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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지에 몰린 교육과학부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휴일인데도 김도연 장관의 지시로 교육과학기술부 실·국장 이상 간부들이 전부 모였다. 1시간 30분여에 걸쳐 난상토론이 벌어졌고 저녁 늦게 보도자료 한 장이 나왔다. 교과부 간부들이 나랏돈(특별교부금)으로 모교에 지원한 것에 대해 반성하는 내용이다. 김 장관은 이번에는 “대통령의 질책을 받았고, 국민들께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다. 전날(23일) 장관이 아닌 교과부 명의로 그것도 사과문이 아닌 어정쩡한 유감성명으로 넘어 가려던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때만 해도 교과부 내에서는 “(특별교부금 지원이)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억울하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하지만 교과부의 이런 안이한 태도에 대해 청와대는 물론 시민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교과부는 뒤늦게 ‘유감표명’ 정도로 넘어 갈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제서야 자세를 낮췄다. 교과부의 한 국장은 “(뒤늦게 사과성명을 낸 것에 대해)유구무언이며 이번에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교과부는 이미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이번 문제만 해도 전교조와 참여연대,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연대 등 3개 교육·시민단체가 오는 27일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감사 결과와 관계없이 교과부로서는 당분간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여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둘러싼 촛불문화제가 거리시위로 번진 것도 적잖은 부담이다. 중·고생들이 지속적으로 참가하고 있어 난감하다. 초·중등 업무를 시·도교육청에 넘기기로 한 상황에서 교과부가 나서서 획일적인 대책을 내놓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사태가 날로 확산되고 있는 것을 방관하고 있는 것도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예상했던 대로 전교조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며 전면투쟁을 선언한 것도 교과부가 풀어야 할 또다른 난제다. 전교조는 지난 24일 창립 19주년을 기념하는 전국교사대회를 갖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와 4·15 교육자율화 조치 철회를 핵심쟁점으로 부각시켰다. 학교자율화에 이은 후속조치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교과부가 예기치 못한 악재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지 주목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MB “잘못된 관행 고쳐야”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김도연 장관을 비롯해 교육과학기술부 간부들이 국비로 모교에 지원금을 보내 물의를 일으킨 것과 관련,“잘못된 관행은 고쳐야 한다.”면서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모교 국비지원에 대한 보고를 받고 “관행에 따른 것이라지만 잘못된 관행은 고쳐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처신이)적절치 못했다.”며 김 장관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고 한다. 류우익 대통령 실장은 회의에서 “잘못된 일”이라면서 그러나 “교과부 장관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이와 관련, 교육과학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모교 방문 지원이 관행적이긴 했으나 간부진의 모교에만 지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교과부는 이어 “김 장관과 우형식 1차관, 박종구 2차관을 포함해 실·국장들이 이미 방문한 10개 학교에 대한 지원 약속은 해당 학교장의 양해를 구해 철회하고 앞으로 학교 방문 때 특별교부금을 통한 격려금 형태의 지원 방식은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김성수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나랏돈으로 ‘개인 생색내기’

    김도연 장관의 지시를 받은 교육과학기술부 간부들이 최근 모교를 방문해 한 사람당 500만원씩을 ‘국민의 혈세’에서 지원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22일 교과부에 따르면 올해 스승의 날(5월15일)을 기념해 기획조정실장·과학정책실장을 비롯한 실·국장 27명이 일선 학교 현장을 방문키로 하고, 이 가운데 6명이 먼저 출신 지역 학교나 모교를 최근 방문했다. 이들 6명은 이 자리에서 한 사람당 500만원씩 도서구입비 등 명목으로 모교에 지원한다는 내용의 김 장관 명의의 증서를 전달했다.이 돈은 국민의 세금인 특별교부금에서 지급된다. 이에 따라 뚜렷한 이유 없이 예산이 집행됐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교과부의 올해 특별교부금은 1조 700억원 수준으로 이 가운데 60%를 방과후 학교 등 시책사업에,30%는 지역현안 수요가 있을 때,10%는 재해 대책비로 쓰고 있다. 교과부는 이번 간부들의 모교 지원비의 경우, 지역현안 수요에 해당된다고 밝혔다.그러나 해당 학교 쪽에서 수요가 있다고 먼저 요구한 게 아니라, 교과부 간부들이 먼저 나서서 지원을 약속하고 나중에 지역현안 수요에 끼워맞추기로 한 것은 결국 ‘편법지원’이라는 지적이다.지난 3월 지방교육청에는 예산을 10% 절감하라고 지시한 교과부가 정작 스스로는 간부들의 출신학교에 나랏돈을 지원하는 등 예산을 개인용도로 집행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교과부 관계자는 “이번 모교방문은 김 장관을 대신해서 간 것이며 희망자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커지자 교과부는 “원래 계획했던 나머지 21명의 모교방문은 계속 하겠지만 500만원씩의 예산지원은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전교조 현인철 대변인은 “일선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명목 하에 교과부 간부들이 국가예산을 개인돈을 쓰듯 남용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명지대 농구부 감독 박상관씨

    명지대 농구부 사령탑에 박상관(39) 코치가 승진, 임명됐다. 박상관 신임 감독은 대경상고와 명지대를 거쳐 실업 삼성전자, 프로농구 삼성과 동양(오리온스의 전신)에서 뛰었다.03∼04시즌까지 현역으로 뛴 뒤 2004년 3월부터 모교인 명지대 코치를 맡아왔다.
  • ‘하늘의 토지’에서 편히 쉬소서

