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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대화 진전에 도움됐으면…”/소 쿠데타실패 각계 반응

    ◎“개방·개혁의 확산계기 되길”/“한·소관계도 더 돈독 기대/유보했던 상담 즉각 재개하겠다” 소련 강경보수파의 쿠데타가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들은 「평화와 자유를 지향하는 인류의 위대한 승리」라고 기뻐하며 세계평화와 한소관계 및 남북관계도 더욱 발전될 것으로 기대했다.우리 국민들은 특히 소련국민들의 총칼과 탱크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민주화와 개혁의 의지에 대해 깊은 찬사를 보냈다. 소련에 진출한 대부분의 국내기업들도 지난 3일동안 유보했던 대소업무를 재개하며 그전보다 더욱 돈독한 경제협력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김재광 국회부의장=평화를 지향하는 인류의 위대한 승리라고 본다.이제 계급투쟁포기를 정식으로 고할 때가 됐다.앞으로 동서간 화해무드가 가속화되고 한소는 물론 세계각국간의 경제협력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특히 소련국민들과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보여준 민주주의를 향한 정열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련사회는 체제 민주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따라서 남북관계도 기대이상으로 잘 풀려나갈 것으로 생각된다.소련을 살리는 것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길인만큼 우리나라도 여기에 적극 동참했으면 한다. ▲이재훈 변호사=이번 쿠데타가 실패한 것을 보고 소련국민들의 민주화 의식에 무척 고무적인 인상을 받았다.이를 계기로 미국 등 서방 제국들의 소련에 대한 원조와 탈공산화 지원작업이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 되고 한소관계도 전보다 더 돈독해 지기를 기대한다. ▲송충원 삼선해운사장=다행스런 일이다.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사할린 출장등 그동안 유보했던 소련과의 업무를 다시 추진하고 있다.물론 전화와 팩시밀리등을 통한 그쪽 회사들과의 상담도 재개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옛날과 같은 힘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앞으로의 사태 진전 역시 섣불리 짐작하기 어렵다. ▲김지연씨(소설가)=소련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내내 마음을 졸여왔는데 이제야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을 것 같다.무엇보다 무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자유를 지켜낸 용기있는 소련시민들에게 찬사를 보낸다.그들은 자존심있는 나라 국민답게 스스로 구제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그같은 일을 이뤄냈다. ▲김동성교수(중앙대 정치외교학과)=이번 쿠데타는 지난 5∼6년동안의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한 반동이었으며 개혁의 과도기에 혼란이나 일시적 어려움을 빙자해 소련의 헌정질서를 전복시키려는 행위로 국제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쿠데타의 실패로 고르바초프­옐친의 관계가 앞으로의 소련 권력구조의 향방을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최원표 대한항공 상무=소련정세가 다시 안정기미를 보여 무엇보다 다행이다. 처음 고르비실각소실이 전해진 뒤 소련으로의 단체관광객등 항공기예약자들이 크게 줄어 무척 당황했었다. 서울∼모스크바간 항공기 운항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소련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으리라 예상한 것이 맞아 떨어졌다. ▲민인식 털보네식품 부사장=고르비가 실각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련진출을 서둘렀던 입장에서 충격이 컸다. 현재 소련 알마아타에 국수공장과 식당 3곳을 건설중인데 모스크바의 정국변화소식을 듣고 대소투자가 헛일이 될까봐 많은 우려를 했으며 현지 직원들과 하루 1∼2차례의 전화통화를 하며 소련상황을 지켜보았었다. 고르비의 재등장으로 개혁정책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 기업들의 소련진출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이코프스키 올레그 한국외국어대 교환교수(소련 모스크바 룸바대)=보수파의 집권시도는 충격이었지만 이번 기회로 소련국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을 것이다. 만약 보수파가 집권했다면 소련은 상황이 더욱 악화됐을 것이다.
  • 소 쿠데타 실패… 그후의 세계정세/긴급대담

    ◎“미국주도 동·서 협력관계 강화된다”/개혁·민주화는 이젠 역류할 수 없는 대세/북한,「핵사찰 수용」등 남북대화 나설 것/부시,대소경협에 박차… 고르비 입지 제고 시켜야 소련 강경보수파의 쿠데타 실패는 소련의 개혁과 민주화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임을 전세계인에게 일깨워 주었다.이제 세계는 종전보다 더욱 굳건한 협력과 공존의 바탕위에서 평화시대를 구가해 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또 쿠데타가 성공했을 경우 한동안 정체될 것으로 우려됐던 남북한관계도 국제적 화해 분위기에 발맞춰 대화와 교류를 가속화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이용필서울대교수와 서병철외교안보연구원교수의 긴급대담을 통해 쿠데타실패의 배경과 소련정국의 향배,국제질서및 동북아정세,남북한관계의 전망등을 진단해 본다. ▲이용필교수=소련의 쿠데타가 실패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련정치체제의 특성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소련에 있어 정권교체는 평화적인 모양새는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권력투쟁이라는 노골적 행태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권력의 계승과 교체가 제도화되지 못했던 것입니다.이번의 쿠데타도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해 그동안 기득권을 누려왔던 사람들이 위협을 느꼈다는 점을 구체적 배경으로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쿠데타 실패의 원인을 서너가지 요소로 분석할 수 있겠습니다.우선 쿠데타주동세력들이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을만한 명분을 갖지 못했다는 점입니다.그들은 거사후 발표한 성명에서 어떻게 소련을 이끌어가겠다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둘째로 쿠데타 주동세력들이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도 중요한 실패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그동안 보도에서도 나왔습니다만 혁명결행 몇시간 후에야 군이 투입됐다는 사실등이 이를 반영합니다.셋째로는 옐 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용감하고도 단호한 저항의지와 모스크바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상들의 쿠데타에 대한 비난과 옐친등 개혁지도자들에 대한 확고한 지지태도도 중요한 실패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병철교수=이미 시작된 민주화나 평화정착의 큰 흐름이 일부 강경보수세력에 의해서 쉽게 저지될 수 없었다는 데서 이번 소련의 쿠데타실패의 대국적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소련내부의 엄청난 변화,즉 역사의 큰 흐름을 억지로 막으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했다고 보면 정확하겠지요. 물론 쿠데타추진세력등 강경보수세력이 준비를 허술하게 한 점도 실패의 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즉 옐친등 개혁세력을 그대로 둔 채 형식적 쿠데타를 시도한 것 자체가 안이한 발상이었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소련 국민들이 개혁및 평화정착에 엄청난 지지를 보냈지만 쿠데타세력엔 전혀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미 실패가 예견됐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교수=이와함께 쿠데타의 주도세력들이 모든 통신망을 완전히 봉쇄하지 못한 점을 꼽아야할 것입니다.그만큼 소련의 통신시설이 방대했던 것이죠.주요 매체들은 장악됐지만 모스크바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외부세계에 그대로 전해졌고,외부세계의 반응이 역으로 전파됐던 것입니다.쿠데타 주도세력들은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서방의 압력이 전해졌음에도 불구,이에 대응할 만한 묘책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스스로 경제적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서교수=이번 쿠데타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남에 따라 비온 뒤에 땅이 더욱 굳어지듯이 고르바초프의 입지는 더욱 강화될 전망입니다.고르비는 자신의 위치가 확고해진 만큼 이제는 급진파와 보수파의 가운데에서 추진해온 개혁정책을 더욱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도 기왕의 높은 국민적 지지에다 반쿠데타투쟁의 선봉에 나서 탱크 위에서 대중연설을 하는등 커다란 용기를 보여줘 고르바초프를 능가할 정도로 정치적 기반을 구축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옐친과 고르바초프가 즉시 권력투쟁을 개시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오히려 개혁추진이라는 같은배를 탄 두사람이 힘을 합치면 지지부진했던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교수=고르바초프가 즉시 착수해야할문제는 이번 사태의 직접 원인이 됐던 신연방조약의 마무리가 될 것입니다.여기에는 독립을 선언한 발틱연안의 3개 공화국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가 우선적인 관심사항입니다.적정 수준의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와해가 불가피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어려운 문제들은 산적해 있습니다.식량난등 경제적 위기를 쉽게 극복할수는 없을 것입니다.서방의 지원에 의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겠지만 말입니다.비록 거사에는 실패했지만 특권적 위치에서 혜택을 받아온 사람들의 반발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느냐도 숙제입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군과 KGB등 쿠데타관련 세력들을 일시에 도려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집니다.주요인물들은 물론 거세하겠지요.반대세력들의 감정을 진정시키면서 그들을 자기편으로 부분흡수하는 식으로 세력을 약화시켜 나가는 방법을 택할 것입니다. 소련권력 속성상 최고권력자가 주변에 자기사람을 포진시키기 위해서는 10년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브레즈네프가 대표적인 경우죠.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지금까지 그럴만한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서교수=고르바초프가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동서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기여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이제 고르바초프가 시련을 극복하고 권좌에 복귀할 경우 동서 화해무드가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지난해 11월 체결된 재래식무기감축협정이라든가 금년초에 본격협상에 들어가 7월말 조인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이행하는데도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쿠데타에 의해 고르바초프가 한때 실각 위기에 빠졌을 때 서방진영 지도자들이 「고르바초프를 좀더 도와줬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이제는 고르바초프의 국내적 위치가 불안할 때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했던 일본및 일부 서방국가들도 적극적으로 고르바초프를 도와서 대소경협을 강화하리라 예상됩니다. ▲이교수=이번 소련사태에 직면해 미국과 유럽선진국들은 생각보다 민첩하고 강도높은 조치들을 취했습니다.특히 미국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런 맥락에서 앞으로의 세계질서는 미국의 헤게모니를 주축으로해서 구축되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미소간의 우호관계도 더욱 돈독히 유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소련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혁·개방·민주화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서교수=고르바초프가 한때 권좌에서 밀려났을 때 우리 입장에서는 고르비가 건재하고 있는 동안 국교수립 등 대소접근의 기본틀이 마련된데 대해 안도감을 가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고르바초프가 다시 권력을 장악하게 됨으로써 북방정책을 통해 설정해 놓은 우리 외교노선에 일단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교수=만약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동북아의 세력균형은 미묘하게 변화됐을 것입니다.우선적으로 일본이 재무장하는 데 촉진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북한의 지도자에게는 쿠데타의 실패가 큰 경종이 됐을 것입니다.북한의 기자들이 쿠데타주역들의 비상위원회 회견장에 대거 몰려갔다는 보도등에 비추어 볼 때 대세역전에 따른 북한의 곤혹스런 입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서교수=이제 고르바초프가 더욱 힘을 갖고 재등장했으므로 북한은 좋든 싫든 과거보다 개방화에 더욱 적극적 태도를 보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북측이 당장 태도를 바꿔 남북고위급회담을 열자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시기를 봐가며 남북대화와 핵사찰수용문제 등에 있어 보다 유연성 있는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이용필 ▷약력◁ ▲1933년생 ▲미국 시카고대(정치학박사) ▲자유아카데미 교수부장 ▲서울대교수(현) 서병철 ▷약력◁ ▲1939년생 ▲독일 본대학교(정치학박사) ▲한독사회과학회 회장 ▲외교안보연구원 교수(현)
  • 옐친 결국 해냈다/선봉서 「반쿠데타」주도… “정신적 지주역”

