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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이 미국이다” 차일디쉬 감비노 신곡 뮤비가 주목받는 까닭

    “이것이 미국이다” 차일디쉬 감비노 신곡 뮤비가 주목받는 까닭

    미국 출신 가수 차일디쉬 감비노(도날드 글로버)의 ‘이것이 미국이다’(This is America) 뮤직비디오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인종차별부터 총기폭력까지 미국 사회를 둘러싼 모순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미국 현지 언론들도 이 곡의 뮤직비디오가 가진 의미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뮤직비디오는 의자에 앉아 기타 연주를 하는 남성 뒤로 차일디쉬 감비노가 춤을 추며 다가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흥겹던 노래는 차일디쉬 감비노가 그의 뒤통수에 방아쇠를 당기면서 반전된다. 그러면서 차일디쉬 감비노는 외친다. “이것이 미국이다”라고. 미국에서 흔히 일어나는 총기 사고를 비판하는 부분이다. 차일디쉬 감비노가 총을 쏘며 취하는 묘한 자세도 주목할 만하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허리를 꺾는 이 자세는 인종 분리의 아이콘인 ‘짐 크로’와 닮았다는 평가다. 현재까지도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 차별에 대해 풍자의 메시지를 넣은 셈이다.흥겹게 춤추며 노래하는 교회 성가대원들을 소총으로 난사하는 장면은 2015년 6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흑인 교회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을 연상케 한다. 그러면서 차일디쉬 감비노는 다시 외친다. “이게 미국이다. 정신 바짝 차려.”차일디쉬 감비노는 아이들과 흥겨운 춤을 춘다. 배경으로 펼쳐지는 혼돈에 가까운 상황들은 그저 뒤로하고. 누군가 투신하기도 하는데 춤에 가려 눈에 바로 띄지 않는다. 미디어가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그려내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뮤직비디오가 끝날 무렵 등장하는 흑인 여성은 ‘자유의 여신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모든 상황들을 그저 방관만 하는 미국의 현실을 꼬집었다는 평가다. 뮤직비디오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차일디쉬 감비노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지난 5일(현지시간)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7200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시스템에 복종 ‘합리화’의 민낯…자기모순에 빠진 보통 사람들

    시스템에 복종 ‘합리화’의 민낯…자기모순에 빠진 보통 사람들

    먹고살기 위해, 조직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람들은 때때로 의지와 상관없는 선택을 한다. 예컨대 조직의 부패를 눈 감거나 옹호하는 극단적인 타협일 수도 있다. 불합리한 상황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개인은 그래서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데 능숙해진다.소설가 편혜영(46)이 전작 ‘홀’ 이후 2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현대문학)은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편혜영은 8일 “겉으로 봤을 땐 윤리적이지만 이익 집단과 다를 바 없는 병원의 민낯을 드러내고, 그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인물을 그리기 위해 의료진이 아닌 행정직 직원들을 등장인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서울의 대형 종합병원 구매과 직원이었던 주인공 무주는 리베이트를 챙기다 소도시의 병원으로 쫓겨난다. 그는 새로 옮겨 간 병원에서 동료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이석의 비리를 알게 된다. 무주는 이석이 3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 때문에 비리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된다. 무주는 평소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이석을 고발해야 할지 고뇌한다. 스스로 “순도 높은 정의감과 도덕심”을 가졌다고 여기는 무주는 곧 태어날 아이 앞에서만은 떳떳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의 비리를 고발한다. “무주는 자신의 행동을 시스템에 복종한 것이라고 합리화하면서 스스로 계속 모순에 빠지는 인물이죠. 어떤 사람을 ‘선하다 악하다’라고 명확하게 나누기는 힘들잖아요. 무주처럼 스스로 갈팡질팡하면서도 변명에 능한 복합적인 인물을 그리고 싶었어요.” 한 집단의 관행이라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따라야 한다는 등장인물들의 현실 순응적인 태도는 책 제목에도 함축돼 있다. “성경 마태복음에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구절이 있어요. 무주도 그렇고 이석도 그렇고 다들 자기가 원하는 건 아니지만 계속해서 변명하면서 조직의 이익에 끌려가죠. 자기 모순에 빠져 자신을 잃어 가는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본다면 ‘죽은 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도 확신에 차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을 권하는 인물들 역시 성경의 이 구절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고요.” 무단결근한 무주가 동네의 한 도로를 따라 자신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장면으로 작품은 끝맺음된다. 회사 혹은 가족으로부터 희망을 찾았는지 여운을 남기지 않은 작품의 결말은 “기존 시스템과 사회는 변하지 않고 계속 되풀이될 것”이라는 작가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병원 직원들은 부정을 저지른 경영진이 물러났지만 새 인수자가 빨리 나타나길 희망해요. 새 사람이 병원을 인수해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악순환에 빠질 게 자명한데도 말이죠. 저의 생각과는 달리 무주가 희망의 작은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독자들을 보면서 ‘어쩌면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건 작은 빛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김경수 진술 허점 찾는 경찰… 피의자 전환 어려울 듯

    김경수 진술 허점 찾는 경찰… 피의자 전환 어려울 듯

    드루킹 의혹 부인 사실상 되풀이 경찰, 확보된 조사 자료와 비교‘더불어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 연루 의심을 받는 김경수 민주당 의원이 경찰 조사에서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자 수사팀은 김 의원 진술의 진위 여부 확인에 나섰다. 경찰은 김 의원 진술에 의심할 만한 정황이 발견되면 압수수색 영장을 재신청한다는 방침이다. 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4일 오전 김 의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이 사건의 주범인 ‘드루킹’(49·본명 김동원)과의 관계, 댓글 조작 지시 또는 관여 여부, 드루킹에게 특정인을 인사 추천받아 청와대 측에 전달한 과정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은 뒤 23시간 만인 이튿날 오전 돌려보냈다. 김 의원은 조사에서 “드루킹과 2016년 6월 의원회관에서 처음 만났고, 드루킹이 운영한 인터넷 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을 다른 ‘문팬’(문재인 팬클럽) 모임들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매크로(자동화 프로그램)를 이용한 네이버 댓글 순위 조작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드루킹에게 인터넷 기사 주소(URL) 10건을 보낸 것과 관련해서는 “드루킹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함께 보냈고,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고 진술했다. 인사 추천 경위에 대해서도 “드루킹이 오사카총영사 직을 요청한 것은 대선 이후인 지난해 6월”이라면서 “(도모 변호사의) 이력과 경력 등으로 보아 적합하다고 판단해 인사수석실에 추천했다”고 말했다. 또 자신의 보좌관이었던 한모씨가 드루킹 측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은 것과 관련해서는 “드루킹으로부터 협박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지난 3월 16일 한씨로부터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즉시 반환하라’고 지시했다”면서 금품 수수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답했다.김 의원이 앞서 두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기존 입장을 사실상 되풀이하자 경찰은 관련 피의자·참고인 조사, 확보된 자료 등과 비교하면서 김 의원 진술에 대한 허점 찾기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김 의원의 진술에 모순이 발견되면 통신내역·계좌추적 압수수색 영장을 재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경찰이 신청한 영장에 대해서는 검찰이 혐의 소명 부족 등의 이유로 기각했다. 다만 경찰은 김 의원의 피의자 전환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논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경찰 내부에서는 6·13 지방선거 경남지사 후보로 출마한 김 의원에 대한 혐의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선거 전에 피의자로 전환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건봉사, ‘642칸 당우’와 영화·쇠락 함께… 만해, 소실된 ‘正史’ 재발간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건봉사, ‘642칸 당우’와 영화·쇠락 함께… 만해, 소실된 ‘正史’ 재발간

