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목사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타로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수주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정유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견책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087
  • ‘자서전 문학’의 백미 만나보세요

    ‘자서전도 문학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자서전을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괴테 자서전에 대해서는 작품 전체가 하나의 픽션이며, 진술된 내용 중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내용의 사실성 여부를 떠나 괴테 자서전의 문학예술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한국판 ‘안데르센 자서전’),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한국판 ‘크로포트킨 자서전’)과 더불어 세계 5대 자서전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작품. 최근 출간된 ‘괴테 자서전’(이관우 옮김, 우물이있는집 펴냄)은 괴테의 삶과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서전 문학의 백미다. 괴테를 아는 것은 18세기 유럽문화를 아는 것이다. 어린 시절 겪은 7년전쟁(1756∼1763), 화려한 요제프 2세의 대관식, 경건주의 신앙을 통한 강렬한 종교적 체험 등이 소상히 묘사돼 있어 당시의 문화와 풍속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열다섯살 때 그레첸과의 첫사랑, 시골목사의 딸 프리데리케와의 목가적인 사랑,‘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모티프가 된 샤를로테 부프와의 아픈 사랑 등 풍성한 사랑 이야기가 연애소설을 방불케 한다. 그런가 하면 한 편의 성장소설로도 읽힌다. 한 인간의 전인적인 ‘교양’이 어떻게 완성돼 가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괴테는 자신의 출생부터 스물여섯 살 청년기까지의 성장과정을 늙바탕에 되돌아보며 이 책을 썼다.1부는 1811년(62세)에,2부는 1812년에,3부는 1814년에, 그리고 마지막 4부는 세상을 뜨기 바로 전해인 1931년에 완성했다. 장장 20년에 걸쳐 쓴 것이다. 괴테가 청년기 이후를 그린 자전적 작품들 이를테면 ‘이탈리아 기행’이나 ‘프랑스 종군기’‘연대기’ 같은 작품들에는 종교적 성찰이나 사랑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이 자서전은 괴테의 다채로운 삶의 풍경과 철학을 온전히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괴테를 깊이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책이다.4만 4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종교플러스] 명성교회 9월 특별 새벽집회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당회장 김삼환 목사)는 9월1일부터 7일까지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한 닷새 동안 9월 특별 새벽집회를 갖는다. 집회는 김삼환 목사가 ‘방주에 들어간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인도한다. 집회시간은 1부 4시30분,2부 5시40분,3부 6시50분,4부 8시,5부 10시(금요일 9시)에 시작한다. 한편 이번 집회는 케이블 2개 TV와 인터넷으로 국내외에 실시간 중계방송된다. 매일 새벽 5시40분 2부예배는 케이블TV CBS가 생중계하고 CTS가 녹화중계하며,1부부터 5부 모든 예배는 인터넷으로 전세계에 생중계한다.
  • [손원천기자의 배낭 둘러메Go!] 평창 기화천 플라이낚시

    [손원천기자의 배낭 둘러메Go!] 평창 기화천 플라이낚시

    ‘맑은 물에서 플라이 낚시를 한다는 것은 한동안 자연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플라이 낚시에는 항구성이 있다. 어디를 가든, 어떤 일을 하든 플라이낚시는 항상 거기 있다. 삶의 여정에서 이렇게 한결같은 것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플라이 낚시는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곳에서 벌어진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머리위에서 캐스팅하는 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50년 경력의 베테랑 낚시꾼인 폴 퀸네트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할 때가 온다’라는 책에 쓴 플라이 낚시 예찬론이다. 플라이 낚시에는 명수가 없다.‘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도 없다. 얼마나 많은 숫자의 물고기를 잡았는가를 겨루지 않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출발해서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저 대자연의 품속에서 한나절 놀다 오면 그뿐. 송어 플라이 낚시의 메카, 강원도 평창의 기화천을 다녀왔다. 글 사진 평창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아침햇살이 울창한 나무 사이로 부챗살처럼 퍼져가는 미국 몬태나 주 빅블랙풋 강변. 폴(브래드 피트)이 낚싯대를 치켜들자 S자 형태로 허공을 가르던 낚싯줄이 이내 미끼를 수면위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지난 1993년 국내에 개봉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 개봉 이후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플라이 낚시가 일반인들에게도 급속히 확산됐다. # 플라이 낚시는? 두껍고 무거운 라인(낚싯줄)을 캐스팅을 통해 원하는 곳까지 날려보낸 다음 가짜미끼인 플라이훅으로 물고기를 잡는 낚시다.미끼를 원하는 곳까지 던지는 것을 ‘캐스팅’이라고 하는데, 플라이 낚시를 독특한 낚시장르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이다.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는 털바늘 미끼를 원하는 곳까지 보내기 위해 무거운 줄을 날리는 독특한 캐스팅 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 캐스팅만으로 플라이 낚시에 매력을 갖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매끄럽고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라인을 볼 때면 이세상 어느 춤보다도 아름답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평창에서 영월로 넘어가는 42번국도변에 위치한 기화천. 벌써 가을인가 싶을 만치 제법 서늘한 새벽공기가 이방인들을 맞았다. 울뚝불뚝 솟은 산자락, 산등성이에 걸린 구름. 농촌의 새벽풍경은 언제봐도 고즈넉하다. 얼음장처럼 찬 기화천은 냉수성 어종인 송어가 서식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춘데다, 주변에 송어양식장도 많아 대표적인 송어낚시 메카로 알려져 있다. 포인트에 도착해 물속상황을 체크하던 박영환(44) 낚시광(www.fishmania.net)대표와 프로스태프인 김병남(41)씨가 능숙한 솜씨로 웨이더(방수바지)와 조끼, 계류화(미끄럼방지 신발)등으로 갈아입었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에 플라이낚시가 도입된 초창기부터 20년 넘게 활동한 베테랑 플라이 피셔.10년 경력의 김 프로와는 사제지간이다. # 타잉과 캐스팅이 플라이 낚시의 묘미 “미끼 선택부터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2번로드에 고동색 계열의 드라이(물위에 뜨는 미끼)를 세팅한 박 대표는 “송어의 먹잇감인 수서곤충의 우화과정을 눈여겨보았다가, 비슷한 색상과 모양의 미끼를 선택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플라이 낚시인들은 대부분 미끼를 스스로 만든다. 이 과정을 ‘타잉’이라고 부르는데, 캐스팅·피싱 등과 함께 플라이 낚시의 3대 묘미를 이룬다. 박 대표도 플라이 낚시 입문시절에는 “지나가던 사람이 낀 앙골라 장갑이나 털목도리만 봐도 타잉이 생각났다.”고 할 만큼 타잉이 주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했다. 시리릿∼소리를 내며 낚싯대 가이드를 통과한 라인이 새벽안개를 뚫고 계곡사이에 잔잔한 공명을 남겼다. 바닥이 훤히 비칠 만큼 맑고 깨끗한 여울앞에 멈춰선 박 대표가 마치 리본체조를 하듯 유려한 자세로 라인을 날렸다. 캐스팅한 다음에 라인을 당겼다 놓았다 하며 미끼가 살아 있는 것처럼 액션을 주기도 했다. 그는 “여울에는 산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물고기가 있을 확률이 높다.”며 “소를 이루는 여울의 꼬리부분, 수온이 높을 경우 수심이 깊은 곳, 돌무더기 뒤의 와류가 생기는 곳 등을 빼놓지 말고 탐색할 것”을 주문했다. 화려한 색보다는 카키색 계열의 옷을 입고, 하류에서 상류로 탐색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은 플라이 낚시의 기본. 고기의 시야각을 피하기 위해 낮은 포복자세로 포인트에 접근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 자연과 하나됨을 즐긴다 물살을 가르고 바위를 넘으며 1㎞남짓한 계곡을 오르자니 운동량이 상당하다. 어지간한 산 하나를 트레킹한 듯하다. 그동안 잡은 것은 갈겨니 몇마리와 송어새끼 두어수. 그러나 일행의 얼굴 어디서도 안달하는 표정을 찾아볼 수 없다.한순간 박 대표의 낚싯대가 활처럼 휘어졌다. 끌려나오지 않으려 앙탈을 부리던 녀석은 15㎝ 남짓한 산천어. 모처럼 박 대표의 얼굴에 싱그러운 미소가 번져갔다. 조심스레 아가리에서 바늘(미늘이 없다)을 뺀 다음 곧바로 방류. 물고기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머리를 상류로 향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른바 ‘캐치 앤드 릴리즈(catch & release)’다. 이 장면에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오버랩된다.“어슴푸레한 계곡에 홀로 있을 때면 내 영혼과 기억, 그리고 빅 블랙풋 강의 소리, 낚싯대를 던지는 4박자 리듬, 고기가 물리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어렴풋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로 녹아들고, 강물을 따라 흘러들어 가는 것 같다….” 플라이낚시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 장로교 목사였던 아버지가 브래드 피트에게 플라이 낚시를 가르친 이유는 뭘까. 자연과 한몸이 되는 플라이 낚시를 통해 진정한 삶을 깨달으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브래드 피트가 멋지게 라인을 날리던 몬태나주의 빅 베어풋 강변이 아니더라도 대자연의 품속에서 하루를 보냈다면 돌아오는 길이 빈손인들 또 어떠리. Tip ‘일몰전 3시간 일출후 3시간’ 노려라 얼음만 얼지 않는다면 사계절 즐길 수 있는 플라이 낚시. 많이 잡는 것이 목표는 아니지만, 대상어에 따라 출조지를 정해야 녀석들의 얼굴이라도 보고 올 수 있다. 또 어떤 곳에서건 물고기의 입질이 가장 활발한 일몰전 3시간, 일출 후 3시간을 놓쳐서는 안된다. 다음은 박영환씨가 추천하는 전국의 유명 포인트.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흐르는 계류에는 산천어, 오른쪽에는 열목어가 주로 서식하고 있다. 왼쪽, 즉 영동지방의 주요 포인트로는 강원도 간성의 북천, 양양의 오색천·갈천·어성천, 주문진의 연곡천, 삼척의 대이리 계곡 등이 있다. 영서지방에는 내린천이 있는 인제와 현리 등이 많이 알려진 포인트. 강계에서는 끄리·강준치·눈불개 등이 주대상어들이다. 끄리는 금강, 강준치는 충북 삼탄, 눈불개는 대청댐 밑에서 주로 잡는다. 박영환씨가 운영하는 피싱숍 낚시광에서는 수시로 플라이 낚시출조 행사를 벌인다. 초보자도 참여할 수 있다.(031)717-7072,716-7555.
  • “님은 정녕 어둠 속을 밝혀준 큰 별”강원용 목사 영결식

