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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소고려인협회」 창설/오늘 모스크바서 「자치공화국」 설립등 논의

    소련내 한인들의 모임인 「전소고려인협회」 창립총회가 1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다고 동아일보가 소 노보스티통신을 인용,16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한인들은 이날 총회에서 그동안 소련내 각지에서 설립된 한인문화센터,고려인협회등 각종 단체들을 단일조직으로 정비하는 문제와 연해주에 한인민족공화국을 설립하는 문제등을 논의한다. 이에따라 각종 한인단체들은 「전소고려인협회」로 통합,모스크바에 본부를 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한인자치공화국이나 자치주설립문제는 이미 지난 3월 하바로프스크에서 각지역 한인대표들이 모여 논의한 것을 다시 토론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총회에서는 한인고유의 전통문화와 언어의 보급ㆍ유지문제도 논의할 계획이다.
  • 소군,라트비아의회 난입 시도/시민항의 거세자 30분만에 물러나

    ◎일부 공장선 독립반대 시위 【빌나 AP 연합】 일단의 소련군 병사들이 14일에 이어 15일 다시 발트해 라트비아공화국 수도 리가의 최고회의 의사당에 난입하려다 시민들과 충돌했으며 일부 공장노동자들은 공화국의 독립선언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임으로써 리가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또 이날 상오 리가 상공에서는 헬리콥터들로부터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촉구하며 의사당으로 집결할 것을 선동하는 전단이 뿌려져 중앙정부가 조종하는 것으로 보이는 방해공작이 점차 본격화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라트비아 최고회의의 엘리타 고시아비시우스 대변인은 전화회견에서 약 50명의 정복군인들이 독립 움직임에 항의하기 위해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의사당에 들어가려 했으며 사복 차림의 사관생도들도 이들의 대열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고시아비시우스 대변인은 그러나 라트비아계 시민들이 나서 현장에서 라트비아의 민요를 부르며 저지하자 이들은 30분만에 물러났으며 경찰측에서는 의사당으로 들어가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전했다. 리가의 알파 공장에서는 2백여명의 노동자들이 이날 반독립 시위를 벌였다. 한편 리투아니아에서는 모스크바를 지지하는 공산당 측에 공화국 전역의 공장에서 독립반대 집회를 조직중이라고 밝혔으며 에스토니아 공화국에서는 일단의 의원들이 독립 선언의 취소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 소집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 “라트비아 독립도 무효”/고르비/발트 3국에 정면대결 시사

    【모스크바ㆍ빌나 로이터 UPI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14일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의 독립결정을 발트연안의 또다른 공화국 리투아니아에서와 같이 무효라고 선언함으로써 이들 발트해 연안 공화국들과 정면대결 자세를 취했다. 소련 국영 TV는 이날 저녁 주요뉴스 프로에서 이들 두 공화국의 독립을 향한 최근 조치는 채택순간부터 법률상 무효라고 선언하는 대통령 포고령을 방송했다. 고르바초프의 이같은 조치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연안 3개 공화국이 독립투쟁에 합세한지 이틀만에 나온 것이다. 이들 3국 지도자들은 지난 12일 정상회담을 갖고 모스크바에 단일 협상전선을 제시하기 위해 외교 및 경제정책을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 통일독일의 군사력ㆍ국경 규정/소,평화협정 추진