    ◎국내외 지지 급상승… 「고르비이후」예약 고르바초프를 축출한 강경보수파의 이번 쿠데타를 실패로 이끄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다. 그는 19일 쿠데타 발생직후 러시아공 의사당앞에 진주한 탱크위에 올라가 국민들에게 총파업과 시민불복종을 외치며 신군부의 보수회귀를 끝까지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더욱 극적인것은 그가 지난 6월 러시아공화국 최초의 민선대통령에 선출된 이후 고르바초프의 미온적인 개혁정책을 강력히 비난하며 사임요구까지 해왔기 때문에 쫓겨난 고르바초프의 원상회복을 위해 쿠데타세력에 과감히 맞선 그의 행동은 소련국민뿐 아니라 미국 등 우방국에도 소련내 「마지막 희망」으로 간주돼 왔다. 그는 쿠데타군의 탱크로 둘러싸인 러시아공 의사당안에서 자신이 러시아공화국의 통제를 계속할 것을 선언하고 쿠데타에 가담했던 모든 군인들과 KGB요원들에게 대열 이탈을 촉구하는 등 반쿠데타세력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왔다. 이같은 옐친의 용감한 행동에 힘입은 광원들이 파업을 단행했으며 전국적으로 수십만의 시민들은 쿠데타 저지시위에 가담함으로써 쿠데타세력이 발붙일 곳을 잃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옐친은 이번사태로 말미암아 국내적으로는 러시아공화국뿐만 아니라 다른 공화국에서도 엄청난 지지를 얻게됐으며 더욱이 서방지도자들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고르바초프 이후」의 자리를 굳혔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고르바초프와 동갑인 1931년생으로 우랄산맥의 한 농가에서 출생한 그는 우랄공과대학에서 공부했으며 55년 건설기술자로 졸업했다.61년 공산당에 입당,67년부터 85년까지 지방당에서 일하던중 81년 중앙위원으로 승진했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추진을 위한 심복으로 85년 그를 모스크바로 불러온후 그는 급속도로 지위를 높여 정치국의 소장멤버가 되었고 농업분야의 총책임자로 승진됐었다.그러나 개혁의 속도를 가속화하라는 그의 끈질긴 요구때문에 고르바초프로부터 멀어지게 됐고 87년에는 모스크바시 당위원장직에서 해임됐으며 90년 7월에는 공산당을 탈당하기까지 했다.이같은 그의 과감한 행동은 국민들 사이에서의 인기를 더욱 높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4월부터는 고르바초프와 일종의 공동전선을 구성,민주적이고 시장경제지향적인 새로운 소련을 건설하는데 힘을 모아왔다. 공개적인 상호비난은 중단됐고 옐친은 연방정부와 소련공화국간에 새로운 연방조약을 체결하려는 고르바초프의 노력에 가장 큰 지지를 보냈었다.고르바초프는 이에대한 보답으로 공화국들의 주권을 확대하고 그들에게 권력을 이양하는데 동의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번 쿠데타에서 강력하게 고르바초프를 지지한 옐친의 용감한 행동은 러시아공화국뿐 아니라 소련전체의 대중지도자로,또 국제적인 지도자로 그를 변신케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 외언내언

    20세기를 뒤흔들고 있는 모스크바 뉴스속에 가로수이야기나 좀 하자고 하면 아마 한가해 보일지 모른다.그러나 좀 하자.서울 대방로에 있는 30∼40년생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1백12그루의 이야기가 그것이다.최근 이곳엔 도로확장공사가 계속돼 왔고 드디어 이 나무들도 잘리게 돼 있었다. ◆자르게 되는 이유도 있다.길을 넓힐때 있던 나무를 옮겨심기보다는 직경 10㎝쯤의 새나무를 심는것이 뿌리활착률도 높고 비용도 절반이하로 낮아지기 때문이다.그러나 대방동 주민들은 이 나무들의 이식을 여론화 했다.돈이 좀 들더라도 옮겨 심자.이 가로수들은 대방로의 명물이다라고 나섰다.가로수의 문화의식이 성립된 것이다.당국의 결정도 잘 내려졌다.동작구청은 자문과 협의를 거쳐 이미 병든 나무를 제외한 95그루를 넓힌 길에 다시 심기로 했다. ◆도시의 세련성은 가로수에서 시작된다.오늘날 모든 도시들은 외곽녹지로부터 가로수로 이어지는 수림대장계획을 가지고 있다.그저 길 옆에 있는 나무가 아니라 자연녹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도시를 꾸미는 것이다.이 선상에서 파리는 시민의 정서적 고려까지 접근한다.예컨대 도시의 샐러리맨이 퇴근할때 얼마쯤길이의 수림대를 보면 정서적회복이 이루어질까를 논의한다. ◆도시의 수림을 미관만으로 보지않은지는 너무 오래다.도시어린이들의 감성적성장을 의지할곳은 가로수밖에 더 있느냐는 견해까지 있다.특히 우리 같은 경우엔 그러하다.나무한 그루 없는 아파트도 있기 때문이다.있다 하더라도 그야말로 앙상한 나뭇가지만 자그마하게 있다.그러나 크고 오래 자란 나무가 주는 이미지는 철학적인 것이다. ◆환경오염과 싸우는 방법에도 나무만한 것이 없다.대기오염의 5%개선은 나무에 의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나무를 더 심자는 것이다.대방동 가로수를 옮기는 비용은 2천5백만원으로 되어있다.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수십배의 이익을 주민들은 갖게 됐다.사람답게 사는 노력이다.
  • “찬탈과 숙청” 소 권력투쟁 74년

