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 통해 귀순… 북트집 차단/“북벌목공 서울 오기까지” 경위
◎여행증명등 합법처리… 관련국 배치/향후 탈북자 귀순협상에 선례될듯/
정부는 18일 시베리아의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노동자 5명의 귀순에 대해 이들의 이름과 제3국을 거쳐 이날 하오 서울에 도착했다는 내용의 짤막한 보도문만을 발표했다.
그리고는 더이상의 공식 발표나 배경설명은 없다고 밝혔다.김포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기자회견조차 없이 곧바로 미리 정한 숙소로 떠나버렸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들의 신변안전 문제와 보안유지를 희망하는 관련국들의 뜻을 고려해 당장 모든 것을 밝히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이들의 귀순에 따른 일정한 틀이 정해지고 나면 그때가서 기자회견등을 통해 국민이 궁금해하는 탈출 경로및 경위와 관련국들과의 외교적 노력및 협의 내용등을 모두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겉보기에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더라도 이들이 귀순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숨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가장 걸리는 것은 러시아등 독립국가연합(CIS)과 북한과의 외교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와 북한은 옛 소련때 체결한 사법공조조약과 범죄인인도조약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상태이다.사실 북한은 벌써 탈출 벌목공 가운데 40명이 「범죄인」이라고 주장,이들의 북한인도를 요구하고 나섰다.또 『시베리아 벌목공이 한국에 귀순하면 이를 납치행위로 간주하겠다』는 으름장을 서슴지 않고 있다.최근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와의 회담에서 북한은 러시아측의 벌목공 귀순허용 방침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우리와 러시아가 비교적 조용히 이 일을 추진하려 하고 러시아가 처음부터 외교경로를 통해 한국언론의 자제를 당부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여기에 최청남씨등 이번에 귀순한 벌목공들은 영주권이나 거주권이 없는 사람들로 알려지고 있다.이 때문에 합법적인 절차를 위해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임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곧바로 우리나라로 오지 않고 제3국을 거쳐 귀순한 것으로 전해진다.해당국에 퍼부어질 북한의 불평을 최소화하기 위한 외교적 배려인 셈이다.
어쨌든 정부는 이들의 귀순을 계기로 시베리아 벌목공의 귀순을위한 새로운 선례와 지평을 열었다고 할수 있다.
그동안 북한 탈출자들의 귀순은 외교채널보다는 비공식적인 비밀통로에 의존해왔던 게 사실이다.최근 귀순한 여만철씨 가족등 중국을 거쳐 귀순하는 사례가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이날 귀순은 처음부터 외교적 경로를 통해 추진됐다.
이와 관련,외무부의 고위당국자는 『새정부의 인권외교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협의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영삼대통령의 인도적 차원에서의 벌목공 수용방침을 뒷받침하고 앞으로 있을지 모를 대규모 귀순사태에 미리 대비해보자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얘기이다.
그런 점에서 협상을 맡은 외무부관계자들은 이번 귀순협상이 추가협상및 앞으로 있을 중국과의 협의에 대비한 좋은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나아가 관계자들이 협상경위등을 철저히 비밀로 삼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는 이번 선례를 모범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홍순영외무부차관도 『멀지 않은 장래에 이번 귀순절차가 확고한 틀로 정해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들 5명의 귀순은 외교적 귀순협상의 시험적 의미가 크다고 할수 있다.곧 마무리될 나머지 90여명 벌목공에 대한 추가협상및 북한과의 줄다리기,해당국과의 외교적 절충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틀이 마련될 것이고 귀순의 폭도 달라질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의 귀순자 지원대책을 보면/민간시설 집단수용… 사회적응 훈련/「정착돕기」에 기업등 참여로 고무적
18일 서울에 온 북한탈출 벌목공 1진 5명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정착하는데 필요한 훈련과 지원을 받는다.
