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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 最古지점 보면 역사 보인다

    은행 最古지점 보면 역사 보인다

    ‘본 은행 지점을 본월 10일 인천항 탁포(坼浦)에 창설하였음을 알려드리오니 여러분께서는 부환(付換·입금)과 출환(出換·출금)에 관한 일이 있으시면 오셔서 문의하기 바랍니다.’구한말인 1899년 5월10일 대한천일은행(현 우리은행)장이 황성신문에 낸 인천지점 개점 광고다.1899년 1월에 설립된 천일은행은 4개월 뒤에 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인천지점을 개설했다. 이 지점이 바로 인천시 중구 인현동에 있는 현재 우리은행 인천지점이다. 우리은행은 인천에만 여러개의 지점을 갖고 있지만 최고(最古) 지점이라는 점 때문에 이름을 ‘인천지점’으로 유지하고 있다. ●지점 역사가 은행의 정통성을 말한다? 규모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지점을 내고 있다. 목 좋은 건물을 놓고 하룻밤 새 계약 은행이 바뀌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지점 늘리기 경쟁이 은행의 영업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은행들의 최초 지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국내은행 가운데 가장 역사가 깊은 곳은 조흥은행을 인수한 신한은행이다. 신한은 1982년에 창립돼 은행사에 ‘명함’도 내놓지 못했지만 109년 역사를 자랑하던 조흥을 인수해 일약 최고(最古)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조흥은행의 전신인 한성은행은 천일은행(우리은행)보다 2년 앞선 1897년에 설립됐지만 1906년 8월에야 수원지점을 내는 바람에 지점 역사에서는 7년이 뒤진다.7년 동안 한성은행은 광통교 본점에서만 영업을 했다. 우리은행은 “개화기 당시 인천항은 조선, 청나라, 일본 상인들의 각축장이었다.”면서 “인천지점은 조선상인의 상권을 보호하는 게 주요 임무였다.”고 설명했다. 인천지점은 일본제일은행, 일본58은행,HSBC 등 외국은행들과의 환전업무도 수행했다. 지금도 국내에서 법인화가 안돼 지점 형태로만 운영되는 HSBC가 당시에 벌써 지점을 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한성은행은 곡류, 포목, 어류, 생우(生牛) 등의 총집결지였던 수원에서 영업력을 확대하기 위해 수원지점을 먼저 낸 것으로 풀이된다. 신한은행은 오는 10월 수원지점 100주년 기념식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출범한 SC제일은행도 1929년에 생긴 제일은행(조선저축은행) 덕택에 유서깊은 은행이 됐다. 조선저축은행은 산업은행의 전신인 일제의 조선식산은행의 저축예금업무를 승계해 국내 최초의 저축예금 전담 특수은행이 됐다. 조선저축은행은 1931년 10월 처음으로 부산지점을 냈다. ●후발은행들은 처음부터 마당발? 외환은행을 인수해 ‘글로벌 뱅크’로 거듭나려는 국민은행은 근로자·서민의 금융을 돕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국민은행법(현재 폐지)’에 따라 1963년 2월 설립과 동시에 전국에 50개의 지점을 개설했다. 시작부터 ‘마당발’의 면모를 보인 셈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도 각각 1954년,1961년 창립과 함께 전국 주요 공업도시에 10개,28개의 지점을 냈다.1967년 1월 한국은행에서 분리된 외환은행은 창립일에 곧바로 부산지점을 설립했다. 당시 경제성장전략의 핵심인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부산에 우선 지점을 낸 것이다. 하나은행에서 가장 오래된 지점은 옛 서울은행의 을지로 4가지점으로,1960년 개설 당시 을지로에는 인쇄소, 미싱제조, 건축자재, 철공소 등이 밀집돼 있어 요즘의 ‘테헤란 밸리’나 다름 없었다. 하나은행이 최근 영세자영업자(소호) 대출에 주력하는 것도 지점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씨티은행은 특이하게도 인수은행의 역사가 더 깊다. 인수자였던 씨티은행 서울지점은 1967년 광화문에 설립됐고, 피인수자였던 한미은행은 1983년 금융의 중심지였던 여의도에 처음으로 지점을 개설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냉랭한 면담’

    ‘2+2’ 협의→확대 협의→만찬→‘2+2’ 협의. 유명환 외교통상부 1차관과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21일 주무국장인 이혁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을 배석시킨 ‘2+2’협의를 시작으로 릴레이로 자정무렵까지 절충을 벌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5시30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17층 1차관 접견실에 야치 차관이 들어서자 유 차관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어 가벼운 악수만으로 맞이했다.유 차관의 얼굴은 다소 굳어 결연함마저 비쳤으며 야치 차관은 경직된 가운데에서도 가벼운 미소를 띠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유 차관은 “오시느라 수고 많았다.”고 짧게 인사를 건넸으며, 야치 차관은 “바쁜 가운데에서도 이렇게 맞아줘서 고맙다.”고 답례했다.‘2+2’ 협의는 두 차관이 서로의 입장만 간단히 밝히는 것으로 20분 만에 종료됐다. 이어 양측에서 각각 10명가량 참석한 확대협의가 1시간15분 동안 이뤄졌다. 야치 차관 일행은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답없이 고개를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외교부를 빠져나가 회담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했다. 양측은 시내 L호텔에서 만찬을 함께 한 데 이어 별도의 ‘2+2’ 협의를 가졌다. 야치 차관은 외교부 협의 직후 한국 기자들과 간단한 대화를 원했으나 우리측이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명함으로써 무산됐다. 앞서 오후 5시25분쯤 외교부 청사에 도착한 야치 차관은 침묵으로 일관한 채 포토라인의 보호 속에 외교부 직원의 안내를 받아 귀빈 엘리베이터를 타고 협의장으로 직행했다. 야치 차관은 당초 외교부 청사 정문을 통해 들어올 예정이었지만 독도수호범국민연대 회원들이 차량까지 동원해 “일본은 독도해역 배타적경제수역(EEZ) 탐사계획을 즉각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바로 옆 정부청사로 몸을 피한 뒤 걸어서 외교부로 진입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Form나게 Beauty나게] 환절기엔 이렇게 입어라

    [Form나게 Beauty나게] 환절기엔 이렇게 입어라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눈뜨고, 상쾌한 봄 바람에 취해 출근길을 나선다. 오후까지도 따뜻한 봄볕을 즐겼는데, 이게 웬 일. 퇴근하는 길, 게다가 야근하는 날이면 너무 추워 몸을 있는 대로 움츠리게 된다. 최근 몇해동안 봄은 아주 짧게 왔다가 바로 여름으로 직행했다. 봄옷을 구입하자니 오래 입지 못할 것 같아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여름옷을 입자니 밤이 되면 춥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의 고민이 바로 여기 있다. 봄의 의상선택에는 옷감, 가격, 실용성 등 다양한 면을 꼼꼼히 따져 구입하는 현명함을 발휘해야 한다. 봄비 혹은 장마철에 입기에 좋도록 보온성도 있고, 가벼우면서 세탁에도 부담 없는 게 좋다. 따뜻한 한낮에는 벗고, 쌀쌀한 밤에 걸쳐 입는 용도로 얇은 재킷이나 카디건이 필요하다. 아침과 낮에는 봄을 맞은 사뿐한 발걸음과 활기찬 옷차림을 즐겨도 좋다. ■ 도움말:스타일컨설턴트 이혜숙(elvira85@naver.com) 의상협찬:BON(본), 명동 코즈니 3층 파라디소, 마인드브릿지, 더걸스(www.thegirls.co.kr) # 여성 가장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트렌치코트. 원단, 스타일 등에서 변신을 거듭하면서 올 봄 최고의 패션 아이템으로 꼽힌다. 부풀림이 과장된 디자인으로, 허리에 셔링(주름)을 과하게 많이 잡는 스타일도 많다. 광택있는 소재로 더욱 맵시있어 보인다. 셔링이 들어간 하얀색 리본 블라우스와 허벅지 부분에 주름을 주어 더욱 여성스러운 새틴 펜슬스커트(품이 좁은 치마)로 커리어우먼의 멋을 연출한다. # 남성 올 봄은 좀 색다른 의상에 도전해보자. 깃에 세련된 장식을 한 청재킷과 오렌지 색상의 세로선이 들어간 바지, 같은 오렌지 색의 테두리가 멋스러운 면 셔츠로 센스를 발휘한다. 빨강 자수가 들어간 베스트(조끼)와 물방울무늬나 꽃무늬가 들어간 셔츠, 또는 소매에 다른 색상을 덧댄 셔츠로 세련된 멋을 즐겨보자.
  • [Leisure+α] 한층 더 멋있어진 파라다이스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은 오는 26일, 기존 본관 객실을 대대적으로 새단장하여 선보인다. 미국의 유명한 설계 회사 가이앙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번 리노베이션에 총 260억원이란 막대한 투자를 했다. 재단장을 기념해 새롭게 단장된 본관 딜럭스 룸에서의 1박을 포함하는 ‘새단장 기념 NEW 패키지’를 선보인다. 오는 26일부터 7월13일까지 이용 가능하며 2인 사우나와 해운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노천온천, 옥외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레스토랑 10% 할인과 환영과일 및 쿠키도 제공된다. 새단장을 축하하기 위한 고급명함지갑을 선물로 증정하며 객실 사정 가능 시, 오후 2시까지 체크 아웃 시간을 연장하여 더욱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가격은 딜럭스 룸 가든 전경기준으로 15만원이다.(051)749-2111, www.paradisehotel.co.kr
  • [씨줄날줄] 인맥과 학맥/우득정 논설위원