    지난 5일 별세한 박경리 선생의 영결식이 8일 오전 8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문학인장으로 엄수됐다. 도종환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 시인 등 유족과 정·관계 인사 등 150여명이 참석,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박완서, 최일남, 오탁번, 박범신, 윤흥길, 김원일, 조정래, 김초혜, 이근배, 김병익, 김치수, 김화영 등 문인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외손자 세희씨가 든 위패와 최유찬 연세대 교수가 든 영정을 앞세우고 소복을 입은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이 뒤따르는 가운데 고인의 관이 영결식장에 들어오자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어 정현기 세종대 교수가 고인의 약력을 소개하고 고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가장 순수하고 밀도가 짙은 사랑은 허덕이고 못 먹는 것,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연민’”이라는 고인의 육성은 장례식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박완서씨는 조사를 읽어 내려가다가 “선생님 손의 온기가 지금도 제 찬 손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는데….”라는 대목에서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시인 이근배씨는 고인의 영전에 바치는 조시를 통해 “선생님은 흙과 물, 나무, 짐승, 세상 사람들, 소설, 문학의 어머니”라면서 “부디 사랑의 손길을 한 번 더 잡아주소서.”라며 고인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유족을 대표해 김영주 관장은 “어머니께서는 아름답게 사시다가 아름답게 가셨습니다. 어머니 죽음을 애통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울먹이며 힘겹게 인사말을 전했다. 유족과 내빈들의 헌화를 끝으로 고인의 유해는 최근까지 머물던 강원도 원주로 떠났다. 원주에서는 고인의 단구동 옛 집터에 마련된 토지문학공원에서 추모제를, 매지리 토지문화관과 모교인 경남 진주여고에서 노제를 지낸 뒤 이날 오후 고인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에 도착해 하룻밤을 지냈다.9일 오전 통영시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헌무·헌다례 등 추도식에 이어 산양읍 신전리 미륵산 기슭에서의 마지막 안장식을 끝으로 고인은 영면에 들었다.김규환 김승훈기자 khkim@seoul.co.kr
  • [씨줄날줄] 인명진 목사/오풍연 논설위원

    1986년 6월1일 서울 양천구 목4동 789-21. 인명진(63) 목사 집에서 교회설립 준비를 위한 첫 예배를 드린다. 서울 구로구 갈릴리교회는 이렇게 해서 태동했다. 행복한 삶과 평화를 일구어 가는 ‘갈릴리 공동체’의 모체도 이처럼 빈약하기 그지 없었다. 이곳에서는 예배 순서뿐만 아니라 공동식사 준비, 설거지 등 모든 일에 남녀가 똑같이 참여해 남녀 평등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1996년에는 영등포노회 최초로 여성 장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 교회가 더욱 유명해진 것은 당회장인 인 목사 때문이다. 서울 대형 교회에 비해 교세는 아직 보잘 것 없다. 신도수도 450∼500명에 불과하다. 적극적인 사회 선교 경험을 가진 진보적인 교인부터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보수적인 교인이 공존하는 공동체다. 보수적 대형 교회인 소망교회와 협력해 사회선교 활동을 펼친 사례는 한국교회사에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을 듯하다.1970∼80년대 인 목사는 사회 선교에 중점을 두고 목회 활동을 했다.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4차례나 투옥됐다.1987년 6월 항쟁 때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을 맡아 주역으로 활동했다. 공안당국엔 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는 당진 태생으로 대전고를 나왔다. 다들 선망하는 명문대를 포기하고 한국신학대학으로 진로를 튼다. 이 때부터 고난과 희생의 역정이 움텄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왕성한 사회활동을 할 때 모교 출신 검사들이 많았다.“도시산업선교회의 대부로 명성이 높았던 기억이 난다.”는 말로 평가를 대신한다. 좀 더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심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때문인지 그도 모교 행사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맡아온 그가 최근 사의를 표명했다. 그동안 ‘저승사자’로 불리기도 했다. 절친한 친구사이인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김진홍 목사와 시각차를 드러낸 것도 같은 연유일 게다. 김 목사는 “새 정부의 잘못을 일단 덮어 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인 목사는 “잘못을 질책해 바른 길로 가도록 하는 게 이명박 정부를 돕는 길”이라고 주장했단다. 누구의 지적이 옳을까.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MB “폐암수술 받으라 권유하려 했는데…”

    MB “폐암수술 받으라 권유하려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6일 고 박경리 선생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조문했다. 이 대통령은 오전 11시쯤 류우익 대통령 실장,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이동관 대변인 등과 함께 빈소를 찾아 영정에 헌화한 뒤 분향, 묵념을 했다. 또 이 대통령은 고인에게 추서된 금관문화훈장을 직접 영정 옆에 놓고, 유족인 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 시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뒤 박완서 장례위원장, 진의장 통영시장 등과 고인과의 인연과 장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대통령은 “조만간 뵈면 폐암수술 받으시라 권유하려고 했다.”며 안타까운 뜻을 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날 오후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빈소를 찾았다. 김 전 대통령은 “토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애통함을 금할 수 없다.”며 “다른 세상에서 복을 누리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김근태 국회의원, 정동영 국회의원, 김기열 원주시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도 걸음해 조의를 표했다. 문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는 “박경리 선생님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있어 돌아가셨지만 아직 살아계신 것 같다.”며 “한국의 역사를 개인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분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죽음은 한 연대기의 종지부를 찍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소설가 전상국씨도 “박경리 선생님은 글 쓰는 사람들 모두에게 큰바위 얼굴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이 밖에 소설가 오정희·유시춘·신경숙, 시인 정현종ㆍ오탁번, 시나리오작가 신봉승, 만화 ‘토지’의 오세영 화백,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마광수 연세대 교수 등도 조문했다. 한편 고인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와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군, 모교인 진주여고에 차려진 분향소에도 이날 하루종일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통영시 중앙동 문화마당에 설치된 야외분향소는 오전 10시부터 지역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이 줄지어 분향했다. 정해룡 통영예총 회장은 “선생의 문학 뿌리와 원류는 통영의 자연 풍광과 유년시절의 추억이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의 유해는 8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에서 발인, 같은 날 원주 토지문학공원에서 노제를 치른 뒤, 모교인 진주여고를 거쳐 장지인 경남 통영으로 운구된다. 그리고 9일 오후 1시 영결식을 지내고 산양읍 미륵산 기슭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규환 이정규 윤설영기자 khkim@seoul.co.kr
  • [30일 TV 하이라이트]

