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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명문화대학교 개교 59주년 기념식 개최

    계명문화대학교 개교 59주년 기념식 개최

    계명문화대는 18일 보건관 동산홀에서 개교 59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기념식은 박승호 총장, 김남석 학교법인 계명대학교 이사장, 정순모 목사, 김창옥 총동창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코로나19 방역수칙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해 간소하게 진행됐다. 이날 교직원 포상에서 △식품영양조리학부 이영순 명예교수가 ‘계명금장’ △아동보육과 손완호 교수, 뷰티코디네이션학부 이유종 교수가 ‘30년 근속상’ △패션학부 장경혜 교수, 공연음악학부 김정화 교수, 생활체육학부 김홍수 교수, 총무부 신기혁 부장, 국제교육행정팀 김동현 팀장, 교양·직업교육과정지원센터 김은영 선생이 ‘20년 근속상’을 각각 수여 받았다. 또 △교수학습지원팀(부서), 산학협력팀(부서), 대외협력팀 문정남 팀장(개인)이 ‘공로상’ △학생지원팀 김현영 계장, 진로취업지원팀 신혜령 선생이 ‘모범상’ △호텔항공외식관광학부 김태문 교수(취업지도분야), 소방환경안전과 김재현 교수(산학협력분야)가 ‘계명문화상’ △산업디자인과 박성배 교수(학술진흥분야), 경찰행정과 박영화(인재양성분야) 교수가 ‘교육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박 총장은 기념사에서 “최근 학령인구 급감으로 암울한 이야기들이 난무하지만 우리 구성원들이 집단지성을 활용하여 함께 노력한다면 이 위기를 이겨내고 직업교육 선도대학으로 우뚝 설 수 있다”며 “우리는 학생들이 성장하도록 교육할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만큼 이러한 어려운 시기일수록 정성을 다해 학생들을 지도하고 지원하는 한편 교육혁신에도 박차를 가하는 등 학생들의 성공적인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백석예술대, 가정의 달 행사 ‘아름다운 그대에게’ 개최

    백석예술대, 가정의 달 행사 ‘아름다운 그대에게’ 개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백석예술대학교(총장 윤미란)가 주최하고 백석예술대학교 37대 총학생회 주관으로 ‘아름다운 그대에게’ 행사가 지난 14일 오후 2시 백석예술대학교 하은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가정의 달에 사제 간의 정을 나누고 어버이의 은혜를 되돌아보며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를 전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12일은 성년의날 나눔행사로 백석꿈마당 누리동에서 열렸으며, 14일 백석예술대 하은홀에는 성년의날, 스승의날, 어버이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선보였다. 이날 행사는 온라인 라이브로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한규연, 금은라 학생의 사회로 열린 이날 행사는 1부 성년의날 2부 스승의날 3부 어버이날 순서로 진행됐다. 1부 성년의날 행사에는 학생지원처장 이승열 목사의 기도와 인사말이 있었으며, 성년의날 영상과 함께 성년을 맞이한 학생들의 소감을 묻는 학생들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스승의날 행사로 진행된 2부 순서에서는 이명수 교수(백석대 음악학부)가 초대손님으로 등장해 학생들과 문답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교수로서 자신의 꿈에 대해 나눈 이명규 교수는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나를 가장 선한 걸음으로 인도하셨음을 깨닫는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이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살릴 수 게 교육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은 코로나19로 온라인수업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지만 하루 빨리 학생들과 대면해서 수업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3부 순서 ‘어버이날 행사’는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학생들의 사연을 듣고,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엄마에게 쓰는 편지로 용지연 학생(교회실용학과 건반전공)은 “2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대학을 가겠다는 딸을 뒷바라지 해준 엄마, 그 덕분에 이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백석예술대학교의 합격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선물같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면서 “늦게 시작했지만, 이 안에서 가장 좋은 길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장소영 학생(유아교육과)은 “오랜 시간 가족들을 위해서 일해준 엄마에게 너무 고맙다”며 “늘 부족함 없이 채워진 엄마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잘 자랄 수 있었다. 엄마의 미래가 항상 웃는 날이 가득하도록 마음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진 순서에서는 장소영 학생의 엄마가 깜짝 영상편지로 등장해 참석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는 “아직도 어리고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잘 자라주어 너무 고맙다”면서 “엄마가 아무 걱정없이 회사에 다닐 수 있게 도와주었기에 엄마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축하공연으로 트롯가수 남승민 학생(음악학부)와 가수 판타스틱듀오 김윤희 학생(음악학부)이 나섰으며, 어버이에 대한 마음을 담은 노래를 통해 참석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또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을 위한 선물 퀴즈와 추첨을 실시함으로써 풍성한 나눔의 축제를 마련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한 학생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 스승에 대한 감사와 가정의 소중함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해준 백석대에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잠녀들의 숨비소리, 가치 잃은 물질소리, 잊혀지는 삶의 소리

    잠녀들의 숨비소리, 가치 잃은 물질소리, 잊혀지는 삶의 소리

    ‘호오이~~~ 호오이~~~’ 제주 바다에는 세계 어느 바다에서도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 해녀들이 물질하면서 내는 숨비소리다.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잠수한 후 물 위로 나와 숨을 고를 때 내는 소리로 마치 휘파람을 부는 것처럼 들린다. 1~2분가량 잠수하며 생긴 몸속의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과정에서 ‘호오이 호오이’ 하는 소리를 낸다. 해녀 고령화 추세 등으로 해녀가 해마다 줄어들어 제주 바다에서 숨비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해녀는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의한 호흡조절로 해산물을 채취하는 ‘물질’을 직업으로 하는 여성을 말한다, 잠녀라고도 부른다. 제주도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물질을 하는 현직 해녀 수는 3613명이다. 1970년만 해도 해녀 수가 1만 4000명에 달했다. 1980년대 7800명으로 줄어들었고 2017년에는 4000명 선이 무너졌다.해녀도 고령화를 피해 갈 수 없다. 현직 해녀 가운데 60~80세가 1602명으로 59%를 차지한다. 80세 이상 고령 해녀도 530명에 이른다. 50~59세 309명, 40~49세 54명, 30~39세 23명, 30세 미만 4명 등이다. 해녀의 고령화 추세로 향후 10년 후에는 해녀 수가 절반으로, 20년 후에는 80%가 감소해 명맥만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해녀는 수심 10m까지 잠수하며 물질 능력에 따라 하군, 중군, 상군으로 나뉜다. 주요 어획 품종은 소라, 성게, 우뭇가사리, 해삼, 톳 등이다. 제주도 조사(2014년)에 따르면 해녀의 연간 평균 수입은 760만원 정도. 작업 수준에 따라 상군은 평균 1300만원, 중군 720만원, 하군 290만원을 벌어들인다. 최고 소득을 올린 상군 해녀는 연간 1710만원을 벌었다. 보통 한 달에 10~15일 조업하고 소라 산란기인 매년 6~8월에는 물질을 하지 않는다. 제주 감귤 수확철에는 조업을 거의 하지 않는 반농·반어 형태의 해녀도 많다. 제주 해녀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올라간다. 삼국사기와 고구려본기에 섭라(제주)에서 야명주(진주)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 이전부터 해녀들이 물질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조선시대(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작한 ‘탐라순력도’에는 지금의 용두암 부근에서 물질하고 있는 잠녀의 모습이 나온다.제주 해녀는 19세기 말부터 제주를 떠나 경상도,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등 한반도는 물론 일본 등 해외로 바깥물질을 나갔다. 이를 출향 해녀라 부른다. 제주해녀박물관에 따르면 1937년 기준 경상·전라·함경도 등에 2801명, 일본의 도쿄·쓰시마·시즈오카 등에 1601명의 제주 해녀가 바깥물질을 떠났다. 바깥물질을 나간 제주 해녀들이 출향 지역에 정착해 물질을 전수하면서 지난해 말 기준 부산 648명, 울산 1287명, 경남 1277명의 해녀(해남)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해녀는 2016년 12월 1일 ‘제주해녀문화’(Culture of Jeju Haenyeo)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제주해녀문화’가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점,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점,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해 전승된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 유네스코 등재로 제주 해녀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숙제를 떠안았다. 후대로 전승되지 못하면 언젠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다. 제주에서 해녀가 되려면 해녀인 어머니로부터 물질을 배워 대를 잇거나 해녀학교를 수료해야 한다. 해녀 양성을 위해 한수풀 해녀학교(2008년), 법환해녀학교(2015년)가 운영 중이지만 수료생 800여명 가운데 해녀가 된 사람은 50여명에 불과하다. 이는 직업인으로서 해녀가 되기 위한 진입장벽이 높은 탓이다. 제주 지역에는 102곳의 마을 어촌계가 있으며 어촌계가 마을 주변 어장에 대한 입어권을 독점한다. 해녀가 되기 위해서는 마을 어촌계에 가입하고 해녀회의 회원이 돼야 한다. 일부 지역 어촌계는 해상 풍력발전과 해안가 주변의 각종 개발 사업에 따른 보상비 등을 적립하고 있다. 또 해녀 식당과 공동 부동산 등 자산을 축적하고 있어 여기서 나온 수익을 회원들이 공동 분배한다. 신규 해녀가 들어오면 이익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회원을 늘리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해녀 가입 절차도 까다롭다. 수협의 이사회 승인과 마을 어촌계 총회 등을 거쳐야만 신규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일부 어촌계에서는 가입비 600만원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해녀 가입자 수는 2017년 39명, 2018년 42명, 2019명 51명, 2020년 29명에 그쳤다. 신규 해녀 양성을 위해 해녀 경영이양 제도가 도입됐지만 정작 해녀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경영이양 직접지불제도는 만 55세 이하의 어업인에게 어촌계원 자격을 넘기는 만 65세 이상~75세 미만 해녀에게 직불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어촌계 1인당 평균 결산소득이 200만원 이하인 경우 12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200만원을 초과하면 결산소득의 60% 범위에서 연간 1440만원을 최대 10년간 지원받게 된다. 고령의 해녀는 경영이양 직불금을 받아 소득 안정을, 젊은 후계 해녀는 어촌으로의 진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 ‘어촌계의 구역에 거주하며 지구별 수협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어야 한다’는 어촌계 가입 요건을 해당 구역의 수협 조합원이 아니어도 1년 이내 조합원 가입을 조건으로 어촌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완화하는 등 해녀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추었다.하지만 해녀는 60~70대가 현역에 해당돼 조업 포기가 쉽지 않은 데다 자녀로의 이양도 금지돼 있어 쉽사리 어촌계 자격을 타인에게 넘겨주지 않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 해녀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행정, 수협, 어촌계, 해녀 간 제주 해녀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며 “새로운 해녀의 진입을 허용하는 어촌계에 대해서는 어촌계 가입금 일부 지원 및 경영평가 시 가점을 부여하는 등 해녀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지원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트럼프의 ‘영웅 정원’ 백지화… 바이든 ‘反트럼프’ 가속화

