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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7세기 전성기 신라 비석을 만난다

    6~7세기 전성기 신라 비석을 만난다

    북한산 진흥왕순수비(국보 제3호)는 신라가 한강까지 영토를 넓힌 것을 기념해 진흥왕이 이 지역을 돌아보고 세운 비석이다. 임신서기석(보물 제1141호)은 두 화랑이 나라에 대한 충성과 공부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며 함께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고대사 연구의 가장 중요한 자료로 꼽히는 이 두 비석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6~7세기 신라시대의 전성기에 세워졌다는 점이다. 이때 신라는 삼국 통일을 앞두고, 농업기술의 발전, 불교 공인, 율령(律令) 반포 등으로 정치·사회 체제가 자리를 잡던 때다. 이 시기 역동적인 신라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비석이다. 당시 신라인들이 남긴 문자, 즉 금석문(石文·비석에 새긴 글)이 남아 당시 상황을 잘 전해주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이 서울 용산 상설전시관 1층에서 20일부터 6월20일까지 진행하는 테마전 ‘6세기 신라를 보는 열쇠-문자’에서는 그 동안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이 시기 비석 30여점이 등장한다. 특히 임신서기석은 1934년 경주에서 발견된 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전시돼 기대를 모은다. 지난해 5월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라시대 비석인 포항 중성리비도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신라 이두(吏讀·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는 표기법) 연구의 주요 자료인 영일 냉수리비(국보 제 264호)도 전시된다. 신라 문자가 남아 있는 각종 목간(木簡·글씨를 적은 나뭇조각)과 토기도 볼 수 있다. 전시 첫 날인 20일에는 신형식 서울시사편찬위원장과 홍보식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장이 ‘신라의 6~7세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특별강연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백제인도 마약 거래”… 부여서 목간 발견

    “백제인도 마약 거래”… 부여서 목간 발견

    백제인들도 마약을 복용했던 것일까. 마약의 일종인 오석산(五石散)이 백제에서 거래됐음을 뒷받침하는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이 발견됐다. 동방문화재연구원(원장 김성구)은 13일 충남 부여읍 쌍북리 ‘사비119 안전센터’ 건립 현장을 발굴조사한 결과 목간 1점을 비롯해 목제신발, 토기, 씨앗 등 6~7세기 백제 유물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수습 유물 중 목간은 길이 9.8㎝, 폭 1.8㎝, 두께 0.8㎝ 크기로, 적외선 촬영 결과 ‘오석口십근(五石口十斤·口는 판독불가)’이란 다섯 글자가 쓰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서 오석은 복용할 경우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일종의 마약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보령시·원산도주민 공시지가 공방

    보령시·원산도주민 공시지가 공방

    부동산 광풍이 몰아쳤던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공시지가를 놓고 일부 섬마을 주민과 자치단체의 기싸움이 한창이다. 주민들은 ‘보령시가 낮은 공시지가를 이용해 개발이익을 취하려 한다.’고 주장하고, 시는 ‘부동산 업자와 일부 주민이 땅 팔아먹기 좋게 하려고 공시지가를 높이려 한다.’면서 기획부동산의 배후조종 의혹을 제기한다. 6일 보령시에 따르면 오천면 원산도 1·2리 이장이 최근 국토해양부,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대전지검 등 20여개 기관·언론사 관계자 205명에게 공시지가의 상향 조정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무더기로 보냈다. 상자에 담겨 택배로 배달된 진정서는 A4용지 600쪽 분량이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전국 공시지가는 시가의 70~80%에 이르는데 원산도해수욕장 일부는 10%에도 못 미친다.”면서 “이는 보령시와 충남개발공사가 원산도를 관광지로 개발할 때 보상비를 낮춰 막대한 이익을 취하기 위한 속셈”이라고 주장했다. 1리 이장 손모(56)씨는 “시에서 대천해수욕장 3지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진 1110억원의 지방채와 연간 40여억원의 이자를 원산도 개발사업으로 메우려고 한다.”며 “공시지가가 낮으면 보상가가 낮아져 주민들이 손해를 본다.”고 말했다. 반면 안중희 보령시 담당 직원은 “원산도 관광지개발 계획은 2008년 주민들에게 중단하겠다고 약속한 사업”이라면서 “공시지가가 높아지면 세금만 늘어난다.”고 반박했다. 그는 “시가와 공시지가의 차이가 크면 토지 매입자가 ‘바가지 쓴다.’고 생각해 땅 팔아먹기 어려우니까 높이려는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원산도의 한 주민은 “회의도 없이 1·2리 이장이 마을을 돌며 서명서에 일부 주민의 도장을 받아 갔다. 주민 대다수 의견이 아니다.”면서 “부동산 투기 붐이 일면서 정겹던 섬 분위기가 망가지고, 이해할 수 없는 여러 후유증이 생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섬 유일의 원산도공인중개사 윤모(45)씨는 “해수욕장 주변은 평당(3.3㎡) 500만원을 준다고 해도 땅 주인이 안 판다고 하는데 공시지가는 13만원밖에 안 된다.”며 “요즘은 보상 수준이 시가에 가깝다고 하지만 공시지가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손씨 등 1·2리 이장의 주장에 동조했다. 원산도는 2020년과 2016년 각각 완공될 예정인 보령시 대천항~태안군 안면도 영목간 연육교 건설계획과 안면도 국제관광지 조성사업으로 투기 붐이 거셌다. 원산도해수욕장 등 일부 땅값은 10년 사이 40~50배 올랐다. 2003년부터 2005년 초 사이 서해안 섬지역에 몰아친 부동산 열풍도 한몫했다. 이 과정에서 원산도 땅의 60% 이상이 외지인 소유로 넘어갔다. 원산도는 대천항과 안면도 사이에 있는 810만㎡ 면적의 섬으로 3개리 8개 자연마을에 560여가구 120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다. 안중희씨는 “원산도는 지난해 국토해양부에서 공시지가를 40% 올려 전국에서 1위였다. 올해도 해수욕장 주변은 50% 정도 오를 것이다. 손씨 등이 요구하는 시가 수준의 인상은 너무 과도하다.”면서 “공시지가와 원산도 관광지 개발사업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글 사진 보령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지역플러스] 제주 우도에 관광객 몰려

    섬 속의 섬 제주 우도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공원 입장료 수입이 크게 늘어났다. 10일 제주시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우도를 찾은 관광객은 74만 4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8만 4000명보다 16만명(27%) 증가했다. 이 기간 우도해양도립공원 입장료도 6억 8300만원에서 8억 8500만원으로 30% 더 걷혔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 500원이다.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은 우도는 고래가 살았다는 동안경굴, 하얀 산호모래 백사장이 펼쳐진 서빈백사, 100년이 넘은 우도봉 목간등대 등으로 유명하다.
  • 목간 등 신안 유물 200점 공개

