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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사는 세상 매트릭스 공간 어느게 진짜일까 / 글렌 예페스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SF영화 ‘매트릭스2-리로디드’가 세계 도처에서 흥행질주 중이다.개봉 열흘만인 지난 1일 현재 동원한 한국관객만도 244만명(전국).그 때문인지,굿모닝미디어가 펴낸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글렌 예페스 엮음,이수영·민병직 옮김)가 새책 목록에서 자연스레 눈길을 끈다. 그러나 찬찬히 내용을 짚어보면 책이 대중적 인기에 편승한 얄팍한 기획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매트릭스’를 흥미로운 한편의 영화로 단순평가할 게 아니라 그 속에서 건져올릴 중요한 메타포들이 수없이 많다고 책은 주장한다. 영화 ‘매트릭스’는 유대교,기독교,영웅신화,선불교와 동양의 신비주의 등이 한데 뒤섞인 스크린 위의 거대담론.영화의 주요공간인 매트릭스 속에서 인간은 철저히 기계에 의해,기계를 위해 태어나고 생명이 유지된다.그 설정에 주목한 책은 이내 첨단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적’ 현재와 미래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진단을 시작한다.현실의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가축’으로 만들어갈 수도 있다는 경고가 책 전반에 에둘러 표현된다.책을 엮은 이는 철학자,종교학자,과학자,미디어 비평가,사회학자,소설가,기술자 등 다방면의 필진 14명.필자가 바뀔 때마다 색깔과 시각을 달리하는 지적 편력에,책장 넘어가는 속도도 따라 빨라진다.(영화 ‘매트릭스’가 현실의 패러독스라는 점에는 모두 한목소리다.) 예컨대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현재적 통찰.“시뮬라크르(모조품,가장)가 우선”이라고 표현했던 보드리야르의 사상을 영화가 완벽하게 형상화했다는 평가다.그런 다음 이렇게 현실을 비틀어 꼬집는다.“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접속된 인간은 문화나 현실의 일들을 오직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프로그램이 원래 참고했던 현실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매트릭스’를 종교적 우화라고 전제하고 불교와의 복잡한 관계를 탐색하기도 한다.‘매트릭스’의 근본문제는 마음에 관한 것이며 그 세계는 윤회에 비유될 수 있다는 것.“네오(영화의 주인공)의 훈련과정은 명상의 테크노-사이버 버전”이란 해석이 흥미롭다.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네오의 의지에서도 대승불교의 모티프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신화,과학,철학을 여유롭게 활강하는 책은 그러나 끝내 가슴 한자락을 썰렁하게 만든다. 혹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매트릭스 아닐까.아니 그보다도,어느 쪽이 ‘진짜’인가.인간이 기계를 지배하는 현실? 아니면 기계가 인간을 만드는 가상현실? 1만2000원. 황수정기자 sjh@
  • 이런 책 어때요 / 조명암 시전집

    이동순 엮음 선 펴냄 ‘선창’‘꿈꾸는 백마강’‘알뜰한 당신’‘낙화유수’‘고향초’ 등 수많은 가요명곡을 작사한 월북시인 조명암(본명 조영출·1913∼1993)의 시전집.충남 아산 출신인 조명암은 일제 강점기에 우울한 분위기의 모더니즘 시를 창작했고,광복 전에 이미 500편이 넘는 노래가사를 지음으로써 우리 나라 현대시사와 가요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그러나 그는 월북시인이란 이유로 한국문학사에서 ‘잊혀진 인물’로 남아 있었다.이번 시전집엔 광복 전 발표한 작품과 분단 이후 북한에서 발간한 ‘조영출 시선집’에 수록된 시작품과 가요시들이 실렸다.3만 5000원.
  • 책꽂이

    ●샤롯데모텔에서 달과 자고 싶다(김재석 지음,천년의시작 펴냄) 93년 등단한 시인의 두번째 시집.에로틱한 제목과는 달리 시인은 자연과 문명의 조화를 꿈꾼다.6000원. ●전생을 굽다(배기환 지음,작가마을 펴냄) 부산에서 활동하는 시인의 사회비판 의식이 담긴 작품집.표제시 등 75편의 시를 통해 부패한 사회의 단면을 꼬집는다.7000원. ●오늘,오래된 시집을 읽다(박영희 지음,문학과경계사 펴냄) ‘팽이는 서고 싶다’등의 시집을 낸 시인의 시론집.시대정신과 시의 관계를 설명한 뒤 한용운·고은·김남주 등의 시인론에서 민족시의 의미를 탐색.9500원. ●바텍(윌리엄 벡퍼드 지음,정영목 옮김,열림원 펴냄) 1782년 영국 작가가 쓴 환상문학의 걸작.아라비아의 통치자 바텍이 신을 배반하고 보물을 얻으러 가다가 저주를 받는다는 내용.7000원. ●퍼레이드(요시다 슈이치 지음,권남희 옮김,은행나무 펴냄) 일본의 권위있는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의 첫 장편소설.현대 일본 젊은이들의 일상생활을 조명하면서 의사소통 부재의 문제점을 지적.8500원. ●워터십 타운의 열한 마리 토끼(리처드 애덤스 지음,햇살과나무꾼 옮김,사계절 펴냄) 재앙이 닥친 마을을 탈출하여 이상향을 찾아가는 열한 마리 토끼 이야기.2만 2000원. ●오봉옥의 서정주 다시 읽기(오봉옥 지음,박이정 펴냄) 시집 ‘붉은산 검은피’로 필화사건을 겪은 저자의 이론서.미당 서정주 시선집 ‘푸르른 날’을 꼼꼼히 분석한 뒤 “한국적 모더니즘을 실현시킨 시인”이라고 결론내린다.1만 2000원. ●검객의 칼끝(이영유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연극연출과 시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저자의 시집.평론가 정과리는 “세상을 흉내내어 살되 엇비슷하게만 흉내를 내어,무의미에 저항하는 세계”라고 평한다.5000원. ●어매(김순명 지음,열매출판사 펴냄) ‘독야’‘소국’을 낸 작가의 경험이 실린 장편소설.지방도시의 밤무대 밴드마스터로 일하며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이야기가 감동적.8500원. ●티티새(요시모토 바나나 지음,김난주 옮김,민음사 펴냄) 1988년 ‘키친’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가 처음 낸 장편.주인공 마리아가 열아홉시절 사촌들과 함께 바닷가 마을에서 보낸 추억을 그린 성장소설.8000원.
  • 이런책 어때요 / 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

    수전 보르도 지음 박오복 옮김 / 또 하나의 문화 펴냄 몸에 관한 페미니즘 이론의 고전.미국의 문화비평가인 저자는 외모강박증의 뿌리를 서구문화의 ‘몸­마음 이원론’에서 찾는다.고대 그리스 이래로 몸은 물질적이고 수동적인 것이었고 여성은 ‘몸’의 영역에 속하는 존재였다.저자는 신경성 거식증은 몸이 ‘여성’임을 나타내는 데 대한 방어이며,저급한 여성의 몸을 갖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거식증 환자는 젖가슴이나 월경 등 여성임을 드러내는 특성들이 사라지는 것에서 기쁨을 얻기도 한다.몸을 철저하게 텍스트화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떻게 몸의 물질성을 말살해버리는가에 대해서도 살핀다.2만원.
  • 책꽂이

    ●이성의 언어를 위하여(정명환 지음,현대문학 펴냄) 1세대 불문학자인 저자의 첫 산문집.1961년부터 40년 동안 쓴 수필 중 40편을 모았다.저자의 글을 통사적으로 비교하다 보면 우리 사회 풍속의 변천사를 알 수 있다.아울러 세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구조는 여전히 같음을 인식하게 만든다.1만 2000원. ●유럽의 교육(로맹 가리 지음,한선예 옮김,책세상 펴냄) 공쿠르 상을 두번 받은 작가의 첫 소설집.99년 번역됐던 것을 원제로 새로 번역했다.1942~43년 독일에 대항해 싸우는 폴란드 빨치산의 일원인 두 주인공은 교육의 힘으로 세상이 교화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극단적으로 맞선다.8500원. ●정신의 무거운 실험과 무한히 가벼운 실험정신(성귀수 지음,문학세계사 펴냄) 상상력의 구현 방식만이 아니라 시를 기록하는 기법 자체 등 모든 부문에서 기존의 시형식을 파괴한 시집.전문 번역가이기도 한 시인이 10여년간 실험해온 난해한 작품을 모았다.7000원. ●새벽 종소리가 나를 찾아와서(류수안 지음,문학아카데미 펴냄) 92년 등단한 뒤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의 다섯번째 작품집.군더더기 없는 시어들이 선(禪)적 상상력을 자극한다.6000원. ●침묵의 방을 꾸미다(김예성 지음,천지현황 펴냄) 일상의 느낌을 담담하게 엮은 늦깎이 시인의 작품집.감정의 과잉 없이 고백하듯 적어간 작품들이 삶을 겸허하게 돌아보게 만든다.5000원. ●소통과 성찰의 상상력(한강희 지음,시와사람사 펴냄) 전남도립 남도대학 교수인 저자의 비평집.‘평론의 소통’에 동의하는 입장에서 문단권력 논쟁을 고찰하고 황동규·허만하·김명인 의 주제별 작품 분석과,개별 시인·작가의 독후감 등 인상비평을 곁들였다.1만 2000원. ●한국 모더니즘 소설(문흥술 지음,청동거울 펴냄) 모더니즘은 근대성의 구현이 아니라,비판을 핵심으로 한다는 입장에서 전개한 연구서.기존의 모더니즘 문학 연구를 훑고 그 근간이 되는 근대성을 집중 분석했다.소설가 이상 박태원 최명익 장용학 조세희의 작품을 세밀하게 비평했다.1만 2000원. ●다른 미래를 위하여(김인환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연구와 현장비평 양쪽에서 모두 성실하게 작업하고 있는 저자의 새 비평집.‘공허한 도시’‘가족됨의 영광과 비참’이란 주제 아래,지난해 발표 작품들을 분석.1만 4000원. ●바람의 잠(김외숙 지음,제3의문학 펴냄) 91년 ‘유산’으로 등단한 작가의 소설집.표제작 외 8편의 작품을 통해 생명문화운동의 중요성을 강조.가족들간에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일을 중심으로 공동체 정서의 회복을 이야기.8000원.
  • 이런책 어때요/ 정의론 외

    ◆정의론 존 롤즈 지음 황경식 옮김 / 이학사 펴냄 ‘하버드의 성인’이라 불리는 미국 철학자 존 롤즈가 밝히는 정의의 철학.저자는 기본적인 자유를 평등하게 나눠가져야 한다는 ‘정의의 원칙’을 토대로 하되 최소 수혜자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한도 내에서 약자를 우대하는 사회 경제적 불평등은 허용해야 한다는 ‘차등의 원칙’을 제시한다.또한 결과의 평등을 거부하며 기회의 균등을 중시한다.당연히 분배적 정의보다는 절차적 정의를 강조한다.저자는 분석철학이 풍미하던 20세기 영미 철학계에서 사회철학과 윤리철학을 되살린 인물로,스스로를 ‘현실적 이상주의’라고 부른 낙관주의자다.2만 8000원. ◆베토벤 평전 갈등의 삶,초월의 예술 박홍규 지음 가산출판사 펴냄 베토벤은 “나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했다.예술가를 위한 사회주의적 후원제도인 ‘예술상점’을 제안하고,계몽주의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헌정하기도 했다.진보적 법학자인 저자(영남대 교수)는 이 책에서 새로운 베토벤 상을 제시한다.베토벤을“박해받고 경멸당한 음악노동자”로 규정한다.베토벤은 일반 대중이 알기 쉬운 음악을 만들었지만,클래식이란 미명 아래 대중과 유리됐다는 게 저자의 설명.베토벤은 죽음,파괴,불안 등 공격적이고 해체적인 힘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려는 의지를 음악에 담았다.1만 1000원. ◆카오스와 코스모스 요아힘 부블라트 지음 임영록 옮김 / 생각의 나무 펴냄 혼돈(카오스)이론은 상대성이론,양자역학에 이어 20세기 물리학의 세번째 혁명으로 평가된다.혼돈이론은 고전물리학의 결정론을 거부한다.독일의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실증적인 방식으로 혼돈이론의 복잡한 사유모델들을 소상히 설명한다.우리는 무질서의 섬 위에 살고 있으며 예측불가능한 혼돈에 에워싸여 있다.우주의 거대한 상호관련성을 들여다 보면 ‘모든 질서는 덧없으며 혼돈이 바로 규칙이다.예외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혼돈의 예는 날씨에서 찾아볼 수 있다.아기 예수란 뜻의 엘니뇨는 기후의 불가해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2만 9000원. ◆절대를 찾아서 윌프레드 세시저 지음 이규태 옮김 / 우물이 있는 집 펴냄 저자가 사하라 사막 다음으로 넓은 아라비아 사막 남부지역인 ‘엠프티 쿼터(Empty Quarter)’를 돌며 쓴 여행기.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원작인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과 더불어 아랍 여행기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아라비아 사막에서 사는 베두인들의 생활에 대해 상세히 그렸다.낮과 밤의 극심한 온도 차,때론 낙타를 죽여 식량으로 삼아야 할 만큼의 혹독한 배고픔,아랍 부족들간의 습격과 약탈,그에 따른 추적과 보복이 펼쳐진다.저자는 거대한 사막에서 시간을 초월한 ‘절대문명’이 숨쉬고 있음을 발견한다.1만 7000원. ◆원세개 허우 이제 지음 장지용 옮김 / 지호 펴냄 한족 출신인 원세개는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삼촌의 수양아들이 된 서자였지만 젊은 나이에 출세해 9명의 첩과 17명의 아들,15명의 딸을 거느린 가부장적인 가장이었다.그는 24세의 나이에 조선에 와 위세를 떨치며 고종을 협박한 인물이며,우리 나라에 화교를 퍼뜨린 장본인이기도 하다.국내에 거주하는 화교는 대개원세개와 그의 군대를 따라온 산둥 출신들이다.원세개 시대의 중국은 서구 열강의 침략과 계속된 민란으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시기였다.이 책은 난세의 영웅 원세개의 정치역정을 통해 중국 근현대사 100년을 들여다 본다.1만 5000원. ◆예술가와 뮤즈 유경희 지음 아트북스 펴냄 뉴멕시코의 황야에서 아흔아홉 살까지 수도자 같은 말년을 보냈던 조지아 오키프는 미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미술사의 주변부에서 다뤄졌다.그 이유 중 하나는 오키프가 남편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사진의 누드모델로서 대중들에게 섹슈얼리티의 대상으로 주목받았기 때문이다.스티글리츠에게 있어 오키프는 사진에 대한 창조력에 불을 붙여준 ‘뮤즈’였다.저자는 이처럼 세기적인 예술가들에게 창조의 영감을 준 매혹적인 뮤즈 이야기를 들려준다.오키프를 비롯해 프란시스코 데 고야,오노 요코,갈라 등 13명의 인물이 등장한다.1만 6000원.
  • 편운 조병화시인의 시와 삶 ‘고독으로의 긴 여정’ 떠난 詩壇의 거목

