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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율주행·인간성, 공존할 수 있을까

    자율주행·인간성, 공존할 수 있을까

    운전하는 철학자 매슈 크로퍼드 지음/성원 옮김시공사/448쪽/1만 8000원 핸들을 잡고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아 가며 도로 위를 달리는 행위. 운전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별 감흥 없는 일상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크나큰 위로를 주기도 한다. 자동차든 오토바이든 자전거든, 무언가를 타고 운전을 한다는 것과 인간성, 윤리와 신뢰, 책임과 권리 등 철학적 요소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만나 다채롭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펼친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고등문화학술원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며 세계 각지에서 강연을 하는 정치철학 박사이자 모터사이클 수리점을 운영하는 정비사이기도 한 매슈 크로퍼드(57)는 “운전을 통해 우리는 가장 인간다워지고, 가장 나다워진다”고 예찬한다. 우리 몸으로 페달을 밟고 핸들을 돌리는 ‘움직임’과 원하는 방향을 선택해 원하는 속도로 달리는 ‘판단’들이 모두 인간성의 발현이라는 이유에서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현실에 적극적으로 능숙하게 참여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주고 인간의 손아귀 안에 진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어린 시절 킥보드부터 시작해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등을 타며 만끽하는 ‘마음대로 돌아다니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많은 사람들이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상대 운전자에게 들리지 않을 솔직한 말들을 쏟아 낸다. 도로 위에서 각 차들은 함께 있는 동시에 각자의 차에 고립돼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정해진 사회규범에 따라 질서 있게 움직이며 공공재인 도로를 나눠 쓴다. 저자는 특히 교차로를 예로 들어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일어나는 장소”라며 도로와 운전자 사이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설명한다. 원활한 경쟁과 협력을 위해 운전자들의 도덕성과 임기응변 기술은 오랜 시간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다져온 규범과 서로 적절히 어우러져야 한다. “운전은 유기적인 시민 생활의 한 형태”라고 말한 저자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월-E’ 등 디스토피아적 영화에서 자율주행차가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것도 ‘시민이라는 기분의 상실’이 영화 분위기를 살리는 데 핵심이기 때문이라고도 봤다. 그러나 영화 속 장면들은 점점 현실이 된다. 자율주행차는 우리의 손과 발을 핸들과 브레이크에서 멀어지게 하고 도로 위에서 발휘해야 할 순발력과 판단능력도 기계의 것으로 돌린다.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자율주행차 속 우리는 인간이 아닌 스마트한 기계 안에 탄 ‘승객’이 된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의 모든 정보가 축적되고 이는 곧 감시자본주의를 키운다. 저자는 “자율주행차가 당신에게 어느 정도 실질적인 효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목적은 당신을 위해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고 그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자율주행차가 통행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그 발전의 동력은 그런 공공 정신이 아니다”라고 꼬집는다. 그렇다고 기술을 다시 퇴보시킬 수는 없는 일. 대신 저자는 “결국 문제는 주권”이라고 강조한다. 이미 자율주행을 향해 달리고 있는 세상에서 ‘운전하는 인간’을 빼놓아선 안 된다는 지적과 함께 예를 들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는 기업이 아닌 국가와 같은 다른 공공의 주체가 알고리즘을 책임지고 공익적인 목표에 맞는 방식으로 자율주행 시대를 꾸려 가는 방안 등을 제시한다. ‘도로 위 주권’을 반드시 지키며 기계의 조종을 받는 승객이나 짐짝이 아닌 인간으로 남아야 한다는 경고가 꽤 묵직하다.
  • 12초마다 밤바다 밝히는 빛, 그 뒤엔 등대지기 수십 년 노고 있었다

    12초마다 밤바다 밝히는 빛, 그 뒤엔 등대지기 수십 년 노고 있었다

    1908년 준공된 높이 26.4m 등탑불빛 주기 유지하고 부표 관리도3명 한 조로 12시간씩 2교대 근무 독도 풍경 사진전 열고 시집 출간최고 비경은 울릉 태하 등대 일출추억·외로움의 공간… 보존 가치경북 포항시에는 해안선이 단조로운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삐죽 튀어나와 있는 곶이 하나 있다. 호랑이로 표현한 한반도 지도에서 꼬리 부분이라고 해서 이름도 호미곶(虎尾串)인 이곳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가 자리잡고 있다. 서쪽으로는 영일만, 동쪽으로는 동해를 아우르는 호미곶 등대를 지키는 김현길(사진)씨는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연 사진작가이자 시집을 출간한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공식 직함은 항로표지관리원이지만 여전히 등대지기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김현길씨를 만났다.-등대나 등대지기라고 하면 뭔가 낭만적인 느낌이지만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가장 중요한 임무는 불이 꺼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다. 지금은 자동화가 많이 됐지만 예전엔 기계식이라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모든 등대에는 세계항로협회에 등록된 고유한 불빛 주기가 있다. 특정한 항로를 지나는 선박은 그 경로에 있는 등대의 불빛을 보면서 선박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가령 호미곶 등대는 불빛을 한 번 비추고 12초 있다가 다시 비추는 식이다. 근처에 있는 송대말 등대는 20초 간격이다. 선박마다 갖추고 있는 GPS 신호는 위성 사정에 따라 끊길 수 있지만 등대는 상시 작동한다. 배가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부표를 관리하는 일도 한다.” -호미곶 등대를 소개해 달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로 정식 명칭은 해양수산부 포항지방해양수산청 호미곶항로표지관리소다. 1907년에 일본 선박이 이곳 앞바다에서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 사고가 있었다. 그걸 계기로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해 1908년 12월 준공했다. 가장 오래된 등대이자, 26.4m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팔각형 탑 모양은 서구식 건축양식을 보여 준다.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쌓았는데 오늘날 건축관계자들도 감탄할 정도로 건축물로서 가치도 있다고 한다. 등대 내부는 6층으로 돼 있는데 천장마다 대한제국 황실상징인 오얏꽃 문양을 조각한 것도 특징이다.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문화재로서 의미도 크다.”-근무 형태는 어떻게 되나. “세 명이 한 조로, 주간조와 야간조가 12시간씩 2교대로 근무한다. 주간조는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야간조는 오후 7시부터 오전7시까지 일하는 식이다. 경북에는 유인등대가 호미곶, 독도, 울릉도(도동·태하 등대), 울진 죽변 5곳 있는데 보통 2년에 한 번씩 순환한다. 독도 등대는 2개조로 나눠서 1개월 일하고 1개월 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등대지기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여행을 좋아해서 기차나 모터사이클로 전국 여행을 하기도 했다. 잠깐이지만 절에서 행자 생활을 하기도 하고, 하여간 역마살 같은 게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정비업체 등에서 일했는데, 서른 살 넘어 우연히 해수부 항만물류과에서 일하는 친구가 용접과 기계수리 자격증이 있으니 등대관리직에 도전해 보라고 권유해서 시험에 응시했는데 운 좋게 합격했다. 당시 독도 등대가 무인등대에서 유인등대로 바뀌면서 인력 충원이 필요했다. 포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사실 등대가 뭘 하는 곳인지 정확히 몰랐는데 공무원이 되고 나서야 제대로 알게 됐다. 1999년부터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 벌써 24년째다.”-독도에서도 일했던 건가. “독도 등대에서 일한 기간을 다 더하면 10년쯤 된다. 독도는 동도(東島)와 서도(西島)로 나뉘는데 항로표지관리원과 독도경비대는 동도에 있다. 독도에서 일하다 보면 일본 순시선이 잦을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 뜸할 때는 한 달에 한두 번씩 독도 주변 12해리를 순회하는 걸 보게 된다. 가족과 떨어져 외딴 곳에서 지내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동쪽 끝 영토를 지킨다는 보람이 있다.” -독도 생활은 어떤가. “사실 지내기 편한 곳은 아니다. 지금도 독도에 들어가려면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간 다음에 하룻밤을 자야 한다. 그나마 지금이야 울릉도까지 3시간 거리지만 예전에는 10시간 넘게 걸렸다. 겨울에는 파도가 거세다. 해양경찰청 함정을 섬에 대기가 힘들어 두 달가량 독도에서 지낸 적도 있었다. 예전에는 물도 귀했다. 비가 오면 다 같이 나가서 단체로 야외목욕을 하곤 했던 게 기억 난다.”-시집도 내고 사진전도 개최했는데. “독도에선 하루 종일 바다 말고는 볼 게 없고 갈매기 소리 말고는 들을 게 없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취미를 갖는 사람이 많다. 바둑을 배우거나, 책을 쌓아 놓고 읽거나. 나도 2001년부터 독도에서 사진과 시를 시작했다. 독도 사진을 찍어서 크고 작은 전시회를 서른 번가량 열었다. 독도에서 떠올린 주제를 모아 시를 써서 시집 ‘그리움이 그리움에게’(2019)를 출간했다. 포항 문인협회에 있는 김일광 시인에게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뒤에 쓴 시를 모아서 두 번째 시집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해 본 등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등대를 꼽는다면. “사실 등대 자체가 전망이 좋은 곳에 설치되기 때문에 풍경이 좋을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최고를 꼽는다면 역시 울릉도에 있는 태하 등대(울릉도항로표지관리소)가 아닐까 싶다. 울릉도에서 4년가량 일했는데 태하 등대 주변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특히 일출이 멋지다. 사진작가들이 꼽은 우리나라의 100대 비경에도 뽑혔던 곳이다. 호미곶 등대도 추천해 주고 싶은 곳이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등대다. 해맞이광장과 ‘상생의 손’ 조각상에 비친 일출을 보는 것도 꼭 추천해 주고 싶다.” -등대지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등대지기다. 앞으로 현대 장비가 들어온다 해도 추억과 외로움이 있는 곳이 등대다. 앞으로도 잘 보존했으면 좋겠다.”
  • 부산국제모터쇼 4년만에 개최...친환경·자율주행 기술 등 선보여