    목간 등 신안 유물 200점 공개

    1970년대 이뤄진 국내 최초 수중 고고발굴 성과인 전남 신안 해저 유물의 진면목이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일부터 아시아관 안의 신안해저문화재 상설전시실을 확대 개편해 기존 150여점 유물을 포함, 14세기 동아시아 해상 교역의 실태를 한눈에 보여줄 신안 해저 유물 총 350여점을 전시한다. 고고관으로 옮겨간 낙랑전시실 공간에 추가로 마련된 전시실에는 1970년대 신안군 바다 밑에서 발굴된 목간(木簡·붓글씨를 쓴 나뭇조각), 도자기, 동전, 향신료 씨앗 등 200여점의 유물들이 새로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신안선에서 발견된 14세기 고려 청자 7점이 처음으로 한데 모인다. 청자어룡장식화병을 비롯해 청자 베개, 잔받침, 연적 등은 일본·남송·원 등의 상류층이 선호하던 최고급품 청자로, 당시 활발히 수출되었던 것들이다. 전시공간을 세 개로 나눠 각각 신안 해저 유물 발굴사, 신안선의 항로 및 탑승객 생활, 해상 교역품 유입 경로 등을 이해할 수 있게 꾸몄다. 김영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개편된 전시실은 모형전시 등 구성을 좀 더 흥미롭게 해 당시 국가 간 교역 실태 이해를 돕도록 했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화왕산성 목간은 현존 최고의 부적”

    “화왕산성 목간은 현존 최고의 부적”

    경남 창녕군 화왕산성에서 발견된 9세기 신라시대의 목간(木簡·붓글씨를 쓴 나무조각)이 현존 최고(最古)의 부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24일 지난 2002~2005년 화왕산성 저수지에서 출토된 목간의 묵서(墨書·붓글씨)를 재판독한 결과, 3점 1조로 출토된 한 목간이 도교에서 사용하는 부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연구관은 “이 도안들은 부적에 쓰인 문자와 비슷하다.”면서 “기우제 등을 마무리하면서 항아리에 담아 저수지에 넣은 부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독 결과 목간 1면에는 ‘시(尸)’자 밑에 ‘네모(□)’가 4개 그려져 있는데, 이는 최근에도 배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사용되는 ‘선사부’와 닮았다고 한다. 김 연구관은 “시(尸)는 인체 안 세 군데에 머물면서 그 사람의 선악을 판별해 천신(天神)에게 고한다는 도교의 삼시충(三尸蟲·세 가지 벌레) 신앙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초등교과에 도움되는 추천도서

    초등교과에 도움되는 추천도서

    홈스쿨링을 시도할 때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어떤 책을 선택할지다. 학년별로 교과와 연결이 되면서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고르면 된다. 미리 추천도서 목록을 주고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서 2~3권의 책을 직접 고르게 하면 아이의 자발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초등학교 1~2학년은 스토리를 자세하게 풀어주는 글에 익숙하다. 그래서 이야기 구조가 탄탄한 초인적인 영웅담을 다룬 신화나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판타지, 과학을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다룬 과학동화 등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책 한 권을 읽고 흥미를 보이면, 관련 도서를 추천해 경험의 폭을 넓혀 주는 게 좋다. 호기심이 왕성한 3~4학년에게는 그림과 사진을 많이 담아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책이 좋다. 사회 과목에서 배우는 지역의 문화재, 고궁, 민속놀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옛 생활도구 등과 관련해 간접경험을 쌓게 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과학교과서 3단원 ‘지층을 찾아서’나 4단원 ‘화석을 찾아서’를 학습할 때 제이콥버코위츠가 지은 ‘과학인 된 흔적, 똥화석’을 읽히면 도움이 된다. 이 책은 똥이 화석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똥을 통해 알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마찬가지로 공룡이 등장하는 영화 ‘쥐라기 공원’ 시리즈와 3D 영화인 ‘다이너소어’ 등을 함께 보며 지층과 화석에 대한 흥미를 높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흔히 아이들이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우는 것을 보고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는데, 학습에 대한 흥미는 의외의 곳에서 시작될 수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집중력과 스스로 관련 내용을 찾으려는 의지를 보이는 게 첫걸음이라는 생각으로 응원해 주는 게 효과적이다. 5~6학년이라면 ‘도구의 발달 과정’과 같은 인류의 생활사와 역사와 관련된 내용의 책처럼 어떤 맥락을 담고 있는 책이 좋다. 위인전이나 자서전은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다.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통해 리더의 자질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다. 고학년이 되면 사고력이 향상되기 때문에 교과목간 연결고리를 찾는 능력도 길러진다. 교과목 간 통합적 사고력을 기르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할 때라는 얘기다. 역사책과 지리책을 함께 읽히면 역사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 시대별 지도를 담은 지도책을 선물하면 아이는 역사책이나 역사소설을 읽으면서 당시 국경선을 그리며 지도와 맞춰 보는 재미에 빠질지도 모른다. 이때 창의력이 길러진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2010 수능] “탐구영역지문 오타… 오류 아니다”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장인 정병헌 숙명여대 교수는 12일 “지난 6, 9월 모의평가와 비교해 언어, 외국어영역은 비슷하거나 쉽게, 수리영역은 보다 쉽게 출제했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이날 “난이도는 전반적으로 지난해 수능시험 수준을 유지하되 일부 영역에서 조정했고 EBS 수능방송과의 연계 정도 역시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체적인 난이도 수준은.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되 표준점수, 백분위, 등급이 같이 제공되므로 선택과목 간 난이도를 조정하고 등급이 안정적으로 산출될 수 있도록 쉬운 문항과 어려운 문항을 적절히 안배해 변별력을 갖추도록 했다. →영역별 난이도는 구체적으로 어떤가. -탐구와 제2외국어는 과목간 형평성 유지에 초점을 맞췄다. 언어, 수리, 외국어는 난이도에 초점을 맞췄다. 까다로운 문제, 중간 수준 문제, 평이한 문제를 골고루 섞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다만 쉽게 출제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적이어서 수험생이 어떻게 느낄지도 고려해야 할 문제다. →수리영역 가, 나형으로 구분해서 6, 9월 모의평가와 비교해서 어떤가. -수리 가, 나는 사실상 수험생 집단 등이 달라 다른 과목이라고 봐야 한다. 나형의 경우는 평이한 문제로 출제했다. 가형은 고난도 문제를 가미해 변별력을 유지하도록 했다. 6, 9월 모의평가보다는 쉽게 출제하려고 노력했다. →4교시 탐구영역 시험 일부 문제에 오류가 있었나. -오류는 아니다. 문제가 미리 완성된 상황에서 오타가 발생했다. 그냥 보내도 지장 없지만 수험생들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정정지를 보냈다. 지문에서 6번 정도 반복돼 나오는 용어인데 마지막 한 글자에 오타가 생겼다. 정정지에는 잘못된 부분과 바로잡은 것을 제시했다. →언어에서 EBS를 참고했다고 했는데 교과서 지문은 얼마나 활용했나. -동일한 지문은 문학 외에는 없다. 이미 지문을 읽은 경우 풀이에 상당한 이점을 갖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이 때문에 상당한 애로가 있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고려 田出은 소작료” 태안 앞바다서 발굴한 죽간 해석

