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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해리스 美대사에게 전하는 ‘주한명군’의 빗나간 동맹 스토리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해리스 美대사에게 전하는 ‘주한명군’의 빗나간 동맹 스토리

    중동 파병 압박·분담금 5배 인상 요구 한국의 자율적 주권 부정하는 언사 잦아 “근래 드문 총독형 외교관” 지적 많아 외세 방어 외쳤던 명나라 모문룡의 군대 주둔비·상납 요구에 병자호란의 빌미 예속 스스로 끊는 민중의 복수 기억해야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요즘 보기 드문 ‘총독형’ 외교관이다. 부임 이래 방위비 분담금, 한국군의 파병, 남북 관계, 한일 관계 등 한미 현안과 관련해 보인 그의 언행은 해방 후 미 군정장관을 빼닮았다. 불과 1년 1개월 전 방위비 분담금을 10억 달러 이상으로 증액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했던 그는 채 1년도 안 돼 한국은 분담금을 다섯 배는 증액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뚜렷한 근거도 없다. 오로지 한미 동맹 강화가 이유였다. 그가 말하는 동맹의 강화란 한국의 미국에 대한 예속의 강화를 의미하는 듯했다. 지난 7일 해리스 대사는 말했다. “나는 한국이 중동에 파병하기를 희망한다.” 황제가 속국의 왕에게 지시할 때 쓰는 ‘점잖은’ 명령이다. 한국군을 미군 예하 부대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하기 힘든 말이었다. 8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이나 비무장지대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 등재 추진에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미국과 협의할 문제다.” 한국 정부의 자율성, 한국의 주권을 부정하는 언사였다.배경이 궁금하다. 그는 주한미군을 통할하던 태평양사령부 통합사령관이었다.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은 주한미군에 있으니 그의 눈에 한국은 주권국가가 아닐 수 있다. 그는 툭 하면 주한미군 철수를 앞세워 한국 정부를 압박하곤 했다. 아버지는 미국인, 어머니는 일본인이라는 혈통도 개운치 않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을 점령하거나 지배했다. 막무가내의 해리스를 보면 400년 전 조선을 쥐락펴락했던 명나라의 장수 모문룡이 떠오른다. 조선 땅에 주둔하면서 조선으로부터 군량과 은을 뜯어내고 명청전쟁에 조선군을 동원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모문룡의 군대는 호란의 빌미가 됐고, 조선은 두 차례나 쑥대밭이 됐다. 역사학자 한명기 교수는 2013년 펴낸 ‘역사평설-병자호란’에서 ‘주한명군’(駐韓明軍)이라는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표현을 선보였다. 1621년부터 평안북도 철산 앞바다의 가도에 주둔하던 모문룡의 군대(‘모병’)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른바 ‘주한명군’은 1637년 청군이 정벌하기까지 청(후금)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해 준다며 주둔비와 작전 비용은 물론 각종 상납까지 요구했다. 중원을 노리던 후금(청)에 가도의 ‘주한명군’은 목젖을 노리는 송곳이었다. 중원으로 나아가자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 요동이었다. 대체할 수 없는 이 병참선을 위협하는 해상 요충지가 가도였다. 또 ‘주한명군’의 존재는 후금에 정복된 지역에서 한족의 동요를 부추겨 후방을 불안케 했다. 한족들은 이들을 믿고 조선이나 가도로 도망쳐 후금에 저항했다. 모문룡이 군사작전보다는 조선을 등치며 ‘해상 천자’ 놀음에 빠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놀고 있다 해도 칼날은 칼날. 그것을 유지하고 강화한 게 조선이었다. 1627년 중원 정벌에 앞서 조선을 침략(정묘호란)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조선을 정벌한 후 후금은 ‘주한명군’에 대한 조선의 지원 중단을 조약으로 명기했다. 가도의 명군은 애초 패잔병 무리였다. 1619년 사르후 전투 이후 연패하던 명이 1621년 요동마저 잃게 되자 영관급 장교 모문룡이 떠도는 패잔병을 모아 편성한 부대였다. ‘모병’은 평안북도 용천, 의주 등지를 떠돌며 노략질로 연명했다. ‘부모의 나라’ 군대라는 이유로 행패를 징치할 수 없었던 광해군은 모문룡을 설득도 하고 어르기도 해 가도를 내줬다. 명과 후금을 모두 자극하지 않는 선택이었다. 후금으로서도 모병이 조선의 청북(청천강 북쪽)에서 활개를 치는 것보다는 나았다. 광해군 시절 ‘찬밥’이었던 ‘모병’은 인조가 즉위하자 반정세력의 구세주가 됐다. ‘쿠데타’를 일으킨 인조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명나라의 책봉이었다. 책봉이 늦어지면 ‘이괄의 난’ 같은 또 다른 반란의 빌미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명은 책봉을 차일피일 미뤘다. 조카가 삼촌을 내쫓은 것이었으니 책봉할 명분도 약했고, 반정세력 내부에서 반란까지 일어날 만큼 불안정한 정권이었으니 섣불리 책봉했다가는 망신만 살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은 명에 책봉 사절을 보내려 해도 요동이 막혀 험난한 해로를 이용해야 했다. 길목에 있는 것이 가도였다. 인조는 명의 실세를 자처하는 모문룡에게 매달려 로비를 했다. 20세기 한국의 쿠데타 정권이 미국의 인정을 받고자 주한 미국대사에게 매달렸던 것처럼. 모문룡은 이런 사정을 이용해 조선으로부터 군량은 물론 온갖 뇌물을 챙겼다. 그것으로 당시 명 조정의 최고 실세였던 환관 위충현을 구워삶아 놓았다. 모병의 위세가 커질수록 조선은 등골이 빠졌다. 인조 즉위 원년(1623년) 조선은 모병에 쌀 6만 석을 지원했다. 매년 그 규모가 늘어나, 인조가 명의 책봉을 받은 이듬해(1626년)엔 16만 석을 제공했다. 조선은 이 ‘모문룡 군량(모량)’을 채우기 위해 특별세(토지 1결당 쌀 1말 5되)를 신설해야 했다. 모문룡은 이 밖에도 수시로 평안도 일대의 수령들에게 은과 군량을 요구했다. 수령들이 거부하면 병사를 동원해 창고를 약탈했다. 당시 평안감사 윤훤은 ‘온 나라 식량의 절반이 모문룡 휘하에게 넘어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여기에 한족 유민 10만여 명이 ‘주한명군’을 믿고, 평안도를 쓸고 다니며 곡식은 물론 개, 돼지, 닭까지 노략질했다. 이정구는 이들을 ‘조선의 홍건적’이라고 한탄했다. 오죽하면 ‘청북’(청천강 이북 지역)을 포기하자는 논의까지 나왔다. 모문룡은 가끔 후금을 정벌하겠다며 원정군을 상륙시켰다. 물론 후금과 전투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군량과 물자를 약탈하기 위한 것이었다. 모병은 함경도까지 돌아다니며 각 고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의주 부윤 이완(이순신 장군의 조카)은 약탈하던 모병을 체포해 곤장을 쳐 내쫓았지만, 모문룡의 항의를 받은 인조는 이완을 강등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김류로 하여금 평안도 안주에 모문룡 공덕비를 세우도록 했다. 정묘호란 때 모병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군량이나 인삼 따위를 뜯어내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정묘호란 이듬해(1628년) 11월엔 명나라로 가는 조선의 동지사 일행에게서 은과 인삼 등 조공물을 빼앗기도 했다. 1629년 명의 병부상서 원숭환은 모문룡을 제거한다. 후금을 배후에서 견제할 조선이 모문룡의 등쌀에 망해버릴까 걱정해서였다. 이후 ‘벗겨먹기’는 주춤했지만, 원숭환이 부패한 관리들에 의해 처형당하자 즉각 부활했다. 후임 손원화는 1630년 11월 조선 조정에 ‘군량과 전마 2000필을 공급하라’고 재촉했다. 가도의 도독 유흥치는 툭 하면 평안도로 나와 접대를 요구했고, 명군은 노략질과 부녀자 겁탈을 일삼았다. 후금의 홍타이지는 1633년 1월 ‘가도 정벌에 필요한 전함 300척과 배를 조종할 수군을 의주 포구로 가져와라. 듣지 않으면 사신 왕래를 끊겠다’고 통보했다. 인조는 쿠데타의 기치였던 ‘숭명’의 이념을 버릴 수 없었다. 호란으로 말미암은 국토의 유린은 망각한 지 오래였다. 인조는 허황된 결단을 했다. “단교는 물론 전쟁도 불사하겠다”, “오랑캐가 침략해 오면 자신이 전방으로 나아가 장사들을 독려하리라”고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그해 가도의 장수 공유덕과 경중명이 반란을 일으켰다. 인조는 진압군을 파견해 반란군을 추격하기도 했다. 1633년 6월 여순을 함락한 후금이 ‘가도를 돕지 말라’고 다시 경고했다. 그러나 인조는 10월 가도의 부총병 정룡의 요구에 따라 군량을 제공했다. 1636년 11월 25일 결국 청 태종 홍타이지는 조선 정벌을 선언했다. 병자호란이었다. 그가 환구단에서 고한 전쟁의 이유 6가지 가운데 4개는 ‘주한명군’과 관련된 것이었다. 조선은 다시 한 번 쑥대밭이 됐다. 인조는 청 태종의 ‘신하’가 됐다. 4개월 뒤 인조는 황해도의 병선 100척과 수군 3000여명을 징발했다. 가도의 명군을 정벌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조청연합군의 지휘관은 1633년 조선군이 토벌하려던 공유덕이었다. 가도에 상륙한 조선군은 청군보다 더 심하게 살육과 약탈을 자행했다고 한다(‘병자록’). ‘주한명군’이 저지른 패악질에 대한 민중의 복수였다. 상대를 예속시키고 수탈하는, ‘빗나간’ 동맹의 결과이기도 했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땅을 잇고, 삶을 짓다