    이제 머리 위에 베레를 얹고 명상의 파이프 연기를 흩날리던 편운(片雲) 조병화 시인을 볼 수 없게 됐다.“시인은 모름지기 시간을 이끌어야 한다.”는 가르침도 다시 듣지 못한다. 시인은 83년동안 부대낀 번잡한 세속의 욕진을 모두 털고 ‘고독으로의 긴 여정’에 들었다.그는 평생 ‘고독’이라는 존재론적 주제를 중심으로 미완의 사랑과 죽음,삶의 희열을 결부시켜 온 ‘고독의 시인’이었다.그가 시를 통해 다다르고자 한 곳도 ‘절대고독’의 세계였다.그러나 ‘사랑’에 대한 그의 정신적 탐닉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가 그려온 고독과 허무의 그림도 한낱 흩어지는 안개에 불과하다.그가 사람과 물상에 쏟은 사랑은 그만큼 열렬한 것이었다.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여덟살 나던 1929년 서울로 이사와 평생 서울 인근을 떠나지 않았다.1943년 경성사범학교 보통과를 마치고 일본에 유학해 도쿄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으며,이때부터 문학적 소양을 발휘하기 시작했다.학창시절 그는 문학뿐 아니라 미술과 운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경성사범 시절,미술활동은 물론 조선 럭비대표로 선발됐는가 하면 노후에도 짬짬이 유화전을 열만큼 그림에서도 일가를 이뤘다. 공부를 마친 그가 처음 교단에 선 것은 1947년.인천중학교(현 제물포고)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해 2년 뒤인 49년 서울중학교(현 서울고)로 옮겨 첫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펴냈다.평생 ‘고독의 바다’를 표류한 시인의 삶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이후 그는 거의 해마다 시집을 펴내는 왕성한 창작열을 보였다. ‘하루만의 위안’(50년) ‘패각의 침실’(52) ‘인간고도’(54) ‘사랑이 가기 전에’(55) ‘서울’(57) ‘석아화’(58)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59) 등이 그 즈음 그가 펴낸 시집들이다.지난해 ‘남은 세월의 이삭’을 펴낼 때까지 시인으로 산 50여년 동안 무려 52권의 시집을 남겼다. 그의 시세계는 주로 모더니즘에 뿌리를 박은 것이었다.그러나 결코 모더니즘 감각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철저하게 일상에서 얻어지는 보편적 정서를 탐닉했다. 문학평론가인 중앙대 임헌영 교수는 “그는 모더니즘이니 뭐니 하는 문학이론을통해 수업을 한 게 아니라 생활 자체로 시에 접근해 갔으며,이것이 대중적 친근감을 갖게 하는 오묘한 비의였다.”고 설명한다. 지적 기교보다 정감 어린 호소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의 시는 당대의 제약을 벗어나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소외,이기주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고독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껴안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학과 문인에 대한 그의 사랑은 참으로 돈독했다.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취에 대한 격려’라며 지난 90년 편운문학상을 제정,이듬해 첫 수상자를 낸 이후 지난해 12회까지 이 땅에서 힘겹게 시를 쓰는 가난한 시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심재억기자 jeshim@
  • [열린세상]21세기 미술 ‘일상을 잡아라’

    20세기에는 서양의 논리적,개념적,이성적 표현방식이 주를 이루며 미술사를 장식했다.이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금기에 대한 자유의 갈망이 미술의 근원적 표현방법보다 앞섰다는 것을 말한다. 입체파,초현실주의,팝 아트,추상표현주의 등 많은 사조들은 자연주의,직관주의,유물주의,실증주의,실용주의,구조주의,실존주의 등 서구의 철학적 사상을 바탕에 깔고 탄생했다.이 사조들은 사상과 표현의 한계를 분명히 안고 있어 발전이란 이름 아래 새로운 정신을 대두시킨 것이다.20세기 말에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즘들을 종합적으로 뒤섞거나 개별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20세기의 역사는 저물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미술은 다시 새로운 인식과 표현을 추구한다.그러나 시대를 반영하고 현실을 비판하며 내면의 세계를 추구하는 미술의 역할은 변함이 없다. 지금의 현실은 단편적이고 일차적인 것부터 복잡하고 다양한 것들이 뒤엉켜 있다.더욱이 디지털 혁명으로 수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소유하게 된 지금 개인의 삶은 엄청나게 변화되었고 복잡하다.인류의 특별한 공유의 목적성이 상실된 지금은 일상적이며 순간적인 것,즉 삶의 근원적 충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그리고 일상 자체가 복잡하면서도 다양하여 일상이 미술의 주제로 등장한다. 이런 관점은 일상적 삶에서 도를 추구한 동양사상과도 연결된다.이 ‘일상의 도’는 물질을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으로 접근해 현상을 파악하며 발전시키는 서구사상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삶과 현상의 근원에 대한 탐구를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동양사상의 ‘일상의 도’는 지극히 개인적 경험과 직관에 의한 것으로 개념적이거나 이론적이지 않다고 인식되어 왔다.개인의 직관은 증명될 수도 없고 이론적이나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도 없기 때문에 동양사상은 신비주의로 가정되어지기도 한다.그러나 서구식 통계나 확률,보편적 관념보다는 각자가 자기의 경험 안에서 직관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바를 직접 감지하는 만큼 더욱 세부적이라는 뜻도 내포된다. 서양은 물질로부터 출발한 실재의 사물과 사건을 관찰하고거기에서 무엇을 알아낼 수 있는가를 과학적,합리적,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추리하며 체계화시킨다.그래서 나온 결과물인 논리를 일반에게 주입한다.대상으로서 외형적인 현상을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있으나 존재의 근원적 내부를 체험적으로 밝혀내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서양은 리얼한 것을 보기를 원하고 동양은 리얼한 것이 되기를 원한다고 한다.이것은 자신이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자기 자신이 바로 대상이 되는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서양의 사유로 어쨌든 인류는 물질의 풍요로움을 얻었으나 정신과 내면의 세계는 더 이상 발전시킬 수 없으며 논리와 합리만으로 현상을 분석할 수 없는 결과까지 얻게 되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논리에 의한 교육적 방법이 인간 본래의 직관과 감성모두를 잃어버리게 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내면적 실천의 도가 필요한 시대다.인간 본질과 내면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직관과 본능을 열어야 하며,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자연현상과 인간근원적 탐구의 음양오행,부다의 자아에 대한 깨달음,공자의 사람의도리에 바탕을 둔 실천적 도,무위자연의 노자 등 동양사상은 인간과 자연과 우주 모두가 하나됨이라는 유기적 조화론을 기본으로 한다. ‘일상의 도’를 실천한 작품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의 탐구가 아닌 내적 세계의 전 우주와 교류되는 근원적인 하나와 만나는 경험의 장을 가져다 준다.이러한 예술은 우리에게 일상과 순간의 유토피아와 희망을 주며 전 우주적 인간관의 혜안을 가져다 줄 것이다.
  • ‘상허학회’ 연구서 ‘새로 쓰는 시인론’ 출간...한용운에서 기형도까지

    30년대 소설가 이태준의 작품에 대해 논문을 쓰거나 그의 문학세계에 관심이 많은 연구자들이 1992년 모여서 만든 학회가 있다.그들의 관심을 이어주는 다리였던 이태준의 호를 따 이름지은 ‘상허학회’. ‘진짜 연구’로 의기투합한 젊은 학구열은 지금까지 9권의 연구서와 3권의 단행본을 펴냈다.왕성한 탐구욕은 이태준에서 근현대 작가로,시인으로 차츰 늘어갔다.숱한 학회 중 상당수가 연구서 발간은커녕 사교단체에 머무는 현실을 감안하면 상허학회의 발걸음은 눈부시다. 활발한 토론과 검토를 거쳐 내는 이들의 연구성과에 ‘새로 쓰는 한국 시인론’(백년글사랑 펴냄)이 가세해 값진 연구목록의 몸피를 불렸다.책을 펼치면 이들의 작업이 단순히 부피만 늘어난 게 아니라 내용에서도 녹록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다루고 있는 시인의 분량이 방대해 눈길을 끈다.한용운,김소월,김영랑 등 전통성의 시인에 박인환 등의 모더니즘,임화·이용악 등 리얼리즘 계열의 시인 등 다양한 유파의 시인들 29명을 분석하고 있다.특히 정현종,김지하에서 기형도,유하에 이르기까지 현대 시인의 작품세계로까지 아우르면서 시야를 넓혔다. 무엇보다 이 연구서가 값진 것은 시각의 새로움이다.물론 수록된 모든 논문이 다 이전의 시각을 전복하고 있지는 않다.하지만 선배들의 연구를 딛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은 곳곳에 묻어난다.예컨대 강웅식의 ‘김수영론’처럼 “‘예술성’과 ‘현실성’의 문제가 하나의 작품 안에서 시인 저마다가 가진 나름의 스타일에 의해 통합되어야만 한다고 믿었던 김수영의 신념에 근거할 때 그의 전체 작품 세계에 대한 보다 더 철저한 분석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는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밖에 현재 활동 중인 작가의 경우 초기시에 머물렀던 그 동안의 작품론을 ‘게눈 속의 연꽃’ 등 90년 이후의 작품으로까지 연구 영역을 더 넓힌 경우(문혜원의 ‘황지우론’)도 눈여겨 볼 성과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연구 결과를 내놓을지 궁금하다.왜냐하면 그 고민 속에는 우리 문학의 새 지평을 열려는 땀이 배어 있고 그에 따라 우리 문학은 튼실해질 것이기에.1만 5000원.이종수기자
  •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비극이란 인간의 자기반성”

