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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랑스런 한국인’ 최고대상 원희룡 지사

    ‘자랑스런 한국인’ 최고대상 원희룡 지사

    한국언론인연합회(회장 이상열)가 15일 ‘2015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최고대상(행정혁신 부문)에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종합대상(교육발전 부문)에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을 선정하는 등 총 13개 부문 수상자를 발표했다. 시상식은 오는 21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1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부문별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문화예술: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선교봉사:강은숙 새생명축복교회 목사 ▲신약개발:김국현 이니스트에스티 대표이사 ▲인재육성:문상주 비타에듀그룹 회장 ▲국제나눔봉사:신세용 국제아동돕기연합 이사장 ▲여성권익:이금자 경기도여성단체협의회 회장 ▲국악예술: 이호연 국악인 ▲음악예술:임지영 바이올리니스트 ▲국위선양:진안순 지니코프 회장 ▲건설발전:최상준 남화토건 대표이사 부회장 ▲지식산업:홍의숙 인코칭 대표이사.
  • [부고]

    ●지일환(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씨 별세 건병(액시스그룹 대표)씨 부친상 14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2258-5940 ●박준(전 산업은행 부총재)씨 별세 형(엠플러스자산운용 본부장)씨 부친상 장현준(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씨 장인상 1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20 ●하재민(삼성디스플레이 IT개발팀 부장)씨 모친상 홍현석(평화엔지니어링 부사장)씨 장모상 14일 원자력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970-1550 ●류한호(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씨 부친상 14일 전북대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63)250-2450 ●김상철(노무현재단 사료연구센터 본부장·전 한국기자협회보 기자)씨 모친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7시 (02)3010-2294 ●임일영(송곡고 교무부장·서울교총 중등수석부회장)기영(대우건설 상무보)씨 모친상 이재일(목사)씨 장모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5시 40분 (02)3010-2231 ●이동우(전 충남도지사·전 농림수산부 차관)씨 별세 상욱(맥쿼리은행 상품금융본부 한국대표)상헌(LG유플러스 팀장)씨 부친상 김문환(주에티오피아 대사)씨 장인상 14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31)787-1502
  • [부고]

    ●김원식(코스닥협회 상근부회장)원철(관악경찰서 경감)씨 부친상 13일 전남 광양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10시 30분 (061)761-5500 ●강호철(조선일보 스포츠부 차장)씨 부친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5시 30분 (02)3010-2292 ●황보은(인천일보 사장)씨 모친상 13일 인하대병원, 발인 15일 오전 6시 30분 (032)890-3191 ●이수재(전 군산간호대 교수)경재(전북일보 수석논설위원)금희(국민권익위원회 주무관)씨 부친상 박종술(대한적십자사 재난안전국장)씨 장인상 조형자(전 전주덕일초 교사)정인옥(김제황산초 교감)씨 시부상 13일 전주 모악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9시 30분 (063)221-4044 ●박지용(자영업)태용(피앰아이 이사)성용(서강대 교수)씨 모친상 임돈우(세림소아과 원장)씨 장모상 13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5일 오전 10시 (02)2227-7594 ●김원태(중앙일보·JTBC사우회 회장)학태(미국 거주)연태(우리교회 담임목사)씨 모친상 박연규(륭희건설 고문)최석태(춘태학원 이사장)최덕(명지대 물리학과 교수)씨 장모상 1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5일 오전 9시 (02)2227-7597 ●이동보(전 코오롱TNS 회장)씨 모친상 박성기(전 한국바이린 회장)허영인(SPC그룹 회장)씨 장모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 30분 (02)3010-2230
  • [부음] 지일환(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씨 별세 외

    ●지일환(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씨 별세, 상현·건병(액시스그룹 대표)씨 부친상 = 14일 오전,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실, 발인 16일 오전 8시, (02) 2258-5940●장연순씨 별세, 김상철씨(전 한국기자협회보 기자, 노무현재단 사료연구센터 본부장) 모친상 = 13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4호실, 발인 16일 오전 7시, 02-3010-2294●김말례씨 별세, 김원태(중앙일보·JTBC사우회 회장)·학태(재미)·연태씨(우리교회 목사)모친상, 박연규(륭희건설 고문)·최석태(춘태학원 이사장)·최덕씨(명지대물리학과 교수)장모상=11일 오후 10시45분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4호실, 발인 15일 오전 9시, 02-2227-7597●김장권(한국자산관리공사 자산인수기획부 팀장)씨 모친상 = 13일 오후 7시40분 별세, 일산복음병원 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11시, (031) 977-6000●류충현씨 별세, 류한호(광주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씨 부친상 = 14일 오전,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층 천실, 발인 16일 오전 8시. 063-250-2450
  • [인사]

