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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인격 건드린 남성 성적 사생활…뜨거워진 ‘리얼돌’

    여성 인격 건드린 남성 성적 사생활…뜨거워진 ‘리얼돌’

    35㎏의 실리콘 인형이 한국 사회에 가져온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법원이 여성 신체를 모방한 전신형 성인용품 ‘리얼돌’의 수입 통관을 허가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사생활 영역’이라는 찬성 입장과 ‘인격권 침해’라는 반대 입장이 여전히 팽팽하게 맞선다. 리얼돌을 둘러싼 논란과 쟁점을 짚어 봤다.●1심 재판부 “존엄성 훼손”… 2심에서 판결 뒤집혀 논란은 2017년 한 성인용품 판매업체가 인천세관에서 길이 159㎝, 무게 35㎏ 리얼돌에 대해 수입 통관 보류 처분을 받으며 시작됐다. 리얼돌은 실리콘으로 사람의 피부는 물론 가슴, 성기까지 그대로 재현한 전신 인형이다. 당시 세관은 관세법에 따라 리얼돌이 ‘헌법 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한다고 보고 수입을 금지했다. 업체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를 막아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세관을 상대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리얼돌이 “성적 부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면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봤다. 하지만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재판부는 리얼돌을 ‘성 기구’로 보고 “은밀하고 사적인 영역에 대한 국가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2심 판결이 옳다고 봤다. 이 행정소송을 제기했던 성인용품 판매업체 부르르닷컴 대표 이상진(31)씨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성욕을 해결하는 데 쓰이는 성인용품이 인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건 당연한 이치”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일본의 유명 리얼돌 제조사는 고객이 구매 상담을 하러 왔다가 인생 상담을 한다고 ‘상담실’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며 “리얼돌은 장애인, 노인 등 평소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성 소외자’의 외로움을 달래는 등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씨에 따르면 판매 초반에는 30·40대 남성의 비율이 높았지만 최근 들어 50대 이상 남성의 문의가 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 여성계를 중심으로 “리얼돌이 인간 존엄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일부 업체에서 연예인 등의 얼굴을 본떠 ‘커스터마이징’(맞춤형) 제작을 한다거나 아동을 연상케 하는 인형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해 논란은 더욱 커졌다. 직장인 유모(27·여)씨는 “아무리 인형이라고 해도 실제 여성의 얼굴과 신체를 그대로 모방해 만들 수 있다는 건 여성으로서 소름 끼친다”며 “인형이라고 막 다루다가 현실에서도 상대를 더 가볍게 대할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엔 한 달 동안 26만명 이상이 동의해 정부 답변을 기다리는 상태다.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자 여성가족부는 지난 6일 대책회의를 열고 특정인의 얼굴로 리얼돌을 제작해 초상권을 침해하는 인권침해 문제, 아동·청소년 모형 문제 등을 논의했다. 무소속 정인화 의원은 8일 아동 리얼돌의 수입과 제작, 판매 등을 금지하는 청소년성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아동 형태 리얼돌을 제작·수입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소지자 역시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외국에서도 아동형 리얼돌은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현재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영국 등 대부분 국가에서 리얼돌을 허용하고 있지만 실제 아동의 신체 형태와 크기를 묘사한 리얼돌은 수입·유통이 모두 금지된다. 국내 판매업자들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선 동의한다. 한 리얼돌 판매업체 대표 A씨는 “예전에는 100㎝ 길이 제품부터 있었지만 아동 피해 부분에 공감해 이제는 145㎝ 이상인 제품만 판매한다”고 말했다. ●여성들 “성인용품 반대 아냐… 핵심은 성적 대상화” 그러나 불씨는 여전하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인간의 신체를 모방한 리얼돌이 다른 성인용품과 다르며 그 자체로 잘못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리얼돌은 단순한 인형, 도구가 아니라 실제 여성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한다”면서 “여성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성인용품이 잘못된 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이 만연한 한국 사회의 맥락을 같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대표는 “여성과 거의 똑같은 리얼돌이 자유롭게 유통되면 대상의 신체를 폄하하거나 상품화하는 게 당연시될 수 있다”며 “실제 여성도 인형처럼 돈으로 살 수 있고, 강간할 수 있고, 버릴 수 있다는 등의 인식이 더 쉽게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리얼돌의 주된 목적은 남성에게 여성 신체에 대해 일방적인 통제 능력을 실현하는 듯한 환상을 주는 데 있다”면서 “예뻐해 주는 대상인 동시에 언제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훼손하거나 폐기할 수 있다는 인형의 특징은 이 사회에서 여성이 갖는 위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들은 끊임없이 여성 대상 폭력이 벌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신체를 형상화한 리얼돌은 단순히 인형, 도구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환경연대 안현진 활동가는 “현재도 불법 촬영, 얼굴 합성 등 지인 능욕 범죄가 빈번하게 벌어지는데 처벌은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리얼돌이 자유롭게 유통되면 실제 현실의 여성을 닮은 제품이 나오는 등 악용될 여지도 충분하다”면서 “리얼돌은 여성을 단순히 남성의 성욕을 풀어 주는 대상으로 전락시킬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물론 판매업자들은 이 같은 의견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상진씨는 “리얼돌과 상관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대법원 판결문에도 나오듯이 성적 활동은 어디까지나 사생활”이라며 “실제 범죄와 리얼돌 사용은 구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기술이 더 발전해 3차원(D) 프린터 등이 상용화되면 주위 사람의 얼굴을 모방한 인형을 만들어 사용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는 “악용에 대한 문제는 명예훼손, 초상권 침해 등 현행 민형사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성기를 대체하려고 만든 기존 성인용품과 달리 인체를 형상화한 리얼돌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상대로 일방적인 행위를 실현하려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며 “현재도 불법 촬영, 데이트 폭력 등 수많은 젠더 폭력이 벌어지는데 리얼돌이 일상적으로 쓰이면 인형의 수동성이 실제 여성들에게도 강요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성별에 따라 성인용품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는 게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안현진 활동가는 “여성 성인용품은 성욕 해소라는 본래 기능에 충실하게 만들어지는 반면 남성 성인용품은 계속 현실의 여성을 닮아 간다는 특성이 있다”며 “여성의 성기 모양을 본뜬 남성 자위기구는 ‘23살 대학생, 28살 간호사’같이 구체적인 여성의 특성이 부여되고 특정 인물을 떠올리게끔 홍보한다”고 지적했다. 리얼돌 역시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크다. 실제 판매 사이트에서 여성 리얼돌은 종류가 100가지 이상이지만 남성 리얼돌은 서너 종류에 불과하다. 또 여성 리얼돌은 헤어스타일부터 눈 색깔, 가슴 크기, 성기의 모양까지 선택할 수 있는 데 비해 남성 리얼돌은 선택의 폭이 좁고 제품의 질도 낮다. 이에 대한 판매자들의 반박도 있다. 판매업자 A씨는 “여성용 성인용품 매출을 보면 남성의 성기를 그대로 재현한 제품이 제일 종류도 다양하고 많이 나간다”고 말했다. ●성인용품 시장 꾸준히 증가… 사회 논의 계속될 듯 전 세계적으로 성인용품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마켓워치는 전 세계 성인용품 시장이 2020년까지 520억 달러(약 62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성에 대한 인식이 개방되면서 더 다양한 제품이 빠른 속도로 수입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성적 대상화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한 남성용 성인용품은 ‘실제 여대생의 몸을 일대일로 본떠 만들었다’고 광고해 뭇매를 맞았다. 손, 발 등 신체 일부를 절단한 모양으로 만든 성인용품도 꾸준히 문제로 지적됐다. 손목이 닿는 부분을 여성의 신체 일부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가슴 마우스패드’,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모아 놓은 ‘데스크 매트’ 등 성을 상품화한 제품은 많다. 한 생활용품 온라인몰에서는 여성의 가슴을 연상케 하는 ‘×× 탱탱볼’이란 제품을 팔았다가 고객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성인용품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여성민우회 이편 활동가는 “아동 리얼돌에 대한 규제는 당연히 환영하지만 일반 여성과의 차이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길이가 120㎝인 건 괜찮고, 119㎝인 건 불법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면서 “아동만 따로 구분할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성욕을 해소하는 데 꼭 여성의 신체 모습이 필요한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현진 활동가는 “아동 리얼돌을 규제할 때는 개별적,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리얼돌이 가지는 성적 대상화라는 사회적인 함의를 좁힌다”며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승희 부대표는 “누군가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 단순히 ‘사생활’, ‘성적 자기결정권’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무조건 ‘개방’하거나 허용하는 게 진보적인 가치는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해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무한히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우주를 보다] 인류 피조물과 첫 조우한 해왕성…30년 전 보이저 2호 포착

    [우주를 보다] 인류 피조물과 첫 조우한 해왕성…30년 전 보이저 2호 포착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지난 1989년 8월 25일, 인류의 피조물이 사상 처음으로 태양계 8번째 행성의 근접 사진을 촬영했다. 촬영자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태양계 탐사선 보이저 2호(Voyager 2) 그리고 대상은 이제는 태양계 끝 행성이 된 해왕성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간) NASA는 해왕성 탐사 30주년을 맞아 당시 보이저 2호가 촬영한 해왕성 사진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해왕성의 신비로운 모습이 인상적인 이 사진은 당시 보이저 2호가 약 700만㎞ 떨어진 지점을 지나가며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해왕성은 태양을 기준으로 무려 45억㎞나 떨어져 있어 관측이 대단히 어렵다. 이 때문에 보이저 2호가 남긴 해왕성 사진은 천문학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의 쾌거였다.이 사진과 더불어 보이저 2호는 방향을 살짝 틀어 해왕성의 가장 큰 달인 트리톤(Triton)의 모습도 생생히 잡아냈다. 해왕성의 13개 위성 중 가장 큰 트리톤(지름 2707㎞)은 자전축과 공전방향이 반대인 역행위성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카이퍼 벨트’(Kuiper Belt·해왕성 궤도 밖의 천체가 도넛 모양으로 밀집해 있는 지역)에 있던 트리톤이 해왕성의 힘으로 끌려 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렇게 태양계 행성 탐사를 모두 마친 보이저 2호는 지난해 12월 보이저 1호에 이어 태양권 경계를 넘어 성간 우주에 도달했다. 현재 태양에서 약 180억㎞ 떨어진 심(深)우주를 비행 중으로 누구도 가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른 셈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독일 비엘레펠트 市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하면 13억 줄게”

    독일 비엘레펠트 市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하면 13억 줄게”

