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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을 기억하십니까… 날짜를 기준으로 엮은 역사가 된 365개 이야기

    그날을 기억하십니까… 날짜를 기준으로 엮은 역사가 된 365개 이야기

    빙긋 웃음이 돈다. 9월 24일자 항목은 ‘경제평론가 정운영(1944~2005) 별세’다. 엄혹했던 시절 드물디드문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로서 늘 여기저기 불려다녔으나 정작 대학에는 안착하지 못했던 학자. 껑충한 키에 긴 팔을 격정적으로 흔들면서 연단을 끊임없이 가로지르며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로 강의를 진행해 마치 성격파 연극배우처럼 보였던 이. 수많은 해석과 논쟁을 달고 있던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두고 “그게 바로 휴머니즘”이라면서 절대 물러서지 않았던 이. 한겨레신문에 글을 쓰다 중앙일보로 옮긴 다음, 심지어 절친이었던 소설가 조정래조차 “옮기고 난 뒤의 글은 굳이 보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여기저기서 ‘돈에 팔려간 변절자’란 소리를 들었던 이. 저자는 그의 강의에서 들었던 인상 깊은 한마디, 그래서 저자가 “블로그의 소개글로도 써먹고 있다.”고 하는 한마디를 인용해뒀다. “기대도 실망도 하지 마라. 세상은, 그러기엔 너무 크다.” ‘그들이 살았던 오늘’(김형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영화로 치자면 ‘건축학개론’쯤 될 성싶다. 영화의 인기에 잽싸게 올라탄 마케팅과 인터넷 유행을 따르자면 새록새록 추억이 돋는 397세대 뇌구조 개념도쯤 된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어린, 혹은 젊은 시절을 보낸 이라면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저자는 1970년생 방송PD. 신문에 가끔 보이는 ‘오늘의 역사’ 같은 코너처럼 해당 날짜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매일매일, 1년 동안 기록했던 것을 책으로 묶어냈다. 새로운 분석, 해석은 없다. 대신 김광석, 공덕귀, 박인수, 이현상, 김산 등 까마득했던 이름들을 친근하게 불러세웠다는 쪽에 가깝다. 맛깔스럽게. 어렴풋한 일들의 뒷얘기가 쏠쏠하다. 4월 28일은 ‘세계 챔피언 알리 병역 거부’다.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끝내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한다. “베트콩은 우리를 검둥이라 욕하지 않는다.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백인 선수를 KO로 때려눕힌 뒤에도 절대 승리의 기쁨을 드러내지 않고, 백인 여성들과 함께 사진찍지 않고, 2차대전 때는 자진입대를 선언하면서 백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했으나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흑인 헤비급 챔피언 조 루이스(1914~1981)의 전철을 거부한 것이다. 쇼맨십 넘쳤던 수다쟁이 복서로만 알았던 것이 미안해진다. 영화 ‘퍼펙트 게임’으로 다시 한번 각인된 5월 16일 ‘최동원·선동렬의 기록적인 투수전’도 재밌다. 영화에서는 최동원과 김용철이 앙숙관계로 설정됐는데, 정말 남자다웠던 김용철의 실제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7월 1일은 ‘홍콩 반환’을 뽑았는데, 저자는 구룡성 얘기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왜 그런고 했더니 영화 ‘배트맨’의 배경 고담시, 주성치의 ‘쿵푸 허슬’에 나오는 돼지촌, 일본 애니메이션의 고전 ‘공각기동대’의 배경이 됐던 곳이 바로 구룡성이다. 풍성한 뒷얘기 못지않게 역시 눈길을 끄는 것은 요즘 상황과 겹치는 것들이다. 7월 28일에는 ‘1차세계대전 발발’을 다루면서 이런 말도 붙여뒀다. “석달이라면 끝나리라던 전쟁은 4년을 끌었고 9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연평도 사태 당시 어떤 이는 ‘3일만 참으면 된다.’고 기염을 토했다.” 3일만 참아 보려니 북진통일론이 떠오른다. 10월 1일 ‘국군 38선 북진’이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켰으나 38선을 넘어가느냐 마느냐에 대해 아직 판단이 안 섰을 무렵, 이승만은 북진을 고집한다. 한강철교를 끊고 제일 먼저 도망갔던 이가 말이다. 그런데 작전권을 미군이 쥐고 있으니 방법이 없다. 아군이 점령하지 않으면 손실이 예상되는 고지 하나 고른 뒤 이 정도쯤은 점령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미군을 설득했다. 그게 국군 38선 돌파 북진의 진실이란다. “살수대첩일도 아니고 귀주대첩일도 아니고 청산리대첩일도 아니고 광복군 창건일도 아니고 국방경비대 창건일도 아니고, 약간 꼼수까지 써서 38선을 넘은 이 날이 왜 우리 국군 최대의 기념일인지 흔쾌하지 않다.” 선관위 디도스 공격과 사법부·대기업·종교를 가리지 않은 전방위 사찰 문제가 시끄러웠으니 8월 31일 ‘한준수 군수 양심선언’과 9월 23일 ‘윤석양 탈영’이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한준수 충남 연기군수의 관권부정선거 폭로는 1992년 총선 뒤 이지문 중위의 폭로에 이어 터진 두 번째 폭로였다. 지난해 ‘모비딕’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던 윤석양 이병 사건은 보안사, 그러니까 지금의 기무사가 비상 사태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주요 정치인들과 재야인사들을 어디서 어떻게 체포해서 구금할 것인가 계획해 둔 것을 폭로한 것이다. ‘종북 좀 해봐서 아는데’라고 운 떼는 분들이 워낙 많으니 1월 14일 ‘대학생 박종철 사망’도 읽을 만하다. “1교시는 국어였다.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갑자기 출석부를 힘껏 내리쳐서 엄청난 소리를 냈다. 기겁을 하고 쥐죽은 듯 조용했는데 선생님이 피식 웃으며 이런 얘길 했다. ‘탁 쳤는데 와 억하고 안 죽노?’” 그때 시내 풍경이 눈에 어른거려 푸석 웃다가도 먹먹한 심정이 되는 것은 그가 거론하는 두 인물 때문이다. 박종철이 그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겠다며 끝내 불지 않았던, 그래서 박종철이 죽은 뒤 박종철 아버지에게 자기가 대신 자식노릇하겠다던 박종운, 그리고 박종철 영정을 들고 행진할 때 유일하게 마스크를 벗어 얼굴을 당당하게 드러냈던 오현규. 둘 다 한나라당, 그러니까 지금 새누리당에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그들의 인생에 대해 알지 못하니 “평가하고 싶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면서도 “종철이 형 얼굴에 먹칠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되묻는다. 식상한 감은 있지만, 이럴 때 제일 잘 어울리는 말이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희극 한판 끝나간다. 다음 판 두고 말들이 무성하다. 정운영, 아니 정운영을 빌린 저자의 말마따나 다음 판에서도 역시 기대와 실망 모두 금지다. 세상은 크니까. 다만 잘 기억해 둘 필요는 있을 것 같다. 2만 2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문재인 vs 안철수… 한국사회 어디로 가고 있나

    문재인 vs 안철수… 한국사회 어디로 가고 있나

    “그대는 먼 곳에 혼자 있는 게 아닙니다. 비록 잠들어 있으나 바로 여기, 지금, 나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중략) 바람의 소리가 귓전에 들리지요? 이렇듯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192쪽) 계간지 ‘문학의 오늘’ 2012년 여름호에 수록된 윤대녕 작가의 신작 소설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의 한 대목이다. “한 아이가 우연히 폭력이 행해지는 장면을 목격한 뒤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이 소설을 시작했다.”는 작가는 편지 형식을 빌려 “각자가 현재 누리고 있는 ‘고통’에 대한 상대적 공감을 전제로” 소통과 위안을 이야기한다. 한 40대 여성은 이 편지에서 대학시절의 상처, 남편의 폭력, 직장에서 만난 아이가 품은 괴로움 등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여성은 대학선배이자 그에게 ‘메모 한 장’ 남기고 떠났던, 이제는 유명작가가 된 수신인에게 ‘절박한 질문’을 던진다. “그때 당신이 병원 침상에 누운 여성에게 속삭인 말은 무엇이었나요.” 여성이 기다리는 대답은, 그토록 원하던 ‘위로의 말’일지도 모른다. 함께 실린 하창수 작가의 ‘무서운 독서가’는 독서광인 주인공을 내세워 창작의 고통을 이야기는 듯하다. “읽다가 혹 실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인물, 사건, 정황 등이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일 뿐 처음부터 끝까지 이 소설은 작가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는 작가는 그 의도를 꽤나 재미있게 풀어냈다. 여름호에는 또 ‘한국 사회 어디로 가고 있나’를 주제로 한 특집을 실었다. 정치, 영화, 문학 등에서 대표적인 인물들을 맞대놓고 이슈를 들여다본다. 문재인과 안철수, SM과 YG와 JYP, 봉준호와 박찬욱, 송경동과 진은영, 신경숙과 공지영을 대상으로 흥미롭게 가공했다. 박현수 경북대 교수는 유력한 대선 후보인 문재인과 안철수를 청와대 봉황의자로 우화해 장단점을 풀면서 의자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는 봉준호와 박찬욱의 영화 세계를 그로테스크와 알레고리로 소개한다. 이 밖에 고은 시인, 박선영 전 국회의원, 영화감독 변영주, ‘88만원 세대’의 우석훈 박사 등 각계의 목소리를 담았다. 조지훈의 신극평 ‘신극의 비애’는 여름호를 통해 최초로 공개된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미주통신] 출생 시 ‘인간 바코드’ 삽입 찬반 논란

    [미주통신] 출생 시 ‘인간 바코드’ 삽입 찬반 논란

    공상과학 소설가인 엘리자베스 문이 지난주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모든 사람이 고유의 바코드 칩을 가지면 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뉴욕데일리뉴스가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그녀는 “이러한 장치는 값비싼 DNA 조사나 감시카메라 보다도 더욱 실용적이어서 많은 시간과 돈을 절약하게 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미국인권협회 스탠리 분석관은 “그러한 시도는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나 모든 사생활이 노출되는 끔찍한 일”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2006년부터 새로 발행하는 여권에 디지털 사진과 함께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전자칩을 내장한 여권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2002년에 미 식품의약청(FDA)은 베리칩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팔에 삽입할 수 있고 고유의 16개 디지털 번호를 가지고 있는 인간 바코드 칩을 승인한 바 있다. 사생활 침해 논란과 더불어 2010년 이의 승인을 중지시켰지만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베리칩을 능가하는 인간 바코드 칩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특히 이들 기업들은 어린이에게 이러한 칩을 사용하면 아이 실종 시 쉽게 찾을 수 있음은 물론 여러 의학 관련 정보도 담을 수 있어 부모들의 걱정을 많이 줄이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생활 침해는 물론 이러한 인간 바코드 또한 해킹이 가능할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반대론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고 신문은 전했다.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문학·철학에 종말이 온다고? 읽고 쓸게 얼마나 많은데 감히!

    문학·철학에 종말이 온다고? 읽고 쓸게 얼마나 많은데 감히!

