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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피플+] 곰 캐릭터 인형입고 무한도전…640㎞ 걷는 남자의 사연

    [월드피플+] 곰 캐릭터 인형입고 무한도전…640㎞ 걷는 남자의 사연

    귀여운 캐릭터 인형탈을 뒤집어 쓰고 무려 640㎞가 훌쩍 넘는 거리를 홀로 걸어가는 흥미로운 여정이 진행 중이다. 미국 CNN 등 현지언론은 16일(이하 현지시간) LA에서 출발해 샌프란시스코까지 걸어가는 긴 여행에 나선 '곰 인형' 제시 라리오스(33)의 흥미로운 도전기를 전했다.캘리포니아 토박이로 건강보험을 판매하는 일을 하는 그는 지난 12일 아침 인형탈을 뒤집어쓰고 힘겨운 장도에 올랐다. 그가 뒤집어 쓴 귀여운 곰 인형의 이름은 베어선. 지난 2016년 친구의 도움으로 그가 직접 만들어낸 베어선은 곰과 개에게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캐릭터다. 라리오스는 "베어선은 세상을 바꾼다는 거창한 임무를 갖고 있지않다"면서 "그저 하고싶은 일을 스스로 해보기 위해 만들었다"고 털어놨다.이렇게 탄생한 베어선은 라리오스에게는 이른바 '부캐'가 됐다. 그는 베어선을 입고 마라톤을 뛰어보자는 충동적인 결정을 해 2019년에는 35㎞ 지점에서 실패, 지난해에는 결국 완주에 성공했다. 이번에 길고 힘든 여행에 나선 이유도 거창한 목표는 없다. 그저 재미있는 모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시작됐다. 다만 이번 모험으로 망가질 베어선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1만 달러 모금과 기부단체 후원을 목표로 삼았다.물론 LA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약 640㎞를 걸어가는 여정의 '간단한' 계획은 있다. 하루 최대 80㎞를 걷고, 잠은 야외에서, 먹을 것과 기타 비용은 후원자들에게 도움을 요청 중이다. 그러나 계획과는 달리 여행 중 도로가 폐쇄되거나 걸어가기 힘든 지형 등을 만나 도착 예정일은 오는 17일에서 21일로 연기됐다. 라리오스는 "나는 마치 무언가를 보고 그 뒤를 쫓아가는 강아지와도 같다"면서 "이같은 재미있는 모험이 내가 하고싶은 일이며 그저 사람들에게 웃음과 미소만 주는 것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코로나에 지쳐 ‘번아웃’…美시장들 재출마 포기

    “지난 1년 코로나19에 지친 시장들이 출구로 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11일(현지시간) 이 같은 제목을 달고 코로나 대응에 ‘번아웃’돼 자리를 떠나려는 일선 시장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인구 1만 7000명의 해안 소도시 뉴버리포트에서 4번째 임기 중인 도나 홀러데이 시장은 최근 5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작은 도넛가게 리본 커팅 행사부터 장례식, 각종 기금 모금까지 자리를 마다하지 않은 시장이었으나, “지난 1년간 스케줄표에 아무 것도 없었다”며 상실감을 드러냈다. 그래도 그는 시민들이 그의 불켜진 사무실이라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텅 빈 시청 사무실을 하루 종일 지켜 왔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생사를 가르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셧다운을 연장해 지역 기업들을 황폐화시키고, 소중한 모임을 취소하는 일 같은 것”이다. 그런 모임에 참석해 위안을 주는 것도 불가능했다. 보스턴 북쪽에 위치한 도시 린의 맥기 시장은 “태국의 끔찍한 지진과 쓰나미를 기억하나? 쓰나미가 우리 뒤에 있고, 해안에서 더 높은 지대로 해변을 달리고 있는 것 같은”이라며 현장에서 느끼는 압박감을 표현했다. 이지운 전문기자 jj@seoul.co.kr
  • [월드피플+] 美 스벅 매장서 태어난 아기와 18년 만에 만난 직원의 사연

    [월드피플+] 美 스벅 매장서 태어난 아기와 18년 만에 만난 직원의 사연

    오래 전 한 카페에서 갑자기 태어난 아기와 당시 출산을 도운 바리스타가 18년 만에 만나 커피 한잔을 기울인 흥미로운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NBC뉴스 등 현지언론은 한때 '스타벅스 아기'로 불렸던 조나단 셀너(18)와 그의 출산을 도왔던 바리스타 그리핀 바론(39)의 사연을 보도했다.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이 시작된 것은 18년 전. 당시 일리노이 주 윌메트 지점의 스타벅스 슈퍼바이저로 일하던 그리핀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을 경험한다. 만삭의 한 여성 고객이 매장 내 화장실에서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한 것. 그리핀은 "당시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여성 고객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기를 낳고있었다"면서 "곧 911에 신고하라고 지시하고는 다른 여성 손님과 함께 출산을 도왔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매장 내에서 태어난 아기가 바로 지금은 18세가 된 조나단이다.몇분 후 산모와 조나단은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고 이후 현지에서는 '스타벅스 아기'라는 타이틀로 보도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조나단의 모친인 엘리자베스 롤크는 이곳 스타벅스에 들렸다가 갑자기 진통이 찾아와 3주나 일찍 조나단을 낳았다. 이같은 사건을 겪은 후 그리핀은 이 경험을 평생 마음 속에 간직했다. 그리고 매장에서 태어난 아기가 이후 어떻게 성장했을지 궁금해오다 최근 우연히 기금모금 사이트인 ‘고펀드미’를 통해 조나단의 모친 소식을 알게됐다. 조나단의 모친은 안타깝게도 과거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부친 역시 지난해 사망했다. 다행히 그리핀은 고펀드미와 페이스북을 통해 조나단과 연락이 닿았고 결국 지난달 21일 그때 그 스타벅스 지점에서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그리핀에게는 특별한 사건을 경험했던 전 직장 그리고 조나단에게는 자신의 출생지인 셈. 보도에 따르면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된 조나단은 현재 물류업체 UPS에서 일하며 지역 전문대학에서 공부 중이다. 조나단은 "매장에서 내가 태어난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항상 엄마가 떠오른다"면서 "이번에 그리핀이 연락을 해오면서 원 하나가 완전히 채워진 느낌"이라며 웃었다. 그리핀도 "조나단이 태어난 날은 나에게 매우 큰 경험이었고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마침내 이렇게 만나게 되서 새로운 친구를 얻은 기분"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지하철 타기 겁나? 택시비 대신 내드려요” 자비 턴 한국계 여성…1억 기부금 답지 (인터뷰)

    “지하철 타기 겁나? 택시비 대신 내드려요” 자비 턴 한국계 여성…1억 기부금 답지 (인터뷰)

