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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핸드경락 전문가 김여진씨 ‘손으로 미인을 만들 수 있다’ 펴내

    ◎손이 부지런하면 예뻐진다/작은 얼굴 원하면 얼굴­뒷목 마사지/귀 마사지 하면 피부탄력 팽팽 환절기를 맞아 성형외과나 피부과를 찾는 이들이 많다. 깨끗한 피부와 좋은 느낌을 줄 수 있는 편안한 얼굴로 바꾸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비용이 만만치 않아 성형 수술을 하기란 쉽지 않다. ‘손으로 미인을 만들 수 있다’라는 책을 펴낸 김여진 핸드경락 성형미용센터 원장은 손으로 경락과 경혈을 찾아 마사지해주면 얼굴형과 피부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김원장의 도움말로 간편하면서도 효과적인 손마사지법을 소개한다. ◆얼굴을 작게 하려면 양 손바닥을 강하게 108회 마찰시킨 후 손가락 끝으로 강약을 조절하면서 얼굴과 뒷목의 경혈점을 각각 원그리듯 문지른다. 다시 손바닥을 마찰시킨 후 양손바닥을 턱선에서 귀밑까지 쓸어넘기는 동작을 9회 반복한다. ◆피부를 탄력 있게 하려면 귀마사지를 검지와 중지로 귀를 잡고 아래위로 강하게 36회 정도 열이 나도록 문지른다. 이어 중지 끝으로 귓속 주위를 36회 정도 더 문지른다. 검지와 중지로귓바퀴 전체를 감싸서 36회 문지른다. 손바닥을 이용해 귀를 앞 뒤로 36회 접었다 편 다음 다시 귀전체를 잡아당기면서 흔들어준다.이때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귀 앞쪽에,검지와 엄지는 귀뒷쪽에 바짝 붙여서 후끈후끈한 열기가 나도록 문질러야 좋다. 귀마사지는 머리속이 맑아지므로 건망증이나 치매 예방은 물론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잠들기 전에 해주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갑상선·폐·기관지 질환에는 목마사지 양손바닥을 마찰시켜 따뜻하게 한 다음 목에 아이크림을 적당히 바른다. 앞목에서 어깨너머까지 부드럽게 시작하여 점점 강하게 36회 문지른다. 붉은 기운이 돌 정도면 좋다. 다음 왼쪽 목을 약간 치켜들고 오른쪽 손바닥 전체로 왼쪽 목을 위에서 아래로 36회 문지르고 반대편 목도 같은 방법으로 한다. 앞목을 양 손끝으로 번갈아가며 턱선을 향해 쓸어올리는 마사지를 36회 한다. 앞옆목 마사지가 끝나면 양손끝으로 귀밑에서부터 뒷목줄기까지를 강하게 36회 문질러 준다. ◆무력증 정신불안 우울증해소법 편안하게앉거나 누운 상태에서 턱을 약간 치켜들고 양손가락 열개를 이용하여 뒷목과 뒷머리를 강하게 108회 문지른다. 다음 반듯하게 누워 머리만 들었다 놓았다를 36회 반복한다. 머리를 들었을 때 윗배가 당기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발끝이 보이는 정도도 좋다. 뒷목이 많이 뭉치고 굳어있거나 평소 두통증세가 있는 사람은 운동중 머리 속이 당길수 있다. 그러나 계속하면 어깨와 등줄기의 군살이 없어지며 머리 속이 맑고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가격 낮추고 품질은 높게”/부동산­분양정보 하이라이트

    ◎분당구 구미동 신영 ‘시그마Ⅱ 아케이드’/주변 상가보다 최고 50% 저렴 (주)신영은 경기도 분당구 구미동 오리역 역세권에 위치한 하우스텔 ‘시그마Ⅱ’ 단지내에 ‘시그마Ⅱ 아케이드’를 신축,분양중이다. 신영은 IMF시대에 맞춰 분양가격을 주변 상가에 비해 40∼50% 저렴한 지하 1층 400만원대,지상 1층 900만원대의 파격적인 분양가격으로 분양한다. 또한 점포별로 3,000만∼5,000만원의 중도금 대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시그마Ⅱ 아케이드는 현재 60% 정도 공정을 보이고 있으며,최소 1,000세대가 넘는 독립상권을 확보,왠만한 중대형 아파트단지내 상가를 능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하철 분당선 종착역인 오리역 역세권은 용인·신갈개발지구 및 수도권 이남을 연계하는 지역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 높은 신장세가 예상된다. 99년 9월 입주예정. 분양상담은 (0342)716­3456. ◎김포 신안 ‘실크밸리’/서울 출퇴근 용이 전원형 아파트 신안건설산업은 경기도 김포시 감정동에 총 4,000여세대의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신축,올 하반기부터 분양한다. ‘실크벨리’로 이름붙여진 이 단지는 주변이 산자락으로 둘러쌓여 있는 전원형 아파트이면서도 김포시내와도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 여의도까지 승용차로 20분밖에 걸리지 않아 서울 출퇴근도 용이하다. 김포공항과 일산까지는 각각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양도세 면제,취득세 등록세 감면 등 각종 세제 혜택이 적용되며 당첨권 전전매도 가능하다. 올 하반기 1차로 분양하는 1,786세대는 23∼71평까지 다양한 평형을 적용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평당 분양가는 340만∼360만원선이다. 이같은 가격은 올 상반기 김포지역에서 분양한 아파트 평당가가 400만원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계약자들에게는 주택은행 융자에 9.95%의 확정금리를 적용하도록 알선하고 있으며,계약자가 계약 해지를 요구하면 분양대금은 물론 9%의 이자까지 돌려주는 ‘이자환불보장제’도 도입했다. 문의 (0341)985­1188. ◎일산 현대 ‘밀레니엄 빌리지’/스포츠센터 평생 이용권 선물 현대산업개발이 경기도 일산 장항동 정발산 산책로 입구에 세우고 있는 ‘밀레니엄 빌리지’는 지하 4층,지상 15층의 초대형 건축물이다. 지하에는 주차장이,지상 1∼2층에는 생활시설이 들어서고 3층부터 15층까지가 오피스텔이다. 기존 오피스텔 보다 주거부분을 대폭 강화했다. 수영장과 에어로빅 스쿼시클럽 사우나 건강클리닉 등이 건물내에 들어선다. 나아가 계약자 전원에게 스포츠센터 평생이용권을 준다. 분양면적은 비교적 여유있는 주거 및 업무를 위해 대형화했다. 56.33평부터 94.95평까지 4종류. 분양가는 평형과 층별에 따라 평당 415만원에서 435만원까지로 책정돼 있다. 주차시설은 지상 104대,지하 601대 등 모두 705대 규모로 가구당 2.5대꼴의 여유로운 공간을 자랑한다. 분양문의 (0344)908­0044. ◎광명 철산지구 주공아파트/2000년 지하철 7호선과 연결 주공이 광명시 철산·하안동과 수원시 조원·매탄동 일대에 각각 2,351가구와 2,400가구 규모의 아파트단지를 공급한다. 오는 12월부터 분양을 시작하는 철산지구는 공공분양 1,117가구,5년 임대 1,234가구이며 17평 580가구,22평 654가구,24평 462가구,34평 541가구,45평 114가구이다. 지구 철거민들에게 우선 청약권이 있고,나머지는 일반 청약저축 가입자들이 분양받을 수 있다. 광명시청 경찰서 병원 체육공원이 인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도덕산이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2000년초 지하철 7호선(철산역)이 연장개통된다. 조원지구는 공공분양 1,936가구,근로복지 400가구,5년 임대 18가구이며 현재 분양이 진행 중이다. 경수산업도로와 인접해 서울과 수원 진입이 쉽고 4호선 사당역까지 20분이면 닿는다. 단지안에 동사무소,초등학교가 들어서고 인근에 삼림욕장 만석공원 종합운동장 등이 있다. 문의 (0331)250­8380∼4 ◎미아동 ‘북한산 SK시티’/국내최대 1만평 자연공원 조성 SK건설은 이달 말 서울 미아동 1­1지구의 재개발아파트 단지인 ‘북한산 SK시티’를 분양한다. 재개발 아파트단지로는 최대규모다. 전체 5,327가구 가운데 조합원분을 뺀 1,750가구가 분양 대상이며 43평형 425가구, 33∼34평형 200가구,25평형 1,125가구. 2001년 10월 준공된다. 단지안에 관공서 학교 상점 레저시설 등을 갖춰모든 생활을 그 안에서 해결하는 ‘원스톱 라이프’개념을 도입했다. 지하철 4호선 미아삼거리역,도시순환고속도로 진입램프가 인접해 교통이 편리하다. 북한국립공원을 천연 상태로 활용,국내 최대규모인 1만평의 자연공원을 단지안에 조성한다. 북한산 등산로와 바로 연결된다. 25평에도 부부전용욕실을 설치하는 등 공간이용을 극대화했으며 자연색조의 고급 마감재 사용은 물론, 분양때 선택한 인테리어와 입주시점의 유행에 맞춘 인테리어 가운데 입주자가 고르는 ‘패션 센스’제도를 도입했다. 문의 (02)982­1030 ◎수원 권선지구 삼성 아파트/독자개발 인테리어 시스템 적용 삼성물산 주택개발부문은 수원 권선지구와 대구 진천지구에서 각각 442가구와 767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분양중이다. 수원 곡반정동에 신축중인 권선지구 단지는 32평형(분양가 1억1,980만원)382가구,43평형(〃1억5,600만원) 60가구로 2000년 10월 준공된다. 두 곳 모두 삼성이 전통미를 살려 개발한 한국형 아파트 인테리어시스템이 적용되며 PC통신,화상전화,원격교육,원격진료서비스가 가능한 첨단 멀티미디어 정보화 배선시스템과 무인경비시스템,첨단엘리베이터,원격가스검침장치 등 각종 생활 편의시설이 도입된다. 문의 수원 (0331)222­3303 대구 (053)639­3302 ◎목동 부영 ‘W그린타운 Ⅰ·Ⅱ·Ⅲ’/철골조 시공… 최고 20% 할인 부영은 서울 목동 ‘W그린타운Ⅰ·Ⅱ·Ⅲ’(609가구)과 경기도 남양주시 ‘E그린타운’(2,042가구)을 각각 20%,12% 할인된 파격적인 금액으로 분양중이다. 목동 W그린타운 Ⅰ·Ⅱ·Ⅲ은 반영구적 철골조로 시공된 주상복합빌딩으로 내부구조변경이 용이하고 지하주차장 면적을 최대한 확보했다는 장점이 있다. 수영장 볼링장 등 대형스포츠센터를 갖추고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황금상권을 갖추고 있다. 남양주 E그린타운은 전체면적 중 40%의 녹지에 테마공원과 조깅코스 등 쾌적한 공간을 조성하고 단지내 광케이블을 설치,미래형 멀티미디어 통신 이용및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평당 가격은 448만∼750만원이며 입주시기는 W그린타운Ⅰ·Ⅱ·Ⅲ이 1999년 10월부터 2000년 9월까지,E그린타운은 2001년4월이다. 분양문의 목동 (02)647­8170∼3,남양주 (0346)555­2411∼4 ◎광주 태전지구 ‘성원타운’/첨단 정보통신 서비스망 구축 성원건설이 경기도 광주 태전지구에 32∼51평의 다양한 평형을 갖춘 ‘성원타운’ 862가구(2,3단지)를 분양 중이다. 성원타운은 전체 2,600여가구의 대규모 단지내에 첨단 정보통신 서비스망을 구축해 홈쇼핑,홈뱅킹,인터넷 이용이 쉽게 설계됐다. 중부고속도로,분당∼청담대교 고속화도로,수서∼수지간 고속화도로 등 쾌속 교통권내에 위치해 있다. 전 세대에 언더씽크형 정수기를 설치하고,안방황토방(1층 전세대),원목마루판(51평형)과 샤워부스(38.51평형) 등이 별도 비용없이 제공된다. 분양가는 1억2,800여만원에서 2억 1,3000여만원 까지이며 입주시기는 2000년 10월이다. 분양문의 (0342)722­0400 ◎광주 곤지암 쌍용아파트/분양가 자율화 이전 가격 판매 쌍용건설이 경기 광주군 곤지암 21가구,서울 성북구 이문동 145가구를 선착순 분양한다. 경기도 광주군 곤지암은 인근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IC와 43번 국도를 통해성남·하남과는 30분,서울의 강남·송파와는 40분 거리다. 1차 분양을 포함, 총 849세대로 금융기관 의료시설 등이 갖춰져 있으며 초·중·고교 단지가 옆에 있다. 30평형 10가구(9,970만원) 39평형 9가구(1억3,718만원) 46평형 2가구(1억5,983만원) 등이다. 분양가 자율화 이전 가격으로 분양된다. 문의 0347­61­9073. 서울 이문동은 분양당시 90% 계약률을 기록했던 곳. 총 1,563가구 중 145가구가 남아있다. 24평형 96가구(9,990만원) 32평형 13가구(1억5,300만원) 42평형 36가구(2억1,900만원)다. 신이문역에서 1분 거리이며 동부간선로 신이문로 한천로 등이 가까워 여의도 시청에서 30분 거리다. 원목온돌마루 식기세척기가 무료 시공된다. 문의 790­5552 ◎청주 고속버스터미널 대우 ‘메가폴리스’/임대 안될 경우 잔금 1년간 유예 대우건설이 청주시 고속·시외버스터미널 상권에 1만6,500여평 규모의 초대형 상가인 ‘대우 메가폴리스’를 소유권과 임대 분양방식으로 동시에 분양한다. 소유권 분양이 된 점포는 대우가 임차인을 보장하며 임대가 안될 경우 대우가 잔금을 1년간 유예하는 등 임대보장분을 맡는 방식이다. 대우메가폴리스는 전문상가 쇼핑몰 복합상가 3개동으로 구성된다. 점포당 분양가는 국제의류 도매센터가 1,000만∼5,000만원대 일반상가가 1억∼3억원 정도다. 입점은 내년 3월이다. 문의 (0431)257­0857
  • 선택과목 재조정 필요(공무원 시험 변화의 바람:4)