    800년 전 고려시대 첫 죽간(竹簡)에 쓰였던 ‘전출(田出)’의 의미가 명확해졌다. 단순히 논, 밭에서 난 소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경을 중심으로 한 왕족이나 공신(功臣) 등에게 해당 지역에 대한 독점적 세금 징수권을 준 지역인 식읍(食邑)에서 거두어 들인 공납을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4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밝힌 충남 태안군 마도 앞바다의 고려시대 선박에서 발굴된 죽간에서 보이는 ‘대장군김순영댁상전출조일석(大將軍純永宅上田出租壹石)’을 비롯한 64점의 죽간, 목간 중 ‘전출’에 대한 해석에서 이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고문서학 전공인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기획사업단 연구기획팀장은 “‘전출’이라는 말은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 고문서는 물론이고, 명나라 법전을 토대로 조선 초기에 만든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라는 법률서에도 자주 보이는 이 시대 숙어로서, 일제시대 이후 요즘 한국사회에 통용되는 소작료 정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는 지난 1991년 ‘전출’이 주인의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이 실제 토지 주인에게 소출 중 일정 부분을 바친 수입이라는 사실을 규명한 바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800년전 고려 죽간(竹簡) 첫 발굴

    800년전 고려 죽간(竹簡) 첫 발굴

    800년 전 고려시대 죽간(竹簡·대나무 조각에 적은 글)이 처음으로 발굴됐다. 장소는 바닷속 침몰된 배 안이다. 이로써 당시 생활상은 물론 조세제도, 선박 제조기술 등 여러 가지를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4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4월26일부터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앞바다에서 실시된 수중 발굴 조사 결과, 여러 종류의 곡물·도자기와 함께 죽간 48점, 목간 16점 등 1430점을 수습했다.”면서 “이 가운데 출항일자와 발신지, 발신자, 수신자, 선적된 화물의 종류와 수량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놓은 화물부 성격의 죽간이 발굴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이번 수중발굴조사 대상은 ‘마도 1호선’이라고 이름 붙여졌으며, 오는 15일 선박 전체를 인양할 예정이다. 그동안 죽간의 조각이 발견된 적은 있었지만 해독 가능한 죽간 전체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목간과 죽간의 기록에 따르면 정묘(丁卯) 10월 및 12월28일, 무진(戊辰) 정월 및 2월19일 등의 간지와 날짜가 확인됐다. 이는 화물 선적 일자 또는 출항 일자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대장군 김순영 댁에 토지에서 난 벼 한 섬을 올린다.(大將軍純永宅上田出租壹石)’는 내용이 적힌 죽간 6점은 가장 주목되는 성과다. 김순영은 ‘고려사’, ‘고려사절요’에 1199년 장군으로 승진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인물이다. 그러나 장군에 오른 1199년 이후의 정묘, 무진년은 각각 1207년, 1208년에 해당돼 김순영은 최충헌의 무신정권에서 대장군으로 승진한 것으로 보여진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함안 성산산성서 신라목간 31점 추가 출토

    경남 함안에 위치한 성산산성(사적 67호)은 국내 최대의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무판) 출토 지역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1991년부터 학술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이 산성에서는 최근까지 총 246점의 목간이 나왔다. 국내에서 전체 발굴된 목간 500여점의 절반에 달하는 양이다. 국립가야문화연구소는 27일 함안 성산산성 발굴조사현장에서 목간 31점과 자연유물 등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목간들은 6세기 중엽 것으로, 앞서 출토된 것들과 마찬가지로 신라가 이 산성을 축조할 때 여러 지방에서 보내온 식량·물품에 붙어있던 꼬리표였다. 여기에는 ‘仇利伐(구리벌)’, ‘及伐城(급벌성)’ 등의 지명과 ‘稗(패)’, ‘稗麥(패맥)’ 등 피와 보리 같은 곡물명이 대부분 기록돼 있다. 또 이번에는 네 면 모두에 글씨를 쓴 목간이 처음으로 출토됐다. 거기다 부엽공법(敷葉工法·나뭇잎·가지 등을 깔아 기초를 다지는 토목공법) 구간에서 목간·토기 등과 더불어 동물뼈, 조가비, 씨앗 등 자연유물 600여점도 함께 발견됐다. 연구소 이성준 학예연구사는 “보통 다른 지역에서는 일부 저수지 등에서 퇴적된 목간이 우연히 발굴되는 정도지만, 성산산성은 부엽공법 구간에 목간을 재료로 넣었기 때문에 출토량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태안 앞바다 유물 한자리

    태안 앞바다 유물 한자리

    보물선의 바다, 태안 앞바다의 발굴성과를 종합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전남 강진군은 28일부터 9월6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고려청자보물선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수차례 고선박을 포함한 유물 발굴로 주목을 받은 태안 앞바다 발굴현장에서 수습한 유물 740여점을 선보인다. 그동안 태안 지역 유물 일부가 테마전이나 지역민을 위한 소규모 전시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있었지만 전체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로 2007~2008년 청자운반선과 함께 수습했던 청자와 목간(木簡·붓글씨를 쓴 나무조각) 등이 전시된다. 최근 태안 마도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보존처리와 유물 관련 연구가 끝나지 않아 빠졌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 900년 전 강진 가마터에서 태안 안흥량 바닷길을 거쳐 개성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 밑에 가라앉았던 강진의 고려청자들은 1부 코너에 전시된다. 청자운반선의 10대1크기 모형과 함께 목간, 청자사자모양향로, 두꺼비모양벼루, 참외모양주전자 등 고려인의 예술혼이 담긴 작품 630여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2부는 고려시대 최고급 도자기를 생산하던 강진을 테마로 했다. 강진에서 청자가 생산되는 데에서부터 운반돼 왕실에서 사용되기까지의 과정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전시했다. 3부는 목간 쓰기, 청자무늬그리기 등 체험 코너다. 전시를 기획한 해양문화재연구소 박예리 학예연구사는 “고려시대의 최상품 도자기의 모습과 그 생산과 유통 과정은 물론 고려인들의 기록문화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안면도관광지 21년만에 재추진

    충남 태안 안면도국제관광지개발 사업이 닻을 올린다. 충남도는 오는 28일 이 사업 우선협상대상자인 ‘인터퍼시픽컨소시엄’과 양해각서를 교환한다고 16일 밝혔다. 도는 2011년 말 착공, 보령시 대천항~안면도 영목간 연륙교 개통 1년 전인 2019년쯤 사업을 끝낼 계획이다. 본계약은 내년 말 체결된다. 같은 시기에 착공하는 총 14㎞의 연륙교도 최근 1공구 현대건설컨소시엄, 2공구 코오롱건설컨소시엄으로 시공사가 결정됐다. 개발 지역은 안면읍 승언·중장·신야리 꽃지해수욕장 주변 381만 5456㎡이다. 인터퍼시픽은 이곳을 퍼블릭 씨사이드 골프&빌리지, 리조트&스파, 기업마을, 베니스파크 등 4개 지구로 나눠 개발한다. 퍼블릭 씨사이드 골프&빌리지는 27홀 규모의 골프장을 비롯해 골프연습장, 골프하우스, 골프텔 등 ‘골프 마을’로 만들어진다. 리조트&스파에 리조트호텔, 고급빌라와 워터파크가 조성된다. 베니스파크에는 대형 아쿠아리움과 상가 등이 들어선다. 1989년 착수된 사업이 재미교포와 국제적인 무기거래상 카쇼기의 자본유치 등의 실패로 21년간 표류하면서 불거졌던 환경훼손 문제도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모의수능 또 수리수리 魔 數理