    한 구인구직업체가 직장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인맥’을 ‘끈’이나 ‘파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다. 정정당당한 겨루기에서 벗어난 줄타기로 파악한 것이다. 그럼에도 96%가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해 인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인맥이나 학맥, 지연 등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자수성가했다는 성공담에는 인맥과 학맥을 뛰어넘기 위한 피눈물나는 노력이 약방 감초처럼 등장한다. 인맥과 학맥이 출세나 비리의 변수가 아닌 상수(常數)가 되다 보니 고위직 인사나 대형 스캔들이 불거지면 어김없이 학벌과 출생지가 회자된다.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현대차 사건과 외환은행 헐값 매각의혹사건에서도 특정 학맥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해당 고교 출신들로서는 범죄 조직표처럼 장식된 학맥지도가 짜증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사건의 이해를 돕는 가장 편리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법조계 인맥 정보를 파는 인터넷업체가 생겨났는가 하면 자신의 마당발 인맥을 1대1(P2P) 방식으로 사고파는 업체가 성업중인 세상이다. 명함관리로 나름의 인맥을 구축했다는 한 브로커는 인맥을 ‘인생보험’으로 표현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낸 히딩크 감독의 성공요인에 한국식 인맥·학맥 배제가 으뜸 항목으로 꼽히는 등 정반대 사례도 있다. 명문 학벌 소유자가 학벌의 짐을 벗어던지지 못해 대인 기피증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조기 유학자들이 인맥과 학맥을 구축하기 위해 국내 명문고, 명문대로 진학하는 ‘역유학’이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외환위기 이후 주류로 자리잡은 경력직 채용에서도 천거해줄 ‘연줄’이 있어야 된다고 하지 않는가. 학벌이니 지연·혈연 등 기존의 서열을 파괴하겠다던 참여정부조차도 ‘코드’란 명분으로 ‘끼리 끼리’ 참여하고 자화자찬한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직업이 장관’이라고 불렸던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공직자로서 성공 철학을 ‘공범자론’으로 정의를 내렸다. 정책이 성공하려면 무수히 많은 공범자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진 전 부총리는 혼자 밤새워 모든 것을 처리하는 ‘독불형’ 관료를 가장 싫어했다. 인맥과 학맥은 부정적인 함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움직이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데스크시각] ‘황당한’ 광역학군 발상/곽태헌 국제부장

    기자가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1975년. 당시 ‘진학(進學)’이라는 대학입시 잡지에 75년 서울대에 입학한 고등학교별 합격자 수가 실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울대의 공식 자료라기보다는 각 고교의 주장이거나 ‘진학’에서 분석한 ‘성적표’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 잡지에 실렸던 고교별 합격자 수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또 기자의 기억력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31년 전의 ‘진학’ 자료로 돌아가보자. 당시 최고의 고교였던 경기고의 서울대 합격자는 480명쯤 됐다. 서울고는 350명 정도, 경복고는 250명 정도를 각각 합격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기여고와 경남·부산고의 합격생은 각각 160∼170명선이었던 같다. 지방의 명문인 경북·광주일·대전고, 서울의 명문인 중앙·용산고는 100명 정도씩 합격시켰다. 정원이 많지 않던 남녀공학의 서울사대부고도 100명에 가까운 합격생을 배출했다. 이화여고는 84명, 경동고는 70여명을 합격시켰던 것 같다. 제물포고와 전주고는 65∼70명의 합격자를 냈던 것 같다. 명문고에서 서울대 합격생을 많이 낸 것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잘 가르쳤다기보다는 우수한 학생들이 명문고에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고교시험이 있던 시절 명문고에 들어가기 위한 재수(再修)는 적지 않았다. 심심하면 나오는 부동산대책 중 하나로 서울지역 학군 광역화가 최근 또 불거졌다. 일부 정치인과 관료들이 강남 집값을 잡으려는 대책으로 광역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내년 초에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강남 집값을 잡으려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번지수는 잘못 짚은 것 같다. 먼저 원거리통학에 따른 문제다. 고교 추첨제(평준화정책)를 한 취지와 맞지 않는다. 광역학군이라는 ‘편법’이나 ‘꼼수’보다는 고교시험을 부활시키는 ‘정도(正道)’를 걷는 게 낫지 않을까. 서울은 74년부터(대학 학번 기준으로는 77학번) 고교시험이 없어지고 추첨제로 바뀌었다. 광역학군 발상이 말이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마치 강남의 고교에 들어가면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를 당연히 진학할 수 있는 것처럼 사실을 오도(誤導)한다는 점이다. 일부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알면서 오도해도 문제고, 모르고 해도 역시 문제다. 고교 평준화 이후 강남지역의 고교들은 보통 매년 학교당 10∼30명을 서울대에 합격시키고 있다. 과학고와 외국어고 등 특목고에 비하면 명함을 내밀 수준은 아니지만, 다른 인문계고에 비교하면 물론 많은 편이다. 강남지역 고교의 실적이 좋은 것은 강남에 있다는 ‘단순한’ 이유보다는 여러가지로 자녀의 교육을 뒷받침할 수 있는 부모가 그곳에 많이 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보다는 학원에서 실력을 쌓고있는 게 현실이다. 강남지역 고교에 들어간다고 명문대 합격이라는 ‘보증수표’를 받는 게 아니다. 민족사관고를 포함한 특목고 출신들이 국내·외 명문대에 많이 진학하는 것은 고교시험이 있던 시절의 명문고처럼 실력이 좋은 학생들이 특목고에 몰리기 때문이다. 광역학군 아이디어는 정책실패와 판단잘못으로 강남의 부동산값이 폭등한 데 대한 책임을 강남학군 탓으로 돌리려는 정치권과 관료들의 얄팍한 ‘잔꾀’로 보인다. 부동산 값이 뛰는 것은 분양가 자율화, 왔다갔다 한 판교분양, 평형규제 등 정책실패 탓은 아닐까. 규제할 것은 풀고, 풀어야 할 것은 규제하는 청개구리식 정책 때문은 아닐까. 교육문제로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겠다면, 광역학군이라는 황당한 발상 대신 강북지역에 자립형사립고나 특목고 신설을 적극 지원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는 관료들한테 제대로 된 처방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부동산 정책이든 외환은행 매각이든 책임회피와 자기합리화에만 주력하는 듯 보이는 게 관료들이다. 정책실패와 판단잘못에 따른 관료들의 진솔한 사과와 반성은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곽태헌 국제부장 tiger@seoul.co.kr
  • 佛 또 총파업… 강도는 약해져

    |파리 함혜리특파원|4일 프랑스 노동계가 최초고용계약(CPE) 백지화를 요구하며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로 전국 규모의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집권 대중운동연합(UMP) 대화 요구에 학생과 노동계가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 사태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 학생조직 지도자인 브뤼노 쥘리아르는 프랑스 앵테르 라디오와의 회견에서 “당분간 CPE가 실행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다면 대화 요구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기독교노동자동맹(CFTC)의 자크 부아쟁 위원장도 “젊은이들의 우려를 해소할 만한 조치들이 논의되는 자리라면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대화 제의에 전향적 입장을 보였다. 현지 언론들은 학생과 노동계의 이같은 반응이 지난 2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CPE를 포함한 새로운 고용법안에 서명함으로써 애초 요구했던 법안 폐기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부는 학생과 노조측에 5일 협상을 하자고 제안한 상태다.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니콜라 사르코지 UMP 총재측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파업은 일주일 전에 비해 규모와 강도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AFP 통신에 따르면 출근시간대 파리의 지하철 운행은 정상 상태를 보였다. 전국을 연결하는 초고속 열차도 운행률이 70%대를 기록했다. 항공편도 관제사 파업으로 마르세유, 툴루즈, 낭트에서 출발하는 일부 국내선이 운항차질을 보였을 뿐 최대 공항인 샤를 드골 공항은 정상 운영됐다. 파업에는 항공, 철도뿐 아니라 우체국, 은행, 학교 등의 노조가 참여했다. 파리 등 전국 각지에서도 CPE 철회를 요구하는 150건의 시위가 잇따랐다. 학생들의 시위는 부활절 방학이 시작되는 7일 전후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lotus@seoul.co.kr
  • [우리는 맞수 CEO] ‘패기와 열정’ 홍보대행 여성개척자

