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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겨운 ‘국악 징글벨’ 나왔다/‘우리소리 캐럴’ 낸 이병욱교수

    음악과 교수가 가족들과 함께 국악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을 제작했다. 서원대 공연예술학부 음악과 이병욱(52) 교수의 가족들로 구성된 ‘실내악단 둥지’(사진)는 창작 국악 캐럴 음반인 ‘우리소리 캐롤’을 CD로 최근 출시했다. 음반에는 황대익 목사와 오병학 목사가 각각 작사한 ‘방울카드’,‘마굿간’과 ‘아기 예수 오소서’에 이 교수가 곡을 붙인 국악 창작 캐럴이 들어있다. 또 ‘징글벨’,‘북치는 소년’,‘루돌프 사슴코’ 등 일반인들의 귀에 익은 캐럴을 굿거리 등 경쾌한 국악 장단으로 편곡해 연주한 8곡이 담겨있다.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아들 영섭(25·국립국악원)씨가 대금과 소금,딸 은기(24·경기도립국악단)씨가 가야금으로 연주하고 부인 황경애(47)씨가 노래를 불렀다. 이 교수는 작곡 및 편곡과 함께 기타를 연주해 국악 연주에 현대적 음감까지 살렸다. 이 교수는 “그동안 많은 캐럴 음반이 발표됐지만 국악 음반이 없는 것이 아쉬워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국악 창작 음반을 처음으로 제작했다.”며 “앞으로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다양한 연주활동을 펼쳐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내악단 둥지’는 이 교수가 국악 대중화를 위해 1997년 가족들과 함께 결성해 그동안 50여차례의 공연을 가졌고 이번에 두번째 음반을 출반했다. 청주 연합
  • [길섶에서] 도덕성

    옛날 어느 왕국에서 밀농사 풍년이 들었다.그런데 한 무리의 탕아들이 말을 타고 와 밀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왕은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범인의 두 눈을 빼놓겠다고 했다.그런데 얼마후 다시 그런 일이 발생했다.알고 보니 왕의 아들이 범인이었다.왕은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으나 신하들이 반대했다.왕은 고민 끝에 자신의 오른쪽 눈과 아들의 왼쪽 눈을 뽑았다.이 이야기는 측근들의 잘못이나 비리에 대한 권력자의 단호함을 보여준다.조용기 목사가 지난 1997년 3월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측근 비리는 어느 시대에나 거의 공통적으로 있어왔다.인류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비리의 생명력도 이어질 것이다.권력자의 주변에는 늘 수많은 유혹이 밀려오고,그 달콤한 유혹을 물리치기에는 인간의 탐욕이 너무나 검기 때문이다.그 검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수많은 권력자와 측근들이 비리를 저질러 왔다.그래도 지도자와 측근들의 도덕성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 본다. 이창순 논설위원
  • “주민투표 늦추면 굶어죽을 판”/‘불안한 휴전’ 부안 르포

    모처럼 찾아온 부안의 평화는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30일 전북 부안읍에서는 촛불집회를 봉쇄하려는 경찰과 강행하려는 주민 사이에 밤늦도록 실랑이가 이어졌다.핵폐기장 문제의 해법을 두고 시민단체 중재단과 정부측의 막후협상이 벌어지는 가운데 29일 집회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돼 ‘유화국면’이 이어지리라는 기대감이 싹트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경찰이 촛불집회를 불법 야간집회로 규정,집회장소인 부안수협앞 네거리를 원천봉쇄하면서 24시간 동안 이어진 불안한 ‘휴전상태’는 끝내 결렬됐다.경찰은 4개중대 4000여명을 집회장소 주변에 배치,행사를 강행하려던 군민대책위 김선곤 공동대표 등 30여명을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50대 여성 2명이 실신해 인근 병원에서 치료중이다.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던 이들은 한 사복경찰로부터 성적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듣고 흥분,상의를 벗은 상태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다 실신했다.이를 지켜본 주민 100여명이 밤 11시가 넘도록 경찰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등 곳곳에서 대치상태가 빚어졌다.대책위는 경찰이 부안수협앞 촛불집회를 불허키로 하자 당분간 부안성당에서 촛불집회를 계속 열기로 했다.이에 따라 경찰도 당초 약속대로 경찰력을 단계적으로 철수키로 했으나 일정별 철수규모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민들 정부카드에 냉담 한편 주민들은 정부측의 ‘선 냉각기,후 주민투표’카드에 극도로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부안읍에서 20년째 국밥집을 운영해온 김종두(57)씨는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정부측 제안에 대해 “불리한 여론을 뒤집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기만책”이라고 일축했다.김씨는 “공짜관광 보내주고 심지어 공청회에 참석하는 주민들에게 값비싼 선물세트를 돌리는 등 한수원의 행태를 보면 도저히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불신을 토로했다. 1개월전 한수원으로부터 일본여행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는 자영업자 김모(50)씨는 “한수원이 주민들을 지위와 재산에 따라 3등급으로 분류해 1등급은 유럽,2등급은 일본과 동남아,3등급은 동해안 관광을 보내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주민들은 조급해 하고 있다.‘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지난 7월 김종규 부안군수의 핵폐기장 유치선언 이후 주민들은 유례없는 장기간의 투쟁을 통해 결속력과 자신감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외도’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5개월 동안 매일 저녁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건어물상 이정순(46·여)씨는 “절박감 때문에 매일 나가지만 솔직히 지치기도 하고 생계에도 타격이 막대하다.”고 털어놓았다.대책위 김진원 조직위원장은 “사태를 조기에 종결짓자는 주민 요구가 높다.”면서 “내년에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것은 그때까지 이들에게 생업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핵은 생태계뿐 아니라 인간성도 파괴” 사태해결이 해를 넘기면 주민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커져 지역공동체의 균열이 심각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부안 제일교회 황진형(50) 목사는 “해결이 지연될수록 지역내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것”이라면서 “핵 폐기장이 환경뿐 아니라 인간성도 ‘기형’으로 만드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실제 부안읍에서는 전경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업소 주인과 주민간 갈등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최근에는 한수원이 부안출신 대학졸업자들을 직원으로 특채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성인 자녀를 둔 주민들 사이에 적잖은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 ●두차례 전국규모 집회 예정 대결과 협상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됐던 29일 부안수협앞 대규모 집회에는 부안군이 생긴 이래 최대 규모인 1만 3000여명의 군민이 참석했다.대책위는 결의문을 통해 사태해결이 지연되면 주민등록증 반납투쟁도 불사하겠다고 주장했다.또 12월 6일과 13일 전국 규모의 연대집회를 부안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안 이세영 유지혜기자 sylee@
  • 盧, 조선족 농성장 깜짝방문 / “中동포 국적문제 점진 해결”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9일 오전 서울 구로구의 조선족 교회(담임목사 서경석)를 깜짝 방문했다. 취업을 위해 국내에 체류하다 강제추방 위기에 놓인 조선족 100여명이 우리 국적 회복을 요구하며 16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던 현장이었다. ●盧 “큰 기대 갖지말라” 노 대통령은 교회 안의 농성자들이 “우리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라고 통곡하듯 매달리자 “여러분은 우리 동포이고,대통령으로서 마음으로 위로한다.”며 연신 애틋함을 드러내 보였다.과거 인권변호사 시절 중국동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한 일화 등도 소개한 노 대통령은 목이 메인 듯 잠시 말을 멈추기도 했다.“대통령 왔으니 큰 백이 생겼다고 생각하죠?”라는 말을 주고받는 도중 교회 안에서는 노 대통령에 대한 만세삼창이 일기도 했다.이날 노 대통령이 밝힌 언급들은 조선족 등 소수 민족 융합정책,이른바 대가정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하는 듯하면서도,해결 과제를 정부 부처에 던지는 듯한 말을 함으로써 방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외교적 파장도 배제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제가 여기 왔다고 큰 기대를 갖지 말라.”“당장 안 풀리더라도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한다.”“도울 방법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다.”고 했다.이어 “대통령이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고,중국 주권을 생각해야 하는 국제 문제가 있다.”며 현실적 한계를 밝히긴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노력하면 공무원도 성의를 갖고 노력하지 않겠느냐.”“크게 방향을 잡고 가면 길을 열어내지 않겠느냐.”고 언급,정책 변경 가능성도 시사했다. ●청와대 “위로차원 방문” 이에 대해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정책과는 관계가 없다.”면서 “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고,해결을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도 있어 위로하는 차원에서 방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그곳을 방문함으로써 기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긴 했으나 위로 차원에서라도 가자고 해서 추진했다.”면서 방문은 28일 오후 최종 결정됐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부모나 본인 호적등재 중국동포 한국국적 허용 추진

