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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갖고도 영혼 잃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다 갖고도 영혼 잃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세계 복음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빌리 그래함(1918~2018·표준어 표기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1973년 서울 전도대회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 3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됐다. 7만여명이 모인 이번 대회는 기념음악회로 문을 연 뒤 빌리 목사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가 마가복음 8장 31~38절로 ‘복음의 가치’를 설교했다. 프랭클린 목사는 1979년부터 ‘사마리안 퍼스(사마리아인의 지갑)’란 구호단체를 이끌며 제3세계와 분쟁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아버지처럼 여러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는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인가” 물으며 “두둑한 통장, 멋진 차, 근사한 아파트, 든든한 직장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이러한 것들을 다 갖고 영혼을 잃어버리면 아무 소용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우리의 영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면서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하며 죄 사함을 받으면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 손 안에서 안전함을 얻는다. 죄의 길에서 돌이켜 예수님께로 오라”고 복음의 핵심을 강조했다. 50년 전 빌리 목사의 통역을 맡았던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도 참석해 특별한 감동을 안겼다. 그는 “1973년 여의도 집회에서 통역했던 김장환입니다”라며 우렁찬 목소리로 신도를 압도했다. 이날 김하나 명성교회 목사가 새로운 통역자로 활약했고, 김선규(호반그룹 회장) 장로는 설교 주제인 마가복음 구절을 봉독했다.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인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오정현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김삼환 명성교회 원로목사,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이 기도와 축사로 함께했다. 영상을 통해 축사를 전한 윤석열 대통령은 “50년 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는 우리 사회에 희망을 심었다”면서 “한국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보듬고 나라가 어려울 때 앞장서 왔다. 가르침을 계속 실천하며 이어달라”고 당부했다.
  • “촛불을 들자!” 톈안먼 34주년 기념일 홍콩서 체포되고 연행되고

    “촛불을 들자!” 톈안먼 34주년 기념일 홍콩서 체포되고 연행되고

    홍콩에서 4일 톈안먼 민주화시위 34주년을 맞아 경찰 수천명이 삼엄한 경계를 펼친 가운데 체포와 연행이 잇따랐다. 홍콩 명보와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거리 곳곳에서 불심검문이 이뤄졌으며, 오후 6시를 전후해 야당 지도자와 민주 활동가들이 잇따라 경찰에 연행됐다. 명보는 오후 7시쯤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의 한 백화점 앞에서 군소 야당인 사회민주연선의 찬포잉 주석이 경찰에 연행됐다고 전했다. 찬 주석은 작은 발광다이오드(LED) 촛불과 두 송이의 꽃을 들고 있었으며, 경찰이 즉시 그를 붙잡아 경찰차에 태워갔다고 덧붙였다. 또 그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막인팅 전 홍콩기자협회장이 경찰과 말다툼을 벌이다 경찰차에 실려갔고, 한 사회운동가는 산책을 하다가 경찰에 검문을 당했다고 전했다. AFP는 오후 7시 30분 현재 코즈웨이베이에서 적어도 10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한 여성은 연행되면서 “촛불을 들어올리자! 6·4를 추모하자!”고 외쳤으며, 검은 옷을 입은 채 ‘5월 35일’이라는 책을 들고 나온 남성도 연행됐다고 덧붙였다. 코즈웨이베이 쇼핑가는 지난 몇년 동안 톈안먼 시위를 기리는 장소로 떠올랐다. ‘5월 35일’은 중국에서 ‘6월 4일’이 검열에 걸리자 피하기 위해 등장한 표현이다. 홍콩인들 사이에서 ‘그랜마 웡’이라 불리는 백발의 여성 활동가도 꽃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홍콩 경찰은 이날 대테러 부대, 폭동진압 부대 등을 포함해 5000∼6000명의 경찰관을 빅토리아 파크와 코즈웨이베이 등에 배치해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앞서 전날에도 공공장소에서 질서를 해치거나 선동적 행위를 한 혐의로 4명을 체포했고, 공공의 평화를 해친 혐의로 다른 4명을 연행했다고 발표했다. 전날 저녁 톈안먼 시위 희생자 유가족 모임인 ‘톈안먼 어머니회’의 회원인 라우카이와 민주 활동가 콴춘풍이 홍콩 빅토리아 파크 주변에서 체포됐다. 라우카이는 촛불 그림과 ‘진실’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흰색과 붉은색 장미를 든 채 현장에서 “우리는 톈안먼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오후 6시 4분에 단식을 시작할 것”이라고 외쳤다. 체포된 이들 중에는 지난 몇년 동안 6월 4일 저녁이면 톈안먼 시위를 기념하는 행위예술을 해온 예술가 산무 찬과 찬메이텅도 있다. 이들은 코즈웨이베이에서 “홍콩인들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이 6월 4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외쳤다. 덩달아 추모를 상징하는 흰꽃을 들고 있던 2명, 톈안먼 유혈진압 관련 슬로건이 새겨진 물건을 가지고 있던 치과의사, 종이로 만든 흰 꽃을 들고 있던 사람 등 4명도 경찰에 연행됐다고 홍콩 언론들은 전했다. 이런 가운데 홍콩의 목사 등 기독교인 360명이 서명한 ‘6월 4일 기념일 기도회’ 청원이 현지 기독교 매체 크리스천타임스에 전면 광고로 게재됐다. 이들은 “역사적 트라우마가 고도의 압박 아래 잊히겠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이를 지켜보고 추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님이시여. 우리가 가련한 자들과 투옥된 자들을 계속 지켜보고 탄압받는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며 6월 4일의 트라우마로부터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걸어가도록 가르침을 주시옵소서”라고 밝혔다. 한편 정치 활동가 프란시스 후이는 이날 초우항텅 전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 부주석이 톈안먼 34주년을 맞아 34시간 옥중 단식을 시작했다가 독방에 감금됐다고 밝혔다. 지련회는 1990년부터 30년 넘게 빅토리아 파크 촛불집회를 주최해온 단체이지만 당국의 압박 속에 2021년 해산했다. 그 뒤 초우항텅 등 지련회 간부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 50년 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처럼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 전한다