    [우리는 맞수 CEO] ‘패기와 열정’ 홍보대행 여성개척자

    “단순히 보도자료나 만들어 언론사에 돌리는 홍보대행은 사양합니다.” 국내 홍보대행사 가운데 눈에 띄는 업체 두 곳을 찾으라면 예스커뮤니케이션과 피알게이트를 꼽는다. 둘 다 여성이 대표로 있다. 예스커뮤니케이션 함시원(36) 사장과 피알게이트 강윤정(34) 사장이 그들이다. 업계에서 두 사람은 당찬 여성으로 유명하다. 홍보업무를 밑바닥부터 체험하고 자신감과 열정 하나로 창업한 것도 같다. 매년 50∼60%씩 성장하면서 홍보대행사의 대부격으로 자리잡았다. 함 사장은 일을 하느라 결혼도 미뤘다. 강 사장은 결혼 후에도 일을 놓지 않고 육아와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완벽한 자신만의 홍보를 해보고 싶어 창업 함시원 사장은 본래 호텔 경영인이 꿈이었다.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외국에서 호텔경영·관광경영 석사를 마쳤다. 유학 뒤 호텔 롯데 홍보팀에 들어가 호텔리어의 꿈을 실현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 호텔에서는 늘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꿈을 실현하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았다. 그래서 3년 만에 외국계 체인 호텔로 자리를 옮겼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함 사장은 그러나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우선 명함에 적힌 회사 브랜드와 타이틀이 중요치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곧바로 홍보 대행사를 찾아갔다. 쉽지는 않았다. 우선 호텔 홍보만 하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함 사장은 “처음에 제약·정보통신·소비재 등을 맡았는데 생소한 분야라서 논문을 뒤져가며 공부해 클라이언트와 언론사를 이해시켰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점차 홍보 업무에 흥미를 갖고 자신감도 들었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좀더 완성도 높은 홍보를 하고 싶었고,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그래서 택한 길이 바로 창업이었다. 강윤정 사장 역시 주어진 일에 만족하는 성격이 아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을 나와 홍보대행사 일을 한다고 하자 솔직히 주변에서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강 사장은 3년간 홍보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밑바닥부터 훑고 노력한 결과 꽤 유능하다는 칭찬도 받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완벽한 홍보를 해보고 싶었다.‘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 방식대로’ 하고 싶은 도전의식이 생긴 것이다.28세의 나이로 창업을 할 때는 주변에서 무모하다느니 집안이나 인맥이 있나 보다는 식으로 치부했지만 열정 하나로 회사를 설립했다. 패기는 남달랐지만 실력이 검증되지 않았던 창업 초기. 강 사장은 어느 기업에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갔다가 “너무 어리다.”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오기가 생겼다. 결국 퇴짜를 주던 기업의 경쟁사를 클라이언트로 영입,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4년간 장기 계약을 따내 보란듯이 수모를 갚아줬다. ●일은 꼼꼼하게 추진력은 당차게 처음에는 리테이너(연간 홍보계약) 클라이언트가 아닌, 프로젝트로 일을 시작했다. 경험이 부족하고 작은 회사에 일감을 믿고 맡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맡은 일을 멋지게 성공시키면서 장기 클라이언트 계약이 잇따랐고 일 잘한다는 소문이 금방 번졌다. 요즘은 일감이 넘쳐나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일감이 몰려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두 업체는 단순 홍보로 승부를 걸지 않는다. 기업·상품의 마케팅을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덤벼든다. 기업과 상품의 흐름을 파악하고 기획과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덧붙여 소비자에게 제대로 연결시켜 주는 것이 강점이다. 단편적인 홍보가 아니라 통째로 홍보를 해줄 때는 기업 마케팅·홍보 담당자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함 사장이 보유하고 있는 클라이언트는 볼보 자동차,LG전자(프로모션), 해태제과, 태평양 미쟝센,BHP 코리아 등 30여개 업체에 이른다. 강 사장 클라이언트 역시 대단하다.SK커뮤니케이션즈, 폴크스바겐, 대교 베텔스만, 유니레버 등 30여개사의 홍보가 강 사장의 손을 거친다. 앞으로 포부도 대단하다. 함 사장은 “명실상부한 종합 홍보대행사로 키우겠다.”고 한다. 강 사장은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홍보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함시원 예스커뮤니케이션 사장 ▲70년생 ▲92년 서강대 생물학과 졸업 ▲96∼2000년 호텔 롯데 등 근무 ▲01년 예스 커뮤니케이션 창업 ■ 강윤정 피알게이트 사장 ▲72년생 ▲96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96∼99년 국내 홍보대행사 근무 ▲1999년 피알게이트 창업
  • [시론] 우리 노래 시장의 경쟁력 기대와 우려/강헌 대중음악평론가

    [시론] 우리 노래 시장의 경쟁력 기대와 우려/강헌 대중음악평론가

    한국 영화계가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으로 시끄러울 때 우리 대중음악의 노장 신중현이 던진 일갈이 작은 화제가 되었다. 즉 우리의 대중음악은 ‘스크린쿼터’같은 보호 장치가 없어도 영미권의 팝음악에 대항하여 압도적인 점유율을 획득하지 않았느냐. 결국 제도의 문제 이전에 작품의 질적 경쟁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논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그 또한 순진한 일이다.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영화는 세계가 놀랄 만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면서 영화 제국의 펜타곤인 할리우드를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같은 기간 동안 한국의 대중음악은 온라인 불법 전송으로 인한 시장 괴멸, 최근 이효리 파문에서 보듯 끊이지 않는 표절 논란으로 인해 안팎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한류 붐의 일익을 담당하며 국내 내수 시장 안에 갇혔던 한계를 벗어나 아시아로 그 시장을 넓혀 가고 있으니 장밋빛 미래의 청사진을 성급하게 진단하는 이도 적지 않다. 사실 지난해 말부터 인터넷 상의 음악 서비스도 전면적인 유료화로 돌아섰으니, 지난 칠팔년 동안 이 땅의 음악산업을 초토화시킨 불명예를 딛고 세계 최강급인 막강한 온라인 인프라는 이제 음악시장 활성화의 든든한 밑천이 되어 줄 것이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에 탄생한 우리의 대중음악이 일본과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8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갖게 된 동력은 우리 음악의 질적 경쟁력 때문이라기보다 영화와는 다른 음악 문화의 고유한 특성에 의거한다. 먼저 대중음악은 이성적인 줄거리를 따라가는 서사 양식인 영화와는 달리 3분에서 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벌어지는 감정적인, 그것도 지극히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표현 양식이다. 따라서 영화는 자막으로 거개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지만 음악은 자국어가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으로 로컬 문화 양식이다. 영어권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자국어 음악이 그 나라에서 가장 유력한 음악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한국 음악시장 로컬화의 결정적인 요인은 음악이 영화와는 달리 매스 미디어의 종속성이 심각하며 1980년대 후반 이후 시장의 주력을 10대 수용자들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 세대인 이들의 감수성을 포섭하기 위해 우리의 지상파 방송 3사는 10대 아이들(idol·우상) 스타 취향의 음악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편성했고 그 광풍에 밀려 20대 중반 이후 세대의 음악과 눈앞에 스타를 보여줄 수 없는 해외의 음악은 시장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우리는 다른 모든 산업 분야가 그러했듯 음악 시장 또한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그것도 압도적인 수준의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성취에 불과하다. 로컬적 성향이 강한 음악의 경우 자국 시장을 벗어나 세계 시장에 입장하기 위해선 보다 창의적인 설득력과 완성도가 필요하다. 음악은 영화와 달리 압도적인 물량 공세로 타자를 설득할 수 없는 예술이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다른 문화권 수용자들의 감성과도 충분히 의사소통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후발 주자들이 세계 시장에 지속적으로 명함을 내놓기란 힘들다. 아시아 국가에서 통용되는 한국 음악의 경쟁력이 무국적성에 있다고 최근 지적한 일본 음악 관계자의 발언은 심각한 오류를 갖고 있다. 세계 2위의 시장을 갖고 있으면서 50년 전부터 탈아입구(脫亞入歐), 곧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로 진입하려 했던 ‘무국적적’인 일본 음악이 여전히 자국 시장에 머물러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음악 선진국의 트렌드를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수준에서 머물러 있는 한 한류는 없는 것이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 中-호주 ‘우라늄 공급협정’ 체결

    아시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은 원자력 발전을 대폭 확대하기 위해 세계 2위 우라늄 생산국인 호주로부터 우라늄을 대량으로 구매하기로 했다. 중국 총리로선 18년 만에 호주를 방문 중인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3일 캔버라에서 존 하워드 호주 총리와 ‘중국이 호주로부터 우라늄을 수입하되 군사적 전용(轉用)이나 제3국 수출을 금지한다.’는 내용으로 된 양자간 우라늄 공급 안전협정을 맺었다. 이에 대해 호주의 주요 환경단체인 오스트렐리언 컨서베이션 파운데이션은 “이번 거래로 중국은 우라늄을 핵무기 프로그램에 전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국제 핵안전협정이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나 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은 호주 ABC 라디오에 출연,“중국은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가 이 협정을 맺느냐 여부는 중국의 핵무기 프로그램에는 어떠한 차이도 만들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이날 양국이 안전협정에 서명함에 따라 중국은 앞으로 호주의 우라늄 생산업자들과 상업적인 협상에 들어갈 전망이다. 호주는 현재 전세계의 우라늄 매장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안 맥팔레인 호주 자원산업장관은 “앞으로 2년 내에 중국이 호주로부터 우라늄을 구매하지는 못할 것 같다.2010년은 돼야 할 것”이라며 “이번 안전협정은 단지 과정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원더풀 아메리카/프레드릭 루이스 알렌 지음

