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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천 냥 빚과 말 한마디

    “말,그것으로 인하여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내고 산 자를 묻을 수도 있다.말,그것으로 인하여 소인을 거인으로 만들고 거인을 철저하게 두드려 없앨 수도 있다”이것은 하이네가 한 말이다. 어느 날 가위와 톱과 혀가 서로 입싸움을 벌이고 있었다.먼저 가위가 입을열었다.“나는 어떤 천이라도 날카로운 내 이빨로 끊어낼 수 있다.조금도 흠을 남기지 않고서 말이다”그러자 톱이 말했다.“내 이빨은 장작을 썰어낼수 있고,나무토막도 거뜬히 베어낼 수 있다” 그러자 혀가 소리쳤다 “너희가 아무리 으시대 봤자 소용없다.내가 가진 위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나는 남의 명예나 평판을 단번에 반쪽으로 쪼갤수 있다.친구 사이에 끼어들어 의리를 갈라 놓을 수 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간사와 가정일에 파고들어 짓이겨 놓을 수도 있다.나는 닳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짓씹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그러자 가위와 톱은 입을다물고 말았다는 옛날 얘기 한 토막. 우리 사회는 언어폭력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의 신음소리로 가득하다.신은 인간을창조하실 때 금수가 가질 수 없는 두 가지 기능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은 신의 품성을 닮은 이미지와 언어이다.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이며 신을 경배하는 신앙수단이었다.그리고 훨씬 뒤 인간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언어를 손으로 표기하는 문자를 발명했고 그것은 현재 정보통신의 시발점이 되었다.그러니까 언어나 문자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보다 더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자는 데 그 뜻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언어와 문자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인간 살상무기로 오용되는가 하면 남용되고 있다.최근 사이버 공간에서의 언어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가 하면 사이버 스토킹까지 등장하고 있는데도 제도적 장치는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다. 언어폭력은 독버섯처럼 뻗어나는가 하면 독가스처럼 계층도 없이 스며들고있다.부부가 주고받는 일상대화,감정이 치솟았을 때 주고받는 대화의 수위는 어떤가.그리고 그 틈새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받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언어순화는 가정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정치권의 책임도 만만치 않다.국회의원들의 상대당 깎아내리기와 상대당 지도자 흠집내기에 동원되는 언어폭력을 지켜보노라면 그 양식이 의심스럽다.솔직하게 말하면 우리 아이들이 뉴스를 볼까 겁난다. 언어폭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영상과 전파,그리고 인쇄를 포함한 모든 매체의 책임은 더 중하고 크다.대문짝만한 활자와 지면으로 개인이나 공동체를 파멸시키다가 그것이 오보로 밝혀졌을 때 정정이나 사과보도는 하단석줄로 얼버무리는 인쇄 매체들,한 사람의 인격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대하드라마로 엮어 짓밟은 후 정정보도는 토막소식으로 다루는 영상 매체들. 그뿐인가,건전문화 창달과 국민계도의 첨병임을 자처하는 대중매체들이 소비와 향락문화를 부추긴다면 이것이야말로 위험수위를 넘어선 폭력이 아닐수없다. 1930년대 미국이 경제공황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미국국민들은 루스벨트대통령의 라디오연설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이유는 국민들에게 위로와 비전을 제시하는 대국민 연설을 했기 때문이었다. 인간만이 자신의 욕망과 행동,그리고 언어와 사상을 조절할 수있는 힘을가지고 있다.절제되지 않는 언어는 살상무기이며,조절되지 않는 행동은 활화산과 같아서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르게 될지 모른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네 조상들의 금언은 전원을 가로질러 풍겨오는 꽃내음처럼 소박하고 싱그럽다.언어폭력일랑 몰아내고 우리동네를 꽃마을로 만들자. [朴鍾淳 충신교회 담임목사]
  • [기고] 정치위기 극복을 위한 제언

    지난 7일 국회에서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됨으로써 국민의 정부가표방하고 나선 개혁정치가 중대한 장애에 직면하였음이 한층 더 분명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국민들의 정치혐오와 정치 그 자체의 위기가 심화될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7개월 동안 국민들은 국세청을 동원하여 대선자금을 모금하였다는 전대미문의 범죄 혐의가 있는 현역의원의 구속을 회피하기 위해 임시국회가 다섯 번 열린 것을 납득하기 어려웠다.이런 판국에 체포동의안 처리마저 부결되었으니 이를 이해할 수 있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시민단체들은 입법기관이 정당한 법집행을 무시하고 의원 면책특권을 악용하였다고 일제히 비난하고,의원투표 실명제 등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시민단체들의 지적은 이 사건을 보는 국민의 정서를 잘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체포동의안 부결 사건의 뿌리는 보다 깊은 곳에 있다.의원들의 투표 결과를 보면,공동여당으로부터 최소한 20표가 이탈한 것으로 분석된다.이이탈표가 어디서 나왔는가를 분명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적어도 두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하나는 내각제 관철을 위해 ‘몽니’를 부리는 정파의 이탈 가능성이고,또다른 하나는 비리혐의가 있는 여당의원들,특히 당적을 바꾼 후 여당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의원들의 이탈 가능성이다.앞의 추측이 옳다면,공동여당 내부의 내홍으로 인해 개혁정치의 실천이 중대한 차질을 빚고 있는 셈이고,이로인해 공동여당의 미래가 불확실해 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뒤의 추측대로라면,그것은 ‘의원 빼내오기’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몸집을 부풀린 집권 공동여당이 개혁정치를 실현하는 데 내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추측이 옳던지 간에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오늘 우리 정치에서 개혁정치의 실천주체가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고,바로 이 때문에 개혁정치가 실종할 위기에 직면하였다는 것이다.이것이 오늘 우리 국민들이 겪고 있는 정치위기의 본질이다.야당이 체포동의안 부결을 빌미로 삼고 정치공세를 강화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정치위기는 더욱더 심화될 염려가 있다. 이 정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임기응변의 정략을 가지고서는 이 위기를 풀 길이 없다.국민의 정부가 표방하는 개혁이 정치위기에 발목이 잡혀 실패하고 만다면,그 결과는 참혹할 것이다.정치불신과 경제위기의 무거운 짐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 전면적인 개혁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은 만큼 이를 추진하는 데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이 정치적 리더십은 개혁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우리 사회의 밑바닥으로부터 이 청사진을 실현하는 자발적인 주체를 형성하는 데서 비롯될 것이다. 국민의 힘이 ‘애굽의 고기가마’를 그리워하는 세력들을 압도하지 않는 한,이 세력들의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 정치의 위기는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내각제로 인한 집권여당의 내홍도 이 국민의 힘을 통하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정치의 복원을 위한 정공법은 국민의 힘에 의지한 과감한 정치개혁에 있다. 徐相穆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은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이미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득하고 있다. 강원돈 목사·아시아경제윤리연구소장
  • [제2공화국과 張勉](13)분출하는 욕구(上) /사형수 편지