    9세기부터 존재해 온 독일의 한 도시가 생뚱맞은 퀴즈를 냈다. 북부 비엘레펠트 시에는 34만명이 거주하고 대학도 있으며 중세 요새까지 갖춘 번듯한 도시다. 그런데 이 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이에게 100만 유로(약 13억 4000만원)를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영국 BBC가 22일(현지시간) 전했다. 25년 동안 이어져 온 이 도시를 둘러싼 음모론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음모론의 시작은 1994년에 한 학생이 독일의 문자메시지 서비스 유스넷(Usenet)에 “비엘레펠트? 그딴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적은 것이 시작이었다. ARD 방송에 따르면 북부 항구 도시 키엘에 살던 정보통신(IT) 전공 대학생 아킴 헬트가 어느날 파티에서 비엘레펠트에서 온 친구를 만났다. 그런 도시 이름 처음 들어봤다니까 모두들 놀라워했다. 호기심이 인 헬트는 그 도시를 찾아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비엘레펠트로 진입하는 도로는 한창 공사 중이라 자꾸 우회하라는 표지판들과 마주쳤다. 해서 헬트는 앞의 문장을 유스넷에 농담 삼아 적은 것이었다. 유스넷은 우리로 치면 하이텔 통신과 같은 것인 모양이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이라 이 문자메시지가 확산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 글은 여러 갈래의 음모론으로 번져나갔고 세월이 많이 흘러 모두가 다 아는 우스갯소리로 독일인의 뇌리에 자리잡았다. 2012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까지 베를린의 한 시상식에 참석해 비엘레펠트에서 열린 이벤트에 참석한 일이 있다고 돌아본 뒤 “고로 비엘레펠트는 존재한다”고 농을 할 정도였다. 청중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고 메르켈 총리는 “내가 거기 가봤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바라건대 다시 가봤으면 한다”고 덧붙였다.성인 독일인이면 누구나 다음달 5일까지 비엘레펠트 마케팅 업체 GmbH 홈페이지에 이 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 문자 등을 올려놓으면 된다. 물론 시 당국과도 합의한 사안이다. 주최 측은 납세자 주머니를 축내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걱정됐는지 상금 전액은 마케팅 업체의 후원사들이 충당할 것이며 아마도 수상자가 나올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금요일마다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한다는 집회를 열어온 이 도시의 환경단체들은 이번 이벤트를 본떠 기후변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이에게 역시 100만 유로를 주겠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BBC는 마지막으로 비엘레펠트가 관광지로 내세울 만한 것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여느 다른 독일 도시만큼 매력적인 것들이 있다며 셋을 들었다. 독일 최대 식품업체 중 하나인 닥터 오에트커 본사가 있으며, 현재는 분데스리가 2부에 머무르고 있지만 한때 1부 리그에 몸담았던 아르미니아 비엘레펠트의 연고지이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영화로도 제작된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독일어 제목 Der Vorleser)의 저자인 베른하르트 슐링크(75)가 태어난 곳이며 그는 비엘레펠트 대학에서 제자들을 길러냈다고 소개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여행지 같은 공간… 어서 와, 이런 휴게소는 처음이지

    여행지 같은 공간… 어서 와, 이런 휴게소는 처음이지

    한가위 연휴가 겹친 9월은 초가을 나들이를 떠나기에 더없이 좋은 달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전국의 특색 있는 휴게소 6곳을 9월의 ‘추천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휴게소 자체가 여행 목적지가 되는 ‘여행이 가능한 휴게소’들이다. 한가위 때 고향 오가는 길에 잠시 들러도 좋겠다.●경기 이천 덕평자연휴게소 영동고속도로 덕평자연휴게소는 덕평소고기국밥으로 이름난 곳이다. 2016년 한 해 동안 60만 그릇 가까이 팔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유명 음식점 수준의 푸드 코트와 쇼핑몰을 갖췄고, 아름다운 정원①에서 산책도 할 수 있다. 아이들과 ‘터널 갤럭시 101’②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것도 환상적인 경험이다. 개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반려견 전용 풀장도 만들었다. 인근의 이천도자예술마을 예스파크(藝’s Park)는 도자기 장인들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문화 공간이다. 한자리에서 다양한 도자기를 보고 싶다면 이천세라피아가 적당하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이천 출신 외교관 서희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서희테마파크, 우리나라에서 처음 문을 연 한국동요박물관을 둘러봐도 좋다.●강원 인제 내린천휴게소 서울양양고속도로에 있는 내린천휴게소는 ‘V자’ 모양의 독특한 상공(上空)형 휴게소다. 내부 인테리어③와 외부 디자인④도 독특하다. 휴게소 안에서는 유리창으로 강원도의 그윽한 산세를 감상하고, 옥상 전망대에서는 깨끗한 공기를 온몸으로 누린다. 휴게소 내 백두숨길관에서 국내 터널 중 가장 긴 인제양양터널 건설 과정과 백두대간 생태계를 살펴볼 수 있다. 연꽃이 활짝 핀 생태습지공원도 매력적이다. 자작나무와 갈대 등 각종 식물을 보며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다. 휴게소 인근에 방태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울창한 숲에서 하룻밤 묵은 뒤, 방동약수 한 그릇 마시면 일상의 피로가 사라진다. 내린천을 따라 드라이브하다 보면 순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속삭이는 자작나무숲’과 만난다. 박인환문학관, 인제산촌민속박물관 등에서 인제의 문화를 맛볼 수 있다.●충북 단양팔경휴게소 중앙고속도로 단양팔경휴게소는 알찬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거리를 갖춰 쉼터 이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상행선(춘천 방향) 휴게소 건물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198호)와 단양 적성(사적 265호)을 만난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내려오면 충주호 전망이 보석처럼 펼쳐진다. 별빛테마공원은 야간에 빛나는 또 다른 보물이다. 쏟아지는 별빛을 볼 수 있다. 망원경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 마늘수제떡갈비가 대표 메뉴로 꼽히는데, 마늘왕돈가스도 휴게소의 별미다. 하행선(부산 방향) 휴게소는 직원들이 꾸민 야생화테마공원⑤ ⑥과 원두막 음식 배달 서비스가 돋보인다. 장승과 솟대, 물레방아 등 아기자기하게 꾸민 산책로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반려견을 위한 작은 놀이터도 있다.●충북 옥천 금강휴게소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는 자체가 여행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휴게소 뒤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여느 전망대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휴게소에서 금강 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차를 이용해 외부 도로를 따라 내려가 낚시와 수상스키를 즐길 수도 있다. 금강휴게소의 별미는 도리뱅뱅이⑦다. 금강 쪽 테라스⑧에 있는 ‘사랑의 그네’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 난간 쪽 철조망에 이들이 사랑을 염원하며 다닥다닥 매단 자물쇠가 보인다. 옥천은 정지용의 시 ‘향수’의 무대다. 생가와 문학관에서 시인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군북면 추소리의 부소담악은 물 위로 솟은 기암절벽으로, 우암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예찬한 절경이다. 이원면의 이원양조장은 1930년대에 설립해 4대째 막걸리를 빚는 곳이다. 예약하면 견학과 시음도 가능하다.●삼국유사군위휴게소와 군위영천휴게소 상주영천고속도로에서 만나는 삼국유사군위휴게소와 군위영천휴게소는 각각 ‘복고’와 ‘공장’을 테마로 내방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삼국유사군위휴게소가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 못지않은 1960~1970년대 분위기의 이색 공간⑨으로 인기몰이 중이라면, 군위영천휴게소는 최근 유행하는 업사이클링 공간을 재현한 독특한 폐공장 인테리어로 승부한다. 대표 먹거리인 ‘추억의 도시락&라면’⑩을 비롯해 쫀드기, 라면땅 등 그 시절 먹거리를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삼국유사군위휴게소는 군위 여행의 전초기지 역할도 톡톡히 한다. 이곳에서 5㎞ 정도 떨어진 동군위 IC를 이용하면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인각사와 홍예문이 인상적인 화산산성, 엽서처럼 예쁜 화본역 등 군위의 대표 여행지에 가기 쉽다.●완주 이서휴게소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⑪는 서전주 IC와 김제 IC 중간 지점에 있다. 규모는 작아도 먹고, 쉬고, 즐기는 재미가 있다. 으뜸은 먹는 재미. 한국도로공사 전북본부 관내 휴게소에서 2900원에 판매하는 우동과 라면은 가성비가 좋다. 애호박과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애호박국밥, 꼬막과 채소에 유자청 고추장으로 상큼함을 더한 꼬막비빔밥은 올봄 한국도로공사 전북본부가 주관한 ‘휴게소 대표 음식 선발대회’에서 각각 대상과 동상을 수상했다. 안마 의자와 벨트 마사지 기구를 갖춘 휴식 공간⑫, PC와 복합기가 있는 쉼터, 아늑한 수유실도 만족스럽다. 순천 방향 휴게소 야외에는 전래 동화 ‘콩쥐팥쥐’를 주제로 조성한 포토 존이 있다. 글 사진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한국관광공사
  • 여행지 같은 공간… 어서 와, 이런 휴게소는 처음이지

    여행지 같은 공간… 어서 와, 이런 휴게소는 처음이지

    한가위 연휴가 겹친 9월은 초가을 나들이를 떠나기에 더없이 좋은 달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전국의 특색 있는 휴게소 6곳을 9월의 ‘추천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휴게소 자체가 여행 목적지가 되는 ‘여행이 가능한 휴게소’들이다. 한가위 때 고향 오가는 길에 잠시 들러도 좋겠다.●경기 이천 덕평자연휴게소 영동고속도로 덕평자연휴게소는 덕평소고기국밥으로 이름난 곳이다. 2016년 한 해 동안 60만 그릇 가까이 팔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유명 음식점 수준의 푸드 코트와 쇼핑몰을 갖췄고, 아름다운 정원①에서 산책도 할 수 있다. 아이들과 ‘터널 갤럭시 101’②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것도 환상적인 경험이다. 개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반려견 전용 풀장도 만들었다. 인근의 이천도자예술마을 예스파크(藝’s Park)는 도자기 장인들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문화 공간이다. 한자리에서 다양한 도자기를 보고 싶다면 이천세라피아가 적당하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이천 출신 외교관 서희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서희테마파크, 우리나라에서 처음 문을 연 한국동요박물관을 둘러봐도 좋다.●강원 인제 내린천휴게소 서울양양고속도로에 있는 내린천휴게소는 ‘V자’ 모양의 독특한 상공(上空)형 휴게소다. 내부 인테리어③와 외부 디자인④도 독특하다. 휴게소 안에서는 유리창으로 강원도의 그윽한 산세를 감상하고, 옥상 전망대에서는 깨끗한 공기를 온몸으로 누린다. 휴게소 내 백두숨길관에서 국내 터널 중 가장 긴 인제양양터널 건설 과정과 백두대간 생태계를 살펴볼 수 있다. 연꽃이 활짝 핀 생태습지공원도 매력적이다. 자작나무와 갈대 등 각종 식물을 보며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다. 휴게소 인근에 방태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울창한 숲에서 하룻밤 묵은 뒤, 방동약수 한 그릇 마시면 일상의 피로가 사라진다. 내린천을 따라 드라이브하다 보면 순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속삭이는 자작나무숲’과 만난다. 박인환문학관, 인제산촌민속박물관 등에서 인제의 문화를 맛볼 수 있다.●충북 단양팔경휴게소 중앙고속도로 단양팔경휴게소는 알찬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거리를 갖춰 쉼터 이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상행선(춘천 방향) 휴게소 건물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198호)와 단양 적성(사적 265호)을 만난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내려오면 충주호 전망이 보석처럼 펼쳐진다. 별빛테마공원은 야간에 빛나는 또 다른 보물이다. 쏟아지는 별빛을 볼 수 있다. 망원경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 마늘수제떡갈비가 대표 메뉴로 꼽히는데, 마늘왕돈가스도 휴게소의 별미다. 하행선(부산 방향) 휴게소는 직원들이 꾸민 야생화테마공원⑤ ⑥과 원두막 음식 배달 서비스가 돋보인다. 장승과 솟대, 물레방아 등 아기자기하게 꾸민 산책로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반려견을 위한 작은 놀이터도 있다.●충북 옥천 금강휴게소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는 자체가 여행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휴게소 뒤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여느 전망대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휴게소에서 금강 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차를 이용해 외부 도로를 따라 내려가 낚시와 수상스키를 즐길 수도 있다. 금강휴게소의 별미는 도리뱅뱅이⑦다. 금강 쪽 테라스⑧에 있는 ‘사랑의 그네’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 난간 쪽 철조망에 이들이 사랑을 염원하며 다닥다닥 매단 자물쇠가 보인다. 옥천은 정지용의 시 ‘향수’의 무대다. 생가와 문학관에서 시인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군북면 추소리의 부소담악은 물 위로 솟은 기암절벽으로, 우암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예찬한 절경이다. 이원면의 이원양조장은 1930년대에 설립해 4대째 막걸리를 빚는 곳이다. 예약하면 견학과 시음도 가능하다.●삼국유사군위휴게소와 군위영천휴게소 상주영천고속도로에서 만나는 삼국유사군위휴게소와 군위영천휴게소는 각각 ‘복고’와 ‘공장’을 테마로 내방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삼국유사군위휴게소가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 못지않은 1960~1970년대 분위기의 이색 공간⑨으로 인기몰이 중이라면, 군위영천휴게소는 최근 유행하는 업사이클링 공간을 재현한 독특한 폐공장 인테리어로 승부한다. 대표 먹거리인 ‘추억의 도시락&라면’(10)을 비롯해 쫀드기, 라면땅 등 그 시절 먹거리를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삼국유사군위휴게소는 군위 여행의 전초기지 역할도 톡톡히 한다. 이곳에서 5㎞ 정도 떨어진 동군위 IC를 이용하면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인각사와 홍예문이 인상적인 화산산성, 엽서처럼 예쁜 화본역 등 군위의 대표 여행지에 가기 쉽다.●완주 이서휴게소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11)는 서전주 IC와 김제 IC 중간 지점에 있다. 규모는 작아도 먹고, 쉬고, 즐기는 재미가 있다. 으뜸은 먹는 재미. 한국도로공사 전북본부 관내 휴게소에서 2900원에 판매하는 우동과 라면은 가성비가 좋다. 애호박과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애호박국밥, 꼬막과 채소에 유자청 고추장으로 상큼함을 더한 꼬막비빔밥은 올봄 한국도로공사 전북본부가 주관한 ‘휴게소 대표 음식 선발대회’에서 각각 대상과 동상을 수상했다. 안마 의자와 벨트 마사지 기구를 갖춘 휴식 공간(12), PC와 복합기가 있는 쉼터, 아늑한 수유실도 만족스럽다. 순천 방향 휴게소 야외에는 전래 동화 ‘콩쥐팥쥐’를 주제로 조성한 포토 존이 있다. 글 사진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한국관광공사
  • 갤러리 같은 도시… 다 같이 돌자 ‘도슨트 투어’ 한 바퀴

