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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탄생 100주년 문인 문학세계 비춘다

    올 탄생 100주년 문인 문학세계 비춘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들의 참담한 삶을 시로 옮긴 이용악, 일본 문단에 데뷔해 아쿠타카와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김사량, 도시적 감수성을 노래한 모더니즘의 기수 김광균, 우리 민족의 토착 정서와 서정을 파고든 오영수, 해방 후 재북 작가로 평양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유항림…. 재북 작가, 친일 의혹을 받는 작가, 모더니스트 등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1914년생 문인들의 문학 세계를 조명한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공동 주최하는 제14회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서다. 김광균, 김사량, 오영수, 유항림, 이용악, 장만영, 여상현, 함형수 등 작가 8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문학제의 주제는 ‘한국문학, 모더니티의 감각과 그 분기(分岐)’다. 기획위원장인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는 “올해 대상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스무 살 시절, 1934년은 군국주의와 내선일체 강요, 한글 교육 금지 등으로 문학이 크게 변화하던 변곡점이었다”며 “이 어두운 시대에 사회에 대한 환멸과 갈등을 깊이 다룬 작가, 향수와 비애에 휩쓸려 시대와의 대결을 피한 작가 등 이들이 시대에 문학적으로 어떻게 대응해 나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은 “돌올한 스타는 없지만 근대문학사에서 1930년대 문학이 지닌 경향과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인물들”이라고 강조했다. 다음 달 8일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세미나실에서는 해당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심포지엄이 열린다. 이어 9일 연희문학창작촌 야외무대 열림에서는 이들의 작품을 마임, 낭송, 무용, 영상소설 등 다채로운 장르의 예술로 변주한다. 김광균·이용악 학술회의(5월 24일), 김사량 국제학술회의(6월 20일) 등 부대행사도 이어진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꽃비보다 아름다운 예술의 유혹

    꽃비보다 아름다운 예술의 유혹

    4월의 푸른 하늘 아래 전시장들도 앞다퉈 화사한 봄옷을 차려입었다. 상춘객들을 유혹하는 전시 테마도 각양각색이다. 난분분하게 한바탕 흐드러진 벚꽃 잔치상을 물린 북한산, 인왕산 자락으로 다시 걸음 해 볼 일이다. 산자락에 옹기종기 붙어 앉은 미술관과 갤러리들에서 조각, 사진, 회화, 영상, 설치미술의 향연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길에 자리한 김종영미술관은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인 우성 김종영(1915~1982)의 조각, 드로잉, 서예 등을 모은 특별전 ‘무위의 풍경’전을 오는 6월 1일까지 이어 간다. 인위성을 배제한 ‘조각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추구해 온 김종영의 미감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김종영은 서구 모더니즘과 무위자연 의식을 접목해 자연적 질감을 극대화한 예술 세계를 펼쳐 왔다. 상업화를 늘 경계한 덕분이다. 이번 전시에는 대표작인 철조 ‘전설’과 나무에 채색을 한 ‘작품80-3’ ‘자각상’ 등이 포함됐다. 종로구 자하문길의 대림미술관은 오는 10월 12일까지 ‘트로이카’전을 펼친다. 기술이 감성을 깨우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되묻는 전시다. 젊은 외국인 예술가 3명이 ‘소리’ ‘빛’ ‘시간’을 주제로 과학과 예술이 분화되지 않았던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독일 출신 디자이너 코니 프라이어와 에바 루키, 프랑스 출신 엔지니어 세바스티앵 노엘 등 3명으로 구성된 그룹 ‘트로이카’는 2003년부터 영국 런던을 무대로 활동해 왔다. 기계 장치나 전자 기기 등의 인공적인 기술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운 빛과 소리를 흉내 내는 작업들이다. 트로이카는 미국 뉴욕 현대, 영국 런던 빅토리아-앨버트, 테이트 브리튼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다. 이번 전시에선 대표작인 ‘클라우드’와 ‘폴링 라이트’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클라우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한 작품으로 런던 히스로 공항 5터미널에 설치됐던 인기 작품이다. 종로구 세종길의 일민미술관은 한국영상자료원, 문지문화원 사이와 손잡고 오는 6월 8일까지 ‘토탈리콜’전을 선보인다. 미술가와 영화감독의 영상 작품을 동원함으로써 이종 장르의 미학을 접목했다. 8개 팀 13명의 작가와 감독은 ‘트로트, 트리오, 왈츠’(차재민), ‘철의 사나이: 만들어진 장소’(배윤호), ‘열린 도시의 이방인들’(김소영) 등 사회성 짙은 작품을 내놓았다. 지난해 박찬욱, 박찬경 감독이 제작한 ‘고진감래’는 시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제출한 1만 1852편의 영상 가운데 152편을 추려 63분 분량으로 편집한 것이다.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 못지않게 잊고 싶은 도시의 현재와 과거를 포착했다. 옥인콜렉티브의 ‘서울 데카탕스’는 트위터에 북한에 관한 농담을 올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퍼포머 ‘P’가 재판을 앞두고 화법을 교습받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김경만의 ‘삐 소리가 울리면’은 1960~1970년대 국가에서 만든 반공 홍보 영화, 교육 자료 등을 재조합해 선전 목적으로 제작한 영상이 오랜 시간이 지나 얼마나 이율배반적으로 가치 전환했는지를 드러낸다. 멕시코 출신의 작가 다미안 오르테가는 종로구 삼청길 국제갤러리에서 다음 달 11일까지 첫 내한 전시인 ‘리딩 랜드스케이프스’전을 이어 간다. 작가는 폴크스바겐 뉴비틀 차량을 분해한 뒤 차량 부품을 도면처럼 천장에 매다는 작품을 선보여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번 전시에선 1㎜∼5㎝ 크기의 수많은 작은 돌멩이를 투명한 실에 매달아 구 모양으로 선보였다. 10여점의 신작을 포함해 콘크리트와 벽돌, 알루미늄, 고무, 골판지, 스티로폼 등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다양한 작품들이다. 작가는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와 배우였던 아버지 밑에서 열린 교육을 받았다”면서 “작품 가운데 지각이 거대한 얼음덩어리처럼 부유하고 있다는 판 구조론을 연상시키는 작품도 있다”고 소개했다. 개인 사진전 가운데는 임채욱의 ‘인사이드 마운틴즈’전이 눈길을 끈다. 종로구 인사동길 아라아트센터에서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전시에선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폭 6m의 대형 사진 등 60여점의 작품이 내걸렸다. 산봉우리 등 겹겹이 이어진 산세를 접어서 표현하는 ‘부조사진’ 18점도 처음 공개한다. 서울대 미대 재학 시절 닥종이에 그림을 그렸던 작가는 겸재 정선이 살던 인왕산 자락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운무와 빛, 암벽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사진 회화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청춘] 박태원 ‘천변풍경’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청춘] 박태원 ‘천변풍경’

    최근 화제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놀랍게도 ‘구운몽’이 언급되었다. 남자 주인공 도민준의 “조선이 낳은 신개념 판타지 소설”이라는 한 마디에 관심이 폭발하는 바람에 고전 소설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조금씩 늘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물론 ‘구운몽’의 가치를 신개념 판타지 소설로만 정의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이 갖는 의미를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이런 의미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먼저 알고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다음에 찾아도 충분하다. 어떤 작품이든 감상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스스로 읽으면서 어떤 느낌으로든 문학 작품과 마주한다면 그 순간부터 문학이 주는 무한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특히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삶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소설을 그저 국어 공부로 배웠거나 배우고 있는 많은 이들도 국어 교과서를 보면 ‘삶의 조건’이라든지 ‘인간의 갈등’이라는 범주에 소설이 들어간다는 것쯤은 알 것이다. 소설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는 데 꼭 있어야 할 학문이다. 소설이 허구의 이야기이긴 하나 현재 우리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아무리 독특한 인물이나 사건, 배경이 등장해도 결국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기저로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실제 존재하는 곳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라면 그 느낌이 더 생생하게 와 닿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1930년대 청계천 주변에 사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다룬 박태원의 ‘천변풍경’(川邊風景)은 80여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어도 읽어 볼 맛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현재와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천변(川邊)은 청계천 주변을 이르는 말인데 알다시피 청계천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이다. 예전처럼 사람들이 모여 살지는 않아도 놀이 공간으로, 문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기에 이 책의 인물들을 알아가는 데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왜 청계천일까. 먼저 작품 속에서 청계천이란 공간은 닫혀 있으나 결코 답답하지 않다. 모두 50절로 이루어진 각각의 에피소드는 철저하게 청계천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간혹 관철동이라든지 종로라는 곳이 등장하지만 그저 스쳐가는 장소일 뿐이다. 특히 1절에 등장하는 빨래터는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작가가 청계천 부근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인지 몰라도 서울에서 이만한 소통의 공간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곳은 여전히 소통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빨래터는 이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소식을 통해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소통의 공간, 카페로 이어지고 있으니 천변의 풍경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닫혀 있지만 결코 짓누르지 않고 남의 고통을 즐기기보다 함께 안타까워해 주는 공동체적 의식이 존재하는 곳, 예나 지금이나 청계천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의 미학이 살아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청계천은 또 어느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시골에서 갓 올라온 창수에게 그곳은 혹독한 서울의 맛을 알게 해 준 동시에 서울내기 같은 약삭빠름을 배우게 되는 장소이고, 죽지 못해 살았던 처녀 과부 금순에게는 조금만 견디면 가족을 만나고 새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이다. 호된 시집살이와 남편의 외도로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이쁜이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의 공간이기도 하다. 현대인에게도 이곳은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걷고 싶은 공간이고, 답답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잠깐 휴식을 취하고 싶은 공간이다. 청계천은 변함없이 각각의 사연을 갖고 있는 변화무쌍한 공간이다. 그래서 더 정겹다. 원래 청계천은 조선 시대부터 생활하천의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한강과 달리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청계천은 도심에서 발생하는 온갖 쓰레기를 묵묵히 받아들여 서울이 도시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작품에서도 청계천의 이런 우직하고 포용적 모습이 한껏 드러난다. 집도 절도 없는 깍쟁이 떼도, 행세깨나 하는 약국집 주인이나 포목점 주인도 모두 청계천에서 울고 웃는다. 어떤 사람이 와도 청계천은 넉넉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씨를 가진 공간이다. 지금도 그렇다. 수많은 걱정거리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청계천 변을 걷는다. 도심을 생명력 있게 흐르는 냇물을 보며 머리를 식히고 시름을 잊으려 한다. 그래서 청계천은 여전히 우리를 품어 주는 포용적 공간이다. 이런 공간이니 이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은 작가에게 얼마나 매력적이겠는가. 이 책에 50명도 훨씬 넘는 등장인물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주요 등장인물만 해도 20명에 가깝다. 처음엔 1절부터 등장하는 여러 아낙네의 이름만 기억하기도 벅차 책을 덮을까 고민하게 되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그 많은 숫자는 사라지고 흥부가 자식 알아보듯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이 작품의 묘미다. 이는 재봉이나 점룡이 어머니를 관찰자로 내세워 다른 인물들을 살펴보는 서술과 작가가 직접 개입해 설명하는 서술이 조화롭게 이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민주사나 약방 주인, 강석주 같은 부정적 남성들과 만돌어멈이나 하나꼬 같은 전근대적 여성들처럼 몇 개의 인물군으로 구분해 놓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게다가 그들 모두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 친근함이 숫자를 덮고도 남는다. 이런 사람들 역시 지금의 천변 풍경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가상이 아닌 현실의 공간을 배경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을 아무런 극적 장치 없이 그려낸 작품은 ‘천변풍경’ 이후에도 얼마든지 있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이 그렇고,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이 그러하고 위기철의 ‘아홉 살 인생’ 또한 그러하다. 이런 책들이 계보처럼 이어지는 이유는 결국 인간의 가장 솔직하고 진실한 모습은 저 먼 곳이 아닌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 인생의 깨달음은 나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것이 바탕이 되어 더 크고 멋진 인생의 풍경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이러한 작품들이 말해 주는 것은 아닐까.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 볼 이유는 충분할 듯싶다. 많은 이들이 ‘천변풍경’을 평가하면서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또는 영화적 시점의 도입이라든가 메타 소설적 기법 같은 말을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 소설을 읽을 때 문학적 가치까지 섭렵해야 한다는 조건은 없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낯선 말들이 잔뜩 있어 읽기 곤란하다면 그것마저 넘기면서 읽어도 좋다. 그저 청계천이라는, 언제든 찾아가 볼 수 있는 공간을 배경으로 1930년대를 살아냈던 삶의 모습이 2014년에도 계속 이어져, 사람 사는 것은 어느 때나 마찬가지라는 점만 이해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어느 날 문득 청계천을 걷다가 여기쯤이 빨래터였을까, 저기 어디쯤에 이발소가 있지 않았을까 가늠해 보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청계천은 지금도 흐른다. ■ 소설가 박태원은 소시민 소재로 세태 풀어내… 월북 후 실명·전신불수에도 대하소설 집필 1930년대 소시민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세태를 풀어낸 소설가 박태원(1910~1986)의 호는 ‘구보’다. 1933년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이상 등과 함께 구인회 일원이었다. 그의 호에서 알 수 있듯이 단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박태원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목적 없이 외출한 소설가 구보가 겪은 단편적인 사건과 그에 따른 구보의 생각을 서술한 작품이다. 전차를 탔다가 선봤던 여자를 봤지만 못 본 척하다가 후회하거나 찻집에서 중학교 시절 열등생이 예쁜 여성과 있는 것을 보며 여성의 허영심을 탓하는 등 요즘 말로 ‘찌질한’ 모습들과 함께 돈 때문에 매일같이 살인, 방화범의 기사를 쓰는 사회부 친구에게 느끼는 연민과 같은 구보씨의 생각이 뒤섞여서 나열된다. 기승전결의 소설 구성과 거리가 있지만, 한편으로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보면 당시의 일상사를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게 박태원 작품의 힘이다. 박태원은 한국전쟁 중 북으로 넘어가 평양문학대학 교수를 지낸 월북작가다. 1965년 실명하고, 75년 고혈압으로 인해 전신불수가 됐지만 아내의 도움을 받아 대하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완성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김명자 과학으로 행복한 세상] 창조경제란 무엇인가