    법무부는 외국인 불법체류자이더라도 국내 호적에 이름이 남아 있는 경우 국적회복 및 귀화 신청을 받아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30일 밝혔다.불법체류자에 대해 접수를 일절 거부했던 법무부가 이처럼 태도를 바꿈에 따라 앞으로 중국동포에 대한 처리가 주목된다. ▶관련기사 4면 법무부 석동현 법무과장은 “불법체류자 가운데 국내 호적에 본인이나 아버지,어머니 이름이 남아 있는 경우 국적회복 및 귀화 신청을 받아들이는 방안을 관련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일단 신청을 접수한다 해도 국적을 바로 취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국적법에 따르면 중국동포는 중국 정부 수립일인 ‘1949년 10월1일’을 기준으로 그 이전 출생자는 국적회복,이후 출생자는 귀화를 신청해야 한다.또 신청자격은 본인이나 아버지 이름이 국내 호적에 남아 있는 미혼 ‘합법체류자’로 제한하고 있다.이에 따라 친지 방문 비자로 입국하는 중국동포들은 체류기간이 3개월에 불과해 1년 정도 시간이 걸리는 국적회복 심사를 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해 왔다. 법무부는 이와 함께 중국동포들이 29일 단식농성을 해제한 것과 관련,임금체불·전세금 등으로 당장 출국하기 어렵거나 날짜가 적힌 항공권을 제시하는 경우 강제출국시키지 않기로 했다. 아울러 국회에 계류중인 국적법 개정안이 조속히 처리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개정안은 외국인 여성이 국내에서 결혼한 뒤 2년이 지나지 않아 이혼하더라도 파탄사유가 남편의 잘못이라면 귀화허가를 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9일 중국동포 100여명이 단식농성중인 서울 구로구의 조선족교회(담임목사 서경석)를 방문,중국동포들과 대화를 나눴다. 정은주기자 ejung@
  • 기숙사 없어 출퇴근… 불법체류 노동자 단속 될라/ 가슴 졸이는 영세업체

    경기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D사는 컴퓨터 모니터의 본체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이다.생산직 50명 가운데 62%인 36명이 외국인이고 이중 29명은 합법적 자격을 갖고 있다.나머지 7명이 불법체류 상태다. 이 회사는 지난 17일 단속이 시작되기 직전 불법체류자를 모두 내보냈으나 제조업에 한해 단속이 유예되자 다시 불법체류자를 고용했다.그러나 법무부가 ‘작업장 밖에서는 단속한다.’는 방침에 따라 출퇴근길에 단속을 집중해 가슴을 졸이고 있다.직원용 숙소가 공장 안에 없어 외국인 근로자들이 출퇴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단속에 걸리면 고용주도 처벌된다. ●‘제조업 단속유예’에 오히려 불안 D사는 출퇴근 때마다 크게 불안하다.45인승 출퇴근 버스가 있지만 불법체류자들은 따로 봉고차에 태워 출퇴근을 시킨다.퇴근 때에는 “절대 외출하지 마라.”고 날마다 당부한다.이들이 단속에 걸리면 사업주도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이 회사 김모(37) 본부장은 “정부가 제조업에 한해 단속 유예를 밝히고도길거리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기숙사를 갖춘 큰 회사는 문제가 없지만 우리와 같은 영세업체는 출퇴근 때 불안하다.”고 털어놓았다. 궁여지책으로 회사에서 재직증명서를 만들어 불법체류자들이 외출할 때 갖고 다니도록 했지만 이 역시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회사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이웃 시화공단의 장난감 제조업체 K사의 유모(45) 사장은 불법체류자 2명을 고용하고 있다.그는 “불법체류자들은 몸이 아파도 병원은 커녕 약국도 제대로 갈 수 없다.”면서 “구내식당조차 없어서 인근 식당까지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항상 불안하다.”고 밝혔다.유 사장은 이들 2명을 승용차로 매일 출퇴근시켜 준다. 그는 “제조업의 인력난을 우려해 단속을 유예키로 했으면 전면적으로 유예해야지 출퇴근 때 단속을 실시하는 것은 원칙이 없는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꼬집었다. ●“단속방침은 전형적 탁상행정” 그러나 기숙사를 갖춘 인천 남동공단 K가구공장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이 회사는 불법체류자를 10명 고용하고 있다.그러나 불법체류자들이 기숙사 내에서만 생활하므로 단속의 두려움이 없다.불법체류 근로자들의 구직이 넘친다.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안산 외국인노동자의 집 박천음 목사는 “기숙사가 없는 회사는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정부가 중소기업의 심각한 인력난에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것이라면 현실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교회연합 위해 한기총과 의견차 좁힐것”KNCC 새회장 김순권목사

