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모금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아리랑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고온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대표성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고통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890
  • “시집 한권 정상서 음미하세요”

    “시집 한권 정상서 음미하세요”

    “도서관은 도시의 오아시스 아니겠어요. 각박한 현대 도시생활에서 시 한 편을 읽는 것은 청량한 물 한 모금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볕이 벌써부터 따가운 24일 오전 8시, 초록색 티셔츠를 점퍼 아래 받쳐 입은 유종필(53) 관악구청장은 관악산 매표소를 리모델링해 25일 개관할 ‘시(詩)도서관’을 둘러보며 시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비록 작지만 국내 최초의 시 전용 도서관이 생겼으니 시인들이 궁금해서 한번쯤 방문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드러냈다. 게다가 명예관장이 도종환 시인이지 않은가. 이어 유 구청장은 “이제 시의 저수지는 마련해 놓았으니 국내 유명, 무명 시인들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관악산시도서관에 고이기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중국·독일 등 시집 4000권 비치 하루 수만명이 이용하는 관악산의 등산객들을 위해 시 도서관을 마련한 것은 아무리 유 구청장이 ‘도서관 구청장’으로 불린다고 해도 다소 엉뚱해 보인다. 그는 “등산하는 분들이 여기서 만날 사람을 담배 피우면서 기다리는데, 짧든 길든 시 한 편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잖아요. 또 여기서 시집 한 권을 빌려 산 정상에서 한번 음미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좋아요.”라고 되물었다. 유 구청장은 20대, 30대에 종로서적 2층에서 사람을 자주 만났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책 한 페이지라도 떠들어보고 나면, 겨우 한 페이지이지만 인생에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요즘도 신림4거리를 오가게 되면 대형서점에 들러 신간을 둘러보고, 책도 몇 페이지 읽다가 나오곤 한다고 했다. 서울시에 주소를 둔 시민 누구라도 이 도서관에서 시집을 대출해 가서 읽고 기간 내에 돌려주면 된다. 오래 시를 음미할 생각이면 집에서 읽고,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 반납하면 된다. 요청하면 택배서비스도 한다. ●기증요청 편지 150통…‘도서관 청장’ 10평도 안 되는 도서관에 한국시는 물론 중국·일본·독일·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포르투갈·영미(英美) 시집 4000권을 비치했다. 그는 관악산시도서관을 준비하면서 시인협회 명부를 참고해 유명 시인들에게 ‘책을 기증해 주십사’ 하는 내용의 편지를 150여통을 보냈다. 40여명의 시인이 100여권의 친필사인을 한 시집과 책 등을 보내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자서전과 정책집도 사인을 받아 비치했다. 이해인 시인은 자신의 시집에 사인까지 해서 다른 책과 함께 10여권을 기증했다. 유 구청장은 “완전 소녀다. 수녀님은 ‘오늘이 나의 남은 생애 첫날이라는 겸손함과 따뜻함, 성실함으로 모든 구민을 끌어안는 그런 사람이 되소서’라고 써 보냈더라.”면서 “마음을 그렇게 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계도서관기행’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미국 보스턴의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에서 만난 존 F 케네디 어록집에서 ‘정치인이 오만해질 때 시는 그것을 깨닫게 해준다’고 했다. 시를 사랑하고 문화와 예술을 존중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강조했다. 최근 구민의 날 행사에서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낭독해 박수를 받은 유 구청장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암송하며 자리를 파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스스로 배 찢어 복수(腹水)빼낸 中여성 ‘충격’

    배에 물이 차는 복수(腹水)증상으로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 여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중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다. 시나통신 등 현지 언론의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충칭시에 사는 우위안비(53)는 1994년부터 배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지만 병원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4년 동안 병원을 전전하다 간신히 알아낸 그의 병명은 버드-키아리 증후군(budd-Chiari syndrome). 피의 응고로 인해 간에서 하대정맥으로 피를 보내는 정맥의 일부나 전부가 막히는 증상을 뜻한다. 간이 붓거나 손상된 상태에서 혈압이 더해지면 복부에 물이 차는 ‘복수’ 증상이 나타난다. 당시 우씨는 4년간 증상을 알아보느라 돈을 다 써버린 상태여서, 길거리 모금을 통해 간신히 수술비를 모아 복수를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뒤 우씨의 병은 재발했고, 다시 배에 물이 차기 시작해 무게는 30㎏에 달했지만 수술비를 구할 도리가 없었다. 병원 측이 제시한 복수 제거 수술 및 치료비는 5만 위안, 우리 돈으로 830만원이 넘는 큰돈이었다. 결국 우씨는 지난 8일 새벽,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배를 찔러 복수를 빼내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다행히 남편 자오씨에 의해 병원으로 곧장 실려가 목숨을 건졌지만 충격적인 비극이 될 수 도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우씨는 병원에서 30여 바늘을 꿰맨 뒤 3일 만에 퇴원해 요양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당장 목숨이 경각에 있는 환자가 수술비가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복수를 빼내는 일은 매우 충격적이다.”, “적절한 제도가 세워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하이서울’ 브랜드기업 사회공헌 협약

    서울시가 ‘하이서울’ 브랜드기업 이미지 제고에 팔을 걷어붙였다. 시는 18일 강남구 대치동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 국제회의장에서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저소득 시민의 자립과 아동교육 지원을 위한 하이서울 브랜드기업의 사회공헌활동 협약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사회공헌활동에는 하이서울 브랜드기업 120곳이 참여한다. 각 기업은 저소득·소외계층을 위해 매월 3만원 이상을 후원하기로 했다. 소외계층을 위한 희망플러스통장 후원과 저소득아동 교육을 위한 꿈나래통장 후원 등을 통해서다. 또 무료급식 배식, 설거지, 도시락·연탄 배달 등 봉사활동에 참여함으로써 하이서울 브랜드기업에 대한 인식 변화를 꾀하기로 했다. 시·구청 연계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며 공익 마케팅 참여, 자선골프대회 참가 등으로 사회공헌기금 적립에도 나선다. 중소기업을 선발해 시 브랜드 사용 지원은 물론 국내외 마케팅, 홍보, 판로 개척, 디자인 개발, 글로벌스타기업 육성 등을 지원하는 하이서울 브랜드 사업은 2004년 첫발을 뗐다. 11개 기업, 총 매출액 95억원에서 지난해 120개사, 6595억원으로 성장했다. 이 사업은 우수 기술과 상품력을 갖고 있지만 홍보나 마케팅 미비로 고유 브랜드 육성에 어려움을 겪는 서울 소재 우수 기업들이 하이서울 브랜드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는 매년 말 정보통신, 패션·뷰티, 문화콘텐츠, 친환경녹색, 바이오메디컬, 생활아이디어 등 다양한 업종을 대상으로 하이서울 브랜드기업을 모집한다. 신청 기업을 대상으로 4차례의 심사를 걸쳐 신규 지원기업으로 선정하게 된다. 한편 이날 협약식에서는 복지시설에 기부할 1억 2000만원 상당의 하이서울 브랜드기업 제품 기증식을 갖고 오세훈 시장이 ‘서울의 꿈,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주제로 서울시 정책에 대한 특강을 한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패션쇼에서 4번 ‘꽈당’…슈퍼모델의 굴욕

