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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일 ‘통일맞이 대동제’ 연출 문호근씨

    “끊어진 경의선 철로가 세종로 한복판에서 55년만에 이어집니다.서울역에서 평양가는 기차표를 사고,부산에서 신의주까지 내달리는 통일의 그날을 그리며 민족화합의 한마당을 연출할 작정입니다”15일 광화문앞 특설무대에서 열리는 ‘통일맞이 대동제’의 총 기획연출을맡은 문호근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은 “올해는 재야세력이 주도하는 반쪽짜리 행사가 아니라 전국민이 함께하는 통일 한마당이라는데 큰 의의가 있다”며 활짝 웃었다. ‘통일맞이 대동제’는 민족화해협력범민족협의회와 7개종단,시민사회단체공동주최로 12일부터 시작되는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2000 통일맞이 대축전’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얼마전만해도 상상도 할수 없던 일이죠.70을 넘기신 아버님이 북한땅을 밟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빨갱이’로 몰려 이빨이 듬성듬성 빠질 만큼 옥고를 치르지 않았습니까”문호근씨는 통일운동의 선봉장이었던 문익환목사(94년 별세)의 장남이다.그런 그가 남북정상회담과 그후의 화해 실천노력을 지켜보는 감회는 누구보다특별하다.지금은 ‘운동권 연출가’로 알려졌지만 그는 한때 제도권 문화예술계에서잘나가던 인물.서울대 작곡과 졸업후 31세부터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연출을맡았다.33세에는 문예진흥원 1기 장학생으로 뽑혀 유럽 최고의 오페라단을돌며 연출공부를 하고 돌아와 국립극장 최다관객 동원 등 기록을 세우기도했다.그러나 89년 3월 선친이 방북한 뒤 외부의 힘에 의해 설 자리를 모두빼앗겼다.자의반 타의반으로 ‘운동권’이라는 새 길을 선택했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98년 예술의전당 공연사업본부장 겸 예술감독에 취임했다. 오후6시부터 9시30분까지 계속되는 ‘통일맞이 대동제’는 경찰관악대 퍼레이드와 ‘진쇄풍물패’가 분위기를 띄운다.시인 신경림씨가 축시 낭송을 하고 명창 안숙선,가수 안치환,꽃다지 노래패 등도 함께 한다.또한 남산에선횃불이 올라가고 여의도 한강둔치에선 화려한 폭죽놀이가 펼쳐진다. 이번 행사는 남북이산가족들이 남에서 북에서 부둥켜안고 눈물어린 회포를나눌 그시간에 그들의 만남을 축하하고,아쉽게 제외된 이들을 위해서는 따뜻한 위로를 한다는 의미도 깔려 있다. 이번에도 설치미술가 최병수씨,시인 김정환씨,안무가 오세란씨 등이 함께 뭉쳤다.이들과는 89년 민예총 ‘우리 손을 잡자’,90년 범민족 대회 등 행사를여러차례 엮어 냈었다. “아버님은 언젠가 이런 시를 쓰셨어요.‘통일이라 함은 서울역에 가서 평양으로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다’라고요.이번 퍼포먼스를통해서 아버님의 못다한 꿈을 이뤄드리고 싶습니다”선친에 대한 기억을 더듬던 그는 끝내 눈시울이 붉어지고야 말았다. 허윤주기자 rara@
  • [해외항일전적지를찾아서](4)북간도 독립투쟁 본거지龍共·明東