    “개신교 교회일치와 연합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과거 군사정권 시절 사회정의와 인권을 위해 앞장섰던 KNCC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복음과 선교를 병행,교회 연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새 회장에 취임한 김순권(사진·62·서울 봉천동 경천교회 담임) 예장통합(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장은 24일 “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대한 개신교 안팎의 기대와 관심이 지대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신임회장은 현재 보수교단의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협의 추진중인 개신교 연합기구 탄생에 대해 “교회연합의 큰 원칙에서 당연히 추진해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합쳐야 한다.’는 당위성에 쫓겨 서두르다 보면 더 큰 갈등과 마찰을 낳을 수 있다.”고 못박았다. “한기총과 KNCC가 단일기구 발족에 집착하기보다는 양 기구가 사안별로 의견을 좁혀 차근차근 연합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양 기구가 각기 갖고있는 정체성을 훼손하는 쪽으로 몰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김 신임회장은 개신교계에서 친화와 추진력이 강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내년 봄 한반도 6자회담에 관련된 각국 기독교 대표들을 한국에 초청해 ‘세계 생명을 위한 평화선교대회’를 열 계획이다. 김성호기자 kimus@
  • 말말말˙˙˙

    한국의 고향땅에서 추방당해 중국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면 2세들을 조선족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것이다.우리말을 잃어버린 조선족이 미국에 가면 차이나타운으로 가지,코리아 타운으로 가겠는가. -서경석 목사,조선족 동포의 국적회복 조치가 시급하다며-
  • KNCC 새 회장에 김순권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18일 제52회 정기총회를 열어 예장통합(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장인 서울 봉천동 경천교회 김순권(62) 담임목사를 신임회장으로 선출했다. 김 신임회장은 장로회 신학대 본과를 졸업하고 KNCC 부회장,대한성서공회 이사,KNCC 선교훈련원 운영위원장 및 실행위원을 역임했다.현재 예장통합 서울관악노회 성서신학원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 “내속엔 시인과 비평가가 산다”/나희덕 글모음 ‘보랏빛은‘

    “나는 비평가가 아니다.그러나 내 속의 시인은 내 안에 사는 비평가와 무관하지 않다.시를 읽거나 쓰는 동안 그 둘은 줄곧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어왔다.”시인 나희덕의 ‘보랏빛은 어디서 오는가’(창비 펴냄)는 시를 쓰는 내내 자신의 내면에 둥지를 틀고 있던 ‘비평 정신’에 대한 열망을 옮긴 글 모음이다. 시인은 먼저 시에 대한 사색의 실타래를 한올한올 풀어낸다.그 길목에서 고 문익환 목사의 시와 하이데거의 ‘낡은 구두’를 비교하면서 “예술은 삶에 대한 반어이자 그 반어의 반어”라고 정리하는가 하면 옥타비오 파스나 가스통 바슐라르의 시론에서 “또 하나의 시적 창조를 추동할 수 있는 맹아적 힘을 발견한다.”고 고백한다. 또 시인은 자신의 작품 비평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성성’ 표현에 대한 불편함을 들려준다.그 이면에 담긴 “작음·부드러움·곡선·세련됨·조용함” 같은 편견을 살짝 꼬집으면서 자신의 작품을 “갈등이 없는 무조건적 사랑으로 미화하거나,순종과 인내의 여성상으로 묶어두려는 선입견”에 대해 항변한다.이어 ‘자연’‘생태’‘전통’ 등이 어떻게 시로 구현되는가를 김기림·김소월·김혜순·최하림·오규원·이하석·고재종·김수영의 시를 통해 분석한다. 이윽고 섬세한 시인이 가진 상상력의 촉수는 다른 시인들의 세계로 뻗는다.습작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 시인 정현종,김지하,강은교,고정희,장정일,김기택,최두석 등의 작품을 조명한다.‘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결국 빨강과 파랑이 섞인 보라색처럼 시론·시감상 등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창작’을 살찌운 시인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았다. 이종수기자
  • ‘DJ내란음모’ 재심 결정

