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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장현 “노무현 혼외자 듣는 순간 몸이 부들부들…뭔가에 꽂혀”

    윤장현 “노무현 혼외자 듣는 순간 몸이 부들부들…뭔가에 꽂혀”

    다음 주초 귀국 조사…“시민께 죄송, 책임질 부분 책임지겠다”“노무현의 혼외자 말이 나오는 순간, 인간 노무현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윤장현 전 광주시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김모(49·여) 씨에게 거액을 사기당하고 자녀 채용 청탁까지 들어준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윤장현 전 시장은 또 다음 주초 귀국, 검찰에 출석하겠다고 밝혔다. 의료봉사 활동차 네팔에 머물고 있는 윤 전 시장은 5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권 여사를 사칭한 김씨가 “‘정말 어려운 말을 꺼낸다. 이제서야 알았는데 억장이 무너진다. 비서관한테도 말을 못 했다. 노 대통령이 순천 한 목사의 딸 사이에 남매를 두고 있다. 노무현 핏줄 아니냐. 거둬야 하지 않겠느냐. 이들을 좀 도와달라’고 말했다”며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전 시장은 지난해 12월 “권양숙입니다. 딸 사업문제로 5억원이 급히 필요하다”는 문자 메신지를 받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권 여사를 사칭한 전화 속의 김씨와 30여분 통화한 윤 전 시장은 “전화 말미에 노무현 혼외자 말을 듣는 순간 소설처럼 내 머리에 뭔가가 꽂힌 것 같았다”며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인간 노무현의 아픔을 안고,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내 이성이 마비됐다. 내가 바보가 됐다”고 한참을 자책했다. 김씨는 윤 전 시장에게 “애를 보살폈던 양모(養母)가 연락을 줄 테니 받아보고 챙겨달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권 여사와 김씨 등 1인 2역을 한 사기꾼 김씨는 2∼3일 뒤 직접 시장실에 나타나 태연히 자신의 두 자녀의 취업 청탁을 했다. 김씨 아들은 김대중컨벤션센터 계약직으로, 딸은 모 사립중 기간제 교사로 채용됐다가 지난 10월과 지난 4일 각각 계약이 만료됐거나 자진 사직했다. 김씨는 학교에 취업한 딸의 결혼 주례도 윤 전 시장에게 부탁하는 등 대범함을 보였다. 4차례에 걸쳐 돈을 송금받은 김씨는 윤 전 시장에게 돈을 요구하면서 권 여사의 진짜 딸(노정연)도 사기에 동원했다. “(정연이가)사업상 어려움을 겪어 중국 상하이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며 송금을 재촉했다고 윤 전 시장은 말했다. 윤 전 시장은 공천을 대가로 거액을 보낸 것 아니냐는 항간의 시선에 대해 “한마디로 말이 안 된다”며 강한 어조로 항변했다. “공천 대가라면 은밀한 거래인데 수억원을 대출받아서 버젓이 내 이름으로 송금하는 경우가 어디 있겠느냐”며 “말 못 할 상황에 몇 개월만 융통해달라는 말에 속아 보낸 것뿐이다”고 말했다. 윤 전 시장은 “사기꾼 김씨와 전화 통화는 3-4차례, 문자는 40여차례 오간 것 같다”며 “내가 속지 않았다면 최근(10월)까지 문자를 주고 받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윤 전 시장은 “김씨가 사기죄와 공직선거법을 거론하며 조사에서 이른바 딜을 거론했다”며 “이 같은 사실도 내가 경찰 조사에서 다 밝혔다”고 말하는 등 공천대가설을 부인했다. 검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3일까지 출석을 요청한 것과 관련해 그는 “반드시 13일 이전에 검찰에 나가 모든 것을 밝힐 것이며 공인으로서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며 “자랑스러운 광주의 역사에서 전직 시장이 포토라인에 선다는 것 자체가 시민들께 죄송하고 부끄러울 뿐이다”고 용서를 구했다. 그는 “평소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는 신조로 관사도 들어가지 않고 소형차에 이코노미석 좌석을 고집하고 항상 시민에게 누가 되지 않게 낮은 자세로 처세하고 살아왔는데…”라며 말꼬리를 흘렸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드레스 베일이 무려 23m 인도 톱스타 초프라 호화 결혼식

    드레스 베일이 무려 23m 인도 톱스타 초프라 호화 결혼식

    인도 발리우드 스타 프리얀카 초프라(36)의 웨딩드레스의 베일 길이가 무려 23m 가까이 돼 눈길을 끌었다. 초프라는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라자스탄주 조드푸르의 우마이드 바완 궁에서 미국 뮤지션 닉 조나스(26)와 결혼했는데 5일에야 그녀가 입었던 웨딩드레스의 위용이 알려졌다. 신랑 아버지인 폴 케빈 조나스 목사가 주례로 예식을 진행했다. 예식은 사흘 동안 이어졌으며 2일 전통 힌두 예식이 진행돼 커플은 서로 결혼 서약을 주고받았다. 랄프 로렌이 디자인한 드레스에는 200만개의 나전 시퀸(여성 의복에 들어가는 작은 원형 금속 조각)이 수놓였다. 그러나 웨딩드레스보다 더 시선을 끈 것이 한참 이어진 베일 길이였다. 너무 길어 남자 여러 명이 이를 운반하느라 힘들 지경이었다. 한 트위터리언은 “웨딩드레스의 베일이 내 앞에 펼쳐진 미래보다 더 크고 밝아 보였다”고 농을 했다. 한 누리꾼은 “영국 왕세손비 메간 마클은 ‘내 건 4.8m’라고 말하는데 초프라는 ‘내 귀걸이 밖에 안 되네’라고 말하는 격”이라고 우스갯 소리를 했다. 매리사란 여성은 “마클이 ‘난 왕자랑 결혼했어’라고 말하니 초프라가 ‘내 베일이나 들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비아냥댔다. 지난 여름 약혼하며 두 나라 팬들을 모두 놀라게 했는데 2016년 9월 서로 문자를 주고바으며 교제를 시작했다고 피플 잡지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지난해 5월 뉴욕 메트 갈라에 함께 나타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그 때도 둘이 랄프 로렌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었다. 초프라는 발리우드에서 가장 비싼 출연료를 받는 여배우 가운데 한 명이며 2000년 미스 월드로 뽑힌 뒤 지금까지 인도 영화만 50편 넘게 출연했다. 중간중간 TV 미니시리즈 ‘콴티코’와 영화 ‘Ventilator’, ‘베이워치‘, ‘A Kid like Jake’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신약을 오역했다면”… 성경에 대한 발칙한 질문

