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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스크바 클래시컬발레단 초청공연

    러시아 신흥명문을 자처하는 ‘모스크바 국립 클래시컬 발레단(MSCB)’ 초청공연이 18∼23일(평일 오후7시30분,토일4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다. MSCB는 66년 콘서트 발레단의 하나로 출범했다.클래식 소품 레퍼토리나 주물러대던 단체가 급성장한 계기는 두 스타 안무가의 영입.77년 볼쇼이 발레 마스터 출신 나탈리아 카사트키나,블라디미르 바실료프가 예술감독으로 들어와새 MSCB를 조련해냈다.이들의 강점은 전통명문 볼쇼이나키로프와는 대별되는,젊은 다크호스다운 해석을 내놓는다는 것.이번엔 고전발레 레퍼토리중에서도 난해하기로 손꼽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자기들만의 몸짓으로 다시쓴다.국립극장이 한일 월드컵을 기념해 펼치는 ‘사랑대축제’ 레퍼토리의 하나.(02)2274-0551. 손정숙기자 jssohn@
  • 美·러 핵감축 협상 타결

    [워싱턴·모스크바 외신종합]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 감축에 합의했다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시카고 방문에 앞서 백악관에서 이같이 밝히고 오는 24일 러시아에서 열리는 미·러 정상회담에서 핵무기 감축 협정에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러시아의 인테르팍스통신도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감축 합의사실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핵무기 감축협정 서명을 통해 냉전시대유산을 정리하고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에서 새 시대를 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앞서 존 볼턴 미 국무부 차관과 게오르기 마메도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최근 며칠간 모스크바에서 핵무기 감축 협상을 진행해 왔다. 합의된 핵무기 감축협정은 제1차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I)에 의해 현재 양국이 각각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된 6000기의 핵탄두 수를 1700∼2200기로 줄이는 방안이다.그동안 협상에서 쟁점이 돼왔던 감축 핵탄두는 미국이 일부를보유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14∼15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열리는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할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곳에서 최종 협정 초안을 마련할 계획이다.부시 대통령이서명하게 될 새 감축협정은 상원의 비준을 거쳐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2)오락가락하는 대 한반도 정책