    ●60분 부모-2.0(EBS 오전 10시) 영유아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의 ‘양육 스트레스’에 관한 전화 상담을 받는 시간. 아기 발달과 단계별 발달 놀이, 아기 기질에 맞는 육아방법, 아기 발달을 돕는 양육환경 등 영유아 자녀를 키우면서 마주치게 되는 부모님들의 고민과 궁금증을 아기발달·부모교육 전문가 김수연 선생님과 함께 풀어본다.   ●코끼리(MBC 오후 8시20분) 물건 못 찾고 덜렁대는 해영, 잔소리 많고 꼼꼼한 영수. 그 둘을 지켜보는 막내딸 세영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한편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전덕배. 이리저리 눈칫밥만 먹었지 원하는 메뉴를 식탁에 얻어낼 힘이 없다. 그런데 복수의 한 마디에 집안 최고의 요리사 창숙은 곧바로 음식을 대령한다.   ●아빠 셋 엄마 하나(KBS2 오후 9시55분) 하선을 직접 키우자는 경태의 제안에 수현과 광희는 펄쩍 뛰지만, 정자기증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에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다. 나영은 그런 세 남자의 제안에 감동받는다. 한편 찬영은 계획한 프로젝트 문제로 나영과의 재회에 성공하고, 열성적으로 일하는 나영의 모습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온에어(SBS 오후 9시55분) 첫방송 시청률이 궁금한 영은은 아침부터 다정에게 빨리 시청률을 알아 보라고 한다. 경민은 시청률이 기대이상으로 나오자 긴장이 풀리며 한숨을 내뱉는다. 강국장은 영은이 사무실에 나타나자 구세주가 나타났다며 호들갑을 떤다. 한편 상우를 찾아간 체리는 7부 대본에서 자신의 장면은 몇 곳 안 된다며 흥분한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있는지조차 몰랐던 담석. 담석은 담낭(쓸개) 속에 생긴 결석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흔한 질환으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생활환경과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담석증 환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담석증의 원인과 치료법 등에 대해 알아본다.   ●클로즈업(YTN 낮 12시35분) 우주개발의 역사는 우주산업의 신천지개척과 맞닿아 있다. 이번 이소연씨의 우주비행은 우주로 첫발을 내딛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광활한 우주는 지구의 성장동력이다. 최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이 우주산업이요 우주기술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우주산업의 미래에 대해 알아본다.
  • [김달진 문학상] 김달진의 생애와 작품세계

    [김달진 문학상] 김달진의 생애와 작품세계

    월하(月下) 김달진 시인은 생전 평생을 한결같이 세속에서 벗어나 세상을 관조하며 인간이 지향해야 할 숭고한 정신 세계를 추구한 시인이요 한학자다. 세속의 명리를 깃털보다 가볍게 여긴 시인의 삶은 천민자본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 사표(師表)가 되기에 충분하다. 1907년 2월 경남 창원군 웅동(현 진해시 소사동)에서 태어난 월하는 항일 민족 기독학교인 계광보통학교를 졸업했다.1926년 서울 경신중학 재학중 일본인 영어교사 추방운동을 주도하다 퇴학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인간이 지향해야 할 숭고한 정신세계 추구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모교 계광보통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1929년 순수 문예지 ‘문예공론’에 시 ‘잡영수곡(雜詠數曲)’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시인은 ‘시원’‘시인부락’‘죽순’의 동인으로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 ‘유점사를 찾는 길에’‘나의 뜰’‘샘물’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항일교육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계광보통학교가 폐교되자 민족 현실에 절망한 시인은 1934년 금강산 유점사에 들어가 수도생활에 매진했다. 시인은 1936년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 불경 연구의 길을 걸었다. 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40년 시집 ‘청시(靑枾)’를 발표했다. 유점사로 돌아간 시인은 1941년 ‘불령선인’이라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일제 경찰을 때려 눕히고 중국 용정으로 건너갔다. 이곳에서 소설가 안수길을 만나 그가 발간하던 잡지 ‘싹’에 ‘향수’ 등 시를 게재하기도 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서울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 서울을 떠나 창원 남면중학교 교장, 해군사관학교 교관 등을 거쳐 1973년 동국대학교 역경원 역경위원을 지냈다. 이 기간에 ‘한국선시’‘법구경’‘금강삼매경론’ 등 불교서적도 번역했고 ‘장자’‘한산시’ 등 동양고전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시작 활동은 뜸해져 문단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역경 작업에 몰두하던 시인은 1967년 ‘임의 모습’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재개한 이후 ‘벌레’‘속삭임’‘낙엽’‘포만’ 등을 발표했다.1983년 불교정신문화원에 의해 한국고승석덕(碩德)으로 추대된 시인은 시전집 ‘올빼미의 노래’와 장편 서사시집 ‘큰 연꽃 한 송이 피기까지’ 등을 펴냈다.1989년 6월 ‘한국 한시’(전 3권)의 완간을 앞두고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달진 시인은 일제시대부터 제도권 문단의 편입을 거부하고 고고한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이 시 속에도 오롯이 녹아들어 그만의 순수한 시적 영토를 지켰다. 시인은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관념에도 편벽되지 않고 자연 본연의 모습을 질박한 언어로 담아냈다.“여기 한 자연아(自然兒)가/그대로 와서/그대로 살다가/자연으로 돌아갔다./ 물은 푸르라/해는 빛나라/자연 그대로./이승의 나뭇가지에서 우는 새여./빛나는 바람을 노래하라.”(‘비명(碑銘)’) ●동양고전·한시·불교서적 번역에도 힘써 시인의 시어는 평이하다. 하지만 청아한 정신주의적 세계관을 표방하는 시인의 도저한 시적 상상력은 끝간 데가 없다. 시인의 작품은 물질만능주의에 휘둘리는 이 시대에 인간 본연의 순정한 본성을 일깨워 주는 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시인의 작품은 자연에 대한 관조와 종교적 초월의 경계 속에서 태어난다. 그것은 곧 우리 시사(詩史)에 면면히 이어져온 순수 서정시와 동양적 미학을 접목,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려는 몸짓이다. 노장사상과 불교사상으로 대표되는 동양적 사유의 전개, 그것이 바로 월하 시의 요체다. 김달진문학상 운영위원인 오세영(서울대 명예교수) 시인은 “월하의 시세계는 서구의 이미지스트적 감각과 한국의 토속적인 자연, 동양사상의 합일로 요약된다.”면서 “시인의 작품들이 은둔생활에 가까운 생활로 대부분 묻혀 있는 만큼 그의 문학사적 위치를 제대로 찾아주려면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학교 투명성 뿌리째 흔들

