도 이 시장이 정력을 쏟고 있는 청계천 복원사업과 맞물려 ‘청계천 살리기 연구회’를 이끈 학계의 대표주자라는 점에서 중요한 인맥으로 분류된다.이춘식 정무부시장은 96총선에서 이 시장이 신한국당 후보로 종로에 출사표를 던졌을 때 강동갑에 출마하면서 포항중 선·후배라는 사실을 알게 돼 지근(至近)의 사이가 됐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학교·운동권·교수·정치인 4개 분야에 골고루 포진 손학규지사의 인맥은 크게 2가지로 나눠볼수 있다.삶의 과정에서 함께해 왔던 인맥과 두차례의 민선도지사 선거과정을 통해 알게된 선거인맥이다. 첫번째 인맥은 다시 경기고와 서울대 등 학맥과 운동권 및 사회운동 출신 인맥,정치학 교수시설 맺었던 교수인맥,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다져온 정치인맥 등 4가지로 세분할수 있다. 우선 학교인맥 가운데 경기고 동기로는 유영구 명지학원 이사장과 구자홍 LG부회장이 있으며 김태동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서상목 전의원 등이 대학 동기생들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동기들로는 김계동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나성린 한양대 교수,노경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등을 들수 있다. 손 지사가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시설 맺은 김지하 시인,유홍준 영남대 교수,황석영 소설가,KNCC 총무를 지낸 김동완 목사,전 CBS사장인 권호경 목사 등이 있다.학맥으로는 윤영오 국민대교수와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박호성 서강대 교수 등이 있으며 작고한 조영래 변호사의 동생인 조중래 대한교통학회 회장 등 20여명의 교수가 자문교수 그룹으로 손 지사를 도와주고 있다.정치인으로는 같은당 전재희 의원과 김문수 의원,심재철 남경필 의원 원희룡 의원 등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이밖에 선거인맥으로 손 지사와 고교 및 대학 선배이면서 문화체육부 장관을 지낸 송태호 경기문화재단 대표, 이수영 전 교통개발연구원장 등과 교수 시절 제자 등 20여명이 최측근으로 경기도에서 활동하고 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서울 확 바꾸기 그는 과연 ‘막 가는 불도저’인가 ‘서울 꿈의 엔진’인가? 청계천 복원공사와 뉴타운 개발,대중교통체계 개편으로 압축되는 서울시의 굵직굵직한 사업에는 숱한 비난이 뒤따르고 있다.서울을 통째로 바꾸는 대역사(大役事)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1970년대∼80년대 말 대기업 6개를 이끌며 붙은 불도저라는 별명을 아직도 듣는 이명박(63) 시장은 “오늘날 밀어붙여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도 한번 굳힌 결심은 끝까지 관철하려는 옹고집도 있다. 사업 시행을 앞뒤로 반대가 거세지는 가운데 발휘되는 추진력 때문에 불도저 별명이 따르게 마련인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있다.지난 7월 단행한 대중교통체계 개편 뒤 교통카드 문제 등으로 여론이 들끓자 대시민 사과문을 발표한 직후다.이 시장은 교통국 9개 과별로 하사금을 내려보냈다.통념을 완전히 깨트린 일이었다. 온갖 문제점 때문에 다른 부서의 직원들까지 버스 정거장 등 현장으로 불려나가는 덤터기를 쓴 마당에 벌집이라 할 교통국의 직원들에게 ‘당근’을 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K과장은 “수장(首長)으로서 언론을 통해 사과까지 한 터에,공직사회가 아니라 민간이라도 그러진 못할 텐데 주무부서 직원들을 문책은커녕 잘못도 추궁하지 않고 격려금을 줬다는 일만으로 화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 시장의 이같은 행동은 “원칙에 맞으면 아무리 문제점이 나타나도 물러서거나 큰 틀을 깨지 않겠다.”는 특유의 근성 때문으로 비쳐진다.큰 틀을 유지하기 위해 작은 것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면서도 빠른 적응력을 보인다.사과문 발표 때 대책으로 내놓은 지하철 정액권 발급도 실무선에서 말렸지만 ‘그 게 아니다.’라며 관철시켰다는 후문이다.이 역시 순발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한편으로는 ‘밀어붙이기’라는 도마에 오를 여지도 아울러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서울을 개조하겠다는 뚝심이 엿보이는 장면은 취임 뒤 입버릇처럼 “안된다고 하지 말라.”고 말한 데서도 내비친다.대학 때 이태원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어렵게 지낸 경험으로 강남·북 대결구도로 짜인 서울을 뉴타운 사업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소박(?)한 꿈이 주민들의 반대에 막히자 “10년 뒤 강남에서 이사오고 싶어하는 강북으로 만들겠다.”며 설득했다. 청계천 복원사업도 마찬가지다.대한민국 수도인 서울,그것도 서울의 얼굴인 중심권역이 바뀌어야 한다며 상인들을 직접 만났다.불안해하는 상인들에게 “반드시 2년 안으로 마치겠다.”고 약속했다.이 시장 취임 전부터 ‘공약’은 있었지만 교통정체 악화,상인들을 위한 대책 등 문제점이 많아 검토만 하다 그쳐 상인들의 피해의식이 여전히 큰 때여서 “이 사람이면 하긴 하겠구나.”라는 신뢰가 움트면서 사업의 물꼬가 터졌다는 분석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경제 살리기 잰걸음 손학규 경기도지사 만큼 해외출장이 잦은 단체장도 드물다.올들어 벌써 다섯번째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반도체·LCD·자동차 등 외국의 첨단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지난 2∼7일에는 4박6일 일정으로 미국 3개 도시와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미국에서는 다섯끼를 기내식으로 때우고 한끼는 거를 정도로 일정이 빡빡했다.함께 간 공무원들은 파김치가 됐다.당시 만난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 있는 세계 제1위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델파이사 바덴버그 회장은 연봉 600억원을 받는 CEO다.그런 그가 손 지사를 만나기 위해 다른 약속을 취소하고 기다렸다. 손 지사측은 당초 바덴버그 회장의 입장을 고려해 30분 정도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그쪽에서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1시간이나 할애했다. 손 지사가 외국의 CEO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출신의 민선 도지사라는 배경과 함께 뛰어난 영어구사력 등 밑천이 든든하기 때문이다.통역없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신뢰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한국의 삐뚤어진 노사문화가 외국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킨다는 점에 착안,두차례의 투자유치 활동에 한국노총 간부를 동행시킨 것도 그들의 불안감을 씻어주기 위한 복안이었다. 일본의 한 기업인은 손 지사에게 “이런 도지사 처음 봤다.도지사가 아니라 영낙없는 세일즈 맨”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동안 LG필립스 LCD단지를 파주에 유치한 데 이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첨단부품업체를 중심으로 모두 41건 11억 160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기업을 위해 진입로를 만들어주고 기업인 자녀를 위한 좋은 학교 만들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김포의 한 중소기업이 관련 규정 때문에 1억 9500만원의 상수도 설치비용을 부담해야할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알고 규정을 고쳐 2300만원만 내도록 했다.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예산 지원을 통해 신용불량자 구제에 나선 것도 이례적이다. “IMF보다 경제·사회적으로 더 어렵다는 요즘 상황에서 경제 도지사라는 좋은 이미지를 닦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섞인 시선에 대해 손 지사측은 ‘경기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할 뿐”이라며 잘라 말한다. 경기도의 큰 그림은 미국 일본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각 분야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며 첨단기업유치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손 지사는 가는 곳마다 “10년후의 먹을거리를 준비하기 위해선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는 첨단기업을 유치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업무스타일 이 ‘주저함이 없다.’ 이 시장의 업무스타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명쾌함’이다.업무와 관련해 최소한 이 시장은 “한번 연구 해보자.”,“상황을 지켜 보자”는 식의 애매한 판단이나 결정은 없다. 올초 지하철 파업때나 청계천 복원사업 과정의 집단민원 대처방법 등에서 보듯 안되는 것은 절대 안된다.아무리 친한 사람이 부탁해도 듣지 않는다.이 때문에 절대 그에게 작아 보이는 민원조차 하지 않는다. 빠르고 확고한 결정은 잘못을 시인하는 데도 마찬가지다.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지난 7월1일 대중교통체계 개편 과정에서 시민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곧바로 시민들에게 사과했다.하지만 이 시장은 이후 지금까지 매일심야회의를 주재하며 문제점을 체크하고 개선해 나갔다.과장급의 한 직원은 “업무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철저함을 요구해 힘들때도 많지만 직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담당자의 아이디어를 존중해줘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손 지사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토론과정을 거친다.자신의 의견을 던져 놓고 난상 토론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간다.이런 과정을 거쳐 결정된 사안은 우직하게 밀어붙인다.토론대상도 가리지 않는다.6·7급 공무원들과 넥타이를 풀어놓고 토론하는가 하면 간부회의도 토론식으로 진행한다.공무원이 지사의 의견을 반박하는 진풍경도 연출된다.공무원 조직사회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수평적 조직관계’를 중시하는 손 지사의 단면이다. 차명진 공보관은 “어느 자치단체건 임기중반이 지나면 장사 밑천이 떨어지게 마련인 데 아직도 아이디어가 넘쳐 고민”이라고 털어놨다.손 지사는 특히 학자출신임에도 선언적 사고나 선입견에 얽매이지질 않는다.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자신의 정책 결정의 중요 지침으로 삼는 등 실용주의 노선을 취할 때가 많다.예컨대 주한미군 주둔문제를 놓고 찬성과 반대를 논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위상과 통일 이후 동북아 안보를 위해서 안보비용을 분담하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식이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단점은 무엇 이 명쾌한 업무스타일이 장점이라면 ‘자기 중심적이다.’는 것은 단점이다. 업무를 결정할 때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의견을 듣지만 한번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잘 바꾸려하지 않는다. 시민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샀던 대중교통체계 개편 시기를 결정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늦출 것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정무부시장을 지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도 “개편일 하루전에 연기를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아쉬워 했다. “경상도 또는 고대 출신을 신임한다.”는 인사 스타일에 대한 끊이지 않는 지적도 자기 중심적인 성격과 이어지는 듯하다. 한 6급 직원은 “전임 고건시장과 달리 이 시장은 직원들의 고충에 좀 무관심한 것 같다.”는 불만도 털어놨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손 지사에게서 일부 정치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독한 결단’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가급적 주위의 충분한 의견 청취를 통해 결정하는 스타일인 만큼 깜짝 놀랄 만한 폭탄 발언이나 돌출행동은 삼가는 편이다. 보도자료 작성을 직원들에게 위임하지 않고 과도한 표현이 없는지 등을 꼼꼼히 챙기기도 한다. 때문에 이같은 신중한 성격은 순간적인 판단이나 신속성을 요하는 결정 과정에서 선점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정치행보에서 종종 발생해 측근들은 아쉬워한다. 한나라당 차기대선 예비주자로 꼽히고 있는 손 지사의 중앙과 지방을 넘나드는 행동반경에 대해 도민들로부터 ‘대선행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33주기 ‘살아 돌아오는’ 배호

