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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성동고분서 금관가야 목곽묘 구조 밝힐 무덤 첫 발굴

    대성동고분서 금관가야 목곽묘 구조 밝힐 무덤 첫 발굴

    경남 김해시는 대성동고분군(사적 제341호)에서 금관가야 목곽묘(덧널무덤·땅을 파고 나무판을 덧대 공간을 만든 무덤) 구조를 밝힐 최초의 무덤이 발굴됐다고 17일 밝혔다. 대성동고분군은 금관가야 최고 지배계층 묘역으로 1990년 발굴이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잠정 목록에 오를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유적이다.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은 지난해 12월 9일부터 자체 인력을 투입해 박물관 북동쪽 평지 3700㎡를 대상으로 학술발굴조사를 하고 있다.대성동고분박물관은 이번 발굴조사에서 보전 상태가 가장 온전한 4세기 초반 108호분 무덤을 조사하다 무덤내부를 덮은 목개(무덤 나무뚜껑)를 발견했다. 박물관측은 이 목개는 가야시대 목곽묘 세부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최초의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또 3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107호분은 대성동고분 최초의 왕묘로 평가받는 29호분과 동일시기 무덤으로 가야 형성기 사회상을 파악하는데 중요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이외에도 구슬 목걸이, 덩이쇠(鐵鋌), 머리둥근칼 등 가야시대 지배층 유물도 다수 확인됐다.박물관측은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중요 유구(옛 건축 양식의 실마리가 되는 자취)에 대한 학술자문을 얻기 위해 오는 20일 발굴현장에 전문가를 초청해 학술자문회의를 개최하고, 오는 5월까지 발굴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대성동고분박물관은 옛 태광실업 공장과 기숙사 부지가 있던 구간 정비를 위해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유구 분포 범위를 확인하는 시굴조사를 해 가야시대 목관묘(널무덤·땅을 파고 나무관을 넣어 흙을 덮은 무덤), 목곽묘, 옹관묘(땅을 파고 항아리 모양 토기에 시신과 여러 물건을 함께 넣은 무덤) 등 70여기를 확인하고 정밀 발굴조사에 나섰다.대성동박물관 관계자는 “앞으로 발굴성과 공개회를 개최해 시민들에게 김해의 우수한 가야문화를 알릴 계획”이라며 “중요 유적과 유물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 자체 연구인력으로 꾸준히 학술발굴조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국가사적 양동리고분군 유물 150여점 등 출토, 13일 현장공개

    국가사적 양동리고분군 유물 150여점 등 출토, 13일 현장공개

    경남 김해시는 국가사적 제454호로 지정된 양동리고분군 발굴조사 현장을 오는 13일 공개한다고 11일 밝혔다. 시는 최근 7개월여 동안 진행한 양동리고분군(주촌면 양동리 산3번지) 현장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가야시대 유물과 무덤, 조선시대 무덤 등 발굴조사 현장을 공개할 예정이다.이번 학술발굴조사는 양동리고분군 보수정비를 위한 문화재청 국고보조사업으로 2019년 7월 부터 시작해 이달까지 진행한다. 매장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한화문물연구원이 발굴조사를 하고 있다. 그동안 양동리고분군 발굴조사에서 가야시대 목관묘(나무널무덤) 37기, 목곽묘(나무덧널무덤) 3기, 석곽묘(돌덧널무덤) 11기, 석관묘(돌널무덤) 1기, 옹관묘(독널무덤) 5기, 수혈(구덩이) 7기가 조사됐다. 조선시대 무덤 4기도 확인됐다.가야시대 무덤에서는 1∼4세기 통모양그릇받침, 철검, 수정으로 만든 구슬 등 유물 150여점이 출토됐다. 시는 특히 이번 발굴조사에서 중소형 무덤이 집중적으로 확인됐지만 대형 무덤은 전혀 확인되지 않아 고분군 내 신분에 따라 무덤을 조성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무덤들이 지속적으로 매우 조밀하게 중복 조성되고 등고선과 평행하게 5∼6열로 배치되는 독특한 양상이 확인돼 이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양동리고분군은 1984년 첫 발굴 이후 2011년까지 8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2004년에는 가야고분군으로서 학술적·보존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454호로 지정됐다. 대성동고분군과 함께 대표적인 전기 가야 무덤 유적인 양동리고분군에서는 가야 무덤의 변천 과정은 물론 청동솥과 청동거울, 청동창 등 고대 중국, 일본과 교류한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다량 출토됐다.김해시 관계자는 “김해지역 가야고분군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만큼 도굴 피해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특히 양동리고분군은 도굴피해가 심하다는 것이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돼 조속히 정비해 보존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사적 되는 ‘의성 금성면 고분군’…신라 지배층 분묘 가능성

    사적 되는 ‘의성 금성면 고분군’…신라 지배층 분묘 가능성

    경북 의성군에 위치한 ‘의성 금성면 고분군’이 국가지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5~6세기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에 걸쳐 조성된 374기의 대규모 고분군을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20일 밝혔다. 1960년 탑리리 고분군 발굴 이후 매장문화재 조사 17회, 학술조사 9회가 진행된 이곳에선 신라 무덤 양식인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돌무지덜넛무덤)를 변형한 묘제(墓制)가 확인됐다. 무덤 내부에서는 머리에 착용하는 관, 귀걸이, 허리띠 장식, 고리자루칼 등 신라 수도 경주와 관계를 보여주는 위세품(왕이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고자 내리는 하사품)이 다양하게 발견됐다.지역적 특색이 돋보이는 ‘의성양식 토기’도 출토됐다. 의성양식 토기 특징은 고배(高杯·굽다리접시), 항아리, 뚜껑 등에서 잘 나타나는데, 이러한 토기는 생산과 유통이 꾸준히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5~6세기 삼국 시대 의성지역을 포함한 경북 북부지역의 역사·문화와 신라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돼 왔다”면서 “고분 형성 시점을 분석하면 국읍(중심 읍락) 지배 계층 분묘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가야고분군은 고대국가 발전 다양성 보여 주는 독보적 증거”

    “가야고분군은 고대국가 발전 다양성 보여 주는 독보적 증거”