    지난 80년 신군부의 조작으로 ‘5·18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이듬해 사형이 확정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심을 받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신영철 부장)는 17일 “81년 1월 내란음모 등 혐의로 사형이 확정된 김대중 피고인에 대한 항소심의 재심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5·18 민주화운동특별법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행위나 당시 헌정질서 파괴범죄를 저지 및 반대하는 행위로 유죄가 확정된 자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김 피고인의 범죄사실 일부는 이 법률이 규정한 특별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5·18 내란음모 사건은 80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가 정권을 탈취하면서 5·18 광주민주화 항쟁이 ‘김대중 일당’의 내란음모에서 비롯됐다고 조작한 사건이다.김 전 대통령은 사형을 선고받았고,고 문익환 목사와 이문영 교수는 1심에서 징역 20년,김상현·이해찬·설훈 의원은 징역 10년 등을 받았다.김 전 대통령을 포함해 26명이 내란음모 등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문 목사 등 25명은 지난 2000∼2002년 모두 법원에 재심을 청구,무죄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김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소송을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재심을 청구하지 않다가 지난달 23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신청서에서 “12·12사태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전후한 신군부의 헌정질서 유린은 전두환·노태우 재판에서 명백히 위법임이 드러났다.”며 재심 청구 이유를 설명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국적회복’나선 中동포/(상)‘강제출국’ 안타까운 사연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동포들이 극한투쟁에 돌입했다.오는 17일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단속이 예고된 가운데 이들 중국동포는 ‘고향땅에 살 권리’를 주장하며 헌법소원에 이어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중국인으로 불법체류자일 뿐’이란 법률 논리와 ‘고향에 왕래하는 것은 천부적인 권리’라는 역사성을 강조한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중국동포들의 현주소와 역사적 배경,해법 등을 살펴본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중국동포들이 ‘고향에서 살 권리를 보장하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접수시키고 있는 동안 재판소 밖에선 5000여명의 중국동포들이 손에 손을 잡은 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누군가가 시작한 노래가 커다란 울림이 돼 퍼지면서 이들이 한 민족임을 실감케 했다. ●“우린 조국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이 땅에 할아버지 묘지도 있고,내 호적도 있고,친척들도 있는데 왜 제가 이 땅에서 쫓겨나야 합네까.” 새문안교회 단식농성장에서 만난김자연(가명·55·여)씨는 두 손을 꼬옥 말아 쥔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한국에 온지 6년이 됐지만 그동안 모은 3000만원은 얼마전 사기를 당해 다 날려버렸다.그는 “쫓겨날 상황에서 단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면서 “우리는 아픈 역사의 희생자일 뿐 조국이 싫어 떠난 사람들이 아닌 만큼 무조건 불법체류자라는 굴레로 엮지 말아달라.”며 하소연했다. 5살 때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간 이형상(64)씨는 “우린 동포 아니냐.”며 말문을 열었다.그는 “중국 땅에서 수십년간 이방인이라는 눈총을 견디며 풀뿌리처럼 살다 어렵게 찾아왔는데 조국마저 우리를 버린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여기 모인 사람 중 조국 땅 싫어 떠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도 딱한 처지는 마찬가지겠지만 중국동포들이 이 땅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를 찾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법률자문을 맞고 있는 정대화 변호사는 “재중동포의 국적문제는 단순히 헌법적인 차원을 넘어 일제 강점기의 수탈을 피해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한민족의 역사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중국동포들이 자진해서 중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만큼 이들이 국적을 취득할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또 “독일이 통일 후 유럽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100만명 이상의 독일인들에게 국적회복을 해준 만큼 우리도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재중동포의 국적회복의 기회를 열어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일제단속에 생이별의 아픔도 불법체류자라는 족쇄 때문에 일제단속이 시작되면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중국동포들도 적지 않다.이충일(32·여)씨는 요즘 아들 성민(가명·3) 때문에 외출을 할 수도 없다.세살밖에 안되는 아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밖에 나가면 경찰아저씨가 엄마 잡아가.”라며 엄마의 다리를 잡고 떨어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이씨가 한국에 온 것은 6년 전.식당에서 일하다 한국인인 장모(38)씨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성민이를 갖게 됐다.하지만 혼인신고를 하고 돈도 모아 함께이씨의 고향인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서 살자던 부부의 약속은 이내 남편의 외도로 무참히 깨져버렸다.지난 8월 한국 여자가 생긴 남편은 이후 이씨를 폭행하고 아들 성민이마저 빼앗아갔다.인권단체의 도움으로 열흘 남짓만에 아들을 되찾았지만 모자(母子)가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17일부터 시작되는 단속에 적발되면 이씨는 아들을 남겨둔 채 강제출국을 당하고 호적법에 따라 성민이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재혼한 어머니를 찾아 옌볜(延邊)을 떠나 한국에 온 현아(가명·14·여)는 국내법상 불법체류자다.미성년자인 불법체류자들은 학교의 울타리 안에만 있으면 학교장 재량에 따라 강제출국은 피할 수 있다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현아는 지난 2000년 방학을 맞아 한국 남자와 재혼한 어머니 김선숙(35)씨를 만나러 왔다가 함께 살게 되었다.학교장의 배려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입학은 했지만 1학년 1년 동안은 시험조차 볼 수 없는 청강생 자격으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서울 외국인 노동자의 집 이선희 소장은 “학교장 재량에 따른다는 애매한 조항에 따라 현아와 같은 미성년 불법체류자 역시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영규 유지혜기자 whoami@ ■이은규 서울조선족교회목사 “중국동포들에게도 조국에서 살 권리를 주십시오.” 