    지난 17일 89세를 일기로 소천한 강원용 경동교회 명예목사의 영결식이 21일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본당에서 엄숙하게 열렸다. 오전 10시부터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 목사가 집례한 장례예배는 신낙균 선린회장(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성경봉독과 고범서 대화문화아카데미 명예이사의 약력소개, 김수환 추기경·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경동교회 신자대표의 조사에 이어 박원근(기장총회 총회장)목사의 축도, 헌화 순으로 1시간20분가량 진행됐다. 영결식에는 한명숙 총리, 정원식·이수성·이홍구 전 총리,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6대종단 대표, 경동교회 관계자및 신도, 유가족 등 6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조사를 통해 “목사님이 추구하신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니라 오로지 이 땅, 이 겨레가 진리와 정의 및 사랑 안에 살고 번영하는 것, 모든 이가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되고 완성되는 것이었다.”며 “님은 정녕 어둠 속을 밝혀준 큰 별”이라고 추모했다. 김 추기경은 특히 “지금 우리는 남북분단에다 지역·계층·좌우익의 분열과 적대감 속에 더욱 갈라져 있어 매일같이 주고받는 말은 격하고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힘들다.”며 “목사님의 깊은 뜻이 실현될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구하여 달라.”고 말했다. 고인의 유해는 장례예배를 마친 뒤 경기도 여주군 금곡리 남한강 공원묘원으로 운구돼 오후 3시쯤 안장됐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北, 강원용목사 조문 보내

    수해와 미사일 발사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북한에서 20일 여해(如海) 강원용(姜元龍) 경동교회 명예목사의 명복을 비는 조문을 보내왔다. 장재언 조선종교인협의회장의 명의로 보낸 조문에는 “강 목사님의 뜻밖의 별세에 애도의 뜻을 전하며 아울러 고인의 유가족에게도 위로의 인사를 보낸다.”며 “강 목사님의 천상 영복을 기원한다.”는 내용이라고 한국종교인평화회의측은 전했다. 강 목사의 추모예배는 경동교회에서 21일 오전 10시에 있으며 김수환 추기경이 대표로 조사를 낭독할 예정이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강원용 목사님을 보내드리며

    하늘이 흐립니다 목사님 하늘이 흐립니다. 서거하심을 전해 듣고 문득 고개를 드니 하늘이 흐립니다. 빗줄기가 아닌 한줄기 스산함입니다. 목사님 당신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사람 없는 대지에 홀로 우뚝 서 잃어버린 민족의 북두를 가리키신 분입니다. 눈물이 솟지 않습니다. 오늘처럼 흐린 어느 한 날 바람과 물 연구소로 가던 길 위에서 당신은 내게 가르치셨습니다. -하늘의 불인(不仁)은 인간의 불인(不忍) 때문입니다- 그것은 삭풍의 땅, 북간도의 밤길을 홀로 뚜벅뚜벅 걸어오시던 혼돈적 질서요, 혼돈 그 나름의 길이었습니다. 그것이 또한 다름 아닌 바람과 물의 길이었습니다. 목사님 하늘이 흐립니다. 하늘만큼 땅도 흐리고 사람은 더욱 흐립니다. 서러움이 아닌 한줄기 그리움입니다. 목사님 당신은 그런 분이십니다. 나라 안팎에 사람이 없어 잃어버린 민족의 북두를 이젠 그에 새까맣게 잊어버린 이 혼돈 속을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 혼돈 그 나름의 눈부신 눈부신 흰 길을 가르쳐 주실 분. 눈물도 솟지 않습니다. 오늘처럼 온통 흐린 날 바람과 물 연구소로 가는 텅 빈 우리 모두의 마음의 길 위에서 당신은 다시금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인간의 불인(不仁)은 하늘의 불인(不忍)을 이끌고 옵니다- 안녕히 가옵소서. 김지하 모심
  • 험한길 앞장선 실천적 신앙인