    “기원 전후 시기부터 562년까지 약 600년간 존속했던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축을 벌이며 중앙집권적인 고대국가로 발전한 것과 달리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여러 소국이 상호 교류하면서 독특한 연맹구조를 형성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유산인 7개 가야고분군은 가야연맹체를 구성했던 주요 소국과 연관된 연속유산입니다. 가야연맹체의 성립과 발전, 소멸에 이르는 전 과정을 보여 주며 고대 동아시아 국가 발전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독보적인 물적 증거입니다.”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열린 ‘영호남 가야문화권 한마당 2차 포럼-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 포럼’에서 기조 발제자로 나선 김세기 대구한의대 명예교수는 가야고분군의 실체와 특징을 세세히 열거하며 세계유산 등재의 타당성을 역설했다. 경북도·경남도·전북도·가야문화권지역발전 시장군수협의회가 주최하고, 서울신문사와 국립중앙박물관이 주관한 포럼은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당위성과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앞서 지난 11월 15일 열린 1차 포럼은 가야문화권 지역 발전 및 영호남 화합을 주제로 성황리에 진행됐다.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올해로 7년째다. 2013년 문화재청이 잠정 목록으로 선정한 이후 2017년 등재추진단이 발족했다. 당초 ‘김해·함안 가야고분군’과 ‘고령 지산동 대가야고분군’으로 각각 등재를 추진하다 지난해 5월 고성 송학동, 창녕 교동·송현동, 합천 옥전, 남원 유곡리·두곡리 고분군 등 유산 범위 4곳이 추가됐다. 7개 가야고분군은 지난 3월 국내 첫 관문인 등재 신청 대상 심의에서 조건부로 가결돼 내년 7월 최종 심의를 앞두고 있다. 최종 선정되면 2021년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 사무국에 제출하고, 현지 실사와 자문기구 평가 등을 거쳐 2022년 7월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에 따른 과제’를 발표한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영남과 호남 지역을 아우르는 7개 고분군을 가야로 묶은 근거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면서 “심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역사적 연대성과 문화적 동질성 등 가야의 공통분모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석실묘로 변화하는 묘제와 순장 풍습 등 가야고분군의 특징을 부각해 삼국과의 차별성을 내세우는 것이 등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홍진근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은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국립박물관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홍 부장은 “가야 역사와 유적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국민 관심을 유도하는 다양한 문화활동을 하는 것이 박물관이 해야 할 일”이라면서 “지금 전시 중인 ‘가야본성-칼과 현’ 특별전도 그런 취지에서 기획됐다”고 밝혔다. 검증이 안 된 유물까지 무리하게 전시했다는 일부 지적과 관련해선 “우려와 논란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다만 학계 전문가나 영호남 지역민이 아닌 일반인은 아직 가야에 대해 잘 모르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수로왕과 허황후 같은 대중적 인물을 통해 관심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박진재 서원통합보존관리단 팀장은 지난 7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사례를 통해 같은 연속유산인 가야고분군의 등재 전략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시했다. 한국의 서원은 2016년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 평가에서 반려 판정을 받아 등재 신청을 철회했다가 재도전 끝에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 박 팀장은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입증하기 위해선 국내외 유사한 유산과의 차별성을 명확히 입증해야 하고, 연속유산으로서 통합 관리와 보존에 대한 대비가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와 전문가는 물론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종합토론에선 가야사의 역사적 중요성과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가치 입증을 위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곽 교수는 “가야 연구를 오랫동안 했지만 아직도 일반인은 잘 모르고 있어 학자로서 매우 안타깝다”면서 “이런 자리가 많이 마련돼 가야고분군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늘어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경남 18개 시군 전체가 위대한 유산… 다시 움트는 ‘가야 황금기’

    경남 18개 시군 전체가 위대한 유산… 다시 움트는 ‘가야 황금기’

