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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돋보기] 남북 체육교류 분위기 편승 유감

    지난달 말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농구’ 이후 남북스포츠 교류에 대한관심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9년만에 재개된 남북스포츠 교류였던만큼이를 계기로 다른 종목에서도 남북접촉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이같은 움직임은 통일에도 큰 밑거름이 될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이럴수록 보다 필요한 것은 ‘한건주의’가 아니라 내실있고 준비된 교류 추진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10일 박세직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조직위원장이 구미를방문해 밝힌 남북한 어린이축구팀 교류 제의는 개운찮은 뒷맛을 남긴다. 이지역 국회의원이기도 한 박위원장은 이날 “새달 16일 경북지역 초중고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초등부팀을 내년 3월 북한에 보내 남북한 어린이팀 간의 교류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박위원장은 또 “최근 외교통상부와 통일부에 이 문제를 질의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며 “북한 방문에 필요한 경비는 최소 2,000여만원 가량으로 월드컵조직위가 전액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여러가지 면에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우선 조직위원장 자격인지 지역구 의원 자격인지가 분명치 않다.조직위원장이라면 전국을 대표하는 선수단을 보내야 마땅한데 박위원장은 경북지역선발팀의 방북을 내세운 것이다. 더우기 이 대회는 박위원장의 주도로 창설됐다.지역구 의원의 정치적인 발상에서 남북교류를 내세운 듯 한데다 자신의지역구 선발팀을 남한을 대표하는 팀으로 착각하는 느낌이다. 또 조직위 비용으로 방북한다지만 조직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들어 본 적도 없는 내용이라고 밝히고 있어 ‘내년 총선을 의식한 인기발언’에 조직위를 끌어들인 듯한 인상을 준다.최근의 분위기에 편승한 ‘한건주의식’ 발상이 아니라면 월드컵 조직위원장으로서는 신중치 못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곽영완기자 kwyoung@
  • [보완의학교실] 테이핑요법(중)

    여러 종류의 테이핑 중에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익혀 사용할 수 있는것으로 일반적인 기침 치료법을 소개한다. 나을 때가 돼도 기침이 좀처럼 줄지 않을 때 효과적이며 약이나 기타 치료와 병행해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약국에서도 파는 ‘밸런스 탄력 테이프’를 이용하여 그림과 같이 붙인다.즉 2.5cm 폭으로 턱의 양 옆에서 시작해 목의 전면을 향해 내려와 목의 제일아래부분이자 가슴뼈(흉골)의 바로 위에서 겹치게 한다. 다음에는 이곳에서 5cm의 폭으로 흉골을 따라 내려와서 명치까지 붙이도록한다.테이프를 붙일 때 늘이지 말고 가볍게 얹듯이 붙인다. 어지러움을 느끼면 테이프를 떼내야 한다.피부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거나 붙인 자리가 빨갛게 되는 경우도 있다.이렇게 피부가 과민한 사람은 사용을 금한다. 신체의 다른 부위에 테이프를 붙여보고 알레르기나 발진이 없으면 목에 붙이기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하지만 목 부위는 다른 곳보다 예민하므로 가능하면 테이프를 매일 갈아 붙인다. 테이프를 붙이면 호흡기의 임파와 혈액순환이 좋아지며 기관지의 과민성이줄어들게 된다.객담을 줄이는 효과도 있어 대개는 사용 즉시 편해진다. 테이프를 붙이면 기침이 줄고 떼면 기침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지속적으로 갈아 붙이면 나중에는 차츰 좋아지게 된다. 기침 외에도 특정한 기술을 요하지 않고 응용할 수 있는 종류로는 근육의 긴장으로 인한 요통,무릎이 아프고 시린 경우,어깨결림,생리통,위하수,발목을삐끗한 경우 등에서 보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02)589-1053 [어강 재활의학과 전문의·동서의학회장]