    “신약을 오역했다면”… 성경에 대한 발칙한 질문

    신의 변명/옥성호 지음/파람북/343쪽/1만 6000원보수 개신교계가 성경을 보는 입장은 ‘성경 무오설’과 ‘문자주의’로 압축된다. 신의 말씀을 빠짐없이 적은 만큼 한 치 오류도 없는 절대 신봉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책은 놀랍게도 그 도그마를 정면 반박한다. 내로라하는 대형교회인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옥한흠 목사의 장남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성경을 비판해 논란이 예상된다. 성경은 유대교의 히브리 성경과 예수탄생 이후의 신약으로 나뉜다. 기독교는 신약성경과 대비하기 위해 히브리 성경을 구약이라 부른다. 책은 신약을 구약의 연속이 아닌 단절로 여겨 눈길을 끈다. “신약이 등장하면서 구약에 대한 오역과 의도적 왜곡이 저질러졌다.” 그 과정에서 전혀 다른 신을 섬기는 결과를 초래했음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탄을 비롯해 구원, 죄, 율법, 메시아까지 성경 전 영역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는 다르다. 대표적인 건 에덴동산이다. 기독교에서 에덴동산은 타락한 인간과 원죄에 대한 예수의 대속이 시작되는 교리의 근원이다. 하지만 유대교에선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타락해 죄로 오염된 유전자를 가진 게 아니라, 오히려 독립함으로써 주체적 유전자를 갖게 됐다고 한다. 에덴동산은 비극의 시작이 아닌, 인간 성장과 독립의 영역인 것이다. 사탄도 엄청난 개념 차를 보인다. 히브리 성경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천사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신약에선 신인 예수를 시험하려는,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엄청난 존재로 탈바꿈한다. “궤변과 왜곡으로 가득 찬 신약성경이 기독교 경전으로 2000년을 버틴 것은 기적이다.” 저자는 그 기적의 원인 제공자를 ‘이단에 물들게 하는 질문을 던지지 말라’고 외쳤던 고대 로마 종교가 테르툴리아누스(160~220)로 지목한다. 그리고 말한다. “기왕이면 내가 더 건강해지고 당당하게 해 주는 하나님을 선택했으며 좋겠다. 그런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건 ‘진짜 나’를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사설] 이재록 목사 중형, 성범죄 불관용 인식 확산 계기돼야

    신도 8명을 4년여간 수십 차례나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가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이 목사가 피해자들의 신앙심을 이용해 정신적으로 길들인 뒤 성적으로 착취했다고 판단했다. 최근 교회 내 성폭력 폭로가 잇따르는 가운데 법원이 종교계의 이른바 ‘그루밍 성범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교회 그루밍 성범죄란 목회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여신도를 길들인 뒤 심리적 우위 상태에서 성폭력을 가하는 행위다. 이번 재판은 피해자들이 심리적·물리적으로 반항하기 어려운 ‘항거불능’ 상태였는지가 핵심이었다. 이 목사 측은 정상적 지적 능력의 성인 여성들을 항거불능 상태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절대적 권위에 복종하는 신앙생활을 했으므로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인정했다. 신도 수가 13만 명에 이르는 대형 교회 담임목사가 인면수심의 만행을 수년 간 저질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이다. 더욱 충격인 것은 교단에서는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폭로들이다. 신앙을 악용한 성적 착취가 암암리에 묵인되고 있다면 이런 야만이 또 없다. 올 들어 ‘미투 운동’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성범죄 인식에 일대 변혁을 맞았다. 성범죄로 좌절하는 피해자에게 증거를 직접 제시하라는 식의 재판 태도는 넘기 힘든 2차 고통의 벽이었다. 지나친 증거주의 재판에 가해자가 명예훼손 운운하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사례는 흔했다.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 법원의 경직된 판단이 성범죄에 경고가 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높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법원의 판결들은 유의미한 변화로 읽힌다. 30대 부부가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해 지난달 대법원은 가해자의 성폭행 혐의를 인정하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피해자답지 않았다’며 성폭행 피해를 인정하지 않았던 1, 2심에 “성인지 감수성을 결여한 판결”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법원의 노력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피해자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가해자에게는 관대한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는 인식은 법원이 스스로 불식시켜야 할 문제다. 이참에 13세 이상의 성범죄 피해자는 강제성이 입증돼야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현행법의 구멍도 손질돼야 할 것이다. 법의 보호 범위를 13세 이상으로 확대해 성범죄에 관한 한 가해자를 최대한 엄벌하려는 사회적 의지를 확인시켜야 한다.
  • ‘신도 성폭행’ 이재록 목사, 1심 징역 15년… 그루밍 인정

