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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교주,송여인에 10억 송금/검찰,84년 구좌 확인

    ◎「세모」 유입여부 집중수사/구원파 권 목사,LA에 체류중 【대전=박국평·손성진·최용규기자】 오대양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전지검 특수부(이재형부장검사)는 23일 숨진 「오대양교주」박순자씨가 송재화씨(45·여)에게 10억원대의 돈을 송금했던 사실을 밝혀내고 오대양사채가 송씨를 통해 주식회사 세모측에 전달됐을 가능성에 대해 집중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지난 81년 이후 박씨와 송씨의 은행구좌와 수표를 추적한 끝에 박씨가 지난 84년 송씨에게 1억3천만원을 송금하는 등 본명과 가명을 이용해 거액을 송금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집단자수한 김도현씨(38)가 자수하기전 자수문제를 논의한 이재문씨(39)및 집단변사사건의 목격자인 김영자(45·여)와 정화진씨(45·여)등 3명과 전 오대양이사 고재희씨(54·여)등 5명을 소환,오대양의 실체와 집단자수를 논의하는 현장에 세모의 고위간부나 송재화씨 등이 함께 있었는지 등에 대해 집중 추궁하고 있다. 고씨는 검찰조사에서 『박교주와는 고교동기로 오대양사건 전에 1억원을 투자,미양상사라는 업체를 운영한 것을 계기로 오대양이사직을 맡았으나 그 실체나 자금출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박교주의 동생인 박용택씨(38)와 전 오대양 자금담당상무 최의호씨(31)는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날 행방을 감춘 송재화씨가 경기도 이천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수사관을 급파했다.
  • 구원파 신도 7천명/새달 청주에서 집회

    【청주=한만교기자】 오대양사건 관련자 대부분이 기독교 복음침례회(속칭 구원파)신자로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구원파신자 7천여명이 참가하는 전국대회가 청주에서 열리게 돼 관심을 끌고 있다. 기독교 복음침례회는 오는 8월5일부터 12일까지 일주일동안 청주시 사직동 실내체육관에서 제23회 하기수양회를 갖기로 하고 총회장(정행덕)명의의 체육관 사용허가 신청서를 지난달 7일 청주시에 제출,19일만인 26일 허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기독교 복음침례회 전국대회에는 전국에서 구원파신자 7천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며 체육관 인근 여관등 숙박시설과 함께 대회장옆의 한벌국민학교 교실 45개 전체를 빌려 숙소로 사용할 계획이다. 한편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이끌고 있는 권신찬목사는 지난 3월 세계복음침례회 부활절 연합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독일을 경유해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하느님의 사업… 세모에 사채 끌어대/행방감춘 송재화씨는 누구

    ◎“여비서로 일한적 없다”… 유사창측,애써 부인/84년 「한스농장」 은거때 박순자씨와 교분 한때 주식회사 세모의 자금모집책이자 유병언사장의 비서로 일했던 것으로 소문나 있다.물론 세모쪽에선 이같은 사실을 전면부인하며 그녀의 역할에 대해 대수롭지않았던 것으로 말하고 있다. 송씨가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것은 지난 89년1월 전남도경에 사기혐의로 구속돼 「오대양」과의 관계가 주목받으면서부터라고 할수 있다. 대전에서 태어나 기독교 장로교회를 다니며 아버지가 경영하던 택시회사를 맡아 운영했던 송씨는 지난 78년 종교관계로 유사장을 만나 81년부터 여비서로 일하면서 세모와 관계를 맺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송씨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에 심취,교주로 알려진 권신찬목사의 사위인 유사장 및 그가 운영하는 세모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됐으며 「세모의 사업이 곧 하느님의 사업」이라는 식으로 사채를 끌어모아 세모측에 대주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지난 84년6월부터 85년9월사이 치과의사인 권목사의 둘째아들(40)과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양기리에 있는 「구원파」신도 소유의 한스농장에서 함께 지낸 것으로 돼있다. 이들 두 사람의 관계는 애매한 부분도 있으나 일부에서는 송씨가 혼인신고는 없었지만 사실상 권목사의 며느리 행세를 했던 것으로 말하고 있다.송씨는 이때 「오대양」의 박순자씨와도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배후관련」 지목된 「세모」 유병언사장