    길거리나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의 잇단 증오범죄가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동권’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일일 이용객 500만 명의 뉴욕 지하철은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다. 뉴욕 지하철에서는 지난 주에도 아시아계 여성과 그의 자녀, 또 다른 아시아계 남성을 상대로 한 증오범죄가 연이어 발생했다. 조롱과 멸시, 폭언은 물론 신체적 폭행까지 가해진 인종차별 사건에 이젠 무서워서 지하철 못타겠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이처럼 지하철 이용에 대한 불안이 확산하자, 한국계 여성 한 명이 택시비를 대신 내주겠다고 나섰다. 6일 abc7(뉴욕)은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매들린 박(29, 한국이름 박나진)씨가 자비를 털어 증오범죄에 노출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택시비 지원에 나섰다고 보도했다.자신의 애칭을 딴 ‘매디 캡’(매디 택시) 캠페인을 시작한 박씨는 “이동이 필요하면 우버, 리프트 택시를 타고 내게 비용을 청구하라”며 2000달러(약 220만 원)을 내놓았다. 그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는 뉴욕의 아시아계 여성과 노인, 성소수자에게 40달러(약 4만 원)씩 택시비를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매디 캡’ 장기 운영을 위한 추가 자금 모금을 펼쳤다. 결과는 놀라웠다. 미국 전역에서 48시간 동안 10만 달러(약 1억 1100만 원) 넘는 후원금이 쏟아졌다. abc뉴스와 폭스뉴스 등도 해당 캠페인에 관심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박씨는 어떻게 자비까지 털어 택시비 지원을 할 생각을 했을까. 박씨는 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학생일 때 생각이 났다”고 밝혔다.15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는 뉴욕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는 박씨는 “요즘 인종차별 증오범죄 사건이 자주 터져 불안했다. 지난주에는 누군가 지하철에서 나와 같은 나이의 한국계 여성 가방에 불을 붙였더라. 지하철 타기가 무서웠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혼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30분 내내 두려움에 떨었다. 누가 나를 공격하지는 않을까 무서웠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나서주는 사람 하나 없는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박씨는 지하철 대신 택시를 타고 출퇴근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는 터라 부담은 적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택시를 이용할 형편이 안 되는 다른 아시안은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특히 학생들 걱정이 컸다. 박씨는 “내가 학생일 때 생각이 났다. 돈 아끼려고 항상 지하철을 타고 걸어다녔다. 나 같은 학생들이 많을 것 같아 속상했다. 택시 탈 돈만 있으면 그래도 안전이 보장될 것 같아 SNS를 통해 ‘매디 캡’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전했다.박씨에 따르면 현재까지 택시비 지원을 요청한 사람은 매일 출퇴근하는 병원 간호사, 부모님 모시고 병원에 가던 자녀,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러 가던 사람, 밤거리에서 위협을 느낀 사람, 지하철을 타려다 수상한 사람을 보고 뛰쳐나온 사람 등으로 다양하다. 박씨는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고들 하더라”면서 “과거에도 증오범죄는 많았으나 보도가 안 됐을 뿐이라고 하던데, 애틀랜타 총격사건 등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코로나19는 작년부터 유행했는데 왜 이제와서 갑자기 아시안 증오범죄가 늘었는지 모르겠다”고 갸우뚱했다. 자신은 한국인이 많은 지역에서 자라 심한 인종차별을 겪어본 적이 없으며, 가끔 거리에서 인종차별적인 말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 정도였는데 요즘 부쩍 증오범죄가 늘어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박씨는 일단 기존 모금액이 소진될 때까지 모금을 잠정 중단했다. 박씨는 “전국 각지 다양한 인종 커뮤니티에서 기부금과 응원 메시지를 보내왔다”면서 “이번 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뉴욕의 아시안 커뮤니티를 지지하는지 알게 됐다”고 감사를 전했다. 박씨는 “뉴스를 보며 아시아계 미국인 모두가 똑같이 느꼈을 거다. 아무도 우리를 보호하지 않고, 눈 앞에서 폭행을 당해도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절망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틀 동안 기부금이 쉬지 않고 들어오는 걸 보면서, 우리가 안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같은 흑인 인종차별에 이어 이제는 애틀랜타 총격 등 아시안 인종차별까지, 너무 안 좋은 일이 계속됐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변화가 일어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하루 빨리 ‘매디 캡’이 필요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구한말 첫 여성 의병 지도자 윤희순 출생지는 경기 구리”

    “구한말 첫 여성 의병 지도자 윤희순 출생지는 경기 구리”

    우리나라 최초 여성 의병 지도자인 윤희순(1860∼1935년) 선생이 경기 구리시 수택동 검배마을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기 구리시는 6일 구리문화원이 최근 진행한 윤희순 출생지 관련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윤 선생의 출생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동안 출생지가 각종 기록에 구리와 서울로 양분되어 있었다. 다만 상당수 자료가 구리를 출생지로 인정하고 있으며 일부는 서울로 표기하고 있다. 이에 구리문화원은 지난해 말부터 문중 자료 분석과 종친회·후손 면담 등의 방법으로 윤 선생의 출생지를 연구했다. 이를 통해 선생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수택동 검배마을에 살았던 것을 확인했다. 구리문화원 향토사 연구진은 “조선 말기 시대적 상황으로 미뤄 윤 선생의 정확한 출생지는 검배마을로 봐도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자문위원인 황선익 국민대 교수는 “해주 윤씨 문중 세거지와 세보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어 조사 결과에 상당한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으며 향토사 연구 차원을 넘어 학계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 윤 선생은 1876년 16살 때 결혼해 시댁인 춘천에 살았으며 1895년 전국적인 항일운동인 을미의병 때 시아버지인 유홍석 의병장을 따라 독립운동에 나섰다. 선생은 ‘안사람 의병가’를 지어 당시 가사만 전담했던 여성에게 구국운동을 일깨우고 항일운동 참여를 독려하는 데 앞장섰다. 1907년에는 30여 명으로 구성된 ‘여성의병’을 조직해 취사와 세탁 등을 지원하거나 탄약제조소를 운영했으며 때로는 남장하고 정보 수집에 나서기도 했다. 국권을 강탈당한 1911년에는 중국으로 망명해 항일 선전, 독립자금 모금, 민족학교 설립 활동 등을 펼쳤고 1915년에는 중국인과 조선인의 항일 연대단체인 무순 조선독립단을 조직하고 조선독립단학교를 설립했다. 국내외에서 40년간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그는 일본 헌병에 체포된 뒤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1935년 숨졌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3년 대통령 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안승남 시장은 “이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윤희순 의병장의 출생지를 근거 자료를 통해 밝힌 것은 항일 의병운동과 독립투쟁으로 나라를 되찾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빛내기 위한 역사 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박상학 “기부금품법 위반? 전단살포 수사중 별건 기소…기소권 남용”

    박상학 “기부금품법 위반? 전단살포 수사중 별건 기소…기소권 남용”

    기부금 1억7700만원 미등록 모금 혐의첫 공판서 재판 진행 반대 등록 없이 기부금을 모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상학(53)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등이 6일 첫 공판에서 혐의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것을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대북전단 사건의 기소 여부를 확인한 후에 입장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김태균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 대표 등의 첫 공판을 진행했다. 박 대표의 변호인은 이날 “이 사건 기소는 기소권 남용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지난해 6월까지 기부 모집 등록을 하지 않고 자유북한운동연합을 홍보하면서 약 1억 7700만원을 송금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변호사는 “검찰이 경찰청에서 송치받은 사건 중 기부금품법 위반 사건만 기소했고, 현재 나머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사건(대북 전단 살포 혐의)은 수사 중”이라며 “피고인으로서는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사건에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이어 “기부금품법 위반 사건의 공소사실 인정 여부나 증거 동의 여부는 유보하겠다”고 말했다. 대북 전단 살포 혐의와 기부금 모집 혐의는 일부 같은 사실관계를 근거로 하는데, 먼저 기소된 기부금 모집 사건에서 변론하는 내용이 아직 수사 중인 대북 전단 살포 사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변호인의 주장이다. 재판부는 “다른 사건으로 기소될지 확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다음 기일까지 검토해보고 재판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의견을 내 달라”고 당부했다. 다음 공판은 5월 25일 열린다. 앞서 통일부는 작년 6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가 4·27 판문점선언 등 남북 간 합의 위반’이라고 문제 삼자 박 대표 등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경찰에서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일단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만 분리해 작년 12월 박 대표를 재판에 넘기고, 나머지 혐의는 계속 수사 중이다. 재판에 넘겨진 혐의는 박 대표가 북한 주민 인권단체를 운영하며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지 않고 기부금을 모집했다는 것이다. 한편 박 대표 등은 지난해 6월 경기 파주 등에서 대형 풍선 20개를 동원해 대북전단을 기습 살포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수사의뢰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금메달리스트도 못 피한 인종차별… 클로이 김 “호신 무기 챙긴다”