    트럼프의 ‘영웅 정원’ 백지화… 바이든 ‘反트럼프’ 가속화

    흑인시위 동상 훼손에 트럼프 영웅정원 구상바이든 동상 훼손자 처벌 조항과 함께 폐기이민자 건강보험 가입 시키는 조항도 백지화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국립 영웅 정원’ 구상을 폐기했다. 취임 직후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세계보건기구(WHO) 복귀·이민법 개혁 등 트럼프의 기조를 다수 바꿨던 바이든호는 중국 때리기·우주군·아브라함 협정 등을 계승하면서 트럼프 지우기에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트럼프와 결별하겠다는 의지를 단호하게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USA투데이는 15일(현지시간) 바이든이 국립 영웅 정원 구상을 포함해 트럼프가 인종차별 시위에 반대해 퇴임 직전에 내렸던 행정 명령들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7월 3일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흑인시위대가 “미국의 국가유산, 동상, 상징, 기억들을 모두 무너뜨리고 있다”며 국립 영웅 정원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조지 워싱턴 전 대통령, 복음주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가수 휘트니 휴스턴, 농구선수 코비 브라이언트 등의 동상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흑인시위 중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 등 흑인 노예를 소유했거나 노예제를 옹호한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을 훼손하는 일이 잇따르자 이런 발표를 했다. 이어 그는 올해 1월 18일 공원 조성을 위한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독립선언 250주년인 2026년 7월 4일 대중에게 공개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바이든의 이번 조치로 무산됐다. 바이든은 흑인시위 당시 조각상을 훼손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처벌하라는 트럼프의 행정 명령도 철회했다. 또 합법적인 이민자들이 입국 후 30일 내에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기존의 행정명령도 취소했다. 많은 이민자들이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이라는 점에서 트럼프가 사실상 이민을 막기 위해 내린 조치로 본 것이다. 바이든은 취임 직후부터 50여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트럼프 지우기’에 나섰지만 대중 압박 기조, 트럼프가 역점 과제로 창설한 우주군, 트럼프의 중동 외교 성과인 ‘아브라함 협정’ 등은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함께 ‘사회통합’을 기치로 내걸자 바이든이 트럼프 지우기에 주춤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바이든이 흑인시위에 대한 탄압 노선과 단호한 결별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폴리티코가 전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부고] 김중석씨 장인상, 홍순철씨 모친상, 이현우씨 별세

    ■ 김중석(강원도민일보 사장)씨 장인상 △ 김삼성씨 별세, 김중석(강원도민일보사 사장)씨 장인상, 13일 오후, 대구시 본리동 허병원 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장지 영천호국원. 010-6720-2012, 033-260-9000 ■ 홍순철(코난테크놀로지 이사)씨 모친상 △ 한정자씨 별세, 홍순철(코난테크놀로지 경영지원실 이사)·홍미선씨 모친상, 권수정씨 시모상, 조형근씨 장모상, 13일 오전 2시18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11호실, 발인 15일 오전 6시20분. 02-3010-2000 ■ 이현우(국민일보 산업부 기자)씨 별세 △ 이현우(국민일보 산업부 기자)씨 별세, 정수진씨 남편상, 이창엽(그빛교회 담임목사)·이선자씨 아들상, 이현영씨 오빠상, 12일 오후 1시43분,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15일 오전 9시, 장지 동화경모공원. 02-6986-4451
  • [부고]

    ●이현우(국민일보 기자)씨 별세 이창엽(그빛교회 담임목사)씨 자녀상 12일 이대서울병원, 발인 15일 오전 9시 (02)6986-4440
  • “집단성관계 사실 아냐” 이재록 재판서 위증한 여신도들 집유

    “집단성관계 사실 아냐” 이재록 재판서 위증한 여신도들 집유

    신도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복역 중인 만민중앙성결교회(이하 만민교회) 이재록 목사의 재판에서 거짓증언을 한 혐의로 기소된 여신도들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이원중 부장판사는 13일 위증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옛 만민교회 신도 3명에게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경험하고 알고 있는 사건의 주요한 사실관계에 대해 객관적 사실과 기억에 반하는 허위 증언을 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체적 진실 발견과 피해자 권리 보호라는 재판 기능의 건전성을 해하고 이를 방해해 죄질이 좋지 않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상습 준강간 혐의로 징역 16년이 확정된 이 목사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 목사가 교회 젊은 여성들과 술과 음식을 먹고 집단 성관계를 한 사실이 없다”며 거짓증언을 한 혐의를 받는다. 이 목사는 수년간 만민교회 여신도 9명을 40여차례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지난 2019년 대법원에서 징역 16년의 중형이 확정됐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법원 “전광훈 대표회장 선출했던 한기총 총회는 무효”

    법원 “전광훈 대표회장 선출했던 한기총 총회는 무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지난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대표회장으로 선출한 총회에 대해 법원이 무효 판단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부장 김지숙)는 13일 김모씨 등 한기총 임원 3명이 한기총을 상대로 제기한 총회 결의 무효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2020년 1월 30일 전광훈을 대표회장으로 선출한 것이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한기총은 지난해 1월 정기총회에서 전광훈씨를 대표회장으로 재선출했다. 전광훈씨는 당시 참석자 기립박수로 차기 회장에 선출되며 연임에 성공했다. 이에 김씨 등은 전광훈씨의 한기총 대표회장 직무를 정지시켜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지난해 5월 이를 인용했다. 재판부는 한기총이 총회 대의원인 명예회장들에 대해 총회 소집통지를 누락했고, 가처분을 제기한 김씨 등의 총회 입장을 막은 것이 위법하다고 봤다. 이후 전광훈씨는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재판을 받았고, 지난해 8월에는 대표회장 직에서 사퇴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부산한 비탈길 골목길 하늘길…테스형 경규형 맛있는 이바구