    사적문화재 고분군만 15건 ‘문명의 증거’ 창원 현동 고분군서 유물 1만점 쏟아져 정교한 돛단배 형상 가야토기 ‘국보급’ 금귀고리·말 갑옷·고리자루 희귀성 높아 창녕 토기가마터 가야문화권 최대 규모 가야사 발굴에 2037년까지 1조원 투입‘땅만 파면 문화재가 나오는데 가야 유물이 수두룩하다.’ 경남 곳곳 토목공사 현장에서 건설이나 문화재 관계자 사이에 자주 나오는 얘기다. 몇 년 전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1329 일원에서 국도 건설공사 중 땅파기를 하다 문화재가 나왔다. 840기가 넘는 국내 최대 규모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확인됐다. 불꽃무늬토기를 비롯해 갑옷, 투구 등 1만점이 넘는 유물도 쏟아져 나왔다. 특히 가야시대 항해용 돛단배를 형상화한 웅장하고 정교한 배 모양 토기는 가야고분군에서 처음 나온 유물로 국보급으로 평가됐다. 역사기록과 연구 등에 따르면 경남은 18개 시군 전 지역이 1600여년 전 크고 작은 가야연맹체 중심지역이거나 세력권역이었다. 2015년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전국에서 발굴·확인된 가야유적 665곳 가운데 82%인 544곳이 경남에 몰려 있다.● 금귀걸이 등 5건 보물 지정 예고 경남도는 정부의 가야사 연구·정비 국정과제 채택에 발맞춰 ‘가야사 조사연구 및 정비 복원 종합계획’을 세워 시군과 힘을 합쳐 2017년부터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2037년까지 국·지방비 1조 726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경남 곳곳에 1600여년 동안 묻혀 있던 가야 유적이 화려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경남 지역에서 발굴·조사된 가야유적 가운데 고분군, 가마터, 성곽, 패총 등 모두 30건이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됐다. 도 지정이 14건이고 나머지는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비지정 문화재로 남아 있다. 의령군 대의면에서 출토된 수레바퀴 모양의 가야시대 토기인 도기바퀴장식 뿔잔은 1978년 보물 제637호로 지정됐다.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된 이 유물은 경남에서 출토된 가야유물 중 유일한 보물이다. 5세기 제작된 토기로 추정된다. 지난달 문화재청은 경남 지역 가야고분군에서 출토된 중요 유물 5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합천 옥전 28호분과 M4호분, M6호분에서 한 쌍씩 나온 금귀걸이 3건(3쌍 6점)과 M3호분에서 출토된 고리자루 큰칼 1건(4점), 함안 마갑총에서 출토된 말 갑옷과 고리자루 큰칼 1건 등이다.이들 금귀걸이는 5~6세기 제작된 것으로 가야시대 독창적이고 뛰어난 금속세공기술을 보여 준다. 화려하고 보존상태도 뛰어나 예술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M4호분에서 나온 금귀걸이 한 쌍은 무덤 주인공이 귀에 달고 있던 자리에서 발견돼 실제 사용된 사실도 확인됐다. 가야시대 최고 수장 무덤으로 도굴되지 않은 M3호분에서 출토된 대가야식 고리자루 큰칼 4점은 여러 점의 칼이 한 무덤에서 나란히 출토된 최초 사례다. 손잡이와 칼 몸통 등을 금은으로 화려하게 장식해 삼국시대 같은 종류의 유물 가운데 제작기술과 형태가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됐다. 문화재청은 M3호분에서 일괄 출토된 큰칼은 가야 최고 지배층 장묘문화와 한국 전통공예 역사를 잘 보여 주는 데다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고대사 및 고고학 연구에도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해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가야시대 철제 말 갑옷과 칼이 출토된 함안 마갑총은 함안군 가야읍 말이산 고분군 구릉에 있는 아라가야 고분군으로 1992년 건축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됐다. 그해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해 무덤 주인공 좌우에 매장된 말 갑옷과 칼을 발굴했다. 5세기 아라가야에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말 갑옷은 원형 그대로 보존돼 희귀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가야인 삶 깃든 ‘가야사의 보고’ 고분군 경남에 있는 국가지정 사적 가야문화재 가운데 고분군이 15건으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 성 8건, 유적 및 능이 각 3건, 패총 1건이다. 이 가운데 역사·문화적으로 가치가 높은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창녕 교동·송현동, 고성 송학동, 합천 옥전 등 5곳의 고분군은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된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가야인들의 삶이 담긴 가야 고분군은 가야문명의 존재를 보여 주는 증거로서 특별한 가치가 있는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2월 창녕군 계성면 영축산 구릉에 봉분 261기가 모여 있는 계성 고분군을 국가사적 제547호로 지정했다. 비화가야 초기 중심세력의 무덤으로 비화가야의 성립과 가야에서 신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됐다.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 등 토기류와 금제 귀걸이, 은제 허리띠 장식, 말안장 꾸미개를 비롯한 마구류, 무기류 등이 많이 출토됐다.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삼가고분군은 사적 지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1~6세기에 소가야집단이 조성한 고분군으로 대형봉분 328기가 확인됐다. 무덤에서 굽다리 접시를 비롯한 토기류, 각종 말갖춤새(마구), 쇠창과 같은 무기류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아라가야 양식 철기류가 출토돼 남강을 통한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1600년 된 토성 ‘아라가야 왕궁지’ 지난해 4월 경작지 조성 과정에서 토성벽 일부가 우연히 발견된 함안 가야리 유적은 아라가야 왕궁지로 확인돼 지난달 국가사적 제554호로 지정됐다. 아라가야 최대 고분군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 근처에 있는 가야리 유적은 가야시대 지배층 생활 및 군사시설 유적으로 1600년 전 대규모 토목공사를 해 토성과 목책, 건물지 등을 조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건물지 안에서는 쇠화살촉과 칼, 쇠도끼, 비늘갑옷 등이 나왔다.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있는 가야시대 다라국 왕성이었던 성산토성은 사적지정 절차를 밟고 있다. 옥전고분군을 조성한 최고 지배층의 5~6세기 취락유적으로 조사됐다. 성곽과 건물지, 제사유구 등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 창녕읍 퇴천리 비화가야 토기가마터는 지난 7월부터 발굴조사한 결과 가야 토기가마터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됐다. 류명현 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확인된 김해 원지리 고분군과 함안 남문외 고분군, 창녕 영산고분군에 대해 이른 시일 안에 국가문화재로 지정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가야사 연구복원 전문가인 김수환 도 학예연구사는 “경남 18개 시군 전체가 고대 가야시대의 유적지이자 박물관”이라며 “발굴·조사가 지속되면 유물·유적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관광활성화 연계… 특별법 제정 후 복원 속도 도는 가야문화재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가야문화를 활용한 관광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5월 국토연구원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경남연구원에 용역을 맡겨 ‘가야문화권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 기본계획 수립 및 사업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다. 박정혜 도 가야사복원 주무관은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가야문화권 사업 타당성 조사 결과가 내년 5월쯤 나오면 이를 토대로 가야문화권 정비 종합계획을 보다 구체화하고 보완해서 가야문화 연구복원사업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세계문화유산 추진 경남 가야고분군 5곳 철과 흙으로 빚은 찬란한 역사, 한중일 교역물의 수장고●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호) 금관가야 고도인 김해시 대성동에 있는 왕과 지배층 무덤이다. 219기 유구와 대형목곽묘 69기가 확인됐다. 갑옷과 큰칼을 비롯한 철기 유물과 후한시대 중국제 거울, 일본 고분에서 보이는 통형동기(筒形銅器)와 파형동기 등이 출토돼 당시 금관가야가 바닷길을 이용한 한중일 문물교역의 중심지였음을 보여 준다.●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515호) 아라가야 중심지인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말이산 주능선과 가지능선에 조성된 왕과 지배층 무덤이다. 봉토분이 있는 127기를 포함해 1000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150여기 무덤에서 8000여점의 유물이 나왔다. 갑주, 마갑, 마구류와 같은 무기류 유물은 아라가야의 뛰어난 제철기술을 보여 준다.●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사적 514호) 창녕군 창녕읍 일대에 조성된 비화가야 지배층 무덤이다. 지금까지 320여기가 조사됐다.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 사이 조성됐으며 가야와 신라 문화가 섞여 있다. 비화가야가 신라와 가야 경계에 있어 일본, 신라, 백제와의 교류를 보여 주는 300여점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성 송학동고분군(사적 119호)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에 있는 가야시대 중국~백제~가야~일본을 연결하는 해양 교류 중심지였던 소가야 지배층 무덤이다. 고성을 중심으로 산청, 진주, 사천 등 경남 서부지역이 소가야권에 속한다. 송학동 고분군에서는 백제계 토기를 비롯해 금동제 고배, 신라계 마구장식, 일본계 토기·장식마구 등이 출토됐다.●합천 옥전고분군(사적 326호) 합천군 쌍책면에 조성된 후기가야인 다라국 지배층 무덤이다.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역 주변에 있다. 봉토분 28기를 포함해 121기의 유구가 확인됐고 유물 3000여점이 출토됐다. 신라 금동관과 백제 청동합, 일본 갑주, 로마양식 유리용기인 로만글라스 등이 나와 강을 통해 신라~백제~일본 등과 교역했음을 보여 준다.
  • 가야유적 잇단 ‘국가사적’ 지정… 잠든 1600년 역사가 깨어난다