중국동포의 국적회복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서울조선족교회 이은규(사진·43) 목사는 “중국동포들은 우리 나라에서 단순히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향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라면서 국적회복 운동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 목사는 “중국동포 대부분은 일제 시대에 독립 운동이나 생활고를 피하기 위해 만주로 떠난 사람들의 후손”이라면서 “해방 후 북한에 들어선 김일성 정권 때문에 귀국길이 막혀 어쩔 수 없이 중국에 머물러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이어 “1948년 제정된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에 의해 한국 국민이 됐지만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중국과 한국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되면서 ‘국제 미아’가 된 중국동포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이라며 이번 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중국동포들의 국적회복 신청을 받아주지 않은 법무부에 대해 ‘책임 방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이 목사는 “우리나라는 지난 92년 중국과 수교를 맺을 당시 국내법 효력을 갖는 ‘재중동포의 지위에 대한 협정’을 만들지 않았다.”면서 “이는 만들어야 할 법을 안 만든 ‘입법 부작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또 “법무부는 중국동포들의 국적회복 신청을 거부함으로써 같은 동포의 국적선택권,평등권,행복추구권을 위배했다.”면서 “정부는 스스로 양산한 중국동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책임방기를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 목사는 이와 함께 “우리 국민들도 중국동포 문제에 대해 좀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 ■190만 中동포 이주 역사 현재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재중 동포는 190여만명에 달한다.대부분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 시기에 독립운동을 하거나 생활고를 피하기 위해 한반도를 떠난 이주민의후손들이다. 주로 ‘동북 3성’으로 불리는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에 거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베이징,톈진,신장,상하이,광저우 등 중국 전역 대도시로 진출하고 있다. ●첫 이주는 1860년 베이징조약 직후 재중 동포 이주사는 크게 3기로 나뉜다. 1기는 19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까지로 대부분 가난과 탐관오리들의 폭정을 피해 압록강을 건넜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서 1920년대에 이르는 2기에는 항일운동을 위한 정치적 망명이 주를 이뤘다. 3기는 45년 해방까지의 시기로 당시 일본은 일본인을 조선으로,조선인을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시키는 환위이민(換位移民) 정책에 따라 대규모 강제이주를 실시했다. 1기 이민은 1860년 베이징조약 체결 직후에 이뤄졌다.당시 청나라는 러시아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청조의 발상지인 만주지방에 대한 ‘봉금정책’을 풀고 주민들을 국경지대로 이주시켰다.그러자 조선의 헐벗은 농민들도 비옥한 미개척지를 향해 강을 건넜다.이들은 이주 초기 청의 관헌들로부터 갖은 수모를 겪었지만 1880년대 청 조정이 간도개척을 위해 조선족 포용정책을 펼치면서 간도지방 곳곳에 조선족 마을이 생겨났다. 학계에서는 이 시기부터 한·일합병 직전까지 20여만명의 조선인들이 국경을 넘은 것으로 추정한다. ●한·일합병 직전까지 20만명 이주 일제의 한국침략이 노골화된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직후부터 1919년 3·1운동 전후까지는 주로 항일인사들의 정치적 망명이 많았다.국내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홍범도,유인석,이범윤 등이 을사조약을 전후로 일제의 탄압을 피해 국경을 넘었다. 1910년 한·일합방 전후에는 국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기획이민’이 활발했다.이상설,이동녕,안창호,박은식,신채호 등이 이 시기 만주에 정착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만주지방을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대규모 개발계획을 세운다.이에 따라 황무지였던 이곳에 조선 농민의 집단이주를 추진,38년 처음으로 간도와 랴오닝지방에 조선인들이 정착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 후에는 전쟁 물자와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개척이민단’이란 이름으로 조선인농민들을 강제이주시켰다. 이세영기자 sylee@
  • 中동포 5000명 단식농성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강제출국 기간을 사흘 앞두고 중국동포들이 한국국적 신청서를 법무부에 제출한 데 이어 국적회복을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조선족동포 5000여명은 14일 “국적 선택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채 재중동포의 국적이 규정되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헌법소원은 소송을 맡은 정대화 변호사와 조선족교회 서경석 목사,조선족 이철구씨가 대표로 접수했다. ▶관련기사 10면 조선족교회 이은규 목사는 “중국동포는 지난 1948년 남한 과도정부 국적 법령이나 건국 헌법에서 모두 대한민국 국민으로 지위를 부여받았다.”면서 “스스로 중국국적을 취득한 것도 아니어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송을 맡은 정 변호사는 “중국동포들이 불법체류자라서 국적을 줄 수 없다고 하지만 오히려 한국정부가 이들의 국적 회복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불법체류자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서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둔치에서 집회를 갖고 서울시내 11곳의 교회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경남과 전북지역의 외국인 노동자들도 이날 불법체류자 단속과 강제추방 정책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전국 규모의 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와 함께 대정부 항의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기도 일산경찰서는 14일 강제출국을 앞두고 밀린 임금 700여만원을 받지 못하자 건설현장 자재에 불을 지른 중국교포 박모(46)씨를 현주건조물방화미수 혐의로 구속했다. 박씨는 지난 12일 오후 3시 30분쯤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I오피스텔 신축현장 15층 옥상에서 강화유리와 거푸집,화강암 판재 등에 불을 질러 780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낸 혐의다. 고양 한만교·구혜영기자 koohy@
  • 문인들이 들여다 본 시인 7人의 사랑/시인세계 특집 ‘…사랑의 시’