    갤러리 같은 도시… 다 같이 돌자 ‘도슨트 투어’ 한 바퀴

    안양(安養). 불교에서 극락을 뜻하는 여러 단어 중 하나입니다. 멀리 서쪽에 있다는 이상향 극락안양정토(極樂安養淨土), 혹은 안양정토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이 1100년 전 실재했던 한 절집의 기와에 새겨져 있었으니 경기 안양이 사람들의 정주 공간으로 기능한 것도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오르는 셈입니다. 수도 서울의 위성도시쯤으로 여겼던 안양이 내공 깊은 불교 성지였다는 것도 뜻밖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옛 성지 안에 수많은 공공예술 작품들이 별처럼 흩뿌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도시 자체를 거대한 갤러리로 만들겠다는 계획 중 하나라고 하는데, 그 원대한 계획의 일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예술의 향기로 가득 차는 느낌이었습니다.●‘예술의 향기’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공공예술작품 안양 여정의 중심지는 석수동 안양예술공원이다. 안양이란 지명의 기원이 된 1100년 전 안양사(安養寺) 절터에 조성된 공원이다. 삼성산과 관악산 사이 계곡 약 2㎞ 안에 박물관, 공공예술작품 등이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다. 선인들의 흔적부터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가의 작품까지 엿볼 수 있다. 삼성산 계곡은 물이 맑고 수량도 풍성해 안양시민들이 자주 찾는 유원지다. ‘대가들의 예술 작품으로 치장된 계곡’에서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는 느낌은 어떨까. 일상에서 예술을 만나는 안양시민들이 마냥 부럽다. 가장 먼저 김중업건축박물관부터 들른다. “건축물은 완성되는 순간부터 작가를 떠나 버린다. 한 개인이 창조한 결과가 작가의 것만이 아닌 사회 속으로 객관화한다”는 말을 남긴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1959년 유유산업 공장 건물로 세워진 것을 안양시에서 매입해 박물관으로 꾸몄다. 옛 공장 건물을 설계한 이는 저 유명한 김중업 건축가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를 사사한 그는 이제 스스로가 한국 건축의 전설이 되어 가는 중이다. 박물관 건물 자체가 보존해야 할 ‘박물’이 된 셈이다. 박물관은 외관부터 독특하다. 곤충의 다리를 닮은 구조물이 본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모양새다. 현지 학예사는 “건물 내의 보와 기둥을 제거하고 넓고 시원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구조물을 건물 옆으로 뺐다”고 했다.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원칙 중 하나인 ‘자유로운 평면’이 여기에 구현된 셈이다. 건물 내부에선 추상예술 작품 같은 건축 도면을 비롯해 서강대 본관, 주한 프랑스대사관 등 김중업이 남긴 각종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1995년 철거된 옛 제주대 본관 모형이 특히 애처롭다. 제주 바다의 생명력이 그대로 담긴 유려한 건축물을 부숴 버린 우리의 무지는 아마 후대에까지 두고두고 조롱거리로 남지 싶다.●김중업건축박물관·안양역사박물관… 도슨트 투어 강추 건축박물관 바로 앞은 안양역사박물관이다. 역시 김중업이 설계한 공장 건물을 재활용했다. 건물엔 필로티, 옥상 정원, 자유로운 평면, 수평창, 자유로운 파사드 등 이른바 ‘르코르뷔지에의 5원칙’이 충실하게 적용됐다. 지금부터 꼬박 60년 전에 이미 모더니즘의 정수가 국내 건축에 적용됐던 셈이다. 안양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는 ‘새겨진 아름다움-안양의 보물을 찾아서’전이 열리고 있다. ‘안양’이란 글씨를 새긴 안양사 기와, 선사시대 토기 등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던 관양동 선사유적 출토 유물 약 170점을 전시 중이다. 전시물은 모두 진품이다. 국내 유일의 석수동 마애종(도 유형문화재 92호) 탁본도 인상적이다. 이름 그대로 석수동 암벽에 새긴 타종 벽화를 탁본으로 떴다. 고려시대 장인의 솜씨를 실물보다 훨씬 섬세하게 엿볼 수 있다.도슨트 투어는 안양 여정의 정수다. “예술과 사람 사이의 낯가림을 완화시켜 주는 것이 도슨트”라는 안내자의 말처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공원을 돌다 보면 작품과의 거리감은 좁혀지고 예술가가 말하 려는 것을 한결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출발지는 ‘안양파빌리온’이다. 안양예술공원의 랜드마크이자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의 허브다.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로 시자 비에이라가 설계한 건축물로 전시공간 겸 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3년마다 열리는 안양 트리엔날레의 주무대도 바로 이곳이다. 올해는 10월 17일~12월 15일 열린다. 건물은 어느 각도에서도 같은 형태로 보이지 않은 득특한 구조로 설계됐다. 내부엔 ‘돌베개 정원’, ‘무문관’ 등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일상 공간처럼 책을 읽거나 앉아 쉴 수 있다. 밖으로 나서면 ‘거울미로’, ‘안양상자집-사라진 (탑)에 대한 헌정’, ‘먼 곳을 바라보는 남자(창학)/복사집 딸내미(성은)’, ‘용의 꼬리’, ‘전망대’ 등 각국 작가들의 작품이 줄줄이 이어진다. 작품 중 일부는 밤 10시까지 조명이 들어온다. ‘안양상자집’,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등의 야경이 빼어나다.●안양사·삼막사… 고색창연한 옛 절집도 들러볼 만 주변에 고색창연한 옛 절집도 많다. 안양사는 안양이란 도시 이름의 기원이 된 절집이다. 옛 절터 위에 새로 조성됐다. 고려시대 조성된 귀부(도 유형문화재 93호)와 부도 등이 남아 있다. 삼막사는 안양예술공원에서 다소 떨어져 있다. 바위를 깎아 ‘거북 귀’(龜) 자를 세 가지 다른 형태로 새긴 ‘삼귀자’, 원효가 수도했다는 원효석굴 등이 남아 있다. 삼막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남녀근석(안양8경 중 2경)과 마애삼존불(도 유형문화재 94호)이다. 나라 안에 남녀의 생식기를 닮은 바위가 한두 개는 아니지만, 이렇게 둘이 ‘위험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은 드물다. 마애삼존불은 남녀근석 바로 앞의 칠성각 안에 모셔져 있다. 칠성각은 조선 영조 40년(1764)에 조성됐다. 삼존불의 가운데, 그러니까 본존불은 ‘치성광여래’다. 자식을 갖고 싶어 하는 이들이 주로 믿었던 부처님으로,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다. 칠성각 창건 이전부터 남녀근석이 치성의 대상이었다고 하니, 치성광여래가 남녀근석 바로 앞에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삼막사 인근에서 맞는 해넘이가 멋들어지다. 수많은 산과 건물의 숲을 지나 멀리 인천 앞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감상할 수 있다. 글 사진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1) → 안양예술공원의 도슨트 투어 가운데 ‘한낮투어’는 3~11월 평일(오전 11시, 오후 2시), 주말(오전 10시, 오후 2시, 오후 4시)에 운영된다. 월요일은 휴무다. 출발 장소는 안양파빌리온이며 참가비는 1000원이다. 90분 소요. ‘달밤투어’는 3~11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오후 7시(6~8월은 오후 8시)에 진행된다. 참가비 3000원. 80분 소요. 687-0548. → 특별전시관의 ‘새겨진 아름다움-안양의 보물을 찾아서´ 전시해설은 오전 10시 30분, 오후 1시 30분, 3시 30분 등 하루 세 차례 진행된다. → 삼막사는 신도 버스를 타고 오르는 게 좋다. 하루 등산 코스와 맞먹는 거리여서 일반 관광객이 걸어 오르기에는 매우 부담스럽다. 삼막삼거리 한마음선원 맞은편에 정류장이 있다. 하루 일곱 번 왕복한다. → 봉암식당(471-7428)은 안양유원지의 터줏대감 정도로 인식되는 맛집이다. 흔한 유원지 식당과 달리 맛이 꽤 깊다.
  • 서초 ‘서리풀원두막’, 폭염대책 표준이 되다