    ◎정권이양때 「인민의 뜻」 배제/개혁·보수파가 번갈아 집권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재임중 쿠데타에 의해 실각됨으로써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래 소련권력의 정상을 차지해온 7명의 정치지도자 가운데 흐루시초프에 이어 두번째로 자연사가 아닌 이유로 도중하차한 지도자가 됐다. 지난 여섯차례의 정권이양과정을 보면 예측불허의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통해 후계자가 결정돼왔으며 후계자가 집권한 후에도 실질적인 전권을 장악하기까지는 짧게는 1∼2년,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후계자 선정에 있어서의 진통은 전임자의 정책을 계승하는 측보다는 반대하고 공격하는 측의 입장이 우월한 양상을 보여 집권자의 변화에 따라 개혁과 보수의 성향이 번갈아 나타나는 양상을 보여왔다. 공산혁명후 소련의 첫지도자인 레닌은 10월혁명후 사회주의연립정부를 구성하자는 사회혁명당등 온건사회주의 정파들의 주장을 배격하고 볼셰비키 단독정부를 수립,자신이 총리가 되고 트로츠키를 외무장관에 임명했다.그러나 이어서실시된 제헌의회 선거에서 볼셰비키는 25%의 지지밖에 얻지못해 소수정부를 유지해오다 이듬해인 18년 국회를 해산하고 볼셰비키를 전러시아공산당으로 개칭,1당독재체제를 확립했다.동시에 자신이 국가수반격인 인민위원회의 의장직을 차지,반대파들을 숙청해가며 24년 사망할때까지 절대적인 지도자로 군림했다.레닌은 1차대전이 끝난후 식량부족과 경제침체가 극에 달하자 21년 개인기업허용및 농만들의 자유로운 식량처분권등을 인정하는 신경제정책(NEF)을 실시했다. 그러나 레닌이 죽자 트로츠키의 2인자 부상 예상을 뒤엎고 스탈린·지노비에프·카메네프의 3두체제가 등장했다.당시 스탈린은 실권없는 당서기장으로 이론이나 실제활동에서 두드러지지 못한 인물이었으나 코민테른 책임자 지노비에프와 공산당 정치국원 카메네프를 재빨리 포섭,레닌의 신경제정책 지지를 표방한 부하린등 우파를 제거했다.그 다음에는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를 이간질시키는 각개격파전술을 구사,레닌 사후 5년만인 1929년말 명실공히 당과 소연방의 최고지도자로 실권을 장악했다. 스탈린은 공업화와 농업집단화를 강제적으로 추진시키는 무자비한 경제정책을 추진했으며 반대자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했다.36년에는 공산당을 모든 공공조직과 국가조직의 핵심으로 규정한 새헌법을 발포,39년부터 52년까지 당대회를 한번도 열지 않은채 철권통치를 해왔다. 53년 30년 가까이 독재체제를 구축해온 스탈린이 죽자 당내에는 유력한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집단지도체제가 불가피해 당시 총리 말렌코프·KGB의장 베리아·외무장관 몰로토프·정치국원 흐루시초프의 4두체제가 수립됐다.원래 스탈린 사망 다음날인 3월6일 당중앙위원회와 정부및 최고회의 합동회의에서 말렌코프를 당간부회 의장·당제1서기·총리등 3개요직에 앉힘으로써 말렌코프체제가 수립되는 듯했으나 4인의 암투가 본격적으로 전개돼 불과 8일만에 당중앙위 총회에서 당 제1서기직을 흐루시초프에게 넘기도록 결정,말렌코프의 권력은 줄어들었으며 이어서 베리야가 KGB를 이용,권력장악을 시도한다는 이유로 숙청됐다. 이후 2년동안 권력투쟁을 벌인뒤 55년 말렌코프를 총리직에서 제거함으로 흐루시초프는 전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흐루시초프는 이른바 「해빙」이라는 신정책을 시도했으며 반스탈린정책을 추진,고르바초프등 당시 젊은 당료들을 고무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64년 10월 쿠바위기와 중소이념논쟁 격화등으로 인한 당내불만의 고조로 그가 휴양차 모스크바를 비운 사이 그의 추종자들인 브레즈네프·수슬로프·포드고르니·코시긴등에 의해 추방당했다. 이어서 등장한 것은 총리 코시긴·당제1서기 브레즈네프·최고회의 간부회의의장 포드고르니등에 의한 이른바 트로이카체제(3두체제)였다. 브레즈네프는 이 체제내에서 옛질서의 회복을 강력히 추진하는 반흐루시초프정책을 밀고나가 2년후 서기장에 올랐으나 코시긴총리가 죽고 새헌법이 통과된 77년에야 전권을 장악할수 있었다. 82년11월 브레즈네프의 갑작스런 죽음이후 정치국원 체르넨코와 경쟁을 벌이던 안드로포프 연방최고회의의장은 이틀만에 당서기장에 올랐으며 그는 불과 7개월만에 국가원수격인 연방최고회의간부회의의장에 선출됨으로써 전권을 장악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15개월만에 사망했고 72세의 고령인 체르넨코가 불과 4일만에 후계자로 결정됐다.그 과정에서 고르바초프·로마노프·알리예프등 소장파들의 강한 도전이 있었으나 일종의 과도체제라는 묵계하에 체르넨코가 지명될수 있었다.그는 브레즈네프의 후광을 받으며 성장해왔기 때문에 강력한 보수체제로의 회귀를 꾀했으나 불과 13개월만에 병사,최단명 지도자를 기록했다. 85년3월 체르넨코가 죽자 고르바초프가 후임 서기장에 선출됐으며 그는 1년동안 최고의 정적인 로마노프·빅토르 그리신등을 축출하고 전권을 장악,다음해 3월 개최된 제27차당대회에서 소련의 대변혁을 가져온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이어서 90년 3월에는 헌법을 개정,대통령에 취임했으나 군내부의 보수파와 옐친등 급진개혁파등의 도전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이같은 소련의 권력이양과정을 볼때 이번 쿠데타로 누가 권좌에 오르든 상당기간 또 한차례의 권력투쟁은 불가피할것으로 보인다.
  • 「소 대반전드라마」에 뜬눈 밤샘

    ◎시민들,고르비 권좌 복귀소식에 안도 표정/탱크 몸으로 막은 용기에 찬사/업체등선 현지 정황파악 분주/“북한빗장 열리는 계기됐으면”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이 결행한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21일 밤 시민들은 모스크바 현지에서 연출되는 「역전 드라마」를 밤늦게까지 TV화면을 통해 지켜보며 한결같이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시민들은 특히 무력에 의해 합헌적인 정권을 붕괴시키려 한 반란세력의 탱크와 총칼앞에 분연히 맞서 위대한 민권의 승리를 창출해낸 소련 시민들의 용기와 자유수호정신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일부 시민들은 지난 89년 6월 발생한 중국 천안문사태와 이번 소련사태를 대비시켜 가며 쿠데타가 실패하게 된 배경과 향후 전망등에 관해 밤을 세워가며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날 밤 언론기관등에는 쿠데타 실패의 사실여부및 반란 주역들의 행방을 묻는전화가 빗발쳤으며 「모스크바 8인방」의 정권 찬탈극이 「3일천하」로 끝났음을 확인했다. 소련에 진출한 일부 기업체에선 간부들이 회사에 나와 그동안의 불안을 털어내고 현지 지점이나 거래처와 전화연락을 시도하며 정확한 사태및 향후 전망을 파악하는등 바쁘게 움직였다. S대학생 김봉수군(22)은 『이번 소련에서의 쿠데타실패는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는 소련국민의 승리이자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계인의 승리』라고 정의를 내리고 『지난 19일 사태가 터진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보여준 단합된 힘이 쿠데타를 주도한 8인비상사태대책위원들의 무릎을 꿇게했다』고 분석했다. 서울D고교 교사 김재봉씨(38)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산주의는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보수강경파에 의해 주도된 쿠데타를 내심 반겨왔던 북한이 큰 충격을 받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밖에 회사원 김정섭씨(35·동부고속 인사과)는 『밤늦게까지 TV를 지켜보면서 자유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했다』면서 『소련사태가 이처럼 빨리 끝난 것은 개혁과 개방의 물결속에서 소련국민의 인권존중과 헌법수호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부 하유미씨(28·노원구 중계 아파트 124동)는 『TV를 지켜보면서 흥분에 몸을 떨었다』면서 『지난 19일 이후 우리나라와 소련·북한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으나 이같은 걱정이 사라지게 돼 반갑다』고 말했다.
  • 소 강경파,「국민의 뜻」 못읽었다

    ◎엉성했던 조직력… “수준미달의 거사”/“실패원인” 미 시각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 성공 확률은 50%를 넘지 않는다』이것이 쿠데타 발발 사흘째를 맞은 미국의 많은 관리들의 예상이다. 따라서 부시 미국대통령의 잇따른 강경발언은 감정적이고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쿠데타가 종국에는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실질적인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고 관측되고 있다. 즉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소련 쿠데타의 실패를 예상하고 반쿠데타전략을 세운 것으로 대부분의 언론들은 보고 있다. 쿠데타를 일찍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는 충분한 조직과 무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설마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하는 최초의 생각이 크게 빗나갔기 때문. 쿠데타 중심세력의 결집력이 예상외로 단단하지 않다는 진단은 거사당일인 19일부터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우선 쿠데타 지도부안의 분열 또는 충분히 계획이 안된 임시변통의 조치로밖에 볼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그리고 발틱해안 여러 공화국들에의 쿠데타군 배치가 엉성하며 엄격한 비상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더욱이 모스크바에 배치된 군대의 일부는 배치된 뒤 친옐친으로 태도를 바꾸기까지 하고 있다.미국관리들은 『아직까지의 사태진전만 가지고 말할 때 이것은 고전적인 쿠데타와는 다르다.탱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쿠데타 발표가 있은지 몇시간이나 지난 뒤였다』는 말로 실패를 단정했다. 또 하나의 실패징조는 쿠데타지도자들이 소련의 여러 공화국 지도자들을 설득하거나 강요하는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일부 공화국 지도자는 이미 반쿠데타 입장을 밝혔으며 다른 지도자들중 상당수도 그 뒤를 이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라디오와 TV 등의 언론에 대한 통제도 보통의 쿠데타 수준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모스크바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감에 따라 미국은 영국을 비롯한 다른 우방을 독려하여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즉 미국은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경제원조를 잃게될지 모르며 국제적인 미아가 될 것임을 믿게 하려 노력하고 있다. ◎경제난 해결책·정통성 미비가 치명적/불 르몽드지 분석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인 르 몽드지는 21일 소련전문가 미셸 타튀의 분석을 인용,이번에 고르바초프를 축출한 보수파의 쿠데타가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르 몽드지의 모스크바특파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소련문제전문가인 타튀는 르 몽드지 기고를 통해 이번 쿠데타상황이 지난 64년의 흐루시초프 실각 당시와 판이하고 또 쿠데타 주도세력이 경제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갖고있지 못한데다 군부내의 이견등이 겹쳐 결국 성공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흐루시초프 실각 당시 소련의 정치·경제상황이 현재와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중국 천안문사태때의 반정부세력도 지금 소련의 경우와 비교하면 훨씬 미약했을 뿐 아니라 당시 중국내부문제도 현재 소련에 비해 덜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타튀는 우선 현 쿠데타세력이 흐루시초프때와 비교해 「권위성」「신뢰성」,그리고 무엇보다 「정통성」이 결여돼 있다고 전제,64년 당시 흐루시초프 축출세력은 공산당 중앙위원회라는 제도의 틀내에서 일을 벌였으며 또 소련최고회의가 이를 승인하고 당사자인 흐루시초프도 자신의 사임에 동의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경우 쿠데타 인정을 거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상사태를 선포한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역시 헌법상 규정되지 않은 기관이며 이는 공산당내에서도 합법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타튀는 주장했다. 쿠데타 주동세력들은 또 최대한 지지를 긁어모으기 위해 「법과 질서」「범죄와 부도덕 비난」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있으나 이는 스탈린­브레즈네프 시대에 성행했던 「러시아인 주도 질서」를 연상케 하는 「향수적」인 것으로서 다른 민족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타튀는 군부내 이견을 지적,구세대 고위간부와 중간장교·사병 등 군구성원중 중간장교와 사병은 이제 정치보다는 경제적 요인에 불만이 더 큰 만큼 대중에 보다 접근해 있다고 지적했다. 공산노선 고수를 주장하는 고위장성들 역시 최근 기존노선고수와 군개혁 필요성의 모순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 한소 어업협정/체결 무기연기