    1884년 조·러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1910년 한일합병전후까지 러시아의 대(對)한반도정책은 현상 유지(독립국가 유지)와 무력점령,38선을 중심으로 일본과의 남북 분할점령 등 3개안을 기본으로 변화해 왔다. 그런가하면 국내외의 정치 상황과 역학관계에 따라 중립국안,완충지대안,만주 및 몽고와의 거래에 의한 양보안까지 오락가락하기도 했다.특히 일본이 1896년 처음 제기한뒤 러시아도 솔깃해진 일본과의 남북 분할점령안은 광복및 6·25전쟁과 함께 남북 분단으로 현실화됨으로써 한국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서울에서 체결한 조·러 수호통상조약문을 동봉한다.외무성은 조선과의 수교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정치적 상황이 여의치 못해 이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나 독일과 영국이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황제 폐하(니콜라이2세)의 윤허를 얻어 서울에베베르(전권위원,초대 대리공사)를 보내 조약을 체결했다.이 조약은 독일과 영국이 체결하지 못한 영사관 설치문제가 제2조에 명문화돼 있으며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청국 영사관의 불만을 피하기 위해 그곳에 조선영사관을 허용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1884년 10월8일 기르스 외무상이 톨스토이 내무상에게 보낸 조·러 수호통상조약 13조 전문 등23쪽에 달하는 극비문서) 이 문서는 제정러시아 문서보관국에서 찾아낸 방대한 분량의 한국 관련 문서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문서 중 하나로 한국과 러시아의 최초 공식 외교협정인 조·러 수호통상조약의 체결배경에 대한 러시아측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 문서를 통해 러시아의 1차적인 관심은 조선의 종주국이었던 청나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데 있다는 사실을알 수 있다.물론 수교불가피론의 근저에는 영국과 독일 등 열강에 뒤지지 않으려는 몸부림과 함께 남하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부동항의 획득에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을 점령하는 것이 러시아에 바람직한가.점령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1888년 4월26일 아무르 총독과 외무부 아시아국장의 특별회의록).러·일간 우호확립에 유일한 방해요인은 대한제국 문제이다.일본 천왕의 총애를 받는 야마가타(山縣有朋) 원수는 대한제국 분할에 관한 러·일간의 협정체결이 양국간의 우호증진을 위한 바람직한 해결책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그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수도를 포함한 남부를 차지하고 동해안과 서해안의 항구와 대부분의 대한제국 영토를 러시아에 양보할 준비가돼 있다고 한다.그러나 이는 대한제국의 완전독립과 모순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1899년 2월9일 외상이 황제에 상주한 문서). 이들 문서로 미루어 볼 때 러시아는 1896년 로바노프 외무상과 야마가타 특사 사이에 체결된 모스크바의정서는 물론,1898년 로젠-니시협정으로도 대한제국의 독립을 일본측으로부터 완전히 담보받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으며,남북분할점령안을 거부했지만 여전히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당시 일본이 주도한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년)과 이로 인해 촉발된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아관파천·1896년)으로 곤경에 빠진 일본 대신 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조야를 주무르던 때였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의 대한제국 독립국가 유지정책은 조금씩 후퇴하는 조짐을 보인다.여기에는 100만명에 달하는러시아군의 대부분이 유럽지역에 주둔하고 있어 극동지역에서의 군사력 약세를 인정하는 측면도 있었다.병력을 신속히 이동시킬 수 있는 시베리아철도가 완성되기 전까지외교적으로만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원,현상유지시키겠다는 속셈도 작용했다. 만주와 극동에서 러시아가 굳건한 기반을 확립하고 만주를 러시아 영토로 편입시키는데 25∼30년이 걸릴 것이다.만주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러시아가 일본의 민족적 자존심에 손상을 주지 않고 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보하는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1902년 12월 뷔테 재무상이 람즈돌프 외무상에게 보낸 러·일 협상관련 비밀문서).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삼아 철도 및 은행 등을 장악하는것은 무의미하다.문제는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장악해야 하는데 대한제국 남부의 점령은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므로 대한제국 전역을 지배할 수 있는 기회를 엿봐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먼저 만주를 지배하지않으면 안된다(1902년 10월8일 도쿄(東京)주재 러시아 공사인 로젠 남작이 니콜라이2세에게 상주한 보고서).황제(니콜라이2세)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북쪽으로는 두만강,서쪽으로는 압록강까지점령해도 좋다는 결심을 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황제는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보하면 군사충돌을 피할 수 있다고생각한다.(1903년 6월11일 해군제독 아바자가 베조브라조프에게 보낸 전문). 로젠 공사의 보고서에 대해 파블로프 공사도 의견서를 통해 “러시아는 실제적으로 국익에 손상을 입지 않고 대한제국 문제 해결을 명분삼아 일본정부에 대한제국의 행정감독은 물론 철도,우편,전신 등에 유리한 권한을 인정하면서 재정과 군사부문까지 참여를 허용해야 하며 러시아는 만주문제에 대한 일본의 불간섭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니콜라이2세는 문서 상단에 ‘파블로프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친필로 남겼다. 니콜라이2세는 1904년 1월26일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친필서명이 든 전문을 보내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하는것보다는 일본이 먼저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일본이 먼저 개전하지 않으면 일본군이 대한제국의 남해안 혹은 동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만약 38선 이북 서해안으로 상륙병과 함대가 북진해오면 적군의 첫발포를 기다리지 말고 공격하라.”고 긴급지시했다. 러시아의 정책이 대한제국의 양보쪽으로 서서히 방향을틀고 있는 가운데 일본군이 38선 이북 서해안으로 상륙하면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마지노선’을 암시하고 있다.1902년 1월 런던에서 체결된 영·일동맹은 러시아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이 시기를 전후해 대한제국의 중립화안이고개를 든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러시아 군부는 대한제국 전역 혹은 북부지역의 무력 점령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에서 러시아는 일본뿐 아니라 어떤 국가에게도영향력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러시아가 대한제국을 점령해러시아에 합병시켜야 한다(1900년 두바소프 태평양함대사령관이 니콜라이2세에게 상주한 극동의 정치상황).일본은전 병력을 만주전선에 투입했다.러시아는 대한제국으로 진격해야 한다.현재의 16개 부대로는 병력이 부족하다.진격계획은 8월로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904년 6월 아무르 군관구 참모부에서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 보낸 전문). 일본군이 만주전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틈을 이용해대한제국 영토에서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겠다는 국지전(局地戰) 계획이긴 하지만 점령안을 지지하는 군부의 의사를엿볼 수 있다.무력점령안에 따른 진격계획은 보다 구체성을 띠고 있었다.이들 부대는 러·일전쟁 당시 한반도로 진출했으며 평양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전쟁불사’를 외치는 군부 및 일부 외교라인의 강경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1903년 6월 여순에서 베조그라조프 등 극동정책수립에 전권을 위임받은 수뇌부가 참석한가운데 특별회의를 갖고 한반도정책의 기조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회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전역혹은 북부 일부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이익이 되지 못한다.▲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점령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일본이 점령하면항의는 할 수 있으나 자국군대를 투입해서는 안된다.▲일본의 점령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만주와 대한제국은 별개의 문제임을 선언하고 독립을 지원해야 한다(1903년 7월4일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이 로젠 주일공사에게 보낸 비밀전문). 대한제국 러·일 분할점령안에 따른 중립지대(완충지대)설정에 대한 극비메모도 흥미롭다. 중립지대 설정에 대한 자료는 외무성에 없으며,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니콜라이 1세의 손자) 대공의 1899년 3월6일자 극비메모에는 아무르강 하구에서 원산만까지,그리고 서울과 제물포를 포함하고 있다(1903년 3월11일 외무상이황제에게 보낸 상주서). 다소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뒤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독립국 유지를사실상 포기한 채 이권 챙기기에 주력했음을 다음의 외무성 훈령은 보여준다. 러시아의 이해관계나 대한제국의 심각한 하소연이 없는한 일본 통감부의 지시에 가급적 관여하지 말 것.일본 당국에 대한 한인의 불만에 개입하지 말고 열강의 최혜국 국민으로서 법적인 권리를 사수하라.열강이 영사관을 개설하는 지역에 러시아영사관 개설의 필요성 여부의 의견을 상신하라.특히 러시아제국 정부에 전폭적인 충성심과 믿음을 보인 고종이 실현불가능한 기대를 갖고 러시아에 요구를해올 때 일본과의 사이가 악화되지 않도록 어떠한 약속도자중하라(1906년 외무상이 대한제국에 부임하는 플란손 총영사에게 내린 훈령). 러·일전쟁에서 패배,일본과 굴욕적인 조약을 맺음으로써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러시아의 비탄과 몸조심은 더욱 두드러졌다.플란손은 1905년 12월 작성한 비망록에서 “러시아는 지난 10년간 대한제국에서 이룩한 외교적 성공을 잃어버렸다.”고 자탄했다.니콜라이2세는 같은해 11월 고종의 계속되는 독립유지 지원 호소에 대해 “고종 황제에게 ‘패전 이후 혁명세력의 확장으로 더이상 도와줄 수 없다.’는 전문을 보내라.”는 칙령을 외무성에 내렸다. 제정 러시아는 신흥 일본제국주의에 패배해 눈물을 흘리며 물러갔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다.로젠 당시 미국대사는 1906년 외무성에 보낸 문서에서 “러시아가 남으로는 우크라이나에서 동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국토를 확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 영향이 이제 대한제국에까지 미쳤으나 러·일전쟁의 패배로 30∼40년 후퇴했을 뿐이다.”라고 기록했다. 이같은 지적은 40년 뒤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러시아)의 38선 이북 점령으로 현실화됐다. 노주석기자 joo@ ■러 당시 외교라인 대한제국 말 러시아의 한반도정책이 오락가락한 이유는무엇일까? 가능하면 일본이나 청과의 전쟁을 피하되 대한제국에서의 정치적·경제적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실리 위주의 외교정책에 1차적인 원인이 있지만 당시 매파와 온건파로 양분됐던 외교라인의 분열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당시 한반도정책의 최고 결정자는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였다.이번에 발굴된 러시아 극비문서에 따르면 그는 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가 “서울에서 개에 물려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으러 도쿄에 왔다.”고 보고하자 “휴가를 줘 충분한 치료를 받게 하라.”는 시시콜콜한 것부터 “일본군이 서해 38선을 월선해 상륙하면 즉각 발포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정도로 모든 사안을 직접 챙겼다. 니콜라이2세가 극동관련 문제에 대해 보고를 받는 공식외교라인은 외무상의 직접 보고,극동총독의 상주서,일본·청·조선주재 공사들이 황제 또는 외무상에게 올리는 보고서 등 크게 세 가지 경로였다.이밖에 황실근위연대 기병장교출신으로 상서(명예 무임소장관)의 직위를 가지고 있던측근 베조브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황족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뷔테 재무상 등 비선(秘線)보고도 영향을 끼쳤다. 니콜라이2세는 모든 보고서를 빼놓지 않고 탐독한 뒤 자신의 의견을 보고서에 남겨 정책에 반영토록 했다.하지만대한제국의 독립국가 유지,일본과의 분할점령안,전역 점령안 등 상황에 따라 바뀌는 외교정책의 큰 틀에 대해서는개인적인 판단은 갔다. 다음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훈령을 통해 각국주재 공사를 통제하고 황제에게 의견을 올린 외무상이었다.기르스,로바노프,람즈돌프 등 역대 외무상들이 대체로 온건파여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자는 주장이 득세한 것으로 드러났다.여기에 뷔테 재무상과 쿠르파트킨 육군상 등이가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과의 일전불사,한반도 무력점령을 주장한 매파로는베조그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과 아바자 극동특별위원회 사무총장,플라베 내무상,알렉세이예프 극동총독,두바소프 태평양함대 사령관 등이 대표적이다.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은 극동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1903년 여순에 설치된 극동총독부는 외교권을포함,극동관련 사무의 1차적인 처리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러·일전쟁 발발 직전까지 러시아의 극동정책은 외무성과 극동총독부가 공동으로 관여하는 2중구조로 돼 있었다.극동총독부의 설치와 권한부여는 당시 러시아의 신(新)극동정책을 주도한 베조브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의 작품이었다. 로젠 주일공사도 일본에서 한반도정책을 원격 조정하는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로젠 남작은 세 차례에 걸쳐 일본주재 공사를 역임했으며 1904년 러·일전쟁 당시에도 일본공사였다.이후 미국대사로 승진,1905년 포츠머스 러·일강화조약 당시 러측 협상부대표를 맡았다. 노주석기자
  • [러 외교문서로 밝혀진 구한말 비사] (1)초대 대리공사 베베르의 수기