    낯간지러운 처세·실용서들이 득세하는 서가에 담담한 철학서 한권이 새로 꽂혔다.‘김상봉 철학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김상봉 지음,한길사 펴냄). ‘호모 에티쿠스’‘나르시스의 꿈’등 일반인들을 위한 철학교양서를 꾸준히 내놓은 김상봉 문예아카데미 교장이 이번에 주목한 글감은 ‘그리스 비극’.이론의 꼬치로 단단히 무장해온 서양철학은,지은이의 유연한 사고 덕분에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가는 편지체 교양서로 옷을 갈아입었다.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책에서 저자는 ‘그리스 비극’이라는 소재를 현실에 접목해 풀이했다.무엇보다,그리스 비극을 고매한 예술의 한 전형으로만 미뤄 놓을 일이 아니라고 단언한다.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오히려 가장 ‘정치적인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이라는 것.“파르테논 신전과 아크로폴리스로 상징되는 그리스 문화의 본질은 ‘자유인’들이 만들어낸 인류최고의 향연이었으며,그것은 곧 정치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공동체에서만 가능했다는 논리”라고 주장한다. 그런 맥락에서 그리스 비극을 대표하는 ‘오이디푸스 왕’의 시인 소포클레스가 아테네의 정치지도자이자 장군이었다는 사실도 새삼 주목해 보라는 주문.그리스 비극은 사회·정치활동에서 소외된 직업시인들의 예술이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 인간’들의 미적 반성이었다는 논리를 편다. 경어체로 친숙하게 다가서는 책은 궁극적으로 한가지 논조를 견지한다.“현실에 바탕을 둔 예술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며,그리스 비극이 그 전형”이란 것이다.하지만 비극의 예술 그 자체의 논의에만 머물진 않았다.그리스 비극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민주주의,즉 자유 시민공동체를 염원했다는 사실에 새로 방점을 찍는다.“그들이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 방식을 택한 건,비범한 고통 속에서만 인간정신의 숭고함이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파악하고,끝내 현대를 관통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을 신랄하게 꼬집는다.인간의 슬픔을 외면한 채 지나치게 욕망을 부각시켰다는 이유에서다. “비극이란 슬픔의 자기반성”이란 지은이의 명제는 책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힘을쌓는다.‘슬픔’이 곧 ‘현실’의 한 반영이고 보면,책은 독자에게 저절로 이런 물음표들을 찍게 만든다.현실에 발딛지 않는 예술과 철학이 과연 있을 수나 있는지,존재한다 한들 그 의미가 무엇일지.1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
  • [열린세상] 디지털시대의 예술 읽기

    모든 정보를 0과 1의 두 가지 상태로만 생성하고,저장하고,처리하는 전자기술인 디지털이란 것을 사용하기 시작한 후 인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디지털은 지금까지 역사를 이끌어온 모든 방식,정치·경제·사회·종교 등 전문적이며 부분적 분야를 비롯해 시간 공간의 개념마저 흔들어 놓는다.디지털방식·디지털개념은 종이,캔버스,인쇄물,심지어 비디오 영상매체까지 지금까지 사용돼온 아날로그식 모든 매체와는 완전한 차이를 가진다. 디지털 정보통신으로부터 시작된 이 혁명은 일상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디지털과 함께 사이버스페이스·연결·속도의 리얼타임·쌍방향·온라인·송수신·네트워크·사이보그 등 다양한 언어와 소통의 양식이 등장해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디지털 매체로 동원되는 컴퓨터와 함께 지구의 수억 인류들이 이 매체를 통해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발전하고 있으며 그 발전의 가속 또한 우리가 상상하는 범위를 훨씬 뛰어 넘고 있다.그것은 무엇이,누가라는 주체적 개념마저 희미하게 만들어놓고 있다.불과 몇 십 년 전에 영화나 만화·애니메이션에서 등장했던 장면들,예를 들면 가상과 실제를 넘나드는 장면,전 세계적 정보공동체를 이용한 리얼타임 전쟁,인공지능과 인공기계를 부착한 인간과 사이보그,복제 인간을 비롯한 생명공학과 관련된 장면 등은 실제 현재 공간에서 경험되고 있는 세계로 나타났다. 이 새로운 기술은 근대의 산업혁명 시대보다 훨씬 시공간에 빠르고 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근대 이후 기계들의 등장이 농촌과 자연의 풍경을 도시의 풍경과 삶의 형태로 변화시킨 것보다 더 다층적이고 복잡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디지털혁명은 더욱 원본과 복사본의 차이를 비롯해 가상현실을 통해 진짜와 가짜의 구분뿐만 아니라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마저 혼돈시켜 모더니즘적인 예술가의 순수한 창작품이란 예술의 의미조차 없애버리고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구분 자체도 모호하게 만든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본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기회보다 흘러다니는 이미지를 통해 쉽게 보고 또 조합해서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디지털 시대의 작품은 자연히 일회성과 순간성의 모자이크식 멀티미디어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시대의 기술이나 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창조하려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다.그러나 항상 새로운 창조는 역사의 흐름 속에 곧 굳어진 것으로 자리잡아 하나의 법칙으로 기록되고 교육된다.오늘의 젊은 예술가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은 단순히 수동적 자세나 반응체가 아니라 바로 소통할 수 있으며 주체자로서 개입하고,서로 연결된 고리를 찾아 단선적 인과관계가 아닌 하이퍼텍스트(컴퓨터의 화면상에 표시된 문장이나 그림의 일부를 색인으로 표현해,그것을 마우스로 클릭해 관련된 문장이나 그림을 불러내는 일종의 데이터베이스)를 쫓아가 배선형 논리로 도달하는 것이다.그것은 여러 가지 정보를 동시에 주고받는 멀티미디어적이며 분리된 감각을 총체적으로 조합하는 것이다. 과정보시대의 이미지 생산자인 젊은 예술가들은 당연히 대중들이 원하는 욕구와 바로 부합되는 작업을 하게 된다.이들은 현대미술이 소홀히 했던 소통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경험의 장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컴퓨터 안에서 여러 가지 다른 이미지들을 조합하거나 게임에서 주인공이 돼 상대와 대결하는 소통적 상호작용의 경험을 살려 회화·조각·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동시에 사용하는 멀티미디어적 전시를 연출한다.오늘의 예술가들은 일회성·순간성·즉흥성·멀티미디어 총체성으로 경험된 일상이 바로 주제가 돼 기존 시각예술의 시간적·공간적인 의미에 종말을 고한다.다시 말하면 오늘의 예술가들은 디지털이란 매체와 일상적 삶과 환경이 일치되는 것을 주제로 삼아 이 시대의 예술을 표현하는 것이다. 김 미 진
  • 대한매일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 - 장난감 총

