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모론
    2026-07-24
    검색기록 지우기
  • 이소미
    2026-07-2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350
  • 이명박 vs 이회창·박근혜 ‘3각 갈등’… 대선 49일 앞두고 혼란에 빠진 한나라당

    이명박 vs 이회창·박근혜 ‘3각 갈등’… 대선 49일 앞두고 혼란에 빠진 한나라당

    한나라당이 시끄럽다. 대통합신당이 정동영 후보 선출 이후 당내 갈등을 잠재우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과 상반된다. 분열과 갈등의 모습이 노출되고, 서로를 불신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이명박 후보측은 박근혜 전 대표측과의 화합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설로 내홍을 맞고 있다.3인은 측근들을 통해 의중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뿐 직접 언급을 자제한다. 반면 복심(腹心)이나 주변 인사들이 서로를 향해 쏟아내는 말들은 훨씬 격정적이고 공격적이다. 끝내 어느 한쪽이라도 다른 행보를 보인다면 이 후보 대선 가도에는 치명타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내부 악재 이명박 “昌·朴을 믿는다” 이 후보는 이 전 총재의 출마설에 대해 측근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의연하게 대처하라.”며 “이 전 총재는 현명한 판단을 하실 분이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이 전 총재가 직접 출마 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절대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도 내렸다. 대변인은 물론 주요 당직자, 측근 의원들에게도 이 전 총재의 출마설에 대해 직접적인 의견 개진을 자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 전 총재의 출마설에 대한 당내 논의 자체가 오히려 논란을 더 확대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전 총재의 출마설이 나오는 것도 박 전 대표측이 적극적으로 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관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 후보측의 시각이다. 이방호 사무총장은 30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전 대표가)정권교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큰 틀에서 협력할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감 섞인 전망을 했다. 하지만 이 후보측에서는 강·온 두 기류가 감지된다. “그래도 박 전 대표측을 달래서 껴안고 가야 한다.”는 온건론이 겉으로는 다수다. 내부적으로는 “이참에 협조하겠다는 확실한 약속을 받아야 한다.”는 강경론도 적지 않다. 특히 박 전 대표 경선캠프에 몸담았던 일부 인사들이 이 전 총재의 출마를 부추기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강경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전날 “경선이 언제 끝났는데 아직도 경선하는 걸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편 이 총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지역구별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 후보의 지지율이 한 달 전에 비해 적게는 2%에서 12%까지 높게 나왔다.”며 ‘이명박 대세론’을 주장했다. 이어 “박 전 대표 지역구에서도 이 후보의 지지율이 5%포인트가량 올랐다.”면서 “이 후보에 반대하는 일부 세력이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지훈 한상우기자 kjh@seoul.co.kr ■폭발 직전 박근혜 “李, 말로만 화합”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화가 났다. 측근 의원들은 폭발했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박 전 대표가 서청원 전 대표 지지 산행에 참석한 것을 두고 “아직도 경선하는 걸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비판해서다. “저를 도운 사람이 죄인인가요.”라며 이 후보측의 당 운영방식에 불만을 토로한 바 있는 박 전 대표는 이 최고위원의 발언을 보고받고 “이럴 수가 있느냐.”며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고 한다. 측근들은 “박 전 대표가 거의 폭발 직전”이라고 전했다.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은 “왜 대응하지 않느냐.”며 항의전화를 곳곳에 걸고 있다고 한다. 급기야 박 전 대표 최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30일 이 최고위원을 정조준해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A4 용지 2장 분량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 최고위원 같은 분열주의자, 반민주적 독선가야말로 당 화합의 최대 걸림돌이며 정권교체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사람”이라면서 “이명박 후보가 직접 나서 엄중한 가시적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사실상 최고위원직 박탈을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어 내홍은 확산될 조짐이다. 유 의원은 “이 최고위원이 박 전 대표를 직접 공격하고, 박 전 대표측을 이회창 전 총재의 무소속 출마를 부추기는 세력으로 음해하고 있다.”면서 “2인자라는 분이 패자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언행을 일삼는 것이 과연 당 화합과 정권교체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지금 이 최고위원의 마음속에는 대선 후 당권을 장악하려는 개인적 야심밖에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당초 전날 이 최고위원의 발언이 나오자 박측 의원 여러 명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항의하려 했다는 후문이다. 집단행동에 나서는 모양새를 연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내부 비판이 나와 유 의원이 개인 성명을 내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다른 박측 의원들도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한 의원은 “이재오가 무슨 말을 해도 놔두고 후보는 진노했다고 하면, 쇼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진정성을 보이려면 이재오에게 최고위원직을 물러나게 하든지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다른 의원도 “말로는 우리를 껴안는다고 하면서도 겉다르고 속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은 박 전 대표의 지지자들까지 등을 돌리게 하는 행위”라면서 “지금 내부적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전했다. 이틀 동안 이 최고위원이 인터뷰와 최고위원회의에서 두 차례, 이날 이방호 사무총장이 한 차례 박 전 대표측에 대한 비난성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 음모론도 나왔다. 박 전 대표측 인사는 “일련의 발언 추이를 보면 이 후보측이 계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BBK 사건에 쏠린 관심을 돌리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한편 대선 승리 뒤 박 전 대표측을 배제하기 위해 미리 두 진영을 갈라놓는 게 아니겠느냐는 지적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기회보는 이회창 “아직은 할말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선 출마 결심을 이미 굳히고 발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결단이 늦어질 것이란 세간의 예상과 달리 이르면 이번 주말쯤 전격적으로 출마를 선언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총재가 이번 주 금요일(11월2일) 또는 주말쯤 출마를 선언할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 등록일(11월25일)이 임박한 만큼 결단을 서두르고 있다는 얘기다.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하려면 2500∼5000명의 추천인 서명을 받아야 하고, 추천인은 5개 이상의 시·도에 500명 이상씩 골고루 분포돼야 한다는 선거법 조항을 감안하면, 시간이 넉넉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빅 이벤트’인 남북총리급회담이 열리는 다음달 14∼16일 어간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늦어도 다음주 초를 넘기진 못할 것이란 관측도 곁들여진다. 그러나 이 전 총재의 측근인 이흥주 특보는 ‘조기 결단설’에 대해 “적어도 이번 주 금요일은 아니다. 그랬다면 이 전 총재가 발표 장소를 섭외하라고 벌써 지시하셨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이 특보는 그러면서도 ‘그렇다면 이번 주는 일단 넘기는 것인가.’란 질문에는 “구체적인 시기는 말할 수 없다.”고 대답을 피했다. 일각에서는 이 전 총재 측근 가운데 결단을 늦추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는 관측도 있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흔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출마를 선언하는 것은 명분이 적은 만큼, 상황을 좀더 지켜보자는 논리다. 당사자인 이 전 총재는 이날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아직은 말씀드릴 게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서빙고동 자택 앞에서 기자들에게 “앞으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해해달라.”고 했다. 이 전 총재는 이날 점심 약속을 위해 잠시 외출한 것을 빼고는 줄곧 자택에 칩거하며 숙고를 거듭했다. 당 원로급 인사를 포함한 5∼6명의 면담 요청도 완곡하게 물리쳤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이 전 총재의 측근이었던 서상목 전 의원은 이날 ‘보수진영 복수후보론’으로 ‘이회창 출마론’에 힘을 보탰다. 몇 주 전 이 전 총재를 만났다는 서 전 의원은 KBS라디오에 출연,“현행 선거법상 선거기간 중 후보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정당은 후보 없이 선거를 치러야 한다.”면서 “비상사태에 대비해 보수진영도 복수후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미래] (1) 비사(秘史)와 그 이후