    ◎관련 12∼16국 참여 【모스크바 AFP 연합】 소련의 한 고위관리는 12일 소련은 통일독일의 군사잠재력 및 국경을 규정하고 핵무기폐기를 천명하는 통일독일과의 평화협정을 통해 이들 문제들에 관한 통일독일의 보장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 국제국부국장인 안드레이 그라체프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지난 8일 2차대전 종전기념식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통일독일과의 평화협정을 제안했던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이같이 밝히고 이같은 협정은 중요한 문제로 평화유지를 보장하고 (통일독일의)신정부의 의무를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독의 주간지 데어슈피겔지는 14일판 최신호에서 모스크바측은 독일과 2차대전 직접 관련당사국간의 평화협정초안을 준비중이라고 보도하고 종전직전 독일에 선전포고한 여러국가들을 제외,최고 12에서 16개국이 이 협정에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주간지는 이어 소련은 이 협정에 조인하는 대신 독일 및 베를린에 대한 모든 권한을 무조건 포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 “대통령 비방한자 최고 6년 징역형”/소,새 법안 검토중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소련의회는 12일 지난 5월1일 노동절행사장에서 시위자들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을 공개비난한 것과 관련,앞으로 대통령을 모욕하거나 비방하는 자에 대해 최고 6년까지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검토중이라고 소련뉴스간행물 인터팩스가 보도했다.
  • 발트3국,독립쟁취 공동투쟁

    ◎소 경제봉쇄 대응 「농산물 직교역협정」 체결/내일 3국의장 회동…「통합위」 결성 논의 【모스크바 UPI AFP 연합 특약】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해연안 3국은 10일 소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공동투쟁의 일환으로 농산품의 직접교역협정을 맺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이제까지 소련 각 공화국들은 연방기구를 통해 농산품을 교역해 왔는데 타스통신은 이들 3개 공화국이 10일부터 소연방기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농산품을 교역키로 협정을 맺었다고 말했다. 이들 3개국은 지난 2개월 사이 모두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는데 소련은 리투아니아에 대해 부분적인 경제봉쇄를 실시하고 있으며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 대해서도 비슷한 제재가 가해질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한편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리투아니아),아나톨리스 고르부노프스(라트비아),아르놀드 루텔(에스토니아) 등 3개 공화국 최고회의의장들은 12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회의를 가질 것이라고 발트해 소식통들이 밝혔다. 이들은 회담날짜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12일 회담이 이뤄질 것이라면서 11일 저녁엔 이것이 확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에스토니아는 10일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 발트해 연안 3개국 최고지도자들로 구성되는 위원회를 설립,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정책협조를 이룰 것을 제의했다. 이같은 제안이 수락되면 3개국간의 단결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레이비 세르 에스토니아최고회의 대변인은 『이는 아직 에스토니아의 제안에 불과할 뿐』이라며 『위원회가 구성되면 3개국의 정치적 문제들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위원회가 3개국간 국가연합을 형성할 것이냐는 질문에 『통합으로 갈 것』이라고 답했다.
  • 군부개혁 다짐/야조프 소국방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드미트리 야조프 소련국방장관은 9일 소련은 여전히 외부로 부터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해 있지만 군부의 개혁을 단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야조프국방장관은 제2차 대전 승전45주년 기념일인 이날 붉은 광장에서의 연설을 통해 『소련의 거대한 내부변혁은 국제관계에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비록 군사적 위협은 상존하고 있지만 군도 내부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고르바초프,소 군부 개혁 촉구/2차대전 승전기념식 연설서 강조

    ◎“군도 비판대상서 제외될 수 없다”경고/통독후 유럽평화 보장할 조약체결도 제의 【모스크바 로이터 AF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8일 군부의 혁신을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의 핵심과제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하는 한편 군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요세프 스탈린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2차대전 승전45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에서 가진 기념식연설을 통해 군부가 현 개혁정책의 핵심대상임을 강력히 경고하면서 소련이 보다 활력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페레스트로이카계획에 따라 추진되고 있는 사회의 전반적인 변혁에 맞춰 군도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하는 한편 「반사회주의자들」에 대해 강경한 응징조치를 취하라는 군고위퇴역 장교들의 요구를 일축했다. 한편 그는 독일통일 문제에 언급,통독에 앞서 통일독일의 군사적 위상을 규정하고 유럽의 안보를 보증하기 위한 평화조약을 체결할 것을 제의했다. 그는 소련이 통일독일과 협력해 나갈 것이지만 유럽의 전략적 안보를 보증해 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베르사이유조약과 같은 평화조약이 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참석한 재향군인들 및 현역장교들에게 페레스트로이카가 군부로까지 확산돼야 한다고 군의 개혁을 촉구하면서 『우리는 군의 현 상황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군은 결코 비판의 대상에 제외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군의 개혁방안을 마련키 위한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활동중이라고 밝히고 『군의 생활을 민주화하고 군비와 군예산을 감축하는 방향으로 개혁이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소 군부,고르비에 강경선회 압력/발트해 공화국 탈소선언등 관련

