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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에이리언’ 시리즈와 그로테스크한(?) 인간상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에이리언’ 시리즈와 그로테스크한(?) 인간상

    오싹한 영화나 소설을 읽는다고 더위가 가시랴마는 그래도 습기에 옷이 몸에 척척 감기는 여름엔 역시 납량물이 최고다. 올해 5월 개봉한 ‘에이리언-커버넌트’는 여름에 딱 맞는 SF 스릴러다. 흉악한 외계생물과 인간의 혈투를 다룬 ‘에이리언’은 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처음 만들었다. 이후 1986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에이리언2’를 만들고 이어 1992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에이리언3’, 1997년 장피에르 죄네 감독이 4편을 만들었다.‘스콧 감독은 2012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프리퀄 ‘프로메테우스’로 다시 에이리언 시리즈에 복귀했다. 그러곤 5년 만에 내놓은 후속작이 ‘에이리언-커버넌트’였다. 이로써 시리즈는 지금까지 총 6편이 나왔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SF영화의 흐름을 바꾼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속편들은 전편에 구애받지 않고 편마다 독특한 스타일과 영상미로 관객의 눈을 호사시켰다.스콧 감독은 각본을 읽고 매우 끌렸지만 영화 속 ‘우주괴물’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이었다. 스위스의 초현실주의 화가 H R 기거의 화집 ‘네크로노미콘’(1977)을 보면서 ‘바로 이 괴물이야’라고 무릎을 쳤고 화집 속 이미지를 영상으로 고스란히 옮겼다. 미술가들의 상상력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준다. 현대미술 감상은 혁신과 변화가 필요한 세상에서 새로운 것, 낯선 것, 나와 다른 것을 대할 때 놀라지 않는 넉넉한 태도와 침착함을 길러 주기도 한다.기거의 작품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그는 매우 익숙하게 붓이 아닌 에어브러시를 사용해 금속성의 인체를 매우 섹시하게 그렸다. 또 장기나 성기를 연상시키는 것들을 회색 조로 ‘그로테스크’하게 그려 당시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 같은 잡지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저 삽화로만 대하기에는 아쉬운 초현실적인 기이함과 편집광적인 정밀함이 있다. 시대를 풍미했던 하이퍼리얼리즘이나 포토리얼리즘과 맥을 같이했지만 너무나 독특한 나머지 주류 세력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어려서부터 초현실주의자였던 장 콕토와 달리에 심취했던 그는 건축과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다. 1966년쯤부터 음험한 느낌의 초기작을 완성해 나가며 화가, 조각가, 일러스트레이터, 괴물(크리처)·세트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후 그는 초현실적이고 음울한 환상, 불안하고 왜곡된 형체, 그리고 인체와 기계가 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그림을 그렸다. 무명 시절 그의 재능을 알아본 화가 달리가 영화 ‘성스러운 피’의 조도롭스키 감독에게 소개해 영화계와 인연을 맺고 1979년 에이리언에 참여하면서 일약 유명 화가 반열에 들었다. 기거는 그 후 인간의 생체를 뜻하는 ‘바이오’와 사실적이고 정밀한 기계를 뜻하는 ‘메카노이드’가 결합된 엽기적인 ‘바이오 메카노이드’를 완성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 사투르누스나 르네상스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에 나오는 괴물, 19세기 말 미국 공상소설가 H P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괴물 이야기들로 꾸며진 크툴루 신화는 그의 기괴스러운 작품 탄생에 영감을 줬다. 또 시각적으로는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나 스위스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 그리고 폴란드의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와 맥이 통한다. 기거는 늘 악몽을 꾸었다. 이런 경험은 예술적으로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의 그림은 충격적이고 불합리한 이미지의 조합으로 사람들을 놀라움, 불편함, 매혹, 공포 등으로 이끈다. 빅토르 위고는 그로테스크를 새로운 예술의 방법론으로 채택해 세계가 이성적이고 질서정연한 것이 아닌 혼돈 즉 ‘모순의 결합’이라며, 이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선과 악, 비천과 고귀를 하나로 묶어 양면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로테스크한 그림은 현실계 너머의 세계이다. 특히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었는데 1970년대 후반 등장한 극사실주의 즉 하이퍼리얼리즘 화가들은 이를 즐겼다. 현실 같지만 현실이 아닌 허구의 세계, 즉 만들어진 상상의 세계를 보여 주는 데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붓을 대신하는 에어브러시의 등장은 사진만큼이나 미술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작가의 개성을 중시하던 모더니즘적 태도를 버리고 사진처럼 또는 사진보다 더 정교하며 객관적으로 세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포토리얼리즘이 등장했다. 이를 슈퍼리얼리즘, 래디컬리얼리즘이라고도 하는데 팝아트처럼 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좀더 극단적으로 객관적이며 즉물적이다. 돋보기나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얼굴의 피부 조직이나 땀구멍까지 극명하게 그려내 관객들을 질리게 하거나 충격을 준다. 또 사진은 렌즈의 왜곡현상 때문에 화면의 주변이 휘거나 흐릿해지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수정해서 눈으로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보여 준다. 하이퍼리얼리즘의 정교한 현실 묘사는 역설적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이를 표현할 적절한 방법을 상실한 현대미술의 무기력함을 보여 준다. 하지만 ‘손의 복권’을 통한 ‘그림’의 본질적 의미를 일깨웠으며 구상과 추상, 리얼리즘과 반리얼리즘의 구별은 언제나 상대적이며 역사적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켰다는 점은 중요하다. 여기에 그림의 예술적 목표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제아무리 사실적인 그림도 결국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드러내 그림의 허구성을 부각시킨 점은 역설적이다. 아무튼 상상을 초월하는 기거의 그림 한 장에서 비롯된 영화 ‘에이리언’은 문화가 됐다. 수많은 덕후(?)들이 오늘도 여기에 몰입해 그들 나름대로 스토리를 입혀 새로운 에이리언들을 만드는 등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저’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징그러움의 궁극인 제노모프 즉 에이리언은 소름끼치게 기괴한 생명체이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에 가까운 것이다”라는 기거의 말처럼 그 바탕은 인간의 모습에 두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진정 인간일까. 문득 으스스해진다.
  • [데스크 시각] ‘구성의 오류’/김태균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구성의 오류’/김태균 산업부장

