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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대통령 내외 불우시설 추석위문

    ◎김 대통령/양로원에 떡·과일… “작고 어머님 뵌것 같다”/손 여사/고아원 등 4곳 강행군… “밝고 건강하게 커달라” 추석을 앞두고 불우시설들에 온정의 손길이 끊긴 가운데 대통령내외가 불우시설을 순방하면서 사회가 좀더 따뜻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는 추석을 사흘앞둔 27일 상오 지난해말 대통령당선자 신분으로 위문을 했던 청운양로원을 다시 방문,외로움에 떠는 노인들과 잠시 시간을 함께했다.이날 김대통령내외는 양로원에 컴퓨터와 떡,과일,쇠고기를 위문품으로 전달한뒤 동행한 송정숙보사부장관에게 『불우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추석을 쓸쓸히 보내지 않도록 해달라』고 특별히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양로원 2층 침실에서 고령 할머니 다섯분과 다과를 함께하면서 홍서성할머니에게 올해 연세가 얼마냐고 물어 『올해 85세』라고 말하자 『돌아가신 모친이 살아계셨으면 올해 85세인데 동갑이시군요』라며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김대통령은 1층식당으로 내려와 다과를 들고 있던 노인들에게 『그제(25일)가어머님 기일이었는데 모친과 연세가 같은 분을 만나 어머님을 뵌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서 『용기와 신념을 갖고 남은 여생을 건강하게 사시라』고 위로. 손여사는 대통령이 청와대로 돌아간뒤 별도로 정신지체시설인 신아재활원과 육아시설인 혜심원을 방문해 위문품을 전달하고 『밝고 건강하게 자라달라』고 당부. 손여사는 이어 영세민 무료급식소인 베들레헴의 집으로 가 오찬을 함께하는등 하루에 4곳의 불우시설을 방문하는 사랑의 강행군을 펼쳤다.
  • 소탈한 성품의 고시10회 선두주자/윤관 대법원장 내정자는 누구

    ◎행정력 겸비… “흠 잡을데 없는 사람” 중평 윤관 대법원장 내정자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한마디로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해박한 법률지식과 뛰어난 행정능력,인간미 넘치는 성품을 겸비했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표현이다. 꼿꼿하고 청렴한 「대쪽판사」라는 수식어도 그에게 잘 어울린다. 대법원장으로 지명된뒤 보도진의 인터뷰요청에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아 걱정이 앞선다』는 짧은 소감만 전하고 『국회동의 절차가 남아 있으므로 지금 얘기할 때가 아니다』면서 굳이 거절한 점에서도 이런 일면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법원내부에서는 그가 대법원장으로 지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적임자가 대법원장이 됐다』며 진심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전남 해남 출신인 윤 내정자는 국회의 임명동의를 얻으면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전북 순창출신)이후의 첫 호남출신 대법원장이 된다. 광주고와 연세대를 졸업한뒤 58년 고등고시 10회에 합격한 그는 동기들중에서도 늘 선두를 지켰다. 62년 광주지법 판사로 법관생활을 시작해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서울고법부장판사,청주지법원장,전주지법원장을 거쳐 86년에 선배들과 동기들을 제치고 대법원판사에 올랐다. 지방법원장에서 곧바로 대법원판사에 오르는 일은 당시로서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갑작스레 대법원판사로 발령받고 서울에 집살 돈이 없어서 전세집을 구하러다닌 일화는 그의 청렴도를 대변하는 대목이다. 재산도 건평 45평짜리 단독주택과 예금등을 합쳐 3억2천여만원이며 두아들의 재산까지 더해도 5억3천여만원으로 이번 재산공개결과 대법관들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땅도 모친으로부터 상속받은 해남의 논 6백평이 전부이다. 그렇게 청렴하면서도 체육대회등 법원행사에는 직원들이 놀랄 정도로 사재를 털어 지원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시골농부를 연상시키는 외모처럼 말석판사실에 들러 함께 차를 마실 정도로 성품이 온화하고 소탈하다. 그러면서도 진보적 성향을 지녔다는 그는 판결에서는 중도적이고 합리적이며 법질서의 원칙을 중시한다는 평을 듣고있다. 윤 내정자는 동생이 윤 전 변호사이며장남이 윤 순 춘천지법 판사인 법조인가족을 이루고있다. 골프를 치지 않는 대신 매주 남들이 잘 다니지 않는 등산코스를 골라 오르는 등산광이다. 부인 오 현씨(56)와의 사이에 아들만 넷을 두었다.
  • 북한 이주자의 불행(사할린한인 망향의 한 50년:3)

    ◎“지상낙원” 선전에 속아 수천명 입북/다시 탈출하다 체포돼 죽거나 실종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사는 김수만(42)씨의 경우는 사할린 한인들이 이국땅에서 겪은 또다른 비극의 일면을 보여준다. 57년 사할린에서 부친이 사망한 뒤 모친이 재가,조모 손에서 자라던 그는 62년 10월말 조모,고모댁 일가를 따라 북한의 원산으로 이주했다. 김씨 일가뿐 아니라 당시 이런 식으로 북한으로 이주해간 한인이 수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56년 일소회담 전까지 사할린 한인들은 「구일본국적자」로 분류됐을뿐 국적이 주어지지 않았다.56년 국적취득자격이 주어지자 북한영사관 직원들이 나와 대대적인 선전공세를 폈다.「고향에 못가지만 북조선에라도…」하는 마음에,혹은 『북조선은 지상낙원이다』『젊은이들이 북한으로 오면 대학교육을 무료로 시켜준다』는 식의 선전에 속아 많은 사람들이 이때 북한 국적을 취득하거나 북한으로 이주해갔다고 한다. 그러나 직접 가서 본 북한실정은 소문과는 딴판이었다.원산의 모 전문대에서 음악교사 자리를 얻은 김씨의 고모부는「거짓선전에 속은 것을 알고 고민중」 65년 1월 단신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청진에서 체포돼 3년 뒤 감옥에서 사망한다.이후 『조모는 화병으로 세상을 뜨고 고모는 갓난애 하나를 남에게 주고 품팔이를 떠난채 소식이 끊겨 온집안이 풍지박산이 났다』고 했다. 김씨는 그뒤 재가해 사할린에서 살던 그의 모친이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내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에 탄원서를 제출,66년 사할린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김씨는 『당시 북한을 탈출하려던 사람 다수가 도중에 목숨을 잃거나 체포돼 행방불명됐다』고 한다. 사할린 한인들의 국적분포는 60년대말까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에 무국적으로 남은 남한출신들을 제외하고는 소련,북한 국적자가 비슷한 수를 차지했다.그러다 북한의 실상이 전해지면서 북한 국적을 버리는 사람이 속출했다.더구나 88올림픽뒤 서울의 발전상이 처음으로 알려지고 모국방문이 시작되면서 북한 국적자는 크게 줄어들었다.북한 국적자는 모국방문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서윤준 이산가족회장은 『현재 북한 국적자는8백명 정도』라고 밝혔다. 나홋카에 있는 북한영사관은 북한 국적포기를 저지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국적포기에 갖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달거나 시간을 끄는 등의 수법을 쓴다고 한다.최근 북한국적을 포기한 김한수(63)씨는 『북한영사관에 세번이나 편지를 냈는데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화가 나 북한여권을 불태워 버리고 편지를 보냈다는 증명서와 함께 러시아 여권관리국에 탄원서를 냈더니 국적포기를 인정해 주었다』고 했다. 북한 국적포기후 3개월의 무국적 기간이 지나면 러시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현재 집계되는 무국적자는 이 북한 국적포기자들뿐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런 가운데 고향이 남한이면서도 북한 국적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할린중앙시장에서 김치·나물을 파는 홍양림(79)할머니는 『큰아들이 김일성대학에서 공짜로 공부시켜준다는 말을 듣고 북한으로 갔는데 지금은 생사도 모르지만 혹시 그애한테 화가 미칠까봐 북한 국적을 못버린다』고 했다.북한영사관에 아들의 소식을 물으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답만 되풀이 한다고 한다.41년 군산에서 「흉년으로 하도 먹을 게 없어」 징용에 응한 남편(진갑길·79)을 따라 사할린으로 왔다는 이 할머니는 『고향,가고 싶지.하지만 자식을 먼저 찾아야지』라고 한숨만 내쉬었다.이산의 고통을 이중으로 겪는 사람들이다. 이중의 이산은 그뒤에도 이어졌다.서윤준회장은 『지난 70년대 중반 한인 수십명이 일본을 통한 귀국을 요구하며 사할린주청사 앞에서 집단시위를 벌였는데 당시 주모자 30여명이 모두 북한으로 강제 이송돼갔다』고 했다. 그뒤 개방정책이 본격화되며 88년 당시 본달추크 주당제1서기에게 이들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한인들이 연명으로 탄원서를 냈으나 아무 결실이 없었다.현재 사할린에 사는 이들의 친척들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북한영사관측은 여전히 『모두 잘살고 있다.주소는 모른다』는 답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한다. 망국과 분단의 비애를 한꺼번에 증언해주는 사할린땅이다.
  • 법관 17명 부모·자녀 재산고지 거부/이유도 갖가지

    ◎“별도 세대 구성”·“부친 직업있어 생활능력”/“자녀 결혼해 분가… 직업확실 부양 불필요”/윤리법 맹점 이용 분산 의혹… 형평에도 어긋나 재산을 처음 공개한 고위 법관의 상당수가 부모와 자녀 등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고지하지 않아 재산분산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존·비속 재산고지거부 법관은 고법부장 이상 공개대상자 1백2명 가운데 17%인 17명에 이르러 다른 부처보다 비율이 훨씬 높다. 17명중 5명은 직계자녀 재산을,12명은 부모재산의 고지를 거부했다. 이들은 공개대상자의 직계존속은 별도의 세대를 구성하고 있고 생활능력이 있어 부양받지 않을 경우 재산고지를 거부할 수 있다는 공직자윤리법의 규정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고지거부자 가운데 9명이 10억원이상의 고액재산가로 밝혀져 주위로부터 윤리규정의 맹점을 이용,재산을 분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고지를 거부한 당사자들 대부분은 부모와 자녀들이 스스로 생계를 꾸려갈 능력이 있고 그 사실을 증명할 재직증명서등 관련서류를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57억3천여만원의 재산을 공개,사법부인사들중 랭킹3위를 기록한 정지형 창원지법원장등 자녀들의 재산고지를 거부한 5명은 자녀들이 확실한 직업이 있다거나 결혼을 해 분가했기때문에 공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원장은 장남이 공군법무관으로 결혼해 분가했고 16억여원의 재산을 공개한 정상학대구지법원장도 공군법무관인 장남과 모 그룹사 사원인 차남이 결혼해 분가했다고 밝혔다.또 김상원대법관과 김종배서울고법부장판사역시 자녀들이 변호사와 군법무관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자녀들이 독립생활을 하고있는 만큼 의혹이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부모의 재산고지를 거부한 법관 12명의 경우는 더욱 명분이 빈약하다. 부친이 변호사등 직업을 가진 경우도 있으나 단지 세대가 따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지를 거부한다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부모가 직업이 있는 경우는 재산규모1위인 이철환인천지법원장등 극소수로 이원장의 부친 이수원변호사는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져 있으나 모친이 서울근교에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용준대법관·고중석대전지법원장,박용상 양인평 이강국 권성서울고법부장판사,서성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임수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김효종대법원장 비서실장,유현광주고법부장판사등은 문제의 재산등에 대한 소명이 있어야 한다는게 주위의 지적이다. 이들이 소명하지 않으면 수억원대의 재산을 가진 부모의 재산을 공개한 사람들과의 형평에도 어긋난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 위장전입 명의신탁 자녀명의/공직자투기 “해도 너무 했다”