    교회 “반대 측 진술만 믿어… 항소할 것” 교회 신도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이재록(75)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가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이 목사가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믿은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가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그루밍(Grooming) 성폭력’이 인정된 것으로 풀이된다.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정문성)는 상습준강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목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어린 시절부터 만민중앙성결교회에 다니며 형성된 종교적 권위와 절대적인 믿음 때문에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해 장기간에 걸쳐 상습적으로 추행·간음하고 집단으로 간음하는 범행까지 저질렀다”면서 “범행이 계획적·비정상적이고, 유사한 방식을 반복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피해자들은 피고인이 권능을 행한다고 믿고 성령이나 신적인 존재로 여겼다”면서 “피고인의 행위가 성적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의심하는 것은 죄라고 여겨 거부할 생각조차 단념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이 심리적으로 지배당하는 그루밍 상태였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이어 “피해자들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지도자에 대한 배신감에 정신적 충격을 입었고, 가장 행복하게 기억돼야 할 20대가 지우고 싶은 순간이 된 데 고통스러워하며 엄벌을 원하고 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 목사는 신도 8명을 42회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달 이 목사에 대해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검찰 공소사실 중 일부 범행이 이뤄졌다고 특정하기 어려운 9건을 제외하고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이 목사는 자신이 신도들에 대해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지 않았고, 피해자들이 심리적 항거 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면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목사를 향해 “변론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사생활까지 들춰내 더 큰 정신적 피해를 입혔다”고 질책했다. 선고 직후 피해자 측 변호사는 “재판부가 일부 무죄로 받아들인 공소사실에 대해선 새로 확보한 결정적 증거가 있어 항소심에서 다툴 것”이라면서 “이번 선고를 통해 용기를 낼 피해자들이 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선고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안팎에는 만민중앙성결교회 신도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일부 신도들은 오전 5시부터 법원에서 방청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 교회 측은 “재판부가 반대 측의 진술만 믿고 판결했다”며 “당회장님(이 목사)의 무고함을 믿기에 진실 규명을 위해 바로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신도 상습 성폭행’ 이재록 목사 징역 15년… “신적 존재 믿음 악용해 상습 범행”

    ‘신도 상습 성폭행’ 이재록 목사 징역 15년… “신적 존재 믿음 악용해 상습 범행”

    교회 신도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이재록(75)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가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정문성)는 상습준강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목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성폭력치료프로그램 80시간 수강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어려서부터 만민중앙성결교회에 다니며 피고인을 신적 존재로 여기고 복종하는 것이 천국에 갈 길이라 믿어 지시에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해 장기간 상습적으로 추행·간음했다”면서 “범행이 계획적·비정상적이고, 유사한 방식을 반복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피해자들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지도자에 대한 배신감에 정신적 충격을 입었고 가장 행복하게 기억돼야 할 20대가 후회되고 지우고 싶은 순간이 된 데 고통스러워하며 엄벌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신도 8명을 42회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13만명의 신도를 거느리는 대형 교회 지도자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질렀다”며 이 목사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반면 이 목사는 자신이 신도들에 대해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20세 이상의 여성으로서 정상적 지적 능력을 갖췄다며 심리적 항거 불능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또 자신의 건강상태로는 성폭력 범행을 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내놨다. 재판부는 이 목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범행을 일체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았고, 변론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회개 편지 내용을 공개하는 등 내밀한 사생활까지 들춰내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해 더 큰 정신적 피해를 입혔다”고 지적했다.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선고공판에 방청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안팎에는 만민중앙성결교회 신도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일부 신도들은 이날 오전 5시부터 법원에서 방청권을 받기 위한 줄을 선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에 들어서지 못한 일부 신도들은 선고 내용을 듣고 “모든 게 조작됐다”고 항의하거나 “쓰러질 것 같다”며 계단에 주저앉기도 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신도 성폭행’ 이재록 만민교회 목사 1심서 징역 15년

    ‘신도 성폭행’ 이재록 만민교회 목사 1심서 징역 15년

    자신의 교회 신도 여러 명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가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정문성 부장판사)는 22일 상습 준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목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다만, 이 목사의 나이나 건강상태 등을 고려하면 재범의 위험성은 높지 않다며 보호관찰 명령 청구는 기각했다. 이 목사는 여러 해에 걸쳐 만민중앙교회 여신도 8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검찰은 그가 신도 수 13만 명의 대형 교회 지도자로서 지위나 권력, 피해자들의 신앙심 등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항거 불능 상태로 만들어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 가운데 범행이 이뤄졌다고 특정하기 어려운 9건을 제외한 대부분 범행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어려서부터 만민중앙성결교회에 다니며 피고인을 신적 존재로 여기고 복종하는 것이 천국에 갈 길이라 믿어 지시에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해 장기간 상습적으로 추행·간음했다”며 “범행이 계획적·비정상적이고, 유사한 방식을 반복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범행의 상습성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피해자가 아닌 다른 여신도들도 범행 전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진술했고, 1999년 MBC ‘PD수첩’에서 성추문을 폭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려 했음에도 유사한 수법의 범행을 한 사실 등을 보면 성폭력 범행을 반복하는 습벽이 있다는 것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재록 목사 측은 피해자들이 이 목사를 음해하기 위해 고소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수사 단계부터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다. 피해자들이 심리적으로 항거 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으며 이재록 목사의 건강 상태로는 성폭행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고 항변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여신도 7명 상습 성폭행’ 이재록 목사 오늘 선고…“나는 전세계인 구제”

    ‘여신도 7명 상습 성폭행’ 이재록 목사 오늘 선고…“나는 전세계인 구제”

