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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개혁단체 목민선교회 高永根목사

    국내 개신교계 목회자 10명으로 지난 80년 초교파적으로 창립된 교회개혁단체인 한국목민선교회 회장 高永根목사(66).50개 교회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으며 평신도와 목회자훈련,교회갱신,국민생활개혁운동을 벌이는 이 단체의 회장을 맡아오며 19년간 교회개혁을 강도높게 주장하는 고목사에게 개신교계의납세문제에 대해 들어봤다.▒성직자들의 납세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교계내의 인식과 달리 사회적으로 냉정한 비판을 받고 있다.개신교회마다다양한 교리차를 보이긴 하지만 탈세가 만연한 사회에서 성직자들이 모범을보여야 하는게 일반적인 판단이 아닐까.▒개신교회 쪽에서는 교역자들의 사회봉사적 성격을 인정해 납세의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입장이 강한데. 400년전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통해 교회재정 사용을 목사 생활비와 목회운영비,선교비,사회복지 사업비 편성을 각각 25%씩으로 할 것을 주장했다.극도의 청빈한 목회자생활을 강조한 것이다.칼빈의 원칙을 지킨다면 납세 해당은 안될 것이다.▒개신교회의 납세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극히일부가 교회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세금을 내고 있다.물론 연합단체들은 모두 세금을 내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납세를 주장하며 실행하는 목회자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개신교 교회나 교역자들이 실제로 세제혜택을 받고 있나. 많이 받고 있다.엄격히 따지자면 납세를 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고 본다.목사들의 생활비가 전체 교회예산에서 평균 40∼50%는 될 것이다.목사의 생활이 중산층을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일부 대형교회들의 불법 영업행위나 부동산투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우려에 대한 견해는. 교회를 사치스럽게 장식하고 신도수 팽창에 따른 주차장이나 시설 확충 과정에서 불거지는 문제는 있다.하지만 기본적으로 부동산 투기 등 의도적인불법영업은 없다고 봐야 한다.성직에 대한 기대가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연합적인 차원의 납세운동을 벌일 생각은. 목회자들이 국민에게 모범을 보이는 인식개혁 차원에선 가능하다.그러나 전체적으로 납세 해당이 안되는 교역자와 교회도 많고 종교계 전체가 맞물려있어 전체적인 차원의 운동을 벌이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 세속화 일부교회 면세 악용 영리사업

    우리나라의 종교인구는 95년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259만명에 이른다.종교인구의 확대 및 ‘종교경제’ 규모의 확대에 따라 일반 국민사이에서는 종교 단체에 대한 과세문제가 조세형평 차원에서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으나 세무당국은 곤혹해 할 뿐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대한 ‘종교 경제’의 규모를 이용,많은 종교기관들이 사회복지사업,실직자 지원,북한 기아 어린이 돕기 등 공공성이 높은 ‘사회구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그러나 대형 개신교회 등 일부 극소수 기관들은 ‘영혼 구제’라는 종교의 근본적 책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게 상업활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영리 사업을 확장함으로써 종교기관의 면세 제도를 재검토해야 할 단계에 온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낳고 있다. 특히 일부 호화스런 대형 교회건물이나 목사들의 고급 승용차,교회의 요란한 호텔행사 등 일부 개신교 교회와 교역자들의 과소비 등 성직 본연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파행이 새삼스럽지 않아 어떤 식으로든 교회내부의 자성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성직자와 종교 단체들의 세금 납부에 대해서는 사회 일반과 개신교 내부에 첨예한 견해차가 있다.교계에서 지배적인 반대주장은 성직자의 봉급이 사회교화와 복지사업에 쓰이는 만큼 일반인들의 수입과는 차별돼야 한다는 것.반면 찬성쪽은 어찌됐든 소득의 형태로 지급되는 수입은 사회형평상 똑같이 과세돼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개신교계에서 과세 대상이 되는 목사 전도사 등 교역자들은 10%내외로 추정되고 있다.농어촌 영세교회의 교역자들의 경우 월급이 대부분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도시 대형교회의 경우 교역자들의 수입이 월평균 200만원을 웃돌며별도로 지급되는 판공비 액수가 어지간한 대기업체 수준 이상이라는 소문이지배적인 실정에서 사회 일반의 납세주장을 비켜 나가기 어렵다. 국내 개신교계의 연간 총예산은 4조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교회수 4만여개에,신도수도 1,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이들 신도들의 헌금으로 구성되는 교역자들의 봉급은 대부분 생활비,도서비,교육비,봉사비 등 10여개 명목으로 지급된다.그러나 문제는 생활비의 비중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대도시 교회의 경우 유급 교역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 사실상 교역자 생활비 비중이 교회예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 적지 않다.당연히 교회가치중해야 할 방향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 세법상 교역자들의 개인소득에 과세할 근거는 전무한 실정.단체의 경우 과세가 되지만 유예기간과 비과세 범위 등 일반에 비해 혜택이 많은 편이다.부동산 취득세 등록세는 일반과는 달리 3년간 유예받고 있고 토지초과이득세 유예기간도 3년간 설정돼있다.법인 처분재산 특별부가세도 종전엔고유목적에 5년이상 사용시 비과세였으나 ‘사용기간 3년 이상’으로 단축됐다. 성직자의 사택에 대한 취득세 및 등록세도 전에는 담임목사 사택에 대해서만 비과세였으나 지금은 모두가 비과세로 바뀌었고 대도시내 부동산등기시등록세도 모두 비과세다.임야 토지초과이득세도 법인소유 고유목적에 한하던 것이 개별교회 소유의 종교시설 주변임야로 넓혀졌다.특히 종교단체 금융거래에서는 실명거래가 불가능했으나 이젠 교회별로 번호가 부여돼 법인격이인정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개신교쪽은 이같은 조치가 미흡하다는 입장.‘사찰보호법’ ‘문화재관리법’으로 재산을 보호받고 있는 불교와 달리 보호받지 못한 상태에서세금을 부과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교회의 대형화와 세속화는 교계에서도 인정하고 있으며 일반인의 입에 흔히 오르내리는 고질적인 부조리이다.경제성장에 편승한 교회의 물량주의가 신자 수 늘리기 경쟁과 교회당 난립으로 이어졌고 교회건물 증축과 토지·임야구입,주차장확보 등으로 나타났다.이에 따라 항간에서는 일부 교회의 부동산 투기 등 불법영업행위에 대한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던 것이사실이다. 이에 대해 교계는 “사실상 교회 재정은 투명할 수밖에 없다”면서 “부동산 투기 의혹도 교회건물을 짓기 위해 부지확보를 해놓은 뒤 건축비 충당이안돼 유휴지로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한다.국세청이나 문화관광부 등 관련부서에서도 이같은 부분에 대한오해는 많이 불식됐다는 게 교계의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세습교회나 문서선교라는 명목으로 언론사를 운영하고 있는 교회 등이 주장하는 교회재정 운영의 합당함과 투명성 주장이 일반인들에게 얼마만큼 납득될 지는 미지수다.특히 해외선교를 명분으로 한 목사들의 잦은 해외나들이와 엄청난 액수의 돈이 뿌려지는 교단 총회장선거 등 목사들의 교권운동이 일상적인 현상이라고 할 때 일반인들의 교계에 대한 비판이 비단 납세문제에만 국한하지는 않을 것이다.
  • 외언내언-앰네스티