  • “회장님 다칠라”… 재계 國監 비상령

    재계에 국감비상령이 내려졌다.그룹 총수를 비롯한 최고경영진들이 국정감사장에 줄줄이 불려나가게 돼 자칫 ‘돌발상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29일 시작되는 국감에는 현대 9명,삼성 6명,두산 4명,LG 2명,대우 및 SK 각 1명 등 재계 거물들이 대거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나선다.각 그룹측은 그동안 상임위 의원,비서관들과 접촉,질문 수위를 탐색해왔다.그러나 답변이 분명치 못할 경우 예상치 못한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긴장감이 역력하다. 현대는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던 정몽헌(鄭夢憲)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돼 또 한차례 홍역을 치르게 됐다.박세용(朴世勇)현대상선 회장,김형벽(金炯璧) 현대중공업 회장,이계안(李啓安) 현대자동차사장 등 핵심 경영진들도 증언석에 앉는다.현대는 정 회장의 검찰 출두에 이어 또한번 대외이미지에 손상을 입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이번 국감에서는 주가조작 사실을 사전 또는 사후에 보고받았는지를 집중 추궁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이에 따라 비서실을 중심으로 예상질문과답변을 만들어 점검하는 등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삼성은 이건희(李健熙) 회장과 아들 이재용씨(李在鎔)의 증인 출석은 모면했지만 에스원·삼성생명 주식 변칙상속 및 증여의혹과 관련,허태학(許泰鶴) 에버랜드 사장 등 계열사 대표 4명이 증인으로 채택돼 노심초사하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연이어 악재가 터져나와 전전긍긍하고 있다.삼성생명 임원들에게 주기로 했던 우리 사주를 자진 반납하도록 하고 보험모집인으로 일하는 김옥두(金玉斗) 국민회의 총재 비서실장 부인에게 이 회장이 보험을 가입한 것은 격려 차원이라고 해명하는 등 여론 진화에 나섰다. 대우는 구조조정 현황과 대우 위기를 미리 알았는지,김우중(金宇中)회장의경영권 유지문제 등을 집중 추궁받을 것으로 보고 대책을 짜고 있다.대우사태가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의원들의 질책이 터져나올 것으로예상돼 몹시 긴장하는 모습이다. LG나 SK는 그룹에 큰 현안이 없어 다소 느긋한 분위기다.LG의 경우 반도체를 현대에 넘기는 과정에서의 외압 여부를 추궁당할 것으로 보고 대책을 마련중이다. 이와 함께 그룹의 합병비리 의혹과 관련해 증인으로 두산그룹 박용오(朴容旿) 회장도 증인으로 선정돼 있다.박정구(朴定求)그룹 회장 형제의 주가조작이 드러난 금호는 박찬구(朴贊求) 석유화학 사장이 증인으로 채택돼 답변을준비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손성진 김환용 추승호기자 sonsj@
  • “시신 이송” 규정 현실화 돼야

    주거형태의 변화에 따라 장례문화도 바뀌고 있다.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되면서 장례식도 집에서 치르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탈피,병원 영안실에서 치르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 마음대로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신을 영안실로 옮겼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급하다고 시신을 영안실로 옮기기 위해119 구급차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행 시신 처리와 관련된 규정은 일반인에겐 생소할 정도로 까다롭다.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관련 규정에 의한 절차를 거치면 상관없다.