    ◎“지금은 나사 죌때” 메시지/승전기념 리셉션서… 야조프 국방도 동조 【모스크바ㆍ빌나 AF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최근 발트해 연안 공화국들의 탈소선언 및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소내부 반발 등과 관련,소군부 수구세력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귀추가 주목된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7일 크렘린궁에서 열린 대나치 승전 45주년 기념리셉션에서 일단의 재향군인들로부터 「지금은 나사를 죌 때」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달 받았으며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도 이같은 강경입장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야조프 원수는 이날 소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와의 회견에서 『2차대전은 사회주의적 군사기구의 이점을 확인했으며 우리군은 인민들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관측통들은 야조프가 최근 진급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이는 평화시 이례적인 조치로 고르바초프가 군에 대한 화해 제스처의 하나로 그의 계급을 올린 것으로 풀이했다. 크렘린 리셉션장에 초대된 일단의 재향군인들은 고르바초프에게 전달한 메시지에서 『지금의 소련을 돌아보면 나사를 죌 때가 됐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이들의 전공을 치하하면서 이같은 주장에 대한 「도덕적 권리」를 인정하고 현 정치ㆍ경제적 위기에 대한 비난에 수세적 입장을 취했다고 소식통들은 말했다. 한편 리투아니아에 파견된 소내무부 소속부대 지휘관들은 리투아니아 사태에 대한 접근 방식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고 한 고급장교가 8일 실토했다. 현지주둔군 부사령관은 기자회견에서 『지금이 질서를 엄중히 잡을 때가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본인은(이번 사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조속한 시일내에 대통령이(직접) 통치하는 방법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리투아니아 주민의 생명을 위협할 의도는 없다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도발」이 자행될 경우 군이 개입하는 등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 했다. 그러나 또다른 세력은 대통령의(직접) 통치가 이뤄져야 할 시기는 아니라는 반대입장을 표명,리투아니아 문제를 놓고 군부가 이견을 빚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 소 에스토니아 국명 변경/의회,「사회주의 삭제」 의결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 라트비아공화국 의회는 공화국 명칭 변경과 전전의 문장 부활을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독립움직임에 진전을 이룩했다. 헨리 소바 공산당고위당직자는 에스토니아 의회가 찬성 73,반대 14,기권 2로 공화국명칭을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에서 에스토니아공화국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3가지 색깔의 공화국기와 문장 부활을 포함한 이같은 변화는 이웃 리투아니아공화국과 라트비아공화국의 독립움직임과 보조를 같이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망치와 낫의 공산당기에 대체돼 부활될 에스토니아문장은 황금빛 바탕에 3마리의 사자가 그려진 것이다. 그는 그러나 대의원들이 에스토니아독립을 선언하고 공화국에서 제정된 법률만 인정한 1937년 공화국헌법의 몇가지 조항을 부활하는데 대한 논의는 차후로 미뤘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의 의회보고에는 개헌안이 통과된 것으로 돼 있었으나 이후 개헌안이 의회에 서면으로 제출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으며 의회가 개헌안을 언제 토론하게 될지는 현재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 소,라트비아수도서 무력시위/탱크ㆍ장갑차 도심진입