    ◎“「오대양」 진상규명위 만들고 싶다”/“박순자씨는 78년 「구원파」서 배척당해/송 여인을 자금비서로 고용한적 없다” 『오대양집단변사사건에 세모측이 관련돼 있다』는 민주당 박찬종의원의 주장이 발표되자 유병언사장을 비롯한 세모측 관계자들은 『말도 안되는 허위날조』라며 펄쩍 뛰고 있다. 세모측이 박의원을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즉각 고소하고 기독교복음침례회 신자들이 박의원 사무실에 몰려가 공개사과 등을 요구한 20일 하오 유사장을 직접 만나 해명을 들어봤다. ­박의원이 오대양사건의 배후세력에 세모와 「구원파」가 개입돼 있다는데. ▲내가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을 연극으로 꾸민 주범이라는 말이냐.한마디로 이같은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터무니 없는 것이다. 「오대양진상규명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오대양관련자들과 일일이 면담해 87년 사건당시 경찰수사자료와 맞춰보고 싶다. ­유사장이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실질적인 대표라는데. ▲과거 권목사의 요청으로 보수를 받지않고 강연을 해준 적은 있으나 80년대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복음침례회는 물론 다른 교파의 교회에도 나간 적이 없다. ­박순자씨가 「오대양교」라는 별개 종교집단의 교주가 아니라 「구원파」의 대전지역 책임자라는데. ▲박순자씨에 대해서는 87년 사건당시의 경찰조사자료를 통해 박씨가 지난 75년 「구원파」가 초교파운동을 벌일 때 교회에 다니면서 마음대로 주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등의 행동을 하다 눈총을 받게되자 78년 그만 두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 「구원파」의 대전지역책임자는 현재 세모의 주주인 변우섭박사였다. ­송재화씨가 유사장의 자금담당비서라는데. ▲우리 회사에는 자금담당비서라는 직책이 없다.나는 지금 공학박사를 비서로 쓰고 있을만큼 비서는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대양사건」의 전모가 이번 기회에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집단자살과 자금문제는 이미 87년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당국에 의해 모두 밝혀졌다고 생각한다. 경찰등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를 믿고 싶다. ­83년1월에 찍은 간부합숙훈련 사진속에 송재화씨가 끼여 있는데. ▲당시 세모의 전신인 삼우트레이딩의 대리급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품질관리교육이었는데 이 사진에는 회사의 간부들말고도 송씨등 다른 사람들이 많이 끼여 있었다.
  • 세모 유 사장등 4∼5명 곧 소환/박 의원 주장 조사

    ◎사채대준 송재화씨 신병확보 주력/검찰,「오대양」 송치받아 본격 재수사 【대전=박국평·손성진·최용규기자】 대전지검 특수부(이재형 부장검사)는 20일 「오대양집단변사사건」과 관련,폭행치사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김도현씨(38)등 7명을 송치받아 본격 재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이들이 자수한 4명 살해및 암매장사건의 수사는 물론 지난 87년 집단변사한 32명의 타살여부에 대해서도 수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민주당 박찬종의원의 주장에따라 주식회사 세모의 오대양사건 관련 여부를 캐기 위해 유병언 세모사장과 기독교 복음침례회교주 권신찬목사등 4∼5명을 이번주부터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주식회사 세모측에 3천5백여만원의 사채를 대준 것으로 알려진 송재화씨(45·여)의 신병을 확보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이날 송씨의 주소지인 전남 완도군 완도읍과 세모의 농장이 있는 경기도 안성에 경찰관을 보냈으나 송씨를 찾지 못했다. 송씨는 지난 89년 1월 사기 혐의로 구속됐을 때 검찰과 경찰에서 숨진 오대양교주 박순자씨 및 주식회사 세모측과 자금거래관계가 있었다고 진술,송씨의 신병이 확보되면 오대양사건의 해결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한편 검찰은 구속 송치된 김씨등 7명을 상대로 자수동기와 배후세력에 대해 집중추궁하고 있으며 1백70억원에 이르는 사채의 행방에 대해서도 수사를 펴고 있다. 검찰관계자는 『지금까지의 경찰조사에서 암매장된 노씨의 사망시기와 발굴된 시체가 노씨인지의 여부등 일부 의혹들은 해명된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자수동기와 사채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점이 많으므로 의혹부분마다 전담검사를 지정,수사를 벌여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오대양」사건 유 「세모」사장 관련”/박찬종의원 주장

