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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白凡 재조명:1/金九 연구 어디까지(정직한 역사 되찾기)

    ◎그의 죽음은 ‘불행한 역사’의 시작/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참역사의 불꽃 스러지고/식민유산 씻을 주체 상실 평화통일론 어둠속 유배/국가차원 연구후원 全無 이젠 정당한 평가 필요 백범 金九 선생은 우리 현대사의 거인이다.순수한 열정으로 조국의 독립과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했다.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이끌며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다.독립후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앞장섰다.그러나 그는 1949년 6월26일 암살됐다.타계한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면 현대사는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국민의 존경을 받았지만 권력은 그를 왜곡했다.이제 그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와야한다.정직한 역사를 되찾기 위해 金九 선생을 재조명한다. 어둠의 시대에 등불이었던 민족의 큰 스승 백범 金九.그는 일제식민통치의 암울한 시대를 끈질긴 생명력으로 밝혀온 민족의 등불이었다.그의 헌신적 민족사랑은 조국독립이라는 찬란한 불빛으로 빛났다.그러나 그 불빛은 정의의 역사로 승화되지 못한 채 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꺼지고 말았다.그의 비극적 죽음은 ‘정의의 역사’가 현실에서 패배한 민족의 비극이다. 그는 1949년 6월26일 안두희에게 암살됐다.암살범은 일본인이 아닌 그가 사랑했던 같은 민족이었다.그러나 ‘암살범’은 안두희라는 개인이 아니었다.그는 거대한 음모의 한낱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金九 선생은 권력에 의해 조작된 제도적 폭력에 희생된 것이다.권력의 하수인이었던 안두희의 총성은 일그러진 현대사의 시작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결국 잘못된 현대사에서 파생된 권력의 폭력은 5·18 광주민주항쟁도 무력으로 진압했다. 金九 선생을 죽인 권력과 친일세력들은 그를 낡은 역사속에 묻어두려했다.그들은 金九 선생의 최고 가치였던 독립과 민족통일론을 매도했다.그의 평화통일론은 냉전체제속에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그는 자유당 정권에 의해 현실에서의 ‘패배자’로 왜곡됐다.자유당정권은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의 출판도 금지시켰다. 그는 朴正熙 대통령과 그이후 全斗煥·盧泰愚 정권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군사정권들은냉전체제의 분단상황에서 백범의 민족통일론을 외면했다”고 창원대학의 都珍淳 교수(한국사)는 말했다. 金九 선생을 죽게한 일그러진 현대사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현대사의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마땅히 단죄됐어야 할 민족반역자 친일세력들이 해방후에도 부와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것이다.백범의 죽음은 일제식민통치의 유산을 청산할 주도세력의 상실을 의미했다.그러한 불행한 역사과정은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며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 굴절된 현대사의 어둡고 긴 그림자 속에서도 백범은 일반대중들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추앙받아왔다.SBS방송 조사결과,金九 선생은 광복이후 50년동안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나타났다.그는 고대 신문이 실시한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백범은 국민들에게는 가장 존경을 받으면서도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된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현대사가 권력지향적 사회였기 때문에 백범연구는 활발할 수 없었다.문민정부에 들어와 그의 연구는좀더 적극화됐지만 국가차원에서 그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일부 정치세력이 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이면서도 그의 기념관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중국에서 돌아와 업무를 보고 임시정부 국무회의까지 열렸던 경교장(京橋莊)의 복원도 불투명하다.그가 서울에 설립했던 2개의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들은 흔적조차 없어졌다.백범 푸대접은 정통성이 약한 과거의 권력이 그의 영웅화를 두려워하고 그의 통일론과 분단상황이라는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었다.그러나 냉전체제도 무너지고 金九 선생에 각별한 존경과 관심을 갖고 있는 金大中 대통령의 등장으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都교수는 예상한다. 金九 선생은 국가적 차원에서 올바른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야한다.그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중요한 일이다.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백범의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면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는 그의 열린 민족주의와 삶의 철학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래에도 ‘등불’이 될 것이다. ◎죽음을 초월한 생애 ▲1876년(고종13년) 해주에서 탄생 ▲1893년(18세) 동학에 입도 동학접주가 됨 ▲1896년(21세) 황해도 치하포에서 변장한 일본인 쓰치다 때려 죽임. 해주감옥에 감금됐다 인천으로 이감 ▲1898년(23세) 인천감옥 탈옥.마곡사에 들어가 승려가 됨 ▲1904년(29세) 최준례와 결혼 ▲1909년(34세)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자로 체포됐다 석방 ▲1919년(44세)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로 망명.임시정부 경무국장 취임 ▲1923년(48세) 임시정부 내무총장 취임 ▲1924년(49세) 부인 최준례 여사 사망 ▲1926년(51세) 임시정부 국무령에 선출 ▲1930년(55세) 이동녕·안창호·조완구·조소앙 등과 한국독립당 조직 ▲1932년(57세) 이봉창 의사의 日王 저격,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지휘.상하이에서 자싱(嘉興)으로 피신 ▲1933년(58세) 중국의 장제스(蔣介石)와 만나 낙양군관학교에 한인훈련반 설치 합의 ▲1935년(60세) 난징(南京)에 학생훈련소 설치 ▲1938년(63세) 호남성 장사로 피신.민족진영3당 통합을 논의하던중 이운환의 저격으로 중상 ▲1939년(64세) 어머니 곽낙원(81세) 여사 사망 ▲1940년(65세) 임시정부 주석으로 선출 ▲1941년(66세) 대한민국 건국강령 제정.대한민국 임시정부 명의로 대일선전포고 ▲1945년(70세) 중국에서 귀국.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반대하여 신탁통치반대운동 전개 ▲1947년(72세) 제2차 반탁운동 전개.인재 양성을 위한 건국실천원양성소개설 ▲1948년(73세)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하는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발표.남북연석회의 위해 평양방문후 귀국 ▲1949년(74세) 백범학원·창암학원 설립.6월26일 육군소위 안두희의 저격으로 서거. ▲19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추서 ▲1969년 남산에 동상 세움(서거 20주년)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cslee@seoul.co.kr
  • 北 외교관 2세 아들 실종/모스크바서 나들이중