    모의수능 또 수리수리 魔 數理

    지난 4일 실시된 2010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 모의 평가 채점 결과 수리영역을 비롯해 거의 모든 영역이 어렵게 출제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난이도를 낮추겠다고 했으나 올 수능 역시 예년에 비해 쉽게 출제되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어 수험생들이 유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평가원은 24일 2010학년도 6월 모의수능 채점 결과를 발표했다. 개인별 성적은 수험생이 재학 중인 학교, 시험지구 교육청 등을 통해 26일 통지한다. 시험의 난이도가 전반적으로 올라 영역별 표준점수 최고점이 예년과 비교해 많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표준점수는 각 수험생의 점수가 평균점수를 기준으로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로 시험이 어려워 전체 평균이 낮으면 표준점수 최고점이 올라가고, 반대로 평균이 높으면 표준점수 최고점은 낮아진다. 언어와 외국어영역은 표준점수 최고점이 각각 153점, 141점이었다. 지난해 6월 치러진 2009학년도 모의평가 때보다 9점, 6점, 지난해 11월 본 수능 때보다는 13점, 5점 상승했다. 특히 수리 가형은 172점으로 지난해 6월 모의평가보다는 9점, 본 수능에 비해서는 무려 18점이나 올랐다. 수리 나형(161점)의 경우 지난해 6월 모의 평가 때보다 8점 낮고 지난해 수능 때보다는 3점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수리 가형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150~160점대였으나 170점대까지 치솟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리 가형이 그만큼 어렵게 출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가원은 이와 관련, “이번 모의평가에서 어렵게 출제된 수리영역은 9월 모의평가와 본 수능에서는 쉽게 출제하겠다.”고 말했다. 선택과목간 표준점수 최고점의 차이는 ▲사회탐구 10점(정치 71점, 한국지리·세계지리·경제 81점) ▲과학탐구 13점(화학II 85점, 지구과학II 72점) ▲직업탐구 20점(정보기술기초 100점, 디자인일반 80점) ▲제2외국어·한문 35점(아랍어 100점, 중국어 65점) 등으로 과목선택에 따른 유·불리 문제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모의평가에는 64만 1449명이 응시했다. 지난해 6월 모의평가 때보다 6만 4647명 증가했다. 재학생은 57만 399명, 졸업생은 7만 1050명이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1400년 된 最古 태극무늬 발굴

    1400년 된 最古 태극무늬 발굴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태극 무늬가 그려진 목제품이 발굴됐다. 이와 함께 국내 최초로 봉함목간(封緘木簡)이 출토됐다. 봉함목간은 관청에서 기밀을 필요로 하는 문서나 물건을 운송할 때 사용한 목간으로 중국, 일본 등에서 봉검(封檢)이라고 불리며 발굴된 바가 있으나 국내에서는 발견된 바가 없었다. 최고(最古)의 태극무늬 목제품과 최초의 봉함목간 등이 한꺼번에 나온 곳은 바로 영산강 고대문화권역의 중심지인 전남 나주 복암리 고분군(사적 제 404호)이다. ●역·오행 관련… 민족 고대사상의 소중한 근거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김성범 소장은 3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설명회를 갖고 “복암리 유적은 지난해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3점을 포함한 31점 으로 지금까지 백제지역 중 목간 출토량이 가장 많은 부여 능산리사지(37점) 다음으로 많은 수량”이라면서 “백제의 지방통치제도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태극 무늬 목제품 한 쌍은 칼 모양의 나무판에 새겨져 있었다. 함께 출토된 백제 기와, 토기 등 유물의 연대를 감안했을 때 7세기 초로 판단된다. 이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태극문양으로 알려졌던 경주 감은사지 장대석에서 발견된 태극무늬(682년)보다 앞서는 것으로 ‘역(易)’, ‘오행(五行)’ 등 백제의 도교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백제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고대 철학사상사 연구에 소중한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백제의 농업생산·지방행정 운영 연구 토대될 듯 또한 목제품, 목간 등은 모두 지름 5.6m, 깊이 4.8m의 백제 사비시기(538~660년)의 대형 원형수혈유구에서 나왔다. 특히 충분히 판독이 가능한 목간이 13점에 이르러 백제의 사상사·산업사는 물론 농업 생산, 지방 행정 운영 등 다양한 백제 연구의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31점 중 길이 60.8㎝, 너비 5.2㎝, 두께 1㎝ 크기의 목간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토된 목간 중 가장 길고,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됐다. 총 57자의 글씨 중 ‘수미지(受米之)’, ‘공지(貢之)’ 등이 쓰여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지방 관청에서 공납과 그 과정을 기록한 행정문서 목간으로 판단되고 있다. 또한 백제의 촌락문서 격인 목간에는 대사촌(大祀村)의 인명, 가축의 실태와 수전(水田), 백전(白田), 맥전(麥田) 등 토지의 경작 형태와 토지 단위인 ‘형(形)’, 소출량을 가리키는 ‘72석(石)’, 관직명(率, 德率) 등이 기록돼 있어 백제 농경제 산업사를 비롯한 당시 사회 운영의 일면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소장은 “나주 복암리 일대가 영산강 유역의 7세기 백제 지방 통치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하도록 한 자료”라면서 “문헌사료가 부족한 백제사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광주 빛고을로 등 3개 간선로 새달부터 자동차 전용 도로로

    광주 빛고을로 등 3개 시내 주요 간선도로가 다음 달부터 자동차 전용도로로 전환된다.28일 광주시에 따르면 광주의 관문도로인 빛고을로와 무진로, 내년 개통 예정인 국지도 49호선 등 관내 3개 노선을 다음 달 1일 자동차 전용도로로 지정·고시한다.2004년 12월 개통된 빛고을로는 광주시청~호남고속도로 동림 나들목간 4㎞, 폭 35m, 왕복 6차로이다. 무진로는 광주 광산구 우산동 무역회관 앞∼서구 유촌동 버들주공 아파트 앞을 잇는 4.85㎞, 폭 35∼60m, 왕복 6차로이다. 이들 도로는 그동안 제2순환도로와는 달리 일반 도로로 분류되면서 오토바이 등이 자동차와 섞여 지나면서 각종 안전사고에 노출돼 왔다. 또 지난 2003년 착공해 내년 완공 예정인 국지도 49호선도 자동차전용도로로 전환된다. 이 도로는 남구 승촌동(나주 시계)에서 광산구 오산동(장성 시계)까지 22.10㎞ 구간으로, 현재 승촌과 임곡지역 일부가 개통된 상태다. 시 관계자는 “이들 도로가 자동차 전용도로로 지정되면 최고 제한속도가 현재 시속 80㎞에서 90㎞로 상향 조정된다.”며 “도로표지판 교체 등 전용도로 개통 준비작업 중”이라고 말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대천항~안면도 연륙교 건설 탄력