    ◎크렘린선 독립관련 석명서 요구 【리가(소라트비아 공)로이터 AP 연합】 소련 정부군의 탱크와 장갑차들이 7일 아침 출근시간무렵 라트비아 공화국의 수도 리가시내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 소련군의 탱크와 장갑차들은 이날 상오 8시쯤부터 시가지로 진입하기 시작했는데 표면상으로는 나치패망 45주년을 기념하는 오는 9일의 승리의 날 행진 준비를 하는 것이라는 명목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많은 라트비아 주민들은 소련군의 이같은 군사이동을 라트비아의 독립선언에 대해 공포감을 심어주려는 모스크바 당국의 전술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아나톨리 고르부노프 라트비아 공화국 최고평의회의장(대통령)은 이날 소련당국이 자신에게 라트비아의 독립선언에 관해 설명할 것을 요구해왔다고 밝히면서 소련의 대 라트비아의 보복이 알려진 것만큼 심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고르부노프 의장은 이날 라트비아 의회연설에서 소련정부의 한 의원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라트비아의 독립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문건을 요구하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뜻을 전달해왔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라트비아정부에 독립선언에 관한 성명서를 요구해온 것은 그가 라트비아에 대한 경제제재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 라트비아공 총리/고드마니스 선출

    【모스크바 AFP 연합 특약】 소련의 라트비아공화국 총리에 의사인 이바르스 고드마니스(39)인 민전선부총재가 선출됐다고 소련관리들이 7일 밝혔다. 의사인 고드마니스는 리투아니아의 탈소독립을 주도해 온 인민전선의 공화국 총리 후보였다.
  • 소 러시아공서 사민당 창당

    【모스크바 DPA 연합】 소련 연방 15개 공화국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공화국인 러시아 공화국에서 6일 사회민주당이 창당됐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7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러시아 공화국 전역에서 온 2백만명의 대표단들이 6일 모스크바에서 모임을 갖고 현 소련인민대표회의 대의원인 알렉산데르오볼렌스키와 러시아 공화국 인민대표 올레그 루미체프 그리고 모스크바의 역사학자 파벨 쿠디우킨 등 3명으로 구성된 의장단을 선출했다고 전했다.
  • 「통일독일 나토 잔류」 합의못봐/2+4외무회담 폐막

    ◎「조기통독」원칙만 재확인/새달 베를린서 2차회담 갖기로 【본 UPI AP 연합】 제2차대전 전승 4개국과 동ㆍ서독등 6개국 외무장관들은 5일 독일 재통일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이른바 「2+4」 회의에서 통독이 지체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원칙에는 합의했으나 통일독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잔류에는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관측됐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 서독외무장관은 7시간에 걸친 제1차 회담을 끝내고 발표한 공동선언문을 통해 6개국은 통독이 지체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밝히고 차기 회담시기와 장소를 ▲6월 베를린 ▲7월 파리 ▲9월 모스크바로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독 실현의 최대 선결과제로 부각돼온 통일독일의 나토 잔류문제와 관련,협의결과에는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이견조정에 이르지 못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은 이날 회동후 『냉전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통독협의에 진전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 “한인 최초 소 이주 1863년 9월21일”/재소 한인작가 밝혀

    【내외】 한인들이 소련땅에 처음으로 이주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백27년전인 1863년 9월21일이라고 모스크바방송이 한 재소 한인작가의 글을 인용,보도했다. 현재 소련에서 기자겸 작가로 활동중인 한인3세 김부르트는 최근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 부록으로 발행되는 「소유즈」에 기고한 「소련에 사는 조선사람들의 역사와 현황」이란 글에서 1863년 9월21일에 첫 한인이주민들이 소련국경을 통과했다는 기록문서가 있으며 이후 8년만인 1871년에는 술탄강가에 인구 1천6백16명을 헤아리는 한인농촌 7개가 형성되었다고 밝히고 이주원인에 대해 『조선에서의 지나친 봉건적 압박과 농민들의 토지수탈,그리고 빈곤』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모스크바방송은 전했다.
  • 「하늘만큼 먼 나라」/임춘웅 국제부장(서울칼럼)