    ◎4차례 전입,논 4천평 구입/정옥순 비서관/이름빌려 억대 고양시땅 사/조육 부장판사/7세아들명의 임야 2만평/김용준 대법관 재산공개 결과 일부 고위공직자들이 명의신탁 및 위장전입의 수법으로 전국 요지의 임야·전·답 등 금싸라기 땅을 사들이거나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해 어린 자녀들 명의로 거액의 부동산을 매입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부동산 투기 척결의지를 다짐하고 있는 정부가 철저한 실제조사를 거쳐 앞으로 정확한 실상이 밝혀질 예정이나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책임을 면키 어렵게 됐다. ▷명의신탁 의혹◁ 서울고법 안문태부장판사는 지난 84년2월 친지 김모씨 명의로 경기도 용인군에 논과 하천부지 1천40평(시가 3억8천만원)을 매입,투기의혹을 사고 있다. 다세대주택 이외에 단독주택과 아파트를 여러채 가지고 있어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고법 조육부장판사도 지난 80년 서모씨 명의로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의 잡종지 4백평(시가 9천5백만원)을 매입했는가 하면 대구지법 최덕수수석부장은 배모씨 명의로 속초시 대포동의 밭 4백22평(시가 2천5백만원)을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들 이외에 감사원 황영하사무총장은 6촌동생 황모씨 명의로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의 논 5천2백평(시가 1억5천만원)의 일부를 가지고 있고 김기수부산지방경찰청장도 친지 정모씨 명의로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의 밭 8백평(시가 4백만원)을,환경처 조병환조정평가실장은 동생 명의로 경기도 안산시 월피동의 논·밭 7백평(시가 6천8백만원)을 각각 가지고 있다. 경제기획원 김영태차관은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 임야 등 3천평(시가 2억4천만원)을 명의만 친지에게 빌려줬을 뿐 실소유자는 아니라고 신고했으나 석연치 않다는게 주위의 지적이다. ▷위장전입 의혹◁ 청와대 정옥순비서관(여성담당)이 지난 72년부터 83년까지 경작농민이 아니면 구입할 수 없는 절대농지를 구입하기 위해 4차례나 위장전입하는 방법으로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의 논 4천3백평(시가 7천4백만원)을 집중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비서관은 이와 함께 여러차례 주민등록을 옮기면서 경기도 안산시 월피동 대지와 고잔동 농지를 사들인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김상원대법관도 지난 81∼84년 사이 부인(50)을 경기도 이천군 부발읍으로 주민등록을 옮겨 이 지역 일대 임야와 논·밭 8천평(시가 1억9천만원)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영식광주지법원장 또한 부인을 위장전입시키는 방법으로 경기도 평택·양평·제주도 지역에 대지와 논·밭·과수원 등 4천평(시가 3억6천만원)을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택형합참전략기획본부장(중장)도 지난 79년 부인 박영애씨(51)명의로 남제주군 성산읍 신풍리7,10 일대 밭 4백50평을 매입하면서 부인을 인근 성산읍 신산리 949로 위장전입시켰던 사실이 밝혀져 투기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또 한만청서울대병원장은 지난 79년 부인 김봉애씨(55) 명의로 용인군 원삼면 맹리의 전답 1만2천9백58㎡를 위장전입해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김씨는 이땅을 구입하기에 앞서 같은해 6월14일 서울 성북구 삼선동4에서 용인군 외사면 가좌리26으로 전입했다가 같은해 7월30일 다시 서울 성북구 삼선동 4번지로 전출했다. ▷미성년자 부동산취득 의혹◁ 김덕주대법원장은 지난 86년 변호사개업 당시 19살난 장남명의로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의 임야 1백40평(시가 1천2백만원)을 사들인뒤 2년후 또다시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갈현동 임야 4천4백평(시가 1억6천만원)을 사들여 빈축을 사고 있다. 「장애자법관」으로 인간승리을 일궈냈던 김용준대법관은 모친이 지난 74년 당시 7살난 손자에게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임야 2만2천평(시가 1억6천만원)을 사줬다고 신고했으나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밖에 민자당 정호용의원은 지난 84년 당시 11살난 딸에게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임야 8천5백평을 사준 것으로 밝혀졌고 남평우의원 역시 지난 86년 당시 23·21·19살난 세아들에게 제주도 서귀포시 임야 8천평을 사줬다는 것이다.
  • 경제관료들 재테크 탁월/각종 이재수단 알아보면

    ◎이 부총리는 주식·홍재무는 금융자산 선호/1급 알부자들 부동산서 CD까지 다양 이번 재산공개에서 경제기획원·재무부·상공부등 이른바 「노른 자위」 경제부처 공직자들의 재산은 국회나 사법부,그리고 외무부,검·경찰등 다른 행정부 공직자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그러나 비경제부처 관리들이 주로 부동산을 선호한 반면 경제관리들은 부동산 말고도 주식과 채권,투자신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재수단을 활용해 『역시 경제관료들의 「재테크」수완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장관들의 재산은 김철수상공자원부 장관이 17억9천만원으로 단연 수위이고 다음이 고병우건설(13억6천만원),이경식부총리(9억2천만원),홍재형재무(8억6천만원),허신행농림수산장관(2억9천만원) 등의 순이다. 그러나 이재수단은 평소 본인의 분위기와 흡사하다는 것이 중론.관·재계를 두루 섭렵한 이부총리는 본인이 관계하는 대신기계공업의 주식 1억4천4백만원 어치를 본인과 배우자,차남 명의로 분산하는 재테크 수단을 발휘했다. 다만 장·차남의 빌라·아파트 전세보증금을 제외해 실제 금융자산은 주식지분 액수보다 줄어든 6천2백만원에 그치고 있다. 홍재무장관은 본인과 부인 이름으로 외환·국민·주택은행과 대한투신,외국계 은행인 시티은행에까지 모두 3천7백만원이 넘는 각종 예금에 골고루 들었다.총 재산중 43%에 이르는 돈을 금융기관을 활용,안정적으로 굴리는 셈이다. 김상공장관은 경기도 용인군의 임야(2천6백만원)와 조흥은행 주식 1만주(1억3백만원),모친 명의의 사인간 채권 11억원을 보유하는 등 공개 재산중 65·1%를 부동산이 아닌 곳에 묻어두고 있다.고건설장관은 장관 중에서는 유일하게 5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차관급은 김영태 기획원차관이 배우자 명의로 임야와 전답(경기도 광주),오피스텔(서울 도화동·청담동),예금등을 골고루 갖고 있다.백원구 재무부차관도 은행과 투자신탁·생명보험 상품들에 많이 들어 있고 추경석국세청장은 5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다. 이동훈 상공자원부차관은 배우자가 서울 염곡동과 충남 당진에 5억2천만원 상당의 밭을 갖고 있으나 금융자산은 하나도 없다.유상열 건설부차관은 충북 괴산에 배우자 명의의 임야와 대지(7천3백만원)가 있으나 금융자산은 은행채무가 많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안광구 특허청장도 서울 양재동에 20억원 이상의 대지를 소유,예금이나 유가증권보다는 부동산을 선호하고 있다. ○…경제관료들 가운데서는 장·차관급보다 오히려 1급 중에서 알부자가 많다.상공자원부에서 최고의 재산가인 장석환 대전엑스포사무1차장(21억4천5백만원)은 예금등 2억8천8백만원의 금융자산 가운데 CD(양도성 예금증서)를 2억1천6백만원 보유하는 등 주식과 예금·채권·부동산에 골고루 투자하는 솜씨를 보였다. 부동산을 위주로 한 다양한 재산증식법도 많다.이환균 재무부 1차관보는 경기도 성남시에 3억4천만원 상당의 땅에다 약 1억6천만원어치의 주식,이밖에 본인과 배우자·장·차남 이름으로 모두 9천6백만원의 예금을 들어 재산증식을 꾀했다.이근영국세심판소장도 서울 역삼동 상가 점포와 주식,은행예금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했다. 김태연 기획원차관보는 상속재산이 많은 배우자가 충북 음성에 임야와 밭(2억4천만원)등 부동산을 갖고 있으며 예금과 유가증권,사인간 채권등도 많다.이밖에 임창렬 재무부2차관보가 5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다. ○…경제부처에서 가장 적은 재산을 신고한 사람은 상공자원부의 정해범기획관리실장.서울 개포동 현대아파트를 1억7천만원에 전세 내 살면서 배우자 이름으로 예금 7천5백만원이 있을 뿐,별다른 재산이 없다.
  • 일부선 투기·공직이용한축재“냄새”/1∼2차 공개내역비교와 의혹사례

    ◎본인 2억여원에 배우자 74억 “아리송”/국회의원들 철저준비 “1차때와 비슷”/시가기준 산출로 4∼5배 “증식” 되기도 땅,땅,땅…. 6일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이 공개되자마자 일부 인사에 대해 벌써 부정·투기의혹이 일고 있다.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에 상당량의 토지·가옥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누가 보아도 투기의혹을 짙게 풍긴다.더구나 공직을 이용한 축재,투기혐의가 있는 케이스도 다수 눈에 띈다. 금융자산이나 현금을 은닉한 것같다는 의심을 살만한 대목도 다수 있다. ○무연고땅 상당수 ○…이번 재산공개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지난 4월 자진공개때와의 차이점.국회의원과 장차관들의 1·2차 재산공개내역이 틀릴 경우 심대한 도덕적 타격이 예상됐기 때문. 1차공개에서 곤욕을 치렀던 국회의원들은 그간 철저히 대비를 해왔음에도 상당수 의원들의 재산내역이 틀리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그러나 민자당의 김영광의원은 부인 명의의 제주도땅 7개소를 새로 공개,지난번의 공개가 부실했음을 드러냈다.이에 따라 김의원은 재산이 29억9천만원에서 84억3천만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김동권의원은 서울·대구등지의 부동산 상당량을 새로 신고했고 윤태균의원도 1차때 없던 재산내역이 포함됐다. 민자당의 김진재의원은 소유주식을 시가로 신고해 재산이 지난번 2백77억원에서 이번에는 6백62억원으로 늘어났다.조진형의원도 소유 부동산 공시지가상승을 이유로 1백24억원에서 4백84억원으로 증가한 재산을 신고했다.남평우의원도 1차 28억8천만원에서 2차 1백14억2천만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도덕성 타격 예상 의원들 가운데는 1차때 문제가 됐던 인사들의 부동산보유가 역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박박식의원은 본인 명의로 땅 30필지,주택 19채를 소유하고 있었고 부인도 임야등 5필지,점포등 10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장·차남등 자식 명의의 부동산도 상당해 투기의혹을 사고 있다. 민주당의 박태영의원도 본인 명의로 경기도 일대에 상당량의 토지를,부인과 모친명의로 제주도와 전남지역에 땅을 보유하고 있어 역시 구설수. 그밖에도 민자당의 양정규의원과 민주당의 신진욱·양문희의원,무소속의 양순직의원도 여러 명의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의혹대상에 오르고 있다.민자당의 이학원의원은 광명시와 서울 동작구에 9건의 부동산을 보유,역시 투기혐의를 짙게 한다. ○1차부실 드러나 ○…장차관들 중에는 등록액수는 다소 차이가 있어도 내역이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 큰 문제가 되는 케이스는 적을 듯. 하지만 새로 재산을 공개한 1급공직자나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중에는 의혹을 살만한 재산을 가진 인사가 상당수 발견된다. ○부인·부모 명의도 김태연경제기획원차관보의 경우 상속재산을 포함,4채의 주택과 함께 임야·밭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이강우 공정위상임위원은 지난 62년 서울 중부시장내 상가점포(1억7천만원 상당으로 신고)를 부친과 공동명의로 산 것으로 등록했는데 당시 이위원의 나이가 24세에 불과해 명의만 빌려준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 외무부 관리들은 오피스텔등 상가를 전반적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어 역시 투기의혹을 사고 있다.김기수 전뉴욕총영사는 경기도 일대에 임야를 다량 소유,모두 35억원의 재산을 공개했으며 부인도 모두 8캐럿이상의 보석을 보유한 것으로 신고했다.또 장손자·손녀 이름의 예금액이 2천4백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훈파키스탄대사도 강남에 부동산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는데 「부동산을 수없이 팔고 샀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박수길외교안보연구원장은 서울 강남에 총43억1천만원 상당의 대지를 소유한 것으로 공개돼 직업외교관으로는 너무 재산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태수농림수산부차관은 본인과 부인명의로 경기도 평택군에 2억원 상당의 임야를 소유하고 있다.신구범기획관리실장등 다른 농수산부 관리들도 전답 혹은 과수원등을 갖고 있어 곱지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이판석농촌진흥청장은 세를 주고 있는 서울 신사동의 상가건물이 의혹을 사자 『83년에 주거용으로 산 건물』이라는 해명서를 내기도했다. ○장·차관 다소 양호 행정부서 최고 재산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 김광득해운항만청차장은 본인 재산은 2억1천6백만원인데 비해 배우자 재산은 74억5천만원으로 신고해 주목을 받았으나 상속재산이라고 해명. 이연희경인지방국세청장은 도처에 땅을 갖고 있었으며 상속이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투기의혹이 제기.이청장은 충북 청원·진천 일대 임야·전답·대지등 3만평을 상속받은 이외에도 서울 수유동·쌍문동 단독 주택과 장남 명의로 경기·충북 일대에 많은 땅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곧 해명서 제출도 유길선감사위원은 본인과 배우자명의의 임야 대지 전답 아파트 오피스텔 근린생활시설등을 다수 보유한 것으로 드러나 감사업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유위원은 특히 부인명의로 11억3천9백만원의 부동산을 가진 것으로 신고했다. 박양배제주경찰청장도 부동산 알부자라는 소문에 걸맞는 보유현황을 보이고 있다.본인뿐 아니라 부인도 인천 북구 부평동에 27억원상당의 빌딩(2채)을 소유하고 있다. ○유산 상속 받기도 ○…처음 재산을 공개한 사법부는 투기의혹을 사고 있는 인사 몇몇이 미리 사퇴했음에도 불구,구설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 27억8천여만원을 신고한 김덕주대법원장부터 투기의혹을 사고 있다.김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인 86년에서 88년 사이 본인과 장남명의로 경기도 용인군과 평택군,서울 원지동등에 임야·전답등 모두 7만여평이 넘는 땅을 집중 매입,부동산투기 흔적이 역연. 검찰에서는 최명부대구고검장이 경기도 일대에 10건의 부동산과 2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며 배우자도 경기도 양주군에 부동산을 갖고 있다. ○전답소유 “눈총” ○…공직유관단체 임원중에는 한국전기통신공사의 박양호감사가 경기도 이천,장호원의 과수원등 부인명의의 부동산 24억6천만원을 공개했다.한만청 서울대병원장도 본인과 부인 이름으로 경기도 용인·안성지역에 70년대말에서 80년대초까지 집중적으로 부동산을 매입해 투기의혹을 받고 있다.
  • 「재산가」 총학장 10억원이상 9명/공직자재산공개 부처별 이모저모

