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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타임 키썸 “이상형은 나쁜 남자” 남자친구 사진의 진실은? ‘충격’

    파워타임 키썸 “이상형은 나쁜 남자” 남자친구 사진의 진실은? ‘충격’

    래퍼 키썸이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해 화제다. 12일 방송된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 뭘 해도 되는 초대석 코너에는 가수 정동하와 래퍼 키썸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파워타임 DJ 최화정은 “연관 검색어에 키썸을 치면 남자친구 사진이 뜬다는데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키썸은 “너무 억울하다”며 “제가 남자처럼 머리를 다 올리고 모자를 쓴 사진인데 다들 남자친구로 오해 하더라”면서 남자친구가 아닌 본인 사진임을 밝혔다. 이에 파워타임 최화정은 “그럼 한 남자를 위한 곡이 있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고 키썸은 “짝사랑 중에 노래를 만들었는데 그 분이 눈치가 없더라. 아직도 본인을 위한 곡인지 모른다”고 답했다. 이상형에 대한 질문에는 “옛날엔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요즘 이상형은 나쁜 남자”라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비디오스타 김숙, 폭풍 자신감 “박나래-안영미 시대 온다”

    비디오스타 김숙, 폭풍 자신감 “박나래-안영미 시대 온다”

    ‘비디오스타’ 김숙이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골든마우스홀에서 열린 MBC에브리원 예능 ‘비디오스타’ 제작발표회에 피에스타의 차오루, 개그우먼 박나래, 김숙, 배우 박소현이 참석했다. 이날 김숙은 ‘비디오스타’에 대해 “정리는 박소현이, 일 벌이는 건 박나래가 치고 들어가면서 한다. 차오루는 모자란 듯 하면서도 게스트가 마음을 열어줄 수 있게 하고 있다. 나는 작가들의 질문을 선별한다. 역할이 정확하게 나눠져 있다”며 “예감이 좋다. ‘비디오스타’가 잘 된다에 내 콩팥을 건다”고 확신에 찬 멘트를 했다. 이날 김숙은 눈여겨보고 있는 후배 개그맨으로 박나래와 안영미, 이국주를 꼽았다. 김숙은 “박나래와 이국주가 잘한다. 요즘 꽂혀있는 사람은 안영미다. 예전에 유재석·강호동이 대세였던 것처럼 안영미와 박나래의 시대가 올 것”이라며 후배들을 치켜세웠다. 이에 이유정 PD 역시 “박나래가 제2의 김구라처럼 그를 넘어서는 MC가 될 것 같다”고 동감했다. ‘비디오스타’는 토크 예능 정상에 있는 ‘라디오스타’의 여성 MC 버전으로 박소현, 김숙, 박나래, 차오루가 MC를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오는 12일 화요일 저녁 8시30분 방송 예정.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시론]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준비는 되었는가?/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

    [시론]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준비는 되었는가?/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

    지난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대결’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바둑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이다. 바둑에 대한 지식이 새로운 기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했던 것이다. 지식과 기술이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려면 더 많은 융통성과 적응력이 필요하고, 그것은 “내가 항상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대결 이후 이세돌 9단은 그전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감각’에 의존한 수법들을 냉정히 따져 보며 바둑에 대한 새로운 눈을 떴다. 이후 9연승을 거두는 등 최근까지 18승 4패를 기록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알파고 쇼크’ 이후 정부와 과학계, 산업계가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그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4월 ‘한국형 알파고’를 개발하겠다면서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우려를 자아냈다. 이 프로젝트의 본질은 슈퍼컴퓨터 개발인데, 기상 시뮬레이션같이 반드시 실시간 계산이 필요한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개의 애플리케이션은 가격 대비 성능 측면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 사업을 통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예산 낭비가 우려됐는데 다행히 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한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은 절대 정부가 주도해서 성공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공지능 분야에 의욕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연구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최근에는 클라우드 관련 과도한 규제를 개선하고,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시행하는 등 제 역할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정부가 나서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중요한 과제는 컴퓨터와 구별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것이다.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체스 인공지능을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지각이나 운동 능력 면에서 한 살짜리 아기만 한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을 만드는 일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정보 업무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겠지만, 복잡한 의사소통을 하며 물질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는 업무는 여전히 인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지적인 문제 해결 능력보다는 대화와 공감 능력,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이 훨씬 중요해질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해 우리는 다시 교육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받았던 교육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르쳐야 한다. 객관식 보기 중에서 정답을 골라내는 일에서는 사람이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 이미 18세기에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는 “어떤 답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하느냐로 사람을 판단하라”고 했다. 결국 위대한 질문들이 세상을 바꿔 왔다. 자꾸 질문을 하도록 격려해 줘도 모자랄 판에 우리는 질문하는 아이들에게 진도 나가는 데 방해가 된다고 눈치를 준다. 상상력(想像力)을 직역하면 어떤 모양을 떠올리는 능력이다. 상상력을 키우는 데는 독서가 최고다. 바둑도 큰 도움이 된다. 창의적인 생각은 멍하니 있을 때 많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학원 다니느라 너무 바쁘다. 인공지능과 더욱 밀착해서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에게 여전히 문제지 열심히 풀게 해서 명문 대학 들여보내는 것이 그들을 위하는 길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 또 다른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게 되면 그 분야는 어떻게 될지를 생각할 때 카스파로프와 딥블루 대결 이후 체스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1997년 이후에도 거의 십 년 동안 인간 챔피언과 인공지능의 대결이 이어졌지만, 인공지능이 오히려 인간보다 더 창조적인 체스를 구사했다. 또한 인간이 인공지능과 맞서는 데 유일하게 성공적이었던 방법은 인공지능의 창의력을 제한하기 위해 단순한 길로 이끄는 것이었다. 즉 적어도 체스에서는 창의력이라는 것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바둑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우리 아이들이 두세 개 분야에 걸쳐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장인이며 철학자이며 의사이며 예술가를 지향했던 것처럼 말이다.
  • ‘잡티가 뭐예요?’ 남다른 피부 가진 女연예인 9인의 피부관리법