    땅을 잇고, 삶을 짓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 주변엔, 건축가의 손에서 비롯된 많은 것들이 있다. 그것은 높이 대결을 벌이며 존재감을 뽐내는 마천루일 수도, 존재를 인지하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공간일 수도 있다. 이런 공간들은 어떤 철학으로 태어났을까. 왕성하게 활동하는 한국의 중견 건축가들이 세계 건축 거장들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그에 맞닿은 자신의 철학을 풀어내는 시리즈를 준비했다. ‘마에스트로와 나의 건축’이 현대의 건축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하며, 연재를 시작한다.건축은 땅의 인지를 구축하는 행위이다. 올바른 건축은 그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분명히 인식하게도 하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새로이 창조하기도 한다. 또한 땅이 지닌 자연 조건을 좀 더 조직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며 자연을 좀 더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궁극적으로는 땅이 지닌 자연·환경적 특성을 이용해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데 보다 큰 비전을 두는 것이다. 물의 흐름, 능선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선의 흐름, 바람의 흐름, 빛의 각도 등 자연의 경이로운 요소들을 창의적인 해석을 통해 더욱 잘 인지되고 다양하게 경험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좋은 건축이란 간결하고 창의적 구조물의 틀을 제시함으로써 자연을 존중하고 사람과 땅이 서로를 경험하며 공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건축의 단순한 구조와 자연을 존중하는 건축적 이념은 건축물을 어떻게 보이도록 할 것인가보다는 사람과 땅이 어떻게 서로 경험하며 공생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시한다. 이는 건축에 있어서 기능에 근거한 물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땅에 근거한 환경적·정서적인 측면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건축은 별개의 인위적인 오브제로서가 아니라 땅과의 일치를 통해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고,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빛, 바람의 순환, 하늘의 움직임, 계절의 변화, 그리고 공간의 경험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건축을 자연 그리고 인간의 삶 그 자체로 인지할 때, 그 땅은 더이상 멀리서 바라보는 그저 거대하기만 한 대상이 아닌 소소한 일상의 일부가 된다. # 지속 가능한 ‘땅의 건축’ ‘땅의 건축’은 땅을 지배하는 건축이 아니라 땅에 순응하는 건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땅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흐름을 잘 읽어내야 한다. 땅이 가지고 있는 기운의 흐름, 경사의 패턴, 바람의 방향, 빛의 흐름, 그리고 때론 식생의 흐름까지, 그 땅에 대해 더욱 많이 알아야 진정한 땅의 건축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땅의 건축’은 피라미드나 그리스 신전처럼 중앙집중적 공간구조를 취하거나 언덕 위 정수리를 장악하는 건축이 아니라, 때론 변형되고 휘어져 정상을 비껴 앉는 모습을 취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언덕에 기댄 듯, 물길과 등고를 따라 굽이치듯, 있는 듯, 없는 듯 앉게 된다. 그렇게 바람과 빛이 통하고 시공간이 통하며 주변과 하나로 엮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땅의 건축’은 땅으로부터 출발하고 땅으로 돌아가는, 땅의 일부가 되는 건축이다. ‘땅의 건축’은 또한 담백해야 한다. 땅만큼 담백해야 땅의 일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담백함은 공간 구성과, 재료의 사용, 그리고 그 건축을 만드는 구조나 시공 방법에 있어서까지 일관돼야 한다. 먼저, 공간 구성은 스스로의 형태를 먼저 취하거나 규정하기보다는 가장 단순하고 순수하게 시작돼야 하겠고, 땅과 주변의 흐름에 순응하며 변형돼야 한다. 즉, 작위적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필요 공간을 위치시킬 땅을 먼저 읽고 그에 맞는 적절한 건축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둘째, 공간을 만들고 둘러싸는 재료는 가능한 한 적게 해 땅과 주변의 환경에 맞게 절제돼야 한다. 그리고 그 마감은 절제된 재료임에도 상황의 필요에 따라 대응해 풍요로움을 더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구조에 있어서 땅의 건축은 그렇게 땅에 묻히거나 기대거나 하는 여러 복잡한 유기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땅과 더불어 있기 위해서는 그 힘의 방향과 흐름을 잘 파악해 창의적이고 담백한 구조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각각의 모든 자연구조가 가장 합리적이고 유기적인 것처럼 땅의 건축 또한 각각의 상황에 맞는 창의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렇듯 ‘땅의 건축’은 공간과 재료, 그리고 구조의 담백함을 통해 그 주변환경과 어우러지는 지속 가능한 건축이 된다. 땅 그 자체가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것이니만큼, ‘땅의 건축’ 또한 무엇보다 친환경적이며 지속 가능한 것이다. ‘땅의 건축’은 땅과 더불어서 집을 짓고, 땅과 더불어 살며, 그 땅과 함께 있는 주변의 모든 것을 몸소 체험하며 품고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큰 건축인 것이다. #자연의 변화와 흐름을 경험하는 건축조병수건축연구소 작품의 대부분은 ‘땅의 건축’을 지향한다. 현대자동차 천안글로벌러닝센터 생활관은 땅 위로 건물을 들어 올려 주변의 기운이 1층에 섬들처럼 위치한 식당동, 운동시설동의 사이로 스며들어 사시사철 변화를 체험하도록 했다. 풍부한 녹지환경을 가진 지역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건물 내부로 끌여들이고 중정까지 이어 공간을 사용하는 이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도록 했다. 경남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 호텔 리니어스위트는 경사가 비교적 심한 남해의 지형을 이용해 담백한 박스 형태로 앉혀 주변 자연과 경관을 끌어들이도록 했다. 무엇보다 바람길과 물길을 그대로 살리고 그 사이사이로 피하면서 건물을 앉혀 각각의 공간에서 자연의 흐름을 더 잘 느끼게 하고 극적인 언덕과 능선으로 이루어진 지형을 최대한 보존하도록 간단한 구조와 명확한 형태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경남 거제도 지평집은 섬의 해안선을 접한 아름다운 구릉을 그대로 살려 땅속으로 스며들며 앉혔다. 그 지형을 틀로 삼아 틈새를 만들고, 그 사이사이에 방문해 묵을 사람들에게 평온함과 안식을 줄 수 있도록 공간화했다. 그렇게 자연의 지평과 주변을 돋보이도록 해주는 건축적 공간으로서 융화된다. 서울 트윈트리는 도심 한복판 경복궁 앞 코너의 흐름을 따라 유기적 형태를 만들었다. 두 쌍둥이 건물이 땅과 틈새를 갖고 빛과 바람을 끌어들인다. 애매모호한 예각으로 이루어진 대지에 맞춰 그 흐름으로 만들어진 형태는 오랜 풍파에 견디며 구조적으로 단단해진 박달나무 토막의 모양으로 완성됐다. 강원 화천 이외수문학관의 경우 화천의 목가적인 풍경을 보존하기 위해 건축은 지형 속으로 완만하게 사라지며 자연현상의 일부가 된다. 땅속 명상집은 땅속에 파묻혀 있다. 땅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의도적으로 길게 배치해 땅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증폭시켰다. 단순히 건물로 내려가는 여정이 아닌 땅을 체험하고 땅을 기억하는 교감의 시간을 선사한다. # 땅을 해부하고 구조화하는 건축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77)는 바로 그 ‘땅의 건축’을 잘 표현한다. 그의 건축은 그 땅의 환경과 재료가 적절히 조화되고 대비되면서 하나의 ‘분위기’로 형성화된다. 즉, 환경으로서의 건축이 구현되는 것이다. 그 곳의 공기, 고유의 색, 보유하고 있는 물질, 느껴지는 질감, 이 모든 것들로부터 인식되는 총체적 형태가 고유한 분위기로 자리잡아 비로소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형태로 발현된다. 춤토르가 말하는 건축의 초기 단계는 그 땅을 해부하고 구조화하는 것이다. 장소가 주어질 때, 우선 장소를 앞서 살펴본 요소들로 세분화하고 그것에 걸맞은 여러 사물을 논리적으로 조립한다. 본인이 구현하고자 하는 형태로 장소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장소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상호보완적으로 형성되는 형태가 다듬어질 때, 이 형태가 장소에 어울리는지, 논리적으로 자리잡았는지, 원래의 장소와 새로이 구현된 형태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는 않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아름다운지를 바라본다. 결과물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에야 비로소 이 과정을 마무리 짓는다. 독일 쾰른 남쪽 메헤르니히에 있는 ‘브루더 클라우스 채플’(클라우스 수사 교회)은 춤토르의 대표 건축 중 하나다. 클라우스 수사를 기리기 위해 지은 이 예배당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넓디 넓은 들판 위로 솟아오른 오브제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콘크리트의 색이 들판의 색과 어울려서 그런지 이색적이지 않다. 그 환경과 어울리는 하나의 오브제가 고유의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이미지적으로 어울리는 하나의 형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건축주의 개인 기도실이기도 한 이 예배당은 기도하기 위한 공간적 요소로서 내부는 매우 어둡다. 본래의 콘크리트색보다 어둡게 만들기 위해 시공 당시에 거푸집으로 사용했던 목재들에 불을 붙였다고 한다. 목재를 태운 이후에 내부를 확인했는데 처음에는 춤토르가 원하는 정도로 검지 않아서, 다시 불을 피워 일주일 동안 더 태웠다. 건축가가 이끌어내고자 한 분위기에 맞는 모양, 냄새 그리고 질감에 대한 끈기 있는 집착이 보이는 대목이다. 완성된 구조물 사이로 떨어지는 빛은 자연스레 공간 안으로 녹아 든다. 비로소 이 공간은 한 영혼을 위해 독자적으로 형성화되어 땅으로 환원된다.# 자연과 인간의 숨결로 채우는 건축 ‘땅의 건축’은 우리의 땅에 대한 무작정의 신뢰와 믿음을 전제로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땅을 덜 훼손하고 주어진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며 더불어 지내고 함께 사는 방법을 찾는 지혜의 건축이다. 바람길, 물길, 빛 길을 따라 작게 짓고 크게 사는 이야기이며, 멀고 먼 이상향의 건축이 아닌 구체적이고, 경제적이고, 솔직 담백한 건축인 것이다.또 때론 모자람의 건축이기도 한데, 일부러 만든 모자람이 아닌 덜 채워지고 덜 만들어진 채로 함께 살아가며 채워져 가는 모자람이다. 즉 자연의 모든 것들이 그 스스로는 모자람이 있고 주변 자연과 어우러져 함께 할 때 그 모자람이 상호보완적으로 채워지는 것처럼 진정한 총체론적인 지속 가능성의 건축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주변과 통해 있고, 현실을 통해 있으며, 전통과 통해 있어 어느 것 하나 따로 떼어 설명할 수 없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뒤엉켜 살아가는 건축이며 삶에 대한 함축적 이야기이다. 조병수 건축가 이 연재는 서울옥션 ‘문화예찬-건축아카데미’와 함께 합니다.
  • 음주운전도 모자라 ‘계단’ 돌진…30대男 현행범 체포

    음주운전도 모자라 ‘계단’ 돌진…30대男 현행범 체포

    술에 취해 계단을 도로로 착각해 승용차를 몰다가 계단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된 30대 음주운전자가 경찰에 적발됐다. 그는 음주운전 측정마저 거부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13일 부산 부산진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후 4시 45분쯤 부산 부산진구 가야동 수정터널 상부 감고개공원 계단에서 A(35)씨 승용차가 계단 아래로 향하는 모습으로 걸린 채 멈춰 섰다. 행인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수차례 음주측정을 요구했지만 거부한 A씨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음주측정 거부)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술에 취한 A씨가 내리막 계단을 공원 진입로로 착각해 차량을 몰다가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간절했지만 또 올림픽 벽에 막힌 태국여자배구

    간절했지만 또 올림픽 벽에 막힌 태국여자배구

    푸미폰 전 국왕의 지원으로 자란 황금세대 마지막 도전한국과의 최종예선 결승전 0-3패로 또 올림픽행 좌절16년 전인 2004년 6월 태국 방콕의 후아막 배구경기장.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관하는 여자국가대항전인 그랑프리대회에 참가한 한국여자대표팀 단장 이세호(강남대 교수)씨는 그만 깜짝 놀랐다. 첫 세트 서브에 나선 태국 여자선수가 당시는 흔치 않았던 스파이크서브를 구사했기 때문. 엔드라인 끝에서 높이 토스를 올린 뒤 돌고래처럼 튀어 올라 강하는 상대 코트를 조준하는 이 스파이크서브는 당시엔 남자 선수들이 주로 구사했지만 여자선수들에겐 흔하지 않던 서브 기술이었다. 심드렁하게 경기 관전을 시작하던 이 교수는 이 서브를 보고는 “아뿔싸, 안보는 사이에 태국 여자배구가 이렇게 컸구나” 하고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철썩 때렸다. 이후 태국여자배구는 더 강하게 자랐다. 배구를 좋아했던 푸미폰 아둔야뎃(2016년 사망) 국왕의 지시 아래 2005년부터 10년간 매년 10억원의 돈줄을 여자배구에 댔다. 첫 결실은 2014년 자국에서 개최한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맺혔다. 태국은 중국과 일본을 꺾고 대회 첫 정상에 올랐다. 주인공들은 당시 20대 전후 80년대생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태국여자배구의 ‘황금세대’들이다.이들은 두 해 전인 2012년 그랑프리대회에서 4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데 이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동메달, 4년 뒤 자카르타아시안게임 은메달 등 예전에 없었던 굵직한 성과들을 줄줄이 일궈냈다. 이제 마지막 목표는 첫 올림픽 본선행이었다. 그러나 2016년 리우 올림픽 최종예선 때는 안타깝게 2-3으로 일본에 지면서 단 한 계단이 모자라 본선행이 좌절됐다. 이 때문에 지난 12일 한국과의 예선 결승에 나서는 태국여자배구의 간절함과 비장함은 남다르고 대단했다.아시아에서 마지막 남은 단 한 장의 올림픽 티켓을 놓고 겨루는 대결인 탓에 태국 언론은 ‘단두대 매치‘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더욱이 어느덧 황혼기에 접어든 ‘황금세대’들에겐 이날 경기가 올림픽 무대를 노크할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경기 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싱거운 0-3패로 끝났다. 태국 여자배구는 올림픽 문턱에서 또 돌아서야만 했다. 패한 태국 선수들은 물론 이긴 한국 선수들도 눈물을 흘려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그동안 흘린 땀과 고통의 시간이 떠올라서였을까. 선수 출신인 TV 해설자도 “두 팀 선수 모두 같은 의미의 눈물일 것”이라며 울먹였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또 올림픽 벽에 막힌 태국 황금세대의 마지막 배구

