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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황후’ 백진희, 하지원 죽이려 견고술 ‘개의 영혼 이용해..경악’

    ‘기황후’ 백진희, 하지원 죽이려 견고술 ‘개의 영혼 이용해..경악’

    ‘견고술’이 화제다. 3일 오후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극본 장영철 정경순·연출 한희 이성준)에서 타나실리(백진희 분)는 사냥대회에서 기승냥(하지원 분)을 죽이는 데 실패하자 또 다른 악행을 꾸미기 시작했다. 앞서 지난 번 방송분에서 타나실리는 승냥을 죽이려다 전세가 역전되자 “살려만 달라”며 목숨을 구걸했다. 씻을 수 없는 굴욕을 맛본 타나실리는 승냥을 향한 분노심으로 차올랐다. 타나실리는 황태후(김서형 분)의 명으로 승냥이 황실의 살림을 맡게 되자 질투에 눈이 멀어 계단에서 승냥을 밀치는 등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승냥이 황제의 아이를 회임하고, 재인에서 첩여로 올라서자 분개했다. 이에 서상궁(서이숙)은 타나실리에 개의 영혼을 이용해 상대방에 저주를 거는 술법인 ‘견고술’을 제안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주술이라는 말에 솔깃한 타나실리는 이를 받아들이고 곧장 실행에 옮겼다. 서상궁은 ‘견고술’에 능한 주술사를 찾아 나섰고, 연화(윤아정 분)는 주술사의 지시대로 승냥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땅 속에 묻었다. 타나실리는 “저주 술법이 상대방에 통하지 않으면 의례를 한 사람에게 저주가 붙는다”는 주술사의 경고에도 황궁 안에 비밀제단까지 만드는 등 승냥을 죽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한편 이들의 저주에 승냥은 개의 영혼에 쫓기는 악몽을 꾸며 깨어났고, 자신의 팔에 개에 물린 선명한 잇자국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졌다. 계속되는 악몽에 승냥은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 = M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성주 집공개, 설마 하우스푸어? ‘과거 발언보니..경악’

    김성주 집공개, 설마 하우스푸어? ‘과거 발언보니..경악’

    김성주 집공개가 화제다. 배우 류진이 26일 방송된 MBC ‘일밤-아빠 어디가’ 시즌 2 첫 방송에서 김성주의 집을 방문해 요리 대결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김성주 부엌 등이 공개됐고 깔끔한 김성주 집공개가 시선을 끌었다. 김성주는 지난 2012년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 하우스푸어 특집에 출연해 집을 공개한 바 있다. 당시 김성주는 집을 공개하며 “전세다 전세. 우리 집도 아니다”며 씁쓸한 마음을 토로했다. 김성주는 서재 로망을 드러내며 “드라마에서 보면 회장님들이 가죽 의자에 앉아 용 그려진 명패에 돌아서서 앉아 있지 않느냐. 그 모습이 항상 부러웠다. 그래서 뒤돌아 앉아서 ‘민국이 엄마 들어와 봐’라고 한다. 아내가 과일과 커피를 갖고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정말 행복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성주 집공개 방송을 접한 네티즌은 “김성주 집공개..전세가 뭐 어때서”, “김성주 집공개..서울에서 집 장만은 하늘에 별 따기다”, “김성주 집공개..집 자랑할 만하네”, “김성주 집공개..오랫동안 이사 안가네”, “김성주 집공개..하우스푸어라니 말도 안돼. 특집에만 출연했겠지”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 = SBS ‘자기야’ (김성주 집공개)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슈퍼 파워’ 김장수

    ‘슈퍼 파워’ 김장수

    20일 공개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조직 개편안은 한마디로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여기에 힘을 싣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NSC 상임위원회와 상설 사무조직인 사무처를 신설해 급변하는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에 효율적,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미다. 북한의 ‘장성택 처형’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 등 한반도 주변의 안보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안보 라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판단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북한은 무차별 타격을 경고하고 나서는 등 위협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번 개편을 통해 무엇보다도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파워’가 막강해졌다. 김 실장은 NSC 상임위원장을 맡아 매주 한 차례 국가정보원과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등 외교안보 부처와 기관을 사실상 지휘,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안보실 조직 개편을 통해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더욱 중시된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 밑에 국가안보실 1, 2차장이 신설됐고 2차장을 주 수석이 겸임하면서 예전처럼 외교·통일·국방비서관실을 지휘한다. NSC 사무처장을 겸임하는 1차장은 정무직 차관급으로 외교안보 부처·기관의 차관급이 참여하는 NSC 실무조정회의를 주재하게 된다. 1차장이 관장하는 국가안보실 비서관실은 현행 3개에서 4개로 확대된다. 실무를 총괄하며 정책을 조율하게 될 NSC 사무처장 겸 국가안보실 1차장은 군 출신인 김 실장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베테랑 외교 관료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의 김규현 제1차관과 조태용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국제협력비서관실이 정책조정비서관실로 명패를 바꿔 달아 외교안보정책 조정 기능을 담당하게 됐다. 정책조정비서관은 NSC 사무차장을 겸임한다. 중장기 외교안보 전략 수립, 주변국 안보 전략 분석 및 대응 전략 수립 등의 기능은 신설되는 안보전략비서관실이 맡게 된다. 이번 개편안은 국가안전보장회의법 개정을 수반하는 만큼 국회의 심의, 의결 절차를 밟아야 한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지역 의석수 늘리자”… 충청의원 첫 모임 ‘썰렁’

    충청 지역 의석수 확대를 위한 충청권 여야 의원 모임이 12일 첫 회의를 열었지만 출석률이 저조해 썰렁했다. 여야 간의 ‘동상이몽’도 확인됐다. 새누리당 송광호·민주당 양승조 의원 등 충청권 의원 11명은 이날 국회에서 ‘불합리한 선거구 획정 관련 충청권 간담회’를 가졌다. 의원들은 충청권 선거구 확대를 위한 획정 단일안을 다음 달 15일까지 마련하고 이를 여야 지도부에 충청권 의원 24명 전원 명의로 전달해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상정해 줄 것을 촉구키로 했다. 충청권 여야 시도당 연석회의도 두 달에 한 번씩 열기로 했다. ‘지역주의 조장’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의원들은 신중했다.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충청권이 자신들의 이익만 얘기한다고 수도권이나 영호남으로부터 공격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했고,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은 “불합리한 선거구 획정이야말로 충청권의 최대 현안으로 이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은 호남과의 인구 비례를 중점 거론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호남 의석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전국 선거구의 정수 조정’에 방점을 찍었다.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은 “인구가 호남이 많지 않았는데 DJ(김대중 전 대통령) 때 (선거구 획정이) 잘못됐다”면서 “인구 비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당마다 생각이 달라 출석률은 반 토막에도 못 미쳤다. 명패가 놓인 의원들 좌석은 이가 빠진 듯 듬성듬성했다. 충남 지역 한 새누리당 의원은 “조찬모임이라는 연락만 받고 선거구 획정을 논의한다는 얘기는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씨줄날줄] 신춘문예 홍역/문소영 논설위원

    ‘신춘문예 홍역’을 치르느라 밤잠을 못 자고 있을 것이다. 작가 지망생들의 이야기다. 전국의 주요 신문사들은 2014년 신춘문예 응모작을 12월 초순에 마감한다. 마감을 앞두고 신춘문예의 좁은 문을 뚫고자 하는 작가들은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고 있을 것이다. 신춘문예는 1925년 동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이던 홍명희(1888~1968)씨가 ‘신춘문예’라는 명패를 내걸고 독자들의 문학작품을 소개한 것을 효시로 잡기도 하고,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가 1914년 12월 시작한 ‘신년문예 모집’을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지금이야 작품을 공모하는 잡지 등 지면이 풍성하지만, 일제 강점기만 해도 신춘문예가 작가 데뷔의 희귀한 관문이었다. 시인 백석(1912~1996)과 서정주(1915~2000), 소설가 김동리(1913~1995)가 신춘문예 출신이다. 출판사들이 성장하면서 작가 등용문이 지난 100년 사이에 수많은 문예지로 확장됐고 상금도 최대 1억원으로 늘었다. 그래서 아직도 쥐꼬리만 한 상금을 주는 신문사의 신춘문예 공모가 과연 필요하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문인이나 평론가들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답한다. 문·사·철(文史哲)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 마당에 신문의 신춘문예 당선이야말로 ‘21세기 장원급제’로서 권위가 있다는 것이다. 일차적인 주목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활발하게 활동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문단과 독자로부터 인정받게 된다고 설명한다. 신춘문예야말로 최근 몇 년간 유행했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개 오디션과 비슷한 대목도 많다. 원고지에 연필로 힘을 줘 써내려간 작품이 있는가 하면, 10대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70세를 훌쩍 넘긴 응모자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선이 목표가 아니라 참여가 목적인 작품들도 없지는 않다. 응모자가 누구라도 문학으로 밥 벌어 먹기 힘든 것을 뻔히 아는 시대에, 문학을 향한 그들의 열정은 놀랍기만 하다. 마감시간을 지나 직접 헐레벌떡 들고온 원고나, 뒤늦게 도착한 우편물을 예심 전에만 도착하면 슬쩍 묵인하고 넣어주기도 하는 이유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신춘문예 응모작이 늘어난다는 속설이 있다. 현재의 어려움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글을 쓰면서 자신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고통을 치유한다는 것이다. 그 속설대로라면 경제·사회적으로 ‘갑(甲)질’이 횡행했던 올해, 2014년 신춘문예 응모작은 부쩍 늘어났을 것이다. 오늘 밤에도 작품을 고치고 또 고칠 응모자들 모두에게 ‘당선’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배달되는 불가능한 희망을 꿈꿔본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돈 줘도 밀려”… 홧김에 자해·폭행까지