    유명 슈퍼모델이 패션쇼의 한 무대에서 그만 4번이나 넘어지는 굴욕적인 모습이 공개돼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영국 데일리 메일 보도에 의하면 화제의 주인공은 슈퍼모델 린제이 윅슨(Lindsey Wixson). 1994년생으로 올해 17세의 소녀이지만 이미 이번 시즌에만 알렉산더 맥퀸, 질 슈튜어트의 광고에 등장했고 모델랭킹 16위에 올라있는 유명 모델이다. 16일 그녀가 선 무대는 프랑스 칸느에서 열린 자선 패션쇼. 골든 실크의 우아한 의상을 입고 걸어 나온 린제이 윅스는 런웨이를 돌아 들어가다 그만 치맛단이 걸리면서 살짝 넘어졌다. 당황하지 않고 넘어지자마자 일어나 오히려 괜챦다는 듯 두 손을 번쩍 들기도 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매력적인 웃음을 보였지만 채 두어 걸음을 가지 못하고 그만 또다시 넘어졌다. 순간 무대 근처의 관객이 도움을 주려고 다가왔을 정도. 2번째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발이 걸리지 않게 드레스를 멋지게 펼치고 피날레를 장식하는 그녀. 그러나 그녀의 굴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3번째로 다시 넘어졌고 들어오던 다른 모델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마지막 주춤하며 넘어진 것까지 합치면 무려 4번이나 무대에서 넘어졌다. 그녀의 ‘매력적인 사고’와 함께 패션쇼는 대성공으로 끝났다. 이번 패션쇼는 슈퍼모델 1세대 나오미 캠벨이 주최한 일본 지진 피해자 모금을 위한 자선 패션쇼로 할리우드의 제인 폰다가 참가하고 소장품 경매와 함께 진행되어 450만 파운드(약 80억 원)가 모금됐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17세 슈퍼모델 한 무대에서 4번이나 넘어지는 굴욕

    17세 슈퍼모델 한 무대에서 4번이나 넘어지는 굴욕

    세계적인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주최한 자선 패션쇼에서 17세 슈퍼모델이 4차례나 워킹을 하다 넘어지는 큰 굴욕을 당했다. 주인공은 1994년생으로 올해 17세인 미국의 슈퍼모델 린제이 윅슨.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윅슨은 17일(현지시간) 패션쇼 워킹을 하다가 4차례나 몸이 기우뚱 넘어지면서 무대에 무릎을 꿇는 ‘망신’을 당했다. 윅슨은 현재 세계 모델랭킹 16위에 올라 있는 떠오르는 스타. 그녀가 넘어지나 무대 앞쪽에 있던 관객들이 깜짝 놀라 그녀를 도와주려 하자 윅슨은 곧바로 일어나 커다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웬일인지 윅슨은 이후에도 3차례나 더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두 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기도 하는 등 슈퍼모델로서 애써 태연한 자세를 취했고, 이것이 오히려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윅슨은 올 시즌에 이미 멀버리, 알렉산더 맥퀸, 질 스튜어트 등 명품 패션쇼에서 화려한 모습을 뽐낸바 있어 이번 일이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이번 패션쇼는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주최한 일본 지진 피해자 모금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할리우드의 제인 폰다가 참가하고 소장품 경매와 함께 진행됐다. 총 450만 파운드(약 80억원)가 모금됐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팔로어 1000만명 레이디 가가 ‘트위터 여제’ 등극

    팔로어 1000만명 레이디 가가 ‘트위터 여제’ 등극

    미국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25)가 가장 많은 팔로어(트위터 친구)를 거느린 ‘트위터 여제’로 등극했다. 가가를 따르는 팔로어 수가 15일 1 000만명을 돌파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트위터 이용자 가운데 팔로어가 1000만명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가가는 2008년 3월 트위터 계정을 개설했다. 그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팔로어가 1000만명이라니 할 말을 잃었다. 우리가 해냈다.”며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가가는 트위터뿐 아니라 페이스북과 마이스페이스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했다. 또 뮤직비디오를 홈페이지나 유튜브에 공개하는 등 뉴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있고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트위터에 위로글을 올린 뒤 직접 만든 팔찌를 팔아 이틀 만에 25만 달러(약 2억 7275만원)를 모금하기도 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어르신들에겐 살가운 말이 더 도움” “고령화문제, 사회 관심 필요한 이슈”