    1920년대를 한 장의 사진으로 기억한다면, 그것은 아마 넓게 퍼져 허리까지 올라가는 치마를 입고 담배를 입에 문 채 춤을 추는 젊은 여인의 모습일지 모른다. 때는 바야흐로 ‘플래퍼(flapper)’라 불린 신종 여성들로 상징되는 젊은이들의 ‘반란의 시대’. 무한한 가능성과 낭만, 모순이 공존한 1920년대 미국은 요컨대 미국 역사상 가장 특별한 시대였다. 금주법을 시행하고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등 보수화의 물결이 일었는가 하면, 한편에선 성의 자유를 외치고 스윙재즈가 폭발적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미국사는 이 시기를 ‘광란의 1920년대(the Roaring Twenties)’로 규정한다. ‘원더풀 아메리카’(프레드릭 루이스 알렌 지음, 박진빈 옮김, 앨피 펴냄)는 바로 이 1920년대 미국의 다양한 얼굴을 다룬 책이다. 알 카포네,KKK단, 할렘 르네상스, 빨갱이 사냥, 잃어버린 세대, 라디오와 포드 자동차…. 이 시대를 특징짓는 현상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하퍼스 매거진’ 등 유명 잡지 편집자로 명성을 얻은 저자는 극적인 사건으로 점철된 미국의 젊은 시절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1931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1920년대를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히 그린다. 그래서 책의 원제도 ‘Only Yesterday’다. 책은 1918년 11월11일 1차대전이 끝난 때부터 이른바 ‘쿨리지 호황’을 극적으로 붕괴시킨 1929년 11월13일 주식시장의 대폭락까지 11년간을 다룬다. 이 ‘전후 10년기’는 미국사에서 특별한 의미와 독특한 풍취를 지닌 시기로 기록된다. 아직 제 갈 길을 찾지 못한 ‘젊은 제왕’ 아메리카의 정체성이 형성돼 가던 때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1차대전의 종결과 함께 반동적인 보수주의의 물결을 맞게 된다.1920년대 미국의 보수화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적색공포’. 윌슨 대통령 유고 당시 ‘반공주의 전사’로 맹활약한 미첼 파머 법무장관은 1920년 ‘빨갱이 사냥’으로 6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체포했다. 그런가 하면 정치가들은 “빨갱이에 대한 나의 모토는 S.O.S(ship or shoot, 추방이냐 사살이냐)다.”라는 위협적인 선언을 예사로 했다. 물론 이처럼 국수주의적이기까지한 보수적 사회 분위기가 1920년대 미국의 전부는 아니었다.1920년대 미국은 어느 때보다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활기찬 시기였다. 라디오와 자동차는 새로운 차원의 소비재 시대를 열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전(全)국민적 스포츠시대가 열린 것도 이 때였다. 특히 라디오는 미국인들의 일상을 바꿔 놓은 ‘감동상자’였다.1920년 11월 웨스팅 하우스 전기회사가 피츠버그에 설립한 세계 최초의 상업 라디오방송 KDKA는 하딩과 콕스의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을 처음으로 중계해 관심을 모았다. 라디오 상업방송이 시작된지 1년도 안돼 라디오는 미국인의 필수품이 됐다. 라디오는 모든 걸 ‘쇼’로 만들었다. 가수 겸 배우 루디 발리는 라디오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콧소리의 크룬(croon) 창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오늘날의 오빠부대 격인 ‘플래퍼’들을 가는 곳마다 몰고 다닌 그는 대중매체가 낳은 20세기 최초의 팝스타였다. 이 책은 이처럼 ‘사람’이 살아 있는 비공식 역사를 지향한다. 시시콜콜한 사건까지도 소상히 다룬다. 책에는 알 카포네가 뉴욕에서 시카고로 진출한 뒤 처음 들고 다니던 명함 문구(‘알폰소 카포네 중고가구 판매’)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매혹과 광기의 1920년대. 어느 때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임에도 이를 종합적으로 다룬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은 1920년대의 다양한 특성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 보여준다. 그 그림이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다. 백인 주류사회의 시각에서 도시 중상류층에 초점을 맞춰 씌어진 만큼 이민자나 산업노동자, 흑인문제, 농촌 사정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오늘날 ‘제국의 오만’과는 좀 다른 1920년대 젊은 미국의 풋풋한 모습에 ‘원더풀’이란 말이 슬몃 새어나오는 흥미로운 책이다.1만 98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행정서류용 사진크기 2~3종으로

    행정기관에 제출하는 사진규격이 오는 10월부터 현행 30여종에서 2∼3종으로 대폭 축소된다. 행정자치부는 행정서류에 부착하는 사진들을 반명함판(3×4㎝)으로 통일하고, 불필요한 경우에는 사진부착란을 없애도록 하는 등 관련 규정을 개정하도록 권고하겠다고 28일 밝혔다. 최근 행자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4개 중앙 행정기관을 비롯,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민원·시험 등 580여개의 서류에서 규격이 제각각인 사진 제출을 요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요구되는 사진 규격만 30여종에 달해 민원인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가장 많이 요구되는 사진 크기는 반명함판으로 222건이었고 ▲여권용(3.5×4.5㎝) 97건 ▲증명판(2.5×3㎝) 75건 ▲명함판(5×7㎝) 37건 등의 순이었다. 시험 응시용 원서에 부착하는 사진규격도 반명함판과 여권용으로 혼재하는데다 규격단위도 센티미터(㎝)와 밀리미터(㎜)로 제각각이어서 혼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행자부는 10월부터 반명함판과 여권용, 증명판 사진 등 많이 사용되는 2∼3개의 규격으로 단순화하고, 사진제출이 불필요한 경우 아예 부착란을 삭제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국민 불편사항을 지속적으로 찾아내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행정의 효율성과 국민 만족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인간문화재 제도가 문화재보호 막아”

    김문성(35)씨가 내민 두 개의 명함에는 각기 다른 직함이 찍혀 있다. 하나는 ‘언론중재위원회 민간언론피해상담센터 조사연구팀’, 또다른 하나는 ‘사단법인 서울소리보존회 사무국장’. 이른바 ‘투잡스’가 아니다. 서울소리보존회는 잊혀져가는 우리네 전통소리를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단체. 취지에서부터 돈 냄새와는 거리가 있다. 그는 매달 한 번씩 은평구민회관에서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된 사람들을 불러다 무료공연을 연다. 참가자들 반응은 기대이상이다. 최근 알게 모르게 국악 마니아들이 크게 늘어 CD 판매나 공연 티켓도 제법 잘 팔린단다. 특히 다음달 27일 이은주 명창의 공연은 보존회 창립 이래 첫 대규모 공연이 될 성싶다.“2시간여에 걸친 공연이 될 텐데, 아마 200명 이상이 무대에 오를 겁니다. 최근래 공연 가운데 아마 가장 스케일이 클걸요.” 9∼10월쯤 국립국악원과 함께하는 대규모 공연도 준비 중이다. 아직 아쉬운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인간문화재 지정제도가 오히려 문화재 보호를 막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문화재보호법은 판소리, 잡가, 정악 하는 식으로 종목을 정해 보호토록 하고 있죠. 그런데 실제 보호방법은 종목이 아니라 전수자를 지정하는 인간문화재 방식입니다. 한 명의 인간문화재를 빼고는 다 탈락해버리는 거죠.” 단적인 예가 소리보존회 이사장인 남혜숙 선생이다. 남 선생은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명창 고 김옥심 선생의 제자인데다, 명색이 법인 이사장인데도 은평구 생활보호대상자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김옥심 선생은 인간문화재에 지정되지 못했고, 남 선생은 그런 스승을 차마 떠나지 못한 미련한(?) 제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10여년 전, 갓 입사한 김씨를 국악에 빠져들게 한 사람이 바로 김옥심 선생이다. 황학동 레코드 가게 앞에서 우연히 들었던 그 목소리 덕분에 국악을 알았고, 김옥심 같은 명창이 왜 잊혀져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두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씨름 중이다. 관련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느라 결혼자금까지 깨가며 그 밑에 묻은 돈만 해도 ‘억대’다. 마지막으로 우리 소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가장 권하는 방법은 한 부문에서 일가를 이룬 명창의 노래를 먼저 들어보는 것이란다. 훈련이 덜 됐다면 크로스오버나 퓨전풍의 음악으로 워밍업해두는 것도 좋다.“CD를 사보면 아시겠지만, 국악은 해설자료가 굉장히 두껍게 나옵니다. 어렵다거나 하는 편견을 버리세요.”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3월의 광란’ 모리슨 열풍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인 슈퍼볼의 뒷 얘기조차 완전히 사그라들 무렵 미국은 또 하나의 스포츠 빅이벤트로 들썩인다. 이른바 ‘3월의 광란’이라 불리는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남자농구 16강(스위트 식스틴) 토너먼트다.‘엘리트 에이트(8강)’를 거쳐 ‘파이널 포(4강)’와 ‘파이널(결승)’에 이르는 동안 대학농구의 인기는 한창 시즌 중인 미프로농구(NBA)도 제대로 명함을 내밀지 못할 만큼 폭발적이다. LA타임스는 22일 올 ‘스위트 식스틴’의 최고스타로 떠오른 곤자가대학의 포워드 애덤 모리슨(21·203㎝)을 집중 조명했다. 어깨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머리를 흩날리며 골밑으로 파고드는가 하면 때론 외곽에서 정교한 3점포를 쏘아대는 모리슨은 올시즌 5경기에서 40득점 이상을 올리는 등 평균 28.2점으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는 특급선수다. 모리슨이 인기를 끄는 것은 단지 실력이나 외모 때문이 아니다. 농구선수에겐 치명적인 당뇨를 앓고 있어 규칙적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어려움을 딛고 미래의 NBA 선수들의 경연장인 NCAA 무대에서 톱클래스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24일 UCLA와의 16강전을 앞둔 모리슨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대해 “남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무엇을 하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코트에서 보여주면 그 뿐이다.”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모리슨이 자신의 롤모델인 ‘백인의 우상’ 래리 버드(50)처럼 NBA의 거물로 커 나갈지 주목된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與 충북지사후보 한범덕씨 확정

