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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살던 고향’에 기부하세요… 지자체 백년대계 총력전

    주민참여 확대와 지방의회 역량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이 지난 13일부터 시행됐다. ‘제2국무회의’로 불리는 대통령 주재 중앙지방협력회의도 법적 효력을 갖춘 채 정례화됐다. 그러나 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소멸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신문은 ‘자치분권 2.0 시대’ 시대를 맞아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지자체들의 우수 정책을 집중 소개한다. 전국 자치단체들이 내년 1월 ‘고향사랑 기부금제’ 시행을 앞두고 새해 벽두부터 기부자 유치 확대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면서 기부금 확보 전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고향사랑 기부금제(일명 고향세)는 개인이 자신의 고향이나 원하는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에 일정 금액(연간 최대 500만원)을 기부하고, 지자체는 이를 지방 재원으로 활용하면서 지역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제공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경북도는 이달 중 ‘경북사랑 기부금 활성화를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한다고 16일 밝혔다. 지역의 열악한 재정 확충 및 도민 복리증진에 필요한 재원확보 성격을 띤 기부금 활성화 방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도 관계자는 설명했다. 용역은 한국지방세연구원이 맡아 오는 3월 말까지 수행한다. 주요 내용으로는 ▲기부금에 대한 답례품 개발 ▲기부금 홍보 방안 ▲기부 인원 및 기부금 규모 추정 ▲전담인력 확보 방안 등이다. 충남도도 이달 중 도 관련 부서를 총동원해 ‘고향사랑 준비단’을 꾸리기로 했다. 준비단은 4개 분과로 나눠 기획은 공동체정책과, 홍보는 출향인사 담당 부서인 자치행정과와 공보실, 답례품은 농수축산 관련과, 재정 분과는 예산과 등이 참여한다. 다음 달에는 도내 시민사회단체와 농수축산 관련 단체가 참여하는 ‘범도민 고향사랑추진단’도 구성한다. 3월 추가경정예산으로 답례품 개발 및 마케팅연구 용역을 추진하고 3분기에 관련 조례 제정에 나선다. 경남도는 올해 상반기 중에 ‘고향사랑 기부금제’ 조례를 제정하기로 했다. 도는 또 경남연구원에 고향사랑 기부금제에 관한 정책과제 연구를 의뢰해 기부자발굴·답례품구성·기금활용·기부금제도 홍보 등에 관한 방안도 모색할 예정이다. 전남도는 서기관을 단장으로 하는 ‘고향 사랑 추진단’을 구성했다. 사무관 2명, 6급 이하 4명 등 총 7명이 활동한다. 행정안전부가 상반기에 기부 절차와 방법 등에 관한 시행령과 조례 표준안을 마련해 발표하면 세부적인 시행계획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기초자치단체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전남 무안군은 지난 7일 고향사랑 기부제 추진 TF팀을 구성했다. 세무회계과장 주재로 기획실, 신도시지원단, 자치행정과, 사회복지과, 농업기술센터 등 전문성과 행정 경험을 갖춘 팀장 17명이 머리를 맞대 기부금 모금·홍보, 답례품 개발, 기부금이 사용될 사업 발굴 등을 논의했다. 신동철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고향사랑 기부금제는 열악한 지방재정 보완과 지역 균형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대가 크다”면서 “지자체는 두루뭉술한 사업계획이 아니라 주민 복리증진이라는 고향사랑 기부금 취지에 맞는 구체적인 사업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자체 고유의 답례품 목록 구성, 출향인사 등 잠재적인 기부자 파악, 기금 관리·운용과 세액 공제 등 기부금에 관한 업무처리 기관 결정, 기부희망자들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플랫폼 마련 등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전국종합
  • [서울포토] 문 대통령, 종교 지도자 초청 간담회

    [서울포토] 문 대통령, 종교 지도자 초청 간담회

    “화합을 위해 마음을 써달라”(한국불교종단협의회 문덕 스님)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7대 종단 지도자들과 채식으로 오찬을 함께하며 국정운영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간담회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비롯한 10명의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 문 대통령과 채식 오찬을 함께하며 7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남은 마지막 과제는 국민 사이의 지나친 적대와 분열을 치유하고 통합과 화합의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선거 시기가 되면 거꾸로 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통합의 민주주의를 위해 종교 지도자들께서 잘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원행 스님은 “올해 중요한 선거가 있다”며 “국민이 분열되지 않고 상생할 수 있도록 종교지도자들이 힘을 합칠 것”이라고 화답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수석부회장 문덕 스님도 “5천만 국민들을 아울러 나가느라 어려움이 많지만 잘 극복해 줘 감사하다”며 “우리나라의 안정적 발전과 화합을 위해 마음을 써 달라”고 당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과 관련해서는 정순택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백신 나눔을 말씀하신 이후, 서울대교구는 자발적 모금으로 교황청에 세 차례 모금액을 전달했다. 교황님은 감사 인사와 함께 한국 국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인사를 전하셨다”고 설명했다. 나상호 원불교 교정원장도 “촛불시민혁명을 기반으로 출범한 정부가 기대에 부응해 잘 운영됐다. 코로나19로 동력이 떨어지는 듯했지만 유엔이 인정하는 선진국으로 도약했고 K방역, K컬처 등의 성과도 확인했다”며 “남은 기간에도 성과를 보여 다음 정부에 좋은 기반을 물려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탄소중립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은 “탄소중립을 위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식과 생활방식이 달라져야 하는데 종교계가 큰 역할을 해줘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이 의장은 또 ▲ 장애인 지원 로드맵에서 발달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을 구분해 달라는 것 ▲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낙태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않아 입법 공백상태인 만큼 후속조치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건의했다. 문 대통령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부족하지만 공주대, 부산대 등 국립대학에 부속학교 형태로 특수학교를 착공하고 있다”며 “발달장애가 장애인법의 일부로 다루어져서 한계가 있었지만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서 사회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대화에 등장했다.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전쟁 없는 한반도를 위한 종전선언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며 “남과 북이 생명의 안전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통분모로 상호 의존성을 강화하며 보건의료 협력과 경제 협력에 나설 수 있도록 북한과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길을 열어 달라”고 당부했다. 원행 스님도 “종교 지도자들도 남북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편 일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지난해 가야산 해인사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로 지칭하고 사찰을 ‘봉이 김선달’로 비유한 뒤 불교계의 반발이 있었다는 점에서 이날 간담회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으나, 청와대 측은 “해당 주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신한금융희망재단, ‘Do the 「Green」 Thing’ 공모사업 참여 단체·기관 모집

    신한금융희망재단, ‘Do the 「Green」 Thing’ 공모사업 참여 단체·기관 모집

    신한금융희망재단이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총 10억원 규모의 지원사업을 펼친다. 신한금융희망재단은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두 더 그린 씽(Do the 「Green」 Thing)’ 공모사업에 참여할 비영리단체 및 기관을 모집한다고 10일 밝혔다. 지역사회·기업·시민사회의 협업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이 사업은 환경·복지사업 등에 관심 있는 비영리단체 및 기관을 대상으로 오는 28일까지 신청·접수를 받는다. 신한금융희망재단의 지원으로 진행되며 총 10억원이 투자된다. 지역사회에서 환경·복지사업의 다양한 경험이 있거나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비영리단체 및 기관이면 신청할 수 있으며, 시도 이상 지자체와 교육청 등과 컨소시엄이 가능해야 한다. 사업 수행 기간은 오는 3월부터 내년 2월까지 12개월간이다. 사업 특성에 따라 1개 기관당 최대 2억원 이내로 지원한다. 사랑의열매 온라인배분신청 홈페이지(proposal.chest.or.kr)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이번달 온라인설명회 개최와 다음달 사업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된 비영리단체 및 기관을 발표할 예정이다. 신한금융희망재단 관계자는 “이번 공모사업은 코로나19로 대두된 이상기후 등 다양한 환경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향후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해 지속가능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기획했다”며 “지자체와 구성한 컨소시엄을 통해 환경문제 해결 등을 위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찾고, 미래세대와 함께 지역사회 내 환경문제 해결과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활동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방역 최전방의 컵라면, 누군가는 당신을 위해 끼니를 때운다

    방역 최전방의 컵라면, 누군가는 당신을 위해 끼니를 때운다

    일상에 균열이 생겨도, 예기치 못한 일로 무너져 내려도 먹어야 삽니다. 시간이 지나 눈물 속에 먹던 음식이 ‘솔푸드’로 기억되기를, 살기 위해 억지로 먹은 밥이 일상을 되찾는 먼 훗날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를 막연히 기대하면서 오늘도 우리는 밥심으로 삽니다. 서울신문 사건팀이 밥심의 현장을 찾아 응원합니다. 가장 먼저 새해가 오는 줄도 잊은 채 끝 모를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던 중인 세밑의 서울 노원구 보건소에 갔습니다.●야근·조근 반복… 업무 끝이 안 보여 지난달 29일 겨울이라 더 춥고 캄캄한 오전 5시 50분. 노원구 보건소 간호직 공무원 김신재(38)씨는 집을 나섰다. 전날 밤 11시가 넘어 퇴근했던 그는 오전 6시 50분쯤 보건소 건물 지하1층에 꾸려진 자가격리 관리팀에 돌아왔다. 공식적인 업무시작 시간은 오전 9시이지만 야근과 조근을 끝없이 반복해도 도무지 일을 끝낼 수가 없다. 지난 11월 정부의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이 시행된 데 이어 지난달 17일엔 병원과 생활치료센터가 담당하던 코로나 무증상·경증 재택치료자 관리 업무가 보건소로 이관돼서다. 이후 보건소 역학조사반이 노원구에서 발생한 모든 자가격리대상자 명단을 엑셀 문서로 보내오면 1대1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배정하는 일이 김씨의 업무가 됐다. 격리대상자의 이름과 주소뿐 아니라 확진자와 함께 사는 가족 연락처 등 특이사항을 전달해야 하지만 누락된 정보가 많다 보니 밀접 접촉자에게 일일이 전화해 정보를 완성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새벽부터 출근한 이날도 오후 2시가 돼서야 밀린 일이 끝났다.먹는 모습 취재하겠다는 기자를 옆에 두고도 김씨는 이날 결국 점심을 걸렀다. 그의 책상 옆엔 생수병 한 통이 놓여 있었지만 오전 내내 분주했던 그는 일을 마친 뒤에야 물 한 모금으로 점심을 끝냈다. 김씨는 “원래 제가 30~40명의 정보만 정리하면 됐는데 요즘에는 그 10배의 정보를 관리한다”면서 “인원 충원이 없어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것인데 동료와 밥 한 끼 마음 놓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며 겸연쩍은 듯 웃었다. 김씨와 함께 일하던 10명 중 절반이 격무에 시달리다 휴직을 하거나 전출을 갔다. 모두 손을 내젓는 이곳을 2020년 8월 상계1동 주민센터에서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 간호사로 일하다 잠깐 파견으로 알고 왔던 김씨가 18개월째 지키고 있다. 정해진 행정업무 외에 대뜸 찾아와 소리를 지르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일까지 오롯이 김씨가 맡는다. 그를 버티게 하는 동력은 책임감, 그리고 헌신하겠다는 사명감이다. 김씨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던 어머니의 암 투병 소식을 들었을 때 지원비 안내를 해 주며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이 노원구 보건소였다”면서 “나랏일에 손 보탤 수 있고 지금의 힘든 일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곁을 함께하기에 지금을 견딜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나마 컵라면으로 버틴다 같은 날 정유지(42) 노원구 보건소 역학조사반 계장은 5층 사무실 한쪽에서 직원 몇 명과 함께 도시락을 배달시켰다. 밥 먹는 시간이라도 아껴 보고자 그리고 업무상 방역을 더 철저하게 하기에 코로나19 이후 도시락 점심이 부쩍 늘었다. 흰 쌀밥에 소불고기, 미역국이 담긴 점심 도시락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씨는 “일이 너무 몰릴 땐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들어 컵라면으로 때우거나 커피 한 잔으로 점심을 끝낸다”며 모처럼의 호사에 즐거워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체육관으로 쓰던 정씨의 일터는 책상 4개가 놓인 임시사무실이 됐다. 지금은 3개 팀의 직원 60명이 함께 일하는 거대한 사무공간이 됐다. 체육관이 보건소로 바뀌었듯이 2007년 간호직 공무원으로 임용돼 서울시립서북병원과 노원구 보건소에서 번갈아 가며 일하던 정씨의 안온한 일상도 사라졌다. 업무시간 동안은 초긴장 상태다. 정씨가 속한 역학조사반은 확진자 진술을 토대로 동선을 재구성하는데 동선이 잘 파악되지 않으면 카드 결제내역 등을 토대로 추적하는 일을 한다. 온종일 확진자와 통화하며 그들의 진술에 의존해 코로나19 기초역학조사서를 작성한다. 기초역학조사서에 성명과 주소, 연락처 같은 개인정보뿐 아니라 호흡기 증상 유무, 추정 감염경로, 집단시설 이용력, 가족(동거인) 및 집단시설 접촉자, 재택치료 의향까지 빼곡하게 기록해야 한다. 역학조사반의 전화는 가뜩이나 아프고 불안한 확진자에게 반가운 연락이 아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분노를 터뜨리는 시민이 허다하다. 한편으로 확진된 뒤 방역 당국으로부터 받는 첫 통화이니 확진자들은 궁금한 것이 많다. 가족과의 격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역학조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동선을 제대로 기억 못하면 처벌받는지까지 끝없는 질문에 답하고 주의사항을 안내한 뒤에야 기초역학조사에 필요한 정보를 물을 수 있다. 통화는 마냥 길어진다. 다 같이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던 정씨는 구두로 개인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도 줄여 보고자 직원과 함께 온라인 설문조사 양식을 만들어 확진자에게 통보 문자와 함께 전달하고 있다. 덕분에 이전보다 수기로 일일이 기입하는 양은 많이 줄었지만 설문을 다시 정리하는 일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정씨는 “질병관리청에서 개인정보를 확진자 스스로 기입하면 자동으로 시스템에 등록되는 앱을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정씨는 “코로나19 사태라는 게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쫓아가는 것일 뿐 애초에 빈틈없이 대비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모두가 처음 맞는 이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인내하며 최대한 맞춰 가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일터를 떠나 집에 도착해도 정씨에겐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아이를 돌보고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한다. 아이를 재운 뒤엔 또다시 끝내지 못한 일을 처리한다. 일과 삶의 균형은 깨졌다. 정씨는 “한 달에 주말이 8일이면 이 중 6일은 출근을 한다”면서 “코로나19 이전엔 취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일뿐…”이라며 말끝을 흐렸다.●어느새 일상이 된 도시락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집에 계셔야 하고요. 집에는 대중교통 이용하시면 안 되고 걸어가거나 택시 타고 가세요.” 파란색 방호복을 입은 구정희(43)씨는 이날 오전 9시쯤 보건소 1층 천막 아래 차린 선별진료소 앞에서 시민에게 주의사항을 안내하고 있었다. 구씨가 일하는 선별진료소는 확진자와 밀접접촉자, 해외입국자, 자가격리해제자 등 코로나19 감염 위험군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는 곳이다. 감염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곳이기에 긴장감이 더했다. 실제로 지난해 6월엔 이곳에서 일하던 20대 여성 기간제 공무원이 감염되면서 함께 일하던 기간제 공무원 전부가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2주 자가격리에 들어간 적도 있다. 이날 역시 노원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집단 확진 사례가 나와 이곳에 다니는 보육교사와 어린이들이 검사를 받고자 계속 방문했다. 검사를 받기 한참 전부터 눈물을 글썽이며 불안해하는 어린이들에게 “많이 아프지 않다”고 안심시키는 일부터 “검사를 안 받으면 안 된다”고 어르는 일을 구씨가 반복하고 있었다. 오전 9시부터 겨울바람이 매서운 야외에서 일하던 구씨는 정오가 돼서야 보건소 5층 휴게실에서 밥술을 떴다. 그는 집에서 싸 온 샐러드에 인스턴트 콘수프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곁들였다. 부실해 보이는 식사를 앞에 놓고 구씨는 “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돼서 샐러드나 과일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고 했다. 그의 도시락은 예비 고3을 둔 엄마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 같아 보였다. 구씨는 “(확진자 검사를 하는 일이) 처음에는 저도 불안했고 가족도 많이 걱정했는데 이제 무뎌졌다”면서 “오히려 제가 수시로 검사를 자주 받으니까 가족이 안심하기도 한다”고 했다. 바쁜 와중에도 딸을 위해 집에 동나지 않게 하는 과일과 샐러드를 일터로 싸 와 10대 딸과 같은 음식으로 점심을 때우던 구씨는 “공부에 열중하는 딸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제가 (집에 있느니) 밖에서 일하는 게 좋은 것 아니겠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 [나우뉴스] 청산가리보다 5배 강한 ‘이것’...중국, 독살로 골머리 앓는 이유