    금메달리스트도 못 피한 인종차별… 클로이 김 “호신 무기 챙긴다”

    미국에서 아시아계를 노린 증오범죄가 잇따르는 가운데 한국계 미국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클로이 김(21)도 인종차별 피해를 고백했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아시아계 유명 인사 등이 증오범죄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스노보드 세계 챔피언인 클로이 김은 지난 2일(현지시간) 미 스포츠 매체 ESPN과의 인터뷰에서 “프로 선수이고 올림픽에서 우승했다고 인종차별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라며 온라인 등에서 하루에도 수십건씩 증오 메시지를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부터 ‘스노보드 신동’으로 알려진 그는 2014년 애스펀 X게임 대회에서 하프파이프 첫 메달을 땄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선 금메달까지 거머쥔 유명한 선수다. 그는 “사람들은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내 성취를 멸시했다. ‘멍청한 동양인’ 같은 인종차별적 표현과 욕설, 외설적인 내용이 매일 메시지로 온다”며 “코로나19 이후 상황은 더 심해져 최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한 여성이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기 충격기, 페퍼 스프레이(최루액 분사기), 호신용 칼을 항상 챙겨 다니며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아니라면 혼자서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더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증오범죄 피해를 밝히게 됐다”며 자신의 얘기가 심각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유명인들의 피해 고백에도 아시아계를 향한 공격은 끊이지 않고 있다. 워싱턴에서는 50대 한국계 부부가 10대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갈비뼈가 부러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CNN방송은 3일 워싱턴주 터코마 경찰이 아시아인을 폭행한 혐의로 15살 소년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그를 포함한 10대 소년들은 지난해 11월 길을 가던 부부를 갑자기 주먹으로 마구 때렸고, 남편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얼굴에 피멍이 들게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지난달 30일 샬럿의 한 한인 편의점에 흑인 청년이 도로 표지판 기둥으로 보이는 금속 막대기를 갖고 들어와 다짜고짜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그는 막대기를 휘둘러 냉장고와 테이블 등 각종 기물을 때려 부쉈고, 주인을 향해 “중국인들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욕설을 퍼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이후 지인들이 온라인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에 ‘아시아계 소상공인을 향한 증오범죄를 멈추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는 현재까지 3만 달러가 모였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7명에게 장기기증 약속”…장기기증 직전 소생한 10대

    “7명에게 장기기증 약속”…장기기증 직전 소생한 10대

    영국 10대, 장기기증 직전 소생아직 위독한 상태라 모금 운동 10대 청년이 뇌사 판정을 받고 장기 기증 수술을 하기 직전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발생했다. 1일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루이스 로버츠(18)는 지난 13일 고향인 잉글랜드 중부 스태퍼드셔의 리크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화물차에 치인 로버츠는 머리에 치명상을 입었다. 그러나 나흘 뒤 의사는 로버츠에게 뇌사 판정을 내렸고,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눌 준비를 해 달라고 말했다. 가족은 병원측 제안에 따라 로버츠의 장기를 7명에게 나눠주는 데 동의했고, 수술을 기다렸다. 그사이에 기적이 일어났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던 로버츠가 장기기증을 불과 수시간 앞두고 눈을 깜빡거리며 다시 자가 호흡을 하고 심장도 뛰기 시작한 것이다.살아날 가능성 ‘제로’에서 기적 일어나 의사도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기적이 일어났음을 확인했다. 그가 스스로 호흡하는 것이 확인되자 가족들은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던 루이스가 깨어났다”며 기쁨의 눈물을 쏟았다. 누나 제이드 로버츠는 1주일 뒤인 26일 동생이 산소호흡기 없이 호흡이 가능하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알렸다. 그러나 28일에는 흉부감염 때문에 다시 호흡기를 달았다고 전했다. 한편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상태가 위독한 로버츠를 위한 모금 운동이 시작돼 현재까지 2000파운드(약 310만원) 이상이 모였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기절 챌린지’ 한다고 숨 참았다가...” 뇌사 판정 받은 미국 10대

    “‘기절 챌린지’ 한다고 숨 참았다가...” 뇌사 판정 받은 미국 10대

    미국에서 한 소년이 숨을 오래 참는 ‘기절 챌린지(blackout challenge)’에 참여했다가 뇌사상태에 빠졌다. 최근 SNS ‘틱톡’에서 유행하는 ‘기절 챌린지’는 의식을 잃을 때까지 목을 조르거나 숨을 참는 아주 위험한 게임이다. 1일(현지시간)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콜로라도주에서 12세 소년이 자기 집 화장실에서 구두끈으로 목이 조여진 채 숨을 쉬지 않고 쓰러진 채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은 그가 ‘기절 챌린지’를 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 경찰이 사건을 수사 중이다. 가족은 모금사이트 ‘고펀드미’에 올린 글에서 쌍둥이 동생이 화장실에서 쓰러진 형을 발견하고 인공호흡을 실시했으나 소용이 없었고 병원에서는 소생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의사의 설명이 있었다고 밝혔다. 가족은 “아들이 부모도 모르는 사이에 (기절 챌린지가) 얼마나 위험한지 제대로 모르고 게임에 참가했다”면서 주위에 주의를 촉구했다. 아동 안전 관련 비영리단체 ‘일루미네이트 콜로라도’ 앤 올드 교육국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아이들이 SNS와 온라인 공간에 더 의존하게 됐다면서 “온라인은 아동에게 유익할 수 있지만,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틱톡은 ‘기절 챌린지’의 검색을 막아놓는 등 사고 방지 조처에 나서긴 했지만, 유행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3년 전인 2008년 2월 젊은이들의 ‘기절게임’(choking game)이 위험하다는 보고서를 냈을 만큼 ‘기절 챌린지’는 오래 전부터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CDC에 따르면 1995~2007년에 6~19세 82명이 기절 게임과 연관돼 숨졌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마트, 가전 1대 팔 때마다 사회공헌 2만원 적립