    ‘혁명은 독한 술과 같다’던가. 4월혁명 후 한국사회는 용광로처럼 들끓었다.李承晩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학생·시민은 제각각 품고 있던 기대와 욕구를 마음껏 뿜어냈다.남자나 여자,노인과 아이 가릴 것 없이 모두들 시위에 나서 목청을 높였다.그것은 어쩌면스스로 자유를 쟁취한 자의 권리행사였다. ‘데모로 해가 뜨고 데모로 해가 진다’고들 말한 張勉정부 8개월여.그때일어난 데모 중에는 지금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사례들이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교사전근 반대’를 내세워,또 ‘어른들은 이제 데모를 그만 하라’고 요구하며 각각 데모하는가 하면 경찰관들은 국회의원이 경찰관의따귀를 때렸다고 시위를 벌였다.군인도 예외는 아니었다.논산훈련소에서는정훈부 사병들이 “宋모중령이 우리를 머슴처럼 부려먹는다”고 항의데모를벌이려고 해 장교들이 가까스로 저지한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 시기의 데모가 모두 무절제하고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많은 부분은 자유당 독재정권의 유산을 청산하는 일과 관련이 있었다.6·25 때의 양민학살사건 진상을 밝혀달라는 요구가 대표적인 예다. 1960년 5월11일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는 주민 70여명이 朴모씨를 불태워죽이는 처참한 사건이 일어났다.51년 이 지역에서 양민학살이 있었는데 당시 면장이던 朴씨가 주민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유족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사건발생 후 경찰이 출동했지만 오히려 주민들에게 매를 맞고 쫓겨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곳곳에서 양민학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달라는 요구가빗발쳤고 이에 따라 국회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직접 조사에 나섰다.그결과 신원면에서는 51년 봄 3개 부락 주민 600여명이 빨갱이로 몰려 金宗元이 지휘하는 화랑부대에게 학살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때 국회조사반이 파악한 6·25 당시의 양민 피살자는 경남 2,892명,경북2,200명,전남 524명,전북 1,028명,제주 1,878명 등이었다. 張勉정부 하에서의 가장 충격적인 시위사태는 60년 10월11일 발생했다.‘4월혁명유족회’회원을 비롯한 시민·학생 수천명이 민의원에 난입한 것이다. 그 원인은 4·19 때의 발포자,3·15 부정선거 관련자,정치깡패 등 4월혁명을 불러 일으킨 범죄자들에 대한 법원 판결이 너무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10월8일 서울지법 형사1부는 피고인들에게 1심 형량을 선고했다.발포건과관련해서는 柳忠烈 당시 서울시경국장에게만 검찰 구형대로 사형을 언도했을 뿐 역시 사형이 구형된 洪璡基내무장관에게는 징역 9월이,郭永周 대통령경호관에게는 징역 3년이 각각 떨어졌다.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무죄 또는 징역 8월∼5년이 언도됐다. 민심은 크게 격앙했다.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마산 등 전국 각지에서 재판부를 규탄하는 데모가 잇따르다가 급기야는 10월11일 내각책임제 권력의심장부인 민의원을 강타한 것이다. 국회 난입에는 환자복에 목발을 짚은 4·19 부상자 50여명이 앞장섰다.이들은 본회의장으로 몰려가 의사진행을 중단시켰다.그들은 “하루빨리 혁명입법을 완성하라”고 요구했으며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신·구파가 싸우지 말고 화합하라”고 강요했다.이에 구파의 金度演과 신파의 林文碩,구파의 徐範錫과 신파의 李哲承이 억지로 악수를 나누는해프닝이 벌어졌다. 그 상황을 郭尙勳 민의원의장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당시 부상학생의 위세가 당당하여 마치 부상학생들의 천하와 같은 감이들었고 아무도 감히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정권을 우리가 주었는데’하는 생각은 ‘부상학생 천하제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국회에 경호권을발동하여 한번 크게 호령을 해줄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그들의 항의방법이너무도 졸렬하여 그만 자신을 잃어버렸다”거듭되는 데모로 사회는 불안정하고 정부의 권위마저 땅에 떨어진 듯한 이같은 상태,훗날 ‘무능하다’는 비판의 근거로 제시된 이 상황을 張勉정부는어떻게 판단하고 있었을까. 張勉의 뜻은 “국민이 열망하던 자유를 한번 주어보자”는 데 있었다(회고록에서 인용).그는 “오랫동안 자유당정권 하에서 억눌렸던 국민이 자유가허락된 이때에 쌓이고 쌓였던 울분을 한번은 마음껏 발산시키고 나서야 가라앉을 것은 어쩔 수 없는 뻔한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작용했음도 물론이다.張勉은 “귀와 입으로배운 자유를 몸으로 배우게 하려는 의도”였는데 이는 “이론과 학설로 배운 자유는 혼란을 일으키지만 경험으로 체득한 자유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었다.결국 張勉은 “자유가 베푼 혼란과 부작용에 스스로혐오를 느낄 때 비로소 진실한 자유를 얻는다”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었다. 張총리 의전비서관을 지낸 李泓烈(77)은 4·19부상자들이 민의원에 난입한사건 직후 비서관들이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건의했다고 기억했다.자신을 비롯해 宋元英공보비서관,정보담당인 해군尹대령 등이 시국을 걱정하다 張총리도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별도기구를 직속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한다. 이에 자신이 비서진을 대표해 말했더니 張총리가 “泓烈군,무슨 소리야.민주적인 행정을 하자고 투쟁을 해서 총리가 된 것 아닌가.비상수단을 꼭 써야한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물러날 거야”라고 안색을 바꾸며 꾸짖더라는 것. 張勉과 그의 정부가 믿은 것은 시간이었다.세월이 지나 혁명의 흥분이 가라앉으면국민은 무절제한 자유가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가를 깨닫겠지,그리고그 자각(自覺) 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꽃필 것이라고 기대했다.실제로 1961년에 접어들자 데모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5·16의 총성이 울려퍼지기전까지 張勉정부의 교과서적인 민주주의는 꽃망울을 맺어가고 있었다. - 張勉 저격 共謀 사형수 편지 첫 공개 張勉의 인품과 인간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는 편지 2통이 8일 공개됐다.그의맏아들인 張震 서강대 명예교수 부부가 최근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 편지들은 한때 그의 목숨을 노린 崔勳이 1965∼66년에 걸쳐 보낸 것이다. 崔勳은 1956년 9월28일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벌어진 ‘張勉부통령 저격사건’의 범인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3명 가운데 하나이다.현장에서 張勉에게 직접 권총을 쏜 金相鵬과,金에게 권총을 마련해준 李德信(당시 성동경찰서 사찰계 형사주임) 사이를 연결해준 것이 崔勳이었다. 65년 7월27일자 소인이 찍힌 첫 편지에서 崔는 張勉에의 존경심과 고마움을 절절히 토해냈다.그는 “진작 편지를 올릴 마음 간절하였으나 침묵을 지키는 것이 박사님의 쓰라린 상처를 위로해드리는 일일 것이라는 어리석은 마음에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히고 “은혜를 못잊어 조석으로 박사님을위해 기원하는 한 생명이 이 땅 지붕 아래 살고 있다는 점만은 알려드리고싶었다”고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는 張勉총리가 60년 10월1일 감형을 해줘 사형을 면한 일,그해 12월에는 직접 교도소를 방문해 털내의를 건네준 덕에 따뜻하게 겨울을 난 일들을 기억했다. 崔는 “박사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사상을 시범하신 사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 “박사님이 ‘그대의 죄를 전부 사해주노라’라는 말씀을 친히 들려주실 날이 오기를 간망(懇望)한다”고 기원했다. 張勉은 崔勳에게 바로 답장해 두 사람 사이에는 편지가 여러차례 오갔고,그 편지에서 張勉은 가톨릭에 귀의하도록 권유한 것으로 보인다.현재 남아 있는 두번째 편지(66년 1월9일자 소인)에 이를 알려주는 구절들이 나온다. 새해인사를 겸해보낸 이 서신에서 崔勳은 “박사님의 편지를 받은 후 반년 이상이나 신중히 생각한 결과로 근방의 주임신부님을 곧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가톨릭에 입문할 결심임을 알렸다.이어 “영세를 받기까지는 자주 편지를 올리지 못하더라도 오해 마시기 바라며 그러는 것이 박사님의 심경에 위로를 드리는 것이라는 졸렬한 생각에서”라고 밝혔다. 張勉과 崔勳 사이에 오간 편지는 이 두 통밖에 남아 있지 않다.둘 다 우편봉함엽서이며,‘대구시 삼덕동 82의 1’에 사는 崔勳이 서울 명륜동 張勉의자택으로 보낸 것이다. 崔勳이 편지를 보낸 시점은 張勉이 5·16쿠데타로 정권을 탈취당한 지 4년이 지난 때였다.張勉이 정계에서 완전 은퇴해 자택에서 가톨릭 서적을 번역하는 데 몰두한 시절이다.따라서 崔勳의 편지는 순수하게 인간적인 존경심과 그리움을 담고 있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국무총리로서 국정의 최고책임을 맡았던 정치가,한때 그를 암살하려다 체포돼 사형이 확정됐던 사형수.역사의 현장에서 벗어나 둘만이 나눈 대화는 張勉을 가까이서‘모신’ 어느 누구의 증언보다도 張勉의 인간적인 면모를 진솔하게 들려준다.그 귀한 ‘증언’이 가족도 모르게 30여년을 숨어지내다 올해 ‘張勉 탄신 100주년’을 맞아 세인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張勉에게 총을 쏜 金相鵬은 복역을 마치고 나와 목사가 되었다.金목사는 지난 87년 張勉의 셋째아들인 張益주교(춘천교구장)를 만나 ‘위대한 인격자 張勉’을 함께 회고했다. 李容遠
  • 美거주 광복군 출신 尹致源선생 초청 방한