    [김명자 과학으로 행복한 세상] 창조경제란 무엇인가

    새 정부 출범 이후 한때 ‘창조경제’가 뭐냐고 말이 많았다. 용어 자체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논쟁의 홍수 속에서 실체가 무언지 감을 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유로는 ‘크리에이티브’(creative)를 ‘창조’라고 한 탓도 있는 것 같다. 창조라면 얼핏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무난하게 ‘창의’라고 했더라면 논란이 덜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우리도 모방의 차원을 넘어 개척자가 되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는 기초가 확실하고, 방법론이 탄탄해야 한다. 영국의 경영전략 전문가 존 호킨스는 2001년 저서 ‘창조경제’(The Creative Economy)에서 ‘새로운 아이디어, 즉 창의력으로 제조업, 서비스업, 유통업,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창조경제라 했다. 1997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창의산업(Creative Industries)을 주창하면서 신경제 체제를 강조했다. 1998년에 발표한 ‘미래의 창조:문화, 예술, 창의적인 경제를 위한 전략’은 산업혁명의 원조(元祖)로서 제조업 강국이던 영국의 엄청난 변신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들은 창의산업을 ‘개인의 창의성을 살려 지적 재산권을 설정하고, 그 활용으로 부와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광고, 건축, 미술과 골동품 시장, 공예, 디자인, 디자이너 패션, 영화, 쌍방향 레저 소프트웨어, 음악, 공연예술, 출판, 소프트웨어,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13가지 산업을 핵심 영역으로 지정했다. 창의산업의 등장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정치적, 사회문화적, 기술적 상징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블레어 리더십 아래 영국의 창의적 스피릿은 특정 산업 지원에서 탈피해 국민 개개인의 창의성을 밑천으로 새로운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혁신 체제로 이어진다. 그 결과 창의산업은 기존의 문화산업을 대체하는 데서 훌쩍 나아가 과학기술, 교육, 클러스터, 도시 등으로 확장되면서 새바람을 불어넣게 된다. 창의력 기반의 문명사회로 이행하는 한가운데서 문화산업 유래의 창의성이란 키워드를 주요 분야로 파급시켜 신경제체제로의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다. 이것이 영국식 창조경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해석은 어떤 것이 있을까. 국가혁신 체제의 틀에서 창의경제를 풀이하는 것도 시사적이다. 국가혁신 체제란 한마디로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연구개발과 비즈니스화를 거쳐 국민의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편익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유기체적 체제를 뜻한다. 미국의 최근 정의에 따르면 그 구성 요소는 ①자본의 흐름 ②노동력 풀의 유연성 ③정부의 비즈니스 수용성 ④정보통신기술(ICT) ⑤민간부문 개발 인프라 ⑥지적 재산권 ⑦과학기술 등 인적 자본 ⑧마케팅 기술 ⑨창의성 중시의 문화적 토양으로 규정된다. 한국이라고 해서 별다를 이유는 없다. 과학기술은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국제화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이들 요소가 골고루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일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창의경제의 틀이 특정 산업 중심의 발전전략이 아니라 창의성과 혁신을 유도하는 기본 요소의 강화와 연계라는 사실이다. 물론 성장동력으로서 ICT의 위력은 막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앞의 아홉 가지 요소 중 하나인 ICT를 과학기술 분야와 동격으로 놓고 창조경제의 혁신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우려스럽다. ‘이미 열리고 있는 바이오경제시대에 대한 대비를 놓치는 것은 아닌가’, ‘특정 산업 위주의 경제성장 논리가 전반적 혁신역량 강화에 순기능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염려가 있어서다. 창조경제를 위한 정부의 몫은 자본과 인력이 막힘 없이 흐르고 지적 재산권이 보장되는 등 혁신을 위한 기본토양을 조성하고, 창의적 인재 양성의 길을 터 주면 된다. 그로써 과학기술과 산업, 교육, 문화, 예술 등과의 모든 접점에서 융합 혁신에 의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창조경제 성공의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이사장
  • [문화단신] 모더니즘 기수 ‘이상 전집’ 출간

    태학사가 1930년대 한국문단을 이끈 모더니즘의 기수 이상(1910~1937)의 문학 세계를 한데 담은 ‘이상 전집’을 출간했다. 총 4권으로 이뤄진 전집은 각각 시, 단편·장편소설, 수필 등 장르별로 묶였다. 장편소설 편에는 이상이 월간 ‘조선’에 발표한 유일한 장편소설인 ‘12월 12일’의 원전, 완역본, 해설 등이 함께 실렸다. 시 편에는 작가의 일본어 시 원문뿐 아니라 주석, 현대어 번역 등이 추가됐다. 이상 문학 연구의 권위자인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의 해설과 주석이 곁들여져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여 준다.
  • 예술 입은 거리, 통하겠습니까

    예술 입은 거리, 통하겠습니까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의 안양예술공원. 이곳에는 허름한 백색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자리한다. 어느 각도에서나 다른 형태로 읽히는, 독특한 모양새다. 2005년 지어진 건축물을 보기 위해 매년 수천명의 건축가와 건축학도가 몰려들었고, 지금은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이 건물은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으로 꼽히는 포르투갈의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 작품이다. ‘알바루시자 홀’로 불리던 건물은 내년 개막하는 ‘제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를 앞두고 ‘안양파빌리온’으로 최근 이름을 바꿨다. 설계자인 비에이라의 의견을 존중하고,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다. 안양파빌리온의 재개관과 함께 지난 8년간 가까스로 명맥을 이어 온 APAP도 실험대에 놓였다. 2005년 1회 프로젝트 이후 2~3년 주기로 미술·건축·영화·공연 등을 통해 공공예술과 안양을 접목하려 했지만, 이렇다 할 호응을 얻지 못한 탓이다. 안양유원지를 예술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비롯된 행사는 평촌신도시 개발, 지역공동체 결합 등과 맞물리면서 시민과 호흡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공공예술’이 아직 국내에 낯설던 시절이었다. APAP를 주최하는 안양문화예술재단은 지난해 7월 아르코미술관장 출신인 백지숙 예술감독을 영입했다. 백 감독은 “시민들이 작품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과 연계된 프로그램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예술공원로를 따라 무질서하게 널린 수십점의 작품들을 리모델링하는 일이다. 백 감독은 “공공예술은 관리와 보존이 중요한데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일회성 행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존 설치됐던 작품에 다시 의미를 부여하거나 창의적으로 해체·보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내년부터 APAP에선 시민들이 직접 예술을 읽고 쓰고 말하는 등 다양한 방식이 시도된다. 우선 작가에게 예술을 배우고, 자신의 언어로 해석해 보는 ‘공원도서관’이 조성됐다. 또 과거 APAP 관련 자료가 정리된 ‘프로젝트 아카이브’가 꾸려졌다. 시민들이 1박2일간 꼬박 밤을 새워 가며 해외 유명 작가들과 예술작품을 만드는 워크숍도 마련된다. 하지만 지자체에 의존한 공공예술이다 보니 한계도 뚜렷하다. APAP는 시장이 바뀌면서 전임 시장의 홍보물로 치부돼 한때 존폐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심혜화 안양문화예술재단 팀장은 “인구 60만명의 안양에 시립미술관조차 없기에 신·구 도심을 이어 주는 매개체로서 APAP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PAP의 성패가 국내 공공예술의 향후 진로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APAP의 벤치마킹 모델은 탄광촌이었던 영국 뉴캐슬의 ‘게이츠헤드’나 군수 공장이 있던 독일 뮌스터의 ‘카셀’이다. 공공예술을 통해 삭막한 도시를 예술의 도시로 변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뮌스터의 경우 1977년부터 10년에 한 차례 개최되는 조각예술프로젝트를 통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소도시를 풍성한 역사와 생태의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공공예술은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실험되고 있다. 2010년 시작된 울산 남구 야음장생포동의 ‘신화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1960년대 석유화학공단에 밀려 고향을 떠난 주민들의 집단 이주지였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나서 담과 건물에 고래와 바다를 주제로 한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지금도 하루 100여명의 관광객이 들를 정도다. 신화마을은 이웃 울산 중구(우리동네 미술관 프로젝트)나 동구(벽화마을)는 물론 강원 정선·태백 폐광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도시 단위에선 서울시가 올해 닻을 올린 ‘도시 게릴라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건물주의 요청을 받아 행해지던 기존 미술 프로젝트와 달리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소재와 주제를 찾아내 남모르게 작업한다는 특징을 지녔다. 60여명의 예술가들은 지난달 13일부터 서울 북촌과 한강시민공원, 강변북로 등 5곳을 돌며 주택가 돌담이나 도로 방음벽에 큰 고래와 물고기 떼 등의 그림을 그리거나 ‘서울전망대’란 이름의 미술품을 설치하고 있다. 앞서 재개발로 텅 빈 철공소 등에 형성된 서울 영등포구 ‘문래창작촌’에선 2000년대 후반부터 매년 ‘문래예술공장 프로젝트’가 벌어지고 있다. 200여명의 입주 예술가들이 시민들과 함께 회화, 설치, 조각, 디자인, 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죽은 거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한국은행과 함께하는 톡톡 경제 콘서트] 중앙은행의 달라진 위상과 소통

    [한국은행과 함께하는 톡톡 경제 콘서트] 중앙은행의 달라진 위상과 소통

    서울신문은 오늘부터 ‘한국은행과 함께하는 톡톡 경제콘서트’를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앙은행으로서 거시·통화·신용·외환 등 부문별 최고의 두뇌들이 포진한 한국은행의 전문가들이 매주 하나씩 주제를 잡아 독자 여러분에게 알찬 경제지식과 시사정보를 1년여 동안 전달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첫 회는 한국은행이 서울신문 지면을 통해 독자들과 직접 만나게 된 데 의미를 담아 조홍균 경제교육팀장이 과거보다 한층 중요해진 각국 중앙은행의 대외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다뤄봤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이미지’의 관점에서 현대 사회의 여러 현상을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실재보다는 각종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현대 사회를 지배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는 21세기 미디어 사회를 이해하는 데 토대가 되는 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이론은 현실 세계의 다양한 현상에 대하여 통찰력 있는 설명을 가능케 한다. 현대전(戰)에서 세계는 미디어를 통해 전쟁의 참상이 아닌 미사일 발사 장면만을 목격하며 이에 따라 전쟁을 일으킨 죄책감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이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실재인 것처럼 작용한 예이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소비할 때 제품 자체보다는 TV 광고에서 보았던 유명 모델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중앙은행이 수행하는 통화정책도 실재보다는 미디어 등을 통해 표출된 이미지가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상정도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외부인에게는 장시간 심사숙고한 정책 수립 및 결정 과정이 아니라 TV 화면에 비친 중앙은행 총재의 모습과 발언이 정책에 대한 평가에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미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생각할 때 사람들은 뉴스매체에 나타나는 벤 버냉키(Ben Bernanke)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기자회견 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오늘날의 통화정책은 상당부분 그 ‘실재’(내부적 측면)보다는 ‘이미지’(대외적 측면)에 의해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중앙은행 내부의 정책 결정자와 외부의 경제주체 간에는 이른바 정보의 격차 및 경제관의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이미지의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커뮤니케이션(소통)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대의 통화정책은 시장 메커니즘 및 시장과의 피드백에 그 운영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더욱 중시된다. 과거에는 정책 수행과정을 외부에서 잘 모르도록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1920∼44년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총재를 역임한 몬태규 노먼(Montaqu Norman)의 모토는 “설명하지도 사과하지도 말라”였고 1980년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를 심층 분석하였던 언론인 윌리엄 그라이더(William Greider)의 책 이름이 ‘사원(Temple)의 비밀’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이 1987년 9월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내 말이 분명하게 이해되었다면 그것은 나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라고 밝힌 것은 당시의 통화정책이 투명성과 다소 거리가 있었음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중앙은행이 자신을 밖에 드러내지 않은 채 정책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중앙은행과 금융시장이 선도자와 추종자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1990년대 이후 금융 자유화와 혁신의 진전으로 금융시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자 중앙은행은 일방적으로 시장을 주도하는 위치가 아닌 시장과의 동반자 관계라는 구도에서 정책을 수행하지 않으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는 시장이 스스로 중앙은행의 의도를 따라오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동반자 간의 신뢰 형성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대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을 때 굳건해질 것이므로 중앙은행은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중앙은행과 시장 간 정보 비대칭이 축소되고 상호 이해가 증진될 수 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수행되는 통화정책은 보다 적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그 유효성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위기의 수습 과정에서 범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이 매우 커짐에 따라 중앙은행의 정책과 활동에 관한 정보의 수요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대중과 매스 미디어의 강렬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중앙은행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중요성과 필수 불가결성이 집중 조명되고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거시 건전성 정책이 중앙은행의 새로운 정책 과제로 부각되면서 중앙은행에 금융안정 권한을 부여하거나 강화하는 각국의 입법적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런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성 제고의 측면에서 보다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하는 사회적 인식이 강화되는 흐름도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중앙은행의 권한 확대가 책임성과 투명성의 제고를 통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이처럼 중앙은행을 둘러싸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여건은 마치 진화하는 생물체와도 같이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어 이에 어떠한 방법으로 접근해 나갈 것인가는 각국의 중앙은행에 주어진 중차대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조홍균 한국은행 경제교육팀장·미 워싱턴대 법학박사 [쏙쏙 경제용어] ■중앙은행 한 나라의 통화시스템의 중심이 되며 은행제도의 정점을 구성하는 은행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한국은행, 미국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및 연방준비은행, 영국은 영란은행 등이 각국의 특별법에 의해 설립돼 있다. 부분적으로 역할의 차이는 있지만 ‘발권은행’, ‘은행의 은행’, ‘정부의 은행’으로서 기본 공통점을 갖고 있다. ■통화정책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등을 통한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통화량이나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정책을 말한다. 통화정책은 공개시장조작, 지급준비제도, 여수신제도 등의 정책수단을 통하여 수행된다. 공개시장조작이란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에서 국공채 등의 유가증권을 매입 또는 매각함으로써 시중유동성을 조절하는 가장 대표적인 통화정책수단이다. 지급준비제도는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에 대한 법정지급준비율을 변화시킴으로써 금융기관의 신용공급능력을 조절하는 정책수단이다. 여수신제도는 중앙은행이 금융기관과의 대출 및 예금 거래를 통해 자금의 수급을 조절하는 정책수단이다.
  • 건축·IT·음악… 쉽고 재밌는 다큐의 장