    변 혜 령 등장인물 - ♂ 정만석 (30대 초반) ♀ 나채연 (20대 후반) ♂ 박 PD (30대 초반) ♂ 이실장 (40대 중반) 무대 - 스튜디오가 갖추어진, 전형적인 성인 인터넷 방송국이다. 무대 중앙 (스튜디오) - 알록달록한 스테이지, 천장에는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가 매달려있고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모니터의 글들이 관객에게 보여진다. 그밖의 공간 (사무실) - 커튼으로 무겁게 가려진 커다란 창문. 책상 위엔 노트북이 놓여져 있다. 바닥, 트라이포드 위에 놓인 카메라에선 작동중임을 알리는 빨간 시그널이 켜져있고 그 옆으론 여기저기 놓여진 방송용 소품 바구니.스테이지와 사무실은 분위기, 조명등이 확연히 다르다. 결국 하나의 공간이지만 이중 공간이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막이 오르면, 알록달록한 스테이지만 현란한 조명으로 반짝인다. 선정적인 속옷 차림으로 홀로 미친 듯이 춤추는 채연. 마치 애무라도 하듯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손동작. 음악 소리 작아지면, 동작 멈추고 간드러지게 웃는 채연. 컴퓨터를 사람 대하듯, 요염하게 시선 보내며 대화한다. 천장에 매달린 모니터에 빠르게 떠오르는 자막들. 현재 인터넷에서 사용되어지는 언어들과 이모티콘, 기호들이 고스란히 스크린을 통해 보여진다. 글 올리는 접속 회원들의 아바타도 성격에 맞게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거나 입혀져 있는 옷들이 선정적이다. 불끈:졸려염 아함~ @@ 무기:열심히 춤춘 당신, 벗어라~ (입 찢어져라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 떠오른다.) 야수:벗어라~ 벗어라~ (양볼이 붉게 물든 얼굴의 이모티콘 떠오른다.)자막을 확인하고는, 거리낌 없이 상의를 벗어 던지는 채연. 채 연:아이~ 급하긴….저 나채연, 이름값 톡톡히 한다구요. 달래 PJ라 부르겠어 요? PJ가 뭐냐구요? 아잉~ 순진한 척은….포르노 쟈키의 약자! 다들 아시죠? 전요, 체질적으로 벗는 걸 즐기걸랑요. 안 벗겠다구 내숭떠는 년들, 그 년들은 프로두 아니에요. 몸매가 뭣 같으니까 그런 거지. 다시 떠오르는 자막들. 야 수:마저 벗어 줘~ 이잉~ ㅡ..ㅡ앗 싸:앗싸~ 나채연 홧팅~ *^^*채연, 마저 벗으려는데 무대 구석에서 불쑥등장하는 만석.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스테이지로 뛰어든다. 만 석:진아야. 이실장:저 미친놈 뭐야? 엉? 잡아와. 빨리! 박 PD, 끌고 들어가려는데 만석의 저항이 거세다. 엎치락뒤치락 격렬하게 버둥대는 두사람. 결국 이실장까지 합세해 스테이지 밖으로 만석을 끌어낸다. 달려가 카메라의 작동을 정지시키는 박 PD. 카메라가 정지되면, 무대조명이 전체적으로 밝아진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이실장, 다짜고짜 만석에게 주먹부터 날린다. 주먹이 만석의 얼굴에 닿기 일보 직전, 버럭 소리지르는 만석. 만 석:그, 그마안~ 만석의 고함에 스틸 사진처럼 정지하는 사람들. 만석, 가쁜 숨 몰아쉬며 가방을 내려놓는다. 씨익 웃으며 뻗어 있는 이실장의 팔에 가방을 걸어 놓는 만석. 이실장을 건드리지 않고 날렵하게 빠져나온다. 만 석: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동방예의지국, 말 그대로 선비의 나라 대한민국! (음 넣어 부르며 방방 뛴다.) 오~ 필승 코리아~ 에서 백주 대낮에 말만 한 처녀가 옷을 벗습니다. 저요? (채연 가리킨다.) 아, 그야진아를 보고 반 가워서 뛰어들었습니다만, (눈 가늘게 뜨고 채연의 얼굴 살핀다.) 아닌가 봅니다. 자 그럼- 이실장 앞에서는 만석, 처음의 자세를 취한다. 만석, 조심스레 가방을 빼낸다. 만족한 웃음 웃으며 자세를 바로 잡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만 석:어디더라? 오른쪽? 왼쪽? (어느 쪽이 맞을까 손가락으로 점쳐 보고는) 그렇지, 왼쪽. 만석이 왼쪽에 가방 메고 서면, 곧바로 주먹을 날리는 이실장. 샤샤샥 피하는 만석. 두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는 채연. 박PD:의상 안 갈아입어? 부리나케 퇴장하는 채연. 이실장:저 새끼 뭐야? 엉? 뭐 하는 새낀데 남의 방송을 통째루 망가 먹어? 박 PD:(연신 카메라 장비 살피며 잔뜩 주눅든 소리로) 그러니까…그게요…회원수 준다고 김작가 짜르구…저 친구 저래뵈두 글발이 장난 아니거든요. 이실장:작가? 저런 띨빵진 놈이 작가란 말이야? 당장 다른 놈으로 갈아치워! 박 PD:웬만한 작가는 우리 방송국 안 와요. 성인 인터넷 방송…머시기 하잖아요? 이실장:머시기? 월급을 두 배나 주는데 멋이 뭐시기해? 거 배때기들 불렀구만? 박 PD:작가 출신은….그 뭣이냐 작가 주의에 입각해서 예술을 하려는…. 이실장:닥쳐! 너 지금 국민 교육헌장 읊어대냐? 무슨 주의? 이~입각? 예술이 밥 멕여주냐? 박 PD:실장님이 주신 돈으루다가 밥사먹죠. 갑자기 모니터에 떠오르는 회원들의 항의성 자막들. 야 수:모야? 모야아~~ 방송사고?? (칼 날리는 이모티콘이 주르르 떠오른다.) 조아조아:돈 물어내랏!!! 삐리리 사깃꾼!!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모티콘 떠오른다.) 무 기:당장 탈퇴할래~ 잉잉~ ㅜ ㅜ의상 갈아입고 등장하는 채연. 채 연:어떻게든 해봐. 항의가 빗발친다구. 이실장:재방 내보내. 빨리! 박 PD:사과 방송 자막 큐! 박PD가 장비를 만지면, 다시 스테이지로 가서 서는 채연. 재방 방송을 재연하기 시작한다. 리와인드 화면처럼 춤추고 옷벗고 간드러지게 웃음 웃고를 반복하는 채연. 스테이지밖에 있는 사람들은 채연의 재방송과는 무관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실장:2부 방송 어쩔 거야? 엉? 이 십분 뒤잖아? 박 PD:(덥석 만석 끌어다 놓으며) 이, 이 친구가 쓸 겁니다. 만석, 소란을 떠는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몽롱한 시선으로 채연만을 바라본다. 이실장, 신경질 부리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린다. 요즘 유행하는 컬러링 벨소리다. 섹시한 여자 목소리로 “오우~ 어빠아~ 전화 받으세요~” 발신 번호 확인하고 180도로 태도 바뀌어 전화 받는 이실장 이실장:예. 예. 고의원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드리려 고…예? 지금 즉시 사업 기획서 가지고 찾아 뵙겠습니다. 의원님께서 벤 처 투자 건에 저희를 밀어만 주신다면, 분골쇄신! 의원님의 돈줄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럼요. 그렇고 말구요. (통화하며 퇴장) 박PD, 재빨리 만석을 노트북 앞에 끌어다 앉힌다. 박 PD:급하다. 급해. 글쓰란 말이다. 글! 만 석:글? (희미한 미소) 글! (여전히 채연만 바라보며) 처음…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했다. 진아만의 줄리엣…로미오와의 첫날밤을…줄리엣에게 웨딩 드 레스를 입혔다…. 빠른 속도로 자판을 쳐 대는 만석. 장난감 총을 들고 등장하는 이실장. 만석이 대본 치는것을 보고는 화가 누그러진다. 이실장:(장난감 총 건네며) 방송에 써먹을 소품이다. 박 PD:(꼼꼼히 살펴보다) 키야~ 이거 진짜 총 같은데요? 이실장:세상 참 좋아졌다. 가짜가 진짜 찜쪄먹으니 원. 자판만 눌러 대던 만석, 쓰던 걸 멈추고 물끄러미 장난감 총을 바라본다. 총을 조심스럽게 책상 서랍에 넣는 박PD. 빤히 쳐다보는 만석. 박PD, 시선 느끼고 박 PD:다 썼어? 노트북으로 걸어가는 박PD와 이실장, 만석이 써 놓은 것을 읽는다. 이실장:로미오와 줄리엣? 새하얀 웨딩드레스? (몸짓 발짓 줄리엣 배역 흉내내며 새된 소리로) 벌써 가시렵니까? 겁에 질린 당신 귓전에 방금 울린 그 소리는 종달새가 아니라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랍니다. 로미오님, 정말이지 그 소리는 나이팅게일이었습니다. 박 PD:오~ 줄리엣. 나는 잡혀도 좋소. 사형을 당해도 좋소. 이대로 마냥 머물고 싶소. 죽음이여, 오려면 오라. 반갑게 맞아 주마. 줄리엣님의 소원이시다. 이실장:이따우를 대본이라고 쓴 거야? 이걸 엇따 써먹어? 엉? 박 PD:아후~~ 상상해 보세요. 삐리리의 글래머 줄리엣,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 있다. 헤헤- 그러니까요, 웨딩 드레스란게 안감을 다 뜯어내는 겁니다. 그 러면 속살이…흐흐흐. 거기다 갑자기 비를 뿌려 주는 겁니다. 완전한 영상 미 아닙니까? 하얀 색이 화면 가득, 비에 젖어 있기까지 하니까…거기서 끝나느냐? 말밥 아니죠. 클라이맥스에는 그 하얗고 순결한 웨딩드레스를 천천히, 천천히 벗는 겁니다. 마치, 마치 순결이, 순결이…헤헤헤. 이실장: 거 좋다. 빨리 방송 준비해. (퍼뜩) 그런데? 웨딩드레스가 우리 소품 중에 어딨어? 박 PD:그, 그게… 만 석:내가 가지고 있다. 웨딩드레스…진아가…줄리엣이 입었다…. 가방에서 부스럭부스럭 눈부시게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꺼내는 만석. 반색하며 달려가 뺏어 드는 박PD. 희희낙락하는 이실장. 박 PD:그거 보십쇼. 저놈아, 소품두 준비 안 하구 글쓰는 놈이 아닙니다. 똑부러지 는 놈이다 이겁니다. (폼나게 사인하며) 자- 방송 오분전. 스테이지 조명, 더욱더 천박하게 반짝인다. 그제야 동작을 멈추는 채연. 박PD와 이실장, 웨딩드레스의 안감을 무자비하게 뜯어낸다. 그러고는 채연에게 던져 준다. 재빨리 의상을 갈아입는 채연. 요란한 화장을 고친다. 화려하게 웨이브진 가발까지 벗으면, 긴 생머리가 가지런하다. 어느새 순결한 처녀의 이미지로 변신해 있다. 몽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만석. 또다시 채연을 진아로 착각한다. 만 석:진아? 진아야! 달려가 채연을 스테이지에서 끌고 내려오는 만석. 갑작스러운 만석의 행동에 넋빠져 보고만 있는 박PD와 이실장. 두사람, 속수무책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테이지 조명 아래 서 있다. 스테이지 밖의 조명은 전체적으로 어두우면서 몽환적이다. 채연은 스테이지에서 내려오자마자 진아로 변한다. 만 석:진아야. 진 아:오빠. 만 석:며칠만 있으면 결혼식이다. 우리 결혼식…이쁘다 드레스 입은 내색시…. 진아(채연):(주룩 눈물 흘린다.) 오빠…어쩌지…어쩌지? 우리… 할매목소리: 안 된다아~ 만석아~ 이놈~ 이놈시키~ 그년은 창녀여~ 만 석:하, 할매? 진아(채연):(슬피 울며 스스로 스테이지로 걸어간다.) 만 석:(멍하니 보기만 한다.) 진아야? 뭔 소리여 그거이 시방? 응? 진아가 스테이지에 올라서자마자 일순 천박한 조명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스테이지에 올라선 순간 채연으로 변하는 진아. 현란한 음악이 나오면, 스테이지에서 내려오는 이실장. 카메라 작동시키는 박PD. 요염한 포즈로 모니터 앞에서 춤을 추는 채연. 야수:나채연 결혼 하냐? (모니터에서 조그맣게 장송곡이 울려 퍼진다.) 불끈:키야아~ 의상 쥑인다! (눈알 튀어나오는 이모티콘이 떠오른다.) 터프게이:벗는 거보다 더 야시시? 그래두 벗어라!! 귀족:유부녀 돼두 출연하죠? 추카추카~ (장미꽃 다발 이모티콘 떠오른다.) 밝힘:벗어라! 벗어라! 음악 소리 작아지며 천천히 몸을 흔드는 채연. 위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 나온다. 온몸으로 물을 맞는 채연, 젖은 머리 쓸어 올리며 모니터 바라본다. 천천히 옷을 벗는 채연. 반라가 되자마자 확 꺼지는 스테이지 조명. 무대에는 만석만 홀로 서 있는 것 같다. 어두운 스테이지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이실장:으흐흐 하하 으흐하하.좋았어. 아주 좋았어. 오늘 접속 회원 수가 근래 들어 최고야. 최고! 돈이 아주 다발로 굴러 들어오는구나 엉? 우히히히. 박 PD:앞으로 모바일과 연계한 성인 방송도 문제없겠어요. 사람들의 소리 들으며 서 있는 만석, 울상이다. 만 석:뭔가가 잘못된 모양입니다. 고향 친구 놈이 서울서 출세했답니다. 무지하게 커다란 방송국에 취직을 했다나요? 그래서…염치 불구하고 친구 놈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아주 반갑게 취직을 시켜준다지 뭡니까? 자그마치 이백. 구미가 당기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도통 헷갈립니다. 진아를 닮은 저 여자는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속옷만 입고 있습니다. 나처럼…가난해서일까요? 추워 보입니다. 진아…나의 진아가 말입니다…(웃옷 벗더니) 덮어 줘야겠어…덮어줘야 돼…. 홀린 듯 비척이며 스테이지로 걸어가는 만석. 만석이 스테이지에 오르기도 전에 조명 밝아진다. 사람들, 우르르 만석에게 다가온다. 이실장:수고했어, 정작가. 내 한눈에 범상치 않은 작가다 싶었어. 이실장,만석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퇴장. 과장되게 포옹하는 박 PD. 악수를 청하는 채연. 어리둥절해서 쳐다보는 만석. 덥석 손을 잡아 흔드는 채연. 만석을 잡아끌다시피 노트북 앞에 앉히는 박PD. 채연은 컴퓨터 앞에서 사람한테 하듯 요염하게 웃기도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박PD, 무대를 바쁘게 왔다갔다하며 만석만 재촉한다. 박 PD:땡기는 대로 써라. 그게 바로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거다. 만 석:써? 뭐를, 박 PD:좋은 거 많잖아? 일곱난쟁이와 백설공주! 그거 조오타~ 일곱 명의 난쟁이와 백설공주가 벌이는 정사씬! 키야아~ 만 석:동화? 안데르센? 개구리왕자! 만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테이지 조명이 천박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소품 바구니에서 얼른 왕관을 찾아 쓰는 채연. 스테이지 중앙에 올라선다. 그와 동시에 카메라를 작동하는 박 PD. 큐 사인 보낸다. 또박또박 들려 오는 어린아이 해맑은 목소리. 꼬 마:(목소리만) 옛날 옛적, 어여쁜 공주님이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만큼 모든 사 랑을 한 몸에 받았던 공주는, 예쁜 황금 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품 바구니에서 황금 공을 꺼내 얼른 채연에게 던져 주는 박 PD. 아이의 목소리대로 연기하는 채연. 꼬 마:(목소리만) 어느 날, 공주는 황금 공을 가지고 놀다가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놀란 공주가 엉엉 울고 있는데, 연못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나왔습니다. 기괴한 음악 흘러나오면, 흉측한 개구리 탈을 쓰고 등장하는 이실장. 손이며 발이며 개구리의 형상으로 분해 있다. 개구리라기보다는 기묘한 괴물 형상이다. 이상한 춤동작으로 채연에게 다가가 희롱하는 개구리. 그와 대조적으로 맑고 또렷한 꼬마의 내레이션이 계속 된다. 꼬 마:(목소리만) 공주님, 공주님, 울지 마세요. 제게 키스해주면 황금 공을 찾아 줄게요. 채연 위로 올라타는 개구리. 채연과 개구리,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엎치락뒤치락 뒤엉키기 시작한다. 점점 커지는 기괴한 음악. 그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 대는 두사람. 두사람의 몸놀림 위에 더욱더 현란하고 천박하게 요동치는 조명. 스테이지 밖에서 아랑곳없이 글만 쓰던 만석,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러고는 스테이지의 광경을 바라본다.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는 만석, 바라만 보다가 웩웩거리며 토악질을 해댄다. 간신히 비척이며 일어서려는 순간,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 괴롭게 헐떡이는 만석, 스테이지가 어둠에 휩싸이자 풀썩 주저앉아 다시 웩웩거리기 시작한다. 만 석:이상…하다…이건 안데르센이 아니다…. 스테이지 조명 밝아진다. 그 위에서 이실장, 박PD, 채연은 흥겨운 분위기로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다. 이실장:우히히히. 좋아 좋아. 갈수록 퀄리티가 높아지는구만? 채 연:호호호. 실장님 기분 요즘 왔다네?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문제야. 그치? 나…출연료 좀 올려주라 응? 이실장:나채연이 너, 재계약 도장 찍었어? 박 PD:(바로 주머니에서 계약서 꺼내 머리 조아리며) 준비됐습니다. 계약서. 채 연:도장 없는데? 이실장:지장 찍어. 박 PD:(얼른 귓속말로) 그래도 계약선데 도장을 받으세요. 이실장:요 앞에 가서 이쁜거루다 하나 파라. (주머니에서 오천원짜리 꺼내 쥐어 준다.)힘없이 쳐다보다 돈 받아들고는 퇴장하는 채연. 둘러보다 널브러져있는 만석을 부축하는 이실장. 아무렇게나 만석의 주머니에 돈 봉투 찔러 넣어 주며, 이실장:앞으루두 잘해 보자구. 정작가. (퇴장) 박 PD:수고했다. 만석아. 만 석: 고향 사람들…니가 성공한 줄 안다. 박 PD:너, 돈벌구 싶댔지? 잘만 하면 돈버는 거 시간문제다. 만 석:돈? (절망적으로) 진아…. 박 PD:진아가 그렇게 됐다는 거, 나도 마음 아프다. 하지만, 다 잊고 살궁리를 해야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랬다. 요즘 세상, 돈 있음 못할 거 없다. 만 석:다…잊어…? 박 PD:할매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며? 그래서 불러 줬음 돈벌 궁리나 해 임마. 만 석:진아가…나를 버렸다. 세상이…. 박 PD:그러니까 너도 양심을 버리란 말이다. 그러면 사는 거 편해진다. 그러면 세 상에서 대우받고 잘살 수 있다. 만석을 쳐다보다가 퇴장하는 박 PD. 고개 숙여 흐느껴 우는 만석. 아련하게 진아의 목소리가, 채연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진 아:오빠…만석 오빠…. 만 석:(벌떡 일어난다) 진아? 어딨어 진아야? 진 아:여기…. 소리나는 곳을 쳐다보면 어두운 스테이지에 진아의 실루엣이 보인다. 미친 듯이 스테이지로 달려가는 만석. 그러나 스테이지에 오르기도 전에 스테이지 조명이 밝아진다. 앉아 있는 진아, 청순함은 바래지고 채연이의 선정적인 분위기가 묻어 난다. 요동치는 조명. 조그만 테이블 들고 등장하는 이실장, 채연 앞에 놓고 앉는다. 양복 입고 촌티 나게 가르마 탄 머리를 올 백으로 넘겼다. 진아가 다녔던 단란 주점의 단골손님으로 분해 있다. 일순 스테이지가 단란 주점으로 변한다. 분주하게 등장하는 박PD, 시골 단란 주점 웨이터로 분해 있다. 쟁반에 양주와 잔을 받쳐들고 진아의 앞에 세팅하기 시작한다. 술 따르기 시작하는 진아. 허허거리며 진아를 더듬는 이실장. 진아가 몸을 빼내려 하자 돈 뭉치 꺼내 진아의 가슴팍에 넣어 주는 이실장. 만 석:(고함 지르려는데 숨이 턱턱 막힌다. 간신히 쥐어짜는 소리로) 진아야. (스테이지로 올라가려는데) 진 아:(일어서서 만석을 막아선다) 지쳤어. 만 석:우, 우리 결혼…. 진 아 :모르겠어? 나…술집 다니는 거 소문 다 났어. 만 석:괘, 괜찮다…. 진 아:(슬픈 표정이나, 모질게) 돌아가. 술취한 이실장, 비틀거리며 진아에게 다가와, 안 듯이 스테이지 쪽으로 끌고 간다. 따라가려는데 눈 부라리며 막아서는 박PD. 진아를 따라가려고 버둥거리는 만석. 박PD, 만석을 세차게 밀어 버린다. 그 힘에 바닥에 엎어지는 만석. 만석이 넘어지면서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 퇴장하는 사람들. 넘어진 채로 흐느껴 우는 만석. 만 석:진아야…. 도장 들고 등장하는 채연. 채 연:엎어져서 뭐하는 거야? 4부방송 써야지?등장하는 박PD. 채 연:(도장 내민다.) 오빠가 찍어. 박 PD:(계약서 보이며) 읽어는 봐야지? 고개 젓는 채연. 채연만 바라보던 만석, 계약서를 가로채 읽는다. 계약서를 박박 찢어발기는 만석. 박PD, 경악해서 말까지 더듬는다. 박 PD:너, 너? 이, 이, 이거? 기가 막혀 입까지 헤- 벌리는 박PD,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 한숨 쉬며 찢어진 종이를 주워 가지고 퇴장하는 박PD. 미친 듯이 깔깔대며 웃어대는 채연. 채 연:호호호호. 진짜 귀엽네 이 오빠? 박PD랑 이실장 찜쪄먹겠어? 만 석:도장 찍으면 어떻게 되는지 정말 모르는 거니, 진아야? 채 연:(담배 꺼내 문다.) 오년 뒤에 대 스타가 되는 거지. 만 석:거짓말. 채 연:인터넷에, 휴대폰에, PDA에 내 모습이 팍팍 뜰 거야. 앞으로. 만 석:다 거짓말이다. 채 연:멀쩡하네? 안 미쳤어? (만석의 얼굴에 담배 연기 내뿜는다.) 맞아. 말 그대 로 노비 문서. 계약서라는 이름의 노비 문서. 만 석:(콜록거리며) 벗으라면 벗고, 춤추라면 춤추고. 꽃다운 나이 다 보내고 조 금 이라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위약금 물어내야 한다…. 갑자기 스테이지로 뛰어 올라가는 채연. 스테이지 조명이 다시 강렬하게 비추어진다. 과거, 채연의 모습이므로 조명이 강렬할 뿐 천박하지는 않다. 채 연:안녕하세요? 접수 번호 445번 나채연이에요. (꾸벅) 세계적인 여배우가 되는게 제 꿈이랍니다. 36-24-38. 특기요? 뭐든 시켜만 주세요. 춤, 노래, 연기…(섹시하게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어 댄다.) 라크 버진~ 우~ (갑 자기 노래를 뚝 그친다.) 네? 신음 소리요? 시나리오에 그런 내용은 없던데? 아니에요, 아니에요. 잘할 수 있어요. (리얼하게 신음 소리 내는) 오우~ 아~ 아~ 채연의 간드러진 신음 소리가 최고조를 이르면서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 멍하니 쳐다보는 만석. 일어서려는데, 온통 붉은 빛으로 스테이지 조명이 밝아진다. 스테이지 중앙에 섹시한 포즈로 누워 있는 채연. 그 앞에서 에로 영화 감독으로 분한 이실장이 확성기 들고 앉아 있다. 카메라 들고 설쳐대는 박PD, 에로 영화 촬영겸 조감독으로 분해 있다. 감독(이실장):(소리질러 댄다.) 야-야- 가슴팍 드러나게 팍팍 벗어제끼라니까? 채 연:(겁먹은 목소리로) 가, 감독님. 시나리오가, 내용이 달라요. 감독(이실장):니가 메멘토냐? 한말 또하구 또하구 되풀이하게? 퀄리티를 위해서 씬을 추가했다고 몇 번을 말해? 채 연:그, 그치만, 그치만…. 감독(이실장):니 한 몸 바쳐서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겠다며? 오디션 때 니 입으루다가 읊었냐? 안 읊었냐? 채 연:그때는 시나리오가 정상적이었구요…. 감독(이실장):그래서? 채 연:(결연히 일어선다.) 못 찍겠어요. 감독(이실장):(채연의 얼굴에 계약서 던진다.) 이건 엄연히 계약 위반이야. 알아? 채 연:파기할래요. 계약…. 조감독(박PD): 위약금 물어내야 될 건데? 자그마치 삼십배! 채 연:네에? 사, 사, 삼 십배?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어두운 스테이지에서 채연의 신음 소리와 이실장의 목소리만 들린다. 감독(이실장):(소리만) 자-자- 좀더 섹쉬하게- 과감하게 리얼리티를 살려서, 그렇 지. 좀더, 더, 더…소리지르는 만석. 만 석:그만, 그만, 그만! (스테이지는 소리도 조명도 없이 조용해진다. - 스테이지 잠시 보고) 꿈을 꾸는 것만 같습니다. 악몽! 어른이 되어 갈수록 악몽이 늘어 만 갑니다. 그렇게 악몽을 꾸고나면 하나 둘 씩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젠 꿈이 무섭습니다. 꿈…나만의 꿈…(불현듯이) 진아를…찾아야 하는데…진아를…. 미친 듯이 스테이지로 달려가는 만석, 잠시 그 앞에서 주춤 선다. 두려운 얼굴로 스테이지를 바라보다천천히 올라선다. 스테이지에 올라서면, 조명이 밝아진다. 소품을 정리하면서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채연. 그 옆에 앉는 만석. 채 연:이 세상엔 뭐가 있는지 더 높이 날을 거야.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 주 지 않아~ 애잔하게 채연을 바라보는 만석. 채연의 짙은 화장이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후다닥 채연의 시뻘건 입술을 손으로 지우는 만석. 채 연:뭐, 뭐야? 태연하게 눈의 화장까지 벅벅 지우는 만석. 만 석:이쁘다. 진아야. 채 연:아우씨이~ 변태네 이 오빠? 세차게 만석을 밀어젖히는 채연. 풀썩 엎어지는 만석. 채 연:(거울 찾아 얼굴 본다.) 아우~ 씨바. 엉망이네. 만 석:미…안하다…. 채 연:그렇게 닮았어? 끄덕이는 만석. 거울 보면서 대충 화장기 지우고 스스로 머리를 반듯하게 묶는 채연. 보일 듯 말 듯 미소 짓는 만석. 일순 얼굴 마주보며 웃는 채연과 만석. 채 연:진아라는 사람, 오빠 애인이야? 어딨는데? 만 석:죽…었다. 인간은…환생한다.…그게…너다.…그렇지 진아야? 채 연:순정파네 이 오빠. 그런 사람이 이 바닥엔 뭐하러 기어 들어왔대? 하긴…직업에 귀천 없다잖아? 이왕 온거 빨랑 돈 벌구 이 바닥 떠. 그래야 오빠 두 알콩달콩 여우 같은 마누라랑 살지. 만 석:진아랑 결혼할 거다. 가방에서 옷을 꺼내 채연에게 건네주는 만석. 목위까지 단추가 달려 있는 얌전하고 고상한 원피스다. 만 석:입어 봐. 채 연:나 주는 거야?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는 채연. 흡족한 표정으로 패션쇼하듯 무대를 워킹 한다. 만 석:결혼하자. 채 연:나? 나랑? 실수한 거야. 작가 오빠. 남자들은 말이야, 나를 만지려고는 해 도…특히 결혼이란 말 따윈…안 해. 만 석:진아야…채 연:채연이라니까? 따라 해봐. 천천히. 나, 채, 연. 만 석:나, 채, 연, 결혼…하자. 채 연:첫눈에 반한 거야? 나한테? 만 석:그래. 진아는…채 연:프로포즈라…가능성 있어. 오빠는 에로 작가, 난 에로배우. 딱이다. 딱! 바쁘게 등장하는 박 PD, 채연보고 기겁한다. 박 PD:그 옷 입고 촬영할 거 아니지? 채 연:어때서? 박 PD:이미 써먹었잖아, 그 컨셉? 식상해.채 연:그건 웨딩드레스고 이건…. 박 PD:벗어. 그 옷은 아니야. 영상이 안 된다구. 오로지 자극적인 거 볼려고 돈 내는데. 채 연:믿어 봐. 사람들도 좋아할 거야. 박 PD:실시간 방송이라구. 항의가 빗발칠 거야. 만 석:(시계 보더니 퍼뜩) 카메라 앞에 서. (박 PD 흉내내) 방송 오분전. 박 PD와 만석, 실랑이 벌이는 몸짓. 컴퓨터 앞에 서는 채연. 기어이 박 PD를 뿌리치고 카메라 작동시키는 만석. 손가락으로 큐 사인 보내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차분히 앉아 있는 채연. 채 연:안녕하세요? 불끈 님, 무기님, 조아조아님. 그 외에도 많이들 들어오셨네요. 순간 모니터에 빠르게 항의성 자막이 떠오른다. 무 기:벗는 게 최상의 정치!! (이빨 드러내는 이모티콘 떠오른다.) 노 예:안 벗는 년 프로도 아니라며? (화난 얼굴의 이모티콘 떠오른다.) 밝 힘:삐리리 웬일이니 웬일이니 웬일이니? 나채연 웬 내숭? 미스터빅:오늘, 전 회원 탈퇴의 날… (검은 장미의 이모티콘이 다발로 떠오른다.)떠오르는 자막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 채연. 안절부절못하는 만석에게 눈짓 보내는 박 PD. 씨근덕거리며 뛰어들어오는 이실장. 무대를 한바퀴 휘익 둘러본다. 이실장:어떤 새끼야? 누가 방송을 이따우로 하래 엉? 둘러보다 카메라 잡고 있는 만석에게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린다. 맞고만 있는 만석, 쓰러진다. 계속 짓밟아대는 이실장. 말릴 생각조차 하지못하는 박 PD. 이실장:개새끼. 누굴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어. 말해 봐 새꺄. 계속되는 발길질과 주먹질. 당황한 채연, 다급해져서 원피스를 세로로 ‘부욱’ 소리나게 찢는다. 일순 무대에 스치는 적막. 모든 동작 정지하고 채연만 주목하는 사람들. 암전.조명 밝아지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만석. 코며 입이며 피가 엉겨 붙어 있다.손으로 만석의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아주는 채연. 채연의 손길을 느끼며 시니컬하게 키들거리는 만석. 그런 만석을 바라보다 같이 키들거리는 채연. 영 불편하게 서 있는 박 PD. 박 PD:너…진아가 죽고나서는 정말 이상해졌다. 만 석 ; 아무 것도 모른다. 다들…. 박 PD:결혼할 여자가 술집나간거, 가슴 아프겠지. 자살한 건 더욱 충격일 테고. 하지만…. 만 석 ; 임신했었다. 진아…. 박 PD:뭐, 뭐라고. 너 사고 친 거야? 만 석:내 애…아니다. 박 PD:그러면 술집에서, 만 석:홀아버지 약값 벌겠다고 아무도 모르게 나간 거다. 박 PD:그런걸 동네 사람들한테 들켰으니…. 만 석:세상은 바뀐다는데, 휴대폰에서는, 인터넷에서는 성(性)을 판다는데…진아는…진아는 …. 채 연:원래가 순수한 건 깨지고 흠집 나는 거야. 현실이 그래. 현실이…. 박 PD:시간이 지나면 사랑도 사람도 잊혀진다. 만 석:움직이는 거라구? 사랑이? 광고가 떠들고 인스턴트가 판치고…나는 왜 움직이지 않을까….(채연 바라본다.) 진아는 남아 있는데,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데…왜 모든 게 변할까…. 좋은 건…. 채 연:멋지다. 이 오빠, 맘에 들어. (박PD 보고, 자랑하듯) 나한테 결혼하쟀어. 박PD, 어이없게 쳐다본다. 만석에게 충동적으로 키스하는 진아. 때마침 등장하는 이실장. 이실장:어쭈구리? 눈까지 맞았어? 저 새끼 짜르라니까 너 뭐하는 놈이야? 채 연:벗을게.화끈하게 벗는다구. 회원수 안 줄어. 봤잖아? 옷 찢어서 반응 좋았 던 거. 처음부터 컨셉이 그거였어. 그거였다구. 이실장 ; 뭐야?박 PD:그, 그게, 그러니까…. 이실장:더듬지 말고 말해. 새꺄. 박 PD:마, 맞습니다. 고전적인 원피스에 갑자기 옷을 찢을 꺼라고 누가 상상을 하겠습니까? 이실장:그랬단 말이지? 다시 방송 시작해. 지금부터 내가 방송에 관여한다. 박 PD, 카메라를 손본다. 살며시 만석의 머리를 바닥에 편히 눕히는 채연. 아니꼽지만 참는 이실장. 채연, 카메라 앞에 선다. 차분하게 묶은 머리를 풀어헤친다. 카메라가 작동되면 이실장, 채연에게 인사 멘트하라고 사인 보낸다. 무시하고 음악에 맞춰 천천히 춤추는 채연. 이실장, 말하라고 계속 손짓해 댄다. 채연, 말없이 옷 벗는다. 잠든 것 같던 만석, 벌떡 일어나 채연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러다가 소리 없이 서랍으로 간다. 장난감 총을 꺼내 드는 만석. 각자의 일에 몰두해 만석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 만 석:소, 손들어! 이실장:또 뭐야? 만 석:쏘, 쏜다.이실장:저거 미친놈 아니야? 장난감 총 들고 설치면, 어쩔 건데? 박 PD:그만해. 만석아. 만 석:모두 카메라 앞에 서. 이실장:장난 하냐?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만. 그래, 오랜만에 우리 빙신 춤 한 번 춰 보자. 엉. 이실장이 만석에게 다가가려 하자, 급하게 이실장을 안다시피 카메라 앞에 세우는 채연. 천천히 춤추며 이실장의 온몸을 애무하기 시작한다. 채 연:(귀에 대고) 속삭이는 컨셉이야. 저 총, 소품으로 쓰라며? 이실장:그래? 은근슬쩍 채연에게 몸을 밀착시키는 이실장, 기묘한 성적인 쾌감을 느낀다. 점점 더 노골적으로 채연의 몸을 더듬기 시작하는 이실장. 이제는 방송이라는 자각보다는 본능에 따르고 있다. 순간 모니터에 여러 개의 자막이 빠르게 떠오른다. 야 수:와- 새롭다!! 새로운 장르? 에로다큐? (두 눈 튀어나오는 이모티콘 떠 오른다.) 불 끈:앞서가는 삐리리! 오늘 방송 별 다섯 개! (별모양의 이모티콘이 주르르 떠오른다.) 터프게이: 에로 방송 대상 줘라~~ 무교동:리얼리티 짱이다! (엄지손가락 보이는 이모티콘 떠오른다.) 귀족:전국에 알려 회원수 늘려 주자!! 갑자기 쏟아지는 반응을 보고 입이 찢어져라 웃는 이실장. 이실장:와하하하. 이것 봐라? 반응이 이렇게 좋아? 박 PD:크, 클릭 수가 급증해요. 갑자기 폭주해서 접속이 안될 지경이에요. 이실장:그래 그래. 이 한 몸 바쳐서 한 밑천 땡겨 보자. 우히히. 좋았어. 아주 좋아. 클릭수. 만 석:(총구를 박 PD에게 겨누며) 카메라 앞에 서. 박 PD:너 정말 미쳤어? 이실장:들어와 새꺄. 대장이 벗는데 쫄병이 구경만 해? 울상이 되는 박 PD. 눈을 부라리는 이실장. 어쩔 수 없이 카메라 앞에 서는 박 PD. 스스로 옷을 벗는 이실장. 동물적인 본능과 자극에만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 PD 역시 처음엔 어색하게 움직이지만, 차츰 채연의 동작에 동화된다. 점점 행위에 몰입하는 사람들. 한 몸이 되어 뭔가에 홀린 듯 같은 동작을 한다. 만 석:나는 너희들을 저주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이 내게 행한 악은 너무 크고 내가 너희들한테 행한 악도 너무 커서 그것은 자발적인 것일 수 없다. (詩-이지도르 뒤카스) 자연스럽게 채연의 몸을 더듬는 이실장. 그 모습 바라보는 만석. 부들부들 떤다. 총까지 떨린다. 이실장을 겨냥하는 만석. 박PD, 장난감 총인지라 말리지 않고 피식 웃는다. 이실장:쏴. 쏘란 말이야 임마. 그래야 클릭수 늘어나지?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쳐 잡는 만석. 침착성을 되찾는다. 만석, 다시 한번 이실장과 박PD, 채연을 차례로 바라본다. 아랑곳없이 채연의 옷을 벗기기 시작하는 이실장. 순간, 분노로 경련을 일으키는 만석,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탕-’ 찢어지는 듯 한 파열음. 겨냥이 빗나가 풀썩 힘없이 쓰러지는 박 PD. 시뻘건 피가 흥건히 번져 나온다. 놀라 만석을 바라보는 채연과 이실장. 만석, 총을 한 번 쳐다본다. 넋이 나가 풀썩 주저앉는 채연. 이실장, 갑자기 무릎꿇고 애걸복걸 빌기 시작한다. 비굴하기 짝이 없다. 이실장:저, 정선생, 아, 아니, 정작가님, 훌륭하신 작가 분이 이러시면 안되죠? 예? 진정하세요. 예술을 하신다는 분이 이러시면 아니 되십니다. 예? 잘못했어 요. 사,살려줘요, 응? 내가, 내가 다 사과할게. 응? 만 석:너희는 너희들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걸었으되 그 두 길은 모두 유사하 고 모두 삐뚤어진 길이었다. (詩- 이지도르 뒤카스) 무표정한 얼굴로 이실장을 바라보는 만석, 악마적인 미소 날린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만석의 얼굴에 피 흩뿌리며 쓰러지는 이실장.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만석을 쳐다보는 채연, 벌벌 떨고 있다. 총을 떨어뜨리는 만석. 털썩 주저앉는다. 아련하게 경찰 사이렌 소리 들려 온다. 채연, 놀라서 만석의 팔을 잡아끈다. 움직이지 않는 만석. 채 연:어, 어쩌지? 만 석:쉬고 싶다…. 채 연:무서워…도망치자. 응? 도망치자. 만 석:니 옆에서…잠들고 싶어 … 채 연:나, 난 아니야. 대 스타가 되는 게 꿈이야. 도망쳐야 돼! 만 석 ; 진아야…. 채 연:옆에 있어 줄게. 일어나. 만 석:(두 눈 감는다.) 채 연 ; 이대로 끝낼 수 없어! 긴박하게 경찰 사이렌 소리 들려 온다. 불안감에 싸여 도망 갈 곳을 찾아 무대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채연. 두껍게 덮여있는 창문 앞에 선다. 와락 커튼을 젖히는 채연, 힘들게 창문을 연다. 밖을 내려다보다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채 연:(주저앉으며) 토할 거 같아. 노, 높다. 주, 죽으면 어쩌지? 만 석:(비틀거리며 일어선다.) 같이 가 진아야. 채 연:주, 죽는 게 나을까? 아, 아니 잡히는 게? 만 석:이제는 안 놓친다. 점점 더 가깝게 들려 오는 사이렌 소리에 동요하는 채연. 채 연:여기서 끝내는 건 너무 억울해. 도망 쳐야 돼. 만 석:너만 있으면 된다. 사색이 되어 출입문을 바라보는 채연. 경찰들의 발자국 소리 들려 온다. 점점 울상이 되는 채연, 만석과 함께 창틀에 올라선다. 망설이던 채연, 만석을 의지하며 꼬옥 끌어 안는다. 다시 한번 절망스럽게 문을 바라보는 채연. 문 앞까지 경찰들의 발자국 소리 들린다. 뒤이어 들려 오는 확성기 목소리. 두 눈 질끈 감는 채연. 경관 목소리:너희들은 포위됐다. 손들고 순순히 자수해라. 셋을 세고 들어간다. 하 나, 두울, 세엣- 크게 문 부서지는 소음과 동시에 비명 지르며 뛰어 내리는 채연과 만석.“아악”하는 두사람의 비명이 찢어지듯 날카롭게 울려 퍼진다. 암전. 어두운 무대에 음악 흐른다. 뒤이어 흘러나오는 뉴스. 소 리:다음 뉴스. 오늘 새벽 인터넷 방송국 내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건 당시 비디오 자키로 촬영 중이던 나모 여인과 가해자 정모씨는 1층에서 도주하려다 추락, 병원에 이송됐으나 나모 여인은 혼수 상태에 빠졌습니다. 정모씨는 현재 약국에서 아스피린을 받아먹고 안정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각 정부 부처의 반응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문광부와 내무부는 서로 조사권을 주장, 부서간에 큰 충돌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여성부에서도 관심을 표명하는 가운데…. 음악 흐르면서 막. ◆당선소감 이제 겨우 조그마한 목소리로 소리내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저기요… 저 아직 죽지 않고 글써요….”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잠 속에서 꿈결처럼 당선 소식을 들었다.믿어지지 않아 텅 빈 머리로 조금 더 누워서 빈둥거렸다. 남들이 열 개를 가질 때 다섯 개를 가지면 만족한 것이 나라는 사람이었다.하지만,그 다섯 개를 가지지 못하면 미쳐 버리는 것 또한 나라는 사람의 습성이었다.글이라는 것이…,내게는 그 다섯 개였고 전부였다.기쁨을 나누면 배가되고,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준다고 했던가? 책임감처럼 전화질을 해댔다.그러고는 곧 또다른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앞으로 단명하지 말고 더욱더 좋은 글을 쓰라는 달콤한 채찍질이구나….더 많이 공부하고,겸손한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하는 거구나….그 사실에 눈물 나도록 감사했다. 졸업하고 한번도 찾아뵙지 못한 오교수님,깊이깊이 고개숙여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정말 감사합니다.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보아주신 큰아버님과 큰어머님,고맙습니다.당선 소식에 너무나 좋아한 윤환 오빠와 새언니,성희언니와 형부에게도 이 기쁨을 전합니다.선배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어 준 박수진 선배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애정을 가지고 지켜 봐준 성예 경희 나연 미현 현철 정석 우석 석윤 재중 남헌이…,모두에게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변혜령 ●약력 71년 서울생 서울예대 극작과 졸업“우승컵 양보없다” ◆심사평 모더니즘의 기수였던 T S 엘리어트나 제임스 조이스는 모두 극을 최고의 예술장르로 여겼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쓴 희곡들은 시나 소설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한정된 시공간에서 살아있는 배우가 압축된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 희곡은 무엇보다 입체적인 연극적 상상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문학지망생들에게 희곡은 그만큼 긴 시간의 수련이 필요한 장르다.이번 희곡 응모작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소재가 다양해졌다는 점이다.분단문제나 문명비판,지하철 노숙자나 재개발 문제를 둘러싼 사회문제와 가족관계 등을 골고루 다뤘다.식지 않은 월드컵의 열기도 느껴진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진부한 시각과 관념적인 글쓰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많은 경우 서술적인 전개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최종심의에 오른 작품은 ‘나난 가노란 말도 못다 고’와 ‘장난감 총’이다. ‘나난…’은 남편의 오랜 병수발을 한 아내가 남편이 잠시 숨을 멈추자 불효한 아들에 대한 분노로 먼저 세상을뜬다는 내용의 작품이다.상황 설정이 기발하고 반전의 묘미를 준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장난감 총’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이의가 없었다.성인 인터넷 방송국을 무대로 성과 양심이 매매되는 우리 사회의 비극적 단면을 드러낸 작가의식이 결코 가볍지 않다.다채로운 무대활용 기법,동시대적 언어감각,시종 극적 긴장을 이어가는 탄탄한 구성력이 자칫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희곡에 연극적 재미를 더해준다. 오래도록 우리 무대를 지키는 작가로 남길 바란다. 오태석 김미희
  • 오피니언 중계석/ 개혁불능한 종말론적 교육 ‘교육 누아르’의 유형 제시