    “이역만리에서 함께 독립운동을 하며 고생했던 동지들의 얼굴이 눈에 어립니다” 임시정부수립 8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와 광복회의 초청으로 8일 오후 6시 미국 LA발 대한항공 018편으로 서울에 온 광복군 출신 尹致源선생(74·미국시카고 거주)은 감회에 젖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생의 고향은 평안북도 의주.고향을 떠나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마음을정하고 중국으로 건너간 것은 16세 때인 1940년이었다.1944년 11월에는 시안(西安)에서 광복군 제2지대(지대장 李範奭장군)에 입대했다. 45년 5월에는 국내정진군에 편입돼 광복군이 미국 전략첩보기구인 OSS와 합작으로 실시한 특수훈련을 받았다.국내에 침투할 정예요원 50명을 선발,실시한 고된 훈련이었다. 광복후에는 약 5개월 동안 중국 산뚱성(山東省) 칭따오(靑島)에서 일본출신의 한국청년들을 교육하는 일에 헌신하다가 46년 1월 인천항을 통해 귀국했다.목사로 교육사업을 전개하다가 선교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63년에는대통령 표창을,90년에는 국민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한편 이날까지 尹선생을 비롯,李相龍선생의 외증손녀인 허끌라나(67·러시아),安昌浩선생의 외손자 필립 안 커디(44·미 캘리포니아) 등 해외거주 독립유공자 및 후손 32명이 입국했다. 이들은 9일 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10∼12일 독립기념관 등 독립기념시설물과문화유적지,민속촌을 둘러보고 14일 출국한다.
  • 재야, ‘DJ개혁완성’ 힘싣기

    민주화 투쟁에서 정권교체에 이르기가지 金大中대통령의 우군이었던 정통재야인사들이 1년여 관망 끝에 “뭔가 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종로5가권 개신교,불교계,전국연합 등 국민의 정부출범후 침묵을 지키던 정통 재야가 徐相穆사태 등 일련의 사태를 지켜 보면서 국민의 정부 개혁이 기로에 처해 있다고 판단란 것이다. 이들은 “지난 1년동안 인권법 등 국민의 정부의 개혁의지에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고 전제,소수정권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이해해주자는 정도의기류였으나 최근에는 “관망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고 재야의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달 24일 발족한 국민정치연구회(이사장 李在禎성공회대총장)도 따지고보면 이들 정통 재야를 모태로 태어난 제도권 정치 직접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들이다.이에 비해 재야 원로들인 이들은 기득권을 무기로 개혁을 가로막는 세력을 향해 목소리를 냄으로써 국민의 정부 개혁을 돕겠다는 생각을 갖고있다. 이들의 조심스런 기지개는 “지금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개혁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다.이들 가운데는 일부는 DJ개혁의 주체를 대폭 보강하거나 틀을 아예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 NCC총무 金觀錫목사는 호흡을 고르는 중이다.추이를 좀더 지켜본 뒤 목소리를 낼 기회를 갖겠다며 정국을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밝혔다.金목사는 “구조적인 모순을 과감하게 개혁해 나가야 한다”면서 “반작용이 생기겠지만 타협하는 것보다 낫다”고 강조했다. 知詵스님 역시 ‘오리지널 비지파’답게 “金대통령에게는 전국 각지의 침묵하는 비판적 지지세력이 개혁의 보루가 돼 줄 것”임을 강조했다. 李昌馥 민주개혁 국민연합 공동상임대표는 “기회가 되면 DJ 개혁정책을 적극 돕겠다”며 보다 적극적인 자세다.그런가 하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金勝勳신부는 “JP와의 공조 하에서 개혁은 기대난”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더욱 재야가 DJ 개혁에 원군이 돼야 함을 강조했다. 柳敏 姜東亨
  • 제2건국위에 새인물 몰려든다

    제2건국위가 최근들어 ‘뜻있고 개혁적 인사’들이 상당수 몰리기 시작하면서 새 전기를 맞을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특히 제2건국위가 관주도에서 벗어나 金祥根목사가 기획단장으로 임명되는 등 민간주도로 바뀌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과거 관주도 국민운동이 토착 유력인사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지역에서 신망받는 개혁적 젊은이들이 제2건국위에 적극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일단 고무적 현상이다. 제2건국위 관계자는 “제2건국위가 민간주도로 됨으로써 그동안 일었던 정치 관여 의혹 등이 불식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진정 지역사회를 위해일해보고 싶은 인사들이 참여를 희망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 金大中대통령의 ‘젊은층 수혈론’과 맞물려 제2건국위원회가 새로운 ‘인재풀(Pool)’로도 떠오르고 있다.현재 제2건국위원으로는 정부측 인사를비롯,학계,경제계,언론계,문화예술계,민간단체 등 각계 인사 44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이 가운데 기획위원을 지낸 김한길 정책기획수석과 상임위원 출신인金有培 복지노동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했다.柳鍾珌 청와대 제2건국위비서관은 “각계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 제2건국위원들은 그야말로 각 분야에서뛰어난 전문가들”이라고 말했다. 제2건국위 상임위원과 기획위원으로는 각 부처 장·차관을 비롯,金元基 노사정위원장,韓光玉 민화협 상임의장,서울대 金光雄·동국대 黃泰淵교수,韓相震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李^^ 산업연구원장,李鎭淳 한국개발연구원장,朴仁相 한국노총 위원장,崔榮熙 여성단체협의회장 등 8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최근 金대통령은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으로부터 주례보고를 받는자리에서 ‘제2건국운동’에 관심을 표명했다.‘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金대통령의 뜻이다.이를 잘못 해석,제2건국위를 정치권 진출 발판으로 삼겠다는 사람도 있다.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물론 金相賢의원 등 국민회의 중진의원들에게 지자체에서 자율위촉하는 제2건국위 지방추진위원을 맡게 해달라는 민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 [부활절 특집]“예수의 부활생명 나눠 민족위기 극복”