    푸미폰 전 국왕의 지원으로 쑥숙 자라난 80년대생 황금세대 .. 마지막 올림픽 노크한국과의 최종예선 결승전 0-3패로 또 올림픽행 좌절됐지만 눈물 대신 슬픈 미소만 16년 전인 2004년 6월 태국 방콕의 후아막 배구경기장.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관하는 여자국가대항전인 그랑프리대회에 참가한 한국여자대표팀 단장 이세호(강남대 교수)씨는 그만 깜짝 놀랐다. 첫 세트 서브에 나선 태국 여자선수가 당시는 흔치 않았던 스파이크서브를 구사했기 때문. 엔드라인 끝에서 높이 토스를 올린 뒤 돌고래처럼 튀어 올라 강하는 상대 코트를 조준하는 이 스파이크서브는 당시엔 남자 선수들이 주로 구사했지만 여자선수들에겐 흔하지 않던 서브 기술이었다. 심드렁하게 경기 관전을 시작하던 이 교수는 이 서브를 보고는 “아뿔싸, 안보는 사이에 태국 여자배구가 이렇게 컸구나” 하고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철썩 때렸다. 이후 태국여자배구는 더 강하게 자랐다. 배구를 좋아했던 푸미폰 아둔야뎃(2016년 사망) 국왕의 지시 아래 2005년부터 10년간 매년 10억원의 돈줄을 여자배구에 댔다. 첫 결실은 2014년 자국에서 개최한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맺혔다. 태국은 중국과 일본을 꺾고 대회 첫 정상에 올랐다. 주인공들은 당시 20대 전후 80년대생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태국여자배구의 ‘황금세대’들이다. 이들은 두 해 전인 2012년 그랑프리대회에서 4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데 이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동메달, 4년 뒤 자카르타아시안게임 은메달 등 예전에 없었던 굵직한 성과들을 줄줄이 일궈냈다. 이제 마지막 목표는 첫 올림픽 본선행이었다. 그러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대회 최종예선 때는 안타깝게 2-3으로 일본에 지면서 단 한 계단이 모자라 본선행이 좌절됐다. 이 때문에 지난 12일 한국과의 예선 결승에 나서는 태국여자배구의 간절함과 비장함은 남다르고 대단했다. 아시아에서 마지막 남은 단 한 장의 올림픽 티켓을 놓고 겨루는 대결인 탓에 태국 언론은 ‘단두대 매치‘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더욱이 어느덧 황혼기에 접어든 ‘황금세대’들에겐 이날 경기가 올림픽 무대를 노크할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경기 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싱거운 0-3패로 끝났다. 태국 여자배구는 올림픽 문턱에서 또 돌아서야만 했다. 패한 태국 선수들은 물론 이긴 한국 선수들도 눈물을 흘려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그동안 흘린 땀과 고통의 시간이 떠올라서였을까. 선수 출신인 TV 해설자도 “두 팀 선수 모두 같은 의미의 눈물일 것”이라며 울먹였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강남구, ‘설맞이 따스미 목도리 뜨기’ 행사 개최

    강남구, ‘설맞이 따스미 목도리 뜨기’ 행사 개최

    서울 강남구가 18일 오후 2시 봉은사로 강남구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지역 소외계층을 위한 ‘설맞이 따스미 목도리 뜨기’ 행사를 개최한다고 13일 밝혔다. 행사에는 여성능력개발센터 손뜨개반 회원과 주민들이 참여할 예정이며 완성된 목도리는 성모자애복지관,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관내 사회복지시설에 기부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2013년 아프리카 신생아에 손뜨개 털모자를 전달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기부 행사로 올해로 7번째를 맞았다. 관심 있는 구민은 여성능력개발센터로 전화 또는 당일 현장 신청하면 된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참가자들이 직접 뜬 목도리를 통해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진중권 “내가 녹색당 지지해서 징계? 윤소하의 사과 요구한다”

    진중권 “내가 녹색당 지지해서 징계? 윤소하의 사과 요구한다”

    윤소하 “녹색당 지지 등 해당행위로 징계 거론”진중권 “탈당계 제출 후 녹색당 지지 발언한 것…윤소하, 훨씬 전에 나에 대한 징계 추진했었다“정의당을 탈당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당내에서 나에 대한 징계를 추진했었다고 한다”고 주장하며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진중권 전 교수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소하 원내대표의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내가 ‘녹색당을 지지한다’고 해서 징계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징계 추진은 훨씬 전에 한 것으로 안다. 녹색당 지지 발언은 정의당에 탈당 처리해달라고 하고 한참 뒤에 한 것”이라면서 윤소하 원내대표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이 글에 앞서 진중권 전 교수는 정의당으로부터 탈당 처리가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이렇게 조용히 처리하면 될 일을 해당 업무와 상관도 없는 (윤소하) 원내대표가 그 사실을 SNS로 공개하며 떠나는 당원의 뒤통수에 비아냥을 퍼부어댄 이유가 뭘까”라면서 “윤소하 원내대표가 당내에서 나에 대한 징계를 추진했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아마 조국 임명에 찬성한 당의 결정을 비판한 것이 그 분의 심기를 거슬렀나 본다”면서 “그런데 정의당에서는 당원이 당을 비판하는 것이 ‘징계’의 사유가 되는가보다. 세상에, 당원이 제 견해를 말한다고 처벌한다? 남조선노동당도 아니고”라고 지적했다. 진중권 “윤소하, 전남 목포 출마 위해 민주당에 아부” 진중권 전 교수는 윤소하 원내대표가 자신에 대한 징계를 추진한 배경에 오는 4·15 총선에서 전남 목포 출마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과 방향을 맞춰 가는 데 진중권 전 교수의 조국 비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진중권 전 교수는 “사실 윤소하 원내대표는 민주당에 아부할 일이 좀 있다. 그 동네 분위기가 그렇다”면서 “그런데 원내대표씩이나 한 마당에 민주당으로 전향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민주당에서 단일 후보 자리 내줄 것 같지도 않고. 설사 단일 후보가 된들 (목포에서)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을 어떻게 이기나. 그러니 경박하게 처신하지 말고 진중하게 명예나 지켜라”라고 꼬집었다. 진중권 전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윤소하 원내대표가 언론을 통해 “정의당에 당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녹색당을 지지한다’는 등의 발언을 하는 등 해당 행위를 해서 내부적으로 (징계) 얘기가 있었다”면서 “자꾸 조국 프레임으로 가는데, 조국 문제가 아니다”고 반박을 내놓자 진중권 전 교수가 녹색당 지지 발언은 탈당계를 제출한 이후에 한 것이라고 재반박한 것이다. 진중권 전 교수는 “윤소하 원내대표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세요”라면서 “원내대표씩이나 돼서 한때의 충성스러운 당원 가는 길에 험담이나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 거짓 해명까지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지하철서 포착된 방탄소년단 뷔, 탑승 소감은?[EN스타]

    지하철서 포착된 방탄소년단 뷔, 탑승 소감은?[EN스타]

    그룹 방탄소년단(BTS) 뷔가 지하철 인증샷을 공개했다. 뷔는 지난 11일 방탄소년단 위버스에 “너무 좋았다”라는 글과 함께 2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뷔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일회용 교통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당당하게 드러낸 채 지하철 좌석에 앉아있다. 세계적인 스타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소탈한 모습이 많은 이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한편 방탄소년단은 오는 2월 21일 네 번째 정규 앨범 ‘MAP OF THE SOUL : 7’을 발매하고 컴백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요요미, 이외수 인증샷 악플에 “다른 표현 존중” [종합]

    요요미, 이외수 인증샷 악플에 “다른 표현 존중” [종합]