    수년전 「하늘만큼 먼나라」라는 한편의 연극이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 극단 「산울림」이 대한민국연극제에 내놓았던 이 창작극은 그 예술성 이상의 감동을 남겼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 연극에는 백성희 조명남 전무송 박정자 이주실 등 우리 연극계의 뛰어난 배우들이 열연했고 임영웅씨의 연출솜씨 또한 훌륭했다. 그러나 불과 11명의 배우들이 비좁은 무대에서 엮어내는 연기력만으로 그 큰 감동을 자아낼 수 있을까. 「하늘만큼…」은 그런 연극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늘만큼 큰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했다. 이 극의 성공은 이산의 비극성이 갖는 극적 진실때문이었다. 분단과 이산은 40년,50년이 지나도 계기만 되면 한동안 잊고 살던 우리앞에 태연히 나타나곤 한다. 그리고는 그 처절한 생채기를 다시 드러내 놓는다. 최근 일본 삿포로에서 만난 한필성남매의 상봉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 오누이의 오열은 이산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분단과 이산의 문제는 어찌보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흐른다고 소멸하거나,더구나 없었던거로 해둘 성질의 것은 더욱 아니다. 이 극에서 황사장의 비극이 바로 그런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조강지처이고 나는 어머니의 외아들이었는데 이제와서 정숙하기만한 어머니가 재혼을 한 여자로,얼토당토 않게 내게는 웬 아버지 다른 형이 있어야 하느냐고 발버둥을 치지만 진실은 진실대로 남는다. 이산은 목이메어 헤어지던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덧 2세,3세들의 문제가 돼 있는 것이다. 이 연극이 공연될 때는 남북의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각기 「먼 나라」를 상호방문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이 극은 더 큰 아픔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사는 일중에 만나고 헤어지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나는 마음에 가식이 있으면 이 극에서처럼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 한 어머니의 자식들이면서 어머니의 장례식에 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두 줄로 나란히 갈라서 있는 그런 모습으로는 재회의 뜻이 없다. 그것은 이산보다 더 큰 비극일지 모른다. 이 극이 공연된 것은 1985년의 일이다. 5년전이다. 5년전과 지금 우리에겐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동안 세계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은 벌써 옛날의 얘기가 돼 버렸다. 두달도 채 남지 않은 오는 7월2일까지 동서간에는 경제통합이 이루어지고 통일작업이 내년안에 마무리되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지난해 1년동안 대만에서 본토를 다녀온 사람은 무려 37여만명에 이른다. 89년 대만과 중국의 교역량이 37억달러. 작년 천안문사태이후 중국은 대외개방을 억제하면서 다른 외국의 투자를 막으면서도 대만의 대본토 투자에는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89년 대만의 중국투자액이 10억달러 수준. 지난달 24일 대만의 대기업 포모사는 7백억달러 규모의 석유화학 단지를 본토에 건설키로 했다. 같은날 대만은 본토와 민간대표부 상호교환을 제의했다. 통일이 무엇인가. 사람이 오가고 물자가 유통되면 통일이 아닌가. 대통령이 한사람이고 정부가 하나돼야만 통일 되는게 아니다. 그렇게 보면 통일 안된 나라는 우리 뿐인 셈이다. 1978년 초쯤으로 기억된다.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중국 통일문제에 관한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UC버클리대의 스칼라피노교수,당시 미 CIA국장 터너,그밖에 중국계의 미국학자들이 대거 참가한 호화토론회였다. 이 토론회의 주제는 중국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스칼라피노 등 미국사람들은 한결같이 「무력통일」 뿐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중국계의 많은 학자들은 무력이 아닌 방법으로 통일이 가능하다고 반론을 펴고 있었다. 그들의 논거는 중국에는 「중화」라는 문화적 응집력이 있기 때문에 평화적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에게는 그들의 주장이 생경하기만 했다. 지나치게 낭만적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중국의 「중화」는 지금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왜 안되는가」라는 얘기를 해보면 「6ㆍ25」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리고 만다. 정말 그럴까. 중국은 우리보다 더 오랫동안 내전을 겪었고 대만정부는 나라의 반쪽도 안되는 조그만 섬에 쫓겨가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김일성이 변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만 변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과연 그래야 할까. 동독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던때 서독은 오래전 동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분단과 이산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요며칠 사이 『한반도분단의 책임이 있는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들이 워싱턴과 모스크바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뒤이어 늦게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에게 문제는 없는가도 살펴볼 일이다. 우리의 마음은 과연 열려있는가 말이다. 우리의 「하늘만큼…」은 의외로 가까울 수도 있다.
  • 소군,반고르바초프 무력시위/나토 소식통 “한때 내전위기”