    자신의 교회 신도 여러 명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에 대한 1심 판결이 22일 내려진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정문성)는 이날 오전 10시 상습준강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록 목사의 선고공판을 연다. 검찰은 앞서 1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이재록 목사가 목회 활동을 하면서 신도들을 성적으로 유린했다면서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아울러 보호관찰과 피해자에 대한 접근 금지, 성폭력 치료 강의 이수 등도 함께 명령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재록 목사는 여러 해에 걸쳐 만민중앙교회 여신도 8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그가 신도 수 13만명의 대형 교회 지도자의 지위와 권력, 피해자들의 신앙심 등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항거 불능 상태로 만들어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재록 목사 측은 이번 사건이 피해자들의 계획적인 음해 및 고소라면서 수사 단계부터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다. 특히 이재록 목사의 건강 상태로는 성폭행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고 항변했다. 또 피해자들이 강요나 신앙의 영향 때문에 심리적으로 항거 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도 주장했다. 이재록 목사는 비공개로 진행된 결심공판에 나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면서도 “나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기도를 통해 권능을 받았다. 전 세계인을 구제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왼팔 잘린 채 오른팔로 든 태극기…‘남도의 유관순’ 초인적 항일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왼팔 잘린 채 오른팔로 든 태극기…‘남도의 유관순’ 초인적 항일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과 잔인한 고문에도 독립운동가들은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초인적인 저항 정신을 보여 준 독립운동가가 있다. 육신의 일부가 절단돼 선혈이 쏟아지는 중에도 떨어진 태극기를 주워 들고 만세를 더 크게 외친 윤형숙(1900~1950) 열사. 열사를 흔히 ‘남도(南道)의 유관순’이라 부른다. 전남 여천역에서 내려 윤 열사의 조카 윤치홍(78)씨를 만나 여수 이순신공원의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을 둘러보았다. 2014년 건립된 기념탑 옆에는 팔이 잘린 열사의 모습이 담긴 부조물이 있다.윤씨는 “끝까지 일제에 굴하지 않고 평생 나라를 위해 몸바친 인물”이라고 열사를 소개했다. 윤씨의 할아버지 윤자환(1896~1950·대통령 표창) 선생도 3·1 만세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 체포돼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윤씨는 10여년 동안 기록 발굴에 매달린 끝에 알려지지 않은 열사의 공적을 찾아냈다고 한다. 열사는 닥쳐올 운명을 암시하듯 혈녀(血女)라는 이명(異名)으로도 불렸다. 학적부와 판결문에는 ‘윤혈녀’로 적혀 있다. 윤씨는 윤혈녀와 호적상의 윤형숙이 동일인임을 어렵사리 확인했다.●윤 열사 조카, 10여년간 관련 공적 찾아 내 타오르는 들불처럼 만세운동이 번졌던 1919년 3월 광주에서도 민중과 학생들이 떨쳐 일어났다. 윤 열사는 당시 광주 수피아여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이 학교에는 민족의식이 남달랐던 박애순(1896~1969·건국훈장 애족장) 교사가 재직하고 있었다. 박 선생은 고종 황제의 승하 소식과 일제에 빼앗긴 나라 안팎의 사정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광주 만세운동은 3·1운동 전부터 움트고 있었다. 일본 도쿄 유학생 정광호가 귀국해 2·8 독립선언을 청년들에게 알렸다. 서울 유학생인 최정두와 고종 황제의 국장에 참례하고 서울 시위에 참가한 김철도 귀향해 남궁혁의 집에 모여 거사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독립선언서, 태극기, 격문 등을 밤새 만들어 장날인 8일 서울과 똑같은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준비 시간이 너무 짧아 다시 작은 장날인 3월 10일로 거사일을 바꾸고 학생들과 읍민들에게 참가를 독려했다. 이에 박 선생도 김복현, 김강으로부터 독립선언문 50여통을 받고 학생들에게 취지를 설명했다. “당연히 참가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말했다. 학생들은 수피아홀에 숨어 밤새 치마를 뜯어 태극기를 만들었다. 드디어 10일 오후 3시 30분. 광주 부동교(不動橋) 아래 작은 장터에 수피아여학교·숭일학교·농업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기독교인, 주민 등 1000명이 넘는 군중이 모여들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받아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대한독립만세!”, “왜놈들은 물러가라.” 