    신한은행은 이동푸드마켓 지원 사업·임직원 모금 등을 통해 꾸준히 독거노인을 지원해 왔다. 올해 1월부터 콜센터가 주축이 된 독거노인 사랑잇기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독거노인에게 실제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아는 계기가 됐다고 신한은행 측은 설명했다. 이상호 신한은행 전무는 “금융기관의 특성을 살려 독거노인을 지원하는 기금 마련을 위한 사회공헌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고령화 문제는 전 사회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이슈”라고 강조했다. →독거노인 사랑잇기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00년 55만명이던 독거노인이 2010년 100만명을 넘어섰다. 본격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신한은행은 노인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매년 연말 ‘따뜻한 겨울나기 사랑나눔 캠페인’을 통해 조손가정과 독거노인을 지원해 왔다. 2008년부터 이동푸드마켓 지원 사업을 통해 매년 1600여명의 독거 어르신 가정으로 생활에 필요한 ‘사랑의 식품꾸러미’를 배달해 오고 있다. 또 연중 임직원 모금캠페인인 ‘사랑의 클릭’을 통해서도 도움이 필요한 독거노인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던 중 보건복지부에서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 제안을 받았다. 사업을 통해 독거노인의 고독사 방지와 고령화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길 기대한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금융권은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가. -고령화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슈다. 금융권에서는 생애 주기에 맞춰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결혼자금 마련·주택 마련·자녀 학자금 마련·노후안정자금 마련 등과 관련된 금융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독거노인 사랑잇기 캠페인을 하며 금융기관으로서의 특색을 살려 독거노인을 지원하는 기금 마련을 위한 사회공헌상품 개발의 필요성도 느꼈다. 고령화 사회는 금융권뿐 아니라 민·관이 합동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독거노인 사랑잇기 캠페인 진행 동안 느낀 점은 무엇인가. -1월부터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을 시작했다. 안부전화를 드리며 느낀 것은 그분들께 더욱 필요한 것이 음식이나 돈보다 따뜻한 관심과 살가운 말 한마디라는 것이다. →신한은행의 다른 사회공헌 활동을 소개해 달라. -‘금융의 힘으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비전에 따라 ‘행복한 미래를 열어가는 신한은행’이라는 사회책임경영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공헌 4대 전략을 수립해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동행(同行·同幸)’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4대 전략은 행복공감(지역사회복지)·백년대계(미래세대 지원)·환경지향(저탄소녹색경영)·문화나눔(메세나)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1부) 벼랑 끝에 선 노인들

    [독거노인 사랑잇기] (1부) 벼랑 끝에 선 노인들

    경기·인천 독거노인 400명에게 일주일에 두 차례씩 전화로 안부를 챙기는 ‘사랑잇는 전화’ 활동이 신한은행 콜센터 직원들의 일상에 녹아 들었다. 새벽잠이 없는 노인을 위해 평소보다 한 시간 빠른 아침 8시부터 전화를 붙잡아야 하지만, 오히려 “아침 끼니는 거르지 않았느냐.”며 안부를 챙겨주는 노인들 덕분에 마음은 훈훈해진다. 목소리로만 만나고 세대차이도 느껴질 나이인데 시시콜콜 안부를 묻는 사이로 발전하는 데에는 전화 응대라면 추종이 불가한 직원들의 전문성과 붙임성이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은행이라니까 ‘보이스피싱’이 아닌지 의심하시기도 했어요. 모르는 어르신께 전화를 드리려니 저희도 막막했고요. 지금은 ‘자식보다 낫다’고 치켜세워 주실 때도 있어요.” 지난 1월부터 사랑잇는 전화 봉사에 나선 직원 이미나(35·여)씨는 15일 “처음에는 날씨나 불편하신 사항만 여쭤봤는데, 요즘에는 시시콜콜한 얘기도 하고 40분 동안 통화를 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 사무적으로 “감사합니다.”라는 통화 마무리 인사도 “다음에 또 통화하자.”는 살뜰한 말로 바뀌었다. 일 주일에 두 차례씩, 같은 사람이 안부를 묻는 ‘꾸준함’의 위력이 거둔 결실이다. 직원들은 어르신이 안부 전화를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 겹의 장치를 마련했다. 몸이 불편하다거나 필요한 물품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통화가 끝난 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내용을 올렸다. 그러면 지역 사회복지사가 게시판을 확인한 뒤 관련 조치를 취한다. 이렇게 해서 몸살 감기를 앓고 몸져누운 노인에게 사회복지사가 구호조치를 한 일도 있었다. 꼭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안전망이 더해진 셈이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필요한 물품뿐 아니라 “전화를 안 받는다.”는 게시물도 빼곡했다. 매일 받던 전화를 안 받으면 걱정이 되어서 직원들이 일과 시간에도전화를 해보거나 글을 올려서 사회복지사가 방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사랑잇는 전화 활동을 총괄하는 김은미(35·여) 팀장은 “매번 통화가 되던 분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직원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면서 “할머니·할아버지와 같이 산 경험이 있는 직원들은 통화 도중에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고 전했다. 반복적으로 통화를 하면서 직원들과 독거노인 간 유대감이 강해지는 것이다. 친부모·친조부모에 대한 애틋한 감정도 커졌다. 이태희(52) 콜센터 부장은 “사랑잇는 전화 활동이 시작된 뒤 친어머니와 통화하는 일이 더 잦아졌다.”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전화를 놓칠 때도 다반사인 게 직장인들 생활이지만, 전화 한 통이 가진 힘을 보니까 자연스럽게 수화기를 들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어 “어떻게 보면 고령화 사회에서 독거노인 문제가 저소득층이나 생활보호대상자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보편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면서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콜센터는 회사 내 사회공헌활동 경진대회에서 지난해까지 2연패를 기록했다. 한 부서가 2연패를 달성한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직원들은 근처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사회보호단체를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고, 연말에는 김장을 담가 소외계층과 나눈다. 신한은행 전체로는 푸드마켓을 찾지 못하는 독거노인을 위한 ‘이동푸드마켓’을 운영하고, 임직원 모금활동인 ‘따뜻한 겨울나기 사랑나눔’과 ‘사랑의 클릭’ 기부 활동을 벌였다. 서울노인복지센터 노인 걷기대회 봉사활동 등을 합치면 전체 봉사활동 가운데 노인과 관련된 봉사활동이 13%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사랑잇는 전화 활동은 콜센터 직원들의 업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김은미 팀장은 “직업과 연계된 사회봉사활동을 하게 된 점이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콜센터 직원들이 목소리도 좋고 상냥하고, 진심을 다해 통화를 하는 게 사실”이라면서 “이런 목소리를 활용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일종의 ‘재능기부’에서 받는 성취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덕분에 직원들의 적극성도 더해지고 있다. 이미나씨는 “8일 어버이날 카네이션 달아주기 행사에 직접 가서 100명을 뵙게 됐는데, 실제로 뵙게 되니 ‘이런 분들이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더 알고,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방안을 궁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화를 하면서 ▲할머니보다 할아버지들이 아침 끼니를 거르시는 일이 많다든지 ▲사랑잇는 전화 때문에 사회복지사들이 직접 찾는 빈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금전적 지원 못지않게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맞춰드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이씨의 걱정거리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요구를 반영, 신한은행은 연말 김장김치 나누기 봉사를 할 때 안부를 여쭙던 독거노인을 직접 찾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태희 부장은 “안부 전화를 하면서 실제로 노인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보고 직접 만나서 할 수 있는 봉사활동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JYJ 박유천 팬클럽 사랑의 기부금 4000만원 모금