    -조상식 서울대 교육硏 연구원 ‘교육비평' 기고 ‘누아르 영화’라는 말은 익숙하겠으나 ‘교육 누아르’는 대부분에게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계간지 ‘교육비평’ 겨울호에서 서울대 교육연구소 조상식 연구원은 억압과 규격화로 비판받아온 인류의 교육행위,즉 인류문명의 중요한 동력이면서도 어떠한 개혁으로도 불가능한 ‘종말론적 교육’을 일컬어 ‘교육 누아르’라 이름붙였다.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일까.필자는 ‘교육 누아르’의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포스트모던적 교육담론을 자세히 소개한 뒤 ‘시론적인 해답’을 구해 보고자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대 할리우드는 암흑가를 무대로 하는 새로운 양식의 흑백영화를 선보였다.이른바 ‘필름 누아르’.당시 할리우드 영화의 주류인 화려한 웨스턴이나 뮤지컬을 조롱이나 하듯 일종의 우상파괴적인 영화언어를 표방한 것이다.이러한 ‘필름 누아르’가 교육의 역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음은 흥미롭다.60년대 말 이후 교육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 많이 등장했다.당연시해온 인류의 오랜교육행위는 억압과 규격화로 비판받기에 이르렀다.칸트의 ‘선의지’(善意志)라는 개인윤리와 전통적 미풍양속이라는 사회윤리에서 도출,정립한 19세기 초 헤르바르트의 교육목적론도 크나큰 도전을 받게 된다. 필자가 ‘교육 누아르’라고 규정한 교육적 담론에 속하는 흐름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첫번째 유형으로,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교육행위가 보여온 잔인하고 억압적인 사례를 수집하는 시도들이 있다.밀러의 ‘태초에 교육이 있었으니’를 비롯한 일련의 정신분석학적 저서들이 이에 속한다.여기서 교육은 성인의 왜곡된 성격이 자식들에게 대물림하는 숙명적인 악순환으로 그려진다. 두번째 흐름은 첫번째와 달리 다소 휴머니즘적 관점으로 교육 및 학교를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적 모형을 제시하려는 시도다.그것은 역사적 분석보다는 자본주의 학교 비판에 초점을 두던가,아니면 루소 사회사상 전통의 자유주의적 유산을 물려받고 있다.이때의 비판론은 인간의 교육행위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올바른 교육실천을 위해 교육제도 밖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따라서 비판의 논조는 첫번째 흐름보다는 밝다. 마지막으로,대부분의 학교 및 교육비판적 논의들이 보여온 다소 조악한 이론적 틀과 달리 독자적 연구인식론을 갖고서 교육행위 및 의미를 비판적으로 ‘해체’하려는 시도들이 있다.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교육담론이 여기에 속한다.이 흐름의 교육담론은 80년대 중반 이래 학문적 경향을 이끈 몇몇 거장들의 후광을 받아 학문적 권위를 내세웠다.이 논의의 특징은 앞의 두 흐름과 뚜렷이 구분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교육 누아르’로 볼 수 있다. 서구나 한국의 교육학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상대적으로 배척돼온 주제였다.그러나 후기구조주의자인 푸코의 분석을 받아들인 학교 및 교육의 역사에 대한 ‘해체’ 시도가 없진 않았다.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인용하듯 제도로서의 학교는 가장 중요한 미시권력이 미치는 장소 중의 하나다.신분질서가 엄존한 중세사회에서 학교는 성직자와 귀족계급에 특권화했다.이때의 교육목표는 본질적으로 신체적 거동의 규율화를 지향했다.‘교육 누아르’의 마지막 유형인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은 인간의 교육행위 일반과 교육제도가 본질적으로 촘촘히 엉켜 있는 권력의 손아귀에 있음을 주장한다.이러한 퇴폐적이고 종말론적인 교육담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그동안 거대한 목적론적 역사철학에 기반을 두고 행해져온 교육사업들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교육 누아르적 비판이 ‘부정적 계기에만 머물러’있다는 것이 본질적인 한계지만 거기서 제공하는 풍부한 비판적 자료와 아이디어는 교육 실제를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교육 누아르’의 현란하고 예상치 못한 상상력은 교육실천에 미학적 감수성을 제공할 수 있다.교육실천은 실제에 대한 예리한 분석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수용도 필요로 하지 않는가. 정리 황수정기자 sjh@
  • 책꽂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나눔(박원순 지음,중앙M&B 펴냄) ‘1%나눔 운동’을 벌이는 ‘아름다운 재단’의 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가 돈버는 방법이 아닌 돈쓰는 방법을 제시했다.저자는 이 책에서 ‘나눔의 바다’로 들어서기까지,그리고 이후 ‘나눔의 전도사ㆍ희망의 중개인’을 자임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잔잔하게 이야기한다.8000원. ●한나 아렌트 정치판단 이론-우리 시대의 소통과 정치윤리(김선욱 지음,푸른숲 펴냄) 여자·유태인·망명자라는 ‘3중의 주변인’으로 겪은 체험을 정치사상으로 승화시킨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사상을 다뤘다.우리는 왜정치를 혐오하면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이는 마치 우리가 먹지 않으면 생명을 어어갈 수 없듯이 정치가 인간 삶의 근본조건이기 때문이다.저자는 정치는 근본적으로 문화이고 삶임을 아렌트의 정치이론을 통해 해명한다.1만 2000원. ●한영불교사전(서광 엮음,불광출판부 펴냄) 미국 보스턴 서운사에서 수행정진하며 영성심리학을 공부하는 저자가 10여년의 자료정리 끝에 펴냈다.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등도 함께 표기했다.3만 5000원. ●개인주의의 등장(아론 구레비치 지음,이현주 옮김,새물결 펴냄) 개인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유럽 근대문화의 뿌리를 이룬다.서구의 개인주의는 이제 전세계적으로 공유하는 문화가 되어간다.개인과 인간은 중세의 어둠을 뚫고 르네상스기에 이탈리아에서 비로소 ‘발견됐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정설이다.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단선적 역사관을 단호하게 거부한다.다원주의적이고 역사주의적인 접근방법을 택하는 저자는 북유럽의 영웅신화로부터 중세기사들의 다혈질적인 기질로 이어지는 게르만족의 정서를 추적한다.1만 5000원. ●세계를 변화시킨 기업 33(하워드 로스먼 지음,고정아 옮김,명진출판 펴냄) 세계적인 기업들의 탄생과 발전의 역사.세계 최고(最古)의 국제통신사 AFP,세계 최초의 대규모 소매 유통망 ‘시어스 로벅’,여성친화적 작업환경 구현의 선구자 ‘에이본’등을 소개한다.9500원. ●인연 이야기(법정 지음,동쪽나라 펴냄) 불교설화의 줄기는 크게 ‘자타카’와 ‘아바다나’로 나뉜다.자타카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로 본생담이라하고,아바다나는 출가한 부처님 제자나 독실한 재가(在家)신자에 대한 이야기로,비유라고 한다.이런 비유나 인연설화는 물론 불교만의 독창적인 것은아니다.불타 전기 비유문학의 정수인 ‘현우경’‘잡보장경’,법구의 비유와 그것이 생겨난 인연을 다룬 ‘법구비유경’등에서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를 골라 실었다.9000원. ●두 배로 벌면 열 배는 즐겁다(허시명 지음,오늘의책 펴냄)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조각이나 그림뿐 아니라 기계공학에도 능한 과학자였으다.미켈란젤로는 건축가이자 시인·조각가였으며,‘셜록 홈스’의 작가 아서 코난도일은 의사였다.기업체의 오너들 역시 하는 일에 경계가 없다.이들은 시쳇말로 ‘투 잡스(two jobs)족’이라 할 수 있다.투잡스 전문가로 통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성공적인 투잡스족 생활의 지혜를 들려준다.9000원. ●전통 장신구(장숙환 지음,대원사 펴냄) 시대별로 살펴본 장신구의 역사.구석기 시대의 장신구는 주술적인 의미가 강했다.그러던 것이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부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일종의 권력의 상징이 됐다.4800원. ●클라시커 50 성서(크리스티안 에클 지음,오화영 옮김,해냄 펴냄) ‘인식의 나무’열매를 먹고 선악을 분별하게 된 아담과 하와.동생 아벨을 미워해 결국에는 혈육을 죽이고 만 카인.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가진 장자로서의 권한을 가로챈 야곱….성서 속에는 기쁨과 슬픔,분노와 고뇌,사랑과 증오,갈등과 화해 등 인간의 모든 모습이 담겨 있다.이처럼 인간의 원형이 살아 숨쉬는책임에도 비기독교인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까닭은 종교적인 분위기와 감동,그리고 특유의 언어 때문이다.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종교 이야기라는 부담을 갖지 않고 성서를 접할 수 있도록 꾸민 것이 장점이다.1만5000원. ●마음고요(정목 지음,학고재 펴냄) ‘마음고요선방’을 이끄는 저자가 그동안 맺은 인연들을 돌아보며 쓴 편지글 모음.‘달마의 눈꺼풀’‘침묵의 향기’‘부드러움의 힘’‘눈물의 미학’등 30여편을 실었다.저자는 “진리의 길엔 승과 속이 따로 없으며,마음먹기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번 승과 속을 넘나들 수 있다.”고 말한다.8500원. ●한국사진과 리얼리즘(김한용·손규문·안종칠·이형록·정범태 사진,눈빛펴냄) 한국전쟁을 전후해 활동한 사진계 원로 5명의 리얼리즘 사진작품 70여점을 골라 실었다.해방 이후 한국사진은 크게 모더니즘 계열의 사진과 리얼리즘 계열의 사진으로 양분돼 왔다.전자가 풍경과 정물을 주제로 했다면,후자는 인간과 그들의 생활상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김한용을 제외한 4명은 모두 1950년대말 결성된 리얼리즘 사진 연구단체 ‘신선회’출신이다.2만 5000원.
  • 책꽂이/폭력의 고고학 外