    다음달 21일이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꼭 10년이다. 지금까지도 외환위기의 원인과 IMF와의 협상과정, 처방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책임 공방에서 국제 음모론까지 무성하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한국호’에 기회로 작용한 건 분명하다. 구조조정은 기업의 투명성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였다.‘부익부 빈익빈’의 심화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가 진행됐지만 우리 경제가 글로벌화하는 계기도 됐다. 과거의 실패에서 미래의 지혜를 얻기 위해 외환위기 관계자들의 증언과 이후의 변화상, 앞으로의 과제 등을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 청와대 주도로 1997년 1월 출범한 금융개혁위원회가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로 가고 있다.”는 내용의 ‘특별보고서’를 작성하고도 사태 악화를 우려해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폐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환위기 특감에 나섰던 당시 감사원 관계자들은 “특감을 통해 정책결정의 잘잘못을 가리는 건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고 강경식 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을 직무유기로 수사의뢰한 것도 단지 그들이 책임질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금융기관 부실을 정리하기 위해 97년 8월 당시 기아자동차 주거래 은행이었던 제일은행과 국민은행의 합병이 검토됐으며 10월 말 외환거래가 3일 중단된 사태는 강경식 부총리의 시장개입 중단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도 보고 됐을 것” 28일 외환위기 당시 옛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 청와대, 감사원, 금융개혁위원회 등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금개위는 97년 7월을 전후해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분석,“한국이 금융위기로 가고 있다.”는 특별보고서를 작성했다. 금개위는 고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이 위원장을 맡았지만 경제수석에게 보고하는 구조였다. 한 관계자는 “이 보고서는 대외비로 분류돼 끝까지 공개되지 않았다.”면서 “가능성이 아니라 위기가 시작됐다는 내용으로 청와대에도 보고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재경원은 97년 1월 한보그룹이 부도 나자 시장안정 차원에서 20조원 규모의 부실정리기금 조성을 논의했으나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추진하지는 못했다. 또한 7월부터 기아차 사태가 불거지자 청와대와 함께 제일은행과 국민은행의 합병을 검토했다. 8월14일 관계자들이 모여 합병안까지 마련했으나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해 추진되지 못했다. 대외신인도 하락을 가중시킨 것으로 지적되는 10월28∼30일 외환시장 마비사태는 강경식 부총리가 시장개입 중단을 지시한 결과라는 증언이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쓰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직후 강 부총리가 직접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 부총리는 법정에서 이를 전면 부인했다. ●감사원의 ‘정책특감´도 한계 한편 재경원 등을 특감했던 감사원 관계자들은 “외환위기 주범을 찾아내라는 여론 때문에 무척 부담스러웠다.”면서 “횡령 등과 달리 의사결정 구조나 시스템의 문제는 지적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위관리들은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 적극 해명했으나 실무진은 단편적으로 위험을 느껴 정책에 손댈 상황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특감 관계자들은 강경식 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은 시스템 문제를 두 사람한테 덮어씌워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고 전했다. 특별취재팀
  • 정동영·이해찬 전면전

    정동영·이해찬 전면전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이 경찰의 정동영 후보 캠프에 대한 압수수색 시도로 7일 또다시 파국 위기에 휩싸였다. 정 후보측은 ‘이해찬 후보측의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후보 찬탈·친노세력의 신당 창당 기도’라고 규정하고, 이 후보측은 ‘민주개혁 진영 붕괴’라고 맞서면서 정면 충돌하고 있다. 양측의 극한 대치는 경선 불복과 또다시 분당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주말 대전·충남·전북과 인천·경기 지역 합동연설회와 YTN 정책토론회 등 경선 일정이 불발됐고,8일 대구지역 합동연설회에 이해찬·손학규 후보가 불참하는 등 이번 주 일정도 불투명하다. 다만 세 후보가 오는 14일 경선에는 참여 의사를 밝혀, 막판 극적인 타협이 이루어질지 주목된다. 이날 정 후보측 노웅래 대변인은 경찰의 압수수색 시도에 대해 “공권력의 명백한 정치탄압이자 정동영 죽이기”라고 규정하고 “경찰의 수사내용을 사전에 이 후보측이 알고 있었던 점 등으로 미루어 경찰측과 사전 교감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후보측의 경선 불복에 이어 친노 진영 전체가 신당 창당까지 염두에 둔 처사”라며 이번 압수수색을 ‘친노세력이 공권력을 동원한 정동영 후보 죽이기’ 사건으로 규정했다. 반면 이 후보측은 ‘적반하장’격이라며 역공을 폈다. 이 후보측 김형주 대변인은 “(정 후보측이)이 후보와 경찰의 내통 운운하고 부산지역에서 매표 의혹을 제기한 것은 전형적인 구태정치”라며 정 후보측이 사과하지 않으면 8일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찰이 압수수색 시도 30여분 전에 정 후보측 최모 의원에게 사전 통보한 것은 오히려 정 후보측이 경찰을 통제한 것이 아니냐.”고 반박했다. 이 후보측은 이날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민주개혁세력 대토론회’와 이날 밤 긴급 회의를 통해 “당과 선관위에서 접수한 선거인단 중복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법적 하자가 있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 후보측 우상호 대변인은 “정 후보 측은 수사상황에 최대한 협조해야 하고, 당 불법 경선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다소 원칙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한편, 대통합민주신당은 전날 경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자제 요청을 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8일 휴대전화 투·개표 개시 선언식을 갖는 등 경선 일정을 정상화하기로 해 손·이 후보측과의 대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구혜영 구동회기자 koohy@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보이지 않는 손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보이지 않는 손

    정치권의 고질병이 또 도졌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 공방이다. 범여권 경선, 특히 민주당 경선에서 이 문제는 불법·동원선거와 함께 논란의 중심에 있다. 민주당 조순형 예비후보가 불을 지폈다. 여론 지지도의 우세를 발판 삼아 ‘조순형 대세론’을 이어갈 것으로 봤던 그는 이인제 예비후보에게 내리 패하자 ‘보이지 않는 손’의 개입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저의 후보 선출을 저지하려는 외부세력이 조직적으로 경선에 개입하고 있음이 여러 증거와 정황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후보 측근들은 외부세력의 실체에 대해 ‘동교동계’라고 입을 모은다. 장막 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란 얘기다. 그러면서 덧붙인다.“조 후보가 남북정상회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DJ의 현실정치 개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동교동이 ‘조순형은 안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조 후보 지지당원들의 선거인단 명부 누락 등도 이런 힘이 작동한 탓이라고 몰아 세운다. 민주당은 안그래도 극히 낮은 투표율로 당선자의 정통성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이 문제까지 겹쳐 안팎곱사등이다. 재미있는 것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음모론을 제기하며 경선을 중도 포기했던 이인제 후보가 이번에는 거꾸로 수혜자가 된 사실이다. 이 후보는 당시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 등 권력층 핵심 실세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노무현 띄우기와 이인제 죽이기 음모가 진행 중이라고 주장했다. 설문 항목 순서를 교묘히 바꿔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실제보다 높게 나타나도록 하는 등 여론 조작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조 후보의 주장 역시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을 뿐 내용의 강도는 그 때에 버금간다. 물론 동교동은 펄쩍 뛴다. 근거를 대라고 난리다. 실제로 경선에 개입했다고 볼 만한 구체적인 물증이나 정황도 아직 드러난 게 없다. 조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철회했거나 변경한 정치인들의 소위 ‘양심 선언’도 있을 것 같지 않다. 아직까진 그럴 것이라는 추론 수준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고,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고 했던가. 대통합민주신당도 민주당보다 강도는 떨어지지만,‘보이지 않는 손’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3명의 후보가 저마다 ‘개성동영’ ‘햇볕정책 계승’ ‘민주적통자’를 내세우는 것도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구애 전략이 아닐까. 범여권 후보군 중 부동의 1위를 달리던 손학규 예비후보가 전격적으로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한 것은 범여권의 경선 흥행을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때문이란 소문은 그럴싸하게 나돈다. 얼마간의 캠프 운영자금이 지원됐을 거라는 풍문도 있다. 정동영 예비후보에게 밀려 2위로 처진 손 후보는 지금 그 결정을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장외 우량주’로 남아 있었다면…하는 아쉬움일 게다. 범여권의 단일후보 옹립이 본격화되면 이 논쟁은 정치권 전체로 비화될 소지가 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물을 놓고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선진화된 정치는 투명성을 근간으로 한다. 결국 이같은 공방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드러낸다. 더구나 특정인과 특정 세력이 자꾸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살갑게 바라볼 국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후보들부터 발상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정치 선진화의 길은 그리도 먼 것일까. jthan@seoul.co.kr
  • 9·11테러 재구성 다큐 방영