    건축·IT·음악… 쉽고 재밌는 다큐의 장

    사색의 계절 가을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찾아온다. 올해 10회째를 맞는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가 그것. 10월 18~25일 열리는 EIDF는 전 세계 23개국에서 출품된 54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고려대 KU시네마트랩, 건국대 KU시네마테크, 광화문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된다. 이 가운데 43편은 19~25일 EBS 채널에서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방송돼 안방에서도 볼 수 있다. ‘진실의 힘’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영화제의 특징은 전통적인 휴머니즘과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은 물론 음악, 건축, IT 등 다양하고 연성화된 소재를 다룬 팝 다큐가 많아 보다 쉽고 재미있게 다큐멘터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제 개막작은 에바 웨버 감독의 ‘블랙 아웃’이다. 전기가 부족한 서부 아프리카의 빈국 기니의 아이들이 낮에는 노동에 시달리고 밤에는 시험 공부를 하기 위해 공항이나 주유소, 부촌의 공원을 찾아다녀야 하는 가혹한 현실을 다룬 작품이다. 경쟁 부문인 페스티벌 초이스에는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많다.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왼쪽)는 현재 1000만권의 책을 스캔해 인터넷상에 무너지지 않는 인터넷 도서관을 건설하고 있는 구글의 프로젝트를 통해 빅브러더의 출현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다큐멘터리다. ‘우리들의 닉슨’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백악관에서 물러난 닉슨 대통령의 최측근이 8㎜ 카메라로 닉슨의 일상을 촬영해 기존 언론에서 볼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이 밖에도 ‘게이트 키퍼’는 이스라엘의 3대 정보기관으로 꼽히는 신베트가 팔레스타인과의 대테러 전쟁의 실제 현장을 담은 자료와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전쟁의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월드 쇼케이스’ 부문에서는 최근 국제 뉴스 등을 통해 접한 사건들의 이면을 파헤치는 총 9편의 작품들이 초청됐다. 2011년 노르웨이 우토야 섬 총기난사 사건(‘우토야의 그날’), 아덴만의 소말리아 해적들(‘빼앗긴 바다:소말리아 해적 이야기’), 일본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쓰나미 후에 오는 것들’) 등이 대표적이다. ‘가족과 교육’ 부문에서는 알츠하이머로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아낸 ‘마리안과 팸’, ‘나의 어머니 그레텔’이 주요 작품이다. 올해 신설된 ‘도시와 건축’ 부문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모더니즘 건축 양식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 관한 ‘무에서 영원을 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상영되고 기술과 문명 섹션에서는 온라인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를 다룬 ‘위 약관에 동의합니다’와 9·11 테러 이후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한 이스라엘 군수 산업의 이면을 조명한 ‘세상에 없던 무기도 만들어 드립니다’가 눈에 띈다. 음악 다큐멘터리도 주목해 볼 만하다. 비틀스의 유일한 개인 비서이자 팬클럽 매니저였던 프레다 켈리가 들려주는 비틀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프레다, 그녀만이 알고 있는 비틀스’(오른쪽)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레오나르드 레텔 헴리히 특별전’도 준비됐다. 프레다 켈리는 EIDF의 초청으로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다. 헴리히는 ‘싱글 샷 시네마’라는 독특한 촬영기법을 선보이며 ‘태양의 눈’, ‘달의 형상’, ‘내 별자리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 3부작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감독이다. 특히 고려대와 연계한 이번 영화제에는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초빙해 국내 다큐 제작자와 영상 관련 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실무적인 제작과정을 강의하는 ‘EIDF 독 캠퍼스’도 열린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책꽂이]

    북한에 대한 불편한 진실(윤대규 지음, 한울 펴냄) 법학자이자 대학 강단에서 북한법을 강의하는 윤대규 경남대 서울부총장의 북한에 대한 인식과 정책 제안서. 저자가 밝히는 북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이렇다. “중국은 북한 붕괴를 허용하지 않는다, 남한은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 미국은 북한에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없다, 북한 체제는 붕괴하지 않는다, 체제 경쟁은 끝났다.” 저자는 이를 직시해야 임기응변식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일관된 정책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1만 4000원. 세상은 바꾸고 역사는 기록하라(신동식 외 20인 지음, 최원석 엮음, 푸르메 펴냄) ‘최은희여기자상’ 수상자 21명이 치열한 여기자의 삶을 각자의 언어로 기록했다. 기자이기 이전에 여자, 딸과 아내, 엄마, 며느리로 살아가야 하는 여기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때론 감동적이고 때론 무협지 이상으로 흥미진진한 글 뒤에 ‘다시 싣고 싶은 내 기사’를 선정해 붙였다. 1만 4000원. 왜 살찐 사람은 빚을 지는가(이케다 신스케 지음, 김윤경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비만은 단지 보기 싫은 것이 아니다. 건강과 체중 조절을 위해 노력하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 의지를 잃는 절제력 부족,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고도 번번이 실패하는 추진력 부재의 결과다. 이런 비만의 습관은 흡연과 음주, 도박과 빚 등 개인이 자멸하게 되는 행동과도 연관 있다. 저자는 인간의 본성을 분석하고, 현명한 습관을 제안한다. 실행을 뒤로 미루는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짧은 간격으로 마감을 설정하고, ‘카드로 할부 구입을 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카드를 만들지 않겠다’는 명확한 계획을 세우라는 식이다. 1만 4000원. 천재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케빈 더튼 지음, 차백만 옮김, 미래의창 펴냄) 사이코패스는 전체 사회에서 1% 정도 존재한다. 그런데 성공한 CEO집단에서는 이 비율이 크게 높아진다. 사이코패스와 성공한 CEO의 공통점은 ‘약간의 광기’와 번뜩이는 천재성, 집중력, 강인한 정신, 실행력 등이다. 저자는 CEO들을 충격적인 사건을 만드는 사이코패스와 구분해 ‘기능적 사이코패스’라 부르면서 사이코패스 성향을 상황에 따라 훌륭히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1만 4000원. 미술관이 된 시자의 고양이(홍지웅 지음, 미메시스 펴냄) 경기 파주 출판단지의 유명 건축물인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건축과정을 기록했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는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이 건물이 기획된 2005년부터 완공되기까지 7년간의 기록을 시간별로 정리했다. 건축가의 건물 답사부터 설계 스케치와 도면 검토, 건물 배치, 자재 선정 등을 보여주는 500여장의 사진 및 이야기를 담은 건축 일기가 실렸다.1만 8000원.
  • 산으로 간 미술관… 돌·꽃·물·빛 多 품었네

    산으로 간 미술관… 돌·꽃·물·빛 多 품었네

    강원 원주시 지정면 월송리. 오크밸리리조트가 저만치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옅은 갈색으로 치장한 담백한 건물 두 채가 들어섰다. 16일 정식 개관한 ‘한솔뮤지엄’이다. 이인희(85) 한솔그룹 고문이 1994년 이곳에 미술관 설립을 결정한 뒤 외환위기 등 우여곡절을 거쳐 2006년에야 첫 삽을 떴다. 첫 구상에서부터 치자면 무려 19년이 걸린 셈이다. 해발 275m에 걸터앉은 미술관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꼽히는 프리츠커상(1995)을 받은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일찍부터 화제였다. 부지는 총 7만 1172㎡로, 국내 최고 높이와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산중에 빚어진 5445㎡의 전시공간은 신통하기까지 하다. 오광수 미술관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도시문명을 벗어나 잠시 쉼표를 찍는 공간을 마련하려 했다”면서 “자연과 인간, 예술이 어우러진 소통창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술관 외관은 한눈에도 안도 다다오 방식이다. 트레이드 마크인 반질반질한 노출 콘크리트로 내부 벽면을 꾸미고, 미술관 외벽과 주변은 경기 파주에서 날라온 원석들로 장식했다. 강원 산간의 돌, 바람, 나무, 햇볕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미를 그대로 살렸다. 미술관은 모두 4개 파트로 짜였다. 정문격인 웰컴하우스. 이곳에 서면 소박한 돌담이 방문객을 맞는다. 돌담을 따라 정원에 들어서면 80만주의 붉은 패랭이꽃과 180그루의 하얀 자작나무가 ‘플라워 가든’을 펼친다. 숲 끝자락에 산 정상을 그대로 반사하는 물의 정원인 ‘워터가든’이 모습을 드러낸다. 워터가든 위 건물은 본관. 청조갤러리와 페이퍼갤러리로 이름을 나눠 붙였다. 그런데 본관 건물은 ‘안도 스타일’의 미로다. 계단으로 올라갔건만 어느새 1층에 내려와 있고, 10여분을 걷다 보면 지나왔던 복도와 다시 마주한다. 본관을 나서면 신라고분을 모티브로 9개의 작은 돌산을 쌓은 ‘스톤가든’과 마주한다. 스톤가든 지하에 자리한 ‘제임스 터렐관’은 미술관의 가장 큰 자랑거리. 세계적인 ‘빛의 작가’인 터렐의 작품 4개가 한꺼번에 설치된 것은 아시아 최초다. 스카이스페이스라 불리는 방에선 천장의 둥그스름한 구멍을 통해 비치는 햇빛에 따라 벽면이 녹색, 보라색, 파랑색으로 바뀐다. 미술팬들에게 미술관은 당장에라도 걷고 싶게 만드는 ‘설치 작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대략 난감인 문제도 분명 있다. 무엇보다 접근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사실. 원주시내에서 40여분은 차로 달려야 닿는 곳이다. 미술관 측은 셔틀버스 운영을 대안으로 내세우지만, 작정하고 찾지 않는다면 오크밸리리조트 이용객들이나 ‘덤’으로 둘러볼 수 있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미술관’이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입장료도 비싼 편이다. 미술관과 제임스 터렐관을 모두 경험하려면 어른은 2만 5000원, 학생은 1만 5000원을 내야 한다. 미술관의 핵심 관전포인트는 제임스 터렐관에서의 일몰 감상. 그러나 하루 30여명 안팎의 VIP 고객에게만 허용되고 있어 이 또한 풀어야 할 숙제다. 글 사진 원주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개관전 ‘진실의 순간’에는… 이인희 고문이 평생 모은 미술작품 100여점이 ‘청조갤러리’에 나와 있다. 한국 모더니즘 대표작가인 김환기, 유영국과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한묵, 문신, 유경채 등의 작품이다. 이중섭, 박수근, 이쾌대 등의 그림도 나왔다. 조선여인상을 다룬 이쾌대의 ‘운명’ ‘군상Ⅱ’ ‘상황’ 등은 특히 주목할 작품. 작가가 월북한 뒤 국내에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인 ‘커뮤니케이션 타워’는 높이 5.2m의 대규모 설치미술 작품이다.
  •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②喜 소금꽃이 핀 호수에서 수영을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②喜 소금꽃이 핀 호수에서 수영을