    트로트 가수 요요미가 소설가 이외수와의 인증샷 게재 이후 악플을 받은 가운데, 이와 관련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지난 6일 요요미 공식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에는 이외수와 요요미가 나란히 있는 사진이 게재됐다. 하지만 이를 본 일부 네티즌들이 악플을 달면서 댓글 창은 댓글 전쟁터로 변했다. 이어 구독을 취소하겠다는 댓글도 이어졌다. 이와 관련 요요미는 9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과 찍은 사진에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을 공개했다. 요요미는 “대한민국은 생각의 자유가 있고 표현의 자유가 있다. 모두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걸 존중한다”며 “단 생각에는 제한이 없지만 표현에는 책임이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또한 “전 팬 여러분과 제 생각이나 감정을 소통하고 싶지 않다”며 “팬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은 건 모든 인류가 절대 같을 수 없는 생각이나 학습된 이성, 개개인의 신념과 감정이 아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같은 원초적인 본능, 희노애락의 감성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팬 여러분들의 생각과 저의 생각이 같은 것 보다는 다른 게 좋다. 팬 여러분과 같을 수도 있는 건 요요미 음악만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요요미는 끝으로 “저는 여러분들의 생각이 담긴 어떠한 글도 삭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러분들의 의견 표현을 항상 존중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저는 상상도 못 했던 다른 생각들을 보면서 한참 모자란 부분들을 배워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트로트 가수 요요미는 지난 2018년 싱글 앨범 ‘첫 번째 이야기’로 데뷔했다. TV조선 ‘미스트롯’ 현역부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부온 조르노! 퀘스토에 시칠리아.”(Buon giorno! Questo e sicilia,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시칠리아입니다) 이탈리라 로마 테르미니역을 출발한 기차가 밤새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에 닿았을 때 열차에서는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왔다. 드디어 시칠리아였다. 시칠리아를 찾은 이유는 영화 ‘대부’ 때문이었다. 나는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엄청난 팬이었다. 이들이 출연한 ‘대부’ 시리즈를 보며 언젠가 꼭 한번 시칠리아를 찾겠다는 열망을 가슴에 지닌 채 살아왔다. 드디어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해체돼 배에 실린 기차는 메시나에 도착해 다시 조립되어 철로를 달린 후 시칠리아의 첫 목적지인 카타니아로 내려놓을 것이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네.” 시칠리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피아를 먼저 떠올리나 보다. 시칠리아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마피아를 조심해.” 그럴 만도 했다. 인터넷으로 시칠리아를 검색하면 마피아와 연관된 항목이 주르륵 올라온다. 실제로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이탈리아 노인(멋진 감색 양복에 붉은 머플러를 길게 두르고 중절모를 쓴 그 역시 약간 마피아스러웠던 것 같다)에게 “요즘에도 시칠리아에서는 마피아가 길거리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가끔씩 일어나긴 하는데 다 옛날 일이죠.” 그리고 덧붙였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답니다. 안심하세요.”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가 건설되기도 했고 로마와 비잔틴제국, 아랍과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아 왔던 시칠리아. ‘혹시 그리스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다. 20일 동안 시칠리아를 여행해 본 후 내린 결론은 유럽 어느 도시보다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시칠리아라는 것. 2018년 12월의 국내 신문들은 “이탈리아 경찰이 현지시간 4일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대대적인 마피아 단속 작전을 펼쳐 마피아 고위급 조직원 46명을 체포했으며 우두머리인 80세 세티미노 미네오 등 거물급 조직원들을 조직범죄 연루와 갈취 등의 혐의로 붙잡았다”고 전했다. 아 참, 팔레르모 공항의 정식 명칭은 ‘팔코네와 보르셀리노 팔레르모 공항’이다. 이는 마피아 수사를 지휘하다 1992년에 테러로 사망한 두 판사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마피아와 시칠리아는 떼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그 흔한 소매치기 한 번 만나지 않았다. 기차에서 만난 노인의 말대로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인가. 아무튼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대부’ 시리즈는 이탈리아 장면을 팔레르모에서 촬영했다. ‘대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뉴욕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의 이야기다.●대문호 괴테가 사랑한 도시 팔레르모 마피아는 마피아고, 관광객들에게 팔레르모는 가슴 설레게 하는 도시다. 대문호 괴테는 그의 책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팔레르모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하며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시칠리아에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생각해 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고 썼다. 유럽과 아랍 양식이 어울린 건축물들,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 크고 작은 성당으로 놓인 골목이 도시 곳곳에 가득하다. 팔레르모 여행의 출발점은 프레토리아 광장이다. 광장 주위로 스페인 바로크풍의 집들이 펼쳐진다. 광장 서쪽에 있는 노르만 왕궁은 꼭 찾아봐야 한다. 아랍풍의 천장과 비잔틴식 모자이크가 조화를 이룬 멋진 건물이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1185년부터 짓기 시작해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됐다. 원래는 비잔티움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졌기 때문에 여러 세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여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단연 시장이다. 이 중 부치리아시장은 팔레르모에서 가장 유명하고, 시칠리아에서 가장 크다. 갖가지 해산물과 과일, 치즈, 농산물 등 없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5일장처럼 떠들썩하다. 팔레르모 사람들은 “만약 부치리아시장 바닥이 마른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말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뜻이다.●시칠리아의 자부심 카놀리와 파스타 팔레르모의 거리를 걷다 보면 손에 길쭉한 과자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 ‘카놀리’다. 밀가루에 와인을 넣어 반죽한 후 튜브 모양으로 얇게 돌돌 말아 튀긴 후 안에 부드러운 리코타 치즈를 채워 넣은 것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카놀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대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리즈 3편에서 팔레르모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며 독이 든 카놀리를 먹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피아가 등장한다. 그는 도저히 카놀리의 달콤한 유혹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카놀리를 만지작거리다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그러고는 목을 잡고 의자에서 쓰러진다. 그의 발 밑에는 먹다 남은 카놀리가 부서져 있다. 카놀리 사랑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배신자를 처단하러 외출하는 행동대장 클레멘자에게 아내가 카놀리를 사오라고 부탁한다. 적에게는 잔혹한 마피아이지만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극진한 마피아답게 클레멘자는 카놀리부터 사놓는다. 마침내 조직의 배신자를 제거한 클레멘자는 부하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긴박하고 심각한 상황 속에도 냉혹한 마피아가 카놀리만은 잊지 않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영화의 배경이 시칠리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이왕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이탈리아 하면 파스타가 떠오르고 파스타 하면 이탈리아에서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서양에서 최초로 파스타를 전수받은 지역이다. 파스타의 시작은 국수인데, 히말라야산맥 북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 민족들이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한 국수가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음식으로 자리잡았고, 이 국수를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며 이것이 파스타로 ‘변이’를 일으켰다고 한다. 물론 이는 가설에 불과하다. 중세사학자 몬타나리가 쓴 ‘유럽의 음식문화’(새물결·2001)를 보면 생 파스타는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중국 등에 널리 알려졌으나, 마른 파스타는 근대에 사막을 이동하는 이슬람인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오랜 기간 운반과 저장이 쉬운 음식이 필요했고 그러던 차에 건조 파스타를 개발해 낸 것이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고 만든 반죽을 얇게 밀어서 건조시키는 이 방법은 11세기경 이슬람 상인들이 시칠리아로 건너오면서 이탈리아에도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시칠리아 파스타는 해산물과 채소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목축이 발달하지 않아 육류와 치즈는 귀하지만 해산물은 풍부한 섬이어서 그렇다. 파스타 중에서도 정어리의 일종인 사르데 파스타가 유명한데, 올리브 오일과 정어리, 소금으로 맛을 낸다. ‘쿠스쿠스’라는 아랍풍의 파스타도 많이 먹는다. 국수류가 아닌, 좁쌀처럼 생긴 것인데 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파스타로 분류된다.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온 후 파스타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생크림에 면을 담아 주던 수준이었던 한국형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버터와 계란 노른자, 베이컨 약간, 후추와 소금을 뿌린 ‘뻑뻑한’ 카르보나라의 맛에 길들여지고 말았다.●우연히 닿은 18세기 도시 모디카 시칠리아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선 관광지다.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같은 이탈리아 본토의 주요 도시는 배낭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단골 코스가 됐지만 시칠리아까지 가는 여행객은 드물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면 메시나에 닿는다. 그리고 메시나에서 1시간 정도를 가면 카타니아다. 카타니아는 시칠리아 제2의 도시.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다. 카타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에트나 화산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카타니아에 갔다면 꼭 어시장에 들러 보기를 권한다. 이른 아침 찾아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오후에 가도 시장의 정취를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참치와 조개, 새우 등 갖가지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시장은 활력으로 넘친다. 생선값을 흥정하는 이탈리아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카타니아에서 며칠 머문 후 모디카로 향했다. 모디카는 시칠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시다. 팔레르모와 타오르미나, 시라쿠사 등 시칠리아의 큰 도시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꼭 한번쯤 찾아볼 만한 매력적인 도시다. 이탈리아 여행은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철도의 잦은 파업, 주먹구구식인 철도와 시외버스 시스템은 끊임없이 여행 계획을 수정하게 만든다. 모디카로 가는 여정 역시 그랬다. 원래 계획은 카타니아의 에트나 화산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가 엉망이었다. 정류장 앞의 바에 들어가 왜 버스가 오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주인은 “30분 전에 떠났다”며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아마 이런 뜻이었겠지. “이탈리아에선 원래 이래.” 어쩔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는 수밖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양의 여행자가 안쓰러웠는지 바 주인이 다가왔다. “모디카라는 곳에 가보는 게 어때?” 고개를 들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음… 모디카는 시칠리아의 숨겨진 명소라고 할까? 관광객으로 붐비는 팔레르모나 타오르미나, 아그리젠토보다는 훨씬 멋진 곳이지. 아마 18세기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디카행 버스가 들어왔다. 그는 얼른 타라는 눈짓을 보내왔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때론 일정에도 없던 여정이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법이다. 그리고 2시간 후 바 주인의 말처럼 18세기의 중세도시를 걷고 있었다. 모디카는 BC 400년 무렵 시쿨리족이 건설했다고 한다. 12~17세기에는 매우 부유한 곳이었지만 1613년과 1693년 발생한 지진, 1833년의 홍수로 인해 파괴됐다. 하지만 모디카는 곧 도시를 재건했다. 모디카는 칼타기론, 밀리텔로발디카타니아, 노토, 파라졸로, 라구사, 시클리 등 히블라이아산 기슭에 위치한 이웃 8개 도시들과 함께 ‘발디노토 지역의 바로크 후기 마을’로 불린다. 지진과 홍수로 파괴된 이 도시들은 재건 사업을 하면서 파괴된 도시가 있던 자리나 그 근처에 세워졌는데,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17세기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간 바로크 양식이 절정을 이루었던 당시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들 도시의 바로크 후기 모습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200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모디카의 옛 영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건물은 ‘산피에트로성당’과 ‘산조르조성당’이다. 산피에트로성당은 광장 가까이 있는 것으로 아직도 웅장한 18세기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조르조성당은 모디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디카의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레고 블록을 정교하게 맞춰놓은 듯한 도시의 모습에 입이 벌어진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와는 또 다른 이탈리아의 모습이다. 이탈리아에는 예전에 ‘사생활’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이탈리아 사람들이 쓰는 ‘프리바토’(Privato)라는 말은 영어 ‘프라이버시’(Privacy)에서 따온 말이다. 모디카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프라이빗’이 없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 삶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다 알고 지낸다는 것이다.●이탈리아 최고의 염전도시 트라파니 시칠리아를 여행한다면 시간을 내 트라파니에 가볼 것을 권한다. 섬 서북쪽에 위치한 트라파니는 시칠리아의 여느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 준다. 이 도시들이 바로크풍의 건물들과 그리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로 가득한 반면 트라파니는 이 도시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로맨틱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염전과 염전 위에 서 있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풍차다. 트라파니로 떠나기 전 시칠리아 모디카에서 만난 미슐랭 요리사 주세페는 자신은 요리를 할 때 반드시 트라파니산 천일염을 사용한다고 했다. “소금이 음식 맛의 절반이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질 좋은 소금은 오직 트라파니에서만 구할 수 있어. 파스타 역시 마찬가지야.”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어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려면 뭐가 가장 필요하죠?”라고 묻자 주세페가 말했다. “큰 냄비를 갖추는 것.” 이런, 신선한 재료도 아니고 좋은 밀가루도 아니고 고작 큰 냄비라니. 주세페는 이렇게 답하며 눈을 찡긋했다. “스파게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수 중 가장 딱딱해. 이를 제대로 삶기 위해선 기다란 스파게티가 통째로 담기는 냄비가 필요하지.”■여행수첩 인천에서 로마행 항공은 다양하다. 로마에선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팔레르모나 카타니아로 간다. 시칠리아의 주요 도시까지 연결되는 항공편은 국영항공사인 알이탈리아 홈페이지(www.alitali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마에서 열차로도 갈 수 있다. 이탈리아 국영철도 홈페이지(www.trenitalia.com)에서 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다. 12시간 정도 걸리므로 침대칸을 이용하는 게 좋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섬 북부 왼쪽의 팔레르모에서 섬 왼쪽으로 돌면서 트라파니와 아그리젠토를 보고 로마나 나폴리로 귀환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 방법은 섬 오른쪽으로 돌면서 카타니아, 시라쿠사, 라구사, 타오르미나를 여행하는 것. 되도록이면 한 방향으로 도는 것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다. 겨울에도 낮에는 그다지 춥지 않다. 하지만 밤과 아침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심한 일교차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 젊은, 여자가, 혼자? … 그저 농촌으로 왔을 뿐입니다