    ◎“개혁에 불만” 지난 2월 4천명 중무장행진/충격 고르비,탈소ㆍ군축입장 강경으로 선회 소련에서 민주화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2월25일 소련군 정예요원들이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혁에 반발,「무력시위」를 벌였으며 이로 인해 고르바초프는 군축협상과 리투아니아의 분리운동에 대해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하게 됐다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한 소식통이 3일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소식통은 당시 모스크바 부근에 배치돼 있던 약3천∼4천명의 정예 타만경비부대 병력이 모스크바에 소재한 한 군사학교로 진입했으며 여기서 이들은 학생들을 박격포와 기관총으로 무장시켰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어 고르바초프에 대한 무력시위와 소연방의 분열을 우려하는 군부의 경고를 표시하기 위해 학교주위에서 행진을 벌였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 이날 군부의 시위는 약10만명의 소련주민들이 민주화를 지지하며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과 때를 같이해 발생한 것이다. 소식통은 고르바초프가 이후 나토 16개 회원국과 바르샤바조약기구(WTO) 7개회원국이 빈에서 개최하고 있던 유럽배치재래식무기 감축회담(CFE)에서 입장을 경화함으로써 군부의 이같은 시위에 대응했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또 이른바 「개방된 영공」이라고 명명된 나토와 WTO간의 공중정찰에 관한 오타와회담에서 협정이 체결되는 것을 막았으며 소연방의 해체에 반대하는 군부의 주장에 동의,결국 리투아니아의 연방탈퇴에 대해 강경입장을 취하게 됐다고 이 소식통은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고르바초프가 당시 군의 사기를 올려 주기 위해 더 많은 물품을 지원해주고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에게 원수란 칭호를 붙여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소식통은 또 고르바초프의 사진이 지난 3월16일자 소련군 기관지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때는 그가 군부와의 우호관계를 회복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편 영국의 ITN뉴스와 BBC방송도 나토의 소식통을 인용,소련이 당시 「내전 일보 직전」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서방의 저명 정치지도자들은 3일 모스크바에서 당시그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아직 접하지 못했다고 말했으며 부시 미국대통령을 비롯,몇몇 인사들은 고르바초프에 대한 소련군부의 반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 시련에 직면한 소 경제개혁(사설)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소련개혁이 새로운 시련에 직면하기 시작한 조짐들이 드러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지난 3월 정치와 법률제도의 개혁을 단행한 고르바초프는 그 실천을 위한 시장경제도입 등 획기적인 경제개혁조치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국민적 반발의 우려때문에 그 발표의 연기를 강요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황의 전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더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한 소련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데 그 근본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개혁의 방법은 시장경제 원리의 도입 등을 통한 국민적 창의력과 경쟁력의 활성화뿐이란 결론에 도달해 있다. 그동안의 정치 및 법제도의 개혁도 결국은 경제개혁을 위한 준비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고르바초프와 그의 개혁파 보좌관들은 지금 그 경제개혁을 서둘러야 할 입장에 있다. 소련경제는 현재 성장은 커녕 후퇴를 하고 있으며 물자는 부족하고 돈의 가치도 떨어지고 그래서 사람들의 일할 의욕은 더욱 감소되고 있다고 모스크바의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빈번해진 노동현장의 파업은 소련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의 소 경제분석보고서는 소 경제가 심각한 혼돈의 수렁으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으며 미국을 방문한 소련경제 전문가들은 소련의 경제 현실이 그 보고서 내용보다 더 심각하다고 폭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르바초프의 개혁조치들이 단행된다고 해서 당장에 경제가 개선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로선 다른 대안이 없다. 개혁조치의 단행을 연기하면서 그는 프라우다를 통해 소 경제의 심각한 위기상황을 경고,급진적 개혁의 조속한 단행 필요성을 강조케 하면서 일반국민 설득에 나서고 있다. 자본주의경제의 경험이 전혀 없는 소련 일반국민과 노동자들은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하는 시장경제원리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국가가 보장하는 종신직장과 싼 물가에 안주해온 일반국민들로서는 시장경제의 도입이 실직과 물가고에 따른 생활안정의 파괴를 가져오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은 찬성하나 실업과 인플레는 반대라는 메이데이 구호는 바로 고르바초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개혁은 필요하나 먹기는 두려운 쓴약인 것이다. 보수파들은 소 국민의 그러한 우려를 선동하고 있으며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그의 개혁정책이 가장 중요한 타파의 표적으로 삼고 있는 바로 그 사회주의 경제의 오랜 국민적 타성의 공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시장경제원리의 도입등 실천에 들어가기도 전에 직면한 이 난관을 고르바초프가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소련의 경제계획을 책임지고 있는 아발컨 제1부총리는 소련경제가 오는 9월까지 안정되지 못하면 소련정부는 퇴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련 공산당대회가 개최되는 오는 7월2일까지의 기간이 중요한 고비가 될 것 같다.
  • 동구민주화로 「핵현대화」의미퇴색/미ㆍ나토 「핵무기백지화」의 배경