    영국 변호사 피터 베넨슨은 지난 61년 옵서버지에 기고문을 보냈다.포르투갈 학생 두 명이 단지 “자유를 위하여”라며 건배했다는 이유로 7년형을 살고 있다는 기사를 우연히 읽고 이들을 석방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촉구하는글을 쓴 것이다.‘잊혀진 수인들’이라는 이 글은 당시 유럽의 양심적 인사들을 움직여 6개월 만에 세계 최대의 인권운동단체가 탄생하게 됐다.이후 슈바이처·피카소를 비롯한 저명인사들의 참여가 잇따랐다.현재 전세계 160여개 국에 140만명 이상의 회원과 수백만명의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는 이 단체의 이름은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다. 그냥 ‘앰네스티’로 흔히 불리는 이 민간단체는 세계의 모든 정부들과 무장반대집단들이 자행하는 인권침해에 대해 비판하고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국제여론에 호소하며 양심적인 압력을 행사한다.인권보호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77년 노벨평화상,78년 유엔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결성된 것은 지난 72년이다.‘오적’ 필화사건의 김지하씨 등의 구명운동을 계기로 尹鉉목사,캐나다인 베이리스 등이 추진해 국제집행위원회의 승인을 받았다.그러나 한국지부 임원이었던 任軒永·韓勝憲씨등이 각각 79년 남민전 사건과 80년 金大中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됨에 따라활동이 중지됐다가 82년 다시 지부가 재건됐으나 85년 국제집행위는 한국지부의 비민주성,정치적 중립훼손을 문제삼아 폐쇄결정을 내렸다.한국지부가다시 승인을 받은 것은 지난 93년이다.한국의 인권상황처럼 험난한 길을 걸어 온 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은 현재 2,300여명이다. 앰네스티 한국지부 언론인위원회가 제정한 앰네스티 언론상 시상식이 28일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대통령과 감사원장이 회원인 지금 한국 앰네스티 활동은 과거에 비해 훨씬 자유로워졌겠지만 시상식장은 여전히 조촐했다.꽃과 사람이 넘쳐나는 여느 시상식장과 달리 몇십명의 참석자에 화환은 단 한개뿐이었다.그러나 그 조촐함이 오히려 앰네스티의 엄정함을 얘기해 주는 듯했다.“인권은 모든 인간의 당연한 권리로 누가 주거나 제한할 수 없는 것이고 바로 그점에서 한국의 인권법 제정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許昌洙(헤르베르트 보타봐)한국지부장의 축사도 엄정함을 느끼게 했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앰네스티 언론상 수상자는 張潤煥 대한매일 논설고문과 李康澤 KBS PD였다.선정 이유를 밝히면서 金薰 언론인위원회 위원장은 “사설과 칼럼을 통해 인권신장에 기여한 張고문의 활동과 함께 대한매일의 변화에 주목했다”고 말했다.대한매일이 계속 그같은 주목에 값하는 신문이 될 것을 다짐해 본다.
  • 기업 성금·기부금등 조세로 전환

    장애인고용부담금,진폐기금과 같은 기업의 각종 성금과 기부금,회비 등 준조세가 조세로 전환되고 일부 부담금은 통폐합된다.또 소비자의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된다. 규제개혁위원회(공동위원장 金鍾泌국무총리·李鎭卨안동대총장)는 29일 세종로 청사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기업의 준조세 개혁 등 올해의 규제개혁 핵심과제 32건을 선정했다. 준조세의 조세 전환은 부담금 등을 목적세로 돌리지 않고 일반세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32건의 핵심과제 가운데는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품목인 자동차,철강,조선분야를 부품조달-생산-판매 및 수출-사후관리 등 단계별로 점검해 불필요한규제를 모두 철폐하는 작업이 포함돼 있다.규제개혁위는 또 외국기업에 대한 집중적인 규제완화에 따른 국내기업을 역차별하는 규제도 개선하기로 했다. 또 음식료품의 원료 규제도 완화돼 한약재와 해구신 등을 원료로 하는 제품도 생산이 가능해질 전망이다.그밖에 규제개혁위가 선정한 올해 규제완화 과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금융산업 인가요건 투명화·객관화 추진.인가제의 등록제전환 추가확대.설립자본금 요건 최소화 ▒자동차운수사업 등록기준 완화.택시면허 개선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풍치지구 등에 대한 행위제한 규제완화 ▒주택 유형,규모,시설기준 완화 ▒공장설립 관련 규제 개선.건설·입주·공장운영 단계까지의 각종 규제 검토·개선 ▒비료,농약,농기계 등 농업자재산업 규제완화.농업토목사업,농촌지도사업,농업관련 서비스 부문에 민간 참여 ▒해운항만 하역 노무인력 공급독점 등 개선 ▒학원 설립 및 운영 규제개혁 ▒병원지정진료제,의료전달체계 개선 ▒저작권 신탁관리업 진입제한 완화.저작권이용관련 규제개선 ▒형식승인 기준의 국제적 적합성 제고.과다 샘플추출 등 개선 ▒수입 조절 등 규제완화.수출입관련 사업자단체 규제완화 ▒도로,항만,화물터미널,창고 등 SOC시설 설치 규제완화 ▒건축물 발주,설계,공사,감리의 규제개선 ▒식품규격 기준의 개선,식품산업시설기준 등 진입규제 완화▒양식업 종류,시설기준 등에 대한 규제개선 ▒국가기술자격법과 자격기본법 통합 검토 ▒음반·비디오·전자게임의 제작,유통,소비단계별 규제개선.소프트웨어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규제개선 ▒규제자유지역 개념 정의,시범지역 설정.규제자유지역 설치를 위한 법적 준비 검토 ▒전문자격사 진입제한 완화 ▒기간통신사업자의 연구개발 출연금 제도 개선,시장지배적 사업자 회계정보 공개 ▒규제의 대안 개발 및 연구 ▒규제영향평가 사례 연구 ▒신설·강화되는 규제 또는 기존규제에 대한 준수율 조사李度運 dawn@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연출가 임진택씨