    33주기 ‘살아 돌아오는’ 배호

    ‘돌아가는 삼각지’의 가수 배호(본명 배만금)가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배기모)’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배기모’는 배호 사망 33주기인 오는 11월 7일쯤 경기도 양주시에 ‘배호 카페’를 오픈할 계획이다.또 그의 일대기를 다룬 ‘배호평전’을 추모일에 맞춰 발간하기로 하고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천재 가수,불세출(不世出)의 가수,저음의 마술사,황금의 목소리 등 그를 수식하는 말들은 가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헌사입니다.그의 삶은 짧았지만 노래의 생명은 영원하다는 증거죠.” ‘배기모’사무총장 송진복(44)씨는 꽃처럼 살다 간 배호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배기모’의 태동 배경을 소개했다. ●유족이 참여하는 유일한 모임 ‘배기모’는 1999년 4월 배호의 한 팬이 인터넷에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시작됐다.그 이전에도 오프라인 모임이 산재해 있었지만 조직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당시 이 사이트는 방문객 수도 적었을 뿐더러 배호에 관한 자료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여서 유명무실했다. 또한 배호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터넷과 비교적 거리가 먼 40대 이상이기 때문에 사이트가 활성화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 사이트에 배호 유족들이 관심을 보이며 소장자료를 하나씩 올려 놓기 시작하자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배호를 좋아하는 열성 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어요.특히 유족들이 함께하는 공간인 만큼 진짜 마니아들이 모이게 됐죠.” 송 사무총장은 ‘배기모’가 지금처럼 클 수 있었던 데는 유족들의 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배호의 유족으로는 ‘배호’라는 예명을 지어주고 데뷔시킨 작곡가 김광빈(외삼촌)씨와 외숙모 안마미씨,그리고 의형제인 정용호씨가 있다.이들 3명이 모두 ‘배기모’에서 튼튼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회원만 1만여명…해외지부도 갖춰 ‘돌아가는 삼각지’‘누가 울어’‘비내리는 명동거리’‘안개낀 장충단공원’‘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랑’등 주옥같은 노래를 잊지 못하는 배호 마니아들이 모여 본격적으로 ‘배호 부활’을 위한 논의를 거듭하면서,2000년 10월 배호 공식 홈페이지(www.baeho.com)가 새롭게 꾸며졌다. 그러나 인터넷 모임으로는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결국 배호 공식 사이트에 드나들던 사람들이 외연 확대를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1년여간의 노력끝에 2001년 12월21일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으로 거듭났다. “일단 오프라인 모임을 갖게 되다 보니 회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더군요.자연스레 온라인 모임도 활성화됐고요.우리나라 장·노년층 인터넷 활성화에 ‘배기모’가 이바지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니까요.” ‘배기모’중앙회장 유형재(58)씨는 현재 등록 회원만 1만여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국내 조직은 16개 시·도 지부에 232개 시·군·구 지회가 마련돼 있습니다.또한 국내 조직뿐만 아니라 미주 6개 지부,중국,일본,호주,칠레 등 13개 해외 조직도 갖춰져 있습니다.” ●중장년층의 가슴에 필 꽂혀 최근 배기모 회원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하루 평균 20여명이 가입 신청을 위해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오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특히 이달 초 KBS 1TV ‘아침마당’에 ‘배기모’가 소개된 이후 며칠 동안은 2000여통의 전화가 쇄도하기도 했다. “배호가 활동했던 60년대 후반 70년대 초의 상황이 지금과 비슷한 것 같아요.40대 이상의 장년층이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는 거죠.배호의 매혹적인 저음은 방황하는 장년의 가슴에 ‘필(feel)’이 꽂히듯 다가옵니다.” 송 사무총장은 “매스컴의 힘이 크다.”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사회적 분위기도 ‘배호 르네상스’를 구현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배호 붐’에 힘입어 배호 기념카페 건설과 배호 일대기를 다룬 평전 발간도 눈앞에 와 있다.카페는 배호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양주시에 건설 중이며 평전은 ‘배기모’회원이며 소설가인 김영선씨가 추모일인 11월7일 출간을 목표로 집필 중이다. 배호의 사후(死後) 의제인 정용호씨는 “내년 34주기에는 배호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0대 팬도 다수 배호를 잘 모르는 20대는 ‘배기모’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유형재 중앙회장은 “‘배기모’에 가입한 20대는 모두 효자·효녀”라면서 “젊은이들은 배호를 좋아하는 부모를 위해 가입했다가 결국 본인도 배호의 매력에 빠지게 되죠.”라고 웃었다. 배호에게는 지난해 옥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세상을 떠난 지 32년이 지났지만 그의 노래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유 회장은 20대 젊은이들도 배호의 노래를 듣다보면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지금 배호를 좋아하는 40대들도 당시엔 10대 후반의 나이였어요.그의 목소리에는 시대를 넘어 가슴을 이어주는 특별함이 담겨 있습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골프장 ‘계명구도’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골프장 ‘계명구도’

    계명구도란,닭 울음소리로 사람을 속이고 개처럼 잠입하여 물건을 훔치는 따위의 하찮은 일밖에 못하는 천한 사람을 이르며,그들의 이야기가 ‘사기’의 ‘맹상군전’에 언급돼 있다. 중국 전국시대의 현인으로 알려진 맹상군이 진나라의 소양왕에게 붙잡혔는데,닭울음 흉내를 잘 내는 식객의 재주로 무사히 탈출했다.하찮은 재주도 급한 상황에서는 긴요하게 쓰인다는 뜻이다. 수년 전 대전에 살 때,인근의 골프장 회원권을 구입했는데,서울로 이사를 하고 난 뒤에는 한번도 못 갔다.그런데,골프장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모월 모일에 내가 라운드를 하고 그늘집의 식대를 지불하지 않고 그냥 갔다는 것이다.나는 라운드를 한 사실이 없다고 했더니,라운드를 한 사람은 내가 아니지만 회원인 내가 부킹을 했으므로 회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짚이는 데가 있었다.나는 대전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너지? 너,내 목소리 흉내내서 부킹 담당 직원 속인 거지? 남의 노래 모창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미안해.너에게 부킹 부탁하면 니가 당연히 들어주겠지만,너처럼 바쁜 사람에게 하루 종일 전화통에 매달리게 하지 않으려고 내가 직접 했어.근데 너 천리안이니? 내가 너를 사칭한 것은 어찌 알았는데?” 그 시절에는 골프장의 전화는 거의 언제나 통화 중이어서,아침부터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게 다이얼을 돌려도 연결이 될까 말까 했다.오죽하면 자동으로 같은 번호를 돌려주는 부킹전화라는 희한한 물건이 생겨났을까. 회원 사칭 사건은 맥없이 끝나고 말았는데,내 친구처럼 똑 같은 짓을 하는 모 개그맨의 이야기를 며칠 전에 듣게 되었다.그는 유명 연예인인 선배가 회원인 골프장에 선배의 목소리로 전화를 건다는 것이다.“아,저 회원 아무개입니다.다음주 수요일 오전에 부킹 하나 주십시오.” 그러면 전화를 받는 부킹 담당 여직원은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고,친절하게 티오프 시각을 정해준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이 자주 있는지는 모르지만,만약에 이런 계명구도가 자주 출몰한다는 사실을 골프장 측에서 눈치를 채게 된다면,회원이 부킹 요청을 할 때는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화상전화나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를 사용해 달라고 하지나 않을는지 모르겠다.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 ‘구멍’이란 코드로 본 최인호

    한 작가의 문학적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통로는 다양하다.보는 이에 따라 이 통로는 경로를 달리하고 개폐의 방식을 달리한다.이런 다양성 속에서 하나의 일관된 준거를 찾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평론의 일이라면 황도경이 자신의 새 평론집 ‘환각’(새움 펴냄)에서 작가 최인호를 읽는 코드로 ‘구멍’을 든 것은 의미있으면서 재미있는 발상이다.일찍이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이런 미시적이고 비본질적 형식 요소를 통해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귀찮지만 흥미로운 시도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도경은 글의 도입부에서 ‘최인호의 이야기 어디엔가는 구멍이 뚫려 있다.’고 미리 매듭 하나를 지어놓고 들어간다.그 구멍은 기적소리가 웅웅 돌아드는 동굴 혹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가 공명하는 우물인가 하면 인간의 얼굴에 천공된 성과 속의 경계 같은 구멍일 수도 있다.황도경은 이를 ‘통로’로 읽는다.삶과 죽음,흥분과 설렘,치욕과 환멸에 이르는 경로로서의 구멍이다. 그는 구멍의 독자적 기능성에 대해서도 말한다.“최인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의 인물들과 함께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그 구멍 속 지옥의 광경을 함께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황도경은 구멍의 일상성도 되살린다.예컨대 ‘윤간에 의해 더럽혀진 여자애의 성기’를 통해서는 속(俗)의 악마적 광기와 마주치게 되고,그 어둡고 눅눅함이 궁극에는 구멍 밖의 밝음을 가르치는 증거 혹은 ‘자기존재의 시발점’이라는 독법(讀法)이다. ‘하늘의 뿌리’와 ‘두레박을 올려라’에서 보는 구멍이 죽음과 일상,욕망과 금기,쾌락과 상실의 경락이라면 ‘다시 만날 때까지’와 ‘돌의 초상’에서 만나는 구멍은 ‘허위’나 ‘거짓’의 명제를 통해 역설적으로 진실의 가치를 설명하는,작지만 필요불가결한 중층의 소도구가 된다. 사실 황도경의 시도처럼 오로지 ‘구멍’이라는 외눈박이 같은 경로 하나로 최인호를 모조리 분해하고,분석할 수는 없다.그러기에는 최인호의 세계가 너무 넓고 깊어서다.그럼에도 한 작가,그것도 중량있는 작가의 무게를 다는 천칭의 중심으로 구멍을 들이미는 황도경의 시도는 재미있다.그냥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식상함을 벗어난 유의미이기도 하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책꽂이]