    부산국제모터쇼가 4년 만에 열린다. 전시·컨벤션센터인 부산벡스코는 ‘2022 부산국제모터쇼’가 ‘넥스트 모빌리티, 축제가 되다’(Next Mobility,A Celebration)라는 주제로 오는 7월 14일부터 24일까지 11일간 열린다고 17일 밝혔다. 부산국제모터쇼는 격년제로 열리는데 2020년 모터쇼는 코로나 19 영향으로 취소됐다. 올해가 10회째로 4년 만에 열리는 이번 모터쇼에서는 넥스트 모빌리티(차세대 이동수단)를 대표하는 여러 가지 품목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친환경 차량 및 자율주행 기술 전시, 전문 학술행사 및 세미나 등 미래 자동차 동향과 미래형 모빌리티 체험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열린다. 벡스코는 이번 행사에는 승용차, 상용차뿐만 아니라 친환경자동차, 특장차, 모터사이클, E 모빌리티 및 차량 정보기술(IT), 부품·액세서리, 자율주행기술 등 품목을 다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2~13일 이틀간 온라인으로 열린 2022 부산국제모터쇼 설명회에는 국내 완성차업체 5개사와 해외 10개 브랜드가 대거 참가해 성공적인 개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3월 31일까지 참가업체를 모집한다. 2022 부산국제모터쇼는 부산시에서 주최하고 벡스코,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주관한다.
  • 10년 전 알프스에서 영국 일가족 살해한 용의자 체포

    10년 전 알프스에서 영국 일가족 살해한 용의자 체포

     프랑스 경찰이 지난 2012년 9월 알프스 산자락의 유명 호수 근처에서 끔찍한 총격 사체로 발견된 영국인 일가족 살해 사건 용의자로 한 남성을 12일(현지시간) 샹베리에서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용의자는 현지 경찰이 불과 석달 전에 범행 현장을 재구성했을 때 증인으로 나서 경관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했던 인물이었다고 현지 매체 디지털 저널 닷컴이 전했다.  10년 전 그 가을에 동부 안시 호수 근처 주차장에 주차한 차 속에서 이라크에서 태어난 영국인 사드 알힐리(당시 50)와 그의 아내 이크발(당시 47), 장모 수하일라 알알라프(당시 74), 그리고 근처를 지나던 사이클 선수 실뱅 몰리에르(당시 45)가 참변을 당했다. 총알은 희생된 각자에게 상당히 여러 발씩 퍼부어졌다.  이 가족이 피격 당했을 때 차 속에 7세와 4세 두 딸도 함께 타고 있었는데 맏딸 자나이브는 총알에 맞은 데다 구타까지 당해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둘째 딸 지나는 다치지 않았지만, 범인이 총기를 난사하는 동안 어머니의 다리 아래 숨어 있었기 때문에 수사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두 딸은 나중에 새로운 이름을 얻어 지내고 있으며 2020년에 다시 경찰로부터 피해자 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프랑스와 영국 수사당국은 9년 넘게 수사를 진행해 왔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답답해 하던 프랑스 경찰은 가족끼리 다투다 벌어진 일이라거나 인공위성 엔지니어인 사드의 일 때문에 벌어진 변이란 식의 여러 가설을 내놓았다.  이 사건과 관련해 체포된 사람도 상당수였지만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다만 몰리에르는 이 가족과 관계 없이 그저 운이 나빠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변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용의자의 나이와 성별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하지만 지역 일간지 르 다우피네 리베레는 경찰이 2년 반 넘게 탐문해 용의선에 올라왔던 인물이며 사건 현장 근처에서 목격된 의문의 모터사이클리스트였다가 2015년에 무죄가 확인됐다.  지방검사 리네 본넷은 AFP 통신이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응답을 거부하면서도 그 인물이 석달 전 사건 재구성에 참여하기 위해 사건 현장에 돌아온 4명의 증인 중 한 명이었다고 확인해줬다. 아울러 구금 기간을 연장해 앞으로 24시간을 더 심문해 기소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 우간다 캄팔라서 IS와 연계된 연쇄 자살폭탄 테러, 6명 사망

    우간다 캄팔라서 IS와 연계된 연쇄 자살폭탄 테러, 6명 사망

    아프리카 동부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수니파 극렬 집단 이슬람 국가(IS)와 연계된 자생적 테러 단체가 16일(현지시간) 이른 시각 세 차례 자살폭탄 공격을 감행해 적어도 테러범 3명과 민간인 3명 등 6명이 숨지고 33명이 다쳤다.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프레드 에낭가 경찰 대변인은 “특히 자살 공격자들로 인한 폭탄 위협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서 이번 공격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민주군사연합(ADF)에 의한 소행이라고 말했다. IS는 텔레그램에 올린 성명을 통해 2019년 가맹한 ADF가 이번 테러 공격을 자행했다고 인정했으며, 산하 아막 통신은 조직원들이 이번 공격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이날 연쇄 폭탄 공격은 3분 이내 간격을 두고 발생했는데 세 대의 모터사이클에 폭탄을 실어 나른 테러범들이 폭발물을 터뜨렸다. 경찰서와 의회 건물 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데 주검들 일부가 길거리에 나딩구는 등 처참한 모습이었다고 방송은 전했다. 현지 TV 방송에는 일부 의원들이 의회 건물을 나와 대피하는 모습이 나왔다. 경찰은 네 번째 용의자가 같은 공격을 시도하려는 것을 제지해 체포하고 그가 입고 있던 자살폭탄 조끼를 벗겨냈다고 밝혔다. 이날 폭탄 테러로 최소 33명이 시내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 중 5명은 중태라고 에낭가 대변인은 전했다. 사망자 숫자에 자살폭탄 테러범들이 포함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BBC는 사망자 둘은 경찰관이라고 전했다. 한 목격자가 온라인에 올린 영상에는 경찰서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난 후 희뿌연 연기가 올라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공포에 질린 캄팔라 시민들은 모터사이클 등을 타고 황급히 도심을 빠져나갔다. BBC 동영상에는 일부 시민이 소화기를 이용해 차량 등에 옮겨붙은 불을 끄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나온다. 우간다 관리들은 최근 연쇄 폭탄 폭발로 인한 주민들의 주의를 당부해왔다.지난달에도 바와 버스에서 벌어진 두 건의 폭발 사건으로 2명이 숨지고 적어도 7명이 부상했다. 이 사건들도 IS와 연계된 ADF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에낭가 경찰 대변인은 이날 공격도 전형적인 ADF 범행의 특징을 보여준다면서 자생적 테러단체들의 준동에 맞서 그동안 최소 150건의 공격 모의를 무위로 돌렸다고 주장했다. 2년 전에 IS의 산하 조직이 된 ADF는 현재 본거지를 민주콩고공화국으로 옮겼다.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려 테러를 저지르던 ADF는 최근 들어 IS의 소행이란 점을 내세우는 식으로 바뀌었다. 정부에 반대하던 반군 무장집단이 글로벌 테러 단체와 연계해 더욱 극렬해져 우간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ADF는 IS 중앙아프리카 지부를 표방하는데 모잠비크의 이슬람 무장집단도 같은 이름을 쓰고 있다.
  • 베트남 법원, 코로나19 8명에 옮긴 28세 남성에 징역 5년형