    정권 바뀐 것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새 정부의 정책 비전과 공약이 빠르게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갖은 논란이나 이해관계의 충돌, 또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미뤄지고 꺼려졌던 일들이다. 비정규직의 대규모 정규직 전환이 그렇고, 시간당 최저임금의 ‘1만원 인상’ 추진이 그렇다.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의 눈물의 호소를 들으며 “비정규직 1만여명 전원을 연내에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겠다”고 선언한 것은 ‘변화한 세상’을 압축해 보여 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탈원전 정책도 마찬가지다. 오는 9월 최종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한시적이라고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이미 시작된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사를 실제 중단시킬 것으로까지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공공 개혁의 상징이었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새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백지화됐다. 정권 초기의 기세와 동력 아니라면 이렇게 과감한 추진은 어려웠을 것이다. 통신요금 인하안에 대해 몇 번에 걸쳐 퇴짜를 놓으며 업계와 행정 관료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부 출범 이후 두 달 동안 다양한 정책이 ‘속도전’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른바 ‘구성의 오류’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나하나는 각각의 합목적성을 갖지만 그것들이 모여서도 전체적으로 같은 방향성을 갖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한 염려다. 구성의 오류란 개별적으로는 타당하고 옳은 이야기나 행동이 전체적으로는 옳지 않거나 모순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뜻하는 경제학의 고전적 개념이다. 구성의 오류를 설명하는 데는 흔히 ‘저축의 역설’이 동원된다. 저축을 많이 하는 것이 당장 개인과 기업에는 좋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경제 전체의 소비 활력을 떨어뜨려 생산이 줄고 궁극적으로는 일자리와 소득 감소로 연결된다는 논리다. 이를테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의 경우 일자리의 총량을 늘리는 데는 장애가 될 수 있다. 기업들이 정규직 전환에 따른 부담을 신입사원 채용 축소로 상쇄하려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의 생산성이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높아지지 않는 한 인건비 총량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이미 일부에서는 신규 채용 축소의 불가피성을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우리 경제의 근간인 중견·중소기업은 비정규직 고용 비율이 높아 신규 고용 위축이 더 현실화하기 쉽다. 한정된 자원의 분배라는 측면에서 ‘최저시급 1만원’ 논쟁도 이 논란과 궤를 같이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중소 상공인들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다른 데서 벌충해 영세업자의 어려움을 덜어 주겠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의 통신비 부담 경감 추진도 그렇다. 그 자체로서는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것이지만, 기업들의 부담이 과도해지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적 저하나 기업 경쟁력 약화 등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경제에서 구성의 오류는 피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패러다임 전환기가 아니어도 그렇다. 요체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책의 정교함을 좀더 가다듬고 절차를 한층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시공사들이 공사 중단에 반발하고 나선 것은 좋은 참고 사례다. 정책 방향의 일관성에 대한 믿음을 시장에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일련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어떻게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지 좀더 통일된 논리 구조의 틀을 짤 필요가 있다. windsea@seoul.co.kr
  • 납작하게 찌그러지거나 길쭉하거나… 왜곡되고 기이한 현대인의 얼굴

    납작하게 찌그러지거나 길쭉하거나… 왜곡되고 기이한 현대인의 얼굴

    사람을 쇳덩이로 누르거나 양쪽을 잡고 길게 늘이면 이런 모습일까. 납작하게 찌그러진 인물, 길게 늘어난 인물들이 가득한 전시장은 낯설기만 하다. 자유롭게 변형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왜곡된 인체 조각으로 세계 미술 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조각가 이환권(42)이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 작가가 외부에서 전시했던 작품부터 국내에는 공개되지 않은 신작까지 30여점이 출품됐다.2000년 이후 17년간 지속된 작가의 조형미학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전시는 ‘예기치 않은 만남’이라는 제목처럼 그가 창조한 기이한 인물상들을 두루 만날 수 있다. 크고 작은 독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는 것에서 착안해 가족 3대를 표현한 ‘장독대’, 세종문화회관 야외에 설치됐던 퍼블릭아트 ‘버스정류장’, 영화 ‘천국의 아이들’의 주인공인 알리와 자라를 실제 인물보다 길쭉하게 만들어 형상화한 ‘알리 & 자라’, 우물이나 거울에 비친 인물을 납작한 조각으로 만든 ‘퍼들’ 연작, 주변의 반대를 극복하고 사랑을 완성한 탈북자와 교사 커플을 표현한 ‘통일’, 바쁘게 날아가듯 살아가는 ‘대리기사’ 등을 볼 수 있다. 원양선의 엔지니어와 가나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삼남매를 모델로 한 ‘삼남매’, 치열한 도시생활에 지친 친구를 보며 매일 경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을 표현한 ‘교통체증’도 포함됐다. 작가는 실제 주변의 인물들을 모델로 삼아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이를 컴퓨터에서 상하 좌우 방향으로 늘이거나 줄여 변형한 뒤 3차원 입체조각으로 만들어 흙으로 빚고 합성수지로 주물을 떠내는 작업을 거친다. 왜곡된 형태이다 보니 언뜻 보기엔 낯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고 평범한 풍경이다. “80년대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통해 본 영화 속의 인물이 길게 혹은 홀쭉하게 보이는 평면 왜곡을 공간으로 인식한 것이 작업의 동기가 됐다”는 작가는 “긴장과 이완, 흥분과 안도가 반복되는 세상에서 무심한 듯 담담하고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모순되지만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현대인이라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조금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항상 긴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왜곡된 인물상을 통해 그러한 긴장감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경원대 환경조각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2000년부터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활동하던 작가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작품이 높은 가격에 낙찰되면서 세계 미술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본격적인 개인전을 갖는 것은 4년 만이다. 한국 구상조각 대전에서 입상한 바 있는 작가는 올해 28회 김세중 청년조각상을 받아 전시의 의미를 더한다. 전시는 15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이방인… 노숙자… 소외된 아픔을 들춰내다

    이방인… 노숙자… 소외된 아픔을 들춰내다

    “아이를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해요.…나는 무식한 아줌마여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어요. …제발, 사람이 소중한 나라, 사람 목숨이 소중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아들이 입고 뛰었던 운동복을 든 여인은 북받치는 울음을 삼키며 가슴속에 맺힌 한을 털어놓는다. 백범 선생의 좌상을 본뜬 거대한 조형물에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비롯해 탈북 예술가, 해고 노동자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귀화한 영화배우, 동성애 인권운동가, 20대 청년 등이 각자의 소원을 말하는 모습이 투사된다. 한결같이 억압과 차별을 견뎌 온 사람들, 심리적 외상과 박탈감에 고통받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가득 메우며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인전을 갖는 폴란드 출신의 공공미술 거장 크지슈토프 보디츠코(74)의 신작 ‘나의 소원’이다. 자주적인 문화대국을 꿈꿨던 백범의 ‘나의 소원’에서 강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지난해 5월부터 약 1년간의 조사를 거쳐 백범을 상징적인 인물로 선정한 데 대해 그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통일된 한국에 대한 비전을 기쁨의 국가,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교환되는 민주적인 국가, 제국주의가 아니라 건강하고 아름다운, 문화에 초점을 맞춘 그런 국가를 꿈꿨다”면서 “이상적인 사회, 특히 민주주의를 향한 기대감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결코 타인의 고통의 깊이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타인의 고통에 대해 귀 기울일 수 있으며 또한 귀 기울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면서 “심리적 외상을 겪은 사람들이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예술가도 사회의 고통과 문제를 극복하도록 예술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1943년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보디츠코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1968년부터 현미경을 디자인하는 산업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업무 이외의 시간에는 실험적인 예술인과 지식인들이 운영하던 대안공간(갤러리 포크살)을 중심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1977년 캐나다의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캐나다로 이주한 그는 1980년대 들어 미국 뉴욕과 독일 슈투트가르트와 카셀 등 여러 도시에서 사회비판적,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야외 프로젝션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특히 그는 세계 각지에서 난민, 외국인, 노숙자, 가정폭력 희생자 등 상처받고 억압된 사람들이 공적인 공간에서 발언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공공 프로젝션과 디자인 작품을 선보여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이번 전시는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이라는 제목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의 주요 작품 80여점이 총망라된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사회의 주요 담론을 선도해 온 보디츠코의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회고전 형식의 5전시실은 모두 4개 파트로 구성됐다. 폴란드에서의 초기작으로 최초의 퍼포먼스 작품인 ‘개인적 도구’와 바삐 움직이는 공공장소에서 혼자 느린 속도로 걸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수레’, 사방으로 감시당하고 막막한 상황을 표현한 ‘자화상’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억압 간의 긴장을 다룬 작품들이 소개된다.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을 논의할 때 자주 언급되는 대표작 ‘노숙자 수레’도 눈길을 끈다.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폐타이어를 태운 열로 몸을 녹이는 노숙자, 쇼핑카트에 빈 캔을 모아 파는 노숙인들의 모습을 본 그가 쇼핑카트를 개조해 만든 복합기능의 수레는 사람들이 길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도록 내몰린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90년대 초에 발표한 ‘외국인 지팡이’와 마우스피스 모양의 ‘대변인’은 거리에 들고 나가면 누구라도 쳐다볼 기이한 모양이다. 보는 사람들이 말을 걸게 만듦으로써 발언과 소통의 기회를 내포한 작품들을 작가는 ‘문화적 보철기구’라고 부른다. 공공장소에서 건물 외벽 등을 스크린 삼아 영상작업을 투사하는 공공 프로젝션에서는 세계 각국의 도시에서 현지 공동체와 함께 진행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치료에서 차별을 받은 재일조선인 등 원폭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담긴 ‘히로시마 프로젝션’(1999), 가정폭력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티후아나 프로젝션’(2001) 등 10점의 영상이 소개된다. 보디츠코는 “프로젝션 프로젝트의 목표 중 하나가 많은 사람의 목소리와 경험을 다른 곳으로 확장하는 것”이라면서 “대규모 집회나 시위를 통해 공공장소가 활기를 띠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를 공공장소에서 보여 준다면 시위나 집회가 일어날 이유와 조건이 조금은 줄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 ‘나의 소원’은 7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아기 보조개에 피어싱한 엄마, 살해 협박 받은 사연