    부산한 비탈길 골목길 하늘길…테스형 경규형 맛있는 이바구

    서울신문은 13일부터 ‘이우석의 미시(微視)여행’을 3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국내 여행지를 매우 좁게 설정해 현미경처럼 샅샅이 훑어보자는 취지의 코너입니다. 연재를 담당할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은 ‘언어유희의 달인’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여행전문가입니다. 글 곳곳에 심어 놓은 저자 특유의 ‘유머 코드’에 즐겁고 놀라운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부산에 초량동이 있다. 부산역 바로 앞이다. 서울로 따지면 서울역 앞 청파동, 아니 산비탈로 올라서야 하니 후암동쯤 되겠다. 가파른 건 비슷하다. 생각해 보니 목포역 앞에도 유달산이 있다.(왜 역 앞엔 늘 산이 있을까.) 아무튼 초량에 올라가면 부산 역사를 볼 수 있다. 부산역 역사(驛舍)도 보인다. 지명에 산(山)자가 들어가는 부산의 속살이 초량이다. 목포가 항구라면, 부산은 산이다. 부산은 도시 곳곳이 바다에서 수직으로 치솟은 산들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부산 산복도로는 그 산(山)의 배(腹)를 가른다. 천국의 계단(stairway to heaven)이랄까. 고개를 들고 엉덩이는 빼고 하늘을 향한 계단을 딛고 하염없이 걸어야만 오를 수 있던 동네에 차로 오르내릴 하늘길이 생겨났다. 산복도로는 멀리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산을 휘휘 감으며 마을을 가르고 하늘과 땅을 나누고 있다. 약 반세기 전 생겨난 부산의 허리띠 산복도로, 그중에서도 초량의 이야기다. ●왜구 침입 잦던 목초지서 19세기말 개항도시 초량은 부산의 원도심이다. 근대도시 부산이란 곳이 생겨나면서 가장 먼저 발달한 마을이다. 지금이야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국제도시로 위용을 당당히 과시하고 있지만 부산은 확실히 조선시대까지는 변방이었다. ‘가마메’란 이름의 부산이 조선 성종 때 부산(釜山)이란 이름으로 문헌에 처음 등장했고 동래(동래, 해운대, 수영 등)와 동평(지금의 부산 도심), 기장현으로 나뉜, 그야말로 촌구석 취급을 당했다. ‘왜구’랬을까? 잦은 왜구의 침입 탓이었다. 16세기 동래도호부로서 경상좌수영과 왜관이 부산포에 설치된 다음에야 부산(사실은 동래)은 뭔가 그럴싸한 도시 기능을 하게 됐다. 조선 후기 들어 조정은 사중면 초량에 왜관과 객사를 세웠고 이곳에서 왜와 외교를 했다. 초량은 그저 교통이 좋은 목초지대일 뿐이었지만 19세기 말 갑자기 주목받았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개항장에 속했던 까닭이다. 일제(메이드 인 재팬이 아니다)와 청(효녀 아니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초량은 국제도시의 이미지를 줄곧 지켜오고 있다. 팽창을 노렸던 일제는 철도와 선박편으로 한반도, 대륙과 연결하기 위해 부산을 주목했고 교통 주거 인프라 등 도시개발을 서둘렀다. 간척을 통해 넓어진 초량 일대는 항만(북항)과 철도를 연결하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가 됐다. 청 역시 중앙부두와 철도 건설로 생겨난 일자리를 찾아온 자국민 ‘쿨리’(苦力)를 위해 청관을 세웠다. 지금도 초량 부산역 앞에는 차이나타운이 남아 과거 조계지 시절의 근대사를 엿볼 수 있다. 처음엔 ‘남의 문화유산답사기’였지만 지금은 우리 역사가 됐다. 한국전쟁은 부산에 인구가 대거 유입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10만여명에 불과하던 부산에 피란민이 몰려들며 무려 140만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 임시수도가 되니 당장 거주지가 태부족이었다. 산기슭밖에 없었다. 너도 나도 산에 올라가 판잣집을 지었다. 물론 초량 뒷산에도 올라갔다. 하늘까지 층층 이어진 달동네가 생겨나게 된 사건이다.●백제병원·남선창고… 사람·돈 돌던 이바구길 높이 올라가면 그 역사가 자세히 보일까 싶어 초량을 올랐다. 해발 0m 근처인 부산항, 부산역에서부터 400m 남짓한 구봉산으로 오르는 길. 그 옆이 초량(草粱)이다. 부산역에서 길을 건너면 ‘초량 이바구길’이 시작된다. 부산시와 동구청이 부산의 옛 ‘이바구’(이야기의 사투리)를 들으며 시티투어를 하는 관광 코스로 지정했다. 재미나고 놀라운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다. 지금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득실한 해운대와 비교하자면 낡은 원도심 마을이겠지만 애초 초량은 사람도 돈도 돌던 곳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함흥과 원산 바다에서 내려온 배가 초량(그때는 이 일대가 바다였다) 앞에 대고 명태며 고등어를 쏟아냈다. 그래서 이곳에 있던 수산물 창고를 북선(北船) 창고라 불렀다. 선창 일거리만 해도 넘쳐났다. 전국에서 생선 장수들이 몰려들고 청요릿집엔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전쟁 후 북선 창고는 남선 창고로 이름이 바뀌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최대 수산물 유통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이 상륙하면서 ‘빠’니 ‘비어-홀’이라고 부르는 술집들이 가득한 ‘텍사스촌’이 초량에 생겨났다. 말하자면 서울 이태원 격이다. 이곳을 통해 나온 달러와 군수물자가 부산 국제시장은 물론 전국을 돌았다.‘이바구길’은 초량 외국인 골목에서부터 출발한다. 차이나타운 아래로 러시아 키릴문자와 필리핀 간판이 가득한 유흥가를 그냥 지나치려고(정말이다) 했지만 이곳에 ‘이바구’가 숨어 있다. 1927년 최용해가 지은 첫 근대식 개인종합병원 구 백제병원(국가등록문화재 제645호)이 초량 외국인 거리에 있다. 김해 출신인 최용해는 일본에서 의대를 나와 일본인 아내와 함께 부산으로 건너왔다. 동양척식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당시 부산에서 최고 높은 5층 벽돌건물을 짓고 백제병원(그런데 왜 신라병원이 아닐까?)을 열었다. 처음엔 병원이 잘됐지만 돌연 사건이 터졌다. 관리들이 데려온 행려병자 시체를 병원 4층에 보관했던 것이 들통났다. ‘돈 없는 환자가 가서 죽으면 시체를 병원에 두고 표본으로 쓴다’는 소문이 돌았다. 겁을 먹은 환자들이 외면하며 급격히 상황이 어려워졌다. 결국 최용해는 일본으로 야반도주했다. 이후 백제병원은 대형 청요릿집과 예식장 등으로 바뀌었지만 모두 사라졌다. 그나마 여지껏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현재는 1층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건물은 일부 허물어진 역사의 잔흔 그대로이지만 그 안을 채우는 커피향만큼은 세련되고 파릇하다. 부산시는 백제병원을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던 남선 창고는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창고를 가득 채웠던 명태처럼 온데간데없지만 상업과 물류의 지력(地歷)만큼은 여전하다. 우연인지 그 자리엔 현재 할인마트가 생겼는데 옛 창고의 담벼락 일부만 남았다. 1900년대 생겨난 국내 최초의 근대 물류 창고였던 남선창고는 노르웨이 베르겐의 ‘브뤼겐’(한자동맹 중심지)처럼 당시로선 엄청난 규모의 물류조합을 운영하며 명성을 떨쳤다. 전국에 명태를 공급하던 곳이지만 직접 명태를 서울로 공급하는 경원선이 개통되고, 초량 앞바다가 매립된 후 해운 물류 중심이 부산항으로 옮겨가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누가 알았으랴, 바다가 사라질 줄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반대가 되니 좋은 뜻만은 아닌 듯하다. 여기까지만 평지다. 이제 산길을 올라야 한다. 초량초등학교 담벼락에는 옛 마을의 서정성을 노래한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다. 초량초교는 전통이 오랜 곳이다. ‘소크라테스의 아우’인 가수 나훈아와 코미디언 이경규, 음악감독 박칼린이 이 학교를 다녔다. 아, 나훈아의 ‘테스형’은 다른 곳을 나왔다. 아테네 아고라에서 토론을 통해 공부했다. 초량초교 동문 선후배인 이들은 각각 1947년생, 60년생, 67년생이니 시대는 달랐지만 초량의 변화 속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꿈과 재능을 키웠을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초량에는 ‘명태 눈깔을 빼먹으면 노래를 잘한다’는 말이 전해진다. 남선 창고가 있던 곳이니 예능인을 많이 배출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노래를 잘 부르는 미래의 가수를 위해 누군가는 눈깔이 없는 명태를 먹었다.●168계단 줄기 삼아 작은 골목 가지처럼 연결 길가에는 1893년 지어진 초량교회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신사 참배 반대를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주기철 목사가 있었던 교회로 개신교에선 뜻깊은 장소로 알려졌다.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로 무려 130년 가까이 됐다. 초량은 얼마나 신식 문물이 빨리 들어온 곳이었나. 길은 가파르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이따금씩 부는 바닷바람이 땀을 식혀 준다. 제주 올레길처럼 이바구길에는 곳곳에 쉼터가 있다. 쉼터 역시 옛 분위기가 오롯이 남아 있다. 딱 추억 속 ‘점빵’ 풍경이다. ‘이바구 정거장’에선 국수나 음료를 팔고 ‘168 도시락국’에선 시락국밥과 추억의 도시락을 판다. 쉬어 가며 감성도 충전할 수 있다. 168이란 숫자의 의미는 가게에서 나오면 바로 알 수 있다. 하늘까지 뻗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높은 계단길이 쉼터 앞에 펼쳐진다. 고개를 끄덕여야 할 만큼 눈에 꽉 들어찬다. 우물가부터 산복도로까지 이어진 계단이 아찔하다. 168개의 계단이다. 페루 마추픽추의 계단과 닮았다.계단을 큰 줄기 삼아 양옆으로 작은 골목이 가지처럼 이어진다. 초량사람들이 물을 긷기 위해 오르내리던 168계단은 초량 마을을 이어 주는 동맥이며 소통의 통로다. 지금은 모노레일이 생겨나 ‘도가니’에게 미안하지 않다. 기계 레일 탓에 정취는 덜하지만 인정은 여전하다. 이곳에서 만나는 이웃들은 어김없이 인사를 나눈다. 관광객들도 인사를 하지 않으면 어색할 만큼 모노레일 캐빈 속 공간은 따스하다. 소통이란 이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중간에 내리면 168빵카페가 있다. 고소한 빵과 커피 향에 이끌려 저절로 내리게 된다. 일명 ‘홍신애빵집’이라 불리는 곳이다. 요리연구가 홍신애씨가 차렸다. 홍씨는 초량 여행을 많이 다닌 듯하다. 테라스에 의자를 놓고 갓 구워 낸 빵 조각을 씹는 그 순간이 초량 이바구길 여행의 딱 중간쯤 된다. 영락없는 전망 휴게소 역할이다. 옆길로 새면 김민부 전망대가 나온다. 고교 1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천재 시인 김민부를 기린 이름이다. 그는 이 집에 살았다. 전망대는 실로 근사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푸른빛을 띠는 바다를 두고 아래에 다닥다닥 이어진 작은 집들의 지붕을 통해 ‘부싼 싸람’의 진면목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는 지금 보이는 저 바다를 그리며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라고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했을 것이다.●블록 쌓아 올리듯… 만화같은 산동네 지붕들 옥상마다 놓인 파란색 물탱크, 허공을 가르는 목욕탕 기둥들 사이로 하늘을 향해 난 계단, 블록을 쌓아 올린 듯 차곡차곡 이어진 집들이 만화 같은 산동네 풍경을 이루고 있다. 우리 집 지붕이 남의 집 마당이 되고 또 우리 마당은 아랫집 지붕으로 이어진 길이 되는 반도체처럼 집약된 집 더미. 전란을 피해 내려와 산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 반세기가 지나니 말씨도 마음씨도 진짜 부산 사람이 되었다. 높이 오르니 부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보였다. 여기서 좀더 오르면 산복도로가 나온다. 수직적인 길로 이뤄진 산동네를 모두 수평으로 꿰는 넓은 신작로. 비행기처럼 높은 길을 달리는 버스는 뒤뚱뒤뚱거리며 부산의 허리를 연결한다. 산복도로 곳곳에 수려한 전망이 펼쳐진다.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경치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하다. 바다와 항구, 마을과 철도, 교량과 배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란 것은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 여기다 ‘유치환의 우체통’ 등 곳곳에 깃든 이야깃거리는 서정성과 낭만까지 곁들여 있다. “여봐요, 백신은 맞았나요?” 1년 후 나의 미래로 보내는 편지를 썼다. 과거 추억이 서린 풍경을 바라보며 현실 속 걱정을 함께 적었다. 세상을 내려다보며. 좀더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마음속 무엇이 현실에 투영돼 겹쳐 보인다. 산복도로에서 보는 세상은 초고층 마천루 호텔방에서 담는 ‘근사한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우체통 앞에선 상상의 나래가 활짝 펴진다. 늘 힘들게 오르내리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먼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을 어느 이름 모를 초량의 아이를 떠올려 본다. 그 아이는 어떤 감상을 마음속에 쌓아 가며 자랐을까. 부산에 대한 추억이란 것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무슨 영화 속 이야기일지라도 상관없다. 연인과, 가족과 함께 이곳 이바구길을 함께 걸으며 초량이 지켜온 반세기의 이야기들을 듣고 살며시 뭔가를 상상해 본다면? 그 포근한 이야기란 차가운 유리투성이 도시의 것보다는 썩 좋을 듯하다. 바다로 열린 청마의 우체통에선 많은 상상들이 미래로 전송되고 있다. 글 사진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초량 여행 체크리스트 뭘 먹지? 50년 부산 중심지 초량엔 먹거리가 많다. 부산에 사는 이도 부산을 오가는 이도 초량을 찾아 대선 소주잔을 기울여 온 세월이 켜켜이 쌓인 까닭이다. 산복도로에서 더 올라가면 360도 전망의 구봉산 초량공원, 길을 따라 내려오면 돼지불고기를 파는 기사식당 거리와 만난다. 일명 ‘불백거리’인데 값싸고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어 택시 기사뿐 아니라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찾는다. 좀더 내려오면 이름난 초량 돼지갈비 골목도 있다.은근히 잘하는 고깃집이 많은 곳도 부산이다. 그렇다. (서울 사람들이 생각하듯) 부산 사람은 아침에 회를 먹고 점심에 생선구이, 저녁에 곰장어 등 생선만 먹고 살진 않는다. “집이 부산이세요? 그럼 집에 배 있겠네요?” 식으로 사고하는 것에 대해 부산 시민들은 매우 어이없어 한다. 구석구석에는 돼지국밥집, 시락국밥집, 유명한 밀면집도 있다. 전국 민물 양식장에서 ‘부산 갈메기’들을 죄다 쓸어 왔는지 문전성시를 이루는 메기탕집도 있다.168빵카페=부산 동구 영초길 191번길 8-1. (010)9330-8544. 168도시락국=부산 동구 영초길 191. (051)714-2619 소문난불백=부산 동구 초량로 36. (051)464-0846 초량밀면=부산 동구 중앙대로 225. (051)462-1575. 은하갈비=부산 동구 초량중로 86 (051)467-4303. 우리돼지국밥=부산 동구 초량로 27-1번길 (051)468-5623. 초량메기탕=부산 동구 초량로 15. (051)464-3398. 어딜 가지? 초량은 범일동, 보수동, 중앙동 등과 이어진다. 영화 ‘아저씨’ 촬영지로 유명한 범일동 매축지 마을은 좌천역에서 나와 육교를 건너면 된다. 격렬하게 매운 떡볶이와 조방낙지로 유명한 곳도 범일동이다. ‘범죄와의 전쟁’ 촬영지인 중앙로는 부산역 쪽으로 건너면 나온다. 어쩐지 익숙하다 할 거다. 맞은편에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등장한 보수동 계단이 있다. 헌책방 거리와 자그마한 카페들이 있어 요모조모 둘러볼 것이 많다. 여행상품은? 반값 할인을 뜻하는 ‘반할부산’은 열차와 연계한 다양한 부산여행상품 ‘진짜부산트레킹’을 판매한다. 원도심투어를 비롯해 흰여울마을과 달맞이고개, 황령산 등 다양한 지역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1899-2550. 초량 이바구길 투어는 부산여행특공대(busanbustour.co.kr)에서 당일(반나절) 버스투어 상품으로 판매한다. 일정은 오전 9시 50분 부산역 이바구버스 정류소 앞 집결 후 증산전망대, 유치환의 우체통, 초량 168계단&모노레일 탑승, 초량 1941, 초량전통시장(불백골목) 경유 낮 12시 30분 부산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2만원. (051)469-4113.
  • 악령 쫓는다며 아동학대·감금 의혹 교회 목사 고발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서울의 한 교회에서 입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상습적인 학대가 벌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민단체들은 해당 시설을 운영한 교회 목사와 시설 종사자들을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국제아동인권센터와 정치하는엄마들, 움직이는청소년센터 EXIT 등 단체들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서초구 생명의샘교회가 2019년 5월~올해 5월 만 2세 미만의 영유아 10여명을 위탁 양육하며 일상적으로 학대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단체들에 따르면 이 교회 목사와 시설 종사자들은 아이들이 울면 방에 혼자 가두거나 때렸고, 악령을 내쫓는다며 아이들의 머리, 등, 팔 등 온몸을 때려 가며 기도를 했다. 또 치료가 필요한 아동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하기도 했다. 이 시설은 또 아이들이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번 국에 밥을 말아서 먹였고, 분유를 먹일 때 아이들의 몸을 고정시켜 분유병을 빨도록 했다는 것이 단체들의 주장이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지난해 6월 한 영유아가 질식으로 사망해 미신고 시설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서초구, 서울시, 보건복지부 등이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서 “아동이 더는 미신고 아동복지시설에 가지 않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부부싸움 홧김에… 악령 쫓는 기도에… 또 아이들 멍 들었다