    대천항~안면도 연륙교 건설 탄력

    충남 보령시 대천항~태안군 안면도간 연륙교 건설공사 입찰을 위한 업체의 기본설계 제출 시한이 29일로 정해지면서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25일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 따르면 대천항~원산도간 1공구는 SK·현대·GS건설 컨소시엄이, 원산도~안면도 영목간 2공구는 코오롱건설·고려개발·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구당 3곳씩이다. 1공구는 8㎞로 해상교량 3.3㎞과 해저터널 2.4㎞로 이뤄진다. 중간에 가로 100m 세로 750m의 인공섬이 만들어진다. 사업비는 3968억원이다. 2공구는 6㎞로 1.76㎞의 해상교량이 건설되며 1056억원이 들어간다. 1·2공구 길이는 모두 14㎞이고, 사업비는 5000여억원이다. 대전국토관리청은 각 입찰업체의 기본설계서를 받아 한 달여간 심사를 거쳐 공구당 1개 컨소시엄을 선정할 계획이다. 선정된 업체는 1년여간 실시설계 후 내년 말쯤 착공한다. 완공 시기는 2020년이다. SK건설 컨소시엄은 두산건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계룡건설·삼부토건, GS건설 컨소시엄은 한진중공업·쌍용건설·경남기업과 팀을 이루고 있다. 코오롱건설 컨소시엄은 동부건설, 고려개발 컨소시엄은 금호산업,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은 삼환기업과 각각 짝을 맺고 입찰에 나선다. 1공구 점수는 설계 70점과 가격 30점, 2공구는 설계 65점과 가격 35점으로 매겨진다. 대전국토관리청 관계자는 “대천항~안면도 간 연륙교는 왕복 2차로 이상으로 하루 교통량이 2만대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올 수능도 수리 까다롭게 출제”

    “올 수능도 수리 까다롭게 출제”

    오는 11월12일 실시되는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난이도가 지난해와 비슷할 전망이다. 하지만 수리 나 등 일부 영역은 다소 까다롭게 출제될 것으로 보인다.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김성열 원장은 30일 2010학년도 수능 세부 시행계획을 발표하면서 “올해 수능 난이도를 지난해와 같게 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올 6월과 9월 두 번의 모의평가를 실시해 학생들의 수준을 확인하고 적정 난이도를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며 “특히 탐구영역의 경우 선택과목간 유·불리 차이가 없도록 난이도를 조정해 과목별 표준점수 최고점 차이를 줄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능에서 제2외국어·한문영역에서 아랍어와 다른 과목간 표준점수 차이가 너무 컸다는 지적에 대해 김 원장은 “올 수능에서는 출제위원들과 이 문제를 잘 논의해 ‘찍기’와 같은 요행이 최소화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원서교부 및 접수는 시험지구별로 8월26일부터 9월10일까지 이뤄진다. 한편 2010학년도 대학수능부터 시험지 판형과 정답 표기 방식이 일부 바뀐다. 여러 선택과목에서 자신이 응시할 과목만을 골라 내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문제지 배부과정에서 제기된 수험생간 형평성 확보를 위해서다. 4교시 탐구영역 및 5교시 제2외국어·한문영역의 시험지는 올해부터 두 권으로 제작되는 직업탐구를 제외하고는 영역별로 한 권으로 배부된다. 그동안 탐구영역 및 제2외국어·한문영역 시험지는 영역별로 2~5권씩 제작됐다. 그렇다 보니 수험생들이 여러 권으로 나뉜 시험지 가운데서 자신이 선택한 과목을 고를 때 헷갈리는 등 오류가 종종 있었다고 평가원은 설명했다. 탐구영역을 포함한 모든 문제지 겉면에는 표지를 붙여 과목별 쪽수를 안내한다. 이번 수능시험부터 수리영역에서 정답이 한자릿수인 단답형 문항도 출제될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정답표기에 따른 채점과정상의 혼선을 막기 위해 두자릿수 이상의 답만을 요구하는 문제만 출제했다. 2010학년도 수능시험 세부 시행계획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평가원 홈페이지(www.kice.re.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뉴스 다큐 시선] ‘40년 사랑방’ 동네목욕탕