    고성 건봉사는 민통선을 지나지 않고 남쪽에서 접근하면 편안하다. 지난해 완전 개통된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동해 바다에 닿을 때쯤 삼척에서 속초를 잇는 동해고속도로로 갈아탄다. 그렇게 북쪽으로 달리다 고속도로 끝에서 동해안을 따라가는 7번 국도에 진입해 조금만 올라가면 고성 땅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운전하면서 딴생각을 하다 간성읍에서 진부령으로 가는 46번 국도로 접어들어야 하는 것을 잊고 화진포해수욕장까지 내쳐 달렸다. 차를 돌려 조금 내려오니 반갑게도 건봉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거진읍에서 절에 접근하는 길이다.산길로 접어든다 싶더니 바리케이드 너머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휴대전화 번호까지 알려 주고 나서 통과할 수 있었는데 검문소는 하나가 더 있었고 절차도 반복됐다. 건봉사가 민간인 출입 통제에서 풀린 것은 1988년이다. 일대는 6·25전쟁의 격전지였고, 절 주변에서 특히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군사분계선(DMZ) 주변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건봉사 가는 길’도 그 혜택을 누렸으면 좋겠다.건봉사는 전쟁 이전 대웅전, 극락전, 관음전, 사성전, 보제루, 어실각, 수침실 등 642칸의 당우가 있는 강원 최대 절집이었다고 한다. 1920년대 사진을 보면 신흥사, 백담사,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시절 위세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수침실(水砧室)은 물레방앗간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모두 불탔다. 건봉사는 앞서 1878년(고종 15)에도 산불로 3183칸의 전각이 타 버렸다는 기록도 있다. 사라진 전각은 1879년 개운사·중흥사·봉은사·봉선사·용주사 등이 힘을 합쳐 중건했다고 한다. 지금 건봉사의 전각은 대부분 최근에 다시 지은 것이다. 강당인 봉서루에는 ‘금강산 건봉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에 자리잡기는 했지만 금강산은 아니다. 그럼에도 금강산 유람에 나선 옛 사람들은 간성을 지나 건봉사에 이르면 누구나 금강산 초입에 들어선 것으로 생각했다. ‘홍길동전’을 지은 교산 허균(1569~1618)은 1603년(선조 36) 궁궐의 마구간을 관리하는 사복시정(司僕寺正)이라는 벼슬에서 파직되자 금강산 유람길에 오른다. 이때 건봉사 스님 방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긴 한시를 남겼는데 여기에도 ‘건봉사가 어드메냐 / 금강산 속에 있어 높고도 아스라하다’는 대목이 보인다.건봉사의 정사(正史)는 ‘건봉사와 그 말사의 사적(事蹟)’이라고 할 수 있다. 고종 시대 대화재로 각종 자료가 대거 사라짐에 따라 새로 수집한 역사를 바탕으로 만해 한용운(1879~1944)이 대표 집필해 1928년 발간한 것이다. 편년체로 절의 연혁을 정리하고 부속 암자, 재산, 유물, 진영, 명소 등의 순으로 기술했다. 만해는 당시 건봉사의 승려였다. 건봉사 사적은 절의 역사가 신라 법흥왕 7년(520)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적었다. 아도(阿道)가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는 것이다. 법흥왕 7년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8년 전이고, 아도는 그 훨씬 이전 고구려에 불교를 전했다는 인물이니 절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역사 끌어올리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많은 절들이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고승을 창건주로 내세워 역사를 윤색하는 것이 사실이다. 건봉사의 경우도 지리적 위치를 보면 삼국시대 당시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는 중심 루트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도는 특정시대 특정인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아미타(阿彌陀)신앙, 곧 정토신앙을 전파하는 승려라면 누구나 아도이고 아도화상이다. 역사책에서 아도나 아도화상이라는 이름이 각각 다른 시대에 등장하는 이유다. 신라가 함경도 일부까지 점령하고 황초령비와 마운령비를 세운 것은 진흥왕 시대다. 법흥왕 시대 건봉사 일대는 신라보다 고구려의 영향력이 더 컸을 수도 있다. 신라 중심으로 보면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 법흥왕 시대 건봉사의 창건은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창건을 ‘신라 법흥왕 7년’이 아니라 같은 해인 ‘고구려 안장왕 2년’이라고 보면 논리적 모순은 없다. 건봉사는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가 시작된 절이다. 염불계(念佛契)라고도 하는 염불만일회는 1만일 동안 극락왕생을 위해 아미타 부처의 이름을 마음을 다해 부르는 모임이다. 758년(신라 경덕왕 17) 발징이 절을 중건하면서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신도 1820명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건봉사에서는 19~20세기에도 세 차례 염불만일회가 열렸다. 조선시대 건봉사는 1464년 세조가 행차해 자신의 원당(願堂)으로 삼으면서 척불(斥佛)시대에도 왕실의 보호를 받는 사찰이 되었다. 금강산을 유람하는 문인과 관료들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건봉사에서 하룻밤을 묵어 갔던 것도 감당할 만한 경제력이 절에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는 서산대사의 명을 받은 사명대사가 이끄는 6000명 남짓한 의승군이 건봉사를 훈련의 근거지로 삼기도 했다. 건봉사는 만해의 존재에서 보듯 일제강점기 교육운동과 항일운동에 매우 활발했다. 깊은 산골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절을 찾는 당대 문인·지식인들과 교유하면서 시대 변화에 눈뜰 수 있었고, 더불어 종교의 역할도 깊이 있게 고민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1909년 당시 건봉사의 말사였던 백담사에서 탈고해 1913년 간행한 ‘조선불교유신론’은 물론 만해 개인의 저서지만, 진취적인 건봉사의 분위기가 응축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불교가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진로를 개척해 본연의 자세로 복귀해야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현실 세계에서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다. 무엇보다 염불당을 폐지하고 염불을 개혁해야 한다는 ‘유신론’의 한 대목은 건봉사에 몸담고 있는 승려의 주장으로는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1908년 회향한 염불만일회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그 문제점을 파악한 결과로 보기도 한다. 만해는 “대낮이나 맑은 밤에 모여 앉아 찢어진 북을 치고 굳은 쇳조각을 두들겨 가며 의미 없는 소리도 대답도 없는 이름을 졸음 오는 속에서 부르고 있으니, 이는 과연 무슨 짓일까”라면서 ‘아미타불’을 부르며 극락왕생을 비는 염불만인회를 정조준했다. 그러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중생들의 거짓 염불을 폐지하고 참다운 염불을 닦게 하겠다는 취지”라고 적었다. 이런 설명을 듣고 절을 둘러보면 삼국시대 고찰의 분위기를 느끼기는 쉽지 않아도 최근의 석물(石物)도 무의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절 마당에 들어서 왼쪽에 보이는 ‘만해당 대선사시비’도 그렇다. 그 옆 ‘사명대사기적비’도 지난해 복원한 것인데, 파손된 옛 비석 조각의 일부가 남아 있다. 사명대사가 왜적에게서 되찾아온 양산 통도사의 진신사리 일부를 건봉사에 안치했다는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건봉사의 성속(聖俗)을 가르는 경계는 불이문(不二門)이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결국 삶과 죽음도 다르지 않다는 뜻이라고 한다. 불이문은 6·25 와중에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건축물이다. 편액의 글씨는 근대 명필 해강 김규진(1868~1933)이 썼다. 불이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시냇물을 건너면 대웅전이고, 곧바로 올라가면 적멸보궁이다. 대웅전 가는 길에 놓인 다리가 능파교다. 조선 숙종 시대 지은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로 2002년 보물로 지정됐다. 절 진입로의 홍예다리도 차를 타고 가면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과거의 흔적이다.우리나라에만 있다는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일종의 무덤과 그 무덤에 배례할 수 있도록 지은 전각이다. 사명대사기적비에 언급된 진신사리를 모시고자 조성했을 것이다. 지금 불이문에서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왼쪽의 넓은 터전에는 아직 복구하지 못한 옛 전각의 주춧돌만 가득하다. 이 또한 건봉사의 역사를 보여 준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국가 책임”…50년을 기다린 진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국가 책임”…50년을 기다린 진실