    ◎법무·검찰선 1차홍역 겪어 다소 느긋/사조직·치부 장성 “치명상 입을것” 소문/청와대 비서실·경호실 평균 5억 기록/국방부 예상외로 액수적어 일단 안심 ▷청와대◁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은 평균 5억원대를 기록.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은 일찍 뉴욕으로 건너가 사업으로 성공한 김혁규사정1비서관으로 국내 15억3천만원,미국소재 약31억원등 모두 46억 3천만원을 등록. 다음은 주돈식 정무수석으로 21억원9천만원,전남방직 회장아들인 김무성 민정2비서관이 15억3천여만원으로 3위를 차지했다. 또 민자당 전국구 0순위인 정옥순 여성담당비서관은 14억9천만원,부인이 치과의사인 엄효현홍보2비서관은 14억8천만원을 등록. 대표적인 가신그룹인 김기수수행실장은 4억1천여만원,장학로제1부속실장은 3억3천여만원을 등록했고 30년간 김대통령을 보좌해온 김대환 총무비서관은 9천6백만원의 재산을 등록해 청와대내에서 꼴찌를 기록. 박관용비서실장의 경우 서울 서교동 집이 2천만원정도 내려 지난번 보다 약 3천만원 줄어든 7억5천여만원을 신고했고 반대로 박상범 경호실장은 서울 청운동 자택이 공시지가로 신고기준이 변동됨에따라 지난번 재산공개 2억7천만원보다 늘어난 5억6백만원을 등록했다. 주수석의 재산은 지난번 공개때는 8억1천만원에 불과했는데 이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건물신고기준 변동으로 신고가액이 5억2천만원에서 20억원으로 껑충 뛰었기 때문. ○차 평남지사 1위에 ▷행정부처◁ ○…11명이 재산을 공개한 내무부는 환경관리공단 이사장을 지낸 차성호평남지사가 12억9천7백2만7천원으로 1위를 기록했고 11억2천8백4만원의 최인기차관과 9억7천7백27만원의 임경호차관보가 2·3위를 마크했으며 7억3천2백51만원을 신고한 이해구장관은 6위에 랭크. 이같은 금액은 이장관의 경우 지난번보다 2천여만원 늘어난 것이며 최차관은 오히려 5천7백44만원이 줄었다.이에대해 장관실은 임야등 1천6백여평의 공시지가가 상승하고 예금이자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으며 최차관은 서울 강남구 포이동 체비지의 공시지가가 내리고 모친의 재산이 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 한편 내무부는 7위부터 맨 꼴찌까지 모두가 3억대로 조사돼 비교적 안도하는 모습. ○3∼4명은 내심초조 ○…국방부는 중장급 이상 군장성 46명과 장·차관,제1·2차관보등 1급이상 정무직및 일반직 공무원 6명등 52명의 재산규모가 일반인들의 상상보다는 적은 것으로 나타나자 일단 안도하면서도 김모중장등 고위랭킹자를 포함,3∼4명의 재산내역이 의혹을 살만하다는 지적이 일자 내심 초조. 권령해장관은 지난번 장·차관 재산공개시보다 6천2백여만원이 적은 6억6천7백56만원을 등록했으며 이수휴차관은 지난번보다 5천1백여만원이 줄어든 17억3백90만1천원을 신고했으나 국방 고위관계자로서는 1위를 차지. 이번 재산공개에서 미술품등을 공개한 사람은 3명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김재창한미연합사부사령관(육군대장)이 동양화 2점과 조각 2점등 4점,도일규수방사령관(중장)이 서양화 4점을 가격표시없이 신고했다.이재달군단장(중장)은 배우자의 5부짜리 다이아반지를 5백만원에 신고해 국방부주변에서 화제가 되기도. 국방부 관계자들은 생각보다는 재산공개파문이 적을 것으로관측하고 있으나 과거 「하나회」등 군사조직에 관여했던 인사로서 재산형성내역이 의심나는 군장성 2∼3명은 「재산공개 태풍」을 빗겨나기 힘들 것 이라고 이구동성. ○여론동향에 더 신경 ○…법무부와 검찰은 이미 지난번 재산공개때 정성진전대검중수부장과 최신석전대검강력부장이 물러나는 등 한차례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는 탓에 별도의 브리핑 자료도 준비하지 않는 등 느긋한 분위기속에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쪽의 재산규모와 여론동향에 더 신경을 쓰는 눈치. 특히 이번에 추가로 재산을 공개한 재경지청장과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울산지청장등 7명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안강민서울지검남부지청장이 19억5천여만원으로 박종철검찰총장을 근소한 차로 제치고 4위에 올랐지만 대부분 10억원대 안팎이어서 문제될 것이 없다는 분위기. 모두 47명의 재산보유현황이 공개된 법무부와 검찰에서는 지난번에 1·3위를 차지했던 정·최전검사장의 용퇴로 당시 2·4위였던 김도언대검차장과 김유후서울고검장이 37억여원과 24억9천여만원으로 1·2위를 차지하는 등 재산규모와 순위에 있어 큰 변동이 없는 상태. 다만 최근 부친상을 당한 김서울고검장과 새로 공개대상이 된 김수장서울지검의정부지청장·유재성부산동부지청장등 3명이 부모의 재산내역에 대해 고지거부를 해 여론이 이를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하는 표정. ○의사 등 맞벌이 많아 ○…보사부는 등록재단 공개대상이 송정숙장관·최수병차관·주경식기획관리실장·김종대사회복지정책실장과 박인서국립의료원장·유원하국립보건원장·이강추보건안전연구원장등 모두 7명으로 이중 최차관·박의료원장·유보건원장등 3명의 재산이 10억원을 넘어서 눈길. 최차관의 경우 부인이 약사로 한때 약국을 개설,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의료원장은 의사출신으로 부인이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유보건원장도 부인이 H종합병원 과장으로 근무,재산형성과정에 크게 문제가 없다는 것이 보사부 내부의 반응. 보사부의 한 관계자는 『재산이 다소 많은 것으로 나타난 사람들은 대부분 맞벌이 가정으로 의혹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 ○땅 16억원어치 보유 ○…환경처의 경우 국무위원 가운데 황산성장관은 예금에 이자가 붙어 지난번 재산공개때 보다 2백여만원이 늘어난 23억6천7백여만원,김형철차관은 1천2백여만원이 줄어든 2억7천여만원을 각각 신고. 김인환 기획관리실장은 아내명의로 된 경기도 이천군 호법면 동산리의 논 2천7백93㎡를 포함,5억3천여만원을 신고했는데 김실장은 노후를 위해 80년대 중반 매입했다고 설명. 또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경기 안산시 일대의 임야와 전답을 포함,16억4천1백80만원을 보유,만만찮은 재력을 과시한 조병환조정평가실장은 본인·부인·어머니가 각각 아파트를 한채씩 소유하고 있으며 본인과 부인이 예금·유가증권에 모두 1억2천여만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직치곤 부자 많아 ○…노동부는 산하기관을 포함,9명의 재산공개자 평균재산이 8억6천7백여만원으로 나타나자 한직부서치고는 의외로 많다는 반응. 특히 산하기관인 한국산업안전공단 김기덕이사장이 32억8천여만원인 것으로 공개되자 『노동부유관단체에 그런 재력가가 있었느냐』며다소 놀라는 표정. 김이사장은 본인소유의 서울 양천구 신월동 대지5백16평,건평3백34평 주택(평가액 25억1천8백여만원)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지79평,건평1백79평 주택(평가액 6억9천3백여만원)이 재산의 거의 전부로 이 두 주택을 합친 재산이 32억1천1백여만원. 김이사장은 신월동주택의 경우 약사인 부인이 모은 돈을 합쳐 지난 70년대에 구입했다는 후문. ○“장모 증여재산 60억” ○…교통부및 산하기관의 재산공개 대상자 17명 가운데 총재산이 10억원을 넘는 사람은 76억6천8백만원을 등록한 김광득 해운항만청차장등 모두 7명. 김차장은 부인 명의의 울산시 중구 남외동의 대지 1만5천9백76㎡가 66억8천3백만원에 달하는 등 부인명의의 재산이 74억5천2백만원으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 김차장은 울산시의 대지는 장모 김일기씨가 지난 54년 매입한 것으로 울산공업단지 조성과 함께 매립돼 대지화되면서 값이 오른 것으로 상속후 증여세를 납부하고 현재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본인과 부인의 재산 76억6천8백만원 가운데 장모의 증여재산이 69억7천2백만원에 달한다고 해명. 김차장 다음으로 재산이 많은 공직자는 김경회 철도청차장과 염대섭해운항만청장으로 각각 36억2천9백만원과 24억9천1백만원을 등록. 김철도청차장은 지난 80년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대원빌딩(대지 6백39.4㎡,건물 1천3백65.55㎡)이 32억9천만원으로 재산의 대부분이라고 설명. ○23개 예금구좌 지녀 ○…경무관급 지방청장을 포함,치안감이상 29명이 재산을 공개한 경찰 가운데에서 재력랭킹 1위는 29억9천여만원을 신고한 박양배제주경찰청장. 박청장은 본인명의의 임야 2백여평과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57평짜리 빌라를 비롯,부인이름으로 된 아파트 한채와 인천의 상가,예금·주식등 부동산과 동산을 고루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청장은 그러나 재산의 대부분이 지난 84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장모(86년사망)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밝혀져 별다른 의혹은 받지않고 있다. ○“거의 문중재산” 해명 ○…교육부의 경우 모두 62명의 공개대상자 가운데 52명을 차지하는 국립대학 총·학장들의 재산규모가 큰 관심사였으나 대개 평균 수준으로 드러나자 안도하는 빛이 뚜렷. 오병문장관과 이천수차관·박병용국립교육평가원장·박영석국사편찬위원장등 차관급 3명은 1차공개때와 비슷한 규모로 등록. 그러나 총·학장 가운데 10억원대 이상의 「부자」가 9명이나 있어 눈길. 랭킹 1위는 임선재천안공업전문대학장으로서 모두 40억1천8백41만3천원을 등록. 임학장은 서울 송파구 오금동과 충남 천안시 일대에 상당한 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대부분 문중재산의 공유지분이라고. ○“의혹 눈길 섭섭하다” ○…문화체육부는 현직 국회의원이기도 한 이민섭장관이 지난번 공개 때보다 7천만원정도 많은 8억5천9백여만원을 신고했는데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삼익빌라 값이 5천만원 높게 평가되는등 부동산 평가기준이 바뀐 결과라고 설명. 최창신차관보는 10억4천6백여만원을 신고해 부내 최고액수를 기록했는데 본인은 『이 가운데 8억4천여만원이 선대로부터 물려내려온 어머니 명의의 재산』이라고 해명.최차관보는『어머니는 고향인 전주에서 혼자 사시기때문에 이번 신고내역에서 빠뜨려도 됐지만 감출 이유가 없어 포함시켰다』면서 일부의 의혹어린 눈길이 섭섭하다는 반응. ○“재테크도 과학두뇌” ○…과학기술처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된 유관기관장들의 재산랭킹 1,2위를 산하기관에서 차지하자 『과학기술자들이 하이테크 뿐 아니라 재테크에서도 뛰어난 두뇌를 발휘하는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과학기술처는 장·차관과 출연연구소장등 19명의 등록자중 10억원대 이상자 10명,30억원대 이상자 4명으로 특히 출연연구소장들이 김시중장관(6억8백57만여원대)과 한영성차관(3억2천7백여만원대)의 수준을 크게 압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박승덕원장은 69억9천6백여만원으로 공직유관단체 1위,한국기계연구원의 서상기원장은 61억9천여만원으로 2위이다.이외에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임용규원장 32억여원,한국해양연구소 송원오원장 23억원,과학기술연구원의 김은영원장이 21억5천7백여만원으로 공개됐다. 서울강남에 50억원 상당의 대지및 사무실 2백62평,67평아파트등을 보유한 박승덕표준연구원장은 약국을 한 부인이 73년 산 임야를 환지해 받은 땅등이라며 본인명의과 부인명의 부동산등 소명자료를 첨부하고 있다. 한편 과기처 관련 공무원들중 최고액인 48억1천여만원을 등록한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김호기사무처장은 서울강남구 논현동과 서초구 양재동의 3필지등 38억7천만원 상당의 대지를 소유한것으로 밝히고 있으며 금융인인 부친 김진흥씨(전 한일은행장)가 상당히 도움을 준것으로 알려졌다.
  • “생각보다 적다” 재무부직원 안도/공직자재산공개 부처별 이모저모