    지난 7월 경북 청송군 기능직 공무원 이모(46)씨는 흉기로 자신의 왼쪽 새끼손가락을 잘랐다. 이씨는 이날 인사부서를 찾아가 “동기들은 모두 승진했고 후배들도 많이 승진했는데 왜 나만 빠졌느냐”고 한 시간쯤 항의한 뒤 별 진전이 없자 홧김에 이 같은 일을 벌였다. 인사가 끝나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좌천되거나 승진에서 누락된 공무원과 가족들의 불평·불만이 봇물을 이룬다. 이씨처럼 일부는 억울함에 분을 삭이지 못해 자해와 폭력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 같은 현상은 자치단체에 만연한 인사비리와 무관치 않다는 게 직원들의 얘기다. 지난 7월 충북 증평군 군수실에서 한 공무원 부인이 소동을 벌였다. 남편이 사무관 승진에서 탈락한 게 원인이었다. 그는 “내 남편이 무슨 이유로 탈락했느냐”고 따지며 군수 면담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군수 명패를 집어던지고 여직원들과 몸싸움까지 했다. 부인은 경찰에 입건됐다. 2011년 9월 당시 서중현 대구 서구청장이 돌연 사퇴를 발표했다. 검찰 내사 때문이란 설이 파다했다. 구청장에게 돈을 건넸는데도 승진 인사에서 떨어진 한 직원이 술자리에서 불만을 터뜨린 게 검찰에 흘러들어 갔다는 것이었다. 서 구청장은 부인했지만 의구심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부단체장을 폭행한 사건도 있다. 명목상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어서다. 지난해 11월 경북 영양군청 A(56) 과장은 읍내 한 술집에서 B부군수와 말다툼하다 맥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B부군수는 10㎝ 이상 찢어져 28바늘을 꿰매는 봉합수술을 받았다. A과장은 5급 승진 뒤 장기간 승진하지 못해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지역 공무원들은 “인사비리가 관행화돼 승진하려면 줄 대기나 금품 제공밖에 없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은 승진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고 억울함을 하소연해도 소용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열린세상] 이념갈등 관리하는 통합의 리더십/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이념갈등 관리하는 통합의 리더십/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학문 간 융합연구에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과 진보적인 사람의 뇌 구조는 다른가를 탐구하는 분야가 있다. 연구 결과는 대체로 보수의 뇌와 진보의 뇌는 다르다는 것이다. 뇌 특정부위의 발달 정도가 달랐고, 같은 이슈를 접했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달랐다. 보수와 진보의 뇌가 다른 게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성장과정에서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인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뇌 구조부터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여전히 치열한 이념 대립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에 주는 교훈은 명확한 것 같다. 보수와 진보의 ‘다름’을 먼저 인정하고 이렇게 서로 다른 이념을 관리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본디 보수든 진보든 이념이 지향하는 가치는 아름다운 것이다. 보수가 추구하는 안정과 점진적 변화, 자유, 시장 중시, 작은 정부, 규율과 절제, 가족가치 등과 진보가 추구하는 평등과 사회 개혁, 정의, 분배 중시, 정부의 역할, 개성의 표출 등은 모두 다른 차원의 것이지만 살 만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동일한 지향점을 두고 있다. 사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가치들은 배타적이고 대립적이기보다는 중첩되기도 하고 보완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다르지만, 똑같이 아름다운 가치들을 놓고 서로 ‘다름’을 관리하면서 선의의 경쟁 속에 보다 품격 있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이념적 가치가 추해지는 것은 사람들이 이념을 놓고 갈라지고 싸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명패를 걸고 배타적 집단화하고 집단의 명운을 건 정치적 싸움이 시작되면, 이념적 가치들은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그때 사람들은 이념의 가치를 추구하는 주인이 아니라 이념의 노예 또는 희생자가 되고 만다. 거의 모든 문제가 이념적 갈등과 대립, 싸움으로 귀결되는 우리 사회는 극심한 이념 정쟁 속에 이념 가치의 실종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독재를 경험하고 분단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 사회의 이념은 북한과 미국,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태도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개인, 가족, 자유, 평등 등 다양한 사회적 이념 가치가 발달한 서양 선진국들과 확실히 다른 점이다. 한국 사회는 북한-미국-박정희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정당, 언론, 시민사회가 좌파와 우파 진영으로 분열돼 모든 사회문제를 분파적 진영논리로만 풀어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보수든 진보든 아름다운 이념적 가치를 돌보고 꽃피울 기회를 거듭 상실하고 있다. 최근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채택 논란은 좌파와 우파의 싸움만 난무할 뿐 그 속에서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것을 비판하는 진보의 가치는 또 무엇인지 성찰할 여지는 거의 없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지지파와 반대파의 정쟁만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문제는 누가 보수고 누가 진보인지 이념적 가치의 혼동을 일으키는 가운데 서로 진영 간 공방에만 몰두하고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설과 사퇴외압설은 검찰의 독립에 관한 민주주의의 가치, 가족 중시, 사생활 보호 등 이념적 가치들을 돌아볼 여지가 거의 없이 보수와 진보 진영의 세력 다툼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념적 갈등과 대립의 자제와 중단을 호소하는 것은 헛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념적 갈등과 대립은 이미 역사적 연원을 가진 것이어서 단기적인 캠페인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 다스릴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정파적·이념적 초월이 가능한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딸,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은 고질적인 이념갈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개인적 정치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태생적 보수집단의 일원인 박 대통령이 진보집단과도 가치를 공유하는 통합의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고, 둘째는 사회적 약자의 인권, 가족 가치, 불량 식품 등 사회적 이념 가치를 확대하는 정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위기에 처한 대통령의 내치(內治) 리더십의 근본적인 타개책도 될 것이다.
  • 맛·위생·서비스 ‘합격’…검증 된 ‘강남맛집’

    강남구가 맛과 위생, 서비스를 고루 갖춘 명품 음식점을 엄선해 ‘강남맛집’ 170곳을 선정했다. 구는 지역 내 1만 487개소 일반음식점 중 서울시 위생등급 평가 우수업소와 맛집 블로그 상위에 랭킹된 유명 음식점, 대형 관광호텔 내 대표 음식점 등 245곳을 발굴해 서류심사와 현장심사, 최종 심사 등을 거쳐 170곳을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선정된 업소들는 구 홈페이지(gangnam.go.kr)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QR코드 등을 이용해 소개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상위 70업소에 대해서는 맛집 인증 명패를 수여하고, ‘테이스트 더 웨이(Tasty, the way)’ 라는 강남맛집 가이드북에도 소개된다. 다음 달 말 영어와 일어, 중국어, 한국어로 발간되는 가이드북은 4000부가 제작돼 곧 건립될 강남구관광정보센터, 관광호텔, 강남구의료관광협회 소속 병원, 여행사 등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에 비치된다. 구는 2010년부터 매년 ‘강남맛집’을 선정하는데 이미 맛집으로 선정된 곳이더라도 자격기준에 미달하면 다음 해 선정시 제외된다. 올해 선정된 업소 중에서 지난해에 선정된 맛집 64개소 가운데 휴·폐업 및 불법행위 등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업소 25곳은 제외됐다. 신연희 구청장은 “강남은 강남스타일 열풍 등으로 매일 1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찾는 글로벌도시”라면서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물론 글로벌 명품 음식점의 메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현장 행정] 이동진 도봉구청장 일일동장 체험

    [현장 행정] 이동진 도봉구청장 일일동장 체험

    도봉구 도봉2동의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할머니는 두 아들 얘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대기업 이사까지 했던 큰아들은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경기도의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둘째 아들 역시 항암치료만 반년 넘게 받고 있다. 할머니는 “성당에 열심히 다니며 버틴다. 가톨릭에선 자살을 금하지 않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29일 일일동장으로 나선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할머니의 얘기를 30분 넘게 진지하게 들으며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메모했다. 동장 명패를 찬 이 구청장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기초생활수급자 가정과 경로당 등을 열 곳 넘게 다니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기에다 주민센터 직원들과의 간담회, 민간복지거점기관 협약식 등 깨알 같은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주민들은 이날 이 구청장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흔치 않은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오전에는 주민센터 노래교실에서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른 이 구청장은 오후에는 경로당에서 ‘만남’을 열창했다. 도봉2동은 의정부와 인접해 있는 주택가라 별다른 산업기반이 없다. 임대아파트가 집단거주 형태로 들어서 있는 등 복지 수요도 높은 편이다. 이 점을 감안한 듯 이 구청장은 주민복지서비스 확대와 자살예방을 특히 강조했다. 동 복지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그는 “동 복지위원회가 자발적으로 주민복지서비스에 나서 주는 것이 지역공동체 형성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좋은 소식도 전했다. 이 구청장은 “서울에선 처음으로 ‘기적의 도서관’을 하반기에 도봉2동에 착공할 예정”이라면서 “기적의 도서관 덕분에 도봉2동이 유명해지게 될 것”이라고 기뻐했다. 자살예방을 위해 보건소에서 올해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우울증 전수조사를 벌인다는 계획도 설명했다. 이 구청장은 “경로당에 계신 어르신들을 뵈니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우리 구에 거주하는 모든 어르신들을 친부모처럼 모시는 복지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2013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들/유인혁