    베트남 법원, 코로나19 8명에 옮긴 28세 남성에 징역 5년형

    베트남의 20대 남성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귀향하는 과정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8명에게 옮겨 한 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징역 5년형을 선고 받았다. 레 반 트리(28)란 남성인데 지난 7월 초 호치민 시를 떠나 남부 까마우의 고향 집에 도착했는데 여행 이력을 묻는 지방 보건당국의 설문지에 거짓 응답을 해 격리 조처를 회피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가 여행할 당시 까마우 당국은 다른 지방에서 온 이들이 차마우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3주 동안 격리하도록 강제하는 상황이었다. 트리는 나중에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는데 가족 구성원은 물론,그가 찾은 복지센터 직원들까지 감염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까마우 법원에서 진행된 단 하루 재판 끝에 이렇게 무거운 실형과 함께 벌금 880달러(약 102만원)도 부과받았다고 영국 BBC는 관영 베트남 뉴스 에이전시 보도를 인용해 8일 전했다. 같은 혐의로 법정에 선 둘에 대해선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2년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베트남은 초기 그런대로 방역에 성공적이었으나 지난 6월부터 감염자가 폭증하기 시작했는데 델타 변이를 차단하는 데 실패한 탓이 컸다. 53만명 이상이 확진돼 1만 3300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최근 몇달 새 호치민 시와 외곽을 중심으로 환자가 폭증하고 있다. 백신 1차 접종률은 15.4%, 2차 접종 완료율은 3.3% 밖에 되지 않는다.
  • 의붓여동생과 11년 비밀연애 끝 결혼…포르투갈 남성 “곧 아빠 된다”

    의붓여동생과 11년 비밀연애 끝 결혼…포르투갈 남성 “곧 아빠 된다”

    포르투갈 스포츠 스타가 의붓여동생과의 결혼 및 임신 소식을 전했다.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포르투갈 모터사이클 레이서 미겔 올리베이라(26)는 12일 아내가 된 의붓여동생의 임신 소식을 전하며 설렘을 드러냈다. 올리베이라는 지난달 의붓여동생 안드레이아 피멘타(25)와 결혼했다. 10년 넘는 비밀연애 끝에 맺은 결실이었다. 두 사람은 각각 13살, 12살 때 처음 만났다. 올리베이라의 아버지가 피멘타의 어머니와 재혼하면서 의붓남매가 됐다. 남매로 맺어진 인연이었지만 둘 사이에는 곧 남녀 간의 사랑이 싹텄다. 물론 부모님께 쉽게 자신들의 관계를 털어놓지는 못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숨어서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은 최근에야 11년 비밀연애에 마침표를 찍고 비로소 관계를 공식화했다. 지난해 현지 방송에 출연한 올리베이라는 “내가 의붓여동생에게 반했다”며 교제 사실을 공개했다.이어 “우리는 함께 자랐고, 사랑이 있기 전에는 위대한 우정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우정이 아니라 매우 강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의붓여동생과의 약혼 소식도 함께 발표했다. 부모님 반응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올리베이라의 아버지는 흔쾌히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했다. 지난해 스페인 스포츠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어 기쁘다”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지난달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정식 부부가 됐다. 올리베이라는 지난달 2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번 주 우리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내 인생의 반쪽인 아내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고 행운이라고 느낀다”며 결혼 소식을 알렸다.12일에는 첫 아이 임신 소식도 전했다. 올리베이라는 “특별한 친구와 인생을 함께 꾸려나가게 됐다”면서 어서 아이와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포르투갈 남부 알마다 출신인 올리베이라는 전직 모터사이클 레이서였던 아버지 뒤를 따라 선수가 됐다. 9살 때 처음으로 전국 대회에 출전했고, 2005년 포르투갈 미니GP에서 첫 우승을 따냈다. 2015년에는 이탈리아 모토GP 월드챔피언십에서 포르투갈 선수 최초로 우승컵을 거머쥐며 스타 레이서로 발돋움했다.
  • 94년생 감독의 톡톡 튀는 연출 ‘느낌표’… 섬세함 2% 부족한 스토리텔링 ‘물음표’

    94년생 감독의 톡톡 튀는 연출 ‘느낌표’… 섬세함 2% 부족한 스토리텔링 ‘물음표’

    각본촬영음악편집미술 작업을 혼자 다했다. 라트비아 출신 감독 긴츠 질발로디스 말이다. 여덟 살 때 그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기만 하지 않았다. 직접 만들었다. 1994년생이니까 나이는 많지 않은데, 창작자로서의 경력은 20년 가까이 된 믿기지 않는 이력의 소유자다. 그러니까 1인 다역으로 4년에 걸쳐 애니메이션 영화 ‘어웨이’(Away)를 제작할 수 있었을 테다. ‘어웨이’는 명실상부 작가주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 사실이 작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과정이 고생스러웠든, 수월했든 간에 예술품은 완성도로 평가받는다. ‘어웨이’는 어떤가 하면 작화와 연출 독특성은 느낌표(!), 스토리텔링 정합성은 물음표(?)다. 윤곽선을 없앤 캐릭터 디자인은 배경에 인물이 유연하게 스며들도록 한다. 이것은 여타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색다른 그림체다. 롱테이크(한 장면을 길게 촬영해 시공간의 사실성을 더하는 방법)와 핸드헬드(카메라를 흔들어 화면에 박진감을 가미하는 방법) 등을 적절하게 활용해 입체적인 구성을 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은 아쉽다. 대사 없이 진행되는 작품이므로 훨씬 섬세한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그렇게 느껴진다. 어딘가 “떨어져” 있다는 뜻의 ‘어웨이’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은 섬에 불시착한 남자가 겪는 모험기를 담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느릿느릿 남자를 쫓아오고, 그는 마을이 있는 곳으로 짐작되는 항구를 목적지로 정한 뒤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정에 나선다. 나는 법이 서툰 작고 노란 새도 남자의 동행이다. ‘어웨이’에 접근하는 가장 쉬운 길은 이를 주인공의 ‘본질적 자아 찾기’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본질적 자아와 구별되는, 또 다른 자아들의 무리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아무리 멀리 달아난다 해도 그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괴물도 ‘나’이기 때문이다.하늘을 나는 새들을 동경하는 작고 노란 새도 ‘나’의 분신이다. 꿈속에서 남자가 작고 노란 새가 되는 장면이 이 같은 가설을 방증한다. 그렇지만 그런 분석이 가능하다고 해서 ‘어웨이’의 스토리텔링이 정교하게 전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식량물지도나침반성냥 등이 남자를 위해 작위적으로 준비된 것은 그렇다 쳐도 오래 달려도 연료가 줄지 않는 오토바이는 뭔가 싶다. 생명체의 배고픔과 목마름 등은 중간중간 채워야 하나 기계 동력은 무한한 세계라는 것일까. 몽상과 결합한 무의식으로 간주하면 납득은 된다. 하지만 이 밖에도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 스토리텔링의 공백이 많다. ‘어웨이’에는 물음표의 책임과 느낌표의 영광이 공존한다. 어느 쪽이 우세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작은 물음표, 큰 느낌표.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 스페인 모터바이크 라이더 우고 밀란, 14세인데 사고로 운명