    삶이 뜻하지 않은 쪽으로 겉잡을 수 없이 흘러갈 때 ‘팔자’란 단어를 떠올린다.70년대 이후 줄곧 우리 놀이판을 지켜온 광대 임진택의 세상살이도이 ‘운명’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집안의 기대 속에 경기 중·고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를 들어갔을 때만해도그저 수업시간에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거나 오락시간을 주도하던 괴짜 모범생에 불과했다.어디에서도 부당한 정치권력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다 감옥살이를 하거나 불법·불순(?)공연을 주도할 싹은 보이지 않았다. “인생항로를 바꾼 발단은 낭만과 저항이 함께 녹아있던 문리대 정신이었고 불씨를 지핀 건 유신정권때 반항의 요람이던 연극반이었죠”. 연극반 시절 ‘오적’의 김지하와 ‘빠리의 택시운전사’홍상화 등과 만나면서 임진택의 세계관은 현실로 내려온다.점화된 정치의식은 당국의 감시와싸우며 연극운동으로 이어진다.그러나 합법적인 장에선 대부분 불발되었다.공연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제일교회(박형규·권호경목사가 주도)나 이화여대 큰 마당에서 현실을 풍자했다. “살벌한 분위기였죠.예를 들어 이근삼의 ‘대왕이 죽었다’라는 공연도 내용과는 상관없이 제목이 이상하다며 금지할 정도였으니까요”. 당국과 술래잡기 하듯 벌이던 연극은 마당극의 단초를 발견하면서 더 넓은판으로 도약한다.‘교내공연 X’판정을 받은 김지하의 두 단막극 ‘구리 이순신’‘나폴레옹 꼬냑’을 71년 교련반대시위 도중 밤샘농성장(강의실)에서 시험공연한 것.무대도 없고 설비도 없는 공간에서 관중과 호흡하고 교감하는 장면을 목도한 것이다. “연습 수준의 공연이었지만 일방적으로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관객과 주고받으며 상승하는 역동성을 발견했죠.마당극의 단초를 보았습니다”. 얼핏 보인 가능성은 70년대 중반 활기를 띤 탈춤과 접목되면서 맘껏 꽃핀다.옛날 것이란 이유로 당국에서도 권장한 탈춤에서 임진택은 역설적으로 열린 공간과 기동성이란 장점을 보았던 것. “연극의 내용과 탈춤의 형식을 결합한 거죠.날카로운 주제를 무대·대사에 의존하는 연극 형식보다는 관중과 어우러지며 신명을 우려내는 마당판의 역동성이 더 진보적으로 다가왔죠”. 물을 만난 광대는 73년 원주에서 김지하가 추진하던 ‘농촌협업운동’홍보를 위해 탈춤과 판소리가 섞인 ‘진오귀’순회공연을 계획한다.운동의 무산으로 공연은 빛을 보지 못했으나 제일교회에서 ‘청산별곡(哭)’이란 제목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어 탈춤의 재창조에 나선다.74년 소리굿 ‘아구’를 국립극장 소극장에올렸다.‘이종구 신곡 발표회’라는 합법적 이름을 빌렸다.긴급조치1호 위반으로 도피중이던 김지하가 연습장에 몰래 찾아와 많은 도움을 주었다.이종구 이애주 김민기 김영동 채희완 김석만이 참가했다. “4월 긴급조치 2호 직전의 살벌한 상황에서 합법공간을 빌려 터트린 쾌거였습니다.공연이 시작된 뒤 지하형은 조명실에서 몰래 구경했죠”. 임진택은 가부키 분장으로 ‘마라데쓰’란 노래를 불러 화제를 일으켰다.이 곡은 이후 80년대 초반까지 대학가 탈춤공연의 단골노래로 자리잡았다. 숨가쁜 ‘금지 인생’에도 휴식기간이 있었다.긴급조치로 인한 감옥살이뒤홀어머니를 모신 ‘무능한 가장’은 교수추천으로 대한항공에 들어간 것.반골의 몸짓은 멈추지 않고 ‘유신헌법 찬반투표’에 대한 시민 불복종운동의한 방법으로 명동성당 문화관에서 공연을 준비했다.공연 3일전 전원이 연행되면서 거사는 무산되었다.이 일로 당국의 눈총을 의식한 회사와 마찰을 빚고 6개월만에 사표를 던진다. 이어진 TBC의 PD생활에서도 한직으로 내몰리자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보성소리’ 승계자 정권진선생을 사사한 것도 이 무렵이다. 세번째 전환점인 판소리 시대를 열면서 ‘금지’행로는 되살아난다.85년 올린 ‘똥바다’는 공연윤리심의위원회의는 반대했지만 대학가에선 불티났다. “저지선을 뚫고 두루마기 입고 철조망을 넘어가 공연하면 1,000∼2,000명이 몰렸죠.민중성이란 알맹이를 대중화하는 길을 보았죠.소수의 강경노선 목소리만 크고 다수의 민주운동진영이 소진상태에 있던 터라 대중화가 시급했죠.예술적 흡인력으로 대중성이란 힘을 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직생활에서 막혔던 ‘끼’를 본인의 말 그대로 ‘포효’하기 시작한 것이다.판소리의 자진모리 장단이 퍼붓는 통쾌함에 한국의 부패세력을 비꼬는 사설은 5공화국의 질식할듯한 시대상황을 배설해준 활로였다.빨라진 걸음은 90년 ‘5월광주’를 낳는다.광주민주화 항쟁 10주년 기념으로 항쟁의 상징인윤상원에 대한 기념비적 소리를 남기고 싶었다. “상원이완 이전에 두번 만난 적이 있어요.황석영 형의 제의로 광주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상원이가 독학한 저의 ‘소리내력’을 외워서 부르더라구요”.월계동 아파트에 칩거하면서 윤상원에 대한 기억을 보듬으며 연습에 몰두하던 시절을 “상원이가 나오는 마지막 날 밤 얘기를 푸는데 눈물이 줄줄 납디다”라고 회상한다.사회와 예술을 아우르는 행보는 93년 절창 ‘오적’으로이어진다.정권진선생을 찾아가 두루마리에 적힌 담시 ‘오적’을 보여주며‘선생님 이것을 소리로 한번 담고 싶습니다’라고 배움을 청했던 소망이 풀리던 순간이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전국민족극협의회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97년,98년 ‘과천세계마당극큰잔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임진택의 문화실천이 갖는 미덕은 과거의 공간에서 박제화되지 않고 현재형으로 살아있다는 데 있다.‘금지’와 친화력이 생긴걸까,최근엔 마당극잔치를 주관하려는 과천시의 ‘얼굴을 달리한 금지문화’와 싸우느라 바쁘다.李鍾壽 vielee@
  • 중증 장애 딛고 전주대 합격 崔貞敏양