    50년 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처럼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 전한다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이런 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 게 감사합니다. 제가 서른아홉 살 때 하고 지금 89세인데, 여러분도 앞으로 50년 후에 살아서 이런 대회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1973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광장에는 320만명이 넘는 개신교인들이 모였다. 한국 교회 부흥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개신교 인구를 400만명으로 잡던 시기이니 전국에서 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다 온 셈이다. 그해 열린 대회는 한국 개신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고, 교회들도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다. 빌리 그래함(1918~2018·표준어 표기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전하는 소망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 통역한 이가 바로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89) 목사다. 1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김 목사는 50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거듭 감사를 표했다. 김 목사는 “아버지에 이어 이번에 설교하는 프랭클린 목사님은 유명한 아버지 밑에서 생활하려니 방황을 많이 했다”면서 “지금은 NGO를 운영하며 아버지 이상으로 바쁘다. 아버지는 옛날에 전도만 했지 사회사업을 돌보지 않았다고 비난도 받았는데 아들이 이어서 엄청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프랭클린 그레이엄과 그의 아들 윌 그레이엄을 소개한 김 목사는 “아버지 세대의 일을 아들과 손주가 이어 간다는 게 쉽지 않은데 그레이엄 가정에서 그런 게 일어난 건 하나님의 축복”이라며 웃었다.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오후 1시 30분부터 기념 음악회를, 3시부터 본대회를 진행한다. 주최 측은 10만명 이상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버지에 이어 설교자로 나서는 프랭클린 목사는 마가복음 8장 31~38절로 ‘복음의 가치’라는 제목의 설교를 할 예정이다. 프랭클린 목사는 “사람들은 그냥 좋은 얘기를 듣기 위해 교회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말씀 듣기를 원해서 간다”면서 “저는 하나님이 한국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아주 간단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왔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을 가지라고 초청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50년 전 김 목사가 했던 통역은 이번에는 김하나 명성교회 담임목사가 맡는다. 50년 전 대회를 계기로 한국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사회에 도움을 준 것처럼 이번 행사 역시 한국 교회에 부흥을 일으키고 교회들이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몫을 고민하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김장환 목사는 “절망에 빠진 누군가에게 이번 대회가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며 “대회에서 헌금이 모이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쓸 것”이라고 말했다. 오정현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인구절벽”이라며 “인구 문제는 한국 교회가 긍정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 중 하나”라고 전했다.
  • “남북, 기술협력으로 신뢰 쌓을 전략 모색”

    “남북, 기술협력으로 신뢰 쌓을 전략 모색”

    “비전 새롭게 바꾸고 역할 확대”2~4일 파주에서 통일문화축제 “25년 차를 맞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경제를 기반으로 남북이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전략을 모색하겠다.” 지난 4월 21일 새로 선출된 손명원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31일 서울 마포구 민화협 사무실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민화협의 비전을 새롭게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손 의장은 “경영인의 경험을 살려 기술협력 차원으로 민족 화해에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다”며 “남과 북을 넘어 해외동포까지 아우르는 경제협력사업들까지 민화협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민화협은 1998년 통일 준비를 위해 정당, 종교, 시민단체 200여개가 모여 만든 협의체다. 손 의장은 미국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건설 설계 관련 사업을 하다가 1980년 귀국해 현대건설 이사와 현대중공업 부사장을 거쳐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 쌍용자동차 대표이사를 역임한 경영인이다. 특히 손 의장의 할아버지인 항일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는 북한 김일성 주석이 열다섯 살이던 때 만주에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당시 쌍용차 회장이던 손 의장은 1993년 북한에 방문해 김 주석을 면담하기도 했다. 손정도 목사의 이름을 딴 남북 연구자들 간 학술대회도 2003년 평양에서 열렸다. 민화협은 2~4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와 캠프예그리나에서 통일문화축제를 개최한다.
  • 손명원 민화협 의장 “남북, 기술협력으로 신뢰 쌓을 전략 모색”

    손명원 민화협 의장 “남북, 기술협력으로 신뢰 쌓을 전략 모색”

    “25년 차를 맞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경제를 기반으로 남북이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전략을 모색하겠다.” 지난 4월 21일 새로 선출된 손명원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31일 서울 마포구 민화협 사무실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민화협의 비전을 새롭게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손 의장은 “경영인의 경험을 살려 기술협력 차원으로 민족 화해에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다”며 “남과 북을 넘어 해외동포까지 아우르는 경제협력사업들까지 민화협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민화협은 1998년 통일 준비를 위해 정당, 종교, 시민단체 200여개가 모여 만든 협의체다.손 의장은 미국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건설 설계 관련 사업을 하다가 1980년 귀국해 현대건설 이사와 현대중공업 부사장을 거쳐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 쌍용자동차 대표이사를 역임한 경영인이다. 특히 손 의장의 할아버지인 항일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는 북한 김일성 주석이 열다섯 살이던 때 만주에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당시 쌍용차 회장이던 손 의장은 1993년 북한에 방문해 김 주석을 면담하기도 했다. 손정도 목사의 이름을 딴 남북 연구자들 간 학술대회도 2003년 평양에서 열렸다. 손 의장은 “당시 김 주석이 ‘손정도 목사는 생명의 은인’이라고 했다”며 “민화협 의장으로서 ‘제2회 손정도 학술대회’를 열 수 있다면 남북 간 대화가 이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다만 남북 간 경색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민화협도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와 소통 창구가 막혀 있는 상황이다. 민화협은 2~4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와 캠프예그리나에서 통일문화축제를 개최한다. 쓰레기를 주우며 비무장지대(DMZ)를 걷는 DMZ플로깅과 평화캠핑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손 의장은 “통일이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교류하고 함께 공존한다는 의미가 있으니 당장은 어렵더라도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이번 행사가 통일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국제원로들 만난 尹 “책임·기여 외교 확대”

    국제원로들 만난 尹 “책임·기여 외교 확대”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종교 지도자들과 오찬을 하고, 국제 원로그룹인 ‘디 엘더스’를 접견하며 국정 운영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상춘재에 종교계 지도자 9명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외교 분야 등 취임 1년의 성과를 공유하고 국정에 대한 조언을 청취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해 종교계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글로벌 외교와 교육개혁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외교와 관련, “전 세계에 걸쳐 오지에까지 우리 국민이 안 계신 곳이 없다. 촘촘한 외교망으로 뒷받침하겠다”며 “이로써 나라를 지키고 대북 관계도 잘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고, 교육 개혁에 대한 의지도 나타냈다. 참석자 대표로 나선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국민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 대통령과 정치권이 노력해 달라”며 “종교계와 정부가 국민 마음의 평화를 위해 함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일정은 지난해 5월 말 7대 종단 종교 지도자들을 대통령실로 초청한 데 이은 윤 대통령의 두 번째 종교 지도자들과의 오찬이다. 오찬에는 진우 스님을 비롯해 천태종 총무원장 덕수 스님, 한국교회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 천주교 정순택 서울대교구장, 원불교 나상호 교정원장, 최종수 성균관장, 천도교 박상종 교령, 한국민족종교협의회 김령하 회장 등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대통령실 청사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등 디 엘더스 인사들을 접견하고 외교 등 국정에 대한 고견을 청취했다. 윤 대통령은 접견에서 “앞으로 대한민국이 자유와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와 국제규범에 기반한 책임외교와 기여외교를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각국이 국가주의가 아닌 국제주의를 지향하면서 상대주의적이거나 주관적이지 않은, 상식에 부합하는 기준에 따라 대외정책을 표방해야 한다”고도 했다. 디 엘더스는 세계 평화와 인권 증진을 목적으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창설한 국제원로모임이며 반 전 총장이 부의장을 맡고 있다. 디 엘더스는 윤 대통령과의 접견에 앞서 광화문 외교부 청사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오찬을 함께했다. 박 장관은 “국제사회는 계속되는 도발과 핵·미사일 개발을 통해 북한이 얻을 게 없다는 단합되고 강력한 메시지를 평양에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尹 “종교계 연대정신은 사회의 버팀목”