    아기 보조개에 피어싱한 엄마, 살해 협박 받은 사연

    한 엄마가 어린 아기의 볼에 피어싱을 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한 후 살인 협박을 받았다. 5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메트로, 데일리메일등 외신은 미국 오하이오주 북부 포스트리아에 사는 인다이나 밴스가 올린 사진 한 장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8일 인다이나는 딸의 보조개가 들어가는 부분에 피어싱을 했다며 “내가 이 아이의 부모다.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할거다! 딸이 18살이 될 때까지 모든 결정은 내가 내린다. 내가 이 아이를 만들었고 소유하고 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녀의 게시물은 1만 2000번 이상 공유되면서 순식간에 퍼졌고, 이를 본 사람들은 그녀를 때려 죽여야 한다거나 아동 보호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딸과 격리시켜놔야 한다고 위협을 가했다. 그러나 그 사진은 진짜가 아니었다. 인다이나는 남자아이에게 행해지는 할례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 위해, 피어싱에는 분노하면서 할례는 일반적인 의식으로 받아들이는 모순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조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한 사회가 피어싱에 관해서는 죽음으로 위협하고, 할례에 대해선 장려하고 지원할 수 있는지, 보조개에 피어싱한 아기를 보며 격노하면서 아이들이 묶인채 강제적으로 가장 민감한 부위가 잘려나가는 것은 괜찮은 것으로 여길 수 있는지 아이러니 하다”고 밝혔다. 이어 “부모는 아이들이 충분히 동의할 나이가 되기 전까진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의 신체를 변경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없다”면서 “무방비 상태의 아이들에게 불필요하고 돌이킬 수 없는 종교적인 의식을 계속적으로 짊어지게 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그녀의 의도를 알게 된 일부 사람들은 동의하는 댓글을 올렸지만 아기의 얼굴에 피어싱을 했을 거라 믿으며 여전히 그녀를 비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사진=데일리메일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이준서 조작 개입했다” 이유미 진술 일관…진실 공방 이어져

    “이준서 조작 개입했다” 이유미 진술 일관…진실 공방 이어져

    이유미 국민의당 당원이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에 이준서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도 개입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JTBC 뉴스룸은 ‘문준용씨 취업특혜 의혹 제보 조작’ 사건 핵심인 이씨가 검찰 조사에서 “이 전 최고위원이 조작에 개입했다”고 일관되게 말했다고 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사건 초기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던 이씨가 구속 이후에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상황을 진술했다고 밝혔다. 조사에서 이씨는 이 전 최고위원이 증거를 조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달 28일 이씨가 단독으로 범행했다는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의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내용이다. 검찰은 ‘이씨가 구체적 정황을 제시했다’며 사실 확인을 위해 이 전 최고위원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만일 이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정황이 드러나면 국민의당이 입을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민의당은 자체 조사 결과 이번 조작 사건이 이씨의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검찰은 이씨가 이 전 최고의원에게 “무서우니 그만하자. 힘들다”라고 여러차례 말한 통화 내용을 확보했다. 검찰은 통화 기록을 토대로 이 전 최고위원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다만 아직 대질신문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진술을 상세히 들어본 다음 진술 내용에 모순이 생기면 그때 대질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이씨의 주장에 대해 이 전 최고위원은 “취업 특혜 증거가 있으면 내놓으라고 했을 뿐”이라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JTBC는 “검찰은 이 전 최고위원이 조작을 암묵적으로 지시했거나 묵인했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며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해 교사 대신 공범 혐의를 적용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체 모습으로 사진 찍는 여성…‘셀카 반대’ 위해

    시체 모습으로 사진 찍는 여성…‘셀카 반대’ 위해

    한 예술가가 독특한 자세의 사진 작품을 통해 기존의 ‘셀카’ 추세를 거스르고 있어 화제다. 3일(현지시간) 영국 더썬은 자신을 피사체 삼아 바닥쪽으로 얼굴을 엎드리고 누워 마치 죽은 자세를 취한 채 다양한 사진을 찍는 멀티미디어 예술가 스테파니 리 로즈를 소개했다. 스테파니는 이상적인 사진을 위해 일부러 꾸미거나 특별한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유럽, 남미, 북미, 아시아 등 전 세계 곳곳을 누비는 그녀는 종종 사람들로 붐비는 관광 명소 또는 아름다운 상징물 앞에서 상식 바깥의 포즈로 행인들을 멍하게 만든다. 가끔 사람들의 반응이 더해져 더 재미있는 사진이 나오기도 한다. 그녀는 동료들과 농담을 나누다가 자신의 이름 앞글자(STEF)와 죽다(DIES)라는 단어를 합쳐 ‘스테프다이’(STEFDIES)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파도에 떠밀려 와 죽어 있는 듯한 모습, 거리 화장실에서 피격된 채 죽어 있는 듯한 모습, 에펠탑 앞 넓은 잔디밭 위에서 최후를 맞은 듯한 모습 등 죽은 사람처럼 여러 사진 속에 등장하는 그녀의 모습은 곧 책으로도 출시될 예정이다. 스테파니는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일상생활의 모순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자신의 사진들은 매스 미디어에 대한 반발이자 셀카 반대를 향한 움직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셀카봉 문화는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들을 비롯해 사진 촬영의 진정한 의미를 잊게 만든다”면서 “우리는 가상 현실에 집착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특히 사진 속에서 모든 것이 임의로 수정되고 삭제되고 꾸며지면서 진실인 것이 없다”고 셀카 문화를 꼬집었다. 스테파니의 목표는 원래의 전통적인 사진 촬영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렌즈 앞에 대상이 되는 대신 카메라에 종속되지 말아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한때 스테파니는 강아지 배설물에 누운 적도 있고,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사진을 찍다 쫓겨나기도 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경찰들에게 저지도 당했다. 하지만 그녀는 앞으로도 이러한 장애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표를 위해 계속해서 자신의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사진=더썬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계속되는 망언…미 애틀랜타 일본 총영사 “위안부는 매춘부”