    【모스크바 AP 연합】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 직원이 2살짜리 아들을 잃어버려 러시아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31일 보도했다. 이 아이는 30일 하오 아버지와 다른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모스크바 북한대사관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실종됐다.
  • IMF “對러 차관 새달 재개”

    【모스크바 AFP 연합】 국제통화기금(IMF)은 현재 동결돼 있는 대(對)러시아 차관 100억달러의 지급에 대한 승인 작업을 서두를 계획이며 6월 하순까지는 차관 일부가 제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IMF의 고위관리인 존 오들링­스미가 29일 말했다. 오들링­스미씨는 이날 모스크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IMF)이사회가 열리는대로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본다”며 ”승인 결정만 내려지면 차관은 수일 내에 제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0억달러 차관 가운데 지난 1월 이래 동결돼 있는 6억7,000만달러를 6월말 이전에 지급하는 문제를 이사회가 검토하도록 IMF 관계자들이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 관광公 15% 감원/150여명/사업·단지개발 본부 폐지

    ◎해외지사도 3곳 폐쇄 한국관광공사는 29일 이사회를 열고 5개 본부를 3개 본부로 줄이는 등 구조 조정 방안을 확정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5개 본부 가운데 단지 개발 본부와 사업 본부 등 개발 기능은 민간으로 이관하고 기획,예산,재원 조달을 전담하는 경영 본부,외래 관광객 유치를 맡는 진흥 본부,내국인 관광객을 위한 국민 관광 본부 등 3개 본부로 정비했다.이에 따라 현행 17개 실처(室處) 47개부 중 5개 실처와 11개부가 폐지돼 12개 실처,36개부만 남게 된다. 또 상파울루,밀라노,자카르타 지사를 폐쇄하고 일본 삿포로 지사는 센다이로 이전하는 등 해외지사도 정비했다.중국 관광객을 유치를 위한 상해 지사를 10월쯤 먼저 개설해 성과를 보아가며 모스크바 지사 개설도 검토키로 했다. 이번 구조 조정으로 관광공사 전체 1,000여명 가운데 사무직 20%,영업직 5% 등 15%인 150여명 정도가 줄어 들 것으로 보인다.
  • 중국산 쇠고기 탄저균 오염/카자흐,수입 20t 폐기처분