    스페인 모터바이크 라이더 우고 밀란, 14세인데 사고로 운명

    스페인의 14세 모터바이크 라이더 우고 밀란이 알카니즈에서 열린 모터랜드 아라곤 대회 레이스에 나섰다가 바이크에서 떨어져 사망했다고 영국 BBC가 25일(현지시간) 전했다. 밀란은 현장에서 곧바로 응급 처치를 받고 헬리콥터를 이용해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그가 훈련을 해 온 쿠나 드 캄페오네스 라이딩 학교는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우리는 항상 네 미소와 커다란 마음, 프로 정신을 기억할게”라고 추모했다. 모터그랑프리는 “유족과 친구들, 소속 팀에게 사랑과 지지를 보낸다”고 위로했다. 여섯 차례나 모터그랑프리 세계 챔피언을 지낸 마르크 마르케스는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밀란과 가까웠던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고 했다. 이 스포츠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도 추모의 글을 잇따라 올리고 있다. 밀란은 국제모터사이클연맹(FIM)이 10대 라이더들의 프로 서킷 도전을 돕기 위해 만든 유로피언 탈렌트컵에 출전해 왔다. 데뷔 시즌에 네 차례나 포디엄(시상대)에 올랐고 두 차례나 폴 포지션(경주할 때 가장 먼저 출발하는 순서)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올해 들어 두 번째로 10대 모터사이클 라이더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5월 스위스의 모터3 라이더 제이슨 두파스퀴어(19)가 이탈리아 무겔로 서킷 예선 도중 세 대의 모터바이크가 충돌하는 사고로 부상을 입어 입원 치료를 받다 숨을 거뒀다.
  • 24년 동안 50만㎞를 찾아 헤맨 아들과 마침내 해후한 중국 아버지

    24년 동안 50만㎞를 찾아 헤맨 아들과 마침내 해후한 중국 아버지

    “우리 애기, 네가 돌아왔구나!” 지난 11일 중국 산둥성 랴오청(聊城) 시에서 24년 전 유괴돼 잃어버린 아들과 부모, 가족, 일가친척이 감격의 해후를 했다고 관영 중국중앙(CC)TV 보도를 인용해 영국 BBC가 13일 전했다. 아들을 찾는다는 일념으로 모터사이클 뒤에 제보를 해달라는 깃발을 달고 20개 성(省) 50만㎞를 돌아다닌 궈강탕(郭剛堂)의 아내가 어엿하게 성장한 아들 궈신젠(26)을 껴안으며 오열했다. 정작 애타게 헤맸던 궈강탕은 곁에서 눈물을 참느라 안간힘을 썼다. 궈강탕은 취재진에게 “이제 우리 아들을 찾았다. 바로 지금부터 모두 행복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 공안부에 따르면 궈강탕과 궈신젠의 유전자를 대조한 결과 친아들이 맞다고 확인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에 적은 글을 통해 “그렇게나 많은 부모들이 아마도 오래 전에 모든 것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그는 너무 대단했고 난 그가 있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축하를 보낸 이 중에는 홍콩의 유명 배우 류더화도 있었다. 아들을 찾아 천지사방을 헤매는 모습을 담아 이 나라의 잔인한 아동 유괴 및 인신매매 실태를 고발한 2015년 영화 ‘失孤’(한글 제목 잃어버린 아이들, 영어 제목 로스트 앤 러브)에서 궈강탕을 연기한 인연이 있었다. 그가 아들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로 너무도 완벽하게 변신해 류더화인 줄 몰랐다는 팬이 있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류더화는 “당신의 끈기를 존경한다고 궈 형에게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해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매년 2만명의 어린이가 납치되는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들 중 많은 수는 국내와 해외의 다른 가정에 입양됐다.궈강탕은 지난 1997년 산둥성의 자택 앞에서 혼자 놀던 아들이 인신매매를 노린 두 남녀에게 유괴 당하는 모습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관영 영자 신문인 글로벌 타임스는 당시 사귀는 사이였던 여성 탕과 남성 후, 두 용의자가 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전했다. 탕이 궈의 아들을 데리고 가 버스 정류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후에게 아이를 인계한 다음 인근 허난성의 한 가정에 팔아 넘겼다. 아들은 최근까지 허난성에서 살고 있었다. 궈는 20개 성을 돌아다니다 교통사고로 뼈가 부러지기도 했고, 노상강도와 맞닥뜨리기도 했다. 그가 타고 다녀 망가진 모터사이클만 10대나 됐다. 그는 아들 사진이 담긴 깃발에다 예금을 다 써버려 다리 아래에서 잠을 청하거나 구걸하기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중국의 실종 어린이들을 찾는 부모들의 지난한 노력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적어도 일곱 쌍의 부모가 납치된 아이들과 상봉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 24년 전 유괴된 아들 찾아 모터사이클로 50만㎞ 돈 중국 아버지 마침내 해후