    계속되는 망언…미 애틀랜타 일본 총영사 “위안부는 매춘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시노즈카 다카시 일본 총영사가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망언을 내뱉어 논란이 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대해서는 “그것은 증오의 상징이자 일본에 대한 분노의 상징물”이라고 비난했다.26일(현지시간) 애틀랜타 소녀상 건립위원회와 현지 한인 매체 뉴스앤포스트에 따르면 다카시 총영사는 최근 조지아주 지역신문 ‘리포터 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대부분 한국에서 온 여성들을 성 노예로 삼았다는 증거는 없다”면서 “그 여성들은 돈을 받은 매춘부들이었다”고 말했다. 또 소녀상에 대해서는 “그것(소녀상)은 단순한 예술 조형물이 아니다”라면서 “그것은 증오의 상징이자 일본에 대한 분노의 상징물”이라고 건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카시 총영사는 애틀랜타 소녀상 건립위원회와 현지 한인 사회가 조지아주 소도시 브룩헤이븐 시립공원에서 오는 30일 제막할 예정인 소녀상의 건립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시장과 시 의회를 상대로 반대 로비를 펼쳤던 인물이다. 건립위는 성명에서 “주 애틀랜타 일본 총영사가 위안부를 인정하지 않고 성노예가 되었던 여성들을 ‘사례받은 매춘부’로 부른 것은 일본 외무성 공직자로서는 근래 들어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이는 위안부 여성의 고통과 희생을 인지하고 사과한다는 종전 일본 정부의 성명과 모순되는 것이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일본 정부가 더 이상 위반부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인지 의문을 던지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건립위는 예정대로 오는 30일 오전 10시 브룩헤이븐 소재 시립공원(일명 블랙번2)에서 브룩헤이븐 시 주재로 소녀상 제막식이 열린다고 밝혔다. 브룩헤이븐 소녀상은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립공원과 미시간주 사우스필드 한인문화회관에 이어 미국 내에서 세 번째로 세워지는 평화의 소녀상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1500통 배달 끝내야 밥 넘어가요”

    “1500통 배달 끝내야 밥 넘어가요”

    소포·등기도 200여개 배달 1분에 3가구 이상 방문도 “집에 아무도 없을때 무서워” 주당 법정근로 52시간이지만 명절엔 84.6시간까지 치솟아 “집배원은 배달이 우선이니까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오후 3~4시까지 일을 마친 뒤에 점심을 먹습니다. 하루에 1500여통의 편지를 돌린다고 보면 될 겁니다.”26일 오전 서울 중랑구 면목 본동에서 만난 중랑우체국 집배원 박정순(51·여)씨는 빨간 우체국 오토바이 앞뒤로 우편물을 가득 싣고 있었다. 10년차인 박씨는 매일 1500여통의 우편물 외에 200여개의 소포 및 등기도 배달한다. 8시간 근무를 가정하면 산술적으로 1분에 3가구 이상을 방문해야 한다. 골목길은 물론 우편함의 위치까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불가능한 수준인 셈이다. 실제 박씨는 주택가 골목길을 종횡무진 누볐다. 운동화를 신고 나름 무장한 채 나온 기자였지만 박씨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빌라를 수차례 오르락내리락하자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안경알에 김이 서렸다. ●“여성이라고 할당량 적지 않아” “아무래도 힘든 일이다 보니 남성 집배원이 대부분입니다. 사람들이 저 보고도 ‘집배원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여성 집배원이라고 할당량이 적은 건 아니어서 속도가 느려선 안 됩니다. 하지만 예전보다 택배, 소포 물량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세진 건 사실이죠.” 가장 힘든 시기로는 명절 전후를 꼽았다. 최대 30㎏까지 택배를 부칠 수 있는데 민간 택배 회사가 물류센터 포화로 접수를 거부하는 명절 하루 전에도 우체국 택배는 접수를 받는다. 이 시기에 주당 52시간인 근무시간은 77~84.6시간으로 치솟고 토요일뿐 아니라 일요일에도 배달에 나서야 한다. 박씨는 높은 고갯길이나 층계보다 무서운 건 ‘집에 아무도 없을 때’라고 했다. “주택가의 경우에는 아파트처럼 경비실이 없어서 이튿날 다시 배달을 해야 됩니다. 비나 눈에 취약하기도 하죠. 그럼에도 버티는 건 주민들이 친한 이웃처럼 대해 주기 때문이에요. 사실 이런 보람이 없으면 더 힘들 겁니다.” ●“살인적 근무” “주 52시간 안 넘어” 집배노조는 숙련노동자인 박씨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살인적인 초과 근무가 집배원의 과로사를 부추긴다며 매주 월요일 아침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13시간을 일하고 토요일마저 격주로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며 집배원 증원과 토요 근무 폐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과로사한 집배원은 올해만 8명이다. 노조 관계자는 “옆 사람이 다치면 인력 지원 없이 동료들이 일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며 “산재 승인율도 20~30%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의 1인당 근로시간이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주당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을 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인원 증원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하반기 인력이 부족한 경인지역에 146명을 늘렸고, 올해 5월에도 160명을 충원했다는 것이다. 또 이번 추경에 반영될 100여명의 인건비가 통과되면 더 인력이 충원될 것이라고 했다. 집배원의 신분은 공무원이지만 우체국은 민간과의 경쟁 구조이기 때문에, 실적 고양과 근로환경 개선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우체국 직원은 “우체국은 일반회계가 아니라 특별회계로 운영된다. 쉽게 말해 국민 세금이 아니라 소포 하나라도 더 배달해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며 “인력을 충원할수록 수익을 더 내기 위해 더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모순적인 상황에 있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대형 공기업 등 아직 10~20%선… “지역균형 35% 의무화 필요”

    대형 공기업 등 아직 10~20%선… “지역균형 35% 의무화 필요”

    전국 355개 공공기관의 청년 신규 채용 인원 가운데 비수도권 지역인재(지방대 출신)의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지역 대학의 부설 연구소와 병원,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을 포함한 인원이다. 하지만 취업준비생들이 선호하는 대형 공기업 등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은 아직 10~20% 선에 그치고 있다.대형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까지 지역인재 채용이 확대되기 위해선 정부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블라인드 채용이 반드시 지방대 출신에게만 유리한 것이 아니고, 블라인드 채용과 지역인재 채용이 모순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26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최근 3년간 355개 공공기관의 청년 신규 채용 인원 중 지역인재 비중이 증가했다. 2014년 61.8%이던 비수도권 대학 출신 인원은 2015년 63.7%, 지난해 65.2%까지 늘었다. 또한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에 대한 지역인재 35% 선발 지침이 내려진 올 1분기에는 74.3%까지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지난해 중앙정부 산하 주요 공공기관 76곳 중 지역인재 비중이 30% 이상인 곳은 16곳(21.1%)에 그쳤다. 상당수는 지역인재 채용률이 10~20%대에 불과한 실정이다. 경남 진주로 이전한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은 지난해 정규직 36명 채용 중 이전 지역 채용자가 1명뿐이었다. 근로복지공단(3.6%)과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3.8%),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4.4%), 한국시설안전공단(4.5%), 대한적십자사(4.8%), 주택관리공단(5.6%), 한국관광공사(6.7%) 등도 비중이 낮았다. 이희수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대에서 성적대로만 선발하면 남학생 수가 턱없이 부족해지는 현상을 막고자 남학생 할당을 두는 것처럼 ‘적극적 고용 개선 조치’로 지방 대학 및 지역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상 비율(35% 이상)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공공기관 구성원의 지역 편중에 따른 학연·지연 우려가 있을 수 있으니 ‘지역’의 개념을 특정 시·도로 한정하지 않고 ‘권역별’로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블라인드 채용이 강화되면 오히려 지역인재들이 불리해지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주연 취업포털 커리어의 HR사업 부본부장은 “블라인드 채용이 반드시 지방대 출신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수도권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충분한 경험을 쌓은 이들의 채용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면서 “정보가 빠르고 어학 점수 확보, 자격증 획득 등이 유리한 곳은 여전히 수도권 대학 출신”이라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학력과 학벌 위주의 사회를 지양하자는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실효성을 가지기엔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기회와 절차의 평등이 곧바로 지역 인재들이 많이 뽑히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서울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김형준의 정치비평] 협치 절벽에서 벗어나려면