    ◎박찬종대표 빚 7억대 “공직자중 꼴찌”/대법원 재력가 많아 축재해명 안간힘/농림수산부 본부보단 산하단체장이 더 부유 ○부인재산 한푼 없어 ▷경제부처◁ ○…경제기획원은 장·차관과 공정거래위원장(차관급) 외에 1급이 8명이나 돼 관심을 모았으나 「알부자」는 1급에 있는 것으로 판명. 10억원 이상은 김태연차관보(18억원)와 이강우 공정위상임위원(17억6천만원)이었고,그 다음은 이경식부총리(9억2천만원),김선옥 공정위사무처장(7억2천만원),이남기 공정위상임위원(5억8천만원),김영태차관(5억7천만원),오세민 기획관리실장(5억7백만원),전윤철 공정위상임위원(4억9천9백만원),이석채 예산실장(4억9천5백만원),한리헌 공정거래위원장(4억6천만원),강봉균 대외경제조정실장(4억5천만원)등의 순. 원내 최고의 재산가인 김차관보는 본인(6억2천만원)보다는 부인 명의의 재산(11억5천만원)이 거의 두배나 됐다.이는 지난 62년 타계한 장인(대선발효 창업주)이 아들이 없어 부인에게 상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해명.그러나 이남기위원은 부인 명의의 재산이 하나도 없어 대조적. 이강우위원은 부산 용호동의 8천여평 짜리 선산만 11억원어치인데 본인은 『부산에서 손꼽는 재력가였던 부친이 물려준 것』이라고 설명. ○외부선 반신반의 ○…재무부의 경우 공개대상 8명의 평균 재산액은 9억 2천여만원으로 4명이 10억원을 넘었다.가장 많은 사람은 신선호 전 율산그룹 회장의 친형인 신명호 세무대학장으로 13억5천만원이며 가장 적게 신고한 사람은 부모가 시골에서 독립생활을 해 고지를 거부한 문헌상 기획관리실장으로 3억2천만원. 외부에서는 『재테크에 능하다는 재무부 간부들이 설마 그것 뿐이겠느냐』며 반신반의하는 표정.반면 직원들은 『그동안 근거도 없이 재무부의 업무 때문에 불필요한 억측과 오해를 많이 받았다』며 『이번 공개를 통해 「재무부」임이 입증됐다』며 안도. 백원구차관은 용인에 1억원,이근영 국세심판소장은 서울 강남에 2억원,이환균차관보는 성남에 3억원대의 땅을 갖고 있으며 홍재형장관과 신대학장은 예금·유가증권의 보유액이 각각 4억,8억원을 넘었다.임창렬차관보는 의사인 부인의 재산이 자신의 2배 가까운 7억원에 육박했으며 김용진 세제실장은 1가구 2주택으로 세 준 상도동 집값이 올라 8억원대를 기록. ○“직급에 안맞다” 평 ○…상공자원부와 공업진흥청,특허청의 1급 이상 15명 가운데 안광구특허청장이 24억4천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장석환 대전 엑스포 사무차장(21억4천만원),권혁채 특허청 차장(20억2백만원),김철수 장관(17억9천만원)의 순. 정해주 기획관리실장은 모친 재산까지 포함,2억7천만원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는데 강남구 개포동 현대아파트 55평형 전세금(1억7천만원)과 부인명의의 예금(7천5백만원)이 거의 전부로 밝혀져 직급에 걸맞지 않는(?)재산이라는 평. ○부동산 10건 소유 ○…금융계에선 이규징 국민은행장이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10억원 짜리 대지와 경기도 고양시에 11억원 짜리 사무실용 건물 등 모두 28억원의 재산을 보유,금융계 재산 공개대상 16명중 1위를 기록.반면 산업은행의 유경종 감사와 한국은행의 이창규감사는 보유재산이 각각 2억2천만원과 3억3천만원으로 하위권. 황병호산업은행 감사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과 홍은동,서초구 서초동 등에 본인과 부인 명의로 각각 2채 등 모두 4채의 단독주택과,서대문구 홍제동과 경기도 부천시,서대문구 연희동에 본인 명의로 2채의 근린 생활시설과 사무실용 건물 1채,연고지가 아닌 경기도 이천에 밭과 임야,제방 등 십수억원대의 부동산 10여건을 보유. ○…농·수·축협과 농촌진흥청·산림청·수산청등의 산하단체를 포함,재산공개대상이 모두 28명인 농림수산부는 본부보다는 산하단체 장과 간부들이 재력가인 것으로 드러나 눈길. 장관과 차관,제1·2차관보및 기획관리실장등 공개대상이 5명인 본부의 경우 허신행장관이 2억9천6백79만1천원으로 5명 가운데 재산이 가장 적었고 나머지 4명도 2억에서 7억원대였으나 산하단체에서 10억원대가 넘는 사람은 6명이나 됐다. ○“오해 풀게돼 다행” ○…70억원 이상의 재산가가 2백명이나 된다는 설에 시달려온 국세청은 재산공개 결과 간부급의 재산이 일반의 예상을 크게 밑돌자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6일 『국세청공직자 중에는 투기지역에 땅이 있는 간부는 없지 않느냐』며 『재산 공개로 일반인들의 오해를 해명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세청의 재산 공개 대상자 10명중 8명은 10억원을 넘었다. ○신고액 크게 늘어 ▷입법부◁ ○…국회의원 가운데는 무소속의 정몽준의원이 7백99억5천여만원으로 지난번 자진공개 때와 같이 최고를 기록하는 등 1백억원 이상이 10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민자당의 경우 김진재의원은 6백62억7천여만원으로 2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조진형의원 4백84억3천여만원,김동권의원 3백15억9천여만원,이명박의원 2백74억2천만원,최돈웅의원 1백78억5천만원,박박식의원 1백69억5천여만원,이승무의원 1백53억6천여만원,노재봉의원 1백24억1천여만원,남평우의원 1백14억2천만원등 1백억대 이상의 재력가가 9명이나 됐다. 이들을 포함,상당수의 민자당의원들이 지난 3월 자진공개 때보다 신고액수가 크게 늘어났는데 이는 부동산,주식평가를 규정에 따라 공시지가나 시가 등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지난번에 1백억대 이상의 재산을 공개했던 정재문의원은 부친의 재산을 제외,51억7천여만원을,송두호의원은 시가로 산정했던 부동산을 공시지가로 변경해 82억4천여만원을 각각 신고. 민주당의 경우에는 이경재의원이 63억6천7백만원으로 가장 많은 재산을 기록. 지난번 재산공개 당시 1백억원 이상을 기록했던 김옥천 국종남 김충현의원 등 재산가들은 40억∼50억원대로 신고. 이들은 지난번에 부동산,주식 등에 대한 평가액을 시가로 산정했으나 이번에는 그보다 가액이 낮은 공시지가 액면가(비상장주식)등을 적용했으며 김충현의원의 경우,모친의 재산을 신고하지 않아 액수가 줄어들었다고 설명. 반면 신정당의 박찬종대표는 지난해 총선및 대선당시의 부채를 모두 포함시켜 마이너스 7억6천8백만원으로 전체공직자중 재산규모 최하위를 기록. 박대표는 『현재 소송에 걸려있는 채무 13억원과 대선에 따른 국고부담액 반환금 추징액 3억원,방송연설비용 7천만원등 빚이 많아 적자신고가 불가피했다』고 설명. 또 민주당의 이윤수의원은 농협및 은행부채를 포함해 마이너스 1천54만원,민자당의 김호일의원도 농협부채 1천만원을 뺀 마이너스 8백만원으로 최하 2,3위를 각각 기록. ○…박헌기국회윤리위 부위원장(민자의원)은 이날 입법부 재산공개와 관련,기자회견을 갖고 『지난달 12일 재산등록이 만료된 후 윤리위가 모든 서류를 넘겨 받아 심사작업을 벌인 결과 국회의원들은 비교적 성실하게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긍정 평가. 박부위원장은 『처음 실시한 신고여서 오기등 형식상 오류가 다수 발견됐으나 정정기간동안 모두 바로 잡았다』면서 『재산총액을 줄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오기하는 등 문제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 그는 이어 『오는 12월11일까지 국회윤리위는 등록서류에 기초해 모든 대상자를 상대로 실사작업을 벌일 것』이라면서 『실사결과 누락·은닉 등의 행위가 나타나면 법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사기준과 관련,신고의 성실성 여부가 기준이며 재산형성과정에서의 문제점까지 조사하지는 않겠다는 방침. 윤리위는 오는 13일 전체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실사방법을 결정할 예정이다.박부위원장은 그러나 『실사작업에서 재산 은닉과 누락 여부를 낱낱이 밝히기는 어려운 형편』이라고 실토. ○…국회의원 2백92명분을 포함,3백25명의 재산공개목록을 담은 4백38쪽 분량의 국회공보를 제작한 국회 감사관실은 공개대상자별로 상이하게 작성한 서류의 양식과 글씨체를 통일하는 데 실무작업의 어려움이 컸다고 소개. 감사관실의 한 관계자는 『인쇄작업은 지난 4일부터 서울시내 S인쇄소에서 이틀동안 밤을 새워 제작했으며 인쇄소 간판조차 내린 채 인쇄공 80여명을 동원했다』면서 『외부에서 식사를 배달받는 과정에서 정보가 유출될까봐 일일이 검색을 했다』고 어려움을 토로. 이 관계자는 평소 공보는 1천2백부 정도를 인쇄했으나 이번에는 보도용을 포함해 3천7백50부를 인쇄했다고 귀띔. ○“의혹살 사람 있다” ▷사법부◁ ○…「청빈」과 「양심」을 제일의 덕목으로 삼아온 법원은 재산공개 결과 대법관을 비롯한 법관 1백2명(퇴직법관3명포함)의 평균 재산이 12억원으로 검찰은 물론 다른 행정부처의 평균재산액을 훨씬 능가하자 노심초사하는 모습. 대법원은 김덕주대법원장의 재산취득경위는 그동안 언론에 미리 알려져 어느정도 의혹이 해소됐다고 판단,안심하면서도 다른 법원장급과 고법부장가운데 재력가가 많아 이들의 축재과정에 의혹이 쏠릴 것으로 보고 해명자료를 배포하는 등 조기진화에 진력. 법원관계자는 이날 『재산 공개대상자가 많다보니 일부 의혹을 살만한 사람도 있다』고 밝히고 『의혹이 있는 사람은 본인에게 소명기회를 준뒤 윤리위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쳐 재산취득경위를 밝혀낼 것』이라고 귀띔. 입법부를 제외한 전 공직자가운데 법원관계자가 재산 랭킹 5위안에 3명이 당당히 포진,다른 부처의 부러움(?)을 사기도. ○예상보다 적어 의외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재산공개 결과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재산이 적어 다소 의외라는 반응들. 재판관 9명의 평균 재산은 23억원으로 법원이나 검찰에 비해 2∼3배 정도 많은 편이나 그들의 변호사 경력등을 감안할때 축소신고한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 실제로 일부 재판관들 가운데는 자동차를 3대나 가지고 있는가 하면 자식들에게 똑같이 현금 1억원씩을 나눠줘 은행에 예치시킨 사례가 있고 부동산 역시 서울 요지를 비롯 전국 곳곳에 소유,「부」를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이들의 재산이 공개되기전 항간에는 1백억원대의 재산가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으나 뚜껑을 연결과 변호사·국회의원 등 경력이 다채로운 한병채재판관이 36억원으로 수위를 차지했고 재조경력이 가장 긴 황도연재판관이 5억6천만원으로 최하위를 기록.
  • 이인영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13도 의병 규합… 1907년 “서울진공” 시도/12월말 8천여명 연합부대 편성·지휘/양주서 집결… 동대문밖 30리까지 진격/무기·병력 열세로 일제에 패배… 한말 15년의병사 마감 『동포들이여,우리는 함께 뭉쳐 조국의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우리는 일본제국의 잘못과 광란을 전세계에 호소해야 한다』 ○27세 여주서 거병 이인영선생은 1868년 9월23일 경기도 여주군 군북면 교곡동에서 부친 이현상씨와 모친 한씨의 4남매중 맏이로 태어났다. 선생은 27세인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등 압제를 강화해나가자 보다못해 유린석등과 함께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여주에서 의병 5백여명을 규합,왜군과 싸웠다.1896년 여름 고종이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의병해산령을 공포하자 선생은 할 수 없이 의병을 해산하고 경북 문경 산중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이후 일제는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군을 해산시킨 뒤 고종을 폐위하는등 더욱 오만무례한 행동을 자행,나라의 형세는 말이 아니었다.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다시 일어나고 있을 때 강원도에서 의병 2천여명을 일으킨 이은찬 이구채등이 선생을 통솔자로 모시기 위해 찾아왔으나 부친의 병이 깊을 때여서 선뜻 허락을 하지 못했다.이은찬등은 나흘동안을 유숙하며 선생의 결단을 촉구하자 선생은 마침내 허락을 하기에 이른다.1907년 7월25일이었다.선생은 즉시 원주로 가 의병원수부를 설치한 뒤 관동창의대장으로 추대됐다. 선생은 곧 국내외에 격문을 발송했다.일제는 인류의 적이므로 분쇄,조국의 독립을 찾자는 내용이었다.해외동포들에게도 격문을 보내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많은 우국지사들이 이 격문에 감동,의병으로 참가,그 수가 무려 1만여명에 달했다. 선생은 이때부터 1907년 11월까지 원주·철원등 강원 지역에서 38차례나 일군과 항전했다. ○일군 접전 38차례 선생은 시골에서 아무리 일군과 싸운다해도 서울을 일군이 장악하는 한 국권회복은 멀다고 판단,전국의 의병을 하나로 뭉쳐 서울로 진격시키는 전략을 굳혔다.산발적인 의병활동을 대규모 연합의병부대로 통합,일거에 일군을 패퇴시키려는방책이었다. 각 의병대장에게 1907년 11월 경기도 양주로 집결하라는 전갈이 전달된다.선생은 13도 창의대진소 원수부가 설치된 뒤 의병장들의 협의끝에 만장일치로 총대장으로 옹립됐다.선생도 이를 쾌히 승락하고 조직을 정비,관동군(강원도지역)6천여명과 진동군(경기·황해지역)2천여명을 축으로 연합대부대를 편성했다. 서울 진격일을 12월말로 정한 선생은 예하 각 의병대장들에게 경기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 일대에 진주토록 했다. 선생은 각 의병진에서 결사대원 3백여명도 엄선했다. 선생은 공격개시에 앞서 심복부하인 김세영에게 격문원고를 작성,서울에 가 이를 인쇄토록 지시했다.인쇄된 격문은 김세영이 직접 서울주재 각국영사관에 전달하게 했다. 선생은 이 격문에서 을사조약의 폐지와 13도 창의대진소를 교전단체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 뒤 2천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동대문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한다.그러나 이때 이미 일군은 수천명의 보병과 기마병으로 망우리 일대 군사요충지를 선점,기다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결사대원이 앞장서 싸웠음에도 연발총무기로 무장하고 정규군대 훈련을 받은 일군 앞에는 불가항력이었다.선발대 의병은 항일 일념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열악한 화살총으로는 패전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선발대는 설상가상으로 각도 의병진들이 기일내에 도착하지 않아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선생은 눈물을 머금고 망우리고개를 넘지 못한 의병대에 후퇴명령을 내리고 패전의 진용을 재정비할 무렵 부친의 사망소식을 접하게 된다.1907년 12월25일(양력 1908년 1월28일)이었다.선생은 허위군사장을 불러 군무를 위탁하고 총대장직을 사퇴한다.3년상이 끝나면 다시 합세하겠다는 뜻을 알리고 그날로 문경 고향집으로 달려간다. ○42세때 체포·순국 선생이 부친상을 치르고 있을 때 후임 의병총대장 허위는 소요산까지 퇴군하게 되었는데 일군이 산을 태워 공격하는 화공작전으로 나와 의병들은 1908년 5월14일 포천 영평에서 체포되는 신세가 됐다.의병 15년사의 대미를 장식하려던 서울공략계획은 이로써 무산돼 버렸다. 선생은 이후 시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북 상주,충북금계동으로 피신생활을 하면서 3년상이 끝나는대로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고 마음을 먹었다.그러나 부친의 묘를 성묘하는 것이 단서가 돼 1909년 6월7일 금계동에서 9명의 일군헌병에게 붙잡혔다. 일본 헌병의 가혹한 심문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견뎌낸 선생은 『당시 전황이 그러한데 어찌 부친이 사망했다고 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부모의 상을 치르는 것은 조선의 규칙인데 이를 행하지 않으면 불효요 부모에 효도하지 않는 자는 금수와 같으며 금수는 신하가 될 수 없다.그러면 그것이 바로 불충인 것이다』고 답했다. 선생의 마지막 소원은 일왕과 만나 담판을 짓는 것이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1909년 9월20일 사형이 집행됐다.42세때였다. 정부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김대통령, 취임후 첫 고향방문/조상묘소 둘러본 뒤 생가서 오찬