    “대학 생활을 하게 된 게 믿기지가 않아요.저를 도와주신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문학도가 되어 평생 아름다운 글을 쓰며 살아가겠습니다” 올해 대학 입시에서 전주대 언어문화학부에 합격한 崔貞敏씨(28·여·전주동암재활학교 졸업 예정)는 앞이 캄캄하기만 했던 며칠 전과 달리 요즘은 세상이 무척 환해 보인다. 중증 뇌성마비라는 신체적인 역경을 딛고 당당히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가슴을 졸이다가 학교측과 독지가의 도움으로 대학문에 들어설 수있게 됐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 뇌성마비를 앓게 된 崔씨에게는 시가 생활의 전부였다.지금까지 쓴 시만도 500여편에 이른다.지난 94년엔 ‘사랑은 꽃이 되어’라는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문학에 대한 그녀의 끊임없는 열망은 그녀를 대학공부에매달리게 했고 올해 당당히 합격했다. 그러나 일정한 직업이 없는 아버지와 개척교회 목사로 일하는 어머니의 수입으로는 딸의 대학 진학을 도울 수 없었다.지난해 12월26일 합격증을 받아쥐고도 가족들은 한숨만 쉬었다. 崔씨의 딱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 대학 朴性洙 총장 내정자는 사비 100만원을 장학금으로 쾌척했다.이 대학 실·처장 6명도 25만원씩 150만원을 모았다.전주시의회 의장을 지낸 崔振鎬시의원도 100만원을 보탰다.崔씨는 등록금최종 납부 유예 기간 마감일인 27일 극적으로 등록할 수 있었다.
  • 흥사단, 北‘꽃제비’돕기 나섰다

    島山 安昌浩선생의 뜻을 받들어 통일운동과 청소년교육,민주시민교육을 펼쳐온 흥사단이 중국 만주지방을 떠돌아 다니는 탈북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 흥사단 조국통일운동본부는 중국 현지의 목사·선교사와 유지들의 도움을받아 부랑아(일명 꽃제비)로 떠도는 북한어린이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펴겠다고 밝혔다.국내에서 성금과 쌀을 모아 만주 지역의 학교와 고아원 등을 통해 북한어린이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도움을 받을 어린이들은 북한의 부모 곁을 떠나 만주로 온 뒤 구걸을 하거나 빵,고구마를 훔쳐 연명하고 있다.대부분은 북한 가족들과 연락이 되고 있으며 가족과 함께 온 아이들도 있다.흥사단은 우선 200여 꽃제비 가족을 도울 예정이다. 조국통일운동본부 金潤彙본부장은 “만주의 북한 어린이들은 구걸을 하거나 훔쳐 마련한 돈과 식량을 국경에서 북한에 남아있는 부모를 만나 건네주기도 한다”면서 “우리 돈으로 20여만원이면 한 가족 4∼5명의 1년치 생활비가 된다”고 말했다. 흥사단이 탈북 어린이 돕기에 나서게 된 것은 金본부장이 지난해 11월 만주에서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신발을 신지 못한 채 식량을 훔치거나 동냥을 하며 지내는 수백명의 어린이들을 만나면서부터. “굶주리고 추위에 떨던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는 金본부장은 중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한달 동안 털실 운동화를 보내기 위한 모금에 나섰다.곧 500여만원이 모이자 운동화 2,500켤레를 사서 지난 6일부터 14일까지 중국으로 가 어린이들에게 신발을 신겨주었다.신발 선물을 받은 북한 어린이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감사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金본부장이 방문했던 만주의 도문,장춘,연길 지방은 중국 정부의 탈북자 색출 작전으로 삼엄한 분위기였다.金본부장은 “만주 땅을 헤매고 있는 2만∼3만명의 북한동포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흥사단은 앞으로 북한 농민들에게 비닐하우스 40여동을 보내는 등 북한주민 돕기에도 나설 계획이다.또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활동도 펴기로 했다.金본부장은 “연변대학에서 북한 교수들과 만나는 등 북한과의 교류 확대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또 가까운 시일 안에 공식 방북 승인을 얻어 직접교류도 하겠다는 생각이다.金美京 chaplin7@
  • 기독교계 남북화해 길연다 금강산서 평화통일 기도회

    금강산에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기독교인들의 예배가 열린다. 개신교 8개교단 연합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회장 丁哲範 성공회대주교)는 다음달 22일부터 25일까지 3박4일간 금강산 방문길에 나선다고 밝혔다. KNCC가 주최하고 대한매일·스포츠 서울,현대상선이 후원하는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기독교단체 금강산 방문’에서는 선상 예배와 토론회,초청 강연,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800명 규모로 이뤄질 금강산 방문단은 현대 봉래호 선상에서 통일을 위한기도회를 시작으로 금강산 예배 등 평화통일을 위한 기독교인의 사명을 다짐한다. 특히 행사의 수익금은 조선기독교도연맹을 통해 북한동포를 돕기 위한 헌금으로 쓰여지게 된다.또 방북기간 중 기독교계가 마련한 생필품과 식량 등 ‘사랑의 선물’도 전달할 계획이다. KNCC는 방북 기간 중 남북한 기독교인들의 공동 기도회가 열릴 수 있도록우리 정부와 북한의 조선기독교도연맹에 제의했다. KNCC 총무인 金東完목사(57)는 “과거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독일의 경우기독교단체의 교류가 통일의 시발점이 됐다”면서 “대북선교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이번 행사는 남북교류와 화해,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 참가하는 상도성결교회 黃大植목사(70)는 “북한땅에서 이뤄지는 첫 예배인 만큼 기대가 크다”면서 “남북한 공동기도회가 성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가할 기독교인 및 일반인들은 다음달 6일(토)까지 KNCC (02)763-7323과신일관광 (02)775-3333으로 신청하면 된다. 한편 KNCC는 지난해 대북식량지원에 이어 올해도 ‘1,000원 헌금운동’‘평화의 쌀 모으기 운동’ 등을 펼친다.또 ‘21세기 통일을 다짐하는 나의 삶’ 등의 캠페인과 통일을 다짐하는 100만인 서명운동에 들어간다.오는 4월22일 콘라드 라이저 세계교회협의회(WCC) 총무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북한 기독교 대표단의 서울 방문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趙炫奭hyun68@
  • 故 文益煥목사 5주기 추모행사

    재야운동가 고 文益煥목사 5주기 추모행사가 17일 오후 2시 경기도 남양주군 마석 모란공원의 묘소에서 열렸다.문익환목사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추모행사에는 유족,각계 인사,학생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李昌馥상임의장은 추도사에서 “문목사는 겨레의 현대사와 더불어 살아온 분”이라면서 “당신의 영전에 통일을 안겨드리는 것이 우리 후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 동서를 껴안고 통일로 하나가 되어 더불어 살자(5회)