윤형숙은 시위 행렬의 맨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시위대는 시장 안을 돌아 서문통을 거쳐 우편국 앞으로 행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 헌병과 경찰은 군중의 기세에 눌려 감히 시위를 방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위대가 본정통을 돌아 경찰서 앞으로 나아가려 하자 헌병들은 실탄 사격을 하고 검을 휘두르며 무자비하게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일본 헌병이 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던 윤 열사의 왼팔 상단부를 군도(軍刀)로 내리쳤다. 잘려나간 팔이 붉은 피를 뿌리며 땅에 떨어졌다. 남은 팔에서도 피가 쏟아졌고 윤 열사는 정신을 잃었다. 조금 전까지 열사의 몸 일부였던 팔이 땅에 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다섯 손가락은 태극기를 꼭 붙잡고 있었다. 유혈이 낭자한 몸으로 열사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오른팔로 땅에 떨어진 태극기를 주워 들고 높이 흔들었다. 그러면서 더 큰 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군중은 비분강개하여 더욱 격렬하게 항거했다. 군중은 광주경찰서 앞으로 몰려들었다. 일제는 총검을 휘둘렀고 경찰서 앞마당은 피로 벌겋게 물들었다. 그 자리에서 100여명이 구금되었다. 한쪽 팔을 잘리고도 만세를 외친 윤 열사의 행동에 일본 군경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육군성에 다음날 보고됐다. 열사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도 못한 채 심문을 당했다. 일경은 굽히지 않는 열사를 가혹하게 고문해 오른쪽 눈을 멀게 했다. 팔이 잘린 열사는 재판정에도 나가지 못했고 결석재판으로 4개월 형에다 4년 연금형을 더한 판결을 받았다.●팔 잘려 재판 못 나가… 결석재판 징역 4개월 이후 열사는 함남 원산 마르다신학교에 입학했지만 고문 후유증이 심해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열사는 요양차 전북 전주로 내려가 전주기전야학교 사감으로 일하고 고창군의 한 유치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건강은 점점 나빠졌다. 1939년 고향 여수로 내려갔다. 왼쪽 눈의 시력마저 거의 잃었지만 열사는 봉산학원 교사로 교편을 잡는 한편 야학을 열어 글을 모르는 마을 청년들을 가르치는 데도 열정을 쏟았다. ‘외팔이 선생’으로 불리며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던 열사에게 더 큰 비극이 닥쳤다. 열사는 평소 반공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1950년 6·25가 터지고 북한군이 여수까지 점령했다. 지인의 집으로 피신했던 열사는 뒤를 캔 내무서원에게 붙잡혔다. 서울이 수복된 9월 28일 북으로 퇴각하기 직전 북한군은 여수 둔덕동 과수원에서 열사를 총살했다. 파란만장한 20세기의 전반을 헤쳐 온 열사의 나이 50세였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한 ‘사랑의 원자탄’ 주인공 손양원 목사도 함께 총살당했다. ●잘린 팔 무등산에 묻혔다 전하지만 못찾아 열사는 1900년 9월 13일 전남 여수 화양면 창무리에서 태어났다. 윤치홍씨와 택시를 함께 타고 30여분쯤 가니 확장 공사 중인 도로 옆 비탈에 열사의 묘소가 있었다. 바로 옆에 작은 공장이 있고 잡초가 드문드문 자란 쓸쓸한 모습이었다. 도로 너머로 추수를 마친 창무리의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창무리는 조선시대에 말을 방목해 기르던 목장이었다고 한다. 묘비에는 ‘고 순교자윤형숙전도사지묘’(故殉敎者尹亨淑傳道師之墓)라고만 씌어 있다. 윤씨는 이 비석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었다. 열사가 총살당했다는 비보를 전해들은 고향 친지들은 20리 길을 걸어 학살 현장을 찾아갔다. 어둠 속에서 한쪽 팔이 없는 시신을 수습해 그날 밤 고향 뒷산에 가매장했다. 이듬해 4월 교회 사람들이 묘비를 만들어 고향 마을로 가져왔으나 마을 사람들은 받아주지 않았다. 항일 운동에 몸바친 열사에게 단순히 ‘순교한 전도사’라고 이름 붙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석은 방치돼 소고삐를 매는 데 사용됐다고 한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뒤 가까운 친지들과 마을 유지들이 모여 묘를 이장하고 조촐한 묘비 제막식을 열어 열사의 영혼을 달래 주었다. 열사의 팔은 누군가 광주 무등산 자락에 따로 묻어 주었다고 한다. 자신이 죽으면 팔을 함께 묻어 달라고 했다는데 팔무덤을 찾을 길이 없었다. 추모비엔 이렇게 썼다. “당신의 충령(忠靈)을 천추(千秋)에 길이 전하게 될 것이며 당신의 거룩하신 충절을 값없이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정부, 2004년에야 건국포장 추서 열사에게도 한때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한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젊음은 일제에, 생의 마지막은 북한군에게 희생된 열사의 일생은 민족 비극의 축소판이었다. 2004년 정부는 열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새로 만든 묘비석에는 이런 글귀가 씌어 있다. “왜적에게 빼앗긴 나라 되찾기 위하여 왼팔과 오른쪽 눈도 잃었노라. 일본은 망하고 해방되었으나 남북·좌우익으로 갈려 인민군의 총에 간다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부고]