    정부는 21일 소련 정정이 혼미한데다 소련측이 양국 실무자간에 이미 합의된 한소어업협정 일부문안의 수정을 제의해 옴에따라 23일 모스크바에서 체결할 예정이던 양국어업협정을 무기 연기하기로 했다.
  • 크렘린 정변과 북 동향/이명영 성대교수·정치학(특별기고)

    ◎시대흐름 착각한 평양의 흥분/“대남 강경노선 구상은 커다란 오판” 소련에서 정변이 일어났다.민주화노선을 힘겹게 달리고 있던 고르바초프는 유폐되고 군을 등에 업은 보수파들은 끝내 전면에 나오고야 말았다.지구인의 눈 귀를 모으고 있는 TV화면에는 모스크바 거리를 달리는 탱크의 모습과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분노로 가득하다.특히 옐친의 결연한 반대 성명은 역사의 기로에 선 소련 자체의 몸부림 같기도 하다. 소련의 사회주의체제가 장엄한 인류사적 대실험이긴 했어도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무모한 실험이었음이 분명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였다.레닌 혁명 후의 소련에서 한때 성행했던 아진 스타칸주의(한컵주의·목마르면 한컵의 물을 마시듯이 성생활도 그렇게 자유롭게 해야한다는 주의)가 그들 스스로에 의해 배격,청산되었듯이 사회주의·공산주의의 꿈도 그들 스스로에 의해 청산되지 않으면 안될 운명이었는데 그것을 실천에 옮긴 것이 고르바초프로 대표되는 개혁파인 것이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개혁이 밑으로부터의 혁명을 야기함이 예사이듯이 소련의 대중들도 개혁의 선을 넘어 혁명적인 전진을 재촉했다.그러나 결정적인 모순은 그 대중들이 전진을 감당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다.70년동안 갇혀 왔던 새들은 새장 밖으로 내보내져도 제힘으로 날 줄을 몰랐던 것이다.민주화개혁파의 고민은 그 혼란을 틈타고 대두하는 보수파의 역공에 의해 더욱 가중되어 오다가 이번에 당하고 만 것이다. 보수파란 기득권을 지키려는 노멘크라투라들이다.당료·군·KGB들로 대표된다.KGB지배하의 국경경비대 20만과 최정예부대인 내무부직속 보안군 30만 및 4백만의 국방군등이 그 세력의 기반이다.미국은 장군 1인에 사병이 3천4백명이지만 소련은 1대7백이다.너무도 많은 별들이 특권의 포기를 거부해 왔다.공산당의 지도적 기능이 부정된 작년의 개헌이래 모든 조직에서 당위원회는 해체되었으나 군에서만은 그것이 온존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어왔다.그래서 군의 등장이 예견되기도 했던 것이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쿠데타를 질타하고 있다.그러나 이 정변에 회심의미소를 머금고 있는 곳이 평양이다.수년전부터 평양에서는 「고르비놈」「소련 놈들」이란 욕소리가 공공연했다.소련의 개혁을,소련의 탈냉전 정책을 평양은 제국주의에의 투항이라느니 사회주의의 변절이라느니 하면서 매도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그 고르비가 실각하고 소련제국의 권세와 공산당의 지배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등장했다.평양은 세계정세에 일대 역전이라도 온듯이 고무되고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우선 그 징후가 총리 회담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27일부터 평양에서 있기로 했던 것인데 판문점에서 하자는 것이다.구실은 콜레라이나 속셈은 회담을 늦추자는 것이다.소련 정세의 귀추를 좀더 보고서 대남 작전을 다시 짜겠다는 계획일 것이 뻔하다.본디 북한은 총리 회담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그것은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겨냥한 성동격서전술의 일막이며 남한의 사회주의혁명세력들의 범민족대회(하층통일전선)를 성사시킬 것을 겨냥한 상층통일전선의 일막으로 짜여진,그야말로 담담정정전술의 한 회전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상층과의 회담은 하층의 투쟁을 부추기기 위해 하는 것이고 그래서 회담(담)은 회담이고 투쟁(정)은 투쟁인 것이다.회담을 한다고 투쟁을 중지하는 것이 아니다.투쟁을 부추기기 위해 오히려 회담을 하는 것이다.모든 것은 투쟁이다.무엇을 위한 투쟁인가.김일성부자지배하의 통일을 쟁취키 위한 혁명투쟁인 것이다.이 금과옥조와 같은 원칙들을 관철하기 위해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총리 회담이지만 그것도 마다할 정도로 나오는 것은 소련의 정변에 대한 부푼 기대 때문인 것이다. 평양의 통일 원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노선전환이 있을 것을 저들은 모스크바에 걸고 있다.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의 길이라고 했던 지난 5월의 김정일의 담화를 뒷받침해 줄 권력의 정책을 평양은 모스크바에 기대하고 있다.그래서 요즈음의 평양의 신문 방송은 흥분하고 있다.마치 소련마저도 평양을 추종하고 있다는 듯이 들떠 있다.그렇다면 총리회담쯤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조소 합작의 보다 근본적인 통일 문제 해결의 방안(남진)이 더 중요시될 것이다.평양은 그것을 거머쥐고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약자의 허약심리에서 나오는 착각이다.소련의 정변은 성공하지 못한다.한번 자유와 민주에 눈뜬 대중은 반동을 허락하지 못하는 법이다.설사 쿠데타 세력이 일시 권력을 유지한다 해도 그들은 국내문제에 쫓겨 세계를 대상으로 할 여유가 없다.평양의 흥분은 곧 허탈을 불러올 것이다.그러한 비주체적인 기대는 일찍 버리는 것이 낫다.
  • 소 강경보수파의 「막후」/“검은대령” 알크스니스