    연변 조선족자치주 주도(州都)인 연길시(延吉市)에서 대절한 짚은 단숨에모아산(帽兒山) 고속도로를 달려 올라갔다.산아래 강렬한 여름햇빛을 받으며짙푸른 벌판이 드넓게 누워 있었다.취재팀의 자문역으로 동행한 연변대학 민족 연구소 박창욱 교수는 “초기 유민들이 개척한 땅”이라고 말했다. 차를세워 사진을 찍은 뒤 내리막길을 달렸는데 금새 작은 도시가 앞에 나타났다. 우리 유민들이 세운 도시,일제에 줄기차게 저항했던 용정(龍井)이었다. 어서달려가 손으로 어루만지고 싶을 만큼 정겨웠다. 딸랑딸랑 요령을 울리는 당나귀 달구지들과 섞여 해란강의 룡문교(龍門橋)를 건넜다.다리길이는 80미터쯤.강물은 좁은 골을 타고 실타래처럼 흐르고하상의 6할은 모래펄과 잡초였다.교통량이 많아져서인지 바로 옆에 새 다리를 건설하고 있었다.시내로 들어가 먼저 서전서숙(瑞甸書塾)터에 차를 세웠다.을사조약 강제체결후 국운이 기울자 이상설·여준·이동녕·정순만 등은1906년 이곳에 와서 학교를 세우고 신학문과 조선역사를 가르쳤다.다음해 이상설과 정순만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떠난 뒤 일제가 용정에 조선통감부 간도파출소를 설치하고 탄압을 가하자 곧 문을 닫았다. 길지않은 기간이었지만 서전서숙이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북간도 전체에 민족혼을 고취하는 수십개의 학교가 세워졌던 것이다.옛 서전서숙 자리에는 용정실험소학교가 들어서 있었다.교문 앞이 저자거리로 변해 버려 조금은 어수선했다.교문을 들어서니 왼쪽에 낡은 건물이 보였다.서전서숙이 문을 닫자일제가 그 자리에 소학교를 세웠는데 그 건물이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그 시절의 흔적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아쉬워하며 육도하거리로 나가 지금은 용정시인민정부 청사로 쓰이는 옛 일본영사관 정문 앞에 섰다. 일제는 1909년 10월조선통감부 간도파출소를 총영사관으로 바꾸고 두 해 뒤에 이 건물을 신축했다.워낙 견고하게 지은 터라 90년이 지난 지금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그것을 바라보며 옛일을 상상하는데 그 옛날 이곳에서 울렸던 만세함성이 환청처럼 들려 왔다. 기미독립선언서가 북간도로 들어온 것은 1919년 3월8일.지도자들은 수백 장을 비밀리에 인쇄 배포하고 13일 정오에 거사할 것임을 알렸다. 일제와의 갈등을 원하지 않았던 군벌 장작림(張作霖)은 군대를 용정으로 급파했다. 그날북간도 곳곳에서 동포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군대가 길목과 다릿목을 차단했으나 산벼랑을 타고 강을 건너 쏟아져오는 군중을 막을 수는 없었다.천주교회의 종을 울리는 것을 시작으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명동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된 1만명이 넘는 시위대는 홍수처럼 일본인 상부지(商敷地)와 용정역을 휩쓸고 영사관으로 돌진했다.군벌군대와 일본영사관 경찰이 무차별총격을 했고 희생된 사람은 17명.그뒤 만세시위는 만주땅 전체에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갔다.시위대의 자취를 밟아 옛 천주교회 터와 용정역을 찾아갔다.교회는 일본인들이 헐어버려 흔적도 없고,1930년대에 개축되었다는 용정역도 무심히 외치는 장사치들의 목소리만 땡볕 속에 공허하게 퍼지고 있었다. 취재팀은 육도하(六道河)강을 따라 명동(明東)을 행해 달렸다.옛 유민들의길,망명가들의 길을 거꾸로 밟아 가는셈이었다.함경북도 회령에서 두만강을건너면 만주땅 삼합(三合)에 발을 딛게 된다.멀리 코끼리등 같은 오랑캐령의구릉이 보인다.그것을 넘으면 저절로 육도하라는 작은 강을 따라 걷게 된다. 한나절쯤 가면 명동에 이르고 또 한나절을 걸으면 용정이다.길을 넓히느라도처에서 공사를 벌이고 있어 몇 번이나 육도하 쪽으로 내려가 물에 잠긴 자갈길을 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마치 말을 탄 선구자처럼 몸이 껑충 솟구치곤 했다.도중에 차를 세운 곳은 ‘15만원 탈취의거’의 현장 동랑고개였다.1919년 11월,윤준희·임국정·최봉설 등 철혈광복단원들은 일제가 거금을 용정 영사관으로 호송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매복했다. 대담한 기습으로 호송대를 사살한 그들은 돈자루를 메고 북국의 설원을 걸어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까지 갔다.그곳 한인회 부회장이던 엄인섭에게 사실을토로하고 무기구입 알선을 부탁했다.엄인섭은 돈에 눈이 멀어 그들을 밀고했고,최봉설을 제외한 네 사람은 체포돼 총살당했다.당시 일본군은 러시아백위군을 돕는다는 명분아래 연해주에 출병해 있었고 결국 돈은 다시 일본군에게 돌아갔다.이 무렵 독립군은 입대 지원자가 십만이 넘었으나 무기가 없어 받아들이지 못했다.마침 백위군을 도우려고 연해주에 출병한 체코 군대가돌아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성능좋은 총을 닥치는대로 팔고 있었으므로 그돈이면 소총 5,000정은 살 수 있었다.그것이 홍범도나 김좌진에게 갔다면 어찌되었을까 생각하며 명동으로 향했다. 1899년 함경북도 회령,종성에 살던 유학자 김약연·김하규·문치정 등은 가산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이주해 중국인 지주의 황무지를 사들였다.비옥한 땅을 일궈 탐관오리가 없는 정직한 신천지를 만들고 조국을 구할 인재를 키우자는 뜻에서였다.횃불을 켜고 육도하 물을 끌어들여 논을 풀어 세 해만에 생존의 고비를 넘어섰다.첫 추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이때부터 1할씩 떼어 학교설립 기금을 모았다.1907년 용정의 서전서숙이 문을 닫자 학교 설립의 필요는 더 커졌다.그들은 1908년 명동학교를 세우고 다음해는 중학교,그 다음해는 여학교를 세웠다.북간도 동포들은자식들을 이곳으로 보냈고 졸업생과재학생 들은 ‘3·13만세시위’와 항일전쟁에 앞다투어 몸을 던졌다. 명동의 성장과 발전에는 김약연(金躍淵·1868∼1942)의 역할이 가장 컸다. 신문물과 신사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며 정재면·황의돈·장지영 등 신문물을 익힌 우수한 젊은 교사들을 초빙했다. 그리하여명동을 민족정기의 성지로 만들어 갔다.그는 항일시인 윤동주(尹東柱)의 외숙이기도 하다.취재팀을 태운 짚은 육도하강을 아슬아슬하게 건너 세 선각자가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장재촌(長財村)으로 접어들었다.‘나의 행동이나의 유언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김약연은 마을 뒷산 풀밭 묘지에누워 있었다.명동촌은 거기서 200미터쯤 떨어져 있고 두 마을 사이로 새로뚫린 길이 관통하고 있었다.명동촌은 한가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모습으로취재팀을 맞았다.누렁개와 볏이 빨간 수탉이 달려가고 느릿느릿 황소를 끌고가던 동포 농부는 웃으며 손을 들어 명동학교터를 가리켰다. 학교터는 담배밭이었다.명동교회는 역사 전시실을 겸하고 있는데 예배도 본다고 안내원이말해 주었다.교회 바로 아래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었다. 명동출신으로 영화계의 선구자 나운규도 있으나 그는 명동교회 전시실의 사진 몇장으로 남아 있었다.그밖에 문익환(文益煥)목사도 있다. 그는 명동을 세운세선각자 중 하나인 문치정의 손자다.명동에는 안중근의 숨결도 남아 있다.1908년 연해주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국내진공을 감행해 회령에서 참패한 후홀로 찾아와 절치부심하며 사격연습을 했다는 산골짜기가 바로 명동의 뒷산이었다. 돌아오는 길에,기미년 만세시위 때 순국한 분들이 묻힌 ‘3·13반일의사릉’에 들렀다.한창 확장공사를 하고 있는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100미터쯤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면 된다.깔끔하게 단장된 봉분들 위로 흰 나비들이 하늘하늘 날고 있었다.자동차는 윤동주 묘가 있는 ‘영국데기’언덕을 멀리 바라보며 화룡(華龍)쪽으로 달렸다.화룡시 북쪽 약 3㎞ 국도의 오른쪽 구릉,항일운동의 정신적 바탕이 된 대종교 3종사(倧師) 나철·서일·김교헌의 묘지가깨끗하게단장되어 있었다.국조 단군을 표상을 삼고 항일투쟁에 힘을 집중한것이 대종교였고,청산리 전투의 주역인 북로군정서의 장병은 대부분 대종교신자였다. 항일투쟁의 근거지 북간도.그 옛날 우리 유민들이 개척한 드넓은무논지대에 뉘엿뉘엿 여름해가 지고 있었다.취재팀은 1909년 망명해온 나철이 대종교 본부를 세웠던 청파호(靑波湖) 마을을 멀리 바라보며 차에 올랐다. 용정 이원규(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 “객관성 없을땐 반론보도 안해도 무방”

    언론보도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무분별한 반론보도청구에 제동이 걸렸다. 언론사는 “반론보도 청구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경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이는 보도내용의 진실여부를떠나 반론보도를 해주도록 하던 기존의 법원 판단을 뒤집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최근 서울고법 민사8부(재판장 채영수 부장판사)는 만민중앙교회와 이재록목사가 MBC ‘PD수첩’의 보도와 관련,MBC를 상대로 신청한 반론보도 심판항소심에서 “1심 판결에 따라 MBC가 내보낸 14건의 반론보도 가운데 이 목사가 자신이 기도하면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 사실 등 객관적인 사실과 일치한 4건에 대해서는 반론보도를 할 필요가없다”고 판결했다.결국 MBC측은 1심 판결을 토대로 내보낸 14건의 반론보도가운데 4건은 안해도 될 것을 보도한 셈.MBC측은 “항소심에서 취소된 4건에대해 전파료에 해당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법원의 판결은 진실여부를 떠나 반론권을 폭넓게인정하던 종래의 법원의 관행을 뒤집은 것으로,이는 정간법(제16조)과 방송법(제91조)의‘반론보도청구’조항 가운데 ‘청구된 반론보도의 내용이 명백히 사실에 반하는 경우 게재를 거부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포괄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운현기자 jwh59@
  • “340만달러 의약품 北 전달” 민족 서로돕기 LA본부