    [나우뉴스] 청산가리보다 5배 강한 ‘이것’...중국, 독살로 골머리 앓는 이유

    중국에서 독성이 강한 쥐약 ‘두슈창’(毒鼠强)을 음식물에 혼합해 살인을 계획한 살인 미수범이 공안에 붙잡혔다. 이 남성이 살인을 계획했던 대상은 다름 아닌 올해 2세의 친조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중국 유력매체 펑파이는 최근 산둥성 랴오청에 거주하는 두 살배기 아동샤오만 양이 누군가 건넨 사탕을 먹은 뒤 혼수상태에 빠진 독극물 중독 사건이 발생했다고 8일 이같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 샤오만 양이 증세를 보인 건 올 초 부친 만 모 씨와 함께 참석한 결혼식에서 누군가 그에게 건넨 사탕을 먹은 직후였다. 샤오만 양은 누군가 그에게 전해준 사탕을 받아든 뒤 불과 10여 분 만에 입 안 가득 거품을 뿜어내며 결혼식 피로연 현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출동한 구조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건 이후 20일째 입원 치료를 받는 상태다.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샤오만 양의 가족들은 이번 사건이 누군가 피해자 겨냥한 고의 살인 미수로 보고 관할 공안에 사건을 신고했다. 사건 수사가 시작된 지 불과 3일 만에 공안이 지목한 유력한 용의자로 샤오만의 친삼촌인 양 모 씨가 꼽혔다. 공안국 측은 유력한 용의자 양 씨가 최근 피해자 가족들과 건물 외벽 시설 공사 등을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이에 대해 악감정을 품었던 양 씨가 가족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샤오만 양을 상대로 독극물 살인을 계획했던 것으로 봤다. 사건 내용을 확인한 피해자 가족들은 “용의자로 지목된 삼촌 양 씨와 최근 사소한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하지만 그 일이 아이를 살해할 만큼의 큰 갈등은 아니었다. 독살까지 이어질 만한 일은 결단코 아니었다”면서 분개하는 분위기다. 피해자 가족들은 샤오만 양의 입원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서 상태가 호전돼 현재 재활 치료실로 옮겨진 상태라고 밝혔다. 다만 입원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가족들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10만 위안(약 1880만 원)을 넘어서는 등 진료비 부담이 심각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이 공개되자, 샤오만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랴오청 일대에서는 샤오만 양의 재활 치료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한편, 사건 보도 직후 맹독성 독약인 두슈창(毒鼠强)의 효능을 악용해 각종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등 지금껏 중국에서 끊이지 않고 있는 독살 사건이 재주목받는 분위기다. 실제로 일명 ‘두슈창’으로 불리는 독약은 중국의 중소형 마트와 약국 등에서 쥐약의 일종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극약으로 알려진 청산가리보다 그 독성이 무려 5배 이상 강한 탓에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독살 사건에 자주 등장한 약품 중 하나다. 그뿐만 아니라, 한때는 매년 중국에서 발생하는 자살자의 약 58%가 쥐약인 ‘두슈창’을 복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정도로 맹독성 독약인 두슈창으로 인한 피해는 극심했다. 실제로 지난 2000년대 초반에는 쥐약을 섞은 만두를 먹은 어린이 57명이 전원이 중태에 빠져 수사한 결과, 피의자로 지목된 남성이 유치원생과 초등생들의 음식에 ‘두슈창’을 고의로 섞어 넣은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또, 원한을 품은 한 남성이 음식물에 두슈창을 섞어 학생들에게 먹이면서 같은 반 동급생 42명이 한날한시에 모두 사망한 사건이 외부에 알려졌다. 당시 사건이 발생했던 장쑤성 난징 관할 공안국은 문제의 용의자를 적발해 즉각 사형에 처하면서 ‘극약 사건에는 극단적 사형 처분’이라는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당시 사건 이후 두슈창 등 극약 성분이 다량 포함된 독약은 중국에서 판매가 금지된 상태다. 하지만 온·오프라인 상에서 여전히 암거래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슈퍼마켓과 중소 규모의 마트에서 판매 중인 쥐약의 주성분이 ‘두슈창’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시중에서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또한, 2003년 한 해 동안 독약 ‘두슈창’으로 인한 독극물 중독 사망자가 총 153명을 기록하는 등 매년 강력한 독성을 가진 약품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사건이 잇따르는 상태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청산가리보다 5배 강한 ‘이것’...중국, 독살로 골머리 앓는 이유

    청산가리보다 5배 강한 ‘이것’...중국, 독살로 골머리 앓는 이유

    중국에서 독성이 강한 쥐약 ‘두슈창’(毒鼠强)을 음식물에 혼합해 살인을 계획한 살인 미수범이 공안에 붙잡혔다. 이 남성이 살인을 계획했던 대상은 다름 아닌 올해 2세의 친조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중국 유력매체 펑파이는 최근 산둥성 랴오청에 거주하는 두 살배기 아동샤오만 양이 누군가 건넨 사탕을 먹은 뒤 혼수상태에 빠진 독극물 중독 사건이 발생했다고 8일 이같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 샤오만 양이 증세를 보인 건 올 초 부친 만 모 씨와 함께 참석한 결혼식에서 누군가 그에게 건넨 사탕을 먹은 직후였다. 샤오만 양은 누군가 그에게 전해준 사탕을 받아든 뒤 불과 10여 분 만에 입 안 가득 거품을 뿜어내며 결혼식 피로연 현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출동한 구조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건 이후 20일째 입원 치료를 받는 상태다.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샤오만 양의 가족들은 이번 사건이 누군가 피해자 겨냥한 고의 살인 미수로 보고 관할 공안에 사건을 신고했다. 사건 수사가 시작된 지 불과 3일 만에 공안이 지목한 유력한 용의자로 샤오만의 친삼촌인 양 모 씨가 꼽혔다. 공안국 측은 유력한 용의자 양 씨가 최근 피해자 가족들과 건물 외벽 시설 공사 등을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이에 대해 악감정을 품었던 양 씨가 가족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샤오만 양을 상대로 독극물 살인을 계획했던 것으로 봤다. 사건 내용을 확인한 피해자 가족들은 “용의자로 지목된 삼촌 양 씨와 최근 사소한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하지만 그 일이 아이를 살해할 만큼의 큰 갈등은 아니었다. 독살까지 이어질 만한 일은 결단코 아니었다”면서 분개하는 분위기다.피해자 가족들은 샤오만 양의 입원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서 상태가 호전돼 현재 재활 치료실로 옮겨진 상태라고 밝혔다. 다만 입원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가족들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10만 위안(약 1880만 원)을 넘어서는 등 진료비 부담이 심각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이 공개되자, 샤오만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랴오청 일대에서는 샤오만 양의 재활 치료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한편, 사건 보도 직후 맹독성 독약인 두슈창(毒鼠强)의 효능을 악용해 각종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등 지금껏 중국에서 끊이지 않고 있는 독살 사건이 재주목받는 분위기다. 실제로 일명 ‘두슈창’으로 불리는 독약은 중국의 중소형 마트와 약국 등에서 쥐약의 일종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극약으로 알려진 청산가리보다 그 독성이 무려 5배 이상 강한 탓에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독살 사건에 자주 등장한 약품 중 하나다. 그뿐만 아니라, 한때는 매년 중국에서 발생하는 자살자의 약 58%가 쥐약인 ‘두슈창’을 복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정도로 맹독성 독약인 두슈창으로 인한 피해는 극심했다. 실제로 지난 2000년대 초반에는 쥐약을 섞은 만두를 먹은 어린이 57명이 전원이 중태에 빠져 수사한 결과, 피의자로 지목된 남성이 유치원생과 초등생들의 음식에 ‘두슈창’을 고의로 섞어 넣은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또, 원한을 품은 한 남성이 음식물에 두슈창을 섞어 학생들에게 먹이면서 같은 반 동급생 42명이 한날한시에 모두 사망한 사건이 외부에 알려졌다. 당시 사건이 발생했던 장쑤성 난징 관할 공안국은 문제의 용의자를 적발해 즉각 사형에 처하면서 ‘극약 사건에는 극단적 사형 처분’이라는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당시 사건 이후 두슈창 등 극약 성분이 다량 포함된 독약은 중국에서 판매가 금지된 상태다. 하지만 온·오프라인 상에서 여전히 암거래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슈퍼마켓과 중소 규모의 마트에서 판매 중인 쥐약의 주성분이 ‘두슈창’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시중에서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또한, 2003년 한 해 동안 독약 ‘두슈창’으로 인한 독극물 중독 사망자가 총 153명을 기록하는 등 매년 강력한 독성을 가진 약품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사건이 잇따르는 상태다. 
  • 中대학 서점 모두 사라진다...저가 복사본 판치는 중국

    中대학 서점 모두 사라진다...저가 복사본 판치는 중국

    중국 베이징대에서 긴 세월 동안 터줏대감 노릇을 했던 고서점이 폐점 위기에 처했다. 베이징대 캠퍼스에 마지막으로 남은 오프라인 서점 ‘예차오슈덴’(野草书店)이 최근 임대인의 재계약 거부를 이유로 폐점 소식을 알린 것. 최근 들어와 중국의 온라인 서점 시장의 규모 확대와 이에 따른 오프라인 서점의 경영난이 베이징대에 입점해 운영됐던 소형 서점에도 불어 닥친 것. 이 서점은 최근 공식 온라인 SNS 채널을 통해 ‘오는 25일을 마지막으로 서점이 공식 폐점할 것’이라는 입장문을 공고했다. 앞서 지난 2017년과 2020년 두 차례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으면서 폐점 위기에 처했던 서점을 재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 활동을 하며 경영 위기를 타개했던 것에 이어 세 번째 폐점 소식이다.이번에도 재학생들은 대학 서남문 인근 외곽의 지하 상점에 입점해 수십 년 동안 학생들의 학술 공간으로의 역할을 했던 ‘예차오슈덴’를 폐점을 막기 위한 활동에 나선 분위기다. 상당수 재학생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개인 SNS 계정을 통해 서점의 폐점 위기를 알리는 공고문을 공유, 서점 살리기 운동에 나선 상태다. 이번 폐점 위기와 관련해 서점 관계자는 “이번 폐점의 주요 원인이 해당 건물 임대인 측에 의한 일방적인 계약 해지에 있다”면서 “학술 서점의 생존은 단순한 시장 경제의 논리로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베이징대 재학생들이 가진 이 서점에 대한 향수는 과거 학술 서적이 부족했던 시기부터 온오프라인 통해 다수의 정보가 범람하는 최근까지 수십 년 동안 이어져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당수 학술 서적의 복사본이 온라인 유통업체를 통해 무분별하게 유통되면서 사실상 오프라인 서점이 설 곳은 마땅치 않은 상태다. 평균 30~40위안대에 판매되는 정식 학술 서적 대비 온라인 유통업체를 통해 거래되는 복사본의 경우 배송비 포함 10위안 대에 구매할 수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 마저도 최근에는 중국 포털 사이트와 SNS에서 복사된 PDF 파일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중국의 내로라하는 유수의 대학 내 학술 서점의 폐점 위기는 지난 2020년 상하이 소재의 명문대 푸단대학 내의 대표적인 학술 서점인 ‘슈에런슈덴’(学人书店)이 폐점 위기에 처하면서 또 한 번 논란이 된 바 있다. 문제가 되자, 당시 중국 교육부는 일명 ‘대학 캠퍼스 내 학술서점 개발 및 지원을 위한 지도 의견’을 공고, 각 대학 측이 최소 한 곳 이상의 학술 서점을 운영하고 매년 한 권 이상의 자체적인 학술 서적을 출간하도록 했다.이는 당시 베이징대 내의 세 곳의 서점이 잇따라 폐점 소식을 알리면서 강구된 자구책이었다. 해당 정책 발표 이후 각 대학 측은 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의 직접적인 관리 감독 하에 오프라인 학술 서점의 임대료와 전기료 등의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중국 당국은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자본을 동원, 학술 서점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대학 내 오프라인 서점과 도서관, 출판사와 물류 서비스의 상호 작용을 촉진토록 했다. 또, 대학 교내 출판사는 각자 독자적인 교재 개발 및 출간을 극대화 해 사범 범위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캠퍼스 내의 학술 서점의 운영비 지원 방안을 모색하도록 강조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 당국의 대규모 지원책이 약속된 이후에도 지금껏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곳은 현재 폐점 소식을 알린 ‘예차오슈덴’이 유일했다. 문제는 이곳 역시 오는 25일을 끝으로 폐점을 알린 것. 현재 서점 측은 이미 기존의 간판을 내리고, 다수의 서적을 할인해 판매하는 등 사실상 폐점 수순을 걷고 있는 상태다. 특히 이번 ‘예차오슈텐’의 폐점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실상 각 대학 내 오프라인 학술 서점 살리기 정책이 사실상 실패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이재명 후보, 새해 맞아 NFT 발행…경매 수익금은 기부

    이재명 후보, 새해 맞아 NFT 발행…경매 수익금은 기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선대위가 새해를 맞아 디지털 자산 NFT(대체 불가 토큰)을 발행한다. 발행된 NFT는 경매 플랫폼에서 판매되고, 수익금 전액은 기부한다. 6일 디지털 혁신 대전환위원회에 따르면 7일부터 9일까지 세계 최대의 NFT 시장인 오픈씨(OpenSea)에서 경매를 진행한다. 경매에 붙여진 NFT는 ‘오직 민생을 위해 일하겠다’라는 새해 다짐과 각오를 알리면서 이 후보가 친필로 작성한 메시지와 서명를 이미지화해서 발행된다. 경매수익금 전액은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에 기부돼 아동학대, 결식아동을 위한 사업에 사용된다. NFT(Non-Fungible Token)는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뜻으로,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을 대표하는 토큰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지만, 기존 가상자산과 달리 디지털 자산에 별도의 고유한 인식값을 부여하고 있어 상호 교환이 불가능하다. 박영선 위원장은 미래경제위원회 이광재 위원장과 7일 컴투스를 방문해 NFT 게임을 포함한 블록체인 산업 활성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이 후보는 “NFT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산업의 한 축이기 때문에 외면할 게 아니라 적극 활용하고 하나의 산업으로 받아들여서 기회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전 세계 시장에서 가상자산이 활용되고 있는 만큼 우리가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많을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민영 기자
  • LG에너지솔루션 최대 12조 공모… 야, 너두 해볼래?

    LG에너지솔루션 최대 12조 공모… 야, 너두 해볼래?