    與 충북지사후보 한범덕씨 확정

    오는 5·31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열린우리당 후보군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당 차원에서도 지역별로 연일 대책회의가 소집되고 속속 지역별 출마 후보자들이 나서고 있다. 22일 열린우리당은 충남 천안에서 중앙위원회의를 열고 16개 지역 광역단체장 후보 가운데 처음으로 충북지사 후보에 한범덕(53) 전 충북 부지사를 확정했다. 일부 경기도 출신 의원들은 국회 근처에서 조찬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했던 한 의원은 “진 전 장관의 입당 시기와 선거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였다.”고 전했다. 진 전 장관은 오는 26일쯤 입당식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장 유력 후보인 강금실 전 장관은 입당 막바지 절차에 돌입한 것 같다. 한 측근은 “요즘 한 시간 단위로 사람을 만나는 일정이라고 한다.(신나게 준비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며 출마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강 전 장관은 최근 양극화 해소와 한·미자유무역협정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마 시기보다 서울시장으로서 ‘비전 제시’를 고심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강원도지사의 경우 문화방송 뉴스 앵커인 엄기영씨가 불출마 의사를 강하게 표명함에 따라 ‘이광재 카드’가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당 고위 관계자는 “대안이 없다. 이 의원만큼 지지도를 갖춘 후보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출마 고려를 한 적이 없다.”며 일각의 의견을 부인했다. 열린우리당은 중앙위원회에서 당헌·당규를 개정, 공직후보로 출마하려면 3월29일까지 입당해야 하는 현행 규정을 개정해 4월30일까지만 신청하면 입당이 가능하도록 시기를 조정했다. 후보자 선정요건을 과반득표에서 다수득표로 변경하고, 당헌·당규 유권해석 권한을 지방선거까지 한시적으로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에 위임토록 했다. 특히 사회적 소외계층을 배려하기 위해 광역의회 비례대표 2번에 65세 이상 노인을 배정하되 상황에 따라 장애인 대표를 비례대표에 포함시키는 당헌 개정안도 처리했다. 구혜영 황장석기자 koohy@seoul.co.kr
  • 儒林(56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

    儒林(56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 1558년 명종 13년 겨울. 성균관의 문묘 뒤쪽에 설치된 명륜당(明倫堂)에서는 별시해(別試解)가 거행되고 있었다. 별시란 정기적으로 3년에 한번씩 열리는 식년과(式年科)라 불리는 과거시험과는 달리 세자의 탄생, 책봉과 같은 나라의 경사가 있거나 10년에 한번 당하관(堂下官)을 대상으로 한 중시(重試)가 있을 때 시행하던 일종의 부정기적인 과거시험이었다. 식년시에는 33명의 인재가 선발되고,10년 만에 한번씩 치르는 중시 때는 조의(朝儀)를 행할 때 당상의 교의(交椅)에 앉을 수 없는 서얼(庶孼)과 같은 특수한 신분의 낮은 계층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었으나 이번의 별시는 주로 성균관 유생에 한정되어 치르는 별시문과(別試文科)였다. 율곡은 이 특별시험에 참석하기 위해서 강릉을 떠나 시험 이틀 전에야 한양의 수진방에 도착하였다. 그해 봄 퇴계를 만나 2박 3일의 짧은 상봉을 끝낸 후 율곡은 줄곧 강릉에 머물며 학문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율곡이 별시에 응시하기 위해서 한양으로 돌아온 것은 거의 10개월 만의 외출이었던 것이다. 율곡으로서는 세 번째의 과거시험이었다. 이미 율곡은 불과 13세의 어린나이로 진사과에 초시로 합격하였다. 두 번째 시험은 금강산으로 출가하였다 환속한 다음해였던 1556년 21세 때의 일이었다. 한성부에서 실시한 것으로 한성시(漢城試)라고 불렸던 초시였다. 이 시험에서 율곡은 장원으로 뽑혀 널리 문명을 떨쳤으나 최고 학부인 성균관에 유학할 수 있는 특권을 얻은 것에 지나지 않았을 뿐 여전히 백면서생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율곡에게 있어 세 번째 별시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이제 율곡은 더 이상 홀몸이 아니라 아내까지 거느린 가장이었고, 양반의 신분으로 태어난 율곡이었지만 이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과거에 급제한 뒤 입신양명함으로써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제도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율곡은 스승 퇴계를 만나고 강릉으로 돌아간 10개월 동안 스승으로부터 점지 받은 ‘거경궁리’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율곡이 평생 동안 공부하였던 학문의 양보다 이 짧은 10개월 동안에 더욱 깊이 침잠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율곡의 철학과 지적수준이 이 무렵에 거의 완성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학문에 투자하느냐 하는 사실보다 비록 짧은 기간이더라도 얼마나 집중하고 몰두하느냐 하는 것이 학문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사실을 율곡의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 번째의 과거시험이었던 별시해는 율곡의 학문을 객관적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였던 것이다.
  • 달여행서약 제일 먼저했더니

    달여행서약 제일 먼저했더니

    『이 아이들이 또 엉뚱한 짓을 한다고 처음엔 꾸지람을 받았어요. 하지만 달엔 정말 가보고 싶었거든요. 열심히 식구들을 설득했죠.』 달나라 관광 예약 제1호는 곱게 자란 양가댁 규수였다. 유상숙(柳祥淑·22·서울 한남동)양. 「아폴로」11호의 성공적 달 착륙으로 일기 시작한 달여행 예약 「붐」을 「리드」한 장본인이다. 『그 사람이 아마 「콜린즈」죠.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을 때 혼자 모선(母船)에서 달 궤도를 돈 사람. 너무 너무 불쌍했어요』 언제쯤 갈수 있을는지는 접수처서도 자세히 몰라 『친구들이 미국엘 많이 가요. 그 애들 한테 「그까짓 미국, 난 달나라엘 간다」고 자랑할 생각을 하니까 너무 너무 신나요』 달나라 여행이라는, 정말 신나는 「붐」은 벌써부터 일기 시작했다. 「얘들아 오너라 달 따러 가자」던 동요가 이젠 달 나라가는 행진곡으로 뒤바뀔 판. 지난 22일까지 「판·아메리카」 서울지사엔 모두 8가구 22명의 달여행 예약이 접수되었다. 「판·아메리카」 본사엔 이날 현재 2만명이 넘는 예약 신청이 들어 왔다는 외신보도. 달 여행은 한국에서도 정말 가능한 것일까. 갈 수 있다면 언제쯤이나 실현될까. 「판·아메리카」본사는 「아폴로」 11호 계획이 확정된 후 각국 지사에 「문·플라이트」(달여행)예약을 접수하도록 시달했다. 한국 지사엔 지난 4월18일, 4월29일 두번에 걸쳐 공문이 왔는데 그 내용은 『달여행 희망자의 예약을 접수하여 69년 12월31일까지 본사에 통고할 것』- 간단하다. 우주기지 건설 84년부터 90년께나 여행 가능할 듯 여비나 출발 일자, 비행 방법등 구체적인 것은 어느 하나도 아는게 없다고 「판·암」서울지사측은 밝히고 있는 실정. 미 항공우주국의 「스케줄」에 따르자면 인간의 달 관광 여행은 달에 우주 기지가 설치된 다음에야 가능하다. 본격적인 기지 건설 연도를 1984년으로 잡고 있으니까 여행은 85년~90년에나 가능하다는 결론. 이 점은 연세대 천문기상학과 조경철(趙慶哲)박사도 시인하고 있다. 조박사의 개인적 견해로는 달 기지와 우주 「스테이션」이 설치되는 90년 쯤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것. 「달여행 예약」이라는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진 뒤 지난 7월 23일 아침까지 상숙양 집에는 모두 60여통의 「팬·레터」(?)가 배달되었다. 그중 몇 통만 우선 읽어 보자. 달여행 예약이 알려지자 돈꿔달라, 보험들라 편지 -영광스러운 달 여행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저의 고향은 너무나도 달 경치가 좋은 고장이에요.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달을 좋아하는 시골녀석이랍니다…하략(下略). 정○○ 드림. -달 여행은 관광보다는 우주 연구에 그 참 뜻이 있는줄로 압니다. 더구나 막대한 「달러」를 써 가며 이런식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것은… 하략. 金○○ -보험회사 외무사원입니다. 첫 달여행 예약 기념으로 보험엘 가입하시지 않겠습니까? 보험 안내장 2매와 저의 명함을 동봉합니다…하략. <柳양 아버지한테 온 것> -미지의 사업에 투자하시는 셈 치고 한번 저를 도와 주십시오. 3년후에는 완전히 성장하겠습니다. 일금 45만원만 빌려주시면 만1년6개월만에 틀림없이 은행 이자를 가산하여 원금과 같이 돌려드리겠습니다…하략. 崔○. 이밖의 것들도 대개 비슷한 내용의 구원 편지. 더러는 차마 공개조차 할 수 없는 저급(低級)의 욕설로 된 편지도 있었다고 상숙양은 얼굴을 붉힌다. 『도무지 왜 욕들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우린 지금까지 너무 시야를 안으로만 좁혀 왔지 않아요? 나가 보자는 겁니다. 좀 움직여 보자는 거예요』 상숙양 일가(一家)의 울화통을 정말로 터뜨린 건 편지가 아니라 어느 지방지의 「컬럼」. 『한국「매스콤」의 수준을 알만 해 슬펐다』는 그 「컬럼」은 대개 이렇게 끝맺음을 하고 있다. -전략(前略)…더구나 그 일가족 중에서도 달 여행을 발안한 사람이 22세의 여대3년생과 19세의 남자대학 1년생이라니 더욱 싹수가 있어서 좋다. 그네들이 달 여행을 해서 뭘 하자는 겔까. 있는 돈 남 주기는 아깝고 호기있게 써 보기나 하자 해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한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 서글픈 현상이라 아니할수 없다. 주린 배도 더욱 조여매어 모든 내자(內資)를 건설에 쏟아 넣어도 모자를 판에 부잣사람들이 이 모양이니 신문 지상에 찍혀 나온 그들의 활짝 웃는 얼굴들이 더욱 뻔뻔스럽기만하다. 돈쓸데 없어서가 아닌데 근시안적 구설 너무많아 달 여행이라는, 어떻게 보면 「파이오니어십」이 두둔까지 돼야할 「장거」가 이렇게 철두철미 부정된 이유는 무엇일까. 달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빨라야 15년 뒤에나 갈 수 있는 얘기다. 10만원을 은행 신탁하면 15년후에 찾을 수 있는 돈이 3백50만원. 매달 6천30원씩만 은행 적립을 해도 10년후엔 3백만원을 탈 수 있다는 유양의 계산. 『돈 쓸데가 없어 가자는 건 아니었어요. 오직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정복욕으로 달 여행을 발상(發想)한 겁니다. 여비는 지금부터 푼푼이 모아야죠』 옆에 있던 동생 승열(昇烈·19)군이 거든다. 「발설罪」로 참고 견딘 구설수가 너무 모질다고 승열군은 쓴 웃음. 이들이 달 여행을 착상한 것은 처음부터 부친의 재력(財力)을 믿고 한 것은 아니었다. 돈 많은 사람들의 쓸데 없는 장난 정도로 받아 들이는 사회와 주위의 근시안적 사고가 원망스럽다고. 『우리나라에선 외국엘 한번 다녀 와도 지독히 죄인취급을 당하는데 있을 수 없는 얘기예요. 시야를 넓혀야 하지 않겠어요? 달 여행도 실용화되면 부지런히 가야 돼요. 다른나라 사람보다 한 사람이라도 더-』 한쪽에선 달여행 예약을 하러 항공사로 몰려 드는데 한쪽에선 「돈있고 할일 없는 사람들의 장난」을 흘긴 눈으로 못마땅해하고 있다. 어쩌면 너무나 한국적인 좋은 「콘트라스트」. 창세기 이래의 인간 승리라는 「문·플라이트」는 어쨌든 달로 떠나기 10몇 년 전부터 지상에다 평지풍파부터 일으켜 놓은 셈. [ 선데이서울 69년 7/27 제2권 30호 통권 제44호 ]
  • LG전자 “GSM 시장 뚫어야 산다”