    [로스앤젤레스 연합] 오는 15일 남북 이산가족 상호방문에 맞춰 북한에 340만달러 상당의 의약품이 전달된다. 이오연(47·목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KASM) 로스앤젤레스(LA)본부 사무총장은 3일 “340만달러어치의 의약품을 실은 현대상선 소속 선박이 현재 인천항으로 항해중”이라며 “이들 약품은 7일 인천항을 거쳐 이산가족상봉일인 15일 북한남포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사무총장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상봉 등 화해분위기 조성에 기여하면서 북한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번 일을 계획했다”면서 “LA본부가 북한에 보낸 구호품 중 단일 선적기준으로는 이번이 가장 규모가 크다”고 밝혔다.
  • ‘밥퍼 목사’ 의 사랑나눔 고백록

    ‘다일공동체’를 이끌며 빈민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최일도목사가 그동안 봉사활동과 목회과정에서 느낀 심경을 토로한 새 책 ‘이밥먹고 밥이되어’(도서출판 울림)를 펴냈다. 최 목사는 신간 ‘이밥먹고 밥이되어’에서 지난 6년동안의 자신의 모습을되돌아보면서 ‘참 사랑’을 통한 나눔과 섬김의 의미를 거듭 거듭 확인하고있다. 지난 95년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이란 책으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최 목사의 신간은 무엇보다 한국 목회의 현주소를 지적하면서 진정한 의미의사랑이 확산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게 특징이다. “매일 밥상에 올려지는 수많은 음식이 그 생명을 희생해서 우리에게 먹거리로 바쳐지듯이,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스스로 인간의 ‘밥’이되어인간을 살리기위함이었듯이,나 또한 자신을 남김없이 바쳐 가난하고 소외된이웃을 살리는 삶을 살고 싶다”는 고백이 대표적인 글이다. 최목사는 특히 책에서 최근 일부 교회에서 불거진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직세습에 대해서도 ‘교회란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교회가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평소 자신의 지론으로 타락한 교회를 날카롭게꼬집었다. 김성호기자 **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

    “제주의 남쪽 앞 바다에서 배 한 척이 난파하여 좌초하였기로 대정현감과판관으로 하여금 현장에 나가 진상을 조사케 하였으나 어느 나라 사람인지알아낼 수 없었습니다.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처음 보는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이 사람들은 눈이 파랗고 코가 높으며 머리는 붉고 수염은짧게 기르고 있는데 개중에는 아랫수염은 밀고 윗수염만 남긴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효종 5년(1654년) 제주목사 이원진이 제주에 상륙하였던 하멜일행을 발견하고 조정에 올린 장계(狀啓) 내용의 일부분이다. 350년전 조상들이 우리와 전혀 다르게 생긴 이방인을 보고 이들에 대하여가지고 있던 호기심과 의구심을 읽을 수 있는 한 단면이다.지금과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있다. 20세기 들어 교통 통신의 발달로 국내는 물론이고 국가간의 교류가 급격히증가하고 있다.작년 한해동안 우리나라를 출입국한 사람은 1,820만명으로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금년에는 ‘ASEM회의’‘경주 세계문화엑스포’등이 열리고,‘2001년 한국방문의 해’를 거쳐 월드컵이 개최되는2002년에는 2,800여만명이 출입국할 것으로 예상된다.이미 우리 사회는 지구촌의 다양한 식구가 모여 사는 다원화시대에 들어서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국가간의 교류가 증가함에 따라 외국인에 대한 비자발급,공항과항만에서의 출입국심사,국내에 체류중인 외국인관리,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과 강제퇴거,그리고 난민심사 등 일련의 외국인관련 업무가 폭증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러한 업무와 관련하여 단체여행객에 대한 출입국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외국인이 국내에서 자유롭게 투자나 경영을 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하였다.그리고 재외동포들의 국내에서의 활동과 법적 지위향상을위하여 소위 ‘재외동포법’을 마련,시행하고 있으며,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는 등 원활한 국제교류와 환경변화에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상생(相生)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나 홀로'가 아닌 ‘더불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세계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더불어 산다는 것은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해와 포용,그리고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는 더불어 사는 이들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되고 자율성이 보장되는 가운데 개개인의 인격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어야 한다.상생(相生)의 정신은 개인과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과 민족,그리고 인종과 인종 간에도 필요하다.그러기 위해서는 법이 존중되고 질서가 유지되어야 하고 경우를 지켜야한다.그래야만 한국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편안하게 여행하고 한국에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될 것이다. 金正吉 법무부장관.
  • [문화도시 문화거리](3)역사·전통 숨쉬는 진주