    1884년 첫 수교,1990년 재수교….한국과 러시아가 외교관계를 맺은지 118년이 지났지만 한·러 관계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첫 수교 이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은 일본과 더불어 38선 남·북 분할점령,한반도 전역 무력점령 및 보호국화,독립국가 유지안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남·북 분할점령안은 해방 및 6·25전쟁 이후 현실화됨으로써 한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대한매일은 박종효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가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 각지에 흩어져 있는 20여개 한국관련 문서보관소를 샅샅이 뒤져 수집한 3000여건의 외교,정치,군사,경제관계 보고서 중 1884년 수교 이후부터 1910년 한일합방을전후한 시기의 미공개 외교문서 1000여건을 해제해 최초로 공개한다. 100여년만에 햇볕을 본 이 극비문서에는 조선주재 초대러시아 대리공사였던 베베르의 수기를 비롯,1·2차 군사고문단 파견의 실상,고종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가 주고받았던 친서,러시아측의 기획외교로 인한 헤이그밀사 파견 실패 등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주 2회씩 10회에 걸쳐 계속되는 이번 연재물은 그동안 미흡했던 한·러 관계사의 복원은 물론,우리 근세사에서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바로 잡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러시아문서보관국 서고에 묻혔다가 100년만에 햇볕을 본베베르의 수기 ‘1898년 전후 대한제국’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의 실상과 당시 우리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베베르는 수기 전반부에서 자신이 공사로 재임했던 1898년 이전의 대한제국의 실정과 러시아의 극동정책에 관해기술했다.후반부에서는 1903년 고종재위 40년을 맞아 경축 러시아특사로 다시 찾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경제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모두 144쪽 분량으로된 이 수기는 자필로 작성됐지만 이를 보고받은 러시아 외무부가 황제에게 보고하기 위해 타이핑했다. 1895년 10월8일 민왕후가 일본인에 의해 잔인하게 시해된 사실이 알려지자 복수를 위해 전국적으로 봉기가 일어났다.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고종왕은 일본군의감시아래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 있었다. 베베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전말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그는 사건 발생 당시 현장을 목격한 러시아인 건축기사이자 궁궐경비원이었던 사바틴의 증언서와 자신의목격담을 난수표 암호전문 형식으로 러시아 외무부에 잽싸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니콜라이2세 황제는 이 보고서를 읽고 친필로 “천인공노할 사건이니 좀 더 자세히보고하라.”고 지시했다.이어 극동지역에 주둔하던 아무르군관구 사령관에게 비상경계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일본군의 감시하에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있던 고종은 1896년 2월11일 아침 7시30분 여인복장으로 변장하고 왕세자와 함께 부인용 가마 두 대에 앉아 공사관으로 피신해오는 데 성공했다.뜻밖의 정변이 발생한 것이다.고종의 탈출소식을 들은 수천명의 군중이 공사관 담벽 아래로 몰려와 국왕의 탈출을 만세로 환호했다.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해온 이후 모든 국사는 러시아제국의 국기가 게양된 러시아공사관에서 경비해군 160명의 호위 아래 행해졌으며,각부 대신들은 공사관건물 안에 병풍을 친 임시 사무실을 사용했고 본인과 협의하라는 왕명을 받으면 어떤 사건이든 대신과 단둘이서 논의할 기회가 주어졌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 옆에 위치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할 때까지 1년동안 자신이 대한제국의 국사를 사실상 좌지우지했음을 드러낸 대목이다.이때부터 러시아는 이전에일본이 누리던 영향력을 대신했다.베베르가 분석했듯이 러시아는 1884년 수교 이후 10여년간 대한제국 문제에 무관심했다.당시 러시아의 주된 관심은 청국이었으며 시베리아의 경제 여건을 호전시키는 데 있었다.따라서 러시아공사관의 임무는 청과 일본이 대한제국을 ‘독식’하지 못하도록 소극적으로 방어하는 데 있었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1년은 베베르와 러시아에는 더할 나위 없는 호기였지만 고종에게는 암울한 시기였다.당시 러시아공사관 서기였던 쉬테인은[“그는 두개의 방에 왕세자와 각각 따로 앉아공사관 뜰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서서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가끔씩은 두려움에 떨며 이웃 궁궐(경운궁)에 계신 노대비(명헌태후)에게 문안을 드리려고 몰래 세자와 함께 가곤 하셨다.그리고 남은 시간은 방안에 은둔하고 앉아 계셨다.”]고 외무부에 보고했다.고종의 공사관 생활은 수인(囚人)과다를 바 없었다는 증언이다. 청·일전쟁 후 지방세가 서울로 납입되지 않아 국고는 텅 비어 있었다.일본인 재정관리자와 고문관이 떠나버리자국고에 잔액이 얼마 남았으며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관리들의 월급,특히 군인과 경찰관에게 제때 월급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탁지부(재무부)의 재정실정을 밝혀야 했다. 베베르는 영국인 해관총무사 브라운을 재정고문으로 천거해 이 일을 맡겼다고 밝혔다.브라운은 지방에서 올라온 수입을 올바르게 수령,장부에 기입하고 지출을 줄여 관리들에게 월급을 지불할 수 있었으며,이때부터 관리에 대한 통제가 이뤄졌다고 기록했다.1896년말 국고는 1,660만엔의여유가 생겼으며,일본에서 차관으로 들여온 300만엔 중 100만엔을 상환하고 이듬해 가을 또 100만엔을 갚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종이 환궁한 후 신변안전책으로 단행된 조선군의 개편작업에도 베베르가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종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베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에서 2차에 걸쳐 군사교관단을 초청,대궐시위대 2개 대대를 교육시켰으며 러시아식 군운영체계를 도입했다.여타의 대한제국군들은 러시아교관단이 관리하는 대대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베베르는 러시아국가회의 체제로 의정부의 개편,13개 도와 342개 군으로의 행정구역 분할,범법자에 대한 처벌 법규 시행,재정고문 알렉세예프 파견 요청,러시아어학교 개교,러청은행 지점 개설 등 자신의 업적을 열거했다.이 기간동안 서북 석탄광개발과 압록강,두만강변의 벌목이권을러시아가 따낸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대표적인 친한파인사로 알려졌지만 고종과 황실인사는 물론,한국과 한국인을 혹평하기도 했다. [대한제국을 떠난 지 5년만에 다시 와보니 거리의 남루한복장은 이전보다 두배나 많았다.…고종황제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엄비(嚴妃)를 따라 미신을 신봉하고 있었다.…정치적인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일본인들이 다시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한국인은 러시아,일본 기타 열강의 국제관계 및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제대로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나라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제대로 몰랐다.…강대국과 종속관계에 놓여 독립심이 박약하고 의타심이 강하다.…고종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품이지만 많이 쇠약해졌으며,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 결정됐다. 1903년 다시 서울에 와보니 일본인들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면서도 정치,경제적 예속화를 촉진시키는 데모든 수법을 동원하고 있었다.한국인들은 일본의 속셈을알지 못했고,러시아는 법적으로 그런 정책을 중지시킬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일본은 은밀하면서도 조직적으로 대한제국의 조정과 국민자산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영향력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7가지 이유를열거하면서 대한제국이 조만간 일본의 정치적 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한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2만명을 넘으며,일본인 1인당 한인 5명이 식모,사무실 서기,잡부,납품상인 등으로고용되다시피 했다.…대한제국 연간 무역액의 72%를 일본이 차지할 정도였다.…1898년 9월 경부선철도 부설권 협정서 중 ‘철도에 필요한 역사,창고 등 대한제국측이 제공하는 부지는 철도회사에 귀속되며 역사는 필요한 곳에 건설하되 역 앞에는 일본인 이외 타민족의 거주를 금한다.’는 불평등 조항 때문에 철도부설과 동시에 대한제국의 철도및 역사주변 땅은 일본의 소유물로 전락했다.…일본은 대한제국과 다른 국가들이 통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서울∼부산∼일본해저 전신선을 통제했다.…개항지마다 일본은행이 개설돼 일본엔화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베베르는 누구 우리나라에 부임했던 역대 외교관 중 초대 러시아 대리공사 겸 총영사였던 베베르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외교관은 없었다. 베베르는 1885년부터 1897년까지 12년 동안 공사로 재직하면서 고종의 최측근 인사로 통했다.그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문 1년 동안 친러시아내각을 출범시키는 등 대한제국의 국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다. 고종은 베베르가 멕시코 공사로 발령나자 ‘이임이 유감스럽다.장기간 유임시켜달라.’는 친서를 니콜라이2세에게 보냈다.니콜라이2세는 고종 재위 40주년 경축식(1902년)에 당시 야인이던 베베르를 사절단장으로 특파하기도 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 중에도 ‘베베르는 고종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고 한국인들에게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베베르를 경축사절단장으로 결정한 것은 고종황제에게 가장 기쁜 일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고종은 서울에 온 베베르를 자문역으로 붙잡기 위해 니콜라이2세에게 서울체류 연장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베르에 대한 학계의 연구실적은 전무하다시피하다.그의 출생연도와 학력,수기 등도 이번의 문서 공개를 통해 처음 알려지게 됐다. 베베르는 1841년 6월5일에 태어난 독일계 러시아인.부친은 루터교 선교사였다.페테르부르크 제국대학 동양어학부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5년동안 중국어 공부를 했으며 이후 톈진영사와 일본 총영사를 거쳐 조선주재초대 대리공사로 부임했다. 베베르는 러시아 외무부와 중국,일본 등 주변국 외교가에서 ‘친한파’로 낙인찍힌 데다 수뢰사실(2만엔)이 외무부에 알려지는 바람에 서울을 떠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주석기자 ■박종효 前모스크바대 교수 “러 문서국 20곳서 10년간 자료 뒤져” “러시아에 산재한 20여개의 국립문서보관소에는 한국과관련된 방대한 양의 비밀문서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습니다.러시아가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러시아 문서수집 및 번역 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꼽히는 박종효(朴鐘孝·65)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는 지난 90년 한·러 재수교 직후 러시아문서보관소가 외국인에게도 개방되자 가장 먼저 그곳으로 달려갔다.문서보관소는전세계에서 몰려온 학자들로 만원사례를 이뤘지만 한국관계문서를 찾는 학자는 박 전 교수뿐이었다. “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문서를 조사,열람한 뒤 복사하려면 기록부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데 한국 학자들의 이름은본 적이 없어요.” 러시아어와 러시아사,한국사,한·러관계사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학자들이 드문 탓도 있었지만 소장된 문서가외교,군사,경제 등 전문 분야의 필사본이어서 웬만한 학자들은 엄두를 내기도 힘들었다.산더미처럼 쌓인 문서보관소의 서고를 뒤져 한국관련 문서를 찾아내기란 숨은 그림찾기나 마찬가지였다.최근에야 러시아어와 역사를 전공하는소장학자 몇명이 한국관련 자료 수집작업에 합류했다. 박 전 교수는 99년부터 2년 동안 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연구비를 지원받아 문서찾기와 번역,해제작업을 해왔으며,조만간 ‘러시아국립문서국 소장 한국관련 문서 요약해제집’이란 책을 펴낼 계획이다. “러시아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비밀문서의 목록을 총망라,문서목록해제집을 간행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일입니다.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군사문서보관소,연방문서보관소의 서고에 숨겨져 있던 문서들을 분석해 보면 러시아가 견지해온 한반도정책의 과거는 물론,현재와미래까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박 전 교수는 러시아측의 공개 제한조치로 ‘극비문서’들이 소장된 크렘린문서보관소와 KGB문서보관소에 접근할수 없었던 점을 아쉬워했다.그는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뒤 소련 아카데미 러시아역사연구원에서 박사학위와 교수자격(독토르)을 땄고 모스크바대학 객원교수로대학원생들에게 한·러관계사를 강의했다. 노주석기자
  • 구한말 정치외교비사 100년만에 ‘햇빛’- 베베르 러공사 수기 첫 공개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년)과 아관파천(俄館播遷·1896)등 구한말 일본의 침략야욕 및 러시아의 국정 개입에 대한 비밀을 풀어줄 조선 주재 러시아 초대 대리공사 베베르의 수기가 작성된 지 100년만에 처음 공개됐다. ‘1898년 전후 대한제국’이란 제목이 붙은 이 수기는 당시 미국공사였던 알렌이 쓴 ‘알렌의 일기’,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공사였던 플란손의 ‘플란손의 수기’와 함께 구한말의 정치·경제·사회상을 밝혀줄 희귀사료로 평가된다. 1885년부터 1897년까지 12년 동안 공사로 재직하면서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전모를 밝혀내 본국에 알렸고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을 보호,1년 동안 대한제국의 국사를 사실상 좌지우지한 베베르의 수기가 발굴됨에 따라 그동안 미국·일본·중국의 자료에 의존해온 학계의 근대사 해석에도 일부 수정이 가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종효(朴鐘孝·65)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가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국(외무성 소속) 서고에서 찾아내 8일 공개한 베베르의 수기는 1903년 3월 서울에서 작성,러시아 외무성에 보고한 극비문서이다. 당시 그는 고종의 재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의 경축특사로 서울을 방문하던 중이었다. 베베르는 “조선 역사상 1894년 하반기(청·일전쟁,동학혁명,갑오경장)와 1895년에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같은 가혹한 압박은 없었을 것”이라며 당시의 비극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기술했다. 또 청·일전쟁(1894∼1895년) 이후 관리와 군인들의 월급조차 지급할 수 없었던 열악한 재정상황, 1∼2차 러시아군사교관단의 파견과 대한제국 군대의 훈련과정, 아관파천 당시 자신이 고종과 협의해 시행한 행정개혁 내용 등도 소개했다. 그는 1903년 수기를 쓰면서 경부선철도 부설, 서울~부산~일본을 잇는 전신선 복구공사, 일본은행권의 남발과 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대한제국의 재정사정 등을 예로 들면서 “”현재의 경제적인 예속이 조만간 정치적인 속박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측했다. 노주석기자 joo@
  • 리뷰/ 인형극 ‘진기한 콘서트’