    사심 듬뿍 담아 감히 평하자면, ‘권력이란 무엇인가’,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펴냄)를 잇달아 내놓은 재독철학자 한병철과 함께 올 상반기 철학 교양서 저자 가운데 최고의 뉴 페이스로 꼽을 수 있겠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송태욱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을 내놓은 사사키 아타루다. 한병철과 저자의 가장 큰 공통점은 스타일이다. 본인이 정말 꼭꼭 씹어 소화해 낸 것만 내놓는다. 자신만의 독해법을 드러내 보일 뿐 그걸 번드르르한 인용으로 애써 포장하려 들지 않는다.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는 비평가나 “하나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주장 따위는 정보통이 되겠다는 헛된 욕망이라고 비판한다. 라캉의 말을 빌려 그것은 “향락 가운데 가장 비참한 팔루스(남근)적 향락”, 그러니까 홀로 우뚝 서겠다는 허세라는 것이다. 한병철은 똑같은 내용을 “(잡다한) 정보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이론을 내놓겠다.”는 말로 표현했다. 그래서 두 저자의 문장은 대단히 쉽다. 어려운 단어에다 말장난까지 섞어 두세번 꼬아 놓는 바람에 몇번을 봐도 헷갈리게 써 놓은 게 아니라, 누구나 알 만한 쉬운 단어로 문장을 구성했는데 읽는 사람은 오히려 멈칫멈칫 두세번 곱씹게 만든다. ‘아포리즘’이라는 표현에 딱 맞아떨어진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침이 꿀떡꿀떡 넘어갈 법하다. 저자가 이론을 제시하고 싶은 대상은 문학이다. 문학(Literature)을 넘어 문학(Literacy)이다. 시와 소설 같은 개별 문학작품을 넘어 종교, 철학, 역사에까지 확장된, 총체적으로 세상을 읽고 쓰는 행위로서의 문학이다. 모든 것을 텍스트화한다는 점에서, 그래서 모든 문제를 문학화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의 냄새가 짙게 배어난다. 사무엘 베케트·폴 발레리·버지니아 울프 같은 문학가들, 니체·라캉·푸코·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이 수시로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저자의 핵심 메시지는 ‘포스트모던의 이름으로 모던의 종언을 얘기하는 모든 종말론에 대한 투쟁’이다.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으로 한국에서도 인기있는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을 잘근잘근 씹는 대목이나 현대 프랑스 철학이 종말론적으로 이해되는 상황에 대해 어느 데마고그가 그런 헛소리를 퍼트렸느냐는 대목에서 웃음이 난다. 일본인인 저자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 퍼뜩 ‘근대 문학의 종언’을 말한 가라타니 고진, ‘역사의 종언’을 말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떠오른다. 저자는 “프랑스어로 된 책을 멋대로 읽고, 멋대로 쓰고, 멋대로 여기저기 가져가고” 했을 뿐 “그 사람들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뚝 잡아뗀다. 그럼에도 “문학이 끝났다, 예술이 끝났다고 소동을 벌이는 사람”들에 대해 “가소롭기 짝이 없다.”고 명백히 말해 둔다. 한 술 더 떠 “철학이 끝났다고 한다면 철학과를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문학이 끝났다고 한다면 문학에 종사하는 걸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까지 한다. 무슨 근거로 문학, 종교, 철학, 역사의 종말을 부인하는가. 좁게는 문학작품, 넓게는 이 온 우주를 다 포괄하는 텍스트를 읽고, 다시 읽고, 제대로 읽어버린 이상 쓰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까 쓰고, 고쳐 써야 하니까, 그래서 읽고 쓰는 과정 자체가 늘 혁명일 수밖에 없으니까 종말 따윈 있을 수 없다는 게 저자의 대답이다. 얼마나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고 할 것들이 많은데 감히 문학의, 종교의, 철학의, 역사의 종언을 말하느냐는 되물음이다. 해서 책 제목은 종말론을 떠벌림으로써 은근슬쩍 자신을 구세주로 포장하는 이들에게 혹해서 구원의 기도를 올리려는 그 손을 잘라야 한다는, 저자의 단호한 외침이다. 저자는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고쳐 쓰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증명하기 위해 역사를 되돌아본다. 영국·프랑스·미국·러시아 4개 혁명 이전 혁명의 원형질이랄 수 있는 16세기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그리고 12세기 중세해석자혁명을 다룬다. 오늘날 루터에 대한 평가는 조금 각박해졌다. 라스카사스나 후스 같은 다른 개혁가에 비해 보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저자는 문헌을 읽을수록 오히려 루터의 위대함에 반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직접 읽는 게 좋겠다. 다만, 저자의 강조점은 루터가 성서를 직접 읽어 봤고, 읽은 이상 쓰지 않을 수 없었고, 쓴 이상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에 꽂혀 있다.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12세기 중세해석자혁명이다. 저자는 서구의 ‘근대’라는 것이 이때 발생했다고 본다. 아날학파의 ‘장기 16세기’라는 표현에 빗대자면 ‘초장기 12세기’라 부를 만한 것인데, 물적토대라기보다 일종의 사상, 아이디어 차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저자가 12세기에 주목하는 까닭은 교회법 정비다. 교회법은 오늘날 민법으로, 교황권은 주권(Sovereignty)으로, 공의회는 의회 개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중세란 근대 계몽의 빛이 들이치기 이전의 암흑동굴이었다는 이분법을 완전히 깨부순다. 어쨌든 여기서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우연히 발견한 로마법대전을 읽었고, 다시 읽었고, 읽은 이상 쓰지 않을 도리가 없어 교회법을 새로 쓰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하디자 부부 얘기도 흥미롭게 읽힌다. 이들이 천사를 통해 받은 신의 첫 계시는, 이쯤이면 짐작하다시피 “읽으라.”였다. 읽는다는 것은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이고 개념의 이해란 생각을 임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가장 반여성적이라고 비판받는 이슬람교가 실은 가장 여성적이었다고 논증한다. 이렇게 보면 복음주의 기독교건 이슬람교건, 종말론적 철학이건, 그 모든 원리주의의 문제점은 열렬히 믿어서가 아니라 읽지 않아서다. 읽지 않아서, 읽더라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정직하게 읽어낼 용기가 없어서 생긴 일이다. 겉으로는 가장 선명하고 도덕적이고 용맹해 보이지만, 속은 가장 비겁하고 나약하기 이를 데 없다는 얘기다. 저자는 2008년 ‘전장과 영원’이라는 책으로 일본 출판계를 뒤흔들었다. 깊은 사유와 독특한 문체가 눈길을 끌면서 온갖 대중강연, 토론 자리에 불려다녔는데 이때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 “당신은 홀연히 나타났는데 지금까지 어디서 뭘하고 있었느냐.”였다고 한다. 그 뒤 각종 출판 제의를 거절하다 출판사 편집진들과 대화한 내용을 담은 것이 이 책이다. 실제 책도 5일밤 독자들과 나누는 대화체로 꾸며져 있다. 이 책 역시 지난해 일본에서 인문서 최대 화제작이었다고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저자는 논의가 조금만 더 깊어지려면 “이 부분은 이미 ‘전장과 영원’에서 논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겠다.”는 언급을 반복한다. 아무래도 ‘전장과 영원’ 번역이 필요해 보인다. 문제는 그 책이 600쪽에 이른다는 사실. 번역자는 의욕을 보이지만, 출판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낙관은 이르다. 참고로 번역자는 이 책의 저자가 안 그런 척하면서 때려대는 가라타니 고진을 한국에 많이 소개해 온 번역자다. 묘한 인연이다. 1만 35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스타작가 15명 추려 美서 ‘제2의 신경숙’ 만들겠다”

    “스타작가 15명 추려 美서 ‘제2의 신경숙’ 만들겠다”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려고 30여 년 노력했는데, K팝과 한류 덕분에 아주 좋은 기회를 만났다.” 지난 2월 취임한 김성곤(63) 한국문학번역원장은 15일 올해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감회를 털어놓았다. 아시아와 미국, 유럽 등에서 K팝이 인기를 끌면서 현지 젊은이들이 유창한 한국어로 노랫말을 따라하고,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나서고, 한국을 방문하려고 안달이 난 상태야말로 순수 한국문학이 세계에 진출하는 적절한 시기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현지의 장년층들도 현대차와 삼성·LG로고가 들어간 상품을 사용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미국 출판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스타작가 15명을 추려서 ‘제2의 신경숙’, ‘제2의 김영하’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김 원장은 이들 작가의 대표작을 샘플 번역해 해외의 주요 출판사에 보내 출판가능성을 타진하겠다고 했다. 이 작업을 위해 번역원은 기획재정부로부터 3억원의 예산을 확보해놓은 상태다. 또한, 번역원이 직접 해외 출판사와 교섭하기보다는 해외 에이전트를 활용, 현지의 대형출판사에서 한국작품들이 출판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해외 출판사와 장기 계약도 맺는다. 미국 달키 아카이브 출판사(Dalkey Archive Press)에서는 2014년까지 25권의 문학전집이, 미국 화이트 파인 출판사에서는 ‘한국의 목소리 시리즈’로 16명 시인의 시집과 소설들이 출간된다. 작가에 대한 정보를 위키피디아에 영문으로 올리고, 유튜브도 활용할 생각이다. K팝의 유통경로가 유튜브-트위터-콘서트로 연결되듯, 문학도 이런 루트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르 문학 작가를 발굴해 번역지원도 할 예정이다. 김 원장은 “매력적인 원작이 많이 나와야 하고,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한국이란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박해일 “내 나이 70 되면 꼭 다시 보고싶은 영화…적금 하나 든 기분”

    박해일 “내 나이 70 되면 꼭 다시 보고싶은 영화…적금 하나 든 기분”