    촉석루를 한번 쳐다만 보아도 진주의 절반을 안 것이고,촉석루에 올라 그 아래 펼쳐진 경개를 바라봤다면 진주를 모두 안 것이라는 옛말이 있다.그만큼촉석루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사 김시민과 의로운 기생 논개의 충절이 더해진 진주의 상징이다. 그러나 촉석루 만으로 진주를 다 알 수 있다 함은 글자 그대로 ‘옛말’이아닐 수 없다.진주의 어제는 보았을지 모르지만,오늘과 내일은 그곳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그렇다고 문화도시로서 진주의 미래를 촉석루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촉석루에 올라보자.“저기 계단에 놓여있는 팻말은 필경 ‘출입금지’를 알리는 거겠지”라고 생각이 미치는 순간 ‘신발을 벗으세요’라는 반가운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삼복더위에도 백수십명의 시민들이 이 곳을 찾아 한담을 나누고 있는 것은 단지 시원한 남강 바람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촉석루 건너 칠암동의 강변풍경도 인상적이다.진주성 안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 전문박물관.이내옥관장은 광주 출신이지만 진주사랑이 남다르다.그는 진주시민들이 남강변을 강변 다운 풍경으로 가꾸고 있는 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얼마나 많은 도시들이 재정 수입 몇 푼 올리자고 아름다운 강변을 아파트 단지로 만들어 버렸느냐”는 것이다. 나아가 이곳에는 2.9㎞에 이르는 ‘남가람 문화의 거리’가 만들어지고 있다.천수교에서 진주교까지가 ‘역사의 거리’,진주교에서 진양교까지가 ‘예술의 거리’이다.조각공원과 야생화·만국화 단지가 들어선 ‘예술의 거리’에는 경남문화예술회관이 자리잡고 있다.국악단과 무용단·관현악단·합창단등 4개 진주시립 예술단체가 활동한다.문예회관앞 남강 둔치에는 백조를 형상화했다는 야외무대도 세워지고 있다. 남가람 문화의 거리가 현대적 문화를 대표한다면,진주성과 천수교 사이의 고미술거리에는 옛 사람들의 체취가 가득하다.20여 곳의 골동품상점이 밀집한이곳의 지명은 서울의 고미술거리와 똑같은 인사동(仁寺洞).한적해 보이는겉모습과는 달리 적지않은 명품들이 거래되고 있어 일본에까지 소문이 났다. 진주성,진주박물관을 한데 엮은 역사문화단지 개발이완료되면 ‘인사동’이 화제에 올랐을 때 “서울을 말하는 거야,진주를 말하는 거야”라는 물음이뒤따를 날도 머지않을 것 같다. 진주의 젊은이들에게 “문화의 거리가 어디냐”는 질문을 던지면,십중팔구는 대안동 젊음의 거리를 떠올린다.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대안동은 서울로치면 명동이나 압구정동쯤에 해당할까.보수적인 도시라지만 이곳에 차없는거리를 만들어 젊은이들의 특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소규모 퍼포먼스나 음악공연 등 젊은 취향의 각종 문화행사와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는 소규모 집회도 벌어진다.이처럼 남가람 문화의 거리와 인사동 고미술거리,대안동 젊음의 거리는 진주성과 촉석루를 가운데 둔 삼각축을 형성한다. 그러나 대안동에서 만난 전주산업대생 서희철씨(23)는 “진주가 역사도시라는 자부심은 있지만 젊은층을 위한 문화적 배려는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한다.진주의 문화가 아직은 역사적 유산에 더 영향을 받고 있고,문화거리들도본 궤도에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우회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젊은 세대일수록 이런상황에 불만족을 표시한다. 가수 남인수와 손목인,작곡가 정민섭과 이봉조 등 뛰어난 대중예술인들이 이곳 출신이라는 것이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진주시가 이들을 기념하는 향토박물관을 짓기로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들이 과거 엄청난 명성을 날렸다해도 요즘의 젊은 세대들이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유품전시에 그치기보다는,살아숨쉬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그들의 뜻을 존중하는 일은 아닐까.작은 기념관을 가진 야외무대를 만들어 미래세대까지 포용하는 새로운 대중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어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매년 10월 개천예술제 행사의 하나로 열리는 남인수가요제에 이어 ‘정민섭 기념 진주 록 페스티벌’이나 ‘이봉조 재즈 페스티벌’등으로 첨단 대중문화를 즐기고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도 되새기는 젊은축제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진주 서동철기자 dcsuh@. *이렇게 가꿉시다서울 인사동거리가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명소가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자연스럽게 형성된 우리 전통민속과 생활 속살을 들춰 보고 싶어하는관광객 특유의 호기심을 자극해서일 것이다.화석화된 박물관이나 전시 목적의 인위적인 민속마을과는 달리 독특한 전통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존심 높은 예향이자 역사의 도시 진주에도 북장대 성벽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골동품거리가 있다.진주 인사동에 있는 이 거리는 고미술품 상인들이 생업을 목적으로 하나둘 모여들면서 생겨난 자생적인 거리라는 점에서 서울 인사동과 흡사하다. 이런 자생적 거리의 활성화의 기본 틀은 거리의 주체인 상인들로부터 찾아내는 것이 옳은 수순이다.그들은 고미술품을 생업으로 삼는 프로들이기 때문에 문화의 생명력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고,어떻게 하면 문화의 생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지도 잘 알고 있다.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열리고 있는 상설 고미술품 경매의 활성화와 전통 고미술품 전시장의 개설이 가장 시급한 시설계획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거리의 표지판이나 정비계획도 중요하지만 전통거리 형성을 위한 활성화의소프트웨어를 제대로 마련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지금의 문화복지회관을 민속박물관으로 용도를 바꾸고,도자기·고서화·고가구·한복·전통차·붓·종이·벼루 등의 문방사우에서부터 미술과 관련된 화랑 등이 자리할 수 있는기반 여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을 듯하다.시 조례를 고쳐서라도 세금 혜택,시설 개보수와 입점에 따른 재정지원이나 저리 융자 등의 정책적인 배려는문화 있는 거리 활성화에 꼭 필요하다. 활기있는 거리를 위한 차없는 거리의 설정,고미술 문화거리에 어울리는 축제의 발굴과 같은 마인드도 필요하다.축제는 고미술 벼룩시장과 같은 주말 장터와 연중 특정일에 고미술품과 풍물이 어울리는 예술 축제를 열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고미술품을 사러오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시민들이 거리를 기웃거리다 전통차 한잔 들며 급하디 급히 변해 가는 세상살이에 여유도 가져보고,여행객들에게는 전통미 배인 추억거리를 한 점 사갈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면,그런 거리가 문화 거리가 아닐까.
  • 물에 빠진 母子 구하려다…피서온 목사 함께 숨져

    물에 빠진 초등학생을 구하려다 이 아들의 어머니와 근처에 있던 피서객 등 3명이 모두 물에 빠져 숨졌다. 27일 오후 2시30분쯤 경기도 여주군 홍천면 상백교 밑 복하천에서 김한주군(8·여주군 홍천면 복대1리)과 어머니 김상옥씨(30),근처에 있던 김종관씨(46·목사·안성시)등 3명이 2.5m깊이의 물에 빠져 숨졌다. 목격자 여모씨(41·목사)는 “혼자 물놀이를 하던 어린이가 물에 빠지자 물밖에 있던 어머니가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으며 2명이 모두 나오지못하자 다시 피서를 왔던 김목사가 뛰어들어 모두 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여주 윤상돈기자 yoonsang@
  • [서민경제를 살리자](5)기초생활보장