    이마트, 가전 1대 팔 때마다 사회공헌 2만원 적립

    이마트가 LG전자와 함께 오는 4월 30일까지 ‘착한 소비 프로젝트’를 펼친다. 두 회사는 이 기간 판매된 가전제품 수익금 일부를 사회 공헌 기금으로 조성해 비대면 온라인 교육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 계층 어린이들에게 기증한다. 이번 사회 공헌 활동은 단순히 기업에서 기금을 전달하는 방식이 아닌, 고객과 함께하는 펀딩 모금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고객이 이마트와 일렉트로마트에서 제품을 구매하면 이마트와 LG전자가 대당 2만원을 공헌 기금으로 적립한다. 기부 적립 모델은 올레드 TV를 비롯, 오브제컬렉션 냉장고·워시타워·스타일러·식기세척기·에어컨 등 모두 6개 품목의 LG전자 가전 제품이다. 이마트는 조성한 금액에 해당하는 LG노트북을 5월 5일 어린이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전국 아동 양육 시설 40여곳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이마트는 올해 10년차를 맞은 ‘희망 배달마차’를 통해 지난 2월 저소득층 어린이를 위한 책가방, 체육복, 악기, 문구세트 등 필수 학용품을 지원했다. 기부 혜택을 받은 대상은 1000여 세대로, 기부 금액은 모두 4000만원에 달한다. 올해 5월에는 가정의 달을 맞아 피코크 삼계탕과 밑반찬을 무료 급식소에 지원할 계획이다. 또 9월에는 추석선물세트를 저소득가정에, 12월에는 겨울나기 테마로 한부모 가정 어린이들에게 방한용품을 기부할 예정이다. 희망 배달마차는 2012년 지역 저소득가정과 독거노인 등 도움이 필요한 사회 소외계층 생필품 지원을 위해 시작됐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세계서 가장 큰 레드우드 나무 쓰러져 운전중이던 부부 사망

    세계서 가장 큰 레드우드 나무 쓰러져 운전중이던 부부 사망

    아내의 생일을 맞아 여행을 떠난 부부가 미국 캘리포니아 199번 도로를 달리던 중 나무가 차 위로 쓰러지는 바람에 사망했다. 사망한 부부는 지난 25일 2016년형 혼다를 몰고 운전 중이었는데 캘리포니아주 델노르트 카운티에서 거대한 레드우드 나무가 차량을 덮쳤다. 운전자는 36살의 남편 제이크 우드러프였고 조수석에는 45살의 아내 제시카 우드러프가 타고 있었다. 사고로 고속도로는 약 한시간 동안 폐쇄됐다고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경찰은 밝혔다. 사망한 부부는 5명의 자녀를 두고 있어 성금을 모금하는 웹사이트 ‘고펀드미’에서는 졸지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한 성금 모금이 이루어졌다. 길이 175피트(약 53m)의 거대한 나무가 갑자기 왜 쓰러졌는지에 대해서는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캘리포니아 고속도로 경찰 측은 “이 사고는 19년 동안 경찰로 일하면서 본 것 중 가장 일반적이지 않다”면서 “고속도로가 레드우드 숲 가운데 있긴 하지만 왜 나무가 쓰러졌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자연의 뜻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세쿼이아 또는 레드우드로 불리는 미국삼나무는 미국과 뉴질랜드가 원산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다. 고펀드미에서는 갑자기 부모를 잃은 5명의 아이를 위해 이틀간 약 15만달러(약 1억 7000만원) 이상의 성금이 모였다. 고펀드미를 통해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파와 맛사지 가게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로 사망한 한국인 여성들의 유족을 위한 성금이 답지하기도 했다. 특히 혼자 자녀를 키웠던 어머니를 잃은 두 아들을 위해 289만달러(약 32억원)의 성금이 모금됐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제주 4·3, ‘완전한 해결’ 위한 화해·상생의 새 여정 시작됐다

    제주 4·3, ‘완전한 해결’ 위한 화해·상생의 새 여정 시작됐다

    4월 제주는 통곡했다. 현대사 최대 비극인 4·3사건으로 4월이면 제주는 슬픔에 빠졌다. 다시 4월이 온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4·3특별법이 개정된 후 처음 4월을 맞는다. 4·3은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긴 역사의 어둠에 묻혀 있었다. 오랜 인고의 세월이 걸렸지만 다시 4월을 맞아 화해와 상생이라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정부 차원의 4·3 진상규명 노력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말부터다. 이를 공약으로 내세운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1999년 12월 16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2002년에는 1715명이 정부로부터 처음으로 4·3 희생자로 인정됐다.2003년 10월 15일 4·3진상보고서가 확정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를 찾아 “과거 국가 권력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했다. 노 대통령은 2006년 위령제에 국가원수로는 처음 참석,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듬해인 2014년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66주년 추념식이 처음으로 국가 의례로 봉행됐다. 하지만 희생자 배·보상과 명예회복 등 4·3 치유와 완전한 해결에는 부족했다. 20대 국회인 2017년 12월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야 대립에 폐기됐다. 다시 3년여간의 노력 끝에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최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오는 6월 공포된다. 73년 만에 4·3이 완전한 해결을 위한 전기를 맞았다. 다음달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리는 73주년 4·3 국가추념식은 4·3이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와 상생으로 가는 대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된 제주4·3특별법은 희생자들에 대한 위자료 지급과 수형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 회복, 추가 진상조사 등을 담았다. 4·3 유족과 제주도민들의 오랜 바람을 국회가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2014년 국가기념일 지정… 4·3 국가 의례로 이에 따라 정부는 보상이나 위자료 지급 방안 및 재정 지원을 위한 연구용역을 하고 위자료 지급 등의 예산을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게 된다. 연구용역이 끝나면 추가 법 개정이나 별도 입법으로 구체적인 위자료 지급 방안이 마련된다. 특별법 전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던 오영훈(제주시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상의 기준을 한국전쟁을 전후해 발생한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의 희생자 및 유족에게 판결로서 지급한 위자료 총액을 평균한 금액으로 제시했다”면서 “위자료 개념상 배상의 용어가 담겨 있고 배상의 용어를 정부가 수용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특별법 개정에 제주4·3 유족회도 화답했다. 유족회는 앞으로 희생자 등에게 지급될 위자료를 모금해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기금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유족회는 캠페인을 벌여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모금한 기금을 희생자 추모와 유족 복지, 진상조사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바이든 정부에 공동조사 요구 공개 서한 보내 특별법 개정으로 제주4·3 당시 억울하게 형무소로 끌려간 군사재판 수형인 희생자들은 법무부와 협의해 일괄 직권재심으로 명예 회복이 가능해졌다. 또 일반재판 수형인 희생자는 개별 특별재심을 권고할 수 있다. 3500여명으로 추정되는 행방불명인에 대한 법률적 정리와 더불어 가족관계등록부 정리도 이뤄진다. 특별법 개정으로 제주4·3의 바른 이름(정명)을 찾는 추가 진상조사가 진행된다. 제주4·3은 ‘사건’으로 불리고 있지만 적확한 성격 규정에 맞지 않다고 유족과 학계 등에서 문제를 제기해 왔다. 국회는 추가 진상조사와 관련해 제주4·3 중앙위원회에 여야가 2명씩 추천한 위원을 추가해 진상조사에 관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도록 했다. 제주4·3평화재단이 실질적으로 추가 진상 조사하며 결과는 국회에 보고해 공식 보고서가 발간된다. 4·3평화재단은 제주4·3 초기 미군정의 역할을 조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주4·3범국민위원회와 재일본제주4·3유족회, 미주제주4·3유족회준비위원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지난달 바이든 정부에 공개 서한문을 보내 4·3 공동 조사 등을 요구했다. ●6차 조사, 희생자 1만 4533명·유족 8만여명 개정된 제주4·3 정의는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경찰 발포에 의한 민간인 사망사고를 계기로 저항과 탄압, 1948년 4월 3일의 봉기에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의 해제까지 무력 충돌과 공권력의 진압과정에서 민간인이 집단으로 희생된 사건’이다. 4·3으로 희생된 인명 피해는 적게는 1만 4000명에서 많게는 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000년 6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6차례 희생자 및 유족 신고기간을 운영한 결과 지난해 말까지 희생자 1만 4533명, 유족 8만 452명 등 총 9만 4985명의 4·3희생자 및 유족들이 심의·결정됐다. 지난 23일에는 국가 차원의 제주4·3희생자 및 유족 인정을 위한 심사가 3년 만에 다시 재개됐다. 제주4·3 실무위원회는 이날 7차 심사를 벌여 추가신고한 희생자 75명과 유족 1만 2210명 중 사실조사가 끝난 희생자 3명과 유족 124명을 4·3중앙위원회에 최종 심의·결정을 요청했다.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4·3은 가해자와 피해자 간 갈등이 심했지만 2013년 4·3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가 조건 없는 화해 선언을 했다”며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추모 공간을 마련해 4·3 피해자와 군경희생자 신위를 함께 안치해 참배하는 등 이념 갈등을 뛰어넘어 4·3이 화해와 상생의 길로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윤미향 “경남서 진보 정치하기 참 어려워…김영춘에 박수”