    학교 투명성 뿌리째 흔들

    “정부마저 손을 뗀다니 걱정입니다. 어쩌겠어요.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요.” 서울의 한 고등학교 학부모 조모(53)씨는 17일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는 학교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가 통제해 왔던 관련 지침들이 없어지자 걱정부터 앞선다. 평소에도 학교가 일방적으로 진행해온 교복 구매나 부교재 선정에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교과부 “운영위가 하면 될 것을…” 교과부가 학교 투명성 관련 지침들을 대거 폐지하자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교과부는 학습 부교재 선정 및 초등학교 어린이신문 단체구독 금지, 교복 공동 구매,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 계획 등을 즉각 폐지했다. 하지만 ‘학교 자율화’란 명분으로 지나치게 서두른 게 아니냐는 비난도 거세다. 교과부 관계자는 “매년 4∼5월 교과부가 촌지 방지 지침을 내리기만 했을 뿐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면서 “모든 학교에 학교운영위원회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또 통제하는 것은 행정낭비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도연 교과부 장관도 이날 모교인 서울 용산 초등학교를 방문,“일부에서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 계획’,‘학습부교재 선정 지침’,‘교복공동구매 지침’ 등을 폐지한 데 대해 너무 성급한 게 아니냐고 하는데, 선생님들이 자긍심을 갖고 품위를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고 강변했다. ●운영위 감시기능 ‘글쎄’ 그러나 교과부가 신뢰하고 있는 학운위가 학교의 감시 기능을 제대로 해내고 있을까. 학부모와 교육 관련 단체들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학운위 위원 선출 과정부터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학교장의 ‘코드 인사’를 위해 학부모의 ‘직접 선거’를 막고 친(親)학교적인 학부모를 암묵적으로 대표로 선출시키는 관행이 많이 퍼져 있다.(서울신문 4월14일자 8면 참조)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의 전은자 교육자치위원장은 “매년 4∼5월이 되면 불법 찬조금(촌지) 신고센터를 운영해 신고를 받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다.”면서 “학운위 선출과정이 불투명하다 보니 학운위가 나서서 촌지를 걷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올해는 학교 자율화 열풍 탓에 3만∼5만원이었던 불법 찬조금 규모가 5만∼15만원까지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복 공동구매나 부교재 선정, 초등학교 신문 강제 구독도 마찬가지. 학운위가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고 있다 보니 비리 사례는 하루가 멀다하고 나온다. 전교조 관계자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이 사라지면서 부패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여고교사 하숙방의 소문

    여고교사 하숙방의 소문

    전남 순천시 S여고생 1천여명이 지난 7월13일 아침 9시30분 학교문을 뛰쳐나와 『누명을 벗겨달라』는「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이색「데모」. 기말시험 기간이었지만 시험을「보이코트」하자는게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스캔들」을 밝혀달라는 것. 번화가로 나와 시민들의 눈길을 모으다 경찰의 제지로 학교에 되돌아간「데모」에 얽힌 사연은-. 새벽·밤 특별과외(課外)가 불씨…사모님이 밥지러 간 새에 말썽의 주인공은 지난 3월까지 이 학교 영어교사이자 학생과장직을 맡았던 강(姜)모교사(36). 4월1일자로 자리를 옮겨 지금은 벌교 모 상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강교사가 S여고에 부임한 것은 69년7월. 미끈한 용모에 재치있는 말솜씨로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영어보다는 오히려 춤과 노래솜씨가 더 뛰어났고 별명도 자칭「알랑·들롱」. 일요일이면「오토바이」를 몰고 순천 시내를 누비거나 사냥을 즐기는 멋장이(?)교사였다. 그의 월급만으로는 호방한 멋장이 생활을 감당할수 없었던지 하숙방에 제자들을 불러들여 과외수업을 시킨데서 문제는 발단. 하숙방은 시내 거저동 고(高)모씨 집의 문간방 2간. 20여명을 새벽과 저녁반으로 갈라 한사람에 1천원, 2천원씩의 돈을 받고 영어를 가르쳤다. 이들중 2,3명의 여학생을 그가 건드린 것이 밝혀진 것.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는 이혼을 당하고 벌교 모 상고로 쫓겨났지만『나만이 당할소냐』하는 듯, 그가 다른 교사 2,3명도 제자들을 상대로 같은 짓을 했다고 관계요로에 진정, 말썽이 커졌다. 관계당국의 조사결과 그의 진정사실은 허무맹랑한 모함으로 낙착됐지만 이 추문이 시민들에게 퍼지자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은 등·하교하는 S여고생들에게 손가락질 하며『아줌마 간다』과일을 사먹으면『신것 먹을 때가 됐다』는 등 모욕적인 희롱을 하기시작했다. 20개월동안 고씨집 방을 빌어 과외수업을 해온 강교사가 과외수업맡을 학생들을 끌어모은 수법도 이색적. 학생과장직을 맡고 있었던 그는 학생들의 교외생활지도를 핑계로 극장등에서 적발한 학생들을 자기 하숙으로 불러 강제로 과외수업을 받게 해왔다는 것. 강교사의 추행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은 3월26일 아침6시30분. 결혼한지 한달보름도 채 못된 신부 이(李)모여인(31)에게 현장을 들킨 것. 이여인이 이웃에 사는 친정에서 아침밥을 지어 돌아와 보니 아침반 여학생 한명이 방금 자기가 일어났던 이불속에서 남편곁에 누워있었다는 것. 이로써 이들의 결혼생활은 파탄에 빠지고 이여인의 호소로 학교당국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말았다. “선량한 학생의 피해 구제헤 달라”고「데모」 강교사는 지난2월7일 이여인과 결혼하기 전에도 같은 학교에서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신(申)모여교사와 한달남짓 동거생활을 하다가 S무용학원을 경영하는 이여인과 결혼해버렸었다. 하숙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밥을 이웃 이여인의 친정에서 지어 날라다 먹었는데 첫날밤부터 강교사가 이여인에게 빚30만원을 갚아달라고 조르다가 거절당하고는 부부싸움이 잦았다는 이웃 사람들의 말. 아뭏든『더 이상 수모를 당할수 없다』며「데모」에 나섰던 여학생들의 요구조건은 (1)파렴치한 강교사를 교육계에서 떠나게 하고 (2)말썽난 여학생을 퇴교시켜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없게해 달라는 것. 이에 대해 학교당국은 사친회 간부들과 함께 교장이 광주에 있는 도교위로 달려가 이같은 학생들의 요구조건을 전하는 등, 추잡스런 이문제가 더 이상 번지지 못하도록 애쓰고 있다. 이에 대한 각계인사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최인수(崔仁樹)씨(대한 교련 공보담당)=교직자로서 그럴 수가 있겠는가? 사실이 아닌 와전으로 믿고 싶다. ●손영경(孫永坰)씨(경기여고 교장)=진상을 몰라 경솔히 말할수 없으나 어쨌든 학생들이 학교를 박차고 나와「데모」를 벌인다는 것은 안될일이다. ●최미하(崔美河)씨(가정주부)=다 큰 딸을 둔 주부로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순천(順天)=오형묵(吳亨默)기자> [선데이서울 71년 7월 25일호 제4권 29호 통권 제 146호]
  • SBS 윤현진 아나운서 새달 결혼