    올해 1월부터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이 뜨거울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기업들은 연내에 상장 일정을 마무리하려고 하기 때문에 1월은 상대적으로 IPO 비수기에 속했다. 그러나 올해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IPO’로 일컬어지는 LG에너지솔루션을 필두로 연초부터 중소형 공모주들이 대거 출격을 예고하고 나선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낙수효과를 일으켜 IPO 시장의 전반적인 활황을 이끌어 갈지 혹은 투자 대기자금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지를 두고 벌써부터 관심이 모인다. 5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 공모 청약을 진행하는 기업은 모두 8곳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기업은 LG화학이 전지사업파트를 물적 분할해 설립한 LG에너지솔루션이다. 오는 27일 코스피 상장을 앞두고 11~12일 기관투자가 수요예측을 거쳐 공모가를 확정하고 18~19일 일반투자자 청약을 받는 일정이다.LG에너지솔루션의 공모 금액은 최소 10조 9225억원에서 최대 12조 7500억원이다. 종전 최대 공모 기록인 삼성생명(4조 8881억원)의 두 배를 뛰어넘는 규모다. LG에너지솔루션이 제시한 희망 공모가 25만 7000~30만원 기준 예상 시가총액은 60조 1000억~70조 2000억원에 달한다. 공모가 기준 유가증권 시총 3위로 단숨에 뛰어들게 되는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벌써부터 상장 후 시총이 10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럴 경우 SK하이닉스를 제치고 시총 2위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중소형 공모주들의 경우 ‘큰 형님’(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공개 일정을 피해 IPO에 나선다. 자동차용품 업체 오토앤의 경우 5~6일 기관투자가 수요예측을 거쳐 오는 11~12일 일반투자자 대상으로 청약을 받는다. 2012년 현대차그룹에서 분사한 오토앤은 상장 후 종합 차량관리 플랫폼인 ‘모카’를 출시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공모가 범위는 4200~4800원, 공모금액은 121억~138억원이다. 뒤를 잇는 케이옥션은 6~7일 기관투자가 수요예측, 오는 12~13일 일반투자자 대상 청약이 각각 예정돼 있다. 코스닥 상장 예정일은 오는 24일이다. 케이옥션은 서울옥션에 이어 미술품 경매업계 2위인 기업이다. 최근 미술 경매시장의 인기와 NFT(대체불가능토큰)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맞물리며 서울옥션의 주가가 지난 한 해만 359%나 급등하는 등 재평가를 받으면서 케이옥션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비슷한 일정으로 계란 난황에 축적된 항체를 재료로 천연 치료제를 만드는 동물의약품 전문회사 애드바이오텍도 6일 수요예측, 오는 13~14일 일반투자자 청약을 거쳐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또 LG에너지솔루션 청약 직후에는 국내외 증시의 ‘뜨거운 감자’ 메타버스 기술업체인 스코넥엔터테인먼트와 전기차 부품업체 이지트로닉스의 청약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 밖에도 올해 IPO 시장의 또 다른 대어로 주목받고 있는 현대건설의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이 다음달 15일 상장을 앞두고 오는 25~26일 기관투자가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의 공모가는 5만 7900~7만 5700원, 공모 규모는 9264억~1조 2112억원이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이 IPO 시장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시장에서는 워낙 대규모 기업공개인 만큼 증시 대기자금을 모두 빨아들여 이번달 다른 IPO기업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IPO 시장 전반에 대한 관심도를 끌어올려 활황에 기여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 文, 윤미향 빼고 “수요집회 30년 함께한 분들 감사”

    文, 윤미향 빼고 “수요집회 30년 함께한 분들 감사”

    文 “용기 내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알렸다”정의연 이사장 출신 윤미향 언급은 안 해2020년 檢, 횡령·사기 등 혐의로 尹 기소문재인 대통령이 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개최 30주년을 맞아 “오랜 기간 함께해주신 분들의 고생이 많으셨다”며 그간 수요시위에 동참한 각계각층 인사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한동안 수요 집회를 이끌어왔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출신인 윤미향 무소속 의원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용기를 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1525차 집회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함께해주신 분들의 고생이 많으셨다”며 고마움을 표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회원 30여명이 같은 날 정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연 이후 매주 수요일마다 개최됐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지속해서 ‘피해자 중심의 문제 해결’이라는 원칙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의지를 강조해 왔다. 외교부도 이날 공식 트위터에 “30여년 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 증언으로 시작된 위안부 운동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정부는 피해자분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가능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글을 올렸다.청와대는 수요시위에 함께한 이들에게 사의를 밝힌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기억연대 전신) 보조금·후원금 유용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미향 의원은 언급하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고생이 많았다고 한 대상에 윤 의원도 포함되는가’라는 물음에 “(수요시위에) 어린 학생부터 다양한 각계 각층의 국민이 참석하셨다”며 즉답을 피했다. 윤 의원은 2020년 4·15 총선에서 정의연에서 활동했던 공적 등을 인정 받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윤 의원에게 “기부금 내역을 밝히라”며 폭로 기자회견을 열어 큰 논란을 겪기도 했다.  윤 의원은 2020년 정의연 회계부정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당적을 지켰으나,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여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했던 부동산 의혹 전수조사 당시 투기 의혹이 불거져 출당 당해 무소속 의원이 됐다.檢 “尹, 치매 앓는 길할머니 상금7920만원 정의연 기부는 준사기” 2020년 9월 윤 의원은 사기·준사기·업무상횡령 등 6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윤 의원이 치매를 앓고 있는 길원옥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할머니의 여성인권상 등 상금 중 7920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하게 한 것은 준사기라고 봤다. 서울서부지검은 앞서 윤 의원을 정대협 기부금 중 1억 35만원을 횡령하고, 치매를 앓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그들의 돈을 기부·증여하게 하는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윤 의원에게 적용한 혐의는 총 6개다. 부정한 방법으로 국고와 지방 보조금을 교부받아 편취한 혐의, 무등록 기부금품 모집 혐의, 개인계좌로 모금한 기부금과 단체 자금을 유용한 혐의, 치매 상태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돈을 기부하게 한 행위, 위안부 할머니 쉼터로 사용할 주택을 비싸게 사들여 정대협에 손해를 끼친 혐의, 위안부 할머니 쉼터를 미신고 숙박업에 이용한 혐의 등이다. 윤 의원이 정대협 보조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검찰이 확인한 금액은 총 1억 35만원이다. 검찰에 따르면 윤 의원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조의금, 해외여행 경비 등을 5개의 개인 계좌로 모금해 이중 5755만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 정대협 경상비 등 법인 계좌에서 2098만원, 마포쉼터 운영 비용에서 2182만원도 윤 의원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국회윤리심사자문위, 윤미향·이상직·박덕흠 제명 건의  한편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이날 회의를 열어 윤 의원과 이상직 무소속 의원,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의원직 제명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윤리특위)에 건의하기로 했다. 자문위 관계자는 언론에 “회의에서 윤미향 이상직 박덕흠 의원에 대한 의원직 제명을 의결했다”면서 “제명 이유와 관련해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제명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과거 정대협에 손해를 가했다는 의혹이 문제가 됐다. 이 의원은 자녀가 소유한 이스타홀딩스 비상장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 신탁하지 않았다는 의혹, 15개월 만에 복당한 박 의원은 가족 회사가 피감기관으로부터 수주계약을 맺을 수 있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 징계안이 발의됐다. 앞서 윤리특위는 지난해 11월 11일 이들에 대한 징계요구안을 상정한 뒤 자문위로 회부했다. 특위 징계안은 본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그러나 그간 의원들에 대한 특위 징계가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점에서 이들의 의원직 제명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윤리특위는 지난 18대 국회 때 아나운서 비하 발언을 한 강용석 전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의원직 제명’을 이례적으로 결정했으나 본회의에서 부결됐고, ‘30일간 국회 출석 정지’로 징계수위는 대폭 낮아졌다.
  • “많은 돈은 아니지만…” 돼지 저금통 형제에 미소가 절로

    “많은 돈은 아니지만…” 돼지 저금통 형제에 미소가 절로

    “저희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많은 돈은 아니지만 좋은 곳에 써 주세요” 지난달 30일 오후 4시쯤 충남 공주경찰서 금학지구대 현관 앞에 종이가방 하나가 배달됐다. 남자 초등학생 두 명이 들고 온 종이가방 안에는 돼지 저금통 3개와 손편지 2통이 들어 있었다. 저금통에는 동전과 지폐를 합쳐 100만 8430원이 담겨 있었다. 편지에는 “게임기를 사려고 모은 돈인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 달라. 많은 돈은 아니지만, 저희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부탁의 글과 “경찰관 아저씨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인사가 연필로 꾹꾹 새겨 있었다. 종이가방을 처음 본 것은 윤여선(37) 순경이다. 윤 순경과 직원들은 가방을 놓고 간 주인공을 확인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영상에 담긴 두 소년은 종이가방 손잡이를 한쪽씩 나눠 잡고 지구대 앞마당으로 들어섰다.소년들은 지구대 출입문을 여는가 싶더니, 이내 종이가방만 놓고 황급히 뛰어간다. 안에서 이들을 본 경찰관이 곧장 따라 나오지만, 소년들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눈 쌓인 파출소 앞마당에는 이들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윤여선 순경은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눈 오는 날이었다. 초등학생 두 명이 무거운 물건을 들고 오는 걸 보고, 문을 열어주기 위해 나갔다”면서 “그런데 학생들이 종이가방만 두고 달려갔다. 제가 쫓아갔는데,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고 말했다.  1년차 새내기 경찰인 윤 순경은 “학생들을 보고, 제가 초임 때 마음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저희 직원들도 다 같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다”며 “앞으로 아이들이 지금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경찰관들은 저금통 겉면에 적힌 이름을 보고, 인근 초등학교를 수소문한 끝에 학생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들은 공주교동초등학교에 다니는 오경민(12, 5학년)·오누리(10, 3학년) 형제였다. 두 학생은 평소에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다양한 실천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이들 부모와 통화한 신창현(58) 금학지구대장(경감)은 “형제는 매년 저금통에 돈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번에도 기부할 곳을 찾던 중 경찰서에 가져다주면, 경찰관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신 대장은 “코로나19로 모든 사람이 어려운 시기다. 이 일을 계기로 모든 사람이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우리 모두 어려운 사람들을 조금씩 도와준다면 세상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공주경찰서는 형제가 전달한 기부금과 금학지구대 직원들이 1년간 모은 돈을 보태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또한, 초등학생들의 방학이 끝나는 2월 16일 이후 두 학생에게 표창장을 줄 계획이다.
  • “게임기 안 사고 기부할게요” 저금통 꽉 채운 형제의 마음

    “게임기 안 사고 기부할게요” 저금통 꽉 채운 형제의 마음

    “게임기를 사려고 모았는데, 저희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조금밖에 안 돼요.”지난달 30일 오후 4시 10분쯤 충남 공주경찰서 금학지구대에 남자 어린이 두 명이 종이가방 손잡이를 한쪽씩 들고 다가와 문 앞에 놓고 사라졌다. 지구대에 근무하는 윤여선(37) 순경은 4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지구대 안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린이 두 명이 종이가방을 문 앞에 놓길래 나가 보니 눈이 펑펑 쏟아지는 길을 멀리 뛰어가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었다”고 했다. 당시 공주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 윤 순경은 “가방 안을 보니 빨강·핑크·파랑색 돼지저금통 세 개와 함께 연필로 쓴 손편지 두 장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저금통에는 모두 100만 8430원이 있었다. 핑크색 저금통에는 500원짜리 동전이 가득차 있었지만, 다른 두 저금통에는 5만원권 지폐 등이 꼬깃꼬깃 채워진 상태였다. 편지에는 이웃에게 건네 달라는 내용과 ‘경찰 아저씨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글만 있을 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윤 순경은 “익명으로 기부하고 싶은 마음을 알았지만, 돼지저금통에 이름이 붙어 있어 신원을 확인했다”고 했다. 인근 교동초교에 다니는 오경민(12·5학년)·누리(10·3학년) 형제였다. 형제가 1년간 꼬박꼬박 모은 돈을 게임기 대신 이웃돕기에 내놓은 것이다. 공주경찰서는 형제의 돈에 금학지구대 직원들이 십시일반 보탠 현금을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마음이 천사처럼 고와 세밑이 훈훈했다. 개학하면 서장 표창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 [월드피플+] “아들 손 잡아주려” …두려움 무릅쓰고 양손 이식한 英 엄마

    [월드피플+] “아들 손 잡아주려” …두려움 무릅쓰고 양손 이식한 英 엄마

    영국 여성 코린 허튼(51)은 2주에 한 번 관리실을 찾아 손톱을 치장한다. 손톱 미용에 정기적으로 돈을 들이는 게 언뜻 사치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허튼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다. 3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허튼은 2013년 갑작스러운 패혈증으로 손과 다리를 모두 잃었다. 졸지에 사지절단환자가 된 후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신경과 근육 신호를 감지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생체공학 의수를 썼지만 혼자서는 신발 끈을 묶을 수도, 이혼 후 홀로 키우던 4살 아들 손을 잡을 수도 없었다.허튼은 “예전엔 몰랐는데 밀고 당기고, 여닫고, 비틀어야 할 버튼과 지퍼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특히 어린 아들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어줄 수 없는 게 제일 속상했다”고 설명했다. 이듬해, 허튼은 영국 이식수술 권위자 사이먼 케이 교수를 찾아갔다. 허튼은 최소한 아들 손은 잡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며 수술을 부탁했다. 의사는 1년에 걸쳐 허튼의 심리상태를 검증한 끝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줬다. 하지만 실제 수술까지는 5년을 기다려야 했다. 성별과 피부색, 손 크기까지 여러 조건에 부합하는 기증자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튼이 패혈증 치료를 위해 25번의 수혈을 한 것도 걸림돌이었다. 몸 안에 여러 사람의 혈액이 뒤섞여 있어 항원항체 검사에서 면역 거부 반응이 나올 확률이 높았다.허튼이 수술 후 상태를 받아들일 만큼 정신력이 강하다는 것도 재차 증명해야 했다. 수술을 담당한 의사는 “손발 이식은 장기 이식과 다르다. 신장이나 심장 등 장기는 몸 안에 있지만, 손과 발은 매일 환자 눈에 보인다. 이식 후 거부 반응을 줄이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하지만 수여자가 심리적으로 손을 거부할 수 있다. 상황에 대처할 만큼 강한 정신력이 필수다”라고 설명했다. 허튼은 “아들 손을 잡아줄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며 정신 훈련에 매진했다. 의족을 신고 킬리만자로를 등정하는 등 수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수술대에 올랐다. 허튼은 2019년 1월 양손 이식 수술을 받고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새 손을 얻었다. 수술에는 의사 8명과 그 외 의료진 20명이 투입됐다. 티타늄 나사로 뼈끼리 고정한 후 10개의 큰 신경 줄기를 교체하고 힘줄과 혈관을 이어붙이는 데 12시간이 걸렸다.수술이 끝은 아니었다. 새 손을 얻고 1년 동안 허튼은 매일같이 적응 훈련을 했다. 그는 “새끼손가락을 베였는데 실제 느낌은 검지손가락이 다친 것 같았다. 감각 지연 현상도 있었다. 뭘 만지면 어떤 느낌인지 잠시 멈추고 생각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손가락을 움직이며 새 손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수술 후 2년이 흐른 지금, 허튼은 놀랄 만큼 새 손에 완벽히 적응했다. 양손 운동성과 민감도도 오른손 95%, 왼손 75%까지 높아졌다. 최대 75% 목표를 뛰어넘었다. 그는 “지난달 내 손으로 비닐 팩을 찢었다.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라고 자랑스러워했다. 허튼은 또 손톱 미용을 위해 2주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관리실을 찾고 있다. 그는 “손톱 치장을 하며 기증자를 잊지 않으려 늘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허튼은 기증자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자선단체도 세웠다. 암벽등반 등을 통한 모금 운동으로 비슷한 처지 장애인을 돕고 있다. 허튼은 “기증자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제 아들이 내 손 잡는 걸 덜 어려워한다”고 기쁨을 드러냈다.
  • “게임기 살 돈, 어려운 분들 도와주세요”…1년간 모은 돈 기부한 어린 형제

    “게임기 살 돈, 어려운 분들 도와주세요”…1년간 모은 돈 기부한 어린 형제

    한 초등학생 형제가 게임기를 사려고 1년간 한푼 두푼 모은 돈을 “더 좋은 일에 써달라”며 몰래 경찰 지구대에 놓고 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주변을 흐뭇하게 하고 있다. 4일 충남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충남 공주 금학지구대에 어린이 2명이 종이가방 손잡이를 한쪽씩 들고 찾아와 현관 앞에 두고는 콩콩 뛰어 돌아갔다. 그날은 대설주의보가 발효될 정도로 이 지역 곳곳에 흰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당시 근무 중이었던 윤여선 순경이 아이들이 뭔가를 두고 가는 것을 발견하고선 밖으로 나와 종이가방 안을 살펴봤더니 빨강·파랑·분홍색 복돼지 저금통 3개가 들어 있었다.이미 아이들은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돼지저금통 옆에는 ‘게임기를 사려고 모은 돈인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는 내용의 손편지 2장도 있었다. 아이들은 편지에 “조금밖에 안 돼요. 그래도 어려운 사람 도와주세요. 경찰 아저씨 감기 조심하세요”라고도 썼다.편지에 아이들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저금통들에 들어 있던 돈은 총 100만 8430원. 말 그대로 10원 동전까지 한푼 두푼 모은 돈이었다. 보통의 성인에게도 적지 않은 돈을 두 어린이가 1년간 아끼고 아껴 모은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게임기를 사려고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았을 텐데, 세밑에 선뜻 두고 간 마음 씀씀이가 천사처럼 너무 곱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공주경찰서는 이 현금에 금학지구대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을 보태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또 초등학생 형제로 확인된 이 어린이들에게 표창도 할 계획이다.
  • [월드피플+] “영웅” 아기 밀어내고 대신 트럭에 치인 美 보모…안타까운 죽음