    ◎김영만기자가 만났던 “소유즈의 얼굴”/“고르비식은 혼란만… “비상조치 역설/“「60년대 한국」,경제난 타개의 모델” 소련쿠데타세력이 지향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독재」가 아닌가 싶다.그들이 구체적 모델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박정희형독재」라는 유추도 가능하다. 서울에서 이같은 추론이 가능한 것은 쿠데타세력의 의회내 기반으로 보이는 소유즈그룹이 한국의 「박정희독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들이 현 쿠데타세력의 아이디어뱅크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이다.실제로 8인국가비상위원회의 실세로 알려진 푸고내무장관은 소유즈그룹의 「도움」으로 개혁파인 전내무장관 바딤 바카틴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지난 4월 검은대령 알크스니스를 정점으로 한 소유즈그룹은 『파국의 소련을 구하기 위해 소련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일찌감치 쿠데타세력에게 거사의 명분을 제공한 바 있다. 기자는 지난 4월23일 알크스니스대령의 숙소인 모스크바 호텔에서 2시간동안 그와 단독인터뷰를 했다.당시 그들은 비상사태선포를 주장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으려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운동을 공공연히 벌이고 있었다.그들의 소련정세에 대한 시각과 그들이 바라고 있었던 소련의 미래상을 다시 되새겨 보는 것은 현 쿠데타세력의 이념적 기초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알크스니스는 고르바초프가 말하는 시장경제로 가기위한 혼란과 경제침체가 「일시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었다.그는 공산당과 연방정부가 강력한 힘을 행사해 전권을 장악하지 않을 경우 소련경제는 3류 빈민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며 보혁갈등이 조기에 종식되지 않음으로써 끝내는 내전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알크스니스는 박정희와 한국경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그는 『보수세력이 개혁자체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우리는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에 개혁을 위한 정치안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한국은 우리가 따라야 할 주요한 모델이다.한국은 정치적 안정이 있었기때문에 경제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정치적 안정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알크스니스의 소련정치관을 요약하면 이렇다.우선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해 소련경제를 희생시켜야한다.그러나 그방법은 현재와 같은 연방정부의 무기력화로는 빈곤과 내전만이 있을 뿐이며 연방정부가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면서 하나씩 개혁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알크스니스 일파가 현재 어느정도의 쿠데타 핵심세력인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이같은 알크스니스식 논리가 핵심세력의 이론적 기초임에는 틀림 없어 보인다. 그들은 유혈사태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감내해야 할 희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민주화가 어느정도 진행된 시점에서 비상사태선포와 같은 강경책은 필연적으로 유혈이 따를 수 밖에 없다는 한국의 경험을 알크스니스에게 이야기해주자 그는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다.그는 『생명의 가치는 무한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자신은 유혈적인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러나 다른 생명을 보호하기위해 국가는 때때로 힘을 사용할수 밖에 없고 소련은 개혁정책이 실시된이래 민족분규 등으로 1천명이상이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알크스니스 일파가 직접 쿠데타에 연루돼있는지는 지금 확인할 수는 없으나 다만 당시의 보수파들은 쿠데타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알크스니스는 쿠데타가 가능할 것으로 믿느냐는 질문에 『불가능하다』고 한마디로 잘랐다.한국과 달라서 쿠데타를 지휘하고 의견일치를 보아야 할 장군의 숫자가 너무 많고 나라가 커서 쿠데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그는 『장성만 모여도 크렘린궁으로는 자리가 모자란다.또한 우리는 쿠데타를 일으켰던 프랑코나 피노체트,주코프원수 같은 대중에게 익숙한 장성도 없다』고 말했다.그럼에도 소련에는 쿠데타가 일어났다.모스크바에 진주해 있는 군부대간에도 알력이 있고 비상위원회와 친고르바초프쪽으로 세가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면 알크스니스의 쿠데타 불가능론은 어느정도 맞아들어간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알크스니스는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한 발트3국중 라트비아 출신이다.그는 출신배경과 현재의 정치적견해 사이를 어떻게메울수 있느냐는 질문에 『민족주의자들이 내놓는 것은 「배고프지만 자유롭게」이다.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한데도 연방탈퇴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것은 정치적 이해 때문에 인간의 생존권을 희생시키는 지나치게 무책임한 처사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당시 모스크바는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개혁파가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을 때였다.그럼에도 알크스니스는 매우 확신에 찬 어조로 비상사태를 선포해야한다고 이야기해 나갔다.
  • 소 쿠데타 61시간만에 왜 실패했나

    ◎“공산회귀는 불용”… 국민이 등돌렸다/명분없는 거사에 군수뇌부 적전분열/경원동결등 서방의 강경대응도 큰 몫 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소련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이유로는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강렬한 저항 ▲저항선봉장으로 나선 옐친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 ▲군장악의 실패등을 들수 있으며 그외에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압력도 들수 있다.그러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소련국민들의 호응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 쿠데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그것은 또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국민들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일간의 짧은 기간동안이긴 하지만 탱크로 무고한 시민을 깔아뭉개는 무자비한 무력탄압 앞에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시위금지령과 통금령을 무시하고 20일 하룻동안에만 8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반쿠데타 시위를 벌이는 한편 육탄으로 탱크를 저지한 소련국민들의 용기는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과거 수차례에걸친 소련에서의 정변때마다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소련국민들이 이처럼 용기있게 변한 것은 바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방정책이 소련국민들의 의식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결과라고 할수 있다.따라서 이번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것은 결국 쿠데타 주역들이 고르바초프의 신병은 체포할수 있었지만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불어넣은 자유정신마저 가둬둘수는 없었던데 따른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지난 3일간의 쿠데타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이번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일부터 일으키고 보자』는 형태로 상황이 벌어졌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이들은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일 체결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겠다는 초조감에서 쿠데타 성패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군장악과 국민동향,지도부내의 결속등을 사전에 치밀하게 점검하지 못한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사전준비가 미비된 상태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과거처럼 무관심으로 나타나지 않고 적극적인 저항으로 나타나자 비상위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쿠데타의 절대적 동조세력으로 생각했던 공산당이 중앙위원회 성명을 통해 쿠데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비상위에 결정적인 정신적 타격이 된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타격은 비상위내부의 적전분열로 나타났다. 쿠데타 발생 이틀이 안돼 비상위의 8인 멤버중 3명이 『건강상의 이유로』사임했다는 것이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도부내의 분열과 함께 군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것도 쿠데타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다.비상위는 당초 군부내에 냉전종식에 따른 군위상 축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판단,일단 쿠데타가 일어나면 군 대다수가 이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군부가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자 평소 「국민의 군」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소련군은 『우리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돌릴수는 없다』는 쪽으로 급선회함으로써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됐다. 이번 쿠데타에서 서방이 보인 대응도 쿠데타실패를 간접적으로 도운 한 원인이 됐다고 할수 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측은 한결같이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요구하며 서방의 경제지원을 갈구하는 소련에의 원조를 동결시켰다.서방세계는 또 반쿠데타 저항세력의 선봉에 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보냄으로써 옐친으로 하여금 국민저항을 극대화할수 있도록 했다. 결국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조속한 개혁의 완결이란 점을 무시하고 오히려 개혁을 지연내지는 후퇴시키는 쪽으로 기치를 들고 시작됐다는 점에서 소련에서의 쿠데타는 처음부터 실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 앞에선 무력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할수 있다. ◎“3일천하” 쿠데타 일지/비상위 구성→불복선언→서방 경원동결→유혈충동→비상위 분열→병력 철수→고르비 귀환 소련의 강경보수파가 21일 소련역사상 처음 「월요정변」으로 기록될군사쿠데타를 야기한지 3일만에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해체됨으로써 이들의 꿈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모스크바정변 소식이 전해진것은 19일 상오4시.소련전역에 6개월시한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언론과 출판물의 검열이 시작됐다.방송국들도 쿠데타군에 접수되어 방송이 통제됐다. 타스통신은 크리미아반도 휴양지에서 휴가중이던 고르바초프가 실각되었다고 전하면서 대통령직을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하고 8인으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전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기세 좋게 몰아 붙이던 쿠데타세력들은 옐친의 시민 불복종운동촉구와 총파업선동으로 시작부터 예상치않던 장애물에 직면했다. 보수파들에 의해 야기된 쿠데타가 시련을 맞기 시작한것은 정변이 발생한지 8시간만인 19일 정오.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포고령을 무효라고 선언하며 반쿠데타 봉기를 부추기자 모스크바 시민들은 이미 모스크바시내에 진입했던 중무장 소련군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강력히 저항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휴가를 중단하고 긴급대책회의를 연뒤 기자회견을 갖고 하오5시 소련의 군사쿠데타를 강력히 비난했으며 대소원조를 보류할것임을 시사했다. 이튿날 쿠데타세력들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상오6시 일류신76 수송기 60대를 동원,모스크바로의 병력을 증강했으나 이에 맞서는 소련국민들의 시위는 세를 더해갔다. 그후 러시아공내에 주둔하고 있던 무장병력들은 러시아공 의사당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으며 21일 새벽 급기야 유혈충돌로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처음의 상황과는 달리 쿠데타세력이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주춤거리고 서방세계의 외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이날 최후의 「히든카드」를 내보였다. 군내 강경파인 모이셰프군참모총장이 전면에 나서고 그로모프중장(전아프가니스탄 주둔군사령관)과 바렌니코프 지상군총사령관이 실세로 급부상한 것이 그것이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듯 「최후의 항전」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으며 무력충돌도 불사하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뒤 10시간만에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듯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고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루키아노프 소연방 최고회의의장이 크림반도로 고르바초프를 만나기 위해 떠났으며 소련 국방부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에 배치됐던 병력들에 대해 철수명령을 내렸다.이어 모든 포고령이 무효화되고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 귀환길에 오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주연한 「쿠데타」드라마는 61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 소 쿠데타 실패/고르비 대통령직 복귀

    ◎비상위 8인 체포,곧 재판회부/군 철수… 통금등 포고령 무효화/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옐친 급부상… 오늘 긴급간부회의 소집 유혈사태까지 빚으며 내란위기로 치닫던 소련의 반개혁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이에따라 크리미아휴양지에서 연금상태에 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하오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며 연방최고회의는 그의 대통령직을 복권시켰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쿠데타 주도세력인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20일 해산됐고 8인위원들도 대부분 체포되거나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모두 재판에 회부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와 발트3국을 비롯한 비상사태선포지역에 배치됐던 모든 연방군 병력도 이날 철수를 시작했으며 모스크바를 비롯한 소련 전역은 축제분위기를 이뤘다. 연방간부회의는 22일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정치일정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쿠데타의 실패에 따라 반쿠데타 선봉에 섰던 옐친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강화됐다.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는 21일 모스크바로귀경길에 올랐다고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보좌관이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연금상태에 있던 크리미아반도의 휴양지로부터 루키야노프 연방최고회의 의장등과 함께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연방최고회의 지도자들은 2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축출기도 쿠데타를 비난했으며 쿠데타 지도자들에 의해 내려진 모든 포고령을무효화했다고 연방최고회의의 유리 카리아트킨 대의원이 말했다. 그는 연방최고회의가 모스크바의 야간통행금지령과 독립적인 언론매체의 보도금지령 등 쿠데타 주도세력들이 내렸던 모든 포고령을 무효화했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타스 AFP 연합】 소련 국방부는 모스크바를 비롯,비상사태가 선포된지역에 배치된 모든 연방군 병력에 대해 철수를 명령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21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국방부가 비상사태 선포 지역으로부터 모든 부대와 분견대 병력의철수를 이행토록 하는 결정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TV 정규방송/언론검열 해제 【모스크바 AP 연합】 쿠데타 세력들이 모스크바를 떠남에 따라 쿠데타발생이후 방송이 중단됐던 소련의 TV와 라디오가 21일 방송을 재개했으며 관영 타스통신은 독립적인 출판물에 대해 내려졌던 출판금지령이 해제되고 있다고 전했다.
  • 소행 예약취소 사태