    가야유적 잇단 ‘국가사적’ 지정… 잠든 1600년 역사가 깨어난다

    경남 곳곳에 1600년 동안 묻혀 있던 가야유적이 경남도와 해당 시군, 연구기관 등의 적극적인 발굴·연구 조사에 힘입어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잇따라 지정되고 있다.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면 발굴·복원·관리비 70%가 국비로 지원돼 안정적으로 복원·관리할 수 있다. 현재 경남지역 가야유적 544곳 가운데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곳은 창녕군 계성 고분군 등 모두 29곳이다. 특히 국가사적 고분 가운데 가치가 높은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창녕 교동·송현동, 고성 송학동, 합천 옥전 고분군 등 5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한다. 도는 합천군 삼가 고분군과 성산 토성을 비롯해 김해시 원지리 고분군, 함안 남문외 고분군, 창녕 영산 고분군도 국가사적 지정을 추진한다.●함안 가야리 유적 국가사적 지정 예고 경남도와 함안군은 함안군 가야읍의 ‘함안 가야리 유적’이 지난달 26일 문화재청 심의를 통과했다고 9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30일간 예고를 거쳐 의견을 수렴한 뒤 다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해 사적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발굴조사, 가야시대 지배층 생활유적으로 확인됐다. 남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신음천과 광정천이 합류하는 일대 해발 45~54m 구릉에 있다. 그동안 5차례 지표조사로 토성 범위만 대략 확인됐다가 지난해 4월 경작지 조성 과정에서 토성벽 일부가 우연히 발견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했다. 조사 결과 대규모 토목공사로 축조한 토성과 목책(울타리), 14동의 건물지 등이 확인됐다. 건물지 안에서 쇠화살촉과 작은 칼, 쇠도끼, 비늘갑옷 등이 나와 군사 성격 시설임이 밝혀졌다. 구릉 북쪽 가장자리에서 토성과 고상건물(바닥을 땅 위나 물 위에 높게 지은 건물), 망루 등도 확인됐다. 아라가야 전성기인 5세기에 조성돼 6세기 멸망 때까지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가야문화권에서는 처음으로 판축토성(판자를 양쪽에 대고 흙을 다져 성을 쌓는 건축방식) 구조물이 확인돼 우리나라 고대토성 축조수법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됐다. 전문가들은 토성의 상태가 좋고 주변 가야 유적과 연계 경관도 잘 보존돼 아라가야 중심 왕도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유적이라고 평가한다. 이 유적은 조선시대 함안지리지인 함주지(1587년 편찬) 등 각종 고문헌에 ‘가야국의 옛 도읍터’ 또는 ‘옛 나라의 터’ 등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도 주변에 남문외, 대문천 등 왕성이나 왕궁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어 아라가야 왕궁지로 전해 내려온 곳이다. 토성 주변에 아라가야 최대 고분군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과 남문외 고분군(도 기념물 제226호), 가야 최대 규모 굴립주건물(기둥을 세워 만든 건물)인 ‘당산유적’ 등 주요 가야유적들이 있어 가야읍 일대가 아라가야 왕도였음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 발굴된 토성 구간은 왕궁을 보호하기 위한 성곽과 군사시설 일부다. 도와 군은 앞으로 발굴조사와 심화연구를 더 진행해 아라가야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가야사 복원에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창녕 계성 고총 고분군 국가사적 지정 앞서 문화재청은 창녕군 계성면에 있는 계성 고분군을 지난 2월 국가사적 제547호로 지정했다. 계성 고분군은 영축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구릉 사면부에 형성된 대규모 고총 고분군이다. 서북쪽으로 계성천이 흐르는 낮은 구릉에 봉분 261기가 분포해 있다. 이 고분군 축조집단은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을 조성한 세력 이전 시기인 비화가야 초기 중심세력으로 확인됐다. 무덤 구조는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이다. 돌덧널 상부 덮개는 나무로 만들어 덧널무덤 단계에서 돌덧널무덤으로 변해 가는 양상을 잘 보여 준다. 고분군에서 창녕양식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와 긴목항아리, 통모양그릇받침 등의 토기류, 금동관편, 금제 귀걸이와 은제 허리띠장식 등 장신구류, 말띠드리개(행엽) 및 발걸이(등자), 말안장 꾸미개(안교) 등 마구류, 무기류 등이 많이 출토됐다. 학계에 따르면 계성 고분군은 5~7세기에 걸쳐 장기간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5세기에 집중적으로 대형 고총 고분이 축조돼 창녕 비화가야 성립과 가야에서 신라로 이행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합천 삼가 고분군·성산토성 국가사적 신청 도는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도 기념물인 삼가 고분군과 합천군 쌍책면 성산토성도 지난 4월과 8월 문화재청에 사적 지정을 신청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7월 현지조사한 뒤 조사 및 자료 보완을 요청했다. 도와 합천군은 내년 2월쯤 추가 발굴 조사와 학술대회를 한 뒤 보완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다. 삼가 고분군은 발굴 조사 결과 1~6세기 소가야권 가야집단이 조성한 고분군으로 대형 봉분 328기가 확인됐다. 아라가야 양식 철기류 등이 출토돼 당시 남강을 통한 활발한 문화교류를 보여 준다. 무덤은 목관묘에서 목곽묘, 석곽묘, 석실묘로 구조 변화가 확인된다. 24-1호분 안에서 굽다리접시, 그릇받침, 짧은목항아리 등 토기류와 각종 말갖춤새(마구), 쇠창과 쇠도끼를 비롯한 무기류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쌍책면 성산리에 있는 성산토성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여러 차례 발굴조사에서 가야시대 다라국의 왕성으로, 옥전고분군을 조성한 최고 지배층의 5~6세기 취락유적 중심지로 조사됐다. 토성과 석성으로 이뤄진 성곽과 건물지, 제사유구 등 다양한 시설이 확인됐다. 유적 훼손이 적어 가야왕성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국가사적 지정 심의를 위해 다음달 현지조사한다. 박정혜 경남도 가야사복원 주무관은 “함안 남문외 고분군은 빠르면 올해 안에 국가사적 지정 신청을 하고 김해 원지리 고분군과 창녕 영산 고분군 등 2개 도지정문화재는 내년 하반기에 국가사적 지정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함안 남문외 고분군은 말이산 고분군과 가야리 유적 사이에 위치한 아라가야 최고지배층 고분군으로 43기의 봉분 분포가 확인됐다. 길이 7m 대형 석실묘가 발굴되고 가야·신라·백제 계통 유물도 출토됐다. 도와 함안군은 사적 신청에 앞서 오는 11월까지 중소형 석곽묘 10기 등을 추가 발굴조사할 예정이다.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고분군은 후기 가야 김해지역 최대 고총 고분군으로 조사됐다. 금관가야 최고 지배층 고총 고분군으로 그동안 발굴조사에서 김해지역 최대 길이(7.3m) 가야석실묘와 각종 유물 265점이 발굴됐다. 특히 일본과의 교류관계를 증명하는 자라모양 토기병 2점이 나왔다. 도와 시는 이달부터 M5호분 발굴조사를 할 계획이다.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영산고분군은 비화가야에서 신라로 넘어가는 사회상을 보여 주는 대표 유적으로 꼽힌다. 연말까지 발굴 조사한 뒤 내년 11월 국가사적 신청을 할 계획이다. 도는 학술 가치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묻힌 가야유적이 국가문화재로 승격될 수 있도록 발굴·조사·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류명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발굴 조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도내 가야유적이 발굴 조사와 연구를 통해 국가사적으로 승격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남재우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가야 각국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역적으로 편중됐던 발굴 조사가 평면적으로 확대돼야 하고 훼손이 심한 유적은 학술·발굴을 통해 성격을 규명하고 보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창원 현동서 아라가야 시기 최고위층 부부묘 발견

    창원 현동서 아라가야 시기 최고위층 부부묘 발견

    아라가야 시기의 무덤이 쏟아져 나온 경남 창원 현동에서 5세기 전반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최고위층 부부의 묘가 발견됐다. 삼한문화재연구원은 경남 거제 장목면에서 창원 우산동까지 연결되는 국도 건설공사 구간에서 거대한 목곽묘(덧널무덤) 2기와 4~6세기 무덤 670여기, 유물 1만여점을 수습했다고 4일 밝혔다. 눈에 띄는 무덤은 규모가 유독 큰 839호와 840호 목곽묘다. 839호 무덤은 길이 7.72m, 너비 3.96m이고 840호 무덤은 길이 8.6m, 너비 4.54m이다. 839호에서는 가락바퀴(실을 뽑는 도구)와 경식(목에 거는 장식) 등이, 840호에서`는 무구(武具)와 마구(馬具)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각각 여자와 남자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원은 분석했다. 양하석 삼한문화재연구원 부원장은 “왕릉급 무덤이라기보다 지방 세력의 수장 부부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통형굽다리접시 등 토기류와 쇠를 다루는 데 쓰이는 모루·쇠끌·망치 등 유물 1만여점도 나왔다. 그중 오리 몸체에 낙타 머리가 결합된 상형토기가 이색적이다. 원삼국시대부터 많이 제작된 오리 모양 토기와 달리 조류와 동물이 결합한 형태로는 처음 확인된 토기다. 조사단은 또 현동 지역이 철을 만들어 공급하던 세력의 거점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양 부원장은 “현동 유적 부근에서 패총(조개무지)이 조사된 점으로 볼 때, (아라가야의 중심지인) 함안에서 좀 떨어져 있지만 함안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던 해상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강릉서 4세기대 신라 갑옷 완전한 형태로 발견