    SBS 윤현진 아나운서 새달 결혼

    SBS 윤현진(31) 아나운서가 5월10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동갑내기 재미교포 브라이언 이씨와 화촉을 밝힌다. 윤 아나운서는 14일 “모교인 숙명여대 행사를 진행하던 중 숙대 총동문회장인 이씨의 어머니를 알게 돼 지난해 10월 이씨를 소개받았다.”고 밝혔다. 이씨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을 졸업했으며 현재 국내 중견 IT업체인 부친의 회사에서 해외사업부문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 로스쿨에 대한 3가지 오해와 그 진실

    로스쿨에 대한 3가지 오해와 그 진실

    지난 7일 로스쿨 입시안이 발표됐지만 수험생은 입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아직 갈피를 잡기 어렵다. 로스쿨 시행 첫 해인 만큼 제도 정착이 되지 않은 터라 준비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수험생 사이에는 로스쿨과 관련된 ‘헛소문’도 많다. 수험생의 3가지 ‘오해’와 ‘진실’을 알아본다. ●Q:법학 부전공하면 전공자에 포함된다? A:아니다. 법학 부전공자는 ‘법학사’학위가 없기 때문에 법학 전공자로 볼 수 없다. 로스쿨 법에 비법학 전공자를 3분의1 이상 뽑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누가 ‘비법학 전공자인가.’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법학 부전공자도 법학 학위 소지자로 인정해 ‘법학 전공자’로 분류한다는 말도 나돌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학위가 나오지 않는 부전공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가령, 경제학 전공자가 법학을 부전공했다면 당연히 이 사람은 ‘경제학사’ 학위를 받을 뿐 법학사 학위는 없다. 따라서 이 사람은 비법학 전공자다. 가장 애매한 것은 법학 이중전공자의 사례다. 만일 학부시절 경제학과 법학을 이중전공했다면 이 사람은 법학 전공자일까, 비법학 전공자일까.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지난 11일에야 꾸려지기 시작해 아직 이 부분은 정확히 결론나지 않았다. 일단 ‘둘 다 가능하다.’라는 말이 타당성을 얻는다. 호문혁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은 “법학과 비법학 분야를 이중전공했다면 비법학사 분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즉 법대를 졸업했더라도 학부 시절 경제학을 이중전공했다면 비법학사로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Q:학부는 모교인데 모교가 아닌 다른 대학원을 나왔다면 ‘비모교’로 선발될 수 있다? A:아니다. 학부가 기준이다. 학부가 모교라면 그 어떤 경우라도 모교가 바뀔 수 없다. 로스쿨법은 3분의1 이상을 모교가 아닌 다른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모교의 기준은 ‘학부 학위의 출처’다. 대학원을 학부와 다른 대학에 갔을지라도 학사를 받은 곳이 기준이 된다. 반대로 학부는 모교가 아닌데 대학원이 모교라면 ‘비모교’가 된다. 로스쿨은 일종의 대학원이기 때문에 다른 대학원의 석사 학위는 모교를 정하는 데 의미가 없다. 결국 ‘학부의 학위’가 중요할 뿐 이후 어떤 대학원을 나왔는지는 경력사항 말고는 전공·모교 등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Q:학점과 영어성적이 낮으면 많이 불리? A:아니다. 학점과 영어성적은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지금도 인터넷의 로스쿨 정보공유카페에는 학점과 영어성적을 공개하며 ‘과연 이 점수로 로스쿨 입학이 가능할까.’라는 글이 꽤 많이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의미가 없다. 합격의 당락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법학적성시험(LEET)과 면접이다. 대다수의 대학은 1단계에서 LEET와 학점, 공인외국어 시험성적을 반영한다. 그러나 대학성적과 공인 외국어시험은 당락을 좌우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영어 성적은 ‘기본점수’만 넘으면 모두 동등하다. 학점 반영은 차등을 두기는 하지만 학생 간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변별력은 LEET가 갖는다.1단계 전형에서 정원의 3배수에서 8배수까지 상당히 많은 인원을 추리기 때문에 변별력이 크지 않은 학점의 영향력은 감소한다. 결국 ‘LEET’와 2단계 ‘논술’이 당락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대한민국, 우주를 품다]“지·덕·체 갖춘 언니가 자랑스러워”

    ‘이소연 선배님 파이팅! 무사귀환을 바랍니다.’ 8일 오후 이소연씨가 탄 소유스호가 하늘로 발사되려는 순간, 이씨를 격려하는 플래카드가 펄럭이는 가운데 이씨의 모교인 광주과학고 학생들은 역사적 ‘카운트 다운’을 함께 외치며 자축행사를 가졌다. 학생·교사·학부모 등 170여명은 이날 학교 강당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로켓이 불을 뿜으며 하늘로 힘차게 치솟자, 일제히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터뜨렸다. 2학년 국혜원(17)양은 “지·덕·체를 두루 갖춘 언니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우주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1학년 윤성환(17)군은 “한국이 우주 강국이 되도록 기초과학을 키우자.”고 말했다. 이씨는 1997년에 이 학교를 졸업했다. 이날 운동장에서는 ‘첫 우주인 탄생’을 기념하는 모형로켓 발사대회, 학생음악회, 농악, 무사귀환을 비는 촛불 합창 등 행사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모형 로켓이 하늘로 오르자 로켓에 매달린 현수막이 펴지면서 ‘경축,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탄생’이란 문구가 펄럭였다. 김우종(59) 교장은 “소연양이 우리나라 첫 우주인이 되면서 후배들에게 우주에 대한 무한한 도전정신과 꿈을 키워줄 것으로 본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광주시내 전역에서도 이 고장 출신 우주인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가 줄을 이었다. 이씨의 부모가 다니고 있는 광주 서구 광천동 성지교회는 이날 오후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기도회를 열었다. 광주시는 총선이 끝난 10일 시청 문화광장에서 6000여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광주의 딸 이소연, 우주비행 성공기원 촛불 한마음 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씨가 태어나고 자란 서구 광천동 마을 주민들은 얼마 전 돈을 모아 풍암체육공원에 ‘이소연 나무’(목련)를 심기도 했다. 시민 김선광(37)씨는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우주시대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도록 과학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코미디계 이효리’에서 사회운동가 변신 권귀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코미디계 이효리’에서 사회운동가 변신 권귀옥