    9·11 테러 6주년을 앞두고 케이블·위성TV 채널이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앞다투어 마련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은 11일 오후 10시 9·11 테러 사건을 재구성한 ‘비극, 막이 오르다’(zero hour)를 방송한다.당시 오사마 빈 라덴의 경고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던 백악관과 미 국가정보국(CIA)이 왜 치밀하게 계획된 테러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나를 돌아본다. 히스토리채널도 11일 오후 9시부터 2부작 ‘9·11 음모론의 실체’와 ‘9·11 테러 현장의 영웅’을 내보낸다.‘9·11 음모론의 실체’는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여러 음모설의 실체를 알아보고,‘9·11 테러 현장의 영웅’은 당시 범죄현장 수사대의 활약 등을 담아본다.
  • [씨줄날줄] 아리랑 공연/황성기 논설위원

    북한이 자랑하는 아리랑 공연은 올해로 세 번째다.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시작됐다. 남한에 쏠리는 세계의 이목을 평양에 붙들어 오자는 속셈이 있었겠지만 월드컵 열기에 댈 바가 아니었다. 북한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남한의 월드컵 개최 성과를 깎아내리긴 역부족이었다.2005년 광복 60돌과 노동당 창건 60돌을 맞아 재공연했다. 지난해에는 수해로 건너뛰었다. ‘아리랑’은 카드섹션 2만명, 집단체조와 예술공연 5만명에 공연을 돕는 인원을 합쳐 10만명이 참가하는 공연이다. 지난 15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세계 기네스북 대표가 북한측에 ‘세계 최대 규모의 매스게임’ 인증서를 전달했다.2000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을 받고 아리랑과 비슷한 규모의 집단체조를 관람했다. 현장에서의 “놀랍다.”는 발언이 미국 보수파들로부터 공격받자 귀국 직후 “매우 불편한 자리였다.”고 말을 바꾸긴 했지만 말이다. 십수년 만에 최악이라는 수해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아리랑 공연을 계속 한다고 밝혔다. 공연은 예정대로라면 10월10일 끝난다. 남북 정상회담까지 연기한 마당에 공연을 취소하지 않는 이유나 배경을 놓고 추측이 난무한다.1000만달러를 남기는 외화벌이를 포기할 리가 없다, 피해가 알려진 것보다 적은 것 아니냐, 공연을 할 정도면 정상회담도 가능할 텐데 연기한 것은 역시 대선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음모론적 시각을 배제한다면 북한 체제에서 고도의 정치성을 띠는 아리랑 공연을 2년 연속 수해 때문에 취소하긴 어려울 수 있다. 지금은 핵문제 같은 체제의 진로를 좌우할 중대 현안을 결단할 시기다. 동요를 막고 체제와 주민을 통합하는 국가적 행사를 북 지도부가 미루는 데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2005년의 성황을 재현할지는 의문이다. 복구가 한창인 때 관중 동원이 쉬울 리 없다. 외국인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일본 내 ‘아리랑 관광’의 총판격인 중외여행사는 어제 고작 2명을 북한에 보냈다고 한다. 체제단속, 외화벌이, 대외과시도 좋지만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는 듯하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사설] 남북정상회담 늦춘 만큼 준비 알차게

    남북 정상회담이 북측 요청에 따라 10월2∼4일로 연기됐다. 수해 복구가 급선무라는 이유에서다. 평양 시내까지 물에 잠기는 피해를 본 북한은 지금 복구작업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재해가 심각해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치르기는 무리라는 관측이 이미 있었던 만큼, 연기 요청은 아쉽지만 수용할 일이다. 회담 개최를 20일 전에 전격 발표한 사정을 감안하면 차분히 준비할 시간을 갖게 된 점은 오히려 다행이다. 북측이 어떤 요구를 들고 나올지 연구하고 대응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정부는 회담까지 남은 한달여 동안 의제 설정 등에 국민 의견을 폭넒게 수렴하는 노력을 한층 기울여야 한다. 정치권 일각에서 대선 또는 남북간 이면합의와 연관지어 음모론을 제기하는데 이는 바람직스럽지 않은 현상이다.10월 초순이면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들어가는 시기이긴 하다. 그러나 이 시기의 남북 정상회담이 특정 정당·후보에 유·불리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측이 시기를 가급적 앞당겨 10월 초로 제의하고 우리측이 날짜를 곧바로 지정해 합의한 것을 두고 또 다른 배경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게 퇴행적인 시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북한의 수해복구가 신속히 이뤄지도록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우리도 71억원 상당의 긴급구호품 지원을 결정하고 이번 주부터 북에 보낸다. 정상회담이 아니더라도 인도주의와 동포애 차원에서 북측이 요청한 철근·시멘트 등 복구자재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평양회담을 앞두고 서로 돕는 남북의 모습이 전세계에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힘들겠지만 수해를 슬기롭게 이겨내길 바란다. 정상회담은 한반도 번영과 평화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할 좋은 기회다. 그런만큼 약속은 지켜져야 하며 더 연기되어서는 안 된다.
  • 李, 부산 충렬사로… 朴, 육영수 추모식에…

    李, 부산 충렬사로… 朴, 육영수 추모식에…

    광복절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유세에도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62주년 광복절인 15일 이명박 후보는 부산 충렬사에서, 박근혜 후보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육영수 여사 33주기 추모식에 각각 참석해 나라 사랑에 대한 마음을 다잡는 ‘감성 행보’를 보였다. 전날 대구 유세에서 보인 ‘강 대 강’ 충돌 양상과는 달랐다. 전날 대구 합동연설회를 마치고 울산을 거쳐 부산에서 하룻밤을 묵은 이 후보는 이날 새벽부터 부산 자갈치시장 상인들과 만나며 ‘표심 다지기’에 나섰다. 부산은 이 캠프에서 경합우세로 분류한 지역이다. 부산 충렬사를 참배한 자리에서 이 후보는 “올해 광복절은 의미가 있다. 국가적으로 큰 전환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후 항공편으로 서울에 도착한 이 후보는 청계천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근처 음식점에서 대학생들과 ‘자유 토론회’를 가졌다. 이 후보는 검증공방 속에서도 여론 지지율 1위를 고수한 것과 관련해 “아마 다른 사람 같으면 무너졌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의혹들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으니까 자신있다.”고 강조했다.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에 대한 검찰 발표에 대해 이 후보는 “이상은씨 땅이 아닌 것 같은데 이명박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는 식으로 헷갈리게 발표했다.”면서 “내가 후보 안 되면 (범여권이) 정권을 연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주량이 맥주 1병인 그는 이날 500㏄ 석 잔을 비우며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놨다. 한편 박 후보는 고 육영수 여사 33주기 추도식에서 “올바른 선택을 해 국민께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이 될 것”이라면서 “지하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성원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동생 근영씨, 지만씨 부부도 참석했다. 박 후보는 “어머니를 잃고 피묻은 옷에 눈물을 적시며 잠 못 이룬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어머니 돌아가실 때보다 나이를 더 먹었다.”면서 “어머니의 국민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고 느낀 경험이 지금 저의 나침반이 되고 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소외되고 고통받는 국민들을 뵐 때마다 어머니라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한다. 살아 계시면 상의라도 드릴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가운데 15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강영훈 전 국무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 여사가 꿈꿔왔던 대한민국을 두 분의 큰 딸이 이어가고 있다.”고 추도했다. 박 후보 캠프 관계자는 “강 전 총리가 사실상 지지선언을 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홍희경 김지훈기자 saloo@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29)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29)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Ⅲ