    ●정관록(사업)·용진·세진씨모친상 공훈의(위키트리 대표이사)·정용규(대전 시카고치과 원장)씨 장모상 18일 광주 VIP장례타운, 발인 20일 오전 6시 (062)521-4444 ●김병철(경제·인문사회연구회 평가실장)씨 장인상 18일 대구 가톨릭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20일 오전 7시 (053)324-9371 ●오성룡·학룡(에스알씨 대표)·지은·주영씨 부친상 18일 경상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20일 오전 7시 (055)750-8448 ●오훈규(KBO 심판위원)씨 부친상 17일 충남 공주시 공주장례식장, 발인 19일 오전 8시 (041)852-9900 ●민봉식(수협중앙회 상호금융부장)씨 모친상 17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 19일 (02)3010-2000 ●정성기(작가)·동기(변호사·전 청와대 민정수석)·석기·수경·은기(회사원)씨 모친상 이경재(목사)씨 빙모상 18일 서울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21일 영천 호국원 (02)2290-9442
  • 순천의료원,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료봉사활동

    순천의료원,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료봉사활동

    순천의료원이 라이프오브더칠드런 NGO단체와 함께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4일까지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료봉사를 펼쳤다. 정효성 원장과 박현정 내과 과장, 수간호사 2명과 사회복지사 1명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케냐 현지에서 활동하는 이대성 박사와 20여년간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이태권 목사,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직원, 자원봉사자 등 20여명과 함께 진료활동을 했다. 의료 봉사는 나이로비에서 9시간 거리의 난디 메테이테이 병원 및 해발 2700m의 고산마을 마구무를 중심으로 펼쳐졌다.두 지역에서 각각 700여명과 300여명 등 1000여명의 어린이와 주민들이 도움을 받았다.이번 행사에서 순천의료원 두룸박봉사단은 약품 일체와 노트·스케치북 등 학용품을, 순천시 의사회에서 칫솔, 아리랑 로타리에서 치약, 승평로타리에서 노트·축구공 등을 후원받았다. 난디 지역 두 곳의 학교를 찾아가 280여명의 아이들에게 준비한 학용품과 생필품을 전달했다. 봉사에 참여한 순천의료원 직원들은 “책임 있는 의료인으로서 이웃을 위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상 최선을 다해왔다”며 “재능을 나눠주려고 왔다가 얻은 게 더 많은 소중한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순천의료원은 앞으로 3년간 케냐에서 봉사활동을 더 하기로 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누가 이 청년을 살인범으로 만들었나

    누가 이 청년을 살인범으로 만들었나

    “총격 난사 살인범은 이번에도 범행을 예고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LA) 인근의 한 술집에서 7일(현지시간) 밤 총기를 난사해 12명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언 데이비드 롱(28)이 사건 전 페이스북에 범행을 예고하는 글을 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CNN은 9일 해병대원 출신인 범인 롱이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사람들이 날 미쳤다고 하면 좋겠다. 정말 대단한 아이러니 아닌가? 그래... 난 미쳤다.”면서 “하지만 총기난사가 끝나고 나면 당신네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작은 희망을 걸어 보거나... 아니면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나 하는 정도겠지... (그러고는) 매번...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의아해 하겠지”라고 적었다. 용의자와 해병대에서 함께 군 생활을 했던 토머스 버크 목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을 겪은 롱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 때문에 이번 사건을 벌였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우리는 군인들을 가능한 가장 폭력적으로 변하도록 훈련시키고는,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우리 (사회가) 참전군인들의 (의학적)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8년 8월 미 해병대에 입대한 롱은 2010년 11월부터 약 8개월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한 후 2013년 3월 부사관으로 제대했다. 결국 평범한 청년이 군대와 전쟁을 거치면서, 폭력적이고, 가학적으로 바뀐 셈이다. 이 때문에 전쟁 참전 군인들에 대한 치료와 사회 적응 훈련이 더 강화되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누가 이 청년을 살인범으로 만들었느냐는 지적이다. 그와 친구 관계라는 익명의 제보자는 CNN에 “이언은 안절부절하거나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국가를 위해 복무했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제대군인지원금을 가지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했다”며 “당시 어울리던 친구들 중 이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아직까지 별 다른 동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 연방수사국(FBI)은 롱의 범행동기를 찾기 위해 그의 집과 자동차를 수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해군이 손원일 제독의 빛바랜 사진을 꺼낸 이유는

    해군이 손원일 제독의 빛바랜 사진을 꺼낸 이유는

    11월 9일은 대한민국 해군의 창설기념일이었다. 해군은 손원일 제독의 빛바랜 사진 한 장을 처음으로 꺼내 들었다. 인천상륙작전 직후 미 해군의 스트러블(Arthur D. Struble) 제독과 악수하는 장면이다.(사진)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 해군 역사·유물사령부에서 이 사진을 입수해왔다고 전했다. 또 진해지역 부대는 이날 손 제독의 동상에 참배했다. 손 제독은 해군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위태로울 때 대한민국을 지켜낸 최초의 해군 제독이기 때문이다.해군 관계자는 10일 “인천상륙작전을 말할 때 흔히 맥아더 장군은 기억하지만 거기엔 손 제독의 숨은 공도 있었다”며 “그는 6·25 전쟁에서 벌어진 최초의 해전에서 승리한 영웅이었다”고 설명했다. 1945년 11월 11일 서울 관훈동에서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이 생겼다. 육·해·공군 중 첫 창설이었다.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손정도 목사의 아들 손원일이 해방병단 총사령관에 올랐다. 그는 이후 해군 제독, 국군 최고지휘관, 5대 국방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손 제독은 젊은 시절 민족 번영의 방법이 바다에 있다고 봤다.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대학에서 항해과를 나왔고 중국 및 독일 해운회사에서 승선 생활을 하며 항해술을 습득했다. 이후 그는 1946년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해군병학교를 창설해 초대교장이 됐고 미국과 협상해 37척의 비전투 함정을 인수했다. 이후 전투함 보유를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고 이 돈으로 미국에서 4척의 전투함을 구입했다. 이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첫 전투함인 ‘백두산함’이다. 백두산함은 6.25전쟁 발발 당일 동해로 긴급히 출동하다 부산 동북방 해상에서 무장병력 600여 명이 탑승하고 남하하는 함정을 발견하고 격침했다. 6·25 전쟁에서 벌어진 최초의 해전이었고 첫 승리였다. 또 맥아더 장군이 이끈 인천상륙작전은 영흥도와 덕적도를 탈환해야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손 제독의 지휘 아래 한국 해군은 1950년 8월 두 섬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고, 손 제독은 인천상륙작전부터 9·28 서울 수복작전까지 전장에서 함정과 해병대를 진두지휘했다. 서울 수복 작전 후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는 포고문을 발표한 것도 그였다. 1980년 운명한 손 제독은 “나라 없는 서러움보다 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다시는 내 조국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잘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소녀 신도들 ‘그루밍 성폭력’ 목사, 필리핀으로 도주