    익살스러운 표정의 사회자 인형이 등장한다.“안녕하세요 어린이 여러분.”“(대답)안녕하세요.”,“제가 누구일까요.1번 가수,2번 개그맨…,4번 사회자.”“(대답)4번이요.” 조금은 어눌하지만 한국말로 또박또박 발음되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따라 아이들은 신기한 듯 똘망똘망한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한다.세계적인 러시아의 풍자 인형극은 국내에서 이렇게 어린이용 인형극으로 탈바꿈했다. 57년째 공연을 맞는 국립 모스크바 중앙인형극장의 ‘진기한 콘서트’는 본래 어른들을 위한 인형극이다.“비타민 먹으면 죽을 때까지 살아요.”라는 합창단의 노랫말은 의미없는 일에 목숨 거는 사람들을 풍자한 것이다.가슴이 큰 소프라노 인형을 등장시켜 거만하고 고상한 척하는 예술가를 꼬집고,변기와 주전자,고장난 문으로 전위음악을 연주하는 5중주단 인형을 통해 가치도 없으면서 젠 체하는현대음악가를 비판한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통렬한풍자가 많이 퇴색됐다.가슴이 큰 소프라노를 보며 재미있어 하고,전위음악을 들으며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는정도다.극단 관계자에 따르면,한국 주최측에서 풍자 부분을 빼달라는 주문을 해 대사를 바꾸고 여러 장면을 삭제했다고 한다.사회자 인형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부자되세요.”라고 말하는 등 대상이 어린이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고 이 공연이 별 볼일 없다는 뜻은 아니다.가수,탱고 무용수,조련사,마술사 등 18개 장면마다 다채로운 의상의 새 인형들이 나와 생동감 넘치는 버라이어티 쇼를 펼친다.경쾌한 어깨춤,손놀림,발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듯 넘실댄다.술잔의 술이 갑자기 사라지는 마술도 흥미진진하다. 무대 뒤에서는 더 흥겨운 잔치가 한바탕 벌어진다.인형 하나에 2∼3명의 배우가 붙어 막대를 움직이며 인형과 한 몸이 되어 춤을 춘다.한 명이 조종하는 ‘줄 인형극’에 비해 15∼18명이 집단 창작하는 ‘막대 인형극’은 그래서보다 섬세하고 보다 신명난다. 그래도 이 인형극의 진면모를 모두 볼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아쉽다.주최측의 횡포도 문제지만 인형극을 어린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기는 국내의 풍토가 더 문제다.그럼에도 ‘진기한 콘서트’는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상상력을펼치고 웃을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인 것은 틀림없다.한전아츠풀센터에서 12일까지.(02)1588-7890. 김소연기자 purple@
  • ‘석유자본’ 속속 컴백 러시아 경제 기지개