    [김형준의 정치비평] 협치 절벽에서 벗어나려면

    문재인 정부가 협치 위기를 맞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 3당의 반대에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 대한 임명을 강행한 것이 빌미가 됐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강경한 수단을 구할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협치 폐기를 선언했다. 여소야대 5당 체제에서 야당의 협조 없이는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될 수 없다. 지난 대선에서 완패했던 야당들도 국정 협치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협치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높았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40일 만에 협치는 사라지고 대치가 판을 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의 의지가 약한 것도 문제지만 협치를 가로막는 파행적인 정치 구조가 더 큰 요인이다. 우선 잘못된 합의의 덫이다. 국회의 모든 의사일정은 원내 교섭단체들 간의 협의에 의해 진행되도록 규정돼 있다. 합의를 존중하려고 만들었지만 어느 한쪽이 반대하면 모든 의사일정이 정지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상임위 보이콧 등 국회 파행이 다반사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정권이 교체돼 대통령의 스타일은 바뀌었는데 국회가 안 바뀌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구나 여야 모두 집단 기억상실증 환자가 돼 자신들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 만연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둘째,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도 내각제식으로 운영되는 기형적인 권력 구조다. 대통령제에서는 여야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해야 건강한 정부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부·여당 대 야당’이라는 내각제 구도가 고착화돼 여당은 무조건 정부를 옹호하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매몰돼 있다. 여기에 대통령이 여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회와 야당을 무시하는 행정독주적 사고에 빠지면 협치는 그야말로 절벽을 만나게 된다. 집권당이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면서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하면 대통령 측근에 의한 국정 농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야당의 극한 대여 투쟁은 상수가 된다.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협치란 빛 좋은 개살구다. 셋째, 임의 단체에 불과한 정당이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를 지배하고 있다. 비대해진 원외 정당이 강제적 당론을 앞세워 소속 의원들이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 활동하는 것을 막는다. 국민대통합위와 서강대가 실시한 20대 국회의원 의식 조사에 따르면 의원들의 75%가 “국회 의정 활동과 관련해 당론이 의원들의 표결에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고 응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원들은 자율성이 사라지고 당 지도부의 판단과 전략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불쌍한 신세가 된다. 의원들이 상대 정당을 옹호하고 지지하면서 교차 투표를 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이런 뒤틀리고 왜곡된 정치 구조 속에서 협치란 허울뿐이고 쉽게 깨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통령제 운영의 핵심 원리가 견제와 균형인 만큼 견제 없는 협치는 현실성이 떨어지고 공허하게 들린다. 이 밖에 협치에 대한 생각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협치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의 무조건 협조, 야당은 집권 세력의 담대한 양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협치(協治)의 원래 뜻은 ‘힘을 합쳐 잘 다스린다’는 것이다. 결국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 세력이 꼬인 실타래를 풀고 협치를 주도해야 한다. 협치를 가로막는 파행적 정치 구조를 최우선적으로 개혁해 협치를 협치답게 만들어야 한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치를 개혁하지 않는 협치란 없다. 집권 세력에겐 최소한 전략적 인내, 정직,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여당이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조급하게 야당을 적폐 세력으로 몰고 가면 협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잘못했다고 진솔하게 인정해야 협치 정신이 살아난다. 대통령이 탕평 인사를 하고, 중요한 정보를 야당에 제공하며, 야당 지도부와 수시로 만나 격의 없는 대화를 할 때 협치가 살아 숨 쉬게 된다. 단언컨대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돼야 협치가 살아난다.
  • [사설] 로스쿨 안 가도 변호사시험 볼 길 터줘야

    사법시험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내일까지 치러지는 2차 시험을 끝으로 54년 만에 폐지되는 것이다. 사시 존폐를 둘러싼 논란은 오랫동안 뜨거웠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가 사시 폐지를 예정한 변호사시험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마지막 사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럼에도 안타까움이 크다. 애초 사시 폐지의 취지는 유능한 인재들의 ‘고시 낭인’을 막고, 법조 기수문화의 공고한 카르텔을 깨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안으로 도입된 로스쿨 체제에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속출했다. 연간 수천만원인 학비가 서민들에게는 진입 장벽이며, 학벌과 집안이 입학과 수료 이후의 진출에 결정적인 배경이 된다는 지적이 끊임없는 논란거리였다. 입학 때 제출한 자기소개서에 부모 직업을 명시해 특혜를 누린 사례까지 드러나 공정성에 치명타를 입기도 했다. 실력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수 조건들이 당락을 결정하는 불투명한 입학 전형 때문에 현대판 음서제라는 뒷말이 따라다니는 게 현실이다. 법을 바꾸지 않는 한 내년부터는 3년 과정의 로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만이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있다. 로스쿨에도 물론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을 배려하는 특별전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소수에 한정된 배려가 아니라 로스쿨 바깥에서도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 있게 공정한 창구를 열어 달라는 사회적 요구가 여전히 높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 사시 존치를 요청하는 청년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내가 만든 정책을 내 손으로 접을 수가 없다”고 답변한 적이 있다.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이라면 구멍 뚫린 제도는 겸허히 손보는 결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특목·자사고 폐지 논란이 거센데도 기회 균등의 대의를 위해 밀어붙이겠다는 것이 문 정부의 교육 철학이다. 식지 않는 사시 존치 여론에 무조건 귀를 닫아서는 모순 정책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여러 방안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논의를 시작해 볼 때다. 일본은 로스쿨 수료생이 아니어도 누구나 법조인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시험(예비시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벌과 빈부에 상관없는 법조인 관문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공정사회의 징표를 만드는 작업이다.
  • 김태호 등 MBC 예능 PD “김장겸 사장, 그만 웃기고 떠나라”

