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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성동 고분 박물관 본 받아라

    경남 김해 대성동고분군(群)이라면 금관가야 최고지배층의 무덤이 무더기로 발굴되어 화제를 모은 곳이다.1990년 이후 5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금관가야의 문화 및 사회상을 밝히는 3000여점의 유물이 쏟아졌다. 이 곳에서 지난해 8월 문을 연 대성동고분박물관이 문화유적을 보존하는 최선의 사례로 떠오르고 있다.고분군이 있는 대성동 일대는 2∼3년 사이에 고층아파트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고분박물관은 이 신개발지역의 한복판에서 시민의 문화 및 휴식 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고분박물관의 전체면적은 6만 5331㎡(1만 9763평)에 이른다.그러나 2023㎡(612평)의 실내전시관과 213㎡(65평)의 노출전시관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은 조촐하기만 하다. 금관가야 문화의 정수를 이해할 수 있도록 꾸민 실내전시관은 고분밀집 지역을 피해서 지었다.노출전시관은 이 지역에서 가장 이른시기 왕의 무덤이라는 39호 목곽묘를 발굴 당시의 상태로 복원한 것.고분이 밀집한 구릉을 따라 조성한 오솔길도 주민들의 ‘역사산책로’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사실 대성동고분군이 이렇듯 훌륭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사적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개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대형 건설회사 등 앞으로 대규모 택지나 공업단지를 만들려는 주체는 대성동고분박물관의 성공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이 시각에도 전국 곳곳에서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지만,조사가 끝나면 유적은 대부분 옛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릴 것이다.그러나 택지든,공단이든 일정 규모의 공원은 반드시 조성해야 한다.예상치 못하게 문화유적이 드러났다면,기존에 계획한 공원용지는 택지나 공단부지로 돌리고 유적공원으로 조성하는 발상의 전환은 어떨까.분명히 시간과 비용은 더 많이 들 것이다.그렇지만 입주자들의 높아진 만족도는 그 ‘손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대성동고분박물관은 잘 보여주고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 5세기초 백제 금동관모등 대량출토/무령왕릉 발굴이후 최대규모

    충남 공주에서 5세기 초반 것으로 보이는 백제시대 금동관모 2점과 금동신발 3켤레,금제귀걸이 및 환두대도 등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충남발전연구원은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유적을 발굴조사한 결과 4세기 후반∼5세기 초·중반의 백제무덤 6기와 부장품을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목곽묘인 1호분에서는 금동관모와 금동신발,환두대도가 출토됐고,석실분인 4호분에서는 금동신발 1켤레가 환두대도와 함께 나왔다.석실분인 5호분에서는 중국청자 3점과 금동신발 1켤레가 역시 관모와 함께 발굴됐다.백제지역에서 이처럼 유물이 대량으로 나온 것은 1971년 무령왕릉 발굴 이후 처음이다. 이훈 책임조사연구원은 “무덤 대부분은 백제가 475년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겨오기 전 조성된 것”이라면서 “웅진에는 천도 이전에 이미 상당한 규모의 현지세력이 존재했음을 추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밀양서 삼국시대 분묘14기 발굴

    국립밀양대학교 박물관(관장 李銖勳)은 20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월산리 214의 4 구릉지대에서 삼국시대 목곽묘 8기,수혈식 석곽묘 5기,횡혈식 석실묘1기 등 모두 14기의 분묘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4세기 영남지역 목곽묘로는 드물게 월산리1호 목곽묘를 C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주구(周溝)가 발견돼 주구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박물관측은 설명했다. 주구는 폭 148㎝,깊이 25∼40㎝,양 끝의 직선거리 692㎝로 주구 안에서 장묘 및 제사 의식에 사용된 큰 항아리가 깨진 채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밀양 이정규기자 jeong@
  • [해양한국 장보고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1회)