    윤미향 “경남서 진보 정치하기 참 어려워…김영춘에 박수”

    “경남이 고향이라 ‘공화당’ 밖에 없는 줄”“박정희 경호과장 출신 의원 달력 보고 자라”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출신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9일 경남에서 진보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김영춘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윤 의원은 “경남지역이 민주화운동 중심에 섰던 역사도 있고, 진보 성향 국회의원을 낸 지역도 있지만, 여전히 경남에서 그런 분들이 정치를 하거나 지역운동을 하는 일이 참 어렵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이날 오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서 “저는 고향이 경상남도 남해다.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 깊어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엔 공화당이란 정당 하나밖에 없는 줄 알고 자랐다”며 이렇게 올렸다. 그는 “글자를 익히기도 전인 유아 시절엔 방벽에 붙은 당시 최지환 공화당 의원의 달력을 보며 자랐다”면서 “1971년부터는 박정희 대통령 경호과장을 지낸 신동관 의원의 얼굴이 인쇄된 달력을 보며 자랐다”고도 했다. 윤 의원은 그러면서 자신의 지역에서 민주화 운동 등 진보 정치인들이 일하기가 참 어렵다고 언급한 뒤 “제 고향 지역에서 그 어려운 길을 선택한 분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더 큰 응원을 하게 된다. 부산시장 김영춘 후보님과 경남지역 의회 후보로 뛰고 계신 분들에게 한 번 더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며 응원을 부탁했다.미 국무부 “초선 윤미향 위안부 지원NGO서 사기·횡령·자금 유용” 보고서 한편 미국 국무부는 최근 국가별 인권 보고서를 통해 한국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와 성추행 등 비위 문제를 지적했는데 지난해 불거진 윤미향 의원의 ‘위안부 기금 유용’ 혐의도 부패 항목에 넣어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 ‘2020 인권 관행에 관한 국가별 보고서: 한국’에 따르면 “9월 검찰은 초선 의원인 윤미향을 일본군 위안부를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재직 기간에 사기, 업무상 횡령, 직무 유기 및 자금 유용과 관련한 기타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했다”고 소개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윤 의원을 사기·준사기·업무상횡령 등 6개 혐의로 기소했다. 부정한 방법으로 국고와 지방 보조금을 교부받아 편취한 혐의, 무등록 기부금품 모집 혐의, 개인계좌로 모금한 기부금과 단체 자금을 유용한 혐의, 치매 상태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돈을 기부하게 한 행위, 위안부 할머니 쉼터로 사용할 주택을 비싸게 사들여 정대협에 손해를 끼친 혐의, 위안부 할머니 쉼터를 미신고 숙박업에 이용한 혐의 등이다. 당시 서울서부지검은 윤 의원이 정대협 기부금 중 1억 35만원을 개인적으로 횡령하고, 치매를 앓는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길 할머니의 여성인권상 상금 중 돈 일부인 7920만원을 기부·증여하게 하는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이천시 전국 첫 노인 ICT복합문화공간 개관

    이천시 전국 첫 노인 ICT복합문화공간 개관

    경기 이천시는 전국 최초로 이천시노인종합복지관 내 ICT 복합문화공간을 마련했다고 29일 밝혔다. ICT 복합문화공간은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SK하이닉스 후원으로 조성했다. 이천시노인종합복지관 1층에 위치한 ICT 사랑방은 행복마루, 지식마루, 활력마루, 건강마루 등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복마루는 개인 별 영상 시청, 치매예방을 위한 터치스크린 게임, 대화형 로봇 등을 체험할 수 있으며 지식마루에서는 키오스크, 스마트폰, 테블릿 등 어르신들이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IT기기 사용 교육이 진행된다. 활력마루에는 1인 노래방과 동작인식 게임, 샌드크래프트, VR체험 공간이 조성되어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으며 건강마루에서는 시스템 연동 웨이트 시스템, 건강상담실, 물리치료실 등이 조성되어 개인별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이천시종합복지타운 별관에 조성된 행복하이 카페는 실버바리스타를 통해 운영되는 카페로 드립커피를 만드는 로봇 하이브로, 서빙로봇, 3D 스캐너를 활용한 스케치 아쿠아리움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기기가 설치되어 이용객들의 관심을 받고있다. 이날 개관식은 코로나19 방역 지침 준수를 위해 최소한의 내빈만 참석하여 진행됐다. 엄태준 시장은 “이천시민을 위해 항상 따뜻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SK하이닉스와 아울러 ICT복합문화공간 조성을 위해 함께 노력해준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이천시노인종합복지관, 이천시니어클럽 등 관련 기관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도 어르신이 행복한 이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ICT 복합문화공간 운영 관계자는 “코로나19가 극복되면 많은 어르신들이 새롭고 신선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공간, 신명나는 어르신 일자리 창출 공간이 될 것으로 확신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새로운 노인복지서비스 제공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의붓할머니 사라 99세 일기로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의붓할머니 사라 99세 일기로

    버락 오바마(60) 전 미국 대통령이 2008년 대선에 나섰을 때부터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격을 당했다. 할아버지는 아프리카 케냐에 살았고, 자신은 하와이주에서 태어났는데 그걸 문제 삼은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결혼한 아내 가운데 세 번째이자 가장 젊었고, 오바마 대통령과 친근한 감정을 나눴던 의붓할머니 사라 오바마가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29일 전했다. 사라 할머니는 이날 아침 케냐 서부 키수무 마을의 자라모기 오깅가 오딩가 병원에서 세상을 등졌다고 딸 마르삿이 현지 일간 데일리 네이선에 밝혔다. 가족들은 이 마을의 한 묘지에 매장할 계획으로 장례 일정을 짜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전직 대통령의 의붓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사실까지 우리가 알아야 하느냐고 따질 수 있겠으나 둘은 친할머니와 친손자 사이를 뛰어넘을 정도로 각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종종 “사라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존경을 표했고, 의붓할머니는 미국 대선 기간 무슬림이며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들로부터 공격받는 손자를 감싸는 발언을 했다. 물론 대통령에 당선된 뒤 2011년 재선에 성공했을 때도 누구보다 앞장서 손자를 축하했다. 사라 할머니는 2014년 11월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여성기업인회의 연설을 통해 고향 마을의 학교를 짓는 비용을 모금하자고 호소해 눈길을 끌었다. 그 뒤 2015년 7월 글로벌 기업가정신 정상회의 참석 차 케냐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이 바쁜 일정에도 짬을 내 코겔로 마을의 아버지 묘를 참배해야 한다고 주장해 또다시 눈길을 붙들었다. 아버지 장례 때 참석하지 않았으니 루오족 전통을 좇아 아버지 묘를 참배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일정을 이유로 포기했고 대신 나이로비 호텔에서 사라 할머니와 다른 30여명의 친지들과 만찬을 드는 것으로 대신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아시아계 미국인 혐오범죄 ‘스스로 지키기’ 나섰다