    JYJ 박유천 팬클럽 사랑의 기부금 4000만원 모금

    그룹 JYJ 멤버이자 연기자로도 활동 중인 박유천(25)의 ‘이모 팬’들이 스타에 대한 사랑을 아이들에게 나누고자 6개월 간 총 4000만원의 기부금을 모금했다. 30~40대 이상의 여성들이 주축이 된 박유천의 이모팬 까페 “블레싱 유천”은 박유천이라는 스타를 통해 함께 나눈 사랑과 응원의 마음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2010년 12월 한림화상재단을 통해 화상 어린이 박 모군(14)에게 1000만원을 후원한 것을 시작으로 아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후원을 실천해 오고 있다. 이후 블레싱 유천은 뇌병변과 뇌성마비로 투병 중인 김 모군(13)에게 500만원을 후원한 데 이어 뇌병변으로 투병 중인 21개월의 유모 군에게도 1000만원을 후원했다. 또한 최근 김모군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 있음을 확인한 후 추가로 500만원을 후원하기도 했다. 블레싱 유천은 일부 회원들의 경우 자발적으로 후원 아동을 찾아가고 선물을 전달하기도 하는 등 후원으로 맺어진 인연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박유천은 MBC에서 방영 예정인 드라마 리플리로 다시 배우로서 안방 무대에 복귀할 예정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경제 브리핑] 일동제약, 사회복지모금회에 1억 기부