    금융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시아를 덮쳤던 1997년.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셸 등 세계 굴지의 정유회사들은 러시아 에너지 시장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가 결국 빈 손으로 떠났다. 최근 고유가 바람을 타고 이들이 속속 되돌아오고 있다.5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기업환경도 이들의 귀환에 한몫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러시아의 석유·천연가스시장이 서방 정유회사들의 매력적인 투자지로 재부상하고있어 러시아 경제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되돌아오는 외국 기업들=셸은 15억달러를 투자해 가즈프롬과 유전 개발을 위한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BP는 2주 전 3억 7500만달러를 들여 시단코 지분을 추가로매입했다. 5년 전의 실패를 기억하고 있는 BP의 로드 브라운 최고경영자(CEO)는 “이같은 결정은 러시아 시장에 대한 BP의 신뢰도가 높아졌음을 반영한다.”고 밝혀 투자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유코스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토털피나엘프는 지난 24일 앵글로시베리안 석유회사에 25억달러를 투자해 시베리아 유전개발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일등공신은 고유가=외국 석유회사들이 러시아로 몰려드는 것은 유가 급등에 따른 석유시장 다변화가 가장 큰 이유다. 서방 국가와 기업들은 9·11테러와 중동분쟁 등 연이은국제정세 불안으로 유가가 출렁이자 아랍권 중심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입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비(非) OPEC 산유국이라는 것이 러시아의 최대 장점이 됐다. 러시아 정부와 정유회사 루코일이 대미 석유수출량을 기꺼이 늘리기로 함에 따라 미국의 OPEC 의존도를 낮추는 데 기여한 것은 자명한 사실. 두번째 이유는 기업환경 개선으로 높아진 수익성.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기업인의 재산권 보장을 강화하는 한편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확고한 재정·법률 제도를 정착시켰다. 러시아 석유재벌들은 과도한 세금 부담 없이 석유 채굴량을 늘림으로써 부를 키울 수 있었다.현지 기업과 손잡은외국 정유사들에도 짭짤한 수익을 안겼다. 모스크바에 있는 유나이티드파이낸셜 그룹의 스테픈 오설리번 연구원은 “사업 이윤의 과도한 환수 위협이 사라진 것이 적극적 이윤추구의 동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미래는 천연가스에 달려=세계에서 러시아의 석유 매장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기껏 5%인 반면 천연가스는 25%에 달한다.사우디아라비아와 가스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는 조만간 유럽의 제1공급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외국 정유사들은 따라서 천연가스 개발에 눈독을 들이고있다.전문가들은 이들이 머잖아 현지 기업 인수를 통해 에너지 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관측했다.이 경우 시베리아의 광대한 미개발 천연가스 산지를 소유하고 있는 튜멘석유회사,시브네프트와 같은 정유사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
  • 96년 러 대선후보 레베드 헬기 추락사고로 사망