    尹 “종교계 연대정신은 사회의 버팀목”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종교 지도자들과 오찬을 하고, 국제 원로그룹인 ‘디 엘더스’를 접견하며 국정 운영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상춘재에 종교계 지도자 9명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외교 분야 등 취임 1년의 성과를 공유하고 국정에 대한 조언을 청취했다. 윤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어려울 때마다 종교계가 보여 준 연대 정신은 우리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며 “국민을 대표해 종교계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외교와 관련, “전 세계에 걸쳐 오지에까지 우리 국민이 안 계신 곳이 없다. 촘촘한 외교망으로 뒷받침하겠다”며 “이로써 나라를 지키고 대북 관계도 잘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고, 교육 개혁에 대한 의지도 나타냈다. 참석자 대표로 나선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국민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 대통령과 정치권이 노력해 달라”며 “종교계와 정부가 국민 마음의 평화를 위해 함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일정은 지난해 5월 말 7대 종단 종교 지도자들을 대통령실로 초청한 데 이은 윤 대통령의 두 번째 종교 지도자들과의 오찬이다. 오찬에는 진우 스님을 비롯해 천태종 총무원장 덕수 스님, 한국교회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 천주교 정순택 서울대교구장, 원불교 나상호 교정원장, 최종수 성균관장, 천도교 박상종 교령, 한국민족종교협의회 김령하 회장 등이 참석했다. 오찬은 예정보다 1시간을 더 넘겨 2시간 30분가량 진행됐으며, 윤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상춘재 주변 경내를 둘러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대통령실 청사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등 디 엘더스 인사들을 접견하고 외교 등 국정에 대한 고견을 청취했다. 디 엘더스는 세계 평화와 인권 증진을 목적으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창설한 기구로 반 전 총장이 부의장을 맡고 있다. 디 엘더스는 윤 대통령과의 접견에 앞서 광화문 외교부 청사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오찬을 함께했다. 박 장관은 “국제사회는 계속되는 도발과 핵·미사일 개발을 통해 북한이 얻을 게 없다는 단합되고 강력한 메시지를 평양에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中 종교 탄압 가속화…中 윈난성서 무슬림-경찰 충돌