    젊은, 여자가, 혼자? … 그저 농촌으로 왔을 뿐입니다

    “남편은?”, “돈 많은 농부 소개시켜 줄까?”, “지금 몇 살이야?” 지난해 12월 중순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이런 내가 불편한가요?’라는 이름의 전시가 열렸다. 여성으로 ‘농촌에 살았던, 살고 있는,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나눈 농촌에 대한 이야기를 설치물과 영상으로 풀어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서 마주하게 되는 저 세 문장은 젊은 여성에 대한 농촌 사람들의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실제로 귀농·귀촌한 1인 젊은 여성이 농촌에 가면 주민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젊은 여자 혼자 오직 농사를 지으러 농촌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며, 농촌에 온 여성이라면 농부가 아닌 농부의 아내이거나 예비 신붓감일 것이라는 편견이다. 가부장적인 농촌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주체가 아닌 부수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이 전시는 20~30대 여성 다섯 명으로 구성된 ‘1인여성농촌생활집담회’(WWWs)가 기획했다. ‘Whenever Wherever Womans’의 약자인 WWWs는 농촌에서만 살아온 여성, 귀촌했다가 다시 도시로 떠난 여성, 언젠가 귀촌할 계획이 있는 여성이 모여 농촌 생활의 구조적인 문제와 그 속에서 여성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우연히 같은 농촌 지역에 살면서 인연을 맺게 된 이들은 2018년 여름 그저 농촌 생활의 불편함에 대해 떠들기 위해 모였다. 교통을 비롯해 집과 땅, 페미니즘, 직업, 동물 등을 키워드로 집담회를 진행한 WWWs는 최근 여성가족부 청년참여플랫폼 문화혁신사업의 지원을 받아 전시와 집담회 내용을 정리한 책자를 선보였다. 최근 WWWs 팀과 만나 ‘농촌에서 젊은 여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팀원들의 요청에 따라 이들이 거주했던 지역과 실명은 공개하지 않는다. 지역과 실명을 특정할 경우 어디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일부 지역의 특수성으로, 농촌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한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는 귀촌해서 농사를 짓다가 다시 도시로 떠났지만 농촌 거주를 꿈꾸는 이응,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 귀촌할 계획이 있는 파테껑, 농촌에서 태어나 다른 농촌으로 이주한 보리링이 참여했다. -농촌에서 살기를 꿈꿨을 때 어떤 점을 기대했나요. 이응 귀농·귀촌은 노년을 즐기기 위한 거라고만 여겼어요. 그러다 도시에서 옥상 텃밭을 가꾸고 대안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러 모임에 다니면서 ‘아, 까짓것 노년으로 미룰 거 뭐 있어?’라는 생각이 커졌어요. 1부터 10까지 내 손에서 시작해 내 손으로 끝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게 농촌으로 가서 농사 짓는 삶을 꿈꾼 궁극적인 목표였죠. 파테껑 프랑스어로 ‘언제 떠나냐’는 의미의 제 닉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구에 이로울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그렇게 살려면 도시보다는 시골이 더 가능성이 있어 보였죠. 시골에서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영역이 많으니까요. -직접 농촌에서 생활하니까 어떻던가요. 이응 자급자족, 느리게 사는 삶, 자연과 함께하는 농부의 모습에 대한 기대가 컸어요. 겉으로는 ‘나, 그렇게 환상만 보고 귀농한 거 아니거든?’이라고 날을 세웠지만요. 농촌은 집과 일, 많은 부분이 인맥에 의해 예측하지 못한 식으로 흘러갈 때가 많아요. 그 촘촘한 인맥망 안에서 휘둘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에너지가 정작 농사짓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보다 커요. 상상 이상으로요. 시골이라고 해서 단순하고 느린 삶을 자연스레 살게 되는 건 아니라는 게 기대와 가장 달랐던 점이죠. 보리링 전 원래 농촌 출신이고 농촌에서만 살아온 사람이라서 별다를 것은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읍에 살다가 리 단위로 들어가 살았거든요. 읍과 리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읍보다 리가 상대적으로 더 시골이고 교통도 불편하고 사람들의 관계가 오밀조밀한 점이 신기하더라고요. 1인 여성에게 농촌 생활이 녹록지 않은 건 도시에 비해 여러 가지가 배제되기 때문이다. 일단 대중교통 수단이 많지 않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렵다. 저녁에 무언가 먹고 싶을 때 도시에서는 집 앞 편의점을 가면 그만이지만 시골에서는 자가용이 없다면 밖으로 나가는 일이 꽤나 번거로워진다. ‘내가 원할 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 건 그만큼 생활의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뜻이다. 환경이 열악한 탓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하다못해 농기구 역시 남성들의 신체에 맞게 제작돼 있어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많다. 까다로운 환경적·물리적 조건만큼 여성들을 곤란하게 하는 건 사람들의 시선이다.-농촌에 살면서 곤혹스럽거나 불편하다고 느낀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이응 귀농한 젊은 여성들이 많이 듣는 질문 몇 가지가 있어요. 첫마디는 “남편은 어디에?”죠. 제가 농사를 짓고 싶다 해도 저는 농부이기 이전에 ‘농사 짓기를 좋아하는 신붓감’ 정도로 비춰질 때가 많았어요. 1인 여성이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젊은 여성은 여전히 출산과 양육의 주체밖에 될 수 없는 거죠. 보리링 제가 제일 불편했던 지점은 도시보다 농촌이 더 1인 여성을 배제하고 판을 짜놓은 것 같은 분위기였다는 거예요. 저는 어디에 있든 저로서 존재하고 싶은데 농촌에서는 제가 아니라 ‘젊은 1인 여성’으로 구분되죠. 제가 저로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어요.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가 있고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면 한 소리를 듣죠. 예를 들어 짧은 머리를 하거나 짧은 옷을 입으면 ‘왜 저렇게 입고 다녀’라는 소리가 나오죠. 실제로 챙이 큰 모자를 썼을 때 ‘패션쇼를 하지 그래’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어요. -농촌 어르신들이 젊은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는 어떤 건가요. 혹은 ‘여자라서’ 겪게 되는 일이 있나요. 이응 농촌은 성별 역할이 도시보다 더 뚜렷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힘을 많이 써야 하거나 규모가 큰 일일수록 여성은 배제되고, 빠르게 손을 움직여야 하는 단순 작업이나 살림에만 여성을 찾는 경우가 많았죠. 농지 계약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여기 남자는 어디 갔냐”고 물을 만큼 여성이 혼자 농사지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다 보니 일하는 환경 자체도 남성에게 맞춰져 있어요. 그런데 무엇보다 불편한 건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잘해도 ‘여자치곤’ 잘하는 거고, 못하면 ‘역시 여자는 농사일 못한다’로 귀결되는 서사예요. 보리링 공간에는 성별이 없잖아요. 그런데 농촌의 공간들은 성별로 구분 지어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엌은 여자의 공간 혹은 자잘한 밭일은 여성의 일, 큰 기계를 다루는 밭일은 남자의 일 이런 식으로 역할이 구분 지어지는 것이 불편하죠. WWWs 팀원들은 공통적으로 농촌이 인맥으로 얼기설기 얽혀 있어 불편하다고 입을 모았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안다’는 말은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아는 친밀한 이웃 관계를 비유하기도 하지만 달리 말하면 사생활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농촌에서 인맥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보리링 농촌에서는 서로 모르는 관계망이 없어요. 서로 속속들이 다 알고 있죠. 그게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겠지만 갑갑하게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하다못해 친한 사람이 없으면 좋은 집을 구하기도 어려워요. 좋은 농가 주택이나 농사짓기 좋은 땅들은 부동산에 (매물로) 나오지 않아요. (알음알음) 믿을 만한 사람에게 내 땅을, 내 집을 ‘맡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죠. 직업을 구할 때도 관계망에 들어가야만 좋은 정보를 구할 수 있고요. 파테껑 농사를 짓기 위해 귀촌한 제 친구가 농번기가 찾아와서 사람들이 도와 달라고 하면 도와주러 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어른들이 도와 달라고 하면 거절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다음에 땅을 빌리려면 누군가의 인맥과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오면 지쳐서 정작 자기 밭을 못 가꾸게 되는데 그러면 자기 밭의 주변 어른들이 찾아와서 ‘네 밭은 왜 이 모양이냐’고 (지적을) 한대요. 그 악순환의 고리가 개선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인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달리 말하면 사생활이 노출될 가능성도 많다는 뜻일 텐데요. 보리링 사생활은 거의 보장 안 되죠. 귀농인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어서 가본 적이 있거든요. 혼자 귀농을 한 젊은 여성 분이 그러더라고요. 마치 내 사생활이나 개인 정보가 마을의 전광판에 띄워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고요. 그런 기분일 때가 좀 많죠.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 무척 친밀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가 하면 내가 뭘 했는지, 어디가 아픈지 3초 만에 마을에 퍼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WWWs는 농촌에서 겪은 고립, 답답함, 외로움에 대한 자신들의 이야기가 ‘농촌에서 살지 말라’는 목소리로 비치는 것을 경계했다. 오히려 농촌에서 살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어떻게 이 어려움을 타개할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농촌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여성에게 조언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이응 ‘그렇고 그런 서사에서 자유로워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귀농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농사일이 아니었어요. 그 좁고 좁은 인맥망 안에 어울리기 위해 어떻게든 저를 증명해 보이는 데 애를 쓰느라 진을 많이 뺐어요. 청년 농부는 무거운 것도 잘 들고, 거친 일도 잘하고, 어른들에게 싹싹하게 해야만 할 것 같았거든요. 어디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든 본인이 정의 내린 대로 살면 된다고 전하고 싶어요. -여성들이 농촌에서 온전하게 자립하기 위해 인식이나 제도적인 면에서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할까요. 보리링 농촌에 간다고 했을 때 무조건 그 사람이 농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농촌도 사람 사는 곳인데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잖아요. 이응 귀농·귀촌을 시도하는 여성들이 임시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나 여성들이 운용할 수 있는 자가 교통이 제도적으로 지원된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지만 그런 제도를 마련하기에 앞서 젠더 감수성을 먼저 갖추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어요. 함께 농사짓는 또래 남성들도 젠더 이슈만 나오면 농촌과 농사일에서 여자가 배제될 때 그건 배제가 아니라 배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때마다 속이 꽉 막혔거든요. 필요한 제도를 운운하기엔 농촌에서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 어디에 여성 농부가 있는지, 그들은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 그래서 ‘우리’는 누구인지 말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파테껑 제도적으로는 농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한 것 같아요. 누가 이주해 오고, 언제 이주해 나가는지, 이주하는 이유는 뭔지에 대해 조사를 해서 널리 알렸으면 좋겠어요. 또 개인적으로는 여성이 농촌에 있든 도시에 있든 어디에 있든 간에 본인 스스로를 의심하거나 자신을 가혹하게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부온 조르노! 퀘스토에 시칠리아.”(Buon giorno! Questo e sicilia,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시칠리아입니다) 이탈리라 로마 테르미니역을 출발한 기차가 밤새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에 닿았을 때 열차에서는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왔다. 드디어 시칠리아였다. 시칠리아를 찾은 이유는 영화 ‘대부’ 때문이었다. 나는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엄청난 팬이었다. 이들이 출연한 ‘대부’ 시리즈를 보며 언젠가 꼭 한번 시칠리아를 찾겠다는 열망을 가슴에 지닌 채 살아왔다. 드디어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해체돼 배에 실린 기차는 메시나에 도착해 다시 조립되어 철로를 달린 후 시칠리아의 첫 목적지인 카타니아로 내려놓을 것이다.●“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네.” 시칠리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피아를 먼저 떠올리나 보다. 시칠리아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마피아를 조심해.” 그럴 만도 했다. 인터넷으로 시칠리아를 검색하면 마피아와 연관된 항목이 주르륵 올라온다. 실제로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이탈리아 노인(멋진 감색 양복에 붉은 머플러를 길게 두르고 중절모를 쓴 그 역시 약간 마피아스러웠던 것 같다)에게 “요즘에도 시칠리아에서는 마피아가 길거리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가끔씩 일어나긴 하는데 다 옛날 일이죠.” 그리고 덧붙였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답니다. 안심하세요.”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가 건설되기도 했고 로마와 비잔틴제국, 아랍과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아 왔던 시칠리아. ‘혹시 그리스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다. 20일 동안 시칠리아를 여행해 본 후 내린 결론은 유럽 어느 도시보다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시칠리아라는 것. 2018년 12월의 국내 신문들은 “이탈리아 경찰이 현지시간 4일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대대적인 마피아 단속 작전을 펼쳐 마피아 고위급 조직원 46명을 체포했으며 우두머리인 80세 세티미노 미네오 등 거물급 조직원들을 조직범죄 연루와 갈취 등의 혐의로 붙잡았다”고 전했다. 아 참, 팔레르모 공항의 정식 명칭은 ‘팔코네와 보르셀리노 팔레르모 공항’이다. 이는 마피아 수사를 지휘하다 1992년에 테러로 사망한 두 판사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마피아와 시칠리아는 떼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그 흔한 소매치기 한 번 만나지 않았다. 기차에서 만난 노인의 말대로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인가. 아무튼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대부’ 시리즈는 이탈리아 장면을 팔레르모에서 촬영했다. ‘대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뉴욕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의 이야기다.●대문호 괴테가 사랑한 도시 팔레르모 마피아는 마피아고, 관광객들에게 팔레르모는 가슴 설레게 하는 도시다. 대문호 괴테는 그의 책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팔레르모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하며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시칠리아에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생각해 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고 썼다. 유럽과 아랍 양식이 어울린 건축물들,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 크고 작은 성당으로 놓인 골목이 도시 곳곳에 가득하다. 팔레르모 여행의 출발점은 프레토리아 광장이다. 광장 주위로 스페인 바로크풍의 집들이 펼쳐진다. 광장 서쪽에 있는 노르만 왕궁은 꼭 찾아봐야 한다. 아랍풍의 천장과 비잔틴식 모자이크가 조화를 이룬 멋진 건물이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1185년부터 짓기 시작해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됐다. 원래는 비잔티움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졌기 때문에 여러 세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여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단연 시장이다. 이 중 부치리아시장은 팔레르모에서 가장 유명하고, 시칠리아에서 가장 크다. 갖가지 해산물과 과일, 치즈, 농산물 등 없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5일장처럼 떠들썩하다. 팔레르모 사람들은 “만약 부치리아시장 바닥이 마른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말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뜻이다.●시칠리아의 자부심 카놀리와 파스타 팔레르모의 거리를 걷다 보면 손에 길쭉한 과자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 ‘카놀리’다. 밀가루에 와인을 넣어 반죽해 튜브 모양으로 얇게 돌돌 말아 튀긴 후 안에 부드러운 리코타 치즈를 채워 넣은 것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카놀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대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리즈 3편에서 팔레르모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며 독이 든 카놀리를 먹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피아가 등장한다. 그는 도저히 카놀리의 달콤한 유혹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카놀리를 만지작거리다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그러고는 목을 잡고 의자에서 쓰러진다. 그의 발 밑에는 먹다 남은 카놀리가 부서져 있다. 카놀리 사랑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배신자를 처단하러 외출하는 행동대장 클레멘자에게 아내가 카놀리를 사오라고 부탁한다. 적에게는 잔혹한 마피아이지만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극진한 마피아답게 클레멘자는 카놀리부터 사놓는다. 마침내 조직의 배신자를 제거한 클레멘자는 부하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긴박하고 심각한 상황 속에도 냉혹한 마피아가 카놀리만은 잊지 않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영화의 배경이 시칠리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왕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이탈리아 하면 파스타가 떠오르고 파스타 하면 이탈리아에서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서양에서 최초로 파스타를 전수받은 지역이다. 파스타의 시작은 국수인데, 히말라야산맥 북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 민족들이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한 국수가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음식으로 자리잡았고, 이 국수를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며 이것이 파스타로 ‘변이’를 일으켰다고 한다.물론 이는 가설에 불과하다. 중세사학자 몬타나리가 쓴 ‘유럽의 음식문화’(새물결·2001)를 보면 생 파스타는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중국 등에 널리 알려졌으나, 마른 파스타는 근대에 사막을 이동하는 이슬람인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오랜 기간 운반과 저장이 쉬운 음식이 필요했고 그러던 차에 건조 파스타를 개발해 낸 것이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고 만든 반죽을 얇게 밀어서 건조시키는 이 방법은 11세기경 이슬람 상인들이 시칠리아로 건너오면서 이탈리아에도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시칠리아 파스타는 해산물과 채소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목축이 발달하지 않아 육류와 치즈는 귀하지만 해산물은 풍부한 섬이어서 그렇다. 파스타 중에서도 정어리의 일종인 사르데 파스타가 유명한데, 올리브 오일과 정어리, 소금으로 맛을 낸다. ‘쿠스쿠스’라는 아랍풍의 파스타도 많이 먹는다. 국수류가 아닌, 좁쌀처럼 생긴 것인데 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파스타로 분류된다.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온 후 파스타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생크림에 면을 담아 주던 수준이었던 한국형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버터와 계란 노른자, 베이컨 약간, 후추와 소금을 뿌린 ‘뻑뻑한’ 카르보나라의 맛에 길들여지고 말았다.●우연히 닿은 18세기 도시 모디카 시칠리아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선 관광지다.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같은 이탈리아 본토의 주요 도시는 배낭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단골 코스가 됐지만 시칠리아까지 가는 여행객은 드물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면 메시나에 닿는다. 그리고 메시나에서 1시간 정도를 가면 카타니아다. 카타니아는 시칠리아 제2의 도시.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다. 카타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에트나 화산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카타니아에 갔다면 꼭 어시장에 들러 보기를 권한다. 이른 아침 찾아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오후에 가도 시장의 정취를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참치와 조개, 새우 등 갖가지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시장은 활력으로 넘친다. 생선값을 흥정하는 이탈리아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카타니아에서 며칠 머문 후 모디카로 향했다. 모디카는 시칠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시다. 팔레르모와 타오르미나, 시라쿠사 등 시칠리아의 큰 도시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꼭 한번쯤 찾아볼 만한 매력적인 도시다. 이탈리아 여행은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철도의 잦은 파업, 주먹구구식인 철도와 시외버스 시스템은 끊임없이 여행 계획을 수정하게 만든다. 모디카로 가는 여정 역시 그랬다. 원래 계획은 카타니아의 에트나 화산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가 엉망이었다. 정류장 앞의 바에 들어가 왜 버스가 오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주인은 “30분 전에 떠났다”며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아마 이런 뜻이었겠지. “이탈리아에선 원래 이래.” 어쩔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는 수밖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양의 여행자가 안쓰러웠는지 바 주인이 다가왔다. “모디카라는 곳에 가보는 게 어때?” 고개를 들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음… 모디카는 시칠리아의 숨겨진 명소라고 할까? 관광객으로 붐비는 팔레르모나 타오르미나, 아그리젠토보다는 훨씬 멋진 곳이지. 아마 18세기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디카행 버스가 들어왔다. 그는 얼른 타라는 눈짓을 보내왔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때론 일정에도 없던 여정이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법이다. 그리고 2시간 후 바 주인의 말처럼 18세기의 중세도시를 걷고 있었다. 모디카는 BC 400년 무렵 시쿨리족이 건설했다고 한다. 12~17세기에는 매우 부유한 곳이었지만 1613년과 1693년 발생한 지진, 1833년의 홍수로 인해 파괴됐다. 하지만 모디카는 곧 도시를 재건했다. 모디카는 칼타기론, 밀리텔로발디카타니아, 노토, 파라졸로, 라구사, 시클리 등 히블라이아산 기슭에 위치한 이웃 8개 도시들과 함께 ‘발디노토 지역의 바로크 후기 마을’로 불린다. 지진과 홍수로 파괴된 이 도시들은 재건 사업을 하면서 파괴된 도시가 있던 자리나 그 근처에 세워졌는데,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17세기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간 바로크 양식이 절정을 이루었던 당시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들 도시의 바로크 후기 모습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200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모디카의 옛 영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건물은 ‘산피에트로성당’과 ‘산조르조성당’이다. 산피에트로성당은 광장 가까이 있는 것으로 아직도 웅장한 18세기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조르조성당은 모디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디카의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레고 블록을 정교하게 맞춰놓은 듯한 도시의 모습에 입이 벌어진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와는 또 다른 이탈리아의 모습이다. 이탈리아에는 예전에 ‘사생활’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이탈리아 사람들이 쓰는 ‘프리바토’(Privato)라는 말은 영어 ‘프라이버시’(Privacy)에서 따온 말이다. 모디카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프라이빗’이 없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 삶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다 알고 지낸다는 것이다.●이탈리아 최고의 염전도시 트라파니 시칠리아를 여행한다면 시간을 내 트라파니에 가볼 것을 권한다. 섬 서북쪽에 위치한 트라파니는 시칠리아의 여느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 준다. 이 도시들이 바로크풍의 건물들과 그리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로 가득한 반면 트라파니는 이 도시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로맨틱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염전과 염전 위에 서 있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풍차다. 트라파니로 떠나기 전 시칠리아 모디카에서 만난 미슐랭 요리사 주세페는 자신은 요리를 할 때 반드시 트라파니산 천일염을 사용한다고 했다. “소금이 음식 맛의 절반이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질 좋은 소금은 오직 트라파니에서만 구할 수 있어. 파스타 역시 마찬가지야.”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어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려면 뭐가 가장 필요하죠?”라고 묻자 주세페가 말했다. “큰 냄비를 갖추는 것.” 이런, 신선한 재료도 아니고 좋은 밀가루도 아니고 고작 큰 냄비라니. 주세페는 이렇게 답하며 눈을 찡긋했다. “스파게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수 중 가장 딱딱해. 이를 제대로 삶기 위해선 기다란 스파게티가 통째로 담기는 냄비가 필요하지.” ■여행수첩 인천에서 로마행 항공은 다양하다. 로마에선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팔레르모나 카타니아로 간다. 시칠리아의 주요 도시까지 연결되는 항공편은 국영항공사인 알이탈리아 홈페이지(www.alitali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마에서 열차로도 갈 수 있다. 이탈리아 국영철도 홈페이지(www.trenitalia.com)에서 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다. 12시간 정도 걸리므로 침대칸을 이용하는 게 좋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섬 북부 왼쪽의 팔레르모에서 섬 왼쪽으로 돌면서 트라파니와 아그리젠토를 보고 로마나 나폴리로 귀환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 방법은 섬 오른쪽으로 돌면서 카타니아, 시라쿠사, 라구사, 타오르미나를 여행하는 것. 되도록이면 한 방향으로 도는 것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다. 겨울에도 낮에는 그다지 춥지 않다. 하지만 밤과 아침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심한 일교차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 그것이 알고 싶다, ‘뉴이스트’ 사재기 보도 오류 사과 [전문]