    ●喜 소금꽃이 핀 호수에서 수영을 Dead Sea 사해 바다는 죽어 소금을 남긴다. 일종의 유언장이다. 소금의 탄생기는 언제 들어도 신비로웠다. 대개 바다의 품을 떠난 물은 저수지, 증발지, 함수창고를 유랑하며 한 줌의 소금이 된다. 그러나 사해Dead Sea 소금은 강한 햇볕과 바람만으로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사실 사해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인데, 염도는 일반 해수보다 7~10배가량 더 높다. 어디 염도만 높을까. 피부에 좋은 미네랄도 일반 해수보다 수십배나 많다. 사해 물질로 만든 화장품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하바AHAVA’는 국내에서도 시판 중인 화장품 브랜드 로 이스라엘에선 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사해의 명성을 일찍이 들은 유럽인은 이곳에서 몇 날 며칠을 ‘잘 먹고 잘 쉬다 간다’고 했다. 이스라엘 접경지대인 이웃 나라 요르단에서도 사해가 펼쳐진다. 이스라엘에서 사해를 즐기려면 휴양단지인 엔보켁En Boqeq이 좋다. 이곳엔 르 메르디앙, 로열 리모님, 레오나르도, 크라운 플라자 등 이름난 숙소가 사해를 굽어보고 있다. 동남아 풀 빌라 못지않은 사해 리조트에 들어서자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다. 특히 르 메르디앙은 사해의 물을 이용한 스파를 운영 중이다. 굳이 리조트 밖으로 사해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실내에서 사해를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이 멀리까지 와서 진짜배기 사해를 놓칠 수 있나.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후 가운 하나 걸치고 리조트에서 10분 거리인 사해까지 나왔다. 모래가 펼쳐진 틈 사이사이로 소금 꽃이 만발했다. 조심스레 만져 보니 까끌까끌하면서도 끈적끈적하다. 본격적으로 물에 들어가면 몸이 공중부양 하는 것처럼 부웅 떠오른다. 무중력의 우주공간과 다를 바가 없다. 몸이 따끔따끔하다면 상처를 비집고 사해의 성분이 침투했다는 증거다. 잠시 몸을 담그고 나왔을 뿐인데 전신 마사지를 한 것처럼 몸이 매끈해졌다. 그러나 사해와는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너무 오래 물속에 들어가 있으면 오히려 피부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제아무리 ‘수영 황제’ 펠프스가 울고 갈 만한 수영 실력을 뽐낸다고 한들, 헤엄을 쳐서도 안 된다. 사해는 성분도 성분이지만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유명하다. 해발 -417m. 사해는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그냥 놔 주지 않았다. 고도차 때문에 귀가 멍해졌으며 소금 꽃의 향기는 오래도록 코끝을 맴돌았다. 1 생물체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염도가 높은 사해에선 몸이 둥둥 뜬다. 물 위에 떠서 신문을 펼친 여행자의 표정이 즐겁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사해 즐기기 당일 관광 프로그램, 숙소 등 사해를 야무지게 즐길 수 있는 고급 정보를 현지 홈페이지에서 찾아보자. 사해 주변에선 산악 바이크 대회Festival of Mountain Bikes Race, 엔게디 국제 세미 마라톤 대회The Ein Gedi International Semi-marathon Race 등 다양한 스포츠 축제도 열리니 참고할 것. www.deadsea.co.il 네게브 사막은 이스라엘 국토의 50~60%를 차지한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어느 배낭 여행객은 바이크로 사막을 누비는 중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척박한 땅에서 받은 후한 대접 Desert사막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우물이 숨어 있어서 그래.” 황량한 그곳엔 어린왕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이스라엘 국토의 50~60%가 바로 사막이다. 사막을 떠올리면 목이 칼칼해지고 머리가 띵해진다. 이 척박한 토양에도 꽃은 핀다. 이스라엘 민족은 선인장을 닮았다. 강한 조상을 둔 까닭인지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는 네팔이나 남미다. 남자도 여자도 군대를 제대하면 무전여행을 하며 세상을 배운단다. 유대인은 사막을 일궈 정착하는 삶을 택했지만 유목민인 베두인은 한곳에 뿌리내리는 것을 불명예로 여긴다. 이스라엘, 요르단 등 중동의 사막을 떠돌며 사는 그들을 꼭 만나고 싶었다. ‘베두’란 말 자체도 아랍어로 직역하면 ‘사막’이다. 일단 베두인의 무대인 사막을 지프차를 타고 달렸다. 황토 빛깔 바람을 일으키며 사륜구동 자동차가 앞으로 나가자, 아웃도어 광고의 한 장면 같은 절경이 펼쳐졌다. 너른 사막의 한가운데는 난데없이 작은 폭포가 보였다. 휴가 나온 군인들이 그곳에서 아담과 이브처럼 부끄러움도 잊고 첨벙첨벙 물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기다란 뿔이 매력적인 아이벡스도 예고 없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네게브 지프 투어는 아프리카 탐방만큼이나 이색적이다. 지프 투어의 막바지, 베두인 숙소를 찾아갔다. 베두인의 손님맞이는 극진하기로 유명하다. 차와 양고기 요리 등을 넘치도록 준비해 손님이 두 손을 들 때까지 대접한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다. 접시를 비우면 금방 또 음식을 내어 오기 때문에 소량의 음식을 일부러 남기는 게 좋다. 없는 살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방인을 거두는 그들은 ‘자신이 누군가를 거두면 언젠가 자신도 남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단다. 베두인의 공동체 의식은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현대인이 배워야 할 미덕으로 보였다. 2 사막을 이리저리 떠도는 베두인을 만나면 낙타를 탈 수 있다 2 지프 투어 중 불쑥 나타난 아이벡스. 뿔이 매력적이다 3 경상남북도 크기의 이스라엘이 거대한 사막을 품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지프 투어 & 베두인 체험 네게브 사막 일대를 지프차로 달리고 싶다면 현지 여행사를 통해 미리 예약해야 한다. 비용은 인원수, 코스,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5~6인이 2~3시간을 탑승할 때를 기준으로 보면, 1인당 약 39달러가량 든다. 지프투어를 예약하면서 베두인 식사 체험을 동시에 예약할 수도 있으니 참조할 것. 지프 투어 예약 www.negevjeeptours.com, www.negevjeep.com/english 베두인 체험 예약 www.hanokdim.com 예술가의 마을에서 타박타박 Mediterranean Sea지중해 경상남북도 크기의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다. 몸집은 작지만 오밀조밀 없는 게 없다. 사해와 사막만 봐도 그랬다. 자그마한 몸으로 어찌 저리 위대한 것을 끌어안고 사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지중해를 마주쳤을 땐, 사해나 사막을 만났을 때보다 몇 배는 충격이 더 컸다. 대형 쇼핑센터, 유명 호텔, 화려한 레스토랑과 카페 등…. 이스라엘을 향해 던졌던 선입견이 티 없이 맑고 푸른 지중해에 부딪혀 흩어졌다. 이렇게 따뜻해도 이렇게 다정해도 좋을까 싶을 정도로 지중해변과 맞닿은 이스라엘은 ‘평화’ 그 자체였다. 지중해의 물살은 봄의 언덕으로 불리는 텔아비브Tel Aviv,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이 보존된 카이사레아Caesarea, 무역의 중심지 하이파Haifa, 십자군 시대를 재현하는 아코Akko 등을 타고서 분주히 흘렀다. 압권은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 20여 분이면 당도하는 텔아비브다. 텔아비브는 항구도시라는 신분을 과시했다. 정통성을 지키는 데 급급했던 여타의 도시와 달리 텔아비브는 외지인이 몰고 오는 낯선 기운을 흡수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 역할을 한 것처럼 텔아비브도 잦은 싸움에 지친 예루살렘을 대신해 제2의 도시로 성장했다. 디아스포라를 겪은 유대인이 하나둘씩 텔아비브로 밀려왔으며 1948년, 마침내 이곳에서 초대 수상 벤 구리온이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세울 것을 선언한다”고 낭독하기에 이른다. 정신없이 돌아가던 텔아비브의 시곗바늘이 네베쩨덱Neve Tzedek에선 느릿느릿 움직였다. 유럽의 아기자기한 소도시를 닮은 네베쩨덱은 빛과 색을 중시한 인상파 미술작품과 같다. 세계 각지를 떠돌다 돌아온 유대인의 영혼이 깃든 그곳엔 파스텔톤의 집, 히피족이 장난친 것만 같은 거리 벽화가 알록달록하게 펼쳐졌다. 네브쩨덱만큼이나 예술가의 기운이 충만한 곳은 ‘욥바’다. 욥바의 애칭은 올드 자파Old Jaffa. 텔아비브 해안가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욥바의 갤러리들은 하나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따랐다. 그중에서도 욥바의 랜드마크인 베드로의 교회를 따라 내려가다 마주친 일리아나 구어 박물관Ilana Goor Museum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박물관 옥상에 서면 욥바 일대가 한 장의 파노라마 사진이 되어 돌아온다. 박물관을 채우고 있던 다소 난해한 미술작품들은 알면 알수록 더 알쏭달쏭해지는 이스라엘과 통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훈련도 실전처럼’ 소방훈련 현장에 가다

    ‘훈련도 실전처럼’ 소방훈련 현장에 가다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소방관들의 현장 대응능력을 키워, 어떤 상황에서라도 국민의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조선호 마포소방서장의 말이다. 1일 밤 8시,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로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은 소방관들의 화재진압 훈련 현장을 찾아가봤다. 지난 27일 서울 마포소방서는 철거예정 건물에서 실제 화재상황 재현을 통한 진화 훈련을 실시했다. 소방관들은 철저한 현장 브리핑과 사전 장비점검 등을 통해 만약에 생길지 모르는 2차 사고에 대비했다. 최근 발생하는 소방관들의 안전문제 예방과 신속한 출동을 위해 훈련은 실제상황처럼 진행됐다. 자욱한 연기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사고현장에서도 소방관들은 구령에 맞춰 침착하고 신속하게 구조 대상자를 구출해냈다. 이 밖에도 TV 쏙 서울신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도 소개한다. 여의도 63스카이아트 미술관은 개관 5주년을 맞아 ‘유럽-그림으로 떠나는 여행 전’을 열고 있다. 오는 2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1부 프랑스 편부터 5부 영국 편에 이르기까지 전후 유럽에서 활동하며 작품세계를 인정받은 각 나라의 대표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1부 프랑스 편에서는 버려진 일상용품을 통해 소비문명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아르망 페르난데스의 ‘봄날의 석양’ 등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2부 스페인 편에서는 후안 미로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과 포스트 모더니즘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3부 이탈리아 편에서는 공간주의 운동을 일으킨 루치오 폰타나의 ‘공간개념-극장’과 평면입체를 대비시킨 밈모 팔라디노의 ‘알레코’ 등이 전시됐다. 또 4부는 네덜란드·벨기에·독일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코너로 구성됐다. 끝으로 5부 영국 편에서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물결’ 등을 소개한다. ‘2013 구정을 듣는다’에서는 올해를 수확의 해로 만들겠다는 진익철 서초구청장을 만났다. 취임 직후부터 강조했던 ‘현장 소통’을 올해도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밝히는 진 구청장의 한 해 구상을 들어본다. SNS에 나타난 목소리를 통해 한 주일 동안 뉴스의 흐름을 짚어보는 ‘톡톡 SNS’ 에서는 박근혜 정부 출범, ‘4대강사업’과 ‘한식세계화’에 대한 감사청구안 가결 등과 관련한 다양한 목소리를 전한다. 글 사진 성민수 PD globalsms@seoul.co.kr
  • [2013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들/유인혁