    김태호 등 MBC 예능 PD “김장겸 사장, 그만 웃기고 떠나라”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등 MBC 예능 PD들이 22일 성명을 발표하고 김장겸 현 MBC 사장 퇴진을 촉구했다. MBC의 막내 기자들도 사내 곳곳에 대자보를 내걸고 김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다.MBC 예능 PD 47명은 이날 성명에서 “김장겸 사장은 이제 그만 웃기고 회사를 떠나라”며 “웃기는 건 우리 예능PD들의 몫”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웃기기 힘들다”며 “사람들 웃기는 방송 만들려고 예능PD가 되었는데, 그거 만들라고 뽑아놓은 회사가 정작 웃기는 짓은 다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열하는 거 진짜 웃긴다. 아무리 실력 있는 출연자도 사장이 싫어하면 못 쓴다. 노래 한 곡, 자막 한 줄까지 간섭하는 거 보면 지지리도 할 일이 없는 게 분명하다”며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아무리 시청률을 잘 뽑아도 멀쩡히 하던 프로그램 뺏긴다”고 폭로했다. 또 “PD가 아니라 노예가 되라 한다”고 주장했다. 예능 PD들은 “KBS, SBS는커녕 종편에도 비교할 수 업을 만큼 제작비를 깎는다”며 “출연자 섭외할 때마다 출연료 얘기하기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사장님 귀빈’ 모시는 행사에는 몇억씩 쏟아 붓는다”고 적었다. 한편 MBC의 막내 기자들도 지난 21일 사내 곳곳에 대자보를 내걸고 김 사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이들은 대자보를 통해 “회사는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사장 퇴진 성명을 대거 삭제했다. ‘조직 내 건전한 의사소통 활성화’를 위해 삭제와 차단을 일삼겠다는 부박한 자기모순은 누구의 발상이냐”고 지적했다. 지난 21일 오전 게시된 대자보는 현재 사측에 의해 모두 회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3년 입사한 MBC 공채 마지막 기수인 막내 기자들은 지난 1월 ‘MBC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묵인 축소로 일관해왔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출근정지 10일과 근신 처분을 받은 바 있다. < 이하 MBC 예능 PD 성명 전문 > 이제 그만 웃기고 회사를 떠나라 웃기기 힘들다. 사람들 웃기는 방송 만들려고 예능PD가 되었는데 그거 만들라고 뽑아놓은 회사가 정작 웃기는 짓은 다 한다. 검열하는 거 진짜 웃긴다. 아무리 실력 있는 출연자도 사장이 싫어하면 못 쓴다. 노래 한 곡, 자막 한 줄 까지 간섭하는 거 보면 지지리도 할 일이 없는 게 분명하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아무리 시청률을 잘 뽑아도 멀쩡히 하던 프로그램 뺏긴다. 생각하지 말고, 알아서 검열하고, PD가 아니라 노예가 되라 한다. 돈 아끼는 거 진짜 웃긴다. KBS, SBS는커녕 케이블 종편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제작비를 깎는다. 출연자 섭외할 때마다 출연료 얘기하기가 부끄럽다. 늘 광고가 완판 되는 프로그램은 짐 싣는 승합차 한 대 더 썼다고 치도곤을 당했는데, “사장님 귀빈” 모시는 행사에는 몇 억 씩 쏟아 붓는다. 신입 못 받게 하는 거 진짜 웃긴다. 신입 공채는 막고 경력 공채는 기습적으로 열린다. 행여 끈끈해질까봐, 함께 손잡고 맞서 일어나 싸울까봐 경력직 PD들은 노동조합 가입도 못 하게 방해하며 누가 후배인지 언제부터 어떻게 일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얼굴들을 끝없이 늘려간다. 우리 꼬라지 웃겨 죽는다. 좋은 예능 만들겠다며 젊음을 쏟아 달려왔는데 어느새 보람도 보상도 없는 곳에 서있다. 회사는 시사교양국 없애고, 기자고 아나운서고 쫓아내고, 뉴스로 개그 하느라 정신이 없다. 회의실 편집실 촬영장에서 숱한 밤을 샜는데 남은 것은 얘기하기도 쪽팔린 이름 “엠빙신” 뿐이다. 웃긴 것 투성인데 도저히 웃을 수가 없다. 함께 고민하던 동료들은 결국 ‘PD다운 일터’를 찾아 수없이 떠났다. 매일 예능 뺨치게 웃기는 뉴스만 만드는 회사는 떠나는 동료들 등 뒤에는 ‘돈 때문에 나간다’며 웃기지도 않는 딱지를 붙인다. 그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웃음을 만들어야 한다. 웃기기 정말 힘들다. 웃기는 짓은 회사가 다 한다. 가장 웃기는 건 이 모든 일에 앞장섰던 김장겸이 아직도 사장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그만 웃기고 회사를 떠나라. 웃기는 건 우리 예능PD들의 몫이다. 2017년 6월 22일 예능 PD 강성아 권성민 권해봄 김명진 김문기 김선영 김윤집 김준현 김지우 김진용 김태호 김현철 노승욱 노시용 박진경 박창훈 선혜윤 손수정 안수영 오누리 오미경 유성은 이경원 이민지 이민희 이윤화 이재석 임경식 임남희 임 찬 장승민 장우성 정겨운 정다히 정윤정 정창영 조주연 채현석 최민근 최윤정 최행호 한승훈 한영롱 허 항 현정완 황지영 황철상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유라 불구속 재판 가능성… ‘강제 송환 = 구속’ 공식 깨지나

    정유라 불구속 재판 가능성… ‘강제 송환 = 구속’ 공식 깨지나

    막대한 비용·절차 들여 송환 후 구속 안 되면 국제적 신뢰 타격최순실(61·구속 기소)씨 딸 정유라(21)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두 차례 기각돼 정씨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정씨의 불구속이 자칫 국제사법 공조에 부정적인 선례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덴마크가 정씨를 150일간 구금한 뒤 강제송환에도 협조했는데도 검찰이 정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는 모순된 결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21일 검찰 관계자도 “범죄인 인도 절차에 따라 송환된 피의자가 구속되지 않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2007년 미국에서 송환된 ‘BBK 사건’ 김경준씨와 최근 프랑스에서 인도된 유섬나(51)씨 사례 등을 보더라도 범죄인 인도를 통해 송환된 피의자들은 구속 수사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양쪽 국가 모두 피의자의 혐의가 무겁고 도주의 우려가 크다고 인정할 경우에만 범죄인 인도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서울지역의 한 검사는 “막대한 비용과 복잡한 절차를 거쳐 송환을 한다는 것은 구속을 통해 증거인멸 가능성을 없앤 상태에서 수사하겠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지방의 한 검사도 “범죄인 인도는 협정을 맺은 국가 간의 협력과 신뢰를 통해 이뤄진다”며 “정씨 사례가 이어진다면 앞으로 사법공조가 원활히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반면 범죄인 인도 결정과 본국에서의 구속은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인 인도는 단순히 피의자를 국내로 데려온다는 의미이지 구속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무조건 구속해야 한다면 법원이 영장을 심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각국 사법부가 내린 판단은 독립적으로 존중되기 때문에 강제 송환된 피의자의 불구속을 확대 해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의 기계적인 영장청구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서초동 변호사는 “형사 절차 관행을 보면 부모와 자식 혹은 부부가 공범일 경우 양쪽을 모두 구속하는 사례는 드물다”면서 “최씨가 구속된 데다 국정농단 연루자 대부분의 조서, 증거가 확보된 상황에서 검찰이 정씨까지 구속하려 한 것은 무리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비선 진료 및 의료계 특혜 의혹의 정점으로 김영재(57) 원장을 지목했으나, 부인 박채윤(48)씨가 구속되자 김 원장은 불구속 기소했다. 한편 수사팀 관계자는 정씨에 대한 세 번째 영장 청구 여부와 관련해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정씨가 재산관리인 데이비드 윤을 통해 몰타를 포함한 제3국의 시민권을 얻으려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확보하고 정씨의 도주 우려가 여전히 크다고 보고 있다. 정씨는 이 편지에서 “몰타가 아니라도 (시민권을) 빨리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해 달라.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다음 대선(5월 9일)까지는 돼야 한다”고 적었다. 이에 정씨는 검찰 조사에서 “알아보기는 했지만 돈이 많이 들어 시민권 취득을 포기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사설] 케이블카 허가 전 구매계약부터 한 양양군