    ‘기원후 48년 7월,가야땅인 김해의 망산도에 한 척의 배가 닿았다.붉은 돛에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서남쪽에서 다가온 배 안에서 여러 명의 신하들과함께 내려온 여인은 김수로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나는 본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인데 성은 허(許)씨요,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이렇게 해서 김수로왕과 바다를 건너온 출자(出自)가 불명인 공주는결혼했다.뱃사공들은 돌아가고 나머지는 모두 가야의 국민이 되었다.‘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기록되어 있는 사화이다. 가야국은 육지의 이주세력과 해양세력이 결합해 출발한 나라이다.그러면 허황옥 집단은 어디에 기반을 둔 세력이며,어떤 항로를 거쳐 가야땅까지 왔을까? 그리고 해양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아유타국은 인도의 아요디아왕국이라는 설이 있다.허황옥과 관련한 문화적인 요소는 분명 남방적 분위기가 풍긴다.우리문화 전반에도 신화 신앙 장례 풍습 등 남방적인 요소가 많다. 인도에서 한국까지는 오늘날에도 너무나 먼 뱃길이다.하지만 자연조건을 고려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인도남부를 출발하여 말라카해협을 통과한다음에 남서풍을 이용하면 보르네오섬 북쪽을 지나 북상이 가능하다.더구나필리핀 북부부터는 쿠로시오(黑潮)가 북동진한다.따라서 이 해류와 봄철에부는 바람을 이용하면 동남아지역과 일본열도 혹은 한반도남부는 교섭이 가능하다. 한편 그들은 인도를 떠나 육로로 중국의 사천성을 경유한 다음 양자강 하구에서 황해남부 사단항로를 이용해 가야지역에 도착했다는 설도 있다(金秉模설).그 외에 요동에서 서해 연근해항해를 이용해 낙동강구를 찾아왔다는 설도 있다.가야는 이렇게 원양 항해능력을 갖춘 집단으로 출발했다.하지만 이미 건국할 당시부터 강력한 해군이 있었다.이주민인 석탈해가 김수로왕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자 주사(舟師) 오백척을 내어 쫓아버렸다. 동아지중해는 황해 뿐만 아니라 전역에 걸쳐 해양문화가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였다.고대국가들은 농사를 짓고,교역을 하며,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대부분 강가나 바닷가에서 발달하였다.특히 바다로 둘러싸인 지역이나 혹은 바다를 둘러싼 지중해지역에선 더욱 그러하다.‘삼국지’의 ‘한전’(三國志韓傳)에 의하면 한강 이남에는 마한 진한 변한이 연맹체 아래 만여가에서 수백가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소국 79개가 있었다. 이 소국들의 상당한 숫자는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과 같은 큰강의 하류(津)나 바닷가포구(浦)에 있었다.유럽 지중해의 연안에 무수히 발달했던 ‘아테네’ ‘코린트’같은 일종의 해양폴리스같은 ‘나루국가’였던 것이다.이 소국들은 바다를 건너 중국지역은 물론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열도와도 활발히 교역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일본열도에도 기원을 전후하여 규슈를 중심으로 100여개의 나라가 있었다.이들 소국은 점차 큰 나라로 통합돼 기원 3세기 무렵에는 30여개의 나라가 되었다.물론 이 소국들의 주체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야요이문화의 주민들이었다. 좁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이들 수십개의 소국들은 선단을 보유한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그것은 교역권의 쟁탈전이었고,농사짓는 토지가 아니라 안전하고 효율적인 뱃길,좋은 항구,우수한 선원을 확보하기 위한 해양력 경쟁이었다.소국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의미있고 현실적으로 강한 나라가 바로 가야의 전신인 구야한국(狗邪韓國)이다. ‘삼국지 왜인전’에는 대방에서 일본열도의 야마대국까지 가는 항로와 항해거리,경유하게 되는 소국의 위치와 규모가 기록되어 있다.그런데 바로 한반도의 마지막 깃점이 김해지역으로 추정되는 구야한국이었다.이곳은 경상도 전역을 훑어내려온 낙동강의 물길이 모여서 대한해협과 만나는 나루터이다.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 세력과 남해안을 따라 동진하는 세력이 만나는 한반도 동남부의 끝단이다.전라도의 해안이나 제주도에서 해류를 타면 자연스럽게김해지역에 도착한다.대마도와 이끼섬을 중간에 두고 일본열도와 이어지는최단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대항해는 가능한 자기위치를 확인하면서 연근해 항해를 하고,되도록 짧은거리를 선호한다.