    과거시절 “배고파 죽겠네.”라고 했다면 요즘에는 “바빠 죽겠네.”라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심심해 죽겠네.”가 아닐까. 40대 이상의 장년층에게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의 ‘외화’를 꼽으라면 아마 ‘왈가닥 루시’나 ‘홀쭉이와 뚱뚱이 대소동’ 등이겠다.1970년대 중반 국내 방영된 ‘왈가닥 루시’는 쿠바 음악밴드를 지휘하는 리카르도와 그의 아내 루시의 일상생활을 다룬 미국의 전설적 시트콤으로 회자된다. 이 무렵 우리 안방극장에는 코미디계의 1세대로 일컫는 인물, 즉 배삼룡, 구봉서, 서영춘 등을 비롯해 배일집, 권귀옥, 배연정, 남철·남성남, 그리고 뚱뚱이와 홀쭉이의 양훈·양석천 콤비 등이 당시 간판 코미디프로인 ‘웃으면 복이와요’를 통해 등장했다. 이들은 말 그대로 “배고파 죽겠네.”라고 했던 시절, 온갖 시름에 지친 국민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이 가운데 권귀옥은 한국의 ‘왈가닥 루시’로 통하며 지금의 이효리처럼 많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특히 ‘늘씬한 미녀 미스 권과 땅딸이 이기동’은 단연 압권이었다. 인기 절정이던 그럴 즈음,1980년 나이 서른에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려 아쉬움을 더했다. 그간 한국에 들어와 간간이 방송활동을 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난 1997년, 미국 생활을 완전히 정리한 이후 봉사활동을 하며 지점토와 도예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1970년 MBC탤런트 공채2기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본래 문학도를 지망할 만큼 그는 예술과 문학에 조예가 깊다. 하여, 귀국하자마자 한양여대 도예과 한홍곤 교수한테 찾아가 도예를 배웠다. 10년 세월이 지난 지금, 나름대로 ‘흙의 이치’를 터득했고 얼마전에는 ‘권귀옥의 흙장난’이란 개인전까지 열었다. 이때 정·재계 인사들이 많이 찾아와 평소의 인간관계를 입증했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대부분 인간 시리즈. 전시 도록의 인사말을 빌리면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못된 인간 빼고 다, 어린이들은 몽땅 예쁘다.”란다. 전시 수익금은 전부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했다. 요즘에는 ‘청계천’을 주제로 한 ‘흙장난’에 여념이 없다. 왜 흙에 파묻혔을까. 알고 보니 깊은 뜻이 있다. 한국수양부모협회(회장 박영숙)의 후원회장을 맡아 뜻에 동참하는 전국의 순수 ‘개미회원’들에게 보답 차원에서 도예작품을 하고 있는 것. 즉 ‘사회운동가=도예가’로 제2의 삶을 사는 셈이다. 서울 정릉동의 전시실에서 권씨를 만났다. 분명 1950년생인데 40대의 얼굴로 보였다. 여전히 아름답다고 했더니 “철이 없어 그렇다. 어린이하고 자주 지내니 도로 젊어진 것 같다.”며 웃는다. 또 한 달 전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이젠 고아가 됐다는 심정도 내비쳤다. 먼저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우리나라는 현재 2명당 1명꼴로 아이를 낳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저출산국가이죠. 이대로 간다면 2305년이면 한국소멸을 알리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막내아이가 태어납니다. 국가는 물론이요, 민족과 문화가 통째로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요즘 미래국가로 떠오르는 인도를 보십시오.1명당 6.8명을 낳고 있습니다. 미래는 ‘쪽수’에 달려 있지요.” ▶수양부모협회는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 도움과 사랑을 돌려줘야 할 때입니다. 저는 결혼은 안했지만 아이를 낳아 키워 미혼모나 해체가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이서 한 아이를 키우기도 힘든데 혼자서 아이를 키울 때 국가에서 지원은 못해줄망정 손가락질 하면 안 되거든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를 고아원 보낼 때 어떤 경우에는 친권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렇게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분의 자녀를 보통 가정에서 잠시 키우다가 낳은 부모가 정상적인 생활을 찾았을 때 다시 돌려주는 운동에 앞장서기로 했습니다. 협회는 해체가정에 대한 대안모색에서 출발했지요. 또한 2010년이면 고아원이 대부분 없어지게 돼 있어 앞으로는 수양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협회는 외환위기(IMF)때 생겼습니다.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알고 지내던 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 박영숙씨를 만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힘을 모아보기로 했지요.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최저 출산국가이면서도 고아 수출국가이기도 해요. 이젠 우리 땅에서 낳아진 아이들을 우리가 키워야 합니다. 외국에 입양된 아이들이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비운의 삶을 사는 경우도 많거든요.” ▶유명 코미디언에서 이젠 사회운동가로 나선 셈입니다. “사회운동이라기보다…, 미국에 살면서도 사회단체 등에서 식사와 청소 도우미 등 자원봉사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거기서 우리나라가 ‘고아수출국이다’ ‘아동학대가 많다.’ 등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창피했습니다. 아무리 고아라도 동물처럼 집단생활을 하면서 키운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또 고아원에서 가끔 버려지는 아이들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매우 아팠습니다. 내 아이가 소중하면 이웃 아이도 당연히 소중한 것이 아닙니까.” ▶원래부터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나요. “부산 동래여고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부산시립병원에 버려진 아이들이 많았지요. 그때 아이들은 사회 저명인사 등 아무 이름이나 붙여졌는데 어느날 ‘신성일’‘엄앵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재미삼아 찾아갔어요. 그런데 먹을 것, 기저귀, 옷가지 등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을 보고 너무 불쌍해 그 자리에서 막 울었습니다. 그래서 걸스카우트에 가입했고 매주 일요일마다 그 아이들과 만났지요. 한번 안아주면 제 목을 꼭 껴안았던 그때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도예는 언제부터 하셨나요. “저는 도예라는 말을 안쓰고 ‘흙장난’이라고 합니다. 한 10년정도 됐어요. 원래는 지점토를 했어요(‘종이 흙 입문’의 공동저자). 그런데 오래 못가고 잘 바스러지더라구요. 그래서 흙으로 전환했어요. 저는 철들고 나서 손톱을 길러본 적이 없어요. 뭔가 자꾸 만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릴 때 놀이터에서도 흙장난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요새는 ‘고통시리즈’와 ‘청계천시리즈’를 하고 있습니다. 청계천에 맑은 물이 흐를 때 너무 기뻐서 ‘도심속의 청계천’을 하게 됐지요. 제가 만든 작품은 협회 후원에 참여하는 분들에게만 선물로 주기 때문에 작품가치가 매우 높지요.(웃음)” ▶어떤 도예기법인가요. “저는 형식과 기법을 다 무시해요. 제맘대로 흙을 주무르지요. 또 절대 그릇을 안만들어요. 물레도 쓰지 않고요. 흙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물을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돼요.‘고통시리즈’를 하면서 못 하나 박아줄 남자도 없이 혼자 흙과 씨름하며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들한테는 항상 웃습니다. 제 DNA는 아버님을 200% 닮았거든요.” 권씨는 어릴 적부터 부산 서대신동 부잣집 딸로 통했다. 부친은 부산일보 기자 출신으로 글과 그림에 능했다고 한다. 만화가였던 오빠 권성국은 ‘허어선생’으로 한국일보 등을 통해 필명을 날렸다. 언니와 동생도 미대와 음대를 각각 나와 예술가 집안이나 다름없다고 권씨는 말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용도폐기가 안됐으면 합니다. 흔히 세가지 부류가 있지요. 사회에 필요한 사람, 있으나마나 한 사람, 또 있어서는 안될 사람 등이지요. 이제는 우리 사회에 대해 밥값을 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아낌없이 (마음을)퍼줄 생각입니다. 하루에 50번씩 웃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이지요.” 그의 도예작품은 얼마전 동래여고 교지에 표지그림으로 실렸다. 코미디언 권귀옥이 아닌 도예가로 모교가 공식 인정(?)했다. 그는 수양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늘 함께 지낸다. 아울러 이들을 보면서 소중한 도예작품(선물)을 만든다. 그는 “요즘에는 다들 ‘바빠 죽겠네.’라고 하지만 곧 ‘심심해 죽겠네.’라고 할 텐데 심심하지 않도록 열심히 친구들과 더불어 살겠다.”고 했다.“다음달 남산에 ‘흙장난’이라는 사랑방을 오픈하거든요. 심심하거든 그리 놀러오세요.”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0년 부산 출생 ▲68년 동래여고 졸업 ▲70년 MBC공채2기 탤런트 ▲74년 코미디언으로 전향 ▲76년 MBC 최우수연기상(코미디부문) ▲77∼85년 MBC라디오 ‘가요열차’‘싱글벙글쇼’‘라디오가요퀴즈’ ▲86년 KBS라디오 ‘저녁의 가로수를 누비며’ 진행 ▲98년 ‘사람 주제’의 도예활동과 출산장려운동 참여 시작 ▲2006년 도예 첫 개인전(경향갤러리) ▲현재 사단법인 한국수양부모협회 후원회 회장. 도예작품 활동 # 주요 코미디프로 출연작 MBC-TV 웃으면 복이와요·부부만세·코미디극장·쇼반세기 등 # 주요 도예전 권귀옥의 흙장난(개인전)외 그룹전 3회 # 저서 ‘종이 흙 입문’ 공동저자
  • 장쩌민 논문 왜?