    ●폭력의 고고학(피에르 클라스트르 지음,변지현 등 옮김,울력 펴냄)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과 마르크스주의 인류학을 극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저자(프랑스 인류학자)가 쓴 원시사회에 관한 글모음.그는 원시사회를 ‘국가의 성립을 항구적으로 거부하는 사회’로 본다.미개사회로서 계몽의 대상도 아니고,전 자본주의 사회로서 생산력의 발전이 이뤄져야 하는 사회도아니라는 것이다.1만5000원. ●전시의 담론(윤난지 엮음,눈빛 펴냄) 오늘날 미술관은 ‘미술관’이라는하나의 용어 아래 수렴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면모를 지닌다.전통적인 미술관 개념에서 벗어난 미술관들이 적지 않다.새로운,또는 여러 겹의 아이덴티티를 지닌 미술관들이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이 책은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미술관의 전시에 관한 담론을 펼친다.‘제시의 정치학:뉴욕 현대미술관’‘포스트모더니즘의 벽 없는 미술관’‘접촉지대(contact zone)로서의 박물관’ 등이 주요 내용이다.1만 6000원. ●이슬람사전(김정위 지음,학문사 펴냄) 이슬람교는 불교나 그리스도교와는체제가 전혀 다르다.그것은 종교,공동체,문화가 입체적으로 결합된 삼위일체의 종교다.1400년의 역사를 지닌 이슬람의 추종자는 세계 인구 다섯 명 가운데 한명 꼴.그 수가 13억에 이르며 무슬림국가는 60개국에 육박한다.이 사전에는 이슬람 관련 용어가 빠짐없이 실려 있어 이슬람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돕는다.8만원. ●선과 악(안네마리 피퍼 지음,이재황 옮김,이끌리오 펴냄) 인간이 무리를이뤄 살기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제기돼온 선과 악의 문제를 자연과학적·사화학적·철학적 관점에서 고찰.고대와 근대의 유토피아론(플라톤,토머스 모어,캄파넬라,베이컨),현대의 반유토피아소설(자마틴,헉슬리,스키너) 등에 대한 분석도 담겼다.1만원. ●우리 어디에 서 있어도(이대동창문인회 엮음,이대출판부 펴냄) 전숙희·조경희·나영균·정연희·천양희·함정임 등 이대출신 문인 78인의 학창시절이야기.9000원. ●삼신할미,음양의 파도를 넘어(강명자·황보임 지음,선 펴냄) 여성불임 한방 전문의인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심각한 역경도 극적인 반전도 없지만 저자의 성공적 삶의 요인이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파온 성실성임을 보여 준다.‘삼신할미’는 여성 한의학 박사1호인 저자의 별명.1만원. ●역사 속의 한국불교(이이화 지음,역사비평사 펴냄) 한국불교의 역사를 사회사적으로 조망.한국불교사 관련 책들이 대부분 사상사 중심인 것과 달리,불교가 이 땅에서 지나쳐온 역사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 역점을 뒀다.불교는4세기 후반 전래된 이래 그 본래의 가르침보다는 지나치게 세속의 길을 걸어 시대정신을 외면하거나 천박한 현실인식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중세유럽 기독교의 도그마와 타락이 이 땅의 불교에서도 연출된 것이다.이 책은 한국불교의 지난날을 냉정하게 돌이켜보게 한다.1만 6000원. ●검은 고라니는 말한다(J.G 니이하트 지음,김정환 옮김,두레 펴냄) 미국의시인인 저자가 인디언 예언자 ‘검은 고라니’와 인터뷰를 한 뒤에 쓴 인디언 최후의 항쟁기록.‘검은 고라니’는 인디언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저항한 ‘오그랄라수우족’의 예언자 겸 주술사.그는 생애를 되돌아 보며 인디언의 훌륭한 문화와꿈이 백인들에 의해 어떻게 처참히 무너져버렸는지 이야기한다.1만2800원. ●피부야 피부야(차미경 등 지음,삼성출판사 펴냄) 전문가들이 쓴 깨끗한 피부만들기 비법.눈가나 입술 등 빠뜨리기 쉬운 피부의 사각지대에 대한 관리요령도 담겼다.9500원
  • 문학평론가 최성실씨 계간 ‘문학·판’서 비판