    ◎전화통화 내용등 자료 제시/“거액 사채 유입 가능성” 민주당의 박찬종의원은 19일 『오대양사건의 배후에는 종교계에서 「구원파」로 불려지고 있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실제대표인 주식회사 세모 사장 유병언씨(50)가 관련돼 있다』고 주장했다. 박의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대양 사장인 박순자씨는 오대양교라는 별개 종교집단의 교주가 아니라 「구원파」의 지역책임자 정도이며 박씨가 끌어모은 사채는 「구원파」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의원은 ▲박순자씨가 「구원파」 대전교회 신자로 알려진데다 ▲박씨와 금전문제로 관계가 깊던 송재화씨(45·여)가 유씨의 자금담당비서로 알려지는 등 세모의 간부급직원이 분명하다는 점 ▲오대양 대전본사와 세모직원들간에 변사사건발생 얼마전 두차례에 걸쳐 전화통화가 있었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송씨는 지난 89년 4억8천여만원의 사채를 갚지 않아 사기죄로 구속됐는데 박의원은 당시 송씨의 수사기록에서 송씨와 박씨및 세모간에 서울신탁은행 서울 다동지점을 통해 현금거래가 있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박의원은 『오대양사건 당시 함께 숨진 이기순씨(당시 39세)의 남편이며 「구원파」의 신도였던 임모씨(당시 42세)에 따르면 「구원파」의 대표자는 권모 목사이지만 실제대표는 유씨였고 유씨는 신도들의 헌금으로 삼우트레이딩의 운영자금에 충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박 의원 고소”/세모측 밝혀 민주당의 박찬종의원이 「오대양사건」의 배후세력으로 주식회사 세모와 이 회사 유병언사장을 지목한데 대해 세모측은 『이는 모두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소장이 날조한 것으로 세모를 모함하기 위한 정치적 발언』이라고 주장하고 『박의원을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 문씨·임양 위문단/북한서 파견 통보

    북한은 19일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내 조선학생위원회 최현덕위원장등 20명의 청소년학생위문단과 여연구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장등 각계 각층인사 20명으로 구성된 위문단이 오는 25일과 8월10일 각각 서울을 방문,복역중인 임수경양과 문익환목사를 만나 위문하겠다고 통보했다.
  • 불하받은 교회부지 2중전매/3억대 챙긴 목사 구속

    서울지검 남부지청 석동현검사는 18일 재개발지구 안에있는 철거된 교회대신 불하받은 시유지 2백평을 이중으로 팔아 3억3천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성신교회목사 김종성씨(69)를 배임혐의로 구속하고 이 거래를 주선해 주고 매수자에게 소개비 명목으로 3억원을 요구하면서 이에 불응하면 서울시등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한 부동산 중개업자 장중기씨(45·강서구 화곡동 800)를 공갈 미수 및 부동산 중개업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 87년6월 양천구 목동 택지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 사업지구안에 있던 교회를 철거하는 대가로 시유지 2백평을 불하받은 뒤 장씨의 중개로 이모씨(65·건축업·서초구 잠원동)에게 『택지개발이 끝나면 소유권을 이전해 주겠다』며 1억2천만원의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 넘긴 뒤 지난달 5일 이 땅의 시가가 10억원대 이상으로 폭등하자 다시 안모씨에게 11억3천8백만원에 이중으로 팔면서 계약금 2억1천만원을 받는 등 모두 3억3천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 “강씨가 유서대필/검찰발표는 조작”/KNCC 주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산하 「김기설씨분신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박형규목사)는 18일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에 의뢰한 필적감정결과 김씨가 작성했다는 「전민련」수첩등 6건의 문서는 김씨유서의 필적과 동일하며 구속기소된 지난87년 강기훈씨가 쓴 옥중서신과 최근 강씨의 필적은 유서의 필적과 다르다』고 밝히고 『이번 감정결과로 검찰의 강씨유서대필주장은 조작된것임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 남북 총리회담 새달 27일 재개/정부,북측의 평양회담 제의 수용