    강릉서 4세기대 신라 갑옷 완전한 형태로 발견

    강원 강릉시 초당동에서 4세기대 신라 찰갑(札甲)이 발견됐다. 찰갑은 작은 쇳조각을 비늘처럼 이어 붙인 갑옷이다. 강릉 초당1처리분구 하수관로 정비사업용지 내 유적을 조사 중인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은 유적 내 토광목곽묘에서 찰갑을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찰갑은 토광목곽묘 서쪽에서 발견됐다. 몸통을 보호하는 부분 이외에 목의 뒷부분을 보호하는 목가리개(경갑·頸甲), 어깨를 보호하는 어깨가리개(견갑·肩甲)가 함께 확인됐다. 긴목항아리(장경호·長頸壺), 짧은목항아리(단경호·短頸壺) 등 신라 토기들과 금귀걸이 한 쌍도 함께 나왔다. 신라 토기의 연대를 고려했을 때 4세기대 강릉 지역에 주둔한 신라 장수의 것으로 보인다는 게 조사기관 분석이다. 연구원 측은 “완전한 형태의 찰갑이 영동 지역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신라의 영동 진출 시점과 의의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2300년 전 동기·동검 출토

    2300년 전 동기·동검 출토

    13일 전북 군산 옥구읍 선제리에서 나온 검파형 동기와 세형동검. 이들 유물은 기원전 4세기∼기원전 3세기에 조성된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에서 출토됐다. 검파형 동기는 1960∼70년대 대전 괴정동, 충남 아산 신창면 남성리, 예산 대흥면 동서리에서 다른 유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적은 있지만 정식 발굴 작업을 통해 출토된 것은 처음이다. 군산 연합뉴스
  • 대성동고분박물관, 금관가야 지배층 사회·문화 체험… 생활상·복식 복원

    대성동고분박물관, 금관가야 지배층 사회·문화 체험… 생활상·복식 복원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은 금관가야 시대 지배층들의 무덤 유적인 대성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유물·자료 등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김해시 가야의 길(대성동) 6만 5331㎡ 부지에 주전시관과 기획전시관, 야외전시관, 고분군 유적공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3년 8월 문을 열었다. 관람객들이 금관가야 시대 사회·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입체 모형과 영상자료, 다양한 보조자료 등을 이용해 금관가야 당시 생활모습과 무사 복장 등을 복원·전시해 놓았다. 야외에 있는 노출전시관에는 29호 목곽묘와 39호 목곽묘 등 대형무덤 2기를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전시해 놨다. 1990년부터 발굴조사를 한 대성동 고분군 1~24호분 발굴 구역을 탐방하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고분 발굴 구역을 둘러볼 수 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이사지왕도’ 명문 경주 금관총 또 발견

    ‘이사지왕도’ 명문 경주 금관총 또 발견

    경북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칼집에서 ‘이사지왕도’(?斯智王刀)라는 명문이 또다시 발견됐다. 2013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금관총의 주인공과 이사지왕의 관계에 한층 관심이 모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 2월부터 진행한 금관총 정식 발굴의 최종 단계(무덤 해체 조사 단계)에서 출토된 칼집 끝 장식에서 ‘이사지왕도’와 ‘십’(十)이라는 명문과 지금껏 발굴된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금 귀걸이 2점 등을 발견했다고 30일 밝혔다. 명문은 칼집 끝 장식(금제) 양쪽 면에 각각 ‘?斯智王刀’와 ‘十’이 날카롭게 새겨져 있다. ‘이사지왕도’는 ‘이사지왕의 칼’을 뜻하고, ‘십’은 지금까지 주술적인 의미라는 견해가 많다. 박물관 측은 “‘이사지왕도’는 2013년 금관총에서 나온 큰 칼에서 ‘?斯智王’ 등의 명문이 발견된 이후 두 번째지만 정식 발굴 과정을 통해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앞서 나온 명문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미공개 자료 정리 작업의 일환으로 금관총에서 출토된 고리자루큰칼을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박물관 측은 “2013년 명문과 비교했을 때 ‘도’(刀)자가 추가로 더 있는 점이 다르다”며 “이번 명문은 칼의 주인이 이사지왕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해 주는 자료”라고 덧붙였다. 이번 발굴에선 가는고리 금 귀걸이 2점(1쌍), 굵은고리 금 귀걸이 1점, 가는고리 금 귀걸이 1점, 유리구슬 수백여 점 등 많은 양의 부장품도 새롭게 나왔다. 이 중 가는고리 금 귀걸이 2점은 아직까지 신라 고분에선 발견된 적이 없는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어 주목된다. 앞서 두 박물관은 지난달 23일 금관총이 거대 봉분의 지상식 돌무지 나무 덧널무덤(적석목곽묘)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는 1차 발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이사지왕은 과연 누구?…신라시대 환두대도의 주인 이사지왕의 정체 풀 열쇠는

