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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대 ‘마광수 앓이’

    마광수(56) 교수의 제자 시 도작(盜作)과 관련해 연세대 국문과 교수들이 사직을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데 이어 올 1학기 마 교수의 전공수업마저 폐강하기로 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는 오는 12일로 예정된 재단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벌어진 일이어서 마 교수의 제자와 독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등 학내 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7일 연세대에 따르면 국어국문학과 교수회의는 지난 1일 교내 인터넷 자유게시판에 “마 교수의 표절 행위는 명백히 의도적인 것으로 대학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행위다. 따라서 마 교수가 더 이상 강단에 설 수 없고 결코 서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표명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또 “표절 행위가 대학 사회에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는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데 국문학과 교수들 전체의 지혜와 뜻을 모으기로 했다.”면서 마 교수의 2007학년도 1학기 전공수업 ‘문학이론의 기초’를 폐강하기로 결정했다. 교내 인터넷 수강편람에도 원래 마 교수가 맡기로 했던 전공과목란의 담당교수명을 지우고 빨간 글씨로 ‘폐강’을 적어 놓아 수강신청 자체를 불가능하게 했다. 연세대의 전공과목 강의 개설권과 강사 선임권은 관련 학과측에 있다. 그러나 졸업생과 재학생, 독자들은 현재 징계를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동료 교수들이 사실상 ‘마 교수 축출’과 다름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이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성명서 발표 이후 150여개의 댓글이 오르는 등 마 교수를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게시판에 글을 쓴 재학생 강모씨는 “마광수 교수가 뛰어난 작가니까 용서해야 한다는 논리도 말이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학과 차원에서 임의적으로 수업을 폐강처리하는 것은 납득할 만한 처사라 할 수 없다.”면서 이 사태를 비난했다. 또 재학생 황모씨도 “징계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강의권을 박탈하는 것이 이해 가지 않는다.”면서 학교측에 명분과 절차를 갖출 것을 촉구했다. 한 졸업생은 “동료가 어려운 지경에 놓이면 도와 주는 게 인지상정인데 어찌 이렇게 인민재판 벌이듯 동료교수를 난도질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반면 교수회의측에 공감을 나타내는 글도 있었다. 한 재학생은 “교수들의 감정 섞인 성명서가 기분 나쁘지만, 원칙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학교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학생 정모씨도 “마 교수가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만큼 지나친 관용을 베푸는 것이 오히려 더 마 교수의 가치를 죽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마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성명서를 낸 주체가 불투명하다. 교수회의의 이름으로 냈지만 누가 참석했는지 밝히지 않았다.”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수업 폐강에 대해서도 “학교측으로부터 전혀 통보를 받지 못했고, 나도 게시판을 보고서야 알았다.”면서 “2000년 논문 실적 부실 등을 이유로 재임용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던 사건의 재판과 흡사하다. 동료애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등에 칼을 꽂는 행위를 해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학생들이 원하고 나도 가르치는 것을 천직으로 여기는 만큼 계속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이번 사건은 분명 내가 잘못했지만 뉘우치고 있는 만큼 참작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세대는 12일 정창영 총장의 발의를 거쳐 재단 징계위원회를 열어 마 교수에 대한 징계 내용을 결정할 방침이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1·21사태 北생환 박재경 ‘북핵실험 3인방’ 중 하나

    1998년 이후 금강산 관광사업 대금으로 6억달러 가량이 북한 군과 조선노동당에 유입된 의혹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나라당 북핵대책특위 소속 김학송·최경환·이혜훈 의원 등은 29일 염창동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주장한 뒤 “이 가운데 관광 대가 4억 5000만달러는 현대아산이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계좌를 통해 북한으로 송금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치품을 구입하고, 군비 증강에 사용하는 등 통치자금으로 쓴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 등은 또 “지난해 9월 미국의 BDA 북한계좌 동결 이후 오스트리아의 금별은행, 중국인민은행과 조선중앙은행이 설립한 합작은행인 화려은행, 중국은행 마카오지점 대성은행 계좌 등을 통해 금강산 관광 대가가 송금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빙 서류나 자료를 함께 공개하진 않았다. 최 의원은 “정부가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할 때 군사비 전용을 감시하기 위해 ‘체크리스트’를 만들겠다고 한 만큼 해외 북한계좌의 사용처를 정부가 밝혀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들은 이와 함께 금강산 관광 단지의 음식점인 목란관·옥류관·금강원·고성횟집과 기념품 가게 등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선전부’ 산하의 ‘백호무역총회사’가 맡고 있다고 주장했다. 백호무역회사가 이를 통해 벌어들인 1억 4000만달러도 군비도 이용됐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형식적으로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와 민경련이 계약 당사자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운영자는 백호무역총회사라는 것이다. 최 의원은 특히 “백호무역총회사를 총괄하는 조선인민국 총정치국 선전부 책임자는 북한 핵실험을 주도한 3인방 중 한 명으로 알려진 박재경 인민군 대장”이라면서 “그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9월에 김 위원장이 남측에 보낸 칠보산 송이버섯 선물을 직접 서울로 가져왔던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2004년 2월호 ‘신동아’ 보도를 인용해 “박 대장은 1968년 1·21 청와대 습격미수 사건 당시에 남파 무장공비 31명 가운데 유일하게 북한으로 도주한 인물”이라면서 “그가 서울에 송이를 전달하러 왔을 때 정보기관이 무장공비 전력을 알면서도 묵인했다.”고 주장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서울신문 102년-종이신문 생존전략] MP3로 듣고 휴대전화로 읽고…