    오는 10월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면 154만명에 이르는 극빈층 가운데 3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자활계층(조건부 수급자)에 대해 자립에 필요한 각종 지원책이 펼쳐진다.보건복지부가 지금까지 시행해온 생활보호대상자지원제도와는 다른 ‘생산적 복지제도’의 핵심 내용이다. 노동부는 자활계층에 대해 실업대책 프로그램에 따라 구직등록을 하게 한뒤 기능을 보유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건설일용직 등 ‘저기능’의 직업훈련을 실시한다.이들이 직업훈련을 통해 기능을 습득하면 취업을 알선하거나 공공근로 등을 통해 일자리를 제공한다.여성 가장의 경우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점포임대 등을 알선해 준다. 마땅한 일거리가 없다면 김진홍목사가 펼치고 있는 ‘두레’사업처럼 이들이 자활공동체를 구성,시민단체와 연계해 음식물찌꺼기 처리사업 등 이른바3D직종을 중심으로 공동사업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양로원, 장애인복지시설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도록 한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문제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청사진을 뒷받침할 돈이 없다는 점이다.자활사업을 위해 추경에서확보하기로 했던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대상자가 특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업계획도 추상적이어서 수치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기획예산처의 예산배정 거부 이유다.또 추경의 경우 ‘계속사업’에 대해 배정되는 것이 원칙이나 자활사업은 ‘신규사업’이어서 예산배정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예산 확보에 실패함에 따라 기존의 실업예산에서 전용하기로 했으나 실업률이 하락하면서 전체 실업예산이 99년의 9조2,400억원에서 올해에는 5조9,220억원으로 줄어들어 ‘여력이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이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로 분류되는 공공근로사업도 올해의 사업비는지난해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1조1,000억원 배정됐으며,이마저도 상반기에 대부분 집행돼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가용재원은 3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구직등록을 하고 직업훈련을 실시하더라도 일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정한 월 지원기준인 93만원(4인 가족기준)을 ‘시혜’형태로 지급해야 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자칫하다가는 ‘생산적 복지’는 오간데 없이 ‘복지병’만 만연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우득정기자 djwootk@. * 노숙자·결식아동 대책. IMF 직후 경제상황이 최악이었던 지난 98년 7,000여명까지 치솟았던 노숙자수는 요즘 4,5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노숙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시설인 ‘쉼터’를 이용자가 4,000명이다.나머지는 여전히 거리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재산도 없이 실직한 40대 남성들이 대부분인 노숙자들을 설득,쉼터에 입주해 일단 숙식을 해결토록 하고 있으나 나머지 500여명은본인이 거리의 노숙자로 남기를 원하고 있다. 전국 100여 곳의 쉼터에 입주한 노숙자들은 대부분이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어서 먼저 정신과 의사와 사회복지전문가들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난 노숙자들은 정신교육,분노조절, 직업훈련 등 노숙생활로 인해상실된 근로의욕을 회복하기 위한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한다.이 과정을 거치면 공공근로 사업에 나가고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등 사회복귀를 위한 최종단계인 자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쉼터에서 실시하는 모든 과정을 마치고 사회에 정상복귀한 노숙자는 지금까지 100여명에 불과하다.노숙자들이 사회에 복귀,정상적 생활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모의 실직,사망,가출 등 가족기능의 결손으로 끼니를 거르는 결식아동들에 대해서는 지난 4월부터 식사가 제공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3월 조사한 전국의 결식 아동 실태에 따르면 취학 아동2만1,610명,미취학 아동 979명 등 결식아동은 모두 2만2,589명이었다. 취학 아동들에게는 교육부가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복지부가 저녁식사를 제공한다.미취학 아동들에게는 복지부가 점심,저녁 두 끼를 제공한다. 종교시설이나 사회복지관 등을 통해 제공되는 식사는 한끼 2,000원짜리로결식 아동들이 매일 찾도록 외국어와 컴퓨터 교육을 병행한다. 유상덕기자 youni@. *최저생계비 보장. 서울 봉천동에 사는 김모씨(33)는 산다는것이 요즘같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없었다. 지난 95년 지금의 아내 이모씨(32)와 결혼해 월 50만원 안팎의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왔지만 첫 딸을 본지 4년만에 올해 둘째 딸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막노동으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데다 그나마 수입이 불규칙한 그에게 두딸은 커다란 등짐처럼 버겁게 느껴진다. 오는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면 김씨 부부같이 어려운 처지에있는 사람에게 정부가 최저생계비를 보장한다.김씨에게는 20만원 가량 주어진다. 그의 가족 최저생계비 93만원에서 수입 50만원과 그동안 받아온 의료비혜택,TV 시청료 감면,상하수도료 면제 등 23만원쯤을 뺀 액수이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제 실시 후 김씨같이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하는사람들을 위해 6개월 정도의 직업훈련을 알선할 계획이다. 직업훈련 기간동안 돈을 벌지 못하는 김씨에게는 4인 가족 최저생계비가 지급된다.아내는 두 딸을 주간보호시설에 무료로 맡기고 파출부 등의 일을 해서 어려운 가정형편을 도우라고 복지부로부터 권유받게 된다. 직업훈련을 정상적으로 마치고 미장이나 도배공 등이 되면 김씨는 일당 4만∼5만원의 기술자로 새로 태어나게 된다.지금까지는 별다른 기술없이 하루 2만원 벌기가 어려웠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제 시행후 절대빈곤층이 기본적 생활을 할 수있도록 무조건 1인 가구 32만원,2인 가구 54만원,3인 74만원,4인 93만원,5인 106만원,6인 120만원의 최저생계비를 보장하고,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김씨의 경우처럼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유상덕기자
  • ‘DJ내란음모’ 관련자 청와대 첫 초청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9일 지난 80년 ‘5·17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당사자와 유가족을 대통령 취임후 처음으로 청와대로 초청,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위로했다. 모임은 김 대통령이 직접 주선한 것이 아니라 당시 옥바라지 등으로 함께고생한 이희호(李姬鎬)여사가 건의해 성사됐다.이 여사는 사건 관련자들이‘김대중 내란음모사건 20주년 회고모임(회장 李文永)’을 구성하고 매달 17일 식사모임을 갖는다는 사실을 이해동(李海東)목사로 부터 전해듣고 “이번엔 청와대에서 식사모임을 갖자”고 주선했다고 한다.당초 일정에 없던 만찬모임이 갑자기 추가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당시의 아픔을 회고하고 이 사건이 민주화운동에차지하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모임에는 이 회장을 비롯,옥고를 치른 민주당 한화갑(韓和甲)·김옥두(金玉斗)·이해찬(李海瓚)의원과 김상현(金相賢) 전의원,한승헌(韓勝憲) 전감사원장,소설가 송기원(宋基元),고 문익환(文益煥) 목사의 부인 박용길씨 등 40여명이 참석했다.김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金弘一)의원도 자리를 함께 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통일시대 이렇게 준비하자/ 다른 가치관 존중