    [월드피플+] “영웅” 아기 밀어내고 대신 트럭에 치인 美 보모…안타까운 죽음

    한 살 아기를 밀어내고 대신 트럭에 치인 미국 보모가 끝내 숨을 거뒀다. 1일(이하 현지시간) 뉴욕데일리뉴스는 교통사고 순간 돌보던 아기를 살리고 대신 차에 치인 보모가 2021년 마지막 날 결국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보모 아르첼리 머셤프(52)가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트럭에 치이는 사고 이후 10여 일 만이었다. 숨진 보모는 지난달 20일 브루클린 파크 슬로프 지역에서 돌보던 아기를 구하고 대신 차에 치였다. 맞은편 트럭이 덮쳐오자 몸을 피하는 대신 유모차를 밀어내 아기를 살렸다. 아기의 부모는 “아들은 다친 데가 하나도 없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목격자에 따르면 보고는 트럭이 다가오자 유모차를 밀어내 아기를 구하고 대신 차에 치였다. 사람들은 보모 덕에 아기가 죽음을 면했다고 입을 모았다”라고 설명했다.보모는 인구 40만 명의 중남미 작은 국가 벨리즈 출신 이민자였다. 생계를 위해 보모 일에 뛰어들었지만,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보모의 딸은 “어머니는 아이를 무척 좋아하셨다. 최근 어머니 휴대전화를 살펴봤는데 사진첩에 절반 이상이 돌보는 아이들 사진이었다”라고 밝혔다. 보모의 가족도, 아기 부모도 위독한 상태로 병원에 옮겨진 보모가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보모를 위한 모금 활동도 전개했다. 하지만 치료 목적으로 유도된 혼수상태에 있던 보모는 2022년 새해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끝내 숨을 거뒀다. 유가족은 고인이 생전 누구보다 이타적인 사람이었다고 슬픔을 드러냈다. 아기 부모도 “보모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한 행동은 한 살 된 우리 아들을 살리는 것이었다”면서 “보모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아들을 최선을 다해 키울 것이며, 숨진 보모를 영원히 아들의 수호천사로 기억할 것이다”라고 애도를 표했다.척 슈머 뉴욕주 상원의원 역시 “그는 영웅이다. 용감했고, 사심 없이 자신이 돌보던 한 아이의 목숨을 구했다”고 조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각종 ‘교통폭력’에서 도시를 안전하게 지키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한편 사고를 낸 68세 트럭 운전사가 기소됐는지는 불분명하다. 현지 경찰은 언론에 “아직 수사 중”이라는 답변을 내놓은 상태다. 유가족은 “모두가 정의를 원한다”면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 [2022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몸의 기억으로 ‘나 사는 곳’을 발견해가는 언어-신미나론/염선옥