    ●아나키스트의 초상(폴 애브리치 지음,하승우 옮김,갈무리 펴냄)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전성기를 이룬 아나키스트 운동과 1960∼70년대 전세계를 휩쓴 반전운동은 역사적으로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아나키스트들은 강요되거나 재단된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이론적인 주장이나 논증보다는 직접 몸으로 실행하며 자기 사상의 정당성을 증명하려 했다.저자는 미국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운동사 연구가.1만 6900원. ●대마를 위한 변명(유현 지음,실천문학사 펴냄) 192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마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국의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치열한 다툼은 그 자체가 미국 현대사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화학자본인 듀폰과 신문자본인 허스트가 대마를 음해했던 배경,황색저널리즘과 인종차별주의에 대마초가 동원되는 과정,닉슨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최초로 선언한 인물이 된 전후사정 등을 들려준다.대마초의 위험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으로,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차라리 대마초를 피우는 게 낫다는 주장도 담겼다.9000원. ●내가 말을 배우기 전 세상은 아름다웠다(돈 미겔 루이스 지음,이진 옮김,더북컴퍼니 펴냄) 수천년 전 멕시코시티 외곽에 있는 고대 피라미드 도시 테오티와칸에는 ‘지혜로운 사람들’이라 불리는 톨텍 인디언이 살았다.톨텍은 ‘영혼의 예술가’를 뜻하는 말.톨텍 인디언들은 모든 인간은 예술가이며,가장 훌륭한 예술은 영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라 믿었다.오랜 세월 톨텍의 ‘깨달은 자’,즉 나구알들은 무력으로 남미대륙을 정복하려는 유럽인들로부터 그들의 아름다운 진리를 지켜냈다.이 책에는 그 지혜의 목소리가 담겼다.9000원. ●아시안 아메리칸(장태한 지음,책세상 펴냄) 미국의 관문은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엘리스 섬으로만 알려져 왔다.그러나 아시아인 이민자들에게는 에인절 섬이 미국의 관문이었다.아시아인 이민자들이 거쳐야 하는 검문소가 설치돼 있던 에인절 섬에서 아시아인들은 최소 3일에서 최고 3년까지 갇혀 있어야 했다.아시아인들의 미국 이주는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됐지만 그들에게 미국 시민이 될 자격이 주어진 것은 1952년부터였다.미국이 ‘이민자의 천국’이라는 말은 유럽계 이민자,즉 백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다.백인도 흑인도 아닌 아시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살폈다.3900원. ●책 한 권 들고 파리를 가다(린다 지음,김태성 옮김,북로드 펴냄) 파리라는 거대한 ‘역사박물관’의 참모습을 밝힌 역사·문화 다큐멘터리.책 제목에서 말하는 책은 빅토르 위고의 역사소설 ‘93년’을 가리킨다.‘93년’은 프랑스 대혁명이 한창이던 1793년부터 4년간 프랑스 서부에서 일어난 왕당파의 반혁명폭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중국 문화혁명을 온몸으로 겪은 저자의 경험이 이 책을 여행의 반려로 삼게 했다.‘파리에 모태,시테섬’‘음모가 살이 숨쉬는 앙부아즈’‘혁명귀족 라파예트의 두 얼굴’‘매혹적인 카르나발레 박물관’ 등이 주요 내용.1만 3000원. ●이인식의 과학나라(이인식 지음,김영사 펴냄) 로마의 플리니우스가 펴낸 ‘박물지’에는 스페인 남부 해안에서 목욕하던 인어가 슬픈 노래를 불렀다는 대목이 나온다.중국의 옛 문헌에는 인어에 해당하는 능어(陵魚)와 교인(鮫人)이 나온다.인어의 목격담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매너티(manatee,해우)라는 인어를 닮은 포유동물 때문이다.과학적인 궁금증,교실 밖의 과학세계를 다뤘다.1만 1900원.
  • 동학군·관군 후손들 ‘110년만의 화해’

    동학군·관군 후손들 ‘110년만의 화해’

    동학혁명이 올해로 110주년을 맞았다.반봉건·반외세를 기치로 내건 동학정신은 의병항쟁과 독립운동으로 계승되어 왔다.동학군 전적지를 갖고 있는 고장들은 이같은 선조들의 얼을 지역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그럼에도 동학혁명 최후의 항전지인 전남 장흥만큼은 유달리 상흔이 아물지 않고 있었다.수많은 사상자를 낸 동학군과 관군(수성군) 후손들의 반목이 읍내를 가로지르는 탐진강 급류처럼 가파르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갈등의 과거는 털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화해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정부차원의 과거사 진상규명특별위원회 설치가 가시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남도의 한쪽에서 이루어지는 ‘동학군과 관군의 화해’가 관심을 모은다. 이들의 화해는 새달 6일 ‘동학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동학군 후손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도 한몫을 했다. “동학의 한(恨)을 화합으로 승화해야 한다.”는 이곳 출신 소설가 한승원씨의 바람도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화해의 물꼬는 터졌다. 1894년 12월 장흥 용산면 출신 이방언 장군이 이끄는 동학군 3만∼5만명이 장흥읍 석대뜰 전투에서 신식무기를 앞세운 일본군과 관군에게 전멸하다시피했다.그러나 앞서 동학군이 장흥성을 점령하면서 부사 박헌양 부부를 비롯해 관리와 주민 등 97명이 죽었다.이 97명의 신위를 모신 곳이 영회당(永懷堂)이다. 동학군을 추모하는 장흥동학혁명기념탑은 지난 1992년에 세워졌다.‘폐정개혁안 12조’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등이 새겨진 탑은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12년만인 지난 4월25일에야 제막식을 가질 수 있었다.제막식은 동학군 유족은 물론 관군의 후손과 한동안 영회당 당제에만 참석하던 군수 등 기관·단체장 등이 대거 참석한 화해의 자리였다. 장흥동학 유족회장이나 영회당 당장은 모두 당사자의 후손이다.이방언 장군의 종손인 이종찬(66) 유족회장은 22일 “거리에서 영회당 당장을 만나면 웃으면서 악수하고 헤어진다.”며 웃었다.동학군의 장흥성 점령 때 증조부와 4촌·6촌 등 4명의 선대가 목숨을 잃었다는 김장곤(77) 영회당 당장도 “관군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당시 상황을 잘 몰라서 하는 얘기”라면서도 “(동학군 후손들과)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21일 장흥군민회관에서 열린 한 지역신문 창립 기념식에는 김옥두(57·농협 장흥읍조합장)씨와 이경규(64·부산면 용반리)씨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김씨는 장흥성을 지키다 죽은 수성군의 증손이다.이씨는 증조부와 친척 등 17명이 석대뜰 전투에서 죽었다. 영회당의 제사를 거르지 않은 김씨는 “(할아버지가)목숨을 걸고 장흥성을 사수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관군 후손으로서 부끄러울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이씨도 “옛것을 들춰냈을 때는 복잡해진다.”면서 “선조 때의 일로 서로 싸워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현재 장흥에는 동학군 유족회원 20여가구,관군 후손 7∼8가구가 남은 것으로 확인된다. ●충(忠)이냐 의(義)냐 몇년 전,장흥에서 열린 동학혁명 학술 토론회에서는 양쪽 사이에 험악한 분위기도 연출됐다고 한다. 지난 2월 발족된 장흥동학기념사업회 최경석(42·장흥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사무국장은 “동학군과 관군 후손들이 충과 의를 놓고 갈려 있었다.”고 말했다.관군 후손들은 당시 동헌을 사수하려 한 것은 국가에 대한 충성의 발로였다며 ‘관군은 충이고 동학군은 의’라고 주장했다.반면 동학군 후손들은 누란의 위기에 처한 국가의 상황으로 봐서 ‘동학군의 행위가 충이자 의’라는 논리는 내세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논의는 활성화되지 않았다.지역사회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가졌던 유림의 일부는 관군 후손들의 심정적 우군(友軍)이었고,기관장과 단체장들 또한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하지만 동학혁명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높아지면서 영회당 당제는 이제 후손들만이 명맥을 잇고 있다.이렇다 보니 장흥읍 예양리에 있는 영회당도 잡초가 우거지는 등 퇴락해가고 있다. 반면 동학혁명을 학술적으로 정립하고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2년 장흥민주연대가 장흥동학과 관련하여 벌인 군민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0.2%는 동학을 ‘자랑스러운 역사’ 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장흥동학기념사업회 최현국(62) 회장은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역민들이 너무도 모른다.”면서 “후손 발굴과 유적지 보전을 통해 역사적 교육장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흥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KBS ‘불멸의 이순신’ 두주인공 김명민·최재성