    [’서울신문 102년-종이신문 생존전략] MP3로 듣고 휴대전화로 읽고…

    ■ 미국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에서 종이 신문의 퇴락과 뉴 미디어의 부상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고 있다. 미 신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국 610개 신문의 발행부수는 전년보다 주중에는 2.5%, 주말에는 3.1%가 줄었다. 신문 부수는 줄고있지만 신문사의 인터넷 사이트를 찾는 독자는 크게 늘었다. 올해 1·4분기에 신문사 웹사이트 방문자는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8%가 증가했다고 신문협회는 밝혔다. 미 신문협회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인 존 킴벌은 “웹사이트 방문자 증가로 올해 신문사의 온라인 광고 수입은 25∼30% 늘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온라인 수입이 신문사 전체의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5%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온라인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이 앞으로 신문사 경영의 중요한 전략이 될 전망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언론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미래 신문의 모델은 놀랍게도 캔자스주의 로렌스라는 작은 도시에서 발행하는 ‘로렌스 월드 저널’이라는 신문이다. 전문가들이 발행부수가 2만부에 불과한 이 신문에 주목하는 이유는 ‘미디어 컨버전스’를 독자들의 실생활에서 구현했기 때문이다. 로렌스 저널 월드는 신문과 인터넷, 방송(케이블TV 소유) 뿐만 아니라 전화와 MP3플레이어 등 현존하는 모든 기술과 기기를 통해 시민들에게 뉴스와 정보를 제공한다. 매일 아침 로렌스시의 남자들은 신문을 읽고, 주부들은 케이블TV 뉴스를 보며, 학생들은 아침에 로렌스 저널 월드의 신문 기사를 목소리로 서비스하는 포드캐스팅(Pod Casting)을 아이포드에 녹음해 등굣길에 듣는다. 동네 환경에 관심이 많은 주민들은 이 신문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쓰레기 처리 문제 등을 놓고 다른 주민들과 채팅한다. 스포츠 팬에게는 캔자스대학의 미식축구와 농구 팀의 경기 스코어를 실시간으로 휴대전화로 전송한다. 로렌스 저널 월드의 신문과 방송, 인터넷 직원들은 모두가 하나의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뉴스 보도뿐 아니라 제작 과정도 융합이 이뤄지고 있다. 로렌스 저널 월드의 웹사이트는 한 달에 700만 페이지 뷰(독자들이 웹사이트에서 본 화면의 총수)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신문의 모회사인 월드는 독자들이 웹사이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시의 30개 지역에 무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핫 스폿’을 설치했다. 이 신문의 발행인인 돌프 시몬스는 “로렌스 저널 월드는 ‘작은 도시의 작은 뉴스’에 집중하는 매체”라면서 “테크놀로지의 적용도 중요하지만 콘텐츠의 질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로렌스 저널 월드의 중요한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는 작은 도시에서 외부의 견제나 위협이 없이 ‘독점적인’ 사업을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경쟁에 노출된 미국 대도시의 거대 신문사들은 속도조절을 하면서 좀더 신중하게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권위지인 뉴욕타임스는 아직까지 수익의 90%는 종이신문에서 나오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온라인 쪽의 수익이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있다.”고 말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올해 상반기에 웹사이트를 개편하면서 일부 콘텐츠를 유료화했다. 개편된 뉴욕타임스의 웹사이트는 종이신문과 달리 동영상과 사진 슬라이드 쇼 등 멀티미디어를 기사보다 돋보이도록 배치했다. 뉴욕타임스 웹사이트의 2004년 매출액은 5310만달러(약 530억원), 순이익은 1730만달러(약 170억원)였다. 최근 몇년간의 연 평균 성장률은 30∼40%나 된다. 욕타임스의 웹사이트 방문자는 하루에 무려 1800만명이나 된다. 뉴욕타임스의 하루 평균 발행부수는 110만부. 그러나 웹사이트를 유료화할 경우 대부분의 독자가 떠날 것으로 뉴욕타임스는 예측하고 있다. 아서 슐츠버거 뉴욕타임스 발행인은 “무료에 익숙한 인터넷 독자들에게 고급 콘텐츠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육’하는가가 과제”라고 말했다.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시대에도 계속 중심적인 역할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가 미디어 업계의 관심거리”라면서 “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주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지적했다. dawn@seoul.co.kr ■ 일본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신문 발행부수는 하루평균 5400만부로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인 신문대국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조간만 1007만부다. 아사히신문은 825만부, 마이니치신문이 395만부(일본신문협회 2005년판 통계)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요미우리·아사히신문은 연간 10만부 안팎, 다른 신문들도 수천∼수만부씩 부수가 줄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의 조간신문 1000만부 시대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신문업계 전체가 비상이다. 일본신문협회는 모든 신문의 발행부수를 알리는 가이드북을 발행해왔으나 올해는 절판했다. 신문시장 전체 축소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일본 신문업계 관계자들은 “일본 국민은 아직도 인쇄매체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 인터넷신문은 신뢰도가 떨어져 영향력이 아직 미미하다.”면서도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종이신문 독자가 급감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위기감을 드러낸다. 위기의식에 따라 주요 신문들은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모두 TV 등 계열방송사를 소유하고 있는 도쿄의 주요 신문사들은 인터넷홈페이지의 업데이트 주기를 단축시키고 있으며, 휴대전화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전반적인 신문의 약세기조에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유일한 경제지로서 일본의 경기회복을 활용, 일본내·외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어 주목된다. 니혼게이자이는 특히 신문과 통신, 방송 등의 미디어 융합에 대비, 모범적인 변신을 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문도 인터넷에 잠식당하지 않고,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조간신문 발행부수가 2003년 298만부에서 2004년 300만부로 늘었고,2005년에는 306만부로 늘었다. 지난해 광고도 전년보다 5% 증가했다. 매출액은 전년보다 2% 늘어난 2300억엔(약 1조 8800억원)이었다. 이처럼 니혼게이자이는 지난해 지면 차별화와 비용 절감 등을 통해 약진했다. 지면차별화를 위해서 1면 머리기사는 다른 신문이나 주요 방송과는 다른 사안을 배치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종이신문 기사의 독점성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신문에는 전체기사의 30% 이하만 서비스하는 ‘30%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종이신문 기사의 인터넷 게재 수는 물론 개별기사의 크기도 30%로 제한한다. 다른 주요 신문들이 인터넷에 100% 기사를 게재하는 것과 다르다. 포털사이트에는 기사를 포함한 콘텐츠를 절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다. 독특한 경제비평기사도 차별화 상품이다. 또 종이신문과 인터넷의 융합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윈윈(상생)전략’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종이지면과 인터넷 홈페이지의 세트광고를 하고, 인터넷 구독신청 코너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책임경영체제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부문을 독립시켜 철저한 독립채산제를 실시, 경영효율을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니혼게이자이는 일본내의 신문 중 인터넷대응이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따라 인터넷과 유료 정보 데이터베이스 서비스사업을 펴는 니혼게이자이 전파미디어국의 연간 매출액만 260억엔(약 2100억원)이다. 매출액과 순이익이 증가 추세라는 것이 회사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도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고 회사관계자는 토로한다.“유일한 경제지로서 일본경제의 활황에 따른 혜택으로 반짝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taein@seoul.co.kr ■ 유럽 |파리 함혜리특파원|“내가 이 신문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떠납니다.” 프랑스의 대표적 좌파일간지 리베라시옹의 창업자 세르주 쥘리는 지난달 30일 ‘내가 리베라시옹을 떠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독자들에게 남긴 뒤 물러났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1973년 창간한 지 33년 만이다. 그는 이 글에서 “프랑스의 종합 일간지는 물론 텔레비전과 라디오도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며 리베라시옹 자체가 특별히 소비적인 신문이 아님에도 올해 예상되는 손실이 책정된 예산 250만유로(약 30억원)를 훨씬 넘는 700만유로(약 85억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리베라시옹의 추락은 프랑스 진보언론의 암울한 장래, 그리고 인터넷 시대의 활자 미디어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리베라시옹만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다. 한때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던 ‘프랑스 수아르’도 경영난 심화로 주인 바꾸기가 거듭되다 결국은 영국 타블로이드판 대중지 스타일로 바뀌는 운명을 맞았다. 프랑스 일간지 시장은 독자 감소, 이에 따른 신문사들의 재정악화, 무가지와 인터넷 매체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등장에 따른 경쟁력 상실이란 세가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이에 따라 신문사들은 대기업의 자본참여를 통한 위기 극복을 시도하고 있지만 거대자본의 유입으로 신문들은 ‘독립성과 다원성의 침해’라는 또 다른 위기를 맞는다고 프랑스 정부산하 경제사회이사회 보고서는 지적한다. 보고서는 신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종합일간지가 민주주의의 핵심적 위치를 되찾도록 신문기본법을 제정하고 신문 유통의 발전과 현대화를 위해 신문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또 기존의 가두판매를 재조직하고 정기구독 체제를 지원하는 등 정부가 유통조직 재편성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정부차원에서 다양한 신문산업 지원책을 마련 중이다. 신문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비주얼 시대에 맞게 편집 스타일을 바꾸고 감각적인 젊은층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주말판을 발간하는 것은 기본. 인터넷 사이트를 보기 쉽게 디자인하면서 오디오와 비디오 뉴스를 동시에 듣고 볼 수 있도록 재정비하고 있다. 일간지 르몽드와 르피가로는 백과사전이나 박물관 화보집과 같은 도서 시리즈, 흘러간 명화 DVD 시리즈, 음악CD 등을 판매하면서 수익원 찾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벨기에의 한 일간지가 세계 최초로 휴대용 디지털 전자신문으로의 전환을 시도할 계획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벨기에 최대 항구도시 앤트워프를 기반으로 한 경제 일간지 ‘데 타이트(De Tijd)’는 지난 4월14일부터 세계 최초로 휴대용 디지털 전자신문 시험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시험 서비스 기간에 독자 200명에게 신문의 인터넷판에 접속해 기사를 내려받을 수 있는 휴대용 전자기기를 무료로 나눠줬다. 독자들은 무선을 통해 인터넷판에 접속만하면 자동으로 업데이트된 기사내용을 화면으로 볼 수 있다. 종이두께에 타블로이드판 신문 한면 크기(8.1인치)의 스크린이 장착된 휴대용 기기는 전자잉크(E-Ink)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디든 들고 다니면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컴퓨터나 TV 스크린과 달리 한번 텍스트나 그래픽을 입력하면 다시 입력하기 전까지 전원이 없어도 내용이 그대로 보존된다. 독자들은 특수 펜으로 기사에 대한 코멘크를 쓸 수 있으며, 광고면을 터치하면 해당 광고업체의 홈페이지로 직접 연결된다. 전자신문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페테르 브륀셀스는 “시험 서비스 결과를 정밀 분석해 비즈니스 모델을 산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신문 구독비용은 한달 평균 400유로(약 50만원)이나 될 것으로 추산되지만 독자 수가 늘어날 경우 대폭 내려갈 것으로 신문사측은 내다봤다. 프랑스의 경제일간지 레제코(Les Echos)와 독일의 국제미디어기술연구협회(IFRA)도 유사한 시도를 하고 있다. lotus@seoul.co.kr ■ 중국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지난 3월25일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열린 ‘중국 매체 창신(創新)회’. 중국의 거의 모든 주요 언론 관계자들이 모였다. 신문·방송 등 전통 언론 매체 경영자뿐 아니라 유력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최고경영자(CEO)들까지 망라됐다. 중국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참석자들은 신문시장을 비롯한 전통 언론시장의 위기를 논했다. 한때 금융, 건설과 함께 ‘돈 되는’ 3대 업종으로 불리던 신문업종이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린 지 불과 10여년만이다. 중국은 고도 경제성장과 13억 인구 등 ‘광고’와 ‘독자’가 모두 뒷받침되는 전통매체로서는 보기 드문 황금시장이었다. 심지어 한때 신문업계는 ‘폭리 업종’으로까지 불렸었다. 위기의 본질은 신문출판총서 스펑(石峰) 부서장의 지적대로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신흥 매체의 등장과 매체 상호간 경쟁으로 전에 없던 도전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한때 중국에는 이른바 ‘도시신문’간의 지나친 증면 경쟁이 불붙으면서 일간지 면수가 하루에 최대 150∼200면까지 발행되는 신문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2005년 중국의 신문 광고시장은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중국 신문시장으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다. 반면 인터넷 및 디지털 매체의 광고수익은 전년보다 77% 증가한 31억위안(약 3700억원)이나 됐다. 올해는 40억위안(약 48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인터넷, 휴대전화 뉴스서비스, 디지털TV, 블로그, 포드캐스팅(Pod Casting) 등 신매체들로 인해 신문산업의 광고수익 잠식은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매체 창신회에서 뚜렷한 대안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논의의 핵심은 ‘컨버전’과 ‘경영 다각화’였다. 경화시보(京華時報)의 우하이민(吳海民) 사장은 “과도하게 광고에 의존하던 과거의 경영방식으로는 생존해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상하이 동방위성TV의 쉬웨이(徐威) 본부장은 “현재 직면한 도전은 TV라도 비켜가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같은 분위기로 최근 중국 언론 매체간에 진행중인 초거대화, 초집단화 현상이 지속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최근의 현상은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 주도에 의해 미디어 그룹들이 형성될 때와는 달리 생존을 위한 당사자간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측면이 상대적으로 많다. 합병을 통한 거대화·집단화 작업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문회신민연합집단(文新民聯合集團)’의 탄생을 꼽을 수 있다.76년의 역사를 가진 신민만보(新民晩報)는 합병이전 이미 석간 신문시장의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66년 전 창간된 문회보(文報)는 지식인 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지대한 매체였다. 그러나 둘 다 고정 독자들의 ‘노화’와 신규 독자 흡수 부진 등으로 매체 영향력이 떨어져 가는 상황이었다. 문회집단의 후진쥔(胡勁軍)신문담당 사장은 “매체간 융합과 경영 다변화가 절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문회신민집단은 11개의 신문사,6개의 잡지사,1개의 출판사를 보유하며 영향력을 유지해가는 동시에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회사도 설립했으며, 다른 6개 주류 언론사와 합작해 만화 채널을 신설했다. 패왕별희(王別姬), 화목란(花木蘭) 등 영화에도 참여했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눈을 돌려 신민만보는 현재 17개 해외판을 운영하고 있다. 집단 전체는 매년 이익의 3분의 1은 재투자에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진화를 고민하는 ‘신문 천국’ 중국. 방향타는 잡았으나,‘어떻게’가 문제로 남는다. jj@seoul.co.kr
  • 儒林 (607)-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43)