    LG전자 “GSM 시장 뚫어야 산다”

    LG전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휴대전화 시장의 1위 업체다. 지난해 전 세계에 3040만대를 팔아 시장 점유율 21%를 차지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노키아·모토롤라 등 글로벌 기업들은 LG전자의 이 같은 성적표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죽어가는 시장’에서 1등이기 때문이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은 GSM(유럽방식)의 독주다. 세계 8억 2000만대 규모의 휴대전화 시장에서 GSM폰은 전체의 77%인 6억 3000만대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최대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도 GSM으로 전환하고 있다.GSM 시장을 뚫지 않고서는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LG전자라고 예외가 될 순 없다. 그래서 LG전자의 올해 화두는 GSM 시장 공략이다. ●뒤늦은 출발, 얼굴 알리는 데는 성공 LG전자는 지난 2001년 GSM 시장에 뛰어들었다. 경쟁업체인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늦은 편이다.LG전자는 GSM시장 진출 첫 해에 53만여대를 팔았다. 지난해에는 유럽시장에 900만대를 판매했다. 올해 1200만대를 공급해 유럽 내 메이저 플레이어로 도약하겠다는 게 목표다.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GSM 최대의 격전지인 유럽시장에 명함을 내미는 데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LG전자의 올해 유럽시장 공략 3대 전략은 ▲3세대(3G) 휴대전화시장 중점 공략▲GSM 유통시장 공략 강화▲메이저 사업자와의 파트너십 강화다. 유럽 주요 사업자에게 납품하는 형식으로 실핏줄같은 자체 판매조직 형성이 관건이다.‘을’의 입장에서 탈피해야 한다. ●3G 휴대전화 시장 중점공략 LG전자는 상반기 HSDPA(고속하향패킷접속) 서비스 시작 및 독일 월드컵을 계기로 3G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것에 대비, 혁신적인 3G WCDMA(UMST) 기술이 적용된 제품 라인업을 강화해 시장확대에 나서기로 했다. 보다 현지화된 제품 개발을 위해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 등에 상근하는 연구·개발(R&D)센터 인원을 200명 이상으로 유지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의 디자인센터를 통해 유럽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프리미엄 디자인 강화에도 주력할 예정이다. ●메이저 사업자와의 파트너십 강화 GSM 유통시장 공략을 위해 프랑스·독일·영국 등 유럽 거점 국가를 중심으로 유통 거래선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LG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독일 월드컵 대표팀을 비롯한 각국 유명 프로축구단 후원,MTV 어워드 후원 등 유럽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유럽시장에 특화된 간결한 디자인과 혁신적인 신제품을 상반기 유럽 소비자들에게 선보여 브랜드 이미지와 매출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계획이다. LG전자는 유통시장과 함께 유럽 GSM 시장을 양분하는 사업자 시장에서도 이 지역 대형 사업자들의 요구에 발빠르게 대응해 이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메이저 공급업체의 지위를 확보한다는 전략을 수립했다.LG전자 MC사업본부 유럽사업부 함상헌 상무는 “유럽 휴대전화시장은 LG전자에 있어서 더욱 성장시켜야 할 중요한 전략시장의 하나”라며 “LG전자는 유럽시장에 맞는 창의적인 디자인과 독특한 기능의 휴대전화를 지속적으로 선보여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바일 브랜드로 단기간 내 자리매김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언어는 호흡 예술”… 출연대본 3000편 소장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언제, 어느 정도 ‘pause(쉼)’를 주느냐에 따라 감정이나 의사전달에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언어를 호흡의 예술이라고 하지요.” 경희대 교양학부 국어화법 시간. 올해로 성우(聲優)인생 40년을 맞은 김용식(58) 방송아카데미 원장의 화법 강의가 한창이다. 새내기 대학생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베테랑 성우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이다.●`은하철도 999´ `전설의 고향´ 등 해설자김 원장은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나 ‘전설의 고향’ 등의 해설자로 잘 알려진 성우. 나직한 회색톤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직장인 같으면 정년퇴직하고 쉴 나이에 최근 박사 학위를 받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강의 시간 외에는 서울 충무로 사무실에서 일한다. 문을 열자 자개로 제작된 ‘달마도’가 눈에 들어온다.1979년 방송된 MBC라디오 드라마 법창야화 ‘모정불심’편 주인공이었던 한 사형수의 선물이라고 했다.11남매 중 막내였던 사형수를 살리기 위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그린 이 드라마로 인해 무기형으로 감형됐고,20년을 복역한 뒤 출소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70년대 라디오 드라마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며 화려했던 지난 시절을 반추라도 하듯, 목소리엔 진한 향수가 묻어 있다. 라디오 전파를 타고 인기를 얻은 드라마가 TV연속극이나 영화로 제작됐고 대본은 소설로 출간돼 날개돋친 듯 팔리기도 했단다.성우들의 인기도 덩달아 ‘상한가’. 김 원장은 요즘에도 간혹 회자(膾炙)되는 영화 ‘별들의 고향’의 명대사,“경아∼오랜만에 함께 누워보는군.”의 주인공 이창환씨나, 남성우씨 등과 함께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김 원장이 지금껏 3000여편에 달하는 대본을 소장하고 있는 것은 성우들 사이에서 유명한 전설로 통한다.●음성연기 연구… 성우출신 박사1호그는 최근 성우출신 박사 1호라는 명함을 새로 얻었다. 지난 2월 ‘국어 매체 언어의 음성연기 연구’란 논문으로 경희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은 것. 성우의 음성연기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온 7년간의 결실이다. “방송언어는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죠. 그 중심에 성우들이 있고요. 그런 만큼 성우들의 음성연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만학의 열정을 불태우게 된 동기였다. 음성연기가 오로지 시청취율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방송제작 현실을 바꿔보고도 싶었다. 국어 본연의 표준발음과 화법이 왜곡되는 것은 물론, 일부 오락프로그램에서는 신조어를 남발하는 등 표준언어를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최근 출연하고 있는 MBC 라디오 ‘격동 50년’에 얽힌 일화 한토막. 고(故) 정주영 현대명예회장 역을 맡은 그에게 한 현대측 인사가 정 명예회장의 독특한 말버릇 몇가지를 알려주었다.‘때문에’를 ‘때민에’로 발음하고, 흥분된 상태에서 상대방을 부를 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봐요, 이봐’하며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 등. 여러 곳을 수소문해 얻은 정 명예회장의 비디오 테이프와 육성테이프를 안고 살다시피하며 ‘정회장 따라하기’를 반복했다. 청취자들의 반응은 놀라울 만큼 뜨거웠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되던 98년에 정 명예회장의 ‘성대모사’는 항간의 화제였을 정도.얼마전 대권주자 중 한 사람이 호소력있는 연설 방법을 물어와 ‘거울보고 말하기’를 전수해주기도 했다. 충청북도 옥천 출신으로 동갑내기 부인 송규옥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한때 18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30대 재벌그룹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외환위기(IMF)와 함께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인희, 동양물산 등 5개만 남은 미니그룹으로 축소된 게 오늘날의 벽산이다. 출자전환된 채권단의 주식을 되사들여 창업주 가문이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벽산의 주력사는 벽산건설이다. 전체 매출 가운데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때문에 벽산 사람들은 그룹이라는 표현 대신 건설 전문업체라는 표현을 쓴다.3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GS가문·박정희 대통령 등과 혼맥 형성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 2녀중 장남 김희철(69) 벽산건설 회장은 경기고 3학년이던 16세 때 미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15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한 달에 2∼3통씩 집으로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인 고 김인득 창업주는 틀린 한자를 교정해 보내주는 등 자식 교육에 애착을 보였다. 