    [뉴스 다큐 시선] ‘40년 사랑방’ 동네목욕탕

    겨울이 다 지나도록 세상은 너무 춥다. 철거민 참사, 연쇄살인…. 온몸이 시리도록 각박해진 세상풍경이 서글프다. 절절 끓는 온돌 바닥과 따뜻한 얘기가 있는 사랑방이 더욱 그리울 때다. 하지만 우리 곁 사랑방이던 동네 목욕탕은 대부분 사라졌다. 푹푹 찌는 한증막 안에서 듣던 옆집 아들 결혼 소식도, 온몸이 녹아내리는 열탕 속에서 주고받던 아낙들의 안부인사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24시간 사우나, 불가마 찜질방이 들어서면서 동네 목욕탕은 외면당한 지 오래다. 팍팍한 세상, 사우나와 찜질방 열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 더 훈훈한 동네 목욕탕, 그 역사 깊은 사랑방을 찾아가 시린 몸을 녹여 봤다. 글ㆍ사진·동영상 강병철 조은지기자 bckang@seoul.co.kr ‘목욕합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40년 넘게 서울 종로구 계동을 지켜온 ‘중앙탕’ 낡은 간판에 불이 켜졌다. 새벽 5시20분. 이발사이자 종업원인 박희원(59)씨가 1층 현관을 열고 부지런히 비질을 하며 영업준비를 시작한다. 1층 여탕과 2층 남탕을 오가며 탕에 물을 튼다. “남탕이나 여탕이나 다를 게 없어요.” 박씨는 자연스럽게 여탕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낡은 파이프에서 콸콸콸 힘차게 물이 쏟아져 나온다. 뜨거운 기운이 금세 탕 안에 가득차며 목욕탕 특유의 냄새가 확 피어오른다. 박씨는 텅 빈 여탕을 가로지르더니 물 온도를 잰다. 그의 손이 온도계였다. 물을 휘휘 몇 번 젓던 박씨는 온수 수도꼭지를 더 돌린다. 28년간 이 일을 해온 그의 손은 손님들이 좋아하는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 탈의실 바닥은 뜨끈뜨끈하다. 어젯밤 깨끗이 빨아놓은 주황색 수건들은 뽀송뽀송 말랐다. 박씨는 방바닥에서 바싹 마른 수건들을 걷어 욕탕 입구에 올려놓는다. 손님 맞을 채비를 마쳤다. ●서울 종로 ‘중앙탕’ 1968년 개업 모습 그대로 새벽 5시40분. 첫 손님이 왔다. 눈 뜨자마자 목욕바구니를 들고 나온 동네 할머니다. 박씨는 “매일 이 시간에 오시는 분이에요. 수십년 한결같은 아침 단골들이 계시니 빨리 문을 열어야죠.”라고 한다. 목욕비는 4000원, 손님들은 꼬깃꼬깃 접은 지폐를 툭 던지고 들어간다. 외상손님도 있다. 한 아주머니가 집에 지갑을 놓고 왔단다. “아이고, 이따가 드릴게.”라는 한마디에 무사통과다. 서로 집에 있는 숟가락 숫자까지 아는 사이라 돈 떼먹을 리는 만무하다. 6시쯤 문을 밀고 들어선 한 손님이 박씨에게 슬그머니 2000원짜리 김밥을 건넨다. “운동 갔다 오는 길에 샀는데 잡숴보셔.” 하지만 한 줄 김밥 중 박씨 입으로 들어가는 건 반도 안 된다. 하나 둘 오는 손님마다 박씨는 김밥 한 알씩을 권한다. 눈인사만 던지고선 탈의실로 급히 들어가는 손님도 있었다. ‘월간 이용권’을 끊어서 다니는 손님이다. “한 달 동안 목욕탕을 마음대로 쓰는 건데, 매번 계산하는 것보다 1000원이 싸다.”고 박씨는 귀띔한다. 이 목욕탕 손님 중 10여명이 자기집 목욕탕처럼 쓰고 있다. 정액권 손님들은 목욕탕표나 신분증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아침 8시. 날이 밝을 때까지 이렇게 왔다 간 손님은 10여명이었다. ●가족 같은 손님이 모이는 사랑방 최위희(94) 할머니를 모시고 온 손녀 홍영주(26)씨가 먼저 들어간 엄마 목욕비라며 한 명분을 더 계산하고 들어갔다. 최씨 할머니 3대는 김이 그득한 탕 속에 나란히 몸을 담갔다. 할머니와 손녀는 벌써 20년 넘게 이곳을 찾고 있다. 홍씨는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이곳으로 목욕을 다닌 터라 찜질방은 오히려 불편하다고 했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자신이 손녀인 양 홍씨에게 목욕을 맡긴다. 멋모르고 여탕을 뛰어다니던 손녀는 어느새 할머니 등을 밀어줄 만큼 든든하게 자랐다. 최신식 시설을 갖춘 사우나나 찜질방도 많지만 홍씨는 이 목욕탕을 최고로 친다. 다른 목욕탕은 불편하고 여기 와야 내 집처럼 편안하단다. “할머니랑 엄마랑 이곳에서 사춘기를 보냈고 성격도 둥글둥글해졌어요. 여기가 우리집 여자들의 사랑방인 셈이죠.” 오전 11시. 5년간 폐암으로 병원생활을 하던 남편이 3일 전 세상을 떴다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어제 삼일장이 끝났다고, 그동안 씻지도 못했다고 먼저 말을 텄다. 탈의실에 앉아 있던 아낙들은 “살리려고 그렇게 애쓰더니 안됐네. 약한 사람이 고생 많았어.”라며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위로를 보탠다. 낮 12시10분. 사우나에서 수다 떨던 아주머니 셋이 탈의실 평상에 벌거벗은 채로 모여 앉았다. 냉장고에 음료수가 가득 차 있지만 따로 냉커피를 타 마신다. 공짜 커피를 곁들여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김정미(45)씨는 “매일 오다시피 해요. 낮에 시간 보내기도 좋고. 탕 안에서 둘이 얘기하는데 거들면서 끼어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니까요. 찜질방에선 어디 그러기 쉬운가.” 손님들끼리 어울려 밥솥에 점심을 지어먹기도 한다. ●“단골손님들 때문에 문 못닫아요” “지난해 12월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적잖이 놀랐어요.” 목욕관리사(때밀이) 이정단(55·여)씨의 말이다. “서울 시내에 아직까지 이렇게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니…. 