    儒林 (607)-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43)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43) 별시해를 보기 직전인 그해 가을, 산림거사인 지정과 술을 마시며 ‘국화를 술잔에 띄우고’란 즉흥시를 지은 율곡은 자신을 ‘서리맞은 국화(霜中菊)’로 비유함으로써 자신의 심정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한 초나라의 불우한 정치가이자 비극시인이었던 굴원이 쓴 초사(楚辭)의 ‘아침엔 목란의 추로(墜露)를 마시고 저녁엔 가을국화의 떨어진 꽃(落英)을 씹는다.’라는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굴원처럼 불우하고 비극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율곡은 강릉에 낙향하여 본의 아니게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비유하고 있음인 것이다. 그리하여 시 속에 도연명의 음주시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일찍이 귀거래사를 읊고 고향으로 돌아와 청빈을 달게 여기고 전원에서 밭을 갈며 고풍청절하게 지내던 전원시인 도연명은 어느 날 다음과 같은 시를 짓는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한다. 그러나 마차나 방울소리는 없다/그럴 수가 있냐고 물을 것이다. 마음이 떨어져 있으면 땅도 자연히 멀다. 동쪽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자르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 산공기가 석양에 맑다. 날던 새들은 떼 지어 제 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에 진정한 의미가 있으니/말하려 하다 이미 그 말을 잊었노라.(피천득 번역)” 율곡은 도연명의 ‘동쪽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자른다(採菊東籬下)’란 한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이 무렵 ‘서리맞은 국화’와 같은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자조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별시에는 율곡으로서는 배수의 진을 치고 치른 과거시험이었다. 율곡이 성균관에 도착하자 반수당 안은 이미 결과를 보려는 수많은 과유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부분의 유생들은 심부름하는 종자들까지 데려오고 또한 이들을 상대로 한 술 파는 장사치들까지 판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반수당 안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다. 그들 중에는 전번에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부문을 통과하려 하였을 때 율곡의 앞을 막아세웠던 세도가의 모습도 보였으므로 율곡은 한 곁에 멀찌감치 물러서서 방방(放榜)을 기다리고 있었다. 율곡은 이번 별시의 결과에 은근히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지난봄의 과거와는 달리 이번 별시의 책제는 ‘천도책’이란 철학 시험문제로 난해하고 까다로운 것이었으나 율곡에게는 오히려 족집게처럼 집어낸 예상문제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율곡은 지난 일년 동안 스승 퇴계로부터 점지받은 거경궁리의 화두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율곡은 자연 한대 유학에서 제기되고 있었던 ‘사람의 마음은 천지의 마음(人者天地之心也)’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바르게 되고 ‘사람의 기가 순하면 천지의 기도 역시 순하게 된다(人之氣順則天地之氣亦順矣).’는 ‘천인상감설’에 대해서 이미 깊은 궁리를 끝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정동영 ‘北核결단’ 盧心 전달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남측 정부대표단은 16일 평양 목란관에서 북측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면담하고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개선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비공개로 50여분 동안 이루어진 면담에서 정 장관은 김 위원장과 25분 동안 단독으로 만나 6자회담 조속복귀와 북핵포기를 위한 ‘전략적 결단’을 촉구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큰 관심사였던 정부 대표단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 성사여부와 관련해 체류기간인 17일 오전까지 정부 대표단과 북측의 움직임이 주목을 끌었다. 정 장관은 이날 면담에서 북핵문제에 대해 남북간 진지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평화적·외교적 해결책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측의 핵 포기를 전제로 미국측이 ‘보다 정상적인 관계’를 비롯해 북측이 핵 포기시 받을 수 있다고 시사한 11일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미국이 북한의 체제와 제도를 인정하면 북한도 미국을 우방으로 대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김홍재 통일부 대변인이 말했다. 특히 정 장관은 “양측이 유익한 방향에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김 위원장은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이 단합·협조를 도모하며 남북관계를 확실히 구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대표단 관계자는 전했다. 이와 함께 정 장관은 오는 21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15차 장관급회담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성과있는 회담이 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1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민간 대표단은 이날 오전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영남 위원장을 예방하고 6·15 공동선언 5주년의 의미와 한반도 상황, 남북한 협력 등을 주제로 환담을 나눴다. 남북해외공동준비위는 이날 오후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폐막식을 갖고 3박4일간의 공식일정을 마무리했다. 남측 정부·민간대표단은 각각 17일 오전과 오후 서해직항로를 통해 서울로 귀환한다. 평양 공동취재단·서울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40년 만에 고국무대 서는 배우 오순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40년 만에 고국무대 서는 배우 오순택

    화목란(花木蘭)이란 전설의 여인이 있다. 왈가닥 아가씨로 불린다. 북위(北魏)의 효문제(孝文帝) 시대였다. 여인은 어느날 아버지한테 온 입영 통지서를 받았다. 병든 아버지를 걱정한다. 고민끝에 남장했다. 아버지 대신 전쟁터에 나섰다.10년 가까이 유연(柔然, 흉노 또는 훈족)과 싸우며 나라와 왕을 구했다. 여인의 생일은 4월8일, 고향 사람들은 매년 이날 묘당에서 제사를 지낸다. 1500년이 지난 후 여인은 ‘뮬란’(목란의 중국식 이름은 무란)으로 다시 태어났다.1998년 ‘월트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됐다. 지금도 비디오 대여 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날의 ‘월트 디즈니’를 일궈낸 일등공신으로 여긴다. ●‘뮬란’ 서 목소리 더빙으로 팬 사로잡아 이런 ‘뮬란’을 탄생시킨 아버지가 있다. 놀랍게도 한국인이다. 오순택(69)씨. 물론 전설 속의 아버지는 ‘화조우’다. 오씨는 애니메이션 ‘뮬란’에서 ‘화조우’ 목소리로 등장, 팬들을 사로잡았다. 영화배우 에디 머피(천방지축 수호신 ‘무슈’의 목소리)와 함께 출연했다는 사실도 주목할 점이다. 오씨는 국내보다는 세계 무대에서 더 잘 통하는 인물이다. 연극·영화인이라면 꿈의 무대로 여기는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에서 40년 가까이 명성을 쌓았다. 특히 65년부터 CBS 인기드라마 ‘하와이 50’의 단골 게스트를 시작으로 에미(Emmy)상 후보에 오른 ‘에덴의 동쪽’ 그리고 ‘마르코폴로’‘맥가이버’ ‘50수사대’ ‘매쉬’ ‘매그넘 P.I’ 등 150편에 달하는 TV 드라마에 출연, 미 안방극장의 스타로 군림했다. 영화로는 75년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로저 무어와 짝을 이룬 홍콩주재 영국 정보원역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또 액션스타 척 노리스와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대특명’ 에 출연, 뛰어난 무술연기를 했다. 이래저래 40년 동안 출연한 영화만 100여편에 이른다. 이같은 화려한 연기 경력 외에 83년과 86년 미스 유니버스대회에서 두차례 심사위원을 지냈고, 현재 아카데미상의 후보와 최종 심사를 맡은 ‘아카데미회원’에 가입돼 있다. 모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다. 그의 유명세가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얼마전 ‘뮬란2’의 더빙을 마친 오씨는 현재 서울예술대학 석좌교수로 몸담고 있다. 수준높은 연기력을 후학들에게 전달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이를 수락했다. 당분간 서울과 미국을 오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또 오는 29일부터 5월8일까지 국립극장에서 공연되는 ‘떼도적’(원작 쉴러, 이윤택 연출)에도 출연한다.40년 만에 서는 고국무대여서 나름대로의 설렘이 적지 다. 서울 장충동에 있는 국립극장 예술감독실에서 오씨를 만났다. 먼저 “40년 만에 (고국무대로)돌아왔다. 늦게마나 출연기회를 준 것에 감사한다.”면서 “(강의를 하다보니)많은 얘기를 했기 때문에 무대위에서 실천이 제대로 될지 걱정.”이라면서 웃는다. 어떻게 해서 할리우드 스타가 됐을까. 전남 강진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문학작품을 많이 읽었다. 광주고를 1회로 졸업하면서 형(이승만 대통령 당시 외교담당 비서관)의 영향으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외교관이 돼라는 것이 집안의 주문이었다. 그러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에 빠지는가 하면, 서울 단성사 주변을 맴돌면서 영화구경에 몰두했다. 영화배우들이 우상처럼 여겨졌다. ●국립극장 ‘떼도적’서 연기선보여 59년 군복무를 마친 뒤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국제사법을 공부하라는 집안의 권유로 UCLA에 진학했다. 그러나 천부적인 ‘끼’는 속이지 못했다. 결국 교수와 주위의 추천으로 네이버후드 연극학교(Neighborhood Play House)로 전학했다. 이 학교는 그레고리 펙, 스티브 매퀸, 폴 뉴먼 등을 배출한 연기부문으로는 미국 최고의 명문이었다. 그는 정식 오디션을 거쳐 입학한 첫 동양인으로 기록된다. 입학 당시 157명 중 졸업한 사람은 16명뿐일 정도로 까다로운 과정을 무난하게 통과했다. 졸업 후에는 다시 UCLA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땄고, 연기분야 최고 학위인 MFA도 받았다. 학자금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65년 브로드웨이 ‘라쇼몽’에서 남편역으로 연극무대에도 데뷔한 그는 LA 타임스로부터 ‘무대에 새 스타가 탄생했다.’는 평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주목받는 동양인 배우가 됐다. 이 무렵 TV에 스카우트됐고, 모던댄스, 발레, 팬싱, 태권도, 유도, 쿵후 등의 실력을 갖춘 만능배우로 영화·연극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미싱 인 액션(Missing In Action) Ⅱ’‘파이널 카운트타운(Final Countdown)’ ‘비버리힐즈 닌자’ 등에서 조연을 하면서 제작자들의 스카우트 대상으로 떠올랐다. 또한 ‘뮬란’에서 뮬란의 아버지 목소리로 연기한 직후 할리우드에서는 ‘아버지 목소리의 전형’이라는 극찬을 받았다.LA에서 발간되는 각종 일간지 ‘할리우드 소식’란에 하루라도 안나오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많은 팬들이 생겼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흥행하기 위해서는 주연배우의 3요소가 있습니다. 백인, 블론드(금발), 블루아이(파란 눈동자)가 그것이죠. 이런 풍토에서 동양인 배우가 살아남기란 솔직히 말해서 힘듭니다. 돌이켜보면 제 자신도 놀랄 뿐이죠.”할리우드에서 조연일 수밖에 없는 심정과 현실을 토로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동양인을 소재로 하면 돈을 못번다는 것이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고정관념이라는 것도 귀띔해준다. ●한국비난 영화 출연거부로 강한 인상 미국에 있다 보면 애국심은 없지만 ‘애족심’은 저절로 생겨난다고 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미국에서도 ‘Soon-Tek Oh’로 통하는, 예명이 없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 배우로서 자존심도 강하다. 그는 더티 코리안 영화로 비난을 받은 ‘폴링 다운’(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출연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해 교포사회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연기란, 삶의 오묘함과 숭고함을 담아야 합니다. 또한 진실하면서 배우의 상상력이 이루어낸 것이어야 해요. 순간의 진실을 영원화하는 행사가 바로 연기입니다.” 현재 할리우드 배우협회에 가입된 회원은 8만여명이다. 이 가운데 한국인 1.5세 또 2세들이 30명가량 된다고 말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배우 중 대부격인 오씨는 스스로가 “A급 스타는 아니다. 그러나 존경받는 배우로 살고 싶었다.”면서 영화의 재미는 조연배우가 어떻게 끌고 가느냐에 따라 확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6년 전남 강진 출생 ▲52년 광주고 1회 졸업 ▲5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59년 미국 유학 ▲63년 뉴욕 네이버후드 플레이하우스 졸업 ▲65년 ‘라쇼몽’으로 연극계 데뷔,CBS드라마 ‘하와이50’으로 미 안방극장 데뷔. ▲이후 ‘에덴의 동쪽’ ‘찰리의 천사들’‘침략자’ 등 드라마 150편에 출연. 영화 ‘007황금총을 가진 사나이’‘뛰지 말고 걸어라’ ‘파이널 카운트다운’ 등 100여편에 출연. ▲1979년 미국 드라마 로지 비평가상 최우수 연기상 수상 ▲현 서울예술대학 석좌교수
  • [데스크시각] 목란꽃이 피었습니다/구본영 정치부 부장