    험한길 앞장선 실천적 신앙인

    17일 타계한 강원용 목사는 한국 현대사와 궤적을 같이하면서 항상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신앙인이자 사회운동가였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정권에 이어 최근까지 한 세기를 관통하면서 늘상 소신있게 앞장섰던 선구적 인물이었다. ●‘소판 돈´ 70원 손에 쥐고 만주로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 판돈’70원을 손에 쥔채,‘농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신념아래 만주 용정으로 건너간 게 18세 때인 1935년. 당시 은진중학교에서 만난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와의 교유는 인생의 큰 좌표를 세우는 중요한 계기였다. 그들과 함께 농촌계몽활동을 하면서 암울한 조국현실에 눈뜨기 시작했고 특히 당시 은진중학교 교사였던 김재준 목사를 만난 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결정적인 방향타가 되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강 목사는 사회, 신앙적인 틀에서 운명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김규식, 여운형 등과 만나 청년대표로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면서 건국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동시에 선린형제단을 결성하고 김재준목사를 설교자로 모셔,1945년 12월에 지금의 경동교회를 설립했다. 당시 그가 세운 경동교회는 기독교장로교의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하였다.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등 격동기를 보낸 강 목사는 1956년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스승 폴 틸리히와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를 만나면서 신앙과 사유에 큰 변화를 맞았다. 기독교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사이와 너머’(Between and Beyond)라는 철학을 굳건히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위기와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양극의 대립갈등 속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보다는 상호이해를 통해 새 길을 여는 방식을 지켰다. 이런 행동과 처신은 한때 오해를 불러일으켜 그에게 ‘중간파’, 혹은 ‘회색분자’라는 오명을 안기기도 했다. 자서전 ‘역사의 언덕에서’를 통해 “독선적이고 폐쇄적으로 대립하는 역사속에서 양극을 넘어선 제3지대에 내가 설 자리를 마련하려고 애쓰며 살아 왔다. 항상 양극사이에서 좁고 험한 길을 걸어야 했다.”고 밝힌 것을 보면 그가 이같은 평가에 적잖이 고민했음을 알 수 있다. ●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 설립 1960년대 초반 귀국한 뒤엔 대화중심의 아카데미운동에 돌입,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며칠씩 숙식을 같이하며 생각을 나누었던 대화모임은 당시 우리사회에서 유일한 소통의 장이었다. 특히 그해 6대 종교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 대화모임은 세계적인 종교간 대화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와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의장을 역임했으며 종교간 대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니와노 평화상, 만해 평화상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 목사가 주도했던 아카데미운동의 요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고 안식일도 인간을 위해서 있다.’는 이른바 화육(化肉)신앙이다. 결국 그가 지향했던 사회는 하느님의 사랑이 중심이 되는 화해공동체였던 것이다. 70년대 양극화와 비인간화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한 중간집단육성강화교육과 민주화, 노사간 대화, 성 평등 실현과 관련한 운동들은 모두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를 통해 배출해낸 인재들은 곧바로 90년대 시민사회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라는 가치관을 강조했던 강 목사는 해방이후 한국정치에 관심을 가져 민주화운동에도 깊숙이 참여했다.1970년대 김수환 추기경, 함석헌 선생 등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민주회복국민회의’대표위원을 맡기도 했지만 현실정치 참여에는 거리를 두었다. ●“교회는 세상위해 있는것” 신앙철학 한국 교회를 세계교회의 움직임에 동참시킨 것은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을 일이다.1948년 이후 세계교회운동에 참여하면서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끌어 왔다.‘교회는 세상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신앙 철학으로 교회와 사회의 벽을 허무는 일에 앞장섰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파격적인 운동과 시도는 기성교회와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통일 조국에서 부모의 산소에 성묘를 가고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되는 일을 내 눈으로 보지는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강 목사.“모세가 이스라엘 민족과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하던 가나안을 비스가 봉우리 꼭대기에서 바라보며 후배 여호수와에게 부탁을 하고 죽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멀리서라도 가능성을 보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말 그대로 임종 때까지 평화통일을 향해 달려 왔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종교계 표정

    17일 강원용 목사의 타계 소식이 알려지자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종교계는 각각 애도문을 발표하는 등 고인의 소천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은 “강원용 목사님은 우리 사회의 어려운 고비마다 큰 빛을 보여주셨다.”면서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인 강 목사님의 소천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목사님께서 하느님 나라에서 영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오전 11시쯤 강원용 목사가 입원한 강남 삼성의료원 중환자실을 찾았으나 뇌사상태였던 강 목사와 대화는 나누지 못한 채 강 목사의 귀에 대고 “하느님의 자비를 믿으세요. 하느님께 다 맡기시고 편안히 가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김 추기경은 21일 장례식에서 고인을 위한 축복의 말씀을 할 예정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강 목사님이 사회민주화에 끼친 남다른 정의심과 열정은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이루는 밀알이 되었고, 종교간 화합이나 분단된 민족의 갈등을 통합하는 데 종교인으로서 주어진 사명을 다했다.”고 추모했다. 지관 스님은 18일 오후 강 목사의 빈소를 조문할 계획이다. 전 조계종 총무원장 송월주 스님도 “강 목사님은 기독교 지도자일 뿐 아니라 민중과 민족지도자로서 목회활동을 펴며 종교간, 도농간, 노사간, 종파간 대화를 이끌었고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대화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통일 기반을 조성하려 노력해온 민족의 스승”이라며 명복을 빌었다. 한편 강 목사의 임종을 지킨 박종화(경동교회 담임) 목사는 “전체 기독교계 입장에서 볼 때 큰 별이 졌다.”며 “강 목사님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공동체적 리더십으로 계속 받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타계 강원용 목사의 삶과 신앙

    ▲1917년 함남 이원 출생 ▲1940년 일본 메이지학원 영문학부졸업 ▲1945년 경동교회 설립 ▲1948년 한국신학대학교 졸업 ▲1949년 목사 안수 ▲1949∼1986년 경동교회 목사 ▲1955∼1986년 경동교회 당회장 ▲1956년 미국 유니언신학대 졸업 ▲1962년 한국방송윤리위원회 위원장 ▲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 창립, 한국내 6대 종교지도자 대화모임 개최 ▲1965∼1995년 크리스챤아카데미원장 ▲1966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1966∼1969년 한국종교인협의회 회장 ▲1968∼1983년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 중앙위원 ▲1973년 아시아교회협의회(CCA) 회장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 ▲1980년 국정자문위원회 위원, 한국기독교회협의회(KNCC) 회장 ▲1984∼1991년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공동의장 ▲1986년∼ 경동교회 명예목사 ▲1988∼1991년 한국방송위원회 위원장 ▲1994∼1999년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공동의장 ▲1996∼2000년 크리스챤아카데미 이사장 ▲1998∼2000년 통일고문회의 의장 ▲1998∼1999년 한국방송개혁위원회 위원장 ▲1999년∼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명예의장 ▲2000년∼ 평화포럼 이사장 ▲2003년∼ (재)실업극복국민재단 함께일하는사회 이사장
  • ‘개신교·민주화운동 원로’ 강원용목사 별세

    ‘개신교·민주화운동 원로’ 강원용목사 별세

    한국 개신교계와 민주화세력의 원로인 강원용(경동교회 명예목사) 목사가 17일 낮 12시5분 서울 삼성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89세. 함경남도 이원 태생인 강 목사는 농촌 계몽운동에 힘쓰다가 1945년 경동교회를 창립했다. 이후 목사로 활동하면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회장, 세계교회협의회(WCC)중앙위원, 세계 종교인 평화회의(WCRP)의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설립, 사회개혁과 종교간 대화운동에 앞장섰으며 군사정권 시절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지만 늘상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입장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광복 후 좌우합작위원회 위원을 맡은 것을 비롯해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 방송위원회 위원장, 통일고문회의 의장 등을 지내는 등 목회활동과 병행해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쳤으며 2000년 한반도 평화정착에 여생을 바친다는 결심 아래 사단법인 ‘평화포럼’을 설립, 초당적 협력과 국제연대를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힘써왔다. 사회교육공로 모란장, 국민훈장 동백장,88올림픽공헌 청룡장, 니와노평화상, 만해평화상을 받았으며 ‘폐허에의 호소’‘인생과 종교 교학사’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명주(88) 여사와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마련됐으며 영결예배는 21일 오전 10시 경동교회.(02)2072-2091∼2.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부고]