    [경제 브리핑] 일동제약, 사회복지모금회에 1억 기부

    4일 일동제약 강당에서 열린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일동제약 이정치(왼쪽) 회장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최찬규 사무처장에게 기부금 1억원을 전달하고 있다. 일동제약 임직원들은 “거창한 창립 기념식보다 나눔의 실천이 더 뜻깊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기념식을 조촐한 행사로 치러 1억원을 마련했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7) ‘삼민주의’ 쑨원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7) ‘삼민주의’ 쑨원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孫文·1866~1925). 그가 내세웠던 ‘삼민주의’ 곧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는 한마디로 말하면 ‘구국주의’이다. 삼민주의는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건국할 수 있게 만든 혁명 정신이었고, 외세로부터 중국의 통일을 지켜낼 수 있게 하는 이념적 모토였다. 쑨원의 유훈을 받든 장제스나 마오쩌둥 등에 의해서 삼민주의는 재해석되고 계승되었다. 그리고 지금 쑨원은 중국과 타이완 양쪽에서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다. 성공한 혁명가 쑨원. 이상이 우리가 보통 상식으로 알고 있는 쑨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실제 쑨원의 삶은 이와 달랐다. 현실의 쑨원은 혁명가로 이름을 내건 이래로 단 한번도 혁명 봉기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신해혁명을 알리는 1911년의 우창 봉기까지도. 한마디로 쑨원의 삶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 무엇이 혁명 봉기에 계속 실패한 그를 성공한 혁명가의 아이콘으로 기억하게 만드는가. 쑨원에게 혁명이란 과연 무엇이었고,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쑨원은, 혁명은 또 어떤 의미인가. ●직업 혁명가 쑨원의 탄생 1800년대 청나라가 외국에 문을 열어 놓고 있었던 유일한 곳 광둥성 광저우. 근처 농촌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쑨원은 외국인과 그들의 생활 및 문화에 대해서 낯을 가리지 않았다. 이 지역 출신자가 으레 그러했듯 그의 집안에도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버는 친척들이 있었던 까닭이다. 쑨원은 하와이에서 일하는 형 덕분에 근대적 교육과 기독교에 접할 수 있었고, 이후 의학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전근대적인 청나라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고, 중국은 점차 서구 열강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었다. “대체로 중국과 조약을 맺은 나라는 모두 중국의 주인이다. 따라서 중국은 한 나라의 식민지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있고, 우리는 한 나라의 노예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노예가 되어 있다. … 이것을 보아도 중국이 안남이나 조선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래서 중국을 반(半)식민지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내가 만든 명칭에 따르자면 ‘차(次) 식민지’라고 불러야 한다.”(‘민족주의’ 제2강, 1924년 2월) 1895년 전근대시기 세계 최대 제국의 하나였던 청나라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했다. 서구 열강도 아닌,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했다는 사실에 중국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중국의 멸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위기감은 강력한 민족주의적 신념과 혁명적인 방법을 통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쪽으로 쑨원을 몰고 갔다. ‘만주족을 몰아내고 공화국을 건설하자.’ 혁명이 그의 답이었다. 쑨원은 요동치는 정국을 틈타 혁명 봉기를 도모했다. 하지만 쑨원의 봉기는 시작도 하기 전에 청 정부의 감시와 단속에 발각됐다. 함께 거사를 도모한 동지들 중 일부는 정부군에 잡혀 처형을 당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한 이 거사로 쑨원은 반체제의 길로, 직업적 혁명가의 길로 들었다. 이후 혁명은 그의 삶이 되었다. 한번은 쑨원이 해외의 지원자를 모으기 위해 영국 런던에 갔다가 런던 주재 중국 공사관 관헌에게 잡힌 일이 있었다. 쑨원의 자칭 ‘피랍’ 사건은 그의 이름을 중국보다도 해외에서 먼저 반체제 혁명가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쑨원은 하와이를 필두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가는 곳마다 중국혁명을 역설했다. 그들로부터 한두 푼 피땀이 가득 밴 후원금을 모금했다. 그리고 그는 혁명의 불길을 살리고,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하기 위해 항상 봉기를 일으켰다. 그것의 성공과 실패는 상관없이 그는 항상 격동하는 중국의 근현대사와 온몸으로 부딪쳤다. ●혁명, 다시 한번 더 1905년 쑨원은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보황회와 힘겨운 각축을 벌였다. 그는 혁명과 공화를 기치로 내건 단체들이 연합해 만든 중국동맹회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당시 쑨원만큼 서구 열강을 다루는 교섭에 뛰어나다고, 해외 화교 사회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평가를 받은 자가 드물었던 덕분이다. 쑨원은 중국혁명에 열강들이 개입할까 항상 우려했다. 쑨원에게는 열강들의 이권다툼 속에서 중국의 운명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냉철함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쑨원이 도모했던 봉기들, 가령 광둥, 광시, 윈난 등 남서부 변방의 봉기들은 모두 실패했다. 1911년에 일으키려고 했던 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쑨원에게는 중국 국내에 어떠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기반도 없었다. 이 때문에 쑨원을 대하는 서구 열강의 시선도 냉담해졌다. 열강들은 중국에서 자신들의 이권을 지켜낼 수 있느냐, 쑨원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느냐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쑨원이 기댈 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민중의 불만과 혁명적 열기뿐이었다. 쑨원은 자신을 대하는 서구 열강의 시선이 냉담해질수록 민중의 혁명적 열기에 의지했고, 그것을 혁명 이상으로 녹여 내는 작업에 매진했다. 삶이 계속되듯 쑨원의 혁명은 계속되었다. ●1911년, 혁명정신을 갖고 온 사나이 쑨원은 우창 봉기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미국에서 신문을 통해 접했다. ‘열 번째 패배’에서 잠시 낙담한 뒤, 다시 활동을 재개하려고 움직이고 있던 찰나였다. 우창 봉기가 성공했다는 소식이었지만, 쑨원은 서둘러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워싱턴, 런던, 파리를 경유해서 귀국하는 긴 행로를 선택했다. 긴 항해를 마치고 1911년 말 상하이에 도착한 쑨원. 사람들은 그에게 무엇을 갖고 왔느냐고 물었다. 쑨원의 답은 간단했다. ‘혁명 정신’을 갖고 왔노라. 쑨원이 세계를 돌고 돌아 귀국한 까닭은 바로 열강들에게 중국 혁명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기 위해서였다. 열강의 이권 다툼으로 중국이 사분오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쑨원에게 중국 혁명의 성공은 외세의 중국 분할 없이 전 영토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형태로 공화제 혁명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중국 혁명의 과정에서 보여 줬던 통일된 중국에의 염원, 이것이야말로 쑨원을 중국을 낳은 아버지로 추앙받게 만든 힘이었다. 혁명이 성공한 후에 쑨원이 보여준 행적도 중국의 통일이라는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공화정에 맞춰 비밀결사의 구태를 벗은 동맹회는 국민당으로 거듭났다. 국민당의 대표로 선출된 쑨원은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군사적인 기반이 약했던 그는 초대 대총통의 자리를, 당시 베이징을 중심으로 기반을 잡고 있던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에게 양보했다. 쑨원에게서 혁명은 공화정의 수립으로 완성됐기도 했지만,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강하고 하나 된 중국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1912년 마침내 중화민국이 수립됐다. 그러나 혁명 정신의 완성태로 보였던 공화정은 잘 굴러가지 않았다. 선거를 통해서 만들어진 임시약법은 믿었던 위안스카이 등 정치가들에게 유린당했다. 아첨, 뇌물, 협박과 살인이 횡행했다. 설상가상으로 1915년 위안스카이의 칭제(稱帝)와 군벌의 난립으로 중화민국의 기반은 흔들렸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쑨원의 방식 “또 다른 거사를 분주히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나는 모든 일을 직접 지휘하겠다.”라고 쑨원은 미국인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말했다. 중화민국의 성립과 더불어 역사에서 사라진 듯 보이는 쑨원.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국민당을 재정비하고, 혁명 세력을 결집시키고, 그들을 훈련시켰다. 삼민주의로 혁명 정신을 다잡았다. 1923년 쑨원은 마침내 광둥을 진원지로 한 통일을 위해 북벌을 선언한다. 하지만 그는 혁명의 시작점에서 그 결과를 보지 못한 채 1925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쑨원은 단 한번 성공한 1911년의 혁명에서 무참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쑨원은 결과물로 주어진 현실을 견주고, 재고, 제도화하는 정치에 서툴렀으므로 새로 만들어진 공화정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쑨원은 그 실패에서 혁명이 결코 공화제라는 정치체제의 수립만으로 이뤄질 수 없음을 알았다. 쑨원은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전히 혁명 정신은 유효하고, 중국은 통일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쑨원은 중국의 통일을 향한 외침, 북벌을 선언한 채 죽었다. 그는 혁명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그 길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혁명이란 오로지 길 위에서 끝나지 않는 과정으로만 말해지지 않던가. 그래서 쑨원에게 혁명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지금 여기 혁명의 이름으로 그는 항상 살아 있다. 이것이 바로 ‘혁명가’ 쑨원이 갖는 의미다. 최정옥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檢 “대원외고 학부모 22억 찬조금 무혐의”

    검찰이 수십억원대의 학부모 찬조금에 면죄부를 주는 조치를 취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학부모들이 수십억원의 돈을 모아 교사들의 회식비와 야간자율학습 지도비 등으로 제공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교사들이 스승의 날과 명절 등에 받은 70만원 상당의 선물도 대가성이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부실 수사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 대원외고 학부모들이 모금한 20억원대 찬조금에 대해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 형사3부(부장 이상용)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학부모들이 자녀 간식비, 교사선물 비용과 학습지도비 등에 사용하기 위해 모금한 22억여원의 찬조금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29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았을 때는 청탁 여부가 중요한데, 수사 결과 내 아이의 편의만 잘 봐달라고 준 것이 아니었다.”면서 “행정적으로 금지하는 것과 형사적으로 벌하는 것은 별개이며, 이번 건은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학교장, 재단 이사장, 행정실장 등이 학부모들로부터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받은 1억 5000만원을 건물 복도를 확장하고 리모델링하는 데 쓴 대목에 대해서는 업무상 횡령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대원외고 학부모들은 찬조금 22억 4000만원 가운데 4억 1600만원은 교사 회식비와 선물 구입비, 자율학습 지도비로, 1억 5000만원은 학교발전기금으로, 나머지 16억 7400만원은 간식비 9억 5000만원을 포함해 책과 학습준비물 구입비, 학부모모임 경비 등으로 사용했다. 또 모든 학부모가 찬조금 납부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한 자녀당 연간 50만원씩 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대원외고를 고발한 전교조, 참여연대, 참교육전국학부모회연합 등의 단체들은 “검찰이 부실한 수사를 했다.”면서 “명백히 금품을 받은 행위를 전원 무혐의 처분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이영준·최재헌기자 apple@seoul.co.kr
  • 표류하던 道政 정상화 기대