    ◎주민들 손잡고 불편한점 묻기도 김영삼대통령이 7일 고향마을을 찾았다.김대통령내외는 이날 경남 거제군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해군잠수함「최무선함」진수식에 참석한 길에 고향인 장목면외포리 대계마을을 방문.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후 고향을 찾았으나 대통령취임후에는 이번이 처음.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속에서 마을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마을어귀에 위치한 모친 박부연여사와 조부모등의 묘소에 차례로 성묘하고 생가에서 수행원및 마을대표들과 오찬.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묘소앞에 국화꽃을 놓은 후 묵념을 올리고 묘소를 돌며 잡초를 제거한 김대통령은 한참동안 눈앞에 보이는 마을과 앞바다를 바라보며 회상에 잠겼다. 이 묘소는 김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뒤 들러 당선통지서를 내놓고 울었던 곳이기도 하다. 김대통령은 이어 생가에서 있은 오찬자리에서도 모친 박씨의 묘소에 얽힌 내력등을 참석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그자리는 원래 할아버지묘소로 쓸 자리였으나 어머님이 먼저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님묘소가 됐다』며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자리라고 하더라』고 설명. 김대통령은 오찬자리에 참석한 윤한도경남지사에게 냉해피해에 대해 물은뒤 『최선을 다해 피해가 적도록 하라』고 당부. 이날 점심은 쌀밥과 해초된장국. 점심을 마친 김대통령은 방을 나서며 생가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가씨에게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는데 얼마나 오느냐』고 관심을 보였는데 안내원은 『주말이면 4천∼5천명이 몰려온다』고 답변. 김대통령이 도착한 마을입구에는 마을주민·관광객등 2백여명이 기다리고 서있다 대통령이 승용차에서 내리자 일제히 박수로 환영했으며 김대통령은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또 일부 마을주민들은 「소원이 있습니다」란 플래카드를 들고서있다 김대통령이 다가가자 『관광객이 몰리는데 화장실등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며 『편의시설을 설치해달라』고 부탁하기도. 대통령당선이후 관광명소가 된 이곳 생가에는 여름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하루평균 2천∼3천명의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생가입구에는 「이집이 김영삼대통령이 태어난 집입니다.김대통령은 1928년 4월4일(음력)이집에서 아버지 김홍조옹과 어머니 박부련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란 입간판이 서있었다. 마을주민 배인실씨(61)는 이날 『지난번 대통령에 당선된직후 왔지만 대통령에 취임한 후로는 처음으로 들러 참으로 기쁘다』며 『우리마을에서 대통령을 냈다는 자부심속에서 살고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생가에서 나온 김대통령은 입구에 기다리고 있던 관광객들에게 『어디에서 여기까지 왔느냐』면서 또한번 일일이 악수를 한후 1시간반동안의 짧은 고향방문을 마쳤다.
  • 힐러리 “조용한 서울나들이”/내한 1박2일… 일정에 관심집중