    ●현상복(자영업)상열 상현 상길씨 부친상 김수연 최준규(서울신문 출판국 과장)씨 빙부상 16일 경기도 이천 곤지암장례식장, 발인 18일 오전 6시 (031)766-5544●염은복(영동고 교사)하창도(우창정보통신 대표이사)씨 빙모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02)3410-6916●박희상(전 소하고 교장)씨 별세 조숙자(서울당곡초 교장)씨 상배 박윤재 성재(KBS PD)씨 부친상 황정훈(재정경제부 서기관)씨 빙부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02)3410-6918●김우섭(산부인과 의사)씨 별세 재윤(CJ㈜ 대리)희정 연정(호서대 교수)은정씨 부친상 손영찬(리딩투자증권 법인영업 상무)신민구(CSJ글로벌 대표이사)김연웅(대우인터내셔날 차장)씨 빙부상 조연진(메디슨 대리)씨 시부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3410-6920●김성환(대한병원협회 홍보학술실장)씨 상배 16일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2)921-1699●백순호(서울일보 인천본부 취재팀장)순영(동명인쇄 사장)용순(동명인쇄 기획실장)완순(개인사업)씨 모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10시 (02)3010-2237●김근덕(연세대 명예교수)씨 별세 재훈(피아마골프회사 사장)혜인 정인씨 부친상 이건만(교원대 교수)오종대(재미 교회목사)씨 빙부상 김영신(명지전문대 교수)씨 시부상 16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92-0299●도경환(산자부 에너지자원정책팀장)승환(변호사)씨 모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9일 오전 8시 (02)3410-6917●김일곤(대한체육회 혁신평가실 차장)씨 부친상 16일 경기도 부천 신곡동 대성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32)654-2736
  • 종교적 양심으로 사회변혁 앞장

    지난 80년대 중반 원불교 교역자인 교무들을 주축으로 결성되어 사회 현안이 생길 때마다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여온 사회개벽교무단(상임대표 김대선 교무)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다음달 3일 서울 유스호스텔에서 기념식과 세미나를 갖는다.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은 민주화의 열기가 뜨겁던 1987년 6월17∼18일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대각전에서 100여명의 원불교 교무들이 시국토론 철야기도회를 가진 것을 계기로 결성된 모임. 당시 철야기도회에 참석한 교무들이 사회의 현안에 전면대응할 것을 결의했고 3개월 후인 9월20일 창단 모임을 대전교구 사무소에서 가졌다. 당시만 해도 사회적인 사안에 소홀했던 원불교 안에선 이례적인 모임이었던 만큼 반대의견이 많았으나 지금은 종교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단체 중 하나로 꼽힌다. 원불교 교단에 국한하지 않고 타종교,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활동을 펴와 2000년 총선시민연대에서 낙천낙선운동을 벌인 것을 비롯해 2002년 11월부터 시작된 반핵국민운동에선 김성근 교무가 원전건설과 핵폐기장 설치에 반대하며 36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다.2003년 3월28일부터 5월31일까지 새만금간척사업에 반대하는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에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이희운 목사와 함께 김경일 교무가 순례행진을 함께해 주목받기도 했다. 한편 다음달 3일 기념식에는 교무단 역대 단장을 비롯한 교단 각 단체장, 교무단과 연대 사업을 펼쳐온 실천불교승가회·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목정평) 대표와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한다.‘참여·소통·개벽’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는 ‘사회개벽교무단 20주년 성과와 전망’(우세관 교무) 등 주제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개신교계 원로 강원용 목사 위독

    개신교계의 원로인 강원용(89) 경동교회 원로목사가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16일 경동교회와 평화포럼 관계자에 따르면 평화포럼 이사장인 강 목사는 10일 강남 삼성병원에 요양차 입원했으나 이튿날인 11일 오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위독한 상태다.
  • [부고]

    ●문철근(천보월드 계장)지영(대한항공 부장)씨 모친상 윤여철(현대자동차 사장)씨 빙모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010-2295●윤지언(한국가스공사 차장)씨 부친상 서창만(문화방송 예능국 차장)씨 빙부상 12일 구로 성심병원, 발인 15일 오전 7시 (02)2067-1744●박종복(KBS 스포츠 취재제작팀 기자)씨 빙부상 13일 일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7시 011-898-4078●장은호(LG카드 대리)씨 빙모상 1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5일 오전 6시30분 (02)3410-6918●신준식(다우산업개발 대표)응식(한국시티은행 종합금융부장)경옥(사업)희옥(〃)씨 부친상 1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3410-6920●오형태(정안기계공업 대표)석태(전 서울은행 지점장)주범(성우보안 서울지사장)신태(청해진교역 대표)학태(사업)씨 모친상 김주수(전 연세대 법대학장)송전(한남대 인문대학장)씨 빙모상 13일 이대 목동병원, 발인 15일 오전 10시30분 (02)2650-2742●남상현(큰사랑병원 행정원장)용현(트루윈 대표)씨 부친상 13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5일 오전 5시 (031)787-1501●변경남(사업)경석(성창염직 대표)경식(우인켐 〃)씨 모친상 박명진(산성교회 목사)씨 빙모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10시 (02)3010-2294●박창룡(삼목리스 사장)씨 상배 창석(전 삼성생명 홍보부장)씨 형수상 12일 분당서울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10시 (031)787-1503●이호진(한국교육환경연구원 원장)씨 모친상 남광영(남광영치과 원장)씨 빙모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2)3410-6916●김용길(덕영화섬 고문)용남(〃 대표)씨 모친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30분 (02)3010-2291●윤성해(전 광산구청 총무과장)동규(참전설 대표)현규(세세건설 〃)씨 모친상 박성래(동익건설 회장)변동을(고대안암병원 팀장)씨 빙모상 11일 광주 한국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62)380-3041●정대덕(자영업)수영(〃)헌진(회사원)씨 모친상 박진우(세계일보 정치부 기자)씨 외조모상 13일 전주 예수병원, 발인 15일 오전 9시 (063)288-4341
  • [토요일 아침에] 할 수 없는 사람,할 수 있는 사람/길자연 목사 왕성교회 당회장