    中 종교 탄압 가속화…中 윈난성서 무슬림-경찰 충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종교의 중국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윈난성에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이슬람사원)를 강제 철거하려다가 무슬림들이 격분해 경찰과 충돌했다. 홍콩 명보는 29일 “지난 27일 윈난성 위시시 퉁하이현에서 나자잉 모스크를 강제 철거한다는 소문이 돌자 현지 무슬림들이 시위를 벌였다는 소식이 퍼졌다”며 “일부 시위대는 경찰을 공격했다. 해가 진 뒤에도 사람들이 (강제 철거를 막고자) 모스크 문 앞에서 보초를 섰다”고 전했다. 트위터 등에는 헬멧을 쓰고 방패를 든 경찰이 모스크 앞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시위대가 물건을 집어 던지며 공격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퉁하이현 공안국은 28일 저녁 시위대에게 통지문을 전달하고 “다음달 6일까지 투항·자수하라”고 촉구했다고 매체는 설명했다. 나자잉 모스크는 60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현재 건물은 아라비안 스타일로 2004년 완공됐다. 명보는 “최근 수 년간 중국 당국이 ‘종교의 중국화’를 요구하면서 지금의 모스크를 전통 중국 양식으로 리모델링할 것을 강요한다”고 꼬집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가 지난 2월부터 불교, 도교,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 등 중국 공인 5대 종교 종사자에 대한 인터넷 통제도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모든 수녀, 목사 등 성직자들은 이름, 성별, 사진, 종교 및 교파, 조직 내 직위 및 정부 발행 등록 번호 등 세부 정보를 웹 사이트에서 공개하도록 한 것이다. 공식적 무신론자인 공산당은 종교인의 정보 공개가 가짜 수녀와 승려 단속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지만, 통제 강화 수단이라고 SCMP는 강조했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하이난섬에서도 이슬람 교도가 종교 탄압의 표적이 됐다고 보도했다. 하이난섬 내 이슬람 소수파인 후이족 1만명이 감시 대상이 되어, 전통의상과 아랍식 건축물을 규제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하이난의 무슬림 후이족은 동남아와 중동 무슬림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로 시 주석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2018년 중국 국무원이 “종교가 일상생활과 국가 기능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라”고 비밀 지침을 내리자 탄압 대상이 됐다.
  • 반곡 난중일기의 恨… 왜적 토벌보다 ‘명군 접대’ 굴욕이 더 아팠다 [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반곡 난중일기의 恨… 왜적 토벌보다 ‘명군 접대’ 굴욕이 더 아팠다 [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선산읍성 점령당하자 반격 준비흩어졌던 군사 모아 왜적 괴롭혀수백명 베고 군막 없애는 공적 세워명나라 군사 접대 역할도 맡아수차례 곤욕 끝에 낙향 선택해 오늘날의 경북 구미시는 조선시대 선산도호부와 인동현으로 나뉘어 있었다. 선산군 구미읍은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면서 급격히 산업도시로 탈바꿈하며 1978년 구미시로 승격한다. 1995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하면서 구미시는 현재와 같은 범위가 됐다. 선산군의 흔적은 이제 선산읍으로 남았다. 영남대로에 자리잡은 선산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였다. 영남대로는 서울을 출발해 충주에서 새재를 넘어 경상도에 들어서면 상주~선산~인동~대구~경산~청도~밀양~동래로 이어졌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끈 왜군 선발대 역시 부산포에 상륙한 다음 바로 이 루트를 이용해 북상했다.반곡(盤谷) 정경달(丁景達·1542~1602)은 선조 3년(1570) 대과에 급제한 문관이다. 종6품 가평현감과 정5품 형조정랑에 머물던 그는 1591년 6월 종3품 선산도호부사에 임명됐다. 종6품 정읍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로 고속 승진한 이순신을 연상시킨다. 반곡을 추천한 사람도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좌의정 겸 이조판서 류성룡이었다. 왜군 선발대가 선산읍성을 휩쓴 것이 1592년 4월 24일이다. 왜군은 4월 25일 상주 북천, 4월 28일 충주 탄금대에서 각각 조선 최고의 장수로 일컬어지던 순변사 이일과 도순변사 신립이 이끄는 관군을 궤멸시켰다. 정경달이 소수 병력으로 선산관아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줄곧 선산부에 머물며 왜적을 끊임없이 괴롭혔다.●수년 동안 일거수일투족 기록돼 당시 정경달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일기를 남겼기 때문이다. 1592년 4월 15일부터 1595년 11월 25일까지, 1597년 1월 1일부터 1602년 12월 17일까지 적은 기록이 ‘반곡난중일기’로 남아 있다. 반곡은 왜군 선단이 4월 13일 부산 앞바다에 몰려왔다는 사실을 이틀 뒤 알았다. 그는 조선의 왜적 방어 전략인 제승방략에 따라 군사를 이끌고 부산을 향해 남하하지만 동래읍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에 22일 선산으로 돌아온다. 왜적이 선산읍성을 점령하자 정경달은 동생 정경영과 산봉우리로 피신하는데 “한 걸음 딛고는 열 번이나 넘어졌다”고 할 만큼 급박한 피란길이었다. 하지만 반곡은 흩어졌던 군사를 다시 모아 반격을 준비한다. 5월 17일 일기는 ‘임금이 서쪽으로 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라 1000명 군사를 모아 금오산 아래 진을 쳤다’고 했다. 왜군의 주력 부대가 북상한 상황에서 선산 관아에는 수백 명의 왜적이 주둔하고 있었다. 반곡의 선산 군사는 잇따라 읍성 내부로 쳐들어가 왜적을 괴롭혔다. 이 시기부터 일기에는 거의 날마다 왜적의 머리를 베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경달의 군사 운용법은 6월 2일자 일기에 적혀 있다. ‘동채와 해평채는 (낙동)강의 동쪽이고 서채와 남채는 서쪽인데, 왜적이 중간을 막고 있고 강물도 엄청나게 불어서 군채 사이에 호령이 통하지 않았다. 경계를 넷으로 나누어 4개의 도청(都廳)을 세우고 각각 장령 1명, 향소 1명, 복병장 6명, 유격장 18명을 두었다. 각기 군사를 거느려 왜적이 오면 피하고 돌아가면 진을 치며 혹은 논밭의 곡식을 수습하고 혹은 왜적 낙오병을 포획하게 했다.’ 군사를 작은 단위로 나누어 기습공격하는 전술이다. 11월 1일은 ‘남채 복병장을 강나루에 매복시켰는데, 많은 왜적이 건너고 후미가 막 강물로 들어가려는 찰나 크게 소리를 지르며 공격했다. 두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탄 붉은 갓을 쓴 자가 기마병 3명과 군졸 3명을 거느리고 건너다 낭패를 당했는데, 모두 베고 1명은 생포했다’고 적었다. ‘정씨 집안 문서’(丁氏家乘)에는 ‘반곡난중일기’의 내용을 헤아려 선산 군사의 전공을 한데 모았는데 ‘공의 휘하에서 왜적을 죽인 것이 165명, 활 쏘아 죽인 것이 94명, 쏘아 맞힌 것이 260명이었고 왜적의 군막을 태워 없앤 것이 300칸 남짓’이라고 했다. 왜적의 사기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군량미 확보에 발군의 능력 보여 정경달은 이듬해 4월 23일 천병접대도차사원(天兵接待都差使員)에 임명된다. 한성에서 밀려난 왜군이 남쪽으로 퇴각하면서 뒤따라간 명나라 군사들에게 군량을 공급하고 장수들을 접대하는 역할이었다. 앞서 반곡은 왜란에 대비하는 과정에서도 군량을 확보하는 데 발군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 전쟁 직전 선산부가 군량미 12만석을 확보했다는 학계의 연구 결과도 있다. 개전 초기인 4월 20일 경상감사 김수가 반곡을 참퇴장(斬退將) 겸 운량사(運粮使)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글자 그대로 참퇴장은 도망가는 군사를 군율로 처단하고, 운량사는 군량미를 공급하는 역할이다. 정경달은 군량미 일부를 금오산 도선굴(道詵窟)에 비축했다. 암벽으로 이루어진 금오산은 해발 976m의 요새였다. 반곡은 이곳에 면포와 소금 간장도 비축했으니 유격전을 펼 수 있는 바탕이 됐다. 하지만 1593년 봄부터는 몸이 아프다는 기록이 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명나라 장수들이 불만을 갖지 않게 접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반곡은 7월 3일 류성룡에게 편지를 보내 관직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청했다. 결국 정경달은 9월 10일 고향 장흥으로 돌아가 요양을 시작한다. 그런데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이순신이 반곡의 귀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렇게 1594년 2월 26일 그는 통제사의 종사관으로 한산도에 부임하게 된다. 그에게는 소속 연해 고을을 순찰하면서 수군을 관리하는 동시에 군량 조달을 위한 둔전(屯田) 경영의 소임이 주어졌다. 반곡의 표현대로 ‘한산도의 수군과 격군은 굶주린 지 이미 오래여서 얼굴에 핏기가 없어 한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을 것이며, 지난해 사망한 병졸의 해골이 해변에 쌓여 있는’ 상황이었다. 반곡은 여수 돌산도, 고흥 절이도, 완도 고이도, 해남 황원목장에 둔전을 만들어 삼도 수군의 군량을 충당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 정경달은 하지만 일년도 되지 않은 1595년 2월 남원부사로 옮겨 간다. 남원은 호남 방어의 중심으로 영남과 남해안을 잇는 중간 기착지여서 명나라 대군이 주둔해 있었다. 이번에도 정경달의 역할은 지방관보다는 명군 접대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반곡은 ‘명나라 참장 유유번(劉維藩)과 도사 담종인(譚宗仁)이 온갖 폐단을 일으켜 버티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남원부사로 재임했던 11월까지가 반곡에게는 고뇌의 시간이었다. 정경달은 1597년 3월 군직(軍職)인 오위장(五衛將)에 임명된다. 그런데 4월 19일 고향을 출발해 30일 한강을 건너자마자 이미 해직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명나라 군사를 접대하는 접반사(接伴使)에 다시 기용됐는데, 9월 17일 타고 가던 역마를 명나라 장수도 아닌 병졸에게 탈취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결국 정경달은 앓아눕게 된다. 이후 여러 차례 사직을 청한 끝에 1598년 4월 6일에야 그는 장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반곡은 6월 3일 다시 청주목사로 발령받았다. 당상관으로 승진한 것이지만 임무는 역시 명나라 군사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11월 6일자 일기에는 ‘명나라 병부주사 정응태(丁應泰)의 행차가 충주에 도착했는데, 관용 마필(刷馬)을 준비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곤장을 맞고 밤새 곤욕을 치렀다’고 적었다. 정경달의 울화는 쌓이고 쌓였다. 다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12월 30일 반곡은 ‘봄에는 가족으로 근심했고 여름에는 청주에서 곤욕을 치렀고 겨울에 이르러서도 충주에서 곤욕을 당하였으니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가장 불행한 해였다’고 적었다. 왜적과 맞설 때보다 명군을 상대하면서 훨씬 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얻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정약용이 ‘반곡난중일기’ 다듬어 오늘날 전하는 ‘반곡난중일기’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 다듬어 1817년 펴낸 것이다. 다산은 ‘벼슬이 낮은 이는 상관이 명령하는 바가 나를 함정이나 덫에 넣는다 하더라도 머리를 숙이고 받들 수 있다면 실패를 감수할 뿐이고, 멀리 사는 이는 마음에 품은 바가 천지(天地)를 바꾸고 일월(日月)을 굴릴 수 있다 하더라도 침묵할 수 있다면 분수를 지킬 뿐이니 유분(幽憤)이라 한다. 유분을 품은 이는 당세에 쓰이지 못하더라도 오직 필묵에다가 발설하여 후세에는 펼쳐지기를 바랄 뿐이니 고심(苦心)이라고 한다’고 했다. 다산의 깊은 뜻을 모두 알기는 어렵지만 반곡의 일기는 후세가 경계로 삼기를 바랐던 고심의 산물이라는 은유적 표현이 아닐까 싶다.
  • 순천시청 김연하 주무관, 사망자 신분 서모(71)씨 40여년만에 가족에게 인계