    “주문.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국가배상법 제3조에서 정한 배상기준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 등에 관하여 공식 인정하라. (중략) 피고 대한민국은···.”재판장이 판결 주문을 낭독했습니다. 원고의 소송 청구 취지가 모두 반영된 원고 승소 판결이었습니다. 재판이 끝나자 원고석에 앉아 있던 두 베트남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통역을 통해 승소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오랫동안 굳어있던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턱 아래로 두 손을 모았습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21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시민평화법정’(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공개재판이 열렸습니다. 이 모의재판은 과거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원고는 ‘퐁니·퐁넛 사건’의 피해 생존자 응우옌티탄(58)과 ‘하미 사건’의 피해 생존자 응우옌티탄(61)이었습니다. 동명이인입니다. 한국군 해병 제2여단(일명 ‘청룡부대’) 예하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이 1968년 2월 12일 오전 퐁니·퐁넛 마을로 진입해 저지른 학살(74명 사망)로 응우옌티탄(58)은 어머니, 언니, 남동생, 이모, 사촌 동생을 잃었습니다. 당시 자신도 배에 총을 맞았습니다. 또 청룡부대 예하 5대대 26중대 소속 군인들이 1968년 2월 22일 오전 하미 마을로 진입해 일으킨 학살(135명 사망)로 응우옌티탄(61)은 어머니, 남동생, 작은 어머니, 사촌 동생 2명을 잃었습니다. 자신도 한국군의 수류탄 공격을 받고 왼쪽 귀와 왼쪽 다리, 허리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그 때 입은 상해로 현재까지 왼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재판에 대법관과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재판장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장을 지낸 이석태 변호사, 과거 ‘2000년 일본군 성노예 국제여성전범법정’ 남북한 공동 기소단의 검사 역할을 맡았던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재판관으로 참여했습니다. 재판부는 재판 첫날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시민평화법정은 (중략) 베트남 전쟁 시기에 민간인 학살이 과연 존재했는지, 만약 존재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심리할 것입니다.” 형사법정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민간인들을 학살한 가해자들의 유무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판단하겠다는 뜻입니다. 이어 재판부는 “참전군인을 비난하고 그들의 명예를 실추하는 자리가 결코 아닙니다”라면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과거의 불행을 이제부터라도 정직하게 드러내 직시하고, 거기에서 찾게 될 진실을 공유하면서 따뜻한 위로와 함께 온당한 치유책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참전군인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그들의 참된 명예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피고는 ‘대한민국’입니다. 앞서 재판부는 소송 서류들을 법무부에 송달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법률상 대표자가 법무부 장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무부에서는 첫 변론기일이 열리기까지 아무런 답변도 없었습니다. 결국 정부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변호사들이 정부를 대리하는 ‘역할’을 위해 피고 측 대리인단으로 나서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 진상규명, 공식 사과 등의 책임은 베트남 전쟁(1964년 8월~1975년 4월)이 끝난지 4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피고 측 대리인단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정적인 증거라면서 베트남 전쟁 당시 채명신 주월한국군사령관이 1968년 6월 4일 주월미군사령관에게 보낸 공문을 제시했습니다. 이 공문은 퐁니·퐁넛 사건이 당시 한국군의 적이었던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일명 ‘베트콩’) 세력이 저지른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피고 측 대리인단은 하미 사건도 26중대가 학살 가해자라는 객관적 증거가 없고, 당시 하미 마을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많은 관련성이 있었다며 하미 마을 주민들은 보호 의무가 있는 민간인이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 등을 내놨습니다.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국방부가 1972년 발간한 공식자료인) ‘파월한국군전사’의 1968년 2월 12일자 퐁니·퐁넛 마을에서의 작전 기록에는, 한국군으로 위장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세력이 퐁니 마을 수십명을 집단적으로 살해한 사실이나 이에 대해 당시 퐁넛 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이 사건 1중대가 즉각 대응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서 “특히 (중략) 베트남 주민 수십명이 집단적으로 살해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기록인 파월한국군전사에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퐁니·퐁넛 사건으로 살해된 마을 주민들이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세력이거나 그 동조세력이었다는 피고 대한민국의 주장과, 이 사건으로 살해된 마을 주민들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세력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이라는 주월한국군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결국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세력이 그 동조세력을 죽였다는 심히 모순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면서 “이는 논리칙과 경험칙상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하미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재판부는 “(원고가 증거로 제출한 하미 사건 생존 피해자들의 인터뷰 영상 속) 피해자들은 (중략) 이 사건 26중대 소속 한국군인들이 마을에 찾아와 마을 주민들을 여러 곳에 모아놓은 뒤 총격을 가하여 살해하였다는 점을 상당히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는 바, 진술의 신빙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서 “또한 베트남 정부에서도 (희생자 명단이 적혀 있는) 위령비를 유적지로 인정함으로서 하미 마을에서 피고에 대한 민간인 학살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바, 신빙성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전시에도 전투 행위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은 인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국제인권규범을 위반한 점도 문제가 됐습니다. 지난 21일 있었던 당사자 신문 중 일부입니다. “한국군이 총을 쏠 때, 베트남 사람이나 가족 중에 한국군에 대항해서 총을 갖고 있었다든지 칼을 갖고 반격한 사람이 있었나요?” (양현아 재판관) “저희 가족은 (집에서) 나오는 대로 총을 맞았습니다. 저희가 다 이렇게 쓰러져서 누워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이모가 아직도 아이를 안고 있었고 한 한국군인이 집에 불을 지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모가 말리려고 했는데, 손 들어서 말리려고 했었는데 옆에서 한국군인이 이모 배를 칼로 찔렀어요.” (퐁니 사건의 응우옌티탄) “저항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당했다는 진술로 보입니다.” (양현아 재판관)적과 아군을 구별하기 어렵고, 게릴라전을 펼치는 ‘보이지 않는 적’의 저격 등과 싸워야 했던 베트남 전쟁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피고 측 대리인단의 주장도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퐁니·퐁넛 사건에서는 70여명의 민간인이 살해되었는데 (중략) 수십명의 민간인 살해된 사건을 두고 과연 의도치 않은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라고 볼 수 있는지 자체가 심히 의심스럽다. 나아가 피해자의 거의 대부분이 노인, 여성, 어린이들이었고, 심지어 한 살 미만의 영아까지 살해되었으며 이들은 비무장 상태였다는 점까지 감안해 본다면, 퐁니·퐁넛 사건이 의도치 않은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된다. (중략) 오히려 의도된 집단 학살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미 사건 역시 “1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살해되었는데 (중략) 상당수는 아동과 유아였다. 또 이른 아침 하미 마을 주민들을 여러 곳으로 모아놓은 뒤 학살했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그 다음 날 불도저로 시신을 훼손했다. 의도치 않는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이유들을 종합해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선고했습니다.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국가배상법 제3조에서 정한 배상기준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 등에 관하여 공식 인정하라. 피고 대한민국에게 1964년~1973년 사이에 베트남 지역에서 피고 대한민국 군대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에 대한 살인, 상해, 폭행, 성폭력 등 일체의 불법행위가 일어났는지 여부에 관한 진상조사 실시를 권고한다. 피고 대한민국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포함한 피고 대한민국 군대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홍보하고 있는 모든 공공시설과 공공구역에 대한민국 군대가 원고들에게 불법행위를 하였다는 사실 및 (중략) 진상조사 결과를 함께 전시하고, 향후 대한민국 군대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홍보하는 공공시설과 공공구역을 설치할 경우에도 같은 조치를 취하라.” 선고 내용을 들은 응우옌티탄(58)의 말입니다.“제가 너무 기뻐서 지금 온몸이 떨리고 있습니다. 저는 진짜 머나먼 베트남에서 아주 힘들게 이 법정에 왔습니다. 그런데 아까 판결 내용 들었을 때 너무 기뻤습니다. 이렇게 기쁜 소식 가지고 이제 베트남에 당당하게 갈 수 있고요. 74명의 희생자들과 살아남은 많은 생존자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응우옌티탄(61)은 “이번 법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살아남은 모든 생존자들에게 알리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소감을 전했습니다. 물론 이번 재판은 정식 재판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법정에서의 선고가 구속력을 갖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국가 공권력에 의해 일어난 국가범죄이자, 전쟁 중에도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규범을 위반한 전쟁범죄입니다. 원고 측 대리인단의 임재성 변호사는 “비록 학살을 행한 주체는 한국군이지만, 학살 사건을 50년 동안 은폐시킨 것에 대한 책임은 우리 공동체 모두에게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학살의 진실이 망각되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제가 그 증거입니다”…생존자들의 호소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2029년, 달러의 몰락…미국의 절규