    그것이 알고 싶다, ‘뉴이스트’ 사재기 보도 오류 사과 [전문]

    ‘그것이 알고 싶다’가 뉴이스트와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에 사과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측은 9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논란이 된 뉴이스트 관련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측은 “이번 일은 방송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소위 ‘음원 사재기’와는 분명 다른 사안이었음에도 화면처리 미숙과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거치지 못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이어 “방송 중 뉴이스트 W의 이름이 드러나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에 대해 뉴이스트 멤버들과 팬들, 그리고 소속사인 플레디스 관계자들께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방송이 나간 후, 지금까지 뉴이스트의 사재기 의혹을 제기한 제보는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측 공식입장 전문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지난 1월 4일 ‘조작된 세계–음원 사재기인가 바이럴 마케팅인가?’ 편을 취재하던 중, 본인의 이메일 계정이 도용됐다고 주장하는 제보자를 만났습니다. 해당 제보자는 누군가가 본인의 이메일 계정으로 46개의 지니뮤직 아이디를 만들었고, 이 아이디들을 통해 41차례 같은 음원이 결제되었다는 사실을 인터뷰했습니다. 제작진은 이 내용을 전달하면서 제보자의 이메일로 날아온 결제 내역을 모자이크하여 내보냈으나, 1프레임(1/30초)이 누락 되면서 해당 음원이 ‘뉴이스트 W – Dejavu’라는 게 노출되었습니다. 방송이 나간 뒤 뉴이스트 팬들로 이루어진 ‘뉴이스트 음원총공팀’에서는 한 명의 팬이 개인적으로 ‘뉴이스트 W – Dejavu’의 음원 다운로드를 위해 지니뮤직에서 회원가입을 하던 중, 무작위로 이메일 주소를 입력했고, 그것이 방송에 나온 제보자의 것이었다고 밝혀왔습니다. 제작진은 ‘뉴이스트 음원총공팀’에서 보낸 주장에 대해 검증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후 확인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지난 5일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측의 정정보도 요청 및 공식 사과 입장문을 확인하였고, 뉴이스트 팬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아 ‘만일 주장이 사실이라면 제작진의 화면처리 미숙으로 의혹이 불거진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는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틀에 걸쳐 확인한 끝에 이번 일은 ‘뉴이스트 음원총공팀’의 주장대로 일부 팬의 기입오기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은 1월 4일 방송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소위 ‘음원 사재기’와는 분명 다른 사안이었음에도 화면처리 미숙과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거치지 못한 채 방송 중 뉴이스트 W의 이름이 드러나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에 대해 뉴이스트 멤버들과 팬들, 그리고 소속사인 플레디스 관계자들께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방송이 나간 후, 지금까지 뉴이스트의 사재기 의혹을 제기한 제보는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이번 방송으로 불거진 음원 사재기 의혹에 대해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취재 내용을 공유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모던패밀리’ 박해미 “고3 때 사주 봤다가 이혼수에 충격”

    ‘모던패밀리’ 박해미 “고3 때 사주 봤다가 이혼수에 충격”