    표류하던 道政 정상화 기대

    표류하던 강원도정이 최문순 새 도지사의 취임으로 곧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오는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결정되는 2018동계올림픽 유치전에 힘이 실린다.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 등 경쟁도시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평창이 유치에 성공하면 강원 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최 신임 도지사는 더불어 동해안경제자유구역 지정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끌어오는 데도 진력할 것으로 보인다. 춘천∼속초 간 동서고속철도, 접경지역지원법의 특별법 격상, 폐광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효 연장 등도 올해 안에 담판을 지어야 하는 숙제. 특히 낮은 분양률과 심각한 유동성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알펜시아리조트 사업은 이광재 전 지사의 도움을 이끌어내 정상화시킬 각오다. 이와 함께 최 신임 도지사가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2014년까지 일자리 16만개 창출 ▲평창∼강릉 올림픽산업단지 조성 ▲폐광지역 주민과 농어민 소득을 2배로 늘리겠다는 약속이 진행되면 전국 최하위 강원경제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낙후된 강원 동해안 경제를 살리고 남북 간 긴장완화를 위해 만든 영동권 제2개성공단 조성 약속도 기대를 갖게 한다. 북측의 자원과 인력, 남쪽의 자본을 결합해 제철소를 만들어 강원 영동권의 산업을 이끌겠다는 복안이다. 국제투자자와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어 구상한 공약인 만큼 성공에 자신하고 있다. 수도권 한 시간대 접근, 강원도 전역 30분대 기간도로망 구축, 양양공항 활성화로 동해안 국제 관문으로 자리잡게 하겠다는 약속도 눈길을 끈다. 여기에 2014년까지 200억원의 기금을 모금해 강원FC를 한국의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육성하겠다는 공약도 약속했다. 또 아이들 교육비 2배 지원과 공교육 내실화를 통해 찾아오는 교육특구 실현, 친환경 무상급식으로 차별 없는 교육실천, 특성화된 좋은 학교 유치 등도 약속했다. 개혁성향의 민병희 강원도교육감과 호흡을 맞춰 지지부진하던 교육개혁에도 상당한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현대重, 한·일우호 불 밝힌다

    현대重, 한·일우호 불 밝힌다

    현대중공업이 일본에 지원한 이동식 발전기(PPS) 네대가 27일 지바현의 도쿄전력 아네가사키 화력발전소에서 준공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전력 공급을 시작했다. 지난달 11일 동일본 대지진 당시 쓰나미에 이은 침수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가동이 중단되면서 빚어진 도쿄 등 수도권의 전력난을 덜기 위해 현대중공업과 정부가 총 50억원 상당의 이동식 발전 설비 4기를 일본에 긴급 지원했다. 발전기 네대의 총발전 용량은 5600㎾로, 여기서 생산된 전기는 도쿄·지바 등지의 약 1만 가구에 공급된다. 비용 중 3분의2는 현대중공업이, 나머지는 정부가 대한적십자사의 모금액으로 부담할 계획이다. 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은 준공식에서 “일본이 전력난을 극복하는 데 미력하나마 도움을 주고, 한·일 양국의 우호 증진에 촉매제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민 회장은 기자들에게 “자존심 강한 일본 사람들이 한국 제품을 받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면서 “이동식 발전기 부문도 5년 전만 해도 모든 게 일본 제품이었다.”며 소회를 밝혔다. 준공식에는 민 회장 외에 고바야시 다카시 도쿄전력 동화력사업소장, 나오타카 마스다 도쿄전력 아네가사키 발전소장 등 양국 관계자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발전 설비 지원은 지난달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인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김황식 국무총리에게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정 전 대표가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이 디젤 발전 설비를 일본에 지원한다는 소식을 접한 뒤 김 총리에게 “미국의 발전 설비는 제작, 수송 등 준비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현대중공업의 이동식 발전 설비를 일본에 긴급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해 성사됐다. 이동식 발전 설비(60㎐)를 일본 현지의 전력 주파수인 50㎐에 적합하도록 개조하는 데는 보통 한달 이상 걸리지만 현대중공업은 일본의 시급한 전력난 해소를 위해 철야 작업으로 이를 단 7일 만에 끝냈다. 또한 3개월가량 소요되는 설치 작업도 4주 만에 마무리 지었다. 현대중공업이 2000년에 개발한 이동식 발전기는 설치와 이동이 쉽고 정규 발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어 쿠바와 아이티 등 세계 22개국에 1000여대, 27억 달러어치가 수출됐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농구공 만한 종양 달고사는 11세 소녀 ‘눈물’

    상반신의 상당부분이 혹으로 덮인 10대 소녀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다. 중국 일간지 징화스바오의 20일자 보도에 따르면 티베트 자치구에 사는 11세 소녀 잉무(央姆)는 3년 전 다발성 섬유성 양성 종양이 발병해 여러차례 수술을 받았다. 당시 잉무는 등에 솟은 1㎏의 종양을 제거했지만 1년후 무려 5.5㎏의 종양이 다시 재발했다. 작은 소녀의 몸에 솟은 종양은 사춘기 소녀의 삶을 내려앉게 했다.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줄곧 정신병을 앓는 아버지 아래서 자란 잉무는 집의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오빠는 선천성 백내장을, 잉무는 다발성 섬유성 양성 종양을 앓는 채 살아왔다. 두 차례의 수술을 거쳤지만 3개월 전, 잉무의 섬유성 양성 종양은 다시 한 번 재발했다. 이번에는 농구공만한 종양이 작은 소녀의 몸을 덮었다. 일상생활의 어려움은 물론 고통도 심해졌고, 종양이 덮은 피부는 거북이 등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치료비가 없어 수술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잉무의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전역에서 도움의 손길이 날아들고 있다. 네티즌들은 “국가에서 어린 소녀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 “자발적인 모금운동을 시작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장애 여성의 당당한 엄마 되는 길