    부부싸움 홧김에… 악령 쫓는 기도에… 또 아이들 멍 들었다

    정인이 사건 등 최근 아동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날 경남 사천에서도 친부모가 돌도 안 된 아이를 폭행해 중태에 빠뜨리는 안타까운 사건이 또 발생했다. 경남경찰청은 부부싸움을 하다 홧김에 생후 7개월 된 갓난아기를 여러 차례 때려 중태에 빠뜨린 20대 엄마 A씨를 긴급체포해 조사를 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전 1시쯤 사천에 있는 아파트 자택에서 20대 남편 B씨와 부부싸움을 하다 화가 나자 생후 1년이 되지 않은 여아를 손으로 여러 차례 때린 것으로 조사됐다. A씨로 부터 맞은 아이가 의식이 혼미해지는 등 상태가 심상치 않자 이들 부부는 오전 8시쯤 아기를 진주시 지역 한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아기 상태를 본 병원 의료진이 아동학대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고 경남경찰청 아동학대특별수사팀이 병원으로 출동해 아기 피해 상태 등을 확인한 뒤 A씨를 체포됐다. 경찰과 의료진에 따르면 아기는 얼굴과 몸에 멍이 있었고 현재 의식이 혼미한 상태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가 “부부싸움을 하다 화가 나서 아기를 때렸다”는 취지로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A씨를 상대로 아이 학대 등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으며 말렸다고 하는 남편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어 보이지만 추가 조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제아동인권센터와 정치하는엄마들, 움직이는청소년센터 EXIT 등 시민단체들은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서초구 생명의샘교회가 2019년 5월~올해 5월 만 2세 미만의 영유아 10여명을 위탁 양육하며 일상적으로 학대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단체들에 따르면 이 교회 목사와 시설 종사자들은 아이들이 울면 방에 혼자 가두거나 때렸고, 악령을 내쫓는다며 아이들의 머리, 등, 팔 등 온몸을 때려 가며 기도를 했다. 또 치료가 필요한 아동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하기도 했다. 단체들은 이 시설 종사자 2명과 교회 목사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현재 생명의샘교회 홈페이지는 문을 닫은 상태다. 서울신문은 생명의샘교회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창원 강원식·서울 오세진 기자 kws@seoul.co.kr
  • “악령 내쫓는다며 영유아 학대”…시민단체, 교회 목사 등 고발