    지역감정문제는 우리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 왔지만 해소를 위한 노력은 별달리 두드러지지 못했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역감정 해소를 최우선과제로 외쳤지만 구체적인 실천은 뒤따르지 않았다.시민·사회단체 활동도마찬가지였다.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단체도 드물었고 그 기간도 10년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 86년에 출범한 ‘지역감정해소국민운동협의회’는 이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민단체의 효시(嚆矢)라 할 수 있다.“87년 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다”는 게 金知吉 당시 상임의장의 말이다. 국민운동협의회는 ‘동서장애인화합대회’와 학생교류,국토횡단대회 등 각종 행사를 열기도 했지만 다른 관변 행사와 차별성을 갖지 못한 채 사회적호응을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이 단체는 93년 ‘공동체의식개혁국민운동협의회(공개협)’라는 이름으로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姜英勳·李賢宰·劉彰順·南悳祐·玄勝鍾 전 국무총리를 비롯,李英燮·李一珪 전 대법원장,李康勳 전 광복회회장,具常 시인,姜元龍 목사,安東壹변호사,洪一植 전 고려대총장,朴弘 전 서강대 총장 등 각계 원로들이 대거 참여한 순수 민간자율단체였다. 지역갈등의 근본원인을 ‘우리 의식’이 실종된 데서 비롯됐다고 보고 그해결방안을 공동체의식의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공개협 徐聖喆사무총장은 “결자해지(結者解之)차원에서 지역감정문제는 정치권이 풀어야 하지만 이미 정치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것 같다”면서 시민단체가 나서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했다.수년간 이 분야에서 활동해온 그는 “지방을 다녀보면 영·호남으로 나뉜 동서 분할의 지역분권 구도가 이제 충청·강원권으로까지 세분화돼 사분오열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공개협은 기존 조직에 새로이 시·도,시·군·구협의회 등 100여개 지부를만들어 세미나와 토론회,학술회 등을 여는 동시에 공동체의식개혁 실천 100대 과제를 선정하는 등 실천운동으로 발전시키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5월 발족한 ‘국민화합시민연대’(사무총장 金鍾仁)도 문제에 대한접근방식은 공개협과 비슷하다.지역감정문제는 단순하게 지역대립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시민연대측의 판단이다.이미 사회·문화적 대립관계로까지 변질돼 그 골도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대립은 50년 만의 여야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지역대립의 감정적 응어리가 더욱 증폭될 위험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지역주의와 지역대립이 계속된다면 국민적 분열에 따르는 국가 안위상의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습니다.우리는 국가의 갈등과 분열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모였습니다’.시민연대 발기문의 일부이다.소극적으로는 국가 분열방지운동이지만 적극적 의미에서는 한국 통일운동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金鍾仁사무총장은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잘 자라지 못한 데는 지역분열로 인해 국민적 역량을 민주적 방식으로 결집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설명했다. 金총장은 “지역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 단순한 지역갈등을 넘어 지역소외문제,지방자치문제,북한문제,해외동포문제 등을 해결하는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연대가 제시한 국민화합운동 방식은 민간 부문이 주체가 되고 지방자치단체는 사업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홍보용이나 일회성 사업은 지양하고 실용적인 사업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영·호남뿐 아니라 충청·강원 등 단위지역 모두가 함께하는 경제교류,교통수단의 활성화,초·중·고 학생들의 교류확대 방안 등을 구상중이다.지난해7·21 재·보선 과정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했던 사례를 분석,발표했던 것처럼 정치활동과 사회현상을 감시해 국민에게 알리는 일도 추진할 방침이다.李志運 崔麗京 jj@
  • ‘양심수 없는 나라’ 출판기념회

    국가 보안법 철폐 및 양심수 석방 등을 위한 인권운동의 발자취 및 연구성과를 모은 ‘양심수 없는 나라’ 출판기념회가 11일 저녁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열렸다. 洪根洙목사,文奎鉉신부 등이 함께 쓴 이 책에는 지난해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 50돌을 맞아 발표한 ‘민권구국선언’ 전문을 비롯,민중의 기본권보장과 양심수 석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발간하는 격주간지 ‘양심수 없는 나라’에 게재됐던 글 및 국가보안법 관련 논문 등을 싣고 있다.행사에는 吳世徹 연세대 교수,李甲用 민주노총 위원장,金貴植 전교조 위원장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金煥龍 dragonk@
  • 문익환목사 삶의 흔적·문학작품 모은 전집 출간