    【모스크바 AP 연합】 카자흐스탄 보건 관리들이 탄저균에 오염된 중국산 쇠고기약 20t을 폐기 처분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28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중국서 수입된 1만9,600㎏의 쇠고기가 소각됐으며 불타고 남은재는 특수 용기에 담겨져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 인근에 위치한 유해폐기물 매립장으로 옮겨졌다고 전했다. 카자흐 보건 당국은 이와 함께 오염된 쇠고기와 접촉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방역을 실시하고 탄저병 예방약을 지급했다.
  • 러,미납세금 50억루블 징수/금융시장 안정대책 마련

    ◎정부기관 축소·기업 파산절차 간소화 【모스크바 이타르타스 연합】 러시아 정부는 28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긴급대책을 발표하고 세수부진 책임을 물어 국세청장을 전격 해임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정부예산을 확충하고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한 일련의 긴급대책을 선언했다. 정부는 세무조사 강화 등 각종 대책을 통해 다음달 하순까지 적어도 50억루블 이상의 미납세금을 거둬들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세금체불 기업체에 대한 파산절차를 간소화가고 석유회사들에 대해서는 수출이익금에서 체불세금을 징수하기로 했다. 또 정부예산 직접배정 대상을 29% 줄이는 한편 정부기관을 축소하고 에너지 사용량도 감축하는 등 각종 대책을 통해 올해 재정지출을 42% 줄이기로 했다. 이와 함께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 국영기업에 대한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으며 이를 통해 150억루블의 예산을 확충키로 했다.
  • 러 금융위기 탈출 안간힘

    ◎중앙銀 루블貨 방어 위해 금리 3배나 인상/G8 등에 단기유동성자금 긴급지원 호소 【모스크바 AFP 연합】 러시아 금융시장이 파국 직전의 혼란 상황으로 빠져들었다.루블화가 폭락하고 채권 및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27일 주가가 10.5%나 폭락하고 채권 유통수익률이 80%로 치솟는 가운데 루블화의 가치가 급락하자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리파이낸스 금리를 150%로 대폭 높였다. 리파이낸스 금리란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줄 때 적용하는 이자율로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19일 30%에서 50%로 올렸었다. 이번에 다시 인상된 금리는 사상 최고치인 95년 12월의 160%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한편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28일 금융위기에 효유적인 대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8일 경제부처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러시아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루블화에 대한 평가절하 조치를 단행하면 소련 해체 후 쌓아올린 경제적 성취를 일거에 무너뜨릴 염려가 있다면서 루블화 방어를 다짐했다.세르게이 키리옌코 총리는 “정부나 중앙은행,재무부 등 누구도 루블화의 평가절하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15개 서방 주요 증권사들도 이날 키리옌코 총리에게 연대서한을 보내 루블화 방어 및 경제개혁정책 지속을 위해 세계 선진 8개국(G­8) 등으로부터 긴급자금 확보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날 중앙은행의 리파이낸스 금리인상 조치 후 한때 은행간 거래에서 달러당 6.20루블까지 떨어졌던 루블화는 소폭 회복세로 돌아서 6.18루블로 장을 마감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날 공황에 가까운 투매장세 속에 환율폭등을 내다본 달러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다면서 당국의 금리인상 조치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루블화를 방어하겠다는 정부측의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은 또 러시아의 금융위기가 단기유동성 부족현상 때문임을 지적하면서 곧 국제통화기금(IMF)과 서방 금융기관들이 러시아에 대한 긴급지원에 나설 것으로 전망돼 러시아 금융시장의 붕락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 인도와 핵개발 ‘극한 대치’/파키스탄 5차례 핵실험 강행 파장