    “오랜 시간 풍파를 잘 견뎌낸 고목 같다. 그런데 은교란 존재를 만나 심각한 진동을 느끼게 된다. 은교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다. 이적요가 물리적으로 느끼는 노쇠함을 더 안타깝게 만드는 매개체일 수도 있고, 단잠을 자면서 만난 존재일 수도 있다. 여자일 수도 있고, 젊음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이미 겪었지만, 돌이킬 수는 없는 부러움의 대상 말이다.” 배우에게 캐릭터 분석을 요구했을 때 이런 답이 돌아온 적은 드물었다. 손에 쥔 담배를 한참 만지작거리면서 골똘히 생각한 뒤였다. 같은 영화로 이미 수십번 인터뷰를 했다. 판에 박힌 질문일 수도 있는데 반사적으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한 어절마다 꼭꼭 씹어서 내놓았고, 문장에는 강약이 있었다. 깐깐하게 언어를 조탁(彫琢)하는 시인의 모습이 중첩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영화 ‘은교’(25일 개봉)에서 70세 노시인 이적요를 연기한 박해일(35)의 얘기다. ‘은교’는 박범신의 동명 소설을 ‘해피엔드’ ‘사랑니’의 정지우 감독이 영화로 옮겼다. ‘이십대 때 사회주의운동에 투신, 폭풍 같은 혁명 전사가 되길 꿈꾸었고, 삼십대 십년은 감옥에 있었으며, 사십대에서 죽을 때까지 시인의 이름으로 살았던’(소설 ‘은교’) 노시인의 건조한 삶에 52살 어린 여고생이 뛰어든다. 서서히 멈춰가던 시인의 생물학적 시계는 힘차게 고동친다. 하지만 아둔했으되 헌신적이었던 제자는 소녀가 탐탁지 않다. ‘어린 새가 쫑, 쫑, 쫑 걷듯 날렵한’ 은교의 존재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갈망했던 스승과 제자의 뇌관을 건드렸고, 둘의 애증은 비등점을 향해 치닫는다. ‘은교’의 판권을 확보한 정지우 감독은 처음부터 노시인 역할에 ‘모던보이’에서 호흡을 맞췄던 박해일을 떠올렸다.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 소설부터 읽어보라고 했다. “지금껏 내가 맡은 캐릭터 중 가장 난해했다. 처음에는 ‘왜 나여야 하는가’ ‘이걸 내가 해야 하나’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감독을 믿었다. 30대 중반인 내가 특수분장을 통해 노시인을 소화할 수만 있다면 마음은 청춘인데 껍데기가 늙어가는 나이 듦의 감성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에 동의했다.” 송종희 분장감독 등 스태프 4명이 달라붙어 피부 질감과 비슷한 실리콘 재질을 얼굴에 접착제로 붙이는 데만 8시간, 분장을 해체하는 데만 2시간씩 걸리는 고역을 60여 차례 반복했다. 그는 “수시로 자세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졸 수는 있어도 잠들지는 못한다. 긴 시간을 분장하다 보면 엄청난 피로감이 생긴다. 그 피로감이 외려 내 나이의 팔팔함을 죽이고, 노인의 느낌을 가져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그 정도면 고문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역할이다. 쉽지 않은 연기를 도와주는 고마운 과정이었다.”고 대답했다. 사실, 촬영 전부터 고통을 짐작했다. 강우석 감독의 ‘이끼’(2010)에서 정재영이 특수분장을 통해 70대 노인으로 거듭나는 지난한 과정을 목격했기 때문. 연기파 정재영도 피해가지 못한 ‘캐스팅 논란’이 자신에게 반복될 거란 사실도 예상했다. “목소리 톤이 어색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실제 70대 배우가 했어야 했다는 말씀도 하더라.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들이 박해일이 아닌 이적요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인정한다. 왜냐면 영화를 찍을 때 나도 캐릭터에 들어가는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역할에 빠져들기 전) ‘공회전’ 시간이 길게 필요한 나에게는 더 그랬다. 하지만 끝까지 지켜보신다면 연출자가 왜 30대 배우를 캐스팅했는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가 아닌 다른 어떤 배우가 했더라면 굉장히 부러워했을 것 같다. 배우로서, 자연인으로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은교’를 통해 박해일은 분명 배우로서 한 뼘쯤 성장했다. 그렇다면, 자연인으로 그가 얻은 건 무얼까. 그는 “시각이 넓어졌다면 자만일 테고, 70대 노인의 감정과 생각으로 석 달을 산 덕분에 이전에 갖지 못한 시선이 하나쯤은 생긴 듯하다. 정력적으로 활동할 시기에 생각이 많아진 게 장점일지, 단점일지는 모르겠다. 원한다고 털어버릴 문제도 아니고, 풍선에 바람이 서서히 빠지듯, 내가 안고 갈 문제”라고 말했다. 시사회에서 처음 스크린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황홀했다.”고 했다. 준비과정과 촬영 때의 험난한 과정이 떠올랐을 테고, 미래를 얼핏 엿보고 온 기분도 들었을 것이다. 박해일은 “내가 70살까지 살아 있다면 꼭 다시 보고 싶다. 30대의 내가 한 노시인의 연기를 보고 일흔 살의 내가 공감을 할지, 자괴감을 느낄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적금을 하나 들어놓은 기분”이라며 슬며시 웃었다. 연극관객으로 왔던 임순례 감독과의 인연으로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충무로에 발을 디딘 이후 상업 장편영화만 15편을 찍었다. 1000만 관객의 ‘괴물’과 700만 관객의 ‘최종병기 활’에서 흥행을 맛봤고, 트로피도 남부럽지 않게 받았다. 그에게도 슬럼프가 있었을까. 그는 “이렇게 얘기하면 ‘뻥 치고 있네’라고 생각하실 텐데 처음 연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은교’가 개봉하는 지금까지 줄곧 고비였다.”고 털어놓았다. 한 음절, 한 음절을 힘주어 말하는 그의 진정성에 ‘뻥’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문득 70세가 됐을 때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그는 “(감당)할 수 있는 배역을 맡아서 연기하고 지금처럼 인터뷰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면서 “한마디로 오래 해먹고 싶단 얘기”라며 활짝 웃었다. 청춘을 갈망하는 노시인의 깊은 눈빛은 사라지고 어느새 능청스러운 개구쟁이가 앉아 있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벽안의 한옥 지킴이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벽안의 한옥 지킴이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교수

    심심함은 재미의 시작이다. 옛날이다. 임금이 밤중에 심심하면 경복궁 오른쪽(서쪽)에 사는 사람들을 몰래 불렀다. 엊그제 청나라에 다녀온 역관한테는 뒷얘기를 들었다. 청나라 옥좌는 어떻게 생겼고, 신하들의 태도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어떤 맛있는 음식이 나왔는지, 술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증이 한두 가지가 이니었다. 그 다음에는 중인, 아전, 화가, 서예가 등을 차례로 불러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경복궁 왼쪽(동쪽)에 사는 양반들은 뻔한 얘기를 하기 때문에 서쪽 사람들의 얘기가 훨씬 진솔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양반들보다 글솜씨가 뛰어난 ‘송석원’ 같은 문집을 보며 세상의 진솔한 이치와 푸짐함을 느꼈다. 요즘 서촌(西村)이 주목을 받는다. 경복궁 서쪽 마을이다. 동네가 여럿이다. 효자동, 누하동, 누상동, 통인동, 옥인동, 필운동, 청운동, 체부동, 적선동 등 10여개 동네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서촌은 서인, 그중에서 소론이 살았다. 세종대왕 이도가 서촌에서 태어났고 필운 이항복,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시인 윤동주, 화가 이중섭이 서촌에 살면서 예술적 끼를 맘껏 발산했다. 근래 들어서는 한국화가 이상범, 박노수 가옥이 유명하고 소설가 박완서가 다닌 매동초등학교, 육영수 여사가 다닌 배화여고, 고(故) 정주영 현대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 현정은 현대그룹회장 등이 단골로 드나들었던 유정미용실 등은 여전히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아 참, 또 있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로 알려진 형제이발관이 오롯이 추억을 말해 준다. 서촌에는 한옥 663가구가 있다. 서울 한복판에, 그것도 옛날 임금님이 살던 경복궁 바로 옆에 추억과 역사를 도도히 품고 세월속에 알뜰하게 존재해 있다. 이러한 가치를 위해, 이러한 보존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외국인이다. 2008년 국내 최초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된 미국인 로버트 파우저(51)가 주인공이다. 1년 전부터 서촌주거공간연구회 회장을 맡아 서촌지역 한옥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파란 눈의 이방인이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시작했다고 하지만 서촌의 난개발이 안타까워 그 길을 택했다. 지난 23일 오후 경복궁 옆 서촌 길가에서 만났다. 점퍼 차림에 웃는 모습인 그는 “사진도 찍나요. 그럴 줄 알았으면 옷을 달리 입을걸.”이라고 말한다. 이럴 때 정감이라는 말을 쓰는 것일까. 수더분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약속 시간보다 다소 늦은 탓에 그는 “신문사도 마감을 중요하게 여기지요. 다문화 사회에 대해 원고를 쓰느라 좀 늦었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한다. 사는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북촌에서 살아요.”라고 답한다. 서촌을 사랑하는 사람이 왜 북촌이냐고 했더니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 많아요. 원래는 서촌에 살았지요. 그런데 집 근처에 빌딩을 세우고 난개발을 하더군요. 그래서 북촌으로 집을 옮겼습니다.”라고 까닭을 말한다. 북촌 집은 방이 세칸 딸린 한옥이다. 미국과 일본에 있는 친구들이 한국에 올 때면 자신의 집에서 재우며 한옥 자랑을 한다. 그와 함께 서촌 골목을 다니며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누하동 일대를 갔다. 마침 10층 빌딩을 짓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청계천 발원지 복원·생태보존 건의 성사 “저거 보세요. 인왕산과 북악산을 가리잖아요. 한옥 보존지역이라고 해놓고서는 저런 건물을 지으면 어떡하지요. 경관이 막혀서…. 한옥의 가치가 뭔지, 햇빛을 가리고, 뉴욕 같으면 이런 일이 절대 있을 수 없어요. 아마 2~3층 정도면 몰라도 말입니다.” 시인 노천명의 가옥 앞으로 장소를 옮겼다. 파란 눈의 이방인이 한옥 사랑을 얘기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얼핏 생각난다. 개발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어떻게 바라볼까. 그는 2009년 누하동에 1년 동안 살다가 집 인근에 빌딩이 들어서는 바람에 “성질 나서” 북촌으로 이사했다. 그런 다음 2011년 서촌주거공간연구회를 설립했다. 서촌 한옥과 아름다운 골목들을 지키기 위해 매일 서촌 사람들과 만나 ‘서촌의 가치’를 설득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지금은 회원이 500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 정회원 30명은 2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서촌 발전을 위해 토론을 한다. 서촌을 어떻게 하면 잘 지킬까. 정보교환도 하고 소식지도 발간한다. “연구회 모임에는 3개 분과가 있습니다. 이야기 분과, 한옥 분과. 자연생태 분과 등으로 나눠져 있지요. 그동안 어떤 일을 했냐고요. 청계천 물줄기의 발원지인 수성동 계곡을 복원하면서 원래 그대로, 그러니까 자연생태를 보존하도록 서울시에 건의해 성사되도록 했습니다. 또 천재 시인 이상의 집 철거계획을 유보시켰지요. 서촌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미나도 열고 동네 공동체 활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참, 지난 주에는 벚꽃축제를 함께 열었고 시각 장애인 가족들, 환경연합 가족들과 씨앗 나눠 주기 행사도 했습니다.” 한국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을까. 미시간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한 그는 일본에서 10년 정도 살았다. 그러면서 1983년 서울대에서 1년 동안 한국어 공부를 했고 1987~88년 카이스트(KAIST)와 고려대에서 영어 강사를 했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살던 그는 2008년 서울대에서 연락을 받고 다시 한국으로 왔다. 우리나라 최초로 외국인에게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직을 맡게 했던 것이다. 그는 이후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법을 강의하고 있다. “일본에 있을 때에도 아파트에 살기 싫었습니다. 한국에 오면서 지도를 들고 북촌도 가보고, 삼선교도 가보고, 필동도 가보고 그러다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서촌의 한옥을 정했습니다. 마침 이웃에는 미술을 하시는 분, 글을 쓰시는 분, 건축을 하시는 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서촌 한옥은 옛날 한옥과 비슷해서 추억하기 딱 좋습니다. 그런데 개발을 하는 바람에 북촌으로 떠나긴 했지만 올해 말에는 다시 서촌으로 집을 옮길 예정입니다.” ●한옥 손대고 고치면 역사성 못 느껴 괴물 그에게 한옥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었다. 웃으면서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오늘은 오래된 한옥이 역사성을 가진다는 것을 알았다. 오래되지 않은 것은, 중간에 손대고 고친 것은 역사성을 못 느낀다. 괴물 같은 느낌이다.”라고 말한다. 서촌은 한옥의 미래를 간직한 곳이란다. 그러더니 “서울시가 생각하는 한옥은 조선시대의 것을 축소시키려 한다.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어 한국 사회에 대한 소감을 잠시 피력한다. “한국 교수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성공, 성공 하는 말을 자주합니다.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이너프(enough, 충분) 단계에 이르면 나눠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삶의 질이란 그런 것이고 태어나 살면서 사회 공헌도 해야 하거든요. 서촌주거공간연구회 모임도 그런 차원입니다. 앞으로 다문화 사회, 열린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이자 바람이지요.” 그가 가르치는 제자(한국어 교사 지망생)들에게 항상 이런 내용을 강조한다고 했다. 전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장차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부분에 중요성을 더 둔다는 것이다. 미시간에서 태어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아버지가 일본으로 파병된 인연으로 일찍 동아시아 쪽에 관심을 두었다. 대학에서 일문학을 전공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일본 교토에선 1950년대 지은 비좁은 흙집에서 살았어요. 한국의 서촌도 교토와 느낌이 비슷해요. 좁은 골목이라든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모습들이 그렇습니다. 북촌은 요즘 영화 세트장처럼 변했어요. 빨리 서촌으로 이사해야지요(웃음).” ●서촌 개발 갈등 조정해 한옥 잘 지킬 것 경복궁과 청와대 서쪽인 서촌은 192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삶의 형태가 간직된 근현대 생활박물관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요즘 평화로운 마을에 한옥 열풍과 ‘제2의 삼청동’ 바람이 불어닥쳤다. 부동산 투기와 개발 바람을 타고 한옥의 가치가 상승하자 이를 비싸게 매입한 투자자들이 다시 대규모 투자를 통해 한옥을 바꾸려고 한다. 때문에 서울시와 원주민,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 간에 복잡 미묘한 갈등도 더러 생겨나고 있다. 파우저 교수는 이를 잘 알고 있다. 하여 서촌주거공간연구회를 통해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기존의 한옥을 잘 지키며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자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꿈을 물었다. 그랬더니 빙그레 웃는다. 촌스럽게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다시 물었다. 하고 싶은 일이 어떤 것이냐고. “꿈은 없었요. 썰렁하죠(웃음). (잠시 생각하더니)꿈이 꼭 있다면 저와 함께하는 회원들이 열린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들을 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옥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책도 내고 그런 일을 할 생각입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1961년 미국 미시간 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2차대전 때 일본에 파병한 까닭으로 일찍 동아시아에 관심을 두었다. 1983년 미시간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1986년 박사학위(언어학)를 받았다. 1983~84년 서울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이후 일본에서 10년 동안 살면서 1987~88년 카이스트 영어강사, 1988~89년 고려대 영어강사 등을 지냈다. 이때 서울 약수동과 혜화동, 안암동 등 한옥에서 살았다. 2008년 미국인 최초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채용된 그는 현재 외국인과 내국인 교사 지망생들을 상대로 한국어 교수법을 가르치고 있다. 아울러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개론서를 교육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 ‘한국 문학의 이해’가 있으며 이는 해외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에 동생이 살고 있어 가끔 고향을 다녀온다. 파우저 교수는 아직 미혼으로 한옥을 사랑하는 여인을 좋아한다고 했다.
  • ‘인간’ 허균의 기개와 번뇌