    ◎첫날 청와대 거쳐 고궁 관광/둘쨋날은 모친과 「자유시간」 힐러리 클린턴여사(45)의 방한 1박2일은 비교적 소박할 것 같다.그래도 그녀의 당차고,세련된 이미지 때문에 클린턴대통령에 버금가는 뉴스의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일본 방문때도 힐러리여사는 뛰어난 패션감각과 돋보인 매너로 갖가지 화제를 뿌렸고 그때마다 매스컴의 초점이 되어왔다.우리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외무부 의전팀이 밝힌 힐러리여사의 공식일정은 청와대에 클린턴대통령과 나란히 도착,방명록에 서명한뒤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손명순여사와 30분 정도 환담한다.그뒤 1시간 정도 짬을 내 청와대 주변 경복궁을 둘러본다.경복궁 관람코스는 2∼3개 정도 잡혀있다.지난번 방한한 독일 콜수상과 호주 키딩수상 부인들은 근정전∼경희루∼햐원지∼향원정 코스였다고 하나 이번에는 정확치 않다.한창 공사중인 조선조 왕비들의 정궁침전 복원현장도 들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관람이 끝나면 국회로 이동,클린턴대통령과 함께 여·야당지도자들을 만나고 이만섭국회의장 부인과 20분 동안 의장공관에서 별도의 환담을 나눈뒤 클린턴의 연설을 경청한다.그리곤 청와대 만찬 참석을 끝으로 공식행사를 모두 마친다. 11일의 비공식 일정은 거의 알려진게 없다.주한미사관이 주관할 뿐 아니라 비공식 행사로 경호상 극비사항이기 때문이다.힐러리여사도 『일요일인 11일은 자유시간으로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따라서 클린턴대통령이 전방 미군부대를 방문하는 동안 자신은 어머니 로댐여사와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된다. 지금까지는 이날 아침 서울 정동의 모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본뒤 어머니와 함께 창덕궁의 비원을 둘러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조선조 고유 정원인 비원관람은 미리 일반에 공개되면서 다소 유동적이다. 나머지 3∼4시간은 일본에서 처럼 소핑시간으로 잡혀 있다.장소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주한미군들과 외국 여행객들이 즐겨찾는 용산 이태원상가가 유력하다.이러한 일정 가운데 경복궁관람과 교회예배 모습은 일반에 비교적 생생히 전해질 전망이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나철선생(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을사5적 처단 실패후 대종교 창시/32세때 관직 버리고 유신회 조직… 항일/합방후 “민족정기수호” 단군신앙 포교/“암흑시대 겨레의 횃불”… 독립운동 정신적 지주로 대종교 창시자인 나철 선생은 1863년 12월 2일 전남 낙안현 남상면 금곡리(현 보성군 벌교읍 금곡리)에서 부친 나용집씨와 모친 송씨 사이에서 3형제중 둘째아들로 출생했다.족보명은 두영이었으나 인영으로 개명한뒤 대종교 창교후 철로 바꿨다. ○전남 보성서 출생 1902년 29세때 문과에 장원급제한 선생은 32세때 징세서장으로 있다가 일제의 침략야욕이 내정간섭으로 나타나자 1905년 5월 일제부패관리의 실상을 좌시할 수 없다며 관직을 사임했다.그뒤 강진출신 오기호지사등을 중심으로 비밀결사인 유신회를 조직,구국운동에 앞장선다.그해 미국 포츠마츠에서 노일전쟁의 종전을 위한 강화회담이 열리게 되자 우리의 입장을 미국조야에 호소하기 위해 도미할 것을 결심,미국행을 시도했으나 일본측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6월 유람을 빙자,일본 도쿄에 가게 된다.거기서 그는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가 조선정부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특별전권대사로 조선에 파견된다는 보도를 접하고 그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진정한 평화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촉구했으나 회신을 받지 못하자 일왕궁성 앞에서 3일동안 단식하며 항쟁하기도 했다.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을사5조약이 체결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오기호와 함께 『매국노를 모두 죽이면 국정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며 칼 2자루를 행낭에 감추어 11월30일 귀국한다.이듬해 1월 선생과 오기호는 학부대신리완용 외부대신박재순 군부대신리근택 내부대신리지용 농상공부대신권중현등 세칭 「5적대신」을 일시에 처단할 것을 계획했다.동지들을 규합,자금도 모으고 권총 8정도 구입했다.각국에 보내는 공문과 내외국민들에게 보내는 포고문도 작성했다.첫번째 거사일을 음력 정월 초하루(2월13일)로 정하고 5적이 신년하례를 드리기 위해 입궐하는 기회를 이용,처단하려 했으나 결사대들이 제때에 도착하지 않아 실패했다.이후 4차례에 걸친 처단시도는 이런저런이유로 뜻대로 되지 않았다.체포된 동지 한명이 고문에 못이겨 거사전말을 실토하면서 동지들이 차례로 붙잡혀가자 선생은 제발로 일제 수사기관에 출두,1907년 7월3일 유배 10년형을 받는다.그는 지도로 유배지가 결정돼 헌병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29일 인천을 출발했다.그러나 운이 좋았던지 유배 4개월여만에 오기호등과 함께 특사로 풀려난다. 1910년 8월 경술7조약 체결로 일제는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완전히 빼앗았다.너무도 치욕적인 조약이어서 선생은 새로운 구국운동과 민족중흥의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나라가 이 지경에 이른 원인은 무엇보다 오랫동안 사대사상에서 비롯된 교육의 잘못에 있음을 깨닫게 됐다.선생은 흔들리는 민족전통정신을 바로잡기 위해 단군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작업에 착수했다.단군의 정신으로 민족고유의 종교역사를 완성하고 민족정기를 새롭게 하여 보국안민과 제인구세를 기해 보자는 의도였다. 선생은 1909년 정월 15일 평소 뜻을 같이 하던 오기호등 수십명과 함께 서울 제동 취운정에서 제천의식을 갖추고 단군교를공식 종교로 공표하고 통상의 건국기원에 1백24년이 앞선 4366년을 개천의 기념으로 삼았다. ○초대교주로 추대 모든 교인들로부터 교주인 도사교로 추대된 선생은 1910년 7월30일 칙령을 발표,그때까지 한얼교 또는 천신교로 불리던 단군교를 대종교로 개명하고 대종교의 창시자가 된다.대종교는 이후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구심점이 돼 급속도로 발전한다.선생은 대종교의 도사교가 되면서 이름을 인영에서 철로 바꾼다. 선생은 경술7조약이후 일제침략세력을 몰아내는 일이 어렵게 되자 성지순례의 길을 나서게 된다.그 옛날 단군이 남긴 손길과 발자취를 몸소 알고 역사와 교훈을 깨달아 겨레의 나아갈 길을 믿아보려고 한 것이다.두만강을 건너 백두산 아래의 중국 동삼성에 이르러서는 대종교의 확대포교를 구상하게 된다.이 곳이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이 살던 곳이었고 수많은 애국독립지사가 정착하고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선생의 노력으로 대종교는 이 곳에서 크게 번창했다.선생은 한편으로 교인과 교포들의 자녀교육을 위해 교육시설도마련,민족교육을 실시하면서 독립정신을 고취시켜 나갔다. 선생의 이같은 행동은 일제의 대종교에 대한 탄압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국내에서는 탄압이 더욱 심해져 마침내 선생은 총본사가 있던 화룡면 청파호에서 귀국을 서두르게 된다.당시 일제는 신포교규칙에 의한 종교등록을 강요하고 있었는데 대종교에서는 완벽한 서류를 냈으나 군소종교단체는 모두 등록을 받아주면서도 대종교의 등록서류는 신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반송했다.가증스런 종교탄압이었다.선생의 신변도 위협해왔다.창교이래의 최대의 시련이었다. ○구월산에서 순교 선생은 순교와 수도의 길중 택일을 위해 매일을 기원했다.이윽고 구월산 삼성사 참배계획을 공지하는데 이는 단군 성적지를 믿아 순교하려는 결단이었다.1916년 음력 8월4일 참배길을 떠나 이틀뒤 삼성사에 도착한다.8월 한가위 동네 교인들과 제례를 올린 선생은 『오늘부터 3일간 절식수도에 들어갈 것이니 절대로 문을 열지 말라』고 방문을 봉하게 하고는 순교의 길을 택한다.다음날 제자들이 선생을 믿았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여러 유서들이 나왔으나 모두 죽음으로써 침략자들에게 항쟁한다는 뜻이었다.선생의 나이 54세. 정부는 이같은 선생의 항일공훈을 추앙하여 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파격의 창조력이 천재 낳는다/미지,과거와 현대의 천재 비교분석

    ◎기발한 상상력으로 영감받아야 가능/“학문 전문화 시대엔 탄생 어렵다” 견해도 위대한 정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또 현대에는 왜 아인슈타인이나 프로이트,피카소같은 천재가 출현하지 않는가.뉴스 위크지는 천재에 관한 특집기사를 싣고 에디슨,피카소,고호,프로이트등 과거의 천재와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와 미 최대의 부호 샘 왈튼,체스 챔피온 조지 자모라,바이올린의 신데렐라인 한국인소녀 세라 장(장영주·12)등을 현대의 천재 또는 신동이라고 소개하면서 과거와 현대의 천재를 비교 분석했다. 1904년 「영국의 천재연구」라는 저서를 출판한 해브록 엘리스는 대부분의 천재들은 30세 이상의 부친과 25세미만의 모친에서 태어나며 어려서는 몸이 매우 약한 것이 공통점이라고 주장했다.또 다른 학자는 코페르니쿠스와 데카르트,갈릴레오,뉴턴등은 독신으로 생애를 보냈으며 퀴리부인,찰스 다윈은 어머니를 일찍 잃고 디킨스는 아버지가없는 결손 가정에서 자랐으며 교회를 정기적으로 다니지않은 공통점이 있다고 밝혔다 . 수 많은 학자들이 나폴레옹과 모차르트,티티안,다윈등 위대한 학자와 사상가·예술가등 위인의 기질과 성품을 연구해왔으나 비밀은 아직 풀리지 않고있다. 하버드대학의 교육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위대한 정신」이라는 저서에서 아인슈타인,프로이트,피카소,스트라빈스키,엘리어트,간디,마사 그레함등 7명의 천재들은 모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창조 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어느 과학자는 『천재는 단순히 재능이 있는 사람보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영감을 받아 복잡한 현상의 결합에 성공한 사람』이라며 다른말로 하면 천재와 우연은 동의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가드너는 저서에서 아인슈타인은 그의 물리학이론을 연구하면서 머리속에서 밝은 빛을 보고 있었으며 엘리어트는 말을 배우면서 리듬을 익히고 피카소는 숫자에서 형태를 느끼고 프랑스의 현대음악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은 소리의 색깔을 심령으로 볼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술과 과학에서 위업을 남긴 천재들은 창작을 위한 강박관념에 일생동안 쫓기는 듯한 생활을했다. 프로이트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영감을 찾아 방황하기도 하고,바하는 병들고 지쳤을 때에도 매주 칸타타를 정기적으로 작곡하고,엘리어트는 「황무지」를 쓰면서 수 많은 파지를 내곤했다. 단테는 9살에 시를 쓰고 베토벤은 13세에 소나타를 작곡하고,롬브로소는 12세에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말하고쓰고 저술을 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그러나 『현대와 같이 학문이 세분화·전문화 되어가는 시대에는 50년전과 같은 천재 과학자가 태어날수 없다』고 주장하고 또 『천재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 평등주의가 계속되는 한 예술분야에서도 천재는 태어날수 없다』고 사회를 진단한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윤세주열사)