    서초 ‘서리풀원두막’, 폭염대책 표준이 되다

    유럽 친환경상·행안부 지침 모델 등극 전국 지자체·공공기관 필수 시설물로서울 서초구의 서리풀원두막이 전국으로 퍼지며 ‘대한민국 표준’으로 자리매김했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던 올여름, 전국 자치단체에서 그늘막, 쿨링포그, 도로 살수차 등으로 총력 대응에 나선 가운데 시민들의 일상에서 특히 유용하게 쓰인 건 횡단보도 앞 그늘막이 꼽힌다. 서울을 비롯해 경기, 강원, 충남, 전남, 제주 등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거리마다 펼쳐진 우산 모양의 그늘막이 ‘필수품’처럼 자리하게 됐다. 이 그늘막의 원조는 서초구가 2015년 자체 제작한 ‘서리풀원두막’이다. 그해 6월 서초의 횡단보도 두 곳에 첫선을 보인 서리풀원두막은 뜨거운 햇볕 아래 교통 신호를 기다리는 구민들을 위해 잠시 쉬어갈 그늘을 만들어 주자는 세심한 배려에서 잉태됐다. 전국 최초로 고정식 그늘막인 서리풀원두막을 만든 구는 1년간 시범 운영을 거쳐 자외선 차단 효과, 안전성, 디자인 등을 보완해 그늘막을 확대해 설치했다. 생활밀착형 행정으로 2017년 유럽의 친환경상인 ‘그린 애플 어워즈’를 받았고 지난 4월에는 행정안전부의 ‘폭염 대비 그늘막 설치 관리 지침’의 모델이 됐다. 이에 올여름에는 전국 지자체와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의 벤치마킹 대상이 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폭염 대비 필수 시설물로 입지를 굳혔다. 서초의 서리풀원두막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봄이나 가을엔 꽃 화분을 곁들여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빛내고 겨울철에는 트리로 변신해 따뜻한 분위기를 전한다. 최근에는 거동이 불편한 시민들을 위해 서리풀 의자도 설치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99도의 물을 끓게 하는 마지막 1도처럼, 세심한 정성을 더하는 생활밀착형 행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틀간 14차례 해명… 적극 방어 나선 조국

    “사실과 다르다.” “사실이 아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준비 중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연일 쏟아지는 의혹 제기에 적극 방어전을 펴면서 해명 횟수도 크게 늘었다. 인사청문회 준비단을 꾸릴 때만 해도 최소한의 인력으로 기존 업무와 병행하겠다고 하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조 후보자는 22일 서울 종로구 적선동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저와 제 가족이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이 컸던 만큼 가족 모두가 더 조심스럽게 처신했어야 했다”며 “국민 여러분의 따가운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은 청문회에서 소상히 밝히겠다”며 야당의 사퇴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던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의 전철은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20대 시절 교제하던 여성의 동의 없이 몰래 혼인신고를 한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내정 닷새 만에 물러났다. 이 때문인지 조 후보자 측은 의혹 보도에 적극 맞서는 중이다. 전날에는 5차례, 지난 20일에는 9차례에 걸쳐 입장을 냈다. 이 과정에서 조 후보자 측 해명이 오히려 의혹을 더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조 후보자 딸이 고교 시절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린 의학 논문이 대학 입시에 활용됐을 것이란 의혹 제기에 불분명한 해명을 하면서 거짓말 논란이 불거지자 A4 두 쪽 분량의 입장문을 21일 다시 냈지만 의혹은 여전하다. 지난 15일에도 조 후보자 가족이 투자한 사모펀드가 ‘블라인드 펀드’라 어느 종목에 투자됐는지도 모른다고 했다가 ‘매 분기 투자 보고를 해야 한다’는 정관 내용이 알려지자 엿새 만에 다시 입장문을 냈다. 투자 종목을 알 수 없었던 이유로 ‘이해상충 금지 조항’을 근거로 들었는데, 전문가들은 “블라인드 펀드와 이해상충 금지 조항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이틀간 14차례 입장문...적극 방어 나선 조국

    이틀간 14차례 입장문...적극 방어 나선 조국

    쏟아지는 의혹에 총력전“거짓말 논란 등 의혹 키워”“사실과 다르다”, “사실이 아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준비 중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연일 쏟아지는 의혹 제기에 적극 방어전을 펴면서 해명 횟수도 크게 늘었다. 청문회 준비단을 꾸릴 때만 해도 최소한의 인력으로 기존 업무와 병행하겠다고 하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조 후보자는 22일 서울 종로구 적선동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저와 제 가족이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이 컸던 만큼 가족 모두가 더 조심스럽게 처신했어야 했다”며 “국민 여러분의 따가운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은 청문회에서 소상히 밝히겠다”며 야당의 사퇴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던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의 전철은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20대 시절 교제하던 여성의 동의 없이 몰래 혼인신고를 한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내정 닷새 만에 물러났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인사는 “초반에 문제가 터지더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조 후보자 측은 의혹 보도에 적극 맞서는 중이다. 전날에는 5차례, 20일에는 9차례에 걸쳐 입장을 냈다. 이 과정에서 조 후보자 측 해명이 오히려 의혹을 더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조 후보자 딸이 고교 시절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린 의학 논문이 대학 입시에 활용됐을 것이란 의혹 제기에 불분명한 해명을 하면서 거짓말 논란이 불거지자 A4 두 쪽 분량의 입장문을 21일 다시 냈지만 의혹은 여전하다. 지난 15일에도 조 후보자 가족이 투자한 사모펀드가 ‘블라인드 펀드’라 어느 종목에 투자됐는지도 모른다고 했다가 ‘매 분기 투자 보고를 해야 한다’는 정관 내용이 알려지자 엿새 만에 다시 입장문을 냈다. 투자 종목을 알 수 없었던 이유로 ‘이해상충 금지 조항’을 근거로 들었는데, 전문가들은 “블라인드 펀드와 이해상충 금지 조항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러닝머신으로 8개월만에 20㎏ 감량…놀라운 신체 변화 공개

    러닝머신으로 8개월만에 20㎏ 감량…놀라운 신체 변화 공개

    러닝머신 위를 달려 8개월 만에 20㎏이 넘는 체중을 감량한 한 남성의 사연이 세상에 공개돼 화제다. 21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런던에 사는 빌리 리처즈(25)는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지난 1월 1일부터 거의 매일 50분 동안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걸어 놀라운 변화를 직접 체험했다. 이와 함께 그는 그동안 종종 자신이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자기 몸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보고 스스로를 독려했다. 이를 통해 그는 새해 첫날 107.95㎏이었던 체중을 지난 8월 1일까지 86.1㎏으로 감량할 수 있었던 것이다.실제로 그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몸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월 15일 보름 만에 5.45㎏을 감량해 102.5㎏이 됐던 그는 다음 달 체중이 98.42㎏으로 두 자릿수로 진입한다. 유산소 운동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던 것이다. 그 후로도 탄력이 붙었는지 그는 6월 1일 87㎏까지 감량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보기보다 순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스트레스 탓에 몇 번 정크푸드를 먹어 다시 체중이 불어났었다고 밝혔다. 이는 다음 달인 7월 1일 88㎏으로 다시 1㎏이 늘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건강한 몸만들기를 계속해 나갔다. 결국 지난 1일 86㎏대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정확히 만 7개월 만에 체중을 22㎏ 이상 감량한 것이다. 그동안 그가 러닝머신 위에서 뛰거나 걸은 거리는 총 282㎞였다. 이는 단순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마라톤 거리 42.195㎞보다 6.6배 먼 거리다. 이에 대해 그는 “체중 감량을 하기 전까지 신체 건강이 좋지 않았고 움직임도 느렸다. 이제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생겼고 훨씬 더 행복하다”면서 “인생을 더 행복하게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빌리 리처즈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훈민정음, 신미대사가 만들었다고?… 창제가 아니라 보급에 이바지했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훈민정음, 신미대사가 만들었다고?… 창제가 아니라 보급에 이바지했죠”