    1624년 2월10일 이괄이 서울로 입성한 직후, 도원수 장만은 관군을 이끌고 서울을 향해 달렸다. 장만은 초조했다. 반란군에게 도성을 내주고 국왕으로 하여금 파천 길에 오르게 만든 일차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장만은 파주 혜음령(惠陰嶺)에 이르러 부원수 이수일(李守一)과 남이흥, 정충신 등 장수들을 불러모아 작전 회의를 열었다. 장만은 두 가지 계책을 제시했다. 서울로 달려가 결전을 벌이든가,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남쪽에서 원군이 오기를 기다려 세력을 키운 뒤 공격하자는 안이었다. 그는 사실 지구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관군 승기 잡자 관망하던 민심 돌아서 정충신은 지구전에 반대했다. 그는 즉시 서울로 달려가 안현(鞍峴)을 장악하자고 주장했다. 높은 고개를 차지하여 진을 친다면 도성을 내리누르게 될 것이고, 관망하고 있는 도성 백성들도 관군 편으로 붙을 것이라고 했다. 또 반란군이 공격해와도 지형의 이점 때문에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만은 정충신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관군은 안현을 향해 내달렸다. 정충신이 제일 먼저 연서역(延曙驛, 지금의 은평구 역촌동)을 통과하여 안현에 도착했다. 그는 정상으로 달려 올라가 봉수대를 지키는 병사를 생포했다. 정충신은 평상시의 봉화(烽火)를 올리도록 하여 이괄의 진영에서 안현이 탈취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이윽고 관군의 병력이 속속 안현으로 집결했다. 때마침 동풍이 크게 불어 이괄 진영은 관군이 안현으로 모여드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에야 이괄은 관군이 안현을 접수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는 느긋했다. 이미 승승장구해온 터라 관군을 가볍게 보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이괄은 항왜들을 이끌고 연서역으로 나아가 장만을 생포하려는 계책을 세웠다. 한명련(韓明璉)은 도성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안현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둠으로써 민심을 얻어내자고 건의했다. 이괄의 반란군은 부대를 둘로 나눠 안현을 향해 진격했다. 한명련이 항왜 수십 명과 정예 포수를 이끌고 선봉에 서고, 이괄은 중군이 되어 싸움을 독려했다. 아침 6시쯤부터 격전이 벌어졌다. 도성의 백성들은 성이나 높은 곳에 올라가 두 진영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전황은 밑에서 위쪽으로 공격하는 반란군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화살과 총탄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더욱이 장만 등은 도성을 내준 것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도 분전했다. 오전 11시쯤까지 이어지던 싸움의 중간에 바람의 방향마저 바뀌었다. 반란군 쪽으로 서북풍이 불었다. 관군은 승기를 잡았다. 반란군 진영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많은 수가 안현을 향해 기어오르다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 한명련도 화살에 맞은 뒤 퇴각했다. 전투 장면을 구경하던 도성 백성들은 반란군이 수세에 몰리자 돈의문(敦義門)과 서소문(西小門)을 닫아 버렸다. 관망하던 민심의 향배가 정해진 것이다. 퇴로가 막힌 반란군은 숭례문 쪽으로 향하거나 마포 서강(西江) 방면으로 도주했다. 여염으로 숨어 들어간 자들도 있었다. ●기익헌 등이 반란군 지휘부 9명 죽여 2월11일 밤 아홉시 무렵, 이괄과 한명련은 패잔병을 이끌고 수구문(水口門)을 통해 서울을 탈출했다. 다음날 새벽 삼전포(三田浦)를 경유하여 광주(廣州)까지 달아났다. 이괄은 광주목사 임회(林檜)를 살해하고 경안교(慶安橋)라는 곳에서 병력을 수습하려 했다. 12일 아침, 정충신 등이 병력을 이끌고 추격해 왔다. 안현에서 패한 이후 반란군은 이미 기세가 꺾였다. 얼마 되지 않는 관군의 공격에 변변하게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괄은 고작 60여명 정도의 기병만 거느리고 다시 이천(利川) 쪽으로 달아났다. 이괄을 따라가던 흥안군은 광주 소천(昭川) 쪽으로 도주했다. 관군 또한 지쳐서 추격을 멈추고 있을 때, 이괄의 진영에서 포수 한 사람이 도망쳐 왔다. 그는 반란군 내부에 이괄과 한명련의 목을 베려고 시도하는 자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자중지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튿날 새벽 정충신이 관군을 이끌고 이천 묵방리(墨坊里)에 당도했을 때 상황은 이미 종료되었다. 반란군 가운데 기익헌(奇益獻) 등이 이미 이괄과 한명련 등 지휘부 아홉 명을 살해한 상태였다. 한명련의 아들과 조카만 간신히 달아나고 반란군은 궤멸되었다. 흥안군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여염으로 숨어들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서울로 압송되어 돈화문 앞에서 살해되었다. 한남원수(漢南元帥) 심기원(沈器遠)과 훈련대장 신경진(申景 )이 ‘흥안군이 선조의 아들이고 인조의 숙부지만 참역(僭逆)에 가담했으니 아무나 죽일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죽였던 것이다. 흥안군은 이괄에 의해 추대된 지 불과 4일 만에 몰락하고 말았다. 인조 일행은 안현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천안에서 들었다. 하지만 13일 새벽, 도주하던 적이 달려들 것을 우려하여 공주로 들어갔다.2월15일, 참수된 이괄의 머리가 공주에 도착했다. 인조와 신료들은 군용(軍容)을 벌여놓고 이괄의 수급(首級)을 받는 의식을 거행했다. 반정을 일으켜 어렵사리 잡은 권력을 1년이 채 못 되어 내놓을 뻔하다가 다시 잡는 순간이었다. ●난의 후유증 인조는 2월18일 공주를 출발하여 22일에 서울로 귀환했다. 난민들이 불을 질러 창경궁이 불탔기 때문에 인조는 경덕궁(慶德宮)으로 들어갔다. 도성은 엉망이었다.“모든 재물이 바닥나서 열흘 먹을 저축도 없는 상황”이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민심이 흉흉한 것이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며칠 사이에 궁궐의 주인이 바뀌었다가, 다시 바뀌면서 처참한 살육전이 벌어졌다. 이미 파천하기 직전인 2월7일, 인조 정권은 옥에 갇혀 있던 정치범들을 즉결 처분했다. 광해군때 정승을 지냈던 기자헌(奇自獻)을 비롯하여 역모 가담 혐의를 받았던 37명의 목을 베었다. 이들은 의심은 받았지만, 혐의를 부인하고 있었던 데다 심문도 채 마치지 않은 상태였다. 이원익이 “기자헌은 반역에 가담한 죄상이 없는 데다 폐모론에도 반대했다.”고 애써 변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반정공신들의 여유를 빼앗아 갔다. 격변의 와중에서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백성들도 적지 않았다. 안현 싸움에서 패한 이괄군이 도주하기 전에 80여 명을 학살했고, 관군이 서울을 접수하면서 다시 처참한 학살이 빚어졌다. 좌의정 윤방(尹昉)은 인조에게 ‘적에게 붙었던 백성 가운데 자신이 처단한 사람만 200명’이라고 보고했다. 백성들 가운데는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여 ‘반란군의 머리’라면서 수급을 가져다 바치는 자들이 있었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이괄이 도성을 점령했던 동안 서울의 민심은 인조정권에 몹시 적대적이었다. 백성들은 이괄군을 맞이하고, 창경궁에 불을 지르고, 내탕(內帑)을 훔치고, 반정공신들의 저택을 점거했다. 인조반정 성공 직후 자살한 박승종(朴承宗) 집안의 노비들은, 대가가 서울을 나가자마자 반정공신 김류의 집을 접수했다. 박승종의 며느리는, 역시 공신 가운데 실세였던 이귀의 집에 들이닥쳐 문을 봉해버렸다. 반정 직후 김류가 박승종의 저택을, 이귀가 박승종의 아들 박자흥(朴自興)의 저택을 차지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인조가 환도한 뒤 또 다른 보복이 자행되었다. 서울을 비운 사이에 피해를 당한 관인이나 사대부들은 환도하자마자 의심나는 대상자들을 포도청에 고발했다. 그 때문에 ‘포도청의 감옥이 가득 찼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아예 직접 대상자들의 집으로 쳐들어가 재물을 약탈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괄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인조정권은 여러 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논공행상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이괄로 하여금 거병하게 만든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였다. 후금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와중에 내란을 치르면서 조선의 군사적 역량은 심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인조정권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민심을 수습하고 국방력을 재건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권씨가 자발적으로 가져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경선 후보의 주민등록초본을 부정하게 발급받은 혐의로 검찰에 긴급 구속된 권모씨에게 초본 발급을 부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측의 홍윤식씨가 15일 “주민등록초본 발급은 권씨의 자발적인 행동에 의한 것이지 내가 부탁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홍씨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3개월 전쯤 소개로 만난 권씨가 어느 날 먼저 ‘이 전 시장의 주민등록초본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말해,‘너무 위험한 짓을 하지 말라. 위법이 아니냐.’고 만류했다.”고 설명했다. 홍씨는 “그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권씨가 이 전 시장 부인 김윤옥씨와 큰형 상은씨, 처남 김재정씨의 초본을 가지고 왔다.”면서 “일단 보기는 했지만 별 내용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책상에 둔 채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홍씨는 “1주일쯤 뒤 권씨가 원본을 달라고 해서 다시 줬다. 그게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주민등록초본과 관련된 내용은 박 캠프의 어느 누구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다.”면서 “이게 실체적 진실이며, 말도 안 되는 일로 대표에게 정치적 타격이 가서는 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함정에 걸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구에 의한 함정인지 모르겠지만, 권씨가 먼저 찾아와서 생긴 일련의 이런 일에 대해 뭔가 음모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라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朴후보측 “李측 국민 우롱하나”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경선 후보측과 이 후보 처남 김재정씨가 고소 취소를 두고 상반된 결정을 내린 배경을 놓고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는 해석이 분분했다. 반면 취소 불발에 대한 손익계산은 금방 끝났다.한나라당 검증위원회 활동에 대해 불신을 드러내며 “밝힐 것은 밝히고 가자.”는 입장을 고수해 온 만큼 찰 수사가 일단 이어지는 상황이 나쁠 게 없다는 판단이다. 이 후보측이 김씨와 외형상 ‘엇박자’를 보인 배경에 대해서는 분석이 엇갈렸다. 이혜훈 캠프 대변인은 “고소장을 접수할 때에는 이 후보 캠프 오세경 법률지원단장이 동행할 정도로 연락이 잘되다가 고소를 취소할 때에는 서로 말려도 듣지 않는 모양새를 취소는 배경이 궁금하다.”고 꼬집었다.이어 “수사가 두려워 고소를 취소하는 모양새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 딱하지만, 시시각각 바뀌는 입장 발표가 국민을 우롱하는 행태라는 생각이 든다.”고 힐책했다. 유승민 의원은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가 쇼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한 캠프 관계자는 “이 후보측에서 고소 취소를 위한 선행 조건으로 박 후보측 의원들에 대한 당 윤리위 징계 등을 요구하는 게 아닐지 의심된다. 얻어낼 것 얻어낸 뒤에 고소를 취소하는 것 아니냐.”며 ‘음모론’을 제기했다.다른 캠프 관계자는 “처남이 고소 취소를 안하기로 한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면, 이 후보의 캠프 장악력의 문제가 또다시 노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측 박희태 선대위원장이 고소 취소를 권유키로 했다는 기자회견을 하던 시각, 박 후보 캠프의 최경환 종합상황실장은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했다.최 의원은 “소 취소 여부에 관계없이 진실은 규명돼야 한다.”고 촉구했다.▲이 후보가 95년 도곡동 땅 매각에 개입했는지 ▲매각 대금이 이 후보측으로 흘러가지 않았는지 ▲BBK 사기 사건과 관련해 이 후보가 미 사법당국 조사를 받았는지 ▲이 후보가 큰형과 처남이 대주주인 다스와 무슨 관계에 있는지는 수사와 관계없이 밝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오후 김씨가 고소를 취소하지 않겠다고 해 수사가 예정대로 진행되면서,4가지 사안은 박 후보측이 검찰에 촉구할 수사대상으로 진화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열린세상] 신화 창조를 위한 삽질/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열린세상] 신화 창조를 위한 삽질/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대운하 보고서’를 놓고서 나라가 시끄럽다. 몇 가지가 논란이 되는 듯하다. 첫째는 ‘정부에서 대선 후보의 공약을 검증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고, 둘째는 이 보고서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유출했느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요란한 정쟁 속에서 정작 중요한 셋째 논점은 묻혀 버렸다. 즉 ‘대운하 사업 자체가 과연 타당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첫째 논점에 관해 말하자면, 범주의 혼동이 있는 듯하다. 정부에서 물론 대선후보 공약까지 검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막대한 혈세로 국토 전체를 헤집는 사업이라면, 당연히 관계 부처에서 미리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 대선공약이라고, 세금 먹는 하마에 대해 정부가 입장조차 갖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서울시에서도 했던 검토를 정부에서는 하지 말라니 우습다. 둘째 논점의 경우 검찰과 경찰이 맡아 조용히 처리할 일. 길에서 주운 게 아니라면, 누군가 고의로 유출하거나 빼냈을 터. 거기에는 당연히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게다. 거기에 위법이 있다면, 책임자를 찾아내 법적으로 처벌하면 그만이다. 듣자 하니 이명박 캠프에서는 청와대를 배후로 지목하다가 다시 박근혜 캠프를 의심하는 모양이다. 언론에서 “왜 정부가 대선후보 공약까지 검증하느냐.”고 한가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왜? 그거야말로 언론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언론은 할 일은 안 하고 하루에도 몇 개씩 태어나는 음모론의 실체나 헤집으려 한다. 그런 건 굳이 언론이 나서지 않아도 검찰이나 경찰에서 알아서 해 줄 게다.“보고서 작성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요란을 떠는 것도 실은 허탈한 얘기다. 왜?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그럼 그 물음을 정치적 의도의 진공상태에서 던지고 있는가? 피차 자신의 동기는 순수하고 상대의 의도는 불순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마나한 얘기에 정력 낭비할 것 없이 곧바로 사안으로 들어가자. 결정적 물음은 이것이다.“대운하 사업은 과연 타당성이 있는가?” 몇차례 나온 정부의 보고서는 타당성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토록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정작 별 얘기가 없다. 왜 정부에서 보고서를 만들고, 누가 그것을 유출했느냐만 부각시킬 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명박 캠프와 보수언론에서도 이 물음만큼은 애써 피해가고픈 눈치다. 그래서 대신 내놓은 카드가 기껏 보고서가 ‘조작’된 의혹이 있다는 것. 그런데 그걸 왜 ‘조작’이라 부르고 싶은 걸까? 9쪽짜리와 37쪽짜리 보고서는 수치 몇 개만 사소하게 다를 뿐이다. 그래,37쪽짜리가 ‘조작’이라 하자. 그럼 조작되지 않은 9쪽짜리 원본은 뭐라고 하던가. 거기서는 대운하가 어디 타당성 있다고 하던가? 한마디로 답안지가 30점에서 29점으로 ‘조작’되지만 않았다면, 커트라인 70점짜리 시험에 붙었을 거라고 우기는 격이다. 이 후보가 서울시장 시절에 스스로 했던 조사에서도 사업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토론회에서 이 후보는 말을 바꾸어 물류는 사업의 일부이고, 운하에 유람선도 띄울 거라 말했다. 유람선 띄워서라도 수익성을 높이겠다니, 운하의 신세가 눈물날 정도로 처절해졌다. 수익성을 따진다면, 인공운하에 유람선을 띄우느니 차라리 청계천에 오리 보트 띄우는 게 낫지 않을까? 이명박씨야 어차피 정치인.‘못 먹어도 고’ 할 수밖에 없다. 폭풍우를 만난 배는 방향이 틀렸어도 침몰을 면하려면 계속 전진해야 한다. 대운하 구상이 아무리 허황한 것으로 드러나도, 대운하를 위한 그의 삽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기어이 신화가 창조되고 말 것인가? 하긴, 원래 ‘말도 안 된다.’는 게 신화의 일반적 특성이 아닌가. 그건 21세기에도 마찬가지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 [박찬구 기자의 정국 View] 노대통령 vs 이명박 그리고 정쟁의 사법화