    ◎5강국 주도 핵질서 깨져 핵 확산/北에 기술 이전땐 한반도에 영향 파키스탄이 28일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인도의 핵실험 실시로 촉발된 서남아시아의 대치상황이 극한 상황을 맞게 됐다. 이번 핵실험으로 인도에 이어 파키스탄까지 핵보유국 대열에 사실상 합류함으로써 미국 등 기존 5대 핵강국에게만 핵 보유가 인정돼온 세계 핵질서의 틀이 깨졌다. 파키스탄의 이번 핵실험은 2주일전 실시된 인도의 5차례에 걸친 연쇄 핵실험에 대한 보복의 성격을 띠고 있다. 47년 영국 독립후 50년동안 3차례의 전면적을 치르며 대치해온 두나라가 이제 핵을 통한 ‘공포의 균형’으로 대결하게 됐다.‘핵강대국의 핵무기 철폐’ 주장을 펴며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을 거부해온 두나라의 핵실험으로 북한이나 이스라엘 등의 핵개발을 자극하게 됐다. 북한과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파키스탄의 북한에 대한 핵기술 이전 우려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번 실험이 한반도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두나라는 핵실험을 마침으로써이제 핵을 장착한뒤 발사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경쟁을 가속화하게 됐다.파키스탄은 북한제 미사일을 수입한 상태로 알려져 주목된다. 인도의 핵실험으로인한 안보위협과 국내적 핵개발 압력을 받아온 파키스탄은 핵주권을 논리로 들며 이번 실험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불편한 관계를 감수해야만 할 처지에 놓였다. 파키스탄은 지난 11일과 13일 인도가 5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하자 즉각,보복 핵실험 실시 의사를 밝혔었다.인도의 핵실험에 당혹해 하던 미국과 서방국들은 즉각 인도에 대한 경제제재를 발표하면서 파키스탄에 대해 인내심과 자중을 당부하며 압력을 가해왔다. 현재 5대 핵강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는 최소 3만7000기.한꺼번에 폭발할 경우,인류를 25번이나 멸망시킬수 있는 규모다. 인도에 이어 파키스탄이 핵실험에 성공리에 마치고 핵보유국임을 최종 선언하고 이어 잠재핵개발국들이 핵실험에 도전할 경우,핵비확산금지조약(NPT)와 전면핵실험금지조약(CTBT)체제는 뿌리채 흔들릴 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다. ◎각국 반응/“핵 확산 안된다” 일제 규탄/나토 “감당못할 경제제재 직면” 경고 【워싱턴·이슬라마바드·뉴델리·모스크바 외신 종합】 인도에 이어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28일 세계 각국은 핵확산을 우려하며 일제히 파키스탄을 비난했다. ○“인도와 똑같이 제재”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8일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강행한 데 실망을 표시했으며 남아시아 지역의 긴장고조에 우려하고 있다고 마이크 매커리 백악관 대변인이 전했다. 매커리 대변인은 이어 “미국법에 따라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조치 실시는 확실하다”면서 앞서 핵실험을 실시한 인도에 대한 제재와 동일한 제재조치가 이르면 28일중에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印 총리 “우리는 정당”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는 파키스탄이 5차례의 지하 핵폭발실험을 실시한 것과 관련,2주전 인도의 핵실험 결정의 정당성이 입증됐다고 첫 소감을 피력. 바지파이 총리는 전국적으로 생방송되고 있는 의회 회의장에서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했다.이것이 사실이라면 인도의 정책은 정당한 것으로 입증된 것이다”며 대책 숙의를 위해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핵실험을 실시한 파키스탄은 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매우 가혹한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 한 관계자는 회원국 외무장관들이 이날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파키스탄의 핵실험 소식을 들었으며 강력한 비난 성명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성명은 파키스탄의 핵실험을 비난한다는 점을 매우 강하고 명확히 밝힐 것“이라고 강조. ○中 대사에 사전 통보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은 파키스탄의 핵실험을 긴급뉴스로 이례적으로 신속히 보도.그러나 중국 외교부의 공식 논평은 즉각 발표되지 않고 있다. 한편 파키스탄의 APP통신은 샴샤드 아흐메드 파키스탄 외무장관이 핵실험전에 장 쳉리(張成禮) 주 파키스탄 중국대사를 만나 핵실험 계획을 사전 통보했다고 보도. ○…일본의 무라오카 가네조(村岡兼造) 관방장관은 “매우 통탄한다”고 밝히고 일본정부는 파키스탄에 대한 적절한 제재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자 단체들은 핵실험 자제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이 강행된 것에 분노를 표시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 옐친 金 대통령 초청