    |베이징 이지운특파원|82세의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중국 에너지 문제를 주제로 장문의 논문을 내놓아 그 의도를 둘러싸고 분분한 해석을 낳고 있다. 정계를 은퇴한 중국 최고지도자들이 국가 대사에 대해 공개적인 의견을 낸 전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 문제는 올 들어 ‘고유가 파동(油荒)’ ‘전력난(電荒)’ 등으로 민생의 핵심 현안으로 자리잡았으며,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 현 지도부에 대한 중대한 시험대로 작용하고 있는 중이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4일 “‘은퇴한 지도자들이 국가 주요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집단적 합의와 계파 정치 풍토 속에서 장 전 주석이 퇴임 이후에도 분명한 영향력을 갖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그는 지금도 막후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건강 이상설’을 거론하며 “외견상 학술적 논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육체적으로’ 여전히 국가에 공헌할 만한 능력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논문은 장 전 주석의 모교인 상하이 교통대학의 112주년 기념일에 즈음해 학교 학술지에 실렸다.2만 5000자에 달하는 논문 ‘중국 에너지문제에 대한 고찰’은 에너지 문제의 중요성, 중국 안팎의 상황, 발전전략 고찰, 발전 정책 등 크게 4부분으로 이루어졌다.jj@seoul.co.kr
  • [현장 행정] 송파 ‘공공보건정보화 사업’

    [현장 행정] 송파 ‘공공보건정보화 사업’

