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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차 잘못타 생이별한 딸…37년 만에 기적 상봉

    기차 잘못타 생이별한 딸…37년 만에 기적 상봉

    기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생이별했던 딸과 37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한 어머니의 사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중국 소식전문 온라인 영문매체 차이나토픽스닷컴(chinatopix.com)은 6살 때 기차역에서 부모와 헤어진 뒤, 37년 만에 생모를 찾은 한 40대 중국 여성의 기적 같은 사연을 18일(현지시각) 소개했다. 본래 중국 후난성에 살고 있던 쟝 아이우(43)가 부모가 헤어진 것은 그녀의 나이 6살 때인 37년 전으로 장소는 후난성 지방 기차역이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던 플랫폼에서 부모와 떨어져 잘못된 기차를 탔던 아이우는 그대로 부모와 생이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어린아이였던 아이우가 탄 기차가 정차한 곳은 고향으로부터 약 724㎞ 떨어진 중국 장쑤성 북서부 쉬저우 시로 그곳에서 지금의 양부모를 만나 자라나게 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리움이 사무쳐 부모를 찾아보려는 시도를 해봤지만 그러기엔 당시 아이우의 나이는 너무 어렸다. 후난성의 집 주소조차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던 아이우가 방대한 중국땅내에서 잃어버린 부모를 찾는다는 것은 당시로썬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후 아이우는 점차 쉬저우 시에서의 삶에 익숙해지며 그녀 나름의 인생을 가꿔나가기 시작했지만 마음 한 곳에는 계속 부모를 찾고 싶다는 희망이 남아있었다. 이후 37년의 세월이 흘러 아이우는 40대 초반의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해 가정을 이뤘고 예쁜 딸까지 있었다. 그런데 최근 아이우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오래 전 생이별한 부모와 극적으로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이 기적적 사연 한 쪽에는 아이우의 딸이 행한 헌신적인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매일 생이별한 부모를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 속 고통을 알고 있었고 실종가족을 찾는 온라인 웹사이트를 꾸준히 모니터링하다 마침내 아이우의 실제 가족을 찾아낸 것이다. 놀랍게도 아이우의 모친인 주예(70)는 37년 전부터 지금까지 딸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었다. 지역 경찰서는 물론 모든 버스정류장과 기차역을 돌며 혹시나 딸이 돌아올까 봐 30년이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실종자 웹사이트까지 등록하며 지속된 노력은 37년만의 기적적인 모녀 상봉으로 이어지게 됐다. 아이우의 모친인 주예는 “딸을 찾았다는 전화가 왔던 순간을 아직 잊지 못한다”며 “37년이 지났어도 딸의 모습은 여섯 살 때 헤어졌던 그대로 같다. 이제는 서로 달라진 환경과 새로운 가족들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조카딸과 음란물 찍다 발각되자 그 엄마까지…

    조카딸과 음란물 찍다 발각되자 그 엄마까지…

    50대 미국 남성이 10살 된 조카딸을 이용해 아동 음란물을 촬영하다 이 소녀의 어머니에게 발각되자 모녀를 모두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고 미 현지 언론들이 14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해당 남성은 이 과정에서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집에 방화했으며 친척인 이들의 장례식에도 버젓이 나타났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하고 있다. 사건은 지난 1일 미국 뉴저지주(州) 롱 브랜치 지역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면서 발생했다. 당시 화재 수습 후 조사에 나선 현지 경찰은 존 콜버트(62)와 그녀가 수양딸로 기르던 10살 된 소녀가 불에 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후 정밀 사체 부검을 실시한 현지 경찰은 이 두 모녀가 목이 졸려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수사에 착수한 끝에 과거 성폭력 전과가 있는 이들 모녀의 삼촌인 브라이언 파머(58)를 일급 살인과 성폭력 혐의 등으로 체포해 기소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파머의 휴대폰을 압수해 조사한 결과, 파머는 화재 사고가 나기 전날 밤 이 집에 들어와 혼자 있던 소녀에게 아동 음란물 촬영을 강요하며 몹쓸 짓을 벌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이 소녀의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면서 이런 행위가 발각되자 파머는 콜버트를 목 졸라 살해하고 수양딸인 소녀마저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현지 경찰은 밝혔다. 뒤늦게 이러한 사실이 경찰 조사에서 밝혀지자, 사망한 모녀의 또 다른 친척은 “그가 멀쩡하게 모녀장례식에 참석해 나에게 안부를 물었다”며 “그는 짐승”이라고 치를 떨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파머는 지난 1996년 흉기로 당시 15세 소녀를 협박해 성폭행한 혐의로 13년을 복역한 전과가 있으며 성폭력 감시자 명단에 등재돼 있었던 인물이라고 현지 경찰은 밝혔다. 사진=음란물 촬영이 발각되자 모녀를 살해한 미국 남성(현지 경찰국 제공)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박성신 사망...남편 임인성 목사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올 가을 신곡앨범 발표 앞두고” 오열

    박성신 사망...남편 임인성 목사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올 가을 신곡앨범 발표 앞두고” 오열