    문익환 선생의 삶은 거대한 스케일의 대하소설이다.분단과 독재를 배경으로 펼쳐진 장대한 소설의 주인공처럼 살았다. 그는 열정적인 민족주의자였다.통일을 염원하는 뜨거운 민족애는 차가운 냉전의 벽을 넘어 북한을 방문하는 열정으로 나타났다.그는 종교와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는 큰 포용력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독재의 현실이 너무 갑갑했다.그래서 독재권력이라는 거대한 힘에 끝없이 도전했다.민중을 억압하는법을 깨면서 살았다.그러나 어둠의 밤이 영원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그는 찬란한 역사의 아침을 믿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흔적이 배어있는 작품을 모은 ‘문익환 전집’이 11일 출판된다.‘통일맞이 늦봄 문익환 기념사업회’가 발간하는 그의 작품 하나 하나에는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한 ‘불행한 시대 자유인’의 삶이 현대사의 한 부분으로 담겨 있다.사계출판사는 타계 5주기를 맞아 12권의 전집을 800질 한정본으로 발간한다고 밝혔다. 제1권과 2권은 시인으로서의 문익환 선생을 조명한다.3권부터 5권까지는 통일을 향한집념과 발자취 및 민주화 투쟁 과정을 담고 있다.6권은 수필이다.7권에서 9권까지는 투옥기간에 가족과 지인에게 보낸 옥중서신,그리고 파스요법등 그가 창안한 민중의학으로 꾸며져 있다.10권과 11권은 신학자이며 목사였던 그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12권은 설교문으로 구성돼 있다. 늦봄 문익환은 1918년 북간도 용정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시인 윤동주와는 고향에서 초등·중학교를 같이 다녔다.그의 생애에서 윤동주는 언제나 ‘별’이었다.윤동주가 ‘별 헤는 밤’에서 어둠을 뚫고 찾아오는 아침과 조국광복을 믿었듯이 그도 민주주의와 통일시대가 올 것을 믿었다. 윤동주가 마음의 별이었다면 그를 70년대 반독재투쟁에 나서게 한 것은 장준하였다.그는 3권에 실린 ‘역사를 보는 눈’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장준하의 죽음을,아니 그의 마음을,그의 뜻을,그의 나라사랑·겨레사랑을 땅에 묻어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그의 시체를 땅에 묻으면서 저는그의 죽음 앞에 맹세했습니다.“네가 하려다가 못다한 일을 하마.” 그는 신학교후배인 장준하와의 약속대로 반독재투쟁의 한가운데 섰다.그의 활동은 76년 3월1일 명동성당에서 발표한 ‘민주구국선언’으로 하나의 절정을 이루었다.그는 선언문을 기초했다.명동선언은 유신독재에 대한 도전이었다.‘7·4공동성명 이후의 민족문제’라는 글은 절박했던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긴급조치 1호가 발동된 74년 1월을 김지하는 ‘죽음’이라고불렀다.학원의 외침마저 침묵해 버렸다.이 암흑기에 누군가 민족의 진로를염려해서 할 말을 했다는 기록만이라도 남겨야 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던 그가 새삼스럽게 발견한 것은 분단의 현실이었다.그는 모든 문제의 뿌리는 분단에 있으며 민주화와 민족통일은 다른 과제가아니라 하나라고 인식했다.그리고 통일이 민족문제 해결의 완결편이라고 생각했다.“동학 농민혁명에서부터 70·80년대 인권운동에 이르는 민족의 수난사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모든 과제들을 한꺼번에 푸는 일은 통일입니다”라고 ‘역사를 보는 눈’에서 지적했다.통일은 그러나 평화적이고 민족 주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그의 글은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자주적 통일 제단에 하나의 벽돌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그는 마침내 분단의벽을 넘었다.1989년 3월25일.문익환이 평양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한국뿐만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깜짝 놀랐다.그는 88년 그믐날을 명상으로 지샌후 89년첫 새벽에 쓴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시 마지막 줄을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라고 끝맺으며 방북의 결의를 다졌다. 그는 김구 선생이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기분으로 북한에 왔다고 도착성명에서 밝혔다.그는 북한에서도 “북은 자유를 남은 평등을 향해서 궤도수정해야 한다”는 자신의 지론을 강조했다.그의 논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창조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앤서니 기든스 교수의 ‘제3의 길’과 맥이 닿아 있다. 통일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서 기독교 신앙과 시는 힘의 원천이었다.그는많은 시를 썼다.쉰이 넘어 문단에 데뷔한 그는 “시가 거의 40%를 차지하는구약성서를 번역하다 뒤늦게 시인이 됐다”고 밝혔다.신경림 시인은 작품해제에서 “그의 가장 치열한 시 정신은 민족현실을 아파하는 시,통일을 염원하는 시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문익환은 10여년 동안의 옥중생활 중에도 많은 시와 산문을 썼다.그의 옥중서신은 바깥 세상을 향한 ‘희망의 종이 비행기’였다.그의 글은 쉽고 명료하다. 행동하는 구약 신학자였던 그는 독재권력과 제도권 언론으로부터 많은 탄압과 비난을 받았다.그러나 권력과 제도의 속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의 다양한 삶을 살았다.그래서 그는 ‘생의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았다.李昌淳 cslee@
  • 한길교회 嚴堯燮목사 별세

    1943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외교관 언론인 기업인 대학 교수 등 다채로운경력을 가졌던 한길교회 嚴堯燮목사(83)가 9일 오전 7시 한양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함경남도 문천군에서 태어난 嚴목사는 지난 58년 한길교회 목사를 맡은 뒤60년 주일(駐日) 수석 공사,66년 주에티오피아 대사 등을 거쳐 70년 대한일보 수석 전무 겸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기독교산업사회연구소 이사장,한국대학봉사회장,자유지성 300인회 상임이사를 맡기도 했다.국제와이즈맨클럽국제총재도 역임한 嚴목사는 한국 와이즈맨(YMCA회원)으로는 처음 지난 90년 밸런타인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장남 嚴在雄씨(58) 등 2남1녀가 있다.빈소는 서울 삼성의료원,발인은 12일 오전 9시.장지는 경기도 문산 기독교공원묘원.(02)3410-0911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4회)