    ◎중단 9개월만에 전화통지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이 9개월여만인 오는 8월27일부터 3박4일간 평양에서 재개된다. 정부는 11일 북한 연형묵 정무원총리가 정원식국무총리 앞으로 전화통지문을 보내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을 8월27일부터 개최하자고 제의한데 대해 『조만간 대북전통문을 발송,북한제의의 수용의사를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당국자는 『북측이 이번 제의를 내놓으면서 문익환목사 등 구속된 방북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는 희망정도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할 뿐 제4차회담을 개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 확인된다』며 이에따라 정부는 대북전통문 발송 등 회담재개에 필요한 조치를 빠른 시일내에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북총리회담으로 통하는 고위급회담은 1차 서울(90년9월),2차 평량(10월),3차 서울(12월)에서 연이어 열리다 북한측이 지난 2월로 예정됐던 4차 평량회담을 돌연 중단,그동안 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앞서 연형묵총리는 이날 낮 전화통지문을 통해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온민족의 염원을 고려,귀측의 태도에 아직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귀측에 한번 더 우리와 마주 앉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며 제4차 회담재개를 제의했다. 연형묵총리는 그러나 이 전화통지문에서 『비록 곡절이 있기는 했으나 출발도 좋았고 전도도 어둡지 않았던 남북고위급회담이 오랫동안 중단되어 귀중한 시간을 잃어버린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하고 그동안 한국측이 「두개한국 조작」을 위한 외교와 공안통치 등으로 회담재개에 난관을 조성해 왔었다고 비난했다. 연총리는 또 『중단된 회담을 재개하고 결실있는 회담으로 이끌어가 가기 위해서는 대화의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절실한 문제로 나선다』고 지적하고 『평양에서의 상봉과 회담의 성과를 위하여 지난해의 3차회담 때에 그러하였던 것처럼 4차회담을 하기에 앞서 재수감한 문익환목사와 임수경양 등 구속된 방북인사들을 석방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당초 지난 2월25일(평량)로 예정됐던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연례적인 91팀스피리트훈련을 구실로 일방적으로 중단(2월18일)시켰으며 우리정부는 4월8일 당시 노재봉총리이름의 대북전통문을 보내 5월22일 평량서 제4차 회담을 재개할 것을 제의한 바 있다.
  • 범민족대회 서울서 개최/8월15∼18일,3천명 참가

    ◎남측준비위 밝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남측준비위(의장대행 강희남목사)는 오는 8월15일부터 18일까지 서울에서 남·북·해외동포대표 각3백여명,참관인 각 7백여명등 모두 3천여명이 참가하는 「제2차 범민족대회」를 개최하겠다고 9일 밝혔다.
  • 남북한 「원로회담」 제의/각계 32인 시국선언

    ◎도덕성 회복·민족 대화합 촉구 김수환추기경·한경직목사·서의현조계종총무원장등 종교계지도자와 민부기전대법원장·이강훈광복회장등 정계·사회원로 31명은 7일 낮12시 서울 종로2가 파고다공원에서 도덕성회복과 민족대화합을 위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원로들은 선언문을 통해 『겨레와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크게 우려하는 우리 각계 원로들은 도덕의 파탄과 민족의 분열로 야기된 역사적 위기를 더이상 방관할 수 없어 우리 생애 마지막 우국충정의 심지를 돋워 분연히 떨쳐 일어섰다』고 밝혔다. 원로들은 이에앞서 이날 상오10시부터 서울 종로구 내자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원로회의상설사무국」의 설치와 북한에 남북원로회담을 제의할 것을 결의,오는 8월13일 재미교포 예술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는 이병호아시아태평양변호사협회회장을 통해 북한측에 이를 정식제의하기로 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고흥문 전국회부의장 ▲구상 시인 ▲김경수 성균관장 ▲김상만 동아일보회장 ▲김수환 추기경 ▲김용식 전외무부장관 ▲김정렬 전국무총리 ▲민관식 전국회부의장 ▲민복기 전대법원장 ▲박충훈 전대통령권한대행 ▲방일영 조선일보회장 ▲서돈각 전학술원장 ▲서의현 불교총무원장 ▲손인실 전YWCA부회장 ▲안호상 전문교부장관 ▲엄요섭 기독교산업사회연구소장 ▲오익제 천도교교령 ▲원흥균 전세종대총장 ▲유달영 적십자중앙위원 ▲유창순 전경련회장 ▲윤석중 예술원원로회원 ▲윤천주 전서울대총장 ▲윤치영 전국회의장 ▲이강훈 광복회회장 ▲이병호 변호사 ▲이숭녕 학술원회원 ▲이충환 민주화합추진위원 ▲이형근 전육군참모총장 ▲전예용 민족중흥회장 ▲최규남 전문교부장관 ▲최태섭 한국유리회장 ▲한경직 목사
  • 루마니아/독일계 주민 귀향러시(세계의 사회면)