그러나 지병으로 집에서 숨지더라도 유가족 임의로 시신을 영안실로 옮기면 형법 위반으로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현행법상 변사체는 범죄와 관련이 없더라도 거주지 관할 파출소장이 의사의 검안서를 첨부해 ‘행정검시’ 조서를 작성하게 돼 있다.범죄와 관련이 있어 보이면 검사의 지휘를 받는 ‘사법검시’를 받아야 한다. 경찰청 예규 제92호 행정검시 규칙에는 ‘변사체는 행정검시를 마치고 나서야 시신을 영안실 등으로옮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이를 어기면 형법 제163조 ‘변사체 검시방해’에 해당돼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관내의 한 파출소장은 “병원측이 자신들의 병원에서 치료받았거나 입원실에서 숨진 환자가 아니면 혹시 모를 책임을 피하기 위해‘사인 미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모씨(33·서울 강동구 둔촌동)는 시내 병원에서 폐암 치료를 받다가 불치 판정을 받고 집에 누워 있던 부친이 지난 23일 숨을 거두자 119 구급차를불러 시신을 영안실로 옮겼다.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그러나 부친의 사망을 확인한 응급실 의사가 사망확인서에 ‘사인미상’이라고 기록하자 “폐암 환자였는데 왜 사인이 분명치 않으냐” 고 되물었다.그러자 의사는 “우리 병원 환자가 아니어서 어쩔 수 없다”고 애매하게 대답했다.며칠 뒤 김씨는 부친의 시신이 자연재해로 의한 사망,행려병사자와 같은 변사체로 처리돼 경찰에 보고된 사실을 알았다.김씨는 결국 사망신고서와 사망진단서를 제출하고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르기는 했으나 경찰 등이 관련 규정을 제시하며 시비를 걸면 낭패를 볼 뻔했다. 시신을 119구급차나 민간 또는 병원 응급차로 옮기는 것도 관련 규정상 불법이다.119구급차 등은 시신이 아닌 응급환자의 수송만 맡게 돼 있기 때문이다.시신 운반은 병원의 장의용 차를 이용하게 돼 있으나 장의용 차가 있는병원은 드물다. 일부 유가족은 민간 또는 병원 응급차의 시신 운반요금이 6만∼20만원인 반면 무료인 119구급차를 일부러 찾는 경우가 많다.서울시 소방방재본부 구조구급과 관계자는 “시신을 앞에 놓고 사정을 하는 유가족을 모른 척할 수 없어 시신을 영안실로 옮기는 일이 많다”고 털어놨다. 김경운기자 kkwoon@
  • 포항 信徒 집단가출 주도 3명 가택수색영장 신청

    포항 남부경찰서는 35일간 집단 가출했던 포항 S교회 신도들의 정확한 가출동기를 조사하기 위해 29일 김모(37)·배모씨(45) 등 가출을 주도한 것으로알려진 3명의 신도에 대한 가택수색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귀가한 신도들로부터 이들이 지난달 24일 이후 포항 오어사와 경기도 포천 유원지,가평군 매봉산 등을 전전하며 집단 야영생활을 해왔고 가출당시 개인당 5만∼500만원씩 모두 1,300여만원의 공동자금을 마련,사용해온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경찰은 집단가출의 동기가 분명치 않은데다 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김씨 등 3명이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아 이날 이들의 가택수색을 위한영장을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신청했다. 한편 경찰은 집단생활 중 모금 강요,감금 등 강압행위 여부를 밝혀내기 위해 신도들을 상대로 조사를 펼치고 있다. 포항 이동구기자 yidonggu@
  • 질곡의 역사 담긴 우리 옛건축 얘기

    누군가 ‘역사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가.600년이 넘는역사를 가진 고도(古都) 서울은 말 그대로 ‘역사의 현장’이다.그리고 그현장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은 곳곳에 말없이 서 있는 건축물들이다.고궁의추녀 끝에서는 왕조시대의 권위주의 문화가 묻어나고 남산 자락의 왜색 민가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애환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 근대건축사의 독보적 연구자인 김정동(金晶東) 목원대 건축도시공학부교수가 펴낸 ‘김정동 교수의 근대 건축기행’은 이러한 건축과 우리 근대사를 아우르는, ‘발로 쓴 문화사’라 할만 하다. 