    24년 전 유괴된 아들 찾아 모터사이클로 50만㎞ 돈 중국 아버지 마침내 해후

     24년 전 중국 산둥성에서 유괴된 아들을 찾겠다며 오토바이 뒤에 제보해달라고 호소하는 깃발을 펄럭이며 20개 성(省) 50만㎞를 돌아다닌 51세 아버지가 지난 주말 아들과 해후했다.  13일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궈강탕(郭剛堂)은 지난 1997년 산둥성의 자택 앞에서 혼자 놀다 인신매매를 노린 두 남녀가 두 살 배기 아들을 유괴하는 모습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그가 사라진 아들을 찾아 천지 사방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2015년 홍콩 스타 류더화(劉德華, 앤디 라우)가 주연한 영화로 제작돼 매년 중국에서 수천 명이 납치되는 실태를 여실히 폭로했다. 2015년에는 중국에서 매년 2만명의 어린이가 납치되는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들 중 많은 수는 국내와 해외의 다른 가정에 입양됐다.  중국 공안부에 따르면 구오와 아들의 유전자를 대조해 친아들이 맞다고 확인했다. 관영 영자 신문인 글로벌 타임스는 당시 사귀는 사이였던 여성 탕과 남성 후 두 용의자가 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전했다. 탕이 궈의 아들을 데리고 가 버스 정류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후에게 아이를 인계한 다음 인근 허난성의 한 가정에 팔아 넘겼다. 아들은 최근까지 허난성에서 살고 있었다.  궈는 취재진에게 “이제 우리 아들을 찾았다. 바로 지금부터 모두 행복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개 성을 돌아다니다 교통사고로 뼈가 부러지기도 했고, 노상강도와 맞닥뜨리기도 했다. 궈가 타고 다닌 10대의 모터사이클도 파손됐다. 그는 아들 사진이 담긴 깃발에 예금을 다 써버려 다리 아래에서 잠을 청하거나 구걸하기도 했다고 털어놓는 글을 적기도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중국의 실종 어린이들을 찾는 지난한 노력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궈는 적어도 일곱 쌍의 부모가 납치된 아이들과 상봉하는 데 도움을 줬다.  궈가 아들을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격려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에 적은 글을 통해 “그렇게나 많은 부모들이 아마도 오래 전에 모든 것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그는 너무 대단했고 난 그가 있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 ‘北 6사단 미스터리’와 희생…잊지 않겠습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北 6사단 미스터리’와 희생…잊지 않겠습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북한군, 개전 뒤 파죽지세 진격호남 점령하려 돌연 1주일 지연강경 등서 전투경찰 온 몸으로 방어‘여단급 방어’로 오판…공격로 우회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서울 점령과 낙동강 전투, 인천상륙작전, 중공군 참전 등으로 이어져 1953년 7월 휴전 때까지 국군과 경찰에서만 무려 13만 8000명이 희생됐습니다. 유엔군 5만 8000명도 머나먼 타국에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71년이 지난 지금도 참전용사들의 헌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희생도 무수히 많습니다. 희생의 무게를 감히 평가할 순 없겠지만, 전쟁의 판도를 바꾸고도 잊혀진 이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전차까지 갖춘 북한군 최정예 6사단에 용감하게 맞섰던 ‘전투경찰’들입니다. 북한군 6사단의 남침 과정은 ‘미스터리’로 불립니다. 그들의 초기 진격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는데, 이후 이해할 수 없는 전술을 구사합니다. 6사단장 방호산은 한인들이 많이 속한 중국 인민해방군 166사단을 개편해 사단을 꾸렸습니다. T34 전차와 모터사이클 연대, 보병연대 등을 갖췄으며 실전 경험이 있는 병사가 많은 최정예 부대였습니다. 1개 사단 편제였지만 실제 병력은 2개 사단 수준이었습니다. 이 부대는 전쟁 당일 개성을 함락하고 26일 북한군 최초로 한강을 도하해 김포로 침입합니다. ●충청·호남 침공한 북한군 정예 6사단6사단은 한반도 서쪽으로 우회해 전남 목포, 여수 등 한반도 서남쪽 대부분을 점령했습니다. 그러곤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7월 31일 경남 진주에 나타납니다. 고작 북한군 1개 사단에 충청, 호남, 경남 지역이 유린된 겁니다. 필사적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던 ‘불독’ 월튼 워커 미 8군 사령관은 깜짝 놀랐습니다. 대구를 지키더라도 모든 병력과 군수물자가 들어오는 부산을 불시에 빼앗기면 정말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북한군이 서쪽에서 나타났으니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경북 상주의 미 25사단에 지시해 36시간 만에 240㎞를 달려 마산을 방어하게 합니다. 당초 북한군 6사단은 ‘무인지경’을 내달려 진주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5일 만에 300㎞를 이동하기도 했으니, 전사(戰史)에 유례없는 빠른 이동이긴 했습니다.그렇지만 방호산은 결정적 실수를 하게 됩니다. 충청지역으로 진출한 뒤 전남 남원·순천, 경남 진주로 직행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아 목포와 여수를 점령하는데 3일 가량을 흘려보낸 겁니다. 또 충남 공주까지 진출했다가 세종시 전의면 지역으로 부대를 후퇴시켜 4일을 보냈습니다. 대전에 집결한 미군의 병력 규모를 과대 평가해 일단 부대를 뒤로 물렸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평가입니다. 이 1주일은 이후 전세를 결정지을 정도의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군 해병대의 분전과 미군의 반격에 북한군은 진주에서 더이상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9월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완전히 뒤집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북한군의 오판은 6·25 전쟁 최대 미스터리로 남았습니다. 워커 사령관조차 “북한군이 목포와 여수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전쟁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고 평가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미스터리 속엔 여러분이 잘 모르는 숨겨진 희생이 있었습니다. ●“북한군 우회 미스터리엔 전투경찰이 있었다” 당시 호남지역엔 국군 정규군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충청, 호남 지역 전투경찰과 해병대원 일부, 징집자 등 급조한 군경 합동부대로 ‘7사단’을 꾸렸습니다. 27일 이종호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가 쓴 ‘6.25전쟁 초기 강경 경찰과 북한군 6사단 전투의 함의’ 논문에 따르면 이 부대는 이름만 사단일뿐 총기조차 완벽히 갖추지 못했습니다. 북한군 6사단의 주력 1연대가 현재 충남 논산에 속한 강경읍을, 13연대는 서천 장항읍과 군산 방향으로, 15연대는 익산 웅포면 방향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때 강경읍을 지킨 분들은 정성봉 강경경찰서장과 220명의 경찰병력이었습니다. 1개 중대병력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만 3개 중대로 나눠 배치했습니다.북한군 6사단은 ‘기만전술’에 능했습니다. 교묘하게 30명을 ‘남한 유격대원’으로 꾸며 강경읍을 방어중인 경찰에 보냈습니다. 증명서를 본 경찰은 별다른 의심 없이 이들을 강경읍 외곽에 배치합니다. 병력 규모를 간파한 북한군 1연대는 7월 17일부터 강경읍을 포위해 시가전을 벌였습니다. 당시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강경경찰서 앞 다리에서 북한군은 또 다시 “우리가 도우러 왔다”고 기만전술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경관 1명이 “속았다. 적이다”라고 외치면서 적탄에 쓰러졌고, 북한군은 강경읍사무소로 진출해 중기관총을 걸고 공격했습니다. 정 서장은 부대를 이끌고 30배 규모의 적에 맞섰습니다. 그러다 힘이 부치자 통신병 등 본부 병력을 후퇴시킨 뒤 30여명의 경찰대원과 차량을 타고 이동하다 강경중학교 근처에서 잠복했던 북한군에 의해 산화했습니다. 포로로 잡힌 경관 20명이 들판에서 학살되는 등 이 때 모두 83명이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전북경찰과 충남경찰 혼성부대는 북한군이 강경읍을 침탈하는 것을 보고 차분히 이동경로를 분석해 외곽에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북한군 1연대가 나타나자 사격을 퍼부어 무려 10시간 동안 이동을 지연시키고 결국 적을 강경읍으로 후퇴시켰습니다. 이후 전력 열세로 익산으로 후퇴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지연전을 펼쳤습니다. ●진주로 가는 길, 온 몸으로 막은 경찰들경찰부대들은 청양, 서천, 장항, 김제, 정읍, 광주, 목포, 남원, 구례, 순천, 여수 등지에서도 잇따라 전투를 벌이며 적의 이동을 방해했습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뒤인 10월 3일 강경읍은 다시 우리 군에 의해 수복됐습니다. 이 교수는 북한군 6사단을 막은 전투경찰들의 희생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교수는 “강경전투에서 경찰관 본인들은 몰랐겠지만, 6·25 전쟁을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로 본다”며 “강경경찰이 강인한 전투의지와 불굴의 저항정신을 보여줬기 때문에 북한군 6사단의 진출이 강경에서 진주까지 15일이나 소요됐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파죽지세였던 북한군은 강경전투 뒤 진주까지 직진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우회하게 됩니다. 소련 군사고문단장 라주바에프 중장은 강경전투에서 교전한 부대 규모를 ‘여단’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만큼 저항이 거셌다는 뜻입니다. 이 교수는 북한군 6사단이 강경전투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규모 적 병력을 후방에 남겨두지 않기 위해 호남 전 지역을 샅샅이 훑고 다녔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포항을 방어하기 위해 분전한 71명의 학도병을 그린 영화 ‘포화속으로’처럼 ‘경찰판 포화속으로’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들의 희생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데어데블 모터사이클 라이더 알렉스 하빌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데어데블 모터사이클 라이더 알렉스 하빌

    미국의 데어데블 모터사이클 라이더인 알렉스 하빌이 17일(이하 현지시간) 기네스 세계기록 점프를 연습하다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스물여덟 젊은 나이였다. 둘째 아들은 생후 한달 밖에 안됐는데 비운에 스러졌다. 하빌은 이날 아침 워싱턴주 모제스 레이크에 있는 그랜트 카운티 국제공항에서 연습 점프에 나섰다. 모제스 레이크 에어쇼의 첫날 일정으로 지난 2008년 3월 로비 매디슨이 세운 최장 거리 더트 투 더트 모터사이클 점프 기네스 세계기록 106m를 넘겠다는 일념으로 연습 점프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날아간 거리가 짧아 착지해야 할 슬로프의 앞쪽에 바이크가 처박혔고 그는 핸들을 잡은 상태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퉁겨나가 8m 떨어진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소생하지 못했다. 카운티 보안관실은 다음날 부검한다면서 유족과 친구, 사랑하는 이들에게 유감을 표명한다고 전했다고 abc 뉴스 등이 전했다. 하빌은 2013년에도 90m를 날았는데 이번에도 그 이상 날아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자신의 도전 계획을 밝은 표정으로 소개하며 많이 와서 봐달라고 얘기하는 동영상이 올라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매디슨은 이날 저녁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고 인스타그램에 털어놓았다. “그는 오늘 새 세계기록을 수립할 예정이었는데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부인 제시카, 두 아들 윌리와 왓슨에게 사랑을 전한다”고 위로했다. 고인은 지난달 현지 일간 컬럼비아 베이신 헤럴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네 살 때부터 라이딩을 했다. 하지만 그 전에도 난 늘 아빠의 바이크 앞에 앉아 있곤 했다. 온 생애에 걸쳐 난 더트 바이크를 몰아왔다. 그리고 이것으로 경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우러러 봤고 이런 사람들을 영웅으로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터크로스와 슈퍼크로스 경주와 영화 스턴트로도 많이 출연해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유해 태평양에 뿌린 이유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유해 태평양에 뿌린 이유

