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이 달려오고 있다(경제평론)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의 이웃국가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조용히 생각해 보고 싶다.신흥공업국 (NICS)가운데 홍콩과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이면서 NICS의 선두를 다투고 있다.우리는 올해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를 맞고 있으나 싱가포르와 홍콩은 이미 2만달러를 넘어섰고 대만도 93년에 1만달러시대에 들러갔다.
일본 노무라경제연구소는 지난 12일 94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은 일본의 1977년 수준에 있고 홍콩은 1989년,싱가포르는 1987년,대만은 1977년에 해당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이 수치는 한국이 NICS가운데 가장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올해 우리가 1만달러시대 도래를 축하하기 앞서 일본에 비해 22년,홍콩에 17년,싱가포르에 15년,대만에도 3년이 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후발개도국으로 경쟁대상국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아세안(ASEAN)국가들의 맹렬한 추격도 만만치 않다.1인당 GDP기준 말레이시아는 한국의 1986년 수준으로 바싹 다가서 있고 태국은 1977년,필리핀도 1971년 수준에 있다고 한다.최근 이들 나라 근로자들이 우리나라에 일자리를 찾아 입국하자 우리는 이들 나라가 퍽 후진된 나라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이들 나라가 현 추세대로 경제를 발전시켜 나가면 한국이 일부 아세안국가에 밀릴지도 모른다.
싱가포르는 지난 91년 「IT(정보개발)비전 2000」을 수립,2000년대에는 나라 전체를 「정보의 섬」으로 전환시켜 고도정보화사회로 진입시키겠다는 야심적인 계획을 착착 추진하고 있다.싱가포르의 모든 가정과 사회·학교·공장들이 정보통신 네트워크로 연결된 1등 정보사회 선진국가로 진입시키겠다는 것이다.싱가포르를 정보의 슈퍼하이웨이 교차점으로 발전시켜 오는 2000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기록,미국과 일본을 앞지르고 세계 1위에 올라서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와 이웃에 있는 말레이시아 도 「비전 21」계획을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이 비전에는 콸라룸푸르 남쪽 30㎞에 있는 프타라제야란 곳으로 수도를 이전하고 이 도시 부근에 가로 10㎞,세로 10㎞ 규모의대공항을 98년까지 건설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이 공항이 건설되면 일본의 나리타공항이나 간사이공항이 「시골공항」이 될 정도라고 한다.
말레이시아는 아시아의 명실상부한 「하늘의 관문」을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반도체산업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이 나라에는 현재 모타로라·내셔널세미컨덕터·텍사스 인스트루멘트 등 미국 굴지의 17개 반도체 제조업체가 조업중에 있고 현재 세계3대 반도체 생산거점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또 말레이시아는 독자적인 승용차모텔을 생산·수출하는 나라로 부상해 있다.우리국민 가운데 몇사람이나 말레이시아가 독자모델을 갖고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로 알고 있을까.말레이시아는 「비전 21」을 통해서 2020년에 1인당 국민소득 1만5천달러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또 태국은 91년부터 전자산업이 섬유산업을 제치고 최대 수출산업으로 등장,경제발전을 주도해나가고 있다.후발개도국 중에서도 저소득 국가로 알려진 인도네시아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다.이 나라는 항공기개발산업에 국운을 걸고 있다.인도네시아가 항공기 개발에 착수한 것은 70년대 중반이다.인도네시아는 국영항공기회사를 지난 76년 설립,2백억달러이상을 투입했다.독일과 네덜란드 항공회사와 기술제휴하여 7종의 항공기를 생산하고 있고 90년부터는 50인승 중형수송기를 생산하고 있다.
NICS의 선발주자인 싱가포르는 우리가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정보산업을 중심으로 앞서가고 있고 후발개도국인 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 등 아세안국가들이 달려오고 있다.여기에 중국은 국민총생산규모면에서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경제대국인 일본마저 아세안국가들의 급성장을 놀라워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신경제 장기구상」(비전 2020)수립을 올해 하반기에 착수했다.내년에 가서야 「비전 2020」계획이 완성될 예정이다.자칫 잘못하면 중국에 밀리고 있다는 말은 옛말이 되고 아세안 국가들에게 밀린다는 분석이 나올지 모른다.우리가 내년도 물가안정과 경기연착륙에 온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에 아세안은 21세기를 향해 뛰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1만달러 국민소득 달성을 경제발전의 최종목표인듯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간다.나라전체가 역사청산에 관심이 쏠려 있는지도 모른다.국민 모두가 아세안 국가들이 달려 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역사청산과 병행해서 21세기 「선진세계중심국가」진입을 위한 국민역량을 총집결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