    문학의 젖줄은 자유혼이다.그래서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인의 사랑 풍속도는 일탈에 가까운 ‘자유 연애’가 많아 세간의 소문을 풍성하게 한다. 계간 ‘시인세계’ 겨울호의 특집 ‘시인의 사랑,사랑의 시’는 문인들의 러브스토리를 집중 조명했다.이근배 시인 등 문인들이 이상과 김영랑,백 석,유치환,모윤숙,박목월,한하운 등 시인 일곱명의 이면을 찬찬히 살피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사연의 주인공은 박목월(1916-1978).“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 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라는 김성태 작곡의 ‘이별의 노래’가 박목월의 시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더구나 이 시가 여대생과의 짧고도 깊은 사랑의 후유증을 노래한 것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호기심이 배가된다. 목월의 마음을 사로잡은 ‘베아트리체’는 그가 1953년 대구로 피란가 기숙하던 목사의 딸.목월이 서울로 돌아온 뒤 그녀도 서울에 올라와 두사람은 시인과 문학소녀에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결국 제주도로 잠행한다.그때 두 사람의 겨울 한복을 지어 제주로찾아간 부인의 인품 앞에 목월이 반성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사랑은 끝나지만 시인에게 ‘이별의 노래’를 남겼다. 두차례 결혼한 백석이 남모르게 나눈 두번의 사랑도 이채롭다.E고녀 학생인 난과 조선 권번의 기생인 자야가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특히 난을 향한 마음은 뜨거웠다.자야와 열애를 하면서도 난이 사는 마을을 찾아갔고 그녀의 고향인 통영을 제목으로 시를 3편이나 남겼다. 이밖에 스무 살 안팎의 나이에 여고 4학년생 최승희와 결혼까지 생각할만큼 사랑에 빠졌던 김영랑,‘문둥병 시인’으로 유명한 한하운과 R의 사랑,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허가되지 않은 사랑’의 안타까움을 나눈 청마 유치환과 시조시인 이영도,일곱살 아래의 기생 금홍을 만나서 서울로 올라와 다방 ‘제비’를 차리고 동거하면서 ‘날개’‘봉별기’ 등 한국 모더니즘을 개척한 소설을 남긴 이상 등의 사랑 얘기를 싣고 있다. 이종수기자
  • 김홍일후원회 권력무상?/참석자 1년전과 큰 차이 金의원·부인 윤씨 ‘눈물’