    왜 한국문학에서는 성적 상상력이 빈곤한가? 문학에서 포르노·에로티시즘·섹슈얼리티는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가.문학평론가 최성실(35·인하대 강사)이 이런 의문에 진지한 답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최씨는 최근 발간된 계간 문학전문지 ‘문학·판’ 겨울호에 실린 특집 ‘한국문학과 성적 상상력’에서 “한국문학이 성 정체성과 섹슈얼리티,에로티시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거나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문학적 엄숙주의가 작용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성적 상상력과 섹슈얼리티 문제에 천착해 온 소설가 장정일·전경린·윤대녕을 거론하며,한국소설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포르노적 상상력과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로 극단적이고 가학적인 나르시시즘,완전한 파멸과 죽음을 담보하지 못하는 성적 상상력과 현실환원주의,여성의 원형적 이미지를 신비화하고 강조하려는 인식 등을 들었다. 최씨는 장정일의 소설 ‘보트하우스’에 대해 “에로티시즘의 미학이나 포르노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성적 기제에 대한자의식없이,반복적 일탈과소모적 일상을 되풀이하는 인물들의 성행위”만 그렸을 뿐이라며 “여성의성적 욕망이 어떤 측면에서 왜곡된 형태로 역이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평했다. 전경린의 최근작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소녀의 멈추어버린 성장’에 대해 “정체성의 문제를 섹슈얼리티가 가진 다양한 기제로 전이시키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고비판했다. ‘상춘곡’과 ‘에스키모 왕자’를 쓴 윤대녕의 작품과 관련해서는 “섹스행위를 통해 확인하는 것은 갈등과 고통이라기보다 지극히 존재론적인 것이며 합일에 이르는 어떤 것”이라며 “(윤대녕의 경우)세련된 문장과 수사에도 불구하고 섹슈얼리티 차원에서는 아직도 조용하고 다소곳하며,희고 순결한 여인에의 환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그는 “한국문학은 아직도 가부장적 논리와 계몽주의적인 서사틀에서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가.”라고 반문하고 “‘포르노 속의 여성이 남성 관객의 쾌락을 담보로 하는 성적 대상일 뿐이며,여성의 성적 권위를 실추시켰다.’고 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은 스스로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공박했다. 최씨는 포르노그래피가 ‘창녀’라는 특징적이고 상징적 대상을 염두에 둔용어여서 적어도 포르노그래피의 범주에서는 성행위가 관심의 초점이 되는것이 당연하다면서 “일부에서는 (포르노그래피가)대상을 성적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도 제기하나 실상 포르노 본래의 취지에서 본다면 전혀 문제될 게없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의 견해도 함께 소개했다.“창녀이기 때문에 아니,창녀라는 탈을 썼기 때문에 여성은 오히려 자신의 성적 욕망을 노출하고 노골적으로 쾌락을 즐길 수 있다.”는 보드리야르의 해석을 거론한 그는 “포르노는 주로 여성의 성기를 중심으로 촬영되는데,이때 여성은 어느 순간도 성적 불능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이는 여성이 성을 스스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남성은 그것이 발기해 있건 수그러져 있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며 하찮은 역할만을 맡을 뿐이다.발기한 남근이 변화시킨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한 보드리야르의 발언을 거듭 환기했다. 최씨는 “한국문학에서의 섹슈얼리티나 에로티시즘의 문제는 푸코의 지적처럼 ‘가장 어두운 곳에 갇혀 있는 것’일 뿐”이라며 “최근 들어 성 정체성,섹슈얼리티의 문제,에로티시즘에 대한 재해석,포르노의 새로운 평가가 본격화하고 있으나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논의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부산국제영화제서 만난 사람들/ 김수용감독, 도널드 리치 美영화평론가