    [2013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들/유인혁

    1 이야기의 끝, 혹은 끝없는 이야기 이집트의 영조(靈鳥) 피닉스는 수명이 다하면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태양의 신전으로 날아가 스스로 불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피닉스는, 이윽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이 영조는 불사조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보르헤스는 불 속에서 파괴되며 재생하는 이 영원한 순환을 묘사한 적이 있다. ‘원형의 폐허들’의 주인공은 ‘불의 신전’에서 한 소년을 만들었다. 그는 꿈속에서 소년의 폐동맥과 심장, 뼈대, 눈꺼풀, 셀 수 없이 많은 머리카락 등을 눈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생생하게 떠올렸다. 정교한 상상 속에서, 소년은 마침내 실체가 되어 현신했다. 그런데 이 창조자는 소년이 언젠가 자신이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라 걱정했다. 불의 신전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결국 불이 될 것이다. 환영은 불에 탈 리가 없으므로, 언젠가 소년은 불에 닿았을 때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고민으로 천일 하고도 하루 동안 노심초사하다가 불타는 신전으로 뛰어들었다. 이 기나긴 고민을 끝내줄 죽음을 기다리면서. 그러나 불타는 폐허 안에서, 그는 자신이 불에 타지 않음을, 그러니까 자신도 누군가의 환영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소년 또한 먼 훗날 환영을 만들 것이다. 이 과정은 영원히 반복 되리라…. 피닉스와 보르헤스의 환영은 모두 반복을 통해 영원을 성취한다. 그것은 끝없이 뻗어나가는 직선이 아니라, 영구히 되돌아오는 원환이다. 그러니까 끝이 무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이 펼쳐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메시지는 바로 반복이다. 끝에 도달했을 때, 모든 것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끝과 무한(無限). 최근 소설쓰기 자체를 주제로 삼은 일련의 메타픽션 속에서 발견되는 문제는 참으로 이렇다. 한유주는 “내가 쓰고 싶었던 문장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다. 나는 읽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베끼고 또 베낀다”(한유주, ‘농담’,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30쪽)고 말한다. 이때 새로운 글쓰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된다. 대홍수가 인간의 문명을 송두리째 박살낸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의 세계에서, 창작의 가능성은 이 세상과 함께 종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한유주는 끈질기게 자신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때 한유주는 자기 글쓰기의 한 조건으로 ‘이야기의 끝’을 상정하고 있다. 이미 “이야기는 오래전에 모두 매진되” (한유주, ‘죽음의 푸가’, “달로”, 문학과지성사, 2006, 48쪽)어서 그 어떤 처녀작도 새로 쓰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최제훈은 끝없는 이야기의 모델을 보여준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은 오히려 충만한 자유를 제공한다. ‘괴물을 위한 변명’에서 “프랑켄슈타인”을,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는 흡혈귀 전설을, ‘셜록 홈스의 숨겨진 사건’에서는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솜씨 있게 패러디했던 그는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애거사 크리스티, 에도가와 란포, 오스카 와일드, 스티븐 킹, 로베르트 비네 등을 종횡무진 누빈다. 기성의 작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최제훈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한유주에게 제약이었던 것이 그에게는 기회요,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최제훈은 바로 이러한 조건 아래서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82쪽)를 상상했다. 2 플롯 없는 소설들 왜 차라리 ‘소설의 끝’이 아니라 ‘이야기의 끝’인가.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에서 진실로 끝나버린 것은 바로 플롯이다. 바꿔 말해 시작과 끝을 유기적으로 형성하는 서사가 부재하고 있다. 한유주의 소설에서 내용이 짐작 가능한 이야기는 드물게 출현한다. 한유주의 소설은 대부분 그녀의 의식을 (불)투명하게 묘사하는 데 진력할 뿐이다. 무엇인가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그 진위는 참으로 모호하다. ‘흑백사진사’에서 ‘아이’는 유괴당한 지 일주일 만에 목이 졸려 살해됐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소설의 화자는 납치된 지 나흘 째 되는 날 풀려났고 중학생이 되어 사건을 회상하고 있다. 이 의도적인 교란은 화자의 모든 진술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때 이야기는 진술들의 나열일 뿐이지 통일되고 연속적인 흐름을 형성하지 못한다. 심지어 한유주의 소설에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위로서의 사건(event)도 없다. 그녀의 소설에서는 사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한유주는 어떤 행위를 묘사하거나 진술한 다음, 곧바로 그것을 부정한다. 누군가 담배를 피웠는데 “연기는 나지” 않고 “재는 떨어지지”(한유주, ‘재의 수요일’,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2009, 208쪽) 않는다는 식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소설 속의 내용이 사실 허구(虛構)라는 점을 계속해서 인식시킨다. 이것은 부정문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허구0’에서 한유주 본인으로 짐작되는 화자는 현재진행형 시제의 문장을 활용하여 자신의 생각, 행동, 계획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허구0’이라는 제목은 이 모든 진술들이, 그러니까 가장 투명하게 작가의 머릿속을 베껴낸 이 문장들이 모두 거짓이라고 암시한다. ‘불가능한 동화’ 역시 같은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부정문, 혹은 명명(命名)을 통해 이루어졌던 일들이 이제 소설의 형식 자체를 통해 실천된다. 이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우선 앞에서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소녀의 테러리즘을 다룬다. 이 소녀는 반 급우들의 일기에 “나도 죽여보고 싶다”, “바늘 끝은 뾰족하다”, “불은 뜨겁다” 따위의 문장들을 몰래 적어 넣었다. 선생님은 이 테러의 진의를 알 수 없다. 그는 아이들에게 성을 내지만, 이것이 왜 나쁜 행동인지는 좀처럼 설명할 수 없다. 이 교실에는 “없어진 것도, 사라진 것도 없”으므로. 그저 “의미도 불분명하고 출처도 없는 문장들이 있을 뿐”이므로(한유주, ‘불가능한 동화’, “문학과 사회” 2011년 겨울호, 165쪽) 이것은 타인의 문장에 가해진 목적이 불분명한 테러인 것이다. ‘불가능한 동화’는 이렇듯 모호한 폭력을 가한 소녀를 중심으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발아시킨다. 이름이 주어지지 않으므로 소녀의 정체는 미스터리이다. 그녀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도 알 수 없다. 한편 소녀는 미아라는 급우가 자신의 범행을 알고 있을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소녀는 미아를 살해하고 도망친다. 이제 우리는 미스터리의 해결(소녀는 누구인가)과 서스펜스의 지속(소녀는 잡힐 것인가)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한유주는 어느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한 여성을 조명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수업 도중 강의실 뒤편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크게 놀란다. 그 아이는 바로 ‘소녀’. 자기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아이는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처럼 자신의 창조주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왜 자신을 끔찍한 모습으로 창조했는지 따져 묻는다. 이제 한유주는 앞선 이야기가 모두 허구였음을 고백하고, 허구란 대체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한유주 소설의 시그니처와 같은 부정문은 형식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그녀는 말한 다음, 바로 부정한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제시한 다음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노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마치 만다라와 같은 작업이다. 형형색색의 모래를 뿌려 만들어지는 이 신성한 그림은, 완성과 동시에 물에 씻겨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유주가 가지고 있는 언어에 대한 회의 때문에 생겨났다. 그녀는 언어가 현실을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좀처럼 갖지 못한다. 이는 사전에 대한 불신 속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K에게’에서 사전은 “모두 다섯 권이었지만, 첫 번째 사전부터 마지막 사전까지 합친 두께가 손바닥 한 뼘을 넘지 않”는 “무성의한 생일 선물”에 불과하다. 그것은 “조야한 방식으로 선별된 하나의 작은 세계”를 펼쳐 놓고, “수수께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낼 뿐 아무런 해답도 내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한유주는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은 틀린 것”이라고 진술한다(한유주, ‘K에게’, “얼음의 책”, 문학과 지성사, 2009, 72~73쪽). 사전이 결코 세계를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언어는 현실을 투명하게 재현할 수 없다. 플라톤이 말한 바와 같이 문학은 세계를 열등하게 모사한 것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문학에서 삶과 현실을 찾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한유주는 자신의 글이 “아무것에도 봉사하지 않을 것이”(한유주, ‘허구0’, “얼음의 책”, 문학과 지성사, 2009, 19쪽)라고 선언한다. 언어는 그런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유주의 해답은 바로 메타픽션이다.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언어는 결코 현실을 적절히 재현할 수 없으므로 차라리 언어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유주에게 ‘이야기의 끝’이란 단순히 모든 이야기가 이미 쓰였다는 인식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야기가 현실을 재현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시대가 이미 오래전에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때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도대체 이야기를 쓸 수 있는지 의심하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한유주 소설의 특징은 좀처럼 요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오이디푸스왕’을 오이디푸스에게 일어난 몇몇 사건들을 중심으로 요약할 수 있다. 라이오스왕의 죽음, 이오카스테와의 결혼, 모호하면서도 분명한 신탁…. 하지만 한유주의 소설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수고롭게 그러한 작업을 한다고 해도 그녀 소설의 특징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요약할 수 없다는 것은, 최제훈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최제훈이 한유주처럼 사건을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최제훈의 소설에서 사건은 너무 많이 일어난다. 다만 그것들은 좀처럼 결말을 향해 회수되지 않는다.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장편소설’로 소개되고 있지만, 실은 ‘여섯번째 꿈’, ‘복수의 공식’, ‘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네 편의 소설이 느슨하게 연결된 연작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여섯번째 꿈’에 나오는 민규, 현숙, 세나, 연우, 영수, 태식 등의 인물들은 뒤의 세 작품 안에서 조금씩 설정과 역할을 달리하여 변주된다. 예를 들어 ‘여섯번째 꿈’의 연우와 ‘π’의 M은 동일인물로 보인다. 연우와 M은 모두 번역가인데, 자기가 번역을 맡은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운명을 바꾼 일이 있다. 비중이 거의 없는 인물을 슬그머니 죽은 것으로 오역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우가 스페인어 번역가인 데 반하여 M은 일본어 소설을 번역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죽음을 맞는다. 연우가 눈이 오는 산장에 고립되어 수수께끼의 살인마에게 살해당했다면, M은 소설을 쓰다가 탈진해 쓰러졌다.