    한동안 극심한 찬반 대립으로 갈등을 겪었던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 문제가 다시 논란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최근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뒤집는 새로운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앞서 문화재위는 양양군이 제출한 문화재 현상 변경안을 환경과 동식물 서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지난해 12월 부결시켰다. 문화재위 결정을 중앙행심위가 이렇듯 간단하게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는 우리 행정의 어설픈 구조부터가 우선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발굴 현장을 비롯한 모든 문화재의 보존 여부는 문화재위가 아니라 중앙행심위가 최종 판단을 내리는 꼴이나 다름없어진다. 중앙행심위가 모든 인허가의 ‘해결사’로 나서는 불합리는 중앙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본다. 인허가 행정에서 노출된 제도적 모순은 그렇다 해도 양양군의 자세는 더욱 이해하기가 어렵다. 감사원은 지역 시민단체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공익감사 청구에 따른 감사 결과를 그제 내놓았다. 감사 결과 양양군수는 지난해 3월 행정자치부와 문화재청의 투자심사와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도 받지도 않고 실시설계 용역계약과 케이블카 설비 구매 계약을 맺었다. 양양군은 선금을 지급하고 나서야 각각 행자부와 문화재청에 심사를 의뢰하거나 현상 변경을 신청했다고 한다. 중앙행심위의 ‘번복’이 없었다면 36억 2000만원 남짓한 예산은 그대로 날릴 판이었다. 자기 집안일이었다면 허가도 밟지 않고 대금부터 치렀을지 양양군수에게 묻고 싶다. 감사원도 절차를 무시한 자의적 행정을 ‘행자부 장관의 양양군수에 대한 주의촉구’ 요구로 마무리한다면 재발을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색 약수터를 지나는 한계령 길은 오랫동안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심 도로의 하나였다. 2006년 미시령터널이 뚫리면서 통행량이 크게 줄었고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한계령길이 ‘잊힌 길’이 될 것이라는 지역의 위기감을 모르지 않는다. 오색 케이블카도 그런 절박함에서 추진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럴수록 사업 추진 과정의 행정행위는 최대한 투명하게 해야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당장 환경단체들이 케이블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를 다시 제공하지 않았나. 주민들도 양양군의 잘못된 행정이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 [데스크 시각] 일자리 정책, 노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전경하 정책뉴스부장

    [데스크 시각] 일자리 정책, 노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전경하 정책뉴스부장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은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타격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그리고 소상공인이다. 노동임금이 오르면 노동 수요가 준다. 수요공급의 법칙상 그렇다. 자동화를 통해 일하는 사람을 줄일 수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아파트 경비원들이 집단해고를 당했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근로시간 단축은 저녁 있는 삶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근로자가 더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추가 근로에 대한 임금을 더 주는 형태로 근로자를 고용했던 중소 제조업체는 더욱 힘들어질 거다.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다는 소식에 일부 공공기관은 비정규직을 아예 자르고 있다. 비정규직을 많이 고용하는 대기업에 부담금 등을 부과하는 문제는 일부 대기업의 경우 공장을 해외로 옮길 유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국내 일자리가 되레 줄어들 수 있다. 일자리위원회는 이달 초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경영자총협회에 온 것 같다며 실망스럽다고 했다. 기업과 근로자가 함수가 되는 방정식에서 기업의 입장은 크기와 상관없이 동일하다. 주제의 대상을 기업이 아닌 사람에 맞춰 보자. 긴 근로시간을 버텼던 것은 우리의 직장 환경이 그랬기 때문이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에 정시 퇴근 캠페인을 벌여야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의 문화가 있다. 상사가 언제 찾을지 모르니 상사가 있는 시간에는 직장이 편하다. 정해진 일만 하면 되는 직장이, 때론 끊임없는 걱정거리가 고개를 내미는 집보다 편할 수 있는데 야간이나 주말 등 초과근무에는 통상임금에 50%까지 더해 주니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직장에 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통상임금 할증료를 초과근무 시간대나 업무별로 다르게 줄 수도 있지만 우리의 법은 그렇지 못하다. 개별 협약이 아닌 단체협약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낮기도 하지만 생활비도 비싸다. 서울의 생활비는 세계 6위다.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도 일자리나 자녀 교육을 생각하면 선뜻 결정이 서지 않는다. 의료시설 등 편의시설을 더하면 더욱 그렇다. 농촌에서는 싸게 팔았다고 아우성인데 왜 내 손에 들어온 물건값은 비싼지 모를 일이다. 중간 유통 마진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이걸 줄이기 위해 정부가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는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 최저임금도 주기 힘든 소상공인은 임대료가 목줄이다. 월 수십만, 수백만원의 임대료를 내려면 매출은 반드시 여러 배 이상이어야 한다. 매출과 상관없이 임금은 물론 임대료는 줘야 한다. ‘하느님 위에 건물주’인 세상은 분명 부동산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거다. 이를 해결할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비정규직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 때로는 개인의 필요에 따라 비정규직이 좋을 수도 있다. 한 기업에서 비정규직을 일괄적으로 정규직화할 때 떠난 사람들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정규직이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기업이 양보할 부분은 있지만 정규직 채용이 부담스러운 부분을 해결해야 채용이 늘어난다. 새 정부가 그리는 일자리 정책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정책이다. 모순이 누적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는 정책 효과의 연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드러나지 않는 모순들도 같이 해결해야 근로자가 느끼는 체감도도 올라간다. lark3@seoul.co.kr
  • [공공기관 경영평가 발표] “평가기준 막판 뒤집기는 신의성실 위반” 대혼란

    정부 ‘성과연봉제’ 항목 막판 제외 지난해 실적치 평가 소급 적용한 셈 정부는 16일 오후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개최하기 앞서 크게 2개의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나는 ‘성과연봉제의 사실상 백지화 확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2016년 기관별 경영실적에 대한 등급평가 결과’였다. 여기에서 모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성과연봉제 항목이 전체 100점 만점에 4점이 배점된 2016년 성적표를 내놓으면서 동시에 성과연봉제를 없앤다는 발표를 하게 된 탓이었다. 정부는 스스로 이런 불합리를 그대로 노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성과연봉제 항목을 막판에 제외시켰다. 성과연봉제 폐지를 지난해 실적치 평가에 소급적용한 셈이 됐다. 당초 대학교수 및 학술기관 연구원, 노무 및 회계사 등으로 구성된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은 이번 평가에 성과연봉제 도입 및 이행상황을 반영해 기재부에 넘겼다. 파업과 소송전 등 노조와의 극단적인 갈등까지 불사하면서 성과연봉제를 추진했던 공공기관 경영진의 입장에선 불만이 나올 법한 상황이 된 것이다. 경영평가를 앞두고 기준이 수정된 적은 이전에도 있었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해양과 안전에 관련된 공공기관들의 등급이 일제히 하락했다. 2015년에는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맞춰 자원외교 관련 공공기관들이 죽을 쒔다. 그러나 정권교체에 따라 상황이 180도 뒤바뀐 이번과는 다른 경우였다. 박순애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장은 “성과연봉제가 경영평가에 포함될지에 대한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배점을 반영한 것과 반영하지 않은 것의 두 가지 안을 다 만들었다”며 “결론적으로는 성과연봉제를 포함했을 때나 뺐을 때나 기관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결과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성과연봉제 부분이 빠지면서 ‘손해’를 보게 된 공공기관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당초 기대보다 낮은 등급을 받은 공공기관의 임원은 이날 “너무 혼란스럽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채산성만큼이나 공공성과 보편적 서비스가 중요한 공공기관의 특성을 무시한 채 전부에 무리하게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고 했던 박근혜 정부에 큰 책임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부 시책에 맞춰 적극적으로 정책을 시행한 기관에 대한 평가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확 뒤집히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은 물론이고 ‘신의 성실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공기관 관계자는 “시험을 치른 뒤 정답이 바뀌고 채점 기준이 바뀐 셈”이라고 비판했다. 공공기관 내부의 갈등도 예상된다.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간부급 직원들은 성과연봉제 도입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았지만, 전체의 80%에 해당하는 일반 직원들은 노조 지침에 따라 반납한 상태”라면서 “앞으로 인센티브 반납을 둘러싸고 벌어질 내부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길섶에서] 심심(心心)/황수정 논설위원