    [2013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들/유인혁

    1 이야기의 끝, 혹은 끝없는 이야기 이집트의 영조(靈鳥) 피닉스는 수명이 다하면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태양의 신전으로 날아가 스스로 불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피닉스는, 이윽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이 영조는 불사조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보르헤스는 불 속에서 파괴되며 재생하는 이 영원한 순환을 묘사한 적이 있다. ‘원형의 폐허들’의 주인공은 ‘불의 신전’에서 한 소년을 만들었다. 그는 꿈속에서 소년의 폐동맥과 심장, 뼈대, 눈꺼풀, 셀 수 없이 많은 머리카락 등을 눈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생생하게 떠올렸다. 정교한 상상 속에서, 소년은 마침내 실체가 되어 현신했다. 그런데 이 창조자는 소년이 언젠가 자신이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라 걱정했다. 불의 신전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결국 불이 될 것이다. 환영은 불에 탈 리가 없으므로, 언젠가 소년은 불에 닿았을 때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고민으로 천일 하고도 하루 동안 노심초사하다가 불타는 신전으로 뛰어들었다. 이 기나긴 고민을 끝내줄 죽음을 기다리면서. 그러나 불타는 폐허 안에서, 그는 자신이 불에 타지 않음을, 그러니까 자신도 누군가의 환영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소년 또한 먼 훗날 환영을 만들 것이다. 이 과정은 영원히 반복 되리라…. 피닉스와 보르헤스의 환영은 모두 반복을 통해 영원을 성취한다. 그것은 끝없이 뻗어나가는 직선이 아니라, 영구히 되돌아오는 원환이다. 그러니까 끝이 무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이 펼쳐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메시지는 바로 반복이다. 끝에 도달했을 때, 모든 것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끝과 무한(無限). 최근 소설쓰기 자체를 주제로 삼은 일련의 메타픽션 속에서 발견되는 문제는 참으로 이렇다. 한유주는 “내가 쓰고 싶었던 문장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다. 나는 읽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베끼고 또 베낀다”(한유주, ‘농담’,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30쪽)고 말한다. 이때 새로운 글쓰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된다. 대홍수가 인간의 문명을 송두리째 박살낸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의 세계에서, 창작의 가능성은 이 세상과 함께 종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한유주는 끈질기게 자신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때 한유주는 자기 글쓰기의 한 조건으로 ‘이야기의 끝’을 상정하고 있다. 이미 “이야기는 오래전에 모두 매진되” (한유주, ‘죽음의 푸가’, “달로”, 문학과지성사, 2006, 48쪽)어서 그 어떤 처녀작도 새로 쓰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최제훈은 끝없는 이야기의 모델을 보여준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은 오히려 충만한 자유를 제공한다. ‘괴물을 위한 변명’에서 “프랑켄슈타인”을,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는 흡혈귀 전설을, ‘셜록 홈스의 숨겨진 사건’에서는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솜씨 있게 패러디했던 그는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애거사 크리스티, 에도가와 란포, 오스카 와일드, 스티븐 킹, 로베르트 비네 등을 종횡무진 누빈다. 기성의 작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최제훈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한유주에게 제약이었던 것이 그에게는 기회요,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최제훈은 바로 이러한 조건 아래서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82쪽)를 상상했다. 2 플롯 없는 소설들 왜 차라리 ‘소설의 끝’이 아니라 ‘이야기의 끝’인가.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에서 진실로 끝나버린 것은 바로 플롯이다. 바꿔 말해 시작과 끝을 유기적으로 형성하는 서사가 부재하고 있다. 한유주의 소설에서 내용이 짐작 가능한 이야기는 드물게 출현한다. 한유주의 소설은 대부분 그녀의 의식을 (불)투명하게 묘사하는 데 진력할 뿐이다. 무엇인가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그 진위는 참으로 모호하다. ‘흑백사진사’에서 ‘아이’는 유괴당한 지 일주일 만에 목이 졸려 살해됐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소설의 화자는 납치된 지 나흘 째 되는 날 풀려났고 중학생이 되어 사건을 회상하고 있다. 이 의도적인 교란은 화자의 모든 진술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때 이야기는 진술들의 나열일 뿐이지 통일되고 연속적인 흐름을 형성하지 못한다. 심지어 한유주의 소설에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위로서의 사건(event)도 없다. 그녀의 소설에서는 사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한유주는 어떤 행위를 묘사하거나 진술한 다음, 곧바로 그것을 부정한다. 누군가 담배를 피웠는데 “연기는 나지” 않고 “재는 떨어지지”(한유주, ‘재의 수요일’,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2009, 208쪽) 않는다는 식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소설 속의 내용이 사실 허구(虛構)라는 점을 계속해서 인식시킨다. 이것은 부정문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허구0’에서 한유주 본인으로 짐작되는 화자는 현재진행형 시제의 문장을 활용하여 자신의 생각, 행동, 계획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허구0’이라는 제목은 이 모든 진술들이, 그러니까 가장 투명하게 작가의 머릿속을 베껴낸 이 문장들이 모두 거짓이라고 암시한다. ‘불가능한 동화’ 역시 같은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부정문, 혹은 명명(命名)을 통해 이루어졌던 일들이 이제 소설의 형식 자체를 통해 실천된다. 이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우선 앞에서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소녀의 테러리즘을 다룬다. 이 소녀는 반 급우들의 일기에 “나도 죽여보고 싶다”, “바늘 끝은 뾰족하다”, “불은 뜨겁다” 따위의 문장들을 몰래 적어 넣었다. 선생님은 이 테러의 진의를 알 수 없다. 그는 아이들에게 성을 내지만, 이것이 왜 나쁜 행동인지는 좀처럼 설명할 수 없다. 이 교실에는 “없어진 것도, 사라진 것도 없”으므로. 그저 “의미도 불분명하고 출처도 없는 문장들이 있을 뿐”이므로(한유주, ‘불가능한 동화’, “문학과 사회” 2011년 겨울호, 165쪽) 이것은 타인의 문장에 가해진 목적이 불분명한 테러인 것이다. ‘불가능한 동화’는 이렇듯 모호한 폭력을 가한 소녀를 중심으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발아시킨다. 이름이 주어지지 않으므로 소녀의 정체는 미스터리이다. 그녀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도 알 수 없다. 한편 소녀는 미아라는 급우가 자신의 범행을 알고 있을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소녀는 미아를 살해하고 도망친다. 이제 우리는 미스터리의 해결(소녀는 누구인가)과 서스펜스의 지속(소녀는 잡힐 것인가)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한유주는 어느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한 여성을 조명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수업 도중 강의실 뒤편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크게 놀란다. 그 아이는 바로 ‘소녀’. 자기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아이는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처럼 자신의 창조주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왜 자신을 끔찍한 모습으로 창조했는지 따져 묻는다. 이제 한유주는 앞선 이야기가 모두 허구였음을 고백하고, 허구란 대체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한유주 소설의 시그니처와 같은 부정문은 형식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그녀는 말한 다음, 바로 부정한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제시한 다음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노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마치 만다라와 같은 작업이다. 형형색색의 모래를 뿌려 만들어지는 이 신성한 그림은, 완성과 동시에 물에 씻겨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유주가 가지고 있는 언어에 대한 회의 때문에 생겨났다. 그녀는 언어가 현실을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좀처럼 갖지 못한다. 이는 사전에 대한 불신 속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K에게’에서 사전은 “모두 다섯 권이었지만, 첫 번째 사전부터 마지막 사전까지 합친 두께가 손바닥 한 뼘을 넘지 않”는 “무성의한 생일 선물”에 불과하다. 그것은 “조야한 방식으로 선별된 하나의 작은 세계”를 펼쳐 놓고, “수수께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낼 뿐 아무런 해답도 내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한유주는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은 틀린 것”이라고 진술한다(한유주, ‘K에게’, “얼음의 책”, 문학과 지성사, 2009, 72~73쪽). 사전이 결코 세계를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언어는 현실을 투명하게 재현할 수 없다. 플라톤이 말한 바와 같이 문학은 세계를 열등하게 모사한 것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문학에서 삶과 현실을 찾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한유주는 자신의 글이 “아무것에도 봉사하지 않을 것이”(한유주, ‘허구0’, “얼음의 책”, 문학과 지성사, 2009, 19쪽)라고 선언한다. 언어는 그런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유주의 해답은 바로 메타픽션이다.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언어는 결코 현실을 적절히 재현할 수 없으므로 차라리 언어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유주에게 ‘이야기의 끝’이란 단순히 모든 이야기가 이미 쓰였다는 인식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야기가 현실을 재현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시대가 이미 오래전에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때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도대체 이야기를 쓸 수 있는지 의심하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한유주 소설의 특징은 좀처럼 요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오이디푸스왕’을 오이디푸스에게 일어난 몇몇 사건들을 중심으로 요약할 수 있다. 라이오스왕의 죽음, 이오카스테와의 결혼, 모호하면서도 분명한 신탁…. 하지만 한유주의 소설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수고롭게 그러한 작업을 한다고 해도 그녀 소설의 특징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요약할 수 없다는 것은, 최제훈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최제훈이 한유주처럼 사건을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최제훈의 소설에서 사건은 너무 많이 일어난다. 다만 그것들은 좀처럼 결말을 향해 회수되지 않는다.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장편소설’로 소개되고 있지만, 실은 ‘여섯번째 꿈’, ‘복수의 공식’, ‘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네 편의 소설이 느슨하게 연결된 연작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여섯번째 꿈’에 나오는 민규, 현숙, 세나, 연우, 영수, 태식 등의 인물들은 뒤의 세 작품 안에서 조금씩 설정과 역할을 달리하여 변주된다. 예를 들어 ‘여섯번째 꿈’의 연우와 ‘π’의 M은 동일인물로 보인다. 연우와 M은 모두 번역가인데, 자기가 번역을 맡은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운명을 바꾼 일이 있다. 비중이 거의 없는 인물을 슬그머니 죽은 것으로 오역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우가 스페인어 번역가인 데 반하여 M은 일본어 소설을 번역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죽음을 맞는다. 연우가 눈이 오는 산장에 고립되어 수수께끼의 살인마에게 살해당했다면, M은 소설을 쓰다가 탈진해 쓰러졌다.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려는 탐욕스러운 셰헤라자드에게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58쪽). 한 편의 장편소설에서 인물이 복수(複數)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사실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소설은 인간의 삶을 재현한 것이고 어떠한 인간도 두 번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죽음은 삶의 의미를 확정하는 사건이다. 발터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는데,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삶의 의미는 오로지 그들의 죽음에 의해서만 비로소 해명될 수 있다.”(발터 벤야민, 반성완 편역, ‘얘기꾼과 소설가’,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1983, 185쪽). 많은 소설들이 등장인물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적과 흑”은 줄리앙 소렐의 죽음으로 끝나며, “레미제라블”은 장 발장의 죽음으로 끝나고, “보바리 부인”은 엠마 보바리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들의 죽음이 삶과 소설의 의미를 확정짓는 것이다. 하지만 최제훈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여러 겹의 삶을 살아가고, 복수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은 삶이 아니라 차라리 연극이다. 예컨대 햄릿의 죽음은 연출가의 각색에 따라 매번 달라지지 않는가. 이러한 최제훈 소설의 특징은 그가 중심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에 의해 촉발되었다. 바로 패스티시다. 한유주 소설이 부정문의 특징을 형식적 차원에까지 확장한 결과라면, 최제훈은 패스티시의 가능성을 극단까지 활용하여 “일곱개의 고양이 눈”을 쓴다. 예를 들어 ‘여섯번째 꿈’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쥐덫’, 그리고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을 인용하고 있다. ‘여섯번째 꿈’에서 민규, 현숙, 세나, 연우, 영수, 태식 등은 연쇄 살인범의 세계를 탐구하는 ‘실버 해머’라는 인터넷 동호회의 회원들이다. 이들은 어느 겨울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회장의 초대장을 받고 산장에 모였다. 그런데 정작 ‘악마’는 나타나지 않고, 회원들은 폭설로 고립된 산장에서 하나씩 하나씩 살해당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악마’가 숨어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판사, 사업가,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열 명의 사람이 외딴섬에 모인다. 그들은 어느 사업가에게 초대 받았다. 그런데 ‘여섯번째 꿈’과 마찬가지로 초대장의 주인은 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의 노랫말에 맞추어 한 명씩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한편 ‘쥐덫’에서도 사람들은 밀실에 갇혀 있다. 이들은 ‘여섯번째 꿈’과 마찬가지로 폭설이 내리는 산장에 고립된 것이다. 그리고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에서 ‘붉은 방 클럽’은 ‘실버 해머’처럼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취미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때 ‘여섯번째 꿈’은 애거사 크리스티와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을 인용하고, 수정하는 가운데 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여섯번째 꿈’은,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다른 소설을 재현하는 글쓰기이다. 소설의 인물이 두 개의 죽음을 경험하는 이유는, 그들이 각각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제훈의 소설에는 이야기만 있을 뿐 그 이야기가 재현하는 인간의 삶이 없다. 그런 것은 도무지 중요하지가 않다. 이야기가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인물들이 선택되는 것이다. 이때 소설에서 인간적 삶의 내용은 사라지고 주인공은 그저 한 기능으로 퇴락한다. 그러니까 “돈키호테”에서 이 우스꽝스러운 기사는 다만 “무관한 일화와 에피소드의 모음으로 떨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것에 통일을 주기 위해”(프레드릭 제임슨, 윤지관 옮김, “언어의 감옥”, 까치, 1977, 61쪽) 고안되었다는 식이 된다. 소설은 한 인간의 삶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야기 재료들의 짜깁기가 되는 것이다. 3 전문가로서의 작가 그래서 패스티시의 소설은 반인간적이다. 소설 속의 인간에게 고유한 삶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스티시는 소설 바깥의 인간에게서도 존엄성을 빼앗는다. 그러니까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에게서 창조주의 권위를 앗아간다. ‘π’에서 M은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직업은 소설가가 아니라 번역가이다. 즉, 그는 타인의 언어를 거쳐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쓸 수 있는 존재이다. 이는 M이 결코 글쓰기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 M은 어느 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밤마다 M에게 으스스한 이야기를 속삭인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M이 쓰고 있는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이 된다. 그러니까 그녀는 M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셰헤라자드이자, M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뮤즈이기도 하다. 그런데 셰헤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소설이 되기 위해서, M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이는 맵시벌의 다큐멘터리에서 우의적인 방식으로 설명된다. 맵시벌은 거미의 몸에 알을 깐다. 세월이 흘러 다 자란 “유충은 쓸모없어진 거미의 몸을 뚫고 밖으로” 나간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숙주의 목숨이 희생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M은 “맵시벌 다큐멘터리를 전에도 본 것 같았다”(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44쪽). 채널을 돌려도 화면에는 계속 맵시벌만 나타났다. 여기서 M은 사실 환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그의 배역은 다름 아닌 거미인데, 이야기가 완성되자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M의 운명은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이라고 지칭했던 현상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바르트가 주장한 바, 근대적 글쓰기는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온 인용들의 짜임”(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1997, 32쪽)이다. 이때 작가는 작품의 유일하고도 온전한 ‘아버지’가 아니다. 그는 마치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이 소설을 쓰지 않는다. 그는 다만 다른 소설을 베끼는 필경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저자의 죽음은 단지 M의 운명을 통해 우의적으로 표현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문학론은 실제 ‘π’의,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작법(作法)을 통해 실현된다. ‘π’는 그 자체로 “인용들의 짜임”이다. 우선 우리는 “천일야화‘의 이야기꾼인 셰헤라자드의 흔적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일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영향을 감지하게 된다. ‘π’의 액자 속 주인공 하루는 어느 터널에 49일이나 갇혀 있었고, 결국 미쳐버렸다. 그는 이제 정신병원에 있다. 그리고 정신병원의 의사, 간호사, 동료 환자들을 상상 속에서 변형시키며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로베르토 비네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한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프란시스는 박람회에서 칼리가리 박사의 상자를 보게 된다. 그 상자에는 체사레라는 몽유병 환자가 누워 있다. 체사레는 프란시스의 약혼녀인 제인의 죽음을 예언하는데, 칼리가리 박사는 이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제인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상의 이야기는 매우 기이하다. 비현실적이며 악몽을 닮아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프란시스가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칼리가리 박사는 정신병원의 원장이며, 체사레는 병원의 직원이다. 제인은 프란시스와 마찬가지로 정신병을 앓는 환자였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망상 속에서 이들 인물을 변주하여 이야기를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미 대중문화 안에서 여러 번 변주된 바 있다. 최근에는 리들리 스콧의 ‘토탈 리콜’(1990)이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1997),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마틴 스코세이지의 ‘셔터 아일랜드’(2010)에서 활용되었다. 요컨대 이미 널리 알려진 수법이라는 뜻이다. 그런 만큼 최제훈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인정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작가의 역할은 사실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작가는 이제 독창적인 트릭을 고안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트릭에 의존한다. 다만 그 트릭을 끊임없이 변주한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붉은 방’을…. 이때 최제훈은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창조자라 할 수는 없다. 그는 저자가 아니다. 자기 작품의 “유일하고 동일한 목소리”(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1997, 28쪽)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타인의 언어와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있으므로 자기 작품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돈키호테가 서로 다른 우스꽝스러운 사건에 통일을 부여하는 기능인 것처럼 그는 서로 다른 이야기의 묶음에 통일을 부여하는 기능이다. 