     1941년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격을 지휘해 태평양 전쟁으로 확전시켜 일본 군국주의를 멸망의 길로 이끈 A급 전쟁 범죄자 도조 히데키 전 총리의 유골이 태평양에 흩뿌려진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확히 어느 지점에 흩뿌려졌는지는 미국 정부와 미군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왔다. 도쿄에 있는 니혼 대학의 다카자와 히로아키 교수가 메릴랜드주에 있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소장하다가 2018년에야 기밀 해제된 문서를 통해 미국 육군의 연락용 항공기에 탑승한 장교가 요코하마에서 동쪽으로 48㎞ 떨어진 태평양 바다 위에 도조와 나란히 교수형이 집행된 전범 6명 등 7명의 유해를 흩뿌린 사실을 기록한 것을 찾아냈다고 영국 BBC가 AP 통신 등의 보도를 인용해 14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후손들이야 늦게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라고 반겼지만 전쟁의 참화를 고스란히 당한 우리 민족으로선 스스로 단죄하지 못한 전범의 유골 존재가 이제야 밝혀진 것을 통탄할 일이다.  도조는 유럽에서의 전쟁을 빨리 매듭지으려던 미국 등 연합군의 관심을 아시아 지역으로 돌려 2차 세계대전을 연장하려 한 원흉이다. 영국 등 옛 제국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아시아를 손아귀에 넣겠다는 야심에서 전쟁을 시작해 수백만명의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킨 전범 중의 전범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1948년 11월 사형이 언도됐고, 다음달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교수형으로 처형 당한 도조의 유골이 어디에 있는지 함구해왔다. 그곳이 알려지면 애국 영웅으로 여기던 우익 지지자들이 성지로 받들며 순교자로 떠받드는 일이 벌어질 것과 한국과 중국, 필리핀 등 막대한 전쟁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 들고 일어날 것을 우려해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이번에 다카자와 교수가 찾아낸 문서는 루서 프라이어슨 소령이 도조 등의 사형 집행 모습을 참관하고 유해를 화장하는 과정, 항공기에 유해를 싣고 공중에서 살포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으로 남긴 것이었다. 그는 1948년 12월 23일이라고 찍히고 ‘비밀’ 도장이 박힌 문서에다 “난 다음에 적힌 전범들의 형이 집행된 뒤 이들의 시신을 넘겨받아 화장하도록 감독하고 제8 육군 연락용 항공기에 올라 유해들을 태평양 바다 위에 흩뿌렸음을 확인한다”고 적었다. 그 밑에는 도조 히데키와 다른 6명의 전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화장을 마친 뒤에는 유해들을 빠짐없이 모았고, 유해들을 바다 위에서 뿌릴 때도 각별히 주의해 용기를 비워냈다고 적었다.  이듬해 1월 4일 작성한 문서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시간대별 상황을 꼼꼼이 기재했다. 그날 새벽 2시 10분쯤 지문 확인을 마친 도조 등 7명의 시신을 담은 관을 2.5t 트럭에 싣고 감옥 밖으로 나와 모터사이클 호송을 붙여 요코하마의 미군 묘지 관리부대에 1시간 30분 뒤 도착해 최종 점검을 했다. 트럭은 다시 아침 7시 25분에 그곳을 떠나 30분 뒤 요코하마 화장터에 이르렀다. 관들을 차례로 트럭에서 내려 각기 “오븐들”에 들어가 10분씩 있었으며 근처를 병사들이 지켰다.  그 뒤 근처 공항으로 옮겨져 프라이어슨 소령이 탑승한 항공기에 유해들이 실렸다. 그리고 “우리는 대략 요코하마에서 동쪽으로 48㎞쯤 날아가 내가 직접 화장된 유해를 넓은 지역에 흩뿌렸다”고 적었다.  도조의 증손자 도조 히데토시(48)는 “유해가 없다는 것은 유족에게 오랫동안 굴욕이었다”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소감을 뇌까렸다. 그는 “유해에 대한 정보가 드러나 안심된다”면서 “만약 그의 유골이 일본 영해 안에 뿌려졌다면 행운이다. 유해가 뿌려진 장소가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지면 친구들을 불러 모아 헌화하며 묵념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이 봉인됐다”면서 “유해를 보존하지 않는 것이 전범재판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다카자와 교수는 “도조의 유해가 신성시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와 함께 미군은 유해를 일본 영토에 돌려주면 일본인이 절대적인 굴욕으로 여길까 생각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일종의 배려를 한 것이란 해석인데 우리로서는 그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고 화가 나는 대목이다.  그는 전범으로 기소된 이가 4000명 이상이며 이 중 920명이 사형에 처해졌다며 전쟁 재판에 대한 연구를 더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참배했고 스가 요시히로 현 총리가 공물을 봉납했던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는 전범들의 유해가 없고, 대신 도조를 포함한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돼 오늘도 우익들이 찾아 추모하고 있다. 1869년에 세워진 이곳에 위패가 모셔진 일본인은 250만명 가량인데 전범들이 합사돼 오히려 이들의 희생 정신을 퇴색시킨다고 뜻있는 일본인들은 개탄하는데 군국주의 향수에 빠진 우익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도조 히데키는 일본 육군 참모장을 지냈으며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줄곧 일본 영토 확장을 부르짖었고 미국과 유럽의 제국주의 세력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해 총리에 올랐지만 1944년 전세가 기울자 히로히토 일왕의 신임을 잃게 됐고 압력 끝에 물러났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무조건 항복하기에 이르렀고, 1945년 9월 11일 미군 병사들이 집을 포위하자 권총으로 극단을 선택하려 했으나 실패해 체포됐다.  도조 히데키가 떵떵거릴 때에도 뜻있는 우익들은 공군력이 절대 열세인 일본이 미국을 끌어들여 자멸의 길로 이끈 책임이 실로 크다고 비판했다. 히로히토 일왕이 교활하게 도조 히데키 등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미군정과 결탁해 목숨과 기득권을 부지했다는 비판도 대두된다.  도조 히데키를 체포한 미군 병사 5명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 존 윌퍼스가 지난 2013년 93세를 일기로 메릴랜드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윌퍼스가 도조의 자살 시도를 막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
  • [길섶에서] 전면주차/임병선 논설위원

    신록이 너무 좋은 이때를 놓칠세라 집 앞 서울숲 공원, 능동 어린이공원, 남산 둘레길 등을 자주 찾는다. 지난 주말에도 남산까지 걸어 볼까 싶어 아파트를 나서는데 지상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 둘이 눈에 자꾸 거슬린다. 마세라티와 BMW 승용차다. 이 훌륭한 운전자들은 차량 배기구가 화단 쪽으로 향하게, 이른바 후면주차를 했다. 전화를 걸까 싶어 살폈는데 전화번호도 남기지 않았다. 대다수 아파트가 차량을 진행 방향대로 주차하도록 권장한다. 당연히 화단의 꽃들과 나무, 풀과 벌레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보통 화단 앞에 ‘전면주차’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양 운전자들은 그냥 그렇게 세운다. 떠날 때 편하려고 애써 자동차를 돌려 세우는데 사실 그게 더 번거롭다. 어쩌다 아파트 출입문 앞에 차를 세우면 아내가 뭐라고 한다. 이웃들이 드나드는 데 불편을 초래하면 되겠느냐는 얘기다. 괜히 그런 자리에 세웠다가 스크래치라도 나면 자기만 손해다. 생계형인 택배 차량이나 모터사이클이 시동을 끄지 않아 아파트 단지 내부가 시끄럽더라도 그런대로 용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값비싼 승용차가 보란 듯 후면주차를 한 것을 보면 화가 많이 난다. bsnim@seoul.co.kr
  • 14세 꿈많은 소녀, 24세 늘 웃던 외아들, 아내 앞에서, 미얀마의 별들