    소녀 신도들 ‘그루밍 성폭력’ 목사, 필리핀으로 도주

    10대 여성 신도 여러 명을 상대로 장기간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은 받는 30대 목사가 필리핀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내사에 착수했다. 인천지방경찰청 여청수사계는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관련 의혹을 접하고 인천 S교회 청년부 담당 목사 김모(35)씨를 내사하고 있다고 7일 밝혔다. 인천 모 교회 담임목사의 아들로 청년부를 담당한 김모씨는 전도사 시절부터 지난 10년간 중·고등부와 청년부 신도를 상대로 그루밍 성폭력을 저지른 의혹을 받고 있다. 그루밍 성폭력은 피해자와 친분을 쌓아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적으로 가해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피해자들은 전날 서울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 직접 나와 “피해자들은 대부분 미성년자였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도록 길들여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피해자가 최소 26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김씨 부자를 처벌해달라는 청원 글을 올렸다. 청원 글에 따르면 김씨는 현재 필리핀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측은 김씨 부자의 목사직 사임과 공개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피해자들과 합의하고 성관계 등을 했더라도 당시 피해자 나이가 만 13세 미만이었다면 형법상 미성년자의제강간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피해 당시 나이가 만 13세 이상일 경우에는 성관계의 강제성이 드러나지 않는 한 김씨를 처벌하기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성폭력이나 강제추행의 경우 친고죄가 폐지되면서 강제성이 있으면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더라도 수사할 수 있다”며 “남녀가 합의하고 성관계를 했을 경우 피해자의 당시 나이와 위계·위력에 의한 것이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혐의 적용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온 딸…실화탐사, 여성 상대 강력범죄 ‘긴급점검’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온 딸…실화탐사, 여성 상대 강력범죄 ‘긴급점검’

    MBC ‘실화탐사대’가 상견례를 앞두고 예비 신랑에게 살해된 한 여성의 사연을 다룬다. 지난 10월 24일 상견례를 앞둔 23살 여성이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사귄 지 3개월 된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신혼집 문제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 그녀는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3시간 후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7일 방송되는 실화탐사대에서는 사건 당일 3시간 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었는지를 취재했다. 이에 실화탐사대는 “제작진이 추적한 진실은 최초 언론 보도와 전혀 달랐다”고 밝혔다. 사건 당일 혼수문제로 다툼이 있었던 게 아니라 결혼을 미루려던 피해자의 태도에 가해자가 불만을 품었다는 것. 피해자의 부모는 3달 전 만남을 시작한 두 사람이 급하게 결혼을 약속하자 준비를 늦추길 요청했다. 하지만 남자는 일정대로 밀어붙였다. 가해자는 사건 발생 아침 8시부터 피해자에게 춘천에 올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서울에 취업한 피해자에게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이 있는 춘천에 와서 살 것을 강요했는데, 그녀는 결국 결혼을 약속한 이에게 춘천에서 살해당했다.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유족은 계획적인 범죄라고 주장하지만, 가해자는 현재까지도 견해차에 따른 우발적 범죄라고 반박하는 상황이다. 사건 당일 피해자를 살해한 뒤 인근 교회로 도망쳤던 가해자는 30분 후 체포됐다. 이에 실화탐사대 제작진은 가해자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목사를 독점 취재했다. 지난주에 이어 참혹하게 피살된 여성 피해자들의 비극적 사건들을 살펴보는 ‘긴급점검’ 기획 2탄은 7일 오후 8시 55분에 방송된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부고]

    ●손인이씨 별세 남효철(애드일렉코 회장) 기자·정자·숙희·호숙씨 모친상 박춘권(전 더케이서울호텔 본부장) 김채옥(한양대 명예교수) 김명수(전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박진수(큐시스 대표)씨 빙모상 남기찬(애드일렉코 본부장)씨 조모상 박범준(파이낸셜뉴스 차장)씨 외조모상 4일 서울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발인 6일 오전 8시 (02)2290-9442 ●이남수씨 별세 병국 병각 병학(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병욱씨 부친상 4일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1호실. 발인 6일 오전 5시 30분 용미리 제1묘지 (02)2227-7547 ●이기희씨 별세 성낙인(전 서울대학교 총장)씨 빙모상 4일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 6일 오전 7시 (02)2072-2011 ●노규덕(외교부 대변인)씨 모친상 4일 서울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 6일 오전 6시 010-5096-8050
  • ‘여신도 성폭행’ 이재록 목사에 검찰, 징역 20년 구형

    ‘여신도 성폭행’ 이재록 목사에 검찰, 징역 20년 구형

    수년간 여성 신도 여러명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에게 검찰이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정문성) 심리로 열린 이 목사의 상습준강간 등 혐의 재판에서 이렇게 구형했다. 또 보호관찰과 피해자에 대한 접근 금지, 성폭력 치료 강의 이수 등도 함께 명령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 목사는 수년에 걸쳐 만민중앙교회 여신도 7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올해 5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그가 신도 수 13만 명의 대형 교회 지도자로서 지위나 권력, 피해자들의 신앙심 등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항거불능 상태로 만들어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이 목사는 최후 진술에서 “180일을 감금당하고 있으면서 한쪽 눈이 실명됐다. 변호사 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면서도 “하나님을 영접하고 기도를 해 권능을 받았다. 전 세계인을 구제했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목사 측 변호인은 “피해자들이 계획적으로 고소한 음해 사건”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목사에 대한 선고는 오는 16일 오후 2시에 이뤄진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검찰, ‘신도 성폭행 혐의’ 이재록 목사 징역 20년 구형