    ◎과목별 난이도 들쭉날쭉… ‘運’이 당락 좌우/실력은 갖추어도 “난이도 예측 잘해야 합격”/고시에도 ‘눈치작전’ 필수… 제도개선 시급 신림동 고시생 사이에는 ‘폭탄 터졌다’는 말이 있다.하필이면 유난히 어려운 선택과목을 골라 시험을 망쳤다는 얘기다.‘폭탄’은 컴퓨터 게임의 지뢰찾기에서 나온 표현이다. 올해 사법고시 1차 시험에서는 스페인어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한다.스페인어가 상당히 어려웠다는 것이다.지난해 스페인어가 쉬웠고 영어가 어려웠지만 올해에는 반대였다.영어는 상대적으로 쉬웠다.폭탄이라는 말에는 ‘실력보다는 운’이라는 수험생들의 비아냥도 없지않다. 수험생들은 선택과목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 여부로 당락이 결정나기도 한다고 말한다.합격선에 수험생들이 몰려 있는 마당에 1∼2점 차이는 엄청나기 때문이다.이런 탓에 선택과목을 정하는 데 눈치작전은 필수라고 수험생 韓모씨(28)는 전했다. 올해 어려웠던 과목을 내년에 선택하면 쉬울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올해 스페인어를 선택한 사람들은 지난해 쉬웠던 점을 들어 난이도 예측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실력이 아닌 운따라 합격하는 현상을 없애려면 선택과목의 난이도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수험생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행정자치부는 수험생들의 이런 항의성 주장에 난이도를 조정하려는 노력보다는 변명에 급급하다.행자부 인사국 고시출제과의 한 관계자는 “수험생들은 난이도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관계자는 근거로 올해 스페인어의 응시자 평균은 43점이었고 영어 46점,불어 45점,일본어 44점이었고 독일어가 49점으로 높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하지만 지난해 영어는 43점이었고 스페인어는 무려 53점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행자부의 논리는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지난해 스페인어를 선택한 수험생들이 유리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행자부는 또 필수과목은 100점 만점이고 선택과목은 80점으로 배점을 달리했기 때문에 과목선택이 당락을 결정짓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특히 합격자 중 상위 10% 이내의 성적자들은 어떤 과목을 선택하더라도 비슷한 성적이 나오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시 관련자들은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신림동 한 고시학원의 기획실장은 “선택과목마다 난이도를 감안해 영어의 최고득점이 95점이었고 스페인어의 최고득점이 75점이었다면,스페인어의 75점이 영어의 95점과 같도록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시전문 월간지인 고시계의 黃泳成 편집인은 “사법고시 1차의 경우 수험생의 90% 이상이 1선택으로 형사정책을 선택하고 있고,2선택은 경제법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선택과목의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黃씨는 또 행정고시의 사회법과 노동법은 내용만 비슷하고 이름만 다를 뿐이고 국사의 시험과목도 국사와 한국사로 나뉘어져 있는 등 선택과목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 벤처산업의 토양(朴康文 코너)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된 데는 그럴 만한 바탕이 있었다. 한 가지는 활발한 기술 개발인데,강한 유인 요소가 있었다. 성공하면 큰 돈이 들어오고, 더러는 작위까지 받기도 해 사회적 지위가 껑충 뛰었다. 야망과 능력이 있는 젊은이들이 여기에 뛰어들었다. 18세기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잘 알려져 있듯이 리처드 아크라이트의 방적기 발명과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급격히 촉진되었다. 이 기계들의 발명가로 일컬어지는 두 사람은,좀더 엄밀히 말하면,벤처 사업가라고 하는 편이 더 맞다. 두 사람보다 먼저 그런 기계를 만든 이들이 있지만,이 기계들의 상업적 가치를 알고 크게 개량하여 실용화한 것은 이 두 사람이다. ○막대한 富·신분상승 보장 아크라이트는 교육이라고는 거의 받아보지 못했어도,스스로 아이디어를 보태 실뽑는 기계를 훌륭하게 만들었다. 특허받은 이 기계의 제조와 판매로 그는 당대의 거부가 되었다. 그때 벤처 자본이란 말은 없었으나,개발 과정에서 모험적으로 자본을 대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증기기관이란 것도 사실은 와트가 태어나기 전에 발명된 것이었다. 젊은 기계 기술자인 그는 증기기관의 열 손실을 막고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와트는 마침내 증기기관 제작 공장에 망대까지 세워 기술 유출을 막으면서 독점적으로 생산했다. 영국에서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으로서,발명품이나 훌륭한 개량품을 낸 사람에게 독점적인 이익을 보장하는 특허제도가 잘 시행되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당시 영국은 이발사 출신인 아크라이트 같은 이에게도 공적이 크면 왕이 기사 작위를 줄 만큼 활력있고 탄력있는 사회였다. 이제 우리 사회는 산업시대에 이어 정보시대를 맞고 있으며 정보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들 한다. 의식구조도 산업사회의 것에서 정보사회의 것으로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하고,정보산업이 희망의 등대라고도 하며,벤처 정신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데,요즘 우리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공무원 수험서에 매달려 있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전공과 관계없이 공학도도 인문학도도 공무원이 되겠다고 기를 쓴다. 이 현상만 놓고 보면,산업사회 이전 왕조시대에 있던 과거가 되살아난 듯하다. 그 많은 청년들이 부와 지위,그리고 자아 성취를 공무원직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테고,달리 일자리 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일테니,이들에게 벤처 정신이 없다고 말한다면 잔인한 일이 될 것이다. 벤처 정신이란 것은,산업혁명 무렵을 보더라도,그것이 자랄 토양이 있어야 깃든다. ○효율성 가로막는 구조 그러나 과연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산업사회인가조차도 의문이다. 성숙한 산업사회의 생명은 효율성인데,그것을 막는 뇌물과 정실,그리고 투명성 없는 경영이 잡초처럼 무성하다. 이런 부실한 바탕 위에서 정보사회가 이루어진다 해도 쭉정이가 되기 십상이다.감출 것이 많은 사회라면 정보의 공개와 공유는 원활히 될 수 없다. 또한,투자 가치를 판별할 눈이 없으니,뭉칫돈이 범상한 돈놀이에나 몰리고 목마른 벤처 기업에 가지 못한다.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이가 ‘천사’(벤처 투자가)를 만나기는 아직 쉽지 않다.
  • 고은 신작시집 ‘속삭임’ 출간/40년 이어온 크고 넓은 詩세계