때문에 당시 김해지역은 중국지역과 한반도,일본열도를 이어주는 동아지중해 최적의 중계지였고,교역선이나 사신선들이 반드시 경유할 수밖에 없는 국제항이었다.이곳에는 각지역의 사람들과 다양한 물건들이 매매되고,가공무역과 중계무역이 이뤄지고 있었다. 1991년∼92년 김해군 주촌면 양동리에서 동의대학교가 기원전 1세기부터 4세기에 걸치는 고분에 대한 발굴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엄청난 유물들이 발굴된 이 지역이 기록상의 구야한국으로 추정된다(林孝澤).특히 2세기말 수장급 묘로 추정되는 162호 토광목곽묘에서는 9개의 청동거울이 출토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2개는 중국제 한경(漢鏡)이고,나머지 7개는 중국경을 모방한 방제경(倣製鏡)이다. 일본열도에서 많이 발견됐던 이 방제경을 놓고 한일학자들은 그 원류와 만든 장소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주장했다.또 광형동모,옥,목걸이 등 두지역간 닮은 것들이 출토돼 해석이 분분하다.이와같은 현상은 경성대가 발굴한 근처 대성동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였다.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가야가 중국물건들을 수입했으며,한일 양 지역간에는 해상교류가 활발했고,기록처럼 핵심거점이 이곳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변진(변한)은 철을 돈처럼 쓰기도 하고,왜 낙랑대방 예 등에 수출했다(삼국지 한전).또 유사한 물건들을 사용한 규슈의 소국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주민들이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김해지역은 소위 환황해 연근해항로의중요한 깃점이자 교역망의 중계항이고 물류체계의 핵심거점이었다.해양소국에서 출발한 가야는 대한해협의 양안을 지배하는 해양제국으로 발전한 것이다. * 남대문은 그래도 안전?‘남대문 이상무’ 국립 문화재연구소의 남대문에 대한 안전 진단 결과이다. 남대문은 국보 제1호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재.그러나 그 주변으로 수많은 차량이 오가며 매연을 내뿜고 땅 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는 등 대접이이만저만 소홀한 것이 아니었다.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차량 및 지하철 운행에 따른 진동 등으로 남대문이 훼손될 수도 있다며 안전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이러한 우려에 따라 문화재연구소는 97년 12월 남대문 하층 귀기둥 부분에1000분의 1㎜까지 측정할 수 있는 자동경사측정기 8대를 설치했다.24시간 상시 가동되는 자동경사측정기는 30분당 2분씩 5초간격으로 건물의 기울기를측정해 왔다.측정된 자료는 변환기를 거쳐 중앙제어장치에 저장되고 문화재연구소로도 보내진다. 문화재연구소는 이를 토대로 일간,월간,계절간 변화를 비교,구조물의 거동특성을 분석하고 변위경향 분석을 통한 구조물의 안전도를 점검했다. 자료분석결과 측정 센서별 진폭은 1∼4㎜이내로 거의 없었으며 변형은 하루 및 연간 단위 주기로 파형 곡선의 증감을 보였다. 연구소측은 “측정값이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은 남대문이 목조건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즉 나무로 된 이음새부분이 온도,습도 등의 영향으로 늘었다 줄었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연구소측은 또 “기울기가 주기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계절 또는 주위 환경의 변화 때문으로 구조 안정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남대문 보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내렸다. 그러나 문화재연구소 김봉건 미술공예연구실장은 “자동 경사측정기를 지난해 4월부터 본격 가동했기 때문에 계절별,연간 변화를 파악하려면 1년반 정도 더 운영해 봐야 한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한편 연구소측은 내년에는 동대문에도 자동경사측정기를 설치하기로 하고예산요청을 했다.동대문은 지하철 공사가 시행된 지난 83년과 84년에 측정했을 때 8㎜로 나타나 남대문보다 훨씬 컸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후약방문’보다는 문화재 밑으로 지하철을 굴착하는 도시개발행위가 중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태순기자 stslim@
  • 삼국시대 遺構 42기 발굴/경주