김 교수는 평소 사료 조사와함께 ‘발품팔기’를 아끼지 않는 연구자로도 유명하다. 이번에 출간한 책은그가 지난 20여년간 수도 없이‘가고 또가고’해서 눈에 익힌 근대 건축물들의 ‘애환사’를 건축사가의 눈으로 쓴 글들의 엮음이다. 도시화와 재개발 열기에 밀려 지금은 흔적마저 사라진 옛 건축물들.새 것만을 추구하는 세태에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는 반기를 들고나선 김 교수는종로의 화신백화점,정동(貞洞)의 손탁호텔, 옛 경기도청 청사, 동양극장 등유서깊은 건축물이 사라진데 대해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한 때 ‘조선인의 자부심’으로 불렸던 화신백화점은 주인의 영욕과 함께이미 자취를 감췄다.또 한말 각국 외교사절과 개화파들의 사교장으로 유명했고 국내 최초의 양식호텔로 우리 건축사에 기록될만한 건축물인 손탁호텔 역시 몇번 주인이 갈리면서 한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 형해(形骸)를 전해주고있다.시인 이상(李箱)이 몇 푼의 커피값이 없어 발길을 돌렸던 경성역(현 서울역) 2층 그릴 역시 지금은 전시관으로 변해 그 시절 경성 멋쟁이들의 얘기는 이제 더이상 들을 수가 없다. 지난 역사 속에서 외세,식민화,전쟁,그리고 파괴로 우리 건축사는 질곡의역사를 기록해 왔다.지난 87년 서울지역에서만도 80여채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이 무단철거,혹은 훼손됐다고 김 교수는 주장한다.50대 초반의 김교수는 명동 국립극장 건물을 그리며 ‘명동 국립극장사(史)는 명동사(史)이며,명동애사(哀史)’라는 말로 감정을 대변한다. “1960년대까지 명동이 문화인의 서식처로 절정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명동에 국립극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명동 국립극장은 명동의 한 복판에서 있으며 미도파백화점으로부터 명동성당까지를 한 축으로 묶는 서울 유일의 문화지대였다.…안수길의 ‘학마을 사람들’이나 이어령의 ‘무익조(無翼鳥)’,폴 뉴먼의 영화도 그 때 거기서 보았다.첫사랑의 여인도 명동에서 만나 헤어졌고,지금의 아내도 거기서 만났다”. 바로 그 명동 언덕배기에 서있는 ‘고단한 자의 안식처’ 명동성당.원래 그 자리는 순교자 김범우의 집터였다.일제 때는 이 일대 명례동(明禮洞)을 일황의 호칭을 따서 명치정(明治町)으로 불렀는데 이는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땅이라는 의미였다.지난 1세기 동안 우리 근·현대사를 지켜본 명동성당은종교적 의미를 넘어 시대의 조감자(鳥瞰者)로 자리매김되고 있다.김 교수는“건축물은 역사·인간·문화 이 모든 것을 담고 ‘무언의 기호’로 우리에게 그때의 일들을 말해주고 있다”고 설명한다.푸른역사 9,000원정운현기자 jwh59@
  • [대한광장] 마비된 안전의식

    동네에 도시가스가 시설되고 난 몇달 후였다.무엇이 잘못 됐는지 배관이 묻혀 있는 대문앞 4미터 도로가 걸핏하면 파헤쳐져 차량출입이 금지되고 길에서 파낸 시멘트 파편들이 길을 메워 통행을 어렵게 했다. 무엇보다 시멘트를 부수는 굴착기 소음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먼지또한 집주변을 덮쓰듯 해서 참지 못하고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그리곤 “처음부터 철저하게 잘했으면 이렇게 두번 세번 파헤치지 않을 것 아니냐”하고 음성을 높였다. 그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미안하다는 말도,자기들이 첫 공사를 하지 않았다는 책임회피의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주민들의 질책에 면역이되어버린 사람들처럼 무표정에 무반응이었다.순간,섬뜩한 느낌이 왔다.YS정부 때의 엄청난 대형사고들이 떠오르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부르짖던 ‘안전’이 결국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저렇듯 무감각 면역만 생기게 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지만 열차탈선,비행기 추락,배 침몰 거기다 땅속 가스폭발까지 하늘 땅 바다를 넘쳐 캄캄한지하로까지 뻗쳐지는가 싶더니,이듬해에는 멀쩡해 보이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아파트가 종이 구겨지듯 붕괴하는,그야말로 귀신도 경악할 대형참사가 터지면서 수백명의 소중한생명이 비명에 사라지지 않았던가. 