    박성신 사망...남편 임인성 목사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올 가을 신곡앨범 발표 앞두고” 오열 ’한번만 더’로 유명한 가수 박성신이 지난 8일 세상을 떠났다. 올해 나이 45세의 안타까운 요절이었다. 박성신의 영결식은 남편 임인성 목사 등 가족과 지인들이 함께한 가운데 10일 오전 7시 가톨릭대학교 대전 성모병원에서 기독교 방식으로 치러졌다. 임인성 목사는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 방송을 하지 않고 지냈다. 아이들을 가르쳐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실용음악에 관련된 일들을 하며 문제 아이들을 만나 음악을 통해 변화가 생기는 걸 보고 보람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임인성 목사는 또 “지난해부터 아내가 욕심을 갖고 가요 앨범을 준비해 올가을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못하고 갔다”면서 “오빠 동생으로 만났는데 처음부터 사랑했고, 지금도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 밖에 해줄 게 없다. 목사일 때문에 못 해준게 너무 많아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박성신은 ‘산 넘어 남촌에는’을 부른 1960년대 유명 가수 박재란의 딸로 모녀가수다. 박성신은 1988년 제9회 강변가요제에서 ‘비오는 오후’로 가창상과 장려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데뷔해 대형 가수로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1991년 2집 앨범 ‘크림 하나 설탕 하나’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연예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결혼과 함께 목회 활동에 심취하면서 CCM 음악 활동에만 전념했고 좀체 대중 앞에는 서지 않았다. 박성신은 1990년 ‘한번만 더’를 발표해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번만 더’는 가수 나얼, 이승기, 마야 등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명곡이다. 특히 이승기가 2006년 리메이크했던 ‘한번만 더’는 가요계를 휩쓸었고 그해 연말 SBS 가요대전에서 박성신·이승기 합동 무대가 꾸며지기도 했다. 박성신 사망 소식에 네티즌들은 “박성신 사망, 믿기지 않아”, “박성신 사망, 따뜻한 남편과 살았던 듯”, “박성신 사망, 끝내 앨범을 못내다니...”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성신 사망...남편 임인성 “목사일 때문에 못 해준게 너무 많아 미안해” 오열

    박성신 사망...남편 임인성 “목사일 때문에 못 해준게 너무 많아 미안해” 오열

    박성신 사망...남편 임인성 “목사일 때문에 못 해준게 너무 많아 미안해” 오열가수 박성신이 지난 8일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한번만 더’ 히트 이후 사실상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춘 지 20여년만이다. 올해 나이 45세. 박성신의 영결식은 남편 임인성 목사 등 가족과 지인들이 함께한 가운데 10일 오전 7시 가톨릭대학교 대전 성모병원에서 기독교 방식으로 경건하게 치러졌다. 임인성 목사는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 방송을 하지 않고 지냈다. 아이들을 가르쳐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실용음악에 관련된 일들을 하며 문제 아이들을 만나 음악을 통해 변화가 생기는 걸 보고 보람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임인성 목사는 또 “지난해부터 아내가 욕심을 갖고 가요 앨범을 준비해 올가을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못하고 갔다”면서 “오빠 동생으로 만났는데 처음부터 사랑했고, 지금도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 밖에 해줄 게 없다. 목사일 때문에 못 해준게 너무 많아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박성신은 ‘산 넘어 남촌에는’을 부른 1960년대 유명 가수 박재란의 딸로 모녀가수다. 박성신은 1988년 제9회 강변가요제에서 ‘비오는 오후’로 가창상과 장려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데뷔해 대형 가수로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1991년 2집 앨범 ‘크림 하나 설탕 하나’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연예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결혼과 함께 목회 활동에 심취하면서 CCM 음악 활동에만 전념했고 좀체 대중 앞에는 서지 않았다. 박성신은 1990년 ‘한번만 더’를 발표해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번만 더’는 가수 나얼, 이승기, 마야 등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명곡이다. 특히 이승기가 2006년 리메이크했던 ‘한번만 더’는 가요계를 휩쓸었고 그해 연말 SBS 가요대전에서 박성신·이승기 합동 무대가 꾸며지기도 했다. 박성신 사망 소식에 네티즌들은 “박성신 사망, 믿기지 않아”, “박성신 사망, 따뜻한 남편과 살았던 듯”, “박성신 사망, 끝내 앨범을 못내다니...”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성신 사망...1991년 은퇴 이후 어떻게 생활했나 보니...”올 가을 신곡 앨범 발표 계획했는데...”욱 안타까워

    박성신 사망...1991년 은퇴 이후 어떻게 생활했나 보니...”올 가을 신곡 앨범 발표 계획했는데...”욱 안타까워

    박성신 사망...1991년 은퇴 이후 어떻게 생활했나 보니...”올 가을 신곡 앨범 발표 계획했는데...”욱 안타까워 가수 박성신이 지난 8일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한번만 더’ 히트 이후 사실상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춘 지 20여년만이다. 올해 나이 45세. 박성신의 영결식은 남편 임인성 목사 등 가족과 지인들이 함께한 가운데 10일 오전 7시 가톨릭대학교 대전 성모병원에서 기독교 방식으로 경건하게 치러졌다. 임인성 목사는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 방송을 하지 않고 지냈다. 아이들을 가르쳐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실용음악에 관련된 일들을 하며 문제 아이들을 만나 음악을 통해 변화가 생기는 걸 보고 보람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임인성 목사는 또 “지난해부터 아내가 욕심을 갖고 가요 앨범을 준비해 올가을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못하고 갔다”면서 “오빠 동생으로 만났는데 처음부터 사랑했고, 지금도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 밖에 해줄 게 없다. 목사일 때문에 못 해준게 너무 많아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박성신은 ‘산 넘어 남촌에는’을 부른 1960년대 유명 가수 박재란의 딸로 모녀가수다. 박성신은 1988년 제9회 강변가요제에서 ‘비오는 오후’로 가창상과 장려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데뷔해 대형 가수로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1991년 2집 앨범 ‘크림 하나 설탕 하나’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연예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결혼과 함께 목회 활동에 심취하면서 CCM 음악 활동에만 전념했고 좀체 대중 앞에는 서지 않았다. 박성신은 1990년 ‘한번만 더’를 발표해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번만 더’는 가수 나얼, 이승기, 마야 등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명곡이다. 특히 이승기가 2006년 리메이크했던 ‘한번만 더’는 가요계를 휩쓸었고 그해 연말 SBS 가요대전에서 박성신·이승기 합동 무대가 꾸며지기도 했다. 박성신 사망 소식에 네티즌들은 “박성신 사망, 믿기지 않아”, “박성신 사망, 따뜻한 남편과 살았던 듯”, “박성신 사망, 끝내 앨범을 못내다니...”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성신 사망...남편 임인성 목사 “가을에 새 앨범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오열