    ◎목곽묘서 주조철부 등 유물 대량 출토 경북 경주시 외동읍 구어리 556 단독주택 신축예정 터에서 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목곽묘,옹관묘 등 각종 유구 24기와 당시 화폐로 쓰였고 부를 상징했던 주조철부(鑄造鐵斧) 등 각종 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원장 李白圭)은 지난 4월부터 진행한 조사에서 목곽묘 24기,적석 목곽묘 12기,횡혈식 석실3기,옹관묘 1기 등 삼국시대 분묘 40기와 기와요지 2기 등 모두 42기의 각종 유구를 발굴했다고 22일 발표했다. 목곽묘 24기의 형태는 소·대형 장방형,주부곽식(主副槨式)형이었으며 규모는 묘광길이가 218∼1,090㎝,너비는 120∼340㎝로 다양했다.또 규모가 가장 큰 목곽묘(묘광길이 1,090㎝,너비 340㎝)1기에서는 각종 토기류와 판갑옷을 비롯해 당시 화폐로 쓰였던 다량의 주조철부가 나왔다.무덤의 주인은 당시 수장층(首長層)으로 추정된다.
  • 김해서 말투구·갑옷 무더기 발굴/부경대학 박물관팀

    ◎삼계동 일대 가야시대 고분 75기 확인 부경대박물관(관장 이승영)은 지난해 12월부터 경남 김해시 삼계동 두곡마을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5세기 가야시대의 중소형 고분 75기를 확인하고 마구와 투구·철갑옷·각종 토기들을 수습,9일 처음 공개했다. 이번 발굴된 고분은 목곽묘 10기를 비롯해 수혈식 석곽묘 62기,토광묘 2기,옹관묘 1기로 대부분 구릉의 능선과 사면에서 확인됐다.특히 국내 최초로 투구와 갑옷이 한 무덤에서 수습된수혈식 석곽묘의 횡장판차양투구(횡장판정결차양주)와 삼각판혁철갑옷(삼각판혁철판갑)은 일본에서는 수장급 고분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가야시대의 서민층과 피지배계층 무덤에서 발굴됐다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 5세기 초반의 목곽묘에서 발견된 말투구(마면주)는 김해 대성동 1호분에서 출토된 것과 함께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말투구로는 가장 이른 것으로 당시의 왜보다 50년 이상 빠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청동기시대 유물 대량 발굴/대구 팔달동 아파트부지서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단(단장 이백규)은 지난해 8월부터 대구 팔달동 145 신축 아파트 건립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청동기∼조선시대에 걸친 주거지 고분 등 유구 460기를 확인하고 토기 철기 장신구 등 820여점의 유물을 수습했다고 17일 발표했다.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이 이날 공개한 유구에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20여동과 무늬없는 토기옹관 120여기를 비롯해 원삼국시대 와질 토기옹관 12기와 목관·목곽묘 120여기,삼국시대 석곽묘 30여기가 포함돼 있다.
  • 가야∼삼국시대 대규모 유적 발굴/김해 장유택지지구서

    한국토지공사가 조성중인 경남 김해시 유하,대청,관동일대 장유택지개발지구에서 삼한∼삼국시대에 걸친 대규모 유적지가 발굴됐다. 부산대·울산대·경성대·동의대박물관은 지난해 12월10일부터 지난 27일까지 이 택지개발 지구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가야시대 분묘 172기를 비롯해 삼국시대 횡구식석실묘 1기,5세기중엽∼6세기초 목곽묘,삼국시대 토기 가마터,주거지 등 248기의 유구를 확인하는 동시에 토기 청동기 등 유물을 다량 수습했다고 28일 발표했다.
  • 원삼국 유물 대량발굴/경주 사라리고분군…덧널무덤 1기 원형그대로

    ◎청동검·재화상징 철도끼·쇠솥 등 110점 나와/AD2세기 초기 신라 수장묘 추정… 요갱 흔적도 경북 경주시 서면 사라리 573의3 고분군에서 서기 2세기쯤 초기 신라시대 최고 수장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덧널무덤(토광목곽묘) 1기와 함께 유물 1백10점이 발견돼 26일 공개됐다.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사라리발굴조사단(단장 이백규)이 지난해 11월부터 착수한 (주)명성 제2공장부지 구제발굴에서 발견한 유물은 청동검과 청동거울,쇠솥과 철검,수정구슬로 돼있다.이들 유물이 나온 덧널무덤은 길이 3백25㎝,폭 2백25㎝,깊이 90㎝로 원형 그대로 발굴됐다. 고분은 모서리를 죽인 말각장방형의 묘광을 파고 그 안에 길이 2백5㎝,폭71㎝의 널(목관)을 만든다음 길이 2백69㎝,폭1백20㎝의 덧널(목곽)을 또 갖추어 널과 덧널이 있는 유관·유곽의 구조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널과 덧널사이에는 점성이 강한 흙을 작은 돌멩이를 섞어 덮었는데 특히 피장자의 허리부분에 직경 70㎝의 허리부분의 구덩이인 요갱 흔적이 남아있다. 목관 내부에는 70여개의 사각형 철도끼를7열로 깔았고 머리부분의 널 모서리 양쪽에 사각형 철도끼를 각 1점씩 꽂았으며 칼자루가 남아있는 세형동검(50㎝)1점을 널 머리 우측에 세워두었다. 유물은 덧널의 위쪽에서 나비모양 8자형 동기,청동환등이 S자형 재갈과 함께 출토됐고 깨진 토기와 쇠창 2점,쇠솥 1점도 묻힌채로 발견됐다. 이 고분에는 삼보로 알려진 칼·거울·옥과 함께 당시 재화의 의미를 가진 사각형 철도끼 70개가 부장돼 무덤에 묻힌 피장자가 당시 정치·경제적으로 최고 수장의 위치였을 것으로 문화재관리국은 평가했다.대체로 서기 2세기를 전후해 형성된 이 유구는 덧널이 아직까지 부장공간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한채 단지 1점의 쇠솥을 묻은 것으로 미루어 초기 단계의 덧널무덤으로 추정된 동시에 신라 덧널무덤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는 과정으로 해석됐다.그리고 이번 발굴된 고분에서 피장자의 허리부분을 판 요갱이 함께 확인된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경남 창원 다호리 고분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는 이 요갱은 아직까지 완전히 조사되지 않은 부분으로 신라 묘제발전단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구로 판단된다.〈김성호 기자〉
  • 원삼국∼조선시대 분기 대량발굴