    ‘잡티가 뭐예요?’ 남다른 피부 가진 女연예인 9인의 피부관리법

    언제나 완벽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서는 연예인들. 예쁜 외모는 물론 잡티 하나 없는 맑은 피부는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입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피부는 비단 메이크업의 힘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항상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연예인들. 물론 그 노력에는 비싼 화장품 사용과 ‘피부과’ 시술도 포함되죠. 하지만 연예인들은 평소 생활에서 스스로 꾸준히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연예인들은 바쁜 스케줄 속에서 어떻게 피부를 관리할까요. 다음은 남다른 피부를 자랑하는 여자연예인 9인이 직접 밝힌 피부관리법입니다.1. “1일 1팩” 김고은 배우 김고은은 과거 KBS2 ‘해피투게더3’에 출연해 1일 1팩으로 피부 관리를 한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김고은은 “드라마 촬영하면서 화장을 오래 하니까 피부가 뒤집어졌었다.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연예인들이 관리법으로 1일 1팩을 꼭 한다더라”라며 “저는 1주일에 한 번 하는 줄 알았는데 그걸 해보고 있다. 안할 때보단 좋다”고 전했습니다. 2. “탄산수에 레몬 즙” 소녀시대 유리 걸그룹 소녀시대 유리는 5일 만에 피부가 좋아지는 ‘유리한 물’을 자신의 피부 관리 비결로 꼽았습니다. 과거 방송된 온스타일 ‘채널 소녀시대’에서 유리는 “이것을 마시면 5일 만에 피부가 좋아진다”라면서 ‘유리한 물’ 레시피를 공개했습니다. 레시피는 간단합니다. 탄산수에 레몬의 즙을 짜서 섞어 마시면 됩니다. 3. “세안을 꼼꼼히” 황정음 꿀피부의 소유자 황정음은 세안에 상당한 공을 들입니다. 그는 화장을 지운 뒤 클렌징만 기본 5~6번을 합니다. 이후 오일 제품으로 세안을 마무리합니다. 또 물을 잘 마시지 않는 대신에 매일 수분 마스크팩을 사용하고 채소와 과일로 수분을 보충합니다. 4. “수분 보충이 가장 중요” 이영애 백옥 같은 피부의 소유자 이영애. 그녀는 과거 SBS ‘좋은 아침’에 출연해 “저는 화장품을 많이 쓰면 탈이 나서 동백오일과 수분크림만 바른다. 아이크림도 안 바른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그녀는 물을 자주 마시고 많은 제품을 바르기보다는 좋은 제품 한 가지를 자주 바른다고 전했습니다. 5. “안에서부터 빛나야 진짜 예쁜 피부” 수지 수지는 자신의 피부 관리 비법에 대해 “하얀 편이지만 수분과 미백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방송된 온스타일 ‘겟잇뷰티 2016’에 출연한 수지는 “수분과 미백 관리가 아기 피부를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전했습니다. 특히 그는 “여러 가지를 덧바르면 피부가 숨을 못 쉬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며 진주알만한 멀티크림 한 가지를 바른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수지는 “안티에이징에 신경쓰고 있다”며 세안 후 바로 스킨이 아닌 세럼을 사용하고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부스팅 효과가 있는 세럼을 사용하면 안티에이징과 함께 각질 정돈에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입니다. 6. “추워도 히터 NO” 고현정 고현정은 과거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손을 자주 씻고 얼굴을 되도록 만지지 않는다”며 자신만의 피부관리법을 공개했습니다. 특히 그는 히터를 피부의 ‘적’으로 지목했습니다. 고현정은 “춥다고 히터를 틀어놓는 것은 피부를 떠서 주는 것이다”라면서 “정말 추울 때는 틀고 끈 다음에 들어간다. 직접 쏘면 피부에 아주 안 좋다”고 덧붙였습니다. 7. “온찜질과 냉찜질로 셀프 마사지” 김희애 ‘12년 연속’ 화장품 모델로 활동 중인 김희애. 김희애는 과거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화장품 광고모델로서 피부관리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집안일을 한 후 남는 시간에 투명 수분팩을 붙인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김희애는 평소 피부 셀프 마사지를 꾸준히 하고 있다고 전하며 ‘온찜질과 냉찜질을 번갈아하는 것’을 비결로 소개했습니다. 8. ‘자외선차단제 없이는 외출도 없다’ 박수진 박수진은 ‘자외선차단제를 꼼꼼하게 바르는 것’이 하얗고 매끈한 피부를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외출 전 자외선차단제를 꼼꼼하게 바르고, 외출 중에도 틈틈이 덧바르고 모자, 선글라스 등을 이용해 햇빛을 차단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박수진은 마사지와 스파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건조한 피부에 수분을 보충한다고 덧붙였습니다. 9. ‘피부가 건조하지 않도록 무한 수분공급’ 조여정 조여정은 과거 Onstyle ‘겟잇뷰티’에 출연해 자신의 동안 외모 비결로 ‘2.4.2.4’ 피부 관리 비법을 공개했습니다. 조여정의 2.4.2.4 비법은 바로 물 2L마시기, 수분크림 4초간 두드리며 흡수시키기, 2분간 얼굴 마사지하기, 4시간마다 수분크림 바르기입니다. 특히 그는 자신의 꿀피부 비결은 바로 ‘수분공급’에 있다며 피부에 수분이 달아나지 않도록 신경쓴다고 전했습니다. 큐레이션팀 sns@seoul.co.kr
  • [포토] 호날두, 유로2016 우승컵 머리에 쓰고 ‘아이 같은 웃음’

    [포토] 호날두, 유로2016 우승컵 머리에 쓰고 ‘아이 같은 웃음’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우승컵을 머리에 모자처럼 쓰고 즐거운 표정으로 경기장을 누비고 있다. 포르투갈은 10일(현지시간) 프랑스와 연장전까지 이어진 혈투 끝에 1-0으로 승리하며 역대 메이저(월드컵·유로) 첫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사진=AF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자치광장] 용산공원은 용산 주민의 뜻 반영해야/성장현 용산구청장

    [자치광장] 용산공원은 용산 주민의 뜻 반영해야/성장현 용산구청장

    “그저께 하오 2시쯤 일본 헌병 몇 명이 이태원 등지 둔지미·사촌리·와서·서빙고에 사는 동민 10명을 체포하여 명동 군사령부로 이송하였다.”(1904년 8월 11일자 대한매일신보) 용산 주민이 일본 헌병에게 체포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1905년 러일전쟁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은 용산에 군대를 주둔하기로 하고, 그해 8월 용산 일대 가옥과 무덤을 이전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전답을 빼앗기고 가옥을 철거당한 데다 조상 대대로 섬겨 온 분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한 주민들이 한성부 앞으로 몰려갔다. 일본은 헌병을 동원해 주모자들을 체포하고 강제 해산시켰다. 선조의 고통이 110년이 지난 현재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용산공원이 조성되는 이 땅은 40년간 일본군에게 점령당한 것도 모자라 다시 70년 세월 동안 미군부대가 주둔해 ‘금단의 땅’으로 인식됐다. 용산구 면적의 8분의1을 차지하고 중앙에 있어 용산 주민이 감내해야 할 고통도 컸다. 미군부대가 들여다보인다고 고층 건물을 못 지었다. 아무리 급해도 부대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했다. 용산 주민이 미군들과 마주치며 받았을 직간접적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용산기지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된다. 미군이 떠난 자리에는 아픔을 치유할 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반긴다. 우리 용산구는 용산기지가 지닌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반영된 공원이 조성될 수 있도록 다양한 역사 사업을 추진해 왔다. 향토사학자와 함께 역사적인 공간을 발굴하고 기록한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는 용산공원 조성의 방향을 정하는 데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미군부대 내 근현대 역사 유적지들을 둘러보는 탐방 프로그램들도 운영 중이다. 평생학습 프로그램의 일환인 ‘용산학 강좌’를 시작으로 7월부터는 용산문화원 주관으로 매달 1회 ‘미리 가보는 용산공원 역사문화 탐방’을 이어 가고 있다. 전문가와 대학교수, 언론인, 향토사학자 등과 함께하는 학술포럼도 준비하고 있다. 포럼을 통해 나온 의견들을 수렴해 용산구의 주장을 구체화하고 우리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는 계획이다. 4월 말 국토교통부에서 용산공원 내 7개 기관 8개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토부의 안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토부는 공원 활용 방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용산공원은 용산의 도시 패러다임을 바꿔 놓을 것이다. 용산구청장으로서 용산의 100년 미래를 위해 공원이 제대로 조성되기를 바란다. 용산공원의 과거와 현재를 바로 옆에서 지켜봐 왔고, 미래를 함께할 사람은 용산 구민이다. 우리 구민들에게는 공원 조성에 따른 정보 공유는 물론 공간 활용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할 권리가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 용산 주민의 목소리가 반영될 소통 창구가 중앙정부에 마련되기를 촉구한다.
  • “사람 다쳐도 원청 볼까 봐 트럭에 태워요”

    “사람 다쳐도 원청 볼까 봐 트럭에 태워요”

    죽지 않으면 공상으로 편법 처리 계약 따려 사명 바꿔 산재 은폐 이직 잦아 교육·안전협의 미흡 “하청은 외부인… 안전회의 전무” “원청에서 사고 2건 정도만 걸리면 하청이 날아갑니다. 사람이 안 죽고 중상 정도 있다면 (원청업체) 안전과에서 볼까 봐 뭘로 덮어 놓습니다. 그러고서는 앰뷸런스도 안 불러요. (하청업체) 포터(소형트럭)에 싣고 가 버립니다.”(사내 하청업체 근로자 A씨) 사내하도급이 만연한 조선업계에서 산업재해가 끊이질 않는 이유가 밝혀졌다. 조선업 근로자를 심층면접한 결과 원청업체의 외면과 하청업체의 산재 은폐 등 구조적인 문제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10일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이 2013년부터 2년간 조선업 근로자를 면접해 한국노동연구원에 기고한 ‘사내하도급과 산업안전보건 문제의 유형화:조선업 사례’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조사 결과 일부 조선업 하청업체는 계약을 따내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내 하청업체 관리자 B씨는 “신규 업체들을 보면 기존 업체가 사명(社名)까지 바꾸기 일쑤여서 산재율을 조사하면 대부분 0%였다”고 말했다. 조선업 원청업체들은 ‘산재 삼진아웃제’를 운용하거나 산재 사례 때 계약 점수를 최대 20% 감점하지만 오히려 산재 은폐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 하청업체 용접공은 “회사에서 산재를 해 주지 않으면 정부에 얘기해야 하는데, 그러면 원청업체 리스트에 뜬다”며 “그러면 나는 아무데도 못 간다”고 토로했다. 사망 등의 중대 재해가 아니면 공상(산재로 다루지 않고 사내에서 치료비 등 제공) 처리하는 사례도 빈번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2012년 한 조선업체 사내 하청업체에서는 근로자 1명이 심혈관질환으로 작업장 탈의실에서 쓰러졌지만 119 신고도 하지 않고 1t 트럭으로 이동시키다 사망했다는 증언도 포함됐다. 원청업체들은 2010년 이후 10~20m 높이에서 도장·용접 작업을 하는 근로자 발판 제작 업무까지 대부분 하청업체에 떠넘겼다. 하지만 도장·용접 작업 중 추락 사고의 80%가 안전난간 등 기본 조치가 미흡해 생겼다고 박 연구원은 설명했다. 잦은 이직으로 근속 기간이 1~3년에 불과한 하청업체 근로자 교육과 원·하청 안전 협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하청업체 관리자 C씨는 “험한 공정을 맡으면 일할 시간도 모자란데 몇 시간씩 교육할 여건, 공간이 안 되고 할 사람도 없어서 그냥 서류상으로 다 만들어 놓는다”고 귀띔했다. 한 원청업체 안전 담당자는 “하청은 외부인이어서 사내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회의 공지가 일절 없다”며 혀를 찼다. 한편 정부는 지난달 하청 사망 사고에 책임이 있는 원청 사업주 처벌규정을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기존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이었다. 다만 산재 은폐는 기존처럼 과태료 처분을 유지하는 대신 금액을 1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올렸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목록화·디지털 작업… 800여점 이매방 유품에 숨결 불어넣다