이제 소설의 인물과 작가는 모두 하나의 기능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최제훈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 창조는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조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노동일까? 그는 문화산업의 많은 ‘크리에이터’(creator)들이 하고 있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불가사리’(1962)가 ‘고질라’(1956)를 참조하고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 ‘지상 최후의 사나이’(1964)를 차용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다만 진귀한 구경거리(spectacle)를 생산하고 있는 것인가? 반쯤은 옳다. 그는 창조하기보다 생산한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부품을 조립하여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할만한 것이다. 아마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아버린 M의 모습은 초과노동에 시달리는 어느 현대 노동자의 비유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좀처럼 잠을 자지 못하지 않는가. 하지만 최제훈은 뒤샹이 예술가인 만큼은 예술가이다. 레디메이드를 활용하더라도 그것을 조합하는 방식은 자유에 맡겨진다. 아무리 풍부한 재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아무나 그것에 형식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뉴욕의 어느 배관공이 ‘샘’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정말이지 없다. 뒤샹 스스로 인정했듯이, “당신의 가능성은 나의 가능성과 같지 않은 것이다”(“Your chance is not the same as my chance.” (Calvin Tomkins, The Bride and the Bachelors: Five Masters of the Avant-Garde, Penguin, 1968, p.33)). 여기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전문가(specialist)로서의 작가이다. 무엇인가 짜깁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재료를 많이 구비해 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재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짜깁기의 예술은 풍성해질 수 있다. 이것은 규칙을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그래서 최제훈은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노동자로 볼 수 없다. 자기가 조작하는 이야기의 관습을 썩 훌륭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유주는 이러한 점을 좀처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다. 한유주는 ‘저자의 죽음’을 자신에게 주어진 문학적 조건으로 뼈아프게 인식하고 있다. 이미 “문장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심지어 미리 “읽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적을 때도 그것은 베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한유주는 “모든 사물들은, 혹은 모든 사물화 된 문장들은, 일종의 자연사 박물관에 귀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도서관의 어느 서가에 진열된 책들은 모두 일종의 “전시된 죽음들”이며, “검은 플라스틱판에, 흰 글씨로 이름을” 새겨 넣은 명패가 달린 박제이다(한유주, ‘자연사 박물관’,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87쪽). 한유주는 이러한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녀가 누구를 참조하고 있는지, 도대체 누구를 ‘베끼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다. 예컨대 ‘허구0’이라는 제목은 “픽션들”이라고 하는 보르헤스의 단편집 표제를, 그리고 “얼음의 책”이라고 하는 표제는 ‘모래의 책’이라고 하는 보르헤스 단편의 제목을 떠올리게 만든다. 허구의 영점(零點)과 허구의 복수형은 분명한 대비를 형성한다. 거기에 만들어지자마자 모두 녹아 사라지는 얼음의 책과, 영원히 모래처럼 변화하며 두 번 다시 같은 페이지를 펼칠 수 없는 모래의 책은 모두 의미가 고정되지 않거나, 아예 사라지는 책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추측에 지나지 않으며, 그녀는 주의 깊게도 단서를 남겨놓지 않았다. 이것은 한유주 스스로 어떤 작품을 베끼고 있다고 주장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유주는 ‘자연사 박물관’,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인력이거나, 척력이거나’ 세 편의 작품을 통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끼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상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오히려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와 달라지려 하는 한유주의 부단한 노력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는 연극에 대해 논문을 쓰려는 한 사내가 어느 광인을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이 광인은 자신이 22년 전에 살해한 여성의 옷과 구두를 몸에 걸치고 있다. 한유주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이 짤막한 이야기의 틈을 헤집고 억지로 자신의 언어를 밀어 넣는다. 한유주는 이 사내와 광인을 각각 트리스탄과 햄릿이라 명명하고, 그들의 조우에 복잡한 운명을 부여한다. 그런데 아마 한유주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의 흔적을 알아챘을 것이다. 이 두 소설의 공통점이란 시간을 물어보는 행위, 다리 위에서의 대화 등 몇몇 지점에서 눈치채기 어려운 방식으로만 나타난다. 아무리 주의 깊은 독자라도 이 정도의 단서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그림자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흔적을 알아채는 것은 훨씬 어려워진다. 주인공 하령은 대재앙이 닥쳐 대륙의 절반이 물에 잠기고, 인구의 절반이 죽어버린 세계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 그녀는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껴서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를 쓰려 한다. 하지만 그녀가 베끼려고 하는 소설은 책장에 없거나, 아니면 물에 젖어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다. 무엇인가 베끼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189쪽). 하령은 무엇인가 참조할 때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결말과는 다른” 페이지들을 마주하게 된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203쪽). 그래서 하령의 베끼기는 계속해서 원작과 달라진다. 이것은 굉장히 수고로운 작업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이야기와 언어의 관습들을 익혀야 한다. 이미 모든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으므로, 잠깐의 방심은 ‘베끼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표절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모든 멜로디를 검토하는 작곡가나, 신기술을 개발하기 전에 기존의 특허를 검토하는 기술자의 태도에 비견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한유주는 이러한 자신의 노력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한유주는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는데, “언어는 진화하지 않고, 문학은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베끼는 와중에 조금씩 변화할 뿐이다. 그것은 진화의 개념이 사라진 돌연변이와 같다. 대재앙 이후의 세계에서 호랑이는 아가미를 발달시켰다. 물에 잠긴 세계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것이 “진화인가 퇴화인가” 말할 수 없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201쪽). 한유주의 소설 역시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된 모습과는 다른 형태로 제시된다. 그녀의 ‘베끼기’가 박제를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이 문학을 ‘진보’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노력이 다만 돌연변이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그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끝’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의 세계에서 새로운 글쓰기의 가능성은 인류와 함께 절멸했다. 이 ‘끝’에서 문학은, 그리고 글쓰기는 과거의 박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창조의 엿새는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으므로. 4 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이야기의 끝’이거나 ‘끝없는 이야기’이거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새로움’의 쇠퇴이다. 이제 작가는 매우 제한적인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만든다. 그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으며, 다만 기왕의 설계도를 다소 변형시키는 선에서 만족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유주와 최제훈의 작품이 새롭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이 타자의 언어를 베끼고 있음을 드러내지만, 그들의 작품은 전에 없이 독특하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에서도 한유주의 문체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부정문을 사용하는 방식은 참으로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제훈은 기성의 관습들을 짜깁기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마치 괴물처럼 낯설다. 이것은 개인의 창조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들이 역설적인 방식으로 창조적이라는 아이러니와 무관하지 않다. 존 케이지는 문자 그대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4분33초’를 만들었으며, 앤디 워홀은 대중문화 속의 이미지를 조합해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여기서 예술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새로운 것은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파천황의 것이며 예술의 경계를 도전적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움은 공허한 것이다. 마치 ‘4분33초’처럼 덧없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하지만 그 다음은? ‘4분33초’는 결코 녹음되거나 재연(再演)될 수 없다.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의미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앤디 워홀의 작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워홀의 유명한 병뚜껑, 혹은 메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바라보며 이것이 어째서 예술인지 질문하고, 대체 예술이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다. 이 새로움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는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공허함을 다음과 같이 간파했다. “앤디 워홀의 ‘다이아몬드 가루 신발’은 반 고흐의 신발이 가진 직접성을 전적으로 결여한 채 우리에게 말을 건다. 정말이지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어떤 말도 걸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프레드릭 제임슨, 강내희 옮김, ‘포스트모더니즘 ― 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 정정호·강내희 편, “포스트모더니즘론”, 문화과학사, 1989, 150쪽)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분명 새롭다. 그들은 우리에게 소설이란 무엇인지, 소설쓰기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소설은 “아무것에도 봉사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한유주, ‘허구0’,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2009, 19쪽)기 때문이다. 이때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모든 책무로부터 자유롭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한 형식이 된다. 즉, 자족적인 동시에 자기폐쇄적인 형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유주와 최제훈 소설의 공간들이 감옥을 닮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자연사 박물관은 모든 생명들이 박제되어 진열된 공간이며,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에서 사람들은 온통 물에 잠겨버린 건물에서 고립되어 살아간다. ‘불가능한 동화’에서 선생님은 마치 취조실의 형사처럼 아이들을 겁주고 추궁한다. 최제훈을 살펴보면, M은 맵시벌의 둥지에 갇혔고, 하루는 동굴 속에 갇혔으며, 영수는 산장 안에 갇혔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액자 속의 미미는 스토커에게 납치당해 갇혔고, 액자 바깥의 ‘나’는 망막박리에 걸려 눈이 먼 채 병실에 갇혔다. 모두가 갇혀 있다.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메타픽션이며, 이들은 모두 알레고리 속의 인물이다. 이들을 가두고 있는 감옥은 사실 상징적인 방식으로 글쓰기 자체를 가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것은 바로 언어의 감옥이다. 한유주와 최제훈의 글쓰기가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타인의 언어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마치 모든 발화가 랑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소설 역시 글쓰기의 관습이나 전통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타인을 흉내 내며 말을 배운다. 소설이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어디에 있는가.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은, 소설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폐쇄적인 형식이 된다는 뜻이다. 이때 언어는 자기를 가리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한 동어반복과 다름없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말을 사용하는 것이며, 작가란 발언을 하는 사람(parleur)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요구하기 위해, 혹은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심지어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글을 쓴다(장 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8, 27쪽).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말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책무가 다만 다른 소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되었을 때, 글쓰기는 베끼기가 된다. 이때 독서란 소설 안에 존재하는 다른 소설의 흔적을 찾는 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라는 것을 그렇게 높이 평가할 수 없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김수용 옮김, “파우스트” 1부, 책세상, 2006, 78쪽). 오직 언어로 이루어진 곳을 헤매는 것이 독서라면, 그것은 언어로 이루어진 테마파크를 유람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언어의 감옥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지나야 그곳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그러니까 “폐쇄된 미로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헤매야 그 미로가 폐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까?”(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179쪽). 그리고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파우스트는 평생에 걸쳐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게다가 신학까지 열성을 다하여 연구”한 끝에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탄식했다. 그가 마술의 세계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던 것은, 정통한 지식들이 세계에 대해 조금도 알려주지 않는 “부질없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김수용 옮김, “파우스트” 1부, 책세상, 2006, 31~33쪽). 그가 악마와 계약하여 처녀를 희롱하고, 신화 속의 전쟁에 뛰어들고, 바다를 메우는 개간사업을 시작했던 것은 ‘태초에 말이 있었다’는 세계관을 거부하고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고 선언한 후였다. 가장 열심히 말의 세계를 믿었던 자가, 행동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아마 파우스트와 같은 모험이 필요할 것이다. 파우스트가 자신의 서재를 벗어나 시공을 뒤집는 모험에 나섰던 것처럼, 한유주와 최제훈도 이야기의 끝, 혹은 끝없는 이야기라는 감옥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때 소설 역시 감옥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엄을 되찾을 것이다. ■당선소감 책은 끝없는 미로… 내 모든 단어 빚지고 있어 아직 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은데 덜컥 당선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더듬더듬 잘 모르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문득 어지럽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길은 앞이 명확했던 적이 없었다. 책을 한 권 읽으면, 세상은 그만큼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 권의 책을 숙제로 남겼다. 그러니까 이 길은 목적지가 분명한 대로가 아니라,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미로이다. 이 미로를 열심히 헤매고 싶다. 고마운 사람이 너무 많다. 사실 나는 그들이 전해준 것을 비로소 적었을 뿐이다. 나는 모든 단어들을 빚지고 있다. 그래서 당선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말은 단순히 수사가 아니다. 우선 나는 박광현 선생님에게 글쓰기의 모든 것을 배웠다. 내가 지키고 있는 규칙들은 전부 선생님에게 받은 것이다. 황종연 선생님은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보여주셨다. 한만수 선생님은 어떻게 학문이 정의로워질 수 있는지 알려주셨다. 그리고 김춘식 선생님께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배웠다. 더불어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책읽기의 즐거움’의 멤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허병식 선생님, 복도훈 선생님, 서희원 선생님, 조형래 선배, 김민선, 박진솔, 임세화, 전호성, 한정현, 홍덕구 등 모두들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들에게 동의하거나, 혹은 반박하면서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내 글을 가장 먼저, 그리고 아마도 가장 즐겁게 읽어준 경연에게 감사한다. 너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고집 센 아들의 선택을 지금까지 지지해주신 부모님께는 가장 큰 감사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많이 부족한 글에서 가능성을 보아주신 두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싶다. ●약력 ▲1983년생 ▲ 2002년 동국대 국문과 입학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심사평 균형적 함의 도출 … 평론가로서의 앞날 기대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17편이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이들 작품을 통독하고 그 가운데 최종 논의 대상으로 4편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를 정독한 후 장시간의 논의를 거쳐 당선작을 확정하였다. 심사기준으로는 응모 평론이 기본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잘 부각시키고 이를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가에 두었으며, 글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비평적 견식을 담보할 수 있는 문장력도 면밀히 살펴보았다. 대체로 올해의 평론 응모작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 성향에 있어서도 여전히 세부적 탐색과 분석에 치중하고 동시대 사회 속에서 해당 작품이 가진 의미를 구명하는 데는 소홀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평론이 단순하게 한 작품의 성과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배태하고 산출한 환경과 문학사적 친연성 등을 두루 고찰하고 있을 때 객관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터이다.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4편의 평론 가운데 이은이의 ‘희미해져가는 인간다움에 대하여’는 유연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문장이 뛰어났다. 하지만 보다 정치한 시각과 정론적 방식으로 대상 작품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정영의 ‘비린내, 혼종의 정체성에 저항하는 존재성’은 후각적 관점을 중심으로 작품을 규정하는 독창성이 참신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독창적 사유가 총괄적 해석력을 확보하는 데 미흡했고 비린내와 혼종성의 상관관계도, 좀 더 명료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만영의 ‘유령의 서사, 열림의 정치’는 시종일관 무난하고 균형성 있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분석 대상이 된 두 작품의 저변을 보다 치열하게 드러내고 그 상관성에 대해서도 입체적 조명이 있었으면 하는 후감이 있었다. 당선작이 된 ‘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는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이 가진 문학적 함의를 비교적 정확하고 균형성 있게 도출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에 있어서도 폭넓은 공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는 또한 평론가로서의 앞날에 대한 기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낙선한 분들께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다음 기회의 분발을 바라마지 않는다.
  • Time in Luther 루터도시 순례기