    박해미가 “남자를 조심하라”는 역술가의 사주풀이에 ‘동공지진’을 일으키다 ‘폭풍 공감’을 보낸다. 10일 MBN ‘모던 패밀리’(기획 제작 MBN, 연출 송성찬) 46회에서 박해미는 아들 황성재와 신년운을 보기 위해 철학관을 찾는다. 2020년 경자년을 맞아 새로 이사간 월세 집에서 대청소와 요리를 하다가, 재미삼아 사주를 보러 나서는 것. 철학관 방문 전 박해미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고3때 엄마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사주를 봤다”라며 “그때 이혼수가 있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라고 아찔한 추억을 털어놓는다. 이번 철학관에서 역술인은 박해미의 사주를 살펴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나쁘다”라고 운을 뗀다. 이어 “여태까지 돈을 많이 벌긴 했는데, 그게 관리가 안 되는 거다. 박해미 씨는 무조건 은행 거래만 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옆에서 듣던 황성재는 격하게 공감하다가, 급기야 웃다가 쓰러진다. 역술인은 특히 “(박해미가) 호기심이 많은 성격에다가, 사람들을 다 포용하는 편이라 쉽게 사이비에 빠질 수 있다”고 강력 경고한다. 애정운에 대해서도 귀띔하는데 “줄줄이 사탕처럼 나타난다”고 표현, 박해미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나아가 남자들이 쏟아지는 구체적인 년도를 언급하며, 피해야 할 남자 유형과 이상적인 배우자감까지 콕 집어준다. 박해미의 사주풀이를 VCR로 보던 스튜디오 MC와 게스트들은 놀라워 하다가, “저기 어디냐?”며 급 관심을 보인다. 김정난은 사주의 과학(?)에 수긍하며 “전 빨리 결혼하면 무조건 이혼한다고, 늦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너무 늦어졌다”고 밝혀 의도치 않은 짠내를 풍긴다. 박해미에 이어 황성재의 사주도 함께 공개되는데, 이 역술인은 “대박”이라고 외치며 박해미와 180도 다른 리액션을 보인다. 박해미 모자의 신년운 이야기는 10일 ‘모던 패밀리’ 46회에서 공개된다. 이 외에도 2020년 2세를 목표로 한 고명환-임지은 부부가 ‘일일 부모’가 되어 육아에 나서는 모습이 펼쳐진다. 불금 대세 예능 MBN ‘모던 패밀리’는 매주 금요일 밤 11시 방송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동대문, 빗물받이 관리 인력 채용

    서울 동대문구가 빗물받이(빗물을 하수구로 보내기 위한 설비)를 전담 관리할 인력을 채용한다. 동대문구는 오는 3월부터 10월까지 ‘2020년 빗물받이 지킴이’를 운영하기 위해 이번 달 모집에 나선다고 8일 밝혔다. 빗물받이 지킴이는 다중이용시설 및 이면도로의 빗물받이 2만 1000여곳을 점검·관리해 장마철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를 사전에 막는 역할을 한다. 특히 버스정류장, 지하철역 등 유동 인구가 많아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별도의 전담팀을 꾸려 집중 관리한다. 응모자격은 채용공고일인 지난 3일 기준 주민등록 주소지가 동대문구이면서 45~70세인 주민이다. 55세 이상 경제적 자립 취약계층 및 국가유공자법에 따른 취업지원 대상자는 우대한다. 15~16일 구청 7층 치수과를 방문해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모집 인원은 28명이다. 구는 이달 중 서류 및 면접심사를 한 뒤 다음달 초 최종합격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머스크 테슬라 CEO, 윗옷 벗고 둠칫둠칫 막춤 추는 이유

    머스크 테슬라 CEO, 윗옷 벗고 둠칫둠칫 막춤 추는 이유

    미국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런 머스크(48)가 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축하 행사에서 둠칫둠칫 스텝을 밟으며 춤을 췄다. 이같은 축제 분위기는 최근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에서 감원과 공장 운영 재구조화가 진행되는 것과 비교가 된다고 미국 경제 전문 채널 CNBC가 이날 전했다. 이날 머스크가 춤출 만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테슬라 주가가 6개월째 상승한데다 미국 바깥의 공장에서 생산된 모델3을 고객에게 처음 인도했고, 상하이 제조공장인 기가팩토리에서 지난해 3월 발표한 소형 SUV(스포츠 유틸러티 차량)인 모델Y가 미국 바깥에서 첫 생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억만장자인 머스크는 이날 기가팩토리에서 열린 프레젠테이션에서 관중의 환호와 박수에 맞춰 무대에서 팔을 흔들고 둠칫거리다 급기야 양복 윗도리까지 벗어 던지고 막춤을 췄다. 그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는 공장 만화가 그려져 있었다.이날 테슬라 시가 총액은 미국 자동차의 자존심인 GM과 포드를 합친 것과 비슷해졌다. 지난 6개월 사이 주가가 두 배로 수직 상승한 테슬라 시가 총액은 7일 종가 기준으로 845억달러(99조 5000억 원 상당)에 이른다. 이같은 시총은 포드가 1999년 기록한 미국 자동차 업계 최고 시총 808억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역대 최고 몸값으로 기록됐다. 테슬라의 이날 시총은 종가 기준으로 GM의 502억달러, 포드의 367억달러를 합친 것과 비교하면 20억달러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미국 자동차의 대장주가 바뀐 것이다. 미국 투자회사 파운데이션 캐피털의 파트너 폴 홀랜드는 “포드와 GM은 교착 상태인 미국에 빠져있다”며 “테슬라는 중국도 예전 같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제품으로 혁신을 이뤄냈기 때문에 좋은 날을 맞을 만하다”고 설명했다.테슬라 시총은 국제 자동차업계에서는 아직 모자라는 상황이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일본 도요타(2317억달러)와 독일 폴크스바겐(981억달러)에는 못 미치고 있다. 그러나 시총을 제외한 부채, 현금 등을 고려하면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제조회사 기업가치가 훨씬 더 높다. 팩트셋에 따르면 포드는 전체 기업가치가 1540억 달러, GM은 1320억 달러에 이른다. 반면 테슬라의 부채와 현금을 포함한 기업 가치는 약 920억 달러다고 CNBC가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임재현 해명 “‘그알’ 프레임 미리 짜고 취재..사과 요구“[전문]

    임재현 해명 “‘그알’ 프레임 미리 짜고 취재..사과 요구“[전문]

    가수 임재현 소속사 대표가 음원 사재기 의혹을 보도한 ‘그것이 알고 싶다’가 편파 방송이라고 주장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임재현 소속사 디원미디어 김청원 대표는 8일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저희는 1월 4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의 ‘조작된 세계-음원 사재기인가? 바이럴 마케팅인가?’ 편에 관련해 왜곡 편파돼 방송된 것에 대한 사과, 정정 보도를 요청한다”며 “방송 후 가해지는 여론재판 및 인격살인 등의 2차 가해에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지난 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그알)’에서는 지난해 11월 박경이 실명으로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파헤쳤다. 여기에는 신인가수 임재현도 포함됐다. 하지만 임재현 측은 해당 방송에 대해 “저희는 취재 당시, 광고바이럴 업체와 사재기업체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우리는 왜 그 사재기업체와 관련이 없는지에 대해 2시간 넘게 자료를 증빙하고 설명했고 이는 단 1초도 방송되지 않았다”고 편파 방송을 주장했다. 이어 “‘그알’ 측이 방송에 사용한 모든 자료와 주장은 하나도 검증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방송 후반부 ‘우리가 드디어 그 실체를 잡았다’라는 식으로 웅장한 음악을 깔며 의기양양하게 내놓은 자료들은 정작 모자이크에 삐-처리가 되어 아무것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허망한 자료들이었다”며 차라리 실명을 언급하길 바란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소속사 측은 “‘그알’이 프레임을 미리 짜고 취재하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사재기도둑으로 몰려 전국민적인 인격살인과 여론재판을 당하고 있는 그 팀들의 눈물도 최소 10초는 방송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이하 디원미디어 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임재현 소속사 입니다. 저희는 1월4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이후 ‘그알’)의 ‘조작된 세계-음원사재기인가’ 편에 관련해 왜곡 편파되어 방송되어진 것에 대한 사과, 정정 보도를 요청합니다. 방송 후 가해지는 여론재판 및 인격살인 등의 2차가해에 대해 참담함을 느낍니다. 1. 왜 편파 방송인가 그알 측이 저희에게 취재요청을 하던 당시 저희가 일관되게 요구한 사항은, “우리편을 들어달라는게 아니다. 중립의 입장에서 보도해달라”는 거였고 그알 쪽은 반드시 지켜주겠다 하였습니다. 중립이란건 상대측 주장이 5분 보도되면 다른편 주장 역시 5분 보도되야 형평성에 맞을것입니다. ‘100분 토론’ 에서도 공정한 사회자는 양쪽의 주장을 똑같은 시간을 할애하여 발언건을 줍니다. 허나 한쪽에게 5분, 한쪽에겐 1분의 발언건을 준다면 이건 “한쪽은 악의무리 라는 결론을 이미 내고 시작하는 토론”과 다름 없습니다. 저희는 취재 당시, 광고바이럴 업체와 사재기업체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우리는 왜 그 사재기업체와 관련이 없는지에 대해 2시간 넘게 자료를 증빙하고 설명했고 이는 단 1초도 방송되지 않았습니다. 2. 그래서 임재현은 왜 사재기와 관련없다는 것이냐 그알의 주장대로 바이럴업체가 곧 사재기 업체나 다름없고, 그들이 가수측으로 부터 높은 지분을 얻어 그들의 욕심만큼 사재기를 행했을수도 있습니다. 허나 저희는 그 광고바이럴업체에 지분을 준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광고단가를 주고 정해진 광고가 끝나면 더이상의 지분이나 광고집행 없이 깨끗이 광고는 종료됩니다. 지분도 없는 광고업체가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저희의 음원을 사재기 해줬을 동기가 전혀 없습니다. 이는 그알 측과 취재 당시 저희가 충분히 소명하고 증명했던 부분 입니다. 3. 왜 왜곡방송 인가 그알 측이 방송에 사용한 모든 자료와 주장은 하나도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방송 후반부 ‘우리가 드디어 그 실체를 잡았다’라는 식으로 웅장한 음악을 깔며 의기양양하게 내논 자료들은 정작 모자이크에 삐-처리가 되어 아무것도 들을수도 볼수도 없는 허망한 자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자이크 실수 때문에 뉴이스트 라는 그룹이 노출되었고 그알은 이에대해 사재기그룹 맞다라고 인정도 아닌 그렇다고 사과도 아닌 ‘유감이다’ 라는 애매한 표현을 썼습니다. 결국 자신들의 보도에 인정도 사과도 아닌 책임지지 못하는 스탠스를 취할거면서 방송에선 웅장한 음악을 깔고 멋있는 사회자 멘트로 그 도둑을 잡은듯한 영웅놀이 정의 팔이를 했습니다. 이건 제작진이 취재한 자료의 객관성에 검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뉴이스트에게 유감이란 애매한말 말고 정식으로 뉴이스트와 팬들에게 진심어린 사과 하시고, 그 취재자료들이 정말 사실과 팩트에 기반한게 맞다면 현재 인격살인 당하고 있는 6팀에 대해 의혹만 키워서 ‘욕 좀 먹어봐라’ 식으로 빠지지 말고 책임감 있게 나머지 자료를 공개 해주십시요. 그알이 잡았다는 그 도둑들의 플레이리스트에 그 6팀중 한팀도 속해 있다고 했는데 책임감있게 그게 누구인지 공개 해주십시요. 윤민수님은 공개 입장문을 통해 공개를 원하셨으니 저희도 공개를 원하고 거기서 임재현 이름이 나온다 해도 그알 쪽을 고소하지 않겠습니다. 자 6팀중 이제 2팀 동의 했습니다. 그 6팀 중 이걸 공개하기 원치 않는 팀이 있다면 그 팀은 아마 범인 일 확률이 큽니다. 하지만 6팀 모두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그알이 그 가수가 누군지 공개를 원치 않는다면 그알이 ‘주작방송’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애초에 그 자료는 뉴이스트 건 처럼 신빙성이 없는 자료거나, 아님 애초에 그런건 존재하지 않았는데 의혹과 시청률을 위해 있는것처럼 부풀릴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 카드를 공개 해주시고, 급히 그 카드에 아무 이름이나 적어서 제출했다는 의혹이 없도록 1월4일 방송전 취재과정에서 획득한 자료라는 증거를 함께 증빙해서 공개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국민들도 그 카드에 써있는 가수가 누군지 보기 원할것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이 방송은 이미 인터넷에 떠도는 의혹만 짜집기로 주욱 늘어놓고 그 의심받는 6팀의 가수들에게 모든 화살과 의혹을 돌려버린 무책임한 보도 행태라 할수 있습니다. 4. 선동 당한 여론 방송 직후 포털사이트 뉴스란에는 ‘닐로 방송후 sns댓글창 닫아’와 같은 기사가 랭킹뉴스 1위에 오르고 그 밑의 베플에도 ‘임재현등 다른 가수들도 닫았다’등 거짓기사와 여론이 형성되어 마치 이들이 방송 후 도망다니는 듯한 여론과 선동이 이어졌습니다.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저희가수 임재현을 비롯 타가수들도 방송전이든 후든 똑같이 팔로워 들에게만 댓글작성을 허용해왔고 팔로워 안하는 일반 회원들도 모두 공개적으로 그 댓글창을 볼수 있게 열어놨습니다. 설령 방송 후 댓글창을 실제로 닫았다해도 그건 순간적으로 몰리는 몰지각한 악플러들을 피하기 위함일뿐 그어떤 도피행위도 아닙니다. 1분만 확인해보면 알수있는 사실과 팩트들이 어떻게 그렇게 버젓이 가짜로 포장되어 국민 전체가 보는 포털사이트 뉴스기사 1위에 오르고 네티즌들이 그걸 사실로 믿어 베플이 형성되는지 한국 인터넷 문화에 대해 개탄스럽습니다. 또한 방송을 본 네티즌들은 저희가 유튜브에 올린 저희 노래 가창 영상등을 가리켜 부정 바이럴광고 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저희의 가창 영상에 출연한 모든 인물 장소 등은 심지어 저희가 제작비를 들여 제작한 광고 영상도 아닌 지인들이 핸드폰으로 찍어준 가창 영상들입니다. 가수가 본인의 신곡을 가창한 영상을 저희의 유튜브채널 등에 업로드 하는것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행위이며 금품이 오가는 채널도 아니고, 광고 피드에 돈을 주고 올린 모든 광고행위는 ‘광고표시법’을 엄격히 준수했고 그알 취재 당시 모두 소명 했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그게 설령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바이브 측이 밝혔듯 박경도 같은 방식의 바이럴광고를 이미 수차례 해온바 있으며 이미 차트에 있는 80프로 이상의 타가수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홍보 하고 있습니다. 이는 박경 혹은 타가수들 모두 불법 가수라는 뜻이 아니며 대부분 선량하고 합법적인 가수의 정당한 신곡 홍보 방식 입니다. 인터넷 바이럴 뿐만 아니라 신작 영화 개봉과 신곡 홍보를 위해 TV 예능방송에 출연하는 모든 가수들 배우들 역시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방송에서 부르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그알 취재 당시 마치 ‘너희들만 그러잖아’ 라는 식의 프레임을 미리 짜고 취재하는 인상을 받아 저희쪽은 ‘그건 사실이 아닌데 만약 그런 프레임으로 방송을 굳이 해야겠다면 타 가수들도 똑같은 방식을 하고 있으니 이들 모두가 하고 있다며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보도해달라’며 타가수들의 홍보방식 관련한 모든 자료와 증거를 제시하며 요구를 하였고, 이에 대해 제작진은 그 부분에 대해 약속을 하였습니다. 허나 이는 방송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이는 공정보도의 책임이 있는 시사다큐 프로그램으로서는 편파 방송을 했다는 의혹을 비켜갈수 없을 것입니다. 그알이 정말 양측의 발언과 입장을 똑같은 시간을 들여 보도할수 있는 공정한 사회정의 시사다큐 프로그램이라면 방송에서 나왔던 한 제작자의 “사재기 때문에 내가 무능한건지 의심이 들며 힘들다”며 눈물을 흘리고 감성을 자극하는 장면을 40초간 방송한거에 대해서, 똑같이 또다른 입장인 사재기도둑으로 몰려 전국민적인 인격살인과 여론재판을 당하고 있는 그 팀들의 눈물도 최소 10초는 방송했어야 합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좁은 보폭으로 가슴·무릎·발끝이 일직선 되게 올라야