    ◎히말라야 순례 1년만에 71편 선봬/자연과 끝없는 대화통해 자아찾아 “이 길밖에/다른 길 몰랐다/지난 40여년/나는 늘 모자란 울음이었다/오늘은/조그만치 남아 있는 목마름으로 앞산을 본다”(‘어느 날’) 올해는 고은 시인의 시 나이가 불혹이 되는 해,그가 지난해 히말라야를 순례한 뒤 1년만에 ‘속삭임’(실천문학사)이란 신작시집을 내놓았다. “히말라야를 다녀온 뒤 심신이 상해 무위도식하기를 1년여,그 공백 가운데서도 시마(詩魔)는 야릇하게 늘어붙어 하나의 시집을 낳았다. 외침이나 타령이라기보다 속삭임인 듯하다”는 게 그의 말. 고은의 시가 줄곧 우리 문학의 중심에 서왔음을 감안하면 그의 시력(詩歷) 40년은 단순한 개인적 의미를 넘어 문학사적으로도 큰 의의를 지닌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노래섬’‘측백나무울타리’‘히말라야의 학’‘정선 갈래사’‘제주 사라봉의 밤’‘소 찾는 길(尋牛十圖)’‘어느 날’ 등 71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중에는 지난해 가을 히말라야를 여행하면서 얻은 시편들도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늙은 바람이 분다/긴 시간의 뒤/학 한 마리가 활개칩니다…마침내 북인도 비하르주 마른 숲 언저리에/일제히 내려와 숨차/여기저기 앉았습니다/처음에는 손님이었고/다음에는 서먹서먹 주인이었습니다…”(‘히말라야의 학’) 히말라야,그것은 어느새 시인의 가슴에 둥지를 틀었다. 시인은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의 끝없는 대화를 통해 궁극의 자신을 찾는다. 그것은 곧바로 순수에의 동경으로 이어진다. 순수가 안겨주는 혹은 순수가 내포하고 있는 지극한 맑음. 거기서 시인은 삶의 본질을 읽는다. 93년의 인도 기행문집 ‘신왕오 천축국전’에서도 보듯 시인에게 있어 ‘떠남의 미학’은 언제나 삶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귀결된다. 고은의 문학세계는 너무 크고 넓어 요령부득이라고들 얘기한다. 거대한 사상적 보폭 때문에 자잘한 삶의 결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산성(多産性)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도 고은의 시가 ‘큰 시’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의 시편은 늘 새롭다. 섣불리 흉내내기 힘든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탓일까. 시작생활 40년을 맞아 내놓은 이번 시집은 고은 시인의 시적 발자취를 다시 한번 더듬어 보게 한다. 한때 승려의 길을 걷다 환속한 그는 문단 데뷔 2년 뒤인 60년 첫시집 ‘피안감성’을 내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다. 60년대 허무의 정서에 뿌리를 둔 작품을 발표하던 그는 70년대 들어 암울한 정치현실에 눈 뜨면서 역사의식이 깃든 시들을 토해낸다. 80년대 후반부터 차례로 내놓은 서사시 ‘만인보’와 ‘백두산’은 고은 문학세계의 방대함과 시적 포괄성을 한 눈에 보여주는 대작들이다. 가파르게 치달아온 고은의 삶,그것은 항상 그의 시세계와 맞닿아 있다.
  • 졸라 등 순수문학인 작품 ‘밤의 순례’ 출간

    ◎세계적 문호들 공포소설 모음집 세계적 문호들의 공포소설을 한데 모은 작품집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미스터리 마니아 정태원씨가 엮은 ‘밤의 순례’(드림북스). 공포소설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소설집에는 영국작가 바이라스 샤랑의 ‘차코와의 인터뷰’,D H 로렌스의 ‘흔들목마 우승자’,에밀 졸라의 ‘올리비에 베카일의 죽음’,찰스 디킨스의 ‘신호수’,에드거 앨런 포의 ‘벨드마와 최면술사’,헨리 제임스의 ‘퍼디타의 옷상자’등이 실려 있다.또 기 드 모파상과 오노레 드 발자크,루드야드 키플링,프로스퍼 메리메 등의 작품도 소개된다. 외국의 저명한 순수문학 작가들이 공포소설을 썼다는 것 자체가 우리 문학현실에서는 ‘외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국내에서 순수문학인이 공포소설을 쓴 예는 거의 없다. 하지만 공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으로,유령이나 초현상 등은 삶의 심연을 생각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학적 소재임에 틀림없다. 정태원씨는 “대개 공포소설이라고 하면 아동이나 학생용 괴담 정도로 여기고 있으나 이번 기회에 그같은 대중문학 특히 공포문학의 경시풍조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포항제철(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기업)

    ◎적자 모르는 초우량 경영/제철보국 30년 국가경제 개발 견인/정부주식 연내 매각 민간기업 변신 서둘러/대기업들 황금알 잡기 지분 확보전 후끈 ‘창업 이래 한차례의 적자도 없었던 초우량 기업’‘올해 상반기 순이익만 6,800억원에 이르는 알토란 기업’­포항제철을 이르는 말이다. 올해로 창업 30년을 맞은 이 포항제철이 연말까지 정부보유 주식 26.7%를 매각,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한다. 제2의 창업을 하는 셈이다.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 계획에 따라 오는 10월 포철 지분 가운데 10% 정도를 국내외 민간기업에 매각하는 것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보유주식 모두를 일반에 매각할 방침이다. 재정경제부가 갖고 있는 882만주(9.14%)와 산업은행 소유의 2,274만주가 대상이다. 정부는 지분매각과 관련,동일인 지분한도를 2001년까지 3%로 묶어 특정기업이 포철의 지배주주로 등장하는 것을 막는다는 방침이다. 포철 역시 이같은 주주의 분산으로 소유와 경영이 완전 분리되는 전문경영인체제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포철의 지분 3%는 그동안 철강시장을 넘보지 못했던 대기업들에게 있어서 놓칠 수 없는 ‘황금알’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2001년이면 지분 한도가 폐지되는데다 당장이라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지분을 추가확보할 수 있어 대기업들의 포철지분 확보전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미 각 대기업들은 사내에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관련 정보 수집에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 대기업에 맞서 인천제철 동국제강 강원산업 한국철강 등 기존 철강업체들도 포철지분을 공동 매입,핵심주주그룹을 형성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포철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열연 냉연 강관소재 등 철강제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이같은 업계 움직임에 대해 정부는 특정기업의 독과점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해 소유를 최대한 분산시켜 누구도 경영권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우리 사주와 국민주 방식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포철 역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강도높게 요구하고 있다. 포철 관계자는 “영국 브리티시 스틸의 황금주 제도나 프랑스 유지노사의우호적 주주그룹 구성,일본 신일본제철의 전문 경영인 체제 등을 도입해 기초 소재산업체로서의 공익적 기능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민영화 방침으로 포철은 지금가지 성공적인 경영으로 다진 기반을 바탕으로 명실공히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초일류 철강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해외투자가들의 자본 및 경영 참여를 통해 선진 경영기법을 적극 도입함으로써 전문 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체제가 강화되리라는 전망이다. 나아가 포철의 민영화를 계기로 국내 철강산업과 수요산업의 구조조정 및 체질개선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68년 창립… 세계 2위 제철社로 급성장 포항제철은 70년대 개발경제시대의 고도성장과 궤를 같이해 왔다. 68년 자금 기술 경험 자원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철강불모의 상태에서 포철은 ‘우향우 정신’만으로 문을 열었다. 제철사업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이루지 못할 때는 건설현장의 모두가 영일만 앞바다에 뛰어든다는 각오였다. 그러나 적수공권(赤手空拳)의 창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66년 미국 영국 독일 등 5개국 8개사로 이뤄진 국제제철차관단(KISA)이 돌연 종합제철 건설의 타당성에 이의를 제기했고,곧 이어 해외 차관이 끊기면서 창업 자체가 무산될 뻔 했다. 여기서 이른바 ‘하와이구상’이 나왔다. 한·일 수교를 계기로 일본으로부터 제공받은 자금의 일부를 당초 농업부문에 지원하려던 계획을 바꿔 제철소 건립에 사용키로 한 것이다. 포철의 고속 성장과 흑자경영은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창업정신이 바탕이 됐다. ‘국가 최대 숙원사업의 수행자로서의 책임감과 노력으로 국민 여망에 보답한다’는 것이다. 창업 초기 포철은 외국으로부터 설비를 들여오면서 제반 조업기술과 노하우를 함께 배우고 익혀 나갔다. 그러나 이같은 기술이전은 포철의 급성장을 일본 등 선진 각국이 경계하기 시작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이런 견제가 오히려 포철에게는 자생력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77년 기술연구소,86년 포항공과대학,87년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을 잇따라 세워 생산현장과 연구소,대학의 연구기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산학연 협동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세계적 수준의 자체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창업 30주년과 함께 올해 완전 민영화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 포철은 정부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전문경영인 체제를 바탕으로 흑자경영기조를 지속해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 포철은 ‘최대생산­최대판매’의 양적 성장전략에서 ‘적정생산­최대이익’이라는 이익경영을 꾀하고 있다. 나아가 21세기의 세계화·개방화에 맞춰 생산 판매 구매 투자 등 각 부문에 걸쳐 글로벌 스탠다드에 입각한 혁신운동을 강도높게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포철의 연간 철강 생산능력은 지난해 2,643만t으로 세계 2위 규모다. 제철소 1기 설비가 준공된 73년 103만t에 불과했던 것이 25년만에 40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포철 劉常夫 회장 취임후 국제통화기금(IMF)체제는 초우량기업 포철에도 변신을 강요하고 있다. 지난 3월 劉常夫 회장이 취임한 뒤포철은 적지 않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경영전략을 양 대신 질 위주로 전면 수정했다. “본업에 충실하자”는 劉회장의 경영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劉회장의 첫 구조개혁 조치는 지난 6월 단행한 판매구조의 일원화. 포철과 판매전문 계열사인 포스틸로 나뉘어 있던 열연·냉연 등 주력제품 판매를 포철로 단일화했다. 유통비용 절감과 가격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劉회장이 두번째로 손 댄 부문은 투자 쪽이다. 국내외 투자를 줄이며 ‘호흡조절’에 나섰다. 광양에 건설중이던 연산 200만t 규모의 제2 미니밀사업과 중국 대련의 석도강판 합작사업 및 광동성 전기아연도금강판 합작사업,인도네시아의 100만t 미니밀 건설사업 등을 전면 중단했다. 공급과잉과 고금리,자금시장의 불안정 등에 따른 조치다. 이밖에 포스코개발과 포스에이씨,포스코경영연구소 등 계열사에 대해 인원감축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같은 작업들은 그러나 소리소문없이 추진돼 왔다. 바로 그것이 劉常夫 회장의 경영스타일이라는 게 포철 관계자의 설명이다. 尹錫萬 상무는 “劉회장 취임 후 포스코개발 415명,포철로재 215명 등 계열사에 대해 감원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작업이 추진됐지만 별다른 마찰없이 이뤄졌다”며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는 劉회장의 경영스타일이 이런 조용한 구조개혁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다. 劉회장의 향후 개혁방향은 이같은 군살빼기를 바탕으로 수요산업 고도화를 선도할 전략제품을 집중 공략해 나가는 데 맞춰져 있다. 전략 품목은 석유수송용 강관,강구조물,타이어코드·스프링,자동차,스틸캔,법랑,셰도우 마스크,스테인리스 등 8개 품목. 포철은 이들 품목마다 전문가 그룹을 구성,품질향상과 함께 고객서비스 증진을 꾀하고 있다. □포항제철 연혁 68년 4월1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창립 70년 4월1일 포항제철소 1기 설비 착공 73년 7월3일 포항제철소 1기 설비 준공(조강 연산 103만t) 76년 5월31일 포항제철소 2기 설비 준공(조강 연산 260만t) 78년 12월8일 포항제철소 3기 설비 준공(조강 연산 550만t) 81년 2월18일 포항제철소 4기 설비 종합준공(조강 연산 850만t) 83년 5월25일 포항제철소 4기 2사 설비 준공(조강 연산 910만t) 85년 3월5일 광양제철소 1기 설비 착공 86년 12월3일 포항공과대학교 개교 87년 3월3일 포항산업과학연구원 개원 5월7일 광양제철소 1기 설비 준공(조강 연산 1,180만t) 88년 6월10일 기업공개(국민주 1호) 7월12일 광양제철소 2기 설비 준공(조강 연산 1,450만t) 90년 12월4일 광양제철소 3기 설비 준공(조강 연산 1,750만t) 92년 10월2일 광양제철소 4기 설비 종합준공(조강 연산 2,080만t) 94년 6월1일 포스코경영연구소 설립 10월14일 뉴욕증시 상장 12월7일 포항 방사광 가속기준공 95년 9월1일 포스코센터 개관 10월27일 런던증시 상장 11월28일 신제선공장 준공 97년 3월14일 사외이사제 도입 8월28일 광양 4냉연공장 준공
  • 동서 분열의 해소/李孝成 성균관대 교수·언론학(서울광장)