    김대중 대통령의 큰아들 김홍일(사진) 의원은 10일 자신의 후원회에서 ‘권력무상’을 절감했기 때문인지 인사말을 마친 뒤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그의 부인 윤혜라씨도 후원회 내내 여러차례 눈물을 보였다. 김 의원의 후원회는 이날 오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여야 의원 20여명과 후원회원 등 200여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쓸쓸하게 열렸다.넓은 회의실은 절반만 겨우 채워졌다. 이에따라 사회를 맡은 민주당 윤철상 의원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민주당 박상천 대표,장재식 사무총장,김옥두·최재승·이협·이윤수 의원을 차례로 축사에 나서게 배려해 김 의원을 치켜세웠다. 축사에서는 평소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는 이윤수 의원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의식,“(권력)무상함을 느낀다.1년 전만 해도 김 의원 후원회는 앉을 자리,설 자리도 없고 밖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는데 이 사람들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참석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할 정도였다.실제로 이날 국회 본회의를 마친 많은 의원들은 김의원의 후원회장을 힐끗거리며 지나쳐버렸다. 후원회장인 이해동 목사도 “민주세력의 결집체인 민주당의 분당이라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나간 쪽이나 남은 쪽이나 자성해야 한다.”며 ‘정치의 인간화’를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김 의원은 “민주당과 함께 역사적인 대의를 위해 과감하게 몸을 던지겠다.”며 5분여 동안 비교적 발음은 또렷했지만,어렵사리 인사말을 마쳤다.하지만 감정이 복받친 듯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려다 “목이 자꾸 멥니다.눈물이 흘러나오고…”라며 말을 잇지 못한 채 본행사를 끝냈다. 김 의원측은 이날 참석자가 적은 것에 대해 “지역구 주민들을 차량을 이용,실어나르지 않아 그런 측면도 있다.”고 해명했으나 김 전 대통령 집권시절 후원회 풍경과는 대비됐다. 이춘규기자 taein@
  • 조선족 5293명 “한국국적 신청”

    정부가 오는 16일부터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단속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조선족 5000여명이 13일 집단으로 한국 국적을 신청키로 했다. 조선족 한국국적 회복 운동을 벌이고 있는 서울 조선족교회는 10일 “지난달부터 조선족을 상대로 국적 회복 희망자를 접수한 결과 9일 마감일까지 모두 5293명이 신청했다.”고 밝혔다.조선족교회 이은규 목사는 “오는 13일 법무부에 한국국적 신청서를 제출한 뒤 14일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라면서 “정부가 국적 부여를 거절한다면 단식농성을 벌이겠다.”고 주장했다. 박지연기자 anne02@
  • 숭실대 총장에 대학발전기금 전달

    영락교회 당회장인 이철신(사진) 목사는 7일 오후 교회 당회장실에서 이중 숭실대 총장에게 대학 발전기금 3억원을 전달한다.
  • 茶 “마시는게 아니라 수행입니다”한국차 문화운동 펼쳐온 여연 스님

    “차(茶)의 기본은 겸손과 덕행입니다.그런데 요즘은 정신은 사라진 채 달이고 마시는 기술과 형식에만 치우쳐 안타깝습니다. 고려 도공의 혼이 담기지 않은 요즘 청자가 ‘현대 자기’일 뿐 고려청자가 될 수 없듯이 우리 고유의 온전한 가치와 정신을 담지 못한 차는 한낱 음료수일 따름입니다.” ●“때묻지 않은 인성과 같은 차” 쌀쌀한 날씨이지만 산에는 여전히 푸른 빛이 휘돌아 대롱대롱 매달린 감 몇 개만이 유난히 붉은 기운을 퍼뜨리는 전남 해남 두륜산 자락.대흥사 대웅전을 지나 가파른 숲길을 40여분 남짓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다른 일지암에서 만난 암주 여연(57)스님은 초의선사(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을 거듭 읊었다. “예부터 차와 생활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초의선사는 차의 성품을,삿됨이 없어서 어떠한 욕심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때묻지 않은 본래의 원천같은 것으로 보았지요.” 여연 스님은 외래문화의 범람 속에 차만이라도 우리 민족문화의 건강한 주체성을 찾자는 차문화운동을 일관되게 펼쳐온 조계종 스님.한국의 다성(茶聖)으로 통하는 초의선사 장의순(張意恂)이 말년 40년을 보낸 한국 차의 성지 일지암을 13년간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다. 초의선사는 이곳에 머물면서 다산 정약용,완당 김정희 등 당대의 석학들과 차를 매개로 종교와 신분을 초월한 인연을 맺었으며 그 유명한 ‘동다송’‘다신전’같은 저술을 남겼다. 지금의 일지암은 차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지난 1978년 복원해 대흥사에 기증한 것으로,초의선사의 살림채였던 자우산방과 작은 법당,허름한 요사채를 갖추고 있다.“초의선사가 주창했던 ‘다선일미(茶禪一味)’는 비단 불교에 국한하지 않는 사상입니다.모든 주장과 사상은 궁극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화합의 원칙을 강조한 셈이지요.요즘 각별히 새길 만한 이론입니다.” 흔히 불가에서 차는 스님들이 의례로 마시는 것이라지만 여연 스님에게 있어서 차는 수행은 물론 우리의 것을 사랑하기 위한 각별한 방편이었다.출가 동기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던 스님이 초의선사의 흔적이 남은 일지암을 택해 지키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연세대 철학과재학시절 신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당시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였던 김흥호 목사의 공개강연을 듣고 인생행로를 바꾸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학자였던 김흥호 목사는 벽암록이며 노자·장자 같은 동양철학을 두루 꿴 석학이었습니다.하루 한가지 반찬에 한끼 밥만 먹는 1종식을 어기지 않는 도인이었지요.자신에 철저하면서 열린 생각을 가진 목사의 모습에서 새벽별같은 빛을 보았다고나 할까요.” 결국 졸업하던 해 가을 가출했으나 마음 둘 곳을 정하지 못한 채 태백산을 방황하다가 우연히 한 선방에서 만난 학승으로부터 해인사 이야기를 듣고 해인사로 출가,지난 연말 입적한 혜암 전 조계종 종정으로부터 사미계를 받았다(스님은 혜암 종정의 네번째 상좌).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스님은 해인사에서 만난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에게도 할 말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74년 본격적으로 ‘차' 입문 “인도 다람살라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때였지요.성철 스님을 만나,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한번에 500∼600명이 몰리지만 불법을 전할 잡지를만든다면 1만명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간곡히 말씀을 드렸지요.” 그래서 창간된 게 월간 ‘해인’지다. 1974년 해인사 강단에서 차를 익히기 시작한 스님은 당시 한국 차의 거봉이었던 효당 스님 밑에서 본격적으로 차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1977년 전국 10개 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한국대학생차연합회를 결성한 주역이다. 이같은 이력을 눈여겨본 대흥사가 지난 90년 스님을 일지암 암주로 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80년대 중반 한때 재야운동에도 몸담았지만 당시 변혁세력이 해방신학이니 사회과학에 치우친 데 불만,대승불교승가회란 조직을 만들었다.이 조직은 나중에 정토불교승가회와 합쳐 지금 대표적인 불교 실천단체인 실천불교승가회가 됐다. “당시 대학가나 지식인 사회에 밀물처럼 밀려드는 서구문화에 아무 비판없이 빠져드는 세태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그에 맞선 대안으로 차 문화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지금 차 인구가 300만을 넘었다고 하지만 차를 제대로 알고 마시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일지암 앞 텃밭과 뒤뜰에서 직접 일구어 딴 찻잎으로 만들어낸 차에는 스님의 법명인 ‘여연차’라는 이름을 붙였다.‘여연차’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차’로 통한다.일지암을 찾는 도반이나 지인,뜨네기들에게 베푸는 스님의 차 인심도 넉넉하다. ●현대를 결합한 전통으로 계승 “이제 마시는 음료로서의 차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화와 결합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코드로서의 차를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우리 차가 온전하게 계승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단순한 흉내내기를 넘어 역사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신라차’‘고구려차’‘선차’ 등 각양각색의 이름을 지닌 차들이 난무하지만 사실상 깊이 들여다보면 내용없는 형식의 홍수일 뿐”이라는 스님은 그래서 지난 2000년 일지암을 중심으로 사단법인 ‘초의차문화연구원’을 발족시켜 초의선사의 전반적인 사상을 발굴하고 있다. 차에 관심이 많은 불교계,학계,언론계 인사 32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달 중순 광주 ‘예술의 거리’에 번듯한 사무실을 마련할 예정이다. “현실을 직시하여 역사의질곡을 극복하려는 주체적인 노력이 없다면 관념의 유희에 매몰돼 참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스님은 “전통이란 그릇 속에 현대를 채워야 하며 우리 차도 같은 이유에서 발전시켜야 한다.”며 일지암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해남 일지암 글·사진 김성호기자 kimus@
  • 영화단신 / 목사 제작 실험영화 새달 개봉