김희철 회장도 기대에 부응해 미국 퍼듀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경영학 석사·MIT대와 퍼듀대에서 각각 원자력공학 석·박사학위를 땄다. 이어 미주리주 롤라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1969년 정부의 해외우수인재 유치 계획에 따라 과학기술처 1급 연구관으로 초빙돼 귀국했다. 김희철 회장은 1965년 김인득 창업주의 3남이자 김 회장의 동생인 김희근(60)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과 김 명예회장의 경기고 동창인 허광수(60)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제의로 삼양통상 고 허정구 회장의 장녀 허영자(66)씨를 만났다. 허광수씨의 누나인 영자씨는 이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미 노스웨스턴대 불문학과 석사 과정을 밟다 다음해 시카고에서 김 회장과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은 1971년 건축자재 생산업체였던 ㈜벽산의 전신인 제일스레트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벽산 경영에 참여했고,1982년 그룹 부회장으로 오르면서 사실상 경영을 도맡았다. 하지만 김인득 창업주가 세상을 뜬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IMF 위기를 맞아 선친이 키운 기업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불운을 맞기도 했다. 벽산은 3세 경영 체제에 안착했다. 김희철 회장의 장남인 김성식(39) ㈜벽산 대표이사 사장은 ㈜벽산페인트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다. 오하이오주립대 마케팅 학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이후 보스턴 컨설팅에서 일하다 2001년 1월 ㈜벽산 전무로 입사했다. 지금은 부도로 쓰러졌지만 80년대 말 주택사업을 활발히 펼쳤던 ㈜동신 박승훈 회장의 장녀 박성희(36)씨를 학교 선배의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의 차남 김찬식(37)씨는 주력사인 ㈜벽산건설에서 경영수업을 받는 중이다. 경영지원실장(전무)으로 내부 살림을 챙기고 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에서 MBA를 땄다. 한 살 아래인 장현주(36)씨를 대학(이대 동양학과)시절 소개팅으로 만나 연애 결혼했다. 장씨의 아버지 장경환(74)씨는 포항제철 전무이사, 삼성중공업 사장 등을 거쳐 포항제철(현 포스코) 경영연구소 회장을 지냈다. 장녀 김은식(35)씨는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나온 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77) 전 재불 한국문화원장의 차남인 첼리스트 양성원(39·연세대 기악과 조교수)씨와 결혼, 음악가 집안을 꾸렸다. 이들의 결혼은 양가 어머니들의 오랜 친분으로 맺어졌다. 김인득 창업주의 차남인 김희용(64) 동양물산 회장은 미 인디애나주립대 출신으로 1987년부터 그룹의 모태이자 농기계전문업체인 동양물산 사장으로 취임,2001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인 고 박상희씨의 딸 설자(61)씨와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설자씨는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처제이기도 하다. 이로써 벽산가 혼맥은 경제계 뿐 아니라 고위 정치권과 닿는 계기가 됐다. 장남 김희철 회장가와 차남 김희용 회장은 2004년 주식 교환을 통해 사실상 독립경영 체제를 갖췄다. 김희철 회장 집안이 벽산건설과 ㈜벽산 등을, 김희용 회장 집안이 동양물산 지분을 갖는 것으로 구도를 정리했다. 김희용 회장의 장남 김태식(33)씨는 동양물산 이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딸 김소원(28)씨도 동양물산에 몸을 담고 있다. 셋째 아들인 김희근(60) 회장은 지금은 정리된 벽산건설의 해외부문을 담당하는 등 줄곧 건설을 책임지며 벽산건설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미 마이애미대 출신으로 IMF 위기를 맞아 건설에서 손을 뗐고 지금은 계열분리된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 직함만 갖고 있다. 벽산건설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한 사기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기소된 상태다. 미 LA에 살고 있지만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귀국해 수사를 받고 있다. 김희근 명예회장측은 당시 대출은 만기연장이 대부분이어서 사기 혐의는 터무니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 이윤우 전 그린파크 회장의 4녀인 이소형(58)씨와 결혼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녀인 김숙희(66)씨는 피혁전문 무역업체인 천마를 운영하는 정영현(72) 회장과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막내 딸 김연숙(57)씨는 원영종(59) 화인계기주식회사 대표이사와 사이에 치성(28)·치열(26) 두 형제를 두고 있다. ●고 김인득 창업주…소문난 근검절약가 고 김인득 창업주는 경남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농사를 지었지만 계절에 따라 포목상 일을 겸해 형편은 어렵지 않았다. 고향에서 보통학교(칠서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3수 끝에 열 네살이 되던 해에 마산상고에 입학했다. 성적이 좋아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농구·탁구·축구 선수로 활약하는 등 운동도 잘했다. 남선주산대회에서 1등을 했고 서화전시회에 출품하면 항상 상을 받는 모범생이었다. 첫 직장은 1934년 봄 입사한 마산금융조합. 예금 권유부터 연체 독촉까지 항상 1등이란 팻말이 따라다녔다.‘남과 같이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철학은 이때부터 생겼다. 당시 월급 28원을 받던 그는 10년동안 1만원(현재 1억원)을 벌겠다는 목표를 세워 9년간 8900원을 모았다. 이 돈을 모으기 위해 숙직을 자청, 숙직비를 모았고 출장 갈 때면 새벽에 일어나 목적지까지 걸어가면서 출장비를 아꼈다. 투철한 절약정신만큼 가족 사랑도 깊었다.“1932년 1월11일 양가 부모와 일가친척의 축복 속에서 17세 신랑과 18세 신부는 결혼을 했어요. 신랑이 장남이라 결혼시켜 어린 5남매와 큰 살림을 맡기실 작정을 하신 모양이었어요.17세 신랑은 키도 크고 헌칠했어요. 결혼후 남편은 3년을 학생 신랑으로 지내고 저는 신랑 없는 시집살이를 했어요.” 고 김인득 창업주의 부인 고 윤현의 여사는 김 창업주의 첫 인상을 ‘벽산 김인득 선생 회갑 기념-남보다 앞서는 사람이 되리라’란 책을 통해 이같이 회고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동생인 고 김재동씨도 같은 책에서 창업주를 두고 애처가 중의 애처가라고 평했다. 평상시에도 “부인이 무슨 낙이 있겠어. 내가 아내의 종이 돼야지…”라고 말하며 부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 김인득 창업주는 일제 치하였던 만큼 기술자나 사업가가 아니면 한국인은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1943년 진주상공회의소로 자리를 옮긴다.1949년 무역업을 하기 위해 상경했는데, 당시 외국 무역이나 한다는 사람들은 으레 호텔에 머물며 식사도 고급으로 하는 등 허세를 부리기 일쑤였지만 김인득 창업주는 삼류여관에 머물며 국밥 외엔 다른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택시는 타지 않았고 걷거나 전차·버스를 이용했다. 모두가 멋쟁이 양복을 빼고 다녔지만 농구화나 군화를 신고 다녔으며 그나마 구두 뒷굽이 빨리 닳는다며 바닥에 말발굽 ‘징’을 박아 신고 다녔다. 호주머니에 쓸데없이 돈을 넣고 다니지 않았으며 필요한 돈만 명함꽂이에 넣어 다닐 만큼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극장의 제왕’서 건자재·건설업으로 비약 부산 동아극장 지배인으로 일하다 6·25가 발발한 1950년 피란갔던 부산에서 오늘날 벽산의 효시인 동양흥산(현 동양물산주식회사)을 창업한다. 외국영화를 수입해 전국 영화관에 공급하는 일과 수입·무역업이 주종이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당시 오락시설로는 극장이 전부인 시절이었고 동양물산은 외화의 60%를 수입했다. 중앙극장, 단성사 등 서울 주요 극장을 비롯해 부산 대전 대구 진주 등 전국에 100여개에 달하는 극장 체인을 형성, 극장 재벌로 부상하며 50년대 말 흥행업 왕좌에 올랐다. 산업의 본질은 생산업이라 여긴 김인득 창업주는 60년대 들어 ‘사업보국’을 내걸며 흥행업에서 점차 손을 떼고 제조업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단성사와 반도극장(현 피카디리) 등을 판 돈으로 1962년 9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현재 ㈜벽산)를 인수한 것은 제2의 도약기를 맞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 회사는 일제 당시 일본 아사노 스레트의 서울 공장으로 1929년 출범했지만 당시 부실화되어 개점 휴업상태인 회사였다. 인수 직전 9개월까지 실적이 3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주인이 바뀐 뒤 3개월간 6000만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어 60∼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시작된 전국적인 농어촌개량작업으로 슬레이트 사업은 번창일로를 맞는다. 