    ◎“서방이견해소”ㆍ“대소 실리 획득” 다목적 조치/「공중발사 핵미사일」새로운 이슈로 대두될 듯 유럽배치단거리 핵무기 현대화계획의 전면백지화는 동구의 민주화개혁으로 소련ㆍ동구의 위협이 크게 감소함으로써 이제 우호적으로 변모한 동구권만을 공격존재가치를 잃었다는 현실에의 어쩔 수 없는 적응이다. 뿐만 아니라 반핵주의의 물결이 높아짐에 따라 서독,벨기에,네덜란드 등 일부 나토국 국민들은 자국내에 배치된 지상핵무기의 전면철거를 공공연하게 요구하기까지에 이르렀고 단거리 핵무기를 둘러싼 이견은 나토내의 단합을 해치는 한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따라서 실익도 없이 두통거리만 되는 단거리 핵을 깨끗이 포기하는 대신 다른 이득을 얻어내자는게 이번 단거리 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전면 백지화시킨 진짜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밖에 미국과 나토가 이번 결정을 통해 얻어 내려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으로는 ▲나토가 단합을 도모하고 변화하는 유럽의 정치환경 속에서 나토가 새로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상정립과 ▲군축협상의 가속화와 통일독일의 나토잔류에 반대하고 있는 소련의 입장을 완화시켜 보자는 대소 설득의 두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나토의 입장을 살펴보면 동구에서의 민주화개혁이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해만 해도 나토는 냉전체제의 잔재이며 이제 냉전체제가 종식됨에 따라 나토를 대신할 새로운 안보체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곤 했었다. 이같은 주장은 절대적 호응을 얻지 못해 여전히 나토중심의 안보체제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나토로서는 무언가 새 위상을 정립할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뵈르너는 3일 나토외무장관 특별회담이 끝난후 『나토는 이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나토는 지금의 역사적 기회를 이용,대결을 뛰어 넘어 협력의 시대로 옮기는 변화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과거 군축제안에 있어서 고르바초프의 소련에 항상 뒤처지는 인상을 주었던 나토가 앞으로 선도적 역할을 맡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오는 9일 캐나다의 캘거리에서 나토국방장관회담이 열리고 뵈르너가 다음주 부시미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데 이어 나토사무총장은 최초로 모스크바와 프라하,바르샤바 등 바르샤바조약국 수도들을 향후 몇개월간에 걸쳐 방문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는 것도 이같은 나토의 새 위상정립 노력을 보여주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조치의 또다른 주요 목적은 나토에 대한 소련의 불안감을 불식시키는데 있다. 동구변혁과 함께 서방진영이 소련 및 동구로부터 느끼는 위협은 크게 감소됐지만 소련은 통일독일이 나토에 잔류할 경우 동서간의 균형이 무너져 소련이 일방적인 손해를 볼지 모른다는 우려를 여전히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같은 소련의 불안감을 어떻게든 무마시키는게 새로운 유럽건설이란 과제를 눈앞에 둔 나토로선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통일독일이 나토에 잔류한다 해도 군축협상의 진전에 따라선 그것이 소련에 전혀 위협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 조치가 나온 것이다. 이번 조치가 동서군축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은 틀림없지만 보다 성능이 강화됐고 미국이 유럽에 집중 배치한다는 계획으로 앞으로 미소군축에 새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지적되는 공중발사 핵미사일에 아무 언급이 없는 점은 「옥의 티」로 지적되고 있다.
  • 외언내언