    ■건국대 ◇글로컬캠퍼스△의료생명대학장 임병우 ■삼성전자 ◇보직이동 <부사장>△생활가전 전략마케팅팀장 박재순△무선 글로벌제조센터장 장시호△무선 소프트웨어센터 부센터장 조승환△네트워크 전략마케팅팀장 박동수△상생협력센터장 주은기△메모리 플래시개발실장 경계현△메모리 솔루션개발실장 정재헌△기흥화성단지총괄 겸 메모리 제조센터장 정재륜△메모리 품질보증실장 최정혁△메모리 S.LSI LSI개발실장 장덕현△LED 사업팀장 한우성<전무>△아프리카총괄 김유영△네트워크 개발팀장 김창흥△생활가전 개발팀장 이재승△메모리 TD실장 이규필 ■삼성자산운용 ◇본부장 승진△산재보험기금운용본부 김성희△채권운용본부 유영재 ■대우건설 ◇승진 및 신규 보임 <부사장>△플랜트발전부문장 홍기표<전무>△경영지원본부장 소경용△해외인프라사업본부장 성현주△RM본부장 양혜석△MENA지원본부장 김남철△전략기획본부장 이훈복△기술연구원장 박용규△HSE-Q본부장 서병운△건축사업본부장 김창환△주택사업본부장 양동기△토목사업본부장 지홍근△발전사업본부장 백종현<상무>△글로벌관리본부장 김상렬△외주구매본부장 서복남△플랜트사업본부장 김영후△경영진단실장 조성진◇상무 승진△장윤섭 은희범 조찬형 유동규 김원호 김재호 장승규 정영수 윤정남 김성환 서대석 ■현대백화점 ◇승진 <전무>△본점장 나명식△영업전략실장 정지영<상무갑>△경영지원본부 재무담당 박민희△상품본부 패션사업부장 장교순△무역센터점장 이재실△목동점장 이채식<상무을>△영업전략실 회원운영·관리담당 김광수△신촌점장 안용준△상품본부 해외·잡화사업부장 유태영△대구점장 이인영△기획조정본부 인재개발원장 장영순△기획조정본부 미래전략팀장 윤영식△기획조정본부 사업개발팀장 김창섭<상무보>△킨텍스점장 장진영△중동점장 권태진△상품본부 미래MD전략사업부장 김해곤△기획조정본부 투자기획팀장 이종근◇전보 <상무을>△천호점장 이헌상△상품본부 식품사업부장 홍정란<상무보>△미아점장 노성렬△아울렛사업부장 김동건<부장>△상품본부 리빙사업부장 문삼권 ■현대홈쇼핑 ◇승진 <상무을>△고객만족사업부장 장길남△Hmall사업부장 한광영△패션사업부장 겸 트렌드사업부장 김종인<상무보>△중국사업부장 강윤기◇전보 <상무갑>△생활사업부장 정병호 ■현대그린푸드 ◇승진 <상무보>△유통사업부장 황철환△C&S푸드 김형욱 ■현대HCN ◇승진 <상무갑>△부산·포항지역담당 최익환<상무을>△PP사업부장 김성일<상무보>△대구·경북지역담당 고상환◇전보 <국장>△전략기획실장 오창호 ■현대H&S ◇승진 <상무을>△영업담당 김태수<상무보>△관리담당 겸 현대렌탈케어 지원본부장 민정기 ■한섬 ◇승진 <상무을>△경영기획실장 겸 전략상품사업부장 이종호 ■현대리바트 ◇승진 <상무을>△B2C사업부장 이영식△영업전략사업부장 엄익수<상무보>△생산사업부장 장선기 ■대유그룹 ◇대유에이텍 <이사 승진>△설계담당 유선웅<이사대우 승진>△화성시트사업부장 김현태◇대유위니아 <상무 승진>△생산본부장 최성준<이사 승진>△R&D센터장 장부백<이사대우 승진>△MassComm.팀장 김만석◇위니아서비스 <상무 승진>△대표이사 남동법◇대유신소재 <상무 승진>△중앙연구소장 홍찬호△완주공장장 홍종은<이사대우 승진>△품질팀장 정인택◇대유글로벌 <부사장 승진>△대표이사 권완중<이사 승진>△품질설계담당 박희권<이사대우 승진>△영업원가팀장 김동균◇대유서비스 <이사 승진>△공장장 최현주◇스마트저축은행 <이사대우 승진>△경영관리부장 정연삼◇동강홀딩스 <이사대우 승진>△경영관리팀장 김현수
  • ‘대동단결선언문서’ 등 문화재 등록… ‘고종황제 하사 족자’는 등록 예고

    ‘대동단결선언문서’ 등 문화재 등록… ‘고종황제 하사 족자’는 등록 예고

    문화재청은 ‘대동단결선언문서’와 ‘대한국야소교회 대표자 호소문’을 문화재로 등록하고, ‘고종황제 하사 족자’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8일 밝혔다. ‘대동단결선언문서’는 신규식, 박용만, 조소앙 등 해외 독립운동가 14명이 1917년 7월 국내외 민족 운동가들에게 ‘통합적인 독립운동조직 결성을 위해 민족대회를 소집하자’고 보낸 한글과 한문으로 된 문서다. ‘대한국야소교회 대표자 호소문’은 1919년 5월 1일 손정도 목사 등 한국 기독교계 대표 11명이 ‘만국 예수 교우에게’라는 제목의 한글 편지를 작성한 후 영문으로 번역한 호소문이다. 일제의 능욕과 악행이 계속되지 않도록 전 세계 기독교도의 지지와 지원을 당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종황제 하사 족자’는 19세기 말 정부(대한제국)가 고종 주치의였던 에비슨(1860~1956)에게 하사한 족자다. 에비슨은 캐나다 출신 의료 선교인으로, 1893년 8월 말 서울에 도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종의 피부병을 치료한 인연으로 주치의가 됐고 이후 10년간 왕실 주치의로 활동했다. 문화재청은 “이 족자는 국왕과 정부가 서양 의술의 탁월함을 인정한 기록물인 데다 에비슨의 후손들에 의해 기증된 환수 문화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데스크 시각] 윤길중 전 국회부의장과 임은정 검사/문소영 사회2부장