    목록화·디지털 작업… 800여점 이매방 유품에 숨결 불어넣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최근 최대 숙원 사업인 ‘명예의 전당’ 건립 초석이 될 국가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유품 조사와 수집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지난 5월 조각장(국가무형문화재 제35호) 김철주(1933∼2015년) 명예보유자를 시작으로 승무(제27호)와 살품이춤(제37호) 이매방(1927~2015년) 명예보유자, 태평무(제92호) 강선영(1925~2016년) 명예보유자의 유품을 차례로 모으고 있다. 지난달 27일 명예의 전당을 채울 인간문화재 유품 보존·관리 현장을 찾았다. 전북 전주에 위치한 국립무형유산원 지하 1층 수장고에 들어서니 바깥의 찜통더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자료 보존을 위해 연중 20~22도의 온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수장고는 분류실, 시청각자료 보존실, 실물자료 보존실로 이뤄져 있다. 분류실에선 이매방 명예보유자 유품 목록화 작업이 한창이었다. 곳곳에 그의 유품이 산재해 있었다. 무형유산원 직원들은 지난달 22~23일 이 명예보유자의 서울 양재동 자택을 찾아 유품을 일일이 분류해 800여점을 수거해 왔다. 이 명예보유자가 공연 때 쓴 음향과 공연 장면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릴테이프·VHS테이프·CD·LP 등 501점, 사진 앨범 14권, 서화 및 액자 44점, 한복·양복·공연의상·모자 등 의복류 97점, 악기·병풍·가발 등 공연 소품 112점 등이다. 사진과 테이프엔 이 명예보유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최연규 조사연구기록과 사무관은 “희귀 자료들이 많다”며 “1세대 춤꾼인 김천흥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통 춤꾼들이 모두 나오고, 녹음테이프 중엔 안숙선·김소희 명창이 구음(口音·입소리)을 한 것도 있다”고 했다. 유품 중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내는 재봉틀과 릴테이프 편집기가 눈에 띄었다. 최 사무관은 “이 명예보유자의 손때가 묻어 있는 귀중한 유품”이라고 소개했다. “이 명예보유자께선 본인뿐 아니라 제자들이 공연 때 입을 옷을 손수 만드신 걸로 유명합니다. 선생께서 공연 복 제작 때 사용하셨던 재봉틀로,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거예요. 100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잘 작동합니다. 릴테이프 편집기도 선생께서 공연 때 쓸 음향을 직접 녹음·편집할 때 사용했던 겁니다.” 분류실 한쪽에선 아카이브(기록보관)를 위해 의복, 악기 등을 사진 촬영하고 있었다. 분류실에서 목록화 작업이 끝나면 시청각자료는 시청각자료 보존실로, 실물 자료는 보존실로 옮겨져 보존된다. 무형유산원 3층 ‘디지털아카이빙실’에선 이 명예보유자의 공연 장면이 담긴 VHS테이프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김정남 기획운영과장은 “의복이나 가구, 병풍, 서화 등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보존 처리를 거친 뒤 수장고에 보관하고, 시청각자료는 영구 보존될 수 있도록 디지털로 변환한다”고 했다. 최 사무관은 “디지털 전환 작업은 인내를 요한다”며 “오래된 테이프들은 서로 달라붙어 영상이 중간에 끊기는 경우가 많아 담당자가 몇 시간이고 자리에 앉아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명예보유자 부인인 김명자 이매방춤보존회 회장은 “선생님의 유품이 영구 보존돼 구십 평생 춤으로 살아온 선생님의 정신이 길이길이 전해졌으면 한다”며 “전통 춤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은 선생님 유품을 보면서 전통 춤의 맥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고 일반인들은 선생님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선생님께서 직접 만드신 옷에는 저마다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며 “낡고 색이 바래 애석하지만 그 옷들을 보며 선생님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김철주 명예보유자의 경우는 김 명예보유자뿐 아니라 조선 후기 최고의 조각장이었던 그의 아버지 김정섭 선생의 유품까지 모두 가져왔다. 김 명예보유자 딸과 사위가 최근 유품 보존 관련 상의를 하러 무형유산원을 찾았다 관계자들에게 유품 보존·활용 계획을 듣고 부자의 유품을 모두 기증했다. 강선영 명예보유자의 유품은 이달 초 무형유산원으로 옮겨진다. 강 명예보유자의 유품은 경기 안성의 전수교육관에서 관리를 잘하고 있지만 태평무 가치를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선 무형유산원에서 보관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무형유산원 직원들은 강 명예보유자의 전수교육관과 서울 성북동 자택을 찾아 기초 조사를 마쳤다. 최 사무관은 “강 명예보유자는 한류 1세대에 해당한다”며 “1960년대부터 프랑스 파리 등 해외 공연을 1000회 이상 했는데, 그 기록들이 다 남아 있다”고 전했다. 이재필 조사연구기록과장은 “인간문화재들이 돌아가시면 그분들의 유품은 가족들이 보관하거나 제자들이 나눠 가지곤 했다”며 “그분들의 사진, 영상, 의복, 작품 등이 제대로 보존·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지하창고나 장롱, 박스에 묻혀 있는 유물들이 너무 많은데, 체계적으로 수집해 공개하면 학술 연구에도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잠자고 있는 유물들에 숨결을 불어넣어 새 생명을 갖게 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주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동심과 휴식, 그 뒤엔 평생 ‘관람용’으로 살다 죽는 동물들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동심과 휴식, 그 뒤엔 평생 ‘관람용’으로 살다 죽는 동물들