    검찰, ‘신도 성폭행 혐의’ 이재록 목사 징역 20년 구형

    교회 신도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만민중앙성결교회 이재록 목사에게 검찰이 징역 20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검찰은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정문성)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상습준강간 혐의를 받는 이 목사에게 이 같이 구형했다. 이 목사는 수년 동안 만민중앙교회 여성 신도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 5월 구속됐다. 경찰과 검찰은 이 목사가 대형 교회 목사로서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로 만들어 성폭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재판에 출석한 피해자 측 변호사에 따르면 검찰은 “목회 활동을 하는 입장에서 신도들을 성적으로 유린한 사건”이라는 취지로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 목사는 최후진술에서 “180일 동안 구속돼있으면서 한쪽 눈이 실명되는 등 건강이 좋지 않다”면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내가 하나님을 영접하고 기도를 드려 권능을 받았다”면서 “지금까지 전 세계인을 구제해왔다”고도 말했다. 이 목사 측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피해자들이 피고인을 계획적으로 음해한 사건”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측 변호사는 “이 목사가 공판 과정 내내 모든 혐의를 부인해왔다”고 밝혔다. 선고공판은 오는 16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밥 퍼주는 목사’라더니…거액 부동산 빼돌려 항소심도 징역형

    ‘밥 퍼주는 목사’라더니…거액 부동산 빼돌려 항소심도 징역형

    지역 소외 계층에게 매일 식사를 제공하는 등 선행으로 ‘밥퍼 목사’로 알려진 목사가 거액의 부동산을 빼돌린 혐의로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부(부장 한정훈)는 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목사 김모(70)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김씨는 지난 2016년 18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매매하는 단계에서 피해자들로부터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총 4억 7000만원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그해 8월까지 잔금 13억원을 납부하고 소유권 이전 등기 절차를 이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김씨와 대리인은 잔금 납부 기한이 다가오자 돌연 자취를 감췄다. 피해자들은 납부 기한 당일 은행 계좌에 잔금을 확보해두고 김씨 등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이틀 뒤 돌연 나타난 김씨는 피해자들에게 “4일 안에 잔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매매계약을 해제하겠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기한 하루 전에도 법무사 및 김씨 대리인과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잔금 납부는 이뤄지지 못했다. 김씨는 기한이 하루 지나자 곧바로 조카 명의로 해당 부동산을 이전하는 가등기를 마쳤다. 김씨는 계약을 해제할 때부터 “매수인들이 기한 하루 전에 일방적으로 잔금 지급의사가 없음을 통지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1심 선고를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조형우 판사는 “피고인이 소유권 이전 등기를 적법하게 이행하려 하거나 잔금을 수령하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은 채 허위사실을 근거로 계약을 해제했다”고 판단했다. 조 판사는 “피고인이 매매계약을 직접 체결한 당사자로서 중도금 수령 이후에는 임의로 계약을 해제할 수 없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계획적인 범행으로 보여 그 죄질이 불량하고 지금까지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피해자들이 이 사건 부동산 경매절차로 3500만원을 회수했으나 피고인이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아니다”면서 피해 액수 대부분이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김씨는 10여년 전부터 해당 지역에서 ‘때밀고 밥 주는 목사’로 이름을 날렸다. 교회 인근에 작은 식당을 차려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매일 점심과 저녁을 무료로 주고, 동네 잔치를 열어 주민 수백 명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등 미담이 지역 언론을 통해 수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기고] ‘1991, 봄’/김종식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기고] ‘1991, 봄’/김종식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영화 ‘1991, 봄’ 시사회에 다녀왔다.‘1991, 봄’은 1991년 4월 26일 강경대 열사로 시작해 5월 25일 김귀정 열사까지 국가의 불의에 저항한 11명의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한국판 드레퓌스’로 불리었던 당시 유서 대필과 자살 방조라는 죄명으로 낙인찍힌 스물일곱살 청년 강기훈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시대적으로 보면 지난해 개봉해 720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1987’의 후속작 같은 영화다. 1987년 6월 항쟁은 미완이긴 해도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승리의 항쟁으로 기억되는 반면 1991년 봄은 실패한 항쟁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성공한 항쟁이 얼마나 될까. 1980년 5월 민중 항쟁은 군인들에 의해 제압됐고 동학혁명도 실패했다. 그렇다고 해서 혁명과 항쟁의 고귀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겠는가. 민족민주열사추모연대의 자료에 따르면 1959년 사형당한 조봉암 선생부터 1987년 이한열 열사까지 수십년 동안 국가에 의해 희생된 열사들보다 1987~1991년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열사들이 많다고 한다.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1989년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의 방북으로 통일 논의가 봇물 터지듯 나왔고 국가 폭력에 저항해 투쟁이 들불처럼 번져 일어났다. 반통일적이고 반민주적인 불의한 정치 권력과 탐욕스런 자본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와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이었고,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격렬했던 민중 항쟁의 5년이었다. 영화에서 노동자 김진숙은 하늘 위에서 369일 동안 고공농성한 이유가 1991년 의문사한 박창수 열사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김진숙은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죽음을 세상에 말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렇게 1987년과 1991년은 2017년 촛불 항쟁으로 연결돼 있다. 영화에서 박승희 열사는 말한다. “왜 사람들은 죽은 사람보다 죽인 사람 편을 들까.” 김귀정 열사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난 무엇이 될까, 10년 후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필자는 1991년 봄의 싸움으로 감옥에서 4년을 보내는 대가를 치렀지만 여전히 살아 있기에 김귀정 열사의 질문이 현재진행형이다. 거울을 보듯 내 삶을 성찰하게 만들었고 내 삶의 무수한 선택을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는지 끊임없이 되묻게 했다. 그 질문들은 내 인생의 항로에서 흔들림 없이 어두운 밤 갈 길을 밝혀 주는 북극성 같은 질문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1991, 봄’은 회고적이기보다는 대단히 성찰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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