    단돈 2만원으로 전문가에게 영양상담을 받는 ‘식생활정보센터’에서 1년에 100여개 항목의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는 ‘명품건강클럽’을 운영해 큰 호응을 얻은 송파구가 또 한번의 의미있는 업그레이드를 시도하고 있다. 18일 구에 따르면 최근 송파구보건소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추진하는 ‘공공보건정보화 시스템’(e-health)의 시범지역으로 선정돼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국 어디서나 공공보건의료기관을 찾으면 내게 알맞은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전국 어디서나 내 건강을 공공보건정보화는 전국 3437개 공공보건의료기관과 보건복지가족부, 시·도, 건강보험공단 등과 진료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개인건강 정보를 통합관리해 불필요한 중복검사를 받거나, 다른 기관을 찾을 때 진료기록을 일일이 발급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줄었다. 과잉진료 및 오진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또 건강진단서 등 각종 서류를 인터넷으로 발급할 수 있고, 건강 안내 문자서비스, 투약시간 음성안내 서비스 등 종합병원을 능가하는 의료서비스도 가능하다. 구 관계자는 “공공보건정보화사업 시범기관으로 지정된 것은 서울시 보건소 평가에서 2년 연속 최우수구로 선정되고 지역 보건의료계획 현지 평가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면서 “시범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송파는 건강안전지대’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복지부는 시범사업의 성과에 따라 올해 공공보건정보화시스템을 전국 보건소 등 공공보건의료기관 전체로 확대할 예정이다. . ●가정의 행복은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장지동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선 ‘건강한 가족, 행복한 세상’을 모토로 내건 프로그램이 열린다. 특히 30∼5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인집단상담’의 열기가 가장 뜨겁다. 매주 수요일 10명 안팎의 여성이 모여 부부와 고부 사이의 갈등, 자녀문제 등 생활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어내고 명상으로 달래는 자리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속내를 털어놓기가 쉽지 않아 처음에는 서먹하던 여성들이 8주가 지나면 더없이 끈끈해진다. 센터에선 우울증이나 스트레스가 심할 경우에는 보다 전문적인 상담을 주선해 주기도 한다. 센터는 다음달 1일까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부모교육’을 하고,19일부터 4월9일까지는 출산 후 자녀 양육에 대한 정보를 주는 ‘예비 부모교육’을 진행하는 등 건강한 가족 만들기 프로그램을 줄줄이 준비하고 있다. 남미경 상담팀장은 “상담, 부모교육뿐만 아니라 아버지, 남성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하늘에서라도 맘껏 노래하렴”

    “하늘에서라도 맘껏 노래하렴”

    “혜진아, 하늘나라에서라도 맘껏 노래 부르렴.” 실종된 지 70여일만에 암매장된 채 주검으로 돌아온 이혜진(10)양의 영결식이 17일 오전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모교인 경기 안양시 명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900여명의 전교생이 참여해 행사 내내 분위기는 숙연했다. 이윤형 교장은 추모사에서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던 혜진이가 이제 우리 곁을 영영 떠나기 위해 학교로 돌아왔다.”며 “어린이들에게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어른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 대표인 혜진이의 단짝 친구 조미주양은 “너와 함께 뛰놀던 공원, 교실, 운동장이 아직도 눈에 선하고 교실에는 아직도 네 사진이 그대로 있는데…. 너만 없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노래를 좋아해 가수가 꿈이던 혜진아. 부디 하늘나라에서라도 맘껏 노래부르며 행복하게 지내.”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혜진이 영정을 들고 영결식에 참석한 가족들은 반 친구들의 헌화와 묵념이 이어지자 슬픔이 북받치는 듯 서럽게 울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작업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수염이 자란 모습으로 참석한 혜진이 아버지는 혜진이 동생인 둘째 딸의 손을 꼭 잡은 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통곡과 실신을 반복하면서도 동생의 빈소를 지켰던 혜경양은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이제 범인 잡혔다니까 부디 편히 갔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영결식에는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우예슬(8)양의 친구들도 참석, 눈물을 흘려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가족들은 영정을 들고 혜진이가 실종되기 전까지 공부했던 4학년 3반 교실과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며 새로 배정했던 5학년 3반 교실을 들렀다. 영결식을 마친 이 양의 시신은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한 뒤 안양시립 청계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안양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부고]암투병에도 끝까지 강단 지킨 고려대 송석헌교수

    [부고]암투병에도 끝까지 강단 지킨 고려대 송석헌교수

    간암 진단을 받고도 끝까지 강단을 지킨 고려대 통계학과 송석헌 교수가 15일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46세. 1985년 고려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송 교수는 독일 도르트문트대에서 통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1995년 덕성여대 조교수로 처음 강단에 오른 뒤 2002년부터 모교인 고려대에서 제자 양성에 힘써 왔다. 송 교수는 불과 13년 남짓한 교수 경력 동안 선형모델, 패널회귀모형, 금융 통계분석 등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에 무려 60여편의 학술논문을 게재하는 등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여 대표적인 소장 통계학자로 인정받았다. 간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송 교수에게 전해진 것은 2학기 강의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던 지난해 10월 중순쯤. 당시 건강검진 결과 ‘앞으로 4개월 가량 남았다.’는 간암 말기 진단이 내려졌으나 송 교수는 시한부 투병 생활에도 강의를 포기하지 않고 남은 2개월 동안 강단에 올라 생애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미영씨와 두 아들 진우·재우군이 있으며 빈소는 고려대 안암의료원 영안실 30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02)921-2899. 김정은기자 jekim@seoul.co.kr
  • [제18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16강전 3국] 이세돌 기념관 세워진다

    [제18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16강전 3국] 이세돌 기념관 세워진다

    제10보(124∼134) 비금도의 천재 이세돌 9단의 기념관이 세워진다. 전남 신안군(군수:박우량)에서는 지금은 폐교가 된 이9단의 모교 비금 대광초등학교를 기념관으로 리모델링해 오는 8월에 개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기념관에는 이세돌 9단과 관련된 각종 자료가 전시되는 것은 물론, 관광객들을 위한 대국장, 지역 유물 전시관도 함께 마련된다. 기념관의 건립비용 일체는 군비로 조달된다. 프로기사의 기념관 조성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조남철 9단의 고향인 전북 부안군에 이어 신안군이 두 번째다. 백이 124로 칼을 뽑아 들어 상변 흑말의 생사가 곧 승부를 결정하게 되었다. 상대의 돌을 잡으러가는 것은 항상 위험이 따르는 법인데, 김승재 초단의 눈빛에서는 무조건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흑129는 상대를 현혹시키는 수.<참고도1>백1로 끌고나와 달라는 주문이다. 계속해서 흑이 2,4로 따라붙으면 이후 A와 B가 맞보기로 당장 수가 난다. 그러나 백130으로 나란히 늘어선 것이 백홍석 5단을 꼼짝 못하게 만든 호착. 이제 반대로 흑이 <참고도2>흑1로 막으면 자연스럽게 백이 2로 늘어 쌍립의 모양이 된다. 흑은 끼움수가 듣지 않아 7로 막을 수밖에 없는데 백이 8로 끊으면 간단히 흑 두점이 잡힌다. 흑131,133이 마지막 흔들기. 하지만 백의 응수는 도무지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백134를 본 백홍석 5단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돌을 거둔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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