    ◎러시아 주재 남북한 대사 신임장 사상 첫 동시 제정 【모스크바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28일 金大中 대통령이 조속한 시일내에 러시아를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옐친 대통령은 이날 낮 크렘린에서 李仁浩 주 러시아 한국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받는 자리에서 “金大中 대통령이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러시아를 방문해 줄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현지 외교소식통은 전했다. 그는 이어 金대통령에게 각별한 인사를 전해 줄 것을 당부한 뒤,“한반도문제가 당사국들간의 협의에 따라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한편 이날 李한국대사와 朴義春 북한대사가 사상 처음으로 한날 한자리에서 러시아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해 눈길을 끌었다.
  • 러 “루블貨 평가절하 안해”/리파이넌스율 150%로 인상

    【모스크바 AFP 연합】 세르게이 키리옌코 러시아 총리는 27일 주가가 연일 폭락하는 등 러시아 경제가 계속 동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블화를 평가절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러시아 주가는 전날보다 12% 더 떨어졌다. 한편 인테르팍스 통신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루블화 보호를 위해 현재 50%인 리파이낸스율을 150%로 대폭 인상했다고 보도했다.
  • 韓·러 문화공동위 내일 개최

    한·러시아 문화교류 증진방안 협의를 위한 양국 문화공동위원회가 28일부터 이틀간 모스크바에서 열린다고 외교통상부가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 양측은 ‘한·러포럼’개최문제,양국에서의 한국학 및 러시아학 진흥 사업 등을 논의하게 된다.
  • 러 군사대표단 내일 방한

    【모스크바 연합】 니콜라이 미하일로프 러시아 국방 제1차관을 단장으로 한 러시아 군사대표단이 한국 국방부 초청으로 28일 한국을 방문,지역 안보문제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미하일로프 제 1차관은 다음달 3일까지 이어질 방한 기간중 양국 국방차관회담을 갖고 한반도 안보와 동북아시아 현황에 관한 문제들을 논의하며 千容宅 국방장관도 예방할 예정이다.
  • 러,IMF에 긴근차관 요청/키리옌코 총리

    ◎부채 청산위해 수십억弗 규모 【모스크바 연합】 세르게이 키리옌코 러시아 총리가 최근 내부부채 청산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차관을 요청했다고 일간 콤메르산트 데일리가 26일 보도했다. 키리옌코 총리는 25일 모스크바에서 세계의 20개 유명 연금재단과 20개 유력 기업간 모임인 ‘러셀 20­20’회의에 참석,러시아 정부가 IMF와 긴급차관 지원 가능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요청액수는 수 십억달러에 이른다고 신문은 소식통을 인용,전했다. 신문은 이어 그동안 러시아 정부 인사 가운데 이같은 사실을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덧붙였다.신문은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가 이제 러시아 내부부채 상환을 위해 국제금융기구에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러 케메로보州 비상사태 선포/체임지불 요구 탄광노동자 시위 확산

    【모스크바 연합】 체불임금 지불 등을 요구하는 탄광노동자들의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봉쇄 사태가 근 1주일 동안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 케메로보주에 20일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암만 툴레예프 케메로보주지사는 이날 주내 TSR이 지나가는 안제로­수드젠스크지역 탄광 노동자들이 지난 15일부터 TSR 일부 구간을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데이어 프로코피예프스크 지역과 인근 키셀레예프크 지역 탄광노동자들도 19일과 20일 TSR의 우회 철도구간까지 점거,농성에 들어감에 따라 주내에 비상사태를 선포했 다. 탄광노동자들의 TSR 및 우회철도 봉쇄로 현재까지 200대의 열차 운행이 차질을 빚고 있다.
  • 삼성물산 해외자산 본격 처분

    ◎濠 목장·모스크바 볼쇼이빌딩 등 1억5,000만弗 삼성물산이 해외 부동산을 대거 처분한다.약 1억5천만달러 어치에 달한다. 삼성물산이 내놓은 매물은 호주 와라목장과 모스크바 볼쇼이·야키만카 빌딩,뉴욕 및 LA지사 사옥 등이다. 95년 1천만달러에 사들인 와라목장은 여의도 20배인 1천7백만평 규모로 5천여마리의 유우를 사육해 왔다.22일 현지 입찰을 통해 매각할 예정이다. 모스크바 중심가에 있는 볼쇼이빌딩은 삼성물산이 95년에 지은 지하 2층,지상 8층,연면적 4천여평의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미국 부동산투자회사와 매각협상이 진행 중이다.삼성물산은 “볼쇼이빌딩과 야키만카빌딩은 초기 투자비용과 그동안의 금융비용을 감안해도 상당한 매각 이익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이에 앞서 독일과 홍콩 싱가포르 등지의 9개 사옥과 사택을 팔았으며 LA지사 사옥 등 우량자산도 추가로 매각할 계획이다.
  • 러 금융위기 우려 고조