    서초구 우면산 기슭에서 37세의 청년이 숨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청년의 곁에는 실탄 여섯발이 장전되어 있는 권총이 놓여 있었고, 그의 관자놀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채 피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의 뒷주머니에서 이런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남길 유산도, 채무도 없으며 아쉬움도 없다, 이승의 삶을 마감하려 한다, 죽으면 화장해 달라.”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벽에 부딪히게 될 때 곧잘 절망합니다. 그리고 극단적인 행동을 표출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활자세는 인생문제에 대한 정답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성서가 이런 부정적인 삶의 자세에 대해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우리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서가 제시하는 바는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릅니다. 성경은 안되는 것은 내가 안 된다는 것이지 하나님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며, 할 수 없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지 하나님이 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삶을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웁니다. 2000년 전, 유다 광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벌써 사흘째, 광야의 들판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노라 피곤에 지치고 굶주린 무리를 바라보면서 제자들은 “우리에게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않고는 할 수 없나이다.”라면서 걱정하고 근심할 때 주님은 제자들이 건네주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명이나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은 제자들이 할 수 없는 것이었지, 주님이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지 하나님이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이 그렇게도 할 수 없다던 그 일을 우리 주님이 너끈히 해내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불가능해 하는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자이십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도 절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 일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 과연 그 일을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에 신경을 씁니다. 그러나 이는 올바른 생각도, 참된 신앙인의 자세도 아닙니다. 참된 삶의 자세는 내게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를 헤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활자세가 아닙니다. 내 곁에 찾아와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를 의지하면서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자이신 예수께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가 내게 있으면 다 있는 것이고 예수가 내게 없으면 다 없는 것이라.”는 삶의 등식이 성립됩니다. 예수는 그 옛날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문제해결의 방법과 수단만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친히 우리의 문제에 뛰어들어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일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그 일을 내 모든 인생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예수께 찾아 나아가 맡기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우리를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우리를 초청하셨기 때문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제자들의 손에 들려져 있을 때는 전혀 상황이 변하지 않았으나 그것들이 예수의 손에 들려지게 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 인생들의 문제가 내게 있을 때는 전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도 예수의 손에 옮겨지게 될 때 이 세상 그 어떤 문제도 다 해결되어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예수를 찾아 나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또 우리 문제의 해결자이십니다. 길자연 목사 왕성교회 당회장
  • [부고]

    ●임일영(서울신문 체육부 기자)씨 외조모상 9일 전북 정읍 사랑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63)537-8881●김영근(월간축구아이 편집국장·전 서울신문 노조위원장)씨 모친상 9일 서울대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 (02)2072-2016●지창열(전 한국물리학회장·서울대 명예교수)씨 별세 성준(지성준치과의원 원장)씨 부친상 강준일(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유성환(유창 대표)이범종(인제대 교수)송영빈(이화여대 교수)씨 빙부상 9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 (031)787-1510●이동식(클라리언트코리아 대표)씨 모친상 이형주(유노 대표)형래(엘테크신뢰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형종(유학)씨 조모상 장병규(전 교육부 차관)임근빈(중앙대 교수)씨 빙모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2)3410-6902●고천식(전 제주새마을금고 이사장)씨 별세 동원(건국대 교수)동준(RIST책임연구원)동현(연세대 전문연구원)영애(안양덕현초등학교 교사)씨 부친상 송현주(중앙대 연구교수)양희선(대불대 강사)씨 시부상 김광은(전 협성대 강사)윤완(안양벌말초등학교 교감)씨 빙부상 9일 서울아산병원, 출상 10일 오후 1시, 발인 15일 오전 7시 제주대병원.(02)3010-2252 (064)750-1457●이종규(오길비앤매더코리아 국장)씨 부친상 한성주(부산광역교회 목사)이규환(사업)김정진(〃)이주한(〃)전상훈(한국증권업협회 부장)씨 빙부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7시 (02)3010-2291●이승기(강남건축 소장)씨 부친상 송인순(현대증권 평택지점장)씨 빙부상 9일 일산 국립암센터, 발인 11일 오전 8시 (031)920-0301●이상문(전 LG금속 인사부장)동문(선진약국 대표)영문(대한산업보건협회 사업총괄본부장)성문(부동산 중개업)용문(서울아산병원 방사선과 팀장)이순(환승약국 대표)씨 모친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5시30분 (02)3010-2293●김인한(상주시청)태한(한나라당 김태환 의원 보좌관)성한(회사원)씨 모친상 8일 경북 의성 성제한방병원, 발인 10일 오전 10시 (054)862-4447●유명걸(관세청 대구본부세관 조사감시과장)성걸(국민경제자문회의 대외산업국장)관걸(삼양사 사료구매팀장)씨 부친상 8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 (053)956-4448●이길세(자영업)웅세(베이시스구조사무소 과장)씨 부친상 이상덕(금융감독원 실장·예금보험공사 파견)씨 빙부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02)3010-2294●김종철(곡성 고달초등학교 교장)씨 별세 정훈(금융감독원 전주출장소 선임검사역)성훈(학생)씨 부친상 8일 전남 곡성병원, 발인 11일 오전 (061)363-0929●김인환(전 조선대 교수)인서(현대자동차 기획실 상무)인현(사업)씨 모친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30분 (02)3010-2233●이상선(전 한국손해보험요율산정회 이사장)씨 별세 김준호(한국증권전산 본부장)성시창(한국화재보험협회 팀장)씨 빙부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 (02)3010-2239
  • [지금 제주에선] 조랑말 혈통지키기 ‘종자전쟁’

    [지금 제주에선] 조랑말 혈통지키기 ‘종자전쟁’