    한반도는 남북 뿐만 아니라 동서로도 갈려 있다.남북의 갈림은 한 나라 한민족을 적대적인 두 체제와 나라로 만들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았다.또 상호대결 속에서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낭비하게 하고 있고,가족 이산의 고통을 비롯하여 많은 비극을 낳고 있다.이 갈림은 극렬한 대립을 낳고는 있지만 통일을 계기로 일거에 거의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동서의 갈림은 남북의 갈림과 같이 가시적인 국경·체제의 갈림도 아니고,어떤 계기를 통해 일거에 해소될 수 있는 갈림도 아니다.동서의 갈림은 朴正熙 정권 이래로 오랫동안 영남정권이 집권을 하면서 호남과 충청을 차별하고 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이용한데서 비롯되었다.그런 지역차별을 오랫동안 계속하고 선거 때마다 지역감정을 악용하곤 함으로써 이제 지역감정의 골을 넓고 깊게 만들어 쉽게 치유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동서간의 갈림은 이와같이 지역차별에서 비롯된 지역감정이라는 정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그러나 동서갈림이 얼마나 뚜렷하게 굳어진 현실인가는 선거 때마다 입증된다.그리고 그것은 남북의 갈림 못지않게 많은 폐해를 낳고 있다. ○국민통합 최대 걸림돌 동서간의 갈림의 기반인 지역감정은 양측 주민들이 서로에 대해 맹목적인 경멸과 증오를 부채질해 지역주민들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고,국민통합을 저해하고 있다.또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정책대신 지역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정치의 질을 떨어뜨린다.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동서의 갈림이 눈에 보이는 남북의 갈림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 더욱더 고약한 것은 동서의 갈림은 남북의 갈림과는 달리 어떤 한 계기에 의해 일시에 해소될 수 없는 그런 고질적인 갈림이라는 점이다. 지역감정은 개혁의 발목마저 잡고 있다.한나라당과 보수신문은 국민정부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역차별이라고 시비하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집권여당으로서 지역차별을 해온 정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이 걸핏하면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그들은 비리를 저지른 인사에 대한 정당한 처벌도,부실한기업과 은행의 당연한 퇴출도 지역차별로 몰아붙이는 억지논리로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있다.그때문에 국민정부의 행위가 사사건건 영남지역에서는 호남정권의 영남에 대한 지역차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지역감정에 호소하여 동서의 골을 더욱더 깊게 하고 국민간의 반목과 불신을 조장하여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이런 저열하고 추악한 정치행태는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반목·불신 조작 중단을 동서의 갈림이 이렇듯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시급히 해소되어야 한다.여야간의 정권교체를 달성한 지금 그리고 외환위기를 한 고비 넘긴 지금 한국정치의 최대의 과제는 동서갈림의 해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동서간의 지역감정이나 그에 기반을 둔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정부가 무엇을 해도 어느 한 지역에서는 그것이 냉소와 불만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더구나 남한내의 동서주민간의 통합도 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북간의 통일을 달성하며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이제 정치권과 정부는 선거법을 개정하여 선거에서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언행을 엄격히 금하고,각 정당마다 전국에서 고루 의원을 배출할 수 있는 방식의 투표제를 도입하고,영호남간에 지역발전과 인사에서 균형을 취하는 등으로 지역감정과 동서의 갈림을 해소하는 일에 가능한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할 것이다.
  • 국민이 보는 국회(사설)

    국회가 파행을 계속하자 요즘 국회의원 소환을 요구하는 시민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이런 움직임들이 자칫 정치불신으로 이어져 정치냉소주의를 증폭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점이다. 정치불신이란 애당초 갖출 것 다 갖춘 기득권세력에게는 별 의미가 없어서 늘 관념적 비아냥의 대상이 된다.그러나 당장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고통이 따른다.정치는 나쁘고 국회의원은 믿을 수 없다는 사고 인지는 그동안 일부 학자나 언론이 구름위에 앉아서 무책임한 양비론으로 심판관 노릇을 하며 책임소재를 오히려 희석시킨 데 있었지만,이제는 막연히 모두 나쁘다는 식으로는 사안의 본질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 2월 국회 개원과 함께 국무총리 인준안이 상정됐을 때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다수의 힘으로 제동과 거부를 했었다.물론 여당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처한 엄청난 국가환란,50년만에 이루어진 정권교체에 의한 새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의례적 밀월 등을 감안하면 한나라당이 지나치게 당리당략에 의해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야당은 또 다수의 힘으로 정부조직개편안을 변질시켰고 인사위원회를 없애는 등 새정부 개혁정책의 길목마다 덫을 놓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최근에는 국회의장 선출과정에서 공전과 파행을 거듭해 마침내 국민들로부터 퇴출요구까지 받고 있는 형국이다. 야당이 여당정책을 견제하는 것은 정권의 대체세력으로서 충분히 수긍할수 있다.그러나 50년만에 이룩한 정권교체를 통해 여당이 그간 누적된 적폐들을 청산하기 위한 개혁작업을 펴나가는 것을 막는 것은 지나치게 자기과오에 대한 회피거나 여론호도로 비쳐진다.IMF사태를 불러온 원죄에 대한 반성은 커녕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의 이익을 계속 고수하려는 몸짓으로 우리는 보는 것이다.심정적으로 정권교체를 인정치 않고 여전히 수구의 강자논리로 힘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과신과 횡포가 오늘의 국회를 식물국회로 전락시켰다는 견해이다. 이런 상태로 국회가 기능불구가 된다면 여당은 궁극적으로 정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정계개편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속된 말로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다면 차라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여당이 소신껏 ‘속도전’을 벌여 국리민복에 힘쓰라는 것이다. 국민이 국회를 보는 눈은 이미 경멸의 차원을 넘어 증오심에까지 이르고 있다.시민단체들은 국회의원 소환운동을 비롯해 세비 동결,국회의원 의사당 출입불가 가처분 신청,의원회관 사용금지등 제재활동에까지 나서고 있다.선언적 차원이 아니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입법청원 노력은 물론 전국적 서명운동 등 보다 실효성있는 운동으로 확대해나갈 필요도 있다고 본다.
  • 노조폭력 절대 안된다(사설)

    생산현장에서 또 다시 폭력사태가 빚어졌다.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파업중이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노조 사수대원들이 조업을 재개하려는 관리직 사원들에게 둔기와 각목을 휘둘러 임직원 4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각목에 맞아 머리가 깨지거나 팔과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자도 꽤 있다고 한다.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불황기에 정리해고를 당하는 근로자들의 절망이나 좌절 또는 회사에 대한 배신감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또 노조가 회사에 대항해 근로자의 권익을 신장하거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협상전략을 구상하는 것 또한 그들의 정당한 권리다.이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그러나 절대 합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 회사 뿐 아니라 파업현장의 폭력이 일상적이라는 사실이다.이 회사만 해도 지난 5월 최초의 파업 이후 이번의 다섯번째 파업에 이르기까지 노조의 불법사례에 대해 총 30건,97명을 고소·고발했다.혐의는 불법파업을 선동했다는 것 외에 업무방해 폭행치상 집기손괴 방화협박 등 다양하다.심지어 부품이나 비품 절취 등 특수절도까지 포함돼 있다.노조원이 검거되자 경찰관 3명을 납치,억류했다가 풀어준 일까지 있었다. 우리 사회에 이런 무법천지가 있다는 사실이 기이하다.과연 우리가 법치국가인지 조차 의심스럽다.사실 지금까지의 여론은 노동권을 탄압하던 권위주의 시절에 대한 반동으로 노조를 경제적 약자로 여겨 상대적으로 동정적이었다.정부 역시 파업이 끝나면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근로자들의 불법을 관대하게 처리해 왔다.이러다 보니 정부나 노조 모두 불법행위에 불감증이 걸렸고 파업현장의 폭력이 상습화되기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 경제가 목마르게 기대하는 외국자본들이 한국상륙을 꺼리는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불법파업과 파업중의 폭력이다.따라서 이런 악습을 끊지 못하면 새로운 외자의 유치는 커녕 이미 들어온 외자마저 나가버릴 것이다.노조의 과격 폭력에 시달려 기업을 헐값에 넘기고 금리소득에 만족하겠다는 기업인들도 적지 않다.결국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까지 막고 있는 셈이다. 노조지도부는 당장 폭력을 버리고 합법적으로 다투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자신들의 파업할 권리와 마찬가지로 파업에 반대하는 근로자들의 일할 권리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도덕성이 훼손되면 논리적 정당성마저 흠집을 입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 역시 노사 어느 쪽이든 불법에 대해서는 법을 엄정하고 공정하게 집행해야 한다.경제를 살리는 길이 결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다.
  • ‘행복의 나라’ 한대수(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5)

