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배 억류」 돌출로 남북관계 “적신호”
◎북의 돌발행위 배경과 향후 전망/체제동요 우려… 실리뒤 핑계 잡기북/대화 테이블에 북 끌어내기 계속남
북한의 쌀 북송선 억류와 10일로 예정됐던 남북 당국자간 북경회담의 무산이란 새 변수의 돌출로 남북관계의 전도에 적신호가 켜졌다.
북한이 우리측 선의를 담은 쌀 수송선을 억류하는 상식밖의 행위를 저질렀다.이 때문에 광복 50주년 8·15를 기해 나올 것으로 기대되던 획기적 대북 평화제의도 불발탄이 될 국면에 접어들었다.
최근 북한의 일련의 경직적 대남 자세들은 이같은 불길한 전망의 개연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이번 사태가 북한에 억류중인 우성호 선원의 미송환과 지난달 9일 안승운목사 납북사건등 대남 적대 노선의 연장선상에 있는 탓이다.
특히 북한은 지난 1,2차 북경회담에서 대남 비방을 자제하겠다는 언질을 주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오히려 대남 비방의 수위를 계속 높여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이번 쌀 수송선 억류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한동안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또한 북측이 억류 수송선의 송환을 카드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섞인 관측마저 제기되고 있다.북측의 전금철이 3차회담의 무기연기를 일방 통보해오면서도 이미 합의된 쌀수송의 이행 보장을 요구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같은 전후 맥락에서 본다면 북측은 일련의 북경회담에서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을 추구할 뜻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즉 남한쌀이라는 실리를 챙기고 아울러 일본등 제3국쌀을 얻어내기 위한 걸림돌 제거용으로 남북접촉에 응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이는 『현재 북한에게는 진지한 남북대화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일이 없다』(송한호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전통일원차관)는 다수 북한전문가의 분석과 궤를 같이 한다.요컨대 북한은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자신들의 체제유지의 「중심고리」로 여기고 있다.반면 북한주민들에게 남한의 우월성이 전파될 가능성이 큰 쌀지원을 포함한 남북간 접촉확대는 체제동요의 전주곡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최대한 회피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때문에 이번쌀 수송선 억류는 적절한 시점에 남북대화 테이블을 걷어차려던 북측이 핑믿거리를 찾은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우리측은 쌀 수송선의 북한억류 사실을 가능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공개하지 않고 해결해보려 했던데서 알 수 있듯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 내려는 노력을 계속 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 쌀외교 어찌될까/최소 80만t 부족… 미·일에 의존 속셈/전략 여의치 않으면 남북대화 복귀
북한이 8일 북경 쌀 관련 남북당국자 회담을 일방적으로 무기연기시킴으로써 북한의 「쌀외교」전개방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의 식량난이 북한당국자들이 호기를 부릴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의 금년도 식량부족량은 최소 2백60만t으로 추정되고 있다.인구 2천2백만여명의 북한의 올 식량수요량을 최저 6백70만t으로 잡을 때 올 생산 예상량을 감안한 추정치다.
쌀과 잡곡의 배급비율을 3대7 이상으로 허리띠를 더 졸라맨다고 하더라도 쌀만 해도 최소한 80만t 이상의 외미 도입이 필요하다.하지만북한은 이를 위한 외환잔고가 고갈된 상태라 어차피 외부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금년중 북한이 외국쌀을 사들인 실적은 중국으로부터 1만2천t을 가까스로 구입한데 이어 태국으로부터 저급미 5만t을 외상으로 들여온게 전부다.
우리측이 무상지원해주기로 한 쌀 15만t 가운데 절반인 7만5천t만 현재 북한측에 인도된 상태다.
때문에 북측이 우리측 쌀수송선 선원의 청진항 사진 촬영이라는 석연찮은 이유로 북경 3차 회담을 중지시킨 사실은 제3국쌀을 무상으로 받겠다는 속셈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에 무상으로 쌀을 줄만한 나라는 장기적으로 남북 등거리외교를 추구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일본밖에 없는 상황이다.북한은 미국측에도 쌀지원을 타진하고 있으나 미국의 국내법 절차나 남북관계에 대한 미정부의 입장을 감안하면 쉽게 성사되기 어려운 형편이다.다만 일본의 현 연립내각이 내심 북일 수교시 예상되는 청구권 자금의 일부를 남아도는 일본쌀로 미리 지불하려는 계산을 갖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측은 이미 자국쌀 30만t을 북한에 지원키로 약속하는 한편 20만t은 추후 협상키로 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측도 남북관계의 악영향을 미치면서까지 나머지 20만t의 추가지원을 무작정 강행하기 어려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따라서 북한이 일본을 상대로 하는 쌀구걸에 한계를 느끼는 시점에 남북대화 테이블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정탐아닌 우발적행위 가능성”/“선원들 사전교육… 카메라 등 장비 봉인”/송 통일원차관 문답
송영대 통일원차관은 북한이 우리측 대북 쌀 수송선이 정탐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억류하고 있는 것과 관련,9일 상오 통일원 출입기자들과 만나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건이 우발적이라고 보나.