    *다시 민족을 생각하며 宋 基 淑 (소설가·전남대 교수)86년 교수들이 호헌 반대서명을 할 때 어느 대학에서 있었던 일이다.웬만한대학은 사오십 명씩 참여하여 서명교수가 전국적으로 칠백여 명을 넘어서고있을 무렵,일껏 서명했던 젊은 교수 한 분이 서명을 취소하겠다며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했다.왜 그러냐고 하자 그 교수는 그럴듯한 핑계를 미처 생각해놓지 못했던지 얼결에 우리 어머니가 못하게 한다고 실토를 해버리고 말았다.교수들은 모두 웃었고 그 일은 한 동안 화제가 되었다.그러나 어느 노교수는 그 소리를 전해 듣고 함께 웃으면서도 그 웃음이 여간 쓸쓸하지 않았다. 그 젊은 교수 어머니가 6·25 등을 겪으며 험하게 살아왔음직한 가족사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머잖아 장기수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것 같은데 우리의 경우 감옥에서오래 징역 살다 나온 사람들만 장기수가 아니다.전투기의 폭음 소리만 나도참새 가슴으로 살아왔을 그 여인도 장기수나 마찬가지다.진부한 말로 창살없는 그런 감옥살이를 해온 사람들은 셀 수도 없을 것이다.지금은 되새기기도 지겹지만 간첩 사건 하나만 터지면 죄 없는 사람들도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았다.군사정권에 저항하다가 구속된 어느 목사는 군사정권은 분단이 아니었으면 성립될 수도 유지될 수도 없는 정권이라고 법정에서 목소리를 높였다.정권의 성립부터 그랬지만 정치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북한이 쳐내려 온다고 겁을 주거나 간첩사건을 터뜨려 위기를 모면해 왔다는 것이다.그런 식으로 해마다 큰 거짓말 하나,달마다 작은 거짓말 하나씩을했다고 사례까지 들어가며 공격을 했다.그 동안 남북 양쪽의 정권은 겉으로는 서로 비방하면서도 속살로는 그 적대관계를 이용해서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거나 정권을 다지는 상호 의존관계에 있었고 그런 관계가 분단체제라는 하나의 체제로 굳어버렸던 것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이 그 안에서는 또 이렇게 갈기갈기 찢겼다.우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그 반은 외세의 지배 아래서 또 그 반은 분단 치하에서 안으로는 이런 고통을 안고 민족해방과 민족통일의 강박에 눌려 살아왔다.그러나 이제 새 천년의 원년에통일의 서광이 비치고 있다.그 서광 속에서 첫걸음부터 시원스럽게 나가고 있다.이번에야말로 낡고 무거운 역사의 짐을 벗어야 한다.모두 호흡을 가다듬고 숨죽여 지혜를 모을 때이다. 통일되기 전에 독일 사람들의 태도는 우리의 본이 될만하다.이를테면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오는 사람이 있을 경우,그가 대학을 나온 젊은이일 때 서독 정부는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학비를 계산해서 동독 정부에 보냈다는 것이다.당신들이 교육시킨 젊은이가 우리 사회에서 봉사하게 되었으니 그 대가를 지불한다는 식이었다.우리한테는 저쪽을 비아냥거리는 짓으로 느껴지는 꿈같은 이야기다.주민들이 동독으로 친척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는 돈이며 선물을 가득가득 실어다 주었고 정부는 그런 일에 간섭을 않았다는 것이다.통일이 될 때까지 20여 년 동안이나 정부는 정부대로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그랬던 것이다. 물론 우리도 그동안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초등학생들도 ‘무찌르자 오랑캐몇 백만이냐.’ 대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고,거리거리에 살벌하던 방첩표어가 사라졌으며,탈북자들의 딱한 사정과 꽃제비 아이들의 처참한모습을 보고 성금을 내기도 했다.그러나 이런 변화는 지극히 표피적이고 감상적인 차원이다.북한은 지금 경제가 말이 아닌 것 같고 우리는 그런 경제사정 한 가지만 보고 우월감을 느끼며 측은해하지만 그들의 체제와 그에 따른 가치관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학생들의 경우 우리는 공부하는 동기부터가 내 개인의 입신이며 그 경쟁으로 불꽃을 튀기지만 그들은 우선 그런 식의 살벌한 경쟁은 없을 것이다.나보다 내가 살고 있는사회를 먼저 생각하게 되어 있는 것이 그들의 체제이기 때문이다.경제 협력을 하든 성금을 내든 그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앞서야 할 것이다.가난한사람에게 가난에 대한 동정만으로 돈 몇 푼 던져주면 되레 모욕감을 느낀다. 정상회담 뒤 지금 화해 분위기는 급속도로 무르익고 있다.얼마 전에 국방부는 ‘괴뢰군’을 ‘북한군’으로 부르기로 했다는 발표를 했다.존비칭 때문에 호칭이 유독 까다로운 우리는 인간관계가 상대방을 어떻게 부르느냐는호칭에서부터 시작된다.그런 점에서 볼 때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패러다임은현란한 사회과학적 용어보다 ‘북한군’ 김정일 ‘위원장’ 같은 호칭일 것같고 그런 호칭을 일상화하는 것은 이해와 화해의 바탕을 다지는 일이 될 것이다.‘김정일 위원장’이나 ‘김위원장’이란 호칭이 ‘김대중 대통령’ ‘김대통령’처럼 입안에서 거치적거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올 때 그런 정신적 기반은 우리의 소원인 통일이 소원이 아니라 현실로 나가는 탄탄한 길이될 것이다.
  • 美, 킹목사 ‘나에게‘명연설 장면 CBS방송사 소유권 확보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고(故) 마틴 루터 킹목사의 유명 연설 ‘나에게는꿈이 있습니다’에 대한 권리를 CBS 방송이 갖게됐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킹 목사가 63년 8월28일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에서 행한 연설로 흑인 민권운동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로 기록돼 있다. CBS측은 킹 목사의 연설장면을 녹화한 필름의 소유권을 놓고 킹 목사 유족회측과 지난 4년간 법정소송을 벌여왔으며 ‘비폭력사회 개혁을 위한 킹 센터’에 기부금을 내고 필름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 선에서 송사를 매듭지었다. 킹 목사 유족들은 CBS측이 96년 ‘마이크 월리스와 함께 한 20세기’라는제목으로 킹 목사의 연설 장면이 포함된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99.95달러에판매하고 나서자 소송을 냈다. 킹 목사가 남긴 유산을 지나치게 이윤 활동과 연관시킨다는 비난을 받아온유족회측은 당시 “(킹목사의 유산을 이용해) 1달러를 벌어들이면 10센트는우리에게 줘야하는 원칙과 관련된 문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양측의 주장에 대해 98년 7월에 이뤄진 1심에서는 킹 목사의연설이 당시생중계되고 연설 원고도 보도매체에 미리 배포된 만큼 일반 뉴스 취재의 일부로 볼수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으나 작년 11월 2심에서는 1심 판결내용이 번복돼 하급심에 돌려보내 진 바 있다. 올초부터 본격적인 화해협상을 벌여온 양측은 지난 13일 화해를 공
  • 北, 한총련 입국 거부 안팎