    ◎금리 50%로 인상·주가 1주새 15% 폭락 【모스크바 AFP 연합】 러시아 중앙은행은 19일부터 주요 금리를 30%에서 50%로 인상한다고 18일 발표했다. 이같은 금리인상은 러시아 주가가 18일 12% 하락한데 뒤이은 것이다. 러시아 주가는 올초 이후 40% 하락했으며 지난 한주일 동안에만 15% 떨어졌다. 일부 관측통들은 이같은 주가하락이 아시아식 금융위기를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 亞洲國 통화·주가 일제 하락/印尼 ‘政情 불안’ 영향

    ◎루피아貨 1만3천 돌파/러 주가는 10%나 폭락 【자카르타·홍콩·모스크바 AFP AP 연합】 인도네시아의 폭동 재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18일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통화와 주식이 일제히 내림세를 보였다. 또 러시아에서도 아시아 주식시장이 동요하는데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채권수익률이 급등세를 보이고 주가는 10% 이상의 폭락세를 보였다.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의 환율은 이날 수하르토 대통령에 대한 퇴임 압력이 가중되고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P&S)가 인도네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함에 따라 달러당 1만3천선까지 치솟았다. 루피아화는 지난 15일 달러당 1만875에 폐장됐었다.또 이날 자카르타 주식시장도 4.2%의 내림세를 기록,종합주가지수가 388.918 포인트에 폐장됐다. 태국 주식시장도 인도네시아 정정불안으로 3.3%가 하락했으며 말레이시아 주가도 3%의 하락세를 기로했다.말레이시아 통화인 링기트화는 지난 15일의 폐장가인 달러당 3.7850에서 이날 3.8450으로 하락했다.싱가포르의 주식시장도 스트레이츠 타임스 공업지수가 2.2% 하락한 것을 비롯,홍콩(1.3%),일본(0.93%),필리핀(3.19%),호주(1.2%) 등이 각각 내림세를 보였으나 타이완은 0.85%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 北 노동자 18명 러서 탈출/아무르州 북한농장 감옥 창살 뜯고

    ◎현지 한국 선교사 통해 망명 요청 러시아 극동지방의 아무르주 소재 북한농장에서 일하던 북한 농업노동자 18명이 지난해 8월 농장감옥에 갇혀 있다가 쇠창살을 부수고 집단탈출한 사실이 12일 뒤늦게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감옥을 탈출한 북한 노동자 2명이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일시 귀국한 우리나라 선교사를 통해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 대표인 尹鉉 목사(70)에게 “남한 망명을 도와달라”는 호소문을 보냄으로써 밝혀졌다. 북한 안전요원들의 추적을 피해 러시아내 모처에 은신중인 이들 노동자 가운데 2명은 현재 유엔고등판무관실(UNHCR) 모스크바 사무실에 난민자격 신청을 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4용지 6장 분량의 이 호소문에 따르면 이들 북한 노동자들은 3년동안 배당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혹사당했으며 이를 견디다 못해 각각 농장을 뛰쳐나왔다가 북한 안전보위부원들에게 붙잡혀 쇠창살이 있는 농장내 감옥에 수개월씩 갇혀 있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지난해 8월11일 한밤중에 감옥의 쇠창살을 부수고 집단 탈출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한국으로 가는 것이 소원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난민수용소라도 가고 싶다”며 “이도 저도 안되면 각국 기자단과의 회견을 갖고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폭로한 뒤 자결하겠다”며 절박한 심정을 밝히고 있다.
  • 옐친·새 내각 호흡맞춰야 러 개혁 순항(해외사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확정한 러시아 새 내각은 예전과 달라서 눈길을 사로 잡는다. 과거 러시아 내각은 ‘친개혁’과 ‘반개혁’성향이 뒤섞여져 ‘제자리걸음’이기 일쑤였다. 이번 내각에서 새 장관들은 거의가 한결같이 젊고 공산당 시절뿐 아니라 공산주의 이후의 사업 및 지방행정 경험을 지닌 친개혁 성향을 보인다. 그들은 교조주의적이지 않고 실용주의적이며 모스크바의 과두정치 지배체제에 묶여 있지도 않다. 35세의 키리엔코 총리는 ‘모스크바 경험’이 1년뿐인 지방사업가이며 8명에서 3명으로 줄어든 부총리들도 42세의 지방 시장,40세의 지방 테크노크라트,38세의 주지사들이다. 노동장관은 40세의 진보주의자이며 공산주의자들이 힘을 떨쳤던 농업부는 멕도널드에 고기를 팔던 40세의 사업가가 맡았다. 국가안보 팀들은 구세대들이 유임되었지만 새 내각은 경제가 핵심이 될 전망이고 옛 총리등과 같은 공산주의 잔재들이 남아있지 않다. 새 내각에서는 ‘나이 젊음’과 ‘경험 없음’이 약점이 될 수 있다.그러나 러시아에서는 ‘경험 있음’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또 옛 체제가 무너질 때 일어선 신흥 부자들과 별다른 관련이 없다. 키리엔코 내각은 업계와 좀 더 공정하고 더 개방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묵은 문제들을 금방 해결하리라는 것은 아니다.세금은 잘 걷히지 않고 군대는 사분오열되어 있으며 수백만명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것들은 구조적인 문제들인데 의회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그러나 옐친 대통령이 건강하고 새 내각을 적극 지원해준다면 러시아는 최소한 힘을 모아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하는 정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만 해도 지난 5년에 비해 크게 개선되는 것이다.
  • 5·10 제헌국회총선 의미/徐仲錫 성균관대 교수·사학(특별기고)