    KBS ‘불멸의 이순신’ 두주인공 김명민·최재성

    민족의 영원한 ‘명장’과 ‘졸장’으로 기억되는 이순신과 원균.그들이 짙은 역사의 화장기를 벗고 21세기 안방극장을 통해 맨 얼굴을 드러낸다.새달 4일 첫 전파를 탈 100부작 대하드라마 KBS 1TV ‘불멸의 이순신’은 극단적인 미화나 폄훼없이 이순신과 원균,두 역사적 인물의 알려지지 않은 진솔한 모습을 재조명한다.역사적 문헌은 물론 김탁환의 소설 ‘불멸’과 김훈의 ‘칼의 노래’를 원작으로 한 ‘불멸의 이순신’은 350억원 규모의 언청난 제작비와 연인원 2만명이 투입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드라마.각각 이순신과 원균 역을 연기할 두 주인공 김명민과 최재성을 경기도 용인 한국민속촌 촬영현장에서 만났다. #“이순신은 여린 사람” “성웅 이순신이 뒤돌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상상해본 사람은 아마 없을거예요.하지만 그는 고뇌에 찬 인간미를 지닌 무척 여린 사람이지요.” 촬영장에서 만난 김명민은 인간미 넘치는 이순신이란 인물에 푹 빠져있었다. 솔직히 그가 이런 큰 작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것은 무척 의외로 받아들여진다.“얼마 전 종영한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고민하는 내면 연기를 높이 사신 것 같아요.‘젊은’ 이순신의 이미지에도 큰 무리는 없구요.” 불과 얼마전까지의 출연만 해도 대사가 많지 않아 불평을 했지만,지금은 정 반대가 돼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며 미소짓는다. “사극이 처음인데다 긴장도 너무 많이 해 첫 촬영 때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조차 몰랐어요.지금은 이순신이란 인물에 대해 조금씩 다가가는데 주력하고 있죠.” 촬영장에 항상 원작의 하나인 ‘칼의 노래’를 들고 다니며 감정선을 잡는단다.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다른 작품들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스케일 면이나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한다는 차원에서도 차별화된 작품이 될 겁니다.일단 저부터 ‘신선한’인물이잖아요.(웃음)” 나이든 사람은 물론,젊은 층에게도 어필하는 ‘젊은’사극 이순신을 만들어보겠다는 각오다. #“새롭게 조명되는 원균에 매력”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 원균이 새롭게 조명받을 것입니다.이것이 제게는 굉장한 의욕을 낳게 해요.” 이순신과 대립각을 세우는 원균 역을 맡은 최재성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친다. 청춘스타로 출발해 의리와 인간미 넘치는 배역만 주로 연기해왔던 그가 천하의 악랄한 간신배로 알려진 원균을 택한 이유는 뭘까.“이순신이 ‘지장’이라면 원균은 의리를 중시하고 불의를 못참는 ‘맹장’이지요.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매우 극단적인 성품을 가졌어요.흔히 알려진 것처럼 간사하지 않은,인간적이고 강직한 인물이지요.” 그는 경쟁작인 SBS ‘장길산’에서도 주인공 장길산의 아버지 장충역으로 출연하고 있다.겹치기 출연인 셈.“이젠 나이가 드니 계속 사극만 하게 되네요.(웃음)원래 여러 곳에 얼굴을 내밀지는 않는데,제 연기로 원균의 인간상이 재해석되는 부분에 매력을 느꼈죠.”‘장충’과 ‘원균’이라는 상반된 캐릭터 가운데 어느 쪽의 연기가 편하냐고 묻자,“당연히 ‘장충’이지요.제성격과 비슷해요.(웃음)” “역사적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만,겉 모습 보다는 원균이란 한 인간의 진솔한 내면을 연기하는데 주력할 겁니다.” 용인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칵테일 슈가/고은주 지음

    누구인가 ‘미친 짓’이라고 단정했던 결혼.그 테마를 젊은 작가 고은주(37)가 능청스러운 글감으로 요리해낸 작품이 나왔다.신작 ‘칵테일 슈가’(문이당 펴냄).결혼이라는 화석화된 제도 속에서 끊임없이 욕망하는 자유의지를 경쾌한 템포로 묘사한 첫번째 소설집이다. 표제작에서 작가의 의도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기혼이거나 결혼을 눈앞에 둔 남녀.커피에 녹여 먹는 막대사탕(칵테일 슈가)이 남편 혹은 아내 몰래 감쪽같이 외도를 즐기는 남녀 손에 이리저리 옮겨다닌다.‘그 남자’가 불륜현장에서 받은 사탕을 아내에게,현모양처인 줄 믿었던 그 아내가 다시 남편 아닌 남자에게 건네는 일탈의 과정에서 위선적 결혼제도가 앙상한 뼈대로 물러앉는다. 오랫동안 은밀한 관계를 가져온 여자가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선언하자 남자가 조롱하듯 뱉는다.“결혼은 겉으로만 견고한 제도일 뿐이야.오히려 그 외적인 견고함 속에서 내적인 자유의지는 더욱 강렬해지지.제도가 너의 의지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스카프’‘넥타이’ 등 이름을 갖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익명성,돌고 돌던 사탕이 맨처음 건넨 여자의 손에 되돌아오는 대목 등으로 작가는 풍자정신을 절묘하게 은유해냈다. 결혼을 희화화하는 작업은 ‘너의 목소리’에서도 이어진다.남편 애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분노가 아닌 기묘한 욕망에 빠져드는 여자의 이야기다.현란한 기교없이 정교한 문장을 구사하기로 정평난 작가는 현대문명의 그림자 쪽으로도 진지한 시선을 보냈다.‘저기 내가 걸어간다’편에서는 컴퓨터통신이 “획일성의 원형감옥 안에서만 떠다니는 닫힌 자유”임을 환기시킨다. 지방 방송사 아나운서 이력이 있는 작가는 1995년 단편 ‘떠오르는 섬’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해 등단했다.제23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장편 ‘아름다운 여름’ 이후 ‘여자의 계절’‘현기증’‘유리바다’ 등을 내놓았다.9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마에스트로 손끝서 탄생한 3色 카르멘

    마에스트로 손끝서 탄생한 3色 카르멘

    역시 ‘마에스트로 정명훈’이다.그의 손 끝에서 전해오는 미세한 떨림은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제 갈 길을 찾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허공을 바라보는 시선엔 모든 소리를 재료로 삼아 상상의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의 영혼이 느껴진다.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소리의 흐름을 따라 흔들리는 그의 몸짓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로 아름답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4층에 자리잡은 국립오페라단의 연습실.오페라 ‘카르멘’의 합창 연습이 한창이다.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연습실로 달려온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었다.합창단원들은 대가의 등장만으로도 긴장했고,소리의 길이,강약,리듬,발음까지 하나하나 교정해 주는 철저한 지도에 귀를 기울였다.엄격하지만 칭찬에도 인색하지 않은 정씨.“역시 한국 사람들은 노래를 잘 해.”라며 만족한 듯한 웃음을 보여줬다.그러나 “발음은 아직 부족하다.”며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새달 7∼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 ‘카르멘’은 국립오페라단·프랑스 오랑주 축제위원회·일본 오페라 진흥회가 공동 제작해 프랑스·한국·일본 순으로 공연하는 3개국 합작 프로젝트다.정명훈씨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80여명을 이끌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오페라를 지휘하는 무대이기도 하다.일본 공연은 새달 18∼20일. 출연진도 3개국에서 골고루 뽑았다.카르멘 역에는 정명훈씨가 “카르멘을 위해 태어났다.”고 표현한 프랑스의 베아트리체 우리아 몬존(7·9일)과 일본을 대표하는 메조소프라노 미호코 후지무라(8일)가 캐스팅됐다.이들과 각각 호흡을 맞출 돈 호세 역은 빈첸초 라 스콜라와 정의근씨.코러스는 국립오페라합창단과 일본 후지와라오페라합창단이 반반씩 자리를 채웠다. ‘카르멘’은 자유분방한 집시 여인 카르멘을 사랑하는 군인 돈 호세의 질투가 빚은 비극을 그린 오페라.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이 원작이고,작곡가 조르주 비제가 이를 각색해 1875년 오페라로 초연한 이후 가장 대중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카르멘이 호세를 유혹하려고 부르는 노래 ‘아바네라’를 비롯해 ‘꽃노래’‘투우사의 노래’ 등 많은 아리아가 사랑받고 있다. 이번 공연은 원작 그대로 프랑스어로 진행된다.국립오페라단이 프랑스어로 ‘카르멘’을 공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정은숙 예술감독은 “5월부터 전문가들을 동원해 한 명 한 명 프랑스어 공부를 철저히 했다.”면서 “62년에 탄생한 국립오페라단이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는 무대”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 앞서 지난 7월 프랑스 오랑주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야외무대인 고대로마극장에서 선보인 ‘카르멘’은 9000석이 넘는 객석이 매진되는 등 이례적인 관심을 모았다.오페라 코미크의 상임연출 겸 음악감독인 연출자 제롬 사바리가 커튼콜 때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할 정도로 정명훈씨의 지휘와 음악 역시 격찬을 받았다. 서울 공연은 오랑주 공연 때와 비슷한 야외무대의 특징을 극장 안에서 맛볼 수 있도록 시원하면서도 정돈된 느낌으로 연출한다.‘폐허 위에서 펼쳐지는 비극’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절제와 역동성을 적절히 배합시키고,무엇보다 음악을 돋보이게 할 예정이다.5만∼25만원.오후 7시30분.(02)586-5282.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 (22) 구조조정 전도사 김재우(주)벽산 사장