    ◎“독재 붕괴돼도 미래 암담”/작년 11만명 조국품으로 루마니아에 오랫동안 뿌리 내리고 살아오던 독일계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 독일로 대거 이주하고 있다. 「모국」을 떠나 「조국」으로 향하는 이들 독일인들은 차우셰스쿠정권이 몰락하고 나서도 미래에 대한 비전이 밝지 않은데 실망하고 보따리를 싸고 있는 것이다.지난해 한햇동안에만도 독일 정부는 루마니아로부터 11만1천1백50명의 독일인을 받아들였다.이 숫자는 89년보다 거의 4배나 늘어난 것이다. 루마니아 시비우시의 한 대학에서 신학을 강의하고 있는 베르트홀트 쾨버교수는 지난해부터 올 3월까지 루마니아 서부의 트랜스실베니아지역에서 대략 독일계 주민의 60%가 이주한것 같다고 추정했다. 독일어로 지벤부르크(Siebenburg)라 불리는 루마니아 서북부 지역에 주로 살고 있는 독일인들의 거주 역사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 간다.12세기 현재의 루마니아 서북부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헝가리왕 게자2세는 황무지로 방치돼 있는 왕국의 동부지역을 개발하고 외적의 침입에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 독일인들을 불러들였다.당시 땅에 굶주려 있던 라인강 서부의 독일인들이 여기에 대거 호응,트랜스실베니아주와 바나트주등지에 정착했다. 이들은 루마니아인이나 헝가리인등과 섞여 살지는 않았지만 3백여개의 마을에 자영농을 이루면서 지난 수 세기동안 평화롭게 살아왔다.지금도 이곳에 남아있는 농가와 교회등은 독일인 마을들이 과거 번영을 누리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해 왔음을 쉽게 알수 있게 해준다. 이들 지벤부르거들에게 액운이 다가 온 것은 나치시절부터. 나치점령하에서 독일계 주민들은 선택에 의해서든 강요에 의해서든 나치군이나 친위대에 복무했다.전후 수십만명의 독일계 주민들이 소련의 노동수용소에 끌려가 7년동안 고생했고 45년에는 농지를 몰수당해 루마니아의 일반 농민과 똑같은 농민프롤레타리아가 돼버렸다. 이들은 루마니아의 독재정권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이 나아지지 않음은 물론 과거의 몰수토지 반환의 전망도 불투명하자 동구개혁 이후 서방이주가 자유로운 점을 이용,8백년동안 내렸던 뿌리를 거두어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33세로 트랜스실베니아지방의 모티스(독일어로는 모르테스도르프)읍의 사목일을 보며 인근 4개 마을을 돌고 있는 파울 자틀러목사는 모르테스도르프읍에서 독일어를 말하는 7백여 주민 가운데 1백24명만이 남았다면서 주민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온통 이주에 관한 것뿐이라고 전한다. 혁명후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던 미카엘 로트씨(62)내외도 교회가 다시 문을 열자마자 청년들의 습격을 받고 나서는 짐을 챙기고 있다. 독일계 이주민들의 독일내 생활은 괜찮은 편이다.독일정부의 보조금과 사회보장비등이 후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정해진 질서속에서 낳고 살고 죽는데 익숙해진 일부 주민은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는 생활」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일 「남경대학살」 필름 발견