    [데스크 시각] 윤길중 전 국회부의장과 임은정 검사/문소영 사회2부장

    ‘마당에 꽃 떨어지니 가련하여 못 쓸겠고, 창밖에 달빛 밝으니 너무 좋아 잠 못 이룬다.’ ‘화락정전련불소 월명창외애무면(花落庭前憐不掃, 月明窓外愛無眠’)이란 한시가 적힌 글씨 한 폭을 선물받은 것은 1997년 겨울이었다. 낙화에 마음이 애달프고, 달빛에 취해 잠 못 이룰 정도이니 사춘기의 여학생 같지만, 이 한시를 쓴 주인공은 그해 81세인 ‘노회한 정치인’ 윤길중 전 국회부의장이었다. 1916년 함경남도 북청 출생으로 2001년 유명을 달리한 윤 전 국회부의장의 행적을 돌아보면 오욕의 역사에 적응한 지식인의 서글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이른바 ‘정치 철새’나 ‘진보 인사의 변절’도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윤 전 국회부의장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수재였다. 경성대 법대와 일본대 법과 재학 중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 각각 합격해 강진군수·무안군수로 재직했고, 조선총독부 사무관으로도 일했다. 해방 후 국민대 교수로 옮기고서 그는 제헌국회의 법제조사국 국장 등을 한다. 1950년대 무소속으로 제2대 민의원(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956년 조봉암의 진보정당 창당에 참여해 간사장 등을 맡았다. 1958년 1월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됐지만 1년 뒤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4·19 민주혁명으로 1960년 사회대중당을 결성해 그해 7월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됐다. 그 1년 뒤에 5·16 군사쿠데타로 그는 혁신계 정치인과 함께 감옥에 가 1968년 4월까지 7년간 복역했다. 박정희 정권의 삼선 개헌 반대를 한 그는 1971년 야당 신민당 소속의 제8대 국회의원이 됐다. 야당 의원에서 여당으로의 전환은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이 계기다. 1980년 12월엔 민주정의당 발기인이 돼 11대, 12대, 13대에 내리 민정당 3선 의원을 지냈다. 그 덕에 11대 국회 하반기에 국회부의장이 됐고, 3당 합당으로 민자당 상임고문도 했다. 국회를 ‘행정부의 거수기’라고 비웃던 시절 탓인지 국회부의장을 지낸 그를 ‘붓글씨를 잘 쓰는 정치인’이라고 야박하게 평가했다. 까맣게 잊었던 ’윤길중’을 최근 ‘임은정 검사의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 사건’ 덕분에 떠올렸다. 임 검사는 2012년 12월 윤길중 진보당 간사의 재심 사건에 대해 ‘무죄 구형’을 했다. 임 검사는 앞서 같은 해 9월 ‘박형규 목사의 민청학련 재심 사건’에서도 ‘무죄 구형’을 했다. 검찰 수뇌부는 ‘윤길중 재심 사건’에서 임 검사에게 ‘백지 구형’을 요구했다. 백지 구형은 법원의 판사가 법과 원칙대로 선고하라는 의미이고, 무죄 구형은 검사가 소신껏 죄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니, 아주 다른 선고를 가져올 수도 있다. 검찰은 이것을 문제 삼아 임 검사에게 정직 4개월 처분을 했다. 임 검사는 취소 소송을 내 1·2심에서 모두 이겼다. 3년 전의 ‘괘씸죄’는 여기서 끝나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법무부가 임 검사를 검사적격심사 대상 7명 중 하나에 포함해 놓아 여론을 집중시키고 있다. 임 검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느낌이다. 의연하게 대응하겠다. 저는 권력이 아니라 법을 수호하는 대한민국 검사”라고 했다. ‘공안 검찰의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온통 붉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임 검사가 ‘무죄 구형’을 한 윤길중이란 인물은 ‘종북 빨갱이’가 아니라 현재 여당인 새누리당·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민자당 국회의원이자 민정당 몫으로 국회부의장을 지낸 인물이다. 다스 베이더의 “내가 네 아비다”라는 확인이 필요한 시절인가. symun@seoul.co.kr
  • 감리교단 선거 파행 되새긴 백서 발간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감독회장 전용재 목사)가 교단 감독회장 선거 파행의 역사를 총정리한 백서를 펴내 개신교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감리교 개혁을 말하다’라는 제목의 백서는 7권, 총 5500여쪽에 달한다. 선거를 둘러싸고 교단 안팎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를 집대성했으며 감독회장 선거로 빚어진 각종 소송전의 내용과 관련 판결문을 비롯해 회의록, 언론기사까지 담았다. 기감은 2008년과 2013년 감독회장 선거가 혼탁하게 치러지면서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이른바 ‘감리교 사태’가 벌어진 8년에 걸쳐 감독회장 당선 무효판결이 세 번이나 나왔다. 이에 따라 임시감독회장·직무대행 체제가 등장하는가 하면 ‘총회 무효 사태’가 무려 다섯 차례 발생하는 등 개신교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이 기간 동안 교회 재판 6건, 사회재판 58건 등 총 106건의 재판이 진행돼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한편 백서 발간을 기념해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학술 심포지엄에서는 ‘감리교 사태’에 대한 진단과 함께 감리교단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박민용 협성대 총장은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거나 과거와 끊임없이 대화하지 않는다면 감리교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형석 남서울대 교수는 “한국 감리교회는 경쟁과 갈등의 공동체가 아니라 평화와 공생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문했고, 고성은 목원대 교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 ‘감독회장’이라는 호칭을 없애고 섬김과 봉사의 의미가 담긴 새로운 호칭을 고민했으면 한다”고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2012∼2013년 기감 임시감독회장을 지낸 김기택(서울 성천교회 원로) 목사는 특히 “감리교단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마땅하다”면서 “감리회 사태로 상처 입은 당사자들을 한자리에 초청해 위로, 화합하는 통합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산하 한국교회언론연구소 세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산하 교회들은 오는 14일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에서 한국교회언론연구소를 창립한다. 연구소는 다변화된 언론 상황을 조사하고, 향후 변화를 분석한다. 발기인 총회에서는 임은빈 동부제일교회 목사가 이사장으로 선임된다. 이번 연구소 설립과 추진 업무는 이성희 연동교회 목사, 이순창 연신교회 목사, 신정호 전주동신교회 목사, 이흥식 평산교회 목사 등이 맡았다. 연합뉴스
  • ‘2018년 종교인 과세’ 기재위 통과

    여야는 3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18년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를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예산안 부수법안’으로 지정돼 2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상정된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가 2018년 시행된다. 1968년 국세청이 종교인에게 근로소득세를 부과하려다가 종교단체 반발로 무산된 지 50년 만에 과세가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다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의원들이 종교인 과세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어 본회의에서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정안은 종교인 소득을 ‘기타소득 사례금’에서 ‘기타소득 중 종교 소득’으로 법률에 명시하고, 학자금·식비·교통비 등 실비변상액을 비과세소득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소득이 많은 종교인에게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한 ‘차등 경비율’도 도입됐다. 소득에 관계없이 무조건 80%를 필요경비로 인정하던 것과 달리 소득 구간에 따라 4000만원 이하는 80%, 4000만원 초과∼8000만원은 60%, 8000만원 초과∼1억 5000만원은 40%, 1억 5000만원 초과는 20%만 인정하는 식이다. 일각에서는 과세 시기가 내년이 아닌 ‘2년 유예’로 결론 나면서 ‘시간 연장책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예전과 달리 소득세법을 개정하는 방식을 채택했고 종교인들의 과세 반대 명분을 개정안에 담았다는 점이다. 지난해는 소득세법 시행령(기타소득의 사례금)에 근거해 밀어붙였다가 종교계와 정치권 반발로 실패했다. 이번 개정안은 소득에서 의무적으로 원천징수하는 대신 종교단체가 원천징수와 자진 납세를 선택하도록 했다. 수입의 20∼80%를 필요경비로 인정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근거도 마련했다. 종교계는 2년 유예 기간 동안 종합적인 의견 수렴을 통해 시행에 논란이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교회교단연합 과세대책위원회 사무총장인 박종언 목사는 “성직자의 생활비는 종교별로 성격과 수준이 다른 만큼 재논의를 거쳐 실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60세 목사, 44세·19세 부인과 결혼해 한집 살림