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려는 탐욕스러운 셰헤라자드에게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58쪽). 한 편의 장편소설에서 인물이 복수(複數)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사실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소설은 인간의 삶을 재현한 것이고 어떠한 인간도 두 번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죽음은 삶의 의미를 확정하는 사건이다. 발터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는데,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삶의 의미는 오로지 그들의 죽음에 의해서만 비로소 해명될 수 있다.”(발터 벤야민, 반성완 편역, ‘얘기꾼과 소설가’,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1983, 185쪽). 많은 소설들이 등장인물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적과 흑”은 줄리앙 소렐의 죽음으로 끝나며, “레미제라블”은 장 발장의 죽음으로 끝나고, “보바리 부인”은 엠마 보바리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들의 죽음이 삶과 소설의 의미를 확정짓는 것이다. 하지만 최제훈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여러 겹의 삶을 살아가고, 복수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은 삶이 아니라 차라리 연극이다. 예컨대 햄릿의 죽음은 연출가의 각색에 따라 매번 달라지지 않는가. 이러한 최제훈 소설의 특징은 그가 중심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에 의해 촉발되었다. 바로 패스티시다. 한유주 소설이 부정문의 특징을 형식적 차원에까지 확장한 결과라면, 최제훈은 패스티시의 가능성을 극단까지 활용하여 “일곱개의 고양이 눈”을 쓴다. 예를 들어 ‘여섯번째 꿈’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쥐덫’, 그리고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을 인용하고 있다. ‘여섯번째 꿈’에서 민규, 현숙, 세나, 연우, 영수, 태식 등은 연쇄 살인범의 세계를 탐구하는 ‘실버 해머’라는 인터넷 동호회의 회원들이다. 이들은 어느 겨울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회장의 초대장을 받고 산장에 모였다. 그런데 정작 ‘악마’는 나타나지 않고, 회원들은 폭설로 고립된 산장에서 하나씩 하나씩 살해당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악마’가 숨어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판사, 사업가,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열 명의 사람이 외딴섬에 모인다. 그들은 어느 사업가에게 초대 받았다. 그런데 ‘여섯번째 꿈’과 마찬가지로 초대장의 주인은 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의 노랫말에 맞추어 한 명씩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한편 ‘쥐덫’에서도 사람들은 밀실에 갇혀 있다. 이들은 ‘여섯번째 꿈’과 마찬가지로 폭설이 내리는 산장에 고립된 것이다. 그리고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에서 ‘붉은 방 클럽’은 ‘실버 해머’처럼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취미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때 ‘여섯번째 꿈’은 애거사 크리스티와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을 인용하고, 수정하는 가운데 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여섯번째 꿈’은,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다른 소설을 재현하는 글쓰기이다. 소설의 인물이 두 개의 죽음을 경험하는 이유는, 그들이 각각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제훈의 소설에는 이야기만 있을 뿐 그 이야기가 재현하는 인간의 삶이 없다. 그런 것은 도무지 중요하지가 않다. 이야기가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인물들이 선택되는 것이다. 이때 소설에서 인간적 삶의 내용은 사라지고 주인공은 그저 한 기능으로 퇴락한다. 그러니까 “돈키호테”에서 이 우스꽝스러운 기사는 다만 “무관한 일화와 에피소드의 모음으로 떨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것에 통일을 주기 위해”(프레드릭 제임슨, 윤지관 옮김, “언어의 감옥”, 까치, 1977, 61쪽) 고안되었다는 식이 된다. 소설은 한 인간의 삶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야기 재료들의 짜깁기가 되는 것이다. 3 전문가로서의 작가 그래서 패스티시의 소설은 반인간적이다. 소설 속의 인간에게 고유한 삶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스티시는 소설 바깥의 인간에게서도 존엄성을 빼앗는다. 그러니까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에게서 창조주의 권위를 앗아간다. ‘π’에서 M은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직업은 소설가가 아니라 번역가이다. 즉, 그는 타인의 언어를 거쳐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쓸 수 있는 존재이다. 이는 M이 결코 글쓰기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 M은 어느 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밤마다 M에게 으스스한 이야기를 속삭인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M이 쓰고 있는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이 된다. 그러니까 그녀는 M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셰헤라자드이자, M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뮤즈이기도 하다. 그런데 셰헤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소설이 되기 위해서, M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이는 맵시벌의 다큐멘터리에서 우의적인 방식으로 설명된다. 맵시벌은 거미의 몸에 알을 깐다. 세월이 흘러 다 자란 “유충은 쓸모없어진 거미의 몸을 뚫고 밖으로” 나간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숙주의 목숨이 희생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M은 “맵시벌 다큐멘터리를 전에도 본 것 같았다”(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44쪽). 채널을 돌려도 화면에는 계속 맵시벌만 나타났다. 여기서 M은 사실 환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그의 배역은 다름 아닌 거미인데, 이야기가 완성되자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M의 운명은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이라고 지칭했던 현상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바르트가 주장한 바, 근대적 글쓰기는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온 인용들의 짜임”(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1997, 32쪽)이다. 이때 작가는 작품의 유일하고도 온전한 ‘아버지’가 아니다. 그는 마치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이 소설을 쓰지 않는다. 그는 다만 다른 소설을 베끼는 필경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저자의 죽음은 단지 M의 운명을 통해 우의적으로 표현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문학론은 실제 ‘π’의,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작법(作法)을 통해 실현된다. ‘π’는 그 자체로 “인용들의 짜임”이다. 우선 우리는 “천일야화‘의 이야기꾼인 셰헤라자드의 흔적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일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영향을 감지하게 된다. ‘π’의 액자 속 주인공 하루는 어느 터널에 49일이나 갇혀 있었고, 결국 미쳐버렸다. 그는 이제 정신병원에 있다. 그리고 정신병원의 의사, 간호사, 동료 환자들을 상상 속에서 변형시키며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로베르토 비네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한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프란시스는 박람회에서 칼리가리 박사의 상자를 보게 된다. 그 상자에는 체사레라는 몽유병 환자가 누워 있다. 체사레는 프란시스의 약혼녀인 제인의 죽음을 예언하는데, 칼리가리 박사는 이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제인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상의 이야기는 매우 기이하다. 비현실적이며 악몽을 닮아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프란시스가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칼리가리 박사는 정신병원의 원장이며, 체사레는 병원의 직원이다. 제인은 프란시스와 마찬가지로 정신병을 앓는 환자였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망상 속에서 이들 인물을 변주하여 이야기를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미 대중문화 안에서 여러 번 변주된 바 있다. 최근에는 리들리 스콧의 ‘토탈 리콜’(1990)이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1997),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마틴 스코세이지의 ‘셔터 아일랜드’(2010)에서 활용되었다. 요컨대 이미 널리 알려진 수법이라는 뜻이다. 그런 만큼 최제훈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인정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작가의 역할은 사실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작가는 이제 독창적인 트릭을 고안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트릭에 의존한다. 다만 그 트릭을 끊임없이 변주한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붉은 방’을…. 이때 최제훈은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창조자라 할 수는 없다. 그는 저자가 아니다. 자기 작품의 “유일하고 동일한 목소리”(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1997, 28쪽)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타인의 언어와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있으므로 자기 작품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돈키호테가 서로 다른 우스꽝스러운 사건에 통일을 부여하는 기능인 것처럼 그는 서로 다른 이야기의 묶음에 통일을 부여하는 기능이다. 이제 소설의 인물과 작가는 모두 하나의 기능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최제훈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 창조는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조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노동일까? 그는 문화산업의 많은 ‘크리에이터’(creator)들이 하고 있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불가사리’(1962)가 ‘고질라’(1956)를 참조하고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 ‘지상 최후의 사나이’(1964)를 차용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다만 진귀한 구경거리(spectacle)를 생산하고 있는 것인가? 반쯤은 옳다. 그는 창조하기보다 생산한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부품을 조립하여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할만한 것이다. 아마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아버린 M의 모습은 초과노동에 시달리는 어느 현대 노동자의 비유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좀처럼 잠을 자지 못하지 않는가. 하지만 최제훈은 뒤샹이 예술가인 만큼은 예술가이다. 레디메이드를 활용하더라도 그것을 조합하는 방식은 자유에 맡겨진다. 아무리 풍부한 재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아무나 그것에 형식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뉴욕의 어느 배관공이 ‘샘’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정말이지 없다. 뒤샹 스스로 인정했듯이, “당신의 가능성은 나의 가능성과 같지 않은 것이다”(“Your chance is not the same as my chance.” (Calvin Tomkins, The Bride and the Bachelors: Five Masters of the Avant-Garde, Penguin, 1968, p.33)). 여기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전문가(specialist)로서의 작가이다. 