    【도쿄 연합】 1937년12월 중국 남경에서 일본군이 중국인들을 무참히 학살,문제가 됐던 「남경사건」을 담은 16㎜ 필름이 미국에서 발견돼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교도(공동)통신이 4일 뉴욕발로 보도했다. 이 필름은 당시 남경 국제적십자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미 성공회 존 마기목사(53년 68세로 사망)가 촬영한 것이다.
  • 극비 출국한 전대협 2명/범민족 베를린회의 참석

    【베를린 연합】 「전대협」의 입북지시에 따라 지난 24일 한국을 떠난 성용승군(22·건국대학추위원장)과 박성희양(경희대 작곡4)은 29일 베를린의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해외본부사무국(사무국장 임민식)에서 열린 「91범민족대회 준비회의」에 참석했다. 30일까지 2일간 계속되는 이번 회의에는 북한에서 전금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범민족대회 북측준비위원회 부위원장) 등 2명과 범민련의 유럽·미주·호주 등 지역대표가 참석했으며 한국측의 대표로 돼 있는 강희남 목사(범민련 공동의장)와 한철수군(전대협 조국통일위원장·경희대 총학생회장) 등은 참석치 못했다. 사무국측은 성군 등 전대협 간부 2명이 이번 회의에 공식대표가 아니라 참관인으로서 자리를 함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성군과 박양은 각각 회색 양복과 넥타이,녹색 투피스의 정장 차림으로 다소 심각한 표정이었는데 출국경위 및 목적,향후 계획 등에 관한 면담요청에 대해 현재로서는 응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 「성당농성」 재야간부 4명 구속/어제

    ◎서준식·최종진·이동진·이순형씨 출두/명동배치 전경 모두 철수/경찰 경찰은 29일 하오 2시45분쯤 「전민련」 인권위원장 서준식씨(43) 등 서울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여온 수배자 4명을 검거,서울 중부경찰서에서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절차를 마친 뒤 서울 송파·동대문·서부경찰서 등 3개 경찰서 유치장에 나누어 수감했다. 이로써 재야 쪽의 이른바 「국민회의」 관계자들이 지난달 18일부터 명동성당에서 벌여온 장기농성사태는 43일 만에 평화적으로 해결됐다. 이날 검거된 농성자들은 서씨와 「국민연합」 사무처장 최종진씨(41),「국민회의」 대변인 이동진씨(38),「서노협」 의장직무대행 이순형씨(34) 등 4명이다. 이들은 성당을 나가기에 앞서 농성장인 문화관 2층에서 기자들과 만나 『「6차 국민대회」를 끝으로 상반기 투쟁을 마무리하면서 떳떳하게 경찰에 출두해 법정에서 우리의 민주화 요구가 정당하다는 것을 알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출두는 박 목사 등 재야인사 3명이 지난 14일부터 경찰과 이들 사이를 오가며 농성문제의 평화적인 해결방안을 중재한 끝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명동성당 문화관에 있던 학생 등 20여 명은 이날 경찰의 간단한 조사를 받고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 경찰은 구속영장이 미리 나와 있거나 수배된 주요 검거대상자들을 모두 검거함에 따라 성당 주변에 배치한 전경 2천4백여 명을 대부분 철수시켰다. 한편 서씨는 이날 『김기설씨 유서대필사건과 관련,「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의 결백을 증명하는 자료를 검찰에 제출할 때마다 검찰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만큼 현재 「전민련」이 보관중인 자료는 법정에서만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대협,「파북」 북한과 사전연락/안기부 확인