    ◎“물좀 주소 물좀 주소 목마르오/시대의 갈증 노래했는데…”/68년부터 명동·대학가 활동/통기타·청바지 문화 선도/2집 앨범 “체제전복” 낙인찍혀/75년 渡美… 음악활동 계속/지난달 일시 귀국 에세이 출간/“개인무대 갖는게 작은 소망” 1975년 한 해를 마감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인 12월 어느날 김포공항 대합실.긴 머리에 청바지 차림의 한 청년이 초췌한 모습으로 뉴욕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한국 가요계에 파문을 일으키며 청년문화를 주도하던 가수 韓大洙(50)였다.미국 유학후 숨가쁘게 살았던 한국에서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갔다.자신의 음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땅의 분위기가 한스럽기만 했다.채 피어나기도 전에 꺾여진 꽃처럼 자신의 음악을 가슴에 묻은 채 한대수는 그렇게 훌쩍 한국을 떠났던 것이다. 짧은 활동기간에 비해 뚜렷한 인상을 남긴 이색적인 경력의 싱어 송라이터.통기타와 자유의 청년문화를 생겨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당시 트로트와 사랑타령 일색이던 대중가요를 뿌리째 뒤흔들며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던 가수 韓大洙.그는 왜 한국을 떠나야만 했을까. 어린시절부터 남달리 굴곡이 많은 개인적인 삶을 살았던 그였다.핵 물리학자인 아버지의 실종으로 7살때부터 줄곧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10살때 미국으로 이주해 3년간 미국생활을 한뒤 돌아와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쳤다.17세때 미국에 사는 아버지의 소재가 확인돼 다시 미국으로 옮겨 고교를 다녔지만 적응하지 못한채 방황의 10대를 보냈다.韓씨의 재능은 이때 발견된다.상담교사의 도움으로 시와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나중에 국내에서 히트했던 ‘행복의 나라’‘그날까지’‘옥의 슬픔’같은 노래들이 모두 이때 쓴 것이다.고교졸업후 뉴햄프셔 대학 축산과에 진학했으나 적성이 맞지않아 중퇴,뉴욕 사진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귀국한 게 1968년 초.이때 한국의 가요사는 다시 쓰이게 된다.당시 국내 가요계는 트로트가 지배하던 시기.국내에선 처음으로 싱어 송라이터로 데뷔한뒤 발로뛰는 음악인의 생활로 접어든다.서울 무교동의 ‘세시봉’과 명동의 ‘오비스캐빈’에서 청바지,가죽장화 차림에 통기타 하나들고 포크록을 소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이듬해인 69년 이렇다할 공연무대에 서기엔 아직 무명가수였던만큼 대학가를 돌기 시작했다. 총학생회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공연을 의뢰해 축제기간중 이화여대와 서울대,서강대,부산대 강당공연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이때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게 됐다.그리고 그해 겨울 그 유명한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 공연.그때만해도 드라마센터는 고상한 장르의 유명인들에게만 공연이 허용되던 곳.무명의 대중가수가 무대에 오른 것 자체가 화제거리였다.평소 韓씨의 음악에 매료된 팬들이 어렵게 마련한 데뷔 콘서트였다. 벼르고 별렀던 무대였던 만큼 혼신을 다한 공연이었다.이틀 공연 모두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대성공이었다. 74년 군에서 제대하고 나니 유명해져 있었다.자신이 곡을 쓰고 金敏基가 부른 ‘바람과 나’,楊姬銀이 부른 ‘행복의 나라’가 인기곡으로 불려지고 있었다.신세계레코드사에서 앨범제작 의뢰가 들어왔다.그래서 만든 첫 앨범이 ‘멀고 먼 길’이다.너무나도 반가운 제의라 하루만에 녹음을 모두 마쳤다.‘물좀 주소’‘행복의 나라’‘바람과 나’등 수록곡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그리고 1년도 채 안돼 시련이 닥쳐왔던 것이다. 75년 가을 두번째 앨범을 만들었다.코리아헤럴드 기자로 재직중일 때였다. 기자로 일하면서 오후엔 남모르게 레코드 취입을 하느라 코피를 쏟기가 일쑤였다.마침내 레코드가 나왔다.이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는 뿌듯함에 마냥 들떠 있었다.기쁨은 채 2주가 못돼 좌절로 바뀌었다.당시 문공부에서 레코드 수거령이 떨어졌다.체제전복적 음악이란 낙인이 찍혔다.첫 앨범 ‘멀고 먼 길’도 함께 묶였다. “‘물좀 주소’등 히트곡들이 대학생들 사이에 번져가면서 정치·사회상 황에 맞물려 당국의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던게 사실입니다.당국이 ‘물좀 주소’에선 물고문을 연상했던 것 같아요.두번째 앨범은 표지가 문제였지요.녹슬은 철조망에 고무신이 걸려있는 모습인데 한국적 정서와 민중을 상징한 것이지요.죄수(철조망)가 흰 고무신을 신으니 박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었지요” 동양방송과 기독교방송 음악프로 출연도 막혔다.어쩔 수 없이 명륜동 자취방에서 직접 노래하고 녹음한 테이프를 만들어 매장에 내다 팔았다.테이프는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이 테이프는 첫 앨범 취입 전부터 하나 둘씩 만들었던 것으로 이렇게 만든 테이프만도 100여개가 넘는다.하지만 그것도 잠시뿐.감시망이 좁혀지면서 테이프 제작도 할 수 없게 됐고 더이상 설 땅이 없어졌다.마침내 미국행을 결심했다. 이후 줄곧 뉴욕에서 살면서 시·사진·음악활동을 계속했다.89년 ‘무한대’,90년 ‘기억상실’,91년 ‘천사들의 담화’ 등 레코드도 세 집을 냈다.종전의 분위기와는 달리 자신의 삶을 담은 노래들이다.지난해 가을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록그룹 10개가 참가한 록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80년 일시 귀국해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약식 공연을 가진지 17년만의 무대였다.그리고 지난달 잠시 귀국해 자전적 에세이집을 냈다.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기록이다. 75년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는 韓씨는 이렇게말한다.“그 시대 정책 자체에 반감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어느 나라나 국가정책과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정신은 엇갈리기 쉽지요.당시 정부의 목적의식을 흐리는 활동이 제재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문화예술인들이 심한 갈증을 느끼는건 당연했구요. 오랫동안 나를 못봐온 팬들을 위해 개인무대를 갖고 싶습니다” ◎사연들/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철조망 유신압제 상징 이유/‘고무신’·‘첫 앨범 잇따라 판금/‘행복의나라’ 희망 메시지 가득한데 68년 귀국후 세시봉과 오비스캐빈에서 시작된 韓大洙의 국내 음악활동은 불과 7년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귀국전 미국 생활에서 반문화운동(카운터 컬쳐 무브먼트) 경향의 포크록에 심취했던 만큼 국내에서의 활동도 자연스럽게 자유와 젊음으로 대변되는 이 음악으로 시작됐다.미국 고교시절 답답한 생활을 노래에 담은 노래들이 70년대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금지곡이 된 것은 우연의 일치다.대학가를 돌면서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고 금지문화의 한 주역이 된 것도 사실상 노래말의 상징성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좀주소’와 ‘행복의 나라로’는 그의 대표적인 노래.“물좀 주소 물 좀 주소/목마르요 물좀 주소/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놀리면서 밖에 보내네/아 가겠소 난 가겠소/저 언덕위로 넘어 가겠소/여행도중에 그 님 만나 본다면/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물좀 주소).“장막을 걷어라/나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가벼운 풀밭 위로/나를 걷게 해주세/봄과 새들의 소리/듣고싶고 울고 웃고 싶소/내마음을 만져줘/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행복의 나라로) 유신정권의 압제 아래서 자연스럽게 현실 비유적인 내용으로 인식될 수 있었고 대학가에선 더욱 인기가 좋았다.물은 갈증을 해결하는 그 무엇이며 행복의 나라는 답답한 상황으로부터의 탈출과 희망의 의지가 역력한 상징임에 틀림없다.특히 金敏基 楊姬銀 등 사회성짙은 노래를 주로 불렀던 이들에 의해 불려지면서 자연스럽게 화살이겨냥됐고 마침내 철조망과 흰 고무신을 표지 사진으로 쓴 ‘고무신’ 앨범으로 피할 수 없는 족쇄가 채워진 것이다.‘자유의 길’‘병든 고아’‘술 취한 여자’‘물좀 주소’ 등 노래마다 일일이 검열을 당했고 레코딩까지 허락됐던 앨범 몰수는 韓씨를 떠나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의 길 ▲48년 부산출생. ▲64년 부산 경남고교 입학. ▲65년 미국 롱아일랜드 고교로 전학. ▲66년 뉴햄프셔 대학 수의학과 입학. ▲67년 뉴욕 사진학교에서 사진 전공. ▲68년 귀국.작사·작곡가·가수로 데뷔. ▲69년 드라마센터 공연. ▲70년 군입대. ▲74년 첫 앨범 ‘멀고 먼 길’ 발표. ▲75년 두번째 앨범 ‘고무신’ 발표,금지.미국으로 돌아감. ▲89년 ‘무한대’ 발표. ▲90년 ‘기억상실’ 발표. ▲91년 ‘천사들의 담화’ 발표. ▲98년 현재 뉴욕에서 사진작가및 창작활동중.자전적 에세이 출간.
  • 순국영령 추모 진혼예술제/내일 현충원 참전용사묘역

    순국영령을 추모하는 진혼예술제 ‘우리들의 슬픈 얘기’가 25일 하오 6시30분 서울 동작동 현충원 참전용사묘역에서 펼쳐진다. 6·25의 비극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갈수록 퇴색되고 있는 호국정신에 대한 자성을 새롭게 하기위해 ‘비목마을 사람들’ 주최로 열리는 이번 예술제에는 문화계 인사와 보훈가족,실향민이 참가한다. ‘비목마을 사람들’은 시인 신경림,가곡 ‘비목’의 작사자이자 국립국악원장 한명희,방송인 황인용씨를 공동대표로 지난 96년부터 일명 ‘비목의 계곡’으로 불리는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에서 문화제를 갖고 순국영령 추모제를 개최해온 단체. 이번 예술제에는 6·25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참가인원을 625명으로 제한했으며 이들이 하얀 광목으로 띠를 이뤄 장관을 연출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이애주씨의 진혼춤이 공연되고 안숙선 명창의 판소리와 추모가,소프라노 박미혜씨의 ‘비목’ ‘기다리는 마음’이 이어진다.또 남유소화백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며 김대환(타악기),최선배(트럼펫) 강은일씨(해금)의즉흥 연주도 곁들여진다.580­3000.
  • IMF시대 휴가도 알뜰하게/공무원 휴양시설 3選

    ◎수안보 상록호텔 등 시중보다 30% 저렴/1개월전 예약해야 휴가철이 다가온다. 공무원이라면 공무원연금 관리공단이 운영하는 휴양시설을 이용해 볼 만하다.일반 호텔에 비해 값이 20∼30% 싸 IMF시대의 휴가장소로는 제격이다. 공단이 운영하는 휴양지는 모두 3곳.변산반도의 상록 해수욕장과 수안보상록호텔,천안 리조트 호텔이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있는 상록 해수욕장은 7월10일∼8월20일 문을 연다.알뜰 피서를 즐기려면 적어도 1개월 전까지는 예약해야 한다.4∼5인 가족이 이용할 수 있는 72개의 콘센트형 숙박시설은 인기가 높다. 주변에 개암사와 선운사 금산사 내장사 등 볼 곳도 많다.예약은 개장 전에는 전주사업소(0652­75­3203)로,개장한 뒤에는 해수욕장(0683­83­7800)으로 하면 된다. 수안보 온천 단지안에 있는 수안보 상록호텔은 101개 객실을 갖추고 있다.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름휴가지로 한번 고려해 볼 만 하다.주변에 탄금대와 충렬사,월악산,단양팔경 등 관광지가 널려 있다. 호텔(0441­845­3500∼8)이나 서울상록회관(560­2800∼2)에서 예약을 받는다. 독립기념관에서 가까운 천안 상록리조트는 7월초 문을 연다. 50만평 부지에 호텔과 놀이시설,퍼블릭 골프코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상록패밀리 랜드에는 회전목마,바이킹,우주전투기,범퍼카 등 각종 놀이기기가 있어 어린이들에게 인기다.예약은 0417­560­9011∼3.
  • 그리스 사모스섬(세계 문화유산 순례:68)