    이사지왕은 과연 누구?…신라시대 환두대도의 주인 이사지왕의 정체 풀 열쇠는

    ’이사지왕’ ‘환두대도’ ‘이사지왕’은 과연 누구일까. 지난해 발견한 신라시대 칼 환두대도에 새겨진 ‘이사지왕’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은 발굴한 지 80년이 더 지난 신라시대 칼을 느닷없이 수장고에서 꺼내놓고는 이를 찬 주인공은 ‘이사지왕’(爾斯智王)이라고 발표했다. 이 칼에서 이사지왕이라고 적힌 글자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이내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됐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왕의 인명 표기와는 대응하기 힘든 이사지왕이 누구인지를 두고 호기심이 일었고, 학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박물관이 이 칼과 칼이 발굴된 경주분지 신라시대 적석목곽분인 금관총을 주제로 하는 테마전을 마련한다. 오는 8일 이곳 중근세관 테마전시실에서 개막해 오는 9월 28일까지 계속할 기획전 ‘금관총과 이사지왕’에는 문제의 문자가 적힌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環頭大刀>)을 필두로 금관총의 다른 유물을 한자리에 모은다. 금관총은 1921년 경주의 한 민가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금관을 출토함으로써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조선총독부는 교토제국대학 교수인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와 이 대학 고고학교실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 등이 발굴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는 ‘금관총과 그 유보(遺寶)’라는 이름의 보고서로, 1924년 5월 ‘본문 상책’이 나온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9월 ‘도판 상책’이, 그리고 1928년 ‘도판 하책’이 교토에 근거지를 둔 출판사 지교도(似玉堂)에서 출판됐다. ‘본문 하책’은 예산 부족으로 결국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1932년 총독부가 아닌 사단법인 경주고적보존회가 자금 지원을 해서 저자는 하마다의 이름으로 ‘경주의 금관총’이라는 단행본으로 나왔다. 출판사는 같은 지교도. 금관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금관총 유물들은 이후 조선총독부박물관을 거쳐 국립박물관에 수장돼 전해지다가 지난해서야 박물관이 환두대도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이사지왕’이라는 글자를 확인한 데 이어 같은 금관총 출토 다른 칼과 칼 부속구에서도 ‘八’(팔), ‘十’(십)과 같은 글자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이번 테마전은 금관총의 발견 과정과 ‘이사지왕’이라는 글자를 확인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교토대학이 보관하던 금관총 보고서 원본도 나온다. 박물관 측은 “이 자료를 보면 당시 금관총 보고서가 어떻게 작성되었고 일본인 연구자는 어떤 부분에 많은 관심을 지녔는지 잘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전시실 중앙에는 금관총 유물 출토 모습을 그래픽으로 재현했으며, 그 주변으로 이사지왕 큰칼과 금관총을 대표하는 유물들을 배치한다. 전시품 중 고구려 유물로 추정되는 청동사이호와 초두(용기의 일종)는 주목거리다. 오키나와 해역 일대에서 서식하는 고둥 일종인 ‘이모가이’로 만든 말띠꾸미개(운주<雲珠>)도 선보인다. 테마전과 연계해 11일 오전 10시~오후 6시 박물관 소강당에서는 관련 학술 심포지엄이 열린다. ’이사지왕’ ‘환두대도’ ‘이사지왕’은 과연 누구일까. 지난해 발견한 신라시대 칼 환두대도에 새겨진 ‘이사지왕’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은 발굴한 지 80년이 더 지난 신라시대 칼을 느닷없이 수장고에서 꺼내놓고는 이를 찬 주인공은 ‘이사지왕’(爾斯智王)이라고 발표했다. 이 칼에서 이사지왕이라고 적힌 글자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이내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됐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왕의 인명 표기와는 대응하기 힘든 이사지왕이 누구인지를 두고 호기심이 일었고, 학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박물관이 이 칼과 칼이 발굴된 경주분지 신라시대 적석목곽분인 금관총을 주제로 하는 테마전을 마련한다. 오는 8일 이곳 중근세관 테마전시실에서 개막해 오는 9월 28일까지 계속할 기획전 ‘금관총과 이사지왕’에는 문제의 문자가 적힌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環頭大刀>)을 필두로 금관총의 다른 유물을 한자리에 모은다. 금관총은 1921년 경주의 한 민가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금관을 출토함으로써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조선총독부는 교토제국대학 교수인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와 이 대학 고고학교실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 등이 발굴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는 ‘금관총과 그 유보(遺寶)’라는 이름의 보고서로, 1924년 5월 ‘본문 상책’이 나온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9월 ‘도판 상책’이, 그리고 1928년 ‘도판 하책’이 교토에 근거지를 둔 출판사 지교도(似玉堂)에서 출판됐다. ‘본문 하책’은 예산 부족으로 결국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1932년 총독부가 아닌 사단법인 경주고적보존회가 자금 지원을 해서 저자는 하마다의 이름으로 ‘경주의 금관총’이라는 단행본으로 나왔다. 출판사는 같은 지교도. 금관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금관총 유물들은 이후 조선총독부박물관을 거쳐 국립박물관에 수장돼 전해지다가 지난해서야 박물관이 환두대도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이사지왕’이라는 글자를 확인한 데 이어 같은 금관총 출토 다른 칼과 칼 부속구에서도 ‘八’(팔), ‘十’(십)과 같은 글자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이번 테마전은 금관총의 발견 과정과 ‘이사지왕’이라는 글자를 확인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교토대학이 보관하던 금관총 보고서 원본도 나온다. 박물관 측은 “이 자료를 보면 당시 금관총 보고서가 어떻게 작성되었고 일본인 연구자는 어떤 부분에 많은 관심을 지녔는지 잘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전시실 중앙에는 금관총 유물 출토 모습을 그래픽으로 재현했으며, 그 주변으로 이사지왕 큰칼과 금관총을 대표하는 유물들을 배치한다. 전시품 중 고구려 유물로 추정되는 청동사이호와 초두(용기의 일종)는 주목거리다. 오키나와 해역 일대에서 서식하는 고둥 일종인 ‘이모가이’로 만든 말띠꾸미개(운주<雲珠>)도 선보인다. 테마전과 연계해 11일 오전 10시~오후 6시 박물관 소강당에서는 관련 학술 심포지엄이 열린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가 ‘금관총 연구와 마립간기 신라 사회’를 주제로 하는 기조강연을 하는 데 이어 ▲ 일제강점기 금관총의 발견과 의의(김대환) ▲ 금관총 출토 이사지왕명 대도의 보존처리(권윤미, 이상 국립중앙박물관) ▲ 신라 적석목곽묘 연구와 금관총(박광열, 성림문화재연구원) ▲ 이사지왕명 대도와 신라 고분 출토 문자 자료(이용현, 국립대구박물관) ▲ 이사지왕과 금관총의 주인공(김재홍, 국민대) 같은 발표가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금동관모 등 초기 백제 유물들 화성서 첫 발굴

    금동관모 등 초기 백제 유물들 화성서 첫 발굴

    경기 화성에서 백제시대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금제 귀걸이, 둥근고리 큰칼(환두대도), 마구류 등 고급 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발굴 전문 기관인 한국문화유산연구원과 문화재청은 화성 향남2지구 동서간선도로 예정지의 삼국시대 덧널무덤(목곽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유물을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두었던 한성백제에서 웅진(공주)·사비(부여)백제 시대로 넘어가는 4~5세기 유물들이 경기지역에서 처음 출토됐다는 점에서 사료 가치가 크다. 금동관모와 금동신발이 경기지역에서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단은 “5세기 이후 백제의 본거지였던 충청권에선 이들이 상당수 출토됐으나, 초기 한성백제의 본거지인 경기권에서 발굴된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출토품 중에는 목관에 쓰인 꺾쇠와 관못 등 목관 제작 방법을 알 수 있는 유물도 다수 포함됐다. 학계에서는 이 유물들을 백제 조정이 지방세력에게 권위의 징표로 내려준 ‘위세품’으로 보고 있다. 위세품은 희귀한 물건을 독점해 신분을 과시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2003년 공주 수촌리 유적에서 비슷한 유물이 대거 발굴되면서 백제의 영역을 구분 짓는 단초가 됐다. 조사단은 “이곳의 목관 결구 방식은 공주 수촌리 고분군과 비교 대상”이라며 “목곽 모서리에 철정이라고 하는 덩이쇠를 묻는 방식은 오산 수청동 고분군, 서산 기지리·부장리 고분군과 매우 유사하다”고 밝혔다. 이은석 문화재청 연구관은 “금동관모, 금동신발 등 유물은 4~5세기 화성 일대가 백제의 주요 거점이었음을 알려 주는 동시에 백제가 중국과 교역하던 주요 루트였다는 사실을 추정하게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가야시대 집모양 토기 진해서 출토

    가야시대 집모양 토기 진해서 출토

    4세기 무렵 가야의 가옥 구조를 띤 가형토기(家形土器)가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삼국시대의 집모양을 지닌 토기는 국내에서 20여점만 보고된 희귀 유물이다. 문화재청은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이 경남 창원시 진해구 석동~소사 간 도로개설구간에서 발견한 목곽묘를 조사하던 중 가형토기 한 점을 발굴했다고 6일 밝혔다. 4세기에 제작된 가형토기가 경남지역에서 출토된 것은 처음이다.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측은 “소성(燒成) 과정에서 하부 기둥이 틀어지긴 했지만 맞배지붕에 정면 2칸과 측면 2칸, 9개 기둥을 가진 누각 형태의 건물 모양”이라면서 “정면의 문과 네 면 벽체가 줄무늬 등을 이용해 사실적으로 묘사됐다”고 설명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대성동 고분이 밝혀줄 가야의 진실은?