    ■회고전 여는 영상물등급위원장 김수용감독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회고전을 여는 김수용(73)감독을 15일 남포동 PIFF광장에서 만났다.젊은 영화팬들 틈에서 베레모를 멋스럽게 눌러쓴 노(老)감독.핸드프린팅 행사를 앞두고 그는 “인생 최대의 행운을 가져다 준 부산영화제에 감사한다.”면서 “내 영화 수십편이 부산에서 찍은 것이라 감회가 더 새롭다.”며 상기된 얼굴로 기분좋게 웃었다. 최근 영화감독보다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김감독은,사실 40여년간 109편의 영화를 만든 한국영화의 산증인이다.특히 이번 영화제에는 10여 군데가 검열에서 잘려나간 1986년작 ‘중광의 허튼소리’가 무삭제판으로 상영된다.삭제된 뒤 김 감독은 항의표시로 10년 가까이 영화를 찍지 않았다.영화복원에 따른 소감을 묻자 그는 “참 기가 막히다.”라고 운을 뗀 뒤 “5분20초 분량이지만 메타포가 집약된 부분이라 감격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영화제에서는 이밖에도 전통을 소재로 한 ‘갯마을’‘산불’‘돌아온 사나이’와,새로운 형식으로 모더니즘 영화의 지평을 연 ‘안개’‘야행’‘화려한 외출’이 상영된다.‘안개’와 ‘화려한…’은 이미 매진된 상태.그는 “모든 영화에 영혼과 육체의 구원을 담아냈다.”고 자신의 영화를 소개했다. 언제나 한국영화 편이라는 김 감독은 젊은 감독에게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무겁고 가슴 아픈 ‘오아시스’같은 영화에도,웬걸요 관객이 호흡합디다.그렇게 주변 이야기를 강렬하고 진실되게 표현하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해요.” 최근 한국영화는 대부분 재미있지만 주제가 불분명하다고 평가한다. 다음 작품의 계획을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주제로 한 야한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배우 의상이 필요 없는….그때 누가 영등위 위원이 될지는 모르지만.(웃음)” ■심사위원장 도널드 리치 美영화평론가 “아시아영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창구인 부산영화제의 심사를 맡게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부문 심사위원장으로 부산에 온 미국의 영화평론가 도널드 리치가 15일서라벌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미국인이,게다가 평론가가 심사위원장이 된 건 이번이 처음.지금까지는 대부분 아시아 영화감독이 맡아왔다. ‘뉴 커런츠’는 부산영화제의 유일한 경쟁부문으로,아시아영화의 미래를 내다보는 전망대 구실을 한다.올해는 7개국 11편의 작품이 선보인다. 부산영화제를 처음 방문한다는 리치 위원장은 “영화감독으로서 전하려는 것을 제대로 전달했나를 최우선으로 볼 것”이라며 “보통 접하는 이야기가 아닌,동시대의 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표현한 작품을 뽑겠다.”고 심사기준을 밝혔다. 최근 아시아영화의 경향에 관해 묻자 “영화는 증권시장에 비유할 수 있다.”면서 “1960∼70년대는 일본영화가 세계의 관심을 끌었으나 요즘은 한국영화와 태국영화가 뜨고 있다.”고 대답했다.한국영화가 르네상스기를 맞은 이유로는 “좋은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데 제작시스템이 방해가 되지 않는 풍토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영화는 예술이자 상품입니다.당연히 감독과 제작자 사이에 줄다리기가 있죠.현재 한국영화는 그 줄이느슨해 창의적이고 생명력 있는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타임지에서 ‘일본 예술비평가들의 대부’라고까지 평가한 리치는 지금까지 일본영화에 관한 책을 40여권 썼다. 1962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회고전을 여는등 구미에 아시아영화를 소개하는 데 앞장서 왔다. 부산 김소연기자 purple@
  • ‘20세기 한국최고의 소설가’ 황석영씨

    우리나라 문학 관계자들은 20세기 한국의 최고 소설가로 황석영(58)씨를,최고의 문제작으로 조세희(60)씨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꼽았다. 이는 시공사가 발행하는 계간 ‘문학인’과 한국문예창작학회(회장 김수복)가 최근 ‘20세기 한국문학사 10대 사건 및 100대 소설’선정을 위해 공동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조사는 대학 국문학과 및 문예창작과 교수,문학평론가,문예지 편집위원 등문학 관계자 등 109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조사 결과 항목별 상위 순위는 다음과 같다.(괄호안은 득표수) ◆작가별 순위(소설) ▲황석영(88) ▲최인훈(87) ▲조세희(85) ▲김승옥(83) ▲염상섭(79) ▲김동리(73) ▲이청준(70) ▲이상(69) ▲이광수(68) ▲채만식(65). ◆작품 순위(소설) ▲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76) ▲최인훈-광장(68) ▲김승옥-무진기행(58) ▲이상-날개(53) ▲염상섭-삼대(50) ▲김동리-무녀도(49) ▲이광수-무정(46) ▲김동인-감자(38) ▲이청준-당신들의 천국(38) ▲박완서-엄마의 말뚝(37) ◆논쟁사조 분야 ▲카프의 활약(64) ▲민족문학론의 대두(52) ▲순수-참여논쟁(52) ▲4·19세대의 문학조류 형성(49) ▲신체시,신소설의 등장(48) ▲80년대 노동문학의 확산(46)▲여성작가들의 대거 등장과 페미니즘 문학론 확산(45) ▲이광수의 등장(42) ▲영상매체 등 문학의 매체적 확산(41) ▲모더니즘 시의 한국적 수용(35) ◆제도·매체 분야 ▲계간 ‘창작과 비평’‘문학과지성’의 활동(81) ▲창조 폐허 백조 장미촌 영대 금성 등 문학동인지 창간(71) ▲월·납북 작가,작품의 해금(69) ▲신춘문예 시행과 융성(64) ▲사이버 공간에서의 문학 활성화(48) ▲구어체 문장의 실천(48) ▲실천문학 등 80년대 무크·동인지의 약진(44) ▲한글날(가갸날) 제정과 한글 맞춤법 통일안 시행(42) ▲현대문학등 월간 문예지 창간(39) ▲소년 등 근대적 문학매체를 통한 문학활동(36) 심재억기자 jeshim@
  • 연극 리뷰/ 극단 백수광부 ‘보이첵’, 색다른 해석… 재미있게 만든 고전

    독일 작가 게오르크 뷔흐너가 19세기 초에 쓴 미완성 희곡 ‘보이첵’은 다양하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도구적 이성주의에 길든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고,질투에 눈먼 남자의 복수를 다룬 심리극이기도 하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어서 지금까지는 주로 실험주의 연극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극단 백수광부가 그린 ‘보이첵’(연출 임형택)은 색다른 해석을 아우르면서도 정통 연극 스타일로 꾸몄다.특히 색색의 조명과 그림자를 활용한 무대,거친 몸짓과 춤 등은 이 공연을 다른 어느 ‘보이첵’보다 재미있고 쉽게 다가서게끔 했다.그동안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 극단으로서는 파격적인 변신인 셈이다. 가장 큰 특징은 모든 등장인물을 사회구조의 희생물로 그린 점.이를 위해 유모 역인 칼을 원작과 다르게 조종자로 설정했다. 막이 밝아지면 등장인물 모두가 검은 옷을 입고 나와 제각각 움직인다.천진난만한 몸짓에서 난폭한 춤까지.조종자는 조용히 이들을 지켜본다. 결국 모두 조종자에 이끌려 꼭두각시처럼 구호를 외치며 퇴장한다.여기서 조종자는 보이지 않는 권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다음 장면부터는 연출의 의도가 잘 살아나지 않는다.조종자는 때로 극중 인물과 대화를 나누고,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물이 돼 서성거린다.후반부에서는 유모로 등장해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한다.연출가는 권력이란 본래 아주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고,가시적인 동시에 비(非)가시적인 것이란 것을 말하고 싶었겠지만,관객은 혼란스럽다. 하지만 점차 혼돈에 휩싸여 가며 연약한 인간이 돼 가는 보이첵 역의 최광일과,남성의 폭력성을 분출한 군악대장 역 최지웅의 대조적인 연기는 극을 압도한다.동물과 아기 역 배우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도 연신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나름대로 재미있게 고전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17일까지 평일 오후 7시30분,토 오후 4시30분·7시30분,일 오후 3시·6시 연우소극장.(02)744-7090. 김소연기자
  • 부음/ 한국추상화 선구자 유영국 화백

    한국적 추상화의 선구자인 서양화가이자 예술원 회원인 유영국(劉永國·사진) 화백이 11일 오후 9시 숙환으로 별세했다.87세. 한국 모더니즘의 1세대인 그는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38년 일본 동경문화학원 유화과를 졸업했다.그해 제1회 일본 자유미술전 최고상을 받은이래 최근까지 60여년 일관되게 기하학적 추상 회화를 추구했다.주요 모티브인 ‘산’을 통해 그는 엄격한 기하학적 구성과 강렬한 색채의 조화를 통해 예술세계를 구축해나갔다.국전 초대작가,현대작가 초대전,상파울루 비엔날레,일본 동경국제 미전,한국현대회화 동경전 등에 출품했다.1979년부터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한데다 한국미술협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예술원상,보관문화훈장 등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김기순(金己順),장남 진(進·한국과학기술원 교수),차남 건(建·건축가),장녀 이지(里知·서울대 미대교수),차녀 자야(慈也·공예가),자부 김명희(金明喜·한양대 사범대 교수) 김혜정(金惠貞·명지대 건축대 교수) 등이 있다.빈소는 서울삼성의료원,발인은 14일 오전 10시.(02)3410-6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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