    경산 임당통서 경북 경산시 임당동일대 택지개발지구에서 원삼국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분묘가 대량출토됐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매장발굴조사실(단장 김전배)은 지난해 9월부터 경북 경산시 임당동·조영동일대 1만4천여평에 걸친 택지개발지구에 대한 구제발굴조사를 벌여 원삼국시대의 목관묘 39기,목곽묘 6기,옹관묘 2기,삼국시대의 목곽묘 4백41기,주구묘 1기,석곽묘 60기,옹관묘 25기,횡구식석실분 4기,횡혈석실분 69기,고려시대의 토광묘 10기,석곽묘 5기,조선시대의 토광묘 6기,고려이후 토광묘 24기,기타 성격미상의 유구 3기와 도랑유구 2기등 7백20여기를 발굴했다고 19일 밝혔다.〈김성호 기자〉
  • 금관가야 유물 5백52점 발굴/김해 양동리서

    경남 김해 양동리 가야 고분군에서 금관가야의 것으로 추정되는 AD3∼4세기의 유물이 대량 발굴됐다. 부산 동의대박물관(관장 임효택)은 지난해 10월부터 경남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산3 양동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토광목곽묘 39기와 수혈식석실묘 4기,옹관묘 6기등 가야시대 분묘 49기를 확인하고 토기·철기·청동기·장신구 등 유물 5백52점을 수습했다고 13일 발표했다. 분묘는 토광목곽묘가 주종을 이루며 특히 이 토광목곽묘 39기중 6기에서는 순장자의 사체와 유물을 안치한 길이 5m,너비 3.1m,깊이 1.4m크기의 방형또는 장방형 부곽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들 분묘에서는 토기 1백68점과 말재갈·검·도끼·화살촉등 철기 3백65점,사각무늬청동거울인 「방제방격규구문경(방제방격규구문경)」 1점등 청동기 6점,금제 귀고리등 장신구 12점이 함께 출토됐다. 이 가운데 「방제방격규구문경」은 중국 한대의 영향을 받아 가야에서 새롭게 제작한 것으로 당시 구리거울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 원삼국시대 유물 경주서 대량 출토

    【경주=이동구기자】 경북 경주시 서면 사라리 산573의 31 일대 야산에서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영남 매장문화재연구원 사라리 발굴조사단(단장 이백규경북대박물관장)은 지난 해 11월부터 이 곳 고분에서 청동기 거주지 4곳을 비롯해 원삼국시대의 목관묘 5기,옹관묘 2기,목곽묘 11기,삼국시대 석곽묘 10기,적석목곽묘 42기,목곽묘 60기 등 1백34기를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 원삼국시대 분묘 1백20기 발견/포항 옥성리 일대

    ◎토기류 등 유물도 4백38점 발굴 【포항=이동구 기자】 사단법인 영남 매장문화재 연구원 옥성리 발굴조사단(단장 이백규·영남대 박물관장)은 1일 하오 『경북 포항시 북구 흥애읍 옥성리 산12 일대에서 원삼국시대(AD3∼4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분묘 1백20기 등 유물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발굴된 분묘는 목관묘 1백16기,옹관묘 3기,기타 1기 등이며 유물은 원저장경호 등 토기류 1백33점,환두대도 등 철제무구류 2백34점,유리구슬 곡옥 등 장신구 70점,원통형목제품 1점 등 4백38점이다. 목곽묘의 규모는 대부분 길이 7.2m 폭 1.8m 크기의 세장방형으로 둘레에는 15㎝ 크기의 강돌을 돌리고 보강토로 채웠으며 철제 투구와 철검 철촉 등 철제 무구류와 토기류 등 각종 부장품이 매장돼 있다.
  • 3∼4세기 가야유물 1천여점 출토/김해 양동리서/한대청동솥 포함