    60세 목사, 44세·19세 부인과 결혼해 한집 살림

    60세 목사가 40대 부인 외에 19살 여성과도 결혼해 한 집에 사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에 올랐다. 최근 미국 뉴욕포스트 등 현지언론은 오하이오주 맨스필드에 사는 크리스찬 목사인 톰 밀러(60)의 사연을 전했다. 현지에서 교회를 운영하며 교도소 수감자들을 상대로 목회 활동을 하는 그는 최근 두번째 부인을 맞아들였다. 이 여성의 이름은 올해 19세에 불과한 레바 커푸트루바. 놀라운 사실은 밀러 목사에게는 이미 8년 전 결혼한 벨린다(44)라는 이름의 부인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이들이 모두 모여 한 집에 산다는 것, 또한 두번째 부인이 현재 밀러의 아이를 임신 중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져 놀라움을 넘어 충격까지 주고있다. 두번째 부인인 레바는 "유부남과 결혼해 산다는 것을 당연히 옳지않다고 느꼈다" 면서 "주위에서도 미친짓이라는 말들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한 남자를 다른 여자와 공유한다는 사실에 화도 났다" 면서도 "지금은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하다. 태어날 아기도 두명의 엄마를 갖게될 것" 이라며 기뻐했다. 첫째 부인인 벨린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녀는 "어린시절의 레바를 보고 몇 년 만에 다시 봤는데 훌륭한 숙녀로 성장했더라" 면서 "꼭 안았을 때 우리 가족의 일부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주 법으로는 허용되지 않지만 두 부인을 갖게된 밀러는 현재의 삶 만큼이나 과거도 범상치 않다. 마피아 조직원으로 폭력을 행사하다 7년 수형 생활 중 종교에 귀의한 것. 밀러는 "우리 가족을 위한 큰 집을 짓고있는 중" 아라면서 "우리 세사람 모두 현 상황이 너무나 완벽하다고 느끼며 행복해 하고있다"고 밝혔다.         사진=Top photo/Barcroft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하버드 학생들은 더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강주헌 옮김, 사회평론 펴냄) 청소년 때까지 인도에서 과학기술 등 실용학문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공부한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로 유학 온 뒤 혁신적인 인문학의 세례를 받으며 창의력과 상상력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감했다. ‘포린어페어스’ 최연소 편집장, ‘뉴스위크’ 편집장 등을 지낸 저자는 자신이 공부하던 때와 달리 인문학과 교양교육을 외면하고 있는 지금의 미국 사회에 대해 통렬히 비판한다.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면서 인문학이 외면받고 있지만 그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문학의 역할과 중요성은 다시 복원돼야 함을 역설한다. 창의력과 수평적 사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함양은 인문학 공부를 통해 가능하다는 얘기다. 248쪽. 1만 3000원. 바다맛 기행2(김준 지음, 자연과생태 펴냄) 넓은 바다에서 펄떡거리다 어부의 그물에 걸려 우리네 밥상까지 올라온 고등어, 삼치, 꽃게, 도루묵, 꼬막, 조기 등에 대한 맛깔난 얘기들을 풍성히 차려 냈다.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해야 한다)이라고 했던가. 광주전남연구원 연구위원인 저자는 그저 맛있는 바다 것의 재료와 조리법 등으로 침샘 고이게 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온 힘을 다해 제 생을 살아가던 생명체의 생태와 역사를 함께 기록하며 고마운 존재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는다. 또한 흔들리는 뱃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물을 끌어올리고, 저물도록 갯벌을 헤매며, 폭락하는 갈치값에 눈물을 펑펑 흘리는 어촌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소개한다. 한 그릇 밥은 이렇듯 치열한 삶의 결과물이다. 288쪽. 1만 6000원. 짧은 느낌, 긴 사색(정진홍 지음, 당대 펴냄) 서울대 명예교수인 원로 종교학자는 일반인은 물론 학자들의 글이 점점 짧아지는 경향은 사색이 아닌 느낌만을 필요로 하는 세태의 반영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불필요하게 글을 질질 끄는 일 역시 논리적 결함, 지식 부족 등 치부를 가리기 위한 교묘한 의도일 수 있다. 저자는 느낌이 아무리 쉽고 편해도 이를 넘어서야 하고, 아무리 사색이 지루하고 힘들어도 이를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삶이 간결할 수 없기에 글 또한 길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꺼내며 자신이 스스로 ‘악문의 전형인 만연체 글’을 썼다고 자조한다. 철학의 도저한 주제인 죽음과 함께, 학문을 한다는 것, 일상의 삶, 종교 등 사색의 구체적인 방향을 묵직한 질문과 함께 던진다. 355쪽. 1만 4000원. 해외문견록(송정규 지음, 김용태·김새미오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조선 숙종 때 관료로 제주목사를 지낸 송정규(1656~1710)가 관아에 보관돼 있던 기록과 자신의 견문을 바탕으로 제주에서 발생한 표류 관련 사실 등을 정리한 책이다. 상업과 통상 교역, 선박 제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구휼제도, 도량형, 조세제도 등에 깊은 관심을 드러낸 송정규는 학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18세기 본격적인 실학파가 등장하기 전 실학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단순히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실리라는 뚜렷한 목적을 지향했다. 해양 진출 관문 역할을 하는 제주에서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동아시아 일대의 사회·경제제도, 선박과 무기의 제작 방식 등 외지의 문물을 배우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256쪽. 1만 5000원. 내 친구 마로1, 2(김홍모 그림, 보리 펴냄) 사고로 아빠와 엄마를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초등학교 5학년 예빈이는 씩씩하지만 아빠,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늘 가시지 않는다. 일찍 들어오라고 퇴근을 재촉한 자기 탓에 아빠가 사고를 당했다는 자책감도 마음 한구석에 깊은 생채기로 자리잡고 있다. 예빈이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마법의 친구 마로를 만나고, 이 부숭부숭한 털에 엄벙덤벙한 성격의 덜렁이 친구의 도움을 받아 시간 여행을 떠난다. 시공간을 넘나든 예빈이의 여행은 고스란히 치유와 위로의 여행이다. 어린 아빠, 엄마를 만나고 결혼하기 전 풋풋한 처녀, 총각 시절의 아빠와 엄마를 만난다. 흥미진진한 모험 뒤에 돌아온 예빈이는 이미 한 뼘 더 훌쩍 자라 웅숭깊어졌다. 1권 152쪽, 2권 160쪽. 각 권 1만 2000원.
  • ‘아름다운 이화인상’ 남미 의료선교 25년 외길 오주엽원장