    박성신 사망...남편 임인성 목사 “가을에 새 앨범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오열

    박성신 사망...남편 임인성 목사 “가을에 새 앨범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오열 가수 박성신이 지난 8일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올해 나이 45세. 10일 박성신의 지인에 따르면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박성신은 8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박성신은 ‘산 넘어 남촌에는’을 부른 1960년대 유명 가수 박재란의 딸로 모녀가수다. 박성신은 1988년 제9회 강변가요제에서 ‘비오는 오후’로 가창상과 장려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데뷔해 대형 가수로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1991년 2집 앨범 ‘크림 하나 설탕 하나’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연예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결혼과 함께 목회 활동에 심취하면서 CCM 음악 활동에만 전념했고 좀체 대중 앞에는 서지 않았다. 박성신은 1990년 ‘한번만 더’를 발표해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번만 더’는 가수 나얼, 이승기, 마야 등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명곡이다. 특히 이승기가 2006년 리메이크했던 ‘한번만 더’는 가요계를 휩쓸었고 그해 연말 SBS 가요대전에서 박성신·이승기 합동 무대가 꾸며지기도 했다. 박성신의 발인은 남편 임인성 목사 등 가족과 지인들이 함께한 가운데 10일 오전 7시 가톨릭대학교 대전 성모병원에서 기독교 방식으로 경건하게 치러졌다. 임인성 목사는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 방송을 하지 않고 지냈다. 아이들을 가르쳐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실용음악에 관련된 일들을 하며 문제 아이들을 만나 음악을 통해 변화가 생기는 걸 보고 보람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임인성 목사는 또 “지난해부터 아내가 욕심을 갖고 가요 앨범을 준비해 올가을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못하고 갔다”면서 “오빠 동생으로 만났는데 처음부터 사랑했고, 지금도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 밖에 해줄 게 없다. 목사일 때문에 못 해준게 너무 많아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박성신 사망 소식에 네티즌들은 “박성신 사망, 아직 한창인 나이인데 너무 안타깝다”, “박성신 사망, 그녀의 목소리 더 듣고 싶다”, “박성신 사망, 훌륭한 가수를 잃었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성신 사망...남편 임인성 목사, 영결식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 오열

    박성신 사망...남편 임인성 목사, 영결식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 오열

    박성신 사망...남편 임인성 목사, 영결식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 오열 가수 박성신이 지난 8일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올해 나이 45세. 10일 박성신의 지인에 따르면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박성신은 8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박성신은 ‘산 넘어 남촌에는’을 부른 1960년대 유명 가수 박재란의 딸로 모녀가수다. 박성신은 1988년 제9회 강변가요제에서 ‘비오는 오후’로 가창상과 장려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데뷔해 대형 가수로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1991년 2집 앨범 ‘크림 하나 설탕 하나’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연예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결혼과 함께 목회 활동에 심취하면서 CCM 음악 활동에만 전념했고 좀체 대중 앞에는 서지 않았다. 박성신은 1990년 ‘한번만 더’를 발표해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번만 더’는 가수 나얼, 이승기, 마야 등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명곡이다. 특히 이승기가 2006년 리메이크했던 ‘한번만 더’는 가요계를 휩쓸었고 그해 연말 SBS 가요대전에서 박성신·이승기 합동 무대가 꾸며지기도 했다. 박성신의 발인은 남편 임인성 목사 등 가족과 지인들이 함께한 가운데 10일 오전 7시 가톨릭대학교 대전 성모병원에서 기독교 방식으로 경건하게 치러졌다. 임인성 목사는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 방송을 하지 않고 지냈다. 아이들을 가르쳐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실용음악에 관련된 일들을 하며 문제 아이들을 만나 음악을 통해 변화가 생기는 걸 보고 보람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임인성 목사는 또 “지난해부터 아내가 욕심을 갖고 가요 앨범을 준비해 올가을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못하고 갔다”면서 “오빠 동생으로 만났는데 처음부터 사랑했고, 지금도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 밖에 해줄 게 없다. 목사일 때문에 못 해준게 너무 많아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박성신 사망 소식에 네티즌들은 “박성신 사망, 아직 한창인 나이인데 너무 안타깝다”, “박성신 사망, 그녀의 목소리 더 듣고 싶다”, “박성신 사망, 훌륭한 가수를 잃었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성신 사망, 만 45세에 요절...엄마는 ‘산너머 남촌에는’ 박재란 , 딸은 ‘한번만 더’로 유명했던 모녀 가수