    순천시청 김연하 주무관, 사망자 신분 서모(71)씨 40여년만에 가족에게 인계

    “이런일이 처음이라 너무 뿌듯하고 감사하는 마음만 듭니다. 앞으로 가족간의 정 듬뿍 누리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하고 있어요.” 순천시 조곡동 행정복지센터 8급 공무원인 김연하(32) 주무관은 “연락을 받고 온 여동생과 부둥껴 안고 우실때는 동사무소 직원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고 민원실이 난리가 아니었다”며 “당연히 해야할 일인데 주변에서 수고했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오히려 부끄럽다”고 수줍음을 보였다. 임용 3년 차인 순천시청 사회복지 직원이 사망자 신분으로 살던 서모(71·남)씨를 40여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적극 행정을 펴 귀감이 되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1980년대 후반 부산으로 돈을 벌러 떠난 서씨는 이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노숙생활을 하면서 근근히 버텼다. 식구들에게도 차일피일 연락을 못하다 결국 단절됐다. 순천에 있는 가족들은 이후 소식이 끊어지자 서씨를 실종 신고했고, 이어 사망 처리된 상황이었다. 몸이 약해진 서씨는 지난해 10월 가족을 찾기 위해 본적지인 순천으로 돌아왔다. 순천시 해룡면이 고향인 서씨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을 찾아갔지만 주변이 개발되면서 흔적조차 알수 없었다. 이후 노숙을 하면서 기거하던 교회 목사의 도움으로 호적 부활을 하게 됐다.서씨의 사연을 접한 김 주무관은 기초연금과 기초생활보장 혜택 등을 지원하기 위해 가족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에 가족 또한 그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만 65세 이상이면 국민의 70% 이상이 받고 있는 기초연금마저도 신청이 돼 있지 않는 상태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서씨의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여동생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고 오빠를 수십년 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이다. 김 주무관으로부터 여동생의 얘기를 전해들은 서씨는 막상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보다는 부끄러움에 처음에는 무척 망설였다. 떨리기도 하고, 떳떳하지도 못한 창피함 등 복합적인 감정이 마음을 휘감았기 때문이다. 가족을 만날 자신이 없다고 한 서씨를 김 주무관은 계속 설득했다. 동생이 애타게 보고싶어 하는 마음을 가식 없이 전하고 용기도 북돋워줬다. 오빠가 외딴 섬에서 노역생활을 하지는 않았는지, 건강은 어떤지 등을 걱정한 여동생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들은 서씨는 힘을 내고 상봉할 수 있었다. 김 주무관은 “가족들이 만날수 있도록 중간다리 역할을 했을 뿐이다”며 “이렇게 극적으로 이뤄진 모습을 보고 공무원으로 더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주먹을 굳게 쥐었다. 서 씨의 여동생은 “오빠가 실종된 후 사망한 줄만 알고 가슴에 묻어 두었는데, 가족 품에 돌아올 수 있도록 도움을 준 행정복지센터 직원분께 감사드린다”며 “가족 모두 모여 따뜻한 식사와 함께 밤이 새도록 살아온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송명선 조곡동장은 “가족 일 처럼 적극 행정을 펴 훌륭한 결과를 이끌어 낸 김 주무관이 너무나 고맙다”며 “앞으로도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 “한국교회 목사들 정치 색깔, 일반 국민보다 보수적”

    “한국교회 목사들 정치 색깔, 일반 국민보다 보수적”

    한국교회 목사들의 정치 성향이 일반 국민보다 월등히 보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0대 이상 담임목사의 보수적 색채가 짙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가 23일 공개한 ‘2023년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신앙의식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50대 이상 담임목사 51%가 보수적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진보’는 28%, ‘중도’는 21% 수준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같은 연령대 일반 국민의 정치적 이념 성향이 ‘보수’ 38%, ‘중도’ 40%, ‘진보’ 22%로 나타난 것과 비교해도 담임목사의 보수적 색채는 확실히 짙었다.반면 3040 부목사의 정치적 이념 성향은 ‘보수’ 37%, ‘중도’ 32%, ‘진보’ 31%로 나타났다. 동일 연령대의 일반 국민 성향이 ‘보수’ 20%, ‘중도’ 57%, ‘진보’ 23%로 나타난 것과 비교하면 3040 부목사도 보수적 색채가 짙은 편이지만 50대 이상 담임목사와 비교하면 비교적 균일했다. 연구소는 “담임목사의 정치적 이념 성향은 동일 연령대의 일반국민(38%)보다 월등히 보수적이었다”며 “부목사의 정치적 이념 성향은 동일 연령대 일반 국민에 비해 보수, 진보가 둘 다 높아 전반적으로 정치 성향이 더 명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보수적 색채는 개신교인 전반에서 드러났다. 같은 조사에서 자신이 보수적이라고 응답한 개신교인은 ‘43%’, ‘중도’ 38%, ‘진보’ 19%였다. 연구소는 “전반적으로 개신교인이 일반국민 보다 보수적 성향이 더 높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1월 9일부터 16일까지 지역, 성, 연령별 비례할당 후 무작위 추출한 만 19세 이상 개신교인 2000명과 비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는 ‘2022 한국갤럽 종교 인구 분포 조사’ 결과를 반영해 개신교인 15%, 비개신교인 85% 비율로 정리한 것이다.
  • “변호 포기” 정명석 성폭행 조력자들 변호인단도 잇단 사임