    21세기는 ‘종자 전쟁’의 시대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누가 우수한 종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가 국가 경쟁력의 바로미터가 되는 시대다. 세계 곳곳에서는 오늘도 종자 전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우수종자의 보존과 개발, 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총성만 들리지 않을 뿐 지구촌은 이미 거대한 종자 전쟁터로 변한 지 오래다.국내 유일의 향토마인 제주마를 키우고 있는 제주축산진흥원의 소리 없는 종자 전쟁터에 들어가 본다. ●말(馬)산업을 띄워라 ‘소득 1만달러 시대는 골프,2만∼3만달러 시대는 승마와 요트.’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제주도 축산진흥원은 종자전쟁의 최전선이자 다가올 소득 2만달러 시대에 말 산업을 이끌 제주마의 본산이다. 푸른 초원 위에서 풀을 뜯는 조랑말들의 한가한 바깥 풍경과는 달리 안에서는 제주마의 우수한 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종자전쟁이 한창이다. 제주도에 있는 조랑말이라고 해서 다 천연기념물(347호)인 제주마가 아니다. 흔히 조랑말이라고 불리던 제주도의 말은 2000년 1월부터 제주마로 명칭을 통일했다. 제주의 말은 우선 엄격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 혈통을 인정받아 등록한 순수 제주마와 제주마와 외래종이 교잡한 제주산마로 구분한다. 제주산마 가운데 키 125㎝ 이하는 재래마로 부른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승마장의 말은 대부분 교잡종인 제주산마다. 천연기념물인 제주마로 등록하려면 DNA 검사와 함께 깐깐한 외모심사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엉덩이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궁둥이는 돌출되지 않을 것, 쳬격에 비해 머리가 크고 눈은 둥글 것, 목은 굵고 털은 윤택하고 강인한 인상을 줄 것 등 14가지 기준에 따라 몸짱 제주마가 탄생한다. 제주도에서 사육중인 말은 모두 1만 4680마리.1980년대 초부터 사양길을 걷던 제주마는 웰빙바람에 편승,2003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다. 이 가운데 등록된 순수 제주마는 고작 4%인 593마리.163마리는 이곳에서, 나머지 430마리는 민간농가에서 사육 중이다. 축산진흥원에서 관리하는 163마리는 제주마 가운데서도 유전자가 뛰어나고 외모도 출중한 종마들이다. 유전자 검사와 외모심사에 통과하면 사람의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말 등록증이 전자칩에 담겨 말의 목 근육에 심어진다. 전자칩 리더기를 대면 부모가 누구인지 출생정보와 털색깔 등 이력이 한눈에 나타난다.163마리 제주마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5억 4000만원. 동물이지만 천연기념물이어서 주로 문화재청의 예산지원을 받는다. 제주마는 돌 많은 제주의 자연에 적응하면서 말의 생명이라는 발굽이 다른 품종에 비해 매우 강하다. 이곳에서는 제주마 특유의 야생성을 보존하기 위해 방목사육 원칙을 지키고 있다. 조덕준 원장은 “종자전쟁의 고지 선점을 위해서는 제주마 고유의 우수혈통 보존과 이를 활용한 말산업의 창출이 긴요하다.”며 “제주마에 대한 연구와 투자는 곧 미래에 대한 투자인 만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강쇠를 찾아라 말은 봄철에서 여름철에만 발정을 한다. 대개 3월부터 7월 말까지다. 우수혈통 보존을 위해 이곳에서는 매년 종부로 사용할 변강쇠가 선발된다. 화력(?)도 좋고 백발백중의 실력을 자랑하는 저격수를 선발하는 셈이다. 왕성한 생식 본능에다 최고 몸짱을 갖춘 변강쇠 수말에게는 천연기념물의 혈통 보존이라는 역사적(?) 소명이 주어진다. 당연히 물건(?)의 발육상태도 고려된다. 길고 굵어야 하고 정자 수도 많고 움직임도 활발해야 한다. 올해 선발된 변강쇠 제주마의 이름은 1-16.2001년에 16번째 출생한 말을 뜻한다. 1-16이 올해 상대한 임신 가능한 종빈마(암말)는 모두 74마리. 말은 보통 수말 한 마리가 암말 60∼70마리를 상대로 사랑을 나눈다. 제주 방마장에 종빈마 74마리와 동거중인 1-16은 올해 85%,63마리의 종빈마를 임신시키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말의 성기는 발기했을 경우 밖으로 보이는 외부만 길이 50∼60㎝, 직경 8∼10㎝의 대물이지만 교배시간은 10∼15초로 짧다. 한번에 방출하는 정액량은 양주잔 한 잔 정도로 평균 86억마리,38㎖이며 많게는 70.5㎖까지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 변강쇠로 선정됐지만 피곤한 모습을 보이는 등 정력이 떨어지면 즉시 퇴출되고 대타가 투입된다. 다행히 1-16번은 기대에 부응하듯 왕성한 힘을 자랑하며 올해 교배시즌을 마무리했다. 암말 한 마리는 발정기간(8∼10일)에 수말의 접근을 최대 13회까지 허용한다. 제주도의 민간 종부소에서는 우수 제주마와 교배를 하려면 1회 30만∼60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김준 연구사는 “올해의 변강쇠인 1-16은 난교잡 예방 등 우수혈통 관리를 위해 내년에는 사육농가로 방출시킨다.”면서 “내년에는 또 새로운 강자가 등장, 종빈마들을 지배하게 된다.”고 말했다. 제주마의 종자전쟁은 아직 승리를 낙관할 수 없는 우군 없는 외로운 전투이다. 박물관 천국이라는 제주도에 아직 말 박물관이 없다. 제주마를 연구해 온 장덕지 제주산업대 교수는 “국내 유일의 말 산지인 제주에 아직 말 관련 박물관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종자전쟁에서 이기려면 말 관련 문화전쟁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지금 제주에선] 조랑말 혈통지키기 ‘종자전쟁’

    [지금 제주에선] 조랑말 혈통지키기 ‘종자전쟁’

    21세기는 ‘종자 전쟁’의 시대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누가 우수한 종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가 국가 경쟁력의 바로미터가 되는 시대다. 세계 곳곳에서는 오늘도 종자 전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우수종자의 보존과 개발, 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총성만 들리지 않을 뿐 지구촌은 이미 거대한 종자 전쟁터로 변한 지 오래다. 국내 유일의 향토마인 제주마를 키우고 있는 제주축산진흥원의 소리 없는 종자 전쟁터에 들어가 본다. ●말(馬)산업을 띄워라 ‘소득 1만달러 시대는 골프,2만∼3만달러 시대는 승마와 요트.’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제주도 축산진흥원은 종자전쟁의 최전선이자 다가올 소득 2만달러 시대에 말 산업을 이끌 제주마의 본산이다. 푸른 초원 위에서 풀을 뜯는 조랑말들의 한가한 바깥 풍경과는 달리 안에서는 제주마의 우수한 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종자전쟁이 한창이다. 제주도에 있는 조랑말이라고 해서 다 천연기념물(347호)인 제주마가 아니다. 흔히 조랑말이라고 불리던 제주도의 말은 2000년 1월부터 제주마로 명칭을 통일했다. 제주의 말은 우선 엄격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 혈통을 인정받아 등록한 순수 제주마와 제주마와 외래종이 교잡한 제주산마로 구분한다. 제주산마 가운데 키 125㎝ 이하는 재래마로 부른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승마장의 말은 대부분 교잡종인 제주산마다. 천연기념물인 제주마로 등록하려면 DNA 검사와 함께 깐깐한 외모심사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엉덩이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궁둥이는 돌출되지 않을 것, 쳬격에 비해 머리가 크고 눈은 둥글 것, 목은 굵고 털은 윤택하고 강인한 인상을 줄 것 등 14가지 기준에 따라 몸짱 제주마가 탄생한다. 제주도에서 사육중인 말은 모두 1만 4680마리.1980년대 초부터 사양길을 걷던 제주마는 웰빙바람에 편승,2003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다. 이 가운데 등록된 순수 제주마는 고작 4%인 593마리.163마리는 이곳에서, 나머지 430마리는 민간농가에서 사육 중이다. 축산진흥원에서 관리하는 163마리는 제주마 가운데서도 유전자가 뛰어나고 외모도 출중한 종마들이다. 유전자 검사와 외모심사에 통과하면 사람의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말 등록증이 전자칩에 담겨 말의 목 근육에 심어진다. 전자칩 리더기를 대면 부모가 누구인지 출생정보와 털색깔 등 이력이 한눈에 나타난다.163마리 제주마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5억 4000만원. 동물이지만 천연기념물이어서 주로 문화재청의 예산지원을 받는다. 제주마는 돌 많은 제주의 자연에 적응하면서 말의 생명이라는 발굽이 다른 품종에 비해 매우 강하다. 이곳에서는 제주마 특유의 야생성을 보존하기 위해 방목사육 원칙을 지키고 있다. 조덕준 원장은 “종자전쟁의 고지 선점을 위해서는 제주마 고유의 우수혈통 보존과 이를 활용한 말산업의 창출이 긴요하다.”며 “제주마에 대한 연구와 투자는 곧 미래에 대한 투자인 만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강쇠를 찾아라 말은 봄철에서 여름철에만 발정을 한다. 대개 3월부터 7월 말까지다. 우수혈통 보존을 위해 이곳에서는 매년 종부로 사용할 변강쇠가 선발된다. 화력(?)도 좋고 백발백중의 실력을 자랑하는 저격수를 선발하는 셈이다. 왕성한 생식 본능에다 최고 몸짱을 갖춘 변강쇠 수말에게는 천연기념물의 혈통 보존이라는 역사적(?) 소명이 주어진다. 당연히 물건(?)의 발육상태도 고려된다. 길고 굵어야 하고 정자 수도 많고 움직임도 활발해야 한다. 올해 선발된 변강쇠 제주마의 이름은 1-16.2001년에 16번째 출생한 말을 뜻한다. 1-16이 올해 상대한 임신 가능한 종빈마(암말)는 모두 74마리. 말은 보통 수말 한 마리가 암말 60∼70마리를 상대로 사랑을 나눈다. 제주 방마장에 종빈마 74마리와 동거중인 1-16은 올해 85%,63마리의 종빈마를 임신시키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말의 성기는 발기했을 경우 밖으로 보이는 외부만 길이 50∼60㎝, 직경 8∼10㎝의 대물이지만 교배시간은 10∼15초로 짧다. 한번에 방출하는 정액량은 양주잔 한 잔 정도로 평균 86억마리,38㎖이며 많게는 70.5㎖까지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 변강쇠로 선정됐지만 피곤한 모습을 보이는 등 정력이 떨어지면 즉시 퇴출되고 대타가 투입된다. 다행히 1-16번은 기대에 부응하듯 왕성한 힘을 자랑하며 올해 교배시즌을 마무리했다. 암말 한 마리는 발정기간(8∼10일)에 수말의 접근을 최대 13회까지 허용한다. 제주도의 민간 종부소에서는 우수 제주마와 교배를 하려면 1회 30만∼60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김준 연구사는 “올해의 변강쇠인 1-16은 난교잡 예방 등 우수혈통 관리를 위해 내년에는 사육농가로 방출시킨다.”면서 “내년에는 또 새로운 강자가 등장, 종빈마들을 지배하게 된다.”고 말했다. 제주마의 종자전쟁은 아직 승리를 낙관할 수 없는 우군 없는 외로운 전투이다. 박물관 천국이라는 제주도에 아직 말 박물관이 없다. 제주마를 연구해 온 장덕지 제주산업대 교수는 “국내 유일의 말 산지인 제주에 아직 말 관련 박물관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종자전쟁에서 이기려면 말 관련 문화전쟁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0) ‘국내 유일 ㄱ자형 예배당’ 김제 금산교회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0) ‘국내 유일 ㄱ자형 예배당’ 김제 금산교회