    “악령 내쫓는다며 영유아 학대”…시민단체, 교회 목사 등 고발

    불법으로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한 서울의 한 교회에서 입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상습적인 학대가 벌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민단체들은 해당 시설을 운영한 교회 목사와 시설 종사자들을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국제아동인권센터와 정치하는엄마들, 움직이는청소년센터 EXIT 등 단체들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서초구 생명의샘교회가 2019년 5월~올해 5월 만 2세 미만의 영유아 10여명을 위탁 양육하며 일상적으로 학대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단체들에 따르면 이 교회 목사와 시설 종사자들은 아이들이 울면 방에 혼자 가두거나 때렸고, 악령을 내쫓는다며 아이들의 머리, 등, 팔 등 온몸을 때려 가며 기도를 했다. 또 치료가 필요한 아동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하기도 했다. 사단법인 두루의 마헌얼 변호사는 “새벽부터 미열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열이 점점 높아졌지만 목사와 시설 종사자는 아이에게 계속 보리차만 먹였다”며 “그래도 열이 안 떨어지니까 그제야 해열제를 먹였지만 결국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밝혔다.이 시설은 또 아이들이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번 국에 밥을 말아서 먹였고, 분유를 먹일 때 아이들의 몸을 고정시켜 분유병을 빨도록 했다는 것이 단체들의 주장이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지난해 6월 한 영유아가 질식으로 사망해 경찰 조사가 진행돼 미신고 시설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서초구, 서울시, 보건복지부 등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서 “아동이 더는 미신고 아동복지시설에 가지 않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서초구청 관계자는 “아동학대 조사 업무가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됐을 때가 지난해 10월이라 지난해 6월 위 시설에서 아동이 사망한 사건을 다른 기관으로부터 통지받지 못했다”면서 “위 교회에서 운영한 아동복지시설이 미인가 시설이라는 사실도 지난 10일에서야 처음 인지했다. 인지하자마자 위 시설을 방문해 현장 조사를 했고 위 시설에 있던 아동들을 다른 시설로 옮기는 보호조치를 했다. 이후 이 시설을 폐쇄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단체들은 이 시설 종사자 2명과 교회 목사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현재 생명의샘교회 홈페이지는 문을 닫은 상태다. 서울신문은 생명의샘교회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악한 영’ 쫓아주겠다” 2살도 안 된 영유아 구타한 서초동 교회

    “‘악한 영’ 쫓아주겠다” 2살도 안 된 영유아 구타한 서초동 교회

    “목사 등 아이들에 상습 폭행·폭언 일삼아”“우는 아이 방치하고 독방에 감금 정서학대”“오후 6시부터 재운다며 난방텐트에 가둬”작년 6월 아이 질식사에도 처벌 안 받아피해아동 신변보호, 가해자 엄벌 촉구서울 서초구의 한 교회가 붋법으로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며 2살도 안 된 영유아들에게 ‘악한 영’을 쫓는다며 마구 때리고 독방에 감금하는 등 비상식적인 아동학대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교회는 아이들을 오후 6시부터 강제로 재우기 위해 난방텐트에 가뒀으며 목사 등은 상습적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단법인 두루, 정치하는엄마들 등 6개 단체는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서초구의 생명의샘 교회가 보육·복지 미자격자를 고용해 만 2세 미만 영유아 10여명을 보육해왔다”고 고발했다. 이들 단체는 생명의샘 교회가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도 없이 불법으로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했다고 주장했는데 의혹이 사실이라면 아동복지법과 사회복지사업법 위반에 해당한다. 이들은 “생명의샘 교회는 주거용 건물이 아닌 상업용 건물에서 영유아를 보육했으며 서모 목사와 종사자들이 아이들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면서 “우는 아이를 방치하거나 독방에 감금하는 등 정서 학대를 일삼고 ‘악한 영’을 쫓는다며 때리는 등 비이성적 학대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오후 6시부터 아이들을 강제로 재우기 위해 난방텐트, 침대 등에 가뒀다”면서 “장기간 저장이 용이한 백김치와 오이지 등으로만 반찬을 내는 등 영양이 부족한 음식을 장기간 제공했다”고 고발 사유를 설명했다. 해당 교회에서는 지난해 아이가 질식사까지 했으나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단체는 특히 “지난해 6월 교회가 돌보던 아이가 질식사하는 사건이 일어나 경찰이 조사했으나 책임자 처벌 및 미신고 불법시설에 대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서울시와 서초구에 생명의샘 피해 아동의 신변보호와 치료를, 경찰에는 가해자 엄벌을 각각 요구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하나님의 교회, 호남권에도 새 성전 설립하며 ‘이웃사랑’

    하나님의 교회, 호남권에도 새 성전 설립하며 ‘이웃사랑’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호남권에서도 새 성전을 설립하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한 행보를 이어간다고 11일 밝혔다. 하나님의 교회는 전국 400여 지역을 넘어 세계 175개국에 설립돼 있다. 서울과 6대 광역시 등 대도시와 중소도시는 물론 읍·면·리 단위까지 교회가 들어서면서 지역민들의 삶을 세세히 살피고 있다. 호남권에서도 전북 군산 새만금·전주 만성, 전남 나주 빛가람을 비롯해 고창, 무안, 여수 등지에서 새 소식을 알렸다. 지난 8일에는 전북 고창군 고창읍에서 교회 입주를 완료하고 예배를 시작했다. 지상 3층의 교회는 대지면적 1319㎡, 연면적 896.61㎡ 규모로 반듯하고 단정한 외관이다. 내부는 대예배실, 연령별 교육실, 접견실, 식당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님의 교회 관계자는 “고창은 전통문화와 생태 보존 가치가 세계 수준인 고장”이라며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이 되도록 지역 발전을 돕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고창군민들에게도 전해 희망찬 미래를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전남의 새 교회들도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무안군 무안읍 교회는 무안군청, 무안버스터미널과 가깝다. 여수시 신기동의 교회는 지하 2층과 지상 3층 구조로 연면적 4013.69㎡ 규모다. 오랜 기간 이웃과 함께해왔는데, 앞으로 전체 건물을 지역민의 화합과 소통의 장소로 활용할 예정이라 더 분주하다.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여수 시청에 하나님의 교회 건축을 승인하도록 확정 판결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광주시, 담양발 코로나19 확산 손해배상 청구 않는다

    20여 일 만에 광주 56명을 비롯해 70여 명의 확진자가 쏟아진 전남 담양 지인모임 발 집단 감염과 관련, 광주시가 한때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했으나 실행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박향 광주시 복지건강국장은 7일 브리핑을 통해 “시민보호 엄정처벌위원회가 이날 회의를 열어 ‘청구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내린 점을 존중해 주요 관련자 4명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감염병관리법상 방역수칙 위반은 인정돼 1인당 10만원의 과태료는 예정대로 부과될 예정이다. 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감염과 전파 경로, 확진자 본인이 감염된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었는지, 역학조사를 고의로 회피하거나 방해했는지 등을 종합검토한 끝에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광주시가 앞서 청구한 3건의 손해배상 청구 사례와도 사안이 다르다는 판단도 곁들여졌다. 시는 그동안 방문판매 행사에 참석해 코로나에 감염되고도 이를 숨긴 채 광주 가족과 식사를 해 연쇄 감염을 일으킨 송파 60번과 지난해 8월 광화문 집회에 광주지역 참석자들을 인솔한 목사(410번), 자가격리 중에 무단 이탈해 추가감염을 초래한 2100번 확진자에 대해 손배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담양사무소 당직자들이 다수 포함된 담양 지인모임 관련 코로라19 누적 확진자는 70여 명으로, 이 중 광주 확진자는 56명에 이르고 있다.시는 담양발 광주 확진자가 50명을 넘어선 데다 국회의원 수행비서를 비롯해 일부 당직자들이 식당 등지에서 7∼8명 지인모임을 갖는 등 방역수칙을 어긴 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해 왔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부고] 박제철씨 장모상, 신평식씨 장모상, 허주형씨 모친상