    2029년, 달러의 몰락…미국의 절규

    맨디블 가족/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박아람 옮김/알에이치코리아/592쪽/1만 6500원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G1’에 등극한다면.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나라들이 갑자기 등을 돌린다면.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던 미국이 경제 위기의 늪에 빠진다면. 한 번쯤 생각해 봤지만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가정들이다. 상상의 결말을 엿보고 싶다면 미국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신작 소설 ‘맨디블 가족’을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우선 책의 부제가 소설 속 미국이 마주한 현실을 함축한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든다.’ 2001년 9·11테러,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은 미국은 2024년 인터넷 인프라 마비로 수많은 연쇄 충돌 사고와 비행기 참사, 열차 사고가 잇따른 스톤에이지 사건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 사회가 안정을 되찾을 때쯤 사상 최악의 참사가 찾아온다. 2029년 세계 경제를 장악한 중국이 러시아와 결탁해 금융 쿠데타를 주도한 것. 하룻밤 사이에 전지전능한 달러의 환율이 곤두박질 치고 급기야 기축통화는 달러에서 ‘방코르’로 대체된다. 미국 정부는 각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화폐를 찍어내고 심지어 개인이 방코르를 보유하는 것을 반역 행위로 간주한다. 미국 정부가 세계와의 금융 전쟁을 선포하면서 괴로워지는 건 서민들이다. 금마저 정부에 빼앗긴 서민들이 휴짓조각이 된 돈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맨해튼 출판계에서 큰돈을 주무른 90대 가장 더글러스 맨디블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을 날만 바라보던 맨디블 가족 4대가 이 ‘위기의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 그 삶의 행적을 좇는 게 이 소설의 골자다.작가는 소시오패스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 ‘케빈에 대하여’를 비롯해 미국 의료제도의 모순을 다룬 ‘내 아내에 대하여’ 등 주로 사회적인 주제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미국의 몰락과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상을 특유의 상상력으로 치밀하게 그려냈다. “미국인들은 침체되어 있는 게 아니야. 부정하고 있지. (중략) 그래서 기껏해야 잃어버린 10년을 걱정하지. 모든 것을 상실했다는 개념, 영구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쇠퇴해버렸다는 그런 개념 자체가 이 나라의 정신에는 너무도 생경한 거야”라는 등장인물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는 늘 1등의 자리에서 세계를 내려다보던 미국의 자만에 일침을 놓는다. 맨디블 가족들이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재정적 파탄을 경험하고 허우적대는 과정과 더불어 주목할 부분은 더글러스의 손자이자 어릴 때부터 독학으로 경제학을 익힌 윌링이다. 졸지에 소작인으로 전락한 가족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윌링은 미국에서 분리 독립한 네바다 합중국으로 떠나 살길을 모색한다. 2024년 정부가 사람들의 몸에 신용카드와 같은 칩을 이식하면서 급여가 칩에 예치되면 지방세, 연방세 등 급여의 77%에 달하는 세금이 정부 손에 넘어갔다. 정부에 조종당하는 듯한 께름칙한 기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인 네바다는 과연 유토피아였을지. 윌링은 이곳에서 다시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있을지. 작가의 예리한 통찰이 담긴 결말은 제법 서늘하게 다가온다. 향후 수십년 내에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펼쳐낸 이 ‘예언 소설’에는 눈에 띄는 설정이 많다. 대통령이 미국 태생이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이 폐지되면서 2028년엔 미국 최초로 멕시코 태생의 대통령이 등장한다. 일본은 중국에 흡수된다. 일본이 중국 구축함을 침몰시키면서 싸움을 걸었지만 오히려 타격을 입은 것이다. 통일을 한 한국은 오랜 동맹국이었던 미국에 등을 돌리고 세계 공용 통화 대열에 합류한다. 준비 통화, 인플레이션, 채권 경매, 부채의 화폐화, 금본위제 등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경제 개념에 대한 언급은 가벼운 소설을 읽기 위해 책을 집어든 독자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락한 미국이 마주한 충격적인 현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롭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김동승 서울시의원 “3억 미만 주택도 각종 규제... 도시재정비 개선 절실”