    ◎BC 2000년 미케네문명 유적 곳곳에/헤라여신 성전 흔적/6,400m 동굴터널 헬레니즘시대 빌라/계단식 노천극장에 고고박물관도 볼만 고대 그리스 영역은(기원전 6세기∼3세기경 기준) 그리스 본토를 중심으로 좌우, 아드리아해와 에게해를 사이에 끼고 이탈리아반도의 남쪽 시칠리아와 소아시아반도 그리고 지중해 곳곳에 펼쳐진 크고 작은 많은 섬들로 이루어졌었다.기원전 6세기경 즉 아카익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사모스는 소아시아반도쪽에 편재된 큰 섬중 하나로 도착하면 먼저 해발 1천440m에 이르는 케리키스산이 시야에 차오면서 그 봉우리 아래 크고 작은 산들이 많은 섬이다. 그리스의 땅들은 대체적으로 찬란히 햇살받아 빛나는 푸른 옥빛 바다와는 무관하게 그 바다를 바라다보며 목마른 갈증으로 메말라가는 척박한 대지,그리고 그 갈라진 땅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올리브나무 숲을 연상하게 된다.하지만 사모스섬에 도착하는 순간 한 눈에 이런 예상은 빗나가고 만다.울창한 숲의 푸르름,풍성히 피어있는 꽃들의 향연,기름진 옥토….그래서고대로부터 떡갈나무가 풍성한 땅이라는 뜻의 드루사,사프러스나무가 많은 땅이라 해서 키파라이시아,꽃으로 장식된 곳이라는 안데무사등으로 불렸다.또한 흙내음나는 그리스 특유의 포도주산지로도 유명하다. 사모스섬에서 하얀,푸르름이 함께 눈부신 에게해를 향해 포도주 한 잔을 건네면,먼 태고적 사모스의 전령이였던 헤라여신이 나타날 것만 같은 환영에 사로잡히는 듯하다. 사모스는 고대수도였던 피타고리안지역과 헤라이온지역,그리고 해안선 주변의 바티지역으로 구분되어져 있다.이 세 지역엔 그리스 선사시대부터 근세까지 다양한 유물과 유적이 존재했던 곳이라 고고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사모스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으며,그리스문화가 시작되면서 헤라여신을 수호신으로 모셨다.(그리스의 각 고대도시들은 저마다 각기 수호신을 섬기었다) 때문에 헤라이온지역에 가면 기원전 2000년경 미케네인들에 의해 세워진 거대한 헤라여신의 성전흔적을 만날 수 있다.그러나 이 성전은 헤로도루스의 기록에의해 전하여질뿐,지금은 기원전 522년,아카익시대때 전성기를 누렸던 폴리크레아트 전제군주가 세운 신전의 거대한 밑 기단들만이 몇몇 포개져 흩어져 있을 뿐이다.그리고 이 기단들 사이로 기원전 7세기경의 신전 입구문 흔적이 있을 뿐이다. 헤라이온지역의 고대유적은 크게 선사시(기원전 2000년경),아카익시대(기원전 1000∼580년경),로이코스시대(기원전 580∼540년경),그리고 폴리크레아트(기원전 538∼522년경),기원전 1세기경의 유적으로 구분되어져 있다.지금은 신전과 회랑등이 부분적 파편으로만 남아있다.그러나 헤라여신의 성전앞에 기원전 50년경 로마의 유명했던 웅변가 마큐스 툴리우스 시세옹과 그의 동생인 킨티우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어 사모스의 역사적 변천을 엿볼 수도 있다. 고대수도였던 피타고리안지역은 1955년까지 티가니로 불리다 피타고라스를 추앙하는 의미에서 피타고리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그래서 이 작은 항구에는 그 옛날 수도임을 상징하는 폴리크레아트 신전이 서있고,옛 사모스의 유물이 전시돼 있는 고고학박물관도 있다.또한 고고학적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으로는 바티해안선을 타고 300m정도 섬 중앙쪽으로 들어오면 폴리크레아트시대에 만들어진 6천400m의 우팔리노스 동굴터널을 빼놓을 수가 없다.물론 지금은 몇몇 둘러친 벽의 조각들만 남아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계단식 노천극장과 헬레니즘시대의 빌라들이 보존상태는 양호하지 않지만 주의깊게 관찰하면 그 잔해들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있다.사모스의 현재 수도이기도 한 바티지역은 아카익시대의 유명한 남자조각상인 쿠루스와 여자조각상인 코레,기하학시대와 아카익시대의 청동유물 및 작은 오브제들이 소장된 박물관도 명소중 하나이다. 이렇듯 사모스는 그리스역사를 골고루 담고있는 곳이기에 각 시대별 특징적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하여 누구라도 저토록 빛나는 지중해를 바라다보고 서 있노라면 옛 그리스 신들의 향연이 들려오는 듯,자신들의 귀를 의심할 터이다. ◎여행가이드/아테네서 비행기편 1시간/관광호텔 등 숙박시설 완비 사모스까지는 아테네에서 국내선 비행기편으로 1시간이걸린다.여유를 갖고 지중해와 에게해를 함께 즐기려면 아테네에서 에페소스나 로도스섬까지가서 배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이들 섬에서 사모스로 가는 일반선박과 페리호는 매일 뜬다.사모스는 물론 관광호텔과 같은 고급숙박시설도 잘 갖추어졌으나,그리스인 인심을 맛보려면 민박을 하는 것도 좋다.그리스 본토는 멀기만 하고 터키는 지척이어서 국경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 한나라 초재선 의원의 ‘반란’/朴贊玖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현행 선거법으로 지방선거를 치르면 국민 지탄을 면할 수 없습니다,국민 편에서 급한 것부터 처리합시다”“우…,뭐하자는 거야,똑바로 해” 15일 국회 본청 146호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심야 의원총회는 흡사 ‘인민재판’을 연상케 했다.대여(對與) 온건론은 합리적 비판없이 야유와 비난의 대상이 됐다.7선 부총재의 간곡한 호소마저 ‘비굴한 타협론’으로 내몰렸다.초재선 강경론자들은 “제1당의 덩치에 비해 협상결과가 초라하다”며 경쟁하듯 선명성 발언을 이어갔다. 고비용 정치를 개선하려던 여야간 줄다리기 협상은 몇몇 초재선의원의 ‘뒤집기’로 끝내 코미디에 그쳤다.광역·기초의원수를 줄이고 국회의원과 지자제 선거 후보자의 주례행위를 금지하는 등 정치개혁을 위한 선거법개정안은 무용지물의 처지에 놓인 셈이다. 백걸음을 양보해 이날 ‘소장파의 반란’이 민주정당에 이르는 진통이라고 여기더라도 나라의 이익과 정치발전을 냉철히 도모하기 보다 충동적 감정을 앞세웠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여권의 연합공천과 구청장 선출제의 모순을 알리고 야당파괴공작을 허물어뜨리는 것은 거대 야당의 당연한 몫이며 소명이다.그러나 ‘정치권도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소박한 취지의 선거법 개정안마저 사장(死藏)시키려는 행태는 원내 제1당이라는 수의 논리만 앞세우는 근시안적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야당의 사정이 이렇다면 여당은 누구를 상대로 책임있는 협상을 벌이나.원내교섭단체 대표위원 자격으로 협상한 야당 총무의 얼굴은 뭐가 되나.총재단 결정마저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인사들이 여당의 독주와 오만을 견제할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인가.­답답한 질문은 꼬리를 문다. 고대 도시국가 트로이의 지도층은 아테네 병사들이 잠복한 ‘목마’를 멋모르고 성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10년 전쟁을 망국(亡國)으로 끝맺는다.군중심리와 정치선동에 들뜬 지도층은 ‘목마’가 함정임을 간파한 원로(元老) 라오콘의 충고를 무시해 버렸다.지도층의 독선과 아집이 공동체를 어떤 운명으로 몰아가는지 트로이의 신화는 여실히 보여준다.국정의 한축을 자임한다면,한나라당도 귀를 열고냉철한 이성을 되찾을 때다.
  • 소설가 金周榮(이세기의 인물탐구:168)