    [삶과 경영 이야기] (22) 구조조정 전도사 김재우(주)벽산 사장

    ㈜벽산 김재우 사장은 영락없는 용장(勇將)의 이미지다.180㎝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삼국지 관운장의 풍모다.올해로 벽산 CEO(최고경영자)가 된 지 7년째.IMF(국제통화기금)사태 속 붕괴 직전에 놓였던 적자회사를 단단한 흑자회사로 돌려놓은 능력이 장수하는 전문경영인으로 자리매김시켰다.불황기를 맞아 회사 업무 외에도 ‘구조조정의 전도사’로 바쁜 강연 일정이 잡힌 그를 만나 36년 경영 이야기를 들어봤다. ●‘위기=위험+기회’ -1998년 1월3일 사장 취임식장은 바깥 날씨보다 더한 한기가 돌았다.정부가 IMF 관리체제를 선언한 지 딱 1개월 되던 시점.40년 된 회사와 1000명 직원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었다. 97년 적자는 300억원에 달했고,부채는 1800억원이 넘었다.외상매출의 5분의1 정도는 대금을 못받는 악성채권들이었다.모든 사람들이 패닉상태였다.새 사장은 건축자재회사를 경영해 본 경험이 없었고,직원들은 극도의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위기(危機)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를 합친 말 아닌가.”취임한 지 3개월째 들면서 지난 2개월동안의 구상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우선 직원을 980명에서 450명으로 절반 이상 줄였다.하지만 사람들을 그냥 내보낸 것은 아니었다.150명에게 우리회사 제품의 총판점을 차릴 수 있도록 창업을 지원했다.건축자재 시장이 불황으로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넘어가면서 시장수요를 잘 예측·분석하는 최일선 전문가들이 필요했다.노련한 벽산의 직원들이야말로 우리 제품을 제대로 팔아줄 사람들이었다.당시 2∼3명씩 한 조가 돼 창업한 총판점 가운데는 현재 연 매출액이 100억원에 가까운 곳도 있다. -당시 금리는 살인적이었다.1개월짜리 CP(기업어음) 이자가 연 30%에 달했다.반면 회사매출의 60%는 외상거래여서 자금이 제대로 안돌았다.그나마 이 중 30%는 부도 등으로 대금을 고스란히 떼이는 판이었다.차라리 물건을 안 파는 게 나았다.거래처를 4000개에서 400개로 10%만 남기고 다 없앴다.판매목표는 전년의 60%로 낮췄다.목표를 무리하게 잡아 ‘부실판매’를 낳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대신에 거래조건은 강화해 반드시 담보가 있는 곳에만 납품하게 했다.그 외에는 100% 현금거래였다.얼마 안 지나 취임 때 16%에 달하던 부실채권 발생률이 0.1% 이하로 떨어졌다. -인력과 고객의 구조조정에 이어 그해 5월에는 의사결정의 슬림화에 착수했다.내가 가진 결정권을 10%로 줄이고 일선 책임자에게 90%를 넘겼다.조직원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더 큰 것은 CEO가 바빠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미국의 경영학자 알프레드 스로운의 “1%를 경영하라.”는 말처럼 CEO가 바쁜 이유가 책상에 앉아 결재할 서류 때문이어서는 안된다.지금도 나는 “반드시 내 결재가 필요한 일인가.” 자문해 본 뒤 그렇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몇십억원이 집행되는 일이라도 직원들에게 맡긴다.CEO가 바쁘면 변화를 제대로 짚어낼 수 없다. ●“나한테 걸레면 남한테도 걸레” -그해 8월6일 워크아웃이 시작됐다.회사 전체매출의 40%를 차지하던 전남 여수와 경남 진해의 석고보드 공장을 프랑스 라파즈(유럽 최대의 시멘트 골조회사)에 매각했다.생산량의 절반은 우리가 판매권을 갖는다는 조건이었다.벽산의 대명사 ‘석고보드’를 매각하려는 데 임직원의 반대가 거셌지만 나는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며 일축했다.나에게 소중한 것을 팔아야 남이 사준다는 얘기였다.그 이면에는 내가 생각한 구상이 있었다.“글로벌화는 불가피하다.하지만 우리 업역의 특성이나 규모로 볼 때 글로벌화를 선도하기는 어렵다.그렇다면 글로벌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우리의 역할을 더 키워야 한다.”지금도 여수·진해 공장에서 생산된 석고보드는 각각 50%씩 ‘벽산 석고보드’와 ‘라파즈 석고보드’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워크아웃 조기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던 2001년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경영정상화 성공사례를 책으로 내고 싶다고 했다.임직원 30여명과 함께 97년 300억원 적자회사에서 2000년 30억원 흑자회사로 전환시킨 과정을 책으로 만들어냈다.제목은 ‘누가 그래? 우리 회사 망한다고’.이어 2002년 워크아웃 공식졸업 이후에는 2탄으로 ‘거봐! 안망한다고 했지’를 출간했다.벽산이 금세라도 망할 것처럼 떠들던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던진 성공리포트였다. -70년대 중동에서 불모의 열사를 누볐던 일들은 두고두고 나에게 재산이 됐다.특히 75년 1억달러 수주기록은 김재우라는 이름 석자를 세상에 각인시킨 일로 남아 있다.73년 나는 30세에 삼성물산 영국 런던지사장으로 갔다.이제 막 산업화의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선진국.하지만 그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이듬해 나는 레바논 베이루트지사장으로 발령났다.오일쇼크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던 당시는 거꾸로 중동 ‘오일달러’를 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회사에서는 해결사로 나를 보냈지만 나의 상심은 대단했다.여유로운 생활은 물론이고 그룹내 최고의 영어전문가가 되겠다는 꿈도 물거품이 되는 듯 했다. ●“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다” -분노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아랍의 현자(賢者) 한사람을 만났다.그는 “사람의 운명은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당신은 경쟁자보다 무엇 하나라도 더 나았기에 원치않는 선택을 강요받게 된 것이다.장기적으로 더 나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뜨거운 모랫바람을 맞아가며 중동 각국의 정부와 기업 인사들을 만났다.어느날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방성 관료가 나를 찾았다.“군복,탄띠,요대 등 군대 비축물품을 300여가지 장만하려는데 삼성물산에서 공급할 수 있겠느냐.”그때 우리 회사에서는 그런 것들을 다루지 않았지만 나는 자신있게 “예스”라고 했다. 수주금액은 무려 1억 100만달러.당시 삼성물산의 연간 전체 수출액이 2억달러였다.다행히 모든 게 잘 맞아 떨어져서 나와 회사는 중동지역에서 커다란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81년 우리나라가 이라크와 국교수립을 하는 과정에서 민간교류단장으로 미력이나마 공헌한 것도 그때 인연이 컸다. -우리 직원들은 매월 한권씩 책을 돌려본다.같은 책을 150권 사서 서로 돌려보고 독후감을 작성한다.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50여권을 읽었다.책 한권을 고르기 위해 나는 두 세권을 읽는다.얼마 전에는 조난당한 남극탐험대원 27명을 2년 만에 무사히 생환시킨 어니스트 새클턴 함장의 이야기를 다룬 ‘인듀어런스’를 감명깊게 봤다.고등학교 때 읽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만큼 큰 감동이었다.둘 다 살아있는 한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마찬가지로 요기 베라(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의 명언을 후배들에게 들려준다.‘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회의시간에 고개 숙이고 자료 읽는 사람과는 얘기를 안한다.생각을 안해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나는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셜록 홈즈를 자주 인용한다.생각을 통해 실마리를 찾아내는 홈즈와 단서를 뻔히 눈앞에 보고서도 추리를 하지 않는 그의 친구 존 왓슨이 비교대상이다.내가 최고로 치는 가치도 의사결정의 속도다.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위기상황에서 리더가 내려야 할 의사결정은 ‘무엇’(What)이 아니라 ‘언제’(When)”라고 했다.빨리 내린 잘못된 결정이 늦게 내린 바른 결정보다 차라리 낫다는게 내 신조다.나는 회의를 마칠 때 반드시 논의된 사항들의 중간점검을 하게 한다.그래야 나중에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는 낭비를 줄일 수 있다.아무 것도 결정짓지 못하는 회의는 쓰레기다. -벽산은 98년 워크아웃 개시와 동시에 정보화 투자를 시작했다.전 사원이 상여금을 반납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추진한 게 ‘1인 1PC 갖기’였다.이를 ‘사치’라고 느낀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평생직장은 없다.이곳을 떠나 다른 조직에 가더라도 정보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며 다독거렸다.우리가 빠르게 수렁에서 벗어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정보화를 통한 생산효율 향상이었다. -기업이 위기에 빠지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재임 중 업적으로 보면 실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하지만 그는 만 80이 된 지금도 대통령 특사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그는 ‘희망보다 후회가 많을 때 늙는다.’고 했다.나는 항상 ‘오늘은 내 여생의 첫 날’이라고 생각하라고 직원들과 아이들에게 말한다.그런 점에서 아침시간은 ‘황금을 물고 있는’ 귀한 시간이다.하루에 1시간만 일찍 움직이면 1년에 보름이 내 손에 들어온다. ■ 김재우 사장은 ㈜벽산 김재우(金在祐·61) 사장은 별명이 많다.삼성에 있을 때에는 ‘일공일’(101)로 통했다.197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1백만달러(1억 100만달러) 납품을 따낸 게 인연이 됐다.98년 벽산에 온 뒤에는 ‘구조조정 전도사’란 별명을 얻었다.요즘은 온갖 강연이나 세미나에 연사로 초청받는 ‘스타 강사’다.30년 삼성맨 생활을 마치고 벽산의 최고경영자로 와서 경영권한 이양,매출목표 감축,거래선 축소 등 역(逆)발상을 통해 회사를 빠르게 정상화시켰다.97년 1816억원(부채비율 297.1%)이던 부채는 현재 210억원(59.2%)에 불과하다.지난해 매출은 2000억원이며 OA플로어,슬레이트,재래식 천장,미네랄 울,압출발포 폴리스틸렌 등에서 업계 1위다.그의 경영철학은 ‘착안대국 착수소국’(着眼大局 着手小局)이다.어떤 일을 왜 해야 하는 지 알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얘기다.▲44년 경남 마산 출생 ▲경북사대부고·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삼성물산 특수사업본부장·정보산업 총괄전무,삼성항공·삼성물산·삼성중공업 부사장 ▲97년 벽산건설 사장 ▲98년 벽산 사장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50)남해 노도(櫓島)의 파도소리