    최근 이명박 캠프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맞짱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전방위적인 검증 국면을 피해나가는 수단으로 얼마나 유효한지를 검토했다고 한다.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여론조사기관을 비롯해 전문가들에게도 자문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후보쪽 인사들이 청와대를 각종 비리 의혹 유포의 진원지로 지목하고, 이 후보도 “음모에 청와대가 결탁한 조짐이 보인다.”며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것이 우연이 아니란 얘기다. 이 후보쪽의 전략적 선택은 결국 청와대 비서실과 이 후보쪽의 고소·맞고소전(戰)으로 비화하고 있다. 청와대의 고소·고발전은 지난 2003∼2004년 야당 정치인과 언론을 상대로 10건 남짓 이어졌다. 이후 뜸했던 청와대의 고소·고발전이 대선을 앞두고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건곤일척의 선거철을 맞아 정치가 또다시 법정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네거티브 전략의 확대 재생산으로 ‘타협을 통한 합의’라는 정치 본연의 기능이 실종되고 있고, 대통령의 선거중립 논란이 선관위와 헌법재판소를 정쟁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 후보 관련 파일이 열린우리당쪽으로 흘러오고 있다. 과거 이 후보를 취재한 경험이 있는 언론인 출신 일부 의원은 나름대로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한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이나 정부 산하기관의 한반도 대운하 보고서 작성의 당위성을 강조한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이 후보쪽의 타깃이 되고 있는 것도 정치권의 이전투구가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는 정치권이 스스로 정치의 과도한 사법화를 부추기는 꼴이다. 대선 정책검증이나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이전, 이라크 파병, 호주제 등 정치·사회적 핵심 의제를 정치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법적으로 시비를 가리려는 것은 한마디로 ‘정치의 실패’라고 규정할 수 있다. 청와대 비서실이 지난 15일 이 후보쪽 박형준·진수희 대변인을 고소하면서 “청와대 내에서는 무책임한 음모론과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다반사인 우리 정치관행에서 청와대가 형사고소까지 하는 게 각박하지 않으냐는 의견도 있었다.(이 후보쪽이)청와대를 끌어들여 검증공방의 소나기를 피해 나가려는 정치적 의도에 말려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고민을 드러낸 대목이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청와대가 전략적 고려를 떠나 구태정치에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기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 후보로서는 비(非)한나라당 진영과 박근혜 후보의 공격을 비켜가면서 검증 국면을 ‘선방’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법하다.”면서 “하지만 청와대가 이번 싸움을 확대하려 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와대와 이 후보의 대립전 추이는 추가적인 네거티브 소재가 얼마나 파괴력을 지닐지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이 후보가 청와대와 상징적인 대척점에 서는 게 당장 검증의 파고를 넘기에는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겠지만, 비노(非盧)진영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는 포지티브 효과를 가져오긴 힘들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김호기(사회학) 연세대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는 상대를 과도하게 비방하는 구태정치에서 비롯된다.”면서 “대선 국면에서 내용있는 정책담론은 고사하고 네거티브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ckpark@seoul.co.kr
  • 범여 vs 李·朴 X파일 충돌