    ◎날로 확대­심화해온 소설세계/봇짐장수 삶 그린 ‘객주’ 5년간 본지에 연재 호평/대작 ‘임꺽쩡’ 등에 비견되는 역사소설 주로 집필 180센티의 큰키에 언제나 말이 없고 진실한 이미지가 작가 金周榮의 모습이다. 그와 절친한 소설가 이문구에 의하면 그는 ‘어진 사람’‘법없이도 사는 사람’이며 ‘교통순경과 방범대원을 구별하지 못할만큼’ 아는 것은 알지만 모르는 분야는 깜깜하다. 그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작품세계의 확대(擴大)와 심화(深化)를 끊임없이 이룩해왔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분단소설의 지평을 개척하는가하면 성장소설의 아름다움과 민중적 역사소설의 높은 봉우리를 역력(歷歷)하게 정복’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소리가 메아리져 돌아오는 생의(生意)의 소설’을 쓰고 있다. ○분단소설 지평 개척 그의 초기소설은 주로 ‘상경한 촌놈이 겪는 도시의 세상물정’이 주류를 이룬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타관의 물을 먹고나면 진솔하고 소박한 모습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이해타산과 세파에 시달려 속된 인간으로 변모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이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시각을 지켰다. 이러한 풍자는 단편소설에서는 ‘경쾌한 속도감, 재치의 반전으로 소설적 재미를 가속화시키는 반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구성의 묘(妙)로써 문학적 향기’를 뿜어내고 장편소설에서는 ‘걸쭉한 입담과 해박한 풍물묘사에 의존한 특유의 지구력으로 수준높은 세태풍속’을 그려나간다.그중에서도 그가 유년의 시골장터에서 목격한 봇짐장수들의 고달프고 강인한 삶을 그린 ‘객주(客主)’는 79년부터 5년간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근현대 역사소설의 빛나는 업적들인 ‘임꺽정’과 ‘장길산’ 등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 무렵의 그는 녹음기와 카메라를 갖춘 취재가방을 둘러메고 장이 서는곳마다 찾아다니면서 현장에서 채집한 언어들로 문학적 생동감을 소설속에 되살려내고 있다. 그와 한평생을 어울려 지낸 소설가 이문구는 김주영이 소설을 쓰기 위해 깨알같이 메모해둔 노트를 보고 ‘이것은 피다.이것은 피를 흘리는 김주영의 모세혈관(毛細血管)’이라고 쓴적이 있다.그의 문학생활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사건은 89년의 ‘절필선언’을 들수 있다. 정상을 달리던 한 중견작가가 갑자기 ‘절필’을 선언하고 일간신문연재를 중단해버리자 문단은 온통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 평론가 정현기와의 한 대담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소설을 돌아볼때 ‘동어반복(同語反復)이 너무 심하다는 것’, 근 10년동안 줄기차게 신문연재에 매달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상업적 측면에 침식되어가고 있다’는 경각심과 신문소설이 요구하는 반문학적 요소들이 ‘자신의 문학적 성채(城砦)를 집요하게 공격하여’ 마침내 절박감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고백하고 있다. ○상업성 우려 89년 절필 ‘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내자신에게 가하는 나의 검증’이며 ‘비평가들의 비판이나 상찬이나 독자의 갈채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고 했다. ‘오랜 글쓰기의 경험으로 독자를 교묘하게 속일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러나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원고료와 인세가 나의 생활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아야한다. 그럴수는 없다’는 절규가 그것이다. 그의 이러한 선언은 문학하는 이들의 양심에 칼날이 되어 타성적인 문학행위에 충격을 가하는 계기가 되었고 ‘껑충한 허우대와 맑고 박(撲)한 성정, 씩씩한 소년티를 벗지못한 소탈한 모습’에서 ‘눈크고 키큰 용량만큼이나 외로운 자기자신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천부적 질박함이 그의 문학적 원형질’임을 실감할수 있게 했다. 그는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배고프고 외진 마을에서 태어났다. 군청에 다니던 金海允씨의 2남1녀중 장남. 가난과 더불어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혹독한 굶주림에 시달려왔고 ‘이틀돌이’로 품앗이를 다니는 어머니를 동구밖에서 기다리는 핍색(逼塞)의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청소년기는 ‘길가의 잡초’였고 ‘시’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간직한채 16살때 대구로 와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일삼으며 대구 농림고를 졸업, 다시 서울에 올라와 친구집에 기식한채 서라벌예대에 입학하자 서정주 박목월등 기라성같은 스승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문학의 앞길에 서조(瑞兆)가 비치는 듯했다.그러나 박목월씨로부터 ‘시보다는 소설’을 쓸것을 권유받았고 이후10년간은 연고지가 아닌 안동에 내려가 엽연초생산조합에 취직하고 있었다.가족은 고향에서 유년기를 함께 보낸 부인 金震得씨와의 사이에 3남2녀. ○단편 ‘휴면기’로 등단 조직이란 사회에 일단 자신을 내던지게 되면 ‘그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그는 ‘중뿔나게 아는체도 고독한체도 하지 않았고 무사하게 살아남기 위해 대세를 따르는 가운데 날이 갈수록 가슴에 응어리가 쌓이는 바람에 자기자신을 술자리로 데리고 갈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한다. 이 시기에 겪었던 정신적 고통과 자기학대는 결국 ‘문학에 대한 끊이지않는 욕구’때문이며 회사를 그만두고 71년, 단편 ‘휴면기(休眠期)’로 문단에 등단하자 ‘숨결이 야무지게 살아있는 언어’‘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일정한 밀도를 유지하는 문장력’으로 주변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취미는 낚시에다 절륜의 술실력. 노래판이 벌어지면 ‘개화창가에서 신구잡가, 신체유행가’를 거침없이 노래부르고 재담 농담에도 능하다. 그는 전9권에서 5권의 역사소설전집만을 주로 내다가 최근 한 10년만에 한권짜리 장편소설인 ‘홍어’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중견작가의 빛나는 감수성으로 눈이 시릴 정도의 박꽃같은 순백한 사랑을 순정미학(純正美學)의 진수(眞髓)로 그려낸다’고 평가된다. 인생의 긴 도정을 지나 그는 그의 삶의 결핍된 부분들을 인간적 정서와 무르익은 인간미로 채우는 시기다. 결국 그의 문학은 우여곡절을 지나 정상에 오르게 되었고 문학에 대한 심한 갈등과 의혹과 고뇌를 되풀이하는 어쩔수없는 작가의 자세를 지킨다. 그는 처음에도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더니 오늘도 여일하게 진실한, 이 시대 ‘대기거영(大器巨影)’의 얼굴이다. □연보 ▲1972년 소설 ‘휴면기(休眠期)’(월간문학)로 등단 ▲1976년 경향신문에 첫장편소설 ‘목마위의 여자’ 연재 ▲1979년부터 서울신문에 ‘객주(客主)’연재 ▲1983년부터 중앙일보에 ‘활빈도(活貧盜)’ 연재 ▲1988년 한국일보에 ‘화척(禾尺) 7년 계약, ‘중국기행’연재 ▲1991년 동아일보에 ‘야정(野丁)’ 연재 ▲1995년 서울신문에 아프리카기행 연재 장편소설 ‘객주’ 전9권 (81년 창작과 비평사) ‘아들의 겨울’(82년 전예원) ‘천둥소리’(86년 민음사) ‘활빈도’ 전3권(87년 중앙일보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88년 민음사) ‘외설 춘향전’(94년민음사) ‘화척’ 전5권 (95년 문이당) ‘야정’ 전5권(96년 문학과 지성사) ‘홍어’(98년 문이당)출간, 단편집 ‘겨울새’(83년 민음사) ‘새를 찾아서’(87년 도서출판 나남)등 소설문학상(82년) 유주현문학상(8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93년) 이산문학상(96년)
  • 벚꽃길 개방 인색한 국회/徐東澈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영등포구청은 지금 국회를 감싸고 도는 여의도 윤중로에 벚나무를 심은 것을 후회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국회는 의사당 주변에 시민들을 끌어들여 의원들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서울시에 항의서한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벚꽃과 개나리가 만발한 여의도는 지금 불법주차한 차량들로 가득하다.도시락 포장지 등이며 음식물 쓰레기는 곳곳에 넘쳐난다.길목마다 잡상인들이 진을 치고,밤이면 술꾼들의 고성방가가 진동한다.한술 더떠 경비경찰을 피해 국회 담을 넘는 사람도 있다.이들은 호기심어린 눈길로 구석구석을 누비고있고 이를 제지하는 호루루기 소리도 하루종일 요란하다. 이렇다보니 언론은 ‘행락질서’를 들먹이며 시민들이 아직도 철이 없다고 탓한다.미화원들은 ‘시민들이 버린 양심’을 치우느라 생고생이다.경찰과 구청직원,국회경비원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회와 서울시,영등포구청의 입장이 아니라 시민들의 눈으로 여의도를 보자.윤중로가 불법주차로 몸살을 앓지만 둔치에 마련된 거대한 주차장에는 빈곳이 더 많다.주차장을안내하는 표지판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쓰레기가 많다지만 대부분 휴지통 주위에 쌓여 있다.대형 쓰레기통을 마련했다면 구태어 쓰레기통 밖에 버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잡상인을 한곳에 모아 아예 장터로 만들고,그 흔한 풍물놀이라고 펼쳤다면,여의도의 명물이됐을 것이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 시민들의 출입을 막는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오히려 시민의 방문을 환영하고,안내원이라도 붙여 본회의장 등을 안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한때 꽃놀이 시민들에게 개방했지만 쓰레기를 버리고,한적한 곳에 실례를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는 항변도 있다.그러나 용변볼 곳을 준비하지 않은채 화장실이 있는 건물출입을 막는 상황에서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럼에도 몰래 들어가 자신들을 혐오하는 의사당을 배경으로,그래도 기념이 된다고 사진을 찍는 시민들에게 국회는 고마움을 느껴야하지 않을까. 국회의원과 시장,구청장이 이처럼 시민들에게 조그마한 즐거움도 주지못하면서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와 다음 총선에서 과연 무엇을 주겠다고 약속할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 투자와 투기/김달호 두성전자 대표(굄돌)

    도둑님과 도둑놈.의적 일지매나 홍길동은 그 당시에는 도둑님이었다.하지만 악법도 법인 요즈음 세상에 도둑님은 결코 있을 수 없다.쿠데타의 성공과 실패처럼 영웅이 되느냐 역적이 되느냐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있지만 애매한 경우가 더 많다. 신임 모장관은 12번이나 주민등록을 옮겨가며 부동산을 사고팔았으면서 투기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이게 사실이라면 아마 우리나라에는 투기꾼이 아무도 없으리라. IMF가 우리나라의 먼 장래를 보아서 축복인가 재앙인가?산타클로스냐 트로이의 목마냐?남이 하면 과소비요 자기가 하면 합리적 선택.자기가 하면 로맨스,남이 하면 스캔들 등등의 말들이 모두 이중잣대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나온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상반되면서도 약간의 공통점을 갖기 때문에 흑백의 논리로 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IMF 극복대책 마련이 한창일 때 찾아온 미국 퀀텀펀드의 소로스 회장이 투자가인가 투기꾼인가를 판단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은 소로스의 투기질 때문에 아시아에 위기가왔다고 공언하지만 우리나라는 급하다 보니 투자가 님으로 극진히 대접한다. 문제는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우리가 봐야 한다는 점이다.“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우리는 소로스 회장이 투자가인지 투기꾼인지 두고 볼 일이다. 일반적으로 투자는 “현재의 확실한 가치를 미래의 불확실한 가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그러면 투기는 무엇인가?투기꾼들도 똑같은 말을 할 것이다.사실 투자의 위험도가 높으면 투기고 안정적이면 투자다.우리는 이런 잣대를 올바로 갖는 능력을 키워야 할 일이다.
  •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세계 문화유산 순례:66)