    4일은 부활절이다.부활절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을 축하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가 가장 중히 여기는 축일이다.부활절을 맞아 국제대학생선교회(C.C.C) 원로 디렉터인 김준곤(金俊坤·75)목사로 부터 부활절의 의미와 부활절을 맞는자세 등을 들어보았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인데 요즘 일반인에게는 물론 일부기독교인조차도 이를 관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것같습니다.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공적이면서도 증인과 증거를 내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믿는 자들은 결코 그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4가지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4가지 증명이란? 먼저 진리가 거짓에 승리한 것을 증명합니다.그리고 선이 악에 승리한 것을 입증하고 있고,사랑이 증오를 극복하고 승리한 것을 입증합니다.마지막으로 생명이 죽음에 승리한 것을증거하고 있습니다.때문에 부활을 단순히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특히 IMF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이 부활생명이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역사할 때 우리 민족이 처한 총체적위기는 극복될 것입니다. ▒부활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부활은 더 이상 기독교인들에게만 의미있는 일이 아닙니다.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께서 다시 부활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뜻이었습니다.사랑과 화해,희생,봉사,나눔,섬김의 메시지이지요.그리고 절망에서 소망을 볼수 있도록 해줬습니다.오늘날 세계가 봉착한 인종문제나 종교갈등,도덕적 타락은 물론 우리의 남북문제나 지역감정,노사,빈부,세대간,계층간 갈등문제 등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문제들은 이같은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속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가난하고 고통받는,소외된 자들이 부활의 축복을 받을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굶주리는 북녘동포들을 도와주고 우리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기 위해 특히 믿는 자들이 불씨가 돼 이웃과 고통을 나누는 운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또 살벌한 사회분위기를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로 바꿔가야 할 것입니다.이를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자기 자신과의 관계,타인과의 관계,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그렇게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처한 신앙문제나 도덕적 타락,자연환경의 파괴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아서 특별히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는 현재 남북통일의 강가,21세기의 강가에 서 있습니다.우리는 새로운천년을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맞이해서는 안됩니다.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믿는 자들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능력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21세기를후손들에게 존경받는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죠.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의 부활 메시지를 사랑과 화해와 도덕의 부활로 맞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김목사는 올해 초 3일동안 여의도에서 금식기도회를 개최,여기서 모아진 1억원의 헌금을 결식아동돕기에 쓰는 등 몸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사우스웨스턴 침례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80년 복음화성회 대회장,84년 세계교회기도성회 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 기독교21세기운동 한국대표,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를 맡고 있다.저서로 ‘예수칼럼’ ‘영원한 생명언어’ ‘김준곤 문설집’(전6권)등이 있다. 朴燦 - 부활절 교리와 풍습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지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그리스도가 이렇게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죄와 죽음·악마’를 물리친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활절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그리스도교회의주요축일이다.영어이름 ‘Easter’의 기원은 정확히 알수 없으나 8세기 앵글로색슨족의 사제인 비드는 앵글로색슨족이 숭배하는 봄의 여신 ‘에오스터(Eostre)’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했다. 매년 날짜가 바뀌는 절기가 실린 교회력 전체가 부활절 날짜에 따르고 있어 한 해 예배를 위한 전례력도 부활절을 중심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부활절은그리스도교에서 1년중 가장 중심이 되는 절기이다. ▒부활절의 날짜 서방 그리스도인들은 춘분(3월21일경) 무렵이나 춘분 다음만월(滿月 부활절 달)이 지난 후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그러나 만월이 일요일인 경우 다음 일요일이 부활절이 된다.따라서 부활절은 대개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가 된다. 부활절 날짜를 산출하는 방법은 8세기까지 기독교 여러 분파에서 많은 논쟁을 거친 끝에 결정됐다.그러나 동방정교회에서는 다른 계산법을 따라 서방교회와 일치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1주나 4주,5주 후에 해당된다. ▒종교의식 부활절 전야예배는 2세기경 기독교 예배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할무렵 주일성찬에 앞서 성서를 읽고 ‘시편’을 노래하는 주말 전야예배에서비롯됐다.예배순서는 ‘새로운 불의 강복’ ‘부활절 촛불점화’ ‘성구봉독’ ‘세례반 강복’ ‘세례’ ‘부활절 미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새벽예배는 주로 개신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부활절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부활의 영광’을 보여준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미국 펜실베이니아베들레헴에서 시작된 새벽예배는 이제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초교파적으로열리는데 TV와 라디오로 중계될 정도로 관심이 높다. ▒부활절의 관습 유럽인들의 고대의식과 상징 표현에서 전래된 것이 많지만그중에서도 새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계란나누기’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관습이다.‘계란나누기’는 십자군전쟁에서 유래했다.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부대로 출정한 남편을 가진 한 여인이 고향을 떠나 방황하던중 자신을 정착하게 해준 마을 이웃들의 따뜻한 정에 대한 감사표시로 계란을 삶아 줬는데 바로 그 날이 부활절 날이었다.그녀는 그 계란으로 전쟁에서 돌아와 자신을 찾아 헤매던 남편을 만나게 됐는데이후 매년 부활절이면 부부는 계란에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선물했고이것이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는 유래가 됐다고 한다. 朴燦- 부활절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1885년 부활절 아침,외국선교사들이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한국 개신교회는 일제하에서도 교파별,지역별 연합예배를 갖고 ‘민족의 부활’을위해 기도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부활절 연합예배는 1947년 조선기독교연합회가 서울남산에서 1만5,000명의 기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것이 처음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역할을 했으나 4.19 혁명을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1962년부터 10년동안은 정치적 상황과 연합예배에 대한 개신교내 교파간 입장 차이로 분열된 가운데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기도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가맹교단과 비가맹교단이 각각 남산과 덕수궁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던 것. 70년대 유신체체하에서도 분열과 갈등을 겪었다.그러나 75년부터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보수와 진보교단이 연합하여 예배를 갖다 96년부터는 장충체육관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고 있다. 한편 지난 90년부터는 남북교회간에도 부활절 축하 메시지를 나누어 오고 있다. 朴燦- 개신교 오늘 138개지역 연합예배 4일은 기독교 최대의 경축일인 부활절이다.이날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난 날.20세기의마지막 부활절을 맞아 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등 기독교계 교단은 부활절 연합예배,예수부활 대축일 미사 등을 통해 부활의 기쁨과 함께 그리스도의 부활에 담긴 참뜻을 새겼다. 개신교는 오전 5시30분 서울 장충체육관을 비롯한 전국 138개 지역에서 예년과 같이 연합예배를 올렸다.부활절 연합예배는 수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나뉘어 있는 개신교계가 이를 초월해 함께 하는 유일한 행사.올해는 예장통합과 합동,감리교 등을 비롯한 30여개 주요 교단들이 참여했다. 장충체육관에서는 이날 0시부터 철야기도회에 이어 오전 4시30분 목회자와신학생들을 중심으로 신앙간증과 찬양,기도회로 시작,5시30분부터 1만여명의 신자들이 함께 한 가운데연합예배가 거행됐다. 길자연(예장합동 총회장·왕성교회 당회장)부활절 연합예배 대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연합예배는 강만원 기장 총회장의 기도와 김삼환 명성교회 담임목사의 설교,이경운 예장대신 총회장,김재룡 예성 총회장의 축도 순으로 이어졌다. 연합예배위원회는 이에 앞서 지난 3월27일부터 일주일동안 ‘남산 걷기대회’‘찬양 대축제’‘민족화합을 위한 한국교회 지도자 회개기도회’‘십자가 대행진’등 갖가지 축하행사를 펼쳐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가톨릭도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별로 4일 정오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예수부활 대축일 미사’를 올린다.가톨릭은 부활절 일주일전부터 시작되는 성주간(Holy Week)의 전례에 따라 성(聖)목요일 성유축성 미사,성금요일주님 수난예식에 이어 토요일 오후 8시부터 9시30분까지 성토요일 부활 성야미사를 드렸다. 성공회도 4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의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150개 성당에서 ‘부활 대미사’를 올린다.성공회는 고난주간(성주간)동안 매일 예식을 올렸다.월화 수요일은 미사와 함께 기도,신앙강화에 힘쓰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성금요일에는 수난예식,토요일 오후 7시 중심예식인 부활밤 예절을 드렸다. 한편 기독교 신자들은 사순절에서 부활절까지 40여일동안 매일 정해진 시간 성경을 읽으며 자기근신의 시간,기도,묵상의 시간을 가졌다.기간중 특별금식과 단식을 하면서 이를 통해 모아진 헌금은 불우이웃을 위해 쓴다.성공회도 사순절 기간동안 금식을 권장하면서 신자들에게 미리 주어진 극기헌금함에 모인 동전등 헌금을 불우이웃과 북한동포돕기에 쓸 계획인데 지난해는 동전으로만 4,000여만원을 모았다고 밝혔다. 朴燦
  • “우리학교 푸르게 푸르게…”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지난 53년 4월5일 피난처인 부산에서 청소년 적십자사가 식목행사를 가진 게 식목일의 기원이란 사실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대한적십자사 柳泳相 청소년 중앙본부장은 3일부터 시작되는 ‘RCY(청소년적십자) 우리학교 푸르게 가꾸기 운동’ 사업을 앞두고 청소년적십자사가 식목사업을 의욕 있게 추진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적십자사 청소년 중앙본부는 청소년들에게 자연 친화적인 심성을 길러준다는 취지에서 식목행사를 해마다 계속해 왔다.올해는 삭막해진 학교 주변의대규모 식목사업을 중점 과제로 정했다. RCY는 전국의 16만 회원들을 동원,전국 2,000여개의 각급 학교에 단풍나무·산수유·주목·개나리 등을 심을 예정이다.사방이 시멘트 벽으로 가려진학교를 푸르게 가꾸겠다는 뜻에서다. 식목활동에 소요되는 예산만도 2억원에 이른다. RCY는 이에 앞서 1일 서울 중랑구 원묵초등학교에서 鄭元植대한적십자사총재·高建서울시장·劉仁鍾서울시교육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학교 푸르게 가꾸기 운동’선포식을 가졌다.
  • 소설가 이승우씨 성지순례 체험 산문집 ‘내영혼의 지도’ 펴내