    ‘아름다운 이화인상’ 남미 의료선교 25년 외길 오주엽원장

    올해 ‘아름다운 이화인상’에 오주엽원장이 뽑혔다.이화여자대학교 총동창회(회장 김영주)는 제11회 ‘아름다운 이화인상’ 수상자로 남미지역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해 지난 25년간 의료선교에 헌신해온 오주엽(59, 의학과 81년 졸업) 페루 ‘선한 사마리아인 진료센터’ 원장을 선정했다. ‘아름다운 이화인상’은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오랫동안 섬김과 나눔의 이화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이화여대 동창을 발굴해 주는 상이다. 올해 수상자인 오주엽 동문은 칠레의 오지 원주민들과 페루의 도시 빈민들을 위해 25년간 의료 봉사와 교회 사역, 교육을 꾸준히 하며 나눔, 섬김, 헌신의 이화 정신을 몸소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오 동문은 1981년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부산 일신 기독병원에서 산부인과 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남편 김명수 목사와 함께 남미 칠레와 페루지역의 선교사로 파송되어 34세부터 예순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의료선교사로 헌신해오고 있다. 1990년 처음 칠레에 도착한 오 동문은 콘셉시온과 산티아고 지역에서 교회 및 신학교 사역에 참여하고, 산티아고에서 700km 떨어진 테무코시에 설립된 기독병원 원장을 맡아 본격적인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의료혜택이 닿지 않는 칠레 구석구석의 소외된 이들을 위해 병원을 매각하고 이동진료버스를 마련해 ‘찾아가는 의료봉사’를 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동병원’이라고 이름 붙은 이동진료 차량은 수십km를 달려 매월 20여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특히 40만명에 달하는 칠레 인디오인 마푸체 부족에게 이동진료 방문은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였다. 오 동문은 단순한 진료를 넘어 농촌 건강요원 양성, 교회지도자 및 자원봉사자 교육 등을 함께 진행해 현지인 스스로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오주엽 동문은 “아름다운 이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며 “기독교인이자 선교사로서 이화대학을 세운 선교사의 뜻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일을 하게 되어 기쁘고, 앞으로도 많은 아름다운 이화인들이 전세계에서 이화의 정신을 빛내주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시상식은 30일 오후 6시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개최하는 ‘이화인의 밤’ 행사에서 열린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전국이 다 내 고향”… 생전 뜻 따라 고향 흙 대신 마사토 뿌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오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불꽃처럼 타올랐던 88년 인생의 마지막 육신은 장군 제2묘역 우측과 장군 제3묘역 왼쪽 능선에 자리잡았다. 2012년 차남 현철씨가 지관인 황영웅 영남대 교수와 함께 둘러보고 정해둔 곳으로, 풍수지리상 봉황의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발인 예배는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가 집전했으며 유족과 김수한 전 국회의장, 김덕룡 전 의원 등 측근, 정관계 인사 100여명이 함께했다. 40분에 걸친 발인 예배 후 조문은 정오까지 이어졌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관을 실은 검은색 링컨 리무진과 유족, 장례식 참석 인사들을 태운 버스들이 국회로 이동했다. 영결식을 마치고 국회를 떠난 운구 차량은 오후 4시 10분쯤 서울 상도동 사저를 들렀다. 동네 주민 100여명은 골목 입구에서부터 도열해 눈시울을 붉히거나 휴대전화 사진을 찍으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라고 쓰인 검은 플래카드도 내걸렸다. 장손 성민씨가 영정을 들고 약 5분간 집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장남 은철씨 등 직계가족 15명이 뒤를 따랐다. 현관 복도를 지나 왼쪽 안방, 맞은편 식당을 지난 영정은 고인이 손님을 맞이했던 거실에서 제자리로 한 바퀴를 돌았다. 거실 벽면 가운데는 고인이 직접 쓴 ‘송백장청’(松栢長靑) 휘호가 걸려 있었다. 1969년 성북구 안암동에서 거처를 옮긴 이래 고인이 46년간 거주했던 상도동 자택은 고인은 물론 주변인들에게 단순한 집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민주화 운동의 거점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과 함께 민주화 논의의 성지였다. 고인이 차량 초산 테러를 당했던 곳도, 23일간 가택연금을 당했던 곳도 이곳이었다. 이어 운구 행렬은 자택에서 500m가량 떨어진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앞을 지났다. 생전의 김 전 대통령이 “매일 출퇴근하고 싶다”고 되뇌었다던 곳이다. 방향을 튼 운구 차량은 당초 예정 시간인 오후 4시보다 40분 늦게 동작구 사당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마지막 의식은 국군 의장대의 받들어총, 조악 연주와 함께 시작됐다. 충혼당 앞에서 열린 안장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 헌화·분향, 운구, 하관, 흙을 관 위에 뿌리는 허토 순으로 이뤄졌다. 250석 규모의 식장 맨 앞줄엔 부인 손명순 여사 등 유족 대표와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자리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외 동교동계 인사들, 장의위원, 일반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차남 현철씨가 유족 대표로 헌화했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조문객 대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장례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헌화했다. 운구는 조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약 150m 떨어진 묘소 예정지까지 10여분간 이뤄졌다. 11명의 의장대가 태극기로 감싼 관을 조심조심 옮겼다. 현철씨는 하관하는 모습을 먹먹한 얼굴로 바라봤다. 뒤늦게 도착한 손 여사는 양쪽의 부축을 받고 맨 앞에 서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관을 지켜봤다. 허토 의식 후 평소 고인과 친분이 깊었던 고명진 목사가 부활대망예배를 집전했다. 본격적인 허토가 시작되자 현철씨는 무궁화가 그려진 관 상판 위에 흰 국화꽃잎을 두 손으로 수북이 집어 두번 뿌리고 흙을 뿌렸다. 전 국회의장들도 한 삽씩 손을 보탰다. 관이 흙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자 참지 못한 현철씨가 “아버님, 아버님” 소리 내어 흐느꼈다. 손 여사의 충혈된 눈에서도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군악대의 조총 발사, 묵념 속에 참석자들은 각자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고인의 고향인 경남 거제도에서 가져온 흙 대신 일반 마사토가 허토에 사용됐다고 한다. “전국이 다 내 고향”이라고 했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서다. 관은 유족들이 마련한 것으로 고동색에 윤기가 조금 도는 나무 무늬만 있는 수수한 관으로 알려졌다. 묘소 봉분 앞에는 ‘제14대 대통령 김영삼의 묘’라고 새겨진 3.49m 높이의 목재 임시 묘비가 세워진다. 돌로 제작한 실제 비석은 내년 1월쯤 제막한다. 안장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현철씨는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아버님께서 하늘에서라도 우리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지켜보시리라 생각한다”면서 “아버지의 유언인 ‘통합과 화합’이 우리 사회와 국민 전체에 큰 울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YS ‘차분한 영결식’… 노제·추모제 생략