    [모스크바 AFP AP 연합] 지난 1996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돌풍을 일으켰던 인기 정치인 알렉산드르 레베드(52) 크라스노야르스크 주지사가 28일 헬기 추락사고로 입은 부상으로 사망했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보도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육군장성 출신인 레베드는 지난 96년 대선 1차투표에서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과 겨뤄 3위를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으며 이후 옐친의 후계자 물망에 오르면서 러시아 정치를 이끌어갈 유력 정치인 가운데 한명으로 주목받았다. 레베드는 그러나 옐친의 몇몇 정책에 반기를 들면서 후계자 대열에서 밀려났다.
  • [월드컵 이야기] (15.끝)러시아

    한국인들에게 러시아 축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88 서울올림픽’에서 우승을 이끌어 낸 구 소련 대표팀 감독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일 것이다.그는 그뒤 한국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본선 진출과 98년 프랑스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서의 선전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얼마전 한국의 한 인터넷 전문회사가실시한 역대 한국축구 대표팀 감독 인기 투표에서 비쇼베츠 감독이 3148표를 얻어 5위를 차지했다.한국 축구팬들의 인기와 애정이 여전하다는 방증이다.또 한국 프로축구팀의 안양 LG에서 뛰고 있는 사리체프(한국명 신의손·申宜孫)도 한·러 친선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9번이나 본선에 진출했다.66년 영국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구 소련 대표팀은 4강에 진출했는데 당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설적인 골키퍼 야신은 세계 축구사를 장식하는 명선수로 기록되고 있다. 2002 월드컵에 참가하는 러시아 대표팀은 유럽지역 예선에서 유고,슬로베니아,스위스 등을 7승 2무 1패의 전적으로 제치고 조1위로 본선 진출을 일찌감치 확정지었다.지난 10년간 우수한 러시아 선수들이 서유럽 프로팀에 대거 입단해 활동중에 있으며 구 소련 시절부터 국가적인 지원하에 전국적으로 활동해 온 클럽팀이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프로팀으로 탈바꿈,러시아 축구의 막강한 맥을 이어오고 있다.8년 만의 본선진출에서 러시아는 화려한 재기를 꿈꾸고 있다.감독은 로만체프.대표적인 프로팀중 하나인 스파르타크의 감독으로,탁월한 용병술을 인정받고 있다. 러시아는 일본 벨기에 튀니지와 함께 본선 H조에 속해있는데 경기는 대부분 일본에서 치른다.로만체프 감독은 가장 힘겨운 상대로 홈팀 일본팀을 꼽고 있다.그러나 선수들의 상당수가 8년전 미국 월드컵에 출전한 경력이 있어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우리 대사관은 주러 일본 대사관과 공동으로 한·일 공동 영화제 및 모스크바 거주 한·일 교민 친선 축구대회 등월드컵 기획 행사를 마련중에 있다.이번 행사를 통해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고,모스크바 시민들에게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높이게 될 것이다. 지난해 10월 2000여 러시아 관중들에게 화려한 사물놀이공연을 선보인 김덕수씨는 공연중에 관중들에게 “이번 월드컵에서 러시아 팀이 우승하고 한국팀이 준우승하기를 기원한다.”는 말을 해 관중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내 50만 고려인 동포와 한국교민들은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와 한국과 러시아 두 팀의 눈부신 활약을 기원하며 ‘샤이부!’(골!)를 힘차게 외치고 있다. 정태익 대사
  • 뉴스라인/ 연형묵 건강 나빠 러서 치료

    북한 노동당 자강도당 책임비서인 연형묵(延亨默)국방위원이 최근 러시아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북한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25일“연위원이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1일까지 러시아를 비공식 방문,모스크바의 한 종합병원에서 비뇨기계통의 전문 치료를받았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연 위원의건강을 크게 염려해 이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안다.”면서 “연 위원은 오래전부터 심장병과 당뇨병 등 지병이 있어 96년 9월에는 프랑스의 한 병원에서 심장병 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 러, 美에 새 군축안 제안