    ◎중앙아 실크로드에 핀 이슬람의 꽃/전성기땐 사원 360여개/도시전체가 거대한 성채로 우뚝솟은 50m 칼얀첨탑 압권 중앙아시아는 실크로드가 있어 항상 우리에게 미지와 낭만으로 다가온다.그러나 그 곳에도 찬연한 도시문화가 있었고,가장 수준높은 인류의 지혜가 번득이던 곳이다.황량한 스텝위에 개화한 문화이기에 더욱 눈부셨고,너무나 독특하고 당당하여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부하라가 바로 그런 곳이다.동서를 관통하는 실크로드의 요충지에서 온갖 문물과 종교,사상과 신화를 머금은채 성숙해 갔고,급기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가장 중앙아시아적인 성곽도시 문명을 이룩해 내었다.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가 주관한 부하라 도시성립 2천5백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가 치러졌다.부하라 도시문화의 장구한 역사적 의미와 그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때 칭기스칸에 정복 부하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채를 이루고 있다.광활한 사막의 교역로에 터를 잡은 도시는 처음 4.2㎢의 면적이었으나,시대에 따라 부침을거듭하면서 크기는 수시로 변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따라서 고고학적 발굴을 해보면 20m의 문화지층이 다양하게 중첩돼 있다.가장 두터운 하층은 기원전 4세기에서 서기 4세기에 이르는 고대문화층이고 상층은 9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화려한 중세문화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이곳에서 만난 우즈벡 학자들은 유네스코가 부하라의 역사를 2천5백년으로 잡는 것에 불만을 표하면서 성채 바깥의 고대 유적지를 근거로 3천년으로 올려잡고 있었다. 이미 당나라때 이곳을 방문한 구법승 현장은 그의 ‘대당서역기’에서 부하라를 그 크기가 1천7백리에 이르고 동서는 넓고 남북은 좁은 장엄한 도시로 묘사하고 있다.역사상 부하라를 최초로 수도로 정한 나라는 9세기의 사만조였다.사만조를 이어 터키계 왕조인 카라한조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하라는 터키인의 도시문명으로 확연히 자리잡게 된다.이때 부하라는 상업과 수공업이 번성하고 학문과 과학이 크게 발달하여 당시 세계문화의 한 축을 이룰 정도였다.그러나 부하라는 1220년 봄 운명의 날을 맞았다.정복자 칭기즈칸에게 복종을 거부하며,끝까지 하레즘샤 제국의 자존을 지키려던 부하라는 침략자의 철저한 약탈과 파괴,대량살육이라는 가혹한 응징을 받았다.붉은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대지위에 회생불능의 폐허만이 남았다.한 시대,한 문화의 종말은 이처럼 너무나 비극적이었다. 부하라가 제2의 운명을 개척한 것은 14세기 티무르시대였다.중앙아시아의 새로운 패자 티무르의 정열과 넘치는 신앙으로 부하라는 그 폐허의 잔해위에 다시 찬란한 이슬람의 도시로 새롭게 탄생하였다.거대한 성채와 성벽이 축조되고 동서남북으로 곧게 뚫린 도로를 중심으로 엄밀한 계획도시가 들어섰다.왕궁와 이슬람사원(모스크),학교,병원,도서관,공중목욕탕,주거지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이 되어 되살아 났다.성채 바깥에도 시장과 대상들의 숙소인 캐러밴사라이,종교학교인 메드레세들이 군데군데 즐비하게 줄지어 서있다.전성기에는 360여개 모스크와 113개의 메드레세가 도시를 채웠다 한다.이것이 오늘날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부하라 도시유적의 중심을 이루고있다. 도시 유적지는 쉐이크 잔달 출입문에서 시작된다.세계 각국 상인들과 외교관들이 세금을 내고 일정한 절차를 거쳐 이 문을 들어서면 비로소 부하라 문화의 수련생이 된다.그러면 도시의 상징인 높이 50m의 칼얀 첨탑이 정중앙에서 이방인을 맞이한다.이 첨탑은 예배시각을 알리기 위해 꼭대기에서 코란구절을 육성으로 낭송하는 기능 이외에도 낮에는 높이로 밤에는 불빛으로 지평선에 지쳐있는 캐러밴의 등대 구실을 했다.칼얀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간다.불로 구워낸 단순한 벽돌을 색과 모양을 달리하여 기하학적으로 처리하고,들죽날죽하게 배열해 놓았다.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데,벽돌을 쌓아 놓은 것이 한 치의 비뚤어짐도 없이 하나의 정교한 직선면을 이루고 있었다. ○종교학교도 113곳이나 선명한 쪽빛 하늘에 솟아있는 무작위의 벽돌건축이 만들어내는 조화의 극치였다.칼얀 첨탑을 끼고 칼얀 모스크와 미리 아랍 메드레세 건물이 또한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1만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모스크는 당시 최대 종교건물이었으며,입구의 색색 벽돌모자이크 장식과 다층 돔식 건축양식은 부하라 건축학파라는 새로운 예술적 사조를 만들어 내었다. 성채 바깥의 시내를 돌아본다.어디를 가도 중세 분위기가 그득하다.골목마다 들어찬 집들은 모두 진흙을 햇볕에 구워만든 벽돌을 사용하였고,벽면은 다시 진흙으로 매끈하게 발랐다.똑같은 집의 모양과 사람들,걸친 옷가지와 음식들,군데군데 모이는 양담배와 코카콜라 병들만 없다면 우리는 분명 고대 부하라에 서있는 것이다.한 골목을 지나면 모스크가 나타나고 또 한 골목을 지나면 메드레세가 나타난다.아무렇게 지은 허술한 건물들이 아니다.혼과정성이 배어있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더욱이 흙과 사막이 딩구는 침침한 분위기에 유적들은 하나같이 채색 모자이크와 벽화를 통해 선연한 색깔을 담았다.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 나디르 디반베이 메드레세와 라비 카우즈 메드레세는 특히 인상적이었다.자그만 호수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메드레세는 중세 중앙아시아 학문의 중심지였다.이슬람 세계 최고의 종교학자 이맘 부하리,유럽 의학의기초를 다진 이븐 시나(아비켄나),자신의 업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학문명칭이 되어 버린 연산법(algorism)의 개발자 알고르즈미 등과 같은 대학자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여행 가이드/타슈켄트서 항공편 40분/면제품·토기·공세공 인기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까지 아시아나와 우즈벡 항공이 직항로를 개설하여 여행이 편리해졌다.타슈켄트에서 국내선으로 부하라까지는 40분 소요. 자동차로는 타슈켄트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목화 밭을 따라 약 8시간을 달려야 한다.“부하라 투리스트”라는 관광회사(전화:3652­232276)가 가장 큰 부하라 전문여행업체이며,부하라 호텔이 최근 개관되어 관광객의 불편을 덜었다.세계적인 목화산지답게 면제품이 뛰어나며,토기,인형,동세공 제품도 인기가 있다.
  • 명성황후 피란 일화(비록 남가몽:4)

    ◎뱃사공에 금반지 빼주고 한강 건너 피신/경기도 광주땅 지나는데 아낙네들 험담/“중전때문에 이 고생… 군졸에 밟혀 죽었다”/두달후 환궁 “아낙네마을 없애 버려라” 1882년 6월의 임오군란으로 민비는 실각하고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됐다. 대원군으로서는 실각한지 8년만의 일이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대원군이 운현궁에서 창덕궁까지 가는데 여덟 사람이 메고 가는 가마(팔인교)를 탔고 앞뒤에는 파초선을 든 하인들이 그를 인도했다.대원군의 공복 등에는 거북 등(구배)이 붙어 있어 사람들은 그가 곱추처럼 보여 아니꼽기만 했다.더욱 가관인 것은 그동안 운현궁 사랑방을 출입하던 문객,즉 가신들을 중앙과 지방의 요직인 각 도 감사(도지사)와 유수(시장) 그리고 군수직에 임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난을 피해 한강을 건너가던 민비는 전혀 다른 처지에 놓여 있었다.그러니 그야말로 절치부심 이를 갈며 복수심에 불타 있었다. “중전이 나루터에 서서 급히 사공을 불러 배위에 올라타니 수레바퀴같은 붉은 해는 비웃듯이 솟아 오르고삼각산의 뜬 구름도 즐겁기나 한 듯 뫼 위에서 피어나고 있었다.삼국지에 보면 옛날 한나라 환관 십상시의 난에 개똥벌레가 한소제를 북망산천으로 인도하였고 채모 장군이 추격함에 유비가 말을 타고 단계천을 뛰어 건넜다고 하는데,그 쓸쓸한 모습이 옛날이나 지금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드디어 뭍에서 내려 길을 가다가 얼마후 깨끗한 여관에 들어가니 아침밥을 지어 바치는데 한나라 광무황제가 호타하에서 먹던 보리밥처럼 꿀맛과도 같았다.그러나 비록 이같이 배고프고 목마른 가운데서도 단맛을 느끼지 못하였다.도로를 왕래하는 사람이 시끄럽게 자주 서울의 군란소식을 전하여 주었는데 들어보니 곤궁(민비) 전하가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지 못하겠고 혹은 서거하였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이었다.그 밖에 흉흉한 설은 이루 다말하기 어려웠다. 듣기를 마치고 드디어 수레를 타고 수행원의 보호를 받으며 바로 충주 옛고을로 향하여 편안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잠시 화를 피하였다. 며칠이 지나 잠깐 조보에 발표된 내용을 보니 ‘민중전이 군란의 와중에서 서거하여 백성은 부모를 잃은 것 같이 슬퍼하고 모두 흰옷을 입었고 온 나라는 악기를 일체 연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생국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명성황후가 여주로 피난할 때 남긴 일화가 많다.한강을 건널때 사공이 민비를 건네줄 수 없다고 버티었다고 한다.한강을 차단하라는 긴급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사공의 주장이었다.이에 민비는 즉각 금가락지를 빼어 사공에게 던져 주었고 사공은 뇌물을 받고서야 순순히 배를 저었다는 것이다. ○대원군,시신없이 국상 채비 한강을 건너 충주로 가는 도중에도 괘씸한 일이 일어나 민비의 가슴을 쥐어짰다.경기도 광주땅을 지나가다가 교자꾼들이 가마를 길에 놓고 잠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길가던 아낙네들이 “이렇게 어여쁘신 아가씨가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다. 민비는 재치있게 “서울에서 충주로 피난가는 길이요”라고 대답했다.그러자 아낙네들이 “중전인가 무엇인가 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예쁜 아가씨까지고 생하는 구려” 하면서 “중전은 군졸들에게 짓밟혀죽었다고 합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괘씸한 생각이 들었겠는가.민비는 이들의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두달 후 서울로 환궁하자 곧 아낙네들이 사는 마을을 없애버리라고 명령했다.또 수행원들이 “한강의 뱃사공은 어떻게 하오리까” 하고 묻자 민비는 “그대로 두라”고 했다 한다.그도 그럴것이 사공이 뇌물을 거절하고 한강을 건네주지 않았던들 민비는 잡혀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에서는 대원군이 민비의 국상을 서둘렀다.시신이 없어 국상을 치를 수 없다는 반대가 강했다.그러나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대원군은 민비의 옷을 시신으로 삼아 염을 한뒤 관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그리고는 장례식부터 치러 민비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려 했다.생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장례식부터 치르려 한 대원군의 심사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할 것이다.그래서 그런지 대원군은 장례를 치르기도 전에 청국군에게 납치되어 머나먼 중국땅으로 끌려가고 말았고 민비는 살아 돌아왔다.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몇 개월이 지났다.고종과 세자는 아득하게 소식을 알지 못하여 마음이 슬프고 애통할 뿐이었다. 이 때에 군란의 소요가 가라앉자 곤궁 전하는 고종에게 소를 올려 ‘신은 죽지 않고 지금 충주 장호원 등지의 민가에서 피란하고 있으며 처분이 어떠하신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고종 부자분은 소를 자세하게 살펴본 뒤에 심신이 황홀하여 꿈결도 같고 술에 취한 것도 같았다.즉시 궁궐로 돌아오라는 뜻을 담은 교를 내려 조처를 취하니 하늘의 해가다시 밝았고 땅의 바람이 일어나 솟아오르는 듯하였다.안으로 3천명의 관료와 밖으로는 800명의 관료가 축하하여 일시에 만세를 부르니 남산과 북악의 초목과 곤충들도 모두 정채가 감돌았다. 우선 급무는 공로가 있는 자에게 시상하는 건이었다.무슨 벼슬로 상을 줄것인가.양주목사 자리이다.양주목사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이번에 충주까지 수레를 태워주고 수행하여 보호하는 일을 맡은 홍태윤(홍계훈의 잘못)이었다.” ○한때 ‘육백팔흑’ 유행 임오군란으로 민비가 자취를 감춘 것이 6월이요,돌아온 것이 8월이었으니 불과 두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당시 사람들은 6월에 흰 옷을 입고 울었다가 8월에 검은 갓을 쓰고 살아돌아온 국모를 환영했다 하여 육백팔흑이란 말이 유행했다 한다. 명성황후를 업고 나온 공으로 양주 군수로 발탁된 홍계훈 이외에도 서울에서 충주로 가는데 필요한 여비 500궤미(말을 판 돈이었다)를 댄 조충희는 전남 영광군수로 임명되었다.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북청 물장수 출신의 이용익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서울과 충주를 왕래하면서 중앙의 정세 변동을 민비에게 보고하였으니 그 뜨거운 충성심과 추종을 불허하는 건각은 역사상 유례없는 것이었다.홍계훈은 뒷날 동학란 토벌대장으로 이름을 날리며 이용익은 대한제국의 탁지부대신을 맡아 이른바 광무개혁을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임오군란은 개항 6년만에 국고가 바닥이 나 군인들이 들고 일어난 대사건으로 조선왕조가 망해가는 첫걸음이었다.그러므로 민비와 대원군 사이의 사전쟁 이상의 것이었다.이 군란으로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 서울이 분탕질을 당하고 일본군이 인천항에 상륙하여 열강에 의한 내정간섭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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