    수년전에 밀리언 셀러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었던 생각이 난다.‘국수주의냐, 세계화냐’ 등 당시의 숱한 논란도 기억에 새롭다. 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노벨상을 향한 꿈마저 버리고 자신의 무릎뼈 속에 설계도를 감춰 조국에 미사일 기술을 전수한 재미 천재 물리학자. 그를 보호하기 위해 60만 대군도 동원하겠다고 한 박정희 대통령과의 운명적 만남, 그리고 그들의 잇따른 죽음…. 줄거리야 어렴풋하지만, 소설의 주 모티브가 약소국 대통령이 핵개발을 하려다 미국의 눈밖에 나 비명에 간다는 내용이었음은 뇌리에 또렷하다. 기자는 박 전 대통령이 실제로 핵개발을 추진했다는 증거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적 정황으로 봐 소설적 상상력만이 아닐 개연성이 다분하다. 어느 나라든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손쉽게 빠져들게 되는 유혹이 핵보유다. 굳이 북한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스라엘과 인도·파키스탄을 보라. 전설인 양 아스라하지만 1970년대 초반까지는 군사력·경제력 등을 종합한 국력에서 북한이 앞섰던 게 실상이었다. 특히 구 소련과 중국을 업은 당시 북한의 군사력만큼은 남한이 위협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았던가. 머잖아 이 땅의 산야마다 함박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함박꽃은 5∼6월이면 삼천리 방방곡곡에 자생하는 목련과의 교목이지만, 생전의 김일성 주석이 좋아해 북한에선 목란으로 불린다. 평양 주체사상탑의 기단에도 새겨져 있고, 목란관이란 식당 이름에서도 짐작되듯이 북한의 국화(國花)다. 올해 한반도에는 목란이 때 아니게 만개한 느낌이다. 지난 10일 북한이 핵무기 보유와 6자회담 무기한 중단을 선언하면서 무궁화꽃이 피기도 전에 목란꽃이 먼저 피어버린 형국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보유 선언을 놓고 남쪽에선 대책없는 갑론을박만 한창이다.6자회담에서 받을 판돈을 키우려는 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이라느니, 핵사찰을 반대하는 군부를 의식한 김정일 위원장의 선택이라느니 하는 이런저런 추측만 난무한다. 일리야 있는 관측들이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가 어느새 북한의 핵무기 보유, 그 자체의 가공할 함의에 둔감해졌다는 사실이다. 핵보유 선언의 이면에는 북한 정권이 체제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배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자칫 반(半)영구분단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통일되면 북한 핵무기는 어차피 우리 건데 뭐가 문젠가?”라는 발상이야말로 철없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북한의 핵개발 드라이브를 제어할 최소한의 지렛대는 확보해야 할 터이다. 북·미간의 각축전을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을 때가 아니란 뜻이다. 지난 수년간 정부는 대북 포용 일변도 정책을 펴왔지만 북핵 문제에 관한 한 별무효과였다. 최악의 경제난 속에서도 북한이 핵카드만은 꼭 움켜쥐고 있었음이 분명해졌지 않은가. 그렇다고 냉전시대의 ‘목 조르기 정책’으로 북을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 일은 더 큰 민족적 참화를 부르는 위험한 선택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북 봉쇄 일변도와 무조건 포용의 중용을 취하는 것도 대안일 수 있다. 이른바 ‘선별적 포용정책’으로, 남쪽 내부의 보혁 갈등을 최소화하며 점진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식량 등 인도적 지원은 퍼주기 시비를 무릅쓰더라도 지속해야 한다. 아무리 다급해도 동족의 굶주림마저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핵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현금이 들어가는 사업은 북한이 핵협상이나 남북관계 개선에 임하는 자세와 반드시 대칭적이지는 않더라도 탄력적으로 연계, 속도조절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될 듯싶다. 과거 서독도 동독에 경제 지원을 했지만 인권 문제 등 동독 정권의 폭압성 완화를 강하게 요구했던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구본영 정치부 부장 kby7@seoul.co.kr
  • 버스타고 ‘신의 걸작품’ 금강산 겨울여행

    버스타고 ‘신의 걸작품’ 금강산 겨울여행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수수 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 그 몇 해/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금강산은 부른다.’ 고귀함이 묻어나는 금강산(金剛山), 녹음이 깔리는 봉래산(蓬萊産), 단풍으로 물든 풍악산(楓嶽山),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앙상한 뼈와 같은 개골산(皆骨山), 눈 덮인 설봉산(雪峰山)…. 때마다 철마다 모습과 이름을 바꿔가며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금강산. 특히 겨울이 아름답다는 이곳을 살짝 맛보고 왔습니다. 오색찬란한 화려함은 없지만 봉우리의 자태가 빼어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웅장함에 넋이 나가 돌아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새해 첫 여행으로 겨울에 더욱 아름다운 금강산이 어떨까요. 지금 바로 비무장지대를 거쳐 출발합니다. ●보이지 않는 남북의 선을 넘어 오후 4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있는 남측출입국관리소(CIQ)에서 간단한 출국 수속을 마쳤다.(한 나라의 땅인데도 ‘출국’이라니, 왠지 서글프다.) 비무장지대를 건너, 북녘을 향한다. 비무장지대의 임시도로로 33인승 미니 버스가 신나게 달렸다. 금강통문과 남방한계선을 지나 출발한 지 15분만에 군사분계선을 넘는다. 이제부터 북한이다. 함께한 ‘관광조장(관광가이드)’에게는 2003년 9월에 육로관광이 시작된 후 오늘까지 452번째로 넘는 군사분계선이란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우리민족을 갈라놓은 선은 없다. 그저 도로 구석에 철책도 아닌 녹슬어버린 표지 하나가 군사분계선을 나타내며 민족을 갈라놓고 있을 뿐이다. 북방한계선을 지나 구서통문에 차가 멈췄다. 겨울 찬바람에 빨갛게 언 볼과 오래된 듯한 군복의 북한군인 두 명이 버스에 올라 “모두 몇 명입네까.” 짧게 한마디 묻고는 내려버린다. 통관 절차다. 도로 옆 연두색 철책은 관광지역과 북측 마을의 경계다. 철책 너머로 북측 마을에 북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갈 수는 없다. 개발되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고성 통일전망대를 떠난 지 45분만에 금강산에 도착했다. 정말 가까워졌다. 배로 무려 4시간이 걸린 길을 이렇게 단숨에 달려오다니. 벅찬 감흥을 가슴에 담고 북녘에서의 첫날은 지나간다. ●신의 걸작, 계절의 명산 개골산 둘째날 아침 8시30분에 금강산의 구룡연으로 출발했다. 금강산에서만 볼 수 있다는 미인송. 옆으로 늘어진 소나무가 아니라 하늘로 쭉쭉 뻗은 자태가 미인처럼 아름다워 미인송이라 이름 붙였다. 미인송 숲을 빠져나와 10여분만에 도착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한다. 북한 해설원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린다.“한반도의 3대 폭포중 하나인 구룡폭포와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상팔담을 볼 수 있으며 산행시간은 왕복 4시간입네다.” 맑은 공기가 가득한 계곡을 따라 걷는다. 고개를 들어 산을 바라보니 겨울 금강산을 개골산(皆骨山)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흙이라고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산. 그래서 인간의 뼈처럼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바위산. 그것이 개골산이다. 커다란 바위를 깎고 다듬어 만들어 놓은 신의 걸작품이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그 바위에 자라고 있는 ‘배지하늘솔’. 땅을 배신하고 하늘을 향하는 소나무란 뜻으로 바위를 뚫고 자라고 있다. 신기하다 신기해. 어찌 저렇게 단단한 바위덩어리에 생명이 자라고 있을까. ●아름다운 금강산을 눈에 가득 담으시라요 30분 정도 걸어가 도착한 양지대에서 여자 해설원이 말한다. “저 앞에는 거북선 모양의 거북선바위, 뒤에는 개구리 바위예요. 선생, 거기가 아니고 저기라요. 이쪽 보시라요.” 말투는 약간 퉁명스럽지만 정감이 느껴져 “원래 북측 여성동무들은 다 예쁩네까.”하고 묻자 “심한 농하면 안됩네다.”하고 정색이다.“죄송합니다.” 꼬리를 확 내리고 다시 걷는다. 삼록수는 추운 날씨에 얼어버렸다. 산삼과 녹용이 흘러내린다는데…. 마시지 못해 아쉽다. 땀으로 젖은 머리는 금세 얼어버린다. 진한 에메랄드빛부터 연한 옥빛까지 다양한 초록이 어우러진 유명한 옥류동계곡도 얼음으로 변해있어 물빛의 아름다움은 감상할 수 없다. 대신 굽이굽이 계곡을 돌아설 때마다 펼쳐지는 금강산의 비경을 눈에 담는다. 이래서 금강산을 느끼려면 사계절을 와야 한다는 건가. 1시간을 걷자 나타난 웅장한 비룡폭포. 얼어버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던진 번개가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다. 중간중간 비석에 김일성교시를 적어 놓은 ‘표식비’와 봉우리마다 전설이 얽혀있는 바위들이 즐비하다.15분을 더 걸어 관폭정에 도착했다. 구룡폭포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정자다. 북측안내원들이 “수고하셨습네다. 여기가 조선의 3대 폭포중 하나인 구룡폭포입네다.”라며 설명한다. 이곳에서 파는 차 한잔에 1달러. 따뜻한 차를 마시며 얼어버린 웅장한 폭포를 감상하는데 ‘쩌억!쩍!’ 소리가 들린다. 계곡에서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다. 깊고 깊은 금강산, 이곳 아니면 또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언 몸을 잠시 녹이고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을 가진 상팔담으로 향했다. 가파른 절벽을 향하는 길에 ‘아휴, 다리야. 그냥 갈걸.’하는 후회가 간절하다. 도대체 뭐가 있기에 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르려 했나.30분을 올라 도착한 구룡대. 아까의 후회는 사라진다. 커다란 바위로 발아래 계곡에 비록 얼어있지만 멋진 소와 담이 한눈에 들어온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고 내려오는 길에 점심을 먹으러 목란관에 들렀다. 아침에 10달러를 내고 산 표(식권)를 건네며 주문을 하는데 북한여성이 “여기는 무조건 냉면이라요.”라며 돌아간다. 추어탕,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더니만. 10분,20분이 지나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인내의 한계를 느껴 냉면 언제 나오냐며 불평하자 “참고 기다리시라요.” 한마디하고 돌아간다.30분만에 나온 물냉면, 육수는 심심하고 면발은 그럭저럭이다. 양념이 적은 북한음식은 입맛에 잘 안 맞는다. 저녁에는 물이 좋다는 금강산 온천에 몸을 담근다. 반짝이는 별을 보며 향긋한 미인송의 냄새를 맡으며 금강산의 정기를 맨몸으로 느끼는 노천온천이야말로 최고다. 피로가 가시며 여유가 생긴다. 금강산에는 음기가 강해 한달에 한번씩 남탕과 여탕을 바꾸는데 오늘이 그날이란다. 내가 몸을 담그고 있는 곳이 어제는 여탕이었다! ●만물상을 품에 안고 셋째날은 만물상코스다. 미니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미인송이 가득한 길을 간다. 마치 옛날 대관령을 오르는 것 같다. 내금강과 외금강을 연결하는 온정고개는 모두 106굽이, 이중 만물상까지가 모두 77굽이다. 온정각에서 떠난지 30분만에 주차장에 도착한다. 왕복 2시간 코스. 구룡연과 다르게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깎아지른 절벽과 솟구쳐 오른 봉우리, 그 위에 아슬아슬 올라선 바위들. 토끼 호랑이 거북이는 기본이고 독수리 곰 허수아비 등 저마다 이름을 가진 바위들이 펼쳐져 ‘만물상’답다. 삼선암 귀면암 절부암을 지나 30분을 오르니 안심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발아래는 수길 낭떠러지이고 그만큼 또 위로 봉우리들이 솟았다. 울퉁불퉁 근육질 남자의 벗은 몸처럼 아릅답고, 힘이 느껴진다. 금강산을 보지 않고 산세를 논하는 것은 허무하다고 했던가. 역시 민족의 명산이란 칭송이 아깝지 않은 산이다. 철사다리를 의지하며 천선대에 오르자 눈 앞에 펼쳐지는 만물상에 또 한번 놀란다. 나도 모르게 조물주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만물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망향대까지 오르고 싶지만 일정이 여의치 않다. 그림같은 만물상을 가슴에 담은 채 발길을 돌렸다. 주차장에서 북한해설원들이 따뜻한 두부와 막걸리를 판다.5달러. 산행 뒤에 마시면 더욱 시원한 막걸리 한잔과 함께 금강산 일정이 끝났다. 몇 해전, 여름 금강산에서 “반드시 겨울에 오리라!”던 꿈을 이뤘더니, 또다른 욕심이 생긴다. 금강산은 바로 그런 민족의 산이다.‘언젠가 내 다시 너를 품으러 오마. 좀 더 자유롭게….’ ● 이렇게 가세요 금강산 관광 선택의 폭이 좀 넓어졌다.2박3일,1박2일, 당일 등 세가지의 형태로 진행중이다. 당일은 2월말까지 토요일만 출발하며 1인당 12만원.1박2일은 매주 토, 일요일 출발 1인당 20만원,2박3일은 매일 출발한다.29만원. 단 교예공연(25달러), 온천욕(12달러)과 식사(중·석식, 보통 10달러)비용은 별도 부담. 또한 통일부에 방북승인신청 등을 해야 하므로 출발일 기준 10일 전에 현대아산 영업부나 금강산관광에 예약해야 한다.(02)3669-3000,www.mtkumgang.com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슈퍼모델 사진작가 변신 홍성규 前청와대 사진담당