    “내 천박해지는 정신과 궁핍한 상상력,빈궁한 문학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는 간절함이 이스라엘로 달려가게 만들었습니다.내 신앙과 문학과 삶의 원천이 그곳에 있음을 비로소 깨달았지요” 종교적 구원의 문제를 즐겨 다뤄온소설가 이승우씨(40)가 이스라엘 순례 체험을 담은 산문집 ‘내 영혼의 지도’(살림)를 펴냈다. 한때 신학도로서 목사의 꿈을 키웠던 이씨에게 이스라엘의 의미는 각별하다.“형이상학에 빠졌던 청년시절 이스라엘은 내 정신의 중심,세계의 배꼽,우주목이 서 있는 영혼의 델포이였습니다.말하자면 성육신 이전의 로고스였던셈이지요.이번 순례를 통해 그런 추상과 로고스가 아닌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구체적 대상으로 이스라엘을 만나게 됐습니다” 이스라엘은 그의 신앙과 삶,문학의 수원(水源)을 이뤄 왔다.그런 만큼 그가 영혼 속에 박힌 지도를 따라 상징의 땅을 밟는 행위는 그 자체가 정신적인 성지순례다. ‘성경의 땅 이스라엘,마음으로 읽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산문집은 모두13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가나안을 출발해 예루살렘과 유대광야,요단강과 나사렛,갈릴리와 사해를 지나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마지막 길을 걸었던 비아돌로로사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성경을 나침반 삼아 이스라엘 곳곳을 순례했다.육신의 눈으로 보다는 마음의 눈으로 더 많은 것을 보았다. 예루살렘 성을 둘러보며 유대정신의 근간을 떠올렸고,예수가 체포된 겟세마네에서는 2,000년의 나이를 먹은 감람나무를 지켜보며 예수의 탄식을 생각했다.요단강에 이르러서는 강물에 몸을 담그고 오도송같은 시도 한 수 읊었다. “내 영혼에도 물이 스며들면 다시 신성한 풀이 돋고 감격의 꽃이 피어나리” 한편 작가는 로마시대 유대인들이 집단자살한 마사다 성에서 출애굽과 바빌론,아우슈비츠를 떠올리며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유대인들은 ‘기억하는민족’이고 그들의 힘은 거기서 비롯된다는 것.우리의 아픈 현대사에 대한반성적 고백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작가의 순례는 ‘슬픔의 길’ 비아 돌로로사에 이르러 끝난다.그는 골고다언덕을 향해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의 마지막 길을 따라 걸으면서 내내 마음이무거웠다.성서의 현장에서 예수 이름을 팔아 잇속을 챙기는 종교상인들과 예수의 빈 껍질만을 숭배하는 눈먼 신앙의 실체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떠도는 현실을 정박할 매혹적인 환상’이었던 이스라엘을 ‘살과 뼈를 가진 육체’로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그는 그 과정에서 영혼의 멀미같은 현기증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 6가족 12명 릴레이 장기 기증

    만성신부전증에 걸린 환자의 가족들이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주선으로‘보은의 장기기증’ 릴레이를 펼치고 있다.6가족 12명이 수술을 받는 국내최다 장기기증이다.영호남 등 전국을 오가며 이어져 동서화합을 바라는 이들을 흐뭇하게 하고 있다. 신장을 기증하겠다고 불꽃을 지핀 사람은 蔣鳳煥목사(46·경북 경주시 충효동 충효교회)다.蔣목사는 지난해 만성신부전증 환자의 집에 병문안을 갔다가 조건없는 장기기증을 결심했고 운동본부에 이같은 뜻을 전했다. 蔣목사의 신장은 1일 전남대병원에서 1년째 복막투석으로 생명을 이어오고있는 만성신부전증 환자 姜玉心씨(여·53·전남 여수시 중흥동)에게 전해진다. 蔣목사의 이웃사랑 정신에 감명을 받은 姜씨의 남편 車明基씨(55·어패류양식)는 오는 2일 대구 동산의료원에서 생면부지의 全錫順씨(40·경북 구미시 광평동)에게 신장을 기증해 은혜에 보답한다. 全씨의 가족들도 장기기증에 참여하려 했지만 건강이 나빠 어렵게 되자 이를 지켜보던 손아래 동서인 李順基씨(여·35·경북 구미시 원평3동)가선뜻나섰다.李씨는 1일 부산 백병원에서 1년 4개월째 혈액투석으로 피를 걸러오던 金在榮씨(42·부산시 사하구 괴청3동)에게 뜻깊은 사랑을 실천한다. 이어 金씨의 부인 金貞姬씨(38·포장마차업)도 7일 인천 길병원에서 신장병을 앓고 있는 任鍾和씨(38·전도사·경기도 부천시 원미2동)와 생명의 인연을 맺을 예정이다. 이에 앞서 任씨의 부인 金明姬씨(30)는 지난 26일 한양대병원에서 7년여 동안 투병생활을 해오던 張東昌씨(31·회사원·서울 노원구 상계8동)에게 새생명을 심어줬다. 張씨의 부인 金容銀씨(33) 역시 31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올해 갓 대학을 졸업한 金大鎭씨(28·충남 천안시 안서동)에게 신장을 기증해 새 삶을 살게 했다. 광주 林松鶴
  • 새달 전국 138곳서 부활절 연합예배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계 최대의 축제일인 올해 부활절 연합예배가 오는 4월4일 상오 5시30분 서울 중구 장충동 장충체육관을 비롯한 전국 138개 지역에서 일제히 열린다. 99부활절 연합예배위원회(대회장 길자연 목사)는 “IMF로 나라가 고난에 빠진 상황 하에서 치르는 올해 부활절 예배는 노숙자와 실직자들에게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해주는 한편 새로운 천년을 앞둔 마지막 해라는 점에서 어느 해보다 성대하고 다채롭게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활의 기쁨을 민족의 소망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열릴 올해 연합예배는 예년과 달리 3일 자정부터 철야 회개기도로 시작,4일 새벽 4시30분목회자와 신학생이 참여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가 열린다. 이에 앞서 지난 27일 실직자를 돕기 위한 ‘사랑의 남산 걷기대회’를 펼친데 이어 30일 오후에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횃불선교센터에서 부활절 기념‘찬양대축제’를 개최했다. 4월1일 오전 11시에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영진(국민회의) 김덕룡의원(한나라당)등 크리스찬 정치지도자들과 지덕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등 개신교 지도자 1,000여명을 초청,‘한국교회 지도자초청 민족화합회개기도회’를 가지며 이어 4월2일 오후 2시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에 올라 못 박히는 장면을 재현하는 ‘십자가 대행진’이 펼쳐진다. 이 재현행사에는 예수역을 맡은 정선일 집사를 비롯해 20여명의 연예인들이 덕수궁을 출발,남대문과 신세계백화점을 거쳐 남산순환로를 따라 분수대까지 고난의 행진을 한다.십자가 고행에는 정집사와 함께 가나안농군학교 김평일 장로,지덕 목사,김영진 김덕룡의원을 비롯,농민 학생 근로자 교육자 실직자 등 각계를 대표한 33명이 200∼300여m씩 교대로 참여한다.
  • 종교 단신