    ■ 박제철(뉴스1 전북취재본부 부국장)씨 장모상 △ 박금순씨 별세, 류한수·류환·류영민(서울시 시설관리공단 과장)·류공례·류경희·류경숙·류경미씨 모친상, 노승엽·박제철(뉴스1 전북취재본부 부국장)씨 장모상, 6일 오후 10시, 새고창장례식장 특2호실, 발인 9일 오전 7시, 장지 전북 고창군 사계 선영. 063-561-2904 ■ 신평식(한국교회총연합 사무총장)씨 장모상 △ 김소심 씨 별세, 신평식(한국교회총연합 사무총장·목사)씨 장모상, 6일 오전 11시 강동경희대학병원 장례식장 지하2층 21호, 발인 8일 오전 5시 30분, 장지 용인로뎀파크. 02-440-8800/010-3203-1723 ■ 허주형(대한수의사회 회장)씨 모친상 △ 최복인씨 별세, 허정숙·허남희·허주형씨(대한수의사회 회장)·허정미씨 모친상, 박두현·배철호씨 장모상, 6일 낮 12시, 일산장례식장 특7호실, 발인 8일 오전 6시. 031-908-8617
  •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황하의 물이 맑아지면 성인이 나타난다?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황하의 물이 맑아지면 성인이 나타난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폭포가 있다. 누런 강물이 도도히 흐르다가 강폭이 갑자기 좁아지면서 수십 미터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관을 보여 주는데, ‘후커우폭포’다. 황하는 티베트 고원지대에서 발원할 때에는 맑은 물이지만, 황토 고원지대를 흐르면서 침식작용으로 강물이 누렇게 변한다. 그런데 최근 후커우폭포의 물이 맑아졌다는 보도가 중국 뉴스에 자주 보인다. 후커우폭포의 물을 생수병에 담으니 가라앉은 흙이 절반이나 되는 것을 직접 보았던지라 맑은 물이 쏟아지는 후커우폭포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게다가 “황하의 물이 맑아지면 성인이 나타난다”(黃河淸 聖人生)는 말이 예부터 전해져 왔으니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일 만하다. 언론에서는 그것을 황토 고원지대의 녹화사업 덕분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역사를 통해 볼 때 황하의 물이 맑아지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상류에 가뭄이 들고 비가 내리지 않아 황토층이 깎여 내려오지 않을 때, 혹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얼었던 강물이 풀리면서 일시적으로 물이 맑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때론 지진 때문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황하청’은 일종의 자연현상인 셈인데, 통치자들은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맑아질 수 없는 누런 강물이 맑아지다니, 그것이야말로 상서로운 징조라고 하면서 통치자를 ‘성인’과 동일시했다. 중국 정부가 들어선 후 처음으로 추진된 거대 토목사업이 싼먼샤(三門峽)댐 건설이다. 싼먼샤는 황하가 북쪽에서 흘러 내려오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트는 곳에 자리한다. 1954년에 그곳에 댐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부총리는 “6년이면 댐이 완성될 것이며, 마침내 ‘황하청’의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저우언라이 총리가 주재한 회의에서 모두가 찬성 의사를 밝힐 때 유일하게 반대한 사람이 칭화대학의 황완리(黃萬里) 교수였다. 그는 “‘황하청’은 ‘공(功)’이 아니라 ‘죄’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황하의 침식작용을 무시한 댐 건설은 쌓인 황토를 가둘 것이고, 그것은 거대한 재앙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견해는 다수의 목소리에 묻혔고, 댐 건설은 진행됐다. 사실 싼먼샤는 흐르는 강 가운데 ‘세 개의 문’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신화 속의 치수 영웅 우(禹)가 강물을 다스릴 때 물길을 막는 방법이 아니라 트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곳에 와 보니 거대한 바위가 강 가운데 솟아 있어 물의 흐름을 막고 있었다. 그래서 우가 커다란 도끼를 휘둘러 그 바위를 쪼개 세 개의 문을 만들어 강물이 잘 흘러가도록 했다고 한다. 물길을 ‘터서’ 잘 흘러가도록 만든 우의 신화가 서려 있는 싼먼샤에 물을 ‘가두는’ 댐을 만들겠다고 한 것이니 결과는 뻔했다. 댐을 만든 지 1년 반 만에 15억톤의 진흙이 쌓이면서 물이 역류했다. 하지만 댐이 완공된 직후 언론은 댐 아래 맑은 물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여 주면서 ‘황하청’의 기억을 소환했다. 황하의 물이 맑아지면 출현한다는 ‘성인’이 과연 누구였을까. 이념의 시대에 그것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역대 왕조에서 그러했듯 20세기에도 황하의 맑은 물은 ‘성인’의 출현을 찬양하는 도구로 쓰였다. 황완리 교수는 계획안의 수정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고, 문화혁명 기간에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싼샤(三峽)댐 건설에도 반대했던 그는 200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2년 후 싼먼샤댐 인근에서는 5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재앙을 가져온 홍수가 일어났다. 대약진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댐의 완공은 새로운 중국의 위대함을 알리는 표지로 ‘황하청’은 ‘성인’의 상징이 될 수 있었다. 싼먼샤댐의 건설은 정치적 의도가 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하는지 잘 보여 준다. 최근 후커우폭포의 물이 맑아진 것은 보기 드문 현상이라 흥미롭고 놀랍다. 모처럼 나타난 ‘황하청’이 이제는 ‘성인’의 상징 따위가 아니라 그들 말대로 생태환경의 복원을 위해 노력해 온 결과물이기를 기대한다.
  • “자식들도 문둥이 낙인 찍힐까봐… 지금도 선뜻 나서기가 두려워요”

    “자식들도 문둥이 낙인 찍힐까봐… 지금도 선뜻 나서기가 두려워요”