    ◎범민련 통해 수차례 서신교환/「자민통」 관련 여부도 수사/입북 막게 독에 신병인도 요청 국가안전기획부는 28일 평양에 가기 위해 독일 베를린에 머물고 있는 「전대협」 간부 성용승군(22·건국대 행정학과 4년)과 박성희양(21·경희대 작곡과 4년)이 출국하기 전 국내에서 북한측과 서신을 교환하고 대표단 임명식을 갖는 등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입북하려 한 사실을 밝혀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안기부는 「전대협」이 지난 20일 서울에서 「통일대축전대표단 임명 및 사수결의식」을 가진 뒤 평양 「핵문제 국제회의」와 「91통일대축전」에 북한대표단과 함께 행동할 한국측 대표학생으로 성군과 박양을 선발,임명장을 수여하고 결의식을 마친 사실도 밝혀냈다. 성군과 박양은 이 자리에서 앞으로의 활동과 포부를 밝히는 「출사표」를 대표자 자격으로 발표하고 「백만학도에 드리는 글」을 자필로 작성,출국하기에 앞서 지난 23일 밝힌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전대협」 의장 김종식군 등이 참석한 대표자 임명식에서 『통일대축전 대표로 임명돼 영광이며 힘차게 투쟁할 것』이라고 결의하고 김군이 수여하는 대표자 금반지를 받고 기념촬영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출국 전 백만 학도와 건국대생·부모 등에게도 『내 한몸 바스라져도 원한 맺힌 분단철책선을 치우겠다는 자세로 싸워갈 것』이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안기부는 「전대협」이 성군과 박양을 평양에 보내기 위해 북한의 「조선학생위원회」측과 여러 차례 서신을 교환,논의했으며 이같은 논의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해외본부를 통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조선학생위원회」 위원장 최현덕은 지난 25일 「전대협」 앞으로 『남조선 청년학생들이 발기한 「7·7남북·해외청년학생회담」과 「8·15남북해외청년학생통일대축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는 문제의 토론을 위해 조선학생위 대표자회의가 진행됐음을 알린다』는 내용의 전문을 보냈다. 안기부는 지금까지의 수사결과 이번 「전대협」의 평양참가 계획에는 김군을 비롯해 이 단체산하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학추위) 위원장한철수군(경희대 총학생회장)과 「정책위원회」 간부 9명,「범민련」 공동의장 강희남 목사 등 「범민련」 관계자 4명 등 모두 15명과 「전대협」의 배후세력인 「자민통」 등이 깊이 개입한 혐의가 짙다고 보고 이들에 대해서도 집중 수사하고 있다. 안기부는 성군·박양이 여권에 출국목적을 허위로 기재한 사실을 중시,여권법 위반혐의로 여권물수령을 내려 입북을 막을 방침이며 독일정부에 이들의 신병인도를 요청했다.
  • 기무사 사찰대상자/국가에 7억 손배소

    지난해 10월 윤석양 이병(24·수배중)의 양심선언을 통해 현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대상자로 알려진 1천6백90여 명 중 한승헌 변호사,박형규 목사 등 1백48명은 27일 국가를 상대로 『원고 1인당 5백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민사지법에 냈다.
  • 재수감 문익환목사/안동교도소로 이감

    법무부는 17일 방북사건과 관련돼 복역중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가 지난 6일 재수감된 문익환 목사(73)를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치소에서 안동교도소로 이감했다고 밝혔다.
  • 시베리아 북한벌목장 취재기:5·끝