사건이 연발할 때마다 모든 입달린 사람들은 안전을 부르짖고,또한 피맺히게 우리의 안전불감증을 성토했다. 성토의 기세가 워낙 크고 절실했기 때문에 이후부터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제반 시설물에는 안전규칙이 필히 지켜질 것이라 믿었다.안전불감증에 고질화된 중증환자라 해도 나라가 흔들릴 만큼의 대형사고를 겪었으니 스스로 깨달아 변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후 또다시 가슴을 에이는 대형참사가 일어났다.돈독이오른 어른들의 상혼(商魂)과 행정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처리로 가건물 컨테이너가 철골조 정상건물로 둔갑되어 억만금 같은 어린 생명들을 화염으로 앗아가게 하고 말았다. 고사리손의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숨막히고 뜨거웠을 것이며 공포에 떨었을까 생각하면 명치께가 난자당하듯 저며지고 그들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은죄책감으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다.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싶으면 그만 말이 막힌다. 그간 우리들의 안전불감증에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불과 수년전의 참사들을 TV드라마 시청하듯 건성으로 구경하고 세월따라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인지,아니면 불감증이 불치의 질환으로 전신을 마비시킨 것인지실로 멍할 뿐이다. 세계의 방송 언론들은 한국을 당연히 교통사고 세계 1위에다 대형사고 1위국으로도 부상시켜 놓고 있다.누구의 자조(自嘲)처럼 과연 우리 민족은 북한의 게릴라 수출,마약밀매 기술 등과 함께 세계에서 유별난 특성의 종족인 것인지 새삼 음미해 보게도 된다. 물론 안전불감증이 불치의 질환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다.새로 태어나듯새 삶을 시작하듯 기초부터 완벽하게 원칙을 고수하는 ‘다지기교육’을 받을 자세만 되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변화·완치의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어른들의 무자비한 횡포로 비명에 스러진 어린 원혼들의 피울음을 이번에야말로 망각해서는 아니 되리라는 생각이다.얼굴을 붉혀 부끄러워하면서 최소한의 어른 자존심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그것을 기억하고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음은 아직도순수한 인성(人性)을 지녔다는 것이고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됨으로의 여백이 있다.사람답게 살 만한 세상의 가능성 또한 펼쳐져 있는 것이다. 무감각 무반응의 섬뜩한 마비와 납빛 면역현상은 지구의 황폐화 초래와 인간되기 거부의 자초 외에 더는 아니기에 씨랜드 아기들 참사사건은 어른들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어 자기 단근질의 철퇴로 영원히 살아 남았으면 싶다. 필자만의 바람일까만은. [김지연 작가]
  • [대한시론] 새로운 천년과 국가의 기초

    히노마루와 기미가요. 일장기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일제(日帝)’의 국기가 히노마루이고 그패전 직전까지 우리의 소학교 조회 때마다 불린 노래가 기미가요이다.일본을떠올리게 하는 이 두 상징물은 전쟁을 체험한 일본인들에게조차 침략전쟁의상징물로 각인되어 있다. 이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법률’의 수준에서 ‘일본(日本)’의 국기와국가로 인정될 것 같다. 지난 6월29일 정부·여당이 제출한 ‘국기·국가법(안)’에 대한 첫번째 심의가 중의원에서 있었고 7월8일까지 그 통과를 공언하고 있다.법안이 의결돼시행되면 권장 사항에 불과하던 국기게양과 국가제창이 학교 등에서 구속력을 갖게 된다. 