    북한이 한총련 소속 대학생 2명에 대한 입국을 불허하고 있는 것은 남북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화해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정상이 합의서명한 6·15공동선언을 구체적으로 이행하려는 조치라는것이다. 당초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이후 남북간 반목과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냉전구도의 상징으로 지목됐던 범민족대회를 올해에는 개최하지 않기로 선언,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힘을 실어줬다.그러나 과연 이것이 실현될 것인가에 많은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졌다. 북한이 한총련 학생들의 입북을 불허한 것은 이산가족상봉과 비전향장기수송환 등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자칫 이들을 받아들일 경우 파생될 마찰을 피하기 위한 정책적인 고려로 풀이된다. 북한의 이런 조치는 지난 반세기동안 냉전적 남북관계가 정상회담이후 화해·협력관계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특히 북한은 앞으로 통일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정부 당국자간의 직접적인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로도해석돼 입국불허 조치는 여러가지 함축하는바가 크다. 서울지검의 한 공안검사는 “남북 정상회담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등을 이룬마당에 한총련 대표를 받아들여 남쪽 당국과 마찰을 일으킬 소지를 남겨놓지 않으려는 의지의 일환으로 해석된다”면서 “북한이 6·15선언을 지켜 다시는 긴장과 대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행동의 표출로 봐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아무튼 이번 조치는 한총련으로 대변되는 운동권들에게 향후활동방향 및 입지설정 등에 있어 적지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종락기자 jrlee@. *범민족대회, 南·北·해외 '3者연대' 개최. 범민족대회는 지난 90년 8월이후 10년동안 해마다 개최된 북한의 대표적 정치행사다.남-북-해외 3자 연대 방식으로 남(서울)과 북(평양),해외(주로 독일 베를린) 등 세곳에서 동시에 열리며 친북·반한 인사들이 나와 연방제 통일방안 지지,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 등 북한의 대남통일전략에 지지를 보낸다. 범민족대회는 88년 문익환(文益煥) 목사,89년 임수경씨와 문규현신부의 방북 등으로 촉발됐는데 전대협,한총련 등 대학운동권은 제3국을 통해 대표를파견,정부와 마찰을 빚어왔다.범민족대회 남측본부가 지금까지 북한으로 보낸 학생은 박성희·성용승(91년),최정남(94년),정민주·이혜정(95년),류세홍·도종화(96년),황선(98년),황혜로씨(99년) 등이다.범민족대회 남측본부는지난달 25일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대회 추진본부(의장 이종림)를 결성했으나 한총련이 이견을 표출,대회는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 범민련은 8월13∼15일까지 한양대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00년 통일대축전 11차 범민족대회’를,한총련은 ‘남북공동선언 관철 및 민족의 대단합과 조국통일 실현을 위한 2000 통일 대축전’을 각각 개최할 예정이다. 이종락기자
  • 베트남전 민간인 사살 소대장에 무기刑 선고

    대법원이 베트남전쟁 당시 베트남 민간인을 사살한 한국군 소대장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사실이 31년 만에 밝혀졌다. 당사자는 당시 사건이 조작됐다며 대한변협에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14일 대법원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69년 베트남에 파병된 육군 ○○사단 ○○연대 화기소대장 김모씨(59·목사)에 대해 살인 및 명령위반죄 등을적용,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씨가 68년 7월 소대원들과 함께 매복 중 주변을 지나던 베트남인 7명을체포,그중 5명을 사살했다는 군 검찰의 기소내용을 인정한 것이다. 김씨는 1심인 보통군법회의(군사법원 전신)에서 사형을,고등군법회의에서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김씨는 83년까지 15년간 복역 후 가석방으로 풀려나 88년 사면 복권됐다. 박홍환기자 stinger@
  • 담임목사 세습물의 광림교회

    최근 아들의 담임목사 세습으로 물의를 빚었던 서울 광림교회가 김선도 담임목사의 후임에 김 목사의 장남 김정석 목사를 결정한 배경을 밝히고 나서주목된다. 광림교회는 15일자 주간 ‘기독교타임즈’에 기고한 ‘교회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란 글에서 “광림교회는 복잡한 조직 때문에 교회 전통과 목회방침을 잘 모르는 후임자가 오면 행정적 혼선과 교인들의 갈등으로 인해 분열과 분파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광림교회는 “교회의 상황을 잘 알고 전임자로부터 목회에 관한 모든것을가장 많이 교육받은 목회자,어학능력을 갖춘 박사학위 취득자,전임 목회자와협력을 잘 할 수 있는 목회자란 후임자 선정기준에 부합하고, 담임자 교체후혼란을 막는 최선의 방책이란 점에서 김정석 목사가 결정됐다”고 해명했다.광림교회측은 또 “그동안 김선도 목사 이후를 대비해 여러 부목사를 해외에 유학시켰지만 다수의 목사들이 진로를 변경했고,다른 교회목사를 초빙했지만 사양했다”면서 “내년 3월 김목사의 은퇴이후 김정석 목사와 해외에유학중인 목회자들이 ‘팀 목회’를 구성해 운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개신교 단일 연합기구 탄생할까

    한국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단일 연합기구가 탄생할 수 있을까. 최근 국내 개신교 17개 교단이 국내 보수 진보를 망라하는 단일 연합기구를연말쯤 창설키로 합의해 교계에 교회일치와 연합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여기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가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해 이 합의에 무게를 더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기독교 양대 연합기구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새 연합기구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있는 데다 일부 보수 교단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최근 합의가 결실을 거두기에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17개 교단 대표들은 지난 6일 연세대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간담회’에서교단연합체인 ‘한국기독교연합’ 준비위원회를 발족, 다음달 초쯤 후속회의를 열어 연합기구 출범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참가 교단들은각각 보수와 진보로 대변되는 한기총과 KNCC간 기구적 통합이 사실상 어려운상황에서 교단 연합기구 창설쪽으로 방향을정했으며 각 교단이 가을총회에서 이에 대한 승인을 얻어 연말쯤 연합기구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에대해 양대 연합기구인 한기총과 KNCC의 반응은 곱지않다.양쪽 모두 교회일치를 위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한기총은 “한기총 자체가 한국 개신교의 일치를 위해 만들어진 연합기구인데 제3의 기구를 또 만든다고 해서 얼마만큼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는 주장.KNCC도 공식적인 반응은 보이고 있지만 대체로 이번 합의가 급하게 진전돼 연합기구의 목표와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견해들이다. 여기에 한기총과 KNCC의 분열과정에서 갈라진 보수 교단들의 행보도 작지않은 변수다.이들 교단들은 기존 한기총과 KNCC간 기구통합이 아닌 교단 연합엔 공감하면서도 갈라진 교단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해 의견조율이 쉽지만은않다는게 일반적인 견해다.실제로 지난 6일 회의에 적지않은 보수 교단들이불참해 아쉬움을 남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계가 이번 통합작업에 관심을 갖는 것은 개(個)교회성장위주로 치우친 개신교계의 분열상을 정리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기때문. 한기총과 KNCC 모두 이런 교계의 여론을 인식,지난해 11월 이후 교회일치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놓았었다.이번 간담회가 마련된 것도 KNCC산하 한국교회연합운동추진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전병금 목사의 역할이 컸다. 전병금 목사는 “각 교단의 지도자들이 보수와 진보를 떠나 연합기구 출범에 의견을 모은 것은 한국 뿐 아니라 개신교 역사상 유례가 없다”면서 “처음 회의적이던 교단도 속속 동참할 뜻을 밝혀와 연말 기구출범에 별 문제가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한목협 이상화 목사는 “교단의 움직임과 기존 단체들의 반응을 볼때 연합기구 창설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평신도들이 교파를 초월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한민족선교원 내일 방북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이후 최초로 남한의 이산가족이 남북한 정부의 승인 아래 15일부터 22일까지 북한을 방문,재북 가족과 만난다. 통일부와 기독교대한감리회 한민족통일선교원(이하 한통선)은 13일 한통선의 방북 대표단 5명이 15일 방북,북한에 사는 이산가족과 직접 상봉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김일준 목사는 평양에서 두 동생을 만나고,특히 지난해 북한을 방문해 두 동생과 상봉했던 주봉택 목사는 고향인 함남 영흥군(현금야군)을 방문한다. 이석우기자
  • “장애인에 짝 찾아드립니다”