    ◇원불교 교정원(원장 조정근)은 남자교무 제복을 제정하고 4월28일 대각개교절부터 일제히 착용하기로 했다.제복은 양복과 한복 두 가지로 순결을 나타내는 흰색과 조화를 뜻하는 회색을 기본 색상으로 했다. 양복을 입을 때는 검정과 회색의 기존 양복 안에 둥근 깃을 단 와이셔츠를받쳐입도록 했으며 한복은 전통한복의 동정을 살리되 옷고름을 단추로 대체한 생활한복으로 만들었다.의식을 집례할 때는 제복위에 법복을 입는다. 지금까지 여자교무는 검정치마에 흰색이나 검정색 저고리를 입어왔으나 남자교무는 통일된 제복이 없었다. ◇제3시대 그리스도연구소(대표 김진호목사)는 30일부터 오는 5월4일까지매주 화요일 오후7시 서울 서대문구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강당에서 신학아카데미를 연다.‘여성신학과 교회’를 주제로 한 아카데미 강좌내용은 기독교여성운동,여성신학과 교회개혁,여성교회론,대안공동체 등이다.강사 양미강정신대대책협의회 총무.(02)3141-9190.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최근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http//www.catholic.or.kr)에 인권상담소 사이트를 개설,인권상담에 들어갔다.이 사이트에는 인권상담소 소개 및 자료실,상담실,자유게시판 등 코너가 마련돼있다. ◇다음달 1일 소천(召天) 1주기를 맞는 김동익목사(전 새문안교회 담임) 의설교집이 출간됐다(쿰란출판사펴냄).김목사의 설교집은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총 9권이 나왔으며 이번에 52편의 설교문을 10·11권으로 나누어 수록했다.
  • [특별기고] 사람인가 제도인가

    늘 다니는 길목에 네 평 남짓 되는 구멍가게가 있다.오래된 건물이어서 허름하기 짝이 없는 데다 6개월이 멀다 싶게 업종과 주인이 바뀌곤 한다.언젠가 제법 화려한 실내장식으로 꾸민 양장점이 들어섰다.진열대며 조명이 건물에 걸맞지 않게 화려했고 전시된 의상들도 고가의 것들이었다.집 부근 가게였던 탓으로 하루에도 여러차례 가게 곁을 지나야 했고 주인과 업종이 바뀔때마다 자연스레 가게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가게는 문이 열려 있는 시간보다 닫혀 있는 시간이 많았고 주인이 지켜 앉아있는 시간보다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더 많았다.곁에 있는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장사를 하고 있는 오전 11시에도 문이 닫혀 있는가 하면 오후 4시에도 문이 닫혀 있기 일쑤였다.가게 안에 사람이 있어 들여다보면 젊은 여자들이 앉아 화투판을 벌이고 있을 때가 많다.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주인 여자는 가게에 있기보다는 에어로빅센터와 골프장에 있는 시간이 많다는것이다. 남의 일에 시시껄렁한 관심을 기울인다고 핀잔하겠지만 문제는 6개월 만에문을닫았다는 점이다.그리고 한달쯤 지났을 무렵 다른 사람이 구멍가게를열었다.새벽 5시에 문을 열고 자정에 문을 닫기 때문에 새로 생긴 그 가게는 하루종일 문이 열려 있었다.주인 부부가 직접 나서서 가게를 운영하는데 언제 밥을 먹는지 가게를 떠나는 법이 없다.7년이 지난 지금 아파트를 샀다는말도 들리고 낡은 건물이지만 그 가게를 샀다는 말도 들린다. 이 소박한 가게 관찰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같은 위치에,같은 건물인데도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고 주변 여론이 달라진다.이것은 구멍가게 이야기이기보다는 국가경영에 관한 이야기이며 인생철학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우리는 그동안 성공사회와 바람직한 정치실현을 위해 부단한제도개혁을 되풀이했다.그러나 제도운영의 주체인 사람이 변하지 않는 한 개선이나 개혁의 본질은 꽃피기 어렵다. 발명왕 에디슨을 부러워한 그의 친구가 어느날 아들을 데리고 찾아왔다.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려는 아들이었다.“내 아들일세.앞으로 이 녀석이 사회활동을 할 때 꼭 기억해야 될 말을 한마디 해주게나.” 그러자 에디슨은 그 젊은이에게 “결코 시계를 보지 말게.이것이 젊은이에게 주고픈 나의 충고일세”라고 말했다. 그간 우리는 힘든 일은 마다하고 쉬운 일만 찾아다녔다.일 자체는 소홀히했고 그 결과만 탐닉했다.출퇴근 시간이 무서우리만치 정확했고 반대급부에민감했다.일하기보다는 놀기에 힘썼고 벌기보다는 쓰기를 즐겼다.그러다 빚쟁이가 됐고 환란으로 인한 국치를 겪게 되었다.따져 보면 예방과 대응도 가능했던 인재(人災)였음에도 무비유환(無備有患)의 질곡에 떨어졌다. 한마디로 제도적 장치나 경제부처의 부재로 인한 재앙이 아니라 통찰력과경영능력을 가진 사람이 그때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었다.제도가 사람을만드는 경우가 있다.교육제도라든가 사회보장제도 같은 것들이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고 사람답게 사는 여건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덜 된 사람들이 제도를 손질하거나 만들면 그 제도는 오히려 사람을 망치는 흉기가 될 수 있다.1807년 독불전쟁에서 독일이 패했다.당시 피히테는 14회에 걸친 강연을 통해 독일 국민의 이기심과 도덕적 타락을 경고했다. 그후 1871년에 있었던 독불전쟁에서는 독일이 이겼다.전쟁을 승리로 이끈 개선장군의 일성(一聲)은 ‘조국의 승리는 나의 공로가 아니다.독일 초등학교선생님들의 교육승리였다’라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값비싼 새 집이라도 관리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맡기면 헌 집을 만들고 만다.그러나 낡고 무너져 내리는 헌 집이라도 관리능력이 풍부한 사람에게 맡기면 새 집을 만들어낸다.사람인가,제도인가.그 대답은 사람이다. 박종순 충신교회 담임목사
  • 金祥根 제2건국위 기획단장 인터뷰

    “제2건국위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차갑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순수한 민간운동으로 발전시키면 그동안의 오해는 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기획단장에 19일 위촉된 金祥根목사(60·대한기독교서회 대표이사·기독교장로회 대외협력위원장)는 18일 “제2건국위를개혁의 주체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제2건국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정치적인 오해로 인해 제2건국위의 순수 이념이 퇴색했다.지금은 정치적인상황이 많이 바뀌었다.예전의 사고나 틀로 국가 백년대계를 짜는 것은 안된다.국민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참여할 기회가 적었다.제2건국위는 바로 그런 데서 출발할 것이다.문제의식을 국민속에서 찾고,그 해답이나행동 역시 국민들로부터 나오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제2건국위를 정당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가 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까지 부인하지는 않겠다.그러나 그 영향은 순기능적이고 건강해야 한다고 본다.
  • 여권 개혁세력 역량결집 본격화