손님들이 변치 않고 찾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랐죠. 손님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평일엔 20~30명쯤, 주말에는 50명 정도 오세요. 여긴 모녀끼리 오는 손님들이 많아요. 때밀이 값요? 때만 밀면 1만 5000원, 전신마사지하면 4만원, 할머니들이 한 번 밀어보고 나면 손맛이 있다면서 계속 찾으시네요.” 목욕탕 사장 담란향(66·여)씨는 “이사 가도 목욕은 이곳으로 오는 손님이 꽤 된다.”고 했다. 한때 장사가 잘 안 돼서 접을까도 생각했지만 손님 중 열에 여섯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해 계속 운영하고 있다. 어떤 손님은 목욕비로 1만원을 받아도 좋으니 절대로 없애지 말아 달라고 했단다. 목욕탕을 찾은 소병룡(77)씨는 “예전엔 욕조 갖춰 놓은 집이 어디 있었나. 지금이야 집마다 샤워 시설이 있지만 더운 물에 몸을 푹 담가야 몸도 풀리고 제대로 ‘목간’했다는 기분이 들지.”라고 말했다. “개업했을 때부터 계속 다녔지. 찜질방에서 가끔 아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동네 목욕탕처럼 재밌지는 않지. 누가 죽었다더라는 소식도 듣고, 이런저런 사연 듣는 재미에 다니는 거라네.” 4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목욕탕은 주인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유지비, 매출액 안따지고 장사한 지 오래” 한때 목욕탕 운영은 ‘동네 재벌’의 상징이었다. “한창 손님이 몰릴 땐 옷장이 부족해서 바구니에 옷을 담아놓고 손님을 받았어요.” 담 사장은 그때가 눈앞에 생생하다. 20대 젊은 나이에 목욕탕을 시작해 서른 여덟에 남편과 사별, ‘때 돈’을 벌어 아들 셋, 딸 둘을 혼자 키웠다. 그때 두 살배기였던 딸이 지금은 마흔이 넘은 아줌마가 됐다. 1970년대만 해도 중앙탕 반경 500m 주변에 목욕탕 6곳이 더 있었다. 그러던 것이 24시 사우나, 대형 찜질방에 밀려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해 결국 이곳 하나만 남았다. 한때 일요일엔 400명 넘게 손님이 몰리곤 했지만 이젠 휴일에도 많아야 50여명 선이다. “낙원상가 쪽으로 대형 찜질방들도 생겼고, 서울 외곽으로 목욕 원정 가는 손님들도 생겼어요.” 동네 터줏대감 자리를 찜질방에 넘겨주는 속내가 편하지만은 않다. 동네 목욕탕 장사로 목돈을 만지는 시대도 지났다. 400환으로 시작했던 목욕비는 지난해에야 35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랐다. 더 올리라는 손님도 있지만 그러면 찜질방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논리 때문에 차마 올리지 못한다. 낡은 수도꼭지, 깨진 타일 그대로의 시설이지만 손님들이 개의치 않기에 믿는 구석도 있다. “물세는 한달에 40만~50만원, 기름은 난방유를 때는데 한 드럼에 15만원 정도 하나? 사실 한 달에 몇 드럼 들어가는지도 잘 몰라요. 그런 거 따지지 않고 운영한 지 오래 됐어요. 한 달 매출액도 따지지 않고 장사하는데요 뭐. 어쨌든 마지막 손님이 끊길 때까지 이 사랑방을 지킬 거예요.” 동네 목욕탕은 오늘도 정과 인심의 김을 모락모락 피운다. ■ 목욕탕 변천사 사람은 씻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씻는 방법은 늘 변해 왔다. 1970년대는 동네 목욕탕의 전성기였다. 온수 샤워 시설을 갖춘 집이 드물었고 목욕탕을 가는 건 빼먹지 말아야 할 ‘주기적’ 행사였다. XX탕, OO탕, 단출한 이름으로 동네마다 몇 개씩 있는 목욕탕은 일요일 아침이면 손님들로 북적였다. 목욕탕을 나서는 아이들 손에는 빨대 꽂힌 요구르트가 들려 있고, 입구에서 여탕으로 들어간 아내와 엄마를 기다리는 풍경도 익숙했다. 80년대 들어 시내 중심가를 필두로 ‘사우나’ 간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핀란드 사우나라 불리는 건식사우나를 비롯해 습식사우나, 폭포식 냉탕 등의 시설을 갖춘 고급 목욕탕이 들어섰다. 동네 목욕탕도 하나둘 시설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회사원들은 피로를 푼답시고 점심시간을 이용, 사우나에 드나들며 땀을 뺐고 벌건 얼굴로 오후 근무를 시작하곤 했다. 90년대, 목욕탕은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다. 이때부터 목욕탕은 갖가지 모습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맥반석, 옥사우나는 물론 참숯, 한방쑥, 황토, 녹차를 이용한 시설이 등장했다. 서비스도 보강하면서 정부의 1회용품 사용규제가 있기 전까지 비누, 수건은 물론 칫솔, 샴푸 등도 무상 제공됐다. 수면실, 헬스실을 갖춰 덩치를 키웠고 24시간 영업은 기본이 됐다. 2000년대엔 찜질방 시대가 열렸다. 남녀가 버젓이 함께 모여 땀을 빼는 찜질방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황토방, 보석방, 얼음방은 물론 노래방, PC방, 헬스방, 마사지방까지 더해진 대형 찜질방은 기업 형태가 됐다. 고작해야 2층 건물이던 동네 목욕탕은 ‘종합오락 찜질방 빌딩’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용산사망자 아들 “아버지가 테러범?” 공개된 정조의 ‘299통 편지’ 비밀은 9급 공채에 30대가 몰린다 현인택 ‘동문서답’ 청문회 화왕산 억새 태우다 4명 사망 고3 시기별 수능 전략 제주女교사,1~2일전 살아있었다
  • [뉴스 다큐 시선] ‘40년 사랑방’ 동네목욕탕