    아시아계 미국인 혐오범죄 ‘스스로 지키기’ 나섰다

    “별거 아닌 것 같은 혐오 발언도 기분 나빴다면 꼭 신고하세요. 혐오범죄의 판단 기준은 피해자의 느낌입니다.” 미국 메릴랜드주 경찰은 지난 25일(현지시간) 한국계 노인을 대상으로 혐오범죄 화상 설명회를 열고 “911에 ‘코리안’(Korean)이라고만 얘기해도 통역사를 연결해 준다. 불법체류 여부는 묻지 않으니 무조건 전화하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설명회는 워싱턴DC 한인복지센터가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범죄 피해 대처법이라도 알리겠다며 마련했다. 미 전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범죄가 급증하면서 공권력에만 기대기에는 한계가 드러나자 아시아계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뉴욕,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등에 있는 코리아타운과 차이나타운에는 아시아계가 자원봉사 치안순찰대를 구성해 순찰을 돈다. 형광 조끼를 입고 길거리를 점검하면서, 아시아계 혐오를 규탄하는 전단지를 배포한다. 한국인 4명을 포함해 8명이 숨진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격 참사 때문에 뉴욕 자경단에 가입했다는 징 리는 “세상이 변하고 있다.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다”고 WSJ에 말했다. 연이은 시위는 아시아계의 응집력을 보여 주고 있다. 각종 혐오범죄를 조용히 감내하던 그간의 문화가 바뀌었고, 정치권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26일 온라인으로 열린 ‘애틀랜타 총격 사건 피해자 전 세계 촛불 추모식’에서 한국계 미 하원의원 4명은 공동성명을 내고 “정부나 개인의 행동 하나로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를 멈출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로 모이고 연대하면 우리는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아시아계 시민단체에도 혐오범죄를 멈추는 데 일조해 달라며 성금이 답지하고 있다. 고펀드미에 올라온 ‘아시아계 공동체를 위한 모금’에는 27일까지 약 464만 달러(약 52억 5000만원)가 모였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텐트에서 일년 지내기 英 11세 소년 챌린지에 각국 어린이 1000여명 동참

    텐트에서 일년 지내기 英 11세 소년 챌린지에 각국 어린이 1000여명 동참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웃이 선물한 텐트에서 일년 동안 지낸 영국의 11세 소년이 있다. 28일(이하 현지시간)로 딱 일년이 됐는데 전날 밤에 멀리 북아메리카와 싱가포르까지 1000명의 어린이가 텐트에서 밤을 보내는 자선 이벤트에 동참, 51만 6000 파운드(약 8억원)가 넘는 돈을 모았다. 화제의 주인공은 데본주 브라운턴에 사는 맥스 우시. 지난해 2월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웃 릭 애봇이 생전에 “모험이 그 안에 있다”며 텐트를 건넨 것이 계기가 됐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톰 무어 대위처럼 일년 동안 텐트에서 지내는 챌린지를 약속하고 애봇을 치료하기 위해 애쓴 노스 데본 호스피스에 기증할 돈을 모으겠다는 기특한 생각이었다. 코로나19로 첫 번째 봉쇄 조치가 취해졌을 때 시작해 일년 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 비에 맞아 “모든 장비가 홀딱 젖어 울다 지쳐 잠이 든 적도 있었다”고 했다. 애봇이 준 텐트로 시작했지만 벌써 일곱 번째 텐트에서 지내고 있다. 맥스의 어머니 레이철은 “수백통의 메시지를 받았다”면서 아들의 뜻에 동참하는 어린이들이 1000명 가까이 뒷마당에 텐트를 치거나 아니면 집안에 텐트를 세워서라도 챌린지에 함께 했다고 전했다. 챌린지에 참여한 어린이 숫자는 물론 모금액 모두 놀랍다며 “어젯잠 침대에 누워 눈물을 글썽였다. 그만큼 압도적이었다”고 말했다. 같은 데본주 초울리에 사는 카밀라 패리시는 세 자녀를 포함해 다섯 식구와 반려견들까지 동참했는데 벌써 이번이 맥스를 지지하며 보낸 세 번째 텐트 경험이라고 했다. 그녀는 “요상한 일년이 지났는데 이런 식으로 모험을 즐겨 대단한 즐거움이 됐으며 그렇게 많은 이가 동참해 대단한 소명을 위해 돈을 모금한 일이 사랑스럽게만 여겨진다”고 말했다.사우스 스태퍼드셔주에 사는 데이비드 프레스턴은 두 자녀가 거실에 세운 텐트 안에서 지내며 팝콘을 즐겼다며 “아이들이 어느날 저녁 맥스에 대한 뉴스를 본 뒤 따라 하겠다고 결정했다. 우리아이들은 맥스처럼 힘들게 지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말로 아이들은 좋아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열살 동갑인 찰리와 샘은 소파에서 밤을 보내며 맥스를 지지한다는 뜻을 보탰다. 기업과 개인들은 텐트와 장비 등을 후원했고 자니 윌킨슨과 베어 그릴리스 같은 유명인들도 동참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민 꼬 나잉, 감사편지 보내와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민 꼬 나잉, 감사편지 보내와

    미얀마 군부의 시민에 대한 폭력 진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이끈 민 꼬 나잉(Min Ko Naing)이 5·18기념재단을 비롯한 한국인들의 연대와 지지에 감사를 전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5·18기념재단은 이 편지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3·27 미얀마 봄 혁명 희생자 추모 전국 공동행동’ 행사에서 한국어와 미얀마어로 발표했다고 28일 밝혔다. 민 꼬 나잉은 편지에서 “현재 미얀마인들은 한국의 5·18민주화운동으로부터 용기와 교훈을 얻어 투쟁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세계 시민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1962년, 1969년, 1974년, 1975년, 1988년에 이어 꾸준이 일어났고, 그 때마다 시민들의 ‘피의 저항’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얀마의 봄 혁명을 더 이상 무고한 시민 희생 없이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며 “온라인을 통하거나 대사관 앞 또는 광장에 직접 나와서 우리를 지지하고 군부 쿠데타 세력 퇴진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모아주니 정말 고맙다”고 밝혔다. 그는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 그대로 여러분의 지지가 저희에게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며 “이를 추진력으로 승리의 그날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고 썼다.민 꼬 나잉은 전 미얀마학생연합을 조직, 미얀마 8888항쟁(1988년 8월8일)을 이끈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 지도자다. 군부 독재에 맞서다 징역 65년형을 선고 받는 등 탄압을 받았다. 2009년엔 인권·평화·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광주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27일 광주 동구 민주광장에선 미얀마 민주화운동과 시민 희생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시민들은 장대비 속에서도 붉은 장미를 손에 들고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하고 군부의 ‘살인 진압’ 만행을 규탄했다. 이날 시민 김모(61)씨는 “TV화면을 통해 전해지는 미얀마의 모습에 기시감이 들었다”며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닮은 꼴인 미얀마 시민들의 ‘위대한 저항’을 지지하기 나왔다”고 말했다. 같은날 광주 각화중·신광중 학생회, 오월어머니집 주관으로 중고 물품을 판매한 수익으로 미얀마 민주화 지지 성금으로 전달하는 ‘아나바다’ 행사도 열렸다.광주 아시아 여성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미얀마인들의 저항 행동을 상징하는 ‘딴봉띠’(냄비를 두드리며 악귀를 내쫓는 풍습)를 재현하는 지지 집회도 펼쳐졌다. 이번 추모행사는 서울·대전 등 전국 곳곳에서 이어졌다.지자체와 지방의회 등도 미얀마 시미들 돕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광주시 서구와 시민사회단체는 최근 각기 모금한 성금 1600며만원을 미얀마 민주화운동단체에 보냈다.전북 전주시 시민·종교단체 등과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지 모금 운동을 추진키로 했다.전주시의회도 앞서 26일 열린 임시회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향한 열망으로 어렵게 이뤄낸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풍전등화 위기에 놓였다”면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 규탄 및 질서 회복’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호주 동해안 4000㎞ 스케이트보드로 달리는 미친 사내