    어린 시절이나 어른이 된 지금, 동물원은 여전히 신기하고 재밌는 곳이다. 호랑이·사자 등 맹수부터 해양 동물까지, 책이나 텔레비전 또는 영화에서나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동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마치 다른 세계에 당도한 듯한 신기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동물원의 존재가 한없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동물보호단체는 동물들을 좁은 우리에 가두거나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노출시키는 행위 자체가 동물학대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생생한 교육이 되고 어른에게는 작은 휴식을 가져다주는, 하지만 동물들에게는 본성과 자유를 박탈당한 공간, 동물원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자. ●동물원의 오랜 역사 인류의 농경사회가 시작된 뒤 인간은 더욱 높은 생산성을 위해 동물의 힘을 필요로 했다. 농경사회의 발달로 소유물의 개념이 생겨난 뒤 인간에게 동물 역시 하나의 소유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는 더 나아가 권력의 상징으로까지 변모했다. 다양한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은 기원전 3500년경 고대 이집트 수도였던 히에라콘폴리스의 동물원이 꼽힌다. 히에라콘폴리스 지역의 한 터에서만 코끼리와 원숭이, 하마 등 112종의 동물 뼈가 발견된 바 있다. 이 지역이 고대 이집트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곳인 만큼 동물원은 지배계층의 향락과 매우 밀접한 관계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기원전 275년 로마에서는 동물끼리 시합을 하거나 전투사와 동물이 싸우는 쇼가 인기를 끌었고, 15세기 들어 유럽에서는 동물의 사육과 전시를 동시에 하는 현대 개념의 동물원이 선을 보였다. 18세기에는 동물을 끌고 지방 곳곳을 순회하며 보여 주는 서커스단이, 19세기 중반에는 상업적인 수익을 위한 동물원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동물원의 진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처참하고 잔혹한 문화를 낳았다. 야생에서 살아가도록 태어난 동물들의 경우 인간에게 포획당한 뒤 비좁은 우리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하기 일쑤고, 일부 야생동물은 태생과 다르게 아예 동물원 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관람용’으로 살다 세상을 떠나야 한다. 인간의 호기심과 소유욕은 더 많은 동물의 감금으로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멸종되거나 멸종위기를 맞이해야 하는 동물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전쟁터에 버려진 동물원부터 옥상 동물원까지 한 사람을 또 다른 사람의 소유물로 인식한 노예제도는 거의 사라졌지만, 하나의 동물이 한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인식은 여전히 팽배하다. 마치 물건처럼 동물을 돈으로 사고팔거나 돈을 받고 이를 공개하는 행위 역시 그러한 인식이 낳은 결과 중 하나다. 국적을 막론하고 동물과 동물원이 상업적 수단으로 인정받으면서 동물원의 수는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는데, 그중에는 인간에게 포획돼 갇힌 것도 모자라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싸움에 휘말려 종말을 맞이한 곳도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위치한 동물원이다. 2007년 개장한 칸유니스 동물원은 가자지구 내에 위치한 5곳의 동물원 중 한 곳이다. 170만명의 주민에게 즐거움을 주던 이 동물원은 얼마 전 ‘세계 최악의 동물원’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폭격과 이에 맞선 무장 조직 하마스의 전쟁으로 수천여명의 주민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동물들이 그대로 방치돼 상당수가 굶어 죽은 것이다. 동물원 곳곳에는 죽은 동물의 사체가 미라처럼 굳은 채 버려져 있는데, 가자지구의 동물원 5곳 중 또 다른 한 곳인 알비산 동물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내전으로 버려진 이 동물원의 동물들은 극심한 배고픔과 트라우마에 몸부림쳤다. 내전과 굶주림에 지친 원숭이 한 마리가 이미 죽어 부패가 진행된 또 다른 원숭이 동족 사체 곁에서 넋을 놓고 있거나 일부가 무너진 우리 안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는 사자의 모습 등은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비슷한 참상은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국내 한 지방 백화점의 옥상 동물원을 담은 동영상 한 편은 인간의 호기심과 욕심이 얼마나 잔혹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보여 주면서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옥상 동물원은 백화점 등 쇼핑센터가 고객 유치를 위해 제공하는 볼거리로서 현재도 유통업계에서 자주 활용되는 마케팅 방식 중 하나다. 당시 공개된 동영상은 좁은 옥상 동물원의 우리 안에서 사슴 한 마리가 머리를 찧거나 흔드는 행동을 반복하고 자신의 분변을 먹는 모습 등을 생생하게 담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이것을 좁고 단조로운 공간에서 동물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일으키는 정신병적 증세라고 단언했다. 동물보호단체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국내에는 관련 법조항이 없어 처벌도 어려운 실정이다. ●동물권 그리고 동물원의 미래상 동물에게도 인권과 유사한 ‘동물권’이 있다. 호주 철학자 피터 싱어가 제시한 개념인 동물권은 동물이 그저 실험용이나 식량, 향락을 위한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되며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식 습성을 무시한 환경의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라면 동물권을 침해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물원의 아픈 현실은 여전하지만 동물권의 확대와 함께 유의미한 움직임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15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동물원은 동물과 역사적 건축물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동물원 폐쇄를 결정했다. 대신 이곳에 친환경 생태공원을 세우겠다고 발표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은 “동물들이 자연이 아닌 건물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면서 동물들을 서식지로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국내에서도 전주동물원이 동물들의 서식환경을 고려해 생태동물원으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동물의 습성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이를 통해 다방면에서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무작정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역시 생명체인 동물에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배제한 채 호기심으로 소유하려 한다면, 그것은 동물을 향한 ‘갑질’에 불과하다. 동물원이 동물 삶의 종착지가 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겠다. huimin0217@seoul.co.kr
  • 송중기, 메이저리그 LA다저스 구장 포착 ‘누구와?’

    송중기, 메이저리그 LA다저스 구장 포착 ‘누구와?’

    배우 송중기가 메이저리그(MLB) LA다저스 구장 관중석에서 포착됐다. 6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송중기 메이저리그 포착’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이 게재됐다. 사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다저스타디움에서 경기를 관전 중인 송중기의 모습이 담겨있다. 검정색 후드티에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송중기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당시 송중기가 관전한 경기는 LA다저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경기로 이날 경기에서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는 2타수 1안타를 기록했지만, 볼티모어는 5-7로 패했다. 송중기는 평소 야구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군 전역 당시 인터뷰에서 군 복무 중 가장 힘이 된 것에 대해 “한화 이글스”라고 답하기도 했다. 한편 송중기는 지난달 말 열애설에 휩싸였다. 중국 매체에 따르면 송중기가 광고를 촬영하기 위해 미국 LA를 방문했을 당시 일반인 여자친구와 동행했다는 것. 또 송중기가 여자친구와의 여행을 위해 출국 2주전부터 직접 항공편과 호텔을 예약했다고 전했다. 미국 현지에서 송중기는 여자친구를 포함한 10명의 친구가 함께 있었고 당시 한 팬이 함께 사진을 찍길 원했지만 여자친구를 배려해 이를 거부했다고 설명도 있었다. 이에 대해 송중기의 소속사 블러썸엔터테인먼트는 “스태프들과의 휴가가 와전된 것”이라며 열애설을 일축한 바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옛집 기념관·윗집 체험관… 공주 ‘박찬호길’ 생긴다

    옛집 기념관·윗집 체험관… 공주 ‘박찬호길’ 생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43)가 살던 충남 공주시에 ‘박찬호 골목길’이 생긴다. 오시덕 공주시장과 박찬호는 7일 시청에서 이 같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박찬호는 공주시의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골목길이 만들어지는 곳은 박찬호가 살던 산성동 옛집에서 공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400m, 폭 2~8m의 골목길이다. 이 길에 각종 조형물을 세우고 옹벽에는 투구 모습 등을 새겨 박찬호 선수를 추억하는 장소로 꾸민다. 시 관계자는 “산 중턱에 있는 이 길은 박찬호가 초등학교 때 이사 와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택과 공산성을 오르내리며 훈련과 체력단련을 하던 곳”이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산성과 산성 재래시장을 잇는 길이기도 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인기 있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주시는 또 옛집을 리모델링해 박찬호기념관으로 꾸미고 그 윗집에 야구체험관을 만들어 내년 상반기 문을 열 계획이다. 이를 위해 박찬호 선수의 부모가 수년 전 인근 무릉동으로 이사한 뒤 다른 사람이 살던 옛집과 윗집까지 매입했다. 모두 10억원이 들어간다. 박찬호는 협약식에서 “메이저리그 활동 때의 기념볼, 외국선수 사인볼, 유니폼, 승리 때 썼던 모자 등 소지품 150여점을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공주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고향 충남 공주에 ‘박찬호 골목길’ 생긴다

    고향 충남 공주에 ‘박찬호 골목길’ 생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43)가 살던 충남 공주시에 ‘박찬호 골목길’이 생긴다. 오시덕 공주시장과 박찬호는 7일 시청에서 이 같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박찬호는 공주시의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골목길이 만들어지는 곳은 박찬호가 살던 산성동 옛집에서 공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400m, 폭 2~8m의 골목길이다. 이 길에 각종 조형물을 세우고 옹벽에는 투구 모습 등을 새겨 박찬호 선수를 추억하는 장소로 꾸민다. 시 관계자는 “산 중턱에 있는 이 길은 박찬호가 초등학교 때 이사와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택과 공산성을 오르내리며 훈련과 체력단련을 하던 곳”이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산성과 산성 재래시장을 잇는 길이기도 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인기 있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주시는 또 옛집을 리모델링해 박찬호기념관으로 꾸미고 그 윗집에 야구체험관을 만들어 내년 상반기 문을 열 계획이다. 이를 위해 박찬호 부모가 수년 전 인근 무릉동으로 이사한 뒤 다른 사람이 살던 옛집과 윗집까지 매입했다. 모두 10억원이 들어간다. 박찬호는 협약식에서 “어릴 적 땀을 흘리던 길을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줘 기쁘다”면서 “(기념관에 전시할 수 있도록) 메이저리그 활동 때의 기념볼, 외국선수 사인볼, 유니폼, 승리 때 썼던 모자 등 소지품 150여점을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공주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아들 위해 ‘스파이더맨’ 됐지만, 결국…대륙 울린 엄마