정부는 이들을 정부 또는 민간의 관련시설에 함께 수용하면서 우리 사회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훈련을 시켜 사회에 내보낼 방침이다.이들은 그러나 지금까지 다른 귀순자가 받았던 별도의 대우는 받지 못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앞으로 오게 될 다른 북한벌목공들도 마찬가지다.오는 6월초 김영삼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로 예정된 합동기자회견 때가 되면 귀순 북한노동자는 적어도 20명선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지난해 3월 제정된 「귀순북한동포보호법」은 귀순자에게 15평이하의 주택을 임대해주거나 구입해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돈으로 따지면 1천만∼3천만원이다.이와 함께 1천5백만∼2천5백만원의 정착금도 지급할 수 있다.구체적인 지원 내역은 보건사회부차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그러나 「귀순북한동포보호법」의 지원내용은 임의규정이다.법조문에 명시된 대로 지원을 해줄 수도 있고 안해줄 수도 있는 것이다.정부가 이 법이 임의규정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실상 그같은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암시나 같다.귀순을 원하는 북한벌목공의 숫자가 생각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또 국내 생활보호대상자들과의 형평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넉넉하지 못한 재정형편이 북한벌목공들에게 앞서 귀순한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해주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올해 귀순북한동포 지원금으로 책정된 정부예산은 5억9천만원.지난해 5억5천1백만원보다 3천9백만원이 늘어났다.하지만 이는 귀순자를 10명미만으로 예상하고 정한 것이다.앞으로 우리나라에 올 북한벌목공이 적어도 두자리 숫자에 이를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지난 87년이후 아직 제대로 지급하지 못한 지원금만 해도 8억2천5백만원에 이른다.그렇다고 해서 별도로 재원을 염출할 곳도 마땅하지 않다.
정부의 고민은 지난 4일 구성된 실무대책위원회 회의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실무대책위원회에는 국무총리행정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경제기획원 외무부 내무부 법무부 보건사회부 노동부 공보처 안기부 경찰청등의 관계 실·국장들이 참석한다.귀순자들의 국내 수용과 사회적응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직업훈련과 취업알선,거주정착 지원대책등을 수립하고 관계법령의 정비등을 논의한다.위원회는 그동안 두차례의 회의에서 정부의 재정사정을 충분히 고려해 북한벌목공들을 되도록 많이 데려올 수 있는 방법보다는 국내 정착을 위한 지원의 수준에 관심을 기울였다.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운용하느냐 하는 것이었다.일정기간의 숙식과 함께 사회적응훈련과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일은 그동안 노하우가 축적돼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열쇠는 돈이다.
정부와 별도로 민간기업과 시민운동단체들도 북한벌목공들을 돕는데 열심이다.
자유총연맹은 벌써 회원들로부터 5천만원을 모금해 17일 대한적십자사에 맡겼다.대한적십자사도 자체적으로 본부및 각 시·도지사에 의연금품 접수창구를 열어놓고 있다.지난 10일 발족한 「탈북동포돕기운동본부」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앞으로 시민운동단체의 참여는 계속 확산될 전망이다.대기업들도 노동부의 직업교육 요청에 매우 호의적이다.이같은 여러 지원들이 원만하게 이뤄지면 그 다음은 우리사회에 적응하려는 귀순자들의 의지와 노력여하에 달려 있다고 보여진다.
▷벌목공 귀순일지◁
▲67년=소련북한 임업협정 체결, 러시아 극동에 벌목장 설치.
▲91년 5월=소련,북한에 벌목장 설치근거인 임업협정 자동연장거부시사.
▲〃 10월=탈출벌목공 이정의씨 첫귀순.
▲〃 11월=벌목공 장기홍씨 귀순.
▲92년 12월=벌목공 강봉화씨 귀순.
▲93년 8∼12월=러시아,북한과의 임업협정 재계약 협상에서 벌목공 인권보장조항삽입을 요구,협상 난항으로 벌목작업 크게 위축.벌목공 탈출자 대거 증가.
▲94년 2월=벌목공 박창환씨 러시 아 선박으로 밀항,부산항으로 귀순.벌목공 최명학 김태범씨 위조 여권으로 러시아 항공을 통해 귀순.
▲〃 2월28일=정부 제1차 벌목공 대책회의.
▲〃 4월13일=김대통령 『탈출 벌목공 인도적 차원에서 수용』 발표.
▲〃 4월14일=한승주외무부장관 ,러시아 정부에 벌목공 귀환 협조요청.
▲〃 4월21일=최동진외무부1차 관보,모스크바 방문,러시아 정부와 벌목공 처리절차 협의.
▲〃 5월18일=벌목공 최정남등 5명 처음으로 공식절차 거쳐 서울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