    [모스크바 연합] 러시아가 미국에 새로운 군축 방안을 제시하고 미국측 대표가 이 제안을 본국과 협의하기 위해 귀국 길에 올라 획기적인 군축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모으고 있다. 25일 러시아 정부 관계자와 언론에 따르면 지난 23일부터이틀 일정의 군축 회담을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한 존 볼튼미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이 24일 오전 일정을 단축한 채귀국 길에 올랐다. 게오르기 마메도프 러시아 외무 차관은 “미국에 새로운군비축소 방안을 제시했다.”며 “볼튼 일행은 새 제안을 본국과 상의하기 위해 귀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마메도프 차관은 “군축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 감축의 보장”이라며 “한번 감축된 핵무기를 다시 사용할수 없는 비가역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군축 조약 초안은 이미 마련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고르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새 군축 조약은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협상해야 타결할 수 있다.”며 “다음달 3일 미국으로 건너가 파월 장관과 군축 문제를 조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타르타스 통신은 이날 볼튼 차관이 오는 28일쯤 도널드럼즈펠드 미 국방장관과 함께 모스크바로 돌아와 군축 회담을 속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통신은 러시아의 새로운제안이 ‘미국에서 검토할 만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양국은 다음달 23∼26일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블라디미르 푸틴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 전에 군축 협상을 마무리짓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군축 합의 조약화 ▲폐기용 핵탄두 처리 문제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있다. 푸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6000기 수준인 양국의 핵탄두 수를 향후 10년동안 1700∼2200기 수준으로 크게 줄이기로 합의한 바 있다.푸틴 대통령은 1천500기 선으로 감축하길 원하고 있다.
  • 美의원단 방북희망 편지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미 여야 의원단이 다음 달 말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2주 전 박길연(朴吉淵) 유엔주재 북한 대표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이 23일 확인됐다.하원 군사위원회 소속인 공화당 커트 웰던 의원의 명의로 보낸 편지에서 미 의원단은 북한 최고인민회의와의 협력을 도모하고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을 갖겠다는 계획을 전달했다. 미 의회가 휴회하는 5월24일을 전후해 평양을 방문할 것이며 앞서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거칠 뜻을 밝혔다.그러나 미의회 관계자는 아직 북한의 답신은 받지 못했으며 북한 방문 계획도 유동적이라고 덧붙였다.
  • 경의선·TRS 연결 논의

    [모스크바 이타르 타스 연합] 남북한과 러시아가 경의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TRS) 연결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오는 9월 극동에서 회의를 가질 것이라고 콘스탄틴 폴리코프스키 러시아 극동 연방지구 대통령 전권 대리인이 19일 밝혔다. 폴리코프스키 전권 대리인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초청을 받아 오는 24~27일 평양을 방문, 김 위원장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9월 회의가 각 사업 당사자들이 일종의 상호 보증을 하는 기공 문서를 입안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설기현·안정환 마지막 승부수

    ‘시험은 이번 뿐.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설기현(23·안더레흐트)과 안정환(26·페루자)이 오는 20일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최후의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기 위해 16일 대구 훈련캠프에 합류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소속 팀으로부터 신뢰를 되찾고월드컵 본선의 주전으로 낙점받아야 하는 두가지 과제를동시에 안고 있다.최근 소속 프로팀에서 나란히 벤치워머로 전락했고 최근 대표팀에서도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길을 끌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설기현은 지난 14일 벨기에리그 모스크론과의 경기를 포함,최근 18경기째 골을 기록하지 못한 채 올 시즌 고작 3골로 현지 언론의 질타만 받고 있다.안더레흐트의 로저 스톡 단장조차 “앤트워프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 영입한 설기현은 실패작”이라며 비하하기에 이르렀다.구단은이어 홈페이지에서도 유럽의 모 축구 전문 사이트를 인용해 ‘설 자리를 잃은 설(Seol)’이란 제목 아래 실망감을표시했을 정도다. 안정환도 마찬가지.10경기째 이어진 극심한 골 가뭄에 시달리며 올시즌단 한골에 그치고 있다.특히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 가운데 몇몇은 아직 지켜봐야 것”이라고 했을뿐 최종 낙점을 꺼리는 형편이어서 누구보다 조바심이 크다. 게다가 27일의 중국전까지 출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협조 요청이 이들의 소속구단에 전해졌지만 잔류가 가능할지도 미지수다.따라서 이번 평가전은 설기현과 안정환에게히딩크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을 마지막 기회가 될 공산이크다. 한편 국가대표팀은 국내파만 합류한 가운데 13일부터 대구에서 합숙훈련에 돌입했다.황선홍 최용수 유상철 박지성 윤정환 등 일본파 5명은 오는 21일 대표팀에 합류할 예정이다.송한수기자 onekor@
  • 부시, 인간복제 금지 촉구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모스크바·런던 외신종합]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은 10일 연구용이든 생식 목적이든 일체의인간 배아 복제를 비윤리적인 것으로 규정,이를 금지하도록상원에 촉구했다. 부시 대통령은 의사,과학자,종교계 인사및 장애인들이 참석한 백악관 연설에서 “복제연구는 ‘어떤 인간 생명도 다른 생명을 위해 이용되거나 소멸돼서는 안된다.’는 가장 근본적인 의료윤리 원칙에 위배될 것”이라며이의 전면 금지를 주장했다.상원은 현재 ▲인간복제 연구 전면금지 법안과 ▲생식을 위한 복제는 금지하되 치료목적의복제는 허용하는 법안 두 가지를 검토중이다.
  • 시베리아 침엽수림 74% 훼손

    [모스크바 AP 연합] 시베리아의 울창한 침엽수림인 타이가의 훼손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부 환경단체인 ‘글로벌 포리스트 워치(Global ForestWatch)’가 7일 발표한 ‘러시아 원시림 지도’에 따르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원시림은 러시아 대륙 전체의 26%에 불과하다. 타이가는 북유럽,북미,러시아에 분포한 북부 침엽수림대를통칭하지만 원래는 시베리아의 우랄산맥에서 오호츠크해에이르는 침엽수 삼림 지대를 가리켰다.타이가에는 가문비나무,소나무,흑전나무 등의 수목이 발달해 있고 석탄,원유 등이풍부하다. 하지만 ‘러시아 원시림 지도’에 담긴 수천 장의 위성사진과 환경단체 회원들의 답사 결과는 타이가의 훼손 정도가 심각함을 보여준다. 원시림이 가장 많이 훼손된 곳은 유럽 접경 산업지대로 전체 원시림의 9%만이 보존되어 있다.
  • 남북 민간접촉 10일 금강산서

    ‘아리랑’ 행사 참관 등을 논의할 남북 민간단체 접촉이오는 10∼12일 금강산에서 열린다.‘통일을 염원하는 2002새해맞이 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는 2일 “북측이 남북민간급 실무접촉을 오는 10일부터 금강산에서 갖자는 남측제의에 동의했다.”면서 북측 준비위는 이날 팩스를 통해이같은 뜻을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남측 준비위는 이에 따라 조성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집행위원장 등 20여명이 회의에 참여키로 하고 통일부에방북신청서를 제출했다.통일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접촉날짜가 특사 방북 이후라 특별히 불허할 이유가 없다.”고말했다. 한편 북한 황보혁 국가관광총국 처장은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리랑’ 행사를 앞두고 조만간 평양∼마카오 항공노선을 다시 운항하는 등 평양과 러시아 모스크바·하바로프스크 등을 잇는 항로를 다시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이스라엘 “”아라파트는 敵””, 팔 “”전쟁선언 간주””