▲북측에선 계획적인 정탐행위라고 주장하나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북경 쌀회담에서 쌍방 합의대로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실무협의가 필요하다.
지난 2일 사건 발발 이후 취한 조치내용은.
▲사건 발생 이후 문제해결을 위해 대한무역진흥공사(KDTRA)와 조선삼천리총회사채널을 통해 북한측과 접촉해 왔다.이를 공개안한 이유는 쌀 하역작업이 6일에 끝났고 10일로 예정된 3차회담전에는 해결을 기대했기 때문이다.그러다가 문제해결이 안된 상황에서 북한측이 3차회담의 연기를 통보해왔다.
수송선 선원들은 현재 억류된 것인가.
▲억류라기 보다는 귀환이 다소 늦어지는 것이다.북한의 전금철단장의 전문에 억류라는 표현은 없다.
북한측의 조사는 끝났나.사진을 찍은 증거는 있나.
▲어느 정도 끝난 것으로 안다.사진을 찍었는 지도 확인되지 않고 않지만 정황으로 봐 그랬을 수는 있다.
사진촬영과 관련,국제관례는.또 선원들을 사전 교육시키지 않았나.
▲국제적으로 상대방 항구에 들어갈 때 허용된 대상 이외에는 촬영할 수 없는 것이 관례다.선원들에 대해선 사전에 남북합의 사항을 인식시키고 북한주민 접촉요령등을 두차례 교육시켰다.선원들의 카메라등 장비는 봉인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입장과 북한측의 의도는.
▲먼저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청진에 있는 수송선 선장과의 전화통화를 북측에 요청했으나 북한의 답변이 아직 없다.청진항은 군사항구가 아니다.또 이번 사건은 돌출적인 것이라 남북관계에 전반적인 그림과 연결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정부가 사건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정부는 21명의 선원을 어떻게 무사귀환시키느냐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사건이 공표됨으로써 정치대결로 비화되는 것을 꺼렸다.
◎삼선해운사측 표정/“터무니없는 조작”… 직원들 분개/이 항해사 관광사진 촬영 유혹받은듯
정탐행위를 이유로 북한에 억류돼 있는 삼선 비너스호(선장 장병익·9천3백67t급)의 서울 수송동 이마빌딩 6층 본사 삼선해운(대표 송충원)은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해 당황해 하면서도 대책반을 구성하는 등 차분하게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일부 직원은 북한의 정탐행위 주장에 대해 『터무니 없는 조작』이라고 분개하는 반응을 보였으나 남북 당국자간에 원만한 해결을 기대하는 눈치.
대책본부장인 방성제상무는 『지난 4일 하오 대리점인 싱가포르 다이시핑사를 통해 사고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받았다』며 『남북 당국자간에 역사적인 합의에 따라 쌀을 수송한 만큼 선원들의 안전귀환은 보장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측이 사진촬영 등 정탐행위의 장본인이라고 주장하는 이양천 1등항해사(33)가 자신의 정탐행위를 시인하는 자술서를 썼다는 북한측의 주장에 대해 『아무도 의지할 수 없는 북한땅에서 보안요원들의 협박과 공갈로 어쩔 수 없이 썼을 것』이라며 『이항해사가 말로만 듣던 북한땅을 밟고 고국에서 자랑하기 위한 관광사진 촬영의 유혹을 받은 것 같다』고 밝혔다.
○…삼선해운에는 북한에 억류된 선원의 안부전화를 묻는 가족들의 문의 전화가 결려오고 있으며 회사측은 『남북당국자간에 합의에 따라 쌀을 보내던 중 일어난 돌발사고이므로 송환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있다.현재 비너스호와 직접 연락은 할 수 없는 상태이며,이항해사를 제외한 20명의 선원들은 청진항의 비너스호에서 안전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비너스호는 지난 달 31일 상오10시15분 포항을 출발,지난 1일 하오 3시 청진항에 도착했으며 6일까지 귀항할 예정이었다.삼선해운은 지난 81년 설립,업계 8위로 성장한 다크호스.자본금은 50억원,지난 해 매출액은 2천57억원으로 러시아와 아프리카 오지 등 전세계 주요항로에 취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