    ‘짝을 찾고 싶은 장애인은 누구나 오세요’ 서울시 중구종합복지센터가 운영하는 장애인 결혼상담실이 인기다.지난 5월 개설 이후 미혼 장애인들의 발길이 이어져 벌써 80여명이 상담을 받았다. 문을 연 지 얼마안돼 아직 결혼에 이른 커플은 없지만 몇 쌍이 성사단계에있어 곧 웨딩마치가 울려퍼질 전망이다. 이처럼 장애인들의 발길이 잦은 것은 이곳이 장애인만을 위한 결혼상담실로는 전국적으로 유일하기 때문.또 결혼하고싶은 장애인들의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무료로 운영된다는 점도 이들을 불러모으는 한 요인이다. 자원봉사로 상담실의 실장을 맡고 있는 서정숙(徐廷淑·45·여·)목사는 “미혼 장애인들의 고민중 80%가 결혼문제”라고 말한다. 이에따라 상담실에서는 좀더 많은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결혼 관련단체인밀알결혼상담소,새가정 만들기 결혼상담소,밀알선교회 등과 연계해 정보네트워크를 구축,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만남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장애인 남성은 결혼에 보다적극적인 반면,여성은 소극적이어서 짝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결혼을 포기한 채 살고 있는 여성 장애인이 남성보다 훨씬 많다. 또 많은 장애인이 정상인 또는 자신보다 장애가 가벼운 사람과 결혼하기를원하는 것도 만남을 어렵게 한다. 서실장은 “언어장애인과 팔다리 장애인이 결혼,상대의 입과 팔다리가 되어주며 평생 반려자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부부도 있다”며 “장애인들도 눈높이를 낮춰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배우자를 고르는 게 좋다”고 말한다. 마음이 서로 맞아도 결혼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경우도 적지 않다.방한칸 얻기도 어려울만큼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실이 주선해 결혼한 커플에게는 지체장애인협회 중구지회의 지원을 받아 결혼비용을 전액 보조해줄 예정이다.또 뜻있는 후원자를 적극 발굴,장애인 연인들과 연결시켜줄 계획이다. 상담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열며 결혼을 희망하는 장애인이면 거주지에 상관없이 누구나 문을 두드릴 수 있다.상담문의 2237-2471∼3. 임창용기자 sdragon@
  • [대한광장] 우리는 진흙탕 한가운데 있다네

    “우리들 모두는 진흙탕 가운데 있다네.그러나 우리들 중 몇 사람은 별들을바라보고 있다네” 영국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얼마전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의사들의 폐업 사태와 금융총파업을 보면서 와일드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인간존재 자체가 진흙탕 가운데 있기 때문일까? 한국 사회의 한 가운데서 펼쳐지는 각종 이익단체 집단들의 파업사태를 지켜보면서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한다면 한국사회처럼 좋은 교과서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성이 통제없이 개방되어 버린 우리 사회속에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리고 막가파와 지존파 같은 범죄집단이 출현하고있다.나아가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한껏 그들의 욕망을 채우고 힘없는사람들은 역사의 중심에서 끊임없이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필자가 유럽에 체재하는 동안 유럽인들과 나눈 대화 가운데서 그들의 오만을 확인했던 씁쓸한 기억이 새롭다.그들은 매스컴에 보도되는 한국사회의 비정한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이를 동정하면서 자기들은 마치 특별한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것을 관찰할수 있었다.그때마다 가졌던 생각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죄인이라는 사실이었다.성경은 신사처럼 보이는 유럽인들이나 한국사람이나 똑같이 죄의 법 아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단지 차이가 있다면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을 거쳐 민주주의의 전통을 이룩한 서구 사회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성을 제어하는 법적 장치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경우다. 민주주의 전통을 먼저 이룩한 서구사회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못 가진사람들의 권리를 빼앗지 못하고 또한 힘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제도와 법적 장치를 갖춘 경우다.필자는 이와같은 경우를인간의 죄성이 발동되지 않도록 인간의 욕망을 냉동시켜 놓은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포효하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성을 법적,제도적 장치 가운데 냉동시키는 과제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그러므로 민주화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긴급한 과제는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법적,제도적인 장치 가운데냉동시키는 일이다. 인간의 악마적인 본성을 제어하는 길은 선한 사람들의 출현만으론 역부족일수밖에 없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인권과 권리가 침해받지 않는 제도적장치를 이룩하는 일이 급선무이다.여기에 오늘 한국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지도자들의 책임과 의무가 있다. 시민단체들이 시민의 권리를 대변하는 운동을 벌이는 건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힘있는 자들의 독주를 막고 약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의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가 보장될 때 이루어질 수 있는,인류가 발견한 최상의 예술이다.각종 이익단체들의 욕구가 분출되고 충돌하는 우리 사회의 긴급한 문제들을 근본으로부터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의와 자유를바탕으로 한 진정한 법적 장치와 제도를 실현해야 한다. 시민단체들과 더불어 교회도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공언해왔음을 역사를통해 알수 있다.종교개혁운동은 오늘 서구사회가 누리고 있는 정의와 자유의기초를 놓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의 영혼구원에만 만족하지 않고 새롭게 구원받은 인간이 살고있는 사회환경을 개혁하는 과제를위해 많은 투쟁을 벌였다.왜냐하면 새로 태어난 사람들이 옛 질서 속으로 들어가면 다시 옛날 사람으로 돌아갈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영혼의 구원에만 관심을 기울이던 한국교회도 세상을 정의롭고 은혜로운 구조로 변혁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아 가고 있다.그럼에도 불구,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아직도 개인영혼 구원만을 선교의 과제로 보고있다.이는 전 세계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주어진 복음을 축소화하고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성경이 증언하는 복음은 진흙탕 속에 있는 인간과 정의롭지못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이 구원의 가능성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다. 金 源 培 목사·기독교목회자협 상임총무
  • 청소년위원장 후보 허위경력 논란

    공석중인 국무총리 소속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 후임인사에서 임용 적격자로 추천된 후보자의 경력이 허위로 기재됐거나 심사과정이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9일 총리실에 따르면 강지원(姜智遠) 전 위원장의 후임으로 공식 추천된 모 병원 원목 차모씨(58)의 이력서에 기재된 경력은 사실과 달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처음 제출된 차목사의 이력서에는 지난 74년부터 현재까지 한국YMCA 전국연맹에서 청소년 위원을 맡아 ‘청소년단체에서 청소년 문제를 10년 이상 전문적으로 담당한 자’라는 위원장직 자격요건을 충족시킨 것으로 돼있다.그러나 실제 한국YMCA 전국연맹에서 청소년위원을 지낸 것은 75년 1월부터 82년12월까지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총리실 관계자는 “차목사가 85∼93년까지 서울 YMCA에서 추가로 근무한 경력이 나중에 확인돼 위원장 자격요건은 갖추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지운기자 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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