    ◎의용군 지휘… 중국 화북서 일군과 전투/중학때 연무단 조직,개천절시위 주도/일경수배 피해 망명… 조선의열단 결성/독립단체 규합… 40만명과 교전중 장렬한 최후 윤세주선생은 1901년 6월24일 경남 밀양군 부북면 강천리에서 부친 윤희규선생과 모친 김경이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성품은 겸손했으나 일본 식민지통치에 대해서는 온 생애를 통해서 저항할만큼 애국심이 깊었다. 윤선생은 국민학교때 일왕 출생 기념일에 받은 일장기를 변소에 버릴만큼 일본을 증오했다. ○독립선언서 낭독 그는 밀양의 사립 동화중학에 입학하면서 항일 인사였던 김홍표교장의 영향을 받아 항일 정신을 키워갔다. 윤선생은 김교장의 애국사상에 감화,학교내의 비밀결사인 연무단을 조직했다.연무단은 당시 금지됐던 개천절 기념행사를 갖고 시위를 벌였다.이 사건으로 동화중학은 폐쇄됐다.그러나 윤선생의 가슴에 반일·배일사상은 영원히 남게됐다. 1919년 3월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한 그는 만세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 동지들을 규합했다.13일 하오1시쯤 수천명이 모인 고향장터에서 그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동지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그를 그냥 둘리 없는 일제의 당장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일본경찰의 수배를 피해 그는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일본은 그해 4월14일 부산지법 밀양지청에서 궐석재판으로 윤선생에게 징역1년6월을 선고했다. 만주로 망명한 그는 요령성 유하현에있는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갔다. 신흥무관학교는 당시 국내의 독립운동 비밀단체인 신민회의 결의에따라 이회영형제가 세운 독립군양성 무관학교로 그는 이곳에서 정식으로 군사훈련을 받았다.그는 11월9일 죽마고우 김원봉등 13명의 학생들과 함께 조선의열단을 결성했다. 구체적인 항일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의열단은 조선총독부등 일제 침략기관의 파괴와 원흉들을 살해 하기위한 계획을 세우고 폭탄투척자를 물색하게됐다. 19세의 그는 신철휴 윤치형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했다. 그러나 윤선생일행은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국내동지 50여명과 함께 체포됐다. 5년4개월의 감옥생활을하고 27년 출옥한 그는 중외일보 기자·경남주식회사사장으로 위장,독립운동에서 손을 뗀 양 조용히 지내다가 32년 여름 다시 중국 남경으로 망명했다. ○폭탄투척자 물색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방법도 세련되어갔다.그는 『과거에는 열정과 용기만을 갖고 싸웠으나 앞으로는 혁명적 인생관과 과학적 혁명이론으로 재무장, 정확한 혁명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그는 32년 10월20일 중국군사위원회 간부훈련단 제6대(약칭 조선민족혁명간부학교)에 입교,33년 4월21일 1기로 졸업했다.독립운동전선의 행동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다. 독립운동단체들은 연합준비위원회를 구성한뒤 해외독립운동단체들을 참가시켜 그해 11월10일 한국대일전선통일연맹을 결성했다. 그는 이 단체에서 안병조·김두봉·김규식·윤기섭·최동오 등과 함께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됐다. 이 단체는 33년 7월5일 독립운동가들이 소망하던 민족혁명단을 탄생시키는 모체가 됐으며 그는 이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그는 또 민족혁명당이 일군에 무력으로 대항하기위해 만든 중국과 제휴해 만든 조선의용대에서도 핵심부서인 편찬위원회 주간이 돼 선전공작 활동을 벌였다.그러나 독립운동의 효과는 호전되지 않고 일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어갔다.독립운동을 적극 협력해주던 중국 국민당 정부도 38년 10월25일 무한이 일본군에 함락되면서부터는 중공군과의 내전에만 심혈을 쏟았다. 그는 직접 조선의용대 지대를 이끌고 중일전투에 참가했다.41년 4월에 그는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황하를 건너 화북을 향해 북상해갔다.그는 마침내 태행산 항일 근거지에 도착, 조선의용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칭하고 중공 8로군과 함께 항일 무장활동에 열중했다.그는 모든 대원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지휘자로 존경을 받았다.42년2월 일본군은 4만명의 군대를 동원,태행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5월에는 20개사단 40만명의 병력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해왔다.조선의용군은 불과 3천∼4천명에 불과했다. ○“끝까지 투쟁” 유언 일본군은 전투기와 전차까지 동원,본격적인 군사작전을 폈다.5월29일 항일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조선의용대에 탈출로를 확보하고 탈출할 것을 명령했다.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양쪽 산봉우리 사이의 탈출로를 확보하기위해 두 산봉우리를 조선의용군이 공격,전군이 탈출할 때까지 사수하기로 했다.작전개시 5시간만에 탈출로를 확보했다. 그는 이 전투에서 적탄을 맞고 쓰러졌다.3일 뒤 동지들이 중상을 입고 쓰러진 그를 발견했으나 이미 중태였다.6월3일 그는 석굴에서 숨을 거두었다.『단결해서 적을 사살하기 바란다』는게 동지들에게 남긴 그의 유언이었다.선생의 나이 41세였다. 선생이 전사한 뒤 1주년이된 43년 6월 중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군은 합동으로 윤선생의 추도회를 가졌다.대한민국정부는 80년 윤세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한화그룹회장 모친·누이 형제소송 증인으로 구인

    ○…서울민사지법 합의17부(재판장 이진영부장판사)는 31일 한화그룹 김승연회장(41)의 동생 호연씨(38·전한양유통사장)가 승연씨를 상대로 낸 상속무효 및 상속재산 반환 청구소송 7차공판에서 『호연씨가 증인으로 신청한 어머니 강태영씨(66)와 누이 김영혜씨(45)가 3차례에 걸쳐 증언을 거부,재판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을 상대로 구인장을 발부,강제구인키로 결정. 재판부는 『이들의 부친이 고 김종희회장의 유언에 따른 재산분배과정을 입증할 수있는 유일한 증인이 두 모녀밖에 없는만큼 증언을 위한 구인이 불가피하다』고 설명.
  • “재산순위 꼴찌”가 영광인 청빈4인/김 대통령 측근인사가 3명

    ◎아파트­예금 3천만원에 불과/이원종 공보처차관/오랜 재야생활 장서합쳐 2억/김도현 평통차장/모·처명의 아파트 2채가 전부/최기선 인천시장/빌라포함 1억… 차관급 최하위/강신화 경남교육감 차관급 재산공개 결과 평균재산이 10억7천만원선인 것으로 밝혀졌으나 일부 공직자들은 서민수준인 1억∼2억원대로 나타났다. 차관급 1백25명 가운데 최하위그룹에 속한 청빈 공복 4인의 생활역정은 축재비난의 와중에서 화제가 되고있다. 시·도교육감의 평균 재산이 8억3백만원으로 나타난 가운데 강신화경남도교육감(52)은 모두 1억1천8백만원의 재산을 공개,차관급 1백25명 가운데 「재산보유」최하위를 기록했다. 경남 진주시 상대동 대림빌라(45평형)1채 1억원과 부인의 투자신탁정기예금 1천2백만원,장남소유 자동차1대(5백만원),며느리 이미정씨(25)의 보석반지 1백만원등이 재산의 전부.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의 유산도 물려받은게 없었다는 강교육감은 26년간 교직의 외길을 걸어오다 지난 91년12월 민선교육감에 선출되자 교육발전에 전념하기위해그가 직접 운영하던 석재대리점까지 정리하기도 했다. 두번째로 재산이 적은 인사인 김도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차장은 재야에 오랫동안 몸을 담아온 사람이다. 6·3세대출신인 김차장은 서울 성동구 중곡동에 3억8천만원상당의 다세대주택과 지구당사 임대보증금 3천5백만원을 갖고 있으나 대출금과 다세대주택 전세금등 채무를 빼면 2억1천2백만원이라고 밝혔다. 김차장은 재산을 공개하면서 한국화·유화·판화 각1점을 6백만원으로,장서를 구입가격기준으로 1천만원으로 소개했다. 재산순위가 꼴지에서 3번째인 최기선인천시장은 79년 당시 김영삼신민당총재 공보비서로 정계에 몸담은 이래 줄곧 이재와는 거리가 먼 민주화투쟁이라는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최시장이 공개한 재산은 자신명의로는 부천지구당사 전세금 5천만원과 승용차 뿐이고 가족재산도 부인명의로 된 부천 극동아파트 34평형(1억5백만원),모친명의의 인천 신동아아파트 25평형(6천만원)이 전부. 그나마 부인소유 아파트는 부인 최영숙씨(47)가 직장생활을 통해 저축한 돈으로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공개액수 또한 시가에 가까운 것이어서 꺼릴것이 없는 청백리다운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최시장은 재산공개후 『이번 재산공개가 끝이 아니고 시작인만큼 공직을 떠날때에도 똑같은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공보처는 이원종차관이 2억3천여만원의 재산으로 끝에서 4번째인 것으로 나타나자 이차관이 김영삼대통령의 핵심측근이었던 만큼 재산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임을 예상한듯 덤덤한 분위기. 공보처직원들은 특히 이차관이 자신소유의 아파트외에 부동산이 없고 부인과 자녀들의 재산도 예금과 주식등 3천5백여만원에 불과하자 너무 「싱겁다」는 반응.
  • 러 헌재,「비상통치」 위헌 판결/의회서 옐친탄핵절차 착수

    ◎보안부대 모스크바배치/대통령공보실/“「비상통치」 위반땐 징계”/빠르면 주말께 인민대회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법질서 유지임무를 전담하는 1만명이상의 병력으로 구성된 보안부대인 제르진스키 사단의 모스크바 배치령이 시달돼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그동안 혼미를 거듭해온 러시아정정은 러시아 헌법재판소가 23일 보리스 옐친대통령의 비상통치선언을 위헌으로 결정한 것을 계기로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러시아 헌법재판소는 이날 옐친대통령의 비상통치선언이 헌법위반이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헌법재판소 대변인이 발표했다. 이 대변인은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비상통치는 러시아 연방의 보전에 대한 진정한 위협이기 때문에 연방조약과 헌법의 일부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은 발레리 조르킨 헌법재판소장과 유리 루트킨 재판소 서기에 의해 서명됐으며 이 결정내용은 크렘린에 전달됐다고 이 대변인은 전했다.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위헌결정에 반대표를 던진 3명의 위원중 한사람인 에르네스트 아메디스토프위원은 옐친의 결정은 헌법의 7개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로 러시아 최고회의는 「기술적으로」 인민대표대회 특별회의를 소집해 탄핵 절차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러시아법에 따르면 탄핵표결은 인민대표대회 대의원 1천여명가운데 3분의 2이상의 승인을 얻어야 된다. 그러나 러시아 대통령 공보실은 성명을 통해 옐친으로부터 권한을 박탈하려는 어떠한 기도도 불법적인 것이며 이는 새로운 헌법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신임국민투표가 실시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크렘린측은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지난해 12월 옐친과 인민대표대회간 합의사항이 대통령의 권한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헌법개정안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러시아최고회의는 이날 옐친대통령에 대한 탄핵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긴급히 열렸으나 17분동안의 토의끝에 휴정,24일 상오10시 (한국시각 24일 하오4시) 속개하기로 했다. 회의가 휴정된 것은 이날 거행된 옐친대통령의 모친 장례식과 관련,조의를 표시하고 비상통치선언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원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한편 옐친대통령은 러시아관리들이 대통령 비상통치를 지지하지 않거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해임될 것임을 경고했다고 대통령공보실이 발표했다.
  • 상위랭커는 대부분 부동산부자/“정치개혁 초석” 재산공개 이모저모