    아들 위해 ‘스파이더맨’ 됐지만, 결국…대륙 울린 엄마

    최근 중국에서는 병든 아들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길거리에서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나섰지만, 결국 아들을 하늘로 떠나 보내야 했던 엄마의 안타까운 사연이 화제다. 펑파이신문망(澎湃新闻网)의 6일 보도에 따르면, 광시(广西) 구이핑(桂平)에 거주하는 허엔메이(何燕梅)씨는 지난해 6월 아들(5세)이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후군(HLH)을 앓고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아들을 데리고 베이징의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지난 2월 아들은 베이징징두(北京京都) 소아병동에 입원했다. 4월 초에는 골수이식수술을 받았다. 허씨 가족은 이미 150만 위안(한화 2억6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아들 치료비에 썼다. 하지만 치료를 지속하려면 거액의 돈이 더 필요했다. 허씨는 마침내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며 돈을 받았다. 아들 치료비를 위한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엄마의 사연이 소개되면서 중국사회는 큰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아들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었고, 병원에서도 위급통지서를 발급했다. 아들은 병세가 악화되자 불안감을 호소하며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애원했다. 2차 골수이식수술까지는 2주 가량이 남았지만, 아들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했다. 게다가 치료비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결국 아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허씨는 귀성길에 올랐다. 그녀는 “치료를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며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남아있다면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흐느꼈다. 지난 4일 부부는 아들을 구급차에 싣고 베이징을 출발해 고향인 광시로 향했다. 이틑날 구급차가 광시 췐저우(全州)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4~5시간의 여정길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토록 염원했던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숨을 거뒀다. 허씨는 “아들은 매우 강했고, 생각도 깊은 아이였다”며 아들을 추억한 뒤 “아들이 떠난 뒤 머릿속은 텅 비어버리고, 아들의 그림자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모은 모금액 15만 위안 중 치료비를 제외한 나머지 수만 위안으로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후군 환우들을 위한 기금회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이정현은 왜 안 까?’ KBS 기자들의 ‘세로드립’ 성명서