    제헌국회총선거가 오는 10일로 50주년을 맞는다.1948년 5월10일 치러진 5·10선거는 분단을 고정화하였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을 가짐과 동시에 역사상 최초로 보통선거를 통하여 민주공화국을 탄생케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역사상 첫 보통선거 1947년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 치열해짐에 따라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에 의한 통일 임시정부 수립이 어려워지자 그해 9월 미국은 한국문제를 국제연합에서 다룰 것을 제안하였다.그리하여 국제연합 총회에서는 11월14일 남북 총선거를 통한 한국정부 수립안과 가급적 조속히 가능하다면 90일 이내에 미소 점령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것을 결의하였다.그러나 예상한대로 소련과 북측은 국제연합 한국임시위원단이 38도선을 넘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국제연합 소총회에서는 1948년 2월26일 가능한 지역에서만의 선거 실시를 건의하여,미군정에 의하여 5월10일 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5·10선거에는 각 정치세력의 폭넓은 참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한국은 그때까지 분단을 경험한 적이 없어 한반도에는 하나의 단일 민족국가만이 존재하여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통일정부의 수립만이 우리 민족의 살길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좌익은 단선단정 반대운동을 격렬히 벌였다.金九 金奎植 등 민족주의자들은 남한만의 선거는 미소가 획정한 38도선을 국제적으로 합법화시키는 행위이고,따라서 남과 북에 들어서는 정부는 미소의 영향력 아래서 자주성을 갖기가 어렵고,참혹한 동족상잔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하여,5·10선거를 반대하고,4월에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협상에 참여하였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선거에 통일운동세력도 참가해 제헌국회에서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하였다. 曺奉岩과 지방의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부분적인 현상이었지만 이 선거에 입후보하였다.金九 金奎植같은 지도자들은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싸웠기 때문에 해방이 분단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또 민족의 대의를 위해서도 통일운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그런데 국제관계로 분단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이 선거에는 되도록 각 정치세력이 많이 참여하여새 정부에 대한 지지를 폭넓게 할 필요가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李承晩·한민당 세력은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이 출마하는 것에 대하여 민중은 그들의 정체와 야욕을 간파하여야 할 것이라고 선전하였다.그만큼 그들은 편협성 편파성이 강하여 자신들이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였고 그것은 새 정부와 자유민주주의에 짙게 암영을 드리우는 것이었다. ○전체유권자 75% 투표 5·10선거에서는 만 21세 이상의 남녀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였고,상당한 지위에 있었던 친일파를 제외하고 25세 이상이면 피선거권이 있었다.선거는 소선거구제로 치러졌고,제헌국회였기 때문에 임기는 2년으로 제한하였다. 의원후보자는 선거인 명부 등록자 200인 이상의 서명 날인이 있는 추천장을 첨부하여야 했는데,이 제도는 李承晩이 출마한 동대문구에서 악용되었다.5·10선거에는 8백13만여명의 유권자중 7백84만여명이 선거인 명부에 등록하고,그중에 7백48만여명이 투표한 것으로 발표되었다.전체 유권자의 75%가 투표한 것이다.제주도의 두 지역에서는 선거가 제대로 치러지지 못하여 198명이 당선되었다.