    “변호 포기” 정명석 성폭행 조력자들 변호인단도 잇단 사임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총재 정명석씨 여신도 성폭행 사건의 공범인 ‘JMS 2인자’ 정조은(본명 김지선·44·여)씨 등 조력자들의 변호인단이 연달아 사임하고 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씨의 준유사강간 혐의 등 사건을 맡은 안모 변호사가 전날 대전지법 형사12부(부장 나상훈)에 사임 신고서를 냈다. 지난 17일 법무법인 법승의 소속 변호인 6명이 대거 사임 신고서를 낸 데 이어 법무법인 지원피앤피도 1명만 남기고 담당 변호인 지정 철회서를 냈다. 이에 따라 6명 피고인에 대한 변호인은 현재 2명만 남았다. 정조은으로 불리는 김씨는 정씨의 ‘JMS 2인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씨는 홍콩 국적 여신도 A(29)씨에게 정씨를 ‘메시아’로 칭하며 세뇌하고, 2018년 3~4월쯤 세뇌로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A씨에게 잠옷을 건네주며 ‘여기서 주님을 지키며 잠을 자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정씨의 준유사강간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함께 구속기소된 민원국장 김모(51·여)씨는 2021년 9월 초 정씨에게 성폭행당했다고 호소한 A씨에게 ‘그것이 하나님의 극적인 사랑’이라고 말하며 세뇌한 혐의가 있다. 같은 해 9월 14일 항거불능 상태의 A씨를 정씨에게 데려갔고, 정씨가 범행하는 동안 근처에서 대기한 혐의(준유사강간방조)를 받는다. 정씨의 성폭행 범행에 가담하거나 도와준 국제선교국장과 수행비서 등 JMS 여성 간부 4명도 강제추행 방조와 준강간 방조, 준유사강간 방조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대전지검 관계자는 “구속된 피고인 2명에 대해서는 필요적 변론 사안이어서 반드시 변호인이 있어야 하나, 나머지는 불구속기소된 피고인들이어서 방어권 행사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에 대한 첫 재판은 내달 9일 열린다.이들은 미모의 여신도들을 ‘신앙스타’(결혼하지 않고 선교회의 교리에 따르는 사람들)로 뽑아 관리하면서 “정명석은 재림예수이고 정명석의 사랑은 아무나 받지 못하는 선택적인 은총이며 그를 거부하면 지옥에 간다”고 세뇌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 신앙스타를 담당하는 국제선교국, 국내 신앙스타를 담당하는 민원국, 성폭력이 이뤄지는 동안 밖에서 대기하며 감시하는 수행비서 등으로 역할을 나눠 조직적으로 성폭력 범행에 가담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앞서 정씨의 변호인단도 법무법인 광장 변호인 6명이 전원 사임하는 등 잇따라 그만두면서 JMS 목사 출신인 양승남 변호사 등을 포함해 7명만 남았다. 사임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정씨의 범행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방영 이후 악화한 여론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정씨는 2018년 2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충남 금산군 월명동 수련원 등에서 23차례에 걸쳐 A씨를 추행하거나 성폭행하고 호주 국적 여신도 B(30)씨와 한국인 여신도를 성추행한 혐의(준강간 등)로 구속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 김재원 “기회되면 총선 출마…최고위원직 사퇴는 안한다”

    김재원 “기회되면 총선 출마…최고위원직 사퇴는 안한다”

    ‘당원권 정지 1년’ 징계를 받은 김재원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이 “기회가 돼 출마할 수 있으면 출마하겠다”면서 총선의 꿈을 버린 건 아니라고 말했다. 김 수석최고위원은 ‘제주4·3, 격 낮은 기념일’ ‘전광훈 우파 천하통일’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반대’ 등의 발언으로 당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아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2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김 수석최고위원은 당원권 1년 정지 처분을 받아 2024년 총선에서 당의 공천을 받기 어려워진 상황임에도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할 것인지를 묻자 “무소속 출마를 생각하고 어떤 활동을 할 수 있겠냐”면서도 이같이 답했다. 김 수석최고 “이번 징계, 찬반 논란 있던 징계”‘전당대회 최다득표·징계 반대 서명운동’ 언급 이날 인터뷰에는 당 윤리위 징계와 관련한 이야기가 첫 화두에 올랐다. 진행자가 태영호 의원처럼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해 징계를 감량 받지 않은 까닭을 묻자 김 수석최고위원은 당 윤리위가 이번 징계를 어떻게 판단했는지에 대해 먼저 말을 꺼냈다. 김 수석최고위원은 “이번 징계 자체는 범죄에 연루되거나 당의 정상적인 운영을 못하게 했다든가 이런 류의 징계가 아니다. 찬반 논란이 있던 징계”라고 주장했다.이어 ‘전당대회 최다득표’와 ‘지지자들의 징계 반대 서명운동’ 때문에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는 최다 득표로 최고위원에 당선이 됐다. 제가 사퇴해 버리면 저를 지지해 줬던 당원들이 더 이상 저에 대해서 기대할 수가 없지 않는가”라며 “그래서 사퇴할 수 없었다. 물러설 수 있는 길이 없었다”라고 밝혔다. 최고위원직 사퇴에 대한 회유나 압박은 없었는지 묻자 김 수석최고위원은 같은 당 유상범 수석대변인과의 친분을 언급했다. 그는 “오랜 친구인 유상범 의원이 ‘최고위원 사퇴로 돌파구를 찾아보라’라고 권해 잠시 흔들렸지만 자신을 최다득표 최고위원으로 뽑아준 당원을 생각해서 사퇴하지 않았다”라고 거듭 말했다. 유 수석대변인은 김 수석최고위원과 서울대학교 84학번 동기로, 유 대변인은 정치입문을 앞두고 “친구인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여러 도움말을 들었다”라고 말한 각별한 사이다.진행자가 “일각에선 김재원 최고위원의 공천 길이 막혔으니 무소속 출마하지 않겠느냐, 조원진 전 의원은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라고 물었다. 이에 김 수석최고위원은 “그분도 저하고 연락한 지 오래돼 모르는 분들이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한다. 일일이 답할 필요 없다”면서 “물론 기회가 된다면 출마를 하겠지만 또 출마 외에도 또 다양한 역할이 또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그동안 무려 5번이나 공천 탈락했지만 단 한 번도 무소속으로 출마한 적 없다”고 무소속 출마 가능성에 손사래 치면서도 “내일의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가능성을 일부 열어 놓기도 했다. 이어 진행자가 당원권 정지 1년 동안 최고위원직 사퇴 없냐고 묻자 “벌써 1년도 안 남았다”라며 여유를 보였다. 김 수석최고 “‘5·18 헌법 반대’ 발언은 덕담…‘전광훈 우파 천하통일’ 과장된 설명·비유” 이날 인터뷰에선 ‘전광훈 우파 천하통일’,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관련 설화에 대한 김 수석최고위원의 해명도 나왔다. 김 수석최고위원은 “‘5·18 발언’ 같은 경우 전광훈 목사에게 소위 말린 거라고 보냐”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런 표현을 쓰면서 비난할 생각은 없다”라고 답했다. 그는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올리는 것을 김기현 대표가 주장했다라고 하면서 (전광훈 목사)교회 예배에서 그 많은 신도들 앞에서 우리 당 대표를 비난하니 절차적으로 지금 될 수도 없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으니 당 대표 비판할 필요 없다고 설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돌잔치에 가면 아이 보고 예쁘다고 하잖냐. 덕담을 하잖냐. 그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징계를 당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에 진행자가 “전광훈 목사 우파 천하통일 얘기는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발언 후에 벌어진 일이다. 그건 왜 그랬냐”라고 물었다. 김 수석최고위원은 ‘전광훈 우파 천하통일’이 미국에 있는 지지자들 강연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의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나온 발언이라면서 “굳이 천하통일이라고 하지 않고 ‘행동하는 보수 우파들을 통합해서 지금 광화문에서 싸우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했으면 별 문제가 없었을 텐데 그 청중에게 조금 강연을 하다 보면 조금 과장해서 설명하거나 비유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빌미가 됐다”라고 답했다.
  • 전광훈 지지 논란 이영훈 목사 “부주의했다 깊이 사과”