무엇인가 짜깁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재료를 많이 구비해 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재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짜깁기의 예술은 풍성해질 수 있다. 이것은 규칙을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그래서 최제훈은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노동자로 볼 수 없다. 자기가 조작하는 이야기의 관습을 썩 훌륭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유주는 이러한 점을 좀처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다. 한유주는 ‘저자의 죽음’을 자신에게 주어진 문학적 조건으로 뼈아프게 인식하고 있다. 이미 “문장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심지어 미리 “읽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적을 때도 그것은 베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한유주는 “모든 사물들은, 혹은 모든 사물화 된 문장들은, 일종의 자연사 박물관에 귀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도서관의 어느 서가에 진열된 책들은 모두 일종의 “전시된 죽음들”이며, “검은 플라스틱판에, 흰 글씨로 이름을” 새겨 넣은 명패가 달린 박제이다(한유주, ‘자연사 박물관’,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87쪽). 한유주는 이러한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녀가 누구를 참조하고 있는지, 도대체 누구를 ‘베끼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다. 예컨대 ‘허구0’이라는 제목은 “픽션들”이라고 하는 보르헤스의 단편집 표제를, 그리고 “얼음의 책”이라고 하는 표제는 ‘모래의 책’이라고 하는 보르헤스 단편의 제목을 떠올리게 만든다. 허구의 영점(零點)과 허구의 복수형은 분명한 대비를 형성한다. 거기에 만들어지자마자 모두 녹아 사라지는 얼음의 책과, 영원히 모래처럼 변화하며 두 번 다시 같은 페이지를 펼칠 수 없는 모래의 책은 모두 의미가 고정되지 않거나, 아예 사라지는 책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추측에 지나지 않으며, 그녀는 주의 깊게도 단서를 남겨놓지 않았다. 이것은 한유주 스스로 어떤 작품을 베끼고 있다고 주장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유주는 ‘자연사 박물관’,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인력이거나, 척력이거나’ 세 편의 작품을 통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끼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상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오히려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와 달라지려 하는 한유주의 부단한 노력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는 연극에 대해 논문을 쓰려는 한 사내가 어느 광인을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이 광인은 자신이 22년 전에 살해한 여성의 옷과 구두를 몸에 걸치고 있다. 한유주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이 짤막한 이야기의 틈을 헤집고 억지로 자신의 언어를 밀어 넣는다. 한유주는 이 사내와 광인을 각각 트리스탄과 햄릿이라 명명하고, 그들의 조우에 복잡한 운명을 부여한다. 그런데 아마 한유주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의 흔적을 알아챘을 것이다. 이 두 소설의 공통점이란 시간을 물어보는 행위, 다리 위에서의 대화 등 몇몇 지점에서 눈치채기 어려운 방식으로만 나타난다. 아무리 주의 깊은 독자라도 이 정도의 단서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그림자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흔적을 알아채는 것은 훨씬 어려워진다. 주인공 하령은 대재앙이 닥쳐 대륙의 절반이 물에 잠기고, 인구의 절반이 죽어버린 세계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 그녀는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껴서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를 쓰려 한다. 하지만 그녀가 베끼려고 하는 소설은 책장에 없거나, 아니면 물에 젖어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다. 무엇인가 베끼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189쪽). 하령은 무엇인가 참조할 때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결말과는 다른” 페이지들을 마주하게 된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203쪽). 그래서 하령의 베끼기는 계속해서 원작과 달라진다. 이것은 굉장히 수고로운 작업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이야기와 언어의 관습들을 익혀야 한다. 이미 모든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으므로, 잠깐의 방심은 ‘베끼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표절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모든 멜로디를 검토하는 작곡가나, 신기술을 개발하기 전에 기존의 특허를 검토하는 기술자의 태도에 비견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한유주는 이러한 자신의 노력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한유주는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는데, “언어는 진화하지 않고, 문학은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베끼는 와중에 조금씩 변화할 뿐이다. 그것은 진화의 개념이 사라진 돌연변이와 같다. 대재앙 이후의 세계에서 호랑이는 아가미를 발달시켰다. 물에 잠긴 세계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것이 “진화인가 퇴화인가” 말할 수 없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201쪽). 한유주의 소설 역시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된 모습과는 다른 형태로 제시된다. 그녀의 ‘베끼기’가 박제를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이 문학을 ‘진보’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노력이 다만 돌연변이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그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끝’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의 세계에서 새로운 글쓰기의 가능성은 인류와 함께 절멸했다. 이 ‘끝’에서 문학은, 그리고 글쓰기는 과거의 박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창조의 엿새는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으므로. 4 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이야기의 끝’이거나 ‘끝없는 이야기’이거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새로움’의 쇠퇴이다. 이제 작가는 매우 제한적인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만든다. 그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으며, 다만 기왕의 설계도를 다소 변형시키는 선에서 만족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유주와 최제훈의 작품이 새롭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이 타자의 언어를 베끼고 있음을 드러내지만, 그들의 작품은 전에 없이 독특하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에서도 한유주의 문체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부정문을 사용하는 방식은 참으로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제훈은 기성의 관습들을 짜깁기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마치 괴물처럼 낯설다. 이것은 개인의 창조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들이 역설적인 방식으로 창조적이라는 아이러니와 무관하지 않다. 존 케이지는 문자 그대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4분33초’를 만들었으며, 앤디 워홀은 대중문화 속의 이미지를 조합해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여기서 예술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새로운 것은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파천황의 것이며 예술의 경계를 도전적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움은 공허한 것이다. 마치 ‘4분33초’처럼 덧없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하지만 그 다음은? ‘4분33초’는 결코 녹음되거나 재연(再演)될 수 없다.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의미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앤디 워홀의 작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워홀의 유명한 병뚜껑, 혹은 메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바라보며 이것이 어째서 예술인지 질문하고, 대체 예술이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다. 이 새로움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는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공허함을 다음과 같이 간파했다. “앤디 워홀의 ‘다이아몬드 가루 신발’은 반 고흐의 신발이 가진 직접성을 전적으로 결여한 채 우리에게 말을 건다. 정말이지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어떤 말도 걸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프레드릭 제임슨, 강내희 옮김, ‘포스트모더니즘 ― 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 정정호·강내희 편, “포스트모더니즘론”, 문화과학사, 1989, 150쪽)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분명 새롭다. 그들은 우리에게 소설이란 무엇인지, 소설쓰기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소설은 “아무것에도 봉사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한유주, ‘허구0’,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2009, 19쪽)기 때문이다. 이때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모든 책무로부터 자유롭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한 형식이 된다. 즉, 자족적인 동시에 자기폐쇄적인 형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유주와 최제훈 소설의 공간들이 감옥을 닮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자연사 박물관은 모든 생명들이 박제되어 진열된 공간이며,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에서 사람들은 온통 물에 잠겨버린 건물에서 고립되어 살아간다. ‘불가능한 동화’에서 선생님은 마치 취조실의 형사처럼 아이들을 겁주고 추궁한다. 최제훈을 살펴보면, M은 맵시벌의 둥지에 갇혔고, 하루는 동굴 속에 갇혔으며, 영수는 산장 안에 갇혔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액자 속의 미미는 스토커에게 납치당해 갇혔고, 액자 바깥의 ‘나’는 망막박리에 걸려 눈이 먼 채 병실에 갇혔다. 모두가 갇혀 있다.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메타픽션이며, 이들은 모두 알레고리 속의 인물이다. 이들을 가두고 있는 감옥은 사실 상징적인 방식으로 글쓰기 자체를 가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것은 바로 언어의 감옥이다. 한유주와 최제훈의 글쓰기가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타인의 언어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마치 모든 발화가 랑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소설 역시 글쓰기의 관습이나 전통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타인을 흉내 내며 말을 배운다. 소설이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어디에 있는가.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은, 소설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폐쇄적인 형식이 된다는 뜻이다. 이때 언어는 자기를 가리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한 동어반복과 다름없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말을 사용하는 것이며, 작가란 발언을 하는 사람(parleur)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요구하기 위해, 혹은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심지어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글을 쓴다(장 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8, 27쪽).