    경남 김해군 주촌면 양동리 산3 일대의 가야시대 고분유적을 발굴중인 동의대박물관팀은 27일 가야묘제의 계통을 파악할 수 있는 53기의 무덤에서 3세기경 가야문물의 진수를 보여주는 뿔잔을 비롯한 유물 1천30점을 출토했다고 발표했다. 동의대가 지난해 9월20일부터 제3차발굴로 진행한 이날 발굴에서는 새로운 형식의 뿔잔(각배)과 화로형 토기등 토제품 2백여점,고리칼(환두대도)과 쇠솥 갑옷과 투구 갑주등 철제품 8백여점, 삼발이솥과 통형동기등 청동제품 11점, 유리수정제 치레걸이 18벌등 가야문물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가운데 굴식돌방무덤(수혈식석실묘 304호)에서 출토된 뿔잔은 소뿔모양의 토기잔 중앙부위에 아담한 작은 단지를 덧붙인 새로운 형식의 토기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새김글씨가 들어있는 청동삼발이솥은 흙구덩덧널무덤(토광목곽묘 322호)에서 출토되었는데 한대의 전서체로 「서구궁정,용일두,병중십칠근칠양,칠」이라고 새겼다. 이밖에 또다른 흙구덩덧널무덤(303호)에서 나온 고리칼은 길이가 1백25㎝나되어 같은 유형의 삼국시대 유물가운데 가장 긴 것으로 밝혀졌다.원통형의 통형동기에는 4개의 장방형 구멍이 나있고 안에는 방울처럼 소리가 나도록 작은 청동봉을 집어넣었다. 이번에 발굴된 통형동기는 김해시 대성동 고분에서 나온 통형동기와 함께 통형동기의 원류가 일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가운데 그 쓰임새도 의기라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새김글씨가 들어있는 청동삼발이솥은 이번에 출토된 쇠솥(철복)과 함께 주목을 끌었다.특히 청동삼발이솥은 기원전100∼서기100년쯤에 황하 중하류에서 유행한 유물과 형식이 같은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3세기쯤 가야에 전래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번 발굴에서 나온 18벌의 목걸이 가운데 흙구덩덧널무넘(322호) 출토품은 삼국시대 최대의 걸작품으로 수정제의 굽은옥과 다면옥,마노제 둥근옥으로 이루어졌다.
  • 가야기원 2세기로 앞당겨/김해양동리 유물 1천점 출토 의미

    ◎청동삼발이솥에 명문… 한과 교류 입증/유구 53기 발굴… 묘제연구에 중요자료 동의대 박물관조사단(단장 임효택박물관장)이 경남 김해시 양동리 고분군에서 발굴한 1천30여점의 유물들은 가야의 역사를 서기2세기쯤으로까지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는 결정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왜냐하면 기원전100∼서기100년 사이 황하의 중·하류지역에서 유행한 다리가 짧고 양쪽 귀가 굽은 한대의 청동삼발이솥이 흙구덩덧널무덤(토광목곽묘)에서 이번에 출토되었기 때문이다.이 청동삼발이솥은 새김 글씨가 들어있는 유명 동정(글씨내용 1면 참조)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유물로 부각된다. 우리나라에서 청동삼발이솥이 출토된 예는 신라고분인 천마총,황오동 4호분,노서동 138호분이 있다.그리고 고구려 강역이었던 만주 집안현 칠성산 96호분과 우산 68호분에서도 나왔지만 새김글씨가 발견되기는 이번에 발굴한 양동리 고분이 처음이다. 청동삼발이는 본래 고기를 삶는 그릇이었으나 진한시대에 이르면 제기로 변한다.그 이후에는 향로로 이용되었다. 그렇다면 청동삼발이솥은 당시 귀중한 유물이고 이를 소지할 수 있는 계층은 상당한 지위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양동리 고분군에서 이번에 햇볕을 본 삼국시대 최대의 고리발(환두대도·길이 1백25㎝)등의 공격용 무기와 갑옷과 투구(갑주)등의 방어용 무구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여기 묻힌 계층은 바로 무력과 권력과 부를 함께 거머쥔 지배자로 귀결된다. 따라서 2∼3세기의 가야는 통일국가는 이루지 못했으나 국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김해 양동리 고분군 피장자의 신분과 관련하여 출토품인 치레걸이에도 관심이 집중된다.322호 흙구덩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수정목걸이는 가야뿐 아니라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시대 옥목걸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걸작품이다.이 목걸이는 수정제 굽은 옥,수정제 다면옥,마노제 둥근옥으로 구성되었다. 통형동기의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지않고 일본에서만 출토된 유물이다.이런 이유로 일본계 유물로 보았으나 김해 대성동고분에 이어 이번에 양동리 고분군에서 또 출토됨으로써 일본 출토품의 원류를 가야에서 찾게되었다.그리고 일본에서는 통형동기를 칼자루나 장대끝쇠로 본 것과는 달리 방울소리가 나는 의기라는 사실도 이번에 밝혀냈다. 양동리 321호 고분은 가야시대 굴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의 원류로 보고 있다.발굴단은 이 굴식돌덧널무덤의 형식을 빌려 가야의 묘제는 흙구덩 무덤(토광묘)→흙구덩널무덤(토광목관묘)→흙구덩덧널무덤→굴식돌덧널무덤 순으로 발전했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문화체육부 문화재전문위원인 김기웅박사는 『이번 발굴조사로 그동안 공백상태에 있던 가야사와 일본 고분문화를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를 얻었을뿐 아니라 3∼4세기로 추정되어온 가야집단의 형성시기를 2세기이전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가야 목곽묘 6기 발굴/함안서… 아라국 실체 규명 실마리