    1. 몸의 기억에 부여되는 리얼리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쩌면 예술이 끝자락에 도달해 있고 이제 “규정 불가능성”(하이데거)에 빠진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현대는 예술 과잉의 시대이자 ‘무(無)예술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는 헤겔이 비유한 것처럼, 이제는 예술이 인간의 비대해진 욕망을 더는 채워 줄 수 없다는 “예술의 종언”을 증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쓰고 읽는 시 또한 예외가 아니다. 현대성과 서정성이 미학적으로 반목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은 이분법적 폐쇄성이 낳은 관념적 산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시의 속성을 탈(脫)서정성에 두려는 해체적 사유는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현대성과 서정성은 대척적 개념이 아니라 수많은 접점을 만들어 가면서 새로운 시의 차원으로 수렴되어 가는 것이라는 앙투안 콩파뇽의 ‘현대적 전통’론은 여전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신미나에게 ‘시’는 현대성과 서정성이 만나면서 발원하는 예술적 실체로서 그녀의 시는 현대인에게 예술의 존재를 아직도 따뜻하게 건네는 악수로 은유될 수 있을 것이다. C.S. 루이스는 ‘오독’(1961)이라는 비평집에서 현대는 삶과 예술이 혼동되며 시인과 대중이 서로 예술을 다르게 이해하는 시대라고 갈파한 바 있다. 또한 이성복은 ‘불화하는 말들’(2015)이라는 시론집에서 시인들에게 세상과 불화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만큼 적지 않은 논자들이 현대시가 세계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예술과 세계가 불화하는 시대에 신미나는 점점 멀어져 가는 경험과 언어 사이의 거리를 좁히면서 그것을 통합하려고 한다. 본래 시가 노래와 춤이라는 몸의 기억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실된 아우라(Aura)를 여전히 기억해야 할 미학적 흔적으로 보고 이를 재포착함으로써 삶과 분리된 예술을 통합하려는 것이다. 신미나의 시에서 우리는 현대인의 닫힌 기억들이 열린 기대 속에서 각인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녀에게 몸의 기억은, 비록 하찮고 순간적으로 꺼질 미광(微光) 같은 것일지라도, 수없는 리얼리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고리에 실 묶고 방문을 닫는 찰나 번쩍 세상이 온다 아가, 세상이 어찌 보이냐 할아버지 어린 나를 무등 태우고 뒤돌아서서 지붕 위로 어금니 던진다 까치가 어금니 물고 간 곡선으로 내 젖무덤은 부풀어 올라 백내장 걸린 할아버지 중얼거리시데 저 봐라, 상갓집에서 혼 빠진다 - ‘산 너머’ 전문 시의 화자는 어린 시절 이를 뽑던 기억, 할아버지 무등을 타던 기억을 떠올린다. “문고리에 실 묶고 방문을 닫는 찰나 번쩍 세상이 온다”는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각을 부여한다. 할아버지가 무등 태우며 ‘헌니 줄게 새 이 다오’를 노래하던 순간은 온몸으로부터 분출되고 온몸으로 수렴되는 발화의 기억을 남긴다. 신미나의 시에 그려진 화자의 경험과 기억은 독자의 마음을 열어 주면서 무등 탔던 기억, 실에 묶어 이를 던졌던 기억, 미신과도 같이 헌 이를 주면 새 이를 물어다 준다고 노래했던 기억에 생생한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이렇듯 몸의 기억에 리얼리티를 부여한 결과 그녀의 시는 많은 이들에게 오래된 정동적 연결망을 제공하게 된다. 신미나는 수많은 시편을 통해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이마’) 기억, “어린 조약돌 몇 개 씻어 주머니에 넣고”(‘첫사랑’) 다니던 기억, “눈밭에 노란 오줌 구멍을 내”(‘연’)던 기억, “방바닥에 엎드려 글씨를” 쓰다 “공책 뒷장에 눌러쓴 자국이 점자처럼 새겨졌”던 기억(‘받아쓰기’), “생쌀을 씹는 버릇”(‘윤달’)의 기억을 소환한다. 이러한 섬세한 기억들이 귀환하는 방식은, 기록되지 못한 채 떠돌지라도, 시인으로 하여금 창의적 감각과 초월적 사유를 거느리게끔 해 준다. 이를 통해 시인은 현대인이 가진 몸의 기억을 순간적으로 각성시키면서 파편화된 체험을 끌어들이는 놀라운 통합의 힘을 발휘한다. 2. 신화와 샤먼적 요소 신미나는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공동체적 감각이 묻혀 있는 시대를 향하는 시인이다. 기억의 바닥에 있는 시대의 경험과 그것에 얽힌 삶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전체를 통해 얻어지는 질서의 틀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신미나의 기억은 할머니의 삶과 함께 빈번하게 드러나는데, 화자의 삶은 할머니에 의해 ‘명랑’을 되찾고 있으며 “오랜만에 찾아온 할머니가 장사치로 떠도는 게”(‘마고 2’) 싫을 정도로 화자의 고백에는 할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숨쉬고 있다. ‘마고 할멈’은 시인에게 삶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죽음을 애도하며 견뎌 애써 살게끔 해 주는 상징이다. 기억 속의 할머니는 시인의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이고, 시인은 자신의 경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할머니의 삶과 기억을 끌어들여 샤먼적 요소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처럼 그녀의 시에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낡은 것으로 치부되기 쉬운 농경적 삶의 방식이 생생하게 보전되어 있다. 과학기술 사회에서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묻혀 버린 옛것을 꺼내와 그것이 가져다준 진정한 메시지를 독자와 교환한다. 삶을 위로하던 공감 요소인 신화가 불려올 때 그녀의 시에서는 샤먼의 배치 과정이 필연적으로 중요하게 개입하게 된다. 사실 신미나의 시에는 무속 체험과 감각이 빈번하게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첫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2014)와 제2시집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2021)에서 신화나 샤먼의 체험을 두루 끌어들이고 있다. 그녀에게 신화나 샤먼적 요소는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과 기억의 산물이다. 신화와 샤먼적 요소는 “뜻 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처럼 “먼 데서 음악 소리가 들”(‘어디 먼 데서 음악 소리가 들리고’)리는 기억에 담겨 있는데, 이는 “너무 많은 무늬를 몸에 새긴” 것 같아 끝없이 되풀이된다. 그것들은 자아를 지탱하는 배경과 같으며 이러한 사례는 그녀의 시 전체에 걸쳐 배치되어 있다. “지푸라기인형”(‘마고 2’, ‘백일몽’)과 “헝겊인형”(‘묘의 함’), “종이인형”(‘묘의 함’,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거울’)은 무(巫)와 관련을 두고 있으며, 탱화나 “천년을 물속에 살아야 사람으로 환생한다는 물가”(‘백일몽’) 이야기, “때리면 정신 든다는 무당 말”(‘불티’)에 “아비가 대나무 뿌리로 아들을 때”리는 주술성이라든가 “몸을 얻으려면 새 옷을 입어야”(‘홍합처럼 까맣게 다문 밤의 틈을 벌려라’) 하는 샤먼적 상상, 저승으로 떠나게 될 아기들이 가여워 제명과 맞바꿔 아기들을 살린다는 ‘마고’ 신화까지, 그녀는 수많은 샤먼적 요소를 활용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과학적 시선에 의해 지배되는 현대에 샤먼과 신화적 요소는 리얼리티를 감쇄시킬 수도 있을 법한데, 신미나의 시에서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독특한 형태로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겪은 기억을 중심으로 인문적 사유가 제거된 과학기술의 공허함과 허황된 논리를 비판하면서 그 빈 곳에 신화와 샤먼을 채워 넣는 것이다. 묘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 헝겊 인형이 대신 말을 한다 오색 종이로 만든 가마에 고깔모자를 쓰고 묘는 검정으로부터 왔다 묘의 주머니는 작고 이따금 탄내가 난다 주머니 속에는 타다 만 볍씨가 있다 묘의 상자 속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가 있고 정글짐 꼭대기의 해가 타고 있다 - ‘묘의 함(函)’ 전문 ‘묘’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로서 “헝겊 인형이 대신 말을” 하고 “오색 종이로 만든 가마에 고깔모자를 쓰고 묘는 검정으로부터” 온 존재이다. 종이 가마에 고깔모자를 쓴 검정으로부터 태어난 ‘묘’는 제의를 치르는 무당 같은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묘의 상자 안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가 있”다. 바로 이는 접신과 빙의된 샤먼의 모습이다. ‘종이 인형’을 한 묘의 상자 안에는 타인의 삶이 담겨 있는데 거기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도 있다. 시인이 은유하는 것은 시대의 종말과 위기에 있지 않다. 다만 그녀는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이라고 믿어 왔던 인간의 존재방식에 균열을 낼 뿐이다. 기술 발전과 합리성이 채워 주지 못하는 소외와 불안을 ‘무속’ 모티프를 통해 진단하고 ‘해원’이라는 처방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할머니가 장사치로 떠도는 게 싫어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냈더니 이고 있던 채반을 내려놓고 갔다 채반 위에 팥 한 알 또렷이 남았다 다음날엔 보따리를 두고 갔다 매듭을 풀어보니 지푸라기 인형이 나왔다 겨드랑이에 손을 끼우고 일으켜 세워도 자꾸만 목이 꺾였다 배를 갈라보니 노란 것이 반짝 했다 금니였다 할머니의 등에 새긴 문신은 쟁기, 방패 귀갑 귀갑, 쟁기, 방패 마작처럼 패를 뒤집어 얼굴이 자도르르 돌아간다 쟁기, 방패, 귀갑 귀갑, 쟁기, 쟁기 눈, 코, 잎을 갈아 끼운다 높고 슬픈 노래를 물려주려고 잠들면 가만 코에 손가락을 대본다 할머니는 피가 너무 환해서 인간의 잠을 자지 못한다 - ‘마고 2’ 전문 장사치로 떠도는 할머니가 등장하자 화자는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낸다. 이는 가난한 할머니의 고통이 새겨 넣은 상처를 마주하는 화자의 고통을 암시한다. 종종 가난으로 얼룩진 기억은 삭제되거나 묻히는데, 시인은 할머니의 기억을 아프게 되살려 고통과 가난을 마주하는 순간을 불러낸다. 할머니는 보따리를 두고 갔지만 그 매듭을 풀어 보니 지푸라기 인형이 그 안에서 나온다. 아무리 일으켜 세우려고 해도 자꾸 목이 꺾이기만 하는 인형의 배를 갈라 보니 노란 금니가 반짝이고 있다. 지푸라기 인형이라는 샤먼적 요소를 통해 할머니와 접신하는 경험은 신비롭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신화와 샤먼적 요소를 통해 추억으로 남은 것이다. 할머니에게 들었던 신화를 통해 다시 할머니를 만난 것이다. 할머니의 등장이 어린 손녀가 겪어 갈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전개는 신화의 이미지를 거느리는데 “배를 갈라보니” 노란 금니가 나온다는 신화는 작품에 이러한 환상성을 부여하고 있다. 붉은 구슬을 입에 물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흰 천을 배로 가르며 할머니가 나왔 습니다 천수관음은 천개의 손으로 슬픔을 어루만진다는데 손이 천개면 세상의 눈물을 닦을 수 있습니까 뜨거워서 그래, 아가 어쩌다 네 마음에 명랑을 잃었니? 할머니는 천수(泉水)를 한 모금 머금고 내 입에 흘려 열을 식혀 주었습니다 봄에 난 콩 싹처럼 웃어보라, 해를 피하지 않는 해바라기처럼 용감해라, 물 만난 오리처럼 신나게 욕해보라, 비 온 뒤 제비처럼 까불어라, 분수처럼 솟구쳐라, 쪼개고 쑤시고 부러뜨려라, 톱날의 요철과 같이 벌떼처럼 화를 내라, 연기처럼 곧게 서라, 백합처럼 기도하고, 뛰고 달리고 돌아서서 안고 뱉고 찢고 발 굴러라 할머니는 겹겹의 모란 치마로 나를 폭 싸서 공중에 띄웠습니다 키질하듯이 위아래로 까부르니 몸이 아기만큼 작아져 배꼽이 간지럽고 이히히 웃음이 났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말을 배우기 전 아기들만 아는 우스운 재미로 슬픔을 걷어가려 한 것인데 오랜만에 웃은 게 세상에 없는 일인 걸 알고 섭섭해서 눈을 감았습니다 - ‘탱화 3’ 전문 화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흰 천을 배로 가르며 할머니가 오셨다는 것은 시인에게 강림하는 샤먼적 순간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명랑을 잃은” 화자에게 할머니는 “천수(泉水)를 한 모금 머금고” 입에 흘려 열을 식혀 주었다. 이러한 발화를 통해 할머니의 존재는 화자에게 한 차원 더 명확해진다. 할머니는 “…웃어보라, …용감해라, …욕해보라, …까불어라, …솟구쳐라, …부러뜨려라, …화를 내라, …곧게 서라, …기도하고, 뛰고 달리고 돌아서서 안고 뱉고 찢고 발 굴러라”라고 위로하며 말을 배우기 전 아기들만 아는 재미로 슬픔을 걷어가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할머니에 대해 화자는 “오랜만에 웃은 게 세상에 없는 일인 걸 알고 섭섭해서 눈을 감”는다. 화자에게 할머니는 ‘웃음을 주는’ 존재이며 삶에 원초적인 힘을 주는 정신적 동반자이다. 할머니의 상실을 지우고 할머니의 존재를 보존하는 방식은 기억에 의해 가능한 것인데, 시인은 신화적이고 샤먼적인 신비함을 그 안에 담음으로써 이러한 작업을 수행한다. 할머니와의 만남을 신비한 일로 확장해 가면서 신화적이고 샤먼적인 성격을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3. 존재론적 근거로서의 기억을 통한 표준화에의 저항 할머니는 현존하지 않고 시인의 몽상과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베냐민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르면, 신미나는 과거를 고정적 점으로 보지 않고 현재로부터 관찰하고 불러낸다.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기억으로 새겨진 것은 언젠가 ‘있었던’ 실재일 뿐이다. 그러나 신미나는 세속적 질서 속에 할머니의 기억과 농촌 경험을 가져와 행복에 대한 표상을 과거로부터 형성한다. 화석으로 남은 시골이 따스한 공간이었다는 전언을 통해 도시가 가진 허상을 비판하고 지금까지 가졌던 삶의 불균형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신미나는 이렇게 자신의 기억을 응시하면서, 데리다가 말하는 흔적(trace)을 만지는 일을 수행한다. 수레가 남긴 바퀴자국을 토대로 동물과 수레의 현전을 논할 수 없듯 그의 흔적은 ‘없다’를 말할 수 없는 심적 자국인 것이다. 그 점에서 ‘지켜보는 사람’을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의 첫 작품으로 배치한 것은 퍽 유의미하다. 본다는 것, 보았다는 것은 허상이 아닌 실상으로, 부재가 아닌 존재로 인정하는 일이며, 그 존재성은 사라지지 않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있는’ 것과 ‘있었던’ 것이 가지는 존재성의 기대를 동시에 내포한다. 한 알의 레몬이 테이블 위에 있다 오래전에 있었던 것처럼 금방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한 알의 레몬이 눈앞에 있다 그것을 치우면 레몬은 과거형으로 존재한다 흰 테이블보 위에 레몬이 있다 눈을 감아도 레몬은 레몬 빛으로 남고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진심으로 보인다 - ‘지켜보는 사람’ 부분 화자는 테이블에 놓인 “오래전에 있었던” 한 알의 레몬을 바라본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레몬은 비록 치워진다 해도 ‘과거형’이 될 뿐 비(非)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리했던 것은 눈을 감아도, 그것을 치우더라도, “레몬 빛으로” 남는 ‘사실’이 되고 “진심으로” 보이는 것이 된다. 존재의 가치는 시간이 증여한 것도 아니고 사회가 합의한 상징도 아니다. 그것은 개인이 경험하여 의미가 솟아나는 지점에서 생겨날 뿐이다. 그 세계에서 기호화되지 못한 것들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림자를 만”들고 조용히 남아 있게 된다. 이는 “쪼그리고 앉아”(‘단조’)서 보던 물에 불어나는 한 톨의 쌀알이 “찬 벽에 발을 대고 누”워서도 천장에 떠오르는 또렷함 같은 것이다. 기억은 ‘있었던’ 것의 부재를 또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는 과정으로 도약한다. 동요 속에서 마구 튀어오르거나 우글거리는 기억의 운동성은 존재의 살아 있음을 말해 주는 증거가 된다. 시인이 쓸모없는 일로 여겨지는 기억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기억 속에 오롯이 권역을 형성하고 우리의 인식과 감각에 등장하는 본연의 것들은 비록 외곽으로 밀려나 버렸다 해도 우리를 상실과 폐허 속에서도 살아가게 하는 존재론적인 근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기억은 자주 하찮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기억이 물질적인 감각에 찍힌 낙인일 때 신미나의 시는 기억의 집적을 통해 그러한 규정을 벗어난다. 그의 기억은 일정한 시공간과 서사와 감각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의 고리를 이으면서 긍정적으로 순간순간을 끌고 나간다. 보들리야르는 현대를 가리켜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의 비만 상태”라고 지적하면서도 현대인은 기억과 상상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신미나의 시는 언어의 옷을 채 입지 못한 기억들로 가득 채워짐으로써, 시적 주체를 추동하는 공감의 발원지로 기능하게 한다. 새로운 것의 권위에 대해 역설한 콩파뇽은 기억을 유행과 현대적인 것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이는 기억이 ‘새로움’에 대한 ‘낡음’이라는 모순관계의 짝패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가 담아내지 못하는 ‘상상력’의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공연한 일들”과 “쓸모없는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신미나의 목소리는 기억의 세부를 포착하겠다는 의지이며, 그녀의 시는 폐기되는 세부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미나는 주변에 널린 세부에 주목하면서, 삶은 지평이 아니라 오히려 세부의 집적임을 말한다. 이때 세부는 여러 차원의 경험으로 채워진 모래사장으로서, 우리는 그 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공연한 것들, 쓸모없는 것들은 삶을 채워 주는 세부인 것이다. 그녀의 시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식과 불화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법칙 이외에 어떤 언설에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이 지향하는 고유의 법칙을 유지한다. 이때 도시는 다름과 비뚜름 대신 바름을 동의반복적(同意反復的)으로 배열하고 배치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유동하는 세계 어디를 가도 한가운데 자랑스럽게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바로 도시이기 때문이다. 네모반듯한 도로와 건물, 기호와 상징, 그 속에서 현대인은 한 방향으로 향하는 물고기 떼처럼 몰려간다. 모든 공간이 유사해지면서 모국어가 있어도 전 세계가 몇몇 우세어를 중심으로 통일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표준화와 평균화에 저항하는 신미나 시의 힘이다. 이상하지 않나요, 이런 고요는 몰려오던 해일이 눈앞에서 멈춘 듯한 누군가 세계의 안과 밖에 커다란 간유리를 끼워두었으므로 나의 폐는 부레가 될 수 없고 물고기는 눈을 깜빡일 수 없어요 빛에 일렁이는 물 그물이 나의 발을 얽을 뿐입니다 - ‘아쿠아리움’ 부분 물주름 없는 물결 귀를 떠난 소리 풀 없는 인공 정원 - ‘홍제천을 걸었다’ 부분 현대인의 행동 양식은 모든 면에서 어떤 인공적인 것의 제작 방식과 일치하는 양상을 보인다. 같은 것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현대인은 동화되어 가고 있다. 노동하는 동물로 격하된 채 살아갈 뿐 거부와 배척이 두려워 ‘소수-되기’를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개인에게 감동을 주는 일에 대하여 어떤 말도 하거나 듣지 않는다. 도시인다운 ‘다수-되기’(에티엔 발리바르)를 지향하게끔 할 뿐이다. 도시는 고유한 특성이 제거된 개인을 색인 속에 분류하고 저장한다. 그런 가운데 개인의 슬픔은 썩어 가거나 사라지게 된다. 도시인의 언어는 차가운 콘크리트 언저리에서 싹튼 불쾌하고 축축한 우울과 소외의 언어가 된다. 그런 언어로 표지된 도시인은 자신의 결여된 내면성을 드러낼 방식이 없게 된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미학적 항의가 신미나의 시다. 4. ‘나 사는 곳’의 발견 과정으로서의 기억 혹자는 신미나의 시에서 농촌과 자연과 가난이 빚어낸 서정성을 읽어낸다. 그러나 우리는 더 확장된 의미로서 폭력의 시대에 소실되어 가는 ‘나 사는 곳’(오장환)을 훑는 작업을 읽어 낸다. 모국어의 소실과 전통의 소외와는 달리 매체와 일상을 메우는 것은 온통 서구 것이다. 케이팝(K-Pop)과 한류(Korean-Wave)도 서구 입맛에 맞춘 예능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SNS의 시대,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 하이브리드-스토어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콘택트 없이도 실시간 업무를 가능하게 했고, 신용카드라는 합의된 인증 방식의 결제를 통해 우리의 취향과 입맛은 모두 통제되고 있다. 이런 위험신호를 감지한 신미나는 ‘나 사는 곳’을 중심으로 우리의 것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고 있다. 보들레르가 현대성을 현대인의 불안과 관련시켜 읽어 냈다면, 신미나는 현대성을 폭력과 상실로 읽어 낸다. 그녀가 읽은 현대라는 미달태(未達態)는 “누군가 세계의 안과 밖에 커다란 간유리를 끼워”(‘아쿠아리움’) 둔 것과도 같아 “폐는 부레가 될 수 없고 물고기는 눈을 깜빡일 수 없는” 상실의 세계일 따름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머금고 “그만, 이라고 말해도 자꾸만 공을 물어 오는 착한 개처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폭력인 것이다. 아쿠아리움에 가둔 물고기 세상처럼, 우리가 사는 곳은 동일한 풍경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풀 없는 인공 정원”(‘홍제천을 걸었다’)이 가득한 곳이 되고 말았다고 시인은 진단한다. 마당이 있는 저 집에서 살면 참 좋겠다 언덕 위에는 여자 대학교가 있고 배구공 튕기는 소리도 가끔 들리고 비빔국수 잘하는 냉면집도 있고 가을이면 키 큰 은행나무가 긍지처럼 타오르는 동네 문방구 평상에 한참을 앉아 있어도 핀잔주지 않는 할머니가 있고 옆에서 신문지 깔고 고구마순 껍질이나 같이 벗기고 싶고 해 지기 전에 수건을 걷어 오른팔에 얹고 옥상에서 내려갈 때 젖이 불은 개가 헐떡이며 걸어가는 것을 보는 집 보러 왔다가 그냥 간다 이가 썩어 구멍 난 데를 혀로 쓸며 돌아보는 사직동 - ‘지하철역에서 십오분 거리’ 전문 ‘고스트 타운’(베냐민)이 된 도시가 현대화의 필연적 산물이라면 시인이 바라는 도시는 어떤 곳일까? “풀 없는 인공 정원” 대신 “마당이 있는” 집이고 “문방구 평상에 앉아 있어도 핀잔주지 않는 할머니가” 있는 곳이다. 부품을 한데 모아둔 것처럼 젊은이들만 들어찬 도시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공간이며, 아이들이 애용하는 문방구 평상이 있는 공간이다. 또 획일화되지 않은 무정형의 공간이며 비폭력적 공간이자 비상실의 장소이다. 빌딩과 벽이 없는 언덕 위에 여자대학교가 있는 곳이며 그곳에서 “배구공 튕기는 소리도 가끔 들리고” 비빔국수 잘하는 냉면집도 있어 맛볼 수 있는 “가을이면 키 큰 은행나무가 긍지처럼 타오르는 동네”인 것이다. 시인이 이러한 공간성을 가져오는 방식은 ‘우리 것’의 회복이자 ‘나 사는 곳’의 확인 과정인 셈이다. 첫 시집에서부터 발견되는 그의 시적 공간은 도시 미학적 공간과 거리가 이처럼 철저하게 멀어진다. 또한 신미나의 시는 흔적으로만 남은 우리말의 보고이다. 현대적인 것을 이루는 성좌를 완성할 때 세련된 시어의 반복과 나열이 필수라면 시인의 언어는 낡은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적인 것으로 명명된 모든 상황에서 시인이 채우는 장판, 요, 밥물, 물금, 내천, 조약돌, 연밥, 무밭, 아욱잎 등 추억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우리의 감각적 언어가 더 감각적이고 새로운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시인은 농도 짙은 외래어를 사용하기보다 ‘싱고’, ‘무이모아이…’ 같은 우리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쏟아져 흐르는 외래어와 말줄임에 우리말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언어란 얼마나 나약하기만 한가? “나는 오리라 하였고 당신은 거위라” 하였으며, “나는 공복이라 하였고 당신은 기근”이라 부르며, “당신은 성북동이라 하였고 나는 종암동이라” 하였다는 등 언어는 불통을 잠재적으로 내재한다. 언어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일치”(‘사랑의 순서’)하는지도 모른다. 신미나는 시가 소통되지 못하는 시대에 자신의 언어를 독자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도시의 방식인 고통의 언어 대신 모태의 언어를 내뱉는다. 모태의 언어는 관찰과 소통과 사색을 통해 유래된 ‘흙’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자기를 더 많이 드러내고 표출하는 도시 방식 대신 듣고 보고 느끼는 ‘삼중(重)의 겹’을 택한 결실이다. 이때 시인은 도시 안에서 ‘보는 자’이자 ‘느끼고 듣는 자’가 된다. “휘파람을 불며 길을 나서”면 “리어카에 폐지를 실은 노인들”(‘입김’)도 볼 수 있고, “한 손으로 번쩍 아이를 들어올리는”, “얼굴만 아는 여자”(‘길음동’)도 만날 수 있다. 또 “신발을 꺾어 신고 앞서”(‘모란과 작약을 구별할 수 있나요?’)가는 이를 살펴볼 수도 있다. 화자가 바라보는 것은 무언가가 되지 못한 세부이며 삼중의 겹을 통해 시로 현상된 것들인 셈이다. 또한 그녀의 시는 우리로 하여금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를 보게 하고 “귀 기울여 듣게” 한다. 우리는 말하기를 유보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선행해야 비로소 삼중의 겹을 완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 과정이 그 안에 있다. 장마 지면 정미네 집으로 놀러 가고 싶다. 정미네 가서 밍크이불을 덮고 손톱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고 싶다 김치전을 부쳐 쟁반에 놓고 손으로 찢어 먹고 싶다 새로 온 교생은 뻐드렁니에 편애가 심하고 희정이는 한 뼘도 안 되는 치마를 입는다고 흉도 볼 것이다 말 없는 정미는 응 그래, 싱겁게 웃기만 할 것이다 나는 들여놓은 운동화가 젖는 줄도 모르고 집에 갈 생각도 않는다 빗물 튀는 마루 밑에서 강아지도 비린내를 풍기며 떨 것이다 불어난 흙탕물이 다리를 넘쳐나도 제비집처럼 아늑한 그 방, 먹성 좋은 정미는 엄마 제사 지내고 남은 산자며 약과를 내올 것이다 - ‘정미네’ 전문 “밍크이불”은 어느 집에나 있었고 우리는 그 “밍크이불을 덮고 손톱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김치전을 부쳐 쟁반에 놓고 손으로 찢어 먹고” 싶다고 느낀 경험과 교생의 편애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기억, 예쁜 친구를 험담하던 기억이 시인의 머리에서 튀어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저 기억 속에 둥둥 떠 있기만 했을 것이다. 신미나의 시는 우리에게 ‘스스로 주어짐으로 돌아감’(장뤼크 마리옹)을 선사한 기억의 주체인 셈이다. 또한 신미나의 기억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뿐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 시대적 소멸의 흔적을 길어 올린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마고 이야기(‘마고 1·2’)를 소재로 삼는가 하면 할머니의 기억과 할머니와의 접신 과정을 ‘탱화’(‘탱화 1·2·3’)로 드러내기도 한다. 만약 시간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정의한다면 ‘새로움’의 추구라는 개념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신미나의 시에서 전통적 서정성을 읽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과제를 저버린 것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이는 시가 발견해야 하는가, 발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 신미나의 시는 시간 개념을 긍정하며 발명보다 발견을 더 큰 화두로 삼는다. 이는 타인에게 물려받은 것을 거부하는 것이며 기호화되지 않은 세부의 것을 발견하려는 의지를 내포한다. 그리고 발견은 ‘나 사는 곳’을 살피는 몸짓이며 몸에 각인된 과거를 통한 시인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근원적 모색을 뜻한다. 신미나는 언어적 한계를 무화(無化)하기보다 기억을 통해 자신이 실감하는 쪽을 그려 내고 있는 것이다. 기억을 되살려 시어를 택하고 그 속에서 실감을 표현하는, 들뢰즈식으로 ‘행동하는’ 시인인 셈이다. 단절과 폐허의 상황에서 그녀는 ‘벽’이 아닌 ‘문’을 택하고 단절이 아닌 소통을 지향한다. 선명한 기억이야말로 개인을 지탱하는 근원적 뿌리이며 개인의 감각과 사회의 전체성을 함께 붙드는 운동임을 그녀의 시는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 [2022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되돌아오는 곰/함윤이