    장애 여성의 당당한 엄마 되는 길

    EBS ‘희망풍경’이 장애인의 날을 맞아 오는 23일 ‘여성 장애인, 당당한 엄마 되기’를 방영한다. 장애인인 데다 여성이기까지 한 이중고는 여성 장애인들이 2세를 키우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임신부터 문제인 경우도 허다하고, 다행히 출산까지 잘 마무리지었더라도 육아 문제에 들어가면 답이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장애여성지원법’이 통과됐다.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의 발의로 이뤄진 법안으로, 장애 여성의 건강 관리에서부터 임신, 출산, 육아에 이르는 과정을 국가가 어떻게 지원해줘야 하는지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제작진은 전문 장애기관들의 의견을 종합해 앞으로 무엇을 더 고쳐나가야 할지 추적해본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에서는 ‘당당한 엄마 되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부모교실 프로그램’과 정부의 출산 지원 정책에 대해 논의한다.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모토로 내걸면서 다양한 정책을 입안하고 있지만, 정작 장애 여성들을 위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금은 크게 줄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8억원의 지원금을 확보한 것이 전부다. 또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단지 돈 몇 푼으로 그친다는 데 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정서적인 측면에 대한 배려다. 이 부분에 대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장애인연합 측 설명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장애 여성들을 위한 전문 의료인이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몇몇 장애 여성들은 산부인과를 찾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의료시설의 문제도 있고, 의료진들도 장애 여성만의 특성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 때문에 장애 여성이라 하면 장애 정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제왕절개 수술부터 하려 들고, 각종 추가 정밀 검사를 지나치게 많이 한다. 이러다 보니 의료 비용만 해도 비장애인의 3~4배 이상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범적인 사례도 있다. 바로 충남 아산시 권곡동에 위치한 온양손말지역아동센터. 이곳은 코다(CODA·청각장애 부모의 비장애 자녀들)를 전문적으로 다룬다. 성훈(10)이와 동생 성혜(4)의 엄마, 아빠는 농아인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다. 부모와 달리 아이들은 청각장애가 없다. 발달기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엄마, 아빠와 아이들 간의 교감이 어려운 셈이다. 그래서 이 센터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와 소통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뒀다. 아이들의 언어발달이 더디지 않도록 하는 각종 교육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때문에 청각 장애를 가진 부모들은 속속 이곳 인근으로 모여 들고 있다는데…. 이 센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하루 일과를 카메라에 담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공포영화서 주인공이 살아남는 법 10가지

    공포영화서 주인공이 살아남는 법 10가지

    본격적인 공포영화 성수기에 앞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16일 공포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색적인 방법 톱10을 소개해 흥미를 끌고 있다. 공포영화의 주인공들이 반드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절대로 상황을 살피거나 “금방 돌아올게.”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목이 마르다면 누군가에게 음료수 한 모금을 부탁하고, 숲 속에서 뭔가를 잃어버렸다면 그냥 포기해야 한다. “금방 돌아올게.”라는 말은 이제 공포물에서는 죽음에 대한 복선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멘트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째로는 주인공들은 뒤를 살펴야 한다. 위험은 항상 뒤에서 다가왔기 때문이다. 칼을 휘두르는 범인에게 쫓기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당신은 스스로 “범인이 어디에 있지?”라고 물을 수 있다. 대답은 바로 당신 뒤이다. 셋째로는 절대 혼자 공포영화를 감상하지 않는 것이다. 밤 중에 영화를 보다가 으스스한 기분이 느껴진다면 즉시 불을 켜고 부엌에 있는 식칼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최근 기이한 소식을 들은 적 있다면 공포 영화를 피하고 혼자라면 모든 화면에서 떨어져야겠다. 영화 ‘폴터가이스트’와 ‘링’이 그 이유이다. 이 밖에도 범인을 피할 때 자동차를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완벽히 움직이기 위해서는 항상 확인해둬야 하는데 공포 영화에서는 항상 위험한 순간에 배터리가 다 되어 차량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사람들과 흩어지지 않는 것이다. 기본 중의 기본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주위 사람들과 떨어져서는 안 된다. 또한 집에서 유령이 나왔다면 그 저주받은 곳을 떠나면 된다. 요즘에는 공포물에 늘씬한 여성들이 많이 나오는데 편안한 신발은 필수다. 멋을 내려 하이힐을 신었다가는 살인자에게 붙잡히기 쉽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의 무도회나 파티도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이듯이 그런 행사는 아예 피하는 것이 좋다. 또 공포 영화에서는 극적 효과를 위한 반전으로 범인이 되살아나곤 하는데 범인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사진=영화 ‘스크림’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민간차원 반환소송 악영향 우려”

    “민간차원 반환소송 악영향 우려”

    “무조건 박수칠 일은 아닙니다. 프랑스 정부와 맺은 합의문을 뜯어보면 1965년 맺은 한·일 협정과 맞먹는 굴욕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정부가 하루 속히 프랑스어 합의문과 실무 문건을 공개해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시민단체 차원에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에 앞장서 온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또 다른 이유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13일 서울 종로2가 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황 소장은 문서 한통을 보여주며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다른 문화재 요구 사실상 봉쇄 그가 내보인 것은 올 2월 7일 박흥신 주(駐) 프랑스 한국대사와 폴 장-오르티즈 프랑스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이 서명한 ‘조선왕조 왕실의궤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프랑스공화국 정부 간 합의문’이었다. 황 소장은 “합의문 제4조에 따르면 외규장각 도서를 포함해 프랑스에 있는 약탈 문화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반환을 요구할 수 없게 돼 있다.”면서 “이는 프랑스 법원을 상대로 민간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반환 소송도 사실상 봉쇄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제4조는 ‘프랑스의 한국에 대한 의궤들의 대여는 유일한 성격을 지니는 행위로서, 그 어떤 다른 상황에서도 원용될 수 없으며, 선례를 구성하지 아니한다. 이는 문화재 반환 요청 관련 당사자들을 대립되게 했던 분쟁에 최종적인 답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황 소장은 “프랑스에는 외규장각 도서 외에도 갑옷, 투구, 고지도, 왕실 족보 등 다른 약탈 문화재들이 즐비하다.”면서 “외규장각 도서 대여를 반환으로 바꾸는 것은 물론, 다른 문화재들도 돌려받아야 하는데 이 같은 조항으로 인해 길이 막히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시민단체인 문화연대가 2007년부터 프랑스 행정법원을 상대로 진행 중인 외규장각 도서 반환 관련 소송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문화연대는 1심에서 패했지만 프랑스 법원이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 문화재’임을 공식 인정하는 성과를 끌어냈다. 황 소장은 “국민 모금 운동을 통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면서 “결과적으로 정부가 민간의 반환 요구 노력에 오히려 재를 뿌린 꼴이 됐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5년 단위로 갱신되는 대여임에도 정부가 ‘사실상 반환’ 혹은 ‘영구 대여’ 표현을 쓰며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면서 “임기 내 가시적 성과를 남기려는 정부의 조급증이 또 한번 발동했다.”고 비판했다. 황 소장은 합의문 제5조에 명기된 ‘대중 전시 시에는 동 합의문을 언급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제3기관이 대여를 요청할 경우 양측의 합의에 맡긴다.’ 등도 대표적인 굴욕 조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무 합의문’ 공개해야 그는 “우리 국민들은 자유롭게 외규장각 도서를 볼 수 없는 반면, 프랑스는 언제든지 마음대로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를 들락거릴 수 있게 한 조항”이라며 “이 상태대로라면 (1866년 프랑스가 한국을 침략한) 제2 병인양요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합의문에서도 심각한 번역 오류가 지적되는 마당에 외교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외규장각 관련 합의문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습니다. 국민들에게 굴욕감과 문화적 치욕을 더 이상 안겨주지 않으려면 관련 합의문을 프랑스본과 함께 속히 공개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는 순간까지 계속된 황 소장의 간곡한 당부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카이스트 해외펀드 투자 300억 손실