    【함안】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고분군(사적제84호)에서 가야시대 수장급의 무덤으로 보이는 대형 목곽묘 6기와 유물 94점이 출토됐다. 창원문화재연구소(소장 홍성빈)는 지난 10월부터 도항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에 나서 길이7m 폭3m 높이1·4m의 대형 목곽묘에서 길이50㎝ 폭12㎝ 크기의 초대형 철정 6개등과 대형유자이기,원저단호경,곡옥등 55점의 토기류,7점의 마구류 등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발굴단 관계자는 『이번에 발굴된 목곽묘와 유물은 3∼6세기경의 아라가야 실체를 밝히는데 주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 가야 중심 김해시,「가야와 동아시아」관계 국제학술회의

    ◎임나일본부/한반도 병합위해 조작/왜서 일본으로 개칭한것은 7세기/「일본서기」 5C기록에 「일본부」 등장은 어불성설/4C전후 왜와 교류,청동문화 전파시켜 고대 한반도 남부에 일본의 통치기구인 임나일본부 존재설은 허구인가 진실인가.이 임나일본부설은 일본학자들이 조작한 허구이며 삼국초기 낙동강 하류지역(김관가야)은 해상루트를 통해 이미 발달된 북방문화를 받아들인 강력한 독자적 세력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이는 일본학자들까지 참가한 가운데 가야문화의 중심지 김해시(시장 백승두)가 최근 개최한 「가야와 동아시아」 주제의 국제학술회의에서 제기돼 주목을 끌었다. 우리 역사에서 비교적 소홀하게 다루어져온 가야사의 실체를 규명하고 당시의 대외관계를 밝히기 위한 이 학술발표회에서는 한·중·일 3국의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가야와 왜의 관계에 대한 조망이 시도됐다.발표된 주제는 「임나일본부와 위의 오왕」(왕건군·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장),「고고학에서 본 가야와 왜」(대총초중·명치대),「금관가야의 성립과 대외관계」(신경철·경성대)등. 중국측의 왕건군교수는 일본에서 정설로 취급되어온 「남선경영설」과 「임나일본부」의 존재는 한반도 병합을 위한 역사적 근거로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그 이유로 일본의 「고사기」「일본서기」등이 주로 신화와 전설을 기초로 편찬된 사실을 지적했다.따라서 이들 자료에 나오는 신공황후의 삼한정벌과 백제 진사왕의 죽음을 남선경영의 증거로 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왕교수는 「일본서기」의 부정확성의 한 예로 웅략8년(463년)이월조에 나오는 「일본부」에 관한 기록을 들었다.국호를 위에서 일본으로 개칭한 것이 7세기 후반이기 때문에 5세기의 기록에 일본이라는 명칭이 나오는 것 자체가 작위적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오쓰카 하쓰시게(대총초중)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교류가 활발해진 시점을 BC4세기를 전후한 한국의 청동기시대와 일본의 죠오몽(승문)시대 말기로 보고 이 시기에 벼농사문화가 한반도에서 전파됐음을 밝혔다.그는 김해 대성동·양동리고분,동래 복천동고분등의 발굴에서 구사국(삼한)과 금관가야의 구분이 명확해졌으며 왜와 가야와의 관계에 많은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지금 일본 고고학계의 뜨거운 시선이 가야에 쏠려 있다는 것이다. 오쓰카교수는 이들 고분에서 발견된 통형동기·파형동기등은 양국 고분시대사회의 소유형태나 부장상태를 분석해볼때 왜계유물의 성격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왜왕권이 만약 가야에 대하여 이들 청동제품을 헌공했다면 왜왕권에 있어서 가야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을 것이라는 그는 철의 입수를 목적으로한 행동의 표현이 헌공으로 나타날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신경철교수는 낙동강하류 분묘군에 분묘파괴현상이 있었음을 밝혀내고 파괴이전의 목곽묘군을 1부류,파괴를 당한 이후의 목곽묘군을 2부류로 나누었다.여기서 결정적인 분류근거로 도질토기의 등장을 든 신교수는 2부류의 묘들은 중국 동북지방의 길림성북부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 북방문화가 직접 이 지역에 유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교수는 또 시대변천에 따라 왜의 교섭대상지역이 달랐다는 견해를 제시했다.이를테면 구사국시대(삼한시대)는 북부 구주와 금관가야때는 대화를 중심으로 교섭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 국내 최대 토광목곽묘 발견/가야시대 수장급 무덤 추정/함안