    전광훈 지지 논란 이영훈 목사 “부주의했다 깊이 사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당사 개소식에 참석해 논란을 일으킨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마음에 불편을 느꼈을 분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이 목사는 21일 해명문을 통해 “사적인 자리라고 해도 주의했어야 하는데 저의 부주의로 논란이 되게 되어 대단히 송구하다”면서 “제가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데 전혀 시의적절치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논란은 이 목사가 지난 16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자유통일당 당사 중앙당 개소식에 참석해 전 목사를 지지하는듯한 기도를 하면서 불거졌다. 이 목사는 “이 땅에 주사파가 들끓고 공산주의로 빨갛게 물들어가는 이때 자유통일당이 특별히 주사파를 타파하기 위해서 공산주의를 뿌리뽑기 위해서 사명을 갖고 세움받은 것을 감사드린다”면서 “선봉장으로 전(광훈) 목사님 세우셨는데 하나님이 지키시고 함께하셔서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뤄야 할 줄을 믿는다”고 했다. 지난 18일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과 만난 이 목사는 “저희 교회가 소유하다 매각했던 빌딩에 사무실을 냈다며 기도해달라고 해서 갔다가 그런 행사인 줄도 모르고 떠밀려 기도해준 것인데 많은 오해가 생겼다”며 “제 입장은 진보와 보수 모두를 포용하는 것이고 극진보든 극보수든 다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이번 논란은 이 목사가 지난해 12월부터 개신교 최대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더 커졌다. 특정 교회 목사로서 정치적 행사에 참석하는 것과 대표회장으로서 참석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간 한국교회 전체가 정치에 관여하고 전 목사를 지지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한국 개신교는 여러 분화 과정을 거쳐 지금은 최대 연합단체인 한교총을 중심으로 합심하고 있다. 한교총에서는 전 목사 측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대표회장인 이 목사가 전 목사를 지지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내부에서도 당황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 목사는 지난해에도 대선 이후 경기 파주시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전 목사를 지지하는듯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이 목사는 “우리 전 목사님이 목숨 내놓고 복음을 전하고 목숨 내놓고 이 나라를 지켜서 하나님께서 이번에 정권이 교체되게 만들어 주시고”라고 말했다. 이 목사가 해명문에서 “목회자로서 저의 입장은 중도보수의 입장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복음으로 포용하고 화평케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배치되는 발언이다. 전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산하기관인 오산리기도원에서 예배를 열기도 한다. 또한 광화문 대형집회 때는 이 목사의 음성 설교도 틀고 있다. 이 목사가 평소 “주사파 척결”, “공산주의 때려잡자”를 강력하게 외쳤던 것이 전 목사가 주도하는 집회에 버젓이 활용되는 것이다. 19일 교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목사는 “중립적 입장에 서서 어느 한쪽 편으로 교회가 정치화되는 것은 지양해 왔다”고 했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설교가 한쪽 편의 정치 집회에 쓰이는 실정이다.전 목사는 코로나19 시국에 법을 위반하고 집회를 강행해 많은 국민에게 지탄을 받았다. 여기에 집회에서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발언으로 교계 내부에서도 신성모독으로 강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전 목사 측은 지난달 세종대로에서 열린 ‘2023 부활절 퍼레이드’ 당시 퍼레이드 참가자들을 향해 ‘마귀들과 싸울지라’ 찬송을 부르며 “이 XX야 왜 예배를 방해하냐”, “간첩들”, “너희들이 기독교인이야?” 등의 말을 쏟아낸 바 있다. ‘부활절 퍼레이드’는 이 목사도 한교총 대표회장 자격으로 다른 교계 관계자들과 함께 개최에 공을 들인 행사다. 다만 이 목사는 또 다른 간담회에서 “부활절 퍼레이드는 CTS에서 준비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으며 다른 목회자들과 달리 퍼레이드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이처럼 전 목사를 둘러싼 여러 논란을 고려했을 때 한교총 대표회장인 이 목사가 진작에 처신을 잘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교계 내부에서도 나온다. 이에 대해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 역시 전 목사의 요청으로 참석하게 됐는데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과거부터의 인연, 전 목사의 영향력 등 여러 상황을 종합하면 이 목사가 앞으로도 전 목사가 주도하는 행사에 참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절대 이 같은 오해되는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삼가 조심, 또 조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씨줄날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박현갑 논설위원

    1970~1980년대 종교인들의 시국선언은 국민의 공감을 받았다. 1974년 7월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 무효라고 양심 선언을 했다가 15년형을 선고받은 이후 결성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선언이 대표적이다. 젊은 사제들 중심으로 만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권력에 맞서 민주화와 인권, 사회정의 실현을 외쳤다. 특히 김승훈 신부는 1987년 5월 명동성당의 추모 미사에서 그해 1월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살인 사건을 폭로해 6월 항쟁 촉발에 기여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나온 종교인들의 행보는 그 양상을 달리한다. 극단적인 정치 도발로 갈등만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광훈 목사의 정치적 발언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자살하면 안 돼”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가 하면 ‘22대 총선 국민의힘 200석 전략’ 운운하며 신도들의 특정 정당 가입을 독려하는 등 국민의 눈살을 지푸리게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잦아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발언도 그렇다. 지난 14일 사제단의 지성용 신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코인 투자로 검찰의 수사 대상인 김남국 의원에 대해 “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 그저 제 돈 갖고 투자한 것이고 평소 검약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진보는 돈 벌면 안 되는가”라고 밝혔다. 김 의원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 마당에 자진사퇴 촉구는 못 할망정 돈 벌면 안 되느냐는 반문이라니 언어도단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사제단의 박주환 신부가 당시 해외 순방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전용기가 추락하는 모습의 합성사진에 “비나이다”라는 글을 적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종교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적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하지만 종교인의 직분을 망각한 채 사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정치인을 두둔하거나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죽기를 바란다는 염원을 공개리에 하는 건 ‘원수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라야 할 성직자의 도리가 아니다. 헌법은 정교분리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국가가 국민의 내면적 신앙생활에 대해 개입할 수 없듯 종교도 국민의 투표에 의해 탄생한 정부의 정치적 결정에 대해 관여를 자제하라는 뜻이다. 성직자들이 이성을 되찾기 바란다.
  • 여의도순복음 창립 65주년…이영훈 목사 “가난 구제 앞장”