    “내 자식들만큼은 ‘문둥이’ 낙인이 안 찍혔으면 해서… 지금도 선뜻 나서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을 상대로 지난달 19일 보상 청구에 나선 한센병력자(한센인)의 자녀인 김덕한(79·가명)씨는 지난달 30일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평생의 회한을 떠올렸다. “한센병 환자의 자식이라는 얘기를 지금껏 아무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다”는 김씨는 미감아(未感兒)다. 미감아는 한센인 부부에게서 태어나 건강한 아이를 말한다. 정부가 김씨 같은 한센병 환자의 자녀를 별도로 분류·관리하기 위해 만들어 낸 용어다. 일본은 1930년대 제정한 ‘나병예방법’에 근거해 자국뿐 아니라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서도 한센병 환자를 강제 격리했다. 전염을 막겠다는 명목이었다. 한센병은 유전 질환이 아닌데도 당시 유전병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이러한 정책의 밑바탕이 됐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이 모였던 전남 고흥군 소록도 자혜의원(현 국립소록도병원)과 여수 애양원 두 곳에서는 단종(강제불임) 수술, 낙태, 강제노역 등의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해방 전 소록도에 강제 수용됐던 인원은 약 6000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 우리 정부는 일제강점기 때 시작된 한센병 환자 강제 격리 조치를 1990년대까지 그대로 이어 갔다. 그로 인해 생긴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 때문에 한센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은 완치 후에도 정착촌에서 계속 격리된 삶을 택하거나, 평범한 사회 생활을 하더라도 자신의 정체를 꽁꽁 숨겨야 했다. 정착촌은 한센병이 완치된 뒤에도 후유증 등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한센병 환자 또는 그 가족이 모여 사는 곳이다. 김씨는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 청구를 할 수 있게 돼 다행이지만 우리가 겪어 온 온갖 고초에 비하면 미약하다”며 80년에 가까운 한 서린 삶을 털어놨다. ●마취 없이 강제 불임수술한 건 고문 -일본을 상대로 보상 청구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최근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정부가 취약 노동자(일용직) 등에게 2주 자가격리하는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더라. 그걸 보면서 ‘한센병 환자는 물론 그 가족들은 정부 정책으로 평생 격리 아닌 격리 상태로 살아왔는데, 그에 대한 일본과 우리 정부의 사죄와 보상은 제대로 이뤄졌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한센병 환자들은 강제 격리 조치 당시 다른 국민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제로 수용됐다. 환자들 한 명, 한 명이 이 사회로부터 격리당해 평생을 설움 속에 살았다. 환자들은 애양원 밖의 외출이 아예 불가능했다. ‘문둥병’이라는 이름을 붙여 환자들을 경원시한 사회로부터 보상을 받고 싶었다. ●부모님과 함께 산 애양원이 그나마 행복 -한센인 가족으로 살아온 삶은 어땠는지. “내가 누구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부모는 어디에 있는지 등 모든 걸 숨기며 살아왔다. 그렇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센병은 천형(天刑·하늘이 내리는 큰 벌)이라고 여겨져 왔다. 실제 내 호적은 만주 길림성으로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부모님이 만주로 강제 징용됐다가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태어난 뒤 병에 걸리자 즉시 전남 여수 애양원으로 강제 이송됐다. 외부와의 출입은 차단됐지만, 내게는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어 그나마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애양원은 국립인 소록도 자혜의원과 달리 미국인 선교사가 지은 수용시설이다. 소록도만큼은 아니겠지만 이곳 역시 인권침해가 있었다. 한센병 환자에 대한 단종수술이 처음 시작된 곳도 애양원이다. 마취제 하나 없이 그런 수술을 했다는 것 자체가 고문 아닌가. 애양원 교회에서의 세력다툼에 휘말린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소록도 형무소로 끌려가면서 두살 터울의 여동생과 나는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아버지는 다른 섬으로 도망쳤다가 죽도록 맞았다고 하더라. 열 살 때쯤의 일이다. 보육원을 나오며 여동생과도 헤어지고 또 다른 보육원과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헤어진 부모님의 생사는. “부모님은 내가 40대가 되어서야 다시 만났다. 한센병 완치 후 대부분 환자들이 그렇듯 정착촌으로 옮겨 사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녹내장으로 실명하신 데다 한센병 후유증으로 병세가 악화돼 돌아가셨다. 한센병은 피부가 곪고 신경이 마비되는 병이라 완치가 되더라도 사지의 감각을 잃는 등의 신경 손상 후유증이 남는다. 어머니는 후유증이 거의 없으셔서 꽤 모시고 살았다.” ●평생 받은 괄시와 배척 보상받고 싶어 -차별과 편견으로 가장 상처가 된 기억은. “한센병 환자의 가족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받게 되는 괄시와 배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당시에는 한센병에 대한 인식이 그랬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그래서 부모님이 왜 안 계신지를 학교 다니면서 단 한번도 입밖에 낸 적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학교를 갔다. 면담을 위해 부모님을 모셔 오라는 선생님 말을 듣지 않아 엄청나게 맞았던 것 같다. 6학년 때도 마찬가지로 끝까지 부모님이 왜 못 오시는지 입을 다무니까 부모가 사상범이냐고 의심하더라. 어린 마음에 큰 상처가 됐다. 결혼할 때도 배우자에게 부모에 대한 얘기를 아무것도 못했다. 어머니를 모시게 되면서 아내가 사실을 알게 됐다. 달라진 아내의 눈빛에 내심 서럽고 상처받았다. 지금도 자식들에게 내 얘기를 숨기는 건 한센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이다. 내 자식들마저 ‘문둥이 자식’이라는 소리를 차마 듣게 할 수는 없다. 한센병력자의 가족이란 걸 내 자식들 배우자와 그들의 집안이 알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 때문이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전후 세대는 전부 어렵게 살았지만 그중에서도 나 같은 사람들은 최악의 밑바닥 생활을 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책을 가까이 해 지금도 글을 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면서 저 하늘의 별을 따라 불가능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야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십시오. 진실은 휘어질 수 있을지언정 결코 부러지지 않습니다.’ 스페인 극작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데 라만차’에 나오는 구절인데 이걸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 안 그랬으면 진즉에 고꾸라졌을 것 같다. 보육원도 여러 곳을 옮겨 다녔고, 친척 집을 전전해 눈칫밥을 먹으며 살았다. 주변의 수군거림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그래도 꿈을 포기하지 않으니, 운 좋게 미국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신학교에 진학했다. 학비 전액을 대줬다. 신학교 재학 중에 중매로 결혼도 하고, 번듯한 직장에 입사하는 기적도 찾아왔다. 이후 목회자로 살면서 다양한 활동을 해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남았지만 내 성장 과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애양원에서 부모님 사진 보고도 말 못해 -시간이 흐른 뒤 애양원·소록도를 찾은 적이 있는지. “여러 차례 갔다. 애양원에서 선교 활동을 한 손양원 목사의 순교지라 다른 목사들과 함께 갔었다. 그곳에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이 걸려 있었지만 우리 부모님이란 말은 못했다. 한센병력자 가족이란 사실을 알면 ‘문둥이 자식’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니까 모른 척했다. 아버지와 내 이름만 대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이들도 남아 있었지만 꾹 참았다. 어릴 때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기도 했다. 애양원 시절 이웃집에 살았던 이들과는 다행히 아직 연락이 닿는다. -한국한센가족보상청구변호단이 2, 3차 피해자 추가 발굴을 한다는데. “전국 100여곳에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이 정착촌을 형성해 고립돼 살아간다. 한 곳에 1000명 이상이 모여 있는 곳도 있지만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으려면 1945년 해방 전 출생자여야 한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얘기다. 그동안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은 차별과 편견의 고통 속에 정체를 숨기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들 안에서 구심점이 생기기가 어려웠다. 나 역시 공론화를 시키고 싶었지만 내가 겪은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가될까 두려웠다. 국내에서는 2011년 첫 손해배상 소송이 시작된 지 5년여 만인 2017년에 정부로부터 강제로 단종·낙태 수술을 받은 한센병 환자 19명에 대한 정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뒤늦게나마 한센병 환자의 가족에 대한 피해 보상도 정부 차원에서 책임 있게 이뤄지기를 바란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모든 여성에겐 이야기가 있다”…당신이 몰랐던 ‘오스카 3관왕’ 프랜시스 맥도먼드 [김정화의 WWW]