    여권내 ‘개혁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정치권 안팎의 역량을 재결집 하면서 ‘개혁 전위대’로서의 위상정립을 꾀하는 분위기다. ‘DJ정부’의 정치개혁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면서 16대 총선을 겨냥한 ‘전진기지’로서 활용한다는 복안도 깔려있다.최근 5공세력들의 정치권 복귀움직임과 구여권 영입인사들의 전진배치 등에 자극 받은 측면도 적지않다는분석이다. 가시적 결정체는 오는 2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창립식을 갖는 ‘국민정치연구회’다.과거 국민회의 金槿泰 부총재가 이끌었던 ‘통일시대 국민회의’가 모체가 됐다.지난해 6월 해체 이후 평민련과 열린포럼 등과 연계,조직과규모가 더욱 강화됐다는 후문이다. 지도부 면면을 보면 과거 재야운동의 ‘맹장’들이 총집결했다.국민정치 연구회 이사장은 李在禎성공신학대학 총장이 맡고 邊衡尹제2건국위원장과 李敦明변호사,文東煥목사,李愚貞국민회의 고문,金병걸전교수 등이 고문단에 위촉된다. 지도위원은 국민회의 재야출신 의원들이 총망라됐다.金槿泰·林采正·金成坤·金永煥·方鏞錫·柳宣浩·李吉載·李海瓚·張永達·千正培 의원과 申溪輪 서울시정무부시장 등이다.여기에 재야출신 원외위원장과 기초단체장은 물론 대학교수와 변호사,사업가 등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이 참여할 예정이다.500여명에 이르는 ‘매머드 단체’를 준비하고 있다. 金부총재측은 “21세기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치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고 현정부의 개혁의지를 뒷받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국민정치 연구회는 창립식과 함께 월례포럼과 세미나는 물론 ‘정치개혁 연구소’를 설립,선거·정당제도 개혁 등 정치개혁 개선책을 마련할 계획이다.‘재야의 인재 풀’의 기능을 맡아 16대 총선에서의 정치권 진입과 정부 여권 내부의 인재충원의역할도 모색한다는 복안이다. 이른바 ‘386세대’의 정치세력화도 주목된다.30대,40대초반의 80년대 학생 운동권 출신으로서 60년대 생(生)들이 주축이다.내달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21세기를 이끌어갈 청년모임(약칭 젊은 한국)’이 발족된다. 국민회의 金民錫의원과 許仁會당무위원을 비롯 국민회의 사무처 간부와 의원보좌진,시의원과 민화협과 제2건국추진위 등에 포진된 학생운동권 출신들이다.이들도 월례포럼을 열어 개혁현안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개혁추진을 위한 각종 활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 예장 합동·통합 40년만에 ‘하나되기’

    국내 개신교 최대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의 합동측(총회장 길자연)과 통합측(총회장 유의웅)이 결별 40년만에 화합과 일치를 선언했다. 양 교단의 주요인사 100여명은 최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분열을 넘어 화합과 일치로-1959년 그 이후’란 주제로 포럼을 열고 ‘장로교 화합과 일치를 위한 선언문’을 채택했다.참가자들은 이 선언문을 통해 “이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의 참된 교회를 이루어 가자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개혁신앙을 토대로 일치와 갱신을 실현하는 교회가 되고인류 공동체 구원에 대한 공동의 청사진을 제시하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포럼에는 총회장 및 총무 등 양 교단 임원을 비롯해 양교단 신학교 총장및교수,동문회 대표,목회자 대표 등이 참석했으며 분열 당시의 양교단 지도자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및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등 연합기관 관계자도 자리를함께 했다. 선언문 발표에 앞서서 총신대의 정성구 교수와 한국기독교학술원 이종성 박사가 양 교단의 기관지인 ‘기독신문’과 ‘한국기독공보’가 연재한 특별기획물을 중심으로 발제를 했으며 이에 대한 토론에 이어 교회 분열에 대한 죄책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순서도 마련됐다. 6,000여 교회와 220여만 신도로 교세 1·2위를 다투는 합동과 통합이 갈라진 것은 59년.광복후 신사참배 문제로 고신(고려신학대)파가 떨어져나오고 53년 자유주의신학을 둘러싸고 기장(기독교장로회)과 예장이 갈라진 이후 예장에서는 최초의 분열이었다. 논란의 핵심은 WCC(세계교회협의회) 가입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문제였다.당시 공산권이었던 동유럽의 정교회들과 대화하는 것은 용공이라는 주장을내세우며 합동이 떨어져나왔으며 이후 진행된 장로교 핵분열의 단초가 됐다. 그러나 ‘IMF 위기’를 맞아 교회분열에 대한 반성론이 일어나면서 교단간화해 분위기가 조성됐고,평소 친분이 있던 길 목사와 유 목사가 총회장에 동반 당선된 것을 계기로 교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통합과 합동은 지난해 12월,올 1월 두차례 임원모임을 가진 뒤 지난달 25일 대표자 연석회의를 갖고 포럼 개최에 합의했다. 양교단은 포럼의 성과를 바탕으로 4월 22일 유의웅 통합 총회장이 시무하는 서울 도림교회에서 기도회를 갖기로 했으며 길자연 합동 총회장이 시무하는서울 왕성교회에서도 기도회를 가질 예정이다. 그러나 이처럼 활발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양 교단이 진정한 통합에까지 이르기에는 난관이 많아 보인다.양 교단의 총회대의원 3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통합에 대해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47%로 희망적인견해(38%)보다 많았다. 그만큼 해묵은 갈등이 내재하고 있으며 신학적 차이나 전례절차도 많이 달라져 있다.교권 기득권 세력들의 저항도 만만치않을 것으로 보이며 다른 교단의 견제도 예상된다.때문에 공동선언문에서도 “우리는 이 운동이 초대형교단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운동도,교회들 간의 제도적 일치를 협상하는 운동도,어떤 특정한 교회론적 신념을 전파하는 운동도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 제2건국위 기획단 구성 진통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의 ‘기획단장’ 인선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가운데 다소 내부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첫 민간인 출신 기획단장으로 유력하게 거명되고 있는 인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장 등을 역임한 金祥根목사. 金목사는 15일 “맡긴다면 할 것”이라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金목사가 기획단장을 맡게 되면 제2건국위의 ‘관(官)’ 냄새를 탈색시키고 시민단체들을 이끌어 들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다소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부단장 자리.일부 정치권 인사가 거론되고 있지만 반대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아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돌이켜보면 제2건국위의 첫 민간인 기획단장 인선은 지난달 말부터 시작됐다.제2건국 운동을 정치에 이용하려 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하지만 그동안 인선 구상은 여러번 바뀌어 왔다.청와대의 담당 수석이 바뀌는 것과도 무관치 않았다. 처음으로 거론된 인사는 전직장관 출신인 모대학 총장 C씨.당시 정무수석李康來씨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일부 언론에는 C씨가 사실상 기획단장에 내정됐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담당 수석이 정책수석실로 바뀌면서 C씨 내정설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당시 정책수석은 金泰東씨였고 李御寧상임위원장 상근설이 나왔다.그러나 李御寧위원장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명해 인선작업은 또다시원점으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다시 정책수석이 김한길의원으로 바뀌었으며 전례와 마찬가지로 인선 작업은 새로 시작됐다. 그래서 떠오른 사람이 金祥根목사다.사실 金목사는 金大中대통령과 막역한사이로 지금도 부정기적으로 만나 시중의 여론을 여과없이 전달하고 있는 몇 안되는 인사다.그는 또 제2건국위 상임위원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들어 주변에선 金목사가 사실상 기획단장에 내정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15일자 일부 언론에 보도까지 됐다. 그러나 청와대에선 아무 말이 없다.제2건국위측에서도 “우리는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제2건국위 안팎에선 기획단장은 내정됐으나 부단장이 확정되지않아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현재 국민회의의 한 당직자가 부단장으로 강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金목사는 부인도 시인도 안하면서 “다른 인사를 천거했다”고 말해 막바지 인선 작업이 벌어지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 “현대 남북 경협 총괄” (주)아산 창립

    현대의 남북간 경제협력 교류를 총괄하는 (주)아산이 16일 대대적인 창립리셉션을 갖는다. 이날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리는 기념연에 현대는 어느 때보다도 신경을 써 각계 인사 1,800여명을 초청했다.금강산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경협사업 성공을 자축하며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겠다는 다짐을 안팎에 널리 알리겠다는 뜻이다. 자리에는 鄭周永 명예회장과 鄭夢九·夢憲회장 등의 鄭씨 일가를 비롯해 康仁德 통일부장관,姜元龍목사 등 저명인사가 두루 참석한다. 특히 아산의 金潤圭사장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금강산 관광을 외국인으론 처음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 보스워스 주한 미국대사도 참석해 눈길을 끈다.그러나 당초 기대를 모았던 金容淳 북한 아태평화위원장 등 북한측 초청인사는 준비부족을 이유로 불참할 것이 확실시 된다. 현대는 이날 창립연을 계기로 대북사업을 아산으로 일원화하기로 했다.현재 건설,상선,상사 등 여러 계열사에 분산된 업무와 인력을 아산으로 재배치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계획.대북창구도 金潤圭사장-金高中부사장 체제의 ‘K-K라인’으로 정리했다.이와 함께 외국인 관광객의 미국 일본 등 해외자본을 유치해 안전판을 더욱 다진다는 생각이다. 아산은 자본금 1,000억원으로 설립돼 춘천에 본사를 두고있다.
  • [특별기고]의식전환론