    국문소설 ‘구운몽(九雲夢)’의 작가이자 조선 후기 이름 난 문신(文臣)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1637∼1692)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양오리 백연 마을 건너 노도(櫓島)에서 56세 일기로 생을 마쳤다.그는 서울 태생인 데다 생애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다.그런 그가 한반도의 끝 남해바다에 외롭게 떠 있는 한 작은 무인도에서 숨을 거둔 이유는 정치범이라는 죄를 덮어 쓰고 이곳으로 유배되었기 때문이다. ●역모죄로 유배… 천연의 무인도 특별감옥 노도는 유배지였다.그러나 김만중 이전,또는 이후에 이곳으로 유배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노도는 김만중 한 사람을 유형시키기 위해 선택된 특별감옥이었던 셈이다. 그의 죄목은 역모와 관련되었다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숙종 임금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다툼에서 서인이 패배하게 되자 관직을 빼앗기고 죄인이 되었다.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무거웠다.사람이 살 수 없는 변방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남해(南海)에 위리안치(圍籬安置),즉 사방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그 안에 감금하는 형벌이었다. 이같은 조건을 잘 갖춘 곳이 노도다.섬의 동남쪽은 가파른 경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어서 일부러 울타리를 칠 필요가 없다.서쪽도 급경사지여서 탈출이 불가능하다.북쪽으로 난 밋밋한 한 자락만이 간신히 바다에 이르는 길로 이용할 수 있는데,이곳에서 맞은편 남해까지 사이에는 급류가 흐르고 있어 이 또한 천혜의 장애물이다.감옥으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춘 노도에다 김만중을 혼자 몰아 넣어 놓고 숙종은 장희빈과 쾌락의 나날을 보냈고,남인 권력자들의 끝없는 욕망은 조선시대를 비탈로 끌어내렸다. 그리움의 정서가 자주 표출되는 그의 시편들은 그의 생애가 잘 투영된 것들이다.또한 많은 인물 대부분이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는 소설과 시들은 그의 낭만주의 정감을 엿보게 한다.실제로 노도에 유배당한 김만중은 유배지로 찾아온 어머니와 아내와의 피맺힌 해후를 통하여 한글소설 ‘구운몽’을 탄생시켰다. 그가 53세 되던 1689년에 끌려와서 3년 뒤인 1692년 타계할 때까지 홀로 꿈꾸고 절규했던 적소(謫所),노도로 가기 위해 백연 마을 포구에서 고깃배를 빌려 탔다.불과 5분 남짓이면 노도에 닿는 거리다.그러나 노도와 백연마을 사이를 왕래하는 정기 여객선 같은 것은 있었던 적이 없었다.포구의 방파제는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의 패악질로 곳곳이 무너진 채 파도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떨구고 있다. 작은 고깃배를 몰고 가는 초로의 남자가 전해 준 말에 따르면 백연마을이나 노도는 1985년까지도 등잔불을 켜고 살았단다.십여 년 전부터 노도를 찾아오는 이들이 가끔 있어서 기름값이나 받고 손님을 실어다 주기도 한다는데,그 손님들 대부분이 어떻게 노도에서 혼자 3년 동안이나 지낼 수 있었는지 끔찍하다며 말을 잃곤 하더란다. 노도에는 그가 귀양살이 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북쪽 산비탈에 울창한 동백나무와 비자나무 숲에서 산새 몇 마리가 가는 소리로 울고 있다.김만중의 외로운 넋이런가 싶다.이 섬에서 북쪽 동백나무 숲 아래의 다소 밋밋한 언덕배기가 배를 접근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피눈물로 얼룩진 어머니·아내와의 해후 필자는 배가 닿았던 지점에서 맞은편 백연마을 포구를 바라본다.소리치면 건너편 포구까지 닿을 듯도 싶다.큰소리로 외쳐본다.바람이 그다지 불지 않는 날이어서 그런지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마을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내 목소리가 들린다는 뜻이다.그때 필자는 김만중이 유배생활 중에 겪었던 피눈물로 얼룩진 사건을 떠올렸다.어쩌면 바로 이 자리였을지도 모른다.그가 노도로 유배 온 이듬해 늦은 봄이었다.움막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애절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붓을 놓고 귀를 귀울였다.분명 사람 목소리였다.움막 밖으로 나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그의 눈길이 노도 맞은편 백연마을 언덕으로 가 닿는다.세 사람이 언덕 위에 서서 노도 쪽을 바라보고 있다.두 사람은 여인이고 한 명은 남자였다.그 남자가 다시 고함을 쳤다.저쪽 사내는 김만중을 찾고 있었다.놀랍고 반가웠다.되도록 한 발짝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다가섰다.바람이 불고 있었다.저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바람에 파묻혔다가 토막난 채 들려온다.김만중 자신을 찾는 것이 분명했다.그렇다고 대답했다.그러자 저쪽의 여자 한 사람이 절규한다.김만중의 아내였다.그 옆의 여인은 어머니였다.남자는 김만중의 집일을 도맡고 있는 주석아범이었다. 죄수가 유형생활하는 유배지에 가족이 찾아오는 것은 법으로 엄금했다.그리하여 주변을 지키는 포졸들에게 뇌물을 주고 잠시만 만나기도 했다.노도에 있는 김만중을 만나려면 특별하게 마련된 배가 필요했다.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주석아범은 백방으로 손을 써봤지만 배를 구할 수 없었고,그렇게 먼발치에서라도 소리쳐 이름 불러볼 수 있게 된 것도 여간 공들인 것이 아님을 알렸다.어머니는 자식이 하도 보고 싶어 서울에서 남해까지 왔지만 자식의 적소까지는 다가설 수 없어서 애를 태웠다.김만중은 울음을 참으면서 소리 질러 집안 안부를 물었고 어머니는 주석아범 목소리를 빌려서 부디 몸조심하라 신신당부했다. 늦은 봄날 하루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마침내 어머니가 혼절했다.주석아범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아내는 나귀를 몰고 돌아섰다.아내가 가다 말고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세 사람 모습이 사라진 뒤 김만중은 바닷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오래오래 울었다.늦은 봄밤이 깊어와 파도소리도 따라 울었다. ●소설 못보고 어머니 눈감자 그도 앓다 숨져 그날 이후 김만중은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어머니께 보내드리기 위해서였다.그는 어머니께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었다.지난날 그가 중국 사신으로 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중국 소설책 몇 권을 구해와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그런데 사신의 임무가 너무 막중하고 분주하여 어머니의 부탁을 그만 잊어버렸던 것이다.그 뒤로 다시는 중국 여행길이 마련되지 않아 늘 어머니께 송구한 마음이었다.김만중은 노도에서 그렇게 어머니와 이별한 뒤로 지키지 못한 어머니와의 약속을 다시 떠올렸다.언제 풀려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절해고도에 갇힌 몸이라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초조함이 더했다. ‘구운몽’은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인생을 특정한 사상의 틀 안에 넣어서 보지 않고 모든 틀을 깨고 나와서 자유롭게 관조한다는 주제로 씌어진 소설이다.그래서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인 금강경의 공(空)을 소설화했다고도 볼 수 있는 소설이다.김만중 자신의 육신이 절해고도에 감금당하고 자신의 삶이 철저한 불행 속에 놓여진 뒤에야 깨닫게 된 정신세계의 변화였다. 세속의 상식으로 볼 때 그의 인생은 끝장난 것이다.남은 것은 외로움에 찢겨 피흘리다 파도소리에 젖은 채 죽는 일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그때 그는 역설의 묘법을 눈치챈 것이다.명예,권력,소유의 욕망을 놓아버리면 한없이 자유로운 자연이 된다는 것을 안 것이다.마침내 자신의 감옥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면서 ‘구운몽’을 쓴 셈이다. 소설이 완성되었지만 보낼 길이 막연했다.어머니는 그렇게 다녀가신 그 해 가을에 눈을 감았다.소식을 갖고 온 조카에게 완성된 ‘구운몽’을 들려보내면서 장례에도 못 가는 불효자식을 대신하여 구운몽을 어머니 영전에 올려달라며 피울음을 울었다.자식 기다리는 어머니를 위로해드리기 위해 쓴 소설이지만 정작 그 소설을 보지도 못한 채 눈 감은 어머니를 부르며 바닷가를 거닐었다.어머니라는 등불이 꺼지고나자 자신의 삶은 더욱 작고 초라했다. 어머니와 아내가 서 있던 언덕의 느티나무 잎이 지고 파도가 흰 갈기를 세우며 세상을 질타하는 겨울 내내 김만중은 병을 앓았다.그리움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김만중은 그렇게 앓으며 파도소리에 갇힌 채 유배지 불 꺼진 방에서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육신을 벗어버림으로써 더는 갇힐 것 없는 무애의 빛이 되었을까.구운몽 책갈피가 파도소리에 젖는다. 우리말과 글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로 글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 말을 흉내내는 것과 같다면서 국문가사예찬론을 폈던 서포 김만중의 목소리가 이 여름 노도를 씻어가는 파도소리로 다가온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50)남해 노도(櫓島)의 파도소리