    범여 vs 李·朴 X파일 충돌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가 한나라당의 양대 대선 경선 주자인 이명박·박근혜 후보와 관련한 ‘X-파일’ 보유 가능성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나섰다. 검증 공방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메가톤급 후폭풍을 몰고 올지,‘찻잔속 태풍’에 머물지 추이가 주목된다. ●“李·朴 후보나오면 우리가 이긴다” 장 원내대표는 14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당 지도부·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 모두발언에서 “박근혜 전 대표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며 “그런 중요한 자료들을 우리가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이명박 X-파일’과 ‘박근혜 X-CD’의 존재 가능성을 사실상 시사하는 듯한 발언이다. 이·박 두 후보측은 “범여권이 드디어 지난 2002년 대선 당시와 같은 정치공작의 검은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이 후보측 장광근 대변인은 “원내 대표까지도 야당 후보 죽이기 저격수로 나서는 이 상황에 대해 참으로 측은하다.”면서 “야당 후보를 죽일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모두 터뜨려봐라.”고 말했다. ●열린우리 BBK의혹 국조 요구서 박 후보측 김재원 공동대변인은 “만약 그런 자료가 있다면 아주 오래 전부터 잘 짜여진 설계도에 따라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는 얘기인데 협박만 하지 말고 내놔보라.”고 말했다. 이혜훈 공동대변인은 “자료라고 할 것도 없다고 보기 때문에 긴장할 필요도, 이유도 느끼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와 이 후보측은 ‘검증 배후설’을 놓고 정면 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도 장영달 원내대표 등 소속의원 88명 명의로 ‘BBK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하는 등 공방에 가세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문재인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상황점검회의에서 이 후보가 범여권 검증 공세의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한 데 대해 직접 책임있는 사과를 하지 않으면, 빠르면 15일 문 실장이 이 후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키로 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 후보측의 주장은 이미 금도를 넘어섰다. 근거없는 음모론을 얘기하기 시작하는 순간 이 후보야말로 구시대 공작정치의 포로가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사과를 요구하기 전에 비방부터 중지하라.”며 “대통령이 야당 후보의 구체적인 공약을 비난하고,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음해성 폭로를 계속하고 있다.”고 거듭 ‘청와대 배후설’을 주장했다. 박찬구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경선 불참은 ‘說’에 그쳐야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경선 불참은 ‘說’에 그쳐야

    결국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경선 관련 폭탄 선언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스스로 경선 불참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당 안팎에 던지는 충격파는 상당하다. 기자는 지난달 초 칼럼(‘2등은 없다?’)에서 박 전 대표의 경선 불참설을 다룬 바 있다. 당시 박 전 대표 캠프는 펄쩍 뛰며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극구 부인했었다. 신뢰도가 높은 복수의 캠프 소식통을 통해 알아낸 것이며,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기자에게 엄청난 항의 전화 세례를 퍼부었던 박 캠프였다. 그로부터 한달여만에 박 전 대표와 박 캠프의 주요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경선 불참 의사를 밝히고 있다. 경선 불참 시나리오가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물론 상황 변화는 있었다. 그때는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이 없을 때였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지루한 경선 룰 공방전은 별반 차이가 없다. 시나리오에는 ‘이명박 대체재’로서 기회를 엿보는 방안도 들어 있을 수 있다. 승부가 뻔한 경선에 참여하기보다는 불참함으로써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판단일 것이다. 우선 탈당하지 않고 당에 남아 있는 경우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당 대선후보가 된 뒤 범여권의 대대적인 검증 공세에 치명상을 입거나 지지율이 급락, 당내에서 후보교체론이 나올 경우 그때 나선다는 것이다. 실제 박 캠프는 이 전 시장이 워낙 흠집이 많아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은 탈당 후 독자 출마의 길을 걷는 경우다. 박 전 대표 지지층의 견고함이나 충성도로 볼 때, 그리고 범여권의 후보단일화가 실패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최근 들어 부쩍 거론되는 ‘4자 필승론’, ‘+α론’이다.1987년 상황의 재연이다.4자 구도가 되면 30%대 후반의 득표율에서 승패가 갈릴 것이다.3,4위의 득표율에 따라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독자 출마의 유혹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동반 탈당 규모다. 현역 의원 숫자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현역 의원들이 내년 총선의 불투명성을 안고서 박 전 대표와 ‘동행’할지는 의문부호다. 박 전 대표 역시 ‘한나라당은 내가 살려낸 당’이라며 강한 애착을 갖고 있어 탈당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나와 있다. 경선 불참설은 그야말로 시나리오에 그쳐야지 행동에 옮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박 전 대표측의 억울함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민주주의는 원칙이 중요하다는 점도 맞다. 믿었던 강 대표의 ‘변절(박 전 대표측의 주장)’도 통탄할 노릇이다. 선수가 마음에 안 든다며 규칙을 바꿔달라고 생떼를 쓰는 것도 문제다. 더구나 상대방은 1위를 달리는 강자다. 강자가 약자에게 베풀어야지, 어찌 약자를 더욱 불리하게 만들 수 있는가.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 ‘승자 독식구조’ 아래서 더욱 1위의 아량이 아쉬운 건 사실이다. 지루한 경선 룰 다툼도 결과적으로 승부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공산이 적지 않다. 나중에 ‘왜 그랬을까’ 후회해 봐야 때는 늦는다. 이·박 양측이 당내 세력을 반분하고 있다면 본선에서 상대방의 도움은 더욱 절실할 것이다. 비 오는 날 하나밖에 없는 우산을 혼자만 쓰고 가겠다는 몰염치를 이제부터라도 걷어치워야 한다. 최소한의 동료 의식 없이 어떻게 국가지도자가 되겠다는 건가. 짜증 속에서 또 한 주를 보내야 하는 국민들이 불쌍하다. jthan@seoul.co.kr
  • [프로농구] 코트위 용병차별 논란