    구한말 괴질이라 부르던 콜레라와 장티푸스가 장안을 휩쓸고 있을 때 예방이나 치료가 무방비였던 탓으로 사람들이 죽어갔다.괴질이 북쪽에서 내려왔다고 여긴 평안감사는 다음과 같은 영(令)을 내렸다.“이 괴질은 만주 쪽에서 오는 것이니 그 길목에 장승을 세워라.띄엄띄엄 한 길을 가로질러 개골창을 파서 괴질이 오다가 빠져죽게 하라” 평양성을 다스리던 최고관리의 수준을 짐작케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당시 평양주재 선교사였던 마펫은 “그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날것을 먹지 마십시오.설익은 참외도 먹지말고 물은 반드시 끓여서 먹어야 합니다.또 옷은 깨끗이 빨아입고 집 안팎을 청결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역설했다.그러나 장승문화에 세뇌된 당시 관료들이나 백성들의 호응은 냉담했다. 삶의 질을 높이고 민주 사회의 역량을 발휘하려면 시민의식의 전환이 요청된다.장승을 세우고 개골창을 파 번지는 괴질을 막겠다는 의식수준이라면 한참 뒤처진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염원했던 민주주의만 해도 그렇다.이 땅에 민주주의의 꽃을 만개시키려면 거기에 걸맞은 민주시민 의식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하고 민중을 계도하는 지도계층의 자질과 수준도 향상되어야 한다. 1899년 전차가 서울 장안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있을 무렵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고 있었다.점쟁이들은 쇳덩어리로 만든 괴물체가 장안을 휘젓고 다니기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말을 퍼뜨렸고,시민들은 곱지 않은 눈으로 전차를 바라보았다고 한다.그 때 그 사람들이 21세기 정보통신혁명의 현란한 현장을 들여다본다면 무엇이라 말했을까 궁금하다. 생활의 과학화라든지 삶의 질을 높이려는 일련의 사회적 노력은 거기에 걸맞은 의식의 전환이 전제돼야 한다.그런 면에서 전통문화와 미신행위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전통문화의 전승이나 보존이라는 이유로 미신행위를 조장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후진 사회화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크메르가한창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일식이나 월식때가 되면 크메르병사들은 해와달을 향해 수천발의 총을 난사했다고 한다.이유는 귀신이 해와 달을 삼키고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흔히 민주주의 근간을 자유와 책임이라고 말한다.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웠고 목숨과 자유를 바꾸기도 했다.그러나 책임이 없는 자유는 방종과 탈선이라는 노폐물을 양산하게 마련이다.책임이란 곧 질서있는 행위를 의미한다.최대한의 자유는 곧 최대한의 책임을 수반할 때만 보장되는 것이며 자유와 책임은 마차의 두 바퀴처럼 함께 할 때만 그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질서란 작은 것들이 모여 사회질서를 이루고 국가질서를 형성하게 된다.휴지 한 장,담배꽁초 하나,줄서기와 차례 기다리기 등 작은 질서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사회 질서나 국가 질서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그리고 법과 질서를 파행으로 이끌어간 장본인들이 공공질서와 국가의 법질서를 논한다는 것도 그 자체로서 난센스가 아닐수 없다. 또 건전한 음주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는 발상으로 단란주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 생겨났다.가족이 함께 가서 술을 마시는 음주문화를 정착시키자는 뜻에서였다.그러나 가족이 술을 마시려면가정에서 오붓하고 단란하게마시도록 하라는 것이 바른 계도였을 것이다.아들 며느리,손자 손녀가 어우러져 술을 마시라고 허가해준 그 단란주점은 이미 본뜻이 바뀌고 말지 않았는가. 의식개혁이라고 해도 좋고 의식의 전환이라 해도 좋다.하루라도 빨리 우리가 선진사회로 진입하려면 의식개혁작업이 선행돼야 한다.정치하는 의식,학문하는 의식,기업경영의 의식,그리고 종교인들의 의식도 전환되어야 한다.의식의 대전환이 없는 한 우리들의 높이뛰기는 제자리로 내려서는 널뛰기와 다를바 없게 될 것이다.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성서의 한구절이 새삼 떠오른다. 박종순 서울 충신교회 목사
  • 종교계 북한동포돕기 ‘사랑의 모금’ 계속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개신교를 중심으로 불교 원불교 등 종교계의 북한동포돕기운동이 활발히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한국기독교 북한돕기후원연합회(회장 심군식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 김동완),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본부(집행위원장 법륜),원불교 강남교당(교무 박청수)등이 굶주린 북녘동포들을 돕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계의 대북지원 단일창구인 한국기독교 북한동포후원연합회는 최근 20여개 의류업체에서 기탁받은 7억1,000여만원 어치의 아동복 2,500여점을 조만간 인천항을 통해 북송할 계획이다.이번에 보내는 아동복은 조선기독교연맹이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를 통해 요청해온 것으로 이들 물품은 북한의 탁아소와 고아원 등에 분배될 예정이다. KNCC는 지난해에 큰 호응을 받았던 평화의 쌀모으기 운동을 올해도 지속적으로 펼친다.지난해 4월 1차 쌀모으기운동을 통해 쌀 60만톤을 북한에 전달한 KNCC는 올해에도 교인들의 신앙 실천 차원에서 끼니마다 조금씩 쌀을 모으기로 했다. KNCC 김동완 총무는 “북한동포돕기운동은 대중적 통일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기독교 계통의 학교와 교회 주일학교 등으로 지평을 넓혀 나가겠다고 밝혔다.교회협은 또 지난달 금강산 단체방문에서 모금한 헌금과 여행사의 수익금 일부도 북한동포돕기에 사용할 예정이다. 33개 불교단체가 연대해 결성한 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본부도 올해 식량및 의약품 지원과 어린이 영양식 공급을 확대하고 깨끗한 식수 공급을 위한 정수시설이나 수해를 대비해 나무심기 등 입체적인 대북지원에 나설 계획이다.불교운동본부는 이를 위해 정부차원의 식량 의약품 대량지원과 남북 농업 협력을 위한 비료 30만톤 긴급지원 캠페인을 벌일 구상이다. 원불교 서울 강남교당은 올해들어 지난 두 달동안 북한동포돕기에 7,200만원을 지원했다.원불교 평양교구장으로 임명돼 지난 1월중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강남교당 박청수교무는 최근 북한 협동농장에 보낼 비료 80톤(4,000포대) 대금 2,400만원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전달한데 이어 8일 2차 지원분으로 40톤(2,400만원) 대금을 전달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1일에는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북한 어린들과 임산부들에게 영양제를 공급하기 위한 성금 1,810만원을 보냈으며 1월초에는 옥수수 대금 3,000만원을 보냈다. 강남교당은 또 옷 이불 담요 빨래비누 세수비누 수건 등 생활용품 모으기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주식회사 세창이 기증한 벨벳 6,000마(북한여성 2,000명이 치마와 저고리를 해 입을 수 있는 분량의 옷감)와 어린이 의류 3,000점,신발 1,000켤레,세탁비누 5,000개 등을 이달중 북한에 전달할 계획이다. 원불교 강남교당 박청수 교무는 “지난해부터 북한지역 안에 간장 된장공장을 만들어 무상으로 공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그동안 세계 40여 나라를 도와왔지만 우리 동포를 돕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북한동포돕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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