    김동승 서울시의원 “3억 미만 주택도 각종 규제... 도시재정비 개선 절실”

    서울시의회 김동승 의원(중랑3, 바른미래당)은 지난 13일 본회의에서 5분 발언을 통해 최근 부동산정책이 난맥상과 모순된 점애 대해 지적했다. 김 의원은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다”고 언급하며, “시가 3억원 미만의 서민주택에 대해서까지 일괄하여 각종 제반 규제를 가하고 있음은 어렵사리 대출을 받아 소규모 빌라라도 매입하여 내 집 장만 하겠다는 서민들에게까지 찬물을 끼얹고 직격탄을 가함으로써 한숨짓는 볼멘소리가 만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의원은 2030 서울플랜에 입각한 지구단위계획의 엄정한 재검토가 절실하며, 심도 있는 검토와 도시재정비계획의 수립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삼성지회도 노조와해 재고소”… 그룹 수사 불가피

    ‘삼성 노조 와해’ 의혹과 관련,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한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으면서 또 다른 삼성 노조인 삼성지회(옛 에버랜드 노조)도 과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재고소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가 삼성그룹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지회 관계자는 “18일 삼성그룹 관계자들을 서울중앙지검에 재고소할 계획”이라고 16일 밝혔다. 지난 2013년 10월 삼성지회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폭로한 ‘S사 노사 전략’ 문건을 토대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김봉영 당시 삼성에버랜드 대표이사 사장 등을 고소했으나, 검찰은 2015년 1월 임직원 대부분을 무혐의 처분했고 에버랜드 임직원 4명만 약식기소되어 500만~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은 기판력(확정 판결을 새 재판으로 번복할 수 없게 한 효력)을 갖지만 검찰이 의지만 있다면 과거 무혐의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언제든 개시할 수 있다. 삼성지회 관계자는 “문건 작성 주체인 임원진에 대해선 압수수색도, 소환조사도 없이 서면조사만을 진행됐다”면서 “검찰의 수사 의지가 부족했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다”고 재수사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무혐의 결론은 조장희 삼성지회 부지회장의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내린 판결과도 모순된다. 법원은 “징계 등 노조 설립에 관하여 진행된 사실관계가 문건 내용과 일치한다”며 “위 문건은 삼성그룹에 의해 작성된 사실이 추인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삼성지회가 제기한 항고와 재정신청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2월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관련 압수수색을 진행하던 검찰이 삼성전자 인사팀 직원의 외장하드(USB)에서 ‘S사 노사 전략’ 문건을 비롯해 ‘마스터플랜’ 등 구체적인 노조 와해 정황이 담긴 6000여건의 문서를 발견하면서 장기미제로 남아 있던 삼성전자서비스 수사가 본격화됐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성훈)는 삼성전자서비스 본사와 지사들을 압수수색하는 동시에 임직원들을 소환조사하며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SOC 투자 줄이면서 일자리·성장 바라는 건 모순”

    재정 당국이 ‘4대 허상(虛像)’에 사로잡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급격히 줄이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SOC 투자를 줄이면서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 지역균형 발전 및 소득 불균형 개선을 바라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은 1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SOC 투자 확대 방안 모색 토론회’ 주제 발표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인구·물동량 고려 땐 SOC 시설 부족 4대 허상은 첫째, SOC가 충분하다고 맹신하는 것이다. 이 원장은 “도로·철도 연장만 보면 선진국(G20) 가운데 최상위권이지만, 인구나 물동량을 함께 고려하면 하위권으로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평균 통근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많이 걸리고, 혼잡비용과 도로·철도 부하지수도 선진국들보다 월등히 높다”고 반박했다. 두 번째 허상은 소득이 올라가면 SOC 투자를 줄여도 된다는 착각이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 1인당 SOC 투자 금액은 유럽 OECD 평균보다 월등히 낮다”며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도 선진국들은 노후화된 인프라의 재투자 비용 증가로 총 SOC 투자비를 유지하거나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2020년을 전후로 노후 인프라 투자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예비타당성 조사 ‘기계적 판단’ 문제 세 번째 잘못된 판단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SOC 투자의 절대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지난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한 SOC 사업 40건 중 통과한 곳은 절반(20건)에 불과했다.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조사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 허상은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SOC 투자를 확대하지 않는 것이다. 이 원장은 “세계가 4차 산업혁명에 목을 매고 있는데 우리는 과거 정책에 안주하려는 것 같다”며 “스마트 인프라 투자를 늘려야 국가경쟁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자리를 늘리고 5년간 3%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려면 SOC 예산을 지금보다 매년 10조원씩 약 50조원을 확대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청렴, 결의를 다지다

    청렴, 결의를 다지다

    11일 서울 강남구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대강당에서 열린 ‘청렴자율준수 실천 결의대회’에서 김세용(왼쪽 열 번째) SH공사 사장과 임직원들이 청렴 실천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이들은 이날 청렴자율준수 실천 선언문을 발표, 주택관리와 시설물 유지보수 분야의 관행적인 모순을 척결하는 등 청렴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업무를 실행하기로 다짐했다. SH공사 제공
  • 김세용 SH공사 사장, “공정 업무 통해 시민 공간복지 대표기관으로 거듭나겠다”

    김세용 SH공사 사장, “공정 업무 통해 시민 공간복지 대표기관으로 거듭나겠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주택관리·시설물 유지 보수의 효율적인 운영과 투명하고 공정한 업무 수행을 위한 ‘청렴자율준수 실천 결의대회’를 11일 개최했다.이날 오후 3시 SH공사 대강당에서 열린 결의대회엔 김세용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청렴자율준수 실천 선언문을 발표, 주택관리와 시설물 유지보수 분야의 관행적인 모순을 척결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주택관리업자를 선정하는 등 청렴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업무를 실행하기로 다짐했다. 김 사장은 이날 결의대회에서 기존 주택관리업자의 연장 계약 기준, 시설물 유지보수공사 때 공종별 분리발주와 마을기업(사회적기업) 참여 확대 방안 등도 발표했다. 김 사장은 “이번 결의 대회를 계기로 주택관리, 시설관리 분야 업무가 혁신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며 “투명하고 공정한 업무수행을 통해 시민을 위한 공간복지의 대표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경남 남해유배문학관에서 독도를 만나다