    YS ‘차분한 영결식’… 노제·추모제 생략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정은 26일 오후 1시 25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떠나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2시에 열리는 영결식을 마친 뒤 46년간 보금자리를 틀었던 동작구 상도동 사저(私邸)를 한 바퀴 둘러본다. 행정자치부는 25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 계획을 밝혔다. 영결식엔 1만여명이 초대됐다. 김 전 대통령을 실은 영구차는 서울대병원을 떠나 경복궁~광화문~세종대로~충정로~공덕오거리~서강대교를 거쳐 국회 영결식장에 도착한다. 영구차가 국군 의장대를 사열하며 입장하면 조악대 연주와 함께 영결식에 들어간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는다. 집행위원장인 정종섭 행자부 장관의 고인 약력 보고, 황교안 국무총리의 조사,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추도사가 이어진다. 4대 종단이 참여하는 종교의식은 고인과 유족의 종교인 개신교에 이어 불교, 천주교, 원불교 순으로 엄수된다. 고인과 가까웠던 김장환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 목사가 개신교 의식을 치른다. 이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자료를 상영하며 차분히 넋을 기린다. 노제와 추모제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지내지 않기로 했다. 영결식을 마친 영구차는 상도동 사저에서 15분간 머문 뒤 인근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앞을 서행하며 고인의 넋을 다시 한 번 기리는 시간을 갖는다. 오후 4시 안장식이 열리는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3묘역 우측 능선에 도착해 헌화 및 분향, 하관, 예배, 허토(許土·장례를 치를 때 봉분하기에 앞서 상주들이 흙 한줌씩을 관 위에 뿌리는 의식)로 국가장 절차를 모두 마친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국회엔 검은색 대형 애도 현수막… 지방 200여곳 6만여명 조문

    국회엔 검은색 대형 애도 현수막… 지방 200여곳 6만여명 조문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24일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정·재계 주요 인사와 일반 시민의 추모 행렬이 사흘째 계속되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저마다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그의 정신을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까지 사흘간 서울대병원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총 2만여명을 훌쩍 넘겼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국가 개혁을 하신 분인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많은 국민이 비난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새롭게 다시 한번 재조명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과거 검사로 활약하며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까지 붙었던 홍 지사는 1996년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YS키즈’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 김 전 대통령과 결별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홍사덕·이철 의원과 함께 꼬마 민주당을 창당했던 이기택 전 의원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이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오늘의 이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 데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가장 탁월한 공을 세운 분”이라며 “이분의 민주주의 정신을 따라서 이 나라가 더욱 성숙한 국가로 발전돼 나가길 빈다”고 말했다. ●김기춘 “민주화 과업 이룩한 역사적인 국가원수” 안희정 충남지사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를 잃어 매우 애통하게 생각한다”며 “우리에게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할 책무가 맡겨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조문록에 ‘고인께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계실 때, 저는 이제 막 민주화 운동에 합류한 꼬마 대학생이었습니다. 고인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고 삽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1992년 14대 대선을 이틀 앞두고 부산 초원복집에서 지역 기관장들과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하며 ‘우리가 남이가’라는 건배사를 외쳤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유족을 위로하면서 한동안 빈소에 머물렀다. 김 전 비서실장은 “김 대통령께서는 산업화 토양 위해서 민주화의 역사적 과업을 이룩하신 역사적인 국가원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 그리고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도 사흘째 빈소를 지켰다. 재계에서는 손경식 CJ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이 발걸음을 했다. 손 회장은 “고인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금융실명제 등 선진 제도를 도입한 훌륭한 지도자”라며 애도를 표했다.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는 ‘일본 국민과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 깊이 조의를 표한다’라고 조문록에 쓴 뒤 “큰 위인을 잃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애써 슬픔을 참아가며 문상객을 맞이했다. 차남인 현철씨는 아침 일찍 나와 빈소를 지키며 문상객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예를 표했다. 이어 오전 11시쯤 휠체어를 탄 채 빈소에 등장한 손명순 여사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슬퍼했다. 손 여사는 좋지 않은 건강에도 불구하고 4시간가량 빈소를 지켰다. 김 전 대통령의 처남 손성환(82)씨는 빈소를 찾아 “새해마다 상도동에서 세배를 해서 이번에도 가게 될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가진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정수선(61·여)씨는 태극기에 싼 액자를 소중히 안은 채 장례식장을 찾아 “1970년 부산의 한 선거 유세장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나 사진에 사인을 받았는데 그것을 액자에 넣고 태극기에 싸서 여태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정씨가 “꼭 대통령이 되세요”라고 소리치니 김 전 대통령이 “꼬맹이가 귀엽다”며 사인을 해줬다는 것이다. 정씨는 “살아 계셨을 때 다시 한번 직접 뵙고 싶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야 이렇게 찾아왔다”며 눈물을 보였다.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주범 김용남씨도 빈소 찾아 일명 ‘용팔이 사건’으로 알려진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의 주범인 김용남(64)씨도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은 김씨를 만난 뒤 “(김씨가) 목사가 됐다더라. 조문을 길게 하진 않았으나 기도하고 묵념을 오래 했다”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정부 대표 분향소에는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연합 의원 30여명은 국회 분향소를 찾아 단체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정부 분향소가 위치한 국회 본관 전면에는 ‘근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삼가 애도합니다’라고 적힌 검은색 대형 현수막도 새로 내걸려 한층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가 이뤄졌다. 전국 자치단체에 설치된 200여곳의 분향소에도 이날 오후 6시 현재 6만명이 넘는 조문객이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를 표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시 대계마을 생가 옆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사흘 동안 3000여명이 방문했다. 이곳 분향소에는 김 전 대통령이 졸업한 장목초등학교 재학생 67명 전원이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거제가 지역구인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도 “1990년대부터 김 전 대통령의 경호 담당으로 인연을 맺어 왔다”며 하루 종일 분향소를 지켜 눈길을 끌었다.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는 동교동계(김대중 전 대통령 가신 그룹) 권노갑·김옥두·이훈평 전 의원과 상도동계 정병국 의원, 김덕룡·박희부 전 의원 등이 상주를 자처하며 조문객을 맞았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도 상도동계가 함께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조문을 받으며 품앗이한 전례가 있다. ●반기문 “국제사회 존경받는 나라 노력” 해외 주요 도시에 마련된 분향소에서도 추모 행렬은 계속됐다. 주한 미국대사 출신인 성 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겸 부차관보는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소재 주미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에 미국 정부 대표 자격으로 찾아 조문을 했다. 김 부차관보는 헌화와 묵념을 한 뒤 “우리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한 김 전 대통령을 매우 존경한다”며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이 민주주의로 기적적인 변모를 하는 데 가장 중심적 인물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욕 대한민국 유엔대표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고인의 뜻을 따라 대한민국이 잘 살고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정부는 해외 주재 우리 공관에 분향소를 마련해 공관원들과 교민들이 찾을 수 있도록 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독재정권 시절 민주화투쟁 주도 ‘정치9단’