    14세 꿈많은 소녀, 24세 늘 웃던 외아들, 아내 앞에서, 미얀마의 별들

    미얀마에서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부르짖다 숨진 이는 700명을 넘는다. 가두 시위 도중은 물론 집에서 황망하게 숨을 거둔 이들도 적지 않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가 집계한 것인데 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12일(현지시간) 영국 BBC가 세 희생자 유족을 만나 그들이 평소 얼마나 민주주의를 갈망했는지와 목숨을 빼앗긴 경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심 경 등을 들어봤다. 먼저 두 번째 도시 만달레이의 판 에이 피유(14). 틱톡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을 여러 차례 올린 열정적인 민주화 운동가였다. 어머니 티다 산은 가두시위에 나가지 못하게 딸을 단속했다. 하지만 쿠데타 발발 이후 최악이었던 지난달 27일 어린이 11명 등 114명이 희생됐을 때 시위대원들이 군경에 쫓겨 집에 뛰어들자 문을 열어주다 흉탄에 스러졌다. 어머니는 “갑자기 넘어지길래 발을 헛디뎠나 생각했다. 그런데 등에 피가 보였다. 그제야 난 총에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버마어로 판은 꽃, 에이는 부드러운, 피유는 흰색을 가리킨다. 태어났을 때 너무 예뻐 보드라운 작은 꽃처럼 보였다고 해서 어머니는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집안일도 곧잘 도와주고 나중에 커서 고아원을 운영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 아이가 없으면 내 인생이 가치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 대신 죽고만 싶다.” 누나가 황망하게 떠나자 남동생 믕 사이 사이(10)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누이의 틱톡 동영상만 쳐다보는 등 감정적으로 유약한 상태라고 했다. 가족은 현재 다른 더 안 좋은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 거처를 옮겼다. 두 번째 카친주의 진 민 흐텟(24)은 집안의 막내 외아들이었다. 친구들을 무척 좋아해 무슨 일이든 친구들을 돕고 싶어 했다. 친구 코 사이는 “어떤 재정적 어려움이 닥치든 그녀석은 친구들에게 돈이나 무엇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어했다. 그는 착한 영혼을 지녔다. 늘 웃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8일 시위대의 맨앞쪽에서 방패도 없이 다른 대원들을 보호하려 애쓰다 총탄을 맞았다. 어머니 다우 온 마는 아들이 총격에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병원에 달려갔는데 “유언을 듣고 싶었고 아들이 엄마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피가 사방에 있었다. 난 그아이를 볼 수도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려 파리하고 몸이 차가웠다. 뭐라 말하겠는가? 잔인무도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들은 3년 동안 금 세공 일을 배우면서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어머니와 함께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돈을 많이 벌면 어머니에게 집을 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생전 화를 내게 하거나 슬퍼하게 만들지도 않았던 아들이었다. 운명의 날, 그는 어머니에게 일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갔다. 전날 밤 어머니가 다시는 시위 현장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너무나 시위에 나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마지막으로 가장 큰 도시 양곤 남쪽 다곤 마을에서 조용히 지내다 아내 앞에서 목숨을 잃은 모터사이클을 개조한 택시 운전사 헤인 흐텟 아웅이다. 지난 2월 28일 평소와 다름 없이 아내 마 진 마르와 함께 일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시위를 하러 가던 중이었다. 버스가 멈추더니 총격전이 벌어진다며 승객들에게 내리라고 했다. 마 진 마르는 “도로를 건네는데 그가 총에 맞았다.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렀다. 가슴에 피가 흥건했다. 난 구멍을 누르며 압박했다”고 말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너무 늦었다. 동네 사람들을 모두 알던 그에 대해 아내는 “아주 소탈한 사람이었다. 평온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많이 걸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틈이 나면 휴대전화 게임을 하곤 했다. 정직하게 일해 가족을 부양하는 일에만 골몰하던 사람이었다”고 돌아봤다. 부부는 5년 전 온라인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며 “우리는 어디를 가든 함께 했다. 그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마 진 마르는 쿠데타를 저지할 때까지 계속 시위에 나설 것이라면서 “(대의명분에) 목숨을 바친 이들의 가족들을 존경한다. 난 그들이 더욱 강해졌으면 좋겠다. 내 남편을 잃었기에 그들과 똑같은 슬픔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멈출 수 없다. 지금 물러설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죽음 뿐이다.” 한편 전날 한 청년은 반어적 표현으로 “70일 동안 단지 700명 죽었다. 천천히 해라, 유엔. 우리는 아직 (죽을 사람이) 수백만 명 남아 있다”는 피켓을 들어 눈길을 끌었다. 앞서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미얀마 군부를 대상으로 한 제재 등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군부의 친구’로 꼽히는 중국과 러시아가 버티고 있는 한 실현 가능성이 작은 것을 꼬집은 것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아이슬란드 화산 분출 나흘이 됐는데 여전히 위협적인 용암 분출

    아이슬란드 화산 분출 나흘이 됐는데 여전히 위협적인 용암 분출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근처 파그라달스피아들 화산이 분출한 뒤 다음날 아침 7㎞ 떨어진 곳에서 모터사이클을 몰아 달려간 사람이 드론 카메라로 포착한 동영상을 영국 BBC가 24일 소개했다. 이 화산은 12세기에 분출한 것이 마지막으로 기록돼 있었는데 800년 만에 분출했다. 20일 하룻동안 트레킹이 통제됐는데 아마도 동영상을 촬영한 이는 그 전에 화산으로 달려간 모양이다. 사실 자신을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빠뜨린 것이었다. 절대 따라 하면 안될 일이다. 이번에 산 아래로 흘러내린 용암은 대략 30만㎥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 정도 분출이면 비교적 작고 통제된 규모라고 했지만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듯 분출된 용암은 위협적이기만 하다. 당국은 21일 트레킹을 허용해 한때 수천명까지 인파가 불어나기도 했다. 엔지니어라고 소개한 울바르 카리 요한손(21)은 AFP 통신에 “정말 숨이 멎을 것 같다”면서 “냄새가 무척 고약하다. 내게 놀라운 것은 (용암이) 오렌지 빛을 띤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짙다”고 말했다. ‘얼음과 불의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지만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지난 3주 동안 5만여회의 지진 활동이 감지됐는데도 이렇게 용암 흘러내리는 장관을 놓치지 않겠다고 모여들었다. 식은 용암에 소시지를 구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동영상도 우리 눈길을 끌었다. 지난 22일부터 가스 오염 수치가 너무 높다는 판단에 따라 트레킹이 금지됐다가 다음날 용암 속도가 느려 위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다시 접근이 허용됐다. 아이슬란드는 100여개에 달하는 화산 일대에서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2010년에는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폭발로 유럽 하늘이 화산재로 뒤덮이는 대혼란을 빚었다. 2014년 8월에는 동부 바우르다르붕카 화산이 활성화되면서 최고 단계인 적색경보가 발령됐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27세에 ‘은퇴 당해’ 통학버스 RV로 개조해 세상 돌아보기, 이래도 괜찮을까