    현직목사가 만든 저예산 실험영화 ‘계시받은 사람’이 새달 3일 서울 센트럴6,분당 씨네플라자 극장 등에서 개봉된다. ‘계시받은 사람’은 광명시 서울반석교회 협동목사인 김영배(53)씨가 1억여원의 사재를 털어 만든 35㎜ 극영화.뇌종양에 걸린 남자가 살인충동과 믿음 사이를 방황하는 과정에 예수의 일생을 투영해가는 드라마다.김목사가 연출,각본,캐스팅,배급 등의 전과정을 도맡았다.
  • 집중기획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 / (하)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엄마라고 부르겠다는 이은숙 양

    험하고 힘든 세상이지만 우리 주위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도 많다.이 사회를 대신해 아무런 연고도 없이 위탁아동을 친자식처럼 거두어 키우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12월5일은 설희의 생일 김미심(金美心·37·여·서울 구로구 구로5동)·오진석(吳眞錫·38·목사)씨 부부는 부모없는 아이 3명을 데려다 키우고 있다.외동딸 하나(7)양을 두고 있지만 갈 곳 없는 김설희(7·유아원)양,신재민(8·신구로초등 2년)·강현호(12·신구로초등 5년)군을 대리양육하는 이른바 위탁가정이다. 설희는 지난해 11월,재민이는 98년 봄,현호는 지난해 10월 각각 데려와 주민등록에 얹었다.다행히 친딸 하나와는 친남매처럼 잘 지낸다. 설희의 부모는 이혼 후 각각 재혼했다.갓난애 적 사진이 있지만 부모의 얼굴은 기억 속에 희미하다. “오늘 이모에게 야단을 맞았다.엄마·아빠와 함께 살던 때가 그립다.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두 달만 참으면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했다.힘들어도 참아야지.” 어느 날 김씨는 우연히 현호의 일기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주위의 편견이 두려워 친딸보다 더 잘해줬는데….데리고 올 때를 생각하면 애가 이럴 수는 없는데….”잠깐이나마 후회스러운 마음이 스쳐갔다고 털어놓는다. 재민이는 조용한 성격이면서도 살갑게 다가온다고 했다.“엄마,설거지 도와드릴께요.”라고 말할 땐 가슴이 뭉클해 힘껏 안아주곤 한단다.처음엔 말도 붙이기 어려웠던 재민이는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표정이 꽤 밝아져 김씨 부부의 마음을 홀가분하게 만들었다고 했다.고민을 덜어주려고 “이제부턴 엄마·아빠라고 불러라.”고 말한 뒤부터다.엄마·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만족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김씨는 분석했다. 구로5동 강남교회 목사인 김씨의 남편 오씨는 “세 아이에게도 조부모 등 친인척이 있지만 이혼과 재혼을 거듭해 아이를 맡을 수 없는 가정”이라면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 성결대학에서 2년째 사회복지학 강의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가정위탁아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중·장기 대책이 절실하다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재민이는 아주 어릴 때 데리고와 어쩔수 없이 동사무소에 가정위탁아동으로 등록해 적은 돈이나마 지원받고 있다.그러나 설희와 현호는 언젠가 부모들이 데리러 올 것이라는 생각에 등록을 미루고 있다. 최근엔 마음을 바꿨다.자꾸 불안해져서다.아이들이 행여 뜻밖의 사고로 다치기라도 한다면 지금껏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뒷수습할 경제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씨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버티다 이마저 꽉 차는 바람에 얼마 전에는 교회 차량을 팔아 400만원을 마련했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오는 12월5일은 설희의 생일.이들 ‘사랑의 여섯 가족’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얘기꽃을 피울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중학교 졸업 전 엄마라 부르겠어요 유기봉(55·아산시 도고면 봉농리)씨는 부모없는 이은숙(15·아산 도고중 2년)양을 두 살 때부터 데려다 수양딸처럼 키우고 있다.유씨는 미혼인 막내 아들(28),은숙이와 한 집에 산다.아들 2명은 결혼해 분가했다. 유씨는 은숙이를 2살 때 만났다.13년 전,유씨집에 세들어 살던 은숙이 아버지는 30대 초반의 목수였다.한집에 1년쯤 같이 살았을 때 부부싸움 끝에 엄마가 은숙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은숙이에게 외할머니 집에서의 생활은 악몽으로 남아 있다.은숙이는 “나만 집에 남기고 매일 외출하는 외할머니와 엄마가 미웠다.”고 말했다.외할머니 집에 온 지 10여일 후 엄마는 재혼하고 은숙이는 아빠 집으로 보내졌다. 딸이 다시 돌아오고 부인이 재혼했다는 얘기를 들은 은숙이 아버지는 목수일마저 팽개치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급기야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간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당시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유씨는 초콜릿회사를 다니면서 어렵게 살았지만 은숙이를 받아들였다.졸지에 고아가 된 은숙이는 부모 없는 스트레스 탓인지 머리숱이 모두 빠지는 병을 앓았다.유씨는 매일 약을 사와 정성스럽게 돌봤다.그는 “너무 불쌍하고 속이 상해 은숙이를 부둥켜안고 울기도 숱하게 울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씨의 사랑 덕분에 은숙이는 밝게 자라주었다.성격이 밝아 친구가 많고 학교 성적도 좋은 편이다.은숙이는 아침 6시반에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수다를 떨며 등교한다.유씨는 “저것이 아니면 새벽 5시에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라며 애정어린 눈길을 보낸다. 유씨는 사춘기인 은숙이가 혹시 나쁜 길로 빠질까봐 걱정이다.어릴 적부터 친오빠처럼 은숙이를 챙겨준 유씨의 아들들도 요즘엔 신경을 더 쓴다.아주머니와 오빠들이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신경써라.”라고 하지만 가끔은 부모없는 설움을 겪는다.은숙이는 “일부 친구 엄마가 ‘엄마없는 애’라고 깔봐 속상할 때가 많다.”고 했다. 유씨는 “남의 집 애를 3명이나 키웠지만 시집가니까 찾아오지도 않는다.”면서 “저것은 시집가면 찾아올라나 몰라.”라고 농담을 던졌다.은숙이는 “건축디자이너가 돼 남편,아줌마와 함께 살,잔디가 넓은 집을 짓고 싶다.지금은 부끄러워 아줌마를 엄마라고 못부르는데 중학교 졸업하기 전에 엄마라고 부르기로 다짐했다.”며 유씨의 손을 꼭 잡았다. 특별취재반 ■나현민 충남 가정위탁지원센터 팀장 “대화단절이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이들에게는 가난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국복지재단 충남가정위탁지원센터 나현민(羅賢民·30) 팀장은 “조부모와의 세대차가 너무 커 할머니·할아버지에게 맡겨진 위탁아동들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데가 없다.”며 “고민을 숨기면서 지내서인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가 많다.”고 말했다.핵가족시대여서 평소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오지 않은 점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한다. 자녀를 규제하는 엄마·아빠가 없다 보니 절제력도 떨어진다.나 팀장은 “할머니·할아버지는 ‘어미·아비없이 크는 불쌍한 손자’로만 여겨 아이들에게 관대하다.”고 설명했다. 경제력 부재도 문제다.손자를 떠맡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대부분 남의 논밭을 부치거나 식당에 다니는 등 어렵게 살고 있다.위탁아동에 대한 지원이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가정위탁지원센터에 맡겨 위탁아동을 돌보게 하고 있으나 시·도당 3명의 월급만 지원해 손이 모자란다.”며 세대간 단절을 막으려면 부모 나이의 후견인을 둬 그들의 고민을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또 읍·면사무소에서 가정봉사자를 파견,할머니·할아버지를 도와 위탁아동을 돌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팀장은 “농어촌지역은 도시와 달리 친구 사이에 ‘왕따’가 심하지 않아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린이들이 비행아동이 될 위험은 크지 않지만 농어촌도 가정해체가 가속화돼 위탁아동이 늘고 있는 만큼 사회적 관심과 보호가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가정위탁' 전문가 조언 전문가들은 가정위탁아동 문제에 대해 범정부 차원의 관심을 요구했다. 한국아동권리학회 이재연(李在然·53·여·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 회장은 “아동문제만은 아직 ‘인권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면서 “아동에 대한 정책의 방치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같은 약자층이지만 장애인,노인은 참정권 등을 통한 의사표시와 인권개선 요구가 가능하지만 아동에 대해서는 정부 등 사회적으로 보호의무가 있는 계층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현행 법률상 문제로는 협의이혼 때 양육자 지정 없이도 이혼이 가능하도록 한 허점을 꼽았다. 또 친부모 아닌 사람이 양육을 맡을 경우 ‘양육수당’의 현실화 등을 통해 정신적 부담에다 경제적 부담까지 떠안지 않도록 함으로써,아동이 정상적 여건 아래 자랄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단다. 이 회장은 “어릴 때부터 교육문제에 휘둘리는 등 우리 사회의 아동 방기(放棄)가 아동문제에 대한 무대책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서 “가정위탁아동 문제는 국가의 총체적인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세경(朴世鏡·32·여) 책임연구원도 “가정위탁아동이 좋은 환경에서 생활해도 모자랄 판인데 새 삶을 꾸려나갈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나쁜 결과가 빚어진다.”면서 이 회장과 의견을 같이했다. 우선 정부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위탁가정을 대상으로 의료보험 혜택이나 교육비 지급 등 충분한 지원책이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그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가정해체로 조부모가 친손자,손녀를 키울 경우 조부모에게 부모와똑같은 법률적 지위를 부여해 최상의 여건에서 결손아동을 보호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탁가정이 모여 경험을 공유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입양과는 달리 위탁받은 쪽이나 아동이 모두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함께 생활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에 알맞은 관계설정이 절실하다는 점에서다.더 나아가서는 가정위탁아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체계적인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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