    호주 동해안 4000㎞ 스케이트보드로 달리는 미친 사내

    “사람들에게 계획을 털어놓으면 다들 그냥 놀래키려는 거구나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미친 짓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지요.” 라오스에서 살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호주로 돌아와 브로큰 힐에 살던 톰 듀리는 지난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멜버른부터 케언즈까지 호주의 동쪽 해안을 따라 북상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무려 4000㎞ 거리인데 현재 9주째 달리고 있다고 영국 BBC가 28일전했다. 소셜미디어에서 ‘고디(Gordy)’란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호주가 얼마나 큰지 예전에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 런던에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보다 1000㎞를 더 달려야 하는 거리다. 하지만 파트타임 일도 따분해졌고, 무엇보다 모험이 하고 싶었다고 했다. 명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라오스에 최초의 스케이트 공원을 짓는 돈을 모금하겠다는 것으로 세웠다. 여름이 절정이라 무척 더워 햇볕을 가리면서 하루 9리터의 물을 챙겨야 한다. 과일 한 움큼, 두 끼 식사, 낙천적인 마음가짐, 육포 등을 지닌 채 달린다. 섭씨 35도에도 100㎞ 구간을 달리는데 쉴 곳이 없었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엄청나게 큰 트럭들을 지나쳐야 하거나 언덕을 내려오다 맞은편 트럭에 치일 뻔하는 등 위험하기 짝이 없다. 지원하는 이 없이 혼자 달리니 절대 따라 해선 안될 일로 보인다. 발로 도로를 박차야 하기 때문에 2주마다 한 켤레씩 신발을 바꿔야 해 벌써 다섯 번째 신발을 신고 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하루 50㎞를 그냥 걷기도 했다. 9주를 통계 냈더니 하루 평균 70㎞ 달려 이제 계획의 4분의 3을 주파했다. 솔직히 고디는 약간 후회하는 기색도 비쳤다. 도로만 쳐다보니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고 몸도 지쳐 계획을 세웠을 때의 자신감이 많이 물러진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가끔 주민들이 환호를 보내고 동행하는 낯선 이들과 어울리고 주민들이 물이나 음료수를 건네기도 하는 것이 활력소가 된다고 했다. 무모한 일 같은데 그는 “하루 목표를 채우고 나면 짜릿한 보상이 주어진다”면서 다른 이에게 권하고 싶다고 했다. 케언즈에 도착하면 뭘 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떠들썩한 파티를 연 뒤 발마사지를 받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최초 건축가 이훈우의 발견… 한국 근대 건축사 다시 써야 할 이유