    카이스트가 2008년 발생한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의 여파로 지금도 300억원에 가까운 투자손실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카이스트에 따르면 2006년 7월 서남표 총장이 부임한 이후 해외 주식형펀드에 학교발전기금 등 모두 1100억원이 투자됐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우리 학교는 정부지원금, 발전기금, 프로젝트 연구비 등으로 운영되는데 늘 돈이 부족했다.”면서 “투자 당시에는 워낙 주식 경기가 좋아서 운영비를 늘려 보자는 차원에서 해외 펀드에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08년 9월 15일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으로 알려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로 세계 증시가 폭락하는 바람에 카이스트가 투자한 펀드는 600억원의 평가손실을 기록했다. 카이스트는 2009년 이런 사실을 교육과학기술부와 국회에 보고했고, 얼마 후 임모 행정처장과 김모 재무팀장 등 2명이 수개월의 감봉 징계조치를 당하고 담당 직원 1명은 경고조치를 받았다. 카이스트는 2009년과 지난해 주식가치가 오르자 700억원어치를 환매했으나, 결국 100억원의 원금 손실을 입어야 했다. 현재 남아 있는 잔고는 400억원 정도. 이 펀드는 증시가 사상 최고 호황을 누리는 요즘에도 120억원 정도의 평가손실을 기록, 계속 후유증을 낳고 있다. 따라서 펀드에 투자한 돈의 이자손실액 60억~70억원을 합치면 카이스트가 5년 전 펀드에 투자해 입은 손실액 규모는 현재까지 290억원 안팎이다. 일부 교수들은 펀드 투자의 실패와 이에 따른 차등 등록금제의 도입을 서 총장의 책임으로 미루고 있다. 그러나 투자시점이 애매한 상황이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학교 돈을 너무 많이 주식펀드에 투자한 것은 맞지만, 그 투자 결정은 당시 행정처장이 했다.”며 서 총장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서 총장은 부임 후 많은 기부금을 모금해 연구동, 스포츠콤플렉스, 메디컬센터 등을 지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청목회 여파 소액후원금 줄고 與에 쏠려

    청목회 여파 소액후원금 줄고 與에 쏠려

    지난해 10월 청목회 사건 등으로 국회의원들에 대한 소액 후원금 제도가 주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연말에 10만원씩 내고 세액공제를 해 주는 소액 후원금 대신 300만원 이상의 고액 후원금이 증가했다. 특히 ‘개미후원’의 힘을 자랑했던 민주노동당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보공개청구에 따라 공개한 ‘정당·후원회 등의 재산 및 수입·지출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회의원 305명의 후원금 모금 총액은 477억 4636만원이었다. 2009년 411억 6719만원에 비해 16% 증가했지만 지난해 6·2 지방선거로 개인당 모금 한도가 3억원으로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1인당 평균 모금액인 1억 5654만원은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모금건수는 30만 3457건으로 2009년(32만 1586건)보다 감소했다. 반면 300만원 초과 기부금액은 3000건, 총 78억 7913만원으로 전년도 52억 8136만원(2034건)보다 1.5배 가까이 늘었다. 정당별 모금액의 경우 한나라당이 297억 7796만원, 민주당이 135억 4792만원, 미래희망연대가 5억 7746만원으로 2009년보다 증가했다. 이에 비해 민주노동당은 8억 1091만원으로 전년보다 13.5% 줄어들었다. 나머지 정당들도 모두 감소했다. 이에 따라 개인별 후원금 모금내역을 공개할 때마다 상위 10위 안에 3~4명의 의원이 포함됐던 민노당은 이번에는 상위 20위 안에 든 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민노당 의원 5명 가운데 모금액이 가장 많은 권영길 의원(2억 7972만원)도 35위에 그쳤다. 개인별 모금액 상위 20인 가운데 16명은 한나라당으로 여당 쏠림현상을 드러냈다. 다만 개인별 모금액이 가장 많은 민주당 강기정 의원(3억 2487만원)의 경우 3000여명이 10만원의 소액 후원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강 의원 측은 “청목회 사건 등으로 인지도가 올라간 것도 있지만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항의하는 국민들이 꾸준히 소액 후원금을 모금해 주었다.”고 설명했다. 모금액 2위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3억 2031만원)를 비롯해 주호영·서상기·주성영·배영식 의원 등 대구 지역 의원들이 5명이나 15위 안에 포함된 것도 눈에 띈다. 모금 한도인 3억원을 채운 의원은 13명에 달했고, 강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다. 한편 정당별 재산총액은 한나라당이 569억 4400만원, 민주당이 74억 5700만원, 민주노동당 17억 8000만원, 미래희망연대 6억 5700만원, 자유선진당이 5억 7000만원 순이었다. 하지만 창조한국당은 부채만 52억 200만원에 달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