    슈퍼모델 사진작가 변신 홍성규 前청와대 사진담당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사진찍기를 좋아했습니다.사진기자가 없으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행사를 시작하지요.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진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었죠.하지만 이희호 여사는 겨울날 눈이 내릴 때면 동심으로 돌아가 한컷 담기를 좋아했습니다.” 9년간 청와대 공보실에 근무하면서 2명의 대통령 사진을 전담하던 전속사진사가 최근 슈퍼모델을 찍는 사진작가로 깜짝 변신했다.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직시 근접 촬영한 홍성규(38)씨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 서울 방배동에 스튜디오 ‘현장’을 오픈한 그는 요즘 올 11월 열리는 ‘SBS 슈퍼모델 선발 본선대회’에 출전하는 미녀 34명과 함께 합숙하며 그들의 생활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그는 “촬영 대상이 대통령에서 슈퍼모델 후보로 바뀌어 한동안 어색했으나 지금은 미녀들과 있는 것이 마냥 즐겁다.”면서 싱글벙글했다.홍씨는 두 대통령을 국내외 어디든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기에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 하나.2000년 8월 박지원 장관 등과 함께 언론사 대표들이 방북했을 때의 일이다.당시 청와대 사진기자단을 대신해 유일하게 카메라를 들고 방북했다.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청 오찬 때 그는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이를 본 김 위원장은 불쑥 “사진기자 양반,사진만 찍지 말고 이리 와서 한잔 하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박 장관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전담하는 사진기자입니다.”라고 소개했다.이어 김 위원장은 포도주를 직접 따라주며 “다른 것은 몰라도 사진만큼은 남측 기자들이 훨씬 잘 찍는 것 같다.어떻게 그렇게 순간순간의 장면을 놓치지 않고 잘 찍느냐.”고 물으면서 건배를 권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북한 사진기자들은 비디오카메라 대신 16㎜ 영화필름으로 김 위원장의 움직임을 촬영하는 점이 특이했다.”고 말했다.“대통령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곧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중요한 일이지요.6·15 정상회담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시상식을 단독으로 촬영할 때 등 기억에 남는 일이 많습니다.” 사진을 일차 전공한 뒤 서울산업대 매체공학과에서 추가로 공부한 그는 지난 94년 조선일보 출판사진부 기자로 재직하다 선배의 제의로 청와대에 들어갔으며,현정권 출범 후 그만두고 사진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금강산 당일치기관광 출발~