이후 건자재 생산업체인 오늘날의 ㈜벽산으로 자라났다. 1964년 1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에 건설사업부를 발족하면서 건설업을 본격화했다.1968년 시공능력 33위에서 1971년에는 11위에 오를 정도로 덩치가 커지면서 같은 해 1월 한국건업주식회사로 떨어져 나와 지금의 벽산건설로 성장했다. 그룹의 모태인 동양물산은 고구마 절단기 등 농기계 생산업체인 ‘한국이기공업주식회사’(1964년)와 한국경금속(1968년)을 인수하면서 새 전기를 맞는다. 동양물산은 지금도 경운기 등 농기계와 스푼 등 양식기를 만들면서 과거 명맥을 잇고 있다. 1973년 스레트공업사 내 페인트공장을 신규 착공하면서 시작한 페인트 사업도 그대로 있다.1999년 구조조정과 함께 벽산화학㈜에 합병됐다 2001년 벽산페인트로 거듭났다. 이로써 벽산그룹은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 동양물산,㈜인희 등 5개사를 거느리고 있다. ●IMF때 대대적인 구조조정 그룹명 벽산은 고 김인득 창업주의 아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60년대말부터 회사를 끊임없이 인수·합병하는 등 사세를 키워카며 통일성을 위해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유통 금융 방송 지하자원개발 등 전체 18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IMF이후 구조조정을 겪으며 현재 5개로 줄었다. 1976년 설립한 건축내외장제 제조사 벽산산업개발㈜은 1998년 그룹 경영합리화 계획에 따라 ㈜인희에 합병됐다.㈜인희는 영화산업에 애착을 가졌던 김인득 창업주가 1952년 중앙극장을 세우면서 설립했던 회사. 영상산업회사로 키우기 위해 비서실내에 신규 영상 사업팀까지 두고 챙겼었지만 지금은 발코니 확장과 일부 건자재만 만들며 ㈜벽산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1985년 벽산쇼핑㈜을 통해 유통업에 진출했지만 1999년 3월 구조조정계획에 따라 매각했고,1989년 인수한 정우개발㈜,㈜동부해양도시가스 등 정우 계열사들 역시 1999년 정리했다.1991년 유신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금융업도 본격화했지만 1998년 대출금 마련을 위해 팔았고,㈜한국케이블TV 전남동부방송을 설립해 종합유선방송(SO)사업도 손을 댔지만 199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했다. 대부분의 그룹 사옥도 처분했다. 그룹 40주년 출범과 함께 서울역 앞에 지었던 시가 1100억원 연건평 900평 규모의 그룹 사옥인 ‘벽산 125빌딩’을 포함해 퇴계로 ‘인희빌딩’ 등이 모두 넘어갔다. 벽산 125빌딩은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씨의 마지막 작픔으로 유명하다. 전주 백화점, 안양 벽산쇼핑, 부산 남포동 복합상가빌딩 등 유통 사업 관련 부동산도 함께 정리했다. ●3대를 잇는 기독교 사랑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2녀중 막내딸 가족을 제외하면 지금도 매주 일요일 오전 고 김인득 창업주 때부터 다니던 인사동 승동교회에 나가 예배를 들이며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김인득 창업주가 6·25때부터 승동교회에 나갔고 장남 김희철 회장도 같은 교회 장로를 지낸 바 있다.3세인 김성식 ㈜벽산 대표이사 사장도 술·담배를 일절하지 않고, 매사 성경이 판단의 기준이 될 만큼 신앙이 깊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벽산의 기독교 사랑은 가족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무식은 물론 창립기념식 등 모든 공식행사가 예배로 시작되는 ‘기독교문화’ 회사다. 국내 처음으로 직장예배를 도입한 기업으로 창립 초창기인 1956년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첫 직장예배 이후 매주 금요일 아침 8시30분(일부 계열사는 다름)부터 1시간은 본사와 각 공장, 지점, 현장별로 직장예배를 보고 있다. 기독교를 통해 임직원을 통합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평이다. 벽산건설이 19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가 무분규로 일관, 회사 살리기에 힘을 합했던 것도 기독교 문화가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jhj@seoul.co.kr ■ 오뚝이 정신으로 일군 ‘벽산 56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장33절)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손자인 김성식 사장이 맡고 있는 ㈜벽산은 최근 수년간 이 회사 주식을 사들이며 끊임없이 M&A 위협을 해온 창투사 아이베스트와 ‘적과의 동침’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 아이베스트가 구주 매출을 통해 벽산 주식 100만주를 주당 1만 5000원에에 팔고 나간 뒤 주가가 1만 1000원대까지 빠지면서 아이베스트는 시세 차익을 얻은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손해를 입어 벽산에 대한 개미들의 원성이 높았다. 특히 벽산은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아이베스트 보유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는 등 양측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대립해왔다. 이처럼 수년간 벽산을 괴롭혀온 아이베스트가 최근 대주주의 우호 지분을 자청하면서 두 회사간 구원(仇怨)관계가 일단 봉합된 상태다. 벽산그룹은 56년을 헤쳐오면서 고난도 많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내실을 다져온 기업이다. 1998년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간 분규없이 한마음으로 대처했던 혼연일체는 지금도 업계의 귀감으로 회자된다. 벽산건설의 경우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과 맺은 목표보다 50%가량 많은 244명이 명퇴했다. 자진해 나간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남은 직원들은 상여를 전액 반납해 떠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대주주도 4대1 감자를 단행하는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덕택에 2000년 회사가 흑자로 전환됐고 2002년 말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은 풋백옵션을 행사, 출자전환된 채권단 주식을 2004년 되사면서 회사를 되찾았다. 이에 앞선 지난 1992년 7월. 당시 재계 25위이던 벽산건설은 자사가 시공한 신행주대교가 준공 4개월을 앞두고 붕괴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규명되면서 대대적인 이미지 실추와 함께 영업정지, 단자사 여신 동결 등 악재가 뒤따랐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인명 사고가 없어 복구공사비 200여억원 등을 전액 부담, 재공사를 맡아 결자해지로 매듭지었다. 여전히 우환은 끊이지 않는다. 벽산건설 임원 2명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각각 회사돈 수십억원을 빼돌려 부동산 구입과 주식투자 등에 쓴 혐의로 조사를 받는 등 집안 단속 문제가 붉어져 조사 중이다. 벽산건설 관계자는 “주택 사업 이외에 토목공사 등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면서 “무엇보다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위축됐던 직원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게 가장 큰 과제다.”고 말했다. 벽산그룹 5개 계열사의 2005년 기준 총 매출은 1조 2500억원이며, 이중 벽산건설의 매출이 전체의 61%를 차지한다. jhj@seoul.co.kr ■ 벽산을 만든 전문 경영인들 벽산그룹은 올해로 56년을 헤쳐오면서 가장 훌륭한 전문경영인으로 이 회사 부회장을 지낸 정종득(65) 목포 시장을 꼽고 있다. 워크아웃 조기졸업의 일등 공신으로 지목되는 정 사장은 서울대, 산업은행, 쌍용을 거쳐 1983년 벽산건설에 이사로 입사 1994년 사장이 되면서 워크아웃의 시작과 끝을 지키는 등 벽산과 고락을 함께해온 인물. 특유의 인화력과 결단력으로 조직을 이끌며 대주주인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과 호흡을 맞췄다는 평이다.2005년 5월 시장 출마를 위해 부회장으로 위촉된 뒤 당선과 함께 회사를 떠나 지금은 공직자로 일하고 있다. 김재우(62) 아주그룹 부회장은 1997년 2월 워크아웃에 들어가기에 앞서 ㈜벽산 사장에 취임해 3년 만에 경영을 정상화시킨 능력을 인정받아 아주그룹에 스카웃된 인물. 삼성물산 출신으로 2005년까지 ㈜벽산 부회장 등을 지내며 ‘누가 우리회사 망한다고!!’‘거봐!안 망한다고 했지!!’ 등 벽산 구조조정 성공사례들을 책으로 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광주고·건국대 출신의 신광웅(63) 신동아건설 사장도 벽산건설 출신이다. 한신공영을 거쳐 지난 1995년부터 2004년 6월까지 벽산에 적을 둔 바 있다. 벽산건설 부사장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한편 지난 2004년 뇌물수수죄 재판중 또다시 뇌물수수 의혹을 받아 감옥에서 자살했던 고 안상영 전 부산시장도 벽산건설에서 부회장직을 수행한 바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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