     86세로 생을 마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 정치의 산증인이다. YS라는 애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DJ·1926~2009)과 함께 독재 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던 ‘쌍두마차’였다. 김 전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마다 보여준 승부사 기질은 그가 ‘정치 9단’이라는 별칭을 얻은 이유이기도 했다.    ●유년기-거제도서 출생, 한인학생 차별 일본인 교장 골탕먹이다 정학 처분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음력) 경남 거제도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멸치잡이 어장을 소유한 부친 김홍조(2008년 작고)씨와 모친 박부연(1960년 작고)씨 사이에서 외동 아들로 태어났다.  장목초등학교를 나온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경남 지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던 동래중에 응시했다가 낙방했으며, 1년 뒤 통영중에 진학했다. 통영중 재학 시절에는 한인 학생을 차별하는 일본인 교장의 이삿짐을 훼손하는 등 골탕을 먹인 일화가 유명하다. 이로 인해 경찰 조사를 받고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김 전 대통령 스스로 모교로 꼽는 경남중으로 전학한 것은 해방을 맞은 1945년 11월이다. 대통령의 꿈은 이 때부터 비롯됐다. 당시 부산 하숙방 책상머리에 붓글씨로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써붙이고 뜻을 키운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경남고를 거쳐 만 20세인 1947년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정치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하고, 우익 학생단체인 ‘순학회’를 결성하는 등 정치 입문을 위한 사전 준비에도 힘을 쏟았다.    ●청년기-한국전때 학도의용대 가담, 동갑내기 손명순 여사와 맞선 한달만에 결혼  정계 진출의 기회는 대학 2학년 때 찾아왔다. 정부수립 기념 웅변대회에서 외무부 장관상(2등)을 수상, 당시 장택상 외무부 장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50년 5·30 총선에서 경북 칠곡에 무소속 출마한 장택상 후보의 당선을 돕기도 했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학도의용대에 가담했다.  김 전 대통령이 손명순 여사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1951년 2월 ‘할아버지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고향에 내려간 그가 만난 사람이 바로 동갑내기 손 여사였고, 선을 본 지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를 하기로 했던 목사가 날짜를 착각해 결혼식장에 오지 못하는 바람에 주례를 즉석에서 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혼 당시 이화여대 약학과 3학년생이었던 손 여사는 당시 교칙에 따라 결혼하면 퇴학을 당할 처지였지만, 결혼 사실을 비밀에 부쳐 무사히 졸업했다. 손 여사는 결혼 초기 시댁이 있는 거제로 내려가 멸치 말리는 법부터 배웠다. 당시 익힌 ‘시래깃국에 갈치 한 토막’은 이후 손 여사의 ‘대표 메뉴’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2011년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식에서 “내 인생에서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민주화를 이뤄낸 일이고, 다른 하나는 손 여사를 아내로 맞이한 일”이라고 했고, 이에 손 여사는 “좋아서 살았지예”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정치적 성장기-26세때 최연소의원에, 최연소 원내총무 최다선 의원등 숱한 기록  김 전 대통령은 1952년 5월 장택상 당시 국회 부의장이 국무총리에 발탁되면서 총리실 인사담당비서관에 기용됐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장 총리가 ‘고시진 사건’으로 물러나자 1954년 3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고향인 거제로 낙향했다.  그는 3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 공천을 받아 최연소 의원(26세)이 됐다. 이후 최연소 원내총무(38세), 최다선 원내총무(5회), 최연소 총재(46세), 최다선 의원(9선) 등 숱한 기록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정치 행보는 이 같은 화려한 꼬리표와 달리 고난의 연속이었다.  1954년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으로 유명한 이승만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표를 던지고 자유당 입당 7개월여 만에 탈당했으며, 이는 야당 정치인으로서 30여년 동안 고난의 길을 걷는 출발점이 됐다.  1958년 4대 총선에서는 고향인 거제를 떠나 부산에서 출마했다 고배를 마셨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치러진 5대 총선에서 원내에 복귀했으나, 같은 해 9월 어머니가 무장간첩에 의해 살해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5·16 쿠데타로 정치 활동이 전면 금지되는 등 시련이 잇따랐다.  1963년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군정 연장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수감되는 등 굵직굵직한 정치 현안에 저돌적으로 맞서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민주화 투쟁기-3선개헌 반대하다 초산테러, 10·26 신군부시절 가택연금 단식투쟁  1965년 통합 야당인 민중당의 최연소 원내총무에 올랐으며, 1969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다 상도동 자택 앞 골목길에서 괴한에 의해 ‘초산 테러’를 당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김 전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로서 입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1970년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당시 김대중 후보에 밀렸다.  김 전 대통령의 승부사적 기질은 유신 체제에 대한 정면 돌파로 이어졌다. 1974년 5월 신민당 총재로 선출된 후 유신 체제에 맞서다 결국 2년 뒤 ‘각목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권을 내주기도 했다.  특히 1979년 5월 총재직에 재당선되고 2개월 만에 ‘YH무역 사건’이 터졌다. YH 여성 근로자들이 신민당사에서 폐업 반대 농성을 벌이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국내 정당 사상 처음으로 법원에 의해 총재 직무가 정지되고 의원직마저 박탈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때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표현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1979년 10·26 사태를 계기로 신군부가 등장하자, 김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23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발짝도 나가지 않겠다”고 한 그의 결단은 정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85년 2·12 총선 직전 신민당을 창당해 돌풍을 일으키는 등 전두환 정권에 대한 끈질긴 압박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대권 도전과 성공-1990년 3당합당, 1992년 대선 당선 ‘문민정부’ 시대로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진 1987년 대선에 김 전 대통령 역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른바 ‘1노·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맞붙은 선거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며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듬해 4월 13대 총선에서는 제1야당의 자리마저 DJ의 평민당에 내줬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대권을 향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1990년 여당인 민정당과 제2·제3 야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을 합쳐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출범시키는 ‘3당 합당’을 결행했다. 35년 야당 생활을 접고 여당의 대권 주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결국 1992년 대선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재임 기간 중 금융실명제 도입,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하나회 해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처벌 등 굵직굵직한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임기 말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비판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는 서민적인 청와대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칼국수가 대표적이다. 칼국수가 당시 청와대 대표 메뉴가 되면서 대통령의 영양 관리라는 뜻밖의 고민거리도 생겼다. 청와대 방문객들이 한번쯤 맛보는 별미지만, 대통령 입장에서는 임기 내내 칼국수로 점심을 때워야 했기 때문이다.    ●뚝심과 감의 정치인  김 전 대통령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키는 ‘뚝심의 정치’를 보여줬다. 정치적 고비마다 국민 여론을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이 탁월해 ‘감(感)의 정치인’으로도 불렸다.  김 전 대통령의 화법은 단순 명료했다. 돌려가며 얘기하는 법이 없다. 직설적인 화법 탓에 ‘말실수의 달인’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공정한 인사를 해서 부패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할 표현을 “공정한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라고 하거나, ‘결식 아동’ 문제를 언급하려다 ‘걸식 아동’이라고 발음하는 식이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이름을 잊어버려 회의석상에서 ‘차씨’라고 발언한 사례도 유명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말실수에 핑계나 변명을 하지 않았기에 친근감과 인간미를 느끼게 했다.  김 전 대통령과 DJ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민주화 동지에서 1987년 대권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하며 불편한 관계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DJ의 서거를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병원을 전격 방문, 22년간의 반복과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 전 대통령은 화해로 이해해도 되느냐는 기자 질문에 “이제 그럴 때가 됐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제6대 국회 때부터 동지적 관계이자, 경쟁 관계로 애증이 교차한다”고 애틋한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홀몸 어르신 매일 찾아가는 ‘복지 배달원’