    Time in Luther 루터도시 순례기

    마틴 루터 Martin Luther 독일의 성직자, 교수. 르네상스와 모더니즘의 방아쇠를 당겼다. 학자들은 그를 두고 마지막 중세를 살았던 인물로 평가한다. 당시 그는 절대 권력을 가졌던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스타 종교인이었다.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지 500년이 되는 2017년까지 루터도시 곳곳에서는 그의 정신을 기리는 축제를 만날 수 있다. 신에서 인간으로 관점의 변화를 가져온 루터의 자취를 좇는 루터도시 순례에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루터도시 순례기 Time in Luther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시공간을 찾아갔다. 중세와 근대의 경계를 고스란히 간직한 독일 소도시 여행에서 구도자의 삶을 엿본다. 내가 찾아간 독일은 다시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의 시대였다. 루터가 살았던, 죽었던, 설교했던, 공부했던, 결혼했던, 세례를 받았던 독일의 튀링겐주와 작센안할트주 일대는 아예 루터도시Lutherstadt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2017년이면 루터가 그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을 성당에 못 박은 지 500년이 된다. 독일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축제가 한창이다. 500년이 흐른 지금도 루터가 부지런히 상기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여정의 끝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루터로의 시간여행은 시작됐다. 비텐베르크 루터하우스. 각 나라 언어로 제작된 박물관 안내서가 구비돼 있다 ●아이슬레벤Eisleben 루터의 시작과 끝이 만나는 도시 본격적으로 루터의 자취를 좇는 여행은 그가 태어난 아이슬레벤에서 시작됐다. 인구 2만5,000명이 사는 아이슬레벤은 우리나라 폐광촌과 분위기가 흡사했다. 구리 채굴로 번성했던 도시의 과거 영화는 시민 계급의 주택으로만 남아 있을 뿐, 지금은 한적하기만한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매년 찾아오는 50만명의 관광객으로 그리 외롭진 않다. 루터가 태어난,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프로테스탄트의 성지라는 점이 그들의 발길을 이끈다. 걸어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작은 도시 곳곳에서 루터를 만날 수 있다. 루터는 티셔츠에 머그컵에 부지런히 등장하는 체 게바라처럼 인기 있는 혁명가 아이콘이다. 루터는 갤러리에 걸린 팝아트에도 등장하고 아이들이 갖고 노는 종이 인형의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루터 시대 먹었던 음식을 재연한 이색적인 레스토랑도 인기다. 도시 광장 한복판에 성서를 들고 있는 루터 동상은 빼놓을 수 없는 관광객의 사진 포인트. 라틴어를 읽고 쓸 줄 알았던 소수의 전유물이던 성서를 독일어로 최초 번역한 그의 업적을 기렸다. ‘소수자’로 태어난 루터는 대중의 언어인 독일어를 일부러 배우고 익힌 후에야 번역을 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시대 계층간의 단절이 새삼 놀랍다. 그가 번역한 성서는 당시 1,000만권 정도 복사된 최고의 밀리언셀러였다. 지식을 독점하면서 우위를 누렸던 성직자들이 루터를 고운 눈으로 봤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루터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깊어 갔다. 화답이라도 하듯 루터는 현 루터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교를 한다. 그가 마지막 설교를 했던 상트 안드레아스 키르헤 교회도 예전 그대로다. 부축을 받으며 절뚝절뚝 단상에 올랐을 노성직자가 아른거린다. 교회를 나와 세상에서 첫 번째 박물관으로 탄생한 루터의 생가로 향한다. 루터의 가족이 살았던 집이 복원돼 있다. 방명록에는 심심치 않게 한글이 눈에 띈다. 한국인 성지 순례자가 꼭 들르는 관광지다. 생가 이층에서 창문을 열면 루터가 세례를 받은 상트 페트리 바울리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가톨릭 세계관에서 세상에 태어난 생일은 중요치 않았다. 세례를 받은 후에야 그 삶에 비로소 의미가 있었다. 종교인으로서 시발점이자 종결점이 된 이 도시가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유이기도 했다. 교회에는 아기 루터의 머리를 적신 성수가 담겼던 세례 그릇이 복원돼 있다. 새겨진 문구는 마태복음 28장 19절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말씀을 실행한 루터는 그 당시 가장 유명한 독일인이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아이슬레벤 루터 생가에서 만난 루터 동상. 이곳은 세계 최초의 박물관으로 지정됐다 2 루터를 종이인형으로 형상화한 그림. 루터는 아이슬레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콘이다 3 루터가 마지막으로 설교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른 신랑, 신부 ●비텐베르크Wittenberg 근대의 프로메테우스가 되다 루터의 본류를 좇으려면 비텐베르크가 빠질 수 없다. 이곳은 500여 년 전 지구상에서 가장 사상적으로 치열했던 땅이다. 중세 학문의 중심지였던 비텐베르크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모여들었고 수준 높은 학문이 교류됐다. 루터는 이곳에서 생애 가장 많은 시간, 가장 치열한 한때를 보냈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광장으로 향했다. 시청에 내걸린 거대한 루터 현수막 아래로 진짜 루터가 등장했다. 은발의 노신사가 루터와 같은 수도복을 입고 추종자들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닌다. 독일식 코스튬플레이인가 싶어 절로 웃음이 났는데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비텐베르크 시민들도 이제는 그냥 그를 루터라고 부른다는 말에 뒤집어졌다. 당시 루터는 중세의 아이돌이었다. 동경하고 추종하는 자도 많았으니 내가 루터라고 주장하는 가짜 루터들도 출몰할 법했다. 루터가 1511년부터 거주한 수도원은 지금까지 원형이 보존돼 ‘루터하우스’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그곳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다량의 루터 초상화다. 젊은 루터, 늙은 루터, 박사모를 쓴 루터, 수도복을 입은 루터 등등 화가들은 쉴 새 없이 화폭에 루터를 담았다. 그를 스타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조목조목 따지고 든 95개 조의 반박문을 1517년 성교회Castle Church에 못 박은 일이었다. 루터는 거침없었다. 교회의 처사에 부글부글 끓던 사람들에게는 통쾌한 대자보였던 것이다. 가장 강력한 권력 대한 반박문은 종교개혁에 소중한 첫걸음이 됐다. 루터하우스에서 성교회까지, 도시를 가로지르는 길은 도보로 20여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중세의 매듭이 묶이고 근대라는 시간이 스멀스멀 탄생한 것이다. 그가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루터는 근대의 불을 인간에게 안긴 프로메테우스가 됐다. 그리고 그는 설교로 계속 그 불의 온기를 유지해 나갔다. 그가 최초로 또 2,000회 이상 독일어로 미사를 올렸던 성 마리아 교회의 첨탑이 광장 동쪽으로 삐죽이 솟아 있다. 거칠게 생각해 보면 루터는 역사책 안의 인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와는 상관도 인연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일요일엔 교회 대신 백화점으로 향하는 내게도 크리스마스는 가장 신나는 ‘빨간 날’일 뿐이다. 그럼에도 종교를 개혁한 마틴 루터에게 우리는 분명 빚을 지고 있다. 그가 우리의 관심사를 신에서부터 인간으로 되돌린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건 거창하다. 다만 구시대의 모순에 하나둘 반기를 들었던 행동들이 모여 역사가 흘러갔다는 것.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의 용기 덕분에 근대의 수혜를 입었다는 것. 그게 제일 크겠다. 이제 세상은 신의 계시가 아니라 과학적인 합리성에 의해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과학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새 질서를 꿈꾸는 이때 독일인은 부지런히 루터를 소환하고 있었다. 다시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루터도시는 희망의 증거를 내준다. 4 비텐베르크 광장.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걸개가 걸려 있다 5 맥주는 빠질 수 없는 독일인의 문화.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했을 정도로 루터 역시 맥주를 즐겼다 6 비텐베르크는 루터로 꽉 찬 도시 같다 ●밤베르크Bamberg 천년의 낙차를 여행하다 루터가 살았던 중세를 오감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밤베르크만한 곳이 없다. 이름도 생경한 이 도시에 들어서려면 다소 긴 관문을 통과한다. 뮌헨 공항에 내려 세 시간여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이 도시에 다다르면 여독보다 더 강렬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이동의 피로감은 뒷전이 된다. 밤베르크는 수로를 따라 발달한 도시다. 볕에 대기가 달궈지기 전 찬 공기와 만난 수면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니 그 운치는 몇 곱절로 늘어난다. 시간이 흐르자 밤베르크에는 볕이 가득하다. 조도가 높았다. 워낙 일조량이 적은지라 아이가 태어나면 항우울성 예방주사부터 맞힌다는 독일에서 운 좋은 시작이었다. 골목골목 독일 특유의 목조건물이 즐비하고 알록달록한 색색의 담장을 넝쿨이 따라간다. 약속이나 한 듯 건물 위에 얹은 빨간 지붕 옆으로 너른 포도밭이 펼쳐져 있어 건물과 자연의 보색대비가 도드라진다. 느릿한 걸음으로도 두 시간 남짓이면 도시를 크게 한 바퀴 휘감을 수 있다. 세계대전의 폭격을 피해 간 덕분에 옛 모습을 간직한 도시는 1993년 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인리히 2세 황제가 신성로마제국 중심지로 가꾼 밤베르크는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지어진 도시. 때문에 언덕을 오르내리는 수고쯤은 감내해야 한다. 황홀한 낙차를 즐기며 걸음걸음을 옮기다 보면 밤베르크가 살아있는 고도古都라는 데 공감이 간다. 레그니츠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업을 잇던 어부들의 집 주변으로 상가가 조성돼 있다. 지금도 그곳에는 카페가 들어서 있고 아기자기한 기념품점이 늘어섰다. 꽤나 낡아 보이는 집들도 아직 짱짱한 현역이다. 밤베르크 사람들은 고작 몇백년 된 건물이라고 받아친다. 우리 같았으면 당장 ‘진입금지’를 뜻하는 펜스부터 둘렀을 법한데 10세기에 조성된 이 도시는 현대적인 기능까지 돋보인다. 겹겹이 쌓인 지층처럼 천년의 시간 위에 현재의 삶이 덧입혀진 모습이 아름답다. 과거를 기억하는 건 비단 도시만이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선조의 문화를 고집스럽게 이어가는 이들이 밤베르크 여행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가장 유명한 곳은 슈렝케를라Schlenkerla로 불리는 양조장. 밤베르크에 있는 8개의 맥주 양조장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이다. 얼큰하게 취해서 비틀비틀 걷는 모양이라는 뜻의 의태어가 가게 이름이 됐다. 지금도 아버지의 아버지가 마시던 맥주를 마시려는 애주가들로 슈렝케를라 앞은 북적거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맥주 맛은 한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훈증을 거친 몰트로 맥주를 빚기 때문에 ‘훈제맥주’로 불리는 맥주는 구운 치즈와 같은 향을 가졌다. 짙은 훈제맥주로 목을 축일 수 있는 건 밤베르크 여행의 색다른 묘미다. 6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현 주인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다. 훈제맥주는 ‘적어도 세 잔은 마셔야 진가를 알 수 있다’며 완벽한 궁합을 이루는 안주를 공수한다. 맥주는 인류가 천년을 이어온 고급문화의 정수라며 문명이 있는 곳에 술이 있다고 한다. 옛 맛을 기억한 손님이 다시 찾아와 줄 때 가장 행복한 것은 물론이다. 그의 말처럼 이곳의 맥주는 마시자마자 기억을 환기시키는 ‘리퀴드 타임머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했다. 덕분인지 밤베르크 성인의 맥주 섭취량은 독일 내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성인 한 명이 연중 288L의 맥주를 마신다고 하니까. 중세부터 지금까지 밤베르크 사람들은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다”라고 외쳤던 루터의 ‘명언’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밤베르크의 맥주로 미각을 깨웠다면 이제 영혼을 깨울 차례다. 밤베르크의 역사는 건축물로 상징된다. 구시가지 중심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는 노란빛 구시청사가 위태롭게 자리했다. 반면 도시 어디에서나 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 황제의 대성당Imperial Cathedral과 성미카엘교회St.Michael’s Church는 위풍당당하다. 이 건축물들의 대비가 정치와 종교의 투쟁을 겪어 온 유럽의 역사를 드러낸다고 하면 오산일까. 지금도 밤베르크 시민의 90%는 가톨릭을 믿고 있을 만큼 구교의 위세는 예부터 대단했다. 언제나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시선이 맞닿는 곳에 대성당과 교회를 지었고 교회 내부 또한 화려하게 꾸몄다.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천국임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금은보화로 교회를 치장하는 것이었다. 밤베르크 교회는 더 나아가 그 당시 가장 희귀했던 식물 578가지를 천장에 수놓았다. 중세 유럽에 처음 전파된 토마토도 보인다. 값지고 아름다운 모든 것은 교회에 있었다. 종교는 교회만큼 아름다운 사후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장했다. 하지만 교회의 절대적인 권력에 슬슬 금이 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시청사 부지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주교는 한뼘의 땅도 허락하지 않았던 탓에 시민들은 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 한복판에 인공섬을 만들었다. 주교의 소유권이 강을 경계로 끝난다는 데 착안한 묘수였다. 조금씩 눈뜨기 시작한 시민의식이 한데 모아져 보란 듯이 인공섬 위에 시청을 세웠던 것이다. 그제야 강 위에 지어진 밤베르크의 구시청사를 아끼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함께 싸워서 얻어낸 성지와도 같았다. 그래서 지금껏 밤베르크의 랜드마크는 교회와 성당이 아니라 낡은 시청사다. 절대적이었던 명령에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이라….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 있는 도시 어디에서든 루터의 흔적이 보였다. 껑충 시간을 뛰어넘은 여행자에게 밤베르크는 루터 여행을 매듭짓기에 완벽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모던 아트와 결합된 황제의 대성당 2 실제로 운행되는 증기기차. 밤베르크와 쌍둥이 도시인 퀘들린부르크에서 탑승할 수 있다 3 7개의 언덕 위에 지어진 밤베르크. 천천히 골목골목을 걷기 좋다 4 슈렝케클라에서 훈제 맥주와 맛보는 전통음식 글·사진 양보라 기자 취재협조 독일관광청 www.germany.travel/kr 02-773-6430 ▶travie info 밤베르크 비어 투어 맥주가 없는 밤베르크는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비어 투어는 가이드와 함께 도시 내 양조장을 돌며 밤베르크의 맥주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 2013년 12월까지 운영된다. 밤베르크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출발한다. 비용 1인당 20유로 문의 0951-2976-200 홈페이지 www.bamberg.info ●Travel to Lutherstadt 루터 도시 기행 루터를 더 깊숙이 체험할 수 있는 루터의 도시들 아이제나흐Eisenach 루터가 학생 시절 머물렀던 아이제나흐에는 1483년부터 1501년까지 루터가 살았던 집이 남아 있다. 루터의 집은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중 하나. 멋진 담장이 인상적이다. 학창시절을 보여 주는 전시품을 통해 루터의 과거를 엿볼 수 있을 뿐더러 현대적인 전시관에는 멀티미디어 기술로 종교개혁을 재현해 놨다. 에어푸르트Erfurt 독일의 중부지방에 위치한 에어푸르트는 오늘날 튀링겐주의 주도다. 중세 도심 가운데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구시가가 인상적. 구불구불한 골목과 광장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마리아 성당과 세베루스 교회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돋보인다. 중세시대 종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큰 ‘글로리사’도 볼 수 있다. 매년 11월10일 수천명의 에어푸르트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대성당 광장에서 마틴 루터의 생일을 축하한다. 슈말칼덴Schmalkalden 섬세하게 복구된 중세 목조 건물들과 뾰족한 계단 모양 지붕이 있는 석조 건물들, 후기 고딕 양식의 성게오르그교회, 르네상스 시대의 빌헬름스부르크성이 도시의 역사를 전해 준다. 슈말칼덴의 군주였던 필립 폰 헤센은 최초의 개신교 선제후 중의 한 사람으로, 카를 5세에 맞서던 인물. 16세기 독일 및 유럽 역사에서 쟁점이 됐던 도시다. 토어가우Torgau 마틴 루터는 “토어가우의 건축물들은 그 아름다움에서 모든 고대 건축물들을 능가한다”고 평했다. 토어가우에는 르네상스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옛 건물들이 500여 곳 정도 남아 있는데, 이 수많은 문화유산 건축물들은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며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술을 보여 주고 있다.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의 무덤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루터 도시로 Rail & Fly 밤베르크에서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은 뮌헨공항, 아이슬레벤과 비텐베르크에서는 베를린공항이다. 루프트한자가 뮌헨과 프랑크푸르트에 각각 주 6일, 주 7일 운항하고 있다. 베를린까지는 루프트한자 국내선을 이용할 수 있다. 루프트한자 국제선과 독일철도를 연계해 사용할 수 있는 Rail & Fly 티켓 서비스도 편리하다. 독일 내 모든 기차역에서 독일 국제 공항까지 이동하는 티켓이 편도 25유로, 왕복 50유로부터 제공된다. 루프트한자 한국어 사이트에서 예약할 수 있다. www.lufthansa.com 1 밤베르크에 있는 어부들의 집. 중세 목조 건축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2 성당에 현대적인 조각을 함께 설치한 독일인들의 부러운 감각 3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중세 독일 기행. 골목길마다 작은 탄성이 이어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파리 시절의 반 고흐를 만나다