    금강산 당일치기관광 출발~

    금강산이 더 가까워졌다.지난 98년 동해항∼장전항 해로 코스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이,속초∼고성항 해로 관광,2박3일 및 1박2일 육로관광에 이어 마침내 당일 코스로 이루어지게 된 것.7월 초 본격 시작에 앞서 15일 진행된 당일 시범관광을 다녀왔다. “아침에 들어갔다가 저녁에 나온단 말이야?세상 많이 좋아졌네.” 지난 15일 이른 아침 동해 남북출입사무소 앞.금강산 당일 시범관광에 나선 이들의 표정엔 설레임이 역력하다. 남측 출입사무소에서의 수속은 그야말로 속전속결.신분확인과 세관 검사,검색대 통과까지,200명 이상이 한꺼번에 몰렸음에도 채 15분도 안 걸린다. 다시 관광버스에 올라 북쪽으로 향했다.남방한계선까지 가는 길은 굴곡이 심하고 험하다.본격적인 당일 관광을 앞두고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물샐틈 없는 3중 철책으로 이루어진 남방한계선 앞에 서니 엄연한 남북 분단 현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길 양편 비무장지대는 관목숲이 우거져 마치 초록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다.버스 밖에 드문드문 서서 ‘혹시 사진이라도 찍지 않을까’하고 감시하는 인민군들의 눈초리가 날카롭다. 북방한계선을 지나자 북측 군인들이 차를 세우고 버스에 올라온다.인원이 맞는지,위험한 물품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내려간다.여기부터 입국 심사가 이루어지는 장전항까지 가는 길은 일사천리다.길 오른쪽으로 멀찌감치 금강산의 암봉들이 줄을 선 가운데,길 양편은 평탄한 벌판이다.남쪽에선 이미 20여년 전 자취를 감춘 일소가 여기저기서 밭을 간다. 논밭 군데군데서 일손을 멈춘 채 이야기를 나누는 여인네들,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물끄러미 남측의 관광버스를 구경하는 아이들까지,바쁜 기색은 없고 그저 느릿한 일상이 느껴진다. 고성항에서의 입국심사는 여전히 까다로워,40∼50분쯤 걸리는 것같다.시간이 오래 지체되다 보니 관광객들도 지루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심사를 모두 끝낸 시간은 오전 9시40분.남측의 출입사무소에 7시20분경 도착했으니 출입국 절차와 잠깐의 이동시간까지 모두 2시간20분쯤 걸린 셈이다. 산행코스는 온정각에서 갈린다.구룡연,만물상,세존봉,삼일포·해금강 등 4개의 개방코스중에서 구룡연 코스를 택했다.이곳부터 구룡연 산행이 시작되는 곳까지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간다. 옥류동을 거쳐 구룡연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은 금강산 계곡길의 백미다.외금강의 3대 절경이라는 구룡연과 옥류동,만물상 중 2개를 품고 있는 곳. 휴게소격인 목란관을 지나자 산행이 본격 시작된다.계곡 반대편으로 하관음봉,중관음봉,상관음봉이 차례로 이어지고,암벽에 인위적으로 분재를 꼽아놓은 듯한 소나무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옥류동 못미쳐 등산로 왼쪽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바위에 사람들이 몰려 물을 받고 있다.산삼과 녹용물이 흘러내린다는 ‘삼록수’다.물이 바위를 따라 얇게 펴진 채 내려오기 때문에 물을 받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넓적한 나뭇잎을 대고 끝을 오무려 물병 주둥이를 갖다대니 훨씬 수월하다.한모금 마셔보니 뭐랄까,산삼 녹용까지는 몰라도 약초 뿌리 냄새가 제법 나는 것같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다리 앞에 젊은 북한 여성이 좌판을 깔아놓고 ‘호객행위’에 여념이 없다. “오이 하나 먹고 가시라요,조선엿도 맛이 아주 좋아요.” 예상치 못했던 생경한 풍경에 사람들이 신기한 듯 모여 있다.좌판위 물건은 오이와 과일,엿,음료수 등 7∼8가지가 전부. 물어보니 한 달 전쯤부터 이같은 좌판이 생겼다고 한다.재미있는 것은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아가씨들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적극적으로 호객을 한다는 것.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하니 “봉사중엔 절대 사진 찍을 수 없다.”며 완강히 거부한다. 옥류동은 그야말로 신선이 노닐 만한 선경이다.완만한 경사를 이룬 바위를 따라 흘러내리는 계류가 마치 비단폭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흘러내린 물이 모인 에메랄드 빛의 옥류담은 너무 맑고 투명해 눈이 시릴 정도. 이곳저곳의 비경을 사진에 담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나보다.시계를 보니 돌아갈 시간이 촉박해 구룡연은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바쁜 당일관광이라고 해도 온정리의 온천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입장료(12달러)는 다소 비싸지만,비싼 값을 하는 게 금강산온천이다.산행뒤 온천욕을 하며 맛보는 청량감은 표현이 어려울 만큼 시원하다. 이곳 온천수는 용출 지표수 온도가 70도에 이르는데,이는 남북한의 온천중 최고라고 한다.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눈 앞에 펼쳐진 금강의 비경을 감상하는 것은 금강산 여행자만의 특권이다. 글 금강산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세존봉................. 구룡연.... 옥류동.... 만물상........ 굽이.. 굽........ 이 해금강.... 삼일포.......... 온정리 노천온천에 풍.....덩.. 풍..덩 금강산 당일관광은 6월말이나 7월초에 일반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된다.이에 따라 19일부터 시작된 1박2일 관광 및 이미 시행중인 2박3일 관광까지 3가지 일정별로 선택이 가능하게 됐다. 오전 7시 남측 CIQ를 출발해 금강산 코스(구룡연,만물상 중 선택)를 돌아본 뒤 온천욕 후 오후 5시에 북측 CIQ를 출발해 돌아오는 일정이다. 요금은 성인 12만원,초중고생 9만원.하지만 당분간 성인은 9만 9000원,초중고생은 7만 9000원의 특별요금을 받을 예정이다.상품을 판매하는 현대아산측은 대진항 인근의 금강산콘도를 출발해 DMZ를 넘어 금강산을 돌아본 뒤 다시 콘도까지 돌아오는 일정까지만 책임진다. 따라서 콘도까지의 교통편은 여행사의 연계상품을 이용하거나 본인이 직접 차를 몰고 가야 한다.온천욕(12달러)과 식사(온정각내 한식부페,10달러) 비용은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당일 관광은 하루에 금강산의 비경을 맛보고 돌아올 수 있다는 매력은 있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출입국 절차가 풀어야 할 숙제다.시범관광에 나서보니 남과 북의 출입국 절차와 DMZ 통과에 왕복 4시간 정도가 소요됐다.일정이 빠듯한 당일 관광에선 시간 낭비가 지나치다.관광객들이 금강산 일원의 특정구역만 오갈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해 북한측이 출입국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야 관광객이 몰릴 것 같다. 1박2일 상품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19일 시작됐다.지난 3월과 4월 두차례 시범관광을 실시한 결과 관광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는 것이 현대아산측의 설명이다.우선 토·일요일 주 2회 출발하며,방학이 시작되면 매일 출발하게 된다.요금은 호텔해금강이나 금강펜션타운에 묵을 경우 23만원(7∼8월 기준),초중고생이 학생 야영장을 이용하면 9만 5000원에서 12만원.현재 시행중인 2박3일 관광은 매일 출발할 수 있다.요금은 해금강호텔이나 펜션에 묵을 경우 35만원.휴가 성수기(7월24일부터 8월 초순까지)는 39만원,단풍철엔 44만원이다.콘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빌리지에 묵으면 26만∼38만원. 출발일 기준 10일 전에 현대아산 영업부나 금강산관광 대리점에 예약해야 한다. (02)3669-3000,www.mtkumgang.com.
  • 금강산 당일치기관광 출발~

    금강산이 더 가까워졌다.지난 98년 동해항∼장전항 해로 코스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이,속초∼고성항 해로 관광,2박3일 및 1박2일 육로관광에 이어 마침내 당일 코스로 이루어지게 된 것.7월 초 본격 시작에 앞서 15일 진행된 당일 시범관광을 다녀왔다. “아침에 들어갔다가 저녁에 나온단 말이야?세상 많이 좋아졌네.” 지난 15일 이른 아침 동해 남북출입사무소 앞.금강산 당일 시범관광에 나선 이들의 표정엔 설레임이 역력하다. 남측 출입사무소에서의 수속은 그야말로 속전속결.신분확인과 세관 검사,검색대 통과까지,200명 이상이 한꺼번에 몰렸음에도 채 15분도 안 걸린다. 다시 관광버스에 올라 북쪽으로 향했다.남방한계선까지 가는 길은 굴곡이 심하고 험하다.본격적인 당일 관광을 앞두고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물샐틈 없는 3중 철책으로 이루어진 남방한계선 앞에 서니 엄연한 남북 분단 현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길 양편 비무장지대는 관목숲이 우거져 마치 초록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다.버스 밖에 드문드문 서서 ‘혹시 사진이라도 찍지 않을까’하고 감시하는 인민군들의 눈초리가 날카롭다. 북방한계선을 지나자 북측 군인들이 차를 세우고 버스에 올라온다.인원이 맞는지,위험한 물품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내려간다.여기부터 입국 심사가 이루어지는 장전항까지 가는 길은 일사천리다.길 오른쪽으로 멀찌감치 금강산의 암봉들이 줄을 선 가운데,길 양편은 평탄한 벌판이다.남쪽에선 이미 20여년 전 자취를 감춘 일소가 여기저기서 밭을 간다. 논밭 군데군데서 일손을 멈춘 채 이야기를 나누는 여인네들,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물끄러미 남측의 관광버스를 구경하는 아이들까지,바쁜 기색은 없고 그저 느릿한 일상이 느껴진다. 고성항에서의 입국심사는 여전히 까다로워,40∼50분쯤 걸리는 것같다.시간이 오래 지체되다 보니 관광객들도 지루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심사를 모두 끝낸 시간은 오전 9시40분.남측의 출입사무소에 7시20분경 도착했으니 출입국 절차와 잠깐의 이동시간까지 모두 2시간20분쯤 걸린 셈이다. 산행코스는 온정각에서 갈린다.구룡연,만물상,세존봉,삼일포·해금강 등 4개의 개방코스중에서 구룡연 코스를 택했다.이곳부터 구룡연 산행이 시작되는 곳까지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간다. 옥류동을 거쳐 구룡연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은 금강산 계곡길의 백미다.외금강의 3대 절경이라는 구룡연과 옥류동,만물상 중 2개를 품고 있는 곳. 휴게소격인 목란관을 지나자 산행이 본격 시작된다.계곡 반대편으로 하관음봉,중관음봉,상관음봉이 차례로 이어지고,암벽에 인위적으로 분재를 꼽아놓은 듯한 소나무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옥류동 못미쳐 등산로 왼쪽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바위에 사람들이 몰려 물을 받고 있다.산삼과 녹용물이 흘러내린다는 ‘삼록수’다.물이 바위를 따라 얇게 펴진 채 내려오기 때문에 물을 받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넓적한 나뭇잎을 대고 끝을 오무려 물병 주둥이를 갖다대니 훨씬 수월하다.한모금 마셔보니 뭐랄까,산삼 녹용까지는 몰라도 약초 뿌리 냄새가 제법 나는 것같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다리 앞에 젊은 북한 여성이 좌판을 깔아놓고 ‘호객행위’에 여념이 없다. “오이 하나 먹고 가시라요,조선엿도 맛이 아주 좋아요.” 예상치 못했던 생경한 풍경에 사람들이 신기한 듯 모여 있다.좌판위 물건은 오이와 과일,엿,음료수 등 7∼8가지가 전부. 물어보니 한 달 전쯤부터 이같은 좌판이 생겼다고 한다.재미있는 것은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아가씨들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적극적으로 호객을 한다는 것.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하니 “봉사중엔 절대 사진 찍을 수 없다.”며 완강히 거부한다. 옥류동은 그야말로 신선이 노닐 만한 선경이다.완만한 경사를 이룬 바위를 따라 흘러내리는 계류가 마치 비단폭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흘러내린 물이 모인 에메랄드 빛의 옥류담은 너무 맑고 투명해 눈이 시릴 정도. 이곳저곳의 비경을 사진에 담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나보다.시계를 보니 돌아갈 시간이 촉박해 구룡연은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바쁜 당일관광이라고 해도 온정리의 온천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입장료(12달러)는 다소 비싸지만,비싼 값을 하는 게 금강산온천이다.산행뒤 온천욕을 하며 맛보는 청량감은 표현이 어려울 만큼 시원하다. 이곳 온천수는 용출 지표수 온도가 70도에 이르는데,이는 남북한의 온천중 최고라고 한다.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눈 앞에 펼쳐진 금강의 비경을 감상하는 것은 금강산 여행자만의 특권이다. 글 금강산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세존봉................. 구룡연.... 옥류동.... 만물상........ 굽이.. 굽........ 이 해금강.... 삼일포.......... 온정리 노천온천에 풍.....덩.. 풍..덩 금강산 당일관광은 6월말이나 7월초에 일반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된다.이에 따라 19일부터 시작된 1박2일 관광 및 이미 시행중인 2박3일 관광까지 3가지 일정별로 선택이 가능하게 됐다. 오전 7시 남측 CIQ를 출발해 금강산 코스(구룡연,만물상 중 선택)를 돌아본 뒤 온천욕 후 오후 5시에 북측 CIQ를 출발해 돌아오는 일정이다. 요금은 성인 12만원,초중고생 9만원.하지만 당분간 성인은 9만 9000원,초중고생은 7만 9000원의 특별요금을 받을 예정이다.상품을 판매하는 현대아산측은 대진항 인근의 금강산콘도를 출발해 DMZ를 넘어 금강산을 돌아본 뒤 다시 콘도까지 돌아오는 일정까지만 책임진다. 따라서 콘도까지의 교통편은 여행사의 연계상품을 이용하거나 본인이 직접 차를 몰고 가야 한다.온천욕(12달러)과 식사(온정각내 한식부페,10달러) 비용은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당일 관광은 하루에 금강산의 비경을 맛보고 돌아올 수 있다는 매력은 있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출입국 절차가 풀어야 할 숙제다.시범관광에 나서보니 남과 북의 출입국 절차와 DMZ 통과에 왕복 4시간 정도가 소요됐다.일정이 빠듯한 당일 관광에선 시간 낭비가 지나치다.관광객들이 금강산 일원의 특정구역만 오갈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해 북한측이 출입국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야 관광객이 몰릴 것 같다. 1박2일 상품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19일 시작됐다.지난 3월과 4월 두차례 시범관광을 실시한 결과 관광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는 것이 현대아산측의 설명이다.우선 토·일요일 주 2회 출발하며,방학이 시작되면 매일 출발하게 된다.요금은 호텔해금강이나 금강펜션타운에 묵을 경우 23만원(7∼8월 기준),초중고생이 학생 야영장을 이용하면 9만 5000원에서 12만원.현재 시행중인 2박3일 관광은 매일 출발할 수 있다.요금은 해금강호텔이나 펜션에 묵을 경우 35만원.휴가 성수기(7월24일부터 8월 초순까지)는 39만원,단풍철엔 44만원이다.콘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빌리지에 묵으면 26만∼38만원. 출발일 기준 10일 전에 현대아산 영업부나 금강산관광 대리점에 예약해야 한다. (02)3669-3000,www.mtkumgang.com.˝
  • [전문기자 시각] 금강산에 미래가 있다/김인철 통일안보