    겨울이 다 지나도록 세상은 너무 춥다. 철거민 참사, 연쇄살인…. 온몸이 시리도록 각박해진 세상풍경이 서글프다. 절절 끓는 온돌 바닥과 따뜻한 얘기가 있는 사랑방이 더욱 그리울 때다. 하지만 우리 곁 사랑방이던 동네 목욕탕은 대부분 사라졌다. 푹푹 찌는 한증막 안에서 듣던 옆집 아들 결혼 소식도, 온몸이 녹아내리는 열탕 속에서 주고받던 아낙들의 안부인사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24시간 사우나, 불가마 찜질방이 들어서면서 동네 목욕탕은 외면당한 지 오래다. 팍팍한 세상, 사우나와 찜질방 열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 더 훈훈한 동네 목욕탕, 그 역사 깊은 사랑방을 찾아가 시린 몸을 녹여 봤다. 강병철 조은지기자 bckang@seoul.co.kr ‘목욕합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40년 넘게 서울 종로구 계동을 지켜온 ‘중앙탕’ 낡은 간판에 불이 켜졌다. 새벽 5시20분. 이발사이자 종업원인 박희원(59)씨가 1층 현관을 열고 부지런히 비질을 하며 영업준비를 시작한다. 1층 여탕과 2층 남탕을 오가며 탕에 물을 튼다. “남탕이나 여탕이나 다를 게 없어요.” 박씨는 자연스럽게 여탕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낡은 파이프에서 콸콸콸 힘차게 물이 쏟아져 나온다. 뜨거운 기운이 금세 탕 안에 가득차며 목욕탕 특유의 냄새가 확 피어오른다. 박씨는 텅 빈 여탕을 가로지르더니 물 온도를 잰다. 그의 손이 온도계였다. 물을 휘휘 몇 번 젓던 박씨는 온수 수도꼭지를 더 돌린다. 28년간 이 일을 해온 그의 손은 손님들이 좋아하는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 탈의실 바닥은 뜨끈뜨끈하다. 어젯밤 깨끗이 빨아놓은 주황색 수건들은 뽀송뽀송 말랐다. 박씨는 방바닥에서 바싹 마른 수건들을 걷어 욕탕 입구에 올려놓는다. 손님 맞을 채비를 마쳤다. ●서울 종로 ‘중앙탕’ 1968년 개업 모습 그대로 새벽 5시40분. 첫 손님이 왔다. 눈 뜨자마자 목욕바구니를 들고 나온 동네 할머니다. 박씨는 “매일 이 시간에 오시는 분이에요. 수십년 한결같은 아침 단골들이 계시니 빨리 문을 열어야죠.”라고 한다. 목욕비는 4000원, 손님들은 꼬깃꼬깃 접은 지폐를 툭 던지고 들어간다. 외상손님도 있다. 한 아주머니가 집에 지갑을 놓고 왔단다. “아이고, 이따가 드릴게.”라는 한마디에 무사통과다. 서로 집에 있는 숟가락 숫자까지 아는 사이라 돈 떼먹을 리는 만무하다. 6시쯤 문을 밀고 들어선 한 손님이 박씨에게 슬그머니 2000원짜리 김밥을 건넨다. “운동 갔다 오는 길에 샀는데 잡숴보셔.” 하지만 한 줄 김밥 중 박씨 입으로 들어가는 건 반도 안 된다. 하나 둘 오는 손님마다 박씨는 김밥 한 알씩을 권한다. 눈인사만 던지고선 탈의실로 급히 들어가는 손님도 있었다. ‘월간 이용권’을 끊어서 다니는 손님이다. “한 달 동안 목욕탕을 마음대로 쓰는 건데, 매번 계산하는 것보다 1000원이 싸다.”고 박씨는 귀띔한다. 이 목욕탕 손님 중 10여명이 자기집 목욕탕처럼 쓰고 있다. 정액권 손님들은 목욕탕표나 신분증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아침 8시. 날이 밝을 때까지 이렇게 왔다 간 손님은 10여명이었다. ●가족 같은 손님이 모이는 사랑방 최위희(94) 할머니를 모시고 온 손녀 홍영주(26)씨가 먼저 들어간 엄마 목욕비라며 한 명분을 더 계산하고 들어갔다. 최씨 할머니 3대는 김이 그득한 탕 속에 나란히 몸을 담갔다. 할머니와 손녀는 벌써 20년 넘게 이곳을 찾고 있다. 홍씨는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이곳으로 목욕을 다닌 터라 찜질방은 오히려 불편하다고 했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자신이 손녀인 양 홍씨에게 목욕을 맡긴다. 멋모르고 여탕을 뛰어다니던 손녀는 어느새 할머니 등을 밀어줄 만큼 든든하게 자랐다. 최신식 시설을 갖춘 사우나나 찜질방도 많지만 홍씨는 이 목욕탕을 최고로 친다. 다른 목욕탕은 불편하고 여기 와야 내 집처럼 편안하단다. “할머니랑 엄마랑 이곳에서 사춘기를 보냈고 성격도 둥글둥글해졌어요. 여기가 우리집 여자들의 사랑방인 셈이죠.” 오전 11시. 5년간 폐암으로 병원생활을 하던 남편이 3일 전 세상을 떴다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어제 삼일장이 끝났다고, 그동안 씻지도 못했다고 먼저 말을 텄다. 탈의실에 앉아 있던 아낙들은 “살리려고 그렇게 애쓰더니 안됐네. 약한 사람이 고생 많았어.”라며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위로를 보탠다. 낮 12시10분. 사우나에서 수다 떨던 아주머니 셋이 탈의실 평상에 벌거벗은 채로 모여 앉았다. 냉장고에 음료수가 가득 차 있지만 따로 냉커피를 타 마신다. 공짜 커피를 곁들여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김정미(45)씨는 “매일 오다시피 해요. 낮에 시간 보내기도 좋고. 탕 안에서 둘이 얘기하는데 거들면서 끼어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니까요. 찜질방에선 어디 그러기 쉬운가.” 손님들끼리 어울려 밥솥에 점심을 지어먹기도 한다. ●“단골손님들 때문에 문 못닫아요” “지난해 12월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적잖이 놀랐어요.” 목욕관리사(때밀이) 이정단(55·여)씨의 말이다. “서울 시내에 아직까지 이렇게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니…. 손님들이 변치 않고 찾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랐죠. 손님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평일엔 20~30명쯤, 주말에는 50명 정도 오세요. 여긴 모녀끼리 오는 손님들이 많아요. 때밀이 값요? 때만 밀면 1만 5000원, 전신마사지하면 4만원, 할머니들이 한 번 밀어보고 나면 손맛이 있다면서 계속 찾으시네요.” 목욕탕 사장 담란향(66·여)씨는 “이사 가도 목욕은 이곳으로 오는 손님이 꽤 된다.”고 했다. 한때 장사가 잘 안 돼서 접을까도 생각했지만 손님 중 열에 여섯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해 계속 운영하고 있다. 어떤 손님은 목욕비로 1만원을 받아도 좋으니 절대로 없애지 말아 달라고 했단다. 목욕탕을 찾은 소병룡(77)씨는 “예전엔 욕조 갖춰 놓은 집이 어디 있었나. 지금이야 집마다 샤워 시설이 있지만 더운 물에 몸을 푹 담가야 몸도 풀리고 제대로 ‘목간’했다는 기분이 들지.”라고 말했다. “개업했을 때부터 계속 다녔지. 찜질방에서 가끔 아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동네 목욕탕처럼 재밌지는 않지. 누가 죽었다더라는 소식도 듣고, 이런저런 사연 듣는 재미에 다니는 거라네.” 4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목욕탕은 주인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유지비, 매출액 안따지고 장사한 지 오래” 한때 목욕탕 운영은 ‘동네 재벌’의 상징이었다. “한창 손님이 몰릴 땐 옷장이 부족해서 바구니에 옷을 담아놓고 손님을 받았어요.” 담 사장은 그때가 눈앞에 생생하다. 20대 젊은 나이에 목욕탕을 시작해 서른 여덟에 남편과 사별, ‘때 돈’을 벌어 아들 셋, 딸 둘을 혼자 키웠다. 그때 두 살배기였던 딸이 지금은 마흔이 넘은 아줌마가 됐다. 1970년대만 해도 중앙탕 반경 500m 주변에 목욕탕 6곳이 더 있었다. 그러던 것이 24시 사우나, 대형 찜질방에 밀려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해 결국 이곳 하나만 남았다. 한때 일요일엔 400명 넘게 손님이 몰리곤 했지만 이젠 휴일에도 많아야 50여명 선이다. “낙원상가 쪽으로 대형 찜질방들도 생겼고, 서울 외곽으로 목욕 원정 가는 손님들도 생겼어요.” 동네 터줏대감 자리를 찜질방에 넘겨주는 속내가 편하지만은 않다. 동네 목욕탕 장사로 목돈을 만지는 시대도 지났다. 400환으로 시작했던 목욕비는 지난해에야 35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랐다. 더 올리라는 손님도 있지만 그러면 찜질방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논리 때문에 차마 올리지 못한다. 낡은 수도꼭지, 깨진 타일 그대로의 시설이지만 손님들이 개의치 않기에 믿는 구석도 있다. “물세는 한달에 40만~50만원, 기름은 난방유를 때는데 한 드럼에 15만원 정도 하나? 사실 한 달에 몇 드럼 들어가는지도 잘 몰라요. 그런 거 따지지 않고 운영한 지 오래 됐어요. 한 달 매출액도 따지지 않고 장사하는데요 뭐. 어쨌든 마지막 손님이 끊길 때까지 이 사랑방을 지킬 거예요.” 동네 목욕탕은 오늘도 정과 인심의 김을 모락모락 피운다. 사람은 씻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씻는 방법은 늘 변해 왔다. 1970년대는 동네 목욕탕의 전성기였다. 온수 샤워 시설을 갖춘 집이 드물었고 목욕탕을 가는 건 빼먹지 말아야 할 ‘주기적’ 행사였다. XX탕, OO탕, 단출한 이름으로 동네마다 몇 개씩 있는 목욕탕은 일요일 아침이면 손님들로 북적였다. 목욕탕을 나서는 아이들 손에는 빨대 꽂힌 요구르트가 들려 있고, 입구에서 여탕으로 들어간 아내와 엄마를 기다리는 풍경도 익숙했다. 80년대 들어 시내 중심가를 필두로 ‘사우나’ 간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핀란드 사우나라 불리는 건식사우나를 비롯해 습식사우나, 폭포식 냉탕 등의 시설을 갖춘 고급 목욕탕이 들어섰다. 동네 목욕탕도 하나둘 시설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회사원들은 피로를 푼답시고 점심시간을 이용, 사우나에 드나들며 땀을 뺐고 벌건 얼굴로 오후 근무를 시작하곤 했다. 90년대, 목욕탕은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다. 이때부터 목욕탕은 갖가지 모습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맥반석, 옥사우나는 물론 참숯, 한방쑥, 황토, 녹차를 이용한 시설이 등장했다. 서비스도 보강하면서 정부의 1회용품 사용규제가 있기 전까지 비누, 수건은 물론 칫솔, 샴푸 등도 무상 제공됐다. 수면실, 헬스실을 갖춰 덩치를 키웠고 24시간 영업은 기본이 됐다. 2000년대엔 찜질방 시대가 열렸다. 남녀가 버젓이 함께 모여 땀을 빼는 찜질방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황토방, 보석방, 얼음방은 물론 노래방, PC방, 헬스방, 마사지방까지 더해진 대형 찜질방은 기업 형태가 됐다. 고작해야 2층 건물이던 동네 목욕탕은 ‘종합오락 찜질방 빌딩’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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