    대성동 고분이 밝혀줄 가야의 진실은?

    18일 오후 10시 KBS 1TV에서 방영되는 역사스페셜은 ‘대성동 가야고분의 미스터리-가야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를 내놓는다. 지난 6월 경남 진해시 대성동에서 발굴된 고분군에서 목곽묘 2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1990년 발굴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놀라운 발견이 이뤄졌다. 88호분에서 고대 일본과의 관계를 밝혀 줄 파형동기, 91호분에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 선비족 계통 유물이 출토됐기 때문이다. 미지의 나라 가야에 대해 이 유물들은 어떤 정보를 담고 있을까. 91호분에서 나온 유물들은 주로 말과 관련 있다. 또 3구의 시체는 순장 풍습을 드러낸다. 이는 북방 유목민족의 고유문화다. 학계에서는 선비족의 무덤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흔히 선비족의 발원지라 꼽히는 중국 알선동과 라마동을 찾았다. 여기서 최근 대성동 유물을 살펴봤다는 중국 랴오닝성 고고학연구소의 톈리쿤 교수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 대성동 고분과 비슷한 중국 라마동 고분군은 지금껏 선비족의 무덤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톈리쿤은 이 무덤이 부여인의 무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대성동 무덤의 주인도 결국 부여인이란 뜻인가. 흔히 부여는 선비에게 압박을 받아 세력이 약해졌다고만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들이 남하해 가야로 간 것은 아닐까. 가야문화의 뿌리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을 소개한다. 88호분은 더 큰 관심을 끌었다. 대성동 발굴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 고고학자들이 직접 찾아오고 일본 언론들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이유는 파형동기. 이 유물은 흔히 일본 고유의 유물이라 일컬어졌다. 이게 가야 유물에서 나왔으니 당연히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 파형동기는 바람개비 모양의 청동제품으로 4세기 일본 야마토 정권의 왕들이 방패 장식품으로 썼던 것이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대성동에서만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 수가 한두 점이 아니라 무려 12점에 이른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금동제 허리띠 장식 4점 등 가야시대 보물급 유물 출토

    금동제 허리띠 장식 4점 등 가야시대 보물급 유물 출토

    김수로왕이 가야를 건국했던 도읍지인 경남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에서 보물급으로 평가되는 4세기대 금동제 허리띠 장식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굴됐다. 모용선비가 세운 전연(前燕)·후연(後燕)·남연(南燕) 등 이른바 삼연(三燕)에서 제작된 보물급의 4세기대 금동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곳이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10일 제7차 학술발굴조사를 하고 있는 대성동 고분군의 4세기대 대형 목곽묘인 91호 고분군에서 최근 화려한 용 문양이 새겨진 금동제 허리띠 장식 4점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허리띠 부분 가운데 교구(?具·버클)는 도굴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백제·신라 유적지와 일본 등에서 비슷한 허리띠 장식이 발굴된 적이 있으나 모두 5세기 이후의 것이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또 91호분 인근 88호분에서 고대 일본 유물로 방패에 붙이는 장식인 파형동기(波形銅器) 12점을 한꺼번에 발굴했다. 앞서 91호분에서는 삼연에서 제작된 말방울 5점과 용문양이 새겨진 금동제의 말 장식 2점, 마구로 추정되는 각종 유물 10여점 등 금동유물이 다량으로 나왔다. 대성동고분박물관 측은 4세기대 대형 목곽묘인 88호, 91호 고분에서 용문양이 새겨진 화려한 금동제 유물이 대량 출토된 사실 등으로 미뤄 두 무덤이 가야의 왕 무덤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송원영 박물관 운영담당은 “대성동 고분군 발굴조사 결과 가야가 당시 중국과 일본의 교역 중심지로 독자적으로 중국으로부터 금동제를 받아들인 사실이 확인됐으며 금동제가 한반도 남부지역에 전파된 시기는 광개토대왕의 남정이 있은 5세기 이후였다는 지금까지 학설은 맞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가야사 실체규명을 위해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지난 6월 4일부터 대성동 고분군에 대한 7차 학술발굴조사를 시작했다. 박물관 측은 학술발굴조사를 오는 14일까지 모두 마치고 내년 8월 국제학술회의를 열어 발굴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신라 중장기병 1600년만에 잠깨다

    신라 중장기병 1600년만에 잠깨다

    고구려지역 고분인 평북 용강군의 쌍영총이나 중국 지안현의 서안12호 등의 벽화를 보면 용맹한 모습으로 창을 들고 말을 타는 장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장수도 말도 모두 갑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는 이들을 고구려 ‘개마(鎧馬)무사’라고 지칭했다. 말하자면 높은 방어력과 기동력을 중심으로 진두에서 적진을 돌파하는 일종의 중장기병(重裝騎兵)인 셈이다. 지금껏 나온 역사 기록이나 고분 벽화 등 자료 중에는 신라의 중장기병 존재를 언급한 것은 없다. 하지만 잘못 알려진 사실에 불호령을 내리듯 1600년 전 신라시대의 중장기병이 오랜 잠을 깨고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일 경주 황오동고분군(사적 제41호)내 쪽샘지구를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중장기병의 보호장구 및 말에 착용하는 장구류 등이 한꺼번에 나왔다고 밝히고 발굴현장을 공개했다. 황오동 361번지를 중심으로 한 쪽샘지구는 4~6세기 신라 왕족과 귀족들의 집단 묘지이다. 중장기병 유물이 나온 것은 쪽샘지구 53호분 동쪽에 있는 ‘쪽샘지구 C10호묘’. 이 무덤은 주부곽식목곽묘(主副槨式木槨墓·하나의 봉분 속에 2개 나무덧널이 있는 무덤) 형식. 동서 방향으로 땅을 팠고 동쪽에 440㎝×220㎝ 크기의 주곽, 서쪽에 260㎝×220㎝ 크기의 부곽이 자리잡고 있다. 이중 무덤 주인이 묻히는 주곽에서 찰갑(札甲·장수가 입는 비늘식 갑옷)과 마갑(馬甲·말 갑옷) 및 여타 부장품들이 나왔다. 갑옷은 마치 장수가 말을 탄 것처럼 마갑 위에 찰갑이 올려진 채 발견됐다. 연구소에 따르면 주검은 그 위에 안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마갑은 목곽의 바닥에 목·가슴부분, 몸통부분(130㎝×100㎝), 엉덩이 부분이 순서대로 깔려 있다. 그 위로 무덤 주인의 흉갑(胸甲·갑옷 가슴부분)과 배갑(背甲·갑옷 등부분)이 펼쳐져 있다. 갑옷은 이 둘을 옆구리에서 여미게 만든 ‘양당식(?當式)’ 구조. 장수에게 무기가 없을 리 없다. 한쪽에는 장수가 휘둘렀을 석자 길이의 환두대도(環頭大刀·둥근고리자루긴칼)와 녹각병도자(角柄刀子·사슴뿔로 손잡이 한 작은 칼)가 놓여 있다. 그 외 쇠창·쇠도끼 등 무기와 목가리개·어깨 갑옷·팔 보호 갑옷으로 추정되는 다량의 갑옷조각도 출토됐다. 죽은 자를 위한 창고라 할 수 있는 부곽에서는 마주(馬胄·말 얼굴가리개)와 안장틀, 등자, 재갈 등 마구들과 항아리류가 나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박종익 실장은 “출토된 토기 형식으로 보아 무덤은 5세기 전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갑옷 및 마갑, 그 부속품들이 단편적으로 소량씩 출토된 적은 있지만 한꺼번에 세트로 나온 적은 없다. 마갑은 1992년 함안 마갑총에서 한번 나온 적이 있지만 출토품의 상태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빴다. 갑옷도 판갑(板甲·큰 철판으로 만든 갑옷)은 종종 나왔지만 찰갑이 원형대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박 실장은 “중장기병 장구류가 마구류와 함께 온전히 발굴된 경우는 해외에서도 없다.”면서 “빠른 시일내 전문가 검토 및 보존 처리를 거치고 공개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발굴된 유물은 전문 연구자들의 설명회·토론 과정과 보존처리 등을 거친 뒤 이달 중에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신라 귀족유물 1200점 쏟아져