    허균(1569~1618) 하면 떠오르는 것은 소설 ‘홍길동전’이고, 더 나간다면 시문집 ‘성소부부고’에 수록된 ‘한정록’ 정도일 터. 늘 그의 작품이 먼저이지 정치와 사상에서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이자 최고의 시인, 문장가, 파직과 재기용을 되풀이한 관리로서의 모습은 쉽사리 언급되지 않는다. 선조~광해군 시대를 사는 지식인으로서 가졌던 고민이나 ‘점잖은’ 사대부 사회에서 아연실색할 돌출행동 때문에 파직이 거듭되면서도 문학적 역량과 방대한 지식으로 재기용될 수밖에 없던 인물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허균의 기개가 한껏 드러나는 듯한 제목을 달고 나온 신간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허균 지음, 정길수 편역, 돌베개 펴냄)는 그의 면모를 두루 살필 수 있는 시집이자 정치철학서이며 문학평론이고 자서전이다. 허균에게는 명예와 이익을 향한 욕망을 벗고 은거하고픈 마음이 일생 내내 교차했다고 한다. 해서인지 ‘압록강을 건너며’, ‘진상강에서’, ‘수레 위에서’ 등 많은 시에서 ‘어디로 돌아갈까’ 하는 고민이 가득하다. ‘이대로 떠나 산방 주인 되면 어떨까/내 책 일만 권을 차례대로 꽂아 놓고’(‘설날’ 중에서)라는 소망을 가졌던 허균은 ‘어떡하면 만년에 내 마음 지킬까/옛사람의 책 읽고 또 읽으리라.’(‘읽고 또 읽으리라’ 중에서) 바랐지만 2년 후 역모죄를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허균은 신랄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고, 그중에서도 호걸스러운 백성(豪民)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잘살게 하기 위해서이지 한 사람이 윗자리에서 오만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욕심을 채우게 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수령 노릇을 하는 자는 호민이 출현하지 않을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따끔한 충고를 했다. 유명한 ‘호민론’이다. 대단한 독서광인 허균은 평론도 명쾌하다. ‘양한연의’는 앞뒤가 잘 들어맞지 않고, ‘제위’는 졸렬하고, ‘수호전’은 속임수가 교묘하니 모두 교훈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당대 문인들 사이에서 호평받은 ‘수호전’을 박하게 평가한 것은 오늘날 수호전을 재평가하는 목소리와 맞닿아 있어 흥미롭다. 이 책 한 권으로 당대의 천재든 혁명가든 반항아든, 허균을 두고 적확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어떤 삶의 결을 가졌는지, 어떤 사상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95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서울광장] 시대정신 잘 읽어야 대권이 보인다/구본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시대정신 잘 읽어야 대권이 보인다/구본영 논설위원

    4·11 총선은 역대 어느 총선보다 뜨거웠다. 연말 대선의 전초전다웠다. ‘정권 심판론’과 ‘거대 야당 견제론’이 창과 방패처럼 부딪쳤다. 그 맨 앞줄엔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 등 대선주자들이 섰다. 또 다른 대선 잠룡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투표 독려 멘션을 날리며 존재를 알렸다. 하지만 무대의 열기에 비해 관객들은 심드렁했다. 조국 교수와 김제동·김미화씨 등 야권 성향 소셜테이너들이 투표율 제고 치어리더로 나섰다. 안철수 원장은 “투표율이 70% 넘는다면 미니스커트 입고 노래까지 하겠다.”고 했다. 조(兆) 단위 ‘무상 시리즈’ 공약도 넘쳐났다. 그런데도 투표율은 54.3%에 그쳤다. 생뚱맞은 상상일까. 선거 유세 무대와 객석의 온도차를 느끼면서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로 만든, 로버트 레드퍼드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다. 주인공 개츠비는 참 이중적 인간이었다. 가난 때문에 실연한 뒤 밀주사업으로 떼돈을 번 속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옛 연인 집 건너편에 대저택을 짓고 밤마다 파티를 열어 첫사랑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순정파였다. 개별 유권자들도 개츠비처럼 양면적일 수도 있다. 이번에도 지역주의에 휘둘리거나 포퓰리즘에 흔들리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을 게다. 그러나 긴 눈으로 보면 유권자의 총합으로서 국민은 언제나 현명했다. ‘위대한 국민’은 이번에도 투표 참여를 통해, 혹은 ‘거기가 거기 같은’ 이전투구 선거판을 외면함으로써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고 봐야 한다. 그 결과는 야권연대(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의 패배로 귀착됐다. 이른바 여권의 트리플 악재(레임덕, 측근 비리, 민간인 사찰 파문)로 인해 야권이 유리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민심의 번지수를 잘못 짚은 업보다. 애당초 국민의 바람은 여야의 상대 당에 대한 네거티브가 아니라 스스로의 집권 역량을 보여달라는 것이었을 듯싶다. 영화 속 개츠비가 간절히 기다린 것은 첫사랑 데이지였지, 파티에 몰려든 사람들의 수군거림이나 입에 발린 칭송이 아니었듯이…. 그럼에도 선거 직전 민주당은 여당 시절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론과 제주 해군기지 무효화론을 들고 나왔다. 첫 실착이었다. 이후 통합진보당의 경선조작 파문과 나꼼수 김용민 후보의 저질 막말 파문이 터졌다. “유영철을 풀어 미 국무장관 라이스를 ××해 죽여야 한다.”니, 상식으로 이해가 될 말인가. 그런데도 대응 태도가 더 나빴다. 물러난 민주당 한명숙 당시 대표는 나꼼수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통진당 이정희 대표는 “김 후보를 신뢰한다.”고 했다. 민심을 들을 요량은 않고 진영의 논리만 오만하게 들이댄 꼴이다. 이러니 지역적으론 충청과 강원, 성향 면에서 중도층이 야권연대에 등을 돌렸다고 봐야 한다. 가뜩이나 야권연대의 지나친 ‘좌클릭’에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던 유권자들이었다. “과격한 이들의 억지와 열정은 중도층에 염증만 안겨줄 뿐”이라는 진보논객 진중권 교수의 분석이 그럴싸하다. 그렇다고 해서 새누리당 박 비대위원장의 대선 가도에 청신호가 켜진 것인가. 여당의 서울·수도권 총선 성적표는 외려 그 반대 징후다. 박 위원장이 여전히 수도권의 젊은 민심 흡인력에 한계를 드러냈다. 더욱이 야권연대를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 등 범보수진영의 정당 득표율은 48대48이었다. 대선 레이스는 이제부터인 셈이다. 연말 대선에서 승리하려는 주자라면 ‘국민의 간절한 바람’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진정성 있게 다가가야 한다. 그런 ‘시대정신’은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옥타브 높은 목소리에 있지 않음을 이번 총선 결과는 말해준다. 대선주자들이 보수든 진보든 양 극단에 속하지 않은 채 침묵하는 다수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다. kby7@seoul.co.kr
  • [사설] ‘이외수 곤욕’ 다른 생각 인정하는 계기 삼자

    소설가 이외수씨가 총선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곤욕을 치렀다. 이씨는 그제 새벽 트위터에 “제가 살고 있는 강원도 중에서도 낙후된 접경지역, 철원·인제·양구·화천을 이끌어갈 새누리당 정치인 한기호 후보를 응원한다. (한 후보는) 추진력과 결단력이 있다. 호탕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글을 올렸다. 이씨를 옹호하는 글도 있었지만, 이씨가 이러한 내용을 남기자 일부 네티즌들은 “제정신이 아니군. 그냥 닭대가리 인증을 하는구나.” “새누리당 인물을 추천하는 따위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이씨는 그동안 현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그런 이씨가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니, 실망한 네티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원색적으로 비난할 일은 아니다. 논란이 커지자 이씨는 “자기네 정당 후보 여러 명 추천해 드렸는데 그때는 가만히 계시다가 다른 정당 후보 딱 한명 추천해 드리니까 불쾌감을 드러내시는 분들. 저는 공약이나 활동 검토한 다음 제 소신대로 소개하겠다고 미리 말씀드린 바 있다.”고 일축했다. 이씨는 그제 강원도 춘천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안봉진 후보를 추천했고, 민주통합당 정동영 의원(서울 강남을)을 지지하는 글을 트위터에 남기는 등 그동안 야권 후보를 추천해 왔다. 이씨의 말마따나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 것은 한 후보가 유일무이하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은 인정할 수 없고,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위험하다. 진보 성향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트위터에 “이외수 형님의 선택, 물론 저와는 생각이 다르다.”면서도 “타인의 생각을 인정하자.”는 글을 올린 게 맞는 얘기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견해를 존중해 주고 포용해 주는 보다 성숙한 사회가 돼야 한다. 오늘 실시되는 총선에서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최근 지적했듯이 소위 진영 논리에 빠져서 정파적 이익에 급급한 후보보다는 국익을 생각하는 후보를 뽑는 게 맞다.
  • “초박빙 50~70곳 부동표 잡아라” 48시간 수도권 대회전