    ‘이정현은 왜 안 까?’ KBS 기자들의 ‘세로드립’ 성명서

    세월호 참사 당시 KBS에 전화를 걸어 압력을 가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당 대표 선거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KBS 내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7일 KBS 보도본부 소속 33기 기자들이 낸 성명이 눈길을 끈다. 앞줄 첫 글자를 세로로 읽으면 새로운 문장이 되는, 일명 ‘세로드립’으로 성명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KBS 보도본부 33기 성명 전문. 박통각하 우국충정, 몰라주니 서운하네주 7회도 모자라니 밤낮으로 틀어보세민심처럼 시청률은 하늘 높이 치솟는데은혜마저 몰라주니 이내 마음 섭섭하네 까치 울음 찾아온 듯 전화소리 반갑구나면목 없단 부탁인데 어찌그리 매몰찬가서로 사맛디아니해도 녹음버튼 웬말인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정상화를 하자는데 뒷조사가 웬일인가현명하다! 그의 판단, 고매하네 우리 기사은갈매기 한쌍처럼 집중원투 정답구나 왜란으로 나라뺏긴 비상시국 아닐진데안팎으로 시끄럽네 국론분열 머리아파까닭없이 까지말고 월급날을 기다리세 북한소식 궁금한데, 너희들은 안물안궁?한시라도 못 전하면 혓바닥에 바늘 돋아보고말았네, 하필 오늘! (박통께서) 좋아하네도탄빠진 조선민족 구할 길은 통일대박! 그리자! 소설보다 실감나는 처참한 북조선을!만들자, 질릴 때까지 북핵위기 또 수공위기!좀비처럼 죽지않고 대대손손 보도하세!해치지마 욕하지마 아프지마 박통 박통 잠보. (에헤라! 세상 사람들아, 가로로만 읽자꾸나)
  • [문화마당] 마징가는 왜 필살기의 이름을 외쳤을까/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문화마당] 마징가는 왜 필살기의 이름을 외쳤을까/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우리 집에는 비디오가 없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광장국민학교 2학년 4반 부반장이었던 박우석이네 집에 놀러 가곤 했다. 4교시 수업을 마치고 가면 그 시간까지 주무신 게 틀림없어 보이는 우석이네 엄마가 짜장면을 시켜 먹으라며 천 원짜리 두 장을 주셨다. 당시 짜장면은 한 그릇에 600원이었다. 남은 돈으로는 비디오 가게에서 만화영화를 빌려 보았다. 대부분 거대 로봇 만화였다.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이 통제되던 시절이었지만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프리패스였고 저간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우리는 틈만 나면 각 로봇의 전투력에 대해 논하곤 했다. 그때 나에게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두 개 있었으니 다음과 같다. (1)왜 정의의 로봇은 필살기의 이름을 적에게 들리도록 외쳤는가. (2)어째서 악당 로봇은 정의의 로봇들이 합체하는 동안 기다려 주었는가. (1)의 경우는 기합이 당사자의 투지를 증가시키고 상대의 기를 꺾는다는 측면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겠다. 하지만 그것이 굳이 필사기의 종류를 발설하는 형태여야 했는지는 한번쯤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코너에 몰리다가 결정적 순간에만 구사하는 필살기는 야구로 치면 투수의 결정구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9회 말 풀카운트 상황에서 “이번엔 낙차 큰 슬라이더”라고 외치며 볼을 던지는 투수라니 좀 웃기지 않나. 그런데 그거 안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마징가는 닥터 헬이 보낸 기계수들을 향해 이제 곧 ‘광자력 빔’을 구사한다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광자력 빔!”이라고 외치면서 슬쩍 ‘루스트 허리케인’이나 ‘로켓 펀치’를 쐈다면 교란작전인가 하고 이해할 텐데 내가 관람한 비디오에서 그런 장면은 등장하지 않았다. (2)의 경우는 더 이해하기 힘들다. 정의의 로봇은 나름대로 ‘정의=페어플레이(동심)’라는 등식을 지키기 위해 필살기도 막 알려주고 그랬다 치자. 모름지기 악당이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 시대의 악당 로봇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떼로 몰려오면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마치 병목구간을 통과하는 자동차처럼 한 번에 하나씩만 날아오는 걸로도 모자라 정의의 로봇이 “합체!”라고 외치면 본인이 거의 승기를 잡은 싸움에서도 주제가 1절이 다 불릴 정도의 시간 동안 기다려 주었다. ‘도중까지는 악당 로봇이 더 많이 때렸으니까 됐잖아’라는 의미가 담긴 호혜평등주의적 안배였을까.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 ‘드래곤볼 깊이 읽기’라는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됐다. ‘무슨 드래곤볼 따위를 깊이씩이나 읽는가’ 하고 한심해하며 혀를 찰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한다. ‘채식주의자’나 ‘사피엔스’ 같은 베스트셀러를 읽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말이지. 하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공상과학독본’이니 ‘마징가 Z 지하기지를 건설하라’ 같은 제목의 책을 마주하면 덮어 놓고 구매하게 된다. 내 허접한 취향에 잘 맞아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거니와 이런 책은 한국에서 안 팔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책이 팔리지 않으면 출판사는 ‘많은 사람들이 찾을 법한’ 책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나 같은 독자 입장에서 보면 꽤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마징가가 왜 필살기의 이름을 외쳤는지 궁금해졌다면 서점에 한번 들러봐 주시길. 양손을 모아 “에~네~르~기”라고 천천히 소리를 내다가 마지막에 기를 단번에 방출하듯이 “파!” 하며 팔을 쭉 뻗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특히 추천하는 바이다.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김중만(62)과의 만남은 금요일인 지난 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예정돼 있었다. 그 주 수요일부터 수영 박태환을 리우올림픽에 내보내자는 1인 시위를 국회 정문 앞에서 벌여 온 그가 일단은 그곳에서 보자고 제안해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후에 쏟아진 폭우로 그는 철수를 해야 했고 결국 청담동 스튜디오로 장소가 변경됐다. 폐렴 증세가 있는데 비까지 흠뻑 맞은 그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좀 있으니 그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법원에서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 자격을 인정했다는 뉴스였다. 그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럼 이제 정말 사자도 보고 침팬지도 보고 하마랑 코뿔소도 보고 그러는 거예요?” 1970년 여름 어느 날 저녁 나는 만세를 불렀다. 끓어오르는 희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홍대부고 1학년에 다닐 때였다. 아버지는 충남 한산에서 외과의원을 운영하셨는데, 가족들을 불러 앉혀 놓고 상상도 못했던 말씀을 하셨다. “정부에서 아프리카 봉사활동 파견 의사들을 모집하는데, 거기에 지원했다. 거기 가면 여기에서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나와 동생은 기뻐 날뛰기만 했지, 아버지의 입가에 흐르는 씁쓸한 미소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대접받는 의사의 자리를 버리고,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안 되는 나라로 떠나갈 결심을 한다는 게 얼마나 깊은 번민의 산물이었을지는 나중에 좀더 철이 든 뒤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6·25 참전 군의관이셨다. 내가 휴전 이듬해 강원도 철원에서 2남1녀의 맏이로 태어난 건 그래서였다. 아버지는 군인들이 이 땅을 계속 통치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요즘 ‘헬조선’이라며 이민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46년 전에 그걸 몸소 실천에 옮기셨던 것이다. 그것도 가난과 모래폭풍이 지배하는 아프리카 오지에 가는 걸로 말이다. -아버지는 전역 후 당신 아버지의 고향인 전북 군산 대신에 어머니의 고향인 한산에 정착해 의원을 차리셨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즈음만 해도 우리 집이 양계장을 하는 줄 알았다. 아픈 사람들이 돈이 없으면 닭을 가져왔고 아버지는 늘 그걸 웃으며 받아주셨다. 매일 닭 요리가 밥상 위에 올라왔는데, 그때 물리게 먹어서 지금도 닭을 안 좋아한다. -내가 아프리카행에 그토록 환호했던 것은 탐험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대니얼 디포의 고전 ‘로빈슨 크루소’를 주셨는데, 난생처음 밤을 새워 읽은 책이었다. 이후 내 머릿속에는 무인도나 정글 생활 같은 것들이 꽉 들어찼고, 중학생이 돼 서울로 올라와서는 틈만 나면 청계천 8가 헌책방 거리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중대 발표가 있고 보름 후 부모님과 우리 형제, 이렇게 네 식구가 탄 비행기가 서아프리카 오트볼타 상공에 도착했다. 오트볼타는 지금은 부르키나파소로 개명된 옛 프랑스 식민지였다. 하지만, 비행기가 랜딩 기어를 내릴 즈음 나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창밖의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그림이 전혀 아니었다. 밀림이나 사자는커녕 아래로 온통 시뻘건 모래사막뿐이었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사하라 남쪽에 위치한 오트볼타는 거대한 사막의 끝자락이었다. ‘아프리카면 다 똑같은 줄 알았더니….’ 게다가 우리가 살 곳은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버스로 20시간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였다. 철판으로 벽을 세운 묘한 형태의 집에 방 두 칸과 나무침대가 전부였다. 옆에서 흐뭇하게 웃고 계시는 아버지가 야속했고, 할머니와 함께 서울에 남은 여동생이 부러웠다. -아버지는 그 길로 평생을 아프리카 사람으로 사셨다. 오트볼타에서 의료 활동을 마친 후에는 더 남쪽에 있는 보츠와나로 옮기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계셨다. “내 통장에 2000풀라(보츠와나의 화폐 단위)가 있는데, 그 정도면 괜찮겠냐.” 1999년의 어느 날 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직감한 아버지가 미국에서 돌아와 병 수발을 들고 있는 나에게 물으셨다. 그게 장남인 나에게 남겨 주시는 전 재산이란 얘기였다. 아버지의 표정은 대단했다. 2000풀라면 우리 돈으로 200만원 정도인데, 거의 200억원을 물려주시는 듯한 그 당당함이란. 얼마 후 돌아가셨을 때 당신이 남긴 거라곤 정말로 그 2000풀라와 양복 2벌, 청진기 3개, 모자 3개, 모터 달린 자전거 1대 그리고 ‘김정’이란 이름 두 글자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위대한 유산이 그리고 이만큼 멋진 분이 또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나는 동생보다도 아프리카 생활을 못 견뎌했다. 일단 마을에 학교가 없어 답답했다. 불어를 익히는 것 말고는 나를 채워 줄 것이 없었다. 신물 나게 양배추 김치만 먹어야 하는 것도 싫었고, 독거미에 물려 사경을 헤맸던 일도 끔찍했다. 1971년 나는 아버지가 수소문한 끝에 프랑스 서부의 작은 도시 숄레로 보내져 고1부터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인생의 황금기가 열렸다. 사방이 포도밭이었는데, 모두가 와인을 만들어 먹고살았다. 학교건 기숙사건 와인이 넘쳐났다. 그리고 1500명 학생 중에 유일한 동양인인 나에 대한 남녀 학생들의 관심과 배려는 한이 없었다. 꿈결 같은 3년을 보냈다. -원래 꿈대로라면 문학을 전공해야 했는데, 그러기엔 수학 실력이 너무 달렸다. 수학 시험을 안 보고 갈 수 있는 대학 전공은 미술밖에 없었는데, 그건 자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으로 숱하게 상을 받은 나였다. 1974년 니스에 있는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에 입학해 1년을 보내고 난 어느 날, 기숙사에서 사진을 취미로 하는 법대생 친구가 인화 작업을 도와 달라고 했다. 사진 한 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 처음으로 보게 됐다. 3~5분 만에 인화지에 그림이 새겨지는 건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내 그림은 석 달이 걸려도 완성이 될까 말까인데. “맞다 저거야. 내 성격엔 저게 딱이야.” 친구에게 카메라를 빌렸다. 잠자고 씻을 때를 빼고는 카메라를 품고 살았다. 풍경, 얼굴, 동물 등을 닥치는 대로 찍었다. 아르바이트해서 몇 푼 손에 들어오면 무조건 필름 가게로 달려갔다. 늘 필름에 목이 말랐다. 주변에 있는 여자들의 누드도 찍었는데, 이는 내가 작가로서 초기에 명성을 얻게 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데뷔 시절 나의 주제가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대학 2학년 때 일찌감치 아들을 보았다. 아이의 엄마는 특수교육을 전공하던 한 살 어린 프랑스인 여자친구였다. 가장이 됐으니 생활비가 필요했고 필름값도 벌어야 했다. 돈을 아끼려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아이를 몰래 돌보다 쫓겨난 적도 있었다. 주말이건 심야건 닥치는 대로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디스코텍에서 DJ도 했다. 점심때 식당 주방에 설거지를 하러 가면 늘 4~5m 높이 분량의 접시들이 쌓여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아프리카 의료 활동으로 받는 돈은 고작 석 달에 500달러였다. 멀리 프랑스에 있는 아들에게 전혀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사진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얼마 안 돼서 나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사진에 과감하게 미술적인 프레임을 접목한 게 먹혀들었다. 주어진 것을 찍는다는 생각보다는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장소를 정하고 모델을 세웠다. “니스에 동양인이 한 명 있는데 사진을 잘 찍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를 찾는 곳이 늘어갔다. ‘프랑스 오늘의 사진 80인’ 등 몇몇 중요한 상을 거머쥐고 나는 파리로 진출했다. 자연히 니스에서의 학업은 더이상 이어갈 수가 없었다. 파리에서는 유명작가들 밑에서 패션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당시는 세계적인 대가일수록 동양인 어시스턴트를 두는 게 유행이었다. 이게 나에게는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어떠한 다른 동양인 사진작가도 나만큼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는 못했다. -1977년 서울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23세 때였다. 칸 미술제 참석을 위해 프랑스에 온 우리나라 화가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내 사진을 보더니 “한국에는 이런 사진이 없다”며 전시회를 열어 보라고 했다. 전시회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 인연으로 한국에 계속 머물게 됐다. 이듬해 배우 오수미(1950~1992)를 만났다. 남편인 신상옥 감독이 납북되고 혼자 살고 있던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아름다움에 현기증을 느꼈다. 얼마 후 한국에 같이 머물고 있던 첫 번째 아내에게 “새로운 운명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서를 구했다. 아내는 별말 없이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떠났다. 그녀는 지금도 니스에서 전공을 살려 정신지체아들을 돌보고 있다. 지금도 아내와 아들과는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그녀는 가히 천사다. 방학이면 해마다 인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나는 테레사 수녀님을 따서 그녀를 ‘마더 테레사’라고 부른다. 지금도 우리들은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아들은 나와 같은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나는 이 땅에서 두 번의 추방을 당했다. 1985년에는 프랑스 국적의 외국인이면서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고 전시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1986년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정보당국에 붙들려가 일본과 미국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 보내졌다. 두 번째 추방은 신상옥 감독이 북한을 탈출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걸 계기로 오수미와는 자연스레 결별을 하게 됐다. -1988년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이 됐다. 당시 나는 프랑스에서도 톱클래스에 있었다. 그런데 오기가 생겼다. 두 번이나 나를 추방한 이 나라에 뭔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해 당시 톱 모델이던 이인혜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1995년 5월에는 서울시립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됐다. 검찰이 일부 마약사범의 진술에 의존해 나에게 대마초 흡연 혐의를 씌웠는데, 나는 이미 2년 전에 같은 혐의로 구속돼 55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했고, 이후로는 완전히 절연한 상태였다. 검찰은 소변 검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자 13일간 나를 정신병원에 가뒀고, 이는 인권탄압 사례로 신문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어쨌거나 이 일로 나는 국립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강사에서 잘리고 아내에게 이혼까지 당했다.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갔다. 1년을 아이와 둘이 살고 있으니 아내가 다시 찾아왔다. LA에서 3년 동안 패션사진, 상품 카탈로그 등을 찍으며 세 식구가 괜찮게 먹고살았다. 그런데 1997년 말 한국 외환위기의 파고가 멀리 LA까지 밀려왔다. 주된 고객이던 한국 기업들이 도산을 하거나 경영난에 빠지면서 일감이 뚝 끊겼다. 결국 월세 3000~4000달러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빈민들이 사는 300달러짜리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꼬박 1년을 살면서 전당포를 세 번을 갔다.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 500달러에 카메라를 잡히면 그날은 LA갈비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서 얻은 건 가족애였다. 극심한 가난 속에 우리 셋은 정말로 하나가 됐다. 너무도 소중한 가치였다. -“형, 처자식 고생 그만 시킬래.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형이 사진전 좀 열 수 있도록 주선해 줘.” 1999년 LA라디오 사장이던 가수 이장희에게 귀국을 고했다. 떠나기 전에 라디오코리아에서 내 작품들의 전시회를 열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였다. 사람들에 신세진 것들 좀 갚고 남은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부모님 계신 보츠와나를 거쳐 서울로 오는 티켓이었다. 그런데 카메라 장비며 책이며 옷가지 등 해서 짐이 250kg이나 됐다. 추가 화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수중에 남은 돈이 고작 400달러 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사진 5장을 별도의 휴대용 박스에 넣고 우리가 예매한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카운터를 찾아갔다. 책임자를 보자고 했다. 후덕해 보이는 여성이 나왔다. “저는 사진을 하는 예술가입니다. 짐이 좀 많은데, 추가 비용을 낼 형편은 안됩니다. 저의 작품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게 힘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는 내 사진을 한 장, 두 장 보더니 곧바로 ‘오케이’ 사인을 냈다. 이에 더해 우리 가족의 티켓을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었다. 내가 절실할 때, 진실할 때 정성이 통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진의 힘이란 걸 새삼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보츠와나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그의 30년 아프리카 여정을 기리는 뜻에서 카메라 장비를 챙겨 초원으로 나갔다. 요하네스버그, 세렝게티, 타랑기레 등의 동물들을 담아 2001년 8월 15일 광복절에 한국에 돌아왔다. -막상 귀국을 하니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내 한 몸은 고사하고 아내와 아들이 머물 수 있는 집 한 칸이 없었다. 상업사진을 시작했다. 명함을 만들고 압구정동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패션, 영화포스터, 음반표지 등 닥치는 대로 작업을 했다. 3년을 일하니까 서울 전농동에 아파트 한 채를 살 돈이 모였다. 3년을 더 하니까 한 해에 15억원 정도가 손에 들어왔다. -‘이게 내가 추구하던 삶인가? 맹목적으로 일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먹고 살 만 해지니까 또 다른 생각에 발동이 걸렸다. 2006년 고비 사막으로 여행을 갔다. 보름 동안 50대, 60대의 김중만은 어때야 할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돌아와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 상업사진 그만할게. 그래도 괜찮겠지?” 6년 동안 상업사진을 찍으면서 50억원 이상을 벌었는데 남은 건 거의 없었다. 빌딩 한 채 사 두라는 주위의 말들 무시한 채 어려운 나라에 학교 지어 주고, 카메라 장비 사고, 스튜디오 운영하고, 먹고 놀고 했더니 남은 게 없었다. -2008년 관광공사의 외주를 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의 풍경을 집중적으로 앵글에 담기 시작했다. 한국의 이미지는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되어 주었다. 그동안 나는 우리나라의 이미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어느날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에 갔다. ‘600년 된 학교인데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고, 옆에는 숲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600년 전에 이런 학교를 지었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우리나라를 너무 피상적으로만 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이미지 촬영은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됐다. 무엇보다도 해외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극단적으로 동양적인 본질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극단적으로 서양적인 표현력을 갖고 있다’, ‘동양과 서양을 겸비한 이중성을 갖고 있는 유일한 작가’ 등 평가들이 나왔다. -예술사진으로 다시 돌아와 시간이 흐르니 내 작품 가격이 2500만원, 5000만원, 7500만원 등으로 해가 다르게 뛰었다. 대부분 외국에서 구매하는데 3개월 전에 처음으로 작품 하나를 파리에서 1억원에 계약했다. 작품의 가격은 작가의 자존심이다. 5억원까지는 올려보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건 나의 철칙은 지키려 한다. 작품의 영역에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순결해지자는 것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사진작가 김중만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다. 10대 중반 아프리카를 거쳐 프랑스에 유학해 21세 때인 1975년 니스에서 개인전을 열고 데뷔했다. 1977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에 역대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면서 주목받았다. 인물, 동물, 꽃, 풍경, 패션 등 다양한 주제에서 틀에 짜인 관습과 앵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을 창조해 왔다. 현재 스튜디오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2006년부터 상업 활동을 중단하고 예술 사진에 집중하고 있다. 아프리카 어린이 지원과 캄보디아, 베트남 학교 건립 등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다. ▲1954년 강원 철원 출생 ▲한산초, 홍익중, 프랑스 숄레 고등학교, 니스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 중퇴 ▲프랑스 아를 국제 사진페스티벌 젊은 작가상(1977), 올해의 패션사진가상(2000),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2010), 한국패션 100년 어워즈(2011) ▲ 작품집 ‘불새’, ‘인스턴트 커피’, ‘동물왕국’, ‘아프리카 여정’, ‘애프터 레인’, ‘네이키드 소울’, ‘오키드’ 등
  • 수목드라마 전쟁 예고 ‘함부로 애틋하게’에 도전장 ‘질투의 화신’ 공효진