    내 방의 괴상한 풍경화. 저 귀퉁이에 가습기, 이 귀퉁이에는 제습기. 꽁꽁 싸맨 한겨울의 강파른 공기를 눅여 주던 것, 저만치 장마가 닥쳐오는 이즈음 요긴해지는 것이다. 태생적 사명이 엄연히 다른 사물들이 한 공간에서 머리 맞댈 까닭이야 애초에 없다. 글로 치자면 형용모순, 말로 치자면 이율배반. 작은 방안의 모순과 배반은 순전히 내 게으름 탓이다. 어차피 찬바람 날 텐데, 돌아서면 또 장마철일 텐데. 제때제때 치우지는 않고서 철철이 핑계 꾸러미다. 그렇게 붙박이 가구가 되고만 물건들은 본의 아니게 용도 변경돼 있다. 제습기는 아예 책 선반으로 둔갑한 지 몇 달째. 이런저런 욕심에 내 손으로 끌어들인 사물들이 오늘은 문득 각다귀마냥 성가시고 번잡스럽다. 옛 현인들은 겨우 좌탁 하나 놓은 방에서 마음을 굶겨 바다만 한 마음을 얻었다지. 그 요령의 발치에도 못 따라가면서 나는 자꾸 내 공간을 좀먹는 시속의 이기(利器)들만 탓하고 앉았다. 욕심이 걷혀 여백인 방 안에서는 마음도 비워질는지. 심심해진 방에 심심함이 넘치게 고여, 머리가 잠기도록 한 번 심심해 봤으면 좋겠네.
  • 文대통령 “서울 중심 사고는 모순”… 지방 균형발전 ‘협치’ 의지

    文대통령 “서울 중심 사고는 모순”… 지방 균형발전 ‘협치’ 의지

    저서 ‘운명’서 철학·소신 강조 참여정부 때 행정적 실천 계승 “연방제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제를 만들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지방분권’에 초점을 맞춘 개헌 추진 의지를 공식화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대선 공약에서 ▲중앙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 지방 자치역량을 강화하는 지방분권 실현 ▲지방 재정자립이 실현될수 있도록 강력한 재정분권 추진 ▲주민참여 확대로 자치분권과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 등 지방분권 공약에 무게를 뒀었다.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실향민의 아들이자 부산에서 자라고 변호사로 활동한 문 대통령에게 지방분권 강화는 경험적으로 체화된 철학이며 오래된 소신”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문 대통령의 저서 ‘운명’에는 “서울중심 사고가 빚어낸 모순이 아닐 수 없다”, “6월항쟁의 중심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등 오래된 단편들이 엿보인다. 물론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고민과 행정적 실천이 문 대통령이 국정의 축을 이뤘던 참여정부 때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점 또한 무관치 않다.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17개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내년 개헌 때 헌법에 제2국무회의를 신설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제2국무회의’ 신설은 구체적인 추진 방식을 놓고 개헌 또는 정부조직법 개편, 별도의 특별법 제정 등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문 대통령이 개헌 때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쪽으로 교통정리를 한 셈이다. 제2국무회의 신설을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제2국무회의’라는 이름이 붙으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정부와 여권에서는 ‘제2국무회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인사청문회에서 “제2국무회의라는 이름을 사용할 경우 헌법 개정이 필요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내년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지난 대선 때 지방선거에서 개헌 찬반 투표를 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야권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던 게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 헌법개정특위에 지방분권형 개헌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 자치입법권과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복지권의 4대 지방자치권 보장, 시·도지사가 참여하는 제2국무회의 신설,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개칭하는 등의 내용이 골자를 이루고 있다. 개헌 이전 지방과의 ‘협치’를 강화하기 위한 테이블을 가동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점도 눈에 띈다. 지방선거까지 1년 가까이 남은 만큼 당분간 회동이 수시로 열릴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를 제2국무회의의 예비모임 성격이라고 규정하고 “수시로 모시고 싶고 사실상 정례화하는 방안에 대해 협의하겠다. 사실상 법제화하겠다”고 말했다. 안희정(민주당) 충남지사, 남경필 경기·원희룡 제주(바른정당)지사, 김관용(자유한국당) 경북지사 등 잠재적 대권 주자들에게는 중앙정치에 목소리를 낼 무대를 마련해 주는 효과도 예상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서울광장] 경제민주주의, 상인적 감각으로 추진하라/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경제민주주의, 상인적 감각으로 추진하라/오일만 논설위원

    6·10 민주화 항쟁과 촛불시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중산층’이다. 30년 시차를 두고 두 사건은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 진전에 한 획을 그었지만 그 이면에는 중산층의 확산과 몰락이란 비밀이 숨어 있다. 6·10 항쟁의 주역들은 1970~80년대 고도성장기에 육성된 중산층들이었다. 고도성장기의 완전 고용과 실질 임금의 상승 등으로 경제적 토대를 이룩한 중산층들은 더이상 군사독재의 정치 억압에 순응하지 않았다. 당시 광화문 네거리에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시민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이런 이유다.촛불시위 역시 마찬가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말해 주듯 현직 대통령의 헌법 파괴와 권력 사유화,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동력이 됐지만 기저에는 중산층 몰락과 악화 일로의 빈부격차가 자리잡고 있다. 최순실을 비롯해 정운호, 홍만표, 진경준 등 우리 사회 상층의 부도덕한 부의 축적 과정을 보면서 중산층에서 몰락한 흙수저들은 절망했다. 50대 가장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20대 자녀는 취업 기회도 박탈당한 현실에서 국민 대다수가 현실의 경제적 모순을 일회적이 아닌 항구적 상황으로 인식한 것이다.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는 87년 체제 이후 30년간 누적된, 재난적 양극화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경제민주주의를 들고나온 것은 이런 시대적 흐름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고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다. 일자리 문제를 경제민주주의의 핵심으로 꼽은 것도 비슷하다. ‘항산이 있는 곳에 항심이 있는 것’처럼 경제적 차원의 불평등 해소 없이 민주주의는 ‘모래 위에 세워진 성’이나 다름없다. 우리 헌법 119조 역시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경제의 민주화 등을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경제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가 따르지 않는 경제민주주의는 허구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 편중의 경제구조가 힘을 받았던 것은 성장담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경제성장을 국가 정책의 중심에 뒀다. 747(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G7 진입)이나 474(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 정책은 대기업 의존도를 더욱 고착화시켰다. 대기업을 떠받치는 중소기업 하청구조와 분배구조는 기형적으로 변했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 소득을 늘리고 이를 다시 경제 활성화로 연결하는 소득 주도 성장론에 기대를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민주주의의 핵심인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창출은 재계와 정규직 노조, 정부의 양보와 타협이 전제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제기한 사회대통합론도 같은 이치다. 지역과 세대, 이념을 뛰어넘는 국민적 통합과 사회적 대타협이 전제되지 않고는 실질적 개혁과 진전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의욕이 앞서 좌절한 노무현 정부의 경제민주화나 친재벌 정책에 편중된 이명박·박근혜 정부 모두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 우려도 있다. 경제민주주의가 재벌을 적으로 돌려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려서는 안 된다. 일자리 창출 자체가 일방의 의지로 불가능하다. 경제주체들의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가 필수적이다. 대기업들의 참여 동력을 높이기 위해 출구를 열어 주는 대신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로 유도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 과거 일괄타결 방식으로 기업과 노동의 갈등을 풀어 가는 노사정위원회 방식도 이제 통하지 않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고차원 방정식이나 다름없다. 큰 틀의 사회적 대타협 기구와 노사 현안에 집중하는 노사정위의 투 트랙 방식도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경제민주주의의 앞날은 험난하다. 기득권층의 반발은 거세다. 벌써 반시장적으로 낙인찍고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과도한 이상주의는 금물이다. 선비적 문제 의식을 갖되 상인적 감각으로 풀어야 한다. 실용주의적 접근만이 성공의 관건이다.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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