    [2022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되돌아오는 곰/함윤이

    화마는 나흘 만에 잡혔다. 두툼한 잿더미와 무너진 바위들만 남기고서. 녹원은 결심했다. 담배를 끊자. 한 번에 끊어 버리자. 대신 그는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몇 시간 내내 산불 사진만 바라보자니 눈이 따끔거렸다. 사진 속 불길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웠다. 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타오르는 가지들이 밤을 붉게 밝히고, 바위를 감싼 불꽃은 날개처럼 솟구쳤다. 녹원은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폈다. 어떤 사진 앞에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줄에 묶인 채로 화마의 먹이가 된 개들, 산 위로 녹아내린 짐승들의 잿더미. 지난 나흘간 몇 장의 사진을 보았더라? 수십 장, 어쩌면 수백 장에 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진도 녹원이 찾는 것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래서….” 녹원은 도시락통을 열면서 말했다. “주말에는 산에 다녀올까 해요.” 노아가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언제나 그랬듯, 탕비실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읍내의 백반집에 갔을 터였다.                    어쩌다가 노아와 매일 점심을 먹게 되었더라.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노아는 점심 도시락을 싸 들고 탕비실에 찾아왔다. 언젠가, 센터의 다른 직원들이 노아에게 슬그머니 질문하는 순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었다. 노아씨는 박 주사가 안 무서워요? 노아가 물었다. “전에 일하던 곳 가시는 거예요?” 녹원이 답했다. “네,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네요. 그냥 한 번 직접 보고 올까 싶어요.” 노아가 양손을 만지작거렸다. 녹원은 그를 빤히 지켜보았다. 그날, 노아의 대답을 떠올리면 언제든 웃음이 나왔다. 질문을 받은 뒤, 노아는 양손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다가 말했었다. 글쎄요. 녹원 주사님 요리를 엄청 잘하시는데… 맨날 나눠 주세요. 노아가 불쑥 말했다. “주사님,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주말에 가실 때요.” “산에요? 왜요?” “그냥… 마음이 쓰여서요.” 녹원이 웃었다. “아니, 누가 주말에 직장 상사를 만나요.” “아니, 그래두 그거랑 다른 게, 저희는 친하잖아요.” 노아는 그렇게 말하고서 고개를 떨어트렸다. 젓가락을 툭 내려놓는 손짓까지, 그 모든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녹원은 빠르게 백기를 들었다. “아니, 가고 싶으면 같이 가요. 토요일 아침에 출발할 거예요.” 노아가 웃었다. 녹원 역시 웃어 버렸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희뿌연 유리창 너머로 검게 번진 산맥이 펼쳐졌다. 새카맣게 그을린 산은 그림자처럼 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붉거나 노란빛으로 번득거렸지. 지지 않는 태양처럼 사흘 내내 빛났다. 녹원은 그것을 보면서 내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너덜너덜해진 손끝을 보며 생각했다. 무엇을 생각했냐면, 그러니까. 그것이 거기에 있을까? 그 산에서, 아직도 살고 있을까?            그해, 한 통의 전화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지리산에서 걸려온 전화는 사무소 곳곳을 돌아 우도근 과장의 손에 도착했다. 전화를 끊은 과장은 눈썹을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곰이 왔다구 그러네요. 녹원은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곰이요? 직원 중 하나가 물었다. 곰이요. 우도근이 덧붙였다. 아마 또 그 곰이겠죠.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녹원은 몇 분간 말없이 기다렸다. 곰이라는 게 무엇인지, 진짜 동물을 뜻하는지, 혹은 일종의 암호인지. 누구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사무소 사람들 대부분이 녹원을 어려워했다. 그들은 녹원이 신입이라는 것을, 그가 대학을 갓 졸업했으며 이 사무소가 첫 직장이라는 사실을 잊은 양 굴었다. 낯선 상황은 아니었다. 녹원이 어느 집단에 녹아들기까지는 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대개 녹원을 불편해했다. 처음에는 그의 거대한 몸집에 압도당하고, 이후에는 그의 무표정이 난처하다고들 했다. 어쩔 수 없지. 녹원은 생각했다. 불편한 건 피차 마찬가지니까. 녹원이 손을 들자, 사무실의 눈길 모두가 그에게로 쏠렸다. 녹원은 모른 척 말했다. 과장님. 저는 곰이 뭔지 모르는데요. 아 맞네. 박 주임 들어오기 전에 생긴 일이구나. 잠깐 와 볼래요? 과장에게로 가려면 사무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야 했다. 통로 측 직원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자신의 의자를 당겼다. 녹원은 그들 사이를 느리게 지나갔다. 우도근 과장이 빈 의자를 꺼내어 툭툭 두드렸다. 녹원은 의자에 앉았다. 과장은 사무소 내에서 녹원을 꺼리지 않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위 탓인지, 경력 덕인지, 혹은 한평생 산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우도근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체로 온화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지위나 나이 상관없이 존댓말을 쓰고, 자잘한 실수는 웃으며 넘어갔다. 정말이지 괜찮은 상사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녹원은 생각했다. 나는 왜 사람이 이토록 불편할까. 아니, 사실은, 불편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우도근은 불편하고… 께름칙한 존재였다. 이 곰이 그 곰이에요. 과장이 컴퓨터를 가리켰다. 화면 중앙에서 어린 곰이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가슴의 흰 반달을 환히 내보인 모습이었다. 과장이 말했다. 우리끼리는 도돌이라구 불러요. 녹원이 물었다. 도도리요? 우도근이 정정했다. 도돌이. 도돌이표 할 때 그 도돌이요. 그가 곰의 얼굴을 툭툭 두드렸다. 이 녀석이 말이에요. 매년 돌아오거든요. 아무리 내쫓아도 포기하질 않아요. 그래서 도돌이에요. 멈추지 않고 되돌아와서요.      노아는 반쯤 감긴 눈으로 차에 탔다. 어깨에 멘 가방 입구로 스테인리스 보온병이 비죽 나와 있었다. 그는 차가 출발했을 때부터 꾸벅거리며 졸다가, 고속도로에 진입할 무렵에는 푹 잠들었다. 녹원은 라디오 소리를 줄였다. 양쪽 창 너머로 산기슭이 형태를 드러냈다. 새카맣게 탄 자국이 군데군데 보였다. 녹원이 기사에서 찾아본 대로였다. 산은 파괴되고 소실되었다. 기사들은 특정한 단어들을 되풀이했다. 재앙, 재난, 상실. 평소에도 산불이 자주 나는 지역이었으나, 이번 피해는 유난히 참혹했다. 처음에는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로부터 불씨가 솟아올랐다. 불씨는 때마침 불어온 강풍을 타고 날아올랐다. 마치 누군가 사주한 양, 화마는 적절한 환경 속에서 긴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현장의 직원들은 검은 재로 뒤덮인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를 했다. 마스크를 벗으면 까만 코피가 쏟아져요. 그들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매일 목이 아픕니다. 그들의 말은 녹원을 슬쩍 스치고 사라졌을 뿐이다. 녹원의 머릿속을 채우는 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는 곰을 생각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곰에 대한 질문만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괜찮을까? 살아 있을까? 산속에서, 이제는 폐허로 변한 그곳에서? 녹원은 흘끗 조수석을 보았다. 노아는 덜컹거리는 창에 이마를 댄 채 잠들어 있었다. 녹원은 뒷좌석의 목 베개를 찾으려다가 관두었다. 괜한 배려를 해 준답시고 잠을 깨우는 건 아닐까. 상사와 여행을 한다는 생각에 가득 긴장하여 잠들지 못한 건 또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손이 움츠러들고 말았다. 녹원은 한숨을 내쉬고서 속력을 올렸다. 여전히 이런 일들이 어려웠다. 어느 정도 친밀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조차 무엇을 해 주는 게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노아는 톨게이트를 지날 즈음에 깨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로 좌우를 살피고서 웅얼거렸다. “주사님. 커피 안 드셨죠. 드셔야 해요. 제가 직접 내렸는데. 맛있을 텐데.” 그는 보온병 뚜껑에 커피를 따라 건네고서는, 다시금 까무룩 잠들었다. 녹원은 홀로 웃다가 커피를 마셨다. 노아의 말이 맞았다. 커피는 맛있었다. 알맞게 따뜻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한국의 마지막 야생 반달곰은 설악산에서 죽었다. 천구백팔십삼년, 녹원이 태어난 해였다. 곰은 살해당했다. 웅담을 노린 밀렵꾼의 총알이 곰의 척추를 뚫었다. 곰은 총알이 박힌 몸으로 마등령 계곡까지 달아났다. 바위들 사이에 웅크려서 며칠을 울어댔다. 그의 죽음을 다룬 기사는 울음소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으엉, 으엉. 글자로 적힌 울음은 처절하기보다 우스꽝스러웠다. 으엉, 으엉. 짐승은 보름 가까이 앓다가 죽어 버렸다. 우도근은 말했다. 그 후로 이 산에는 곰이라고는 없었거든요. 그러나 사십여 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녹원이 입사하기 삼 년쯤 전에, 곰 한 마리가 설악산에 나타났다. 아홉 살배기 암곰이었다. 백오십오 센티미터의 신장에 백 킬로그램, 날렵하다고 할 만한 덩치였다. 몇 해 전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중 하나인 양 싶었다. 주말 등산회 사람들이 그를 처음 발견했다. 당시 암곰은 폭포를 어슬렁거리며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신고인은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곰이 도토리를 먹는다니까요. 곰이 원래 도토리를 먹어요? 사무소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지리산에 방생한 곰들이 다른 국립공원으로 넘어간 일은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설악산이라니. 이 정도의 거리를 이동한 야생동물은 한 번도 없었다. 곧 남부보전센터에서 인력을 파견했다. 설악산 국립공원 쪽에서도 직원들을 내보냈다. 모두의 목적은 최대한 빠르게 곰을 생포하여 지리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당시 계장이던 우도근을 포함하여, 현장직 몇몇이 포획 조에 가담했다. 그들은 방패와 밧줄을 지고서 산을 올랐다. 암곰은 폭포에 있었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후다닥 참나무에 올라가서 버텼다. 우도근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녹색 그물을 설치했다. 보전센터 직원이 마취총을 쐈다. 십여 분이 지나고, 정신을 잃은 곰이 그물 위로 떨어져 내렸다. 기절한 곰은 꽁꽁 묶인 채 지리산으로 돌아갔다. 그쯤에서 마무리가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한 달이 지났을 때 암곰이 새끼를 남기고 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설악산에서 낳은 새끼인지, 설악산까지 데리고 온 새끼인지는 모르겠으나 야생에서 태어난 개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곰에게 어떤 발신기도 붙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새끼 곰은 폭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홀로 남은 새끼를 잡는 일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당시의 도돌이는 약 육십 센티미터 정도였다. 포획되는 순간에는 나무 뒤에 숨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더랬다. 촉촉한 코나 동그란 귀가 어찌나 귀엽던지, 현장에 나온 직원들 모두가 끙 소리를 냈더랬다. 붙잡힌 도돌이는 어미와 마찬가지로 헬리콥터를 타고 지리산으로 갔다. 현장에 간 직원들은 은은한 얼굴로 말했다. 그 녀석, 돌아가서 엄마랑 다시 만났겠지? 이것 참, 이산가족 상봉이네…. 그들 중 누구도, 그 곰이 귀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새끼 곰이 무수한 위험을 무릅쓰며 산맥을 넘어오다니. 우도근이 손가락을 튀겼다. 그런데 진짜로, 이 녀석이 돌아온 거예요. 이 년 만이었다. 이번에는 대피소의 직원이 먼저 곰의 흔적을 발견했다. 대피소 부근의 물푸레나무에 커다란 발톱 자국이 남아 있노라고 했다. 족제비나 오소리의 발톱 같지는 않다. 그보다 훨씬 거대하고 깊은 자국이다. 꼭 곰이 남긴 흔적처럼 보인다고. 무인카메라를 추적한 결과, 그의 말은 사실로 밝혀졌다. 다시금 보전센터의 직원들이 오고, 또 한 번 포획 조가 꾸려졌다. 우도근은 지난 포획에 참여한 경력을 인정받아 두 번째로 방패를 들었다. 곰은 나무 위 벌집을 습격하던 중에 붙잡혔다. 마취총에 맞아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보전센터 직원들이 직접 나무에 올라가 몸을 밧줄로 묶어야 했다. 그들은 곰의 왼쪽 귀에서 조그만 기계를 하나 발견했다. 배터리가 닳은 발신기였다. 수의사는 말했다. 배터리를 교체하기 전에 서식지를 탈출한 모양이네요. 곧 그들은 몇 가지 사실을 더 알아냈다. 수의사는 곰이 세 살이 조금 안 된 암컷이며, 또한 두 해 전 이 산에서 퇴출당한 바로 그 새끼 곰이라는 사실까지 밝혀 주었다.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얘가 그 곰이라고? 우리가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그 아기곰 말이야? 수의사가 말했다. 뭐, 이제 아기라고 부르긴 뭐하죠. 그의 말이 맞았다. 철창에 갇힌 짐승은 일 미터하고도 오십팔 센티미터였다. 몸무게는 백사십오 킬로그램, 울부짖는 모양새는 가히 맹수라고 부를 만했다. 곰이 또다시 지리산으로 돌아간 후에도, 다들 찜찜한 느낌을 걷어내지 못했다. 과장이 말했다. 물론, 그 느낌이 맞았죠. 일 년 만에 지리산에서 전화가 왔어요. 위치 추적을 했는데, KF-75가 그곳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요. ‘돌아갔다.’ 그쪽에서도 돌아갔다고 표현하더군요. 설악산의 직원들은 혀를 찼다. 독한 곰이다. 지독한 놈이야. 쑥덕거렸다. 곰 방사 계획 같은 거 대체 누가 짠 거냐? 낮은 목소리로 불만을 토했다. 심지어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나뭇가지마다 흰 서리가 열매처럼 맺혀 있었다. 다른 반달곰들은 지리산 곳곳에 웅크려 동면을 취하고 있을 텐데. 단 한 마리의 곰만이 얼어붙은 산맥을 넘어 고향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직원들은 곰을 도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며칠간 추적이 이루어졌다. 곧 곰이 설악산에서 동면을 취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번에는 사무소에서도 차분하게 대응책을 마련했다. 어느덧 세 번째로 이곳에 방문한 보전센터의 직원들과 함께 동면포획을 준비했다. 산속의 굴 어딘가에 잠든 곰을 끌어내는 방법이었다. 녹원이 끼어들었다. 잠든 중에 끌어낸다고요? 네, 그래서 동면포획인 거죠. 무서운 방법이네요. 음, 사실은 그게 가장 평화로운 방법인데요. 곰의 입장에서는, 잠든 사이에 세상이 뒤바뀐 거잖아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요. 우도근이 턱을 괴고서 녹원을 바라보았다. 곰의 입장이라. 과장이 중얼거렸다. 곧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녹원은 그 미소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 우도근이 말했다. 박 주임은 곰이 불쌍한가 봐요. 나는 우리 직원들이 불쌍한데. 매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짐승 하나 때문에. 안 그래요? 녹원은 허리를 꼿꼿이 폈다. 우도근의 앉은키는 그보다 훨씬 작았다. 백육십 센티미터를 아슬아슬하게 넘는 키에 가느다란 팔다리. 그와 비슷한 외양의 남자들은 대체로 녹원을 불편하게 여겼다. 경계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은 녹원의 몸을, 그의 크기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듯했다. 과장은 한 번도 그런 기색을 내보인 적 없었다. 외려 그는 어린아이를 대하듯 녹원을 대하곤 했다. 이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박녹원 주임님. 이번 포획 작전에 같이 가 볼래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곧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예, 좋아요. 그럼 좋을 것 같습니다. 우도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좋다. 그럼 정해진 거지요? 이제 자리로 돌아가세요.      사무소는 녹원이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늙은 소나무 두 그루가 정문 양쪽에서 가지를 맞대고 있었다. 진입로 안쪽으로 목조 건물이 엿보였다. 여기까지는 화마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녹원은 정문 건너편에 차를 세웠다. 막 깨어난 노아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녹원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노아씨. 제가 왜 여기 왔는지 설명을 먼저 드려야겠는데요.” “아, 네, 네.” “그러니까…. 여기에 곰이 한 마리 있었거든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시작점이었다. 녹원은 가장 건조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개체, 포획, 복원 프로젝트, 서식지, 정부 지침. 그런 단어들이 이 상황을 합리적으로 보이게 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도돌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뒤, 차 안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노아는 찌푸린 얼굴로 양손을 만지작거렸다. 녹원은 내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마침내 고개를 돌린 노아가 활짝 웃었다. 녹원은 물속에서 나온 사람인 양 참던 숨을 토해냈다. 노아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사님. 진짜로 엄청난 사연이네요. 저라도 여기 왔을 거예요. 잘 오셨어요.” 녹원은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양 뺨이 화끈거렸다. 곧 코끝까지 시큰거릴 듯했다. 녹원은 노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에서 내렸다. 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푸른 기를 머금은 하늘은 투명해 보였다. 녹원은 길을 건넜다. 사무소 정문 기둥에 기대고 서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시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의 기억대로라면, 사무소의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약 사십 분이 남아 있었다. 건너편에서 달칵, 소리가 트였다. 곧 우도근이 소리를 쳤다. - 아니, 뭐야. 박녹원 주임이 건 거예요? “네, 안녕하세요, 과장님. 제가 지금 사무소 앞에 와서요. 인사라도 드리려고 했어요.” 우도근이 정문으로 나오기까지는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녹원은 금세 그를 알아보았다. 깡마른 몸집과 산양처럼 총총거리는 걸음걸이. 과장은 그대로였다. 시간이 그를 비껴간 듯 보였다. 머리가 더 벗어지지도, 주름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우도근은 어설픈 인사치레로 시간을 잡아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질문부터 던졌다. “아니, 진짜로, 뭐 때문에 왔어요?” “도돌이 말이에요. 무사한가요?” “에? 도도리?” “도, 돌, 이. 아시잖아요. 되돌아오는 곰이요.” 우도근이 아아― 길게 소리를 냈다. 탄식 같은 소리였다. 녹원은 지금껏 내내 연습한 얼굴, 가능한 한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는 얼굴로 버티고 섰다. 과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박 주임, 그거, 곰 때문에 온 거예요? 그거 물어보러?” “네. 맞습니다.” “세상에… 박 주임 대단하네요. 아니지, 지금은 주임이 아니지요? 뭐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보통 주사라고들 불러요.” “그래요. 박녹원 주사님. 얼마나 걱정이 됐으면 거기서 여기까지 왔어요. 한 시간은 걸릴 텐데. 굉장하네, 정말로 굉장하네요.” 녹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과장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우도근이 한숨을 내쉬면서 웃었다. 눈에 익은 표정이었다. 그는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요새는 산불 뒤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재난안전과고 자원보전과고 할 거 없이 다들 난리거든요. 곰까지는 신경 쓸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나도 몰라요. 얘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발신기는요? 센터 쪽에서 확인 들어가지 않았어요?” “발신기 그거.” 과장이 수염 자국조차 없는 턱을 어루만졌다. “어디 보자…, 그 얘기는 들은 것 같은데. 잠깐 기다려 봐요. 지금 몇 시죠?” “점심시간 끝나려면 아직 삼십 분 남았어요.” 과장이 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녹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마침내 우도근 쪽에서 손을 들었다. “좋아요. 알아봐 줄게요.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데.” “감사합니다.” “사무소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래요?” “괜찮습니다.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차 안에 있을게요.” “친구? 박 주임 친구요?” “네. 직장 동료 겸 친구요, 같이 왔어요.” 과장이 눈을 치켜떴다. 입은 헤 벌어졌다.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이상하리만치 환한 웃음이 그의 얼굴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녹원은 어찌할 바 모른 채 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과장의 미소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도근은 사뭇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금방 올 테니까 기다려요.” 녹원은 그의 뒷모습이 사무소 안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자신이 과장의 안부에 대해서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삼차 포획은 이른 새벽 중에 진행되었다, 직원들은 사무소 정문 앞에 모였다. 푸르스름한 새벽빛 속으로, 우도근의 이야기에 등장하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수의사는 녹원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젊었다. 그와 함께 온 보전센터 직원들은 대부분 점잖은 인상으로, 말수가 적고 걸음이 빨랐다. 설악산에서도 꽤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 녹원과 우도근을 포함한 공원사무소의 직원들 외에도, 곰이 머무는 구역 근처의 분소 직원들 역시 합류했다. 보전센터 직원들은 여섯 다리가 달린 은색 안테나를 들고 왔다. 그것으로 곰을 찾아냈다고 했다. 곰은 탐방로로부터 머지않은 계곡을 배회하는 중이었다. 도돌이가 홀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바로 그 계곡이었다. 사람들은 장비지원조와 마취조, 추적조로 나뉘었다. 녹원은 장비지원조에 배치되었다. 곰을 붙잡아 데려오는 데 필요한 장비를 운반하는 역할이었다. 우도근은 추적조에서 움직이기로 했다. 우도근의 조가 선두에, 녹원의 조가 후미에 섰다. 행렬은 흔들다리를 건너고 금강문을 거쳐서 산길을 올랐다. 폭포로 가는 방향이었다. 그들은 곧 탐방로를 벗어나 숲 안쪽을 가로질렀다. 나무로 둘러싸인 공터에서 멈춰서 짐을 풀었다. 녹원은 가방을 내려놓고 장비를 하나씩 꺼냈다. 녹색 안전그물과 구조용 밧줄, 헬멧과 방패 등이 손에서 손을 타고 넘어갔다. 이제 마취조와 추적조가 공터 너머의 폭포로 가서, 곰을 데리고 올 것이라고 했다. 녹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수풀 뒤에서 조끼를 걸치는 우도근이 보였다. 녹원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우도근이 인사를 건넬 듯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녹원은 그 몸짓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물었다. 곰이 여기에서 살 수는 없나요? 예? 뭐라고요? 곰 말이에요. 세 번이나 돌아왔잖아요. 여기가 자기 고향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닐까요. 원하는 곳에 놓아주는 게 불가능한가 해서요. 침묵이 흘렀다. 과장이 천천히 헬멧을 썼다. 턱에 매는 끈을 고정한 뒤 녹원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웃음기조차 없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박녹원 주임님. 네, 우도근 과장님. 저건 맹수예요. 말이 천연기념물이지, 사실은 유해조수라고요. 그리고 여기는 국립공원이에요. 매일 사람들이 오가는 산이요. 이해하겠어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올라오는 말을 삼키려 했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녹원이 말했다. 저도 알아요. 그의 목소리가 나무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저도 안다고요. 과장님. 매일매일 사람들이 여기에 오잖아요. 자연이 좋다거나, 건강해지고 싶다거나, 취미 생활이라면서 산에 오르내리죠. 그런데 제 말씀은요, 과장님, 그건 그 사람들 선택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 곰의 경우는 다르다고요. 쟤는 이 산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계속 되돌아오는 거겠죠. 여기에서 살아야 하니까. 여기서 살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녹원은 입을 다물었다. 턱이 떨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과장은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거의 탄식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는 녹원이 건네준 가방 안에서 보호구를 하나씩 끄집어냈다. 