    “초박빙 50~70곳 부동표 잡아라” 48시간 수도권 대회전

    ■박근혜 위원장 영등포·김포 등 민심 훑기 총선 D-2인 9일, 서울 서부와 인천, 경기 남부 등 11곳의 지원사격에 나선 박근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의 표정은 사뭇 비장했다. 웃음 띤 모습을 찾기가 힘들었다. 최대 승부처인 서울 선거구 48곳 중 30여곳이 경합지로 분류되면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막판 화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 탓이다. 새누리당은 남은 48시간을 ‘수도권 총력전’으로 설정했다. 남은 이틀간 이 지역 표심의 향배에 따라 승패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박 위원장은 서울 영등포에서 시작해 양천구, 강서구, 경기 김포시, 인천 서구·남동구·동인천역, 군포시, 과천시를 훑었다. 오전부터 찾은 영등포는 선거운동을 개시한 지난달 29일 처음 방문했던 격전지 중의 격전지다. 빨간 점퍼 차림으로 권영세 후보와 함께 유세차량에 오른 박 위원장의 목소리는 감기에 걸려 잔뜩 잠겨 있었다. 성량도 한층 작아지고 힘이 떨어졌다. 부산 1박2일 유세 등 열흘 넘게 이어진 강행군으로 기력이 떨어진 탓이다. 청중들과의 악수로 부은 오른손에 감긴 하얀 붕대는 검게 때가 타 있었다. 박 위원장은 대중유세에 걸맞은 내지르기식 연설 대신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댄 채 나지막한 어조로 연설을 이어갔다. 그러나 “거대 야당의 출현을 막아 달라.”는 호소에는 힘이 실렸다. 그는 “앞으로 국회에서 ‘두 당 연대’(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가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현재까지는 매우 높다.”면서 “연일 이념투쟁과 정치투쟁을 하는 최악의 국회는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거대 야당의 위험한 폭주는 오직 국민 여러분만이 막을 수 있다.”고 한 표를 호소했다. 양천구·강서구 합동유세를 마치고 김포시 사우문화체육광장 앞 사거리에서 17대 국회 때 대표 비서실장으로 자신을 보필했던 유정복 후보의 지지에 나섰다. 오후 들어 당 추산 1000여명의 인파가 몰리며 열기는 한층 뜨거워졌다. 박 위원장은 “유 후보는 저와 오랫동안 함께해 온 사람”이라면서 “김포 군수와 시장, 국회의원, 장관까지 했다. 이번에 3선을 만들어 주시면 김포 발전과 나라 발전을 위해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김포시민들의 지지를 당부했다. 인천 방문에서 그는 격전지임을 의식한 듯 야당의 정권심판론에 맞선 여당의 비장한 의지를 드러냈다. 박 위원장은 “저 박근혜, 여러분께 약속드린다. 저와 새누리당은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 국민 여러분만 바라보고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장담했다. 한편 박 위원장은 인천 남동구 만수동에서 연설을 마친 뒤 밴 차량에 올라 선루프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고 손을 흔들며 잠시 이동하다 수행차량으로 옮겨 타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10일에도 최대 표밭인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원 유세에 집중하며 막판 지지율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재연·송수연기자 oscal@seoul.co.kr ■한명숙 대표 서울·인천 등 투표 독려 사활 민주통합당이 4·11 총선을 이틀 앞둔 9일 0시부터 48시간 수도권 집중 유세에 돌입했다. 막판 변수인 부동층을 흡수하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 당의 전력을 쏟아붓겠다는 전략이다. 전체 지역구 246곳의 45.5%인 112곳이 집중된 수도권은 50~70곳이 초박빙 지역으로 분류된다. 한명숙 대표는 새벽 5시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방문을 시작으로 밤 12시까지 충남 서산·태안, 인천 남동을·중동옹진, 경기 고양 일산동구·의정부갑, 서울 도봉·노원·강북·성북·대학로·동대문 등을 돌며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10일 새벽 3시에는 서울의 밑바닥 정서를 훑고 다니는 택시기사들과의 간담회를 잡았다. 선거운동이 종료되는 10일 밤 12시까지 이틀간 한 대표는 50여곳의 박빙지역을 훑는 저인망 유세를 벌일 계획이다. 민주당은 수도권 유권자 중 부동층의 상당수가 야권 성향이라고 보고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데 화력을 집중했다. 한 대표는 가락동에서 곧바로 영등포 당사로 달려와 대국민 기자회견을 갖고 “투표하면 국민이 이기고 투표하지 않으면 이명박 정권이 이긴다.”며 “여러분의 한 표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가 달려 있다.”고 표심을 자극했다. 당의 공천 난맥상과 선거 종반 불거진 노원갑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 등도 “부족함은 모두 대표인 저의 책임”이라고 떠안았다. 그러면서 “국민이 이겨야 한다. 잘못한 정권, 잘못한 새누리당은 심판해야 한다.”고 거듭 호소했다.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앞에선 ‘멘토단’인 소설가 공지영씨와 조국 서울대 교수가 가세한 가운데 투표 독려 캠페인이 진행됐다. 한 대표는 “반값 등록금은 헛공약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2030세대의 결집을 당부했다. 또 자체 제작한 ‘투표왕자’, ‘투표공주’ 스티커를 직접 배부하던 중 몰려든 기자들을 피해 학생들이 자신을 지나쳐 교내로 들어가자 교문 안까지 뛰어들어가 스티커를 쥐여 주기도 했다. 충남 서산에서는 새누리당을 겨냥해 날선 유세를 이어갔다. 특히 한 대표는 4년 전 태안의 기름 유출 사건을 언급하며 “이명박 정권은 재벌기업을 옹호하는 정권이다. 기름 유출 사건을 일으킨 삼성도 옹호했다.”고 꼬집었다. 한 대표는 주변 상가를 돌던 중 60대 남성으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을 뻔했으나 수행원들의 저지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인천에서는 4·11 총선을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며 “또 새누리당을 찍으면 이명박 정부는 호통을 치며 오만하고 독선적인 정치를 연장해 나갈 것”이라고 야권 지지를 부탁했다. 민주당은 오프라인 선거유세와 함께 SNS를 활용한 ‘48시간 대국민 투표참여캠페인’에도 돌입했다. 한편 ‘막말 파문’의 김용민(노원갑) 후보는 이날 저녁 한 대표가 참여한 노원지역 합동유세에 합류하는 대신 따로 성북역 앞에서 집중 유세를 벌였다. 이현정·최지숙기자 hjlee@seoul.co.kr
  • [선택 2012 총선 D-6] 백의종군… 종횡무진… 관록의 조연들 총선흥행 이끈다

    [선택 2012 총선 D-6] 백의종군… 종횡무진… 관록의 조연들 총선흥행 이끈다

    4·11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 ‘주연’인 여야 대표들만큼 발걸음이 분주해진 ‘조연급’ 스타들이 있다.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중진 의원들이나 유명인사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유세단도 전국 각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18대 국회에서 찰떡 궁합을 보였던 새누리당 김무성·민주통합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각 당에서 유세 지원에 긴급 투입돼 전국 각지에서 하루 10개 이상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쁘다. ‘백의종군’을 선언했던 김 전 원내대표는 지난 2일까지 부산에 머무르며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 서용교(남을) 후보를 비롯해 문대성(부산 사하갑)·안준태(사하을) 후보 등 정치 신인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3일 울산을 방문한 뒤 4일 서울 마포·종로·도봉·강동 등 6곳을 돌며 유세를 했다. 4선의 풍부한 정치 경험과 뚜렷한 보수 색채 등으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는 게 김 전 원내대표 유세를 요청하는 캠프들의 설명이다. 대야(對野) 공격도 수위가 높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도봉갑 유경희 후보 지원유세에서 야당이 불법 사찰 관련 특검을 수용하지 않는 점을 비롯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해군기지 등에 대한 입장 변화를 두고 “이런 말바꾸기 정당에 나라를 맡길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5일에도 경기 수원을 비롯해 고양·일산 등 6개 선거구를 다닐 예정이다. 박 전 원내대표도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29일부터 지역구인 목포와 전남·광주·전북에 나흘 동안 머무른 뒤 전국을 순회하고 있다. 2일 경기 일대를 시작으로 3일은 서울 14개 지역구를 훑었다. 4일은 인천 중·동·옹진과 남을을 거쳐 강원 강릉·태백까지 종횡무진했다. 박 전 원내대표의 발길은 주로 박빙 지역에 닿는다. 호남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는 박 전 원내대표를 통해 각 지역의 호남 민심을 더 끌어모으기 위한 당의 요청도 포함됐다. 새누리당에서는 총선에 불출마하는 3선의 원희룡 의원도 인기 연사다. 젊은 층에게 호감도가 있는 만큼 서울·경기·강원 등 곳곳에서 유세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비례대표 후보들 중심으로 꾸려진 ‘함께 미래로’ 유세단의 이에리사·이자스민 후보와 이준석 비상대책위원 등도 지원에 나섰다. 유세단은 이날 강원 평창을 방문해 체육인 이에리사 단장이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한 약속을 내놨고, 이자스민 후보가 이 지역 1만 3000여명의 다문화가정을 위한 공약을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는 멘토단이 활발히 움직인다. 조국 서울대 교수와 소설가 공지영씨,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가수 이은미씨, 영화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 등 12명의 멘토단이 온·오프라인에서 활약 중이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선택 2012 총선 D-6] 막말 파문 김용민 “부끄러운 과거 반성한다”

    [선택 2012 총선 D-6] 막말 파문 김용민 “부끄러운 과거 반성한다”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전 진행자로 서울 노원갑에 출마한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가 ‘성희롱 막말’로 파문을 빚으면서 민주당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4일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선거 악재가 될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이나 당 지도부에서도 ‘사과=공천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 돼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김 후보는 공천 과정에서도 ‘나꼼수 편승’ 논란 등으로 한바탕 내홍을 겪었던 터라 민주당은 더욱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명숙 대표도 이날 오후 대전 유세에서 김 후보 파문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에게 “나도 걱정”이라며 난감한 입장임을 내비쳤다. 민주당은 특히 지지층 내부에서마저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데 대해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지난달 김 후보에 대해 “성실하고 반듯해서 사위 삼고 싶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던 소설가 공지영씨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인간 김용민에게 무거운 사과를 요구한다.”고 압박했다. 김 후보의 후원회장인 조국 서울대 교수도 “풍자와 야유에도 금도가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김 후보는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막말을 사과하는 동영상을 올려 “8년 전 기억도 못한 사건이지만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제가 한 말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당황스러웠다.”면서 “부끄러운 과거가 많이 있을 것이다. 있다면 모두 반성한다. 새로 태어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2004년 인터넷 방송에서 “(테러 대책으로) 유영철을 풀어서 부시, 럼즈펠드, 라이스를 아예 강간해서 죽이자.” “(저출산 대책으로) 지상파 텔레비전이 밤 12시에 무조건 X영화(성인영화)를 두세 시간씩 상영하자.” “피임약을 최음제로 바꿔서 팔자.” 등의 발언을 했다. 새누리당 조윤선 대변인은 “김 후보의 저질 발언은 국민과 대한민국 언어에 대한 모욕이고 폭력”이라면서 “김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표를 구할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민중 구술집 ‘당신을 사랑합니다’ 펴낸 시인 김해자