    가야시대 수장급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국내 최대형급의 토광목곽묘가 경남 함안에서 발견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화재관리국 창원문화재연구소는 6일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에서 4세기말∼5세기초로 추정되는 가야시대 수장급(왕급)의 묘를 조사한 결과 김판장식 환두대도를 비롯,말갑옷과 비늘갑옷,철제투구등 무구류와 화염형 투창고배,원저장경호등 토기류를 다수 발굴했다고 발표했다.발굴한 고분은 길이 8백90㎝,폭 2백80㎝,깊이 1백10㎝ 크기로 대형 묘광을 판뒤 내부에 두께 10㎝정도의 판재로 길이 6백㎝,폭 2백30㎝,높이 90㎝의 목곽을 짜 그안에 시신을 안치하는 토광목곽묘로 현재까지 발굴된 것으로는 국내 최대규모이다.
  • 가야금동관 2점 발굴/협천 옥전고분군서

    ◎은관 함께… 3점 출토는 처음/5∼6세기 다라국 추정/귀고리등 유물 2백점도 고대가야왕국의 하나인 다라국의 왕무덤으로 보이는 고분이 발굴되어 주목되고 있다. 경남 협천군 쌍책면 옥전고분군에 대한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는 경상대박물관조사단(단장 조영제교수)은 대형본토분인 M6호분에서 지금까지 왕의 무덤에서만 출토되어온 금동보관과 은제관,당봉환두대도가 출토됨으로써 이곳이 다라국의 왕 무덤임이 명확해졌다고 21일 발표했다. 이번조사는 지난해 12월10일부터 진행된 옥전고분군에 대한 제5차 조사로 M6고분에서 금동관 2점과 은제관 1점등 3점의 관모 출토된것은 우리나라 발굴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와함께 받침이 높은 잔과 항아리등 80점의 토기와 말안장 재갈 철모 철촉등 철기류 1백14점,금제귀고리등 11점의 장신구류가 15기의 고분에서 발굴됐다. 특히 M6호분에서 출토된 금제귀고리 한쌍은 정교한 장식과 세공이 돋보이는 국보에 준하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M6호분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축조된대형 봉토분으로 네벽은 막돌을 차곡차곡 쌓아 축조하였고 평면은 비교적 긴 장방형으로 천장은 나무뚜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중요 부장품은 발쪽에 놓여있었다. 이번에 조사된 고분군은 M6호등 대형봉토분 2기와 석곽묘 11기,목곽묘2기등 모두 15기이다. 옥전고분군은 지난 85년부터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지난 88년7월28일 사적 제326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모두 3천5백여점의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가야사를 해명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다.
  • 1세기 가야 유물 대량 발굴/동의대팀 김해서

    ◎내행화문경등 1천여점 출토/“일 청동기 한반도서 유입” 증명 일본의 청동기는 한반도에서 유입되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철기와 청동기가 가야지역에서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부산 동의대박물관유적조사단(단장 임효택)은 7일 김해 양동리의 초기가야시대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결과 일본에서 발견된 청동기의 원류가 김해 양동리를 중심으로 한 지역임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조사단은 특히 길이 5m의 토광목곽묘인 제162호 고분에서 길이60㎝ 폭6㎝의 날을 가진 대형 철검 6점과 함께 서기 1세기경 만들어진 중국 후한시대 내행화문경이 발굴됨에 따라 이 고분이 늦어도 2세기후반경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이 유물들이 일본에서 대량으로 출토되는 3∼4세기의 대형청동검과 청동거울의 원형일것이라고 밝혔다. 조사단은 지난해 11월부터 경남 김해군 주촌면 양동리 산6번지일대 1천5백평에 대한 조사결과 이밖에도 모두 2백6기의 고분을 확인하고 철기 5백27점과 청동기 24점,토기 및 토제품 5백74점,옥제경식 24점등 1천1백49점의 유물을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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