    좁은 보폭으로 가슴·무릎·발끝이 일직선 되게 올라야

    등산 전에 최소 15분간 스트레칭해야 초콜릿 같은 열량 높은 비상식량 준비 등산로 미끄러울 수 있어 발밑 확인을 내려올 때 무릎 살짝 굽혀 충격 줄여야하얗게 눈 덮인 겨울 산에 오르는 것만큼 낭만이 넘치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일도 흔치 않다. 가뜩이나 주말마다 산을 찾는 게 생활스포츠다 보니 가족끼리, 직장 동료들끼리 명산에 올라 새해 소망도 빌고 화합과 성과를 기도하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다. 등산은 근육을 강화하고 심폐 기능과 혈액순환능력을 향상시켜 체력증진에도 큰 도움이 되는 좋은 운동이다. 하지만 겨울 산은 만만하게 보다가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날씨도 춥다 보니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28일 혼자서 한라산을 오르던 이모(48·서울)씨가 심정지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게 대표적이다. 당시 119구조대가 긴급하게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숨졌다. 2016년 1월에는 일행 2명과 함께 설악산을 찾은 60대 남성이 대청봉 근처에서 일행과 뒤처졌다가 강풍과 추위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 사망사고까진 아니더라도 동상, 골절 등 안전사고는 언제라도 겨울산행을 위협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 직원 산악동호회인 ‘기산회’는 2017년 2월 시산제 행사를 위해 소백산을 찾았다가 예상보다 훨씬 추운 날씨에 칼바람이 몰아쳐 일부 직원들이 얼굴에 동상이 생기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7~18년 2년 동안 겨울철(12~2월) 발생한 등산사고는 2364건으로 전체 등산 사고 가운데 17%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사망이 35명, 실종이 31명이나 됐다. 특히 1월에는 조난으로 인한 실종자(16명)가 많은게 특징이다. 변덕스런 날씨와 매서운 바람, 거기다 눈이 쌓이면 평소 잘 아는 곳이라도 원근감이 떨어지고 등산로를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걸 유의해야 한다. 등산로가 얼어붙어 바닥이 미끄러울 수 있기 때문에 발밑을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행안부 관계자는 “집 근처 가까운 산을 오르더라도 모자와 장갑 같은 방한용품을 챙기고 겨울 해가 짧은 걸 감안해 오후 4시 이전에는 하산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어 “초콜릿과 같은 열량이 높은 간식이나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단독 산행보다는 최소 두세 명이 함께 산에 가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많은 이들이 산에 오르기 전 준비운동을 하는 걸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특히 기온이 낮은 겨울철에는 몸이 풀릴 때까지 충분히 준비운동을 해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등산을 하기 전 최소 15분가량은 간단한 체조 등을 하는 게 좋다. 바르게 걷는 자세도 중요하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거나 뒷짐을 지거나 무릎을 짚은 후 그 반동으로 올라가는 것은 모두 관절에 무리를 준다. 가슴과 무릎, 발끝이 일직선이 되도록 반듯하게 서고 허리는 약간 편 상태에서 평지보다 좁은 보폭으로 발바닥 전체가 땅에 닿는다는 느낌으로 걷는 게 좋다. 임종엽 대전을지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내리막길을 걸을 때는 무릎과 발목에 더 큰 하중이 실리기 때문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면서 “터벅터벅 걷지 않고 상체를 약간 뒤로 젖힌 채 양팔을 가볍게 흔들고 무릎을 살짝 굽혀 보폭을 줄여야 무릎과 발목에 가해지는 충격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나·너·우리 담은 ‘미미위’… 재치 넘치는 강남스타일

    나·너·우리 담은 ‘미미위’… 재치 넘치는 강남스타일

    강남 첫 글자 ㄱ·ㄴ으로 창 표현하고 사람·나무·숲 동시 연상되는 2개 형태 시설물·상품 활용… 수익금은 사회 환원 “함께·배려·존중하는 강남 만들자는 뜻”서울 강남구가 자치구 최초로 스타일브랜드 ‘미미위 강남’(ME ME WE GANGNAM)을 개발했다. 강남이 스타일브랜드로 전 세계 관광객들을 사로잡은 뉴욕이나 암스테르담 등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도시로 도약할지 주목된다. 정순균 강남구청장은 7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미미위 강남 언론설명회를 갖고 “강남은 외형적·물질적으론 우리나라 대표도시이자 일등도시지만 함께 어울려 살고 베풀고 나누는 삶은 더 노력해야 한다”며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진정 존경받는 품격 강남을 만드는 게 꿈이고, 그 꿈이 미미위 강남에 담겨 있다”고 밝혔다.미미위 강남은 나(ME), 너(ME), 우리(WE)가 함께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품격 강남을 뜻한다. ‘당신은 또 다른 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너’를 ‘미(ME)’로 표현했다. 정 구청장은 “나 자신과 또 다른 나인 너가 우리가 돼 함께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품격 강남을 만들어가자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개발엔 안병진 동서대 교수와 이현성 홍익대 교수가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총괄 책임자인 안 교수는 “지역의 중요성과 자부심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브랜드는 시각적인 요소와 정서적인 요소를 함께 담고 있어야 한다”며 “미미위 강남은 시각적인 이미지에 공동체적 가치를 정서적으로 결합한 사용자 중심 브랜드”라고 소개했다. 미미위 강남은 영문에 강남의 첫 글자 ㄱ, ㄴ을 섞은 것(왼쪽)과 반추상의 캐릭터를 조합한 것(오른쪽), 두 가지 형태다. 전자는 다양한 사람들의 창의적이며 확장성 있는 공간과 세상을 여는 창을 의미하는 이미지를, 후자는 사람들의 모습과 나무, 숲이 연상되도록 형상화했다. 미미위 강남은 앞으로 버스정류장·공사장 가림막 등 공공시설물과 옥외 조형물, 공원, 주요 거리, 주민 이용 시설에 활용된다. 티셔츠·모자·머그컵·에코백 같은 상품에도 사용된다. 상품은 지역 복지재단이나 문화재단을 통해 판매되고, 그 수익금은 사회에 환원될 예정이다. 스타일브랜드는 뉴욕의 ‘I♡NY’이나 암스테르담의 ‘I am sterdam’과 같이 도시 고유의 매력과 정체성을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한 도시 브랜드다. 정 구청장은 “새로운 스타일브랜드는 강남은 역시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촉매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강남을 글로벌 경쟁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미지가 아니라 미미위 강남이 세계인들 머릿속에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임산부·영유아 사망이나 중대 피해시 산후조리원 즉시 폐쇄된다

    임산부·영유아 사망이나 중대 피해시 산후조리원 즉시 폐쇄된다

    산후조리원이 임산부나 영유아를 사망하게 하거나 신체에 중대한 피해를 입히면 즉시 폐쇄명령을 받는다. 또 감염병을 전파할 것으로 의심되는 직원을 격리하거나 근무를 제한하지 않다가 3차례 이상 적발되면 문을 닫고 과태료 200만원을 물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모자보건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 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개정 시행령에 따르면 감염 또는 질병이 의심되거나 발생해 임산부 등을 이송하고도 소독과 격리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1차 위반시 업무정지 3개월, 2차 이상 위반시 폐쇄 명령이 내려진다. 산후조리업자는 또 감염이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소독 등 환경 관리, 임산부·영유아의 건강관리, 종사자·방문객의 위생관리 조치를 하지 않다가 적발되면 과태료 200만원을 내야 하고 1차 위반시에는 업무정지 1개월, 2차 위반시 업무정지 3개월, 3차 위반시 폐쇄명령을 받게 된다. 산후조리원 서비스의 내용과 요금체계, 중도해약 시 환불기준을 게시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게시하면 1차 위반 시 업무정지 15일, 2차 위반시 업무정지 1개월, 3차 위반시 폐쇄 명령을 받는다. 이번 개정 시행령은 산후조리원의 임산부나 신생아의 건강과 안전을 강화하는 방안을 담은 개정 모자보건법이 오는 16일 시행됨에 따라 행정처분이나 과태료 부과기준, 질병 의심자의 근무제한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정했다. 개정 모자보건법은 면역력이 약한 임산부나 영유아를 단체로 돌보는 산후조리원의 환경 탓에 감염병 발생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마련됐다.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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