    ◆종교계 '민주운동 거목' 박형규 목사 지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교회의 실천운동을 벌이면서 숱한 옥고를 치렀던 朴炯圭목사(76).유신체제 아래서의 대표적 반체제 인사로 꼽히며 민주화운동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재야 원로다. 박목사는도시 빈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운동으로부터 시작해 남산 야외음악당사건과 민청학련 사건,그리고 교회탄압에 맞선 노상예배 등 굵직굵직한 사건의주역으로 92년 은퇴때까지 가시밭길을 걸었던 종교인.유신체제 하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인한 탄압과 압박은 5·6공 군사정권까지 계속돼 민주화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종교계의 거목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박목사가 세인들의 관심대상이 된 것은 73년 남산야외음악당 사건.이로부터 시작된 민청학련 사건과 이와 관련한 그의 금서(禁書) ‘해방의 길목에서’(74년 사상사刊)에는 잊지못할 사연이 담겨 있다. 남산 야외음악당사건은 서슬퍼런 유신체제에 대해 공식 항거한 첫 집단운동.10월 유신이 시작된지 6개월만인 73년 4월22일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렸다.당시 수도권 특수지역선교위원장을 맡고 있던 박목사는각 교단의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빈민들의 실질적인 문제를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운동을 추진하고 있었다. 20개 교단의 연합예배가 열리던 이날 행사장에는 10만명이 운집했다.언론자유와 학원자유 교회갱신 등을 주장한 플래카드와 전단을 마련,행사 당일 알리려는 사전 준비가 돼 있었다.행사장 주변에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펴 전단과 플래카드를 준비한 학생과 지역주민들이 정작 행사장 근처엔 접근도 못한 채 전단과 플래카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모두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날 행사에 참가하려다 불발에 그친 한 주민이 장롱속에 감추어 두었던 플래카드가 보안사 출신 이웃에게 알려지면서 불거졌다.집요한추궁끝에 박목사가 행사를 주동했음이 밝혀졌다.박목사는 7월부터 9월까지재판이 진행된 뒤 내란예비죄로 7년을 구형받고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선고 이틀뒤 보석으로 풀려났다. “내가 주도하는 활동중 도시빈민선교에 당국의 시선이 곱지 않았지요.보건소 이용이나 오물처리에 대한 혜택 등 실질적인 문제에서 철저하게 소외된도시빈민들이 스스로 항의하고 요구하도록 만드는 것에 치중했는데 좌경용공으로 몰렸습니다.정치적 자유없이는 이웃사랑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아래 빈민선교와 정치적 투쟁을 병행한 것인데 결국 철퇴를 맞은 것입니다” 남산 야외음악당사건이 이렇게 끝나자 맨 먼저 찾아온 사람들은 학생들과대학교수 등 지식인층이었다.그들은 서슬퍼런 상황에서 박목사가 보석으로풀려나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고 있었다.이때부터 민청학련이 시작된다.당시 민청학련 10인위원회에는 박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던 서울제일교회 대학생부 학생들이 소속돼 있었다.74년 정초에 세배하러 온 이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알렸다.그리고 자금주선을 요구했다.박목사가 尹潽善 전대통령에게 이야기를 전했고 尹 전대통령도 선뜻 응했다.그러나 민청학련은 결국 발각돼 모두 묶여 들어갔고 박목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사정권은 이 사건을 북한의 지령을 받고 한 것으로 몰아갔고 여기서 박목사는 대통령긴급조치4호 위반,국가내란음모혐의로 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으나 10개월뒤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해방의 길목’은 박목사 재판이 진행되던 때 전국기독학생총연합회 간사였던 서울대학생인 아들 박종렬목사(현 전국기독학생회총연맹 총무)와 부인,종교계 인사들이 박목사의 좌경성을 부인하기 위한 증명차원에서 펴낸 책이다.68년부터 70년까지 박목사가 기독교잡지 ‘기독교사상’의 주간으로 일하던 때 쓴 권두언과 설교들을 묶은 것이다.박목사는 감옥에 있을 때였다. 책이 나온 뒤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출판기념 행사가 열렸는데 입추의 여지없이 많은 사람들이 왔다.책은 처음에 1,000부를 발간했으나 매진되자 다시 2,000부를 찍었다.그러나 이듬해 5월 마침내 ‘금서’로 묶였다.이책은 모두 압수당하고 지금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당시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이 거의 없었습니다.서슴없이 유신비판을 하고 나선데 대한 제재였지요.그때는 박형규 일당만 제거하면 기독교계는 문제없다는 말이 돌 정도였으니까요” 5공에 들어서는 박목사에 대한 압박이 더욱 심해졌다.박목사가 제일교회에서 목회활동을 못하게 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그래서 ‘노상예배’가 시작된다.보안사의 사주를 받은 조직폭력배들이 교회건물 방에서 합숙하면서 직원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결국 84년 추석 전날 감금당하고 다음날까지 경찰들이 포위한 가운데 깡패와 반대파 교인들이 ‘박형규는 항복하라’며 수도 전기 전화선을 끊어버린사건이 일어났다.그해 12월9일부터 노상예배의 험로가 시작돼 90년 12월9일까지 6년동안 계속됐다.매주 치안본부장에게 전화를 걸고 중부경찰서 앞에서 예배를 지속했다.이 노상예배는 일종의 ‘순례지’가 됐으며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참석해 설교를하기도 했다. 그는 유신정권과 5·6공은 물론,문민정부에 들어서도 활동의 제약을 받았다.“여권 발급을 자유롭게 못받아 필요할 때마다 정부에서 내주는 단수여권을 써야만 했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1년짜리 복수여권만 받을 정도였지요.95년 사면된 뒤에야 정상을 되찾았습니다” 박목사는 92년 8월 서울제일교회에서 은퇴,험하고 험한 현역 목회자 생활을마감했다. 글 金聖昊 kimus@
  • 금서 ‘해방의 길목에서’ 어떤 내용 담겨있나

    朴炯圭목사가 남긴 책은 ‘해방의 길목에서’를 비롯해 ‘해방을 향한 순례’‘파수꾼의 함성’‘폭력을 이기는 자유의 행진’ 등 다수가 있다.이가운데 유일한 금서 ‘해방의 길목에서’는 박목사의 사상과 신앙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요체다.이 책에 실린 글들의 주요 부분을 발췌해본다.● 교육과 그리스도교 중학교 무시험제도 대학입학자격 예비고사제도 그리고 국민교육헌장의 발표,이 세가지는 한국교육의 세 방향을 보여주는 정부의중요시책이다.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오히려 행정부가 어떤 숨은 정치적인 신념과 목적을 가지고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예언자의 역사의식 우리는 모두 국가비상사태라는 이 세상의 아들들이 만들어낸 통치수단에 순응하여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아닌가●마르크스의 휴머니즘 오늘의 공산주의 사회는 국가라는 거대한 독점 자본각가 전 국민을 인격없는 임금노동자로 만들어버린 기형적인 자본주의에 불과하다.●소외된 대중과 교회의 선교(73년5∼6월 빌리 그레함 한국전도대회를 보고) 110만의 신도를 여의도 대광장에 모은 한국 기독교의 눈에는 한국 사회의밑바닥에서 이 사회를 떠받치느라고 피와 땀을 흘리며 살과 뼈를 갈아 희생의 제물이 되고 있는 근로대중의 현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한반도의 미래와 교회의 선교자세 공산 북괴와의 대화와 상호작용에서 최종적으로 판가름하는 것은 남한에 있는 영세대중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도와 주권의식및 민권투쟁의 역량 여하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모름지기 한반도의 적화를 방지하려는 권력자나 지도자는 지금부터라도 대중의 저항력과 창조력을 육성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밝은 한국을 찾자(9·14삼선개헌안과 국민투표법안 변칙처리)에 대해 이제다시 흑암의 세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조국의 광명을 지키기 위해 일본제국주의와 싸웠고 또 붉은 마수와 접전하여 수많은 순교의 피를 흘린 한국교회는 이제 다시 대두하는 밤의 세력과 대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 박형규목사 그의 길

    ●1923년 경남 창원출생 ●64년 서울노회 초동교회 부목사로 시무 ●68년 월간 기독교사상 주간 ●70년 재단법인 기독교방송 상무이사 ●72년 서울노회 서울제일교회 담임목사 취임 ●73년 부활절 남산야외음악당 연합예배 시위사건으로 국가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구속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 기소 ●81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제66회 총회장 ●82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장 ●84년 폭력배들의 폭력을 피해 중부경찰서 앞 노상에서 주일예배 시작 ●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92년 서울제일교회에서 은퇴
  • 지난 1000년 최고인물 獨구텐베르크