    ‘훈민정음학 박사’ 김슬옹 원장이 전하는 한글 창제 전후“훈민정음을 신미대사가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신미대사 그분을 욕뵈는 일입니다. 훈민정음을 누가 창제했는지 모르거나 불분명할 때 소설이나 영화에서 신미대사가 만들었다고 주장한다면 상상예술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글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신미대사는 훈민정음 창제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불교 지식으로 불경의 한글화 등을 통해 훈민정음에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훈민정음 창제에 신미대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영화와 소설이 최근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훈민정음학 해례본 간송본 원본을 최초로 직접 보고 해설한 훈민정음학 박사 김슬옹(58)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여러모로 답답해 한다. 인터넷에도 신미대사 창제설이 넘쳐나고 있다. 훈민정음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하면 훈민정음에 대해 제대로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 있는 연구실로 찾아갔다.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 실록·해례본 기록 명확세종, 신미대사 창제 후 이름 들어… 문종 실록불경을 먼저 한글로 낸 이유?… 소헌왕후 명복”- 신미대사는 허구의 인물인가? 아니면 조선왕조실록, 특히 세종실록에 등장하는 사람인가. “신미대사는 당연히 왕조실록에 나오는 실존 인물입니다. 세종대왕이 신미대사를 만났다는 기록은 세종실록에 나옵니다. 1446년 5월 27일, 운명한 왕비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재암에서 금으로 베껴쓴 불경 봉정식을 할 무렵 세종이 신미대사를 만났을 겁니다. 금사 불경 봉정식에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승려 2000여명이 모였답니다. 불사는 7일간 계속됐습니다. 세종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 문종도 훗날 ‘대행왕(세종)께서 병인년(1446)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다’고 증언합니다.” - 세종이 신미대사를 처음 만난 게 1446년 5월이면, 훈민정음 창제 이후이고 반포 직전의 시기다. “그렇죠. 세종은 훈민정음을 1443년 완성하고, 시험 기간을 거쳐 1446년 9월 상순에 반포했습니다. 그 사이 즉 반포 6개월 전인 1446년 3월 소헌왕후가 운명합니다.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불경을 금사했고, 그때 신미대사를 만났다는 것이 실록의 기록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세종대왕이 신미대사를 비밀리에 만났을 수도 있겠지만, 세종 대신 섭정을 했던 문종이 이런 주장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문종 실록 1450년 4월 6일자 기록에서 문종이 직접 말하기를 ‘대행왕께서 병인년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었는데…’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 창제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신미대사는 무슨 역할을 했나. “운명한 소헌왕후를 위한 대법사가 있은지 4개월쯤 뒤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완성됩니다. 이와 거의 동시에 불경을 통해 훈민정음 보급을 시도하자 사대부들의 반발에 부딪칩니다. 최만리, 하위지와 같은 많은 학자들의 반대로 훈민정음 보급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세종이 내세운 논리를 요약하면 ‘왕비가 죽었지 않느냐. 괴롭고 외로운 내 처지를 이해해 달라’며 감성적으로 호소하면서 한글로 풀어쓴 언해 불경을 낸 것이지요. 명복도 더욱 빌고, 세종 자신도 위로하고, 새 문자도 보급하는 다중 포석을 놓은 겁니다. 불경 언해를 펴내기 위해서는 불경과 관련된 산스크리트말에 능통하고 훈민정음 취지를 잘 아는, 이미 불사를 통해 검증된 신미대사와 그의 동생 김수온이 있어 마음 든든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온 이후 가장 먼저 나온 한글 보급서가 1447년 완성되고 1449년 간행된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입니다. 불교지식이 넓은 신미대사가 불경의 한글화를 통해 훈민정음 보급에 앞장 섰지만 한글 창제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훈민정음 산스크리트 모방?…한글은 차원 달라범어·파스파·티벳 곡선… 한글은 점과 직선 위주문자 비슷해?… 해례본서 자모 모양 근거 밝혀”어려서 천자문을 배웠던 그는 학교에서 ‘한자 박사’로 통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영향을 받아 한글과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고교시절 부모님이 주신 이름 김용성에서 ‘슬기롭고 옹골차다’는 뜻의 우리말 ‘슬옹’으로 이름지었다. 대학교 2학년때 법적으로 개명했다. 대학시절인 1984년 당시 흔히 부르던 ‘서클’을 ‘동아리’로 바꾸는데 앞장섰다. 새내기(신입생), 해오름식(창단식) 등도 그가 앞장서 보급한 우리말이다. 유별난 한글 사랑에 인터뷰 당일 훈민정음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 신미대사가 범어 전문가라고 하는데 훈민정음에 범어 흔적이 남아있지 않나. “신미대사가 범어 즉 산스크리트말에 능통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당시 뛰어난 스님이니까 불경을 공부하면서 범어를 익히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세종대왕이 문자를 창제할 당시 오늘날 사용하는 모든 언어의 문자가 다 나와있었습니다. 세종은 소리문자를 만들고 싶어하셨고, 소리문자인 산스크리트 문자, 티벳 문자, 파스파 문자를 당연히 참고했겠지요. 그렇다고 모방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문자는 도형(모양)과 음가(소리)가 중요한데, 이들 문자는 곡선 위주입니다. 곡선은 쉽고 간단하게 쓸 수가 없습니다. 배우기 어려워 지금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거나 사어나 다름없게 됐어요. 그러나 한글은 점과 직선 위주입니다. 곡선은 동그라미, 즉 이응(O) 밖에 없어요. 그리고 산스크리트 문자와 마찬가지로 한글은 초성·중성·종성으로 되어 있지만 산스크리트 문자는 모음이 어떤 자음과 대응하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져요. 한글은 그런 게 없잖아요.” - 그러면, 훈민정음이 산스크리트 문자를 모방했다는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는 것 아닌가. “모방설을 주장하는 이들의 가장 큰 근거는 글자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훈민정음은 글자 모양이 왜 그런 형태가 되었는지를 해례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음은 발음기관, 모음자는 하늘과 땅, 사람의 상형이라고 분명히 밝혀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방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서로 닮은 사람을 보고 형제라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방은 그 기원이 같고, 그 차원이 같다는 것이지만 한글은 그 어떤 문자와도 차원이 다릅니다. 민족주의 차원에서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과학입니다.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 용비어천가,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 동국정운 등 관련 책을 보면 서로 연결되면서 서로의 관계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 한글 창제에 집현전 학자들의 역할은 얼마나 컸나. “훈민정음은 세종이 주도적으로 창제한 것입니다.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 창제 과정에서 자료를 찾아주거나 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겠지만, 창제 아이디어, 직접적인 연구는 절대로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 증좌로 집현전 학자 8명이 개인적으로 훈민정음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공동 창제라면 안 쓸 리가 없잖아요. 당시 집현전 학자 대다수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20대 중반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에 힘쓸 때 이들은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10대였을 겁니다. 굳이 도왔다고 한다면 정인지와 최항 정도였을 겁니다. 하기야 소통을 중시했던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과 18~19세기 실학자들도 한글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은 한자 이외의 문자를 상상하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창제에 개입했겠습니까.” “배익기 소유 해례본… 몇쪽 남았는지 밝혀야상주본 공개사진 보니 글자 획 간송본과 같아상주본 주석은 경상도 방언에 18세기 표기법조선시대 훈민정음 연구사·소장자 규명길 열려”한글과 훈민정음, 해례본을 칭송하지만 정작 훈민정음 해례본 전공자는 국내에서 5명이 채 되지 않는 실정이다. 대학의 국문과 및 국어교육과 과정에서도 훈민정음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반면에 그는 우리말과 관련해 80권의 책을 냈고 12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국어교육학 및 훈민정음학 2개의 박사학위 취득자인 그는 20여개 대학에서 40여차례 임용에서 퇴짜를 맞았다. 대학에서 훈민정음 전공자를 뽑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 책을 내고 두 달 간 강의하는 강좌를 개강했다. 유튜브로 훈민정음대학교 채널을 만들어 방송도 하고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본 손바닥책을 만들어 학생신문사와 함께 온국민 읽기 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 훈민정음 해례본과 관련해 배익기씨가 보관하고 있다는 상주본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실물을 본 적이 있나. “2016년 11월 배익기씨를 경북 상주에서 한글운동 단체 대표로 이대로, 최기호 선생님과 같이 만난 적이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실물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배씨가 소장한 해례본을 통상 ‘상주본’이라고 하는데, 절반 정도만 남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66쪽 전체 갸운데 30~40쪽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정확히 밝혀주면 좋은데…, 배씨가 공개한 일부 사진 등을 보면 남아있는 상태가 비교적 좋고, 주석 같은 기록이 여백에 쓰여 있습니다. 글자에 삐친 획이라든지, 계선이 간송본과 똑같아요. 여백의 주석은 경상도 방언으로, 18세기 이후 표기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경상도 선비가 소장하면서 연구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 배씨 소장본 가치가 1조원이라는데,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금액이 나왔을까요. “해례본은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해 무가지보(無價之寶)라고 합니다. 서울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해례본이 2016년 40일간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루 보험료가 1억원이었습니다. 이는 보험회사가 평가한 것으로 유럽의 고문서나 대가의 그림 작품 등의 가치를 감안해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루 1억원의 보험료라면 최소 1조원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요. 상주본이 간송본과 같다면 가치가 그렇겠지만, 남아있는 상태가 같지 않으니 가치가 꼭같지 않을 겁니다. 다만 서지학적으로 상주본은 위아래 여백이 간송본보다 온전히 남아 있어 해례본의 원래 크기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상주본의 여백에 남은 주석 기록이 조선시대 한글 연구 및 소장자의 역사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해례본, 세종 당시 딱 한번 발행돼간행 50여년만에 희귀서적으로 변해문자 기득권, 해례본 빨리 폐기한 듯”- 해례본, 왜 이렇게 귀한 책이 됐나. “지금까지는 간송본과 상주본 두 권의 존재가 확인됐습니다. 1446년 딱 한번 인쇄되었지요. 해례본은 간행 후 50여년 만에 희귀 서적으로 변했습니다. 당시 목판으로 500권 정도를 발간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그만큼 빨리 책들이 사라진 것지요. 이는 아마 문자 기득권층인 양반들이 해례본을 보고 하층민들이 문자 공부하는 것을 싫어해 폐기하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합니다. 어딘가 또 해례본이 나올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세종대왕 서문이 온전히 남아있는 해례본이 발견되면 빅뉴스가 될 겁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한 방울로도 폭발적인 풍미, 발사믹 식초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한 방울로도 폭발적인 풍미, 발사믹 식초

    먹거리에 자부심이 대단한 이탈리아가 특별히 자랑하는 가공품이 있다. 갖가지 모양의 건조 파스타와 세계 최고 품질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치즈의 왕좌를 놓고 겨루는 모차렐라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그리고 육가공품 중에서는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소금에 절여 만든 프로슈토, 지방이 먹음직스럽게 박혀 있는 분홍빛 햄 모르타델라, 그리고 염장 건조 소시지인 살라미가 저마다 국가대표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에 더해 빠지면 섭섭할 그 이름, 바로 발사믹 식초다. 발사믹 식초는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와 레지오 에밀리아에서 전통방식대로 만든 것을 의미한다. 전통방식을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다. 먼저 트레비아노와 람부르스코란 포도를 수확해 으깨 즙을 만든다. 이 즙을 끓여 걸쭉하게 졸인 후 일종의 포도 시럽으로 만든 뒤에 큰 나무통에 넣는다. 통 안에서 효모의 작용으로 당분이 알코올로 변하고 알코올은 초산균에 의해 식초로 바뀐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포도식초 제조과정과 다르지 않다. 이후 나무통에서 최소 12년 이상을 숙성시키는데, 흥미로운 건 나무통을 주기적으로 바꿔 준다는 점이다. 전통 발사믹 식초는 대부분 크기가 다른 여러 나무통에 옮겨 담긴다. 우선 나무의 향을 입히기 위해서다. 와인이나 위스키가 오크통에 숙성되면서 나무 향미 물질을 머금는 것처럼, 전통 발사믹 식초도 오크나무와 밤나무, 체리나무 등 다양한 나무통 안에서 독특한 향을 갖게 된다. 어떤 생산자는 특정 나무통만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 전통 발사믹 생산자들은 위스키를 블렌딩하듯 다양한 종류의 나무통을 쓴다. 크기가 다른 나무통에 번갈아 옮겨 담는 두 번째 이유는 생산성 향상과 맛의 균질화에 있다. 최소 12년을 숙성시키는데, 그동안 한 통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통은 못 쓰게 될 수 있고 다른 통에서 숙성시킨 발사믹 식초와 맛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런 위험요소를 제어하기 위해 ‘솔레라’라는 방식을 쓴다. 숙성 연도가 다른 통에서 내용물을 꺼낼 때 다 꺼내지 않고 어느 정도 남긴 후 이전 연도 혹은 새 내용물을 넣는다.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 맛을 균일화하고, 한 번에 한 통을 다 소진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숙성까지 가능하다. 이 방식은 셰리 와인, 위스키를 만들 때도 유용하다.오래 묵은 장이 맛이 깊어지듯 발사믹 식초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서 발사믹 식초가 원래 갖고 있던 당분과 유기산의 농도도 진해지는데 12년 정도가 지나면 통 안의 내용물은 단순히 식초라고 부를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 되어 있다. 한 방울 떨어뜨려 맛을 보면 나무의 진한 향미가 어우러진 짜릿한 산미와 달콤함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는데, 그 춤이 꽤 길다. 한 방울로도 폭발적인 풍미를 선사하고, 입안에 계속 머물게 되는 마법과도 같은 맛을 남기는 게 전통 발사믹 식초의 힘이다.전통 발사믹 식초는 요리사가 손을 더 댈 것도 없는 하나의 완전한 음식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전통 발사믹 식초를 올리브유에 섞어 빵에 찍어 먹거나 하지 않는다. 진한 시럽같이 걸쭉한 전통 발사믹 식초는 다른 완성된 요리에 한두 방울 정도 떨어뜨려 맛을 더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프로슈토나 모르타델라, 모차렐라와 같이 열을 가할 필요가 없는 완성된 가공품에 화룡점정을 찍는 정도랄까. 사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발사믹 식초는 흔하지 않다. 여기엔 ‘전통’이라는 이름과 ‘DOP’라는 원산지 보호 표시가 붙는다. DOP는 모데나와 레지오 에밀리아에서만 생산된 것에만 붙일 수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발사믹 식초는 대개 이름만 발사믹일 뿐 단기간에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상업적 발사믹 식초다. 오랫동안 숙성시키는 대신 와인 식초와 색소, 캐러멜 등을 첨가해 2개월, 많게는 3년 정도의 숙성을 통해 전통 발사믹 식초의 맛과 향을 모방한 이런 제품들은 지리적 보호 표시인 IGP로 표기된다.혹자는 IGP 발사믹 식초를 ‘가짜’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나름의 존재가치는 있다. 모두가 전통 방식대로는 만들 수 없을뿐더러 모두가 비싼 발사믹을 사서 먹을 수도 없다. 오히려 상업적으로 대량 생산되는 제품이 있기에 전통 방식대로 만든 발사믹의 위상이 더 값지게 평가받을 수가 있는 셈이다. DOP 규정은 어디까지나 전통의 유지와 보호가 목적이다. 규정이 엄격하고 까다로워 생산자의 창의성이 발현되기도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그러니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이에게 DOP 표기가 없는 전통 발사믹 식초가 아닌 걸 선물받더라도 너무 기분 나빠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 진경산수화 품은 선유정에 서니, 절두산 순교의 아픔 아스라이