    [라말라·예루살렘·베이루트·모스크바 AFP AP 외신종합]이스라엘군이 29일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시 전역에 대규모 보복 공격을 가하면서 팔레스타인인 5명과 이스라엘군장교 1명이 숨졌다.또 이날 오후 예루살렘의 한 슈퍼마켓에서 팔레스타인인에 의한 자살폭탄 테러로 3명이 사망했다. 팔레스타인 보안군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새벽부터 무장 탱크와 불도저를 동원,라말라의 야세르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 집무실에 포격을 가하는 동시에 불도저를 이용해정문 외벽 철거작업에 들어갔다.라말라시는 이스라엘군의통제하에 들어갔으며,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5명이 숨졌고 아라파트 수반의 경호원을 비롯해 25명이 다쳤다.이스라엘 라디오 방송도 이스라엘군 보아즈 포메란츠 중위가 교전중 총격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은 이스라엘군이 라말라시를 재점령하자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항하겠다고 천명했으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이스라엘인을 공격대상으로삼겠다고 위협했다. 또 이날 오후 예루살렘 남동부 유대인 근로자 계층이 모여사는 키리아트 요벨 지역의 한 슈퍼마켓에서 팔레스타인 여성이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이 여성을 포함해 3명이 숨지고 16명이 크게 다쳤다고 병원 소식통이 밝혔다. 사건 직후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인 알-아크사 순교자 여단은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알-마나르 TV방송사에전화를 걸어 이번 자폭 공격을 자신들이 감행했다고 주장했다.또 이날 오전 가자지구 네차림 정착지에서 유태인 2명을 흉기로 찌른 팔레스타인 남성 1명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사살됐다고 군소식통이 밝혔다. 이에 앞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28일 밤부터 29일 새벽까지 이어진 마라톤 각료회담 끝에 “지금부터 아라파트 수반을 이스라엘의 ‘적’으로 간주한다.아라파트를 몰아내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라난 코언 이스라엘 노동당 사무총장은 “아라파트가 설땅을 모두 뿌리뽑고 아라파트의 테러 게임을 끝장내겠다. ”면서 “아라파트는 이런 공격을 자초했고 우리는 이런행동을 취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아라파트 수반은 28일 이스라엘과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휴전을 이행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지만 이스라엘은 선언만으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일축했다. 한편 이스라엘을 향한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위베르 베드린 프랑스 외무장관은 아라파트 수반을 고사시키려는 군사작전으로는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해결할 수없다고 비난했다.러시아 이고르 이바노프 외무장관도 아라파트 수반을 고립시키기 위한 이스라엘의 정책이 중동지역의 안정을 해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레바논 외교부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을 ‘야만적인 전쟁’이라고 비난하면서 유엔과 미국,러시아 및 유럽연합(EU)이 개입해줄 것을 촉구했다.또 빈센트 배틀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는 라피크 하라리 레바논 총리와의회담에서 “폭력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앤터니 지니 미 특사의 중재안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 러 관광용 우주선 개발

    [모스크바 연합] 러시아 우주선 개발 회사인 ‘수브오르비탈리나야 코르포라치야’는 14일 새로운 우주 관광용 우주선 ‘C-21’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전문가들은 이 우주선이 관광은 물론 지구 관측용으로도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르게이 코스텐코 사장은 이날 모스크바 외곽 주코프스키시에서 열린 우주선 모형 설명회에서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우주 관광 수요에 대비해 새 우주선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코스텐코 사장은 “새 우주선은 비행기를 통해 발사될 것”이라며 “조종사 1명과 승객 2명을 태울 수 있는 C-21우주선은 최저 우주 고도인 100㎞ 상공 밖까지 비행할 수있다.”고 설명했다. 코스텐코 사장은 “서방 국가들도 현재 비슷한 유형의 우주 관광선을 개발하고 있지만 우리 것이 가장 저렴할 것”이라며 “1인당 우주 관광 비용은 10만달러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는 이어 “C-21 우주선의 첫 발사는 2004∼2005년쯤 가능하며,1주일에 최대 3차례 발사할계획”이라며 “현재까지 100여명이 우주선 승선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 부시 “핵무기사용 배제 안한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13일 미국을 위협하는 나라에 대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잠재적 적대국에 대한 ‘엄포용’의 의미가 크지만 2단계 테러전을 앞두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강조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처리 문제를 논의하고있다고 말해 이라크가 1차적 공격대상이자 잠재적인 핵 공격 목표가 될 수 있음을 밝혔다.이는 북한,중국,이라크 등에대한 핵 공격 가능성을 밝힌 국방부의 핵태세검토(NPR) 보고서가 대테러전에서 일부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부시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올들어 첫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핵태세검토 보고서는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진행된 것으로 새로운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한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이유는 전쟁에 대한 ‘억지력’ 차원이며 미국 역시 미국을 해치려는 사람들에게 핵무기를 통해 “위협을 가하지 마라.”고 경고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이라크나 리비아,시리아 등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에도 “(핵무기를 포함한)모든 대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이는 핵을 보유하지 않은 나라에는 핵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기존의 핵 정책이 바뀌었음을 뜻한다.핵으로 선제공격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용 가능성을 열어놔적대국의 행동반경을 좁히겠다는 의도다.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골칫거리이며미국은 그를 상대할 것이라고 강조,군사행동의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후세인 정권은 무기사찰을 거부하며 분명히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지적했으나 먼저 동맹국과 협의할 것이며딕 체니 부통령이 이같은 위험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체니 부통령의 중동순방이 이라크 공격을 앞둔 사전정지 작업이라는 뜻이다.부시 대통령은 ‘솔직히’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스라엘이 최근 팔레스타인을 공격한 것은 중동평화에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테러에 대한 자위권 차원으로 간주한 샤론 총리의 주장을 일축한 셈이다.팔레스타인의 입장을 두둔하되후세인 정권의 제거를 묵인해 달라는 부시 행정부의 주문을내포하고 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은 핵태세검토 보고서로 핵 경쟁이 우려된다는 지적에 대해,미국은 핵 탄두 감축에 관심이 있으며 러시아와의 핵무기 감축협정이 5월 모스크바 방문 이전에 명문화할 것을 바란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m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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