    “금강산 다녀왔다.”는 인사말에 주변의 반응이 영 심드렁하다.1998년 11월 금강산행 바닷길이 열린 후 남한 관광객이 60만명을 넘었으니 당연한 일.“육로로 다녀왔다.”는 말도 관심을 못 끌기는 마찬가지.“어제 새벽에 서울을 떠나 금강산에 갔다가,어젯밤 집으로 돌아왔다.” 이른바 ‘하루치기 관광’을 애써 강조하자 일본 등 외국도 하루에 왔다갔다 하는 세상인데 웬 호들갑이냐고 핀잔이다.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용천’을 봤다.” 예상했던 대로 금방 반응이 왔다.“어떻게,어땠어….” 질문이 쏟아졌다.정말이었다.금강산 당일관광을 한 지난 15일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서 폭발사고 직전의 용천과 진배없는 제2·제3의 용천을 만났다.군사분계선을 넘은 지 10분여만에 관광버스 차창 너머로 처음 마주친 봉화리마을을 비롯해 장전항 인근 양지마을,온정리마을 등등.단 한번도 페인트 칠을 한 적이 없는 듯 회색 일색의,낡은 1자형 단층주택과 3∼4층짜리 공공건물은 얼마전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한 평북 용천의 모습,그대로였다. “새마을운동을 하기 전인 1970년대 이전 우리 농촌을 보는 것 같다.” 구룡연으로 오르는 길에 만난 칠순 관광객의 촌평은 단순하면서도 적확했다.그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북한 주민들의 옷차림새나 소로 쟁기질을 하는 등 낙후된 영농방식은 그들의 생활수준을 미뤄 짐작케 한다고 주장했다.그렇다.금강산으로 가는 동해선 임시도로에는 우리가 걸어온 자취가 있다.오늘의 북한 주민은 20∼30년전의 우리이며,그들의 가난은 우리가 겪은 바로 그 가난이다. 이렇듯 금강산행 도로는 북한 경제의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경제규모는 남한의 33분의1,국민소득은 15분의1이다.전체 경제규모가 남한의 3% 정도이며,1인당 국민소득은 818달러에 불과하다는 통계수치의 의미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동해선 임시도로다.그리고 그 체험은 남북간 경협이 왜 긴요한지를 생각케 한다. “기자 선생,묻지만 말고 물건 좀 사시라요.” 유명한 삼록수 약수터에서 만난 북측 여성판매원의 상혼이 제법 그럴듯했다.북측은 한달여전부터 구룡연 등산로 4곳에 간이판매대를 설치하고 남측 관광객에게 ‘봉학맥주’‘은하수귤사탕’‘향사탕’ 등 10여종의 물건을 직접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등산로 초입 목란관 앞 대여섯개의 파라솔에는 관광객 20여명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맥주 등을 마시느라 소란스럽다.서울시내 유명 유원지 어귀에서 흔히 보는 정경과 다를 바 없다.북한이 자본주의 경제에 눈 떠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강산은 남북간 평화를 만들어내는 관광지가 될 것이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금강산 당일관광을 축하하는 기념식에서 한 말이다.그렇다.금강산은 북한에 자본주의 경제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남북경협의 실효성을 확인시켜주는 성공의 장이 되어야 한다. 여름 휴가철 설악산 등 강원도를 찾을 피서객들에게 권하고 싶다.부모 형제 자녀와 함께 당일관광이든,1박2일이든 금강산에 다녀오라고 말이다.동해선 도로에 우리가 살아온 자취가 있다면,금강산엔 남과 북의 후손들이 함께 개척해야 할 미래가 있다.금강산 가는 길에서 기성 세대가 있는 힘을 다해 헤쳐온 역경을 확인하고,또 남북간 화해와 협력,나아가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해 보자.현대아산을 위해서도,화해·번영이란 거대담론을 주창하는 참여정부를 위해서도 아니다.바로 우리와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다. 김인철 통일안보 ickim@seoul.co.kr˝
  • 석탄일사면 임동원 前국정원장 ‘남북관계’ 특강

    “임(동원) 원장이 이겼어요.조금 전 만찬장으로 오는 차안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어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보수세력들로부터 국가안보기관의 책임자가 적대국의 수뇌와 밀담을 나눈다고 질타를 받았던 상황이 실제는 정상회담의 최대 난관이던 금수산 참배 문제를 매듭짓는 순간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임동원(林東源) 전 국가정보원장은 28일 “2000년 6월13일 평양 도착 즉시 북측에 ‘금수산 참배를 고집하지 말라.’는 건의서를 제시했으며,다음날인 14일 목란관에서 열린 만찬장에서 김 위원장에게서 건의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귀엣말로 전해받았다.”고 밝혔다. 임 전 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의 한 호텔에서 열린 통일교육협의회 주최 특강에서 석가탄신일 특별사면·복권 이후 처음으로 공개활동에 나서 ‘남북관계 15년의 교훈’을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특사로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만났으며,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김 위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정상회담의 의제들을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고,가능한 한 합의서 초안을 작성할 것 등 3대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북측은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임 전 원장은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은 병행 추진해야 할 것”이라며 “연계전략은 남북관계 파탄과 대미 발언권 상실로 이어져 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북핵은 해결의 방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가 없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며 “우리는 남북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고 북·미 관계의 개선을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남북관계 15년의 교훈’으로 ▲변화와 상생을 바탕으로 한 대북 인식 확립 ▲실천을 통한 신뢰조성 ▲북·미관계 개선 노력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의 병행 추진 ▲국민적 합의와 초당적 지지 등을 꼽았다. 그는 대북송금과 관련,“국가 이익을 위해서 ‘공작적 차원’에서 환전과 송금 편의를 제공했던 것”이라며 “공작이란 외교적·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비합법적 방법을 써서 국가이익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인철기자 ickim@seoul.co.kr˝
  • [데스크 시각] 금강산관광, 北결단 필요하다

    금강산 육로관광 버스에 몸을 싣고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녘땅으로 들어서며 주민들의 대하는 태도가 크게 부드럽고 여유로워졌음을 실감한다.도로변 북한군인들의 눈초리에도 적대감이 사라져있음을 보게된다. 구룡연,만물상 등산로를 오르내리며 만나는 안내원들중에는 남녘 등산객들과 갖은 농을 하며 너스레를 떠는 이들까지 생겨났다.“왜 이렇게 달라졌느냐.”고 농반진반으로 물으면 “달라진 것 하나 없다.우리를 보는 남측 사람들의 눈이 달라졌을 뿐”이라며 되레 큰소리를 쳐 웃게 만든다.목란관,금강원 등 온정리의 북녘식당 여종업원들 역시 손놀림이나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남녘 여인네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가 됐다. 물론 이라크전쟁을 어떻게 보느냐,핵문제는 미국 때문에 생긴 것이다 등등 하며 틈만 나면 도발적인 주제들을 들고 나오는 버릇은 여전하다.이들의 부드러워진 태도도 오케스트라처럼 어떤 큰 틀안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인상을 주는 것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관광 5주년을 맞아 그곳에서 마주치는 ‘작지만 소중한’ 변화들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들은 사업에 임하는 북측 인사들의 태도에도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이곳 관광버스 운전기사,호텔 종업원 등은 모두 중국동포들이다.초기 북측이 주민들이 받을 영향을 우려해,북한인력 공급을 배제시켰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제는 고용창출의 중요성을 깨달아 청소인력을 북녘주민들로 채우겠다는 약속을 하고 임금협상이 진행중이라고 한다.현대아산 관계자들은 이제 어려운 고비는 지났다고 말할 정도로 희망적인 생각들을 갖고 있다.그쪽 사람들이 이처럼 변하고 있지 않느냐는 근거에서다.하지만 5년째를 맞은 금강산사업은 이제 질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생각이다. 현대측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금강산사업에서 기록한 누적적자가 1조원이 넘고 올 상반기에만 306억여원의 적자를 냈다.금융비용과 감가상각비를 커버하려면 매달 3만명은 와줘야 한다는 이야기다.북측의 획기적인 발상전환 없이는 불가능한 목표다. 북녘 안내원은 내금강,외금강을 합쳐 금강산 전역에 통행로는36곳이라고 한다.이중 외금강 3곳만 개방됐다.10월 한달 1만 8000여명이 금강산을 찾았다.등산로는 포화상태에 이르러 주말 도봉산 못지않은 정체현상에 시달린다.관광요금이 일률적이다 보니 도저히 등산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들까지 무리하게 산행에 참가해 언제 사고가 날지 위태위태하다. 현대아산은 관광객 1명당 육로 50달러,해로 100달러씩 입산료를 북측에 지불한다.이런 식으로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 기업은 지구상에 없다는 시장원리를 북한은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그리고 등산로를 늘리고 코스별로 가격차등화를 해 다양한 상품이 개발되도록 도와야 한다.나아가 개성,평양을 연계하는 관광상품까지 나올 수 있도록 해준다면 사업은 큰 전기를 맞을 수 있다. 보다 자유롭고,풍요로운 곳에 살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만큼이나 자명한 이치다.‘자유의 삼투압’ 작용 같은 것이다.이 삼투압 현상은 막고 돈만 챙길 수 있는 비책은 세상에 없다. 금강산 온정리에서 이 기 동 국제부장 yeekd@
  • 오늘 금강산서 정회장 추모식/ 김윤규사장 “대북사업 컨소시엄 구성”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추모행사가 11일 금강산에서 열린다. 10일 현대아산에 따르면 행사에는 육로로 방북하는 유가족,친지,현대 임직원 등 380여명을 포함해 금강산 현지의 현대아산 직원,북측 인사등 모두 700여명이 참석한다. 남측 인사들은 동해선 육로를 통해 금강산으로 들어간다.북측에서는 50∼100명이 참석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명단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마련된 추모행사는 추도식,유품 안치식,추모비 건립식,유분 뿌리기 순으로 진행된다. 온정각 맞은 편 80m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질 추모비는 높이 2.2m,폭 3m의 화강암 재질이다.상단 비문석에는 도올 김용옥씨가 헌사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정 회장의 머리카락,손톱,발톱 등을 담은 함도 추모비 왼쪽 뒤편에 안치된다.유족들은 또 정 회장이 금강산을 오를 때 입었던 옷가지 등 유품을 소각해 재를 목란관,신계사터,온천장,고성항 등에 뿌릴 예정이다. 한편 김윤규 사장은 이날 “지금까지는 현대아산이 대북사업을 이끌어 왔으나 이제는 사업별로 필요하다면 국내외 다른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사업을 진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경제 플러스 / 휴대전화 광고 ‘광고’표시 의무화