    박성신 사망, 만 45세에 요절...엄마는 ‘산너머 남촌에는’ 박재란 , 딸은 ‘한번만 더’로 유명했던 모녀 가수

    박성신 사망, 만 45세에 요절...엄마는 ‘산너머 남촌에는’ 박재란 , 딸은 ‘한번만 더’로 유명했던 모녀 가수 가수 박성신이 지난 8일 세상을 떠났다. 올해 나이 불과 45세로 박성신의 명곡 ‘한번만 더’를 떠올리는 팬들은 노래 주인공의 요절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 10일 박성신의 지인에 따르면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박성신은 8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박성신은 ‘산 넘어 남촌에는’을 부른 1960년대 유명 가수 박재란의 딸이다. 박성신은 1988년 제9회 강변가요제에서 ‘비오는 오후’로 가창상과 장려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박성신은 1991년 2집 앨범 ‘크림 하나 설탕 하나’를 마지막으로 연예 활동을 사실상 중단했다. 이후 결혼과 함께 목회 활동에 심취하면서 CCM 음악 활동에만 전념하고 대중 앞에는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성신은 1990년 ‘한번만 더’를 발표해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번만 더’는 가수 나얼, 이승기, 마야 등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명곡이다. 특히 이승기가 2006년 리메이크했던 ‘한번만 더’는 가요계를 휩쓸었고 그해 연말 SBS 가요대전에서 박성신·이승기 합동 무대가 꾸며지기도 했다. 빈소는 가톨릭대학교 대전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7시, 장지는 충북 진천 정수원이다. 박성신 사망 소식에 네티즌들은 “박성신 사망, 아직 한창인 나이인데 너무 안타깝다”, “박성신 사망, 그녀의 목소리 더 듣고 싶다”, “박성신 사망, 훌륭한 가수를 잃었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성신 사망, 최고 히트곡 ‘한번만 더’ 리메이크한 이승기와 함께 합동공연 펴기도

    박성신 사망, 최고 히트곡 ‘한번만 더’ 리메이크한 이승기와 함께 합동공연 펴기도

    박성신 사망, 최고 히트곡 ‘한번만 더’ 리메이크한 이승기와 함께 합동공연 펴기도 가수 박성신이 지난 8일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올해 나이 45세. 10일 박성신의 지인에 따르면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박성신은 8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박성신은 ‘산 넘어 남촌에는’을 부른 1960년대 유명 가수 박재란의 딸로 모녀가수다. 박성신은 1988년 제9회 강변가요제에서 ‘비오는 오후’로 가창상과 장려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데뷔해 대형 가수로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1991년 2집 앨범 ‘크림 하나 설탕 하나’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연예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결혼과 함께 목회 활동에 심취하면서 CCM 음악 활동에만 전념했고 좀체 대중 앞에는 서지 않았다. 박성신은 1990년 ‘한번만 더’를 발표해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번만 더’는 가수 나얼, 이승기, 마야 등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명곡이다. 특히 이승기가 2006년 리메이크했던 ‘한번만 더’는 가요계를 휩쓸었고 그해 연말 SBS 가요대전에서 박성신·이승기 합동 무대가 꾸며지기도 했다. 빈소는 가톨릭대학교 대전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7시, 장지는 충북 진천 정수원이다. 박성신 사망 소식에 네티즌들은 “박성신 사망, 아직 한창인 나이인데 너무 안타깝다”, “박성신 사망, 그녀의 목소리 더 듣고 싶다”, “박성신 사망, 훌륭한 가수를 잃었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성신 사망, 2006년 이승기와 합동 공연 ‘한번만 더’ 생생한데 안타까운 45세 요절

    박성신 사망, 2006년 이승기와 합동 공연 ‘한번만 더’ 생생한데 안타까운 45세 요절

    박성신 사망, 2006년 이승기와 합동 공연 ‘한번만 더’ 생생한데 안타까운 45세 요절 가수 박성신이 지난 8일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올해 나이 45세. 10일 박성신의 지인에 따르면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박성신은 8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박성신은 ‘산 넘어 남촌에는’을 부른 1960년대 유명 가수 박재란의 딸로 모녀가수다. 박성신은 1988년 제9회 강변가요제에서 ‘비오는 오후’로 가창상과 장려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데뷔해 대형 가수로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1991년 2집 앨범 ‘크림 하나 설탕 하나’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연예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결혼과 함께 목회 활동에 심취하면서 CCM 음악 활동에만 전념했고 좀체 대중 앞에는 서지 않았다. 박성신은 1990년 ‘한번만 더’를 발표해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번만 더’는 가수 나얼, 이승기, 마야 등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명곡이다. 특히 이승기가 2006년 리메이크했던 ‘한번만 더’는 가요계를 휩쓸었고 그해 연말 SBS 가요대전에서 박성신·이승기 합동 무대가 꾸며지기도 했다. 빈소는 가톨릭대학교 대전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7시, 장지는 충북 진천 정수원이다. 박성신 사망 소식에 네티즌들은 “박성신 사망, 아직 한창인 나이인데 너무 안타깝다”, “박성신 사망, 그녀의 목소리 더 듣고 싶다”, “박성신 사망, 훌륭한 가수를 잃었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성신 사망...올 가을 신곡앨범 발표 앞두고 안타까운 비극, 더욱 안타까워