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말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책무가 다만 다른 소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되었을 때, 글쓰기는 베끼기가 된다. 이때 독서란 소설 안에 존재하는 다른 소설의 흔적을 찾는 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라는 것을 그렇게 높이 평가할 수 없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김수용 옮김, “파우스트” 1부, 책세상, 2006, 78쪽). 오직 언어로 이루어진 곳을 헤매는 것이 독서라면, 그것은 언어로 이루어진 테마파크를 유람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언어의 감옥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지나야 그곳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그러니까 “폐쇄된 미로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헤매야 그 미로가 폐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까?”(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179쪽). 그리고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파우스트는 평생에 걸쳐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게다가 신학까지 열성을 다하여 연구”한 끝에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탄식했다. 그가 마술의 세계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던 것은, 정통한 지식들이 세계에 대해 조금도 알려주지 않는 “부질없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김수용 옮김, “파우스트” 1부, 책세상, 2006, 31~33쪽). 그가 악마와 계약하여 처녀를 희롱하고, 신화 속의 전쟁에 뛰어들고, 바다를 메우는 개간사업을 시작했던 것은 ‘태초에 말이 있었다’는 세계관을 거부하고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고 선언한 후였다. 가장 열심히 말의 세계를 믿었던 자가, 행동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아마 파우스트와 같은 모험이 필요할 것이다. 파우스트가 자신의 서재를 벗어나 시공을 뒤집는 모험에 나섰던 것처럼, 한유주와 최제훈도 이야기의 끝, 혹은 끝없는 이야기라는 감옥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때 소설 역시 감옥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엄을 되찾을 것이다. ■당선소감 책은 끝없는 미로… 내 모든 단어 빚지고 있어 아직 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은데 덜컥 당선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더듬더듬 잘 모르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문득 어지럽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길은 앞이 명확했던 적이 없었다. 책을 한 권 읽으면, 세상은 그만큼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 권의 책을 숙제로 남겼다. 그러니까 이 길은 목적지가 분명한 대로가 아니라,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미로이다. 이 미로를 열심히 헤매고 싶다. 고마운 사람이 너무 많다. 사실 나는 그들이 전해준 것을 비로소 적었을 뿐이다. 나는 모든 단어들을 빚지고 있다. 그래서 당선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말은 단순히 수사가 아니다. 우선 나는 박광현 선생님에게 글쓰기의 모든 것을 배웠다. 내가 지키고 있는 규칙들은 전부 선생님에게 받은 것이다. 황종연 선생님은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보여주셨다. 한만수 선생님은 어떻게 학문이 정의로워질 수 있는지 알려주셨다. 그리고 김춘식 선생님께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배웠다. 더불어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책읽기의 즐거움’의 멤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허병식 선생님, 복도훈 선생님, 서희원 선생님, 조형래 선배, 김민선, 박진솔, 임세화, 전호성, 한정현, 홍덕구 등 모두들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들에게 동의하거나, 혹은 반박하면서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내 글을 가장 먼저, 그리고 아마도 가장 즐겁게 읽어준 경연에게 감사한다. 너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고집 센 아들의 선택을 지금까지 지지해주신 부모님께는 가장 큰 감사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많이 부족한 글에서 가능성을 보아주신 두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싶다. ●약력 ▲1983년생 ▲ 2002년 동국대 국문과 입학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심사평 균형적 함의 도출 … 평론가로서의 앞날 기대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17편이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이들 작품을 통독하고 그 가운데 최종 논의 대상으로 4편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를 정독한 후 장시간의 논의를 거쳐 당선작을 확정하였다. 심사기준으로는 응모 평론이 기본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잘 부각시키고 이를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가에 두었으며, 글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비평적 견식을 담보할 수 있는 문장력도 면밀히 살펴보았다. 대체로 올해의 평론 응모작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 성향에 있어서도 여전히 세부적 탐색과 분석에 치중하고 동시대 사회 속에서 해당 작품이 가진 의미를 구명하는 데는 소홀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평론이 단순하게 한 작품의 성과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배태하고 산출한 환경과 문학사적 친연성 등을 두루 고찰하고 있을 때 객관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터이다.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4편의 평론 가운데 이은이의 ‘희미해져가는 인간다움에 대하여’는 유연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문장이 뛰어났다. 하지만 보다 정치한 시각과 정론적 방식으로 대상 작품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정영의 ‘비린내, 혼종의 정체성에 저항하는 존재성’은 후각적 관점을 중심으로 작품을 규정하는 독창성이 참신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독창적 사유가 총괄적 해석력을 확보하는 데 미흡했고 비린내와 혼종성의 상관관계도, 좀 더 명료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만영의 ‘유령의 서사, 열림의 정치’는 시종일관 무난하고 균형성 있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분석 대상이 된 두 작품의 저변을 보다 치열하게 드러내고 그 상관성에 대해서도 입체적 조명이 있었으면 하는 후감이 있었다. 당선작이 된 ‘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는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이 가진 문학적 함의를 비교적 정확하고 균형성 있게 도출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에 있어서도 폭넓은 공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는 또한 평론가로서의 앞날에 대한 기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낙선한 분들께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다음 기회의 분발을 바라마지 않는다.
  • [열린세상] 정부조직은 권력자의 소유물이 아니다/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정부조직은 권력자의 소유물이 아니다/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대통령 선거에 이상한 전통 하나가 생겼다. 후보들마다 정부조직을 이렇게 저렇게 개편하겠다는 공약을 쏟아내는 것이다. 이번 18대 대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과학기술과 정보기술 정책을 전담할 미래창조과학부 설치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과학기술부 및 해양수산부 부활과 정보미디어부 신설을 내걸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미래 혁신 경제를 담당할 미래기획부 신설을 주장한다. 정부조직 개편은 신중해야 한다. 잦은 개편으로 정부의 안정감이 흔들리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부처의 간판과 명패를 바꿔야 하고, 명함을 다시 찍고 부처 홍보에 돈이 드는 등등은 그나마 지엽적인 일이다. 5년마다 부처 이름이 변하면 국제무대에서 대외협력과 협상 파트너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정부조직 개편을 한다는 등식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현재 15부2처3위원회의 명칭을 보면 정부 수립 후 그대로 남아 있는 부처는 국방부와 법무부 정도다. 나머지는 합치고 나누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과거 내무부는 행정자치부를 거쳐 오늘의 행정안전부로 변했고, 교육부는 교육인적자원부를 거쳐 교육과학기술부라는 현재 이름으로 변했다. 과거 교통부는 건설부를 거쳐 건설교통부로 바뀌었다가 일부 기능을 떼어내 해양수산부로 독립시켰고, 다시 현 정부는 지금의 국토해양부라는 이름으로 이 모두를 합쳐 놓았다. 이름만으로 논문 한 편을 쓰고도 남을 변천사를 가진 부처는 기획재정부다. 이 부처의 뿌리는 정부 수립 당시 재부무와 기획처다. 1961년 박정희 정부가 두 부처를 합쳐 경제기획원을 만들었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쳐 재정경제원으로 바꿨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재정경제부로 고친 후 예산기능을 대통령 직속의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으로 분리했다가 다시 이 두 조직을 합쳐 기획예산처를 설치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 모두를 합쳐 기획재정부로 개칭, 과거 경제기획원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했다. 돌고 돈 지점이 경제기획원과 유사한 기능이라면 정부조직 개편으로 얻은 것이 무엇일까? 합리성보다는 권력자의 입맛에 맞춰 개편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멋진(?) 이름을 받은 지식경제부는 지식경제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부처 업무의 아귀가 맞지 않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노동이나 자본이 아닌 첨단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의 관리라는 목적의 이 부처는 설치 후 정보기술(IT), 생명과학기술(BT), 환경기술(ET), 그리고 문화기술(CT)과 같은 미래 첨단산업 육성의 흔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부처를 신설하면 산업 육성 혹은 서비스 개선이 뒤따라야 하는데, 지식경제의 한 축을 형성하는 유전자 분야는 노무현 정부 때보다 후퇴했다는 것이 중론이고, 정보통신부 해체로 사령탑이 없어져 IT산업만 표류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마다 정부조직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결과적으로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동안의 정부 개편이 정권 담당자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랜 전통을 가진 음식점일수록 메뉴를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그것이 손님에 대한 보답이자 예의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정부조직을 개편하면 국민은 그때마다 새 이름에 적응해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받으려 여기저기 묻고 다니는 수고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국토안전부를 신설한 것 말고는 수십년간 정부조직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때 정부조직 개편 공약이 나오는 일도 없다. 설령 부처를 신설해도 명칭과 목적이 일치한다. 우리의 유력 후보들이 내세우듯 미래창조나 미래기획과 같은 수식어를 넣어 정부조직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면 후임 대통령은 자기 색깔에 맞는 이름으로 또 바꾸려 하고, 서비스는 같은데 이름만 바뀌는 악습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굳이 정부조직을 개편하겠다면 신중해야 하고,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권력자의 정부조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부조직이 되게 해야 한다.
  • ‘CEO 최고 요람’ 명패 바뀌었다…연대 경영학과 서울대 누르고 1위