    국문소설 ‘구운몽(九雲夢)’의 작가이자 조선 후기 이름 난 문신(文臣)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1637∼1692)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양오리 백연 마을 건너 노도(櫓島)에서 56세 일기로 생을 마쳤다.그는 서울 태생인 데다 생애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다.그런 그가 한반도의 끝 남해바다에 외롭게 떠 있는 한 작은 무인도에서 숨을 거둔 이유는 정치범이라는 죄를 덮어 쓰고 이곳으로 유배되었기 때문이다. ●역모죄로 유배… 천연의 무인도 특별감옥 노도는 유배지였다.그러나 김만중 이전,또는 이후에 이곳으로 유배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노도는 김만중 한 사람을 유형시키기 위해 선택된 특별감옥이었던 셈이다. 그의 죄목은 역모와 관련되었다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숙종 임금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다툼에서 서인이 패배하게 되자 관직을 빼앗기고 죄인이 되었다.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무거웠다.사람이 살 수 없는 변방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남해(南海)에 위리안치(圍籬安置),즉 사방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그 안에 감금하는 형벌이었다. 이같은 조건을 잘 갖춘 곳이 노도다.섬의 동남쪽은 가파른 경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어서 일부러 울타리를 칠 필요가 없다.서쪽도 급경사지여서 탈출이 불가능하다.북쪽으로 난 밋밋한 한 자락만이 간신히 바다에 이르는 길로 이용할 수 있는데,이곳에서 맞은편 남해까지 사이에는 급류가 흐르고 있어 이 또한 천혜의 장애물이다.감옥으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춘 노도에다 김만중을 혼자 몰아 넣어 놓고 숙종은 장희빈과 쾌락의 나날을 보냈고,남인 권력자들의 끝없는 욕망은 조선시대를 비탈로 끌어내렸다. 그리움의 정서가 자주 표출되는 그의 시편들은 그의 생애가 잘 투영된 것들이다.또한 많은 인물 대부분이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는 소설과 시들은 그의 낭만주의 정감을 엿보게 한다.실제로 노도에 유배당한 김만중은 유배지로 찾아온 어머니와 아내와의 피맺힌 해후를 통하여 한글소설 ‘구운몽’을 탄생시켰다. 그가 53세 되던 1689년에 끌려와서 3년 뒤인 1692년 타계할 때까지 홀로 꿈꾸고 절규했던 적소(謫所),노도로 가기 위해 백연 마을 포구에서 고깃배를 빌려 탔다.불과 5분 남짓이면 노도에 닿는 거리다.그러나 노도와 백연마을 사이를 왕래하는 정기 여객선 같은 것은 있었던 적이 없었다.포구의 방파제는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의 패악질로 곳곳이 무너진 채 파도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떨구고 있다. 작은 고깃배를 몰고 가는 초로의 남자가 전해 준 말에 따르면 백연마을이나 노도는 1985년까지도 등잔불을 켜고 살았단다.십여 년 전부터 노도를 찾아오는 이들이 가끔 있어서 기름값이나 받고 손님을 실어다 주기도 한다는데,그 손님들 대부분이 어떻게 노도에서 혼자 3년 동안이나 지낼 수 있었는지 끔찍하다며 말을 잃곤 하더란다. 노도에는 그가 귀양살이 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북쪽 산비탈에 울창한 동백나무와 비자나무 숲에서 산새 몇 마리가 가는 소리로 울고 있다.김만중의 외로운 넋이런가 싶다.이 섬에서 북쪽 동백나무 숲 아래의 다소 밋밋한 언덕배기가 배를 접근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피눈물로 얼룩진 어머니·아내와의 해후 필자는 배가 닿았던 지점에서 맞은편 백연마을 포구를 바라본다.소리치면 건너편 포구까지 닿을 듯도 싶다.큰소리로 외쳐본다.바람이 그다지 불지 않는 날이어서 그런지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마을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내 목소리가 들린다는 뜻이다.그때 필자는 김만중이 유배생활 중에 겪었던 피눈물로 얼룩진 사건을 떠올렸다.어쩌면 바로 이 자리였을지도 모른다.그가 노도로 유배 온 이듬해 늦은 봄이었다.움막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애절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붓을 놓고 귀를 귀울였다.분명 사람 목소리였다.움막 밖으로 나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그의 눈길이 노도 맞은편 백연마을 언덕으로 가 닿는다.세 사람이 언덕 위에 서서 노도 쪽을 바라보고 있다.두 사람은 여인이고 한 명은 남자였다.그 남자가 다시 고함을 쳤다.저쪽 사내는 김만중을 찾고 있었다.놀랍고 반가웠다.되도록 한 발짝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다가섰다.바람이 불고 있었다.저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바람에 파묻혔다가 토막난 채 들려온다.김만중 자신을 찾는 것이 분명했다.그렇다고 대답했다.그러자 저쪽의 여자 한 사람이 절규한다.김만중의 아내였다.그 옆의 여인은 어머니였다.남자는 김만중의 집일을 도맡고 있는 주석아범이었다. 죄수가 유형생활하는 유배지에 가족이 찾아오는 것은 법으로 엄금했다.그리하여 주변을 지키는 포졸들에게 뇌물을 주고 잠시만 만나기도 했다.노도에 있는 김만중을 만나려면 특별하게 마련된 배가 필요했다.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주석아범은 백방으로 손을 써봤지만 배를 구할 수 없었고,그렇게 먼발치에서라도 소리쳐 이름 불러볼 수 있게 된 것도 여간 공들인 것이 아님을 알렸다.어머니는 자식이 하도 보고 싶어 서울에서 남해까지 왔지만 자식의 적소까지는 다가설 수 없어서 애를 태웠다.김만중은 울음을 참으면서 소리 질러 집안 안부를 물었고 어머니는 주석아범 목소리를 빌려서 부디 몸조심하라 신신당부했다. 늦은 봄날 하루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마침내 어머니가 혼절했다.주석아범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아내는 나귀를 몰고 돌아섰다.아내가 가다 말고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세 사람 모습이 사라진 뒤 김만중은 바닷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오래오래 울었다.늦은 봄밤이 깊어와 파도소리도 따라 울었다. ●소설 못보고 어머니 눈감자 그도 앓다 숨져 그날 이후 김만중은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어머니께 보내드리기 위해서였다.그는 어머니께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었다.지난날 그가 중국 사신으로 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중국 소설책 몇 권을 구해와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그런데 사신의 임무가 너무 막중하고 분주하여 어머니의 부탁을 그만 잊어버렸던 것이다.그 뒤로 다시는 중국 여행길이 마련되지 않아 늘 어머니께 송구한 마음이었다.김만중은 노도에서 그렇게 어머니와 이별한 뒤로 지키지 못한 어머니와의 약속을 다시 떠올렸다.언제 풀려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절해고도에 갇힌 몸이라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초조함이 더했다. ‘구운몽’은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인생을 특정한 사상의 틀 안에 넣어서 보지 않고 모든 틀을 깨고 나와서 자유롭게 관조한다는 주제로 씌어진 소설이다.그래서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인 금강경의 공(空)을 소설화했다고도 볼 수 있는 소설이다.김만중 자신의 육신이 절해고도에 감금당하고 자신의 삶이 철저한 불행 속에 놓여진 뒤에야 깨닫게 된 정신세계의 변화였다. 세속의 상식으로 볼 때 그의 인생은 끝장난 것이다.남은 것은 외로움에 찢겨 피흘리다 파도소리에 젖은 채 죽는 일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그때 그는 역설의 묘법을 눈치챈 것이다.명예,권력,소유의 욕망을 놓아버리면 한없이 자유로운 자연이 된다는 것을 안 것이다.마침내 자신의 감옥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면서 ‘구운몽’을 쓴 셈이다. 소설이 완성되었지만 보낼 길이 막연했다.어머니는 그렇게 다녀가신 그 해 가을에 눈을 감았다.소식을 갖고 온 조카에게 완성된 ‘구운몽’을 들려보내면서 장례에도 못 가는 불효자식을 대신하여 구운몽을 어머니 영전에 올려달라며 피울음을 울었다.자식 기다리는 어머니를 위로해드리기 위해 쓴 소설이지만 정작 그 소설을 보지도 못한 채 눈 감은 어머니를 부르며 바닷가를 거닐었다.어머니라는 등불이 꺼지고나자 자신의 삶은 더욱 작고 초라했다. 어머니와 아내가 서 있던 언덕의 느티나무 잎이 지고 파도가 흰 갈기를 세우며 세상을 질타하는 겨울 내내 김만중은 병을 앓았다.그리움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김만중은 그렇게 앓으며 파도소리에 갇힌 채 유배지 불 꺼진 방에서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육신을 벗어버림으로써 더는 갇힐 것 없는 무애의 빛이 되었을까.구운몽 책갈피가 파도소리에 젖는다. 우리말과 글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로 글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 말을 흉내내는 것과 같다면서 국문가사예찬론을 폈던 서포 김만중의 목소리가 이 여름 노도를 씻어가는 파도소리로 다가온다.
  • 레이건 클린턴 美대선 대리전?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를 제쳐두고 로널드 레이건·빌 클린턴 전 대통령간의 대결 양상으로 흐르는 것 같다.지난 5일 레이건 전 대통령이 사망하고 11일 국장(國葬)이 치러진 뒤에도 미국 사회에 그를 추모하는 ‘레이건 신드롬’은 여전하다.또 22일 출간하는 자서전 ‘나의 인생’이 미국의 비소설 출판사상 가장 많은 사전주문을 기록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전국적인 자서전 ‘홍보 투어’를 앞두고 또다시 여론의 초점이 되고 있다. ●20세기보다 못한 21세기 리더십 미국인들이 레이건과 클린턴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두 사람이 각각 20세기 후반에 공화당과 민주당을 재건한 인물이기 때문이다.레이건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치욕적으로 사임한 뒤 지리멸렬하던 공화당을 다시 반석 위에 올렸으며,클린턴은 존 F 케네디 사망 이후 새로운 ‘스타 탄생’을 갈망하던 민주당의 갈증을 해소해준 인물이다. 그러나 21세기의 지도자인 부시나 케리는 오히려 20세기의 인물인 레이건과 클린턴에 비해 비전과 리더십이 두드러지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부시 대통령은 레이건을 정치적 사표로 삼아 재정적자를 감수한 세금감면 등 ‘레이거노믹스’의 주요정책을 추종하고 있으나,시대가 다른 만큼 효과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또 레이건이 총 한방 쏘지 않고 소련제국을 무너뜨렸지만,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투입하고도 곤경에 처해 있다.케리 후보도 클린턴 대통령 시절 구가하던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이나 ‘재정흑자를 통한 사회보장 확대’ 같은 차원 높은 정책을 이끌어낼 능력이 있는가를 유권자들에게 증명하지 못한 상황이다. ●CNN “투표에 미치는 영향은 높지않다” 그렇다면 레이건과 클린턴이 오는 11월2일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좌우할 것인가?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CNN방송은 분석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경우 공화당과 민주당을 초월해 미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부시 대통령이 이를 자신의 지지로 연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클린턴 전 대통령도 부시 대통령을 목청껏 비난하며 케리 후보를 측면지원하는 앨 고어 전 부통령과는 달리 ‘낮은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다.자서전 홍보투어에서도 부시에 대한 공격보다 ‘조언’에 무게를 둘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여기에는 다른 차원의 고려도 있다고 워싱턴의 관측통들은 분석한다.부시 대통령이 재선할 경우 2008년에,케리 후보가 승리할 경우 2012년에는 부인인 힐러리(뉴욕주 상원의원)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자문위원 칼럼] 왜 탐사보도인가/최광범 한국언론재단 제작팀장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이전 신문에 대한 전문가의 충고 중 단골메뉴는 ‘속보성 기사는 방송에 양보하고 심층·탐사기사로 승부하라.’였다.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에는 이런 제언을 하면 ‘그런 당연한 소리는 우리도 안다.’라며 코웃음 치는 언론인들이 많다. 지난주 월요일(7일)자부터 1주일간 신문들이 주요뉴스로 보도한 기사들 가운데 몇 가지는 탐사보도의 필요성을 대변해주고 있다.7일자에는 이틀 전에 있었던 재·보선 선거결과를 전했다.서울신문도 1면 머리기사 등 5개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요일자를 발행하지 않은 신문들 입장에선 ‘속보’라는 측면에서 토요일 선거는 너무나 야속했다.50일 전 과반수가 넘는 국회 의석을 얻었던 여당이 광역단체장 4곳에서 전패했다는 사실은 큰 뉴스임이 분명했다.다양한 분석과 해설기사가 따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월요일자 신문의 보도는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수없이 보고 들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오만한 여당에 대한 민의의 심판’ 정도가 해설기사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었다.그런 가운데 서울신문 7면의 ‘낮은 투표율…지방자치 흔들린다’라는 기획기사는 돋보였다.이 기사는 재·보궐 선거의 투표율이 30% 미만에 그치고 있어,지역현안 결정이나 곧 도입될 주민소환제가 ‘목소리 큰 소수’에 좌우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정치무관심의 폐해를 다양한 전문가 취재를 통해 의제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칭찬 받을 만했다. 그러나 후보등록 후 2주 동안 판세 보도는 이른바 ‘소설식 기사’가 극치를 이뤘다.정당이 전하는 거짓(?) 정보를 그대로 받아썼기 때문이다.실제로 서울신문은 투표 하루 전인 4일자 3면에서 열린우리당이 전남에서 우세하다는 주장을 전했지만,민주당 후보에 참패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대통령선거에서 출구조사의 정확성에 많은 독자들은 경탄한다.이 정도로 과학적인 조사가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에서는 ‘엉터리’라는 누명을 뒤집어쓰는 이유는 무엇인가.단순 전화여론조사 지지도와는 별도로 세대별 투표참여율,지역변인 등 다양한 가외변인을 가미한 판별분석의 유무 때문이다. 앞으로도 재·보궐 선거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선거법의 개정필요성을 여론화할 필요성은 없는지,서울신문 내부의 조사 및 보도기법을 더 정교화할 방안은 없는지 재점검해야 한다. 다음은 ‘쓰레기 단무지’보도였다.언론은 특정집단이 아닌 누구에게나 관심이 있는 사안에 뉴스가치의 가중치를 둔다.대표적인 아이템이 ‘먹을거리’가 아닐까. 서울신문은 7일자 12면에 ‘만두속에 썩은 단무지’라는 제목의 2단 기사를 보도한 이후 4일 뒤인 11일에는 ‘돈 된다면…내던진 식품윤리’라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로 보도,강도를 더해갔다.사회적 비난여론을 곧바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바른 의제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불량식품 관련 기사는 그동안 수없이 보도됐지만,1회성으로 그치거나 관계기관에서 발표한 수사 자료를 전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아왔다.이는 언론사 자체적인 의제설정이 부족해 예방저널리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다름없다. 수사 및 검사기관의 한 건 주의는 없는지,무죄 판결을 받은 삼양사의 우지라면 파동이나 한샘식품의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처럼 잘못된 수사발표와 언론의 받아쓰기로 나락에 빠진 기업은 없었는지 등 언론의 기획·탐사보도 거리는 넘쳐난다. 탐사보도가 멀리 있고 드는 품에 비해 읽히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탈피해야 한다.단발성 자료들만 잘 가공해도 충분하다. 최광범 한국언론재단 제작팀장˝
  • 박상우 네번째 작품집 ‘사랑보다 낯선’