    여의도순복음 창립 65주년…이영훈 목사 “가난 구제 앞장”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교회 창립 65주년을 맞아 “어려운 사람을 돌보고 가난 구제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18일 서울 영등포구 페어몬트 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국교회가 지금의 위기와 침체 국면을 이겨 내려면 초창기의 교회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가 먼저 새로워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58년 5월 18일 서울 은평구 대조동 천막교회로 시작했다. 조용기(1936~2021) 목사 포함 5명이 꾸린 교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이 목사는 “1960~70년대 절망과 가난의 시대에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며 교회의 성장을 돌아봤다. 올해로 담임목사 15주년을 맞은 이 목사는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으로서 고민도 크다. 그는 “한국교회가 물량주의, 개교회주의로 빠지면서 일부 비판을 받고 있다”면서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했던 성경 말씀처럼 교회가 어려운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는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오는 21일까지 ‘하디 원산부흥회 120주년 및 오순절 성령강림대기도회’를 진행한다. 23일에는 ‘부흥의 역사와 미래’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30일에는 창립 65주년 기념 음악회를 연다.
  • ‘차별금지법’ 갈등 겪었던 NCCK…이천우·태동화 목사 총무대행 선출

    ‘차별금지법’ 갈등 겪었던 NCCK…이천우·태동화 목사 총무대행 선출

    차별금지법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18일 이천우 목사와 태동화 목사를 공동 총무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이 목사는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 선교부장, NCCK 정의평화위원회부위원장. NCCK인권센터 이사, 등을 역임했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 넘치는교희의 담임목사로도 재직 중이다. NCCK 5국 중 연구개발·협력국의 업무를 맡아 인선위원회를 비롯한 총무 선출의 모든 과정을 주관한다. 태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객원교수, 감리교군선교회 전문위원, 기독교대한감리회 선교국 총무 등을 맡고 있다. 총무 대행으로 정의·평화국, 일치·교육국, 화해·통일국, 국제협력국에 속한 모든 업무를 맡는다. 앞서 이홍정 NCCK 총무는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문제 등으로 회원 교단들과 갈등이 불거지자 지난 4월 정기회의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 ‘나부터 실천’ 탄소중립 나선 한교총

    ‘나부터 실천’ 탄소중립 나선 한교총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탄소중립 실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한교총은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중립 제1차 포럼 및 사업설명회’를 개최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종교계의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공동대표회장 송홍도 목사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앞으로 10년간 단기 기후 행동은 시급성과 중요성을 가진다”면서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나부터, 우리 가정과 교회부터 실천하겠다는 한국교회의 응답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송 목사는 ‘나부터 실천’ 사업에 동참을 호소했다. 장재윤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는 “다시 성서로 돌아가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이제 근본적인 것부터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라며 “만물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하나뿐인 지구 안에서 함께 친구로 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교총은 ‘2023 탄소중립 나부터 실천 사업’을 통해 한국교회 전체의 관심과 협력을 요청했다. 6월 4~10일까지는 ‘기후환경주간’을 정해 피켓 캠페인을 진행한다.
  • “이젠 됐다 할 때까지 일제 만행 사죄”…日양심 오야마 목사 별세

    “이젠 됐다 할 때까지 일제 만행 사죄”…日양심 오야마 목사 별세

    “일본의 과거 침탈을 깊이 사죄합니다. ‘이젠 됐어요’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계속 사죄하겠습니다.” 일제 만행에 대한 사죄 운동을 벌여온 일본 기독교계의 양심인 오야마 레이지 목사가 16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1927년 도쿄에서 태어난 오야마 목사는 와세다대학원과 도쿄신학숙을 졸업한 후 목회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45년 일본 패전 뒤 일본에서 최초로 아시아 각국에 대한 사죄 운동을 전개했다. 일한친선선교협력회 회장을 맡았던 오야마 목사는 일한친선선교협력회 소속 일본인 원로 목사 15명과 2014년 10월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를 찾았다. 당시 그는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김복동 할머니 앞에서 “일본인은 당신들의 소중한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면서 “신이 당신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기를 기도한다”고 사죄문을 읽었다.2019년 2월에는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 100주년을 맞아 일한친선선교협력회 회원으로 구성된 사죄단을 이끌고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 순국기념관을 방문했다. 일본은 3·1운동의 확산이 두려워 1919년 4월 15일 제암교회에 주민 23명을 가두고 잔혹하게 살해했다. 일본인 사죄단은 “일본의 과거 침탈을 깊이 사죄합니다. ‘이젠 됐어요’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계속 사죄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예배당 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사죄했다. 오야마 목사는 “당시 일본은 3·1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고문하고 학살하고 교회를 불태웠다”면서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은 아무도 사죄하지 않고 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처럼) 사죄하는 일본인이 있다는 걸 (한국인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그는 기독교인학생회(KGK)와 성서그리스도교회 창립자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어 ‘현대역 성서’의 역자이기도 하다.
  • 김재원 “최고위원 직책 버릴 수 없었다…가처분 생각도 안 해”

    김재원 “최고위원 직책 버릴 수 없었다…가처분 생각도 안 해”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자신을 지지하는 당원들을 위해 최고위원 직책을 버리지 않았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했다. 김 최고위원은 16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 14일 저의 징계 과정에 많이 걱정해 주시던 분들의 요구로 ‘국민이 묻는다. 김재원은 답하라’는 주제의 토크쇼에 참석했다”면서 “이 자리에서 많은 분들의 다양한 의견이 분출됐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최고위원) 1위로 뽑아주신 당원들의 뜻을 받들기 위해 당원권 정지 1년의 징계를 감수하면서도 최고위원 직책을 버릴 수 없었음을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우리 당의 최고위원으로서, 언제 어디서든 당의 발전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총선승리에 필요한 전략과 방향을 계속 말씀드리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에도 글을 올려 “현재 저는 스스로를 추스르며 여러 가지 준비와 모색의 시간을 갖고 있을 뿐, 저에 대한 당원권 정지 1년의 징계처분에 대해 재심청구나 가처분 소송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며 일축했다. 앞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경선을 1위로 통과한 김 최고위원은 ‘5·18 정신 헌법 수록 반대’, ‘제주 4·3은 격이 낮은 기념일’, ‘전광훈 목사가 우파 천하통일’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윤리위)는 김 최고위원에게 지난 10일 당원권 정지 1년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로써 김 최고위원은 내년 총선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김 최고위원은 윤리위 결정이 발표된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저를 지지해 주신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러운 마음뿐”이라면서 “ 앞으로도 우리 당과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찾아서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JMS 민주당’, ‘제주 4·3은 북한 김일성 지시’ 발언과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 관련 녹취 논란으로 김 최고위원과 함께 윤리위에 넘겨진 태영호 전 최고위원은 윤리위에 앞서 최고위원 사퇴 선언을 했다. 태 전 최고위원은 당원권 정지 3개월의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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