    ‘용병은 아픔도 모르는 기계인가요?’ 지난 12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PO)에서 KTF 선수와 심판에게 손찌검을 한 퍼비스 파스코(27·LG)가 결국 퇴출됐다.한국농구연맹(KBL)은 13일 긴급 재정위원회를 열고 벌금 500만원을 부과하며 파스코를 제명했다. 또 자극적인 언행으로 파스코를 자극한 장영재(KTF)에게도 1경기 출장 정지와 50만원의 벌금을 물렸다. 앞서 LG는 파스코를 퇴단 조치했다.LG 관계자는 “파스코가 국내-외국인 선수의 차별보다도 외국인 선수들 중에서도 차별을 받는다는 생각을 해 왔다.”면서 “평소 ‘단테 존스나 피트 마이클 등은 욕설을 해도 그냥 넘어가는 예가 많은데 나는 입만 열어도 테크니컬 반칙을 지적당하기 일쑤’라고 불만을 털어놨다.”고 밝혔다. 또 “KTF와 4강 플레이오프 1,2차전에서 모두 5반칙으로 퇴장당하면서 자신이 심판들의 ‘표적’이 돼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를 야기했다며 징계를 당한 KTF의 장영재(31)는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네티즌이 1년 내내 출전하지 않다가 12일에는 파스코의 폭행을 유도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코트에 나왔다는 음모론과 관련,“지난해 9월 말 연습경기 도중 다친 왼쪽 발목 수술로 시즌 내내 재활에만 집중했다. 안 나온 게 아니라 못 나왔다.”고 강조했다.또 “어제(12일)는 우리 팀 애런 맥기가 출전정지를 당한 데다 백업 센터 남진우마저 발목 골절로 뛸 수 없었기에 내가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테크니컬 파울을 받는 경우는 대부분 용병의 몫이다.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 농구를 무시하고 말 그대로 모두 다혈질이라 그러는 것일까. 폭력은 일벌백계해야 마땅하나 일부 선수가 주 득점원인 용병을 위협적인 반칙으로 막는 데도 묵인되는 경우가 많아 폭력 사태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모범적인 한국형 용병으로 좀처럼 화를 낼 줄 모르는 찰스 민렌드(LG)는 “농구를 해야 하는데 반칙을 위해 나오는 선수들도 있다.”면서 “위협적인 반칙을 심판이 보지 못하면 심판에게 얘기하는데 그냥 뛰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토로했다.또 “우리도 심판도 프로가 분명하지만 코트에서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쌓이면 불신으로 이어지고 언젠가 폭발하게 마련”이라면서 “여러 나라에서 농구를 해봤지만 유독 KBL만 그런 반칙을 내버려 둔다. 코트 안에서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호소했다. 현주엽(LG)은 “긁거나 무리하게 잡아당기는 등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반칙이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면서 “국내 선수끼리는 서로 잘 알고, 언제 어디에서 만날지 몰라 그런 반칙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열린세상] 한·미 FTA,불안극복이 관건/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인하대 겸임교수

    [열린세상] 한·미 FTA,불안극복이 관건/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인하대 겸임교수

    지금 우리 사회는 한·미 FTA 논쟁 중이다. 논쟁의 갈래도 다양하다. 취지는 좋지만 협상은 실패했다는 주장도 있고, 아예 취지부터 잘못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독소조항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뼈 조각 든 쇠고기’ 수입과 같은 자극적 소재도 등장한다. 한국 경제가 미국에 종속될 것이라는 거시적 우려와 함께 이번 대선판을 흔들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노림수라는 음모론까지 제기된다. 한·미 FTA 타결 이후의 갖가지 여론조사는 이러한 혼란스러운 모습을 지켜 보는 국민정서가 잘 드러나 있다. 대략 찬성이 절반을 넘지만 반대와 무응답을 합하면 약 40% 수준으로 국민여론의 흐름이 좀처럼 한 쪽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또 협상 자체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이번 협상이 ‘미국에 더 유리할 것인지, 한국에 더 유리할 것인지’를 질문하면 대체로 미국이 더 이익을 볼 것이라는 응답이 훨씬 높게 나타난다.‘풍요’에 목말라하는 우리 국민들의 기대감과 함께, 혹시라도 FTA 반대편의 지적처럼 정말 손해 보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내용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듯 불확실한 여론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한·미 FTA의 득실을 일반 국민이 계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한·미 FTA가 세계화의 대세 속에서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또 한덕수 국무총리의 말대로 FTA가 우리 경제를 키워 양극화마저 해소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반대로 한·미 FTA를 반대하는 쪽의 말대로 협상과정에 문제가 있거나, 경제적 이익을 거두기 어렵다면 비준동의에 앞서 좀 더 차분히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것도 당연하다. 또 그동안 우리 사회가 축적해온 다양한 가치가 녹아 있는 현행 제도나 법률이 한·미 FTA에 의해 급격히 허물어지며 생기는 혼란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불안은 이러한 끊임없는 논쟁 과정을 통해 해소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결국은 경제주체인 개인이나 각 가구 등이 가진 우리 사회 내부의 문제인 양극화의 고통, 미흡한 복지시스템 및 이에 따른 자신감의 결여 등이 불안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피해 계층에 대한 충실한 대책과 함께 사회안전망과 같은 복지제도의 강화일 수 있다. 피해 어민이 단지 700명이라느니,6%에 불과한 농민 비율을 들먹이며 ‘이 정도면 희생해도 괜찮다.’는 논리는 오히려 국민 전체의 불안을 더 키워줄 뿐이다. 농업에 대한 국제적 경쟁력이 떨어지기로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본이 미국과의 FTA를 주저하는 것도 공동체의 통합을 위해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유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미국과 FTA 협정을 맺은 캐나다와 호주 등이 어느 나라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복지강국이라는 점도 중시해야 한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한 ‘패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작동될 때 국민들은 불안을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에 대한 도전을 감당할 수 있다. 반대로 개인은 물론이고 특정계층을 희생시키며 얻는 ‘풍요’는 사회의 통합성을 깨뜨려 경쟁력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대세 속에서도 결코 소홀히 말아야 할 점은 바로 공동체 전체의 통합을 강화하는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이다.‘대’를 위해 희생되는 ‘소’에 대한 배려 없이 그 사회가 잘될 리 없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인하대 겸임교수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2등은 없다?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2등은 없다?