    소련의 정세가 극도로 불안해지자 관광및 사업등을 목적으로 모스크바에 가려고 계획했던 항공기 승객들의 예약취소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21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오는 24일 출발하는 모스크바행 대한항공 913편의 경우 당초 2백59명이 예약을 했으나 이날 하오 1백10명이 예약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 빗속의 모스크바 온통 환호물결/이기동특파원 「대반전 현장」서 급전

    ◎“시민의 승리… 동조세력 처벌 안해”/옐친/검열중단에 “고르비 축출항의”기사/프라우다/수㎞ 탱크행렬 사라지자 시민들 안도 ○…소련군 탱크들이 물러가고 쿠데타를 주도한 8인이 비행기로 도주 혹은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21일 하오 러시아공화국 정부청사앞 광장에는 여전히 10여만명의 시민들이 운집. 정문앞에 모인 사람들은 현관위에 설치된 대형확성기를 통해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대의원들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소련군 탱크에 깔려 죽은 사람들을 국가유공자로 간주해 그 가족들에게 공화국 정부에서 연금을 주기로 결정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수많은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 또 쿠데타 세력들의 명령에 따라 모스크바에 진주했던 군인들을 비롯,KGB·경찰 등 모든 쿠데타 동조세력들에 대해 일체의 처벌도 하지 않겠다는 옐친의 포고령도 발표. ○…정부청사안 프레스센터로 들어가는 정문입구에서는 군복을 차려입고 각목들을 든 러시아시민군들이 출입자들을 일일이 체크했다.기자가 프레스 카드를 내보이고 출입을 요청하자 가방을 열어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한 뒤에야 들여보내 주었다.이런 절차를 3번이나 거친뒤에야 프레스센터내 공보책임자에게 안내됐다. 그러나 이 공보책임자는 『모든 상황이 아직 유동적이어서 2∼3일 뒤에나 정리된 정보들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 일체의 코멘트를 피했다. 청사구내와 뒷마당에는 간밤의 긴장을 말해주는 잔해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수백개가 됨직한 보드카 빈병들이 흩어져 있고 천막·음식찌꺼기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21일 하오2시쯤 모스크바 남서쪽 외곽도로에는 병영으로 복귀하는 탱크 수백대가 수㎞에 걸쳐 목격됐다.하오4시가 되자 철수가 완료된듯 시가지에서 쿠데타군의 탱크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러시아공 정부청사로 가는 칼리닌가 주변에는 옐친지지 탱크들이 백·청·적 3색의 러시아국기를 당당히 내걸고 서 있었다.탱크병들은 시민들이 건네준 화환들에 싸여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하오들어 비도 그치고 칼리닌 다리위에는 바리케이드도 많이 치워졌으며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긴장감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21일 쿠데타 발생 이후 처음으로 언론검열을 중단하라는 호소문과 함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축출에 항의하는 상당량의 기사를 게재하는등 크렘린 당국과의 전통적인 유대를 단절하는 등 이례적인 태도를 취해 눈길. 쿠데타 지도부에 의해 발행이 허용된 7개 매체들 가운데 하나인 프라우다지는 1면에는 쿠데타 지도부가 발표한 통금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시위에 대한 기사를 동시에 게재. 프라우다는 이와함께 강경파들의 권력장악에 대한 항의를 호소하는 옐친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공정부대 요원들이 러시아 정부청사에 집결하고 있다고 전언. 프라우다는 이어 고르바초프의 축출과 관련,런던과 파리,본,워싱턴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게재해 외국의 비난을 무시한 관영 타스통신과는 대조적인 모습. ◎철수군인들 “우린 영원히 떠난다” ○…성바실대성당과 시청 등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에 배치돼있던 소련군탱크 및 병력이 21일 대부분 철수해 고리키가의 차량통행이 재개되는 등 모스크바 시내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연도에 나온 시민들은 철수하는 군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고 군인들도 『우리는 영원히 떠난다』고 말했다. ○…보리스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을 중심으로한 쿠데타반대세력들은 이들 「비상위」8인을 국법질서문란을 이유로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에 회부할 것이 확실하다.옐친등 개혁주의자들은 이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초헌법적이며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해온 이상 8인을 재판에 회부,장갑차와 탱크를 앞세운 「강제명령」만으로는 산적한 소련문제를 해결할수 없음을 전세계에 알릴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쿠데타반대세력의 중추역할을 한 러시아공의회 건물을 에워싼 채 시위군중들과 충돌,4명의 소련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소련군병사들에 대한 처벌은 없을 것 같다. 옐친은 이와관련,『이들은 상관의 명령에 복중했을 뿐』이라고 지적,『소련헌법을 준수한다면 처벌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련 발트해연안의 에스토니아 공화국에 이어 라트비아 공화국도 21일 소련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고 인근 리투아니아 공화국 대변인이 말했다. 이 대변인은 현재 라트비아 공화국과 연결되는 모든 전화통화가 두절됐으며 라트비아 공화국 의회에 의해 의결된 이 독립선언은 리투아니아 공화국 자체의 통신망을 통해 전해졌다고 밝혔다.
  • 대소 수출 23% 감소 예상

    ◎주소대사관·지사 관계자 긴급회의/“거래선 동구로 몰려 과당경쟁 우려/직접투자등 유보 바람직” 고르바초프의 실각등 최근의 소련 사태로 우리나라의 대소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1%가 줄어든 4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상업적 차원으로 추진하는 수출만 가능하고 전대차관을 활용한 수출은 전혀 불가능해져 당초 예상하던 11억달러의 대소수출은 무망하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한국대사관 관계자와 현지에 진출한 국내 종합상사 대표들은 20일 현지에서 소련이 사태에 대한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최근의 소련정변이 우리나라의 대소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들은 우리 정부의 정책변화로 8억달러의 대소 전대차관 이행이 중단 또는 보류될 경우 당초 예상했던 올 11억달러의 대소수출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소련의 일부 수입상들이 방관적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대외무역공단(FTO)을 비롯한 대부분의 수입상들은 종전대로 수출입 활동을 정상적으로 계속하고 있어 사태가 더 악화되지 않는 한 상업적 차원의 대소수출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상품수출이 아닌 프로젝트 추진 여부는 사태의 추이를 충분히 관망한 뒤 결정하는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현지 상사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우리나라 은행들이 대소 수출환어음의 네고를 중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또 장기적으로 대소수출이 어려워질 경우 헝가리·체고슬로바키아등 신동구시장으로 일시에 수출선을 바꾸게 돼 이지역에서 국내 업체들간의 과당경쟁이 빚어질 가능성이 큰것을 우려했다. 우리나라의 대소수출액은 지난 89년 2억8백만달러(전년동기비 86%증가),90년 5억1천9백만달러(1백50% 증가)로 급격한 신장세를 보였으나 올들어 6월말까지는 2억1천4백만달러로 증가율이 6.7%에 그쳤다. 이날 대책회의에는 이강두 주소경제공사를 비롯,대한무역진흥공사 성정현본부장과 현대·삼성·럭키금성·선경·수출입은행 현지관계자들이 참석했다.
  • 정부,향후대책 철야 논의/모스크바와 비상연락체제 강화

    정부는 21일 외무부 소련사태 상황대책반을 중심으로 소련사태 전개상황을 체크해오다 개혁파쪽으로 상황이 반전하자 청와대·안기부등 관계부처와의 비상연락체제를 풀가동,모스크바 현지의 사태진전과 향후대책등을 논의하느라 22일 새벽까지 분주한 모습이었다. 정부는 특히 최창윤공보처장관이 사실상 개혁파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한지 4시간여만에 사태가 반전된데 안도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한소간 밀착관계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외무부는 이날 하오9시10분쯤 「러시아공화국의사당 주변에 배치됐던 탱크가 모두 철수했다」는 보고를 공노명 주소대사로부터 처음 받은뒤 사태변화를 직감하고 모스크바∼서울간 직통연락체제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외무부는 이와함께 주미·주일대사관과 현지 우방정부의 반응등을 체크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외무부는 이어 하오10시50분쯤 주소대사관으로부터 「소국방부가 모스크바 주변에 배치된 군병력을 철수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내용을 최종 확인한뒤 상황파악및 대책마련작업에 더욱 박차를가했다.
  • 소 쿠데타 실패와 김일성(사설)