    파리 시절의 반 고흐를 만나다

    11월 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막을 올리는 ‘반 고흐 인 파리’전은 1886~1888년에 이르는, 짧지만 강렬했던 반 고흐(1853~1890)의 파리 체류 시절을 다룬다. 오늘날 고흐 하면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풍경’ 같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얇고도 밝은 붓 터치를 이용한 독특한 그림체를 떠올린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렇게 그린 건 아니다. 37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흐가 화가로 활발히 활동한 기간은 불과 생애 마지막 10여년. 그 가운데 네덜란드에 머물러 있던 전반부 6년 동안에는 아주 두껍고 어두운 필체를 구사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농부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화풍의 변화는 동생 테오의 후원 등으로 파리로 오면서 일어난다. 큰 문화적 충격과 함께 인상파, 신인상파의 영향을 받으면서 어떻게 하면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모색해 나가는 시기가 파리 시기다.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때 고흐가 색채, 양식, 구도를 두고 어떤 걱정과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 추적하기 시작했고, 7년간의 추적 결과를 모아 지난해 봄 네덜란드에서 전시를 진행했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것을 가져온 것이다. 작품은 파리 시기를 중심으로 한 55점의 유화. 파리에서 고흐에게 물감을 제공했던 미술상인을 그린 ‘탕귀 영감’ 같은 작품은 프랑스 로댕박물관 소장작품인데 프랑스 이외 지역으로 반출되는 것은 처음이다. 전시작품들의 보험평가액은 깎고 깎아서 5500억원대에 이른다. 여기에다 그림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진행했던 X선 촬영 사진 등 연구 자료들을 함께 전시했다. 또 눈길을 끄는 대목은 9점에 이르는 자화상들. 고흐는 평생 36점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이 가운데 27점을 파리 시기에 그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구를 위해서는 직접 그려 봐야 하는데 돈이 없어 모델을 쓸 수 없으니 자기 얼굴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표현해 본 것이다. 이 가운데 9점의 자화상이 전시된다. 전시 총감독을 맡은 서순주 박사는 “마침 네덜란드 쪽에서 대대적인 미술관 개보수 작업이 이뤄져 이번 같은 전시가 가능해졌다.”면서 “2007년 80만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간 고흐전이 대표작을 모은 일종의 회고전이라면, 이번 전시는 고흐의 천재적 화풍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교육적인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24일까지. 성인 1만 5000원. 청소년 1만원. 1588-2618.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시인 도종환 ‘오장환 시 깊이 읽기’

    시인 도종환이 ‘오장환 시 깊이 읽기’(실천문학사 펴냄)를 내놓았다. 오장환(1918~1951)은 백석·이용환 등과 함께 1930년대 후반 활동하던 시인으로, 휘문고 시절에 정지용에게 시를 배웠다. 단 한편의 친일시도 쓰지 않으면서 어렵고 궁핍한 시기를 잘 견뎌낸 시인은 신장병으로 6·25전쟁 때 세상을 떴다. 오장환의 시는 리얼리즘·모더니즘 계보에 속한다.
  • [최동호 새벽을 열며] 천재 시인 백석과 늙은 양치기

    [최동호 새벽을 열며] 천재 시인 백석과 늙은 양치기

    지난 7월 1일은 천재 시인 백석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백석은 1912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해 1930년 소설로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일본 유학 후 1936년 1월 시집 ‘사슴’을 간행해 시단에 혜성과 같이 등단했다. 1935년의 정지용 시집에 이어 다음 해 백석 시집의 출간은 한국 현대시가 실질적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극복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김기림은 ‘백석 시집을 가슴에 안고’라는 신간 서평을 통해 백석 시집이 ‘신년 시단에 한 개의 포탄을 내던졌다.’고 표현한 바 있다. 백석은 문학적 명성만큼 행복한 시인은 아니었다. 구원의 여성 란과 사랑을 이루지 못한 이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했지만 다시 여기서 만난 자야 여사와의 사랑 또한 불행한 결말로 끝났다. 1940년대에는 만주 일대에서 방랑하듯 생계를 위해 측량보조원, 측량서기, 소작인 등 온갖 고초를 겪는 극빈의 생활을 경험했다. 백석이 이 시기에 쓴 것으로 여겨지는 역작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과 같은 시는 그의 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남북 분단으로 문단에서 사라진 그의 시들은 유종호 신경림 등의 선구적인 논의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봉인된 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의 시가 다시 사람들에게 읽히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납북·월북작가들에 대한 해금 조치 이후다. 2001년 북의 유족들에 의해 1995년 백석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1959년 1월부터 사망시까지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협동농장에서 양치기 생활을 한 것도 전해졌다. 1958년 10월 이른바 당에서 내려온 ‘붉은 편지’ 사건 이후 당성이 부족한 작가들에게 현지 지도원으로 내려가 ‘붉은 작가’로 단련할 것을 요구하는 당의 명령에 따라 백석은 자원 형식으로 내려간 것이었다.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산간 오지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양의 출산을 기뻐하고 양을 몰고 나갔다가 양을 몰고 들어오는 단조로운 생활이었을 것이다. 분단 이후 백석에 대해 최초로 본격적인 평필을 든 유종호가 그의 시에서 한국적 페시미즘을 논한 것은 그의 문학만이 아니라 생애 전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보면 백석의 문학적 인간적 불행은 한국문단의 불행이자 분단시대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사례일 것이다. 인생의 전반부는 천재시인으로 평가되는 문단적 명성을 누렸으나 인생의 후반부는 산골오지에서 양치기로 살아야 했다는 것은 그의 생에 드리워진 비극적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말로도 논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 만주에서 방랑을 시작할 무렵에 이미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1941년에 발표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그는 하늘이 사랑하는 사람을 낼 적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라고 노래했다. 20대 초반의 미끈하고 준수한 미남의 얼굴과 70대 중반의 늙은 양치기의 얼굴에서 백석의 반세기가 교차한다. 산간 오지의 양치기가 돼 산야를 누비면서 바라보았을 수많은 봄과 여름을 떠올려 본다. 그는 하릴없는 여름날 느리게 걸어가는 양들과 흰 구름과 들꽃을 스쳐 가는 바람을 보았을 것이며 바람결에 스치는 그 향기를 느꼈을 것이다. 복권을 위해 당에 충성하는 편지와 시를 쓰며 울분을 다스려야 했던 40대 후반의 자신을 그는 회심의 미소를 띠며 회상했을 것이다. 회한과 오욕을 넘어선 경지에서 하늘을 바라보았을 그의 미소가 잔잔하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운명의 사슬을 벗어난 그가 영원한 자유인으로 웃고 있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백석문학전집’을 통독하면서 한국 현대시의 정점에 서 있는 그의 시와 20세기 한국인이 헤쳐 나와야 했던 역사적 굴곡의 상징적 축도로서 그의 생이 하나가 돼 만들어진 큰 바위 얼굴과 같은 거대한 시인의 초상화를 그려 본다.
  • 건축, 권력에 지배당하거나 공간을 지배하거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을 보자. 어떤 이에게는 ‘예술의 중심지로 보일 테고 어떤 이에게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건축물로 보일 것이다. 시인이자 건축가, 건축평론가인 함성호에게는 “궁궐 건축의 기둥 형태를 기괴한 스케일로 ‘뻥튀기’하여 육중한 돌로 포장”한 “정권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과거 양식 차용의 좋은 예”다. 그는 경복궁의 ‘국립민속박물관’이나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도 ‘한통속’으로 본다. 정치 권력과 자본의 시녀로 전락한 건축물이다. 그는 건축에 대한 날카롭고 진지한 비판과 건축 예술에 대한 찬사를 담아 ‘반하는 건축’(문예중앙 펴냄)을 냈다. “우리가 당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고 있는 건축이라는 공간 체험 예술이 어떤 내밀한 욕망과 사회적 담론들을 내재하고 있는지 밝혀내려고 했다.”고 말한다. ‘반하고 반하는 건축 이야기’라는 부제로 설명하자면 앞에 있는 ‘반(反)하는’은 건축의 본질과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고 뒤의 ‘반하는’은 가치가 살아 있고 감정적으로 끌리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 두 성격으로 분리해 건축을 이야기한다. 그럼 ‘반(反)하는 건축’이란 무엇인가. 앞서 말한 건축물이 대표적이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3공의 콤플렉스는 도덕성 결여, 정당성 부재였다. ‘우리에게 전통이 있어.’라고 강조하기 위해 구례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팔상전, 금산사 미륵전을 ‘짬뽕’한 것이 국립민속박물관이다. 유신시대에 지어진 세종문화회관의 거대한 수직 열주들도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 건물을 정치적 의미로 해석해 치워 버리기도 한다. 1997년에 사라진 조선총독부가 비근한 예다. 저자는 아파트 주거 형식이 민족 생활 환경을 어떻게 파괴하고 고부 갈등을 부추겼는지, 학교 구조가 어떻게 감시와 처벌의 공간으로 작용하는지, 종교 대자본가들이 선호하는 건축이 왜 체육관을 닮았는지 설명하면서 시대와 세태를 배반하는 건축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친다. 이어 모더니즘에서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건축 사상을 소개하고 매혹적인 건축의 방법과 공간 개념,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본령도 전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런 방식의 접근은 순전히 건축을 보는 내 자의적인 방법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면서 “이 작업은 어쩌면 내 개인적인 가설이 될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고 했다. 그 개인적인 가설을 서울시 신청사에는 어떻게 대볼까 궁금증이 일어 저자에게 물었다. “슬쩍 지나가 보기만 했지 자세히 보지 않아서 어떤 분석을 할 수는 없지만 첫눈에 쓰나미(지진해일)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저자는 “우리나라 관공서가 늘 원하는 것이 전통미인데 그런 의도에서 신청사가 처마 모양을 땄다는 것은 대단한 비약이고 구색 맞추기”라고 말했다. 저자의 ‘가설’에 철학적 사유도 덧대고 의미 있는 그림을 넣어 건축을 보는 시선에 대한 깊이와 즐거움을 상승시킨다. 1만 5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한국현대 조각 선구자’ 우성 김종영 30주기 특별전

    ‘한국현대 조각 선구자’ 우성 김종영 30주기 특별전

    김종영 미술관(관장 최종태)은 7월 26일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우성 김종영의 서거 30주기를 맞아 <김종영 그 絶對를 향한>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는 조각뿐만 아니라 회화, 소묘, 서예 등 모든 분야에서 상승의 경지를 이룩한 거장 김종영의 예술적 면모를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다. 조각가 우성 김종영(1915~1982)은 한국현대 조각의 대부로 한국 근 현대 조각사에 큰 획을 그은 예술가이다. 치열한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서 반성과 자아성찰을 통해 예술 활동에 전념했으며 미술의 상업화를 경계하고 치열한 작가정신을 자기수양의 덕목으로 삼아 활동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로 재직하며 서울대학교의 학풍을 세우고 한국 현대조각의 주춧돌을 마련한 교육자로도 인정받았다. 우상 김종영의 조각세계는 모더니즘예술의 이념이자 기초정신이기도 한 단순미와 물질과 정신을 잇는 진리체계의 파악 그리고 남다른 실험정신이 모여 만들어 졌다. 특히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추구했던 예술성은 진리와 미가 합치되는 이상적인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전시회는 김종영 미술관 본관 불각재와 신관 사미루 전관에서 열린다. 불각재에서는 다양한 재료와 양식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신관 사미루에서는 입체와 드로잉, 지필묵과 도구를 전시하는 쇼케이스 및 김종영의 작품세계를 안내하는 동영상을 볼 수 있다. 특히 서예 작품들과 함께 김종영의 대표작인 ‘철조<전설>’도 선보인다. 김종영 미술관측은 “이번 전시를 통해 거장 김종영의 예술이 지닌 전통과 현대의 미를 선사할 것”이라며” 대중뿐만 아니라 젊은 작가들이 서구화된 산업사회가 지향하는 새로운 가치관과 전통의 융합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 뉴스팀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대중음악] ●2012 김범수 콘서트 ‘겟올라잇쇼케스트라’ 25~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가수 김범수가 데뷔 이후 처음 세종문화회관에 입성해 펼치는 공연으로 40인조 오케스트라와 17인조 빅밴드와 함께 풍성한 무대를 꾸민다. 6만 6000~12만 1000원. (02) 515-0314. ●바비킴 소극장 콘서트 ‘Love Chapter2’ 6월 28일~7월 1일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힙합과 솔을 넘나드는 보컬리스트 바비킴이 여는 두 번째 소극장 콘서트. 7만 7000~8만 8000원. 1644-4575. [연극·뮤지컬] ●뮤지컬 ‘풍월주’ 7월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컬처스페이스 엔유. 고대 신라의 신분 높은 여자들을 접대하는 곳 ‘운루’에 각각의 사연을 품은 남자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바람과 달의 주인이라는 의미로 ‘풍월주’로 불린다. 운루의 제일가는 남자 기생 ‘열’, 달 그림자처럼 항상 열의 뒤를 바라보는 ‘사담’, 천하를 호령하지만 사랑을 얻지 못한 여왕 ‘진성’의 얽힌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4만~5만원. 1577-3363. ●연극 ‘그을린 사랑’ 6월 5일~7월 1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한 여인의 삶과 열망, 저항 및 자신의 기원을 찾는 세 개의 운명들에 대한 이야기로,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예술영화 최다관객동원을 기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2만~5만원. 1644-2003. [국악·클래식] ●카르멘 모타의 알마 23~26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스페인 플라멩코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카르멘 모타의 최신작. 1막은 정통 플라멩코와 탱고, 재즈, 현대무용이 어우러지고 2막에서는 행복과 슬픔, 고독, 환희 등 감정들을 표현했다. 5만 5000~15만원. (02)2005-0114. ●정오의 음악회 15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국립극장이 오전에 선보이는 국악 콘서트. 재일교포 작곡가 양방언의 ‘프런티어’를 시작으로 동요 메들리, 남도민요, 살풀이 등이 이어지면서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이 풍성한 무대를 꾸민다. 가수 김현철의 특별무대도 준비했다. 1만원. (02)2280-4115~6. [미술·전시]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 유영국 10주기전 18일부터 6월 17일까지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 모더니즘 회화의 대부로 꼽히는 유영국(1916~2002) 작가의 작품 60여점을 6개의 작업시기별로 나눠서 조망한 전시다. 미술관급 전시라 상업갤러리로서는 이례적으로 입장료가 있다. 3000~5000원. (02)519-0800. ●엑스레이 작가 한기창 초대전 7월 5일까지 충남 아산시 외암리 당림미술관. 수묵이나 물감이 아니라 의학도구로 활용됐던 엑스레이를 이용한 독특한 작품을 선보인다. (041)543-6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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