    [저자와 차 한 잔] 민중 구술집 ‘당신을 사랑합니다’ 펴낸 시인 김해자

    해방감이었다. 이들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엄살을 떨고 살았는지, 통절하게 느끼고 돌아왔다. 멋진 이야기도 아닌데, 오히려 비루하고 어렵고 고단한 이야기인데도, 이들이 만든 삶의 무늬와 정서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뒤에는 마음속에 있던 작은 고민이 소멸해 버리는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 푸줏간 주인부터 해녀까지 만나 듣고 또 듣고 최근 민중 구술집 ‘당신을 사랑합니다’(삶이보이는창 펴냄)을 낸 시인 김해자(51)는 책 속에 담긴 많은 사람에게서 받은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20일 서울 태평로 서울신문 본사에서 만난 시인은 머리에 초록색 두건을 두르고, 자잘한 꽃무늬가 그려진 연두색 셔츠를 입은, 자그마한 여인이다. 그런데 등에 멘 가방이 영 묵직해 보인다. “(전북)전주에 있다 보니까 서울에 한 번 오면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아요. 이번에는 그분들께 이 책을 전해드리려고요.” 시인이 말한 ‘그분’은 서울 마장동 우시장에서 고기를 파는 일흔다섯 윤주심씨이고, 34년째 서울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김인수씨이자 한국에서 새로운 꿈을 만들어 가는 외국인 노동자 레자·몰라·부따·나랜드라 등이다. 예전엔 스러진 해녀 고 김석봉씨이기도, 시인의 친구이자 노동운동가 고 최명아씨이기도 할 터다. 시인에게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 준 그 사람들이다. “첫 시집 ‘무화과는 없다’를 내기 직전인 2001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늘 곁에 계실 줄 알았는데, 천지 어디에서도 그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거예요. 이게 낫 놓고 기역자 정도 아는 우리 어르신들 모습이더라고요. 자식들은 동영상으로 남기고, 지나치는 꽃들을 사진으로 찍어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영원히 사실 것처럼 남기지 않는….” 시인은 그때부터 녹음기를 들고 다녔다. 사람들과 만나고, 때론 술 한 잔 기울이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다소 비린내 나고 씁쓰름하면서 텁텁하기도 한 대화를 날것 그대로 책에 풀어냈다. ‘피들피들 바닷바람에 말려 구워 먹는 오징어 피데기는 참 맛이 좋다게. 남편이 한참 뱃일할 때난 그물에 걸린 대게를 떼어내는 일도 했다게.(중략) 돌문어 다리 볶아서 아이들 도시락 반찬 해주곡, 생선 말려서 하르방 밥상에 올리곡, 식구들 아프면 전복죽 끓여 먹이고, 바당은 반찬거리 천지주.’(김석봉傳) ‘나가 고향서부텀 소문난 효자요. 자식 줄줄이 달고 청상이 되어부렀으니 내 맘으로다 엄니가 얼마나 안쓰러웠겄소?(중략) 한복 저고리에다 여름엔 모시 적삼에다가 그렇게 늘 깨깟허니 꼿꼿허니 앉어계신디, 그 뒤치다꺼리를 누가 했겄소?(중략) 이 자리서 나가 처음 하는 말인디, 이 사람한테 정말 미안허요.’(김인수傳) # 사사로운 육성에서 위로 받고 희망 찾아 애써 윤색하지 않았고, 전라도·충청도·제주도 사투리도 다 살렸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어눌한 한국말도 그대로 담았다. “말은 그 사람의 정서거든요. 우리가 하는 말은 어머니의 말이고, 자연의 말이잖아요. 설령 엄마가 ‘미친 년, 너나 아프지 마라’고 한들, 이걸 욕으로 듣지는 않죠. 자식 걱정하는 짠한 마음을 느낄 뿐이죠. 그것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고된 삶을 계속 접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피로해질 법도 할 텐데, 시인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고 했다. “못 배우고 못 살고, 그렇게만 아는 민중의 온몸에는 실다운 삶이 관통하고 있어요. 요즘 우리는 사랑이니, 민중이니 하는 말을 얼마나 오염시키고, 학자적·정치적 개념으로만 쓰고 있습니까. 나와 타자의 경계가 무너진 삶을 산 사람, 이들 자체가 구원인 거죠. 그래서 전 이분들께 거룩함마저 느꼈습니다.” 그가 민중에게 느끼는 경외감이 묻어난다. 그의 인생 역정 또한 그랬던 탓일 것이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시인은 동네에 현수막이 걸릴 만한 명문대에 진학했다. 운동을 하다가 졸업을 못한 채 인천으로 흘러갔고, 공장에서 일하면서 10여년을 보냈다. 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하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나눈 일상을 글로 풀어냈다. 공장에서 함께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유명을 달리한 친구 최명아씨를 그린 소설 ‘최명아’로 1998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았고, 두 번째 시집 ‘축제’로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은 앞으로도 죽 민중에 집중할 계획이다. 아마 두 번째 ‘민중열전’은 전주 남부시장 사람들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몇 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대수술을 받았고, 머리에 철심은 박은 상태라 오래 글을 쓰기 어려워 당장은 아니란다.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 머리가 지릿지릿 저려요. 수술 후에는 과거 몇 년 치 기억이 없어진 듯 기억이 잘 나질 않아요. 그런데 참 이상한 거는요, 몸은 기억하고 있다는 거예요. 글 한 자 쓸 줄 모르는 어르신들이 옛일을 날짜, 시간까지 정확히 말해 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글 속 윤주심씨의 말을 빌리자면 “우찌게 돈을 맹글어 죽어라고 달려가서 이문동 은행에 갖다 냈어. 11시드라. 기억력이 좋다고? 그라냐? (중략)자식들이 나한테 ‘되새김의 여왕’이라고 부르잖여.”라고나 할까. 시인이 전하는 것은 사사로운 민중의 모습이지만, 독자가 받는 것은 위로이고 희망이다. ‘지금 지가 아파도유, 보글보글 된장찌개도 끓이고 고실고실 밥도 하고 하늘도 보고, 오늘 하루도 삶의 수리차를 돌리겠유. 휘청휘청 걷다 보면 저기 어디선가 소금 빛이 반짝반짝할 것이니께.’(이영철傳) 이렇게 말이다. 1만 3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한가인 “엄태웅이 ‘된장’이라면 김수현은 ‘초콜릿’ 같아요”

    한가인 “엄태웅이 ‘된장’이라면 김수현은 ‘초콜릿’ 같아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2004)에 캐스팅된 건 ‘로미오와 줄리엣’의 올리비아 핫세를 닮았다는 이유였다. 인형처럼 크고 깊은 눈과 오똑한 콧날, 뽀얀 피부 등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얼굴에 양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 심지어 공부까지 잘할 듯 보였다. 사내들이 현실과는 무관하게 가슴에 기억하고 싶은 첫사랑의 원형일 터. 8년 만에 그녀가 충무로로 복귀했다. 가슴 한쪽에 묻어둔 아프지만 아름다웠던 첫사랑의 기억을 되살려 내는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22일 개봉)의 여주인공 서연을 맡은 한가인(30)이다. 15년 만에 불쑥 나타난 첫사랑을 보고 파도가 인 건 30대 중반의 승민(엄태웅)만은 아닐 것 같다. 8년 전 ‘말죽거리 잔혹사’를 기억하는 이라면, 묘한 설렘을 불러일으킬 만큼 한가인은 여전했다. 공교롭게도 최근 40%가 넘는 시청률 대박을 터뜨리고 종영한 ‘해를 품은 달’에서 한가인이 연기한 연우 역시 훤(김수현)의 첫사랑이다. “‘첫사랑의 아이콘’을 의도한 건 아닌데 모아 놓고 보니 다 첫사랑이네요. 제가 청순해 보여서 그런 건가요. 제 입으로 말하기에는 좀 그렇네요(웃음). 아주 털털한 편이에요. 술도 ‘소맥’(소주+맥주)을 가장 즐겨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게 확실한 성격이죠. 작게는 음식부터, 크게는 작품 선택까지 내가 먹고 싶고, 하고 싶은 작품을 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드러나요.” 이 영화에서 한가인은 욕을 한다. 알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엄태웅에게 “그 ‘X년’이 나야?”라고 묻는가 하면, 술을 마시다가 감정이 북받쳐 3~4개의 비속어가 결합한 욕설을 토해 낸다. 고전적이고 단아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파격이다. “여성관객들은 좋아하시던 걸요. 전에는 엘프(요정)같았는데 이젠 옆집 동생 같다고요. 남성들은 간혹 환상이 깨졌다고도 하시던데, 어쩌죠? (웃음) 개인적으로는 가장 통쾌했던 장면이에요. 평소 욕이라고 해 봤자 ‘자식’ 정도였죠. 영화에 나온 욕은 해 본 적이 없는데 어색하지는 않더라고요. 평소에도 일상적 단어에 감정을 실어(예컨대 ‘아이 진짜 짜증 나~’라며 실연을 해 보였다) 버릇해서였나 봐요.” 영화 속 서연은 30대 중반의 이혼녀다. 실제보다 어린 나이의 역할을 소화했던 한가인에겐 이 또한 처음이다. “서연이란 캐릭터는 또래 여자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취업을 했든, 가사를 돌보든, 육아를 하든 뭔가 결과물이 보여야 하는데 딱히 이뤄놓은 건 없는 거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공갈 빵 같다고 해야 하나요. 포장은 그럴듯한데 속은 텅 비어 있는, 인생이 뒤죽박죽인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한창 뜨던 여배우가 스물셋에 덜컥 결혼을 한다는 건 무리수였다. 그러나 그 후에도 한가인은 여전히 ‘CF퀸’으로 남았다. 다만, 결혼 이후 배우로서는 만족할 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전환점이 간절했던 그녀가 ‘건축학개론’을 선택한 까닭이다. 그녀는 “목소리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망언’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게다가 제 얼굴 골격이 남성적이에요. 턱도 발달했고요. 그래서 목소리가 중성적이고, 쇳소리도 조금 있어요. 광고에서 짧은 대사는 인위적으로 예쁘게 낼 수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불가능해요.”라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상대역인 엄태웅은 외려 ‘얼굴과 목소리가 안 어울리는 게 오히려 더 매력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평소 말하는 톤대로 해봐라.’라고 말했다. 그녀는 “배우로 새 출발을 했다고 할까요. 제 콤플렉스를 나쁘게 보지 않으신다는 허락을 받은 기분이에요.”라고 설명했다. ‘건축학개론’ 촬영이 끝날 무렵 촬영에 돌입한 ‘해품달’은 거대한 도전이었다. 사극은 발성과 대사, 몸짓까지 낯설었던 데다, 비인간적일 만큼 착하고 아낌없이 희생하는 연우란 캐릭터는 애당초 연기력을 펼칠 여지가 많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아역배우들의 ‘말도 안 되는’ 열연으로 성인 배우들의 가시밭길이 예고된 상황. 원작소설의 팬이었다는 그녀는 “연기력 논란은 처음부터 예상했다.”면서 “연우는 누가 해도 안티 100만명은 생길 캐릭터다. 성인(聖人)에 가까운 완성된 인격체로 누구도 용서하고 배려한다.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신적으로 한 살쯤 더 먹은 기분이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고, 사극에 대한 공포까지 느꼈는데 시청자들이 무척 좋아해 주시니까 역경을 헤쳐나온 성취감마저 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축학개론’은 찍는 내내 배우로서 행복했다면, ‘해품달’은 전쟁터에서 상처도 입었지만 왠지 승리한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부터 ‘건축학개론’에서 여덟 살 연상의 엄태웅과 호흡을 맞추다가, 1월부터는 ‘해품달’에서 여섯 살 연하인 김수현과 멜로 연기를 했다. 둘의 차이점이 궁금했다. “음… 태웅 오빠가 된장이라면, 수현씨는 초콜릿 같아요.” 명쾌하게 정의를 내렸다. “힘들고 지칠 때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가 위안이 되잖아요. 아무것도 안 해줘도 편하고, 연기를 받아주는 느낌도 좋았어요. 반면 초콜릿은 먹으면 살찐다는 걸 아는데 어쩔 수 없는 유혹을 느끼잖아요. 된장보다 불안정하지만, 달콤한 거죠.”(웃음) 결혼 8년차인지라 2세 계획을 실행에 옮길 법도 한데 한가인은 데뷔 이후 가장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최근 6개월 동안 온전히 쉰 날은 딱 하루란다. 그녀는 “주변에서 그런 말씀을 많이 한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으로) 2~3년 정도 일을 못 한다면 체력적인 한계도 오고, 입지도 줄어들 것 같다. 이전까지 타의에 휩쓸려 작품을 골랐다면, 비로소 내 의지대로 일을 선택하고, 칼을 가는 단계라 (일을 쉬기에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한가인 “얼굴 골격이 남자 같아서…”