그는 팔꿈치와 무릎 위로 보호구를 주섬주섬 끼우며 말했다. 우리 박녹원 주임님은 말이야. 여기에 오면 안 되는 사람이었네요. 녹원은 그를 쳐다보았다. 질문들이 입안을 맴돌았다. 여기란 어디이며, 대체 무엇이 안 되는 거냐고, 여기가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론, 녹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도근은 낡은 지프를 타고 되돌아왔다. 도돌이가 사라진 지점까지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미리 얘기해 놓았다고도 덧붙였다. 과장은 왜인지 들뜬 듯 보였다.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과장이 따라나서 준다면, 훨씬 간편히 산을 돌아다닐 수 있을 터였다. 노아와 녹원은 우도근의 지프 뒷좌석에 올라탔다. 과장이 몸을 돌려서 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 반갑습니다. 박녹원씨 직장 동료라면서요.” “네.” 노아가 그와 악수하며 답했다. “네, 동료 겸 친구예요.” 우도근이 빙긋 웃더니, 다시 앞으로 돌아앉았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 녹원은 우도근의 말을 다시금 곱씹었다. 박녹원씨라니. 생경한 호칭이었다. 우도근 과장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아주 오래전, 저 산속에서. 우도근의 지프는 금세 산중도로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는 까맣게 탄 산맥이, 왼쪽으로는 잿빛 강이 이어졌다. 검은 산에서부터 흩날린 잿가루가 차창에 달라붙었다. 지프는 강의 굽이를 따라서 모퉁이를 돌았다. 국립공원의 시작점을 알리는 아치형 입구와 함께, 강변을 따라 선 갖가지 가게들이 나타났다. 잿빛 먼지에 휩싸인 편의점과 식당, 분사무소와 등산로로 향하는 흔들다리. 우도근은 다리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차창을 내리고 강 건너편을 가리켰다. “저쪽이에요.” 녹원과 노아는 창밖으로 목을 뺐다. 강 건너로 접근금지 테이프를 친 약수터가 보였다. 폭포 방향으로 입산하는 사람들이라면 필수적으로 거치는 구간이었다. 몇 해 전 녹원이 삼차 포획 행렬에 낀 채로 지나갔던 지점이기도 했다. 우도근이 약수터 위쪽을 가리켰다. “저쪽 산허리에서 발신기를 발견했어요. 아주 훼손되었다던데. 억지로 뜯어 버렸나 봐요.” “그 외 흔적은 못 찾았고요?” “네, 사체 같은 건 전혀 없었고….” 과장이 룸미러로 녹원의 얼굴을 흘긋 보았다. 그가 시동을 끄면서 말했다. “산에 다녀오고 싶으면, 지금 다녀와요. 나는 여기에서 기다릴 테니까.” 녹원은 머뭇거렸다.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지금껏 우도근을 오해했던 것일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과장은 친절하고 온화한 남자였다. 녹원의 기억 속에서 보여 주던 적대적인 태도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허탈한 웃음이나 경시하던 눈길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치… 아군처럼 보였다. 녹원은 차에서 내렸다. 노아가 그를 뒤따라왔다. 그들은 다리를 건너고 약수터를 지났다. 숲은 고요했다. 산으로 향하는 계단의 난간은 새까맣게 그을린 상태였다. 바삭하게 타오른 나무들은 식물보다는 불꽃의 잔재처럼 보였다. 보이는 곳마다 회색 재가 휘날렸다. 새들이 지저귀지 않고 잎사귀도 흔들리지 않았다. 도돌이를 처음 만난 날과는 모든 게 달랐다.         추적조와 마취조는 숲 너머로 떠났다. 장비지원조는 공터에서 짐을 가지고 대기하기로 했다. 녹원은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채, 숲속을 바라보았다. 물푸레나무와 박달나무, 피나무, 소나무, 벚나무. 여름의 샛노란 볕뉘가 나뭇가지 사이를 환히 비췄다. 곧 낯선 소리가 그 풍경을 뒤흔들었다. 쿵. 높은 곳에서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바위에 기댄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새들이 날아오르고 잎사귀들이 흔들렸다. 산 전체가 몸을 털어내는 듯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아득하게 번져 왔다. 얼마 후, 그들이 나무 그늘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행진이라도 하듯 한 줄로 선 채 숲을 가로질렀다. 수의사와 과장이 선두에 서 있었다. 그 뒤로 들것을 붙든 남자들이 내려왔다. 녹원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들것 안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짐승이 있었다. 포로처럼 눈과 입, 팔다리를 묶인 채. 녹원이 지고 온 밧줄이 곰의 몸을 엑스자로 붙잡고 있었다. 수의사의 목에 둘렀던 파란 천은 곰의 눈을 가리는 데 쓰였다. 벌어진 입 사이로 붉은 혀가 늘어져서 달랑거렸다. 녹원은 행진을 쫓는 아이처럼 곰을 따라서 걸었다. 필사적으로 들것을 쫓아가며 곰을 보았다. 그의 귀에 새로 부착된 발신기를, 어깨와 가슴을 가로지르는 흰 반달을, 마른 땅처럼 갈라진 발바닥을 보았다. 남자들은 공터 정중앙에 들것을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들도 보호구를 주섬주섬 벗었다. 녹원은 장비들을 챙기는 일도 잊고, 내내 곰만 바라보았다. 바로 옆에 다가온 사람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한번 만져 봐요. 녹원은 놀라서 옆을 돌아보았다. 우도근 과장이었다. 그가 부드러운 얼굴로 곰을 가리켰다. 쓰다듬어 보라니까요.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어요. 머뭇거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녹원은 곰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 검은 털은 까슬까슬하고 서늘했다. 피부는 몹시 단단했다. 녹원과는 전연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털과 살, 그 안에서 흐르는 피가 손바닥 아래에서 두근거렸다. 녹원은 눈을 깜빡였다. 곰의 치욕과 자존심, 곰의 마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끊임없이 돌아온다는 뜻의 이름도 곱씹었다. 짐승이 꿈틀거린 순간에도,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나중에 과장과 수의사를 비롯한 몇 사람이 물어보았다. 왜 손을 떼지 않았어요? 왜 달아나지 않았습니까? 녹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느꼈던 소속감을 묘사할 방법이 없었다. 그토록 아늑하고 달콤한 마음은 처음이었다. 극복해 낼 수도 없으며,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곰은 소리를 질렀다. 으엉, 소리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밧줄의 매듭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곰은 순식간에 들것에서 벗어났다. 그는 녹원이 보았던 사진처럼 양팔을 벌리고, 가슴의 흰 반달을 환히 드러낸 채로 일어나 섰다. 도돌이는 잠시 휘청거리다가 녹원을 끌어안았다. 끌어안았다―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표현을 썼다. 끌어안았다. 곰이 그를 끌어안았다고. 녹원은 등 뒤의 바위로 쓰러졌다. 그 순간이 녹원의 목숨을 구했다. 곰의 무게는 녹원의 몸을 지나 바위 아래로까지 분산되었다. 만약 선 채로 힘겨루기를 했거나, 땅바닥에 곧바로 쓰러졌다면, 녹원의 뼈는 모조리 부서지고 말았을 것이다. 녹원은 그 접촉을 기억했다. 그날의 다른 어떤 때보다 더욱 선명히 기억했다. 늑골을 짓누르는 냄새와 촉감. 곰은 녹원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작았다. 그런데도 어찌나 무거운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녹원은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도돌이는 저를 끌어안지 않았어요. 걔는 저한테 기대어 있었죠. 수의사도 그의 말에 증언을 보태 주었다. 곰이 박녹원씨를 고목이나 바위, 혹은 어떤 기둥처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서, 박녹원씨에게 매달린 거죠. 파란 천이 흘러내리며 초점을 잃은 눈이 드러났다. 입가에서 흰 거품이 끓었다. 남자들이 곰을 끌어냈다. 녹원은 바위벽에 기댄 채로 주저앉았다. 흐릿한 사람들이 소리쳤다. 괜찮아요? 숨 쉴 수 있어요? 녹원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괜찮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렇지가 않았다. 호흡할 때마다 갈비뼈가 조각나듯 아팠다. 결국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곰으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사에서 읽은 기묘한 울음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채우고 있었다. 정말로 으엉, 으엉, 하고 우는구나. 녹원은 생각했다. 정말로 울어버리듯이 우는구나. 바로 앞에서는, 누군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녹원씨. 박녹원씨. 녹원은 고개를 돌렸다. 우도근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그는 몇 해는 더 늙어버린 양,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여기에서 일하면 안 돼요.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해. 과장은 몇 번이나 말했다. 박녹원씨. 산에서 내려가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요.              “날이 늦었으니, 우리 집에서 자고들 가요.” 우도근은 주장했다. 녹원과 노아가 연거푸 손사래를 쳤는데도,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그의 집은 산기슭 끝자락에 있었다. 녹원과 노아는 빨간 지프를 따라서 시멘트 언덕 위를 올라갔다. 새하얀 돌벽에 노란 지붕을 올린 집이 나타났다. 옅은 녹색 잔디를 깐 마당에는 흔들 그네와 스프링클러, 평상이 놓여 있었다. 집의 뒤뜰은 산사면과 바로 맞닿았다. 천만다행으로 이쪽 능선까지는 불길이 오지 않아서 피해를 면했노라고 했다. 녹원은 자신의 트럭에서 내려와 주위를 살폈다. 우도근의 집은 언덕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언덕 앞뒤로 보이는 것은 산과 강뿐이었다. 주위에 놓인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녹슨 가로등 하나가 전부였다. 우도근이 노란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란이. 나 왔어.” 녹원은 어깨를 움츠렸다. 우도근에게 부인이 있다는 사실은 들은 적 있었다. 직접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우도근이 부인을 부르는 광경을 보다니. 란이, 라고 부르다니. 그가 누군가를 저토록 친근하게 부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곰을 부를 때만 제외하면. 저녁 시간은 한없이 평화롭게 흘러갔다. 그들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란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아름 꺼내 녹원의 품에 안겨 주었다. 별구경하다가 자세요. 란은 오래전부터 녹원을 알아온 양 친근한 어투로 말했다. 마당 평상이 별구경하기 딱 좋거든요. 맥주 곁들이면 그만 한 휴가도 없어요. 막상 부부는 평상 휴가에 동참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아홉 시만 되어도 눈꺼풀이 감겨서, 먼저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도근은 평상에 담요를 깔아 주었다. 조카에게나 건넬 법한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재밌게 놀고 푹 자요. 알겠지요?” 마당에는 녹원과 노아만 남았다. 두 사람은 평상에 나란히 앉았다. 다리를 죽 편 채 맥주를 홀짝거렸다. 산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살갗을 서늘하게 적셨다. 부부의 말대로, 마당에서 보는 별은 몹시 선명했다. 허공에 멈춘 불씨처럼 반짝거렸다. 녹원은 언덕 너머에서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두 갈래로 나뉜 물길이 다시 한 길로 합쳐지는 지점까지 살폈다. 강 뒤편의 산은 부드러운 어둠에 잠겨 있었다. 녹원이 불쑥 말했다. “천 킬로미터예요.” 노아가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하셨어요?” “곰이 이동한 거리 말이에요. 한 번에 삼백사십사 킬로미터, 세 번 돌아오면 천백삼십이 킬로미터 정도 돼요. 서울에서 도쿄까지가 그 정도 거리래요.” 노아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서 말했다. “지독한 곰이네요.” 녹원은 동의했다. 정말이지 지독한 곰이었다. 세 번째 귀환 이후, 이 독한 곰은 제법 유명해졌다. ‘되돌아오는 곰.’ 그런 유의 머리기사와 함께. 도돌이라는 이름 역시 앙증맞게 실렸다. 설악산 측은 이 사건을 일종의 기회로 삼았다. 설악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의 시작점을 ‘되돌아오는 곰’으로 삼자. 마침내 도돌이는 설악산으로 방사되었다. 몇 가지 복잡한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서, 사무소 내부에도 곰의 위치를 주기적으로 추적하는 절차가 투입되었다. 반응은 썩 괜찮았다. 이토록 강력한 의지를 가진 곰이 번번이 돌아오던 고향. 한 기자는 도돌이를 천구백팔십삼년에 죽은 곰의 환생인 양 묘사하기도 했다. 수십 년의 한이 이제야 풀렸노라고. 녹원이 말했다. “어릴 때 제 별명이 웅녀였거든요.” 노아가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웃어도 돼요?” 녹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가 웃는 사이에,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열세 살쯤 때 이미 키가 백칠십을 넘었어요. 그때 짝꿍이 되게 웃기던 애였거든요. 저를 맨날 웅녀라고 불렀는데, 그게 못내 좋았어요. 그전에는 한 번도 별명을 가져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녹원은 설악산에서 마지막으로 살던 곰의 최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의 마지막 야생 곰, 그가 태어나던 바로 그해 엉엉 울어버리다가 죽은 짐승. 녹원은 곰이 죽은 날짜도 찾아보았다. 곰은 칠월 말일, 녹원이 태어나기 바로 전날에 죽었다. 그 숫자 간의 관계를 깨달은 순간, 녹원의 머릿속으로 괴상한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누구에게도 이것에 대해 말한 적 없었다. 가뜩이나 자신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가는 어떻게 반응할지 뻔했다. 녹원은 천천히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나야말로, 그 곰에게서 돌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번에 노아는 웃지 않았다. 녹원은 말을 이었다. 그 생각은 오래도록 그를 옭아맸다고. 누구나 이상한 믿음 하나 정도는 있잖아요, 그런 말로 뭉뚱그리기에는 지나치게 묵직한 믿음이었다. 자신이 그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존재라면, 왜 이토록 사람들이 어려운지 설명할 수 있을 듯했다. 사람에게 죽은 짐승은,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역시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바로 그런 경우는 아닐까.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에서 마음을 떼어낼 수 없었다. 꼭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래서요. 도돌이와 나 사이에도 무언가 이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녹원은 고개를 들었다. 노아는 끌어안은 무릎에 턱을 괸 채로 잠들어 있었다. 녹원은 평상에 깐 담요를 펼쳐 노아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 고개를 드니 보름달이 떠 있었다. 희고 선명한 달이었다. 두 갈래의 강 위로 두 개의 달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밤 동물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녹원은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양팔을 죽 펼친 순간, 그대로 멈춰 섰다. 그는 빳빳이 굳은 채로 귀를 기울였다. 눈앞으로는 밤의 어둠을 타고 흐르는 산의 능선만 보였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등 뒤 어딘가에서, 아마도 뒤뜰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곧이어 낮게 숨 쉬는 소리가 울렸다. 녹원은 그 숨소리를 알고 있었다. 분명히 귀에 익었다. 다시 한번 비닐이 흔들렸다. 얇은 막이 찢어졌다. 그것이 그르렁거렸다. 나는 알아. 녹원은 생각했다. 나는 이 소리를 알고 있어. 녹원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발뒤꿈치를 들고 돌아섰다. 주택은 엷은 가로등 불빛에 잠겨 있었다. 소리는 조금 더 뒤에서, 가로등 너머에서 들려왔다. 녹원은 천천히 걸었다. 가로등을 지나서 집의 뒤쪽으로 갔다. 뒤뜰에는 지붕을 씌운 분리수거함과 차고가 있었다. 차고의 비상등은 활짝 켜져 있었다. 안쪽의 빨간 지프가 선명히 보였다. 그 옆의 분리수거함을 뒤적거리는 물체 역시도 뚜렷하게 보였다. 녹원은 멈춰 서서 그 물체를 보았다. 검고 큼직한 뒷모습. 몇 해 전보다는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곰은 비닐봉지를 뒤지고 있었다. 검은 발이 노란색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움켜쥐었다. 비닐들이 흔들리고 찢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녹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목이 메었다.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마음은 한 차례 솟구치더니, 도무지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녹원은 집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곰의 움직임을 훑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니 부석거리는 털이라거나 바싹 야윈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얘.” 녹원이 말했다. “도돌아.” 곰은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응답하듯이. 자신이 어떻게 불리는지를 알고 있다는 듯이. 녹원은 한 발짝 다가섰다. 다음 걸음은 좀더 가볍게 옮겼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계속 걸어갔을 터였다. 손은 녹원을 꽉 쥐고 뒤로 당겼다. 녹원은 뒤돌아보았다. 노아가 거기 있었다. 비상등의 빛에 새하얗게 질린 채, 녹원을 붙들고 속삭였다. “움직이면 안 돼요. 주사님, 움직이지 마세요.” 녹원도 무엇인가 말하려 했다. 괜찮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는 이미 한 번 이 곰을 만난 적 있다. 그때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곰은 놀랍도록 명민한 동물이라 몇 해 동안 사람을 기억한다. 그러나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곰은 구부정하게 서서 멀뚱히 그들을 보고 있었다. 흰자가 슬며시 드러난 눈은 사람의 것보다 둥글고 검었다. 그 눈동자에서는 어떤 생각도 읽어 낼 수 없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결, 그것들로부터 추측할 수 있는 감정 또한 없었다. 곰은 그와 전혀 다른 구역에, 다른 세계에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에 반응했다니. 우스운 생각이었다. 그들 간에는 무엇도 교차하는 것이 없었다. 녹원은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녹원이 속삭였다. “노아씨. 뒤로 가요. 등 돌리지 말고, 뒷걸음질로요.” 노아는 그의 말을 따랐다. 그들은 기묘한 춤을 추듯, 일정한 리듬에 따라 뒷걸음질을 쳤다. 곰은 그들을 빤히 지켜볼 뿐이었다. 자신의 트럭 옆으로 다가갔을 무렵, 녹원은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냈다. 그것을 차의 앞문에 대고 몇 차례 내리쳤다. 열쇠와 문이 맞부딪치며, 금속이 깨지는 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곰이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팍에 모으고 있던 앞발을 바닥에 내딛더니 그대로 등을 돌려 달아났다. 산속으로, 그리하여 어둠 너머로 녹아내렸다.        그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곰이 뜯어둔 비닐들을 바라보면서. 창문 안쪽에서는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도근 아니면 란이 깨어난 모양이었다. 녹원은 잽싸게 몸을 돌렸다. 노아는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다. 녹원은 그의 팔을 붙들었다. “노아 씨. 여기에서 다른 거 본 거로 해요. 아무거나 좋아요. 고양이나 멧돼지, 살쾡이. 뭐 그런 게 내려왔다고 그래요. 곰을 봤다고는 하지 마요.” “왜요? 주사님. 방금 보셨잖아요. 곰이에요. 맹수라고요. 제대로 말씀드려야 해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던 눈 한 쌍, 그 눈길이 불에 덴 자국처럼 머릿속에 새겨졌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몇 해 동안 그를 옭아매던 감정들이 이제야 제대로 된 언어로 자리를 잡았다. 곰은 사람과 다르다. 곰은 사람이 아니다. 곰은 사람보다 나은 존재다. 앞뜰에서는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녹원이 낮게 속삭였다. “노아씨. 나는요. 늘 곰에게 산을 주고 싶었어요. 아주 통째로 줘 버리고 싶어요.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다고요. 그게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하겠어요?” 노아가 자신의 팔을 붙든 손을 붙잡아 내렸다. 그는 오래전에 과장이 짓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곧 울음을 터뜨릴 듯 일그러진 얼굴, 여전히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주사님.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우리가 산을 줄 수 있나요? 우린 애초에 산을 가진 적도 없잖아요. 다들 그걸 알아요.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이 저 곰을 찾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찾아서 보호하고, 같이 살려고요. 다들 그걸 위해서 애쓰는 거잖아요.” 노아의 등 뒤로 우도근이 보였다. 그가 집의 벽을 따라 돌아와 가로등 아래 섰다. 그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며 물었다. “뭐 깨지는 소리가 나던데, 무슨 일 있어요?” 노아가 녹원을 올려다보았다. 녹원도 노아를 내려다보았다. 노아씨. 박녹원 주사가 안 무서워? 직원들의 질문이 녹원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쩔 수 없었다. 녹원이 말했다. “노아씨, 먼저 들어가세요. 저도 곧 갈게요.” 노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더니, 이내 포기한 듯 몸을 돌렸다. 우도근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노아를 흘끗 보고서, 녹원에게 다가왔다. 녹원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차 안에서 무엇인가 찾다가 열쇠를 떨어트렸고, 차 문에 부딪힌 열쇠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고. “죄송해요, 주무시는 걸 깨웠네요.” 우도근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녹원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우도근도 집안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과장의 눈길이 뜯어진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가 닿는 순간, 녹원이 입을 열었다. “과장님. 여기 족제비 같은 게 있던데요.” 우도근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족제비요?” 녹원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열쇠를 찾다가 뒤뜰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다가가니 족제비인지 오소리인지가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중이었다고. 꽤 굶주려 보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장은 분리수거함으로 다가가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봉투를 이리저리 비쳐 보더니 혀를 찼다. “아이고, 이걸 하루 늦게 내놨더니…험하게도 물어뜯어 놨네.” “안에 들여놓으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녹원은 너덜너덜한 봉지를 들어 우도근에게 건넸다. 옛 과장이 그것을 받으며 빙그레 웃었다. “시골은 시골이지요?” 박녹원도 마주 웃었다. 지금은 이 정도의 대응이야,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녹원은 방으로 돌아왔다. 벽을 향해 누웠다. 그의 옆에 누운 노아가 뒤척거렸다. 그는 녹원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반대로 돌아눕고,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의 망설임이 애틋한 동시에 힘겹게 다가왔다. 녹원은 반대쪽으로 돌아누워 눈을 감았다. 노아가 움직임을 멈췄다. 녹원은 벽에 드리워진 그늘을 물끄러미 지긋이 보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등 뒤로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울렸다. 노아가 결국 피로에 항복한 모양이었다. 녹원은 몸을 돌려 정면으로 누웠다. 유리창으로 스민 달빛이 천장을 부드럽게 밝혔다. 녹원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불타는 산을 생각했다. 잿빛 산, 폐허처럼 모두 불타버린 산, 잿더미로 뒤덮여 일견 늪처럼 보이기도 하는 산이다. 곰이 그 위를 달리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처럼, 두 발이 아니라 네 발로. 그는 산맥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빠르다. 성체로 자라난 곰들은 사십에서 육십 킬로미터의 속력을 낸다. 그는 타고난 사냥꾼이며 끈기의 화신이다. 바삐 위치를 바꾸는 앞발과 뒷발 너머로 회색 구름이 퍼져 나갈 것이다. 곰은 바위를 뛰어넘고, 나무를 오르고, 강을 건넌다. 어떤 방해도 없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 누구도 그를 쏘지 않는다. 잠든 채로 끌려 나오지도 않는다. 그는 어디든지, 원하는 만큼 간다. 산은 모두 곰의 것이다. 그는 자유롭다. 녹원은 가슴에 양손을 올렸다. 마치 포로처럼.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윽고,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의 얼굴로 번져 나갔다.
  • 성탄절 손님 차에서 권총 갖고 놀던 미 3세 소녀 오발 사흘 뒤 사망