    진경산수화 품은 선유정에 서니, 절두산 순교의 아픔 아스라이

    서울신문이 서울특별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7회 양화진과 선유도’ 편이 지난 17일 오후 6시부터 2시간여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화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혹서기 야간투어 프로그램 네 번째 순서였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절두산 가톨릭 순교성지와 양화진 역사공원을 거쳐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을 둘러봤다. 이동시간을 단축하려고 시내버스를 이용, 양화대교를 건너 선유도공원에 내렸다. 수질정화원-선유정-녹색기둥의 정원-수생식물원-시간의 정원-전망대 순서로 어둠이 내려앉은 한강 한가운데 섬을 걸었다. 이번 코스의 서울미래유산은 양화대교와 선유도공원 2곳이다. 가까이 있지만 먼 양화진과 선유도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참석자들의 기대와 호응이 높았다. 선유정과 전망대에서 바라본 야경은 18세기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의 야간 버전인 듯했다. 선유도라는 거대한 배를 타고 양화대교~서강대교~성산대교 사이에 펼쳐진 서울의 서쪽을 맘껏 조망했다. 해설을 맡은 황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새 답사코스를 개발한 덕분이다.양화진은 기독교를 양분하고 있는 가톨릭과 개신교 양대 종파의 공동 성지다.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의 박해와 수난을 상징하는 절두산 순교자기념관과 개신교 개척 선교사들의 요람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이 있다. 양화진 역사공원은 두 성역의 중심부에서 절묘한 균형추를 잡고 있다. 양화진 역사공원은 양화나루터를 지키던 옛 군사기지 터에 조성됐다. 본래 양화진은 서울~인천, 서울~강화도 두 바닷길을 잇는 길목이었다. 또 세금으로 바친 곡식을 실은 세곡선의 검문소이자 선유봉과 잠두봉이 연출하는 절정의 뱃놀이 명소이기도 했다. 새남터(이촌동)와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였기에 죄인을 처형하거나 죄인의 시신을 전시했다. 1884년 갑신정변 ‘삼일천하’의 주인공 김옥균이 능지처참을 당한 바로 그곳이다.1866년(고종 3) 제1차 병인양요 때 서울을 침범한 프랑스 함대가 정박한 양화진에서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이 이뤄졌다. 이때부터 잠두봉은 ‘머리를 자른 산’이라는 뜻에서 절두산이라는 섬뜩한 이름이 붙었다. 무려 2000여명이 이때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1966년 병인 순교 100주년을 기념해 이곳을 매입한 뒤 잠두봉을 중심으로 성당과 순교기념관을 건립, 사적지로 조성했다. 1976년 이래로 한국 성인들의 유해를 옮겨 와 안치했다. 절두산성지 내에는 관련 사료와 유물, 유품전시관, 28위의 성인 유해를 모신 유해실, 순례성당, 순교자 교육관, 김대건 신부 동상을 비롯해 야외 전시관이 있다. 절두산 성당은 혜화동 성당, 아현동 성당 및 국립극장, 경주박물관 등 종교건축과 문화시설을 주로 지은 건축가 이희태의 작품이다. 기념관은 우뚝 솟은 절벽 위에 세워졌는데 원반 모양의 지붕은 선비의 갓을, 6m 높이의 종탑으로 구멍이 뚫린 벽은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졌던 목 칼을, 그리고 지붕 위에 늘어뜨린 사슬은 족쇄를 상징한다. 성당은 부대시설과 장식을 일절 배제했다. 언덕 위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은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 등 3인이 묻힌 한국 개신교의 성소다. 서울시내에 유일한 이국적 풍경의 외국인 묘역이다. 1885년 4월 5일 개신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헨리 아펜젤러를 태운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이틀 전 일본 나가사키를 출항, 부산에 도착한 뒤 남해안과 서해안을 돌고 돌아 제물포에 도착한 것이다. 이날은 한국 개신교의 공식 선교일이다. 갑신정변 직후여서 파란 눈을 가진 목사의 서울 입성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결국 아펜젤러 부부는 일본으로 되돌아갔고, 독신 언더우드는 서울에 들어온 첫 목사로 기록됐다.언더우드는 제물포선착장(올림푸스호텔)-인천도호부(문학초등학교)-성현(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 앞)-성곡(부천시 여월동)-고음월리(신월IC)-양화진(인공폭포)-애오개(아현감리교회)-돈의문(강북삼성병원 앞)-제중원(을지로입구)을 거쳐 사대문 입성에 성공했다. 직선거리 45㎞에 이르는 이동경로는 오늘의 경인로라고 보면 된다. 최초의 여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은 6월, 아펜젤러는 7월 뒤이어 입경했다. 언더우드는 새문안교회와 경신학교,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웠다. 아펜젤러는 배제학당과 정동교회, 스크랜턴은 이화학당을 각각 설립했다. 이들 외에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호머 헐버트, 대한매일신보 설립자 어니스트 베델, 한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서양인으로 결핵요양원을 세우고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한 셔우드 홀, 삼일만세 사건을 처음 보도했고 행촌동에 딜쿠샤를 남긴 앨버트 테일러 등 모두 14개국에서 온 415명의 선교사와 가족이 잠든 곳이다. 양화대교 중간에 배 모양으로 길게 누워 있는 선유도는 원래 40m 높이의 선유봉이었고 주변은 더 넓은 모래벌판이었다. 선유봉의 운명은 기구했다. 네 번의 윤회를 통해 변신을 거듭했다. 우뚝 솟은 봉우리에서 채석장으로 변했고, 다시 정수장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첫 변화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 한강변에 둑을 쌓으면서 골재 채취용으로 크게 훼손당됐다. 두 번째는 여의도비행장 건설 때 모래와 자갈을 내어 주는 골재 공급처로 쓰여 망가졌다. 1945년 해방 이전에 봉우리의 절반 이상이 희생됐다. 해방 이후 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또 선유봉 암반을 깎았는데 이때 선유봉은 평지로 변했고, 1965년 이 자리에 제2한강교(양화대교)가 놓였다. 1968년 시작된 제1차 한강개발사업은 선유봉을 섬으로 만들었다. 주변에 7m의 옹벽을 치고, 섬과 한강 남단 사이에 있던 모래를 모두 퍼내 강변북로를 만들었다. 결국 1978년 영등포 공단지대의 식수공급용 정수장으로 둔갑했다. 2002년 4월 정수장을 재활용한 한강 최초의 섬 공원이자 국내 최초의 산업시설 재활용 생태 공원이 돼 시민 곁으로 되돌아오기 전까지 당인리발전소와 함께 개발시대 한강의 대표적인 산업시설로 존재했다. 조선시대 뱃놀이 명소, 일제강점기의 골재 채취장, 1970~90년대 정수장이라는 변신을 겪은 공간은 생태공원으로 네 번째 삶을 맞았다. 선유도 전망대에 올라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한강을 가로지르는 붉은 아치의 성산대교가 나타난다. 다리 너머엔 난지 하늘공원, 남쪽에는 목동, 북쪽에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이 펼쳐져 있다. 오른쪽에는 양화대교와 합정동의 마천루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한강공원에서 선유교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선유도공원으로 들어올 수 있고, 선유정 정자 맞은편은 누에머리 모양의 옛 잠두봉 절두산 성지다. 조명을 받은 망원정도 눈에 들어온다.자갈과 모래로 채워졌던 제2여과지는 상판을 들어내고 주차장으로, 약품침전지는 부레옥잠이나 연꽃 같은 수생식물을 키우는 식물원이 됐다. 제1여과지는 선유도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하천이나 늪지에서 자라는 습지식물이 콘크리트 그릇에 담겨 있다. 시간의 정원은 제1침전지였고, 침전지의 상부 수로는 수생식물 정원으로 물을 실어 나르는 물길로 꾸며졌다. 취수펌프장은 한강을 조망하는 카페테리아 나루가 됐고, 전망대를 뚫고 나온 미루나무는 생명과 바람의 존재를 실감 나게 한다. 선유도공원은 물과 회색 콘크리트와 녹색식물의 합작품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선유봉의 네 번째 환생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18차 서울의 영화3(이만희 감독의 귀로) ■일시 및 집결 장소:8월 24일(토) 오후 5시 시청역 2번 출구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월드 Zoom in] 美, IS 악몽 속 백인 우월주의 골머리

    [월드 Zoom in] 美, IS 악몽 속 백인 우월주의 골머리

    지난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라졌다’고 공언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재기를 꿈꾸며 세를 확대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온 가운데 미국은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의한 총기 난사 등 ‘국내 테러’에 집중하라는 여론의 집중포화에 궁지에 몰린 모양새다. 미군과 국제동맹군의 협공으로 패망했다는 IS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우려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테러위원회가 이미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제기했다. 이어 이달 초 미 국방부가 같은 우려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실제 이라크와 시리아에 남아 있는 IS 조직원수는 1만 8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200만명의 시민을 통치하던 과거보다는 세가 약화했지만 세계 곳곳에서 IS 추종 세력의 테러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발생한 스리랑카 부활절 참사와 최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예식장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테러도 IS와 연계된 현지 조직이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IS 격퇴의 선봉장에 있던 미국은 극단적인 백인 우월주의로 인한 국내 테러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 이전처럼 국제 테러 단체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3일 미 텍사스 엘패소에서 20명을 사망케 한 패트릭 크루시어스가 범행 전 백인 우월주의를 옹호하는 성명을 올린 사실이 전해지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차단에 초점을 맞춘 미국 안보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져서다. 미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재단이 2002년부터 최근까지 미국에서 극우 성향 범죄로 인한 사망자가 109명으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로 인한 사망자(104명)를 웃돈다는 통계를 발표하자 대테러 업무를 담당해 온 전직 미국 관리들은 국내 테러를 국제 테러와 같은 수준의 경각심을 갖고 다루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01년 9·11 테러 후 20년 가까이 알카에다와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와의 싸움에서 얻은 노하우를 국내 테러에 맞서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교육 특혜는 역린 건드린 것”… 학부모들, 조국 이중성에 분노