    수목드라마 전쟁 예고 ‘함부로 애틋하게’에 도전장 ‘질투의 화신’ 공효진

    새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 기상캐스터 공효진의 일상이 공개됐다. SBS 새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극본 서숙향, 연출 박신우) 측은 6일 방송국 기상캐스터로 살아가는 공효진(표나리 역)의 하루 일과를 공개했다. 표나리(공효진)는 언감생심 아나운서를 꿈꾸는 기상캐스터지만 사진 속 그녀는 기상캐스터의 느낌을 찾아볼 수 없어 의아함을 자아낸다. 보통 기상캐스터는 그 날의 날씨를 알려주는 직업이기에 방송국 안에서 날씨를 체크하고 바쁘게 뛰어다닐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짐꾼이 된 그녀의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표나리는 기상캐스터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메이크업 박스와 수트케이스를 들고 있으며 손이 모자라 입으로 카드를 받기까지 해 심상찮은 방송국 생활을 짐작케한다. 싫은 소리 한 마디 없이 묵묵히 짐꾼이 된 그녀는 카메라 앞에선 화려하지만 그 뒤에 가려져 있는 기상캐스터들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낼 예정이다. 이에 공효진은 실제 촬영 당시 카드를 무는 장면의 리허설과 표정연기에 집중하며 표나리의 표정, 감정 하나하나에 세심함을 기울여 촬영을 마쳤다. 또 공효진의 러블리한 이미지가 더해져 표나리 캐릭터를 풍성하게 표현했다. ‘질투의 화신’은 사랑과 질투 때문에 뉴스룸의 마초기자와 기상캐스터, 재벌남이 망가지는 유쾌한 양다리 삼각 로맨스를 담은 작품이다. 공효진의 혹독한 기상캐스터 생활을 확인할 수 있는 SBS 새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은 ‘원티드’ 후속으로 오는 8월 중 방송될 예정이다. 사진=SM C&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인간은 창살 속 동물 앞에 떳떳한가