    미국사람들은 15년전 월남전의 패배를 공식적으로는 인정치 않는다. 어디까지나 교전당사국간 정치적 평화협상에의한 종전이며 전략적 철군인 것이다. 나라 밖의 어떤 전장에서건 결코 패배해본적이 없다고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월남전은 두번다시 기억하고싶지 않은 수치스런 전쟁일 수밖에 없다. ◆그런 미국에 6ㆍ25한국전쟁은 어떤것인가ㆍ 어떤 미국 전쟁사가는 일찍이 『이상한 시기에 이상한 장소에서 이상하게 일어난 전쟁』이라고 지적한바 있다. 그럴듯한 지적일듯 하지만 전쟁자체가 정당이 아닌 이상상태일진대 그런 정의는 낡아빠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미국을 대표하는 부시대통령의 6ㆍ25관은 어떠한가. 『한국전은 공산주의의 조류를 최초로 되돌린 전쟁이었으나 역사에 의해 종종 무시되 「잊혀진 승리」로 불려진다』. ◆「잊고 싶은 전쟁」(월남)이나 「잊혀진 승리」(한국)란 표현은 따지고 보면 오십보 소백보격이다. 두 전쟁 다 「승리의 주체」로서 보면 이념과 체제는 다르지만 그 명분과 승리가 개운찮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사실 6ㆍ25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라든가 전쟁사적 규정은 우리에게도 아직 미완인채로 남아있다. 그래서 동란이니 사변이니 하기도 하고 한국전쟁,조선전쟁 또는 그냥 6ㆍ25전쟁이라고도 쓴다. ◆6ㆍ25는 이를 체험한 세대들에겐 여전히 비극이며 악몽으로 남아있다. 휴전선과 판문점,국립묘지와 녹슨 훈장,「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이 말없는 경원선 절단지점등이 그 실체이다. 6ㆍ25는 북한의 남침이었고 김일성은 연합군 대위였다는 최근의 모스크바 방송내용과 평양방송의 대응비난등 모두가 아직 끝나지 않은 6ㆍ25의 모습들이다. ◆앞에 인용된 부시의 6ㆍ25관이 미국의 한국전참전기념비 건립을 위한 모금(목표1천만달러)행사에서 피력된 것도 흥미롭다. 마침 때를 같이 해서 김일성이 그곳을 잃고서 사흘간 식음을 전폐했다는 백마고지의 승전 종합전적지가 조성됐다. 전쟁은 잊되 전쟁의 교훈마저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뜻에서이다. 6ㆍ25에 관해 「남침」이었다는 전통주의가 북침설 또는 남침유도설 따위 수정주의에 도전받고 있는 때 이라서 더욱 그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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