    “교육 특혜는 역린 건드린 것”… 학부모들, 조국 이중성에 분노

    “가짜뉴스? 입시 경험한 엄마들 안 믿어”“연줄 없는 부모라 미안” 박탈감 호소도 고대·서울대생들 “내일 촛불집회할 것”“동생 부부를 둘러싼 논란이나 재산 문제는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교육 특혜 문제는 역린을 건드린 것”(서울 강남 지역 학부모들이 활동하는 입시 관련 온라인 D 커뮤니티 게시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는 가운데 학부모들은 ‘논문 제1저자 등재’ 등 딸의 교육 문제에 특히 분노하고 있다. ‘역린’(逆鱗·건드리면 큰 탈이 나는 문제)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병역과 더불어 민심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지점이어서다. 조 후보자는 21일 딸의 부정입학 의혹에 대해 “가짜뉴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믿지 않는 모양새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만나는 공간에서는 이 뉴스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큰아이를 대학에 보냈다는 서울 목동 학부모 박모(48·여)씨는 “학부모들 모두 단톡(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비웃고 있다”면서 “대학을 보내 본 엄마들은 직접 해봤기에 이 사람(조 후보자) 말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의대 가려면 정말 상위 1% 준비가 필요한데 조 후보자 딸은 너무 쉽게 갔다. 자기 딸은 용 만들어 주고 우리 서민들 자식은 평생 개천에 있으라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D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한 학부모는 “우리 애들은 정신과 약 먹어가며 공부하고 버티는데 이게 뭐냐”고 분노했다. 고2와 중3 자녀를 키우는 이모(46·동작구)씨는 “어제 아이한테 농담으로 ‘엄마가 조국이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했다”면서 “아는 사람만 교수 연줄 잡을 수 있고 심지어 2주 만에 고등학생이 논문 제1저자가 됐다는 건 정말 허탈하다”고 토로했다. 보수 성향의 학부모 모임인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회원들은 이날 조 후보자의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자 사퇴를 촉구했다. 이 단체의 이종배 대표는 “(자녀의) 입시를 경험하신 학부모님들과 여러 정보에 의하면 입시비리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딸 조씨가 다닌 고려대의 학생들은 ‘촛불집회’를 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의 한 이용자는 이날 ‘고려대판 정유라인 조국 딸 학위 취소 촛불집회 관련 공지’ 게시물을 통해 “현재 2000명 가까운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촛불집회 찬성에 투표했다”며 “이번 주 금요일(23일) 촛불집회를 개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서울대 학생들도 촛불집회를 위한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고 23일 교내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이언주 “조국 딸 장학금 특혜는 ‘文정권 게이트’…특검해야”

    이언주 “조국 딸 장학금 특혜는 ‘文정권 게이트’…특검해야”

    “정유라에 말 준 이재용 뇌물공여죄 구속과 유사”“조국 투자 사모펀드에 일감 몰아주고 혈세 빨아”조국 의혹에 文·김정숙 여사 개입 가능성 거론“文, 조국에 엄청난 정치적 빚…관여 여부 특검”“자기행동 망각, 선지자 착각 과대망상증 환자”“조국, 타락한 패션좌파·속물적 권력용의 화신”검찰에 조국 임명철회 공개 요구하기도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과 관련해 “인사청문회가 아니라 정권실세 조국의 국정농단 게이트에 대한 청문회와 특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이 의원은 조 후보자의 의혹들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개입 가능성을 거론하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전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도대체 비리 의혹이 끝이 없고 그 담대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라면서 “(조 후보자가) 민정수석으로 재임하던 시절 비리까지 합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 의원은 “이런 지경인데도 무리하게 법무부 장관에 (문 대통령이) 내정한 게 민정수석 시절 문 대통령의 명을 받아 비리를 많이 저질렀기 때문인지?”라고 추정한 뒤 “한 마디로 정권실세 조국의 국정농단 게이트”라면서 “조국의 위세로 보아 과연 문 대통령이나 김정숙 여사 등이 전혀 도와주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러한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 의원은 “조국은 과거 문 대통령이 당 대표가 될 때, 간발의 차로 당 대표 된 이후 당을 완전히 장악해 대통령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실세 혁신위원으로서 비주류의 저항을 무릅쓰고 당헌당규를 바꾸는 등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조국에게 엄청난 정치적 빚을 지고 있는 셈”이라면서 “문 대통령이 과연 전혀 관여하지 않았을까 의심이 되는 이유다. 이 정도 되면 명백히 특검을 해야 사안이다”라고 특검의 당위성을 거듭 언급했다.이 의원은 조 후보자에 대해 “타락한 패션좌파이자 속물적 권력용의 화신일 뿐”이라면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망각한 채 스스로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선지자로 착각하는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맹비난했다. 이 의원은 “조국은 사회주의니 민중 혁명이니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이니 떠들어대며 깨끗한 척 국민의 건강한 욕망과 야심을 폄하하고 마녀사냥과 집단주의를 부추겼다”면서 “실상은 자신은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는 핑계로 권력을 쥐고 국민을 지배해 모든 걸 누리겠다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런 뒤 조 후보자의 딸이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두 차례 유급을 당하고도 지도교수로부터 개인 장학금을 받은 데 대해 비판을 가했다. 이 의원은 “(조 후보자는) 예전에 정유라 비난은 그리 하더니 자기 딸은 두번이나 낙제했는데 거액의 장학금 특혜를 받고 그걸 집행한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시장이 임명하는 부산의료원장으로 발탁됐다”면서 “그 장학금이 교수 개인 돈이든 뭐든 이건 뇌물죄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 측근인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말을 빌려줬다며 뇌물공여죄로 구속된 거 아니었느냐. 너무나 유사하다”면서 “이건 국정농단이 아닌가. 연루된 사람들만 해도 거물들이다. 이건 정권 차원의 게이트로 대대적인 수사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이 의원은 전 재산을 56억원이라고 신고한 조 후보자가 청와대 민정수석 임명 직후 사모펀드에 74억원을 약정하고 이 가운데 10억원 이상을 배우자, 자녀까지 동원돼 투자한 사실이 드러난 데 대해서도 “특별할 게 없는 기업에 정부지원금이 몰렸고 하필 그 펀드에 투자했다는 건 정권실세가 자기가 투자한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한 셈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어 “그 펀드는 실상 정권실세가 혈세에 빨대 꽂아 빨아먹는 일종의 ‘도관’이었던 셈”라면서 “직접 투자하면 너무 티가 나니까 사모펀드를 거치면서 일종의 세탁을 한 셈인데 신종 직권남용 수법인 모양이다. 하기야 자기 자산보다 큰 거액을 약정하는 위험을 감수할 때는 믿는 구석이 있지 않겠느냐”며 윤석렬 검찰총장에게 적극 파헤쳐보라고 요구했다. 이 의원은 “쏟아지는 의혹의 상당수는 매우 중대한 범죄행위로서 그는 지금 법을 지키는 파수꾼인 법무부 장관 후보가 아니라 범죄혐의자로서 수사를 받아야 마땅하다”면서 “그의 범죄 혐의 상당 부분은 그의 위치 즉 집권이 유력시되는 문재인의 최측근 혹은 정권실세인 민정수석이라는 위치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는 점에서 ‘권력형 범죄’, ‘국정농단’에 해당될 수 있다”며 국정농단 청문회 개최를 주장했다.이어 “법무부 장관? 어떻게 그런 자리를 넘봅니까? 대한민국 검찰이여, 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최소한의 양심과 준법에 대한 사명을 갖고 조국 임명철회를 요구하십시오! 당신들은 이런 자를 장관으로 모실 겁니까?”라고 검찰에 촉구했다. 이 의원은 조 후보자가 딸을 특목고에 보내고도 “특목고 혜택을 상위계층이 누린다”고 비판했던 발언이 언급된 기사를 링크해놓기도 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세계가 놀랐다… 이덕희, 청각장애 딛고 ATP 사상 첫 본선 승리

    세계가 놀랐다… 이덕희, 청각장애 딛고 ATP 사상 첫 본선 승리

    “소리나 심판 콜 안 들려 공에 더 집중” 머리 “매우 불리한 조건서 노력” 칭찬이덕희(21)가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사상 처음으로 단식 본선에서 이긴 청각장애 선수가 됐다. 선천성 청각장애 3급인 이덕희는 19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세일럼에서 열린 윈스턴세일럼오픈 단식 1회전에서 헨리 라크소넨(스위스)을 2-0(7-6<7-4> 6-1)으로 제압했다. 이로써 이덕희는 1972년 창설된 ATP 투어에서 청각장애 선수로는 본선 처음으로 승수를 만든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이덕희는 국내외 테니스계에서는 이미 ‘도전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그는 “6살 때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빠졌지만 테니스는 내가 비장애인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스포츠였다.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고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고 늘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공이 코트나 라켓에 맞는 소리나 심판 콜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공에 집중하고 상대 몸동작을 읽으면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며 장애 선수로서의 어려움도 털어놨다. 이번 대회에 함께 출전한 2012년 런던·2016년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앤디 머리(영국)는 ATP 투어 인터뷰에서 “테니스에서는 청각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이덕희의 경우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라면서 “그러나 부단한 노력으로 경기력이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이덕희를 지도하는 윤용일 코치는 “평소에는 입술 모양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글을 쓰거나 휴대전화 메시지를 이용하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가장 큰 장점은 강한 정신력”이라고 말했다. 7살 때 테니스를 시작한 이덕희는 12살 때 동급 국내 최강에 올랐다. 제천동중 3학년 때인 2013년 성인 랭킹포인트를 처음 따낸 사실이 스페인 일간 마요르카에 소개되자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덕희는 우리가 항상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면서 이듬해 프랑스오픈에 앞서 이덕희를 스페인으로 초청해 함께 훈련하며 격려했다. 2016년 7월 국내 최연소(18세 2개월)로 ATP 랭킹 200위 벽을 깨 종전 정현(23)의 기록(18세 4개월)을 갈아치운 이덕희는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2006년 도하대회(이형택·은메달) 이후 12년 만에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이덕희는 이날 ATP 투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일부 사람들이 저의 장애를 비웃기도 하고,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면서 “청각장애가 있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절대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소수라 더 특별하다… 학예연구사, 경력은 ‘필수’ 차별성은 ‘선택’

    소수라 더 특별하다… 학예연구사, 경력은 ‘필수’ 차별성은 ‘선택’