    “모든 여성에겐 이야기가 있다”…당신이 몰랐던 ‘오스카 3관왕’ 프랜시스 맥도먼드 [김정화의 WWW]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은 감독상에 작품상, 여우주연상까지 휩쓴 영화 ‘노매드랜드’였다. 중국계 감독 클로이 자오와 함께 이를 만든 주역은 바로 프랜시스 맥도먼드. 맥도먼드는 도시의 쇠락으로 직장과 집, 남편까지 잃은 뒤 밴에 전재산을 싣고 떠돌이 생활하는 주인공 ‘펀’을 연기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97년 제69회 시상식에서 영화 ‘파고’로 처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맥도먼드는 2018년 제90회 시상식에서 영화 ‘쓰리 빌보드’로 두 번째 상을 받았고, 이번에 3번째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역대 아카데미에서 주연상을 3회 이상 받은 배우는 그와 캐서린 헵번(4회), 메릴 스트립(이하 3회), 잉그리드 버그만뿐이다. 40년 연기 인생…“사람과의 교류를 원하는 배우”1957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 맥도먼드의 출생 당시 이름은 신시아 앤 스미스였다. 그는 생후 18개월 무렵 목사 가정에 입양돼 프랜시스 맥도먼드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목사라는 특성상 자주 이사를 다녔고, 베서니 칼리지와 예일대 드라마스쿨을 거쳐 영화와 연극계로 발을 디뎠다. 코엔 형제의 작품 ‘분노의 저격자(블러드 심플)’로 처음 영화에 데뷔했고, 현 남편인 조엘 코엔의 ‘아리조나 유괴 사건’ 등에서 연기하며 이름을 알렸다. 헐리우드에서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1996년작 파고다. 임신 중인 경찰서장 마지 건더슨 역을 맡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다. 붉은 피가 솟구치는 설원의 범죄 현장에서 냉정하지만 따스한 경찰을 연기한 그는 단번에 오스카를 매료시켰다. 이후에도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쳤고, 2018년 ‘쓰리 빌보드’에서 강간, 살해로 딸을 잃은 엄마 밀드레드 헤이스로서 처절한 아픔을 연기하며 또 다시 세계를 매료시켰다.맥도먼드의 매력은 평범함이 주는 자연스러움에 있다. 그는 주름을 없애기 위해 보톡스를 맞지 않고, 볼이나 이마를 빵빵하게 만들어주는 필러도 쓰지 않는다. 레드카펫에서도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을 당당히 드러낸다. 배우지만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더 예쁘고, 더 어리고, 더 화려한 사람만이 주목받기 쉬운 헐리우드에서 이같은 행보는 기행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 안의 메시지는 보다 강하다. 그는 2017년 뉴욕타임스(NYT)와의 특집 인터뷰에서 “스스로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며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을 거부한다고 밝혔다.맥도먼드는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름을 물어본다. 그들을 만지고, 본다. 여기에 진짜 ‘교류’가 있다”며 “나는 사진을 찍히고 싶어 배우가 된 게 아니다. 사람과의 소통을 원해 배우가 됐다”고 설명했다. 1990년 켄 로치 감독과 함께 영화 ‘숨겨진 계략’을 제작한 영국 감독 레베카 오브라이언은 맥도먼드에 대해 “가장 덜 버릇없는(least spoiled) 미국 배우 중 한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맥도먼드가 얼마나 평범해질 수 있는가를 사랑한다”며 “그는 화장을 하지 않고, 그저 온전한 자신으로 연기한다”고 평했다. 오스카 주연상 3회…연극 토니·드라마 에미상까지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연기는 풍부하고 진정성 있는 극 중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가 맡은 역할은 모두 언뜻 평범하지만 결코 구태의연하지 않다. 매번 틀에 박힌 여성상을 뛰어넘는다. 파고의 마지가 그랬고, 쓰리 빌보드의 밀드레드가 그랬다. 가디언은 “출산을 앞둔 경찰관 마지, 딸의 죽음을 슬퍼하며 경찰에 저항하는 엄마 밀드레드의 모습은 20년의 세월을 넘어 맥도먼드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두 역할”이라며 “둘 다 살인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 자신감 있는 괴짜”라고 했다. 두 여성 모두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남성들에 비해 더 똑똑하고, 더 강하다. 이런 맥도먼드가 이번에 노매드랜드에서 완벽한 유목민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NYT가 “노매드랜드는 대중의 눈에 띄지 않으려는 맥도먼드의 노력의 절정이었다”고 한 것처럼 그는 단순히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지 않았다. 영화를 촬영하며 몇 개월간 실제 유랑자처럼 생활했고, 같이 지낸 유목민 대부분은 그가 배우라는 사실도 모를 정도였다. 극 중 주인공 이름 ‘펀’(Fern)조차 그의 이름 ‘프랜’(Fran)과 비슷하다.크고 작은 디테일 역시 맥도먼드의 실제 삶에서 가져왔다. 영화에서 펀은 접시 세트를 자랑하는데, 이는 맥도먼드의 아버지가 대학 졸업 선물로 사준 것이다. 펀의 여동생으로 나오는 사람은 맥도먼드의 가장 오랜 친구 중 한명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비평가 저스틴 창은 영화 리뷰에서 “맥도먼드는 영화에서 펀의 뒤로 사라지지 않는다. 펀에 의해 재발견되고, 펀 역시 맥도먼드에 의해 재발견된다”고 썼다. “여성들이여, 연대를” 헐리우드 성차별 소신 발언도헐리우드에 만연한 성차별을 깨뜨리기 위해 여성 배우로서의 목소리 역시 끊임없이 내고 있다. 그는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성들에게 모두 연대해달라고 연설하며 업계 관계자들이 더 많은 여성 인재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상식장의 모든 여성을 일으켜 세우고, “서로 둘러보라. 우리에겐 모두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 후 두 단어를 남겼다. ‘인클루전 라이더’(Inclusion Rider). ‘포용 특약’이라고도 하는 이 개념은 남성 일색의 헐리우드 캐릭터가 실제 사회의 성별, 성 정체성, 인종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됐다. 출연 계약 때 이 인클루전 라이더를 넣어 배우, 제작진에 여성과 성소수자, 흑인 등을 일종 비율로 포함시키자는 제안이다. 헐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오랜 성폭행 등에서 보듯, 업계의 남성중심적 관점을 깨기 위해선 더 많은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연기 인생의 초반에 큰 성과를 얻고 이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배우들도 있는 반면, 맥도먼드의 삶은 계속해서 성숙하고 발전한다. 그는 아카데미 외에도 브로드웨이 연극 ‘굿 피플’로 토니상을, HBO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로 에미상을 받았다. 영화, 연극, 드라마 등 세 분야에서 모두 상을 받은 ‘트리플 크라운 액팅’을 달성한 흔치 않은 배우다. 노매드랜드에서 그랬듯, 제작자로서의 역량도 보여주고 있다. 맥도먼드는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가 쓴 동명의 논픽션을 읽고 자오 감독에게 직접 연출을 제안한 장본인이다.60이 넘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맥도먼드가 연기를 이어가는 건 스타라는 화려함에만 갇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배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꾸준히 노력하며 어떤 이도 갖지 못한 자신만의 색으로 세상을 칠하고 있다. 이번 시상식에서 맥도먼드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 구절을 인용해 밝힌 소감은 이 목표 의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나는 할 말이 없다. 이 칼이 내 말을 대신할 테니까.(I have no words: my voice is in my sword) 우리는 그 칼이 우리 일이라는 걸 압니다. 나는 그 일을 좋아하죠. 그걸 알아줘서 감사합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누구 · Frances Louise McDormand1957 미국 일리노이주 깁슨 출생1975 펜실베이니아주 모네센 고등학교 졸업1979 웨스버지니아주 베서니 칼리지에서 예술 학사1982 예일대 드라마스쿨 예술 석사1984 영화 ‘블러드 심플’(Blood Simple)로 데뷔1987 영화 ‘아리조나 유괴사건’(Raising Arizona) 출연1988 영화 ‘미시시피 버닝’(Mississippi Burning) 출연1997 영화 ‘파고’(Fargo) 출연, 제69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2000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Almost Famous) 출연2011 연극 ‘굿 피플’(Good People) 출연, 토니상 수상2014 TV시리즈 ‘올리브 키터리지’(Olive Kitteridge) 제작·출연, 제67회 에미상 수상2018 영화 ‘쓰리 빌보드’(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출연, 제90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2021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제작·출연, 제93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영화 ‘노매드랜드’와 클로이 자오 감독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우리는 존재한다” 아시아 여성 최초 골든글로브 감독상 자오의 말 [김정화의 WWW]https://bit.ly/3nEbrxD
  • 의전용 총리와 책임총리 사이…42명이 걸어온 ‘영욕의 역사’

    의전용 총리와 책임총리 사이…42명이 걸어온 ‘영욕의 역사’

    1948년 제헌헌법 제정때 이승만 ‘몽니’대통령중심제 덧붙이며 총리도 선출제2공화국서 의원내각제 개헌 덕분에총리도 국가원수로서 위상 갖추게 돼 정일권 6년 최장수·김종필 46세 최연소서울 출신 8명… 이북 출신 12명 눈길일부 나치즘 추구·친일파 명단 오점도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여야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제47대 국무총리로서 문재인 정부와 임기 말까지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헌법만 놓고 보면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돼 있기 때문에 총리의 권한은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의전용 총리’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렸고 ‘책임총리’라는 말 자체가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의미로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일인지상 만인지하’라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조선시대 영의정보다 더 실권이 없는 게 국무총리다. 그런 속에서도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국무총리 78년 영욕을 되짚어 본다.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매우 독특한 자리다. 보통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국무총리가 없다. 그렇다고 의원내각제 국가처럼 국정 최고책임자도 아니다. 이유는 1948년 제헌헌법 제정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헌헌법 초안만 해도 의원내각제를 구상했기 때문에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질 권력을 원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막판에 몽니를 부리면서 초안에 대통령중심제 요소를 덧붙이는 식으로 절충이 됐다. 이 때문에 초대 대통령과 총리 모두 국회에서 선출했다. 파행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목사 출신인 이윤영 국무총리 후보자가 뒤집어써야 했다. 제헌의회 다수당이던 한국민주당은 김성수 당대표가 총리가 돼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이 전 대통령이 이를 거부했고, 이 후보자는 결국 총리 인준투표에서 부결돼 초대 총리 자리는 이범석 전 광복군 참모장 차지가 됐다. 이 전 후보자는 그 뒤로도 1950년 4월, 1952년 4월과 10월 총리 후보가 됐지만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총리 낙마 4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만 세우게 됐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권한이 막강했던 총리는 단연 장면 전 총리다. 제2공화국이 의원내각제 개헌을 한 덕분에 총리가 국가원수로서 위상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그 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사실상 연립정부를 이끌었던 김종필 전 총리, 노무현 정부 당시 ‘책임총리’를 표방했던 이해찬 전 총리 정도가 꼽힌다. 결국 총리 권한은 대통령이 힘을 실어 주는 정도에 비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김 후보자 이전까지 총리를 역임한 인물은 모두 42명이다. 4명(장면, 백두진, 김종필, 고건)은 총리를 두 번씩 맡았다. 정일권 전 총리는 1964년부터 1970년까지 6년이나 재직하며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정부별 총리 현황을 보면 전두환·노태우 정부 5명, 김영삼 정부 6명이었다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4명, 이명박·박근혜 정부 3명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역대 최고령 총리는 현승종·박태준 전 총리로 각 74세에 취임했다. 김정렬·한승수 전 총리는 73세였다. 반면 백두진·김종필 전 총리는 각 46세로 최연소였다. 정일권 전 총리가 47세로 뒤를 잇는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8명으로 가장 많다. 충남·전북·경남이 각 5명이다. 이북 출신이 12명이나 되는 것도 눈에 띈다. 특히 노태우 정부는 총리 5명 중 3명이 이북 출신이었다. 정일권 전 총리는 유일한 재외동포 출신 총리다. 그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청주 한(韓)씨는 37대 한명숙 전 총리부터 39대 한승수 전 총리까지 3번 연속 총리를 배출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역대 총리 중 여성은 한 전 총리가 유일하다. 역대 가장 단명한 총리는 이완구 전 총리로 2개월 만에 물러났다. 역대 총리 중에는 떠올리기 싫은 기록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초대 이범석 전 총리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군인이었지만 동시에 히틀러를 존경하고 나치즘을 추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일권·김정렬·장면 전 총리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파 4776명에 이름을 올렸다. 정일권 전 총리는 만주군에서 장교로 복무했고, 김정렬 전 총리는 조종수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 장면 전 총리는 종교계 총동원을 논의하는 시국간담회에 천주교 대표로 참석한 이력이 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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