    1970년 신민당 전당대회는 드라마틱하게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 유행하는 ‘반전(反轉) 드라마’였다.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김대중(DJ) 후보가 김영삼(YS) 후보를 누르고 박정희 대통령에 맞설 대항마가 된다.1차 투표에서 1위를 해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YS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곧바로 DJ의 당선을 위해 힘껏 돕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는 목포에서, 대구에서, 전국을 돌며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 물론 지원유세의 강도에 대해서는 서로의 입장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다르긴 하지만, 여하튼 YS가 DJ를 위해 뛴 것은 사실이다. 1997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2등을 한 이인제 후보는 독자 출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당을 떠난다. 아들의 병역 비리로 지지율이 급전직하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가 1차적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지만, 이인제 후보의 조급한 대권 욕심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새천년민주당으로 말을 갈아타고 2002년에 다시 한번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광주 돌풍으로 일약 스타가 된 노무현 후보에 이어 2위로 처지자 DJ측의 ‘음모론’을 제기하며 경선 도중 사퇴해 버린다.‘이인제 학습효과’라는 용어를 낳을 정도로 그는 부정적 이미지의 대명사가 됐다. 두 사례는 대권후보 경선에서 2등을 한 정치인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웅변적으로 설명해 준다. 처신 여하에 따라 절치부심 끝에 대권을 거머쥘 수도 있고, 영영 그 길로부터 멀어지기도 한다.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끝까지 완주하고 노 후보에 이어 2등을 차지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이후 노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도 발 벗고 나서 결국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것도 2등으로서 처신을 잘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한나라당 경선에서 제왕적 지위의 이회창 후보에 맞선 최병렬 전 대표도 2등으로서의 위치 설정을 잘해 한나라당 대표직에까지 오르지 않았던가. 지금 여의도 정가, 특히 한나라당 주변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경선 불참설이다. 논거는 이렇다. 박 전 대표는 선거에서 늘 승리하는 경험만 했기 때문에 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데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 차라리 나중의 ‘정치적 도모(圖謀)’를 위해 아예 경선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전 시장측의 줄 세우기와 금품 살포 등 구태 정치를 강도 높게 재차 비판하면서 이 전 시장에게 타격을 입히는 방안도 강구 중이라는 그럴듯한 시나리오다.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의 박 전 대표 발언과 지금의 발언을 비교하면 이런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허무맹랑한 소설에 그쳐야 한다.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이 2등 되는 것이 두려워 판을 깨서는 안 될 말이다. 지금까지 박 전 대표의 언행을 보더라도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분당까지 점칠 정도로 두 진영이 용호상박의 접전을 펼치다 보니 나오는 얘기이겠거니 하고 넘겨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2등은 없다? 아니다 2등은 있다.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최선을 다해 승부를 겨루되,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자세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범여권의 후보 선정 때도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jthan@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포스팅 시스템의 맹점

    지난 금요일 한국 프로야구가 개막하면서 팬들은 한국, 일본, 미국 야구를 모두 챙겨보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다. 일본 팬들도 밤낮으로 미국과 일본을 돌아보느라 바쁘다. 바야흐로 최소한 선수 시장만큼은 국제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궁극적인 국제화는 시즌 도중 국제 인터리그나 시즌 후의 국제 챔피언 결정전이 성사될 때 이루어지겠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요원하다. 그런데 이처럼 선수의 국제간 이동이 빈번함에도 관련 규정들은 아직도 맹점이 여러 군데 도사리고 있다.4월8일자 볼티모어 선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실렸다. 피터 슈먹 기자에 따르면 보스턴 레드삭스가 마쓰자카 다이스케에게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50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베팅했을 때, 보스턴이 마쓰자카를 뉴욕에 가지 못하도록 하는 음모를 꾸민 것으로 기자 본인은 생각했다는 것이다.이 음모론은 보스턴이 실제로 선수와도 5000만달러가 넘는 계약을 맺자 보스턴 프런트가 미쳤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데뷔전에서 마쓰자카를 보고는 그가 충분히 1억달러의 가치가 있는 선수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문제는 불발된 음모론이 현실로 나타났을 경우 어떤 대책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보스턴이 성실하게 협상에 나서지 않고 라이벌 구단 뉴욕 양키스가 데려가지 못하도록 막는 선에서 한 달만 시간을 끌면 일본 구단과 선수 모두 대처방법이 없다. 포스팅 시스템이 도입된 건 노모 히데오의 에이전트 댄 노무라 때문이다.1995년 노모의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 노무라는 일본의 제도를 무시했다.1998년에도 일본에서 뛰는 알폰소 소리아노를 은퇴시키고 양키스에 신인으로 계약하게 만들 때도 같은 수법을 사용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도입된 포스팅 시스템이다. 미국의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성공적인 시스템이라고 주장하지만 앞서 보스턴의 음모론과 같은 방법에는 속수무책이다. 뿐만 아니라 노무라는 공공연하게 일본의 고교 선수를 바로 미국으로 진출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야구가 박찬호, 서재응, 김병현이 미국으로 진출할 때 항의 이외에는 아무런 현실적 대처 방안이 없었다. 노무라의 말은 일본과 미국 사이에서 이런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뜻이다. 이럴 경우 일본 야구는 어떤 방법으로 대처할까 궁금하다. 일본 스스로는 아시아 엔트리를 거론하며 한국과 타이완 시장을 넘보지만 노무라의 계획이 성사되면 지금과 같은 선수 계약 협정이나 포스팅 시스템 등 모두가 수술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美 ‘통일교-박정희 커넥션’ 의혹의 눈길

    1976년 전후 한국 외교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치열한 공방전으로 요약된다.4일 외교부가 공개한 1976년도 외교문서 등 965권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 등을 막기 위한 전방위 외교전을 벌였으며, 북한 외교의 발목을 잡기 위한 갖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당시 미국에서 세 확장에 나섰던 통일교와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국의 의혹 제기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미군철수 안돼” 비밀문서 전달지미 카터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던 1976년,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비판적 접근 등 카터 후보의 한반도 정책 방향을 바꾸기 위해 총력 로비전을 전개했다. 특히 외무부와 중앙정보부 주도로 한반도 정세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작성, 카터 후보 진영에 비밀리에 전달했다. 보고서는 남북 긴장관계와 군사력 비교, 자유·인권문제에 대한 해명 등을 통해 ‘한국의 목표와 미국의 이상이 부합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정부는 또 카터 집권에 대비,1980년까지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전술핵무기를 계속 한반도 배치할 수 있도록 미국을 설득한다는 대미 외교 목표도 설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미국이 전술핵을 철수하더라도 이 사실이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는 또 미국이 북한과 독자적으로 접촉, 대북 무역제재를 완화하지 않도록 남북과 미국·중국의 4자회담을 제안, 추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또 1976년 북한의 유네스코 가입에 따른 상주위원회 설치 및 제5차 비동맹정상회담 가입 등을 견제하기 위한 물밑 외교전을 펼쳤으며, 미국 시민의 북한 여행 제한 해제조치에 대한 전방위 로비활동을 벌여 제한시한을 1년 더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박정희와 통일교, 밀월관계였나? 이날 공개된 ‘문선명 및 통일교 활동’ 문서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이 미국 의회와 언론 등을 통해 통일교의 배후 지원자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대책회의를 열고 통일교와의 관계 청산을 시도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미 하원 국제 관계위원회 도널드 프레이저 위원장은 전직 주미대사관 간부의 증언 등을 토대로 문선명씨의 통역이자 대사관 무관을 지낸 박보희씨가 대사관 외교행랑을 이용, 대통령·외무부장관·중앙정보부장에게 직보하는 체계를 갖고 있다고 믿고 1976년 6월22일 청문회를 추진했다.또 뉴욕타임스·타임 등 미국의 여러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통일교와 한국 정부와의 사업 등 결탁 의혹을 제기했다.1976년 5월25일자 뉴욕타임스는 문씨가 한국에 M16소총 공장(통일산업)을 건설할 때 박씨가 박 대통령을 만나 사업지원 문제를 협의했으며, 통일교 반공 교육기관인 승공연합회에서 한국 공무원 교육을 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통일교와의 커넥션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헌법상 종교의 자유와 정치·종교 분리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입장에서 통일교에 대한 정부의 논평이나 특별한 지시는 있을 수 없다고 얘기하라.”고 재외공관에 지시하는 선에서 대응하다가 의혹이 불거지자 관계 부처 대책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외무부장관과 대통령에게 보고된 관계부처 대책회의 내용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미측이 통일교와 한국정부의 관계를 파헤친 것은 한국의 반체제 기독교인사와 미국의 반한세력이 결탁해 꾸민 음모라고 규정했다. 정부는 통일교 관련 의혹을 음모론으로 치부했지만 한편으로는 통일교측과의 관계 정리를 위해 노력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정부는 서울시가 통일교와 관련된 리틀엔젤스회관을 사실상 무료임대하던 것을 중단시키고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통일교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삼가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6월14일자 ‘타임’지는 문씨가 1974년 닉슨 탄핵 청문회 기간에 닉슨을 위해 철야기도를 하는 등 정치활동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박 대통령이 문선명을 도왔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단순 편의상의 결합관계인 것 같다.”며 “문씨는 한국 정부의 지원 없이 번창할 수 없었을 것이며 박 대통령은 문선명의 반공운동을 반가운 촉진제로 여겼다.”고 보도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