    한가인 “얼굴 골격이 남자 같아서…”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2004)에 캐스팅된 건 ‘로미오와 줄리엣’의 올리비아 핫세를 닮았다는 이유였다. 인형처럼 크고 깊은 눈과 오똑한 콧날, 뽀얀 피부 등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얼굴에 양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 심지어 공부까지 잘할 듯 보였다. 사내들이 현실과는 무관하게 가슴에 기억하고 싶은 첫사랑의 원형일 터.  8년 만에 그녀가 충무로로 복귀했다. 가슴 한쪽에 묻어둔 아프지만 아름다웠던 첫사랑의 기억을 되살려 내는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22일 개봉)의 여주인공 서연을 맡은 한가인(30)이다. 15년 만에 불쑥 나타난 첫사랑을 보고 파도가 인 건 30대 중반의 승민(엄태웅)만은 아닐 것 같다. 8년 전 ‘말죽거리 잔혹사’를 기억하는 이라면, 묘한 설렘을 불러일으킬 만큼 한가인은 여전했다. 공교롭게도 최근 40%가 넘는 시청률 대박을 터뜨리고 종영한 ‘해를 품은 달’에서 한가인이 연기한 연우 역시 훤(김수현)의 첫사랑이다.  ●“욕할 때가 가장 통쾌했다”  “‘첫사랑의 아이콘’을 의도한 건 아닌데 모아 놓고 보니 다 첫사랑이네요. 제가 청순해 보여서 그런 건가요. 제 입으로 말하기에는 좀 그렇네요(웃음). 아주 털털한 편이에요. 술도 ‘소맥’(소주+맥주)을 가장 즐겨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게 확실한 성격이죠. 작게는 음식부터, 크게는 작품 선택까지 내가 먹고 싶고, 하고 싶은 작품을 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드러나요.”  이 영화에서 한가인은 욕을 한다. 알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엄태웅에게 “그 ‘X년’이 나야?”라고 묻는가 하면, 술을 마시다가 감정이 북받쳐 3~4개의 비속어가 결합한 욕설을 토해 낸다. 고전적이고 단아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파격이다.  “여성관객들은 좋아하시던 걸요. 전에는 엘프(요정)같았는데 이젠 옆집 동생 같다고요. 남성들은 간혹 환상이 깨졌다고도 하시던데, 어쩌죠? (웃음) 개인적으로는 가장 통쾌했던 장면이에요. 평소 욕이라고 해 봤자 ‘자식’ 정도였죠. 영화에 나온 욕은 해 본 적이 없는데 어색하지는 않더라고요. 평소에도 일상적 단어에 감정을 실어(예컨대 ‘아이 진짜 짜증 나~’라며 실연을 해 보였다) 해 버릇해서였나 봐요.”  영화 속 서연은 30대 중반의 이혼녀다. 실제보다 어린 나이의 역할을 소화했던 한가인에겐 이 또한 처음이다. “서연이란 캐릭터는 또래 여자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취업을 했든, 가사를 돌보든, 육아를 하든 뭔가 결과물이 보여야 하는데 딱히 이뤄놓은 건 없는 거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공갈 빵 같다고 해야 하나요. 포장은 그럴듯한데 속은 텅 비어 있는, 인생이 뒤죽박죽인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한창 뜨던 여배우가 스물셋에 덜컥 결혼을 한다는 건 무리수였다. 그러나 그 후에도 한가인은 여전히 ‘CF퀸’으로 남았다. 다만, 결혼 이후 배우로서는 만족할 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전환점이 간절했던 그녀가 ‘건축학개론’을 선택한 까닭이다. 그녀는 “목소리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망언’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게다가 제 얼굴 골격이 남성적이에요. 턱도 발달했고요. 그래서 목소리가 중성적이고, 쇳소리도 조금 있어요. 광고에서 짧은 대사는 인위적으로 예쁘게 낼 수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불가능해요.”라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상대역인 엄태웅은 외려 ‘얼굴과 목소리가 안 어울리는 게 오히려 더 매력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평소 말하는 톤대로 해봐라.’라고 말했다. 그녀는 “배우로 새 출발을 했다고 할까요. 제 콤플렉스를 나쁘게 보지 않으신다는 허락을 받은 기분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연우는 누가 했어도 안티 100만 캐릭터”  ‘건축학개론’ 촬영이 끝날 무렵 촬영에 돌입한 ‘해품달’은 거대한 도전이었다. 사극은 발성과 대사, 몸짓까지 낯설었던 데다, 비인간적일 만큼 착하고 아낌없이 희생하는 연우란 캐릭터는 애당초 연기력을 펼칠 여지가 많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아역배우들의 ‘말도 안 되는’ 열연으로 성인 배우들의 가시밭길이 예고된 상황.  원작소설의 팬이었다는 그녀는 “연기력 논란은 처음부터 예상했다.”면서 “연우는 누가 해도 안티 100만명은 생길 캐릭터다. 성인(聖人)에 가까운 완성된 인격체로 누구도 용서하고 배려한다.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신적으로 한 살쯤 더 먹은 기분이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고, 사극에 대한 공포까지 느꼈는데 시청자들이 무척 좋아해 주시니까 역경을 헤쳐나온 성취감마저 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축학개론’은 찍는 내내 배우로서 행복했다면, ‘해품달’은 전쟁터에서 상처도 입었지만 왠지 승리한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부터 ‘건축학개론’에서 여덟 살 연상의 엄태웅과 호흡을 맞추다가, 1월부터는 ‘해품달’에서 여섯 살 연하인 김수현과 멜로 연기를 했다. 둘의 차이점이 궁금했다. “음? 태웅 오빠가 된장이라면, 수현씨는 초콜릿 같아요.” 명쾌하게 정의를 내렸다. “힘들고 지칠 때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가 위안이 되잖아요. 아무것도 안 해줘도 편하고, 연기를 받아주는 느낌도 좋았어요. 반면 초콜릿은 먹으면 살찐다는 걸 아는데 어쩔 수 없는 유혹을 느끼잖아요. 된장보다 불안정하지만, 달콤한 거죠.”(웃음)  결혼 8년차인지라 2세 계획을 실행에 옮길 법도 한데 한가인은 데뷔 이후 가장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최근 6개월 동안 온전히 쉰 날은 딱 하루란다. 그녀는 “주변에서 그런 말씀을 많이 한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으로) 2~3년 정도 일을 못 한다면 체력적인 한계도 오고, 입지도 줄어들 것 같다. 이전까지 타의에 휩쓸려 작품을 골랐다면, 비로소 내 의지대로 일을 선택하고, 칼을 가는 단계라 (일을 쉬기에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열린세상]전업 작가와 연봉 800만원/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전업 작가와 연봉 800만원/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최근 두 명의 작가를 만났다. 한 작가는 소설가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끝에 그는 지금 구상 중인 작품에 대해 말했다. 몇 년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탈옥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겠느냐고 그는 물었다. 나는 단호하게 그런 것은 소설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작가는 시인이다. 전업 작가인 그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해 술 한 잔 사 달라고 했다. 묵묵히 술만 마시던 그가 한참 뒤에 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정말 살기 힘들다고. 서울 변두리에 사는 시인은 오른 전셋값 때문에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은행에서 그의 작년 총수입이 800만원 정도이기에 아주 적은 금액만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시만 아니면 죽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시인에게 나는 아무런 위로의 말도 해 주지 못했다. 세계 10위 경제대국 한국에서 전업 작가로 살아가기는 무척 힘들다. 소설 한 편을 쓰면 대략 50만원의 고료를 받는다. 일 년에 열 편을 쓰면 500만원이다. 그런데 일 년에 서너 편 쓰기도 힘든 것이 창작 아닌가. 운 좋게 대기업 사보에 글을 쓰면 고료가 꽤 된다. 그러나 그런 기회도 마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강연을 하고, 대학에서 시간 강의를 한다. 그 와중에도 열심히 창작해서 장편소설을 발표해 인세를 받는다. 그렇게 해서 일 년에 800만원 정도를 번다. 80만원 세대가 따로 없다. 왜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가. 문학은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고 그것이 극복된 진정 인간다운 세계를 지향한다. 그러기에 작가는 현실에 안주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현실 문제에 치열하게 부딪치고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산고와 같은 고통을 겪으면서 태어난 작품은 독자인 우리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뼈아프게 깨우쳐 준다. 물론 일정한 직업을 가지면서 작가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시인이자 방송인인 어느 작가가 방송 일과 시 쓰는 일이 너무 달라 무척 힘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래도 그는 방송인으로서, 또 시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 결과 양쪽 모두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문학과 거리가 있는 직업을 가진 작가들이 창작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위대한 작가를 두고 예외적 개인이라 한다. 정치, 사회, 경제 등 제반 분야의 지식인들 중에서 그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일 먼저 포착하는 것이 예외적 개인으로서의 작가다. 이를 위해 작가는 그가 살아가는 사회의 총체적인 모순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등 제 분야의 지식을 모두 섭렵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본질적인 모순을 천착해야 한다. 탈옥수류의 세태적인 이야기를 다루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예외적 개인이 될 수 없다. 시류에 편승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부와 명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다움을 지향하는 문학 작품으로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생활고를 견뎌 내면서 창작에 전념하는 전업 작가들의 꿈은 무엇일까. 지금 당장의 부와 명예를 목적으로 한다면 아마 그들은 문학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들의 꿈은 단 하나, 예외적 개인이 되고자 하는 것 아닐까. 이상은 수필 ‘권태’에서 어둡고 좁은 방에 누워 희망 없는 내일에 절망하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라고 했다.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와 맞서 문학에 생의 전부를 건 이상의 이 독백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려 온다. 예외적 개인을 꿈꾸는 우리 시대의 모든 전업 작가들 역시 어둡고 추운 방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작품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원고료를 올려 주고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보다 그들이 왜 오들오들 떨면서 창작에 전념하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작품에 따뜻한 관심을 가져 주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얼마나 좋을까. 비인간화 시대에 인간다운 가치를 추구하는 전업 작가들에게 한없는 존경을 표한다.
  • [글로벌 시대] 선거, 그리고 포퓰리즘/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선거, 그리고 포퓰리즘/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다. 선거철답게 각 정당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포퓰리즘에 대한 공방도 만만찮다. 선동과 동의어인 포퓰리즘은 전 세계적인 정치 현상이 되어 선거전에 돌입한 진보와 보수 모두를 유혹하고 있다.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단어 포퓰리즘, 하지만 그에 대한 정의는 어디에도 없다. 프랑스의 작가 구스타브 플로베르는 “포퓰리즘, 그게 뭔지 모르겠다. 뭔가에 반대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포퓰리즘의 모호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포퓰리즘이란 단어의 근원을 찾아보면 원래 문학에서 비롯되었다. 1929년 ‘작품: 뢰브르(L‘Oeuvre)’란 문학잡지에 발표된 레옹 르모니에의 글 ‘문학선언:포퓰리스트 소설’에 처음 등장했다. 당연히 문학의 한 경향을 지칭하는 것이었지만 차츰 정치 현상을 논하는 어휘로 전용되며 주로 비판적인, 게다가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포퓰리즘은 이 어휘가 태어나기 전에 역사적으로 존재했었다.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의 나로드니키(narodniki)와 비슷한 시기 미국의 위 더 피플(We the People) 운동이 대표적이다. 전자는 ‘민중 속으로’란 의미로 사라진 세상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중운동이었고, 후자는 프티 부르주아 중심의 목가적 포퓰리즘으로 미국 민주주의 설립자들의 이상을 재현하려는 운동이었다. 이 초기의 포퓰리즘은 모두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염원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의 이 같은 꿈은 재구성된 과거에 대한 향수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포퓰리즘은 시작부터 진보의 사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포퓰리즘이란 바이러스는 세월과 더불어 여러 변종으로 발전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포퓰리즘은 분석적 용도와 가치론적 혹은 규범적 용도 사이에서 모호성을 드러낸다. 정치적 분야에 적용될 때, 포퓰리즘의 모호성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그 이유는 한편으로 포퓰리즘이 정치학의 서술적 영역으로 사용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비하적인 논쟁, 게다가 비난으로 간주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에 대한 어떤 정의도 분쟁의 소지를 지닐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아르헨티나의 철학자인 에르네스토 라클로는 “오늘날 얼마간의 포퓰리즘 없이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포퓰리즘은 경멸적인 어휘가 아니라 중립적 개념일 뿐이며, 정치를 구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포퓰리즘은 엘리트에 맞서는 대중, 부동의 공공 제도에 저항하는 동원된 대중의 대립 구도라는 작동 원리를 지닌다. 대표적 포퓰리스트 정치가로는 역사적으로 무솔리니, 마오쩌둥 그리고 현재로는 우고 차베스 등을 들고 있다. 반면 프린스턴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얀 베르너 뮬러는 대중과 엘리트를 대립시키는 포퓰리즘은 해악적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포퓰리즘이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어느 정도의 혐오, 감세 주장, 생활 수준의 저하에 대한 공포를 이용한 선동, 코스모폴리턴적인 엘리트에 대한 반감 등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의 반대말은 엘리트주의가 아니라 다원주의(pluralism)라고 주장하며, 진보가 어느 정도 포퓰리즘 카드를 쳐야만 포퓰리즘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패배주의라고 단호히 규정한다. 포퓰리즘은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존재이며, 가볍게 다룰 주제가 아니라고 한다. 포퓰리즘에 대한 보편적 혹은 학문적 정의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포퓰리즘이란 어휘가 사라지거나 정치적 의미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정치에서 포퓰리즘이란 표현은 더욱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최근 한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복지 포퓰리즘 등이 단적인 예다. 아이러니하게도 포퓰리즘은 진보가 보수 특히 극우의 정책을 비난할 때 주로 사용해왔는데, 최근에는 보수가 진보의 정책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포퓰리즘의 정체는 여전히 모호한 만큼 위험해 보인다.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구럼비 바위 발파·‘해품달’ 파업에 네티즌 와글와글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구럼비 바위 발파·‘해품달’ 파업에 네티즌 와글와글