    경남 남해유배문학관에서 독도를 만나다

    경남 남해군은 10일 ‘남해에서 만나는 독도’라는 제목으로 독도 관련 사료 전시회가 오는 17일부터 7월 31일까지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번 독도 사료 전시회는 남해유배문학관과 독도박물관이 대한민국 영토 독도에 대한 영유권 교육 강화와 두 기관 사이 협력을 다지기 위해 공동 기획한 것이다.두 기관은 ‘독도’ 글자를 형상화 한 형태로 전시공간을 구성해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입증 자료 등을 역사 흐름에 맞춰 전시한다. 특히 일본 주요 사료도 함께 비교 전시함으로써 대한민국 독도 영유권에 대한 당위성과 일본이 주장하는 영유권 모순을 대비시켜 대한민국 독도 영유권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한국사료, 해좌전도, 조선국전도, 칙령 제41호, 교지를 비롯한 일본사료, 일본해 해전도, 조선국세견전도, 시마네현 고시 등 다양한 사료가 전시된다. 독도 비경을 담은 항공촬영 영상,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독도 주요 지점 풍광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360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영상, 독도 현지 갈매기 울음소리와 파도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영상과 사진 등도 선보인다. 남해군 관계자는 “독도는 우리나라 여러 섬 가운데 하나를 넘어 대한민국 독립과 우리민족 자존심의 상징이다”며 “일본의 영유권 주장 허구성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전시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김태호 전 경남지사, 경남지사 출마 선언…김경수 의원과 6년만에 재대결

    김태호 전 경남지사, 경남지사 출마 선언…김경수 의원과 6년만에 재대결

    자유한국당 경남지사 후보로 추대된 김태호(56) 전 경남지사가 9일 공식 출마선언을 했다.앞서 더불어민주당 경남지사 단일 후보로 추대된 김경수(51) 의원도 지난 2일 국회 정론관에서 출마선언을 해 김 의원과 김 전 지사는 2012년 19대 총선에 이어 6년만에 경남 지사직을 놓고 다시 맞붙는다.김 전 지사는 이날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도지사 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우리 당이 도민에게 너무 큰 상처와 실망을 안겨드렸다”면서 “탄핵이라는 국가적 불행에 대해 한때 집권여당 최고위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허리숙여 사과했다. 그는 “지금 보수가 벼랑 끝에 서 있다. 자업자득이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고 자책하면서 “보수가 망하면 나라도 국민도 불행하다. 아무리 미워도 경남만은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김 전 지사는 “대한민국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인 경남을 지키기 위해 저를 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경제성장 엔진인 경남이 멈춰서고 있다”며 “꺼져가는 경남의 성장엔진을 다시 살리는데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 전 지사는 출마선언문 발표 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홍준표 당 대표에게 선거지원을 요청할 것이냐”는 질문에 “지방선거에 중앙의 논리가 개입되면 지방선거 의미가 왜곡될 수 있어 중앙 당 지원이나 논리는 배제하는 것이 옳다”며 홍대표를 비롯한 중앙당 지원은 되도록 받지 않을 뜻을 내비췄다. 그는 또 최근 경남지사를 지낸 홍 대표가 “경남지사 선거는 홍준표 도정을 평가하는 선거로 치르겠다”고 강조한데 대해서도 “이번 경남지사 선거는 경남지사를 두번 지낸 김태호 도정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평가하는 선거로 생각한다”며 홍 대표와 의견을 달리했다. 김 전 지사는 “보수의 마지막 보루인 경남이 무너지면 당의 존립은 물론 김태호의 미래도 없다는 판단에서 당 지도부 출마요구를 수용하고 예정된 독일 유학 계획을 접었다”고 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당이 어렵고 경남이 어렵다면 그것을 지키는 것을 어떠한 것보다 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김 전 지사는 “입으로는 국민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국민을 생각하지 않은 빛좋은 개살구 같은 저의 정치적 모순을 반성하는 뜻에서 20대 총선에 불출마 했다”며 “지금의 김태호는 옛날보다 훨씬 깊어졌다”고 자평했다. 그는 상대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에 대해 “6년 전에 한번 경쟁했던 분으로 매우 스마트 하고 겸손 하고 좋은 분”이라고 호평했다. 김 전 지사는 그동안 자유한국당 경남지사 예비후로로 뛰었던 김영선·안홍준 전 의원이 전략공천에 반발하고 있는데 대해 “공천결정 과정에 여러가지 아쉬움이 있는게 사실이고 결과적으로 안타깝고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그분들의 땀을 도정에 잘 녹여낼 수 있도록 화합의 길을 찾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최근 지역구인 김해를 찾아 초선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사퇴를 하고 도지사 선거에 나서게 된데 대해 시민들에게 사과 하며 도지사 선거 출마를 알렸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역사 속 행정] 효종의 북벌 대의엔 공감하고도 양반 세금 늘어날라 거부한 송시열…‘사문난적’ 변질시켜 기득권 챙겨

    [역사 속 행정] 효종의 북벌 대의엔 공감하고도 양반 세금 늘어날라 거부한 송시열…‘사문난적’ 변질시켜 기득권 챙겨

    1637년 1월 조선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삼배 구고두례(세 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를 치른 ‘삼전도의 치욕’ 이후 북벌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사람은 아들 효종이었다.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그는 형인 소현세자가 죽자 왕위를 계승했다. 그는 군사제도를 정비하고 무기체계를 점검했으며 군사력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조치에 몰두했다. 수어청(유사시 왕의 피신처인 남한산성 방어)을 강화하고 어영청(수도방위)과 금군(왕의 친위부대)을 확장했다. 영장제(예비군 제도)를 부활하고 노비추쇄(도망친 노비를 잡아 돌려보냄) 사업도 추진했다.그러나 이런 군사력 강화는 신료들의 반발에 부딪혀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신료들도 병자호란으로 큰 피해를 봤기에 북벌의 대의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군비확장 사업을 뒷받침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고 이를 마련하려면 지배층의 세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었기에 북벌정책에 협조하지 않았다. 효종은 신료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송시열을 불러 독대를 통해 북벌 추진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송시열은 “(북벌보다는) 군주의 수신(修身)이 우선”이라고 주장해 왕을 실망시켰다. 송시열은 윤선거 등 충청 지역 사림과 북벌 추진방안을 활발하게 모색했다. 이들은 북벌을 추진하려면 대동법과 균역법 같은 제도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송시열은 지배계층의 기득권을 지키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더 골몰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제기한 것이 바로 윤휴에 대한 ‘사문난적’ 논란이었다. 윤휴는 유교경전을 독자적으로 해석해 주자와 다른 정치론을 체계화했다. 그는 북벌을 실현하려면 국가의 각종 제도를 근본부터 뜯어고치는 ‘대경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윤선거와 마찬가지로 제도개혁을 통해 양반·지주제 모순을 제거해야만 북벌이 가능하다고 봤다. 그런데 송시열은 윤휴 주장의 본질을 잘 알면서도 그가 주자 주석을 비판한 것을 꼬투리 삼아 이단으로 공격했다. 이에 윤선거는 “윤휴의 경전 주석은 작은 일이니 문제 삼을 일이 아니며 (본질인) 그의 제도개혁론을 살펴보라”고 송시열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송시열이 주자학만 내세우며 독선적으로 정국을 운영하는 것을 비판하고 윤휴 등 남인을 인정하고 등용할 것을 촉구했다. 이것은 그가 북벌 추진을 정치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간주하고 이것을 실현하려면 붕당을 넘어선 인재 등용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천명한 것이었다. 윤선거가 죽은 뒤 아들 윤증은 송시열에게 묘갈명을 부탁하면서 박세채가 지은 행장과 함께 윤선거의 주장을 담은 저작물을 보냈다. 하지만 송시열은 이를 통해 윤선거가 죽기 전까지 남인들을 비호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송시열은 윤선거의 생애에 대한 총평에 “후배인 박세채의 말로 대신하겠다”고 밝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길 거부했다. 윤선거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윤증은 아버지와 40년 넘게 교류한 송시열에게 “자기 부친과 어떤 점에서 어떻게 견해가 달랐는지 분명히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송시열은 “윤선거가 (사문난적) 윤휴를 비호했다”면서 윤증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했다. 송시열은 양반과 지주의 기득권을 양보해서라도 국가 위기를 극복하자는 지배층 일각의 움직임을 감정싸움으로 변질시켜 제동을 걸었다. 이는 국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책수립을 정치 본령으로 삼자는 탕평론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었고 양반과 지주의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수구의 몸부림이기도 했다.■한국행정연구원 ‘역사 속 행정이야기’ 요약 김용흠 교수(연세대 국학연구원)
  • 이병재 ‘탓’ 무대, 입 떡 벌어진 출연진들 “이번 시즌 레전드”