    박성신 사망...올 가을 신곡앨범 발표 앞두고 안타까운 비극, 더욱 안타까워

    박성신 사망...올 가을 신곡앨범 발표 앞두고 안타까운 비극, 더욱 안타까워’한번만 더’로 유명한 가수 박성신이 지난 8일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올해 나이 45세. 박성신의 영결식은 남편 임인성 목사 등 가족과 지인들이 함께한 가운데 10일 오전 7시 가톨릭대학교 대전 성모병원에서 기독교 방식으로 경건하게 치러졌다. 임인성 목사는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 방송을 하지 않고 지냈다. 아이들을 가르쳐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실용음악에 관련된 일들을 하며 문제 아이들을 만나 음악을 통해 변화가 생기는 걸 보고 보람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임인성 목사는 또 “지난해부터 아내가 욕심을 갖고 가요 앨범을 준비해 올가을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못하고 갔다”면서 “오빠 동생으로 만났는데 처음부터 사랑했고, 지금도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 밖에 해줄 게 없다. 목사일 때문에 못 해준게 너무 많아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박성신은 ‘산 넘어 남촌에는’을 부른 1960년대 유명 가수 박재란의 딸로 모녀가수다. 박성신은 1988년 제9회 강변가요제에서 ‘비오는 오후’로 가창상과 장려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데뷔해 대형 가수로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1991년 2집 앨범 ‘크림 하나 설탕 하나’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연예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결혼과 함께 목회 활동에 심취하면서 CCM 음악 활동에만 전념했고 좀체 대중 앞에는 서지 않았다. 박성신은 1990년 ‘한번만 더’를 발표해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번만 더’는 가수 나얼, 이승기, 마야 등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명곡이다. 특히 이승기가 2006년 리메이크했던 ‘한번만 더’는 가요계를 휩쓸었고 그해 연말 SBS 가요대전에서 박성신·이승기 합동 무대가 꾸며지기도 했다. 박성신 사망 소식에 네티즌들은 “박성신 사망, 믿기지 않아”, “박성신 사망, 따뜻한 남편과 살았던 듯”, “박성신 사망, 끝내 앨범을 못내다니...”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어린이 책꽂이]

    우리는 엄마와 딸(정호선 지음·그림, 창비 펴냄) 엄마와 딸 사이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얼굴도 성격도 다르지만 누구보다 서로의 속내와 허물, 사랑을 잘 알고 있는 모녀의 교감을 진심 어린 연필화에 담았다. 실제로 딸을 키우는 작가의 경험담이 살뜰히 엮인, 세상 모든 엄마를 향한 응원가다. 1만 1000원. 박수근, 소박한 이웃의 삶을 그리다(고태화 지음, 홍정선 그림, 사계절 펴냄) 가난 때문에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고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었던 소년. 그는 자라 ‘빨래터’ ‘나무와 두 여인’ 등으로 유명한 한국 대표 화가 박수근이 된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박수근 평전이 처음 어린이책으로 출간됐다. 화가의 대표작 25점도 원화 도판으로 감상할 수 있다. 1만 1500원. 그래서 이런 음식이 생겼대요(우리누리 지음, 이진아 그림, 길벗스쿨 펴냄) 흑인들은 어떻게 프라이드치킨을 만들어 먹게 됐을까. 주인이 버린 닭 날개와 닭발을 뼈째 씹어 먹을 수 있게 기름에 바짝 튀긴 것이다. 우리 삶과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80가지의 각국 음식에 얽힌 이야기로 맛깔나는 역사를 맛본다. 1만 1000원. 세계의 모든 거인 이야기(신정민 지음, 이경국 그림, 파란자전거 펴냄) 필리핀의 수많은 섬은 거인 부부의 하찮은 부부 싸움 때문에 생겨났다. 하늘을 떠받쳐야 했던 거인 아틀라스는 스스로 메두사의 머리를 보고 돌이 되어 거대한 산이 되어 버렸다. 전 세계 20여 개국의 신화, 설화 속 거인들에게서 지혜와 용기, 사랑과 배려 등의 가치를 배운다. 1만 1900원.
  • 쓰나미 실종 소녀, 10년 만에 부모 품으로…기적

    쓰나미 실종 소녀, 10년 만에 부모 품으로…기적

    지난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Tsunami, 지진 해일)에 휩쓸려 실종됐던 4살 소녀가 10년 만에 부모 품으로 무사히 돌아온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 영국 판은 4살 때 쓰나미에 휩쓸려 실종됐던 인도네시아 소녀가 14세가 되어 다시 부모와 재회한 놀라운 사연을 7일(현지시각) 소개했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부 아체 특별 구에 살고 있던 4살 소녀 라우드하툴 잔나아에게 이날은 큰 상처로 남아있다. 당시 7살이었던 오빠와 함께 쓰나미에 휩쓸려 부모와 기나긴 이별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잔나아의 모친인 자말리아(42)는 쓰나미가 사라진 후 남편과 함께 한 달이 넘도록 실종된 딸과 아들을 찾아 헤맸다. 어딘가 꼭 살아있을 것이라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소문을 했지만 집도 사라지고 생계도 막막한 상황에서 계속 아이들을 찾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수많은 시신들을 접하던 자말리아는 어느 순간, 아이들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접게 됐다. 사랑했던 아이들을 더는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자녀를 가슴에 묻고 10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올해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 지난 6월, 자말리아의 남자 형제가 아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블랑피디 마을에서 14세가 된 잔나아를 발견한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딸과 10년 만에 재회한 자말리아는 “하늘이 기적을 이뤄줬다”며 감격했다. 10년 만에 만난 딸은 이목구비가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달라진 점도 있었다. 먼저 피부색이 많이 변해있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0년 전 한 어부에게 구조됐던 잔나아는 최근까지 그들을 도와 바닷가에서 조개를 채집해왔는데 이때 햇볕을 자주 쬐면서 자연스럽게 피부가 탔기 때문이다. 또한 본래 잔나아는 쾌활한 성격이었지만 최근 그녀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현지 언론은 쓰나미에 휩쓸렸던 공포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현재 이 모녀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 DNA 일치 테스트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자말리아와 잔나아 모두 서로가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100% 신뢰하고 있다. 잔나아는 함께 쓰나미에 휩쓸렸던 오빠와 함께 나무판자에 의지해 아체 지구에서 약 40㎞ 떨어진 반야크 섬에 표류했었다고 전했다. 그곳에서 잔나아는 어부에게 구조됐지만 오빠와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이제 17세가 되었을 아들 역시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를 찾기 위해 반야크 섬을 찾을 예정이다. 한편,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서부 연안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일어난 대형 쓰나미는 당시 23만 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다. 그중 17만명의 희생자가 아체 특별 구에서 나왔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中 차에 깔린 모녀 기적의 생존 ‘화제’