    고르바초프 소련방대통령이 지난 19일 군부쿠데타에 의해 실각되는듯하자 북한방송은 이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했다.북한의 언론매체들은 북한과 이해관계가 밀접한 국가에서 모종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 사태의 추이를 분석한뒤 뒤늦게 그들 나름의 시각을 곁들여 보도하는 것이 관례이다.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처형과 중국의 천안문사태에 관한 보도 등이 그 좋은 예이다.그런데도 고르바초프의 실각설에 그날 하오에 즉각 보도한 것은 김일성주석이 소련사태에서 크게 고무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모스크바의 정변이 소련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냉전종식으로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세계질서에 어떤 충격을 던질 것인지,또 소련의 쿠데타가 성공할 것인지,실패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채 사실 자체만 신속하게 보도한 것은 그 자체가 김일성주석에게는 지극히 반가운 소식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사태를 피상적으로만 관찰하면 그로서는 입지를 보다 강화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다고 판단할 수도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설은 그로 하여금 「우리식대로 살자」는 폐쇄체제의 당위성을 인민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됐고 그 기회가 그의 발언권을 대내외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계바늘을 되돌려 놓는다고 해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소련의 강경보수파와 군부가 설사 고르바초프를 실각시켰다고 해도 페레스트로이카의 거대한 불길이 사그라들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이미 자유와 개방의 참뜻을 체득하고 있는 소련국민들은 스탈린과 브레즈네프식의 탄압정책을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쿠데타가 실패할 것이란 징후도 여러 곳에서 발견됐었다.따라서 김일성주석은 소련사태에 고무될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에 반역하는 극단적인 폐쇄주의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주석은 남북관계를 냉각시키는 어리석은 작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남북체육회담을 거부한데 이어 오는 27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고위급회담도 엉뚱한 트집을 내세워 무산시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그가 남북고위급회담을 기피하고 있는 이유가 콜레라 때문이라면 누구나 웃을 일이다.그의 속셈은 소련의 사태를 지켜본뒤 대남및 대외정책을 재조정해 보겠다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문제는 탈냉전의 도도한 흐름속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소련사태를 바라보는 김일성주석의 인식이 어느 정도의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그는 최근 『우리도 지구의 한 나라인 이상 지구의 움직임과 함께 행동해 나가겠다』고 언급했으며 우리는 그의 이같은 현실판단을 환영한바 있다.그런데도 소련에서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돌발사태」가 일어난 것을 기화로 폐쇄의 사슬을 더 죄고 남북관계를 냉각시킨다면 그에게나 7천만겨레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이 사실상 확정된 이 시점에서 우리는 김일성주석이 「남조선해방」이라는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책임있는 국제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남북관계도 개선시켜나가는 슬기로운 자세를 보여주었으면한다.그는 소련의 정변이 결국 민주화된 국면의 힘에 의해 실패로 돌아간 사실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한다
  • 미의 외교 목조르기 주효했다/부시,왜 강력대응했나

    ◎“반개혁세력”국제사회서 고립 압력/옐친 지원·차관취소 천명,기세 꺽어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쿠데타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전복시킨 소련의 새 지도부를 국제사회의 이단자로 고립시키기 위한 외교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그는 또 이 쿠데타에 대한 가시적인 저항의 심벌로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을 지원하고 나섰다. 부시대통령은 20일 회견에서 『이 불법적인 쿠데타가 효력을 갖는한 우리는 쿠데타음모자들에게 미국과 정상적인 관계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할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소련의 새 지도부를 이라크및 리비아와 같은 「이단정권」으로 비유했다. 이날 워싱턴에서 휴양지 케네벙크포트로 다시 돌아온 부시대통령은 옐친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거국적인 쿠데타 반대호소와 헌정회복 요구에 지지를 표명했다. 이와 함께 부시는 미국의 쿠데타 반대를 강조하기 위해 로버트 스트라우스 주소신임대사를 모스크바에 급파했다.스트라우스는 모스크바에서 수일간 체재한 뒤 워싱턴으로 다시 돌아와 부시에게 소련정세등을 보고할 예정이다. 부시는 또 소련사태에 대한 서방측의 공동보조를 모색하기 위해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을 나토 긴급회의에 파견했다. 부시의 이같은 조치는 걸프사태때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한 국제적 컨센서스 구축에 사용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서 국제적 규범을 벗어난 행위는 용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겠다는 뜻이다. 부시가 노린 「국제적 컨센서스」는 굳어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EC(유럽공동체)는 모스크바에 대한 10억달러 이상의 원조중단선언과 더불어 고르바초프의 북귀를 요구하고 나섰고,케야르 유엔 사무총장은 소련지도부에 대해 최대한의 자제력 발휘와 사태의 평화적·합법적 해결을 촉구했다.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대통령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으로 유럽에서 미국과 나토의 강력한 군사력 유지 필요성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부시는 또 동구지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동구각국의 민주화는 후퇴될 수 없다』고 다짐했다. 부시와 그의 고위보좌관들은 소련의 쿠데타가 좌절되기를 바라고 있다.그러나 대응방안은 고르바초프의 권좌복귀가가까운 장래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수립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가 지금까지 내보낸 메시지는 한마디로 말해 「미국은 소련의 개혁파를 지지하며 쿠데타 지도자들의 권위를 정당화시킬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부시는 앞으로 케네벙크포트 해변의 개인별장에서 남은 휴가 2주일을 보내며 소련사태를 주시,대책을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그는 케네벙크포트에서 러시아공화국 외무장관을 만날지도 모른다.옐친은 휘하 외무장관의 미국파견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사태와 관련,부시는 소련에 대한 미국정부의 차관보증·곡물수출·기술원조 등이 중단될 것이라고 거듭 천명했다. 부시는 주소대사로 임명한 스트라우스로부터 당초 예정보다 2주일 빠르게 부임선서를 받았다.그러나 스트라우스는 미국이 모스크바의 현 지도부를 합법정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소련측에 신임장을 제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시는 밝혔다.스트라우스는 자신의 임무를 『모스크바에 가서 자유와 민주주의 원칙,그리고 법치에 관해 아주 분명하고 솔직하게 주지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시는 옐친과 다시 통화할 계획이며 고르바초프와의 접촉도 계속 시도할 예정이다. 현재 미국정부는 고르바초프의 소재와 상황에 관해 알지 못하고 있다.말린 피츠워터 백악관대변인에 따르면 백악관은 백악관 구내전화와 유사한 통상적인 크렘린 호출채널을 통해 고르바초프와의 통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불재중이라는 답변만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설령 개혁주의자가 포함됐더라도 고르바초프가 배제된 소련정부에 대한 지원문제는 검토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부시는 고르바초프가 와병중이라는 모스크바 성명과 소련 국민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경제개혁을 지속하겠다는 소련 신정부의 주장을 불법적인 권력찬탈의 호도책으로 볼뿐 진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부시는 또 미국이 고르바초프를 좀 더 많이 도와줬더라면 이번 쿠데타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나 그의 정책을 고르바초프 운명에 너무 밀착시키고 있다는 비난도 일축하고 있다.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최상의 희망』이 그의 정책이라고 강조하며 이번 쿠데타의 결과가 무엇이든 소련과 동구에서 민주주의와 개혁의 물결은 거스를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소 사태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긴급대담