    학사·3년 경력·석사 학위 있으면 유리 면접서 경험 중요… 관련 경력 쌓아야 국가직, 상황 따라 근무지 옮길 가능성 “연구직 1% 이하… 인력·시설 확대해야”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을 잘 가꾸고 보전하는 것은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다. 한적한 고궁을 산책하는 것도, 박물관에 정갈하게 전시된 유물을 보는 것도 문화재를 제대로 가꾼 뒤에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권리다. 첨단 기술과 고도의 전문성으로 문화재를 발굴·보존하며 가치를 널리 알리는 공무원들이 있다. 바로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들이다. 문화재청은 해마다 고고학·보존과학·미술사 등 문화재 관련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닌 이들을 공무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총 8명을 채용하는 올해 채용 필기시험이 다음달 8일 치러진다. 채용 규모는 적지만 관련 분야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쉽게 통과할 수 없는 시험이다. 20일 현직에서 활동하는 학예연구사들을 만나 채용제도 전반과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들여다봤다.대전 유성구에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본관 뒤편에 마련된 고고연구실. 남상원(34) 학예연구사가 유물 한 점을 쥐고 골몰하고 있다. 그는 울주 반구대 인근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시대 유물 ‘연화문수막새’를 한참 실측하고 있었다. 연화문수막새는 연꽃무늬 모양의 유물로 기와지붕의 처마를 장식하는 용도. 유물을 찰흙으로 고정하고 실측도구로 크기를 잰 뒤 종이에 기록한다. 현장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하나하나 실측하는 일은 손이 굉장히 많이 가는 작업이다. 그러나 학술보고서를 작성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소홀히 할 수 없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소속인 남 연구사는 고고학 직렬로 2017년 공직에 입문했다. 대학원에서 역사고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요건에 현장실습이 있기에 서울 송파구에 있는 백제 유적지 ‘풍납토성’ 조사에 참여했다가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학예사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공직자가 되고자 고고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다. 연구원으로 활약하다가 문화재청에서 학예연구사를 채용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준비를 이어 갔다. 현재 그는 울주 반구대 암각화와 관련된 종합적인 학술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이외에도 국외 연구과제로 1년에 한 번씩 카자흐스탄을 방문하면서 한반도 기마문화의 전파 경로를 탐색하는 일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석사 이상 추천… 자신의 전공 갖는 게 도움 남 연구사는 “학예연구사를 노리고 있다면 석사학위가 없어도 관련 학사학위와 3년 경력만 있어도 되지만 그래도 대학원에 빨리 진학해 석사학위를 따는 것이 좋다”면서 “학예연구사를 하면서 자신의 전공을 가지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연구소 본관 왼쪽에 있는 보존과학센터에서 만난 송정일(34) 학예연구사는 컴퓨터 화면에 그래픽으로 구현된 도자기를 띄워 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보존과학 직렬로 2017년 학예연구사가 된 그는 이곳에서 문화재 비파괴 진단 업무를 하고 있다. 유물을 최대한 보존한 상태에서 방사선 등을 이용해 유물 내부 구조와 형태를 조사하는 일이다. 유물의 모양을 3차원으로 복원하고 디지털로 기록하는 작업까지 그의 몫이다. 국내에서 문화재 보존과학을 전공한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다. 관련 학과를 설치하고 있는 곳이 몇 안 될뿐더러 대학원 이상 교육과정을 두는 곳은 거의 찾기 어렵다. 문화재청 소속 특수 목적 대학인 한국전통문화재대학교에서 보존과학을 전공한 송 연구사는 다른 대학원에서 금속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마찬가지로 문화재청에서 비정규직 연구원 생활을 이어 가던 그는 방사성 동위원소 취급자 면허를 취득하고 비파괴 진단 관련 민간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다. 그러다 본인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학예연구사 채용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회사 생활과 채용 준비를 병행했다. 비파괴 진단 분야 전문성을 가진 그였지만 학예연구사 채용이 만만하지 않았다. 워낙 채용 규모가 작을뿐더러 이 분야에서 오랜 기간 전문성을 쌓고 학예연구사 채용을 준비하고 있는 이도 많기 때문이다. 송 연구사는 “필기시험이나 면접을 하루아침에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화재와 관련된 경력을 꾸준히 쌓아 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면접에서는 자기가 해 온 경험이나 학술활동에 대해 많이 질문한다.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지점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만의 장기를 서술형 시험이나 면접에서 잘 녹여낼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일반직 공무원 6~7급 상당… 시험은 ‘논술형’ 학예연구사는 국가직 공무원 공개채용과 달리 인사혁신처가 아닌 문화재청에서 직접 채용한다. 일반 공무원과는 직급 체계가 다르지만 학예연구사는 보통 일반직 공무원 6~7급에 상당한다. 예전에는 석사학위 이상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만 채용했지만 최근에는 관련 학과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 중에서 경력이 3년 이상 있으면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학예연구사 지원자들이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학술활동이나 자신의 전공 영역에 대한 질문을 면접에서 많이 하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게 합격자들의 전언이다. 단순히 석사학위뿐만 아니라 전공 분야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는 등 학술활동 실적도 중요하다. 필기시험은 1·2차를 한꺼번에 치른다. 1차는 문화사 일반이고 2차는 한국문화사와 전공과목이다. 1차 문화사와 2차 한국문화사는 5문항 100점 만점이며 70분 동안 치른다. 전공과목은 3문항 100점 만점에 80분이 주어진다. 모든 시험은 논술형이다. 짧은 시간에 답안을 써내야 하기 때문에 문제와 관련된 키워드를 최대한 많이 녹여내야 한다는 게 합격자들의 조언이다. 면접은 수험생의 경력과 전공 분야, 직무기술서 등을 바탕으로 학예연구사가 돼서 어떤 연구를 수행하고 싶은지 등을 질문한다. 학예연구사들이 활약할 수 있는 곳은 다양하다. 먼저 대전에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를 중심으로 전국 7곳에 있는 지방 연구소(경주·부여·가야·나주·중원·강화·완주)에서 일할 수 있다. 이외에도 국립고궁박물관과 각 유적 관리소를 비롯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도 있다. 기본적으로 채용할 때 근무지가 정해지지만, 국가직 공무원이기에 한곳에서 영원히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 다른 근무지로 얼마든지 옮겨갈 수 있다. 올해 채용 예정 직렬은 고고학(3명), 보존과학(3명) 외에도 물리탐사(1명)와 미술사(1명)가 있다. 물리탐사 직렬은 지질학 관련 학위나 경력을 가진 사람이 지원할 수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지하에 매장된 문화재를 지표면을 훼손하지 않고 깊이나 규모 등을 추정하는 일이다. 문화유적을 3차원(D)으로 기록하는 업무와 함께 3D프린트, 가상현실(VR) 기술 등을 활용해 문화유산 보존·복원 업무를 한다. 미술사 전공자는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일할 예정이다. 조선(1392~1897) 왕실과 대한제국(1897~1910) 황실 관련 유물을 보존·전시하는 곳이다. 미술사 학예연구사는 고궁박물관이 소장하는 작품을 조사하고 보존·활용을 위한 학예 업무를 한다. 문화재 학술조사뿐만 아니라 관련 학술지, 도서 발간 업무도 하게 될 예정이다. ●연구직, 특정분야 집중할 수 있는 환경 필요 문화재 관련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학예연구사지만 마냥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공직에 입문한 지 3년이 되지 않은 새내기들은 문화재 행정의 발전을 위해 몇 가지를 제언했다. 남 연구사는 “지난해 12월 기준 연구직 공무원은 전체 0.75%밖에 되지 않는 아주 소수로 국정과제에 매달리는 연구자들이 1~3명 정도 적은 인력이 매달리고 있어 인력 충원이 절실하다”면서 “국가직 공무원 특성상 보직을 주기적으로 순환하는데 연구직은 특정 주제를 선정하면 그것에 관심과 소질을 가진 자리여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송 연구사는 “많은 관심이 있으면 예산은 따라오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라면서 “시설이나 장비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예산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 사진 대전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BBC 청각 선수로 첫 ATP 단식 승리 이덕희에 주목, 머리도 칭찬

    BBC 청각 선수로 첫 ATP 단식 승리 이덕희에 주목, 머리도 칭찬

    영국 BBC도 1972년 창설된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단식 사상 청각 장애 선수로는 처음 본선 승리 기록을 작성한 이덕희(21·서울시청)에 주목했다. 이덕희는 19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세일럼에서 열린 ATP 투어 윈스턴세일럼 오픈 남자 단식 본선 1회전에서 헨리 라크소넨(120위·스위스)을 2-0(7-6<7-4> 6-1)으로 물리쳤다. 청각 장애 3급인 이덕희는 ATP 투어 대회 단식 본선에서 승리를 신고한 최초의 청각 장애 선수가 됐다. 방송은 한때 세계 남자 4대 프로 테니스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가 최근 부상 등으로 부진한 앤디 머리(32·영국)가 이덕희를 공개적으로 응원한 선수 가운데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머리는 특히 “우리(테니스 선수)들은 귀로 들어 모든 것을 파악하곤 한다. 그런데 공 소리를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빠른 공 스피드에 적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커다란 불리함을 안고 뛰는데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머리는 대회 1회전에서도 패배해 여전한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제천동중 3학년 때인 2013년 성인 랭킹포인트를 처음 따내자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자신의 SNS에 “이덕희는 우리가 항상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며 격려한 일도 유명하다. 이덕희는 ATP 투어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일부 사람들이 저의 장애를 비웃기도 하고, 저는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가족과 친구 등 주위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현재 세계 랭킹 212위, 2017년에는 130위까지 올랐던 그는 “오늘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ATP 투어와 마찬가지로 BBC도 영어를 한국어로 옮겨 질문을 약혼녀 ‘수핀(Soopin)’에게 전달하면 그 입 모양을 보고 이덕희가 질문을 파악해 답하는 식으로 인터뷰가 진해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대회 개막을 앞두고 대회 소셜 미디어에 게재된 인터뷰를 통해서는 “아무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다만 누가 아주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나 경적 정도는 들을 수 있는 정도”라며 “처음 ATP 투어 대회에 나오게 돼 기쁘고 긴장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8월 인도네시아 팔렘방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 한국 선수로는 2006년 도하 대회 이형택 이후 12년 만에 아시안게임 테니스 남자 단식 메달리스트가 된 그는 “더운 날씨를 좋아한다”며 여름에 열리는 이번 대회를 벼르기도 했다. 그는 또 “공이 코트, 라켓에 맞는 소리나 심판 콜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공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상대 몸동작 등을 통해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AF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도 이덕희의 승리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테니스뿐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장애가 있는 선수가 비장애인 선수들과 실력을 겨루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테니스에서는 1895년부터 1908년 사이에 윔블던 여자 단식에서 다섯 차례 우승한 샬럿 쿠퍼(영국)가 청각 장애를 갖고 있었다. 그는 20대 중반부터 귀가 들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윔블던은 출전 선수가 지금과 달리 10명 남짓이었다. 그로부터 100년도 더 지났지만 다른 청각 장애 선수가 일반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적이 거의 없어 이덕희 승리의 가치는 더 커 보였다. 2회전에서 세계 랭킹 41위이자 대회 3번 시드 후베르트 후르카치(폴란드)를 만나는 이덕희는 “미국이 환경이나 시설이 훌륭하고 음식도 맛있어서 좋은 것 같다”며 “2회전도 오늘처럼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韓, 내년 도쿄올림픽 ‘방사능 안전’ 日에 문제 제기

    韓, 내년 도쿄올림픽 ‘방사능 안전’ 日에 문제 제기

    한국 정부가 일본에 대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처리 대책을 요구하는 등 방사능 관련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체육회도 내년 7월 개막하는 도쿄올림픽 주최 측에 선수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케이신문은 20일 “국가 및 지역별 올림픽위원회(NOC) 대표 등이 모인 가운데 20~21일 열리는 도쿄올림픽 관련 회의를 앞두고 한국의 올림픽위원회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과 관련해 선수들의 먹거리 안전이나 건강을 우려하는 사전통지문을 일본 측에 보내왔다”고 보도했다. 사전통지문에는 ‘선수촌의 건축 목재에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의 영향은 없는가‘, ‘후쿠시마산 식재료를 쓰지는 않는가’, ‘식재료의 원산지 표시는 하는가‘, ‘선수들의 건강에 영향을 줄 정도의 방사선량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 등의 질의가 포함돼 있다고 산케이는 전했다. 산케이는 “한국이 도쿄올림픽 관련 사이트에 기재돼 있는 ‘일본해’ 및 ‘다케시마’(독도를 부르는 일본 명칭) 등 지도 표기에 대해서도 항의했다”며 “한일 갈등이 올림픽을 둘러싼 국제회의에도 반영되고 있는 모양새”라고 했다. 이번 회의는 도쿄올림픽에 참가할 예정인 국가 및 단체 NOC를 대상으로 한 선수단장 회의다. 도쿄올림픽조직위는 각국 NOC에 대회 준비상황을 설명하고 경기시설이나 선수촌 등 투어를 실시할 예정이다. 산케이는 “도쿄올림픽조직위는 이번 회의 기간 중 한국 측과 개별접촉을 통해 일본의 입장을 설명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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