    中 차에 깔린 모녀 기적의 생존 ‘화제’

    중국에서 한 모녀가 최근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 장면이 녹화된 CC(폐쇄회로)TV 영상이 공개됐다. 중국 내 포털사이트 큐큐닷컴(QQ.com)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이 영상은 영국 동영상 공유 사이트 라이브리크에 의해 6일 소개됐다. 사고 당시 상황이 녹화된 영상에는 엄마와 딸을 친 SUV차량 한 대가 길가에 멈춰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차량 뒤에 쓰러져 있는 여자 아이가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치는 모습과 함께 차량 밑에 아이의 엄마가 깔려 있는 긴급한 상황. 이때 사고현장 인근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 중 한 남성이 여자 아이를 안아서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SUV차량을 들어 올리고 차 밑에 깔려 있던 아이의 엄마를 구조한다. 라이브리크에 따르면 사고를 당한 모녀는 구조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받고 있으며, 다행스럽게도 가벼운 부상을 입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확한 사고 경위는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영상=Channal24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이연두, 엄마와 다정한 휴가 인증샷 “엄마랑 캠핑왔어요”

    이연두, 엄마와 다정한 휴가 인증샷 “엄마랑 캠핑왔어요”

    배우 이연두가 엄마와 함께한 휴가 인증샷을 공개했다. 6일 오전 이연두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랑하는 엄마랑 캠핑하며 여름휴가 만끽! 모처럼 휴가중인 엄마와 함께! 엄마는 역시 제일 아름답고 친구 같은 존재. 앞으로 자주자주 와요!” 라는 글과 함께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 두 사람은 뚜렷한 이목구비와 큰 눈망울까지 꼭 닮은데다, 모녀지간의 다정한 모습이 훈훈함을 자아내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줌 인 서울] 사각지대 누비는 광진 ‘더함복지단’

    [줌 인 서울] 사각지대 누비는 광진 ‘더함복지단’

    지난달 9일 오후 7시. 서울 광진구 ‘더함복지단’은 자양사거리에 쓰러져 있던 김진호(가명·64)씨를 발견했다.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근근이 생활하다 목디스크를 앓으면서 실직한 노숙인이었다. 복지단이 발견했을 땐 결핵과 알코올 의존성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복지단은 김씨에게 주거를 지원하고 정신건강증진센터를 통해 알코올 치료와 함께 건강진단을 받도록 도왔다. 복지단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돕는 한편 국민기초생활보장권 수급자로 지정될 수 있도록 조치할 계획이다.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가운데 광진구 ‘더함복지단’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4일 광진구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복지단이 새로 발굴한 복지 서비스 수급 신청 가구는 2365가구다. 구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돕기 위해 8명의 전문 상담사와 통장복지도우미 357명 등을 복지단에 참여시켜 2인 1조로 현장 방문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의 주된 활동 무대는 공원, 공중화장실, 지하철역, 고시원, PC방 등이다. 구 관계자는 “가정집은 물론이고 경제적인 어려움 탓에 이미 노숙인으로 전락했거나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지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이런 곳에 사는 분들은 ‘복지’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골목을 누비며 만난 가구만 3865가구에 이른다. 이를 통해 주거와 생계·의료 등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위기가정 1500가구가 공공 및 민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금액으로는 2억 4500여만원이 지원됐다. 복지단은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채무조정·파산면책 등 필요한 법률·금융 관련 상담도 곁들이고 있다. 김기동 구청장은 “촘촘한 그물망 복지로 어려운 분들이 희망을 품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터키 여성들의 통쾌한 반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짓는 금발의 여성, 목이 뒤로 넘어갈 정도로 박장대소하는 모녀, 노를 저으며 환한 미소를 띤 젊은 여대생…. 30일(현지시간) 페이스북, 트위터 등 주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터키 여성들의 미소 사진이 수천여장 올라왔다. 바로 뷸렌트 아른츠(66) 터키 부총리의 황당한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전날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주최한 행사에서 “여자는 공공장소에서 웃으면 안 된다.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순결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른츠 부총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와 함께 이슬람에 뿌리를 둔 정의개발당을 창당한 인물이다. 그는 또 “얼굴을 쳐다보면 고개를 숙이고 살포시 눈길을 돌리며 낯을 붉히던 순결한 소녀들은 어디에 있느냐”면서 “요즘 터키가 도덕적으로 퇴보했다”고 말했다. 이런 ‘시대를 역행한’ 부총리의 주장과 관련, 터키 여성들이 자신들의 웃는 사진을 SNS에 올리며 그의 발언을 조롱했다고 가디언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터키 남성들도 트위터에 “여자가 웃으면 안 된다고 하는 이들은 겁쟁이”라며 비난 대열에 동참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사회봉사제 두고 노역장 가는 저소득층