    전북 전주와 김제를 잇는 노령산맥 중봉(中峰) 모악산 국립공원의 금산사 입구 마을에 있는 금산교회(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290-1, 담임 이인수 목사). 금산사 반대방향 왼쪽 작은 샛길로 들어서 300m쯤 지점 오른쪽에 한옥 ㄱ자와 현대식 건물이 나란히 서있다. 한국 기독교계에서 ‘작고도 큰 교회’로 통하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 땅 초기 기독교의 ㄱ자 공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개신교 순례성지다. 호남 지역 기독교 건물론 처음으로 문화재에 등록된 건물.‘남녀칠세 부동석’의 유교식 전통을 살려내면서 외래종교의 토착화를 이루기 위한 선교사들의 고민과 아름다운 신앙미덕이 함께 서린 흔치 않은 유산이다. 잘 알려졌듯 모악산 일대는 예로부터 내세지향의 미륵신앙이 결집된 곳.600년(백제 법왕2년) 미륵불교의 총본산이랄 수 있는 금산사가 들어섰고 구한말 ‘후천개벽’을 내건 강일순이 증산교를 시작해 지금도 40여개의 증산교 분파가 자리잡고 있는, 일종의 신흥종교 단지다. 한때 100개가 넘는 다양한 교단이 몰려들었고 지금도 이 지역 인구의 70% 이상이 불교나 증산교를 비롯한 민족종교와 신흥종교를 신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산리는 모악산 아래 새터, 용화, 팟정이(두정리)등 세 개의 작은 마을로 구성됐는데 그 첫동네가 팟정이인 만큼 팟정이는 바로 금산리의 다른 이름으로도 통했다. 이 팟정리 마을에 금산교회가 들어선 것은 미국 남장로회 개척 선교단원으로 내한한 선교사 테이트(L.B. Tate·한국명 최의덕) 목사에 의해서다. 최의덕 목사는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펴다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귀국한 아펜젤러 목사의 강연에 감화를 받아 한국으로 건너온 인물. 호남 지역 선교 책임을 맡아 전주며 정읍을 말로 오가던중 1905년 팟정이에서 마방을 운영하던 이 지역 부호 조덕삼(1870∼1910)을 만나 전교해 결국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이다. 조덕삼은 유교 집안에서 자라났으면서도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최의덕 목사에게 접근해 결국 하나님에 귀의했으며 선뜻 자신의 사랑채를 교회 건물로 제공했다. 바로 이곳에서 금산교회가 시작된 것이다.3년 후인 1908년 4월 신도가 30여명으로 늘자 마을 사람들과 함께 27평짜리 ㄱ자 기와집인 교회당을 짓게 되었다. 이 땅에 기독교가 전래된 초기에 이같은 ㄱ자 예배당은 적지않이 세워졌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모두 사라졌고, 온전하게 남은 것은 금산교회가 유일하다. 교회의 전체적인 골격은 모악산 너머 배재(梨峴)에 있던 전주 이씨의 재실(齋室)을 옮겼다고 한다. 양반 집에서 조상 제사를 지내던 재실을 뜯어다 ‘하느님의 성전’을 지은 것이다.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재림때 영원한 하늘의 장막에 들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머물던 거룩한 공간으로 삼았던 것”(이덕주 목사)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이 ㄱ자 예배당은 전형적인 중부지방 단층 고패집 형태를 띠고 있다. 다만 남북향 다섯칸 집의 북쪽 모서리 동쪽에 두 칸을 이어붙였다. 홑처마의 지붕은 처음엔 초가로 올렸으나 1920년대 함석지붕으로 바꿨다가 광복 후 지금의 시멘트 기와로 올렸다. 남쪽과 동쪽의 출입문은 여닫이 격자무늬 종이문. 통마루 바닥에 올라서면 천장이 그대로 드러나고 칸막이 없는 시원한 통간 건물에 가슴이 확 트인다. 조금씩 휜 소나무를 다듬어 대들보와 종보로 썼는데 천장을 받치는 큰 기둥 없이도 아주 안정되게 느껴진다. ●ㄱ자형 건물은 ‘남녀 7세 부동석´ 유교전통 반영 건물을 ㄱ자형으로 지은 것은 역시 ‘남녀 7세 부동석’이라는 당시의 유교 전통을 반영한 것. 그 때문인지 내부는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남북방향의 강당 끝 모서리에 강대상이 있고 그 강대상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만 남녀석을 번갈아 볼 수 있었다. 강단의 좌측에는 여신도들이, 정면에는 남자들이 앉도록 구분해 남자석과 여신도 좌석 사이에 흰 포장을 쳤던 것이다. 강단 오른쪽 바깥 귀퉁이에 지금도 서있는 기둥은 바로 이 포장을 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출입문도 남쪽과 동쪽에 각각 따로 내어 남녀 신자들의 출입을 구별했다. 주일대사를 지낸 조세형 장로는 이 교회를 세운 조덕삼의 친 손자. 조 장로는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갈 때마다 교회 입구에 이르면 어머니 손을 놓고 아버지와 함께 남자석에 들어가 앉던 기억이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포장(차단막)은 1940년대에 가서야 걷혔다고 한다. 남자석 천장의 상량문(한문 성경 고린도후서 5장 1∼6절)과 여자석 천장의 상량문(순한글 고린도전서 3장 16∼17절)도 각각 다르게 썼다. 당시 최의덕 목사를 비롯한 교회 건축자들이 ‘남녀7세 부동석’의 습속을 외면했다면 금산교회는 핍박받아 지금까지 지속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최의덕 목사가 이곳에 정착할 무렵 전주 등 인근 지역 유생들은 돌팔매를 하며 교회 건립을 방해했다고 한다. ●목사 드나드는 쪽문, 예수탄생 성당과 닮아 강단 뒤쪽으로 목사들만 드나들 수 있는 작은 쪽문을 낸 것도 독특하다. 문을 통과하기 위해 몸을 숙여야 하는 구조인데 목회자들은 이 문을 드나들면서 ‘겸손’을 되뇌고 실천하지 않았을까? 베들레헴의 예수탄생 성당에서 문을 넘기 위해 제아무리 높은 신분이라도 말을 내려 허리를 깊게 숙여야 통과할 수 있도록 한 것과 닮아있다. 북서쪽 모서리에 있는 5평 규모의 강단은 2단 구조이지만 결과적으로 3층 구조. 한국 전통의 제단을 연상케 하지만 ‘뜰, 성소, 지성소’로 이루어지는 성막의 3중 구조를 상징하고 있는 셈이다. 6·25전쟁 기간엔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쓰였으며 얼마전까지도 교회당 창틀에 ‘인민군 만세’‘공화국 쟁취’같은 연필 글씨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 좌익 활동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88년 ㄱ자 예배당 바로 옆 789평 부지에 벽돌 예배당을 새로 지어 현재 40명 정도가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1986년 첫 시무지로 금산교회를 택해 부임한 뒤 담임을 맡아온 이인수 목사는 “금산교회의 교회당은 일제가 교회당을 폐쇄했을 때도,6·25전쟁통에 마을이 온통 불바다가 됐을 때도 전혀 훼손되지 않은 채 원형을 유지했으며 숱한 철거논란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기적같이 여겨진다.”고 말했다. kimus@seoul.co.kr ■ ‘작고도 큰 교회’에 얽힌 이야기 금산교회가 초기 ‘ㄱ자’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귀중한 신앙유산을 넘어 ‘작고도 큰 교회’로 통하는 것은 이 교회를 세운 조덕삼과, 한국 개신교사상 유례없이 장로회 총회장을 세 번(1924,1947,1948년)이나 역임한 이자익 목사에 얽힌 이야기 때문이다. 이자익 목사는 장로교법과 회의록을 줄줄 외울 정도로 암기력이 뛰어나 장로교 ‘법통’으로 칭송받는 전설적인 인물. 그는 다름아닌 조덕삼의 집에서 머슴으로 일하던 마부였다. 소학교도 변변히 다니지 못한 학력이지만 마부로 일하면서 틈틈이 독학했으며, 최의덕 목사를 통해 주인인 조덕삼과 비슷한 시기 나란히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이자익은 원래 1882년 경남 남해의 가난한 농가 출신.9살에 아버지,12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친척집을 떠돌다가 17살에 행상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전주에서 행상에 실패한 뒤 김제 금산의 대지주인 조덕삼의 집에 들어가 머슴살이를 시작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1905년 10월 나란히 세례를 받아 성찬예식을 가졌는데 이 의식은 금산교회가 공식으로 출발하는 시초로 인정되고 있다. 놀랄 만한 것은 머슴이었던 이자익이 주인인 조덕삼에 앞서 장로가 되었다는 사실. 금산교회는 1908년 교인이 100명 정도로 불어나자 교인들의 투표를 통해 장로를 선출하게 되었는데 조덕삼이 떨어지고 대신 머슴인 이자익이 선출되었던 것. 반상을 엄하게 따지던 당시로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금산교회 당회록에 따르면 조덕삼은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되자 신도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나는 이 결정에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집에선 주인과 마부였지만 교회에서는 장로와 평신도의 입장에 섰던 두 사람이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덕삼은 선배 장로인 이자익 장로를 1910년부터 5년간 평양신학교에 유학시켜 금산교회의 담임을 맡겼다. 물론 그때까지 이자익 목사의 모든 뒷바라지를 했던 것은 조덕삼이었다.1908년 사재를 털어 교회를 건축한 조덕삼은 유광학교를 설립, 지역 청소년 교육사업에 나서기도 했는데 이 유광학교는 당시 한글을 비롯해 한국역사며 성경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금산교회는 처음부터 상반(常班)이 함께 어울리는 민중교회로 출발했던 셈이다. 이후 금산교회는 조덕삼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조영호 장로에 의해 지탱돼 왔으며 조부와 선친의 뒤를 이어, 주일대사를 지낸 조세형씨가 장로로 피택됨으로써 한집안에서 드물게 세명의 장로를 탄생시켰다.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부고]