    지난 1000년 동안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일까. 최근 B.바우어스 등 두 쌍의 미국 언론인 부부가 낸 저서 ‘1000년,1000명의 인물:1000년을 만든 사람들’(고단샤 아메리카출판사)은 금속활자를 발명한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1468)를 꼽았다. 지난 1000년간 역사의 변화를 이끌었던 영향력에 따라 1,000명의 순위를 매긴 이 책은 금속활자로 지식혁명을 일으켜,종교개혁과 근대사회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점을 1위 선정 이유로 밝혔다.또 서구인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딘 C.콜럼버스와 근대서구사회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종교개혁의 지도자 마르틴 루터를 각각 2,3위로 꼽았다. 2차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는 20위,그를 패배시켰던 미국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37위로 조사됐다.여성중에서는 영국의 최전성기를 열었던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31위,동양인중에는 ‘인도독립의 아버지’ 간디가 12위로 가장 높게 랭크됐다.1000명중 아시아인은 5%에도 못미친 50명 이하,여성은 15%에 불과했다.20세기 사람은모두 136명으로 미국의 인권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56위),원자탄생산을 지휘한 J 오펜하이머 박사(80),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237),엘비스 프레슬리(352) 등이 포함됐다.李錫遇 swlee@
  • 평양의사들 레이저치료기 보며“이게 뭐요”

    20년이 넘어 작동되지 않는 의료기기,면봉을 소독해서 쓸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약품,수술에 필요한 조명의 반도 안되는 어두침침한 수술실274. 7일 방영된 MBC-TV 다큐스페셜 ‘평양체류,6박7일’에 비춰진 북한의 의료실태는 참담했다.더욱이 그곳이 북한 최고의 의료시설을 자랑하는 ‘평양의대병원’이라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이 화면은 지난해 11월 미국의 ‘북한바로알기센터’(사무총장 찰스 워크먼)와 ‘민족통일 에스라운동협의회’(대표 조동진 목사) 소속 의료진이 포착한 것.이들은 7일간 평양에 머물며 의료실태와 육아시설을 점검했다. 의료진이 처음 방문한 평양의대병원의 기기는 보통 수명이 20년이나 지난것이 대부분이었고,이마저 부족해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기구들을 무리하게쓰고 있었다.약품 또한 턱없이 부족해 의사들이 직접 산을 헤매며 약재로 쓸 약초를 캔다. 레이저도 인터넷도 모르는 북한 의사들은 미국에서 온 레이저 치료기를 신기하게 바라보는가 하면 인터넷으로 의료정보를 교환하자는 미 의료진의 제의에 어리둥절해했다.악화된 전력사정으로 병원 복도는 물론 수술실도 정밀수술에 필요한 조명의 반도 못켜고 있었다. 이밖에 평소 접근이 힘들었던 자전거보관소 직원,풀빵을 파는 아낙 등 주민들의 표정은 의외로 수줍고 친근했으나 체제의 한계에서 오는 암울함과 고통의 그림자는 너무도 짙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李順女 coral@
  • 대한매일‘전문가 특별기고’ 신설

    공익정론지로 거듭 태어난 대한매일은 새해부터 각계의 권위있는 학자 종교 인 시민사회단체 대표등 전문가를 초빙,특별기고란을 신설합니다.이들 필진 들은 국내외 정세는 물론 사회와 국정 현안등을 심도있게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줄 것입니다. 기존의 ‘대한광장’지면과 함께 꾸며질 특별기고는 문제의 핵심을 현상적 으로 접근하기보다 문명사적 시각으로,그리고 중후한 대안을 제시하는 차별 화된 칼럼이 될 것입니다.독자 여러분과 함께 새해 새시대를 열어가는 뜻깊 은 동반의 길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필진들은 월 2회 집필하게 됩니다. ●필진 ● 姜萬吉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金信福 서울대 행정대학원 장 ●文石南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朴鍾淳 서울 충신교회 목사 ●成裕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知詵 백양사 주지스님
  • 부정부패 뿌리뽑는다(2회)- 건설·부동산개발

    비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업종이 건축·건설업이다.지난해 말 대검이 적발,사법처리한 437명의 공무원 중 49%인 214명이 건축·건설 관련 공무원 임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건축·건설 관련 부조리는 공사발주·감독과 관련한 관행적 금품수수뿐만 아니라 건축정책 입안,사업승인,건축허가,준공검사에 이르기까지 뇌물이 만 연한다. 대검이 발표했던 건축·건설 관련 비리 사례를 살펴보자. 부산지방철도청 소속 柳모씨(55·6급)는 국유지인 철도부지 불하 대가로 자 동차 정비업체로부터 1억원을 챙겼고 서울 관악구청 건축과 盧모씨(40·7급) 는 관내 건축사들로부터 305회에 걸쳐 2,075만원을 수수,이중 1,220만원을 상급자 5명에게 매달 15만∼30만원씩 상납했으며 같은 과 李모씨(37·7급)도 291회에 걸쳐 1,735만원을 받고 이중 825만원을 상납했다. 수원시 도로과장 李모씨(42·5급) 등 수원시 공무원 11명은 시청 발주 공사 와 관련,업체 선정과 공사감독 묵인 대가로 정기적으로 350만∼3,500여만원 씩을 받아 챙겼다. 이같은 유형의 건축·건설 관련 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관 련업종 종사자들의 얘기다. 건설업 중 대규모 토목사업이나 플랜트 사업의 경우 워낙 단위가 큰데다 중 하위직 공무원의 개입여지가 없어 정치권 등 상층부와 연계되는 수가 많다. 이러한 거래의 떡값(?)은 보통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액이며 노 출도 거의 되지 않는다.이같은 비리는 국가적 차원에서 대규모 사정이 있을 때만 밝혀지는 것이 특징이다. 중하위직 공무원 비리는 대부분 주택건설사업이나 민간 건축사업의 인허가 ·설계변경·용도변경 등 사업추진시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와 관련된 것이 다. 주택건설사업을 추진하려면 토지매입에서 분양승인까지 최소 4∼5단계의 절차가 있다.이 과정에서 무려 16∼17개 부서 30∼40개 담당을 거쳐야 된다. 많은 단계를 거치다 보니 법령이나 지침에 미비한 사항이 발생하기 마련이 고 이를 풀기 위해 뒷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어떤 때는 담당공무원이 원 하지 않아도 알아서 뇌물을 손수 챙겨 주는 사례도 많다. 대형 건설업체의 한 인허가 담당 임원은 “인허가 절차를 앞당겨 빨리 사업 을 마무리짓는 편이 사업비를 절감할 수 있다.급행료를 좀 주고라도 일을 빨 리 마무리짓는 것이 낫다”며 “급행료는 필요악”이라고 말했다. 건축·건설 관련 공무원들도 업종 자체가 ‘돈놓고 돈먹기 사업’‘말뚝만 박으면 떼돈 버는 사업’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뒷거래는 너무 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대검이 발표한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1인당 평균수뢰액을 분석해보면 토지분 야가 2,421만원으로 가장 많고,건축분야도 1,284만원이나 된다.보건 1,185만 원,납품분야 685만원 등과 비교하면 건축·건설 관련 공무원들의 뒷돈 거래 규모와 관행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朴性泰 sun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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