    ◎“당분간 과실송금·자본회수등에 지장”/진출기업 정상조업… 경협에 급변 없어/연방정부로 수출입창구 단일화 가능성/“미의 대소정책도 변수… 유연한 대응방안 수립을 소련사태가 혼미를 거듭함에 따라 소련에 진출한 기업을 비롯한 경제계의 관심도 온통 소련에 쏠려있다.현재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대소경제협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소련과의 경제관계는 과연 계속될 것인가.앞으로 소련정국의 향방이 우리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것이기 때문이다.소련진출의 선두인 진도의 정효현 소련담당상무와 소련경제전문가인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이기영박사와의 대담을 통해 소련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과 진출기업들의 현황,우리의 대처방안 등을 알아본다. ▲이기영실장=소련의 정국혼미가 3일째 계속되고 있습니다.현 상태로 봐선 군부를 등에 업은 강경보수파의 쿠데타의 성공여부를 점치기는 어렵습니다.그러나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듯이 국민들의 반발이 완강하지 않는한 군부 쿠데타는 성공해왔고 미국 또한 결국 그 정권을 인정해왔습니다. 만에 하나 고르바초프가 재집권하거나 옐친등과 같은 제3의 인물이 소련의 새지도자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정효현상무=고르바초프 실각이후 현지 지사로부터 들어오는 연락으로 보아 소련의 쿠데타 상황이 외신이나 국내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등 큰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 소련 국민들은 정치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예전대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밖에서 느끼는 것만큼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오늘 아침에는 크렘린궁의 통행이 통제되고 러시아공화국 청사 부근에는 2천여명의 시민이 몰려있으며 유혈충돌도 있었지만 일상생활에는 별지장이 없다는 연락이 왔습니다.따라서 현재로선 쿠데타의 성공여부나 내전확산등을 점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앞으로 2∼3일이 고비인것 같습니다. ○소련인들 정상생활 ▲이실장=어쨌든 쿠데타세력은 국민들의 소요에 대비해 미국등 외국의 반응을 포함,대내외 경제문제까지도 충분히 고려한 단계에서 고르바초프축출을 시도했을 것입니다.경제문제에 국한해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부분은 소련경제의 현실인식입니다.소련은 지난 5년간 고르바초프가 추진해온 페레스트로이카 정책과는 상관없이 3년째 경제성장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으며 이기간동안 3백%이상의 인플레이션과 심각한 실업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특히 식량문제는 심각합니다.따라서 앞으로 누가 집권하든 대내적으로 물가의 동결을 비롯해 생필품및 식량의 배급제등 강력한 통제경제정책을 추진하고 대외적으로는 국내 경제의 피폐를 막기 위해 상당부분 개방하는 유화책을 쓸 것으로 보입니다. ▲정상무=현재 소련에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은 우리 진도를 비롯 현대종합상사·삼성물산 등 7개업체입니다.진도는 지난 83년부터 중개상을 통해 레닌그라드에 모피시장을 개척했고 85년에는 우리 정부 및 소련 정부의 허가를 받아 현지 공장을 세웠습니다.진도가 소련에 본격 진출한 것은 「JIN DO RUS」현지 법인을 설립한 89년부터입니다.그동안 주로 소련을 찾는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해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실장=한소간 경제협력은 지난 89년이후 급격히 증가했습니다.교역규모만 해도 88년 3억달러에서 지난해는 9억달러로 늘었습니다.특히 양국간 시베리아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대소교역은 급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방한이후 30억달러 차관약속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일부에서는 이미 건네준 5억달러에 대한 회수가 어렵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든 멀리보아 계획대로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30억달러는 우리에게 무척 큰 돈입니다.그러나 소련측으로선 별 것 아닐 수도 있습니다.우리가 안주겠다면 그들로선 「주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규모입니다.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소수출의 전망과 원만한 정치·경제적 협력관계를 위해 30억달러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상당부분 개방할것 ▲정상무=보수파와 군부가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이들 신집권층은 소련이 자체적으로 물자 및 자원 등을 조달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서방과의 경제협력 및 타협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표방한 고르바초프가 지난 85년 집권한 뒤 소련인들의 외국여행과 외국인들의 소련방문이 급증,많은 소련인들이 자유와 자본주의의 좋은 점을 맛보았기 때문에 보수파가 기왕의 개혁정책에서 후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번 쿠데타로 인해 한소경제교류 및 협력이 지장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봅니다.그러나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당분간 통제정책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과실송금 투자자본의 회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레닌그라드에 있는 지사 직원들에 따르면 현지 공장은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답니다.현지 직원들도 평소와 다름없이 모두 출근해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실장=소련에 진출한 다른기업들도 예정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번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새로운 집권층은 국내적으로는 1∼2년간 물자관리를 하고 가격통제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는등 강경한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되며 4∼5년간의 내부진통이 전망되지만 대외적으로는 외국과의 경제협력을 위해 유화정책을 펼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기업으로서는 소련의 상황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야하는 문제가 있습니다.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내기업이 소련에 계속 진출하는것은 한미관계상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상무=고르바초프가 재기하게 되면 기업들의 어려움은 없겠지만,군부가 실권장악에 성공할 경우에는 그들의 통제경제나 자유경제에 대한 정책기조에 따라 기업들의 대응방안이 좌우될 것입니다.진도의 경우는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기 전부터 소련에 진출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겠지만 다른 기업들은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그들이 유화조치를 취하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차관약속 지키도록 ▲이실장=보수파의 등장으로 한소우호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소련은 동북아에서 미국및 일본의 영향력을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원치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한소경제관계도 큰 틀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경제관계는 큰 타격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이런 기회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위험은 있지만 장기적인 견지에서 투자효과는 클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번 사태로 서둘러서 대소진출을 포기하거나 지나치게 관망만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당분간은 대소수출이 격감될것이 불가피하겠지만 장기간이 필요한 자원개발과 관련된 진출은 별로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이번 사태로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시계의 추는 분명히 뒤로 가겠지만 그 시계는 이미 스탈린시대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것이며 오히려 이번 사태를 통해 연방정부로 진출창구가 단일화될 가능성도 있기때문에 투자가 용이해질수도 있다고 봅니다. 보수파의 경제정책은 중요한 핵심상품및 기업에 대한 통제이기때문에 현재와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유리해▲정상무=소련은 방대한 나라입니다.모스크바 주변 큰 도시 몇개를 제외한 다른 지역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자유시장경제가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그들에게 있어서 중앙정부가 자유시장체제를 택할 것이냐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할 것이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실장=「소련은 일반적으로 못사는 나라」라고 평가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빵과 생필품을 사기 위해 몇시간동안 줄을 서야하는 겉모습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뜻이지요.이것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고물가·고임금정책과는 달리 저물가·저임금정책의 차이일 뿐입니다.소련은 어디까지나 미국 다음의 강국이며 그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정상무=동감합니다.소련의 잠재력은 시장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큽니다.지금은 생필품등 실생활에 필요한 제조업이 뒤떨어져 우리에게 기술협력을 요청하고 있지만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이 분야에서도 무서운 저력을 과시하게 될것입니다.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격변상황이 문제되더라도 대소경제관계는 계속 발전적으로 이끌어가야 합니다.최근 몇년사이 우리의 황금시장으로 떠오른 동구권에 대한 진출을 위해서도 단기적으로는 손해가 되더라도 꾸준히 교역량을 늘려 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이기영 현대경사연 소련실장·경제학 박사/정효현 주식회사 진도 소련담담상무)
  • 실패불씨 잉태한 소 쿠데타/「8인 비상위」 성공할 것인가

    ◎서방지원 끊겨 경제파탄 해결불투명/옐친의 국민저항 극대화여부도 변수/군부내의 결속도 확고하지 못해 문제로 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진뒤 세계의 관심은 소련의 새 지도부가 그들의 체제를 정착시켜 권좌를 유지해 나갈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저항에 직면,혼돈과 무질서 속으로 빠져들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이와 관련 부시 미대통령이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쿠데타란 실패할 수도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고 미국내 소련전문가들 대부분이 쿠데타의 실패 가능성을 점치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같은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는 물론 몇가지 근거를 들수 있다.그러나 아직까지는 쿠데타의 실패를 단언할수 있는 확실한 근거라고 할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수 있으며 따라서 이같은 분석은 어느 측면에서 볼때 미국의 희망사항을 피력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쿠데타의 실패가능성을 점치는 근거는 ▲개혁파와 시민들이 쿠데타에 격렬히 저항할 것이란 예상 ▲새 지도부가 현재의 소련경제의 난국을 해결할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며 서방의 경제지원 중단등으로 경제가 오히려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쿠데타 지지와 관련,소련군내부의 결속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점등 세가지를 들수 있다. 부시 미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정치적 개방을 유지하려는 소련국민들의 의지는 매우 확고하다.이같은 변화가 뒤집어 질수 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하고 『국민들이 일단 자유를 이해하고 자유의 단맛을 알았으며 민주주의의 가동을 경험했다면 과거로 역행을 바라지 않을 것으로 나는 믿고 있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즉각 총파업과 시민불복종운동을 촉구하고 나섰으며 이에 호응,러시아등 3개 공화국의 탄광들이 파업에 돌입하는 한편 옐친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모스크바 시내로 진입하는 소련군 탱크들을 육탄으로 저지하고 나선 것등은 일단 소련국민들이 과거 소련에서의 권력교체시와는 달리 고르바초프를 실각시킨 이번 쿠데타를 쉽사리 용인하지 않을뿐 아니라 이에 저항할준비가 갖춰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와 관련,소련문제전문가들은 반쿠데타 세력의 핵심이라 할수 있는 옐친을 소련지도부가 자유롭게 풀어준 것은 큰 실수라고 지적한다.이들은 또 옐친이 쿠데타에 대한 소련국민들의 저항을 얼마나 극대화시킬수 있느냐에 따라 쿠데타의 성패가 갈릴수 있다고 말한다.이들은 이와함께 국민들의 저항이 극심해질 경우 소련이 내전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쿠데타세력이 일단 고르바초프를 축출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고르바초프가 안고 있던 여러 문제들은 그대로 새 지도부에 넘겨졌다.그중에서도 고르바초프의 인기를 떨어뜨린 결정적 원인이 된 경제위기를 해결하는데 있어 새 지도부가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지 또 그럴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많은 소련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야나예프가 유엔에 보낸 전문에서 『개혁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시장경제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점,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첫 경제조치가 식료품등 생필품가격의 인하와 배급제에대한 통제강화로 나타난 점등을 볼때 소련의 경제개혁은 상당히 후퇴할 것으로 추측된다.더욱이 소련에 대한 서방의 경제지원이 중단되면 소련경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악화될 것이며 소련상점의 텅빈 진열대가 빠른 시일내에 상품으로 가득 채워지지 못한다면 소련국민들이 고르바초프에게 했던 것처럼 새 지도부에 등을 돌릴게 분명하다. 쿠데타와 관련,소련군내부의 결속이 확고한지에 대해서도 많은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비록 군부내 고위간부들간엔 고르바초프의 축출에 대해 의견일치가 이뤄진게 사실이라 해도 젊은 장교들을 주축으로 한 소장그룹내에선 여전히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한 지지세력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이와 관련,지난 19일의 쿠데타에 동원된 것은 보리스 푸고내무장관산하의 보안군일뿐 연방군자체는 아직 쿠데타에 대해 관망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주장도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대체로 이같은 상황들이 소련에서의 쿠데타가 실패할수도 있다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그러나 이로 인해 소련의 새 지도부가 쫓겨나기까지는 빨라도 몇개월은 걸릴 것이다.따라서 이번 쿠데타는 장기적으로 볼때는 실패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봐야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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