    ◎북 인부들,「김일성 주도의 통일」 안믿어/북한체제 우위 거론안해 되레 “이채”/서울에 대한 호기심·동경으로 가득 『서울서 오셨다고요. 정말 서울서 왔습니까』 서울사람을 처음 보는 북한 인부들은 놀라움과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바로프스크와 체그도민을 왕복하는 침대열차는 언제나 북한 인부들로 북적거린다. 기자가 철로 연변의 북한 벌목장을 찾아 이 기차를 탔을 때도 적지 않은 북한 인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찻간에서 만나는 북한 인부들은 서울서 온 기자의 모든 것에 대해 거의 무한대적인 반가움과 호기심을 드러내곤 했다. 이들은 처음 기자들 본 순간 자신들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낯선 듯한 느낌을 갖는 듯 곁눈질과 함께 의아하다는 표정을 보내오곤 했다. 그러나 곧이어 기자가 『북한에서 오신 분들 아니냐』면서 말을 건네자 바짝 다가서서 어디서 왔으냐,정말 서울서 온 사람이냐고 마치 동물원의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듯 온몸을 훑어내리곤 했다. 그 시선에 적대감은 없다. 그냥 신기해 못살겠다는 표정이 눈길과 눈길 사이에잔뜩 묻어나올 뿐이다. 옷자락을 만져보기도 하고 어떻게 이곳을 올 수 있었느냐를 궁금해한다. 이들은 아마도 한국과 소련의 수교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일반 벌목인부들은 남쪽 기자 일행과 대화를 나눌 의사는 없어 보였다. 그저 반갑고 신기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남쪽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고,또 그래서는 뭔가 큰일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아는 듯해 보였다. 이에 비해 자신을 체그도민에 근무하는 무역일꾼이라고 밝힌 한 청년은 기자의 침대칸까지 따라와 이야기하기를 즐거워했다. 술이 한 순배 돌자 자신의 여권까지 보여주는 이 청년은 『소련과 중국의 석유공급 거부로 북한에 몇십년 만에 모내기를 위해 소가 등장했다』고 북한 실상을 전해주었다. 그는 남한이 잘살게 돼 소련과도 수교가 되었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체제로는 더 이상 『인민의 생활향상을 꾀할 방법이 없다』면서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남북한이 같이 잘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런 말을 하는그의 표정에는 가끔 열등감이 엿보인다. 약간의 적대감 같은 것도 있어 보였다. 간간이 그는 인민들이 나서서 휴전선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북한식 통일논리를 이야기하기도 했으나 남북한간 통일논의의 이니셔티브가 이미 남한 쪽에 있음을 부인하진 않았다. 시베리아에 나와 있는 벌목장의 사람들마저 모스크바에서 만나는 북한인들처럼 이미 북한의 체제우위나 자신들의 주도에 의한 통일을 믿지 않고 있다는 점은 흥미있는 발견이었다. 체그도민 벌목사업본부의 박춘송 안전부장도 기자 일행에게 통일논의 같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는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하면서 『당신의 기사가 통일에 방해가 되지만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박씨의 이 말은 시리즈를 다루는 동안 가장 어려운 주문이 돼 글쓰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때로는 본 대로 느낀 대로 쓰는 것이 통일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체그도민이나 철로 연변에서 본 북한 벌목인부들의 모습은 모스크바의 빈민가에서 만나는 월남인들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이를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괜찮은가 하는 걱정이 들 만큼 이들의 모습은 평양 시가지에서 우리 기자단이 봐온 시민의 모습과도 너무 다르다. 박춘송씨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인들이 벌목한 벌목량은 4백만㎥였다. 한때 북한 인부들은 최고 5만명이 시베리아 산림지대에 나와 있을 때도 있었다. 벌목장에 침을 놓으러 다닌다는 하바로프스크 거주동포 이 모 여인(59)은 벌목인부들의 상당수가 고환이 붓는 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병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름의 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를 가까이하지 못하는 데 따른 병인 것으로 본인들이 알고 있고 또 그렇지 않겠느냐고 풀이했다. 고환이 붓는 병이 나타날 만큼 생리적 문제가 심각하다면 여기에 따른 부작용도 생긴다. 소련 여자를 강제추행한다는 소문이 넓게 퍼져 있었다. 이는 소련의 북한 인부 철수론 주장자들이 내세우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체그도민행 기차에서 만난 칼리나씨(53·틔르마 거주)는 『여자를 강제추행한다는 소문은 있지만 나는 그 소문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북한인들이 개를 사러 다니고 헌 텔레비전을 사러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본 적은 없으며 비교적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온순하다』고 말했다. 체그도민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체그도민서 본 벌목인부 두 사람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기차 안에서 다시 만난 기자에게 서울까지 어떻게 가느냐고 물으면서 통일이 되거든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혹시 통일이 되면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면서 명함을 하나 달라고 하기도 했다. 틔르마역에서 내리는 그들에게 만화주간지 한 권을 건네자 『이런 것 가져갈 수 없다』고 사양했다가 다시 플랫폼 쪽 창문으로 다가와 손짓 발짓으로 만화책을 달라고 해 건네주었다. 그 사이 간부들과 상의해 입장을 바꿨을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그보다는 남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다시 온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서울에 대한 무제한의 호기심과 동경,통일로 북한사람들도 같이 잘살자는 것이 시베리아 북한 벌목현장의 대남관이었다. 이미 그들에게 남한을 통일시켜 잘살게 해주겠다는 낡고 오래된 김일성식 대남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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