기미가요를 국가로서 제창케 하는 일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일본에서도중론이다. 기미가요의‘기미(君)’는 주권을 총람하는 천황을 상징하는데,이는 상징적인 천황제하의 국민주권국가인 일본국 헌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이 지적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위헌의 법리 이상으로 이를 강제하는 정부와 받아들여야만 하는 국민간의 틈새 또한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모를까. 지난 2월28일,히로시마현(縣)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졸업식에서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부르도록 강제한 현의 직무명령에 항의하면서 자살하였다. 정부는 당황하였다. 하지만 대응은, 오히려 이러한 혼란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법 제정을 서두르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 속뜻(本音)은 무엇일까. 1947년 제정된 현재의 일본국 헌법은 맥아더 헌법을 별칭으로 하고 평화 헌법을 그 미칭(美稱)으로 한다.이는 일본의 헌법이 완전한 주권성에 기반하여얻어진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미 10여년 전,자위대를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목으로 캄보디아에 파병하여 군대의 보유의 금지를 규정한 헌법 제9조를 위반했다는 논란을 불렀다. 핵 물질인 플루토늄을 프랑스로부터 굳이 해상으로 가져오면서 대서양,인도양을 건너 현해탄에 이르기까지의 주변 국가들에게 현시하기도 했다.일본은사실상 이때 맥아더 헌법 체제로부터 벗어났다고 할 것이다. ‘국기·국가법안’이 통과된다면 일본국 헌법 체제는 실질적으로 변천되었다고 해야 한다. 거창한 구호 없이 일본은 패전국가에서 거대국가의 터를 완벽하게 닦고 새로운 천년을 항해할 채비를 끝낸 것이다. 일본이 패전으로부터 경제국가로서의 자립을 마련한 것은 한국전쟁의 덕분이라고 한다. 일본이 미국 흑선(黑船)의 함포에 놀라 개항을 하여 칼을 버린대신 대포가 있는 배를 구하고,그렇게 하여 명치유신을 이루어 기른 ‘근대’국가의 힘을 시험해 본 곳 역시 조선이었다. 더 멀리 일본이라는 이름도 갖지 아니한 ‘야마토’(倭)시기 ‘고대’국가의 터전을 마련하여 준 것도 백제인들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3국인들이었다. ‘일본서기’를 통하여 일본이라는 국호를 갖게 하여 준 것 역시 백제계의도래인이었다고 말해진다. 옆 나라는 이미 새로운 국가의 터를 닦았다.항진하려고 한다.우리는 또 보조자의 역할에 머물 것인가.그 한 바로미터가 우리의 국기인 태극기와 우리의 국가인 애국가에 대한 자세이다. 헌법에서 이를 정하는 프랑스나 독일은 그렇다 치자.그렇지만 법률에서 이를 정하겠다는 일본의 그 속뜻을 우리는 유의하지 못하고 있다.대통령령으로‘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을 두고 행정자치부의‘정부의전편람’이라고하는 내규로써 국가를 정하는 현실에 우리는 둔감하다. 새로운 천년의 직전에 우리는 행사성·일회성 이벤트에 정신을 맡기고 있다. 국가 성격의 전환기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기능은 거대한 빙산의 유유한 흐름을 놓치고 있다. 새로운 국가를 위한 ‘국가 인프라 스트럭처’를 기초부터 짤 때이다. 姜 京 根 숭실대 교수·헌법학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한승헌의 ‘어떤 弔辭’(상)

    1975년 1월 19일,시인이자 수필가인 한승헌변호사는 색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한 저명인사를 서울 구치소에서 접견하고 있었다.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사건의 대부로 현대 한국 필화사의 증인인 한변호사가 이날 접견한 인사의죄명은 간통죄였고 그 피의자는 당시 반유신독재운동의 집결체였던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이자 법조계의 원로인 이병린변호사였다.언론매체를 통해이변호사의 간통사건은 이미 기정사실로 유포되어버린 터여서 한변호사로서는 선배 법조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 진상을 듣고자 찾아간 자리였다. 