    이병재 ‘탓’ 무대, 입 떡 벌어진 출연진들 “이번 시즌 레전드”

    이병재 ‘탓’ 무대를 본 출연진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지난 6일 방송된 Mnet ‘고등래퍼2’에서는 세미파이널 무대가 공개됐다. 이날 이병재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곡 ‘탓’ 무대를 선보였다. 이병재가 ‘탓’ 무대를 선보이기도 전에 관객들은 100표가 넘게 투표를 하며 응원을 보냈다. 무대가 시작되자 치타는 “돌아이야”라고 말했고, 그루비룸 규정은 “관객들이 다 얼었어”라고 말했다. ‘고등래퍼2’에서 이병재와 친분을 쌓은 김하온 또한 “미쳤어”라며 극찬했다. 이병재는 “어디를 봐도 모순들만 넘쳐나지 그래”, “몰라 내가 여러 기회들을 날려버린 탓”, “몰라 내가 한심하고 돈이 없는 탓” 등 가사에 진심을 담아 무대를 선보였다. 무대가 끝나자 관객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산이와 치타는 “이번 시즌 레전드 무대”라고 말했고, Mnet ‘쇼미더머니6’ 우승자 행주 또한 “진짜 잘한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진=Mnet ‘고등래퍼2’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고등래퍼2’ 이병재 ‘탓’ 무대 화제, 진심 담았다

    ‘고등래퍼2’ 이병재 ‘탓’ 무대 화제, 진심 담았다

    ‘고등래퍼2’ 이병재 ‘탓’ 무대가 화제다.지난 6일 방송된 Mnet ‘고등래퍼2’에서는 세미파이널 무대가 공개됐다. 이날 이병재는 ‘탓’ 무대를 선보였다. 이병재는 ‘탓’ 곡에 대해 “서울로 올라와 음악을 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게 싫고 안좋은 생각도 많이 했따. 억울한 일이 많았는데, 누구 탓인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내 탓을 할 때도 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일 때면 스스로를 자책할 때가 많았다, 그게 편해서. 그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나 혼자 늪에 있어”, “어디를 봐도 모순들만 넘쳐나지 그래”, “몰라 내가 여러 기회들을 날려버린 탓”, “몰라 내가 한심하고 돈이 없는 탓” 등 가사에 담긴 이병재의 진심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졌다. 이병재는 ‘탓’을 부르던 중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대 말미에 그는 마이크를 떼고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로 가사를 전달했다. 이병재의 ‘탓’ 무대는 관객 투표 결과 2등을 차지했다. 사진=Mnet ‘고등래퍼2’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김동연 “환율주권은 우리에게… 급격한 쏠림엔 분명한 대처”

    김동연 “환율주권은 우리에게… 급격한 쏠림엔 분명한 대처”

    김현종 “美, 효과 극대화 차원 언급…농축산물 추가 개방 요구 없었다”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환율주권은 분명히 우리에게 있다”며 “시장에서 급격한 쏠림이 있으면 분명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 합의 의혹에 대해 “이미 국제통화기금(IMF)과도 협의했던 내용”이라며 “매년 환율보고서 때문에 미국과 협의해 왔으며 자유무역협정(FTA)과 연계된 내용은 없다”고 강조했다. 김 부총리의 발언은 한·미 FTA 개정 협상에 환율 문제까지 ‘패키지 딜’로 미국과 이면 합의했다는 논란에 대해 강하게 부인한 것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050원대로 하락하는 데다 시장에선 1020원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정부가 미 재무부의 이달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눈치를 보며 시장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자 ‘환율 주권’은 한국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환율의 급격한 변동이 경제에 악영향을 가져오지 않도록 시장에 개입하는, 정부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다. 환율 주권 침해 논란이 있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와 관련해서는 방식과 주기를 놓고 막바지 협상 중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해 우리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미국이 효과 극대화 차원에서 환율 문제를 언급한 것 같은데, 이것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김 본부장은 한·미 FTA 재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다양한 의혹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미국이 우리 측 ‘레드라인’(금지선)인 농축산물의 추가 시장 개방까지 압박하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김 본부장은 “FTA 협상에서도 미국이 농산물 추가 개방을 요청한 적이 없었고,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면서 “농업 문제를 꺼내는 순간 회담장을 박차고 나와 (FTA 협상 자체를) 깨려고 (마음의) 준비까지 했었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한·미 FTA 협상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로 다음날 FTA와 북핵 협상 연계를 시사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김 본부장은 “미국에서 나오는 발언들이 모순이 많다. 정확히 이런 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미국에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최순실 측 “손석희 JTBC 사장 증인으로 불러달라”

    최순실 측 “손석희 JTBC 사장 증인으로 불러달라”