    사회봉사제 두고 노역장 가는 저소득층

    #택시기사 김종민(57·가명)씨는 2012년 말 차량 추돌 사고를 일으켜 앞차에 있던 모녀에게 전치 8주의 부상을 입혔다. 그는 교통사고 특례법 위반으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월수입 120만원에 빚도 2억원에 달하는 처지라 한 달 안에 700만원을 마련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지난해 11월부터 올 2월까지 4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노역을 했다. #회사원 박현중(33·가명)씨는 2012년 3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를 하던 중 경찰에 붙잡혔다. 법원은 재물손괴 혐의로 그에게 지난달 벌금 300만원형을 확정했다. 그러나 박씨의 월수입은 40만원뿐. 10월에 석사논문 심사를 앞뒀지만 벌금을 못 내 교도소에 갈 위기다. 박씨는 “집이 경매로 넘어간 후 부모님의 신용 등급이 낮아 내 명의로 대출받고 집을 구한 것 때문에 사회봉사 신청이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생계 곤란으로 벌금을 못 내는 서민들이 양로원·고아원·장애인시설 봉사나 농촌일손 돕기, 재해복구 지원 등으로 노역장 유치를 대체하도록 하는 ‘벌금 미납자 사회봉사제’(사회봉사제)가 올해로 시행 6년째지만 엄격한 자격 조건 탓에 겉돌고 있다. 많은 저소득층 벌금 미납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27일 법무부·대검찰청에 따르면 사회봉사 신청자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4200명 수준에 그쳤다. 신청 자격을 가진 300만원 이하의 벌금 미납자가 최근 3년 동안 매년 22만명 정도임을 감안한다면 신청률은 약 1.9%에 불과한 셈이다. 나머지 벌금 미납자 가운데 연간 3만여명이 노역장에 유치되고, 벌금 미납에 따른 지명수배자도 18만여명에 이른다. 현재 벌금 300만원에 대한 사회봉사 시간은 480시간(약 53일)이다. 관할 보호관찰소가 지정한 곳에서 평일 하루 주간 9시간 봉사를 해야 하지만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데다 직업·학업·질병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으면 주말, 공휴일 및 야간에도 탄력적으로 할 수 있다. 물론 일부 주거가 불안정한 노숙인 등은 밥값, 교통비 등이 들지 않는 노역을 여전히 선호하기도 한다. 인권단체들은 사회봉사제가 정착하지 못하는 걸림돌로 ‘300만원 이내 벌금’ 조건을 꼽는다. 최정학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벌금을 못 내 교도소로 가게 되면 직장을 잃고 사회관계도 단절될뿐더러 전과자로 낙인찍힌다”면서 “벌금 환산액(하루 5만원)을 7만~10만원 등으로 올리거나 그것이 어려우면 봉사 시간을 늘리는 등의 방법으로 현행 벌금 기준선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 파산 선고자, 6개월 이상 장기요양자 등으로 제한된 높은 ‘문턱’도 문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집을 가진 사람이라도 대출금은 얼마나 되는지 등 실질적인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법무부는 사회봉사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사회 복귀를 오히려 어렵게 할 수 있고, 형법에 의한 집행유예자의 사회봉사 명령 최고 부과시간(500시간)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대한민국 혁신 리포트] 나에서 우리로-공동체 의식