    ●권순일(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씨 부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3010-2238●홍사목(남서울합동관세사무소 대표관세사)씨 별세 영선(남서울합동관세사)종선(성균관대 교수)계선 경선(군산대 교수)씨 부친상 박옥희(군산대 교수)이선희씨 시부상 최차랑(사업)김진홍(광성캔바스 부사장)조상휘(로템 이사)씨 빙부상 5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6시 (02)590-2540●이종택(영화종합기술단 건축사무소 이사)종신(스포츠서울 광고영업소 대표)씨 부친상 박덕진(농심 마케팅본부장)박춘배(경찰공무원)정영교(캐나다 거주)전종우(GS건설 과장)씨 빙부상 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7일 오전 6시30분 (02)3410-6914●손기헌(서강대 부교수)정숙(디자인스톰 대표)용헌(용인초등학교 교사)씨 부친상 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10시30분 (02)3410-6912●송원기(전 외환은행 안양지점장)준기(세명대 경영학과 교수)씨 모친상 박현덕(삼성정밀화학 연구소장)씨 빙모상 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3410-6918●한상윤(광주성결교회 원로목사)씨 별세 희(청주성산교회 목사)씨 부친상 이정희(CBS 보도국 부장)임광호(수원성결교회 부목사)씨 빙부상 6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31)787-1502●장욱(부산대 교수)씨 모친상 송미령(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씨 시부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6시 (02)3410-6908●김진호(전국재해구호협회 사무총장)씨 모친상 5일 서울대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2072-2027●홍기삼(YMCA 스포츠댄스강사)기인(사업)기선(홍신경정신과 원장)씨 모친상 서진환(도코코리아 대표)씨 빙모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3010-2252●김용훈(한국자산관리공사 종합기획부 팀장)형수(삼진건축사사무소 대리)씨 부친상 신이억(사업)오용훈(한국산업기술재단 팀장)씨 빙부상 5일 경희의료원, 발인 7일 오전 6시 (02)969-8699●이용흠(전 대한세라믹 전무)씨 별세 회연(조일산업 대표)연택(핫파이버 사장)상연(정우산업 대표)기홍(핫파이버 부사장)옥순 배순 배심씨 부친상 민경일 박병모(전남일보 편집국장)김학현씨 빙부상 5일 광주 조선대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 (062)231-8901●권해주(아이뉴스24 경제팀 기자)씨 조모상 5일 서울 보라매병원, 발인 7일 오후 1시30분 (02)841-7652●표명중(바스켓 퀸 기자)씨 빙부상 5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92-2899●김성진(경광 대표이사 회장)용우(경광물산 대표)용태(케이. 엠. 씨 〃)씨 모친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92●김재홍(킹제이엔터테인먼트 차장)송(연예인)씨 모친상 강원래(연예인)씨 빙모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2)3010-2263●민용태(고려대 교수) 용재(재 멕시코) 용일(전남대 의대 교수)씨 부친상 6일 전남대병원, 발인 8일 오전 10시 (062)220-698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