    ◎1백61명 총액 4천억… 평균 25억/신고준비과정서 몰랐던 땅 발견한 경우도/민주계보다 민정·공화계가 부유 민자당 의원 및 당무위원 1백61명의 재산이 일괄 공개됐다.이들의 자발적인 재산공개는 김영삼대통령의 정치권개혁의지와 맞물려 향후 정치권의 향방과 관련,많은 추측과 분석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 우리 정당사에 있어 초유의 일로써 「깨끗한 정치」실현을 위한 초석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앞으로 민주당도 이에 뒤따를 것으로 보여 그 파장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재산공개는 「신뢰성과 성실성」이란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일부 의원들은 재산형성과정과 국민정서와의 괴리로 예기치 않은 홍역을 치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전국에 산재한 엄청난 규모의 부동산,10여채가 넘는 주택 보유,실제가격과의 현저한 차이 등이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공개결과 민자당의원의 평균재산은 25억4천8백만원으로 나타나 이미 공개된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평균치 5억5천만원,장관의 10억3천만원보다 2·5∼5배나 높은 수준. 이들 민자당의원 및 당무위원의 총재산은 4천1백3억여원이다. 민자당 재산가들의 자산은 대부분 부동산이 밑받침,1백억원이 넘는 의원 8명중 이승무의원을 제외하고는 재산의 주종이 부동산. 때문에 공시지가와 시가와의 차이를 고려할때 이들의 실제 재산은 신고액을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중론이다. 공통적인 특징은 대부분의 의원들이 골프장·헬스클럽 회원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민주계의원들이 10억대에 못미치는 하위그룹을 형성한 반면 민정·공화계의원중에 재력가가 많다는 점이었다.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의원은 예상대로 김진재의원(부산 금정).김의원은 본인의 신고액 1백92억8천만원중 주식등 17억5천만원을 제외한 전액이 부동산으로 밝혀져 「김의원의 땅을 밟지 않고 부산엘 들어설수 없다」는 소문을 사실로 입증,부친과 장남 소유 부동산까지 합치면 총 신고액 2백77억4천9백만원중 무려 2백54억여원이 부동산으로 밝혀졌다. 2위는 쌍마섬유 등을 소유하고 있는 김동권의원(의성)으로 서울·대구·인천·속초등 전국에 1백59억3천여만원 상당의 부동산이 있다고 신고.그러나 삼성전자·대동은행·서울신탁은행 등의 주식을 액면가로 신고하는등 실재산액수는 이보다 많을 것이라는 것이 주변의 이야기이다. 상지학원 이사장 김문기의원은 학원재벌답게 전국 곳곳에 부동산을 소유,본인의 이름만으로도 서울 인사·숭인·서초·대치동과 강릉등 전국 33곳에 91필지 3만6천여평의 대지와 1백46만㎡의 임야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1개의 빌딩과 9채의 주택을 보유하기도. 경월소주 회장인 최돈웅의원(강릉)의 경우는 부동산 명세만 모두 7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1백3필지의 대지와 임야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다른 의원과 달리 평가기준·취득시기를 명시하지 않았다. ○…재산총액의 39위에 머물렀지만 전국구인 김영진의원의 부동산도 만만치 않은 수준.대부분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긴 하나 총자산 신고액 25억5천9백만원중 부동산이 23억원이나 차지. 김의원은 이번 재산파악 과정에서 부친명의로 아직까지 남아있던 원주군 귀대면 일대의 2필지 3천여평의 땅을 새로 발견하는 「행운」을 건지기도 『모르고 있다 새로 주운거나 마찬가지』라며 기뻐했다는 주위의 전언. 김의원처럼 재산평가액이나 보유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이번 공개과정에서 뒤늦게 알게된 의원들이 많은 듯. 김종인의원의 경우는 모친이 아들 딸을 위해 몰래 사둔 과천의 26평 아파트를 발견,실소를 금치못했다는 후문이며 최병렬의원은 지난 75년 기자시절 사둔 부천 역곡의 2백평 땅이 최근 상업지구로 변경되는 바람에 평가액이 18억원이나 되자 『나도 이제 재력가』라고 자위. ○…이승무의원(점촌·문경)은 봉명그룹 창업주인 고 이동령회장의 3남인 관계로 소유재산이 주로 주식으로 이뤄져 있다.본인과 부인명의의 도투락·봉명산업등 주식수가 모두 1백28만7천8백49주에 액면가 기준으로만 1백12억여억원. 이의원을 제외하고는 1백억원대이상의 재력가들은 대부분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정해영 전국회부의장의 장남으로 1백29억원을 신고한 정재문의원(부산진갑)은 본인(37억원)보다 부친의 재산(49억원)이 더 많고 특히 이들 부동산을 40∼60년대에 구입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비고란에 구체적인 구입시기를 일일이 명기. 김영삼대통령과 경남고동기이자 오랜 후원자이기도 한 송두호의원(부산 강서)은 병원부지를 비롯한 부산일대의 부동산이 71억여원. 조진형의원(인천북갑)은 예상밖으로 부동산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는데 신고액 1백24억원중 대부분이 부동산이라고. 조의원은 이로써 「인천갑부」라는 닉네임을 달게 됐으나 평소 그의 씀씀이를 지켜본 동료의원들은 『역시 인천 짠물』이라고 한마디씩. 인영제약 경영자인 김인영의원(수원 권선갑)은 소문대로 짭짤한 부동산을 소유,모두 66억2천여만원을 신고. 전직총리인 노재봉의원은 마산갑부이자 나전모방 경영주였던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이 많아 당당 재산랭킹 9위를 기록. 재벌기업의 사장출신의원들도 「이재력」이 출중한 탓인지 거의 모두 고액순위에 랭크. 현대건설회장 출신의 이명박의원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소재 대지(39억여원으로 신고)를 포함해 주로 부동산으로 모두 62억3천만원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의원은 특히 실형인 이상득의원(영일·울릉)의 33억7천만원을 훨씬 상회,재산에 관해서는 형을 압도한 셈. 쌍용그룹부회장 출신의 김채겸의원(울산군)은 38억여원을 신고했으며 유진실업회장인 이현솔의원도 57억6천여만원의 재산을 공개했다. 또 대산건설사장출신의 오장섭의원(예산)은 예상보다 적은 38억7천만여원을 신고했으며 전국 도급순위 60위권안에 드는 알짜건설업체인 장복건설의 실소유자로 알려진 배명국의원(진해·창원)은 겨우 29억7천만원이라고 자신의 재산을 공개,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고 있다. 일동제약 부사장출신인 정필근의원(진양군)은 12억원에 이르는 자택을 포함,모두 29억여원의 재산을 공개했다. ○…전직경제각료출신의원들도 모두 중상위그룹에 속해 있는데 노태우전대통령의 동서이자 상공부장관출신인 금진호의원(영주·영풍)이 모두 38억1천만원으로 으뜸을 차지했다. 그뒤로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낸 이승윤의원(인천북을)과 나웅배의원(서울 영등포을)이 각각 28억6천만원과 25억5천만원으로 2,3위를 기록했다. 청와대경제수석출신인 김종인의원은 총17억7천여만원을 신고했고 상공부 상역국장을 지낸 김기배의원(서울 구로갑)은 12억8천만원의 재산을 공개했다. 이와함께 은행장출신인 정재철의원(속초·고성)은 총23억1천만원을 신고,소문과는 달리 갑부가 아님을 입증. 또 금융계의 황제로 알려진 이원조의원은 서울 연희동 대지 1백평짜리 주택이 미성년자인 손자 명의로 돼있고 자신은 별도 아파트를 소유하는등 총26억6천여만원의 재산을 공개.이의원은 그러나 장·차남,며느리 명의로 전국 곳곳에 부동산을 소유해 곱지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가장 빈한한 의원은 김호일의원(마산 합포)으로 한달에 1백만원씩 공제키로하고 보증금 1천만원에 여의도 27평짜리 사글세아파트를 얻었으나 이미 5개월을 살아 5백만원만 남았으며 여기에다 쏘나타 승용차월부금 12개월분 8백만원을 합쳐 총재산이 1천3백20만원이라고 공개.또 농민의원인 박경수의원(횡성·원주)은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는 관계로 사육중인 한오 22마리와 축사·농가·지프등을 모두 합쳐 6천5백여만원을 신고했다. 1억원미만인 이들 두의원외에 광산노조위원장출신인 유승승의원(태백)은 자택과 승용차 등을 포함해 모두 1억8천만원을 공개했다. 때문에 당내에서는 이들 세의원을 가리켜 「빈민의원 트리오」라는 별칭이 회자되고 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5)

    ◎길림시절:4/「공산서적 탐독」의 허구/“「국가와 혁명」 「자본론」 등 27년초 탐독” 주장/중국어번역판 29년께야 나온 사실과 상반/「타고난 공산주의자」 행세하려 날조 『길림에서의 나의 활동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더 깊이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나는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보다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의 저작들을 탐독하는데 더 열중하였다.당시의 중국은 대혁명기여서 소련이나 일본에서 발간되는 좋은 책들을 많이 번역출판하였다』 ○만주반입 시일 걸려 회고록에서는 김일성의 길림시절이 이상과 같이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헌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쓰고 있다.그는 이 시기 「공산당선언」 「자본론」 「국가와 혁명」 「임금노동과 자본」등 고전과 그 해설서,그리고 고리키의 「어머니」 로신의 「축복」 「아Q정전」 기타 「철의 흐름」「압록강가에서」 「소년방랑자」같은 혁명적인 소설을 많이 읽었다는 것이다. 물론 중학생시절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책 읽는데에 눈을 뜨는 시절이므로 김일성도 책은 일정하게 읽었을 것이다.그러나 적어도 이상의 책들은 거의 읽지 않았다.이러한 책은 길림에서는 구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당시 중국은 대혁명기여서 번역물이 많았다고 쓰고 있지만 중국혁명은 먼저 화남에서 시작되고 그것이 화중·화북으로 번졌다.따라서 좌익출판물도 맨처음은 광동,그 다음에 상해,그리고 북경과 같은 순서로 출판되어 나갔다.그러한 출판물이 만주에 반입되더라도 그것은 심양,하얼빈에 먼저 들어가고 이보다 오지인 길림에는 그후에야 반입되었다. 이러한 상식을 안 다음에 회고록의 선전을 분석해 보자. ㈀김일성은 길림에 온 27년에 「공산당선언」 「자본론」 「국가와 혁명」 그리고 「자본주의 최고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즉 「제국주의론」을 읽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78년의 「불멸의 자욱을 따라」부터 그렇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육문중학교에서 그가 직접 배웠던 공산주의자 상월은 상해에서 길림에 온 것이 29년 초였고 그가 휴대한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영문판이었다는 것,이 영문판을 중학생용으로 쉽게 풀어서 비밀소조에서 강의한 인물은 김일성이 아니라 상월 자신이었다는 것을 밝힌 바 있었다. ○상해서만 부분 출판 그런데 이번에는 레닌의 이 책을 일부러 그의 「독서목록」에서 빼고 있다.그 이유는 여러가지 추측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겟다. ㈁필자는 앞에서 화성의숙 시절에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는 회고록의 주장에 대하여 이 시절 화전에서는 그러한 책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는 점을 들어 그것이 헛된 주장임을 밝혔다.그런데 상월은 길림에 올 때 「제국주의론」이외에 다른 공산주의 서적을 가져온 흔적이 없다.이 점을 보면 김일성은 29년에 가서도 이 책은 읽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크게 된다. ㄷ)필자는 일찍이 중국에서 자본론이 부분적으로나마 번역출판된 것은 1930년 상해에서 있은 일이었고 따라서 26년의 화전이나 27년의 길림에서 김일성이 이 책을 읽었다는 말은 성립이 안된다고 비판하였다. 그런데 김일성은 이번에는 이러한 자기 주장을 대폭적으로 바꾸어 버렸다.자기가 동대탄에 숙소를 정하고 있을 때,와서 같이 생활한 박소심이 일본어판 자본론을 읽고 있다가 자기에게 해설해 주었다고 변경한 것이다. 일본문헌에서는 박소심은 조선공산당 재건파의 하나였던 서울­상해파의 중진으로 되어 있다.김일성으로 보면 「종파」였던 박소심이 과연 그와 동숙하고 있었겠는가부터가 의문이 되지만,하여간 그는 이런 말을 끄집어 냄으로써 오히려 자본론을 자기가 읽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한 셈이 되었다. ㄹ)레닌의 「국가와 혁명」은 27년,광동의 영동민국일보 부간 「혁명」에 이춘번(가백년)이 번역,연재하기 시작하였고 그 단행본은 29년에 출판되었다.김일성은 고리키의 「어머니」도 읽었다고 하는데 이 책 역시 29년 10월에 심단선(하연)이 「모친」이란 이름으로 번역하여 상해에서 출판하고 있다. 이런 책을 길림에서 27년에 읽어치웠다는 주장은 무식한 김일성이나 그의 아첨꾼인 어용작가들 이외는 아무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ㅁ)이 밖에 이번 회고록에서 김일성이 읽었다고 새로 선보인 책이 있다.「임금노동과 자본」「철의 흐름」「축복」「아큐정전」「압록강가에서」「소년방랑자」 등등이 그것인데 일일이 고증하지 않더라도 읽지 못하거나 읽지 않았던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재경분자이었을뿐 김일성은 이상과 같이 당시 중국에서는 번역되지도 않았던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을 러시아어나 일본어가 아닌 「중국어 번역본으로 읽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그것도 그가 길림에 있지도 않았던 27년 상반기,「길림에서 혁명활동을 벌이는 첫 사업」으로 이러한 독서를 했다는 것이다. 그가 이러한 조작을 일삼는 것은 그 이유가 뻔하다.그는 당시 좌경화되어 있었지만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그런데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던 그는 지금 자기가 타고난 공산주의자처럼 행세하고 있다.이 때문에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헌을 읽었다고 내세움으로써 당시의 자기를 「공산주의자」로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1」207면 ②평전 131면 ③평전 129면 ④평전 217면 ⑤평전 1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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