    [송혜민의 월드why] 인간은 창살 속 동물 앞에 떳떳한가

    어린 시절이나 어른이 된 지금, 동물원은 여전히 신기하고 재밌는 곳이다. 호랑이‧사자 등 맹수부터 해양 동물까지, 책이나 텔레비전 또는 영화에서나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동물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마치 다른 세계에 당도한 듯한 신기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동물원의 존재가 한없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동물보호단체는 동물들을 좁은 우리에 가두거나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노출시키는 행위 자체가 동물학대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생생한 교육이 되고 어른에게는 작은 휴식을 가져다주는, 하지만 동물들에게는 본성과 자유를 박탈당한 공간, 동물원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자. ◆동물원의 오랜 역사 인류의 농경사회가 시작된 뒤, 인간은 더욱 높은 생산성을 위해 동물의 힘을 필요로 했다. 농경사회의 발달로 소유물의 개념이 생겨난 뒤, 인간에게 동물 역시 하나의 소유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는 더 나아가 권력의 상징으로까지 변모했다. 다양한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은 기원전 3500년 경 고대 이집트 수도였던 히에라콘폴리스의 동물원이 꼽힌다. 히에라콘폴리스 지역의 한 터에서만 코끼리와 원숭이, 하마 등 112종의 동물 뼈가 발견된 바 있다. 이 지역이 고대 이집트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곳인 만큼, 동물원은 지배계층의 향락과 매우 밀접한 관계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기원전 275년 로마에서는 동물끼리 시합을 하거나 전투사와 동물이 싸우는 쇼가 인기를 끌었고, 15세기 들어서 유럽에서는 동물의 사육과 전시를 동시에 하는 현대 개념의 동물원이 선을 보였다. 18세기에는 동물을 끌고 지방 곳곳을 순회하며 보여주는 서커스단이, 19세기 중반에는 상업적인 수익을 위한 동물원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동물원의 진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처참하고 잔혹한 문화를 낳았다. 야생에서 살아가도록 태어난 동물들의 경우 인간에게 포획당한 뒤 비좁은 우리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하기 일쑤고, 일부 야생동물들은 태생과 다르게 아예 동물원 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관람용’으로 살다 세상을 떠나야 한다. 인간의 호기심과 소유욕은 더 많은 동물들의 감금으로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멸종되거나 멸종위기를 맞이해야 하는 동물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전쟁터에 버려진 동물원부터 비좁은 옥상 동물원까지 한 사람을 또 다른 사람의 소유물로 인식한 노예제도는 거의 사라졌지만, 하나의 동물이 한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인식은 여전히 팽배하다. 마치 물건처럼 동물을 돈으로 사고팔거나 돈을 받고 이를 공개하는 행위 역시 그러한 인식이 낳은 결과 중 하나다. 국적을 막론하고 동물과 동물원이 상업적 수단으로 인정받으면서 동물원의 수는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는데, 그 중에는 인간에게 포획돼 갇힌 것도 모자라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싸움에 휘말려 종말을 맞이한 곳도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위치한 동물원이다. 2007년 개장한 칸 유니스 동물원은 가자지구 내에 위치한 5곳의 동물원 중 한 곳이다. 170만 명의 주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던 이 동물원은 얼마 전 ‘세계 최악의 동물원’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폭격과 이에 맞선 무장 조직 하마스의 전쟁으로 수천 여 명의 주민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동물들이 그대로 방치돼 상당수가 굶어 죽은 것이다. 동물원 곳곳에는 죽은 동물의 사체가 미라처럼 굳은 채 버려져 있는데, 가자지구의 동물원 5곳 중 또 다른 한 곳인 알-비산 동물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내전으로 버려진 이 동물원의 동물들은 극심한 배고픔과 트라우마에 몸부림 쳤다. 내전과 굶주림에 지친 원숭이 한 마리가 이미 죽어 부패가 진행된 또 다른 원숭이 동족 사체 곁에서 넋을 놓고 있거나, 일부가 무너진 우리 안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는 사자의 모습 등은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비슷한 참상은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해 국내의 한 지방 백화점의 옥상 동물원을 담은 동영상 한 편은 인간의 호기심과 욕심이 얼마나 잔혹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보여주면서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옥상 동물원은 백화점 등 쇼핑센터가 고객 유치를 위해 제공하는 볼거리로서 현재도 유통업계에서 자주 활용되는 마케팅 방식 중 하나다. 당시 공개된 동영상은 좁은 옥상 동물원의 우리 안에서 사슴 한 마리가 머리를 찧거나 흔드는 행동을 반복하고 자신의 분변을 먹는 모습 등을 생생하게 담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이것을 좁고 단조로운 공간에서 동물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일으키는 정신병적 증세라고 단언했다. 동물보호단체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국내에는 관련 법조항이 없어 처벌도 어려운 실정이다. ◆동물권 그리고 동물원의 미래상 동물에게도 인권과 유사한 ‘동물권’이 있다. 호주 철학자 피터 싱어가 제시한 개념인 동물권은 동물이 그저 실험용이나 식량, 향락을 위한 도구로 쓰여져서는 안되며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식 습성을 무시한 환경의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라면 동물권을 침해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물원의 아픈 현실은 여전하지만, 동물권의 확대와 함께 유의미한 움직임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15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동물원은 동물과 역사적 건축물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동물원 폐쇄를 결정했다. 대신 이곳에 친환경 생태공원을 세우겠다고 발표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장은 “동물들이 자연이 아닌 건물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면서 동물들을 서식지로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국내에서도 전주동물원이 동물들의 서식환경을 고려해 생태동물원으로 탈바꿈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동물의 습성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이를 통해 다방면에서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무작정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역시 생명체인 동물에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배제한 채 호기심으로 소유하려 한다면, 그것은 동물을 향한 ‘갑질’에 불과하다. 동물원이 동물 삶의 종착지가 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겠다. 사진=ⓒerinassan / 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보건소 간 초보엄마, 출산걱정 사라졌네

    20주 이상 임산부 4주간 참여… 부부참여 주말 요가교실 운영 아기가 밤새 자지러지게 운다. 초보 부모들은 배가 고픈지, 어디가 아픈지 몰라 당황할 뿐이다. 서울 영등포구가 출산 준비를 못한 예비 부모들을 위해 교육에 나섰다. 영등포구 보건소가 20주 이상 임산부 및 가족을 대상으로 ‘해피맘 출산준비교실’을 운영한다고 5일 밝혔다.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저출산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예비 부모들의 임신, 출산으로 인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프로그램은 6일부터 매주 수요일 2시간씩 4주 과정으로 진행된다. 교육 과정은 ▲태교·정상 분만 과정의 이해 ▲라마즈 분만법 및 실습 ▲분만통증 경감법 및 산욕기(출산 후부터 대략 6~8주까지의 기간) 관리 ▲신생아 돌보기, 산후 우울증 예방교육 ▲모유수유의 장점, 아기모형으로 올바른 모유수유 방법 배우기 등이다. 영등포구는 지난 3월과 5월에도 해피맘 출산교실을 운영해 이미 지역 내 임산부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은 바 있다. 7월 교육 이후 오는 9월에도 동일한 교육 프로그램을 구청은 운영할 예정이다. 참여 희망자는 영등포구 보건소 3층 건강증진과 모자보건팀(02-2670-4759)으로 신청하면 된다. 이외에도 영등포구는 ‘부부사랑 토요 요가교실’을 짝수달 넷째주 토요일마다 진행하고 있다. 임산부와 남편이 함께 ▲순산 지압 ▲태아와 대화하는 태담법 및 요가자세도 익힐 수 있다.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은 “영등포구는 초보 맘의 출산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운영하게 됐다”면서 “많은 초보 맘들이 이번 프로그램으로 어여쁜 아기들을 맞이할 체계적인 준비를 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중랑구, “대화 필요한 가족 모여라”

    중랑구, “대화 필요한 가족 모여라”

    ‘바퀴벌레 가족’이란 표현이 있다. 퇴근 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거실에서 TV를 보던 자녀들이 모두 제 방으로 잽싸게 흩어지는 풍경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단어다.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서로 얘기할 틈이 없고 서로 어떤 고민을 하며 사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서울 중랑구가 가족 간 대화에 서툰 구민들을 위해 특별한 상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구는 오는 11월까지 구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지역민을 대상으로 가족 상담 사업인 ‘가온세상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4일 밝혔다. 부모와 자녀, 부부 등 가족 구성원 사이에 겪는 갈등을 상담을 통해 풀어주려는 취지다. 세부 프로그램을 보면 ?가족·부부의 건강한 소통을 돕는 ‘가족 및 부부상담’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상담사가 학교로 찾아가는 ‘위기 가족 학생·부모 상담’ ?한부모 가정의 부모자녀 관계를 개선해주기 위한 ‘한부모 집단 상담’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상담은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진행되며 직장인 등을 위한 야간 상담도 매주 화·수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운영한다. 중랑구건강가정지원센터(02-435-4143)를 통해 사전예약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성수 중랑구 여성가족과장은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이 건강해야 한국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면서 “앞으로 다양한 가족 상담서비스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가족 문제가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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