    3월 둘째주 네티즌들의 관심은 정치, 사회적 이슈에 쏠렸다.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제주 구럼비 바위 발파 관련 뉴스였다. 지난 7일 제주 해군기지 건립 공사가 시작된 가운데, 제주 구럼비 해안 바위 발파를 놓고 연예인들까지 가세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가수 신효범과 이효리, 소설가 이외수, 배우 김규리 등이 트위터에 강정마을을 지키자는 글을 올리며 누리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2위는 인기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PD 파업이 차지했다. ‘해품달’의 김도훈 PD는 6일 총파업 참여를 선언했고, 반나절 만에 촬영장에 복귀했다. 김 PD의 복귀는 출연 배우들의 스케줄 때문으로 13일까지는 ‘해품달’ 촬영을 마무리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2차 공천 소식은 3위를 차지했다. 지난 5일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는 4·11 총선 후보로 홍사덕 의원, 손수조씨 등 81명의 2차 공천자 명단을 발표했다. 강용석 새누리당 의원이 ‘고대녀’로 불리는 김지윤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후보를 고소한 사건은 4위에 올랐다. 김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올린 인증샷에서 ‘해적기지’라는 표현을 써 논란이 됐다. 강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해군이 해적이면 육군은 산적인가.’라고 비판하며 8일 서울중앙지검에 김씨를 모욕죄 혐의로 고소했다. 구로다의 위안부 망언 소식은 5위를 차지했다. 한국에 대한 망언을 일삼아 온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은 일본의 보수우익잡지 ‘윌’ 4월호에 ‘한국, 북조선의 무법’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다루면서 ‘위안부를 국민대표로 삼는 나라’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실어 비난을 받고 있다. 애플이 새로 공개한 아이패드는 6위에 올랐다. 애플은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표회를 열고 아이패드2 보다 화면 해상도를 대폭 개선한 새 아이패드를 공개했다. 하지만 오는 16일 발매되는 1차 출시국에서 한국은 제외됐다. 야권연대 타결 소식은 7위를 차지했다. 그룹 JYJ ‘사생팬’ 폭행 소식은 8위, ‘브라질 월드컵’ 한국 최종 예선 톱시드 배정 관련 뉴스는 9위에 올랐다. 국제축구연맹이 발표한 3월 FIFA 랭킹에서 한국은 총점 751점으로 4계단 오른 30위를 기록해 아시아축구연맹 소속 국가 1위 호주와 함께 최종예선 톱시드에 배정됐다. 이대호의 첫 홈런은 10위를 차지했다.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 이대호는 8일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연습경기에서 4번타자로 선발 출전해 1회말 첫 타석에서 일본에서의 첫 홈런포를 터뜨렸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서울광장] 진보도 탈북자 ‘불편한 진실’ 직시해야/구본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진보도 탈북자 ‘불편한 진실’ 직시해야/구본영 논설위원

    소설 ‘생의 한가운데’를 쓴 루이제 린저는 독일의 유명 여류 작가였다. 나중에 나치 전력이 밝혀져 스타일을 구기긴 했지만. 1970년대 전후 한국에서도 꽤 사랑받았다. 적어도 북한에 관한 그의 무비판적 찬양이 ‘허무 개그’로 판가름되기 전까지는. 린저는 10여 차례나 평양을 찾아 김일성 주석과 교분을 텄다. 김일성이 생일상을 차려준 적도 있었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또 하나의 조국’을 썼다. 1980년대 국내 운동권의 ‘필수 교재’였던 북한 기행문이다. 그는 이 책에서 “북한엔 감옥이 없다.”, “북한의 노동자·농민은 과로하지 않는다.”는 등 북한 당국의 선전을 앵무새처럼 전했다. 하지만 “김일성을 만나고 인류의 미래를 믿게 됐다.”는 식의 그의 어처구니없는 안목은 유럽에서도 머잖아 웃음거리가 된다. 김일성 사후 헐벗은 북한의 실상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다. 린저가 지상낙원이기를 바랐던 북한을 이탈한 탈북자 인권 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기아와 폭정을 피해 북한체제를 벗어난 이들을 중국이 강제 북송하면서다. 차인표씨 등 연예인들이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북송 중지 캠페인에 불을 붙였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11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다 병원으로 실려갔다. “안보엔 보수, 경제엔 진보”라던 ‘대권 잠룡’ 안철수 교수도 지난 주말 북송 반대 집회를 찾아 탈북자들과 공감했다. 그러나 야권은 탈북자 문제의 이슈화에 극히 소극적인 분위기다. 특히 진보적 성향일수록 문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꺼리는 기미다. 민주통합당도, 통합진보당도 묵묵부답이다. 우리 야권이 이러니 정부의 대중 외교인들 무슨 힘을 받겠는가. 정부는 얼마 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의 반인권성을 거론했다. 하지만 중국은 “탈북자 문제의 국제화·난민화를 반대한다.”며 오불관언이다. 우리 내부가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판에 무슨 수로 주요 2개국(G2)의 반열에 오른 중국을 설득해 내겠는가. 북한 세습체제의 3대 상속자 김정은은 탈북 기도자를 현장에서 사살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두만강·압록강을 건너다 총에 맞아 죽는 마당에 용케 탈북한 주민을 다시 북송한다고? 탈북자를 사지(死地)로 내모는 강제 북송을 막는 일은 차인표씨의 표현처럼 “인간의 도리”일 뿐이다. 좌우 이념을 초월한, 인간 생존권이 걸린 사안이란 얘기다. 간혹 탈북자 문제에 입을 다물면서 “남북 관계를 감안해서….”라고 핑계를 대기도 한다. 하지만 비겁한 허위의식일 뿐이다. 치부를 덮어준다고 해서 북한이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는 보장은 없다. 외부에서 지원하든 비판하든 달라지지 않은 것은 세습체제를 지켜내는 일이 ‘김씨 조선’의 지상목표란 점이다. 그러기에 다수 보통 주민들이 배를 곯아도 핵게임을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탈북자들이 양산되고 있지 않은가. 린저도 김일성 체제의 그늘엔 눈 감고 양지만 바라보았지만,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주민의 삶은 날로 피폐해졌다. 그는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기간 북한에서 수백만명이 아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02년 그가 작고할 때까지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참혹한 진상에 대해 입을 닫았지만, 어디 북한주민의 인권이 개선되었던가. 보수·진보 어느 쪽이든 유·불리 기준에 따른 진영 논리에 갇혀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정권이 아닌, 북한주민을 돕는 일에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이제 진보 진영도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즉, 북한 인권이나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게 진보의 가치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누이와 딸들이 운 좋게 북·중 국경을 넘은 뒤 중국 내 성매매 조직에 팔려가거나, 강제 북송되는 비극 앞에 침묵하겠다고? 참진보라면 그럴 순 없다. 진보적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진실을 대면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결국엔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맞닥뜨릴 환멸을 막아준다.”고 했다. kby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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