    최초 건축가 이훈우의 발견… 한국 근대 건축사 다시 써야 할 이유

    한국 최초의 근대 건축가는 누구일까? 얼마 전까지는 경성고공 출신으로 1937년 화신백화점을 설계한 박길룡을 손꼽았다. 하지만 이제 이훈우라는 또 다른 존재를 거론하는 목소리가 생겼다. 그는 일본으로 유학 가 나고야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에 개업, 1924년 대표작인 천도교의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을 설계했다. 1932년에 개업한 박길룡보다 여러모로 앞선 선배였다. 그러나 그는 최근까지 ‘무명’으로 존재했다. 왜 그랬을까. 이제야 듣게 되는 그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이훈우, 그는 누구인가 이훈우는 1886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종구는 유학자로, 외국의 신학문을 기피하던 대다수 영호남 선비들과는 달리 1900년대에 아들 세 명을 일본으로 유학 보냈다. 셋째였던 이훈우는 1908년 나고야고등공업학교(지금의 나고야공업대학)에 외국인 특별생으로 진학해 근대건축교육을 받게 된다. 그는 영어, 수학, 물리학 같은 기초 학문과 건축사, 설계 및 장식법, 제도 같은 인문적이고 창의적인 과목, 그리고 건축재료, 시공법, 위생건축, 측량과 같은 기술적인 과목을 배웠다. 재학 중 나라가 망하고 국적이 바뀌었지만 학업을 마친 그는 귀국해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한다. 이 무렵 부산중학교와 같은 관립학교와 보성고등보통학교, 동덕여학교 등과 같은 민족사학 계열의 학교를 설계했다. 1920년 총독부 기수직을 사직한 이훈우는 같은 해 12월 10일에 지금의 종로3가 단성사 옆 건물에서 설계사무소를 개업한다. 1932년에 개업한 박길룡보다 12년이 빨랐다. 당시 34세였던 그는 성북동에 피병원(避病院)으로 불린 민립 서울병원을 설계해 기초공사까지 진행되다가 예산 부족으로 중단됐다. 관립병원 순화원이 당시 유행했던 콜레라 환자를 감당하지 못하자, 조선인이 모금운동을 추진해 건축한 전염병 병원이었다. 천도교 측의 기록에 의하면 이훈우는 1924년 수운 최제우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을 설계한다.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종합문화센터 역할을 하며 음악회에서 미술 전시회, 심지어 운동 경기에 이르는 수많은 행사를 무료로 치러낸 건물이다. 성신여대와 한양대 등이 이 건물에서 개교했다.1928년 이훈우는 고향 하동과 가까운 진주의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를 설계했다. 현재 진주여고의 전신이다. 이훈우는 이미 20대에 학교 건축을 여러 차례 경험했으나, 이 학교는 식민 지배자들의 집요한 방해 속에 어렵게 지어졌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학교는 지역 명문으로 성장했고 소설가 박경리, 화가 이성자와 같은 동문을 배출했다. 이훈우의 여러 후손도 이 학교를 다녔다. 1929년에 설계한 조선일보 평양지국도 이훈우 작품이다. 부지는 평양 구도심의 수옥리로, 현재의 인민대학습당 근처다. 당시 기사에 의하면 2층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석재와 벽돌로 마감한 전형적인 서양식이었다. 2층에 약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최초의 한국인 사진작가의 하나인 서순삼의 전시회가 열렸다. 다만 한창 일할 나이인 40세 후반의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족보에 의하면 1937년에 51세의 나이로 사망, 하동군 악양면의 선산에 묻혔다. 같은 해 박길룡의 대표작 화신백화점이 완공됐다. 한국 근대 건축계에 일어난 최초의 세대교체다. ●지금, 왜 이훈우인가 왜 우리는 이훈우에게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첫째, 그가 현재까지 알려진 한국인 최초의 근대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근대 교육을 받고, 자신의 사무실을 개업해 자신의 이름으로 건물을 설계한 것을 근대 건축가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훈우는 제일 앞에 위치한 존재다. 마침 2020년 12월 10일은 이훈우가 자신의 사무실을 개업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날이었고, 이 날을 기념하는 온라인 파티도 열렸다. 둘째, 그가 보여 준 근대 지식인으로서의 면모 때문이다. 이훈우는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건축 설계와 기고문을 통해 명확히 그려냈다. 그의 작업이 병원, 학교, 강당, 언론사 사옥 등 공공성이 강한 유형에 집중돼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개업 당시 이미 ‘조선의 건축을 개량하고자 한다’는 의지를 천명할 정도로 스스로 부여한 소명에 대한 자각이 뚜렷했다. 셋째, 그의 건축 작업이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분리파를 비롯한 당대 건축의 조형적 경향이 엿보이며, 천도교 기념관과 같은 대규모 공간을 설계할 수 있을 정도의 실무적 능력도 갖췄다. 앞으로 좀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넷째, 식민지 시대를 이해할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 속에는 국가의 운명과 별도로 당시의 한국인 개개인이 보여 준 주체적 사고와 행동이 발견된다. 그는 단어 자체조차 생경한 ‘건축’이라는 영역에 도전해 꾸준히 결과를 만들었다. 이러한 행보는 식민지 근대론이나 내재적 발전론 같은 거대 담론의 틀을 넘어 개인의 능동적 태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한국 초기 근대 건축 서사의 한계 대한제국의 청년 이훈우가 일본 유학을 결심하던 무렵, 건축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방식 모두가 새로운 것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조선건축계에 유일한 기술가’와 같은 단편적 소개, 혹은 건물의 층수나 규모, 쓸모에 국한된 설명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가 어떤 생각과 의도로 설계했는지는 별 관심이 없었다. 건축가로서 이훈우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건축을 이해하는 수준이 그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이훈우가 받은 교육은 일본에서 최상급이 아니었다. 일본은 건축의 문명적 중요성을 일찌감치 파악했다. 그래서 근대화 초창기부터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오늘날 도쿄대학이 되는 제국대학이 바로 그 시스템의 정점이었다. 이후 중등 과정의 실업학교를 승격해 고등공업학교를 설립했는데 이훈우가 다닌 나고야고공도 이런 학교였다. 즉 이훈우는 융합적 창조자로서의 건축가 양성보다는 하위 개념의 교육을 받았고, 당시 한국 사회가 그를 이해한 방식도 이런 맥락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한국인 건축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훗날 경성고등공업학교가 되는 경성공업전문학교가 설립된 것은 1916년이었다. 일제강점기 전 기간을 통해 한반도에서 근대 건축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교육기관이었다. ‘건축을 하고 싶지만 대학에 가고 싶어 포기한다’는 증언도 있다. 주요 건축물의 설계는 일본의 최고학부를 거친 일본인 엘리트 건축가들의 몫이었고, 이것은 한국인을 도구적 존재 이상으로 보지 않았던 식민지 전략과 정확히 일치했다. 한반도에서 건축을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1946년 서울대에 건축학과가 설립된 이후다. 1876년의 강화도조약에 의한 개항 이후 무려 70년 동안 한반도의 건축은 최상위 활동을 제도적으로 부정당한 상태였다. 이런 탓에 건축 분야에서 한국이 서양과 일본과 얼마나 큰 격차를 보이는 것인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식민 지배가 한국 건축에 드리운 가장 길고 어두운 그림자라 할 것이다. 동시에 이는 건축물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인 건축가를 바라보던 차별적 시선은 해방된 지 또 다른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다양하게 복제돼 건축계 안팎에서 작동 중이다. 이러한 초기 서사의 비극과 그 영향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한국 건축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이훈우나 그 이후 건축가들의 개별적 성취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현실에서 매우 상징적인 현상으로 등장한다. 다름 아닌 ‘건축가의 유령화’다. 건축물의 주민등록등본에 해당하는 건축물대장에 설계자의 이름을 기입하는 칸이 생긴 것이 불과 1990년대 전후의 일이다. 사람으로 치면 부모의 이름을 적는 난이 없었다. 그 결과 한국의 근현대 건축사는 유령 건축가들의 역사가 됐다. 지금도 서울과 부산 등의 도시를 가득 채운 수많은 건물 중 공식 기록으로 건축가를 알 수 있는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훈우의 경우도 의뢰자 측 기록에 그의 이름을 부른 사례는 거의 없다. 천도교 내부 기록에서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의 설계자로 이훈우를 지목한 사례가 유일하다. 같은 천도교 계열의 보성고보와 동덕여학교 건립 관련 기록에도 설계자 정보가 빠져 있다. 이훈우는 이런 측면에서도 한국 건축의 ‘예견적 존재’가 아닐 수 없다.●이훈우의 현재적 의미 이훈우를 필두로 한국 근대 건축의 초기 서사를 재구성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는 근대라는 맥락 속에서 ‘건축이란 무엇일까?’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실천으로 옮긴 최초의 인물이다. 이 원초적 질문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을 찾아간다는 점에 있어서 이훈우나 그 후학들이 다르지 않다. 박길룡을 비롯한 경성고공 출신들과의 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1926년 총독부 청사의 완공을 기념해 발간된 ‘조선총독부 청사 신영지’에 이훈우와 박길룡은 각각 전·현직 기수로 나란히 등장한다. 이훈우는 박길룡보다 선배지만 유학생 출신으로 소속감이 떨어졌고, 박길룡은 속속 배출되는 경성고공 출신 한국인 건축가 네트워크의 선봉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는다. 근대 초기 한국 건축계의 세력 형성과 분화라는 측면에서 현재적 의미가 담긴 관점이다. 나아가 이러한 근대 건축의 서사를 한반도 전체로 넓혀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훈우가 등장한 뒤,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도 근대적 의미의 건축가, 혹은 그에 준하는 인물들의 활동이 시작됐다. 이훈우 자신도 평양에 신문사 지국을 설계했으나 그 실체와 자취에 대해서는 현재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남북 관계가 개선된다면 이 부분의 공조가 시작돼야 한다. 통일된 서사의 도출이 불가능하면 개별 사료를 협력해 확보하되, 해석은 각자 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교집합의 역사가 등나무처럼 얽혀 있는 프랑스와 독일도 이러한 방식으로 근대사를 정리해 나갔다. 근대 건축과 관련한 논쟁적 주제의 출발점에 이훈우가 있다. 그는 마치 한 그루 나무처럼 주어진 상황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옆으로 위로 가지를 뻗었다.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룬다. 이훈우를 통해 던질 수 있는 질문과 얻어낼 수 있는 답은 무수히 많다. 이제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할 때다. 황두진 건축가김현경 도쿄국립박물관 어소시에이트 펠로딜런 유 미국 금융정보회사 아시안팀 디렉터 ■필자인 김현경, 딜런 유, 황두진은 논문 ‘건축가 이훈우에 대한 연구’로 이훈우에 대한 기록을 추적하고 그의 삶을 재구성해 왔다. 이 글 역시 세 필자의 공동 작업이며 황두진이 대표 집필했다. 김현경은 1984년생으로 서울대를 거쳐 일본 교토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일본 고중세사로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에 재직 중이다. 딜런 유는1967년 부산생으로 서울대와 뉴욕시립대 버룩칼리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미국의 금융정보회사에 근무하며 번역서로 ‘일본에 간 베이브 루스’가 있다. 황두진은 1963년 서울생으로 서울대와 예일대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황두진건축사사무소의 대표다. 대표작으로 캐슬오브스카이워커스, 원앤원 63.5, 춘원당 그리고 일련의 현대 한옥 작업이 있다.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무지개떡 건축’, ‘공원 사수 대작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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