    ‘CEO 최고 요람’ 명패 바뀌었다…연대 경영학과 서울대 누르고 1위

    재계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전공은 연세대 경영학과, 대학은 서울대 출신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5일 한국CXO연구소가 1000대 기업 CEO 1248명의 출신 대학과 전공을 조사한 결과 연대 경영학과 출신이 40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51명이었던 서울대 경영학과는 올해 39명으로 줄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도 39명이나 배출했다. 지난해 연·고대 경영학과 출신은 똑같이 36명이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196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CEO 가운데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은 8명에 불과한 반면 연대 경영학과 출신은 15명으로 더 많았다.”며 “재계 주도권이 젊은 기업가로 옮겨지면서 CEO 최고 요람지 명패도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재계에서 활약 중인 연대 경영학과 출신 기업가로는 정은섭(74) 대주산업 회장, 장형진(66) 영풍그룹 회장, 이동욱(64) 무림그룹 회장, 서경배(49) 아모레퍼시픽그룹 사장 등 오너 기업가와 김창근(62) SK케미칼 부회장, 백우석(60) OCI 사장, 최세훈(45)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 등 전문경영인이 대표적이다. 서울대·고대·연대를 일컫는 ‘SKY’대 출신 비율은 해마다 감소 추세로 능력 중심의 CEO 중용 흐름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2007년 59.7%이던 SKY대 출신 비율은 2008년 45.6%, 2010년 43.8%, 2011년 41.7%로 떨어졌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낮아진 40.5%를 기록했다. 그러나 여전히 30대 그룹 계열 상장사 SKY 출신 비중은 59.1%로 전체 비중보다 높았다. 1000대 기업 CEO 자리에는 서울대 출신(274명·21.3%)이 가장 많이 포진하고 있었다. 2위는 고려대(125명, 9.7%), 3위는 연세대(122명, 9.5%) 순이다. 이어 한양대(97명·7.6%), 성균관대(55명·4.3%), 중앙대(41명·3.2%), 한국외국어대(35명·2.7%) 등의 순이었다. 전체 대상 기업 CEO의 개별 전공은 경영학(21.2%), 경제학(7.4%)의 순이었으나 전자·기계 등 이공계열 출신은 2010년 43.0%에서 올해 44.3%로 높아지는 등 증가 추세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지자체 ‘기증’운동 시민부담 ‘가중’

    지방자치단체들이 각종 사업을 추진하면서 조경수 등의 기증 운동을 전개해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 시민들에게 지방비 부담을 전가하려 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경북 경주시는 관광객과 시민에게 관광 편의시설 제공을 위해 ‘벤치 디자인 기증 사업’을 전개하기로 했다고 9일 밝혔다. 이 사업은 시민과 출향인, 국내외 관광객 등 개인이나 단체가 자발적으로 문화유적 주변에 벤치를 기증할 경우 이를 설치해 주는 것. 기증자는 경주시문화원(054-743-7182)에 신청과 함께 제작 및 설치비(곳당 30만원 이상)를 입금한 후 시에서 제공하는 디자인과 설치장소를 선택, 기증자의 이름을 새겨 설치한다. 시는 올해 동부사적지·황성공원·서천 등 300곳에 이 벤치를 설치할 계획이다. 시는 성과를 위해 시 홍보지 등을 통해 홍보하는 한편 시민·사회 단체와 출향인 등에게 참여를 권유하는 서한을 보내기로 했다. 경산시도 올해 말까지 시민, 기관·단체, 출향인사 등을 대상으로 조경수·조경석 기증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남산면 인흥리에 조성 중인 삼성현(원효, 설총, 일연) 역사문화공원 내다. 시는 접수된 수목과 석재를 ‘조경수·조경석 헌수 선정위원회’에서 현지 방문과 확인을 거쳐 선정한다. 명패와 표지석을 작성,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각 읍·면사무소나 동 주민센터, 경산시청 새마을문화과(053-810-5362)로 연락하면 된다. 시는 이에 따른 예산 절감액을 20억원 정도로 추산한다. 이들 시는 이번 기증 운동을 통해 시민 화합과 애향심 고취는 물론 사업 예산 절감, 시민 편의시설 확보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역 시민들은 사업 추진에 따른 시비 부담이 민간에 전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 관계자들이 민간 및 기업체 등의 적극적인 기증 운동 동참을 독려하는 데다 일부에선 “동참하는 게 어떠냐.”며 은근히 압력을 넣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요즘처럼 최악의 불황 속에 반강제성을 띤 기증운동을 벌인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때와 장소를 가릴 줄도 모르는 시정”이라고 반발했다. 경주·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삼성디스플레이파트너協 출범

    삼성디스플레이파트너協 출범

    지난달 31일 경기 용인 소재 노블카운티에서 열린 ‘제1회 삼성디스플레이 파트너협회(SDP) 창립총회’에서 권오현(오른쪽) 삼성디스플레이 부회장이 SDP 협의회 회장으로 선임된 이승호 아이씨디 대표에게 명패를 수여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우수 협력회사에 대한 개발 지원 확대, 2차 협력사 지원 강화 등 상생경영을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 의장 직권상정한 ‘총리 해임건의안’ 與 불참으로 자동폐기

    의장 직권상정한 ‘총리 해임건의안’ 與 불참으로 자동폐기

    김황식 국무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20일 자동 폐기됐다. 민주통합당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추진’ 논란의 책임을 물어 지난 17일 제출했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이날 저녁 김 총리 해임건의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해 표결에 부쳤다. 민주당이 강 의장에게 강력하게 요구했던 일이다. 그러나 건의안이 부결된 만큼 민주당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일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대법관 임명동의안’과 앞으로 검찰이 제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등이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 전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박지원 원내대표를 둘러싸고 야기될 ‘방탄국회’ 논란의 향배를 가늠케 하는 일이어서 주목된다. “국무총리 해임안이 직권상정된 만큼 개별 의원의 체포동의안도 직권상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표결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가 불성립됐다. 모두 138명이 참여했고, 명패함만 개표했을 뿐 투표함 자체를 개함하지 못했다. 강 의장은 “의결정족수 미달로 이 안건에 대한 투표가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한다.”고 했다. 이런 사례는 1999년 8월 14일 김종필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 표결 당시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가 불성립된 뒤 13년 만이다. 앞서 민주통합당은 김 총리 해임건의안을 이날 본회의에서 표결할 것을 주장해 왔다. 새누리당은 “해임 사유가 안 된다.”며 반발했다. 또 상정하더라도 김병화 후보자를 포함한 4명의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도 함께 처리하자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에 민주당은 “김병화 후보자 임명동의는 안 된다.”고 맞섰다. 총리 해임 건의안의 자동 폐기 시한(국회 제출 후 72시간 이내)은 21일 오후 2시지만 주말을 감안하면 사실상 자동 폐기됐다. 강 의장은 해임 건의안을 둘러싸고 국회 일정이 파행으로 치달을 기미가 보이자 이를 명분으로 총리에 대한 해임 건의안의 ‘직권상정’을 선언했다. 새누리당 홍일표 원내대변인은 본회의 종료 직후 “내용적으로도 부당하고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한 총리 해임 건의안에 반대, 고심 끝에 표결 불참 방침을 정했다.”면서 “박지원 일병 구하기를 위한 방탄 국회나 정치공세를 결단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오늘의 정신을 되새겨 12월에 정권교체하자.”고 말했다. 황비웅·이범수기자 stylist@seoul.co.kr
  • 美유명패션지의 무례, 故김다울 사진 사용 논란

    美유명패션지의 무례, 故김다울 사진 사용 논란

    3년 전 세상을 떠난 톱모델 김다울의 사진이 패션매거진 ‘글래머’ 미국판 최신호에 실려 논란이 일고 있다고 18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보도했다. 이는 이를 본 일부 독자가 고인에 대한 실례라며 불만을 제기했기 때문. 문제의 사진은 김다울이 생전 모델로 활동할 당시 찍었던 패션 사진으로, 여성이 청바지를 입는 ‘52가지 방법’에 대한 코너에 실렸다. 사진 속 김다울은 페일 블루(바랜 청색의 총칭) 데님 셔츠와 진청바지를 입고 미소를 짓고 있다. 이에 대해 글래머 매거진 편집팀 측은 김다울의 ‘뒷 이야기’(사정)를 알지 못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글래머 매거진 대변인은 패션정보사이트인 패셔니스타닷컴에 “장기간 백스테이지를 담당하고 있는 사진작가 마크 레이보위츠가 이 사진을 촬영했었다.”면서 “사전에 이 같은 소식을 알지 못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주의한 실수로 독자로부터 경고를 받았다면서 “후회스럽고도 실망스럽다.”고 덧붙였다. 한편 고(故) 김다울은 2007년 파리 패션위크를 통해 패션모델로 데뷔했으며 뉴욕과 밀라노, 런던 패션위크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생전 그녀는 세계적인 브랜드인 샤넬 등의 모델로도 활동했으나, 지난 2009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고 김다울은 앞서 자신의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통해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수차례 올렸었다. 이에 대해 소속사 측은 “최고의 위치에 선 김다울이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 자살을 선택한 이유일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사진=김다울 공식 사이트(위), 데일리메일(글래머 매거진) 캡처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교육기부 활성화’ 빗장 건 기업들