    정보통신부는 19일부터 일반전화 또는 휴대전화의 단문메시지서비스(SMS)를 통해 광고를 보낼 때 제목란에 반드시 ‘(광고)’ 또는 ‘(성인광고)’ 문구를 표시해야 한다고 16일 밝혔다.그동안에는 e메일만 이같은 문구를 표시해야 했다.이를 어기면 최고 10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 “고양 꽃박람회 구경오세요”내일부터 새달8일까지 일산 호수공원서 열려

    “1억송이 꽃천지에 구경오세요.” ‘2003 고양 세계꽃 박람회’가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꽃과 인간의 환희’를 주제로 24일 개막,다음달 8일까지 열린다. ●전시장 3출입문(철쭉문)과 4출입문(장미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졌다.철쭉문을 들어서면 우리나라 10개 시·도의 특화된 화훼류와 화훼관련 상품을 전시하는 ‘한국관’이 나타난다. 왼쪽에는 국내·외 플라워 디자이너들의 화훼장식품 전시와 꽃꽂이 강의가 열리는 ‘화훼장식관’이 있다.이어 부채꼴로 펼쳐진 광장의 중심에 꽃과 나비,고전과 현대의 일상생활과 꽃의 조화를 연출하는 ‘주제관’이 나타난다.세계에서 제일 큰 꽃(지름 60㎝)인 라플레시아와 소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밥 나무가 이곳에 전시돼 있다. 꽃으로 만든 동물모형이 레이저빔 등을 활용해 환상적으로 꾸며진 ‘키즈가든’을 거쳐 호수공원을 걸으면서 수면과 호수 건너편을 장식한 꽃장식들을 보고 ‘허브국화원’을 지나면 ‘자생화관’이 보인다.이곳엔 금낭화·복주머니꽃·목란·초롱꽃·백두산매발톱 등의 우리나라 순수 야생화와 약용식물 500여점이 전시된다.이어 ‘장미원’ ‘튜립원’ ‘초화동산’ ‘토피어리원’ 등 야외전시관과 ‘한민족 꽃동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출입·교통 지하철을 이용하면 3호선 정발산역 1번 출구로 나와 걸어서 5분 거리다.경의선을 이용땐 백마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100,101번을 타고 정발산에서 내리면 된다. 승용차의 경우 4출입문 건너 MBC 부지 주차장(2000면)과 대화동 종합운동장과 컨벤션센터부지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종합운동장과 컨벤견센터에선 행사장까지 무료 셔틀버스가 다닌다.호수공원내와 행사장안 4곳에 유료주차장(주차료 1000원)이 있지만 크게 붐빌 것으로 보여 외곽주차장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입장료 어른 1만원,청소년 6000원,어린이 4000원.고양시민은 예매 30%,현장 입장권 구입때 10%,다른 지역 주민은 예매때 10% 할인된다.홈페이지는 flower.or.kr,문의전화는 (031)908-7751∼4.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 사회플러스 /불법 스팸메일 발송 1000곳 적발

    영리목적의 광고성 불법 전자우편(스팸메일)을 발송한 혐의로 현대백화점,LG전자 등 대기업을 포함한 무려 1000개 업체가 적발됐다. 정보통신부는 수신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스팸메일을 재전송한 인터피아 등 28개사와 제목란에 광고문구 표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지지콜 등 4개사에 대해 400만∼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3일 밝혔다.
  • 스팸메일 @표시 의무화/위반땐 과태료 1000만원

    오는 6월부터 영리목적의 전자우편(스팸메일) 발송때는 제목란에 (광고) (성인광고) 문구 외에 제목 끝에 @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이는 @ 표시가 (광고) 등 무차별적인 광고메일을 동시에 필터링하고 외국에서도 한글 스팸메일을 필터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정보통신부는 20일 이같이 스팸메일 전송형식을 구체화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입법예고했다.스팸메일 전송형식을 위반하면 최고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관계자는 “앞으로 @가 국제사회에서 표준화된 광고 표시부호로 채택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또 스팸메일 전송때 (광고) 등을 명시해야 하는 대상을 종전 전자우편에서 ▲휴대전화 등 전화 문자전송 ▲팩스 ▲전자적 형태로 정보가 전송되는 매체로 확대하고,반드시 수신거부용 무료 전화번호를 명시토록 했다. 정기홍기자
  • [열린세상] 인문학, 문화산업의 바탕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다.이제는 문화적 가치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하며 문화산업은 이미 새로운 황금시장으로 떠올라 있다.사실 세계 모든 나라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지구를 한 마을처럼 좁혀버린 속에서,엄청난 규모의 문화 전쟁을 치르고 있다.문화전쟁은 총소리도 화약냄새도 나지 않는 전쟁이다.하지만 그 규모는 이미 경제 전쟁을 포괄할 정도로 커져버렸다.그래서 디즈니 영화 한 편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우리나라가 1년 동안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판 자동차의 총수입을 넘어서는 판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민족단위 국가들은 문화 전쟁을 단순한 경제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강화하는 길로 인식하고 있으며,승패 또한 자신들의 고유 문화를 어떻게 보존하고 확산시킬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본다.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 문화에 눈을 돌리는 일은 18세기 이후 서양에 압도당하면서 내팽개쳐졌던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자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는길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 문화산업의 황금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는 여전히 미국이다.미국은 영화,음반,게임,애니메이션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을 도구 삼아 현란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내서 세계 시장에 팔고 있다.하지만 채 300년이 안 된 미국의 역사나 문화 속에서는 그런 콘텐츠의 소재가 나오지 않는다.그렇기 때문에 인디안 포와탄 부족의 딸을 불러내어 ‘포카 혼타스’를 만들고,중국 남북조시기 북방의 민중가요 ‘목란시’에서 따와 ‘뮬란’을 만들었으며,유럽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국의 판타지 소설을 대본으로 ‘해리포터’를 만들고,일본 사무라이 문화와 동양의 기를 끌어다가 ‘스타워스’를 만들었다.그리고 그 속에는 평화주의자이며 정의로운 사람으로 그려진 백인 우월주의가 들어 있기도 하고,왜곡된 동양 이해가 들어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엄청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5000년의 유구한 역사 동안 신화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민담과 설화뿐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에서 보이듯 꼼꼼한 기록 문화들이 즐비하다.뒤늦은 감이 있지만 문화관광부 산하에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만들어져서 ‘문화원형 관련 디지털콘텐츠개발’ 사업이 시작된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그 사업들을 보면 동이족의 원형을 볼 수 있는 ‘산해경’의 신화적 요소에서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끌어내기도 하고,‘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전통 무기들을 3D 동영상으로 재현하여 온라인 게임의 소재로 제공하기도 하며,조선시대 살인사건 조사기록인 ‘검안’과 법의학 관련자료인 ‘중수무원록’에서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그리고 사이버 상에서 전통 한옥마을 세트를 구현해 내기도 하고,암행어사 기록들을 복원하여 게임,애니메이션,만화 등의 소재를 제공하기도 한다.뿐만 아니라 전통 문양과 색채를 되살려 내기도 하고,심지어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다양한 전투 원형들을 복원해 내기도 한다.이 같은 작업은 대부분 그동안 인문학의 위기와 함께 마치 불필요한 학문인 양 내몰리던 인문학자들의 몫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얼마 전 인문콘텐츠학회라는 낯선 이름의 연구모임이 만들어졌다.그 창립의 자리에는 그동안 인문학 위기 담론의 주역인 철학,문학,역사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미디어,출판,영상 등 다양한 산업 현장의 전문가들이 함께했다.학회 이름에 걸맞게 창립 심포지엄의 발표는 인쇄된 원고를 줄줄 읽어가던 기존의 학회 발표와 달리 모두 빔 프로젝트를 이용한 영상화된 발표였다.모든 학문의 근원인 인문학이 최첨단 문화산업과 만나는 자리였다. 문화가 사람의 삶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라면 인문학은 그 문화가 사람다운 문화가 될 수 있도록 방향타의 역할을 하는 학문이다.따라서 문화의 세기는 그 주요 도구인 콘텐츠를 인문학으로부터 제공받을 필요가 있다.같은 분단 문제를 ‘쉬리’와 같은 시각에서 볼 것인가 ‘JSA’ 같은 시각에서 볼 것인가도 인문학의 역할이며,고유문화의 보존과 확산을 통해 우리 문화에 기반한 문화산업을 이끄는 일도 인문학이 할 일이다. 김교빈 호서대 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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