    홀몸 어르신 매일 찾아가는 ‘복지 배달원’

    홀몸 어르신에게 요구르트를 배달하고 있는 동대문구가 이번에는 우유배달 사업으로 복지 그물망을 촘촘히 짰다. 특히 이들 사업은 구의 재정이 투입되는 복지서비스가 아니라 민간 자원을 활용한 서비스라서 의미가 크다. 동대문구는 지역 200명의 독거노인에게 매일 우유를 배달해 주는 ‘어르신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사업을 시작한다고 19일 밝혔다. 요구르트를 받고 있는 280명을 포함하면 480명의 홀몸 어르신 안부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안부 우유배달 사업은 옥수중앙교회의 후원으로 이뤄져 동대문형 복지공동체 보듬누리 사업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배달을 맡은 건국유업은 매일(주말 제외) 어르신 가정에 우유를 배달하면서 안부를 묻게 된다. 그러나 찾아가도 어르신을 만나지 못하고 배달한 우유가 문 앞에 쌓이면 배달원이 매일 다른 색깔의 포스트잇을 붙인다. 포스티잇이 두 장 붙어 있으면 이틀 이상 어르신이 집을 비우거나 신변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배달원은 구청이나 사회복지 직원에게 연락한다. 동 주민센터 사회복지 담당직원은 신속하게 찾아가 생사를 확인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를 통해 홀몸 어르신의 고독사를 예방하고 사회 안전망은 더욱 튼실해진다. 호용한 옥수중앙교회 목사는 “앞으로 우유배달 사업의 수혜자를 서울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더 나은 지역사회를 위해 종교단체와 기업들이 마을공동체를 다시 살리고 사회적 복지망을 튼튼히 하는데 동참하고 있다”면서 “발로 뛰는 보듬누리 사업을 통해 고독사 없는 동대문구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韓 교회, 유·불·무속 세계관 섞인 ‘비빔밥’”

    “韓 교회, 유·불·무속 세계관 섞인 ‘비빔밥’”

    개신교 신학자가 한국교회를 ‘비빔밥’에 빗댄 쓴소리를 내 화제다. 주인공은 이승구 합신대 교수(조직신학). 이 교수는 지난 16일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열린 ‘2015년 하반기 세계관동역회 세미나’를 통해 “성경엔 없는 종교 형식이 샤머니즘, 불교, 유교와 섞여 있다”며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비빔밥 종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를테면 비신자들이 새로 사업을 시작하거나 큰일을 앞두고 지내는 고사를 기독교인들은 형식만 바꾼 예배로 대체해 드린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면서도 담임목사가 바빠 부목사나 전도사가 예배를 인도하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형식만 다를 뿐 비신자의 고사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남편, 아내에게 다시 태어나도 자신과 결혼하겠느냐고 묻는 불교적 사고나 돌아가신 부모님이 하늘에서 기도하심으로 우리가 좋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유교적 사고 등 비슷한 사례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특히 구약, 신약이 뒤섞인 신앙생활도 지적했다. 구약 의식과 제사는 신약시대엔 하면 안 되는 것인데도 예배를 제사와 동일시하는 등 성전 개념과 사제의식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목사들이 스스로 제사장적·선지자적 기능을 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신학교를 ‘선지 동산’이라며 신학교 졸업생들이 자신을 선지자로 생각하는 것이나 예배당 내 십자가며 촛대 형상들이 모두 성경적 유산이 아님에도 무분별하게 수용된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기독교적 세계관은 성경에 따라 철저히 살아가는 것”이라면서 “기독교 세계관에 철저하다는 것은 성경에 철저하다는 것이고,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외쳤던 종교개혁적 정신에 철저하다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30일 새에덴교회 ‘목회계획 세미나’

    새에덴교회(담임 소강석 목사)는 30일 오전 10시 2016년 ‘21세기 목회 뉴 트렌드와 2016 목회계획 세미나’를 연다. 목회자 부부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선 ▲20세기 교회와 21세기 목회환경 변화 ▲처치 플랜팅과 지속성장 대안에 대한 강연과 토론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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