    A:요즘 소설치고는 정말 재미있네요.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는 작품들이 태반인데 이 작품은 쉽게 읽히면서도 인간미가 있어요. B:작가의 작품 경향이 바뀌어서 그런 것 같아요.이전보다는 인간에게서 희망을 찾으려는 의도가 많이 느껴져요. 소설가 박상우의 작품집 ‘사랑보다 낯선’(민음사 펴냄)을 읽고 감상을 들려주는 동료들의 대화 한토막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만의 독특한 소설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도 이번 소설은 쉽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주된 이유는 박상우의 작품들이 땅으로 내려온 데서 찾아야 할 듯.그는 혹은 그의 작품은 늘 변화를 모색해왔다.역사에 대한 전망을 상실한 공허한 현실과 지나간 시절에 대한 기억이 공존하는 장편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대변되는 시절을 지나 장편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시절에는 권태로운 일상과 인간에 내재된 악마성 등을 그렸고 이런 허무주의는 ‘가시면류관 초상’에서 정점을 이루었다.여기까지 대개 그의 작품은 어렵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표제작 등 6편의 단편이 실린 이번 작품집에서는 인간과 세상에 발을 깊숙이 담근다.비록 맹아적 형태지만 인간에게서 희망의 싹을 발견한다.표제작의 여주인공 임채령을 보자.환멸에 가까운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전 남편의 장례식장에 가면서 ‘일탈적 사랑’이라는 긴장감을 선택한 그녀는 “이 끔찍스러운 긴장 뒤의 해방감…이젠 다시 미친 듯이 살고 싶어요.”(161쪽)라고 말할 정도로 위태로운 삶을 영위한다.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배추를 캐는 데 몰입한 그녀의 모습에서 작가는 ‘은은한 감동’을 캐낸다. 또 “서른이 지나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거야.타성으로 남겨진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죽음만도 못해.”라며 세상을 떠난 첫사랑 여자를 추억하는 ‘삼십 세 비망록’,호감을 갖던 여자가 미친 여자라는 말을 듣고 그동안의 모든 판단을 바꿔버리는 과정을 통해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을 휘두르는 일상을 꼬집은 ‘미친 여자’ 등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작품들이다. 보기에 따라서 인간의 모습은 달라진다는 가능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마천야록’.룸살롱 접대부의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증언으로만 이뤄진 이 작품은 현실을 가감없이 드러내려는 ‘소설적 실험’이 돋보인다.그녀가 죽기 전날 밤에 그녀를 만난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그 사람들이 처한 입장을 잘 드러내 현실의 축소판으로 다가온다. 평론가 김민수는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한 ‘샤갈의 마을’과 ‘사탄의 마을’을 우회해 ‘사람의 마을’에 도착한 박상우의 작품세계는 현대적 삶 속에 놓인 인간들의 풍경을 포착하고 그 속에서 삶의 진실과 자유의 실천을 꿈꾸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발견해 내고 있다.”고 말한다.1988년 등단한 작가는 아홉편의 장편과 네권의 작품집을 냈고 1999년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인어공주와 골프엘보

    슬럼프가 없이 골프에 처음 입문하는 날부터 죽는 날까지 승승장구만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꾸준히 기량이 상승하리라고 믿었다.정말로 처음 5년간은 배우고,연습하고,실전을 쌓은 만큼 실력이 늘었다.그래서 이대로만 모든 일이 진행된다면 싱글핸디캐퍼도 되고 이븐스코어도 기록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 빠졌다.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는데,어느 순간 스윙이 흐트러지면서 골프엘보라는 병이 생겼다.골프를 멀리하고 팔을 쉬게 하면 나을 것이라는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 한달을 쉬었다.그래도 완쾌가 되지 않았다.두 달을 쉬었다.다시 골프채를 들자 팔꿈치가 욱신거렸다.당연히 실력은 퇴보했다. 실력이 형편 없어진 나는 연전연패했다.친구들은 먹기 좋은 도시락을 지참하려고 계속 불러주었지만,나는 피할 수밖에 없었다.팔이 아파도 골프는 하고 싶은데,초청을 거절해야 하는 심정은 쓰리고 아렸다. 실력이 퇴보를 하는 골퍼들을 많이 본다.나처럼 부상 때문이라거나 사업이 너무 번창해서 라운드 시간을 낼 수가 없기 때문에 실력이 줄어든 골퍼도 있고,반대로 사업이 안 돼 모든 면에서 자신감을 잃어서 공이 안 맞는 사람도 있다.병이 들거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력이 쇠해서 드라이버와 아이언 샷의 거리가 줄기도 한다. 골프란 드라이버샷의 비거리가 100m밖에 안 나가도,한 라운드에 120타를 기록해도 충분히 즐거운 운동이라고 한다.그러나 수양이 덜 된 나는 절대로 즐거울 수가 없었다. “네 목소리는 여기 바다 밑에서 가장 아름답지.난 그 목소리가 필요하단다.그것으로 마법의 약을 만들어야 하니까.”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마녀가 인어공주에게 한 말이다.인간인 왕자를 사랑한 인어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두 다리가 필요했다.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왕자를 만나기 위하여 목소리를 내어주고 다리를 얻는다. 나는 불치병이 돼버린 골프엘보를 앓고 있는 팔을 붙들고 생각에 잠긴다.나는 무엇을 포기하면 사랑하는 골프에게 다가갈 수 있는 건강한 팔을 얻을 수 있을까. 의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웬만한 장기는 새 것,혹은 인공의 것으로 갈아 끼우게 됐다.눈의 각막도 심장도 신장도 새 것으로 갈아 끼운다.목소리를 받아가고 다리를 달아주는 나쁜 서양 마녀보다는,헌집을 가져가고 새집을 주는 우리네 착한 두꺼비를 찾아가야겠다.두꺼비에게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가 아니라 ‘두껍아 두껍아 헌팔 줄게 새팔 다오.’라고 소원을 빌어봐야 겠다.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 이시영 아홉번째 시집 ‘바다호수’

    “시가 무슨 보복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나는 그것을 밤새워 성실하게 받아 적었다.” 중견 시인 이시영(55)의 아홉번째 시집 ‘바다 호수’(문학동네 펴냄)는 이제 시인에게 시가 삶 혹은 신체의 일부처럼 자연스레 흘러나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은빛 호각’을 낸 지 1년이 채 안돼 세상에 내놓은 시집에서 시인은 샘물처럼 솟아난 다양한 시상을 ‘바다’ 혹은 ‘바다의 호수’에 그윽하게 담고 있다.형식 면에서도 이전의 이야기시와 압축된 형태 모두를 자유자재로 구사,달관의 경지를 보여준다. 깊고 넓은 ‘기억의 바다’에서 시인은 지난 날의 추억이라는 배에 몸을 실은 채,그동안 만났던 다양한 사람과 사연을 길어올린다.밤새 단편을 쓰다 새벽녘에 머리식히려 나와 호랑이 발자국을 봤다는 입심 강한 황석영,휘파람을 잘 분 송영,‘부용산’을 잘 불렀던 방영웅,면전에서 아무리 험한 소리를 해대도 “소줏잔을 들고 빙그레 웃기만 하던” 평론가 고(故)김현,언제나 진지하기만 한 소설을 쓰던 박태순과 송기원의 해프닝 등 많은 문인들의 이야기가 읽는 이에게 넉넉한 웃음을 안긴다. 그래서 시집의 주된 정조는 난로 곁에 앉아 나누는 이야기처럼 훈훈하고 아늑하다.낮에 조태일 시인과 만나 “술 취한 해가 비틀거리며 서산 허리를 꼴깍 넘어서야 끝나던”(‘낮술’) 장면,연말 정종 한 병으로 새 날을 다짐하던 송년 풍경 등 가난했지만 마음은 풍요로웠던 시절의 삽화들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이 모든 사람과 풍경을 노래하는 이유를 “(…)이제는 모두 지나간 옛일/아무도 그 시절을 기억하지 않는다.”(‘청진동에서’)고 아쉬움을 담아 토로한다. 그렇지만 그 음조는 회한이나 탄식에만 젖어 있지 않다.대신 시인이 온몸으로 헤쳐온 높고 가파른 ‘시대의 격랑’이 고스란히 들어있다.안기부나 문공부의 검열을 받아 생살같던 책이 사라지거나 반독재·민주투쟁의 선봉에 섰던 시인들이 투옥되는 풍경이 아련하게 되살아온다. 김지하의 시집 ‘타는 목마름’의 지형과 시집 1만권이 분쇄되고 말못할 수모를 당하는 장면(‘타는 목마름으로’),‘자유실천문인협의회 1백1인 선언’결의문을 읽다 잡혀가는 장면이 그 대목.시인은 이를 해학적으로 노래하는 여유마저 보인다. 또 시집 곳곳에선 선비처럼 꼿꼿하게 살아온 삶이 스며있다.“이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바로 저 상업의 노예들인지도 모른다.”(‘베스트 시인을 위하여’)고 경계할 때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매섭고,현재형으로 들린다. 그런 시인의 이미지는 변함없이 세상을 비추는 ‘호남평야의 전봇대’에 겹쳐진다.“날 저물면 호남평야의 전봇대들은 큰 키를 수그리고 달려가 우묵한 마을부터 제일 먼저 불을 켜고 나옵니다.(…)”(‘변함없는 일’)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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