    [대한민국 혁신 리포트] 나에서 우리로-공동체 의식

    #1. 2008년 2월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문을 연 청년 공동체 ‘빈집’. 3명의 백수가 가정집을 임대해 게스트하우스로 시작한 이곳은 현재 주택 6채와 텃밭, 문화 공간인 ‘빈가게’, 은행 ‘빙고’, 학습 장소 ‘빈연구소’를 아우르는 30여명 규모의 생활 공간으로 성장했다. 장기 투숙객으로 불리는 구성원들은 ‘살구’ ‘들깨’ 등의 가명을 쓰며 수개월에서 수년간 원하는 만큼 머물다 떠나 간다. 자치회를 통해 ‘따로 또 같이’ 운영되는 이곳에선 ‘내 것, 네 것을 따지지 않고 공유하기’ ‘환경, 생태에 관심 갖기’ 등 암묵적인 규칙도 존재한다. “음식을 나누고 함께 노래하다 보면 어느새 고민과 추억을 나눌 수 있다”는 설명이다. #2.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성미산마을’은 우리나라 공동체 운동의 산실로 불린다. 1994년 1월, 20여 가구의 젊은 부부들이 공동 육아를 위해 모인 뒤 지금은 8000여 가구 2만여명 규모의 협동조합으로 규모가 커졌다. 마을극장과 마을축제는 이곳의 자랑거리다. 하지만 출범 20년째를 맞으며 구성원의 다양화라는 고민도 떠안고 있다. 마을을 기웃거리던 20~30대의 미혼 젊은이들이 “우리가 놀 곳이 아니다”라며 이내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3인의 전문가 마을살이를 말하다 상상만 해도 흐뭇하고 살맛 나는 ‘공동체’란 무엇일까. 주민들이 힘을 합쳐 관계망을 형성하는 ‘마을살이’(마을공동체 운동)는 세월호 사건 이후 흔들리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 가치관을 되살릴 해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와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경제학 박사, 성미산 공동체 운동을 이끈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에게 우리 시대 공동체 운동과 지향점에 대해 들었다. →왜 공동체가 화두인가. -유창복(이하 유):시대가 험하니 공동체나 마을이 화두가 됐다. 결혼을 미루고 홀로 살아가는 젊은이가 늘고 결혼해도 아이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아 출산을 포기한다. 노인을 돌볼 가정과 사회의 배려도 한참 부족하다. 가족이 제구실을 못 하니 허덕이면서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이런 점에서 마을공동체는 매력적이다. 함께 모여 수다를 떨며 외로움을 덜 수 있다. 일종의 호혜적 생활관계망이다. →‘마을살이’에 대해 말해 달라. -유:지난 2월 생활고로 목숨을 끊은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와 정치권이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공언했다. 하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주변에 하소연할 곳이 있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서로 부대끼며 고민해야 한다. 마을살이는 가족의 재구성을 촉진하는 희망이다.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혈연 공동체가 강조된다. -김서중(이하 김):혈연에 기반한 자연 공동체로의 회귀라는 환상은 위험하다. 종종 형식논리에 얽매여 (전체주의처럼)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쪽으로 흐르곤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적 방식의 공동체, 그것이 추구할 목표다. →공동체의 규모가 커질수록 반작용도 커진다. -김:국가와 같은 큰 공동체에선 다수결을 적용해 소수 의견을 배제하곤 한다. 소수의 희생을 ‘숭고함’으로 포장하는 허위의식도 드러난다. 사실 공동체 내의 갈등 표출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우석훈(이하 우):우리 사회의 공동체 운동은 진행 속도는 빠르지만 파급력은 크지 않다. 궤도에 올라 안착한다면 협동조합 등 마을공동체 사업을 통해 부족한 청년층의 일자리까지 자급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이나 국가 주도의 일방적인 흐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공동체 운동이 절실하다. →성미산 공동체 운동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우:모범적이지만 정형화된 틀에 갇혔다. 구성원 가운데 큰 부자도 없고 가난한 이도 없다. 자녀를 둔 중산층 부부나 신혼부부에게 적합한 모델이다. 누군가 (비용을) 더 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서울 강북 지역에선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20대 청년들에게 개방적이지 않아 외톨이로 만들기 쉽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공영역을 갖도록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 -유:성미산 운동은 공동 육아라는 주민들의 필요에서 출발했다. 주민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정부가 해결하기 힘든 과제를 풀어 왔다. 지금 이곳 공동체를 놓고 성공과 실패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돼 돌아와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보면서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공동체란 무엇인가. -김: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해하며 살아가는 ‘관계의 조건’이다. 정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구성원들이 자기 방어력을 상실한 현대사회에서 일종의 보호막이 된다. -우:경제적 매개 없이 공동체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조합 등 경제활동을 하면서 시민의식을 키워야 한다. 큰돈 들이지 않고 일자리를 만들고 조합을 기반으로 연결될 수 있다. 여기에 시민사회 의식이 강조되면 자연스럽게 주민자치, 풀뿌리민주주의로 발전한다. -유: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의 역할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면서 스스로 알아서 해 보자는 자각으로 연결됐다. 과도한 역할을 서로 요구하지 않고 주민 스스로 적절히 알아서 일을 나누면 보다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해법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중국 관리들의 막장 드라마/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국 관리들의 막장 드라마/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 관리들의 부패 현상이 점입가경이다. 구쥔산(谷俊山) 전 인민해방군 총후근부 부부장(차관)은 200억 위안의 뇌물을 받아챙긴 것도 모자라 곳간에 마오쩌둥(毛澤東) 순금상, 황금 세면기 등 호화 귀중품 트럭 4대분으로 가득 채웠다. 웨이펑위안(魏鵬遠) 전 국가에너지국 부국장의 집에서는 1억 위안(약 165억원)의 현금 다발이 쏟아져 돈 세는데 지폐계수기가 4대나 박살 났다. 쉬치야오(徐其耀) 전 장쑤(江蘇)성 건설청장은 146명의 첩을 거느리는 것도 부족해 모녀를 첩으로 삼기도 했다. 우즈중(武志忠) 전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법제팀 주임은 현금·금괴는 물론 중국에 33채, 캐나다에 1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이 전하는 관리들이 쓰는 막장 드라마의 주요 장면들이다. 중국에 부패가 만연하는 것은 관리가 절대 권력을 쥔 탓이다. ‘권력이 있는 곳에 돈이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권전교역’(權錢交易)이 횡행한다. 특히 건설·전력·통신·교통·항공 분야 관리들은 독점적 지위에 있는 만큼 수뢰 액수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옛 부패 관리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인민일보가 연전(年前)에 보도한 ‘1000년 역사상 10대 부호’라는 기사에서 순수 상인(자본가)은 기껏 1명이고, 나머지 9명은 국정을 농단한 관리·환관·외척들이다. ‘영예의 1위’에 오른 유근(劉瑾)은 명나라 거물 환관이다. 뇌물로 받은 재산이 금 330t, 은 8050t이다. 1640년대 농민봉기를 이끈 이자성(李自誠)이 북경을 함락시킨 뒤 전국서 1년간 거둬들인 재정수입은 고작 은 200t에 불과하다. 이들 후손답게 중국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도 관리다. 지난해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직원 2명 모집에 1만 4384명이 지원, 경쟁률이 7000대1을 넘었다. 경쟁이 치열한 것은 중국이 관리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관본위(官本位) 사회’인 데다 관리는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업이기 때문이다. 검은돈(뇌물)까지는 아니더라도 회색돈(뒷돈)을 챙길 기회가 도처에 널려 있다는 점은 또 다른 요인이다. 중국인들은 회색돈에 아주 관대한 편이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지난해 여론조사 결과 중국인들의 70% 이상이 “당·정부기관 관리가 되고 싶다”며 “회색돈이 많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1만 위안도 안 되는 월급으로 자식을 해외 유학 보내는 중국 관리가 적지 않은 것도 다 까닭이 있는 셈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아무리 ‘부패와의 전쟁’을 벌여도 부패를 근절하기 힘들다는 견해가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 지배적인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중국 관리들의 부패가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 구경’일 수 없다. 전남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해경들은 운항 선박을 지켜보지 않고 골프 퍼팅 연습을 하거나, 엎드려 자거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아예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꼭 뇌물을 받아야만 부패한 게 아니다.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도 전형적인 부패 현상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공직 사회의 총체적 관리 부실은 엄청난 비리이고 사회악이다. 서울신문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 고교생들의 69.4%가 “정부를 못 믿겠다”고 응답한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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