    검찰·특검은 “공소사실과 무관” 손 사장 증인 채택 반대신동빈 롯데 회장은 증인 채택 가능성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최순실씨 변호인이 손석희 JTBC 사장을 항소심 증인으로 불러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국정농단을 세상에 알린 ‘태블릿PC’ 입수 과정을 법정에서 따져보자는 이유에서다. 최씨는 신동빈 롯데 회장도 증인으로 신청했으며, 검찰 측도 이에 동의했다.최씨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 등도 증인으로 신청해 검찰, 특검과 공방을 벌였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문석)는 4일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최씨 측은 태블릿PC 의혹과 관련해 JTBC 손석희 사장과 소속 기자 2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변호인은 “태블릿PC 입수 과정에 대한 불법성 개입 여부를 주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보수 인터넷 매체인 미디어워치의 변희재 대표, 태블릿PC를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태블릿PC 개통에 관여한 김한수 전 청와대 행정관도 증인으로 신청했다. 검찰과 특검은 “해당 증인들은 공소사실과 무관할 뿐 아니라 부당한 의혹을 제기하기 위해 신청한 증인”이라며 “재판부가 이 점을 고려해달라”고 반박했다. 최씨 측은 핵심 쟁점인 삼성의 승마지원을 비롯한 뇌물 혐의와 관련해 박상진 삼성전자 전 사장과 최 전 실장,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이규혁 전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전무이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최씨의 변호인은 “박 전 사장과 최 전 실장은 1심에서 증언 거부로 실질적인 증언을 하지 않았다”며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유무죄를 다투고자 한다”고 밝혔다. 1심에서 증인신문이 이뤄진 김 전 차관에 대해서도 “진술이 모순된다”며 추가 신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특검은 박 전 사장과 최 전 실장에 대해 “원심에서 증언을 거부했고 관련 사건에서 항소심 판단이 이뤄졌다”며 “증인으로 채택되더라도 증언을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오히려 증인신문이 필요하다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이 적합하다”고 덧붙였다.한편 롯데그룹 뇌물 사건과 관련해서는 최씨 측이 “증인신문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신동빈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검찰도 신 전 회장에 대해서는 신문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검찰 측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찰과 특검, 최씨와 안 전 수석 측이 신청한 증인을 채택할지를 논의한 후 조만간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론] 김정은 방중, 그래서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이다/임은정 일본 리쓰메이칸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시론] 김정은 방중, 그래서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이다/임은정 일본 리쓰메이칸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지난 23일 이화여대 교정을 찾았다.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특강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현실주의 이론의 거목답게 그의 강연은 명료했다. 그러나 그의 이번 특강이 필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조금 색다르게 들렸다. 우선 그가 미국의 대북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미국의 대북 정책이 ‘거대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란 결국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 변화 두 가지로 귀착될진대 권위주의적인 북한의 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북한으로 하여금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동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흥미롭게도 그는 북·미 양국 간에 ‘신뢰’가 없다는 것을 회의론의 근거로 삼고 있었다. 사실 ‘신뢰’라는 개념은 그와는 이론 분야에서 대치선상에 있는 미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강조한 개념이다. 미어샤이머는 북한 입장에서 미국을, 그것도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전혀 신뢰할 수 없을뿐더러 트럼프와 김정은 모두 외교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괴짜 리더들이기 때문에 양측이 ‘성공 가능할 만한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보는 그로서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도 그 틀에서 벗어나서 생각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와 같은 현실주의자들에게 미 정치학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은 아직도 유효한 분석의 기제다. 대륙과 해양은 언제고 충돌할 수 있고, 한반도는 늘 그 대립의 한복판에 있다. 우리도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 모두 성공한다면 이는 분명 세계사적인 사건이며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가를 한판승이 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중국’이라는 거대 변수, 아니 거대 상수가 존재한다. 그래서 김정은의 방중 소식은 놀라울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북·중 간의 대화 자체는 ‘긍정적인 신호’일지 모르지만, 중국과 북한이 이 게임에서 머리를 맞대고 미국과 한국을 협상 테이블의 반대편으로 돌리려 한다면 판세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위험성마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이 가까워질수록 이를 가장 불편해할 곳은 바로 베이징이다. 김정은이 이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김정은은 이미 체스판을 주도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이다. 남·북·미 3자 회담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키는 데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국익인가. 평화와 번영이 곧 그것이다. 평화를 통해 한반도의 경제·문화적 번영을 지속시키는 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주어진 역사적 사명인 것이다. 북한에 한국의 기업들이 진출하고, 평양에 미국의 자본이 투자되고, 물건과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고 가야 한다. 그 흐름을 만드는 것은 북한도 미국도 혹은 북·미 양국도 아닌, 바로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3자 회담이어야 한다. 이런 역사적인 기로에서 현재 문재인 정부가 취하고 있는 방향성과 외교적 노력을 적극 응원하고 싶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보수세력이 품격과 도덕성을 내던지고 오로지 정쟁의 희생양인 양 생떼를 쓰고 있는 작금의 행태는 많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러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이 없었더라면 어찌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있었겠으며, 어찌 오늘이 있을 수 있었을까. 보수 정치인들이야말로 남·북·미 3자 회담을 위해 건설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지혜를 보태야 한다. 그리고 향후에 보수 세력이 리더십을 회복하게 되더라도 이 근본적인 틀을 뒤엎으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이라도 이 흐름에 역행하게 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불행이 우리 민족에게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민족의 역사를 주도해 가는 대한민국이 될 것을 확신해마지 않는다.
  • [지금, 이 영화] ‘해피 어게인’

    [지금, 이 영화] ‘해피 어게인’

    “인생의 수많은 기쁨은 고통과 함께 오기도 한단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엄마 지니(킴벌리 크랜달)가 아들 웨스(조시 위긴스)에게 남긴 이런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싶다.이것은 두 개의 명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하나, ‘기쁨과 고통은 별개다. 다만 때때로 동행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고통 없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운 나쁘게 기쁨에 고통이 따라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빨리 고통이 지나가라고 기원하는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 ‘기쁨과 고통은 실상 한 몸이다. 항상 둘은 붙어 다닌다.’ 이에 따르면 고통 없는 기쁨이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기쁨과 고통을 새롭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해피 어게인’은 아무래도 뒤쪽의 명제를 따르는 영화 같다. 웨스가 크로스컨트리에 몰두하는 장면이 그것을 예증한다. 전학 간 학교에서 운동부에 가입해야 했을 때, (선택지가 별로 없기는 했지만) 그는 험한 코스를 통과하는 “가혹한 장거리 경주” 크로스컨트리를 고른다. 그러면서 웨스는 고통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크로스컨트리는 고통과 싸워서 기쁨을 쟁취한다기보다 고통을 끌어안음으로써 기쁨을 성취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고통 없이는 러너스하이(Runner’s High·오래 달릴 때 느끼는 쾌감)도 없다. 문제는 그러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고통을 즐겨라”는 실천하기 어려운 지침이다. 게다가 이 말은 불합리한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할 때 자주 쓰는 ‘갑’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더 세밀하게 고통의 기쁨, 혹은 기쁨의 고통을 따지지 않으면 안 된다. 가령 이를 필연적인 인생의 본질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태어났으므로 죽는다.’ ‘만났으므로 헤어진다.’ 이와 같은 상실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그러나 여기에는 ‘끝났으므로 시작한다’는 생성의 과정도 포함된다. 어떤 대상이 사라졌음을 슬퍼하는 애도는 좋았던 옛날에 머물기 위함이 아니라, 오늘을 좋은 날로 바꿔 가기 위해 수행하는 의식이다. 웨스의 아빠 빌(J. K. 시몬스)은 아내의 죽음 이후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내팽개쳤다. 모든 것을 바쳤던 사랑의 기쁨은 목적을 잃자 이별의 고통으로 변했다. ‘기쁨과 고통은 실상 한 몸’이라는 명제가 실감 나는 순간이다. 그럼 빌이 마음을 다잡으려면 어떡해야 하나. 괴로운 일을 해야만 한다. 지니를 완전히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다. 커트 보엘커 감독은 웨스가 크로스컨트리를 하는 모습과 빌이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는 모습을 교차 편집했다. 고통스러운 가운데 기쁨이, 기뻐하는 가운데 고통이 생겨나는 모순적인 인생의 법칙은 그렇게 거기 담긴다. 엎치락뒤치락하는 행불행이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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