    27세에 ‘은퇴 당해’ 통학버스 RV로 개조해 세상 돌아보기, 이래도 괜찮을까

    27세에 벌써 은퇴했다. 아니,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앞당겨 ‘은퇴당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20일(현지시간) 야후! 머니와 캐세이(Cashay)가 보도한 크레이그 고드니어는 미국 해안경비대에서 근무하는 2년 동안 공을 들여 캘리포니아주에서 구한 일자리에 출근할 날만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팬데믹 때문에 취업이 무산됐고, 지난해 4월 그는 매사추세츠주 부모 집에 얹혀 지내고 있었다. 그 뒤 이력서를 숱하게 썼지만 하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열패감을 아세요? 내가 정말로 뭘하고 싶어하는지 다시 따져보게 하더군요.” 여느 또래처럼 계획은 이런 거였다. 직장을 구하고 40만 1000 달러(약 4억 5401만 2200원)를 모아 65세에 은퇴한 뒤 레저용 차량(RV)으로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런 계획에서 난 40년을 앞당긴 거죠.”<다만 이 대목에서 왜 1000달러가 붙는지와 이 금액이면 너무 소박한 것 아닌지, 이 금액이 미국 MZ 세대의 평균적인 은퇴 목표 자금인지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곧바로 RV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 모든 설비가 갖춰진 RV를 사려면 4만 달러 예산으로는 어림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중고 밴승합차나 통학버스 매물이 나왔는지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뒤졌다. 크레이그리스트의 작은 집 목록도 훑었다. 인스타그램의 ‘버스 라이프 어드밴처’를 검색하니 개조한 버스가 매물로 잔뜩 나와 있었다. 아예 처음부터 좌석들을 모두 걷어내고 모든 장치를 뜯어내고 천장을 높이는 등 본인이 손을 대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피하고 싶었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다 된 것을 고르고 싶었지만 결국은 중간쯤 마무리된 것으로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 사우스다코다주에 그런 버스가 있었다. 천장을 50㎝나 높여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높이가 2.5m나 됐다. 주인은 이미 RV 윈도우(여름에 통풍과 냉방이 가능한 장치)를 설치했고 차량 전체에 절연 장치를 해놓은 상태였다. 24시간 운전해 달려갔다. 보통 통학버스는 5000~8000 달러 정도인데 주인은 1만 5000 달러는 받아야겠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나머지를 재활용품으로 구해 비용을 절감하기로 했다. 주방 서랍장, 욕실 타일을 중고로 구입했다. 주방 조리대에 200달러도 들이지 않았다. 벽 마감재도 모두 재활용했다.고드니어 집은 이웃끼리 모두 아는 작은 마을이어서 모두가 그를 도왔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것처럼 내가 버스를 짓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그냥 들러 뭐 하나씩 건네주더라. 정말 멋진 일이었다.” 건축업체를 운영하는 할아버지도, 목수인 아버지도 거들었다. 손재주 없는 그는 인터넷을 뒤져 고교 기술반에 남는 것들을 쓸어 담았다. 설계에 매달리지 않고 ‘해보자 주의’였다. 천창을 내고 모터사이클 데크를 넓히고 차 바닥에 축전지를 달았다. 뉴잉글랜드에 겨울이 닥치기 전 외관 공사를 끝내야 인테리어 공사에 매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훨씬 빨리 침대 틀을 짰고 뒤쪽에 욕실 담을 세웠다. 버스 앞쪽을 어떻게 개조할지는 훨씬 어려웠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예산은 빠듯했지만 그는 둘만은 갖고 싶었다. 난로와 에스프레소 바였다. 나머지 모두를 포기하더라도 두 가지만은 꼭 해야 했다. 난로는 버스 전체에 열을 공급하며 전기로도 작동해야 했다. 석재의 색깔을 모두 바꿨고 조명은 아래로 향하게 했으며 음악에 맞춰 바뀌게 했다. 6년 전 푸에르토리코에서 근무했을 때 맛본 것을 발전시켜 에스프레소를 즐기고 싶었다. 부모 집의 세탁실 에 커피 로스트 장치를 들여놓고 3대째 커피를 재배하는 스페인 농가로부터 원두를 수입해 마실 정도의 커피광이었다. 고드니어의 개조 RV ‘집들이’ 고드니어 3대는 지난해 추수감사절까지 개조 작업을 마쳤다. 감사절 다음날 부모를 태우고 남쪽으로 달려봤다. 부모에게 침대를 양보하고 자신은 소파에서 잤다. 소파는 펼치면 퀸 사이즈만 해진다. 지금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의 RV 공원에 머무르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팔로어가 늘어났다. 버스를 개조한 방법을 배우겠다는 이들이다. 남동생이 해안경비대 근무를 마치고 합류하면 또다른 모험에 나설 예정이다. “녀석은 아주 재능있는 음악 프로듀서인데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버스를 스튜디오로 꾸미는 일이다. 그 뒤 여행하며 음악을 만들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이 모든 일을 버스 안에서 한번에 하는 것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나스카도 열렸다, 정상화되는 美… 문제는 마스크

    나스카도 열렸다, 정상화되는 美… 문제는 마스크

    나스카경기장, 마스크 미착용자 눈에 띄어abc“데이토나 축제 마스크 착용 거의 없어”디즈니랜드·레고파크 등 놀이공원 4월 개장WHO “백신이 주는 희망 낭비하면 안 돼”미국 캘리포니아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레이싱 경기인 나스카가 6일(현지시간) 열렸고, 플로리다 데이토나에서는 대규모 모터사이클 행사가 개최됐다. 미 언론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며 우려를 내놓았다. abc방송은 6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해변에서 세계 최대의 모터사이클 축제가 시작됐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또 이 곳은 술집과 식당에서 실내 좌석의 60%까지 손님을 받을 수 있는데, 실제로는 가게 앞에 테이블을 늘어놓고 규정을 피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5일 시작된 행사는 열흘간 진행되며, 50만여명이 몰리던 예년보다는 못하지만 30~40만명이 데이토나 해변을 찾을 것으로 지역 상공회의소는 관측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문을 연 나스카 경기 역시 관중석 곳곳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8만석 경기장에 1만 2500명만 입장을 시켰고 발권부터 스낵바까지 모두 무인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경기 내내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다음달부터는 캘리포니아의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레고랜드 등 각종 야외 놀이공원이 제한적으로 문을 연다. 입장객은 정상시의 15∼35%로 제한하고, 마스크 착용 등 코로나19 방역을 지켜야 한다. 메이저리그(MLB) 야구 경기장을 포함해 각종 스포츠 야외 경기장도 재개를 허용해 4월부터는 프로야구도 관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조치들은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확대되면서 접종 대상자가 50대 이상 성인까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텍사스·미시시피주가 마스크 의무화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웨스트버지니아·애리조나주 등은 마스크 의무화는 유지하지만 각종 시설에 대한 방역 지침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 관계자는 지난 5일 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3번째, 4번째 (코로나19 확진자 수) 급증이 올 것”이라며 “(방역) 경계를 허물면서 백신이 주는 희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뉴딜 인프라에 50% 투자해야 세제혜택… 대주주 기준 10억 유지

    뉴딜 인프라에 50% 투자해야 세제혜택… 대주주 기준 10억 유지

    뉴딜펀드 2억까지 배당소득 9% 분리과세2023년 주식투자 과세, 내년말 종가로 가능세차장 등 8개 업종 현금영수증 의무화텔레마케팅 등 야근수당 비과세 직종 추가 오는 3월 조성되는 뉴딜 인프라 펀드의 투자자들이 세제 혜택을 받으려면 뉴딜 인프라에 50%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에서 비과세 혜택을 누리는 저소득 생산직 근로자가 늘어나고, 자동차 세차장 등도 현금영수증 의무 발급 대상에 추가된다. 올해부터 3억원으로 강화될 예정이었지만 개인 투자자의 거센 반발을 부른 대주주(주식 양도세 부과 대상) 기준은 내년까지 기존 10억원을 유지하기로 법령에 명시됐다. 기획재정부는 6일 이런 내용이 담긴 ‘2020년 세법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고, 지난달 국회에서 통과된 세금 관련 21개 법안에 대한 세부 기준을 마련했다. 앞서 정부는 공모 뉴딜 인프라 펀드 투자 때 투자액 2억원까지 배당소득을 9%로 분리과세하는 혜택을 주기로 했다. 구체적인 세제지원 요건은 시행령에 위임했는데, ‘뉴딜 인프라에 50% 이상 투자(1년간 투자비율 평균해 판정)’로 기준을 정한 것이다. 2023년부터 금융투자소득 과세를 앞두고 소액주주에 대해선 실제 취득가액과 내년 연말 종가 중 유리한 쪽을 취득가로 적용해 주기로 했다. 소액주주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미리 주식을 처분하는 등의 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올해부터 연말정산에서 의료비 세액공제를 받고 이후 실손보험금을 또 수령하더라도 앞서 신청한 공제 내역을 수정해 신고하면 가산세를 면제한다. 월 210만원 이하 저소득 생산직 근로자의 경우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주는데, 텔레마케팅과 대여 판매업, 여가 및 관광서비스 종사자, 가사 관련 단순노무직 등이 신규 대상 업종으로 추가된다. 승용차를 캠핑카로 개조할 경우 기존 차량가격은 빼고 개조에 든 비용과 추가 원재료 가격만 따져 개소세를 부과해 세금 부담을 줄여 준다. 자동차 세차업과 벽지·마루덮개 및 장판류 소매업, 중고가구 소매업, 건강보조식품 소매업, 사진기 및 사진용품 소매업, 모터사이클 소매업 등 8개 업종은 내년부터 10만원 이상 거래 때 현금영수증을 의무 발행해야 한다. 내년 7월부터 전자세금계산서를 의무 발급해야 하는 사업자 대상은 직전연도 사업장별 재화·용역의 공급가액 3억원 이상에서 2억원 이상으로 확대한다. 종량세가 적용되는 맥주·탁주의 세율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각각 ℓ당 834.4원, 41.9원으로 조정했다. 정부는 이날 상속세 개선이 필요하다는 정치권 등의 의견에 따라 올해 연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다만 연구용역 착수가 실제 인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임재현 기재부 세제실장은 “실제 세율 인하는 국민 공감대 형성이 전제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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