    성탄절 손님 차에서 권총 갖고 놀던 미 3세 소녀 오발 사흘 뒤 사망

    이렇게 깜찍한 세 살 소녀가 성탄절(이하 현지시간)에 권총을 갖고 놀다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발사하는 바람에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했는데 사흘 뒤 끝내 숨을 거뒀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헨더슨 카운티 보안관실은 28일 성명을 발표해 총기 오발 사고로 헬리콥터로 근처 병원에 후송돼 입원 치료를 받아 온 에일리 고든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고 NBC 뉴스 등 현지 언론이 일제히 전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은퇴한 보안관이었는데 비극적인 그날 911 센터에 전화해 “성탄절에 놀러 온 손님의 자동차 안에서 딸이 총을 발견한 것 같다”며 “딸이 총을 들어 곧 쐈다”고 말하는 녹음 파일이 확보돼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이 주의 남서부 에드니빌에 살고 있던 고든은 새 자전거를 타며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오후 2시쯤 손님이 와 자동차를 주차했는데, 에일리가 차 뒷좌석에 올라 약실에 실탄이 장전된 9㎜ 피스톨 권총을 집어들었고, 오발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에일리는 그날 곧바로 긴급 수술을 받고 밤새 진정제를 맞으며 치료를 받고 있다고 어머니가 다음날 알렸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이 수술 비용을 모금하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아직 누구도 범죄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 다만 주 검찰이나 보안관실이나 자세한 사건 경위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범죄일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도 11세 이하 어린이 1049명이 총기와 관련된 사고로 숨지거나 다쳐 과거 8년과 비교해도 가장 많은 피해자가 나왔다고 총기 폭력 아카이브가 밝혔다. 2019년에는 3371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총기 사고로 사망해 암, 폐렴, 인플루엔자, 천식, 에이즈로 사망하는 숫자보다 많다고 비영리단체 어린이 보호 기금은 지적했다.
  • 사랑의 온도탑 83.2도… “더 큰 나눔이 필요해요”

    사랑의 온도탑 83.2도… “더 큰 나눔이 필요해요”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30일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에 나눔온도가 83.2도로 표시돼 있다. 나눔온도는 올해 모금 목표액인 3700억원의 1%인 37억원이 모일 때마다 1도씩 올라가며 목표액을 달성하면 100도가 된다.
  • 권익위 “개인 촌지보다 학부모단체 불법 찬조금이 많아”

    권익위 “개인 촌지보다 학부모단체 불법 찬조금이 많아”

    학교 운동부와 예체능 고등학교에서 촌지나 불법 찬조금 제공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단위보다는 학부모회 등 단체 수준의 금품 제공이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10월부터 2개월 간 전국 1000여개 공립 초중고교 운동부와 25개 공립 예·체능고교 학부모 3113명을 대상으로 부패인식 및 경험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를 30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2.12%가 ‘학부모회 등을 통해 불법 찬조금 모금을 요구받거나 제공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는 개인적으로 촌지를 요구받거나 제공했다는 응답(0.84%)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촌지 경험이 있는 응답자들은 평균 1.79회, 92만 8100원의 금액을 줬다고 밝혔다. 불법찬조금의 경우는 평균 5.09회, 117만 3000원이었다. 촌지·불법찬조금을 요구받거나 제공한 시기로는 ‘주요 경기·대회 전후’가 34.7%(복수응답 가능)로 가장 많았다. 이어 ‘스승의 날·명절·연말연시’(16.7%), ‘수시로’(15.3%), ‘행사와 같은 특별한 때에’(12.5%) 등의 순이었다. 촌지·불법 찬조금 제공 이유로는 ‘자녀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43.1%)가 가장 많았다. ‘관행상·인사차’(37.5%), ‘보다 나은 운동부 운영을 위해’(23.6%), ‘감독·코치·학교 관계자 요구 때문’(22.2%) 등의 응답이 이어졌다. 조사 대상 학교의 예체능 분야 전체 청렴 수준은 10점 만점에 7.79점을 기록했다. 권익위는 해당 자료를 각 시도 교육청과 교육부 등 관계기관에 제공해 청렴 정책 수립시 활용하도록 하고 학교 운동부 운영 등과 관련한 청렴수준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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