북측에서 선출할 의원 100명은 공석으로 놔두었다. 이 선거에서는 한민당이 미군정 시기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였기 때문에 다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었다.그러나 개표 결과 한민당 이름으로 나온 후보들은 불과 29명밖에 당선되지 못하였고,李承晩을 영도자로 한 독립촉성국민회의가 55석을 차지하였으며,무소속으로는 85명이 당선되었다.우리나라 선거는 이변이 적지 않은데,바로 첫 번째 선거가 예상을 뒤집은 것이었다. ○우리선거사상 첫 이변 5·10선거에서 시행된 보통선거에 대해서 그것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많은 정치학자들은 이 선거가 미국에 의하여 이식된 것이라고 말한다.선거도 민주주의도 모두다 이식된 것이라는 주장이다.그렇다면 이 선거가 보통선거가 아닌 제한선거로 치러질 수 있었을까.1910년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이후 한국인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는 놀랍게도 일찍부터 민주공화국을 세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일제침략기에 왕정복고를 생각한 사람은 극소수였다.또 공화국은 보통선거로 수립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독립운동세력한테는 일반적이었다.이미 상해임시정부가 만들어질 때부터 그것은 등장하였고 趙素昻의 삼균주의에서 정치의 평등이란 보통선거를 가리켰다.일제시기에 사회주의자들은 처음에는 민주공화국을 상정하였다가 나중에는 인민공화국을 내세웠고,1930년대에는 소비에트 체제까지 구상하였다. 해방후의 혁명적 분위기에서 모든 정치세력은 당연히 보통선거를 실시할것을 주장하였다.이러한 분위기에서 보통선거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을 것이다.다만 李承晩·한민당세력은 나이 먹은 사람들일수록 보수적이고 봉건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거권자의 연령을 높이려고 입법의원때부터 노력하였지만,그것도 성사될 수 없었다.따라서 한국인은 선거할 자격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독재자들의 지나친 권력욕때문에 선거가 요식행위나 치장물에 불과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듣게 된 것이다. ○소장파의원 발언 강화5·10선거 이후 제헌국회에서 소장파들의 발언이 강화된 것도 주목하여야할 것이다.정부수립 얼마후부터 ‘소장파 전성시대’라는 말을 듣게 되거니와,소장파의원들은 金九 金奎植과 입장을 같이하여 통일운동을 벌였고 친일파 처단을 올바로 하여 민족정기를 세우고자 하였다.그들은 농민위주의 농지개혁을 위하여 보수세력과 싸웠고,민주주의적인 지방자치법을 통과시켰다.그러나 제헌국회내 소장파 의원들은 金九 선생 암살이 있었던 시기에 일어난 국회프락치사건으로 무력해졌다.이로써 의회민주주의는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었다. 1948년 5월31일 소집된 국회는 제헌국회라는 이름 그대로 헌법제정에 힘을 쏟았다.권력형태는 李承晩의 고집으로 하루밤 사이에 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었다.이 헌법은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경제조항이 들어가 있는 것도 특색이다.한마디로 헌법자체는 서유럽의 그것에 별반 손색이 없었다. ○민중 우습게 알면 안돼 7월17일 헌법이 공포된후 제헌국회에서는 대통령에李承晩,부통령에 李時榮을 선출하였다.국회의장은 申翼熙,대법원장은 金炳魯가 되었다.8월15일 정부수립이 공포되었다.金九 金奎植은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착잡한 심정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는 6월4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5·10선거는 두가지의 교훈을 주고있다.그것은 정치인들이 민중을 우습게 알거나 기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선거는 결코 말의 유희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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