아니나 다를까,운동권의 추리대로 이병린변호사는 반독재의 속죄양으로 필생의 명예를 더럽히게 되었음을 한변호사는 알게 되었다.사연인즉 중앙정보부로부터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직을 사퇴하라는 종용을 즉각 거절하자,일식점에 근무하는 이 아무개 여인의 남편이 간통죄로 고소하겠다는데 대표위원직만 그만 두면 그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분노와호통으로 맞선 이변호사는 바로 그 이튿날 구속되고 말았는데,격분한 한변호사는 법원 구내 기자실에서 ‘보도 불가’라는 묵인 아래 이 사건의 전말을은밀히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튿날 일부 신문들은 아예 ‘한승헌 변호인 전언’이란 부제까지밝혀 이병린 변호사 간통사건의 진상을 다뤄버렸고,이로써 정보부 요원이 진상 폭로 사건을 조사해 가는 등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돌았다.그리고는 1월 21일 밤 10시경 집앞에서 초인종도 누를 사이 없이 남산 중정 지하실로 연행,많은 인사들이 겪은 것같은 공포와 치욕의 2박3일간의 취조를 당했다. 이런 보복성 사건은 흔히 그렇듯이 뚜렷한 범법사실도 적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범죄의 형체를 조형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일체의 사생활이 취조의 도마에 오르기 마련이다.한변호사에게는 당시로서는 최근에 낸 ‘위장시대의증언’(1973년 12월)이란 수상 시사평론집이 있었는데,수사당국은 이 책을‘반국가의 주범’으로 조각해 나가기 시작했다. 글이란 게 요상스러워 ‘위장시대’의 개념부터 따지고 들다가 다다른 곳이 바로 이 책에 실렸던 ‘어떤 조사’란 짤막한 사형폐지 주장의 수필 한 편이었다.‘어느 사형수의 죽음 앞에’란 부제가 붙은 이 글은 주류 출고량이줄었다는 가사가 2단에다,여자 면도사 해고 기사가 3단으로 난 지면에서 한인간의 죽음을 다룬 사형집행 기사는 1단으로 난 것을 본 필자가 사형제도의 비인간화 현상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더구나 이 글은 ‘여성동아’ 1972년 9월호에 처음 발표한 이후 아무런 말썽도 일으키지 않아 수상집 ‘위장시대의 증언’에다 재게재했었다.수사당국은 이 글의 주인공 ‘어느 사형수’를 7.4남북공동성명 직후 간첩죄로 처형당한 김규남(당시 집권당이었던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설정해 두고,간첩의사형을 애도하며 사형 폐지를 주장했다며 한변호사를 반국가사범으로 몰아갔다. 누가 봐도 억지임을 부인할 수 없는 이 부질없는 죄 뒤집어 씌우기를 당국은 사건화시키기 보다는 한변호사에 대한 향후 활동의 협박용으로 삼고자 함에서였던지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그는 일단 석방되었다.그러나 그로부터 꼭 두 달 뒤인 3월 21일 밤 한변호사는 시내에서 중정으로 연행,이틀만에 구속,서울구치소로 수감되었다.숱한 필화 중 수필가로는 첫 구속사건이요 강신옥·이병린변호사에 이은 현직 변호사의 구속사건은 이렇게 터졌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빠찡꼬 허가 外壓 의혹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현 영상등급위원회)가 빠찡꼬 오락기기 ‘환타지 로드’를 허가해준 지난 4월27일을 전후해 공진협 중간 간부가 영향력 있는 인사들로부터 수십차례에 걸쳐 전화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심의과정에 외압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통화는 심의 통과 한달 전부터집중적으로 이뤄져 청탁 또는 압력 성격의 전화일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공진협 간부 등에게 전화를 건 외부인사의 명단과 이들의 로비 내용을 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진협 관계자는 “지난 3월부터 공진협 중간간부에게 오락기기 심의 문제로 전화가 계속됐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전화가 상당수를 차지했다”고 전했다.전화를 건 외부인사로는 전·현직 국회의원 S·L·C씨,검찰의 L씨,,변호사 C씨,정부기관의 K·J씨,국회의원 L·B·J씨의 보좌관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하지만 이들의 전화가 빠찡꼬류 오락기기의 심의 문제와관련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한편 영상물등급위원회는 10일 파문을 일으킨 빠찡꼬류 오락기기 ‘환타지로드’를 재심의,“문제의 오락기기가 부정한 방법으로 심의를 통과한데다유통단계의 게임기구가 심의 때와는 달리 사행성이 짙은 것으로 변조됐다”고 결론을 내리고 합격통보를 취소했다. 특별취재반