    신라 귀족유물 1200점 쏟아져

    지난해 3월20일부터 발굴조사가 벌어지고 있는 경주 황오동고분군의 이른바 ‘쪽샘지구’가 신라문화의 보고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조사가 이루어진 80기 남짓한 5∼6세기 신라 귀족의 무덤에서 허리띠와 귀고리 등 장신구와 마구, 토기 등 1200점의 유물이 쏟아졌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1일 현장설명회를 갖고 그동안 신라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55기와 덧널무덤(목곽묘) 9기, 돌덧널무덤(석곽묘) 6기, 옹관무덤 7기, 제사터 3곳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쪽샘지구는 전체면적이 38만 4000㎡에 이르며, 이번에 조사가 이루어진 면적은 1만 6500㎡이다. 쪽샘지구는 1926년 작성된 ‘경주시내 고총고분분포 현황도’에도 많은 고분이 보이고 있지만,1960년대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민가 밀집 지역으로 바뀌었다. ●‘신라문화의 보고´ 재확인 경주시가 2000년부터 이 지역의 토지를 매입하고 정비작업을 펼치면서 민가는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발굴현장에선 아직도 하수도관이나 시멘트·타일 바닥 등이 쉽게 눈에 띈다. 심지어 정화조를 제거한 B4호 무덤의 바닥에서 금귀고리 1점이 나오기도 했다. 따라서 무덤은 대부분 상부 유구가 유실되어 바닥 구조만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상당수 무덤에는 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현장에선 여기저기에 토기가 부장될 당시처럼 무더기로 쌓여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중요한 유물은 1933년 일본인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발굴조사하여 갑총과 을총으로 이름지은 제54호 서쪽의 B지구 무덤 밀집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왔다.B1호 무덤에서는 주곽에서 은제허리띠와 금귀고리·곡옥 같은 장신구와 삼엽환두대도·삼루환두대도가, 부장칸에서는 철솥과 등자·재갈과 같은 마구류 등이 집중적으로 출토됐다. ●장신구·마구류 등 집중적 출토 특히 B2호 무덤에서는 나뭇잎 모양으로 가공한 광물질인 운모판이 폭넓게 확인되었는데, 도교에서 영생불사의 선약(仙藥)으로 본다는 점에서 당시 신라에 도교가 유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에선, 쪽샘지구가 당초 계림로 건너에 있는 대릉원처럼 신라 금관이나, 금관에 필적하는 중요한 유물이 대거 나오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모았다는 점에서 출토 유물에 다소 실망감을 표시하는 분위기도 없지는 않다. 이주헌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이번 발굴은 쪽샘지구 전체 지역의 극히 일부에서 진행된 것”이라면서 “봉토 또는 지표에서 3∼4세기 아(亞)자형 토기의 구연부(입부분)와 뚜껑조각이 나온 것은 학술적으로 중요한 성과로, 현재의 무덤 아래 신라의 국가성립기 무덤군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추가 발굴을 신중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쪽샘지구의 발굴조사는 경주시의 역사문화도시 조성계획에 발맞춰 오는 2032년까지 진행된다. 전체를 5개 구역으로 나누고, 한 구역을 5년씩 모두 25년 동안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글·사진 경주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경주 ‘쪽샘지구’ 대대적 정비

    신라의 중심 고분군인 경북 경주시 황남·황오·인왕동 일원의 속칭 ‘쪽샘지구’가 오는 2030년까지 대대적으로 정비될 전망이다. 경주시는 신라문화유적권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쪽샘지구 종합정비기본계획(안)을 마련했다고 19일 밝혔다. 계획 안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때 조사에서 봉분이 남아 있던 고분 70여기와 시굴조사 후 확인된 200여기를 선별·복원하기로 했다. 또 토광묘, 적석목곽묘, 석실·석곽묘 등 신라 고분 변천에 따른 유형별 고분을 재현해 이 일대를 특색있는 고분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것. 쪽샘지구 일대에서 가장 대표적인 유구가 확인되는 곳에 신라고분관을 건립하고 시굴조사에서 중요 유적이 확인되는 지점에는 발굴조사 전 과정을 보여주는 관람시설과 매장문화재 발굴 과정 체험시설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23개 지구 5개팀으로 구성된 쪽샘지구 시·발굴조사 전담기구가 앞으로 5년 동안 매장문화재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대릉원 고분공원 옆의 쪽샘지구는 1963년 1월 이 일대 15만 8800여평이 문화재보호구역(황남리고분군 사적 40호, 황오리고분군 사적 41호)으로 지정됐다.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경주 고속철구간 유적 대거 발견

    경주 고속철구간 유적 대거 발견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갈 자리인 경북 경주시 내남면 덕천2리 일대에서 기원전후 무렵 조성된 목곽묘(木槨墓·나무덧널 무덤) 80기와 옹관묘(甕棺墓·독무덤) 50기를 비롯한 초기신라시대 유적이 무더기로 확인됐다. 또 청동기시대에 축조된 주거지 9동과 석관묘 1기, 신라시대 도랑시설, 통일신라시대 도로유적 3개소, 조선시대 수혈유적 11기 등 유적 61기와 토기 등 유물 840여점도 출토됐다. 고속철 운영주체인 한국철도시설공단 의뢰로 지난 2004년 6월부터 덕천리 일대를 발굴해온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이백규)은 이 지역에서 초기신라시대 각종 고분을 비롯한 대량의 유적을 확인,7일 공개했다. 이날 덕천리 유적 공개와 함께 경부고속철이 통과할 경주 일대 각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가 일제히 시작됨에 따라, 고속철 구간을 둘러싼 논쟁이 재개될 전망이다. 발굴단에 따르면 청동기시대 석관묘에서는 화장 흔적이 나타나 묘제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며, 무더기로 확인된 목곽묘와 옹관묘는 초기신라사 규명에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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