    ‘교육기부 활성화’ 빗장 건 기업들

    시민단체인 용산연대 사무처장 오장록(35)씨는 지난 두 달간 학생들의 직업체험을 도와줄 일터를 섭외하기 위해 용산구 곳곳을 뛰어다녔다. 직업체험이라는 개념이 아직 생소한 데다 학생들의 방문을 꺼리거나 귀찮게 여기는 곳이 많아서다. 대기업 2곳에도 협조를 요청했지만 소식이 없다. 결국 용산중 학부모들의 도움을 받아 신문사·구청·음식점 등 70여곳을 섭외했다. 오 사무처장은 “학교와 시민단체의 섭외력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의 인식 개선과 참여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학생들의 진로직업체험 활동이 직장들의 소극적인 자세 탓에 쉽지 않다. 학생들에게 미래의 직업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려는 직업체험의 당초 취지도 흔들리고 있다. 학생들이 가 보고 싶은 유명 기업이나 큰 규모의 일터에서는 학생들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빗장을 건 것이다. 이 때문에 매번 같은 곳에서 이뤄지는 실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진로직업체험 중점 학교 21곳을 지정, 모두 6300여명의 학생들에게 직업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5명의 학생이 한 조를 이뤄 1~3일간 해당 직업에 종사하는 멘토와 함께 업무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9일 직업체험을 실시한 용산중 관계자는 “학생들은 한번쯤 이름을 들어본 유명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하는 직업체험을 선호하는데 이런 곳들은 대체로 학생들이 찾아오는 걸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현재 지역 교육청별로 일터 발굴 전담팀을 구성, 지역의 시민단체와 연계해 직장을 섭외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직원 개인의 인맥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시교육청은 현재 시범운영 중인 중학생 직업체험을 내년 80개교, 2014년까지 200개교 이상으로 전면 시행할 계획이지만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장되지 않아 고민하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직업체험이 보편화돼 있는 선진국과 달리 긍정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아 기업의 일터 개방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일터를 개방하는 직장에 교육기부 명패를 만들어 부착하는 등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6·25 참전용사 명패 모교 증정식

    6·25 참전용사 명패 모교 증정식

    12일 서울 종로구 대동세무고등학교에서 열린 ‘6·25 참전용사 명패 모교 증정행사’에서 박남수(명패 왼쪽) 수도방위사령관이 금흥섭 대동세무고등학교 교장에게 113명의 참전용사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전달하고 있다.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안정성 높은 브랜드 도시형 생활주택이 ‘알짜’

    안정성 높은 브랜드 도시형 생활주택이 ‘알짜’

    도시형 생활주택에 브랜드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에 꾸준히 공급해 오던 소형 건설사들은 물론 중대형 건설사들도 브랜드를 걸고 시장에 뛰어 들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문제가 생길 여지가 적은 브랜드 도시형생활주택을 고르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실수요자들도 브랜드 단지를 먼저 찾는다. 브랜드 단지는 건설업체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명패인 까닭에 유명 브랜드 단지는 그 만큼 품질력에서 앞선다. 또한 브랜드 파워는 주택시장에서 프리미엄을 높이는 주요 잣대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브랜드 파워가 높은 단지는 실수요자들의 인지도가 높고 이는 곧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집마련정보사 관계자는 “인지도가 높아지면 찾는 사람이 늘어 향후 거래하기도 유리하다.” 면서 “거래가 유리하다는 것은 집을 파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고 가격 협상을 보다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익형 부동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공급이 많아지고 사기와 과대 광고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늘고 있어 투자 안정성이 높은 곳을 잘 골라야 한다.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도시형 생활주택 건축허가 건수는 무려 8만3859가구에 이른다고 밝혔다. 2010년 2만5000가구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시행사가 부도가 나면 투자자들은 긴 법정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비용과 시간, 그동안의 마음 고생까지 더하면 아무래도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시행사나 시공사가 브랜드를 걸고 공급에 나설 때는 사업성이 검증된 경우가 많아 위험이 덜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솔깃한 광고나 홍보에 속아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허위 과장광고를 잘 구분해야 한다.”면서 “시행사나 자금 관리를 투명하게 하는 신뢰도 높은 회사의 브랜드 도시형 생활주택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인천의 대표적인 광역상권 지구인 주안역 인근(인천 남구 주안동 115-1번지 일대)에서 분양되는 도시형 생활주택 ’주안역 웰가’는 이처럼 투자 안정성이 높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만하다. 주안역 웰가는 한국토지신탁이 사업을 주관하고 개발신탁방식으로 사업비 일체를 조달한다. 최근 소형 건설사가 시행과 시공하는 도시형 생활주택들이 준공 전 부도나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주안역 웰가는 한국토지신탁의 자금관리를 통해 사업이 진행되어 안전하며 입지가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단지는 지하 2층~지상 15층, 316가구(실) 규모로 전용 40~65㎡형 오피스텔 36실, 전용 15㎡형의 도시형생활주택 280가구를 분양할 예정이다. 주안역은 인천에서 손꼽히는 상업지역이다. 인하대, 인하공업전문대학 등 대학가와 인접해 있으며, 인천 청라지구와 송도지구 등 경제자유구역의 중심에 있다. 부지와 인접해 금융시설, 오피스타운, 산업단지, 관공서 등이 가깝고 홈플러스, 길병원, 종합버스터미널 편의시설도 풍부하다. 또한 교통도 편리해 서울 및 인천 등 각지로 이동이 가능하다. 지하철 1호선 주안역과 직선거리로 400m가량 떨어져 있는 초역세권이며 2014년에는 인천지하철 2호선도 개통해 환승역 프리미엄도 기대할 수 있다. 주안역과 연결되는 인천 시내버스 노선의 70%가 경유해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주안역길 대로변에 있어 인천 중구와 동구 등을 자동차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또한 서울 및 수도권 각지로 통하는 사통팔달 교통망을 갖췄다. 제1·2경인고속도로, 경인국도를 통해 서울 및 인천 전 지역과 연결돼 있고 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일산, 과천 등 수도권 접근성도 뛰어나다. 개발호재도 풍부해 향후 시세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연장 29.2Km, 27개역이 신설되는 인천 지하철 2호선이 2014년 전구간 개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에 발 맞춰 인천시는 262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주안역 역세권의 약 36만㎡를 재정비하는 사업을 2013년까지 끝낼 계획이다. 또한 주안뉴타운, 도화뉴타운 등 인근 주거환경을 정비하는 사업도 진행 중으로 지역의 생활인프라가 더욱 개선될 전망이다. 주안역 웰가는 158㎡의 넓은 공개공지를 확보해 쾌적성을 높였으며, 법정기준의 2배가 넘는 주차공간을 갖췄다. 도시형생활주택은 법정 기준으로 약 35대의 주차공간만 확보하면 되지만 114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안목 치수를 적용해 입주자들에게 넓고 쾌적한 생활 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눈여겨 볼 점이다. 안목치수란 벽체 중심선을 기준으로 측정하던 전용면적을 실제 벽면에서부터 측정하는 것이다. 벽체의 두께를 빼고 면적을 측정하기 때문에 같은 면적이라도 이전보다 실사용면적이 넓어진다. 욕실에는 샤워부스를 설치하고 엘리베이터도 3대를 마련해 입주민들의 이동 편의성을 높였다. 주안역 웰가는 인천 남구 주안동 130-3번지, 전시문화 빌딩에서 인테리어와 평면설계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샘플하우스를 운영 중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이용자 외면받는 공설 자연장지

    경기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수원시연화장에 조성된 자연장지. 2009년 9월 부지 6300㎡에 유골 8000구를 안치할 수 있는 잔디형 자연장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개장 2년이 훨씬 넘도록 안치된 유골은 2.4%인 190구에 불과하다. 2009년 2월 포천시가 조성한 내촌공설자연장지는 수목형으로 수용 규모가 1200구이지만 현재 단 2구만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매장 공간 부족 등의 이유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적극적으로 조성한 공설 자연장지가 이용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자연장지는 정부가 사업비의 70%를 지원한다. 자연장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썩는 재질의 함에 담아 수목·잔디 밑에 묻어 장사하는 방법으로,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방식이다. 자연 친화적인 데다 이용 요금이 매장이나 사설 봉안당(옛 납골당)보다 저렴하다. 4월 29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에는 수원, 광주, 의왕, 포천, 양평 등 5개 시·군에 7개의 자연장지가 조성돼 있다. 잔디형과 수목형으로 꾸며진 이들 자연장지는 모두 3만 3391기를 안치할 수 있지만 지난해 현재 안치율이 6.7%(2254구)로 저조하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충북 청주시가 2010년 10월 말 개장한 목련공원은 5746구 가운데 94구만 찼다. 2009년 문을 연 광주시 북구 효령동 청마루동산도 1만 5000구 가운데 460구(3%)가 안치됐다. 2009년 산림청이 양평에 국내 최초로 조성한 수목형 자연장지인 ‘하늘 숲 추모원’도 지난해까지 1439구의 유골을 받아 안치율이 8.3%에 그쳤다. 이처럼 자연장지 이용 실적이 매우 낮은 것은 인식 부족과 홍보 부족 때문인 것으로 지적된다. 납골당 등은 유골함을 볼 수 있고 함 주변을 꽃으로 장식도 할 수 있는 데다 이장도 할 수 있지만 자연장은 유골을 모신 나무나 잔디 위에 조그만 명패만 설치할 수 있다. 또 유골이 땅속에서 썩어 흙으로 돌아가므로 이장을 할 수 없다. 자연장지 관리 담당자들은 “자연장은 말 그대로 자연으로 유골이 돌아가기 때문에 봉분이나 봉안당처럼 ‘소유’의 개념이 아니어서 아직은 자연장을 꺼리는 경향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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