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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관가야 유물 1천여점 발굴/김해 고분군서

    ◎한반도문화의 일 전래 입증 【김해=이정규기자】 경남 김해군 대성동 고분군 2차 발굴작업 결과 4세기 금관가야시대의 지배자급 무덤(왕묘)에서 구리거울인 방격규거사신경과 가죽제 화살통·방패·한두대도·왕제품 등 1천여점의 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경성대박물관 발굴조사단(단장 김무조관장)은 7일 지난해 9월부터 이 일대 고분군에서 2차 발굴작업을 벌여 목곽묘·석관묘·석실묘 등 모두 39기의 무덤에서 토기류 2백41점,철기류 60여점 등 모두 1천여점의 유물을 출토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유물중 23호 고분에서 나온 지름 16.7㎝의 반격규거사신경은 원형으로 된 4세기쯤 후한대의 중국제 거울로 당시 금관가야(김해지방) 지배자들이 입수해 사용했던 것이며 종교적 권위를 나타내는 보물로 추정되고 있다. 또 7·11·14호 고분 등에서 출토된 가죽제 화살통과 방패는 4∼5세기때 일본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형이고 역시 이번에 출토된 동형동기와 파형동기·방추차 등도 일본에서 같은 것들이 출토된 점으로 보아 한반도에서 이러한 유물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입증됐다. 특히 파형동기는 1차 발굴때 2호 고분에서 1개가 출토된데 이어 2차 발굴에서도 3점이 출토됐고 직경도 일본 고분 것의 7㎝보다 큰 12㎝의 초대형이며 백옥제방추차형 석제품 1점은 일본 고분에서도 출토된 예가 많아 금관가야와 왜의 물물교환 등 역사규명에 귀중한 자료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 발굴결과에 대해 김무조 발굴단장은 『1차 발굴에 이어 2차 발굴의 결과 이 고분군이 4세기 때의 지배자 무덤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출토 유물들은 금관가야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구조 규명과 고대사중 공백기간으로 남아있던 4세기때의 역사연구,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 당시의 국제관계 규명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임당 원삼국시대 고분에서 순장 인골 발굴

    ◎영남대,유물 2천4백여점도 【경산=김동진기자】 경북 경산시 임당동ㆍ조영동 택지개발사업지구에서 기원전 2세기 청동기후기∼고려초기에 이르는 1천여년동안의 고분 2백6기에서 청동기시대 세형동검을 비롯한 2천4백89점의 각종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청동기시대 고분에서 나무에 칠기로 장식한 칼집속에 든 세형동검(길이 40㎝)과 원삼국시대 고분에서 철제갑옷 등 귀중한 유물이 출토된데다 원삼국시대 대형목곽묘에서 순장된 인골이 발견돼 지금까지의 학설과는 달리 이미 이 시대부터 순장한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져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남대박물관(관장 권이구)이 지난해 10월부터 현재까지 10개월동안 실시한 3차 발굴조사결과 청동기후기 묘 3기,원삼국시대 묘 23기,삼국시대 고분 1백65기,고려초기 고분 15기 등 모두 2백6기의 고분에서 목곽묘 1백80기,석곽묘 7기,횡혈식 석실묘 1기,옹관묘 13기,석관묘 3기,적석목곽묘 2기 등의 유적을 확인했다.
  • 금관가야 왕릉2기 첫 발굴/김해 대성동/파형동기등 유물 대량 출토

    ◎“「임나일본부설」 뒤엎는 사료”전문가 경남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에서 4세기에서 5세기초 금관가야시대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최초로 발견됐다. 지난 6월12일부터 대성동 고분군을 발굴해온 부산 경성대조사단(단장 김무조박물관장)은 고분군의 구릉정상부에서 길이 8m45㎝의 대형 목관묘를 발견,이곳에서 각종 무구와 토기 마구류 등 유물 3백여점을 수습해 금관가야시대의 지배층 묘임을 확인했다고 10일 발표했다. 조사단은 주곽과 부곽으로 구성된 이 목곽묘에서 국내 최초로 4세기말의 금속유물인 파형동기를 발굴한 것을 비롯,통형동기 2점,철제갑위 5점,대형철정 1백50점,청동제경판부재갈 등 마구류 4점 철검 등 무구류 92점 등 지배층의 묘임을 확인할 수 있는 다수의 부장품을 찾아냈다. 또 조사단은 주곽 전면에서 지배계급에 행해지는 벽사 의식인 붉은칠(주)이 칠해진 것을 확인하는 한편 부곽에서는 고령가야 토기의 조형인 원저장경호 30여점과 다수의 갑주류ㆍ마구류 등을 발견,고분축조연대를 4∼5세기초로 추정했다.
  • 묻혔던 금관가야의 실체 구명/김해 대성동 2호 고분 발굴의 뜻

    ◎파형 동기ㆍ통형 동기,일 근기것 보다 앞서/“지배영역 일본까지 확대”입증 김해 대성동 2호고분에서 발견된 금관가야시대 지배층의 무덤은 가야의 출발지인 금관가야의 실체를 밝히고 우리 고대사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4세기대 역사 해명에 상당히 접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고고학적 발굴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김수로왕이 AD42년에 건국한 것으로 전설적으로 전해져 오는 금관가야는 지금까지 6가야중 가장 알려지지 않은 취약점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금관가야 지배층의 무덤발견과 주곽이 8m가 넘는 대형목곽묘라는 사실 확인은 한국고대사에서 금관가야의 역사적 비중을 높이는 것이어서 앞으로 보다 체계적인 발굴조사가 필요함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다량의 갑주류가 출토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금관가야가 당시에 이미 고도로 정비된 군대를 보유한 강력한 정치집단이었음을 실증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같이 김해를 중심으로 발달된 고도의 갑주문화가 신라는 물론 나아가 일본까지 전파됐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 주목되는 유물로는 파형동기와 통형동기로 전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것이며 후자는 김해 동래 함안 등에서도 출토되지만 극히 희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유물 역시 일본의 근기지방에서 출토되는 것과 비슷해 금관가야의 활동영역이 일본에까지 뻗쳤음을 알려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2호분 주곽에서 청동제 경판이 붙은 재갈,장식성이 풍부한 고수준의 마구류 등이 발굴된 것은 이 지역이 문화적ㆍ정치적으로 선진지역임을 입증해 주는 또다른 증거가 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출토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다량의 토기중 2호분 부곽출토의 원저장경호는 고령지역 대가야 토기의 조형으로 삼국시대 토기문화의 중심지가 김해지역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발굴조사단은 보고서에서 이번 발굴이 가야의 출발지인 금관가야의 실체를 규명할 단서가 될뿐 아니라 고대사중 해명되지 못했던 부분을 재구성하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될것이라고 밝히고 이같은 실체 규명의 보완을 위해 오는 9월 제2차 발굴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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