  • [대한광장] 朴正熙와의 화해는 잘못된 것인가

    우리사회는 좁은 시야에서 비롯된 단견과 경박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사안의 경중도 가리지 못하고 여론이라는 이름의 장단에 휩쓸리기도 한다.감정이 지배하는 가운데 이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양상도 나타난다.도대체 목표가 분명치 않고 중심도 없다. 고위층 여인네들의 철없는 행동에 여러날 동안 온 나라가 들썩거렸고 신문들은 신바람이 나서 연일 지면을 도배질하다시피 했다.그게 그렇게 온 나라를 뒤흔들 만큼 큰 일이었을까? 무슨 중대한 로비가 성사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지나치게 요란을 떤 게 아니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물론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었다.그러나 정도가 너무 심했다. 그 와중에 정작 중요한 남정네들의 비리의혹은 쟁점이 되지 못했다.최순영리스트 말이다.옷 로비로 그렇게 요란법석을 떤 결과 6·3 재선거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고급옷 로비사건이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주관없이 여론과 감정에휩쓸려 투표장으로 달려간 보통 여인네들은 선거결과에 만족할까? 대부분의 주요 신문들은 여당의 참패를 1면 머릿기사로 올렸다.그런데,남북간에 차관급 회담을 하기로 했다는 사실보다 재선거 결과가 더 중요한 뉴스였다고 할 수 있을까? 차관급 회담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외교와 북한에 대한 일관된 포용정책이 결실을 낳은 소중한 결실로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이산가족들은벌써 가족과 상봉하는 꿈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개혁을 등한시해서도 안되겠지만 우리시대에,그리고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하는 과제는 동서와 남북의 화합 및 통일이라고 생각한다.이 둘은 동시에 가야 한다.동서가 지역감정으로 갈라져 대립하는 현실을 모른 체하고 남북통일만을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따라서 남북관계의 개선을소신있게 밀고 나가고 있는 정부로서는 동서갈등의 해소도 동시에 추진하는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김대중대통령이 지난 달 대구에서 박정희 전대통령과화해선언을 한 것은 의미있는 사건이었다.그런데 일부 언론과 시민운동단체,그리고 지식인들이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그 이유는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내린 정략적인 판단이란 것이었다.그리고역사학자의 몫을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빼앗아갔다는 주장이었다. 그럴까? 그런 논리라면 이제 역사학자들은 할 일을 잃고 손을 놓고 있어야한다.김대통령의 선언은 지역감정을 풀기 위한 대통령으로서의 선택이고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여전히 역사학자들의 과제로 남아있다.설령 정략적인 선택이라고 해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기념관 건립을 정부에서 지원하느냐 않느냐는 방법론의 문제일 뿐이다. 호남지역의 상징이었던 김대통령이 박정희를 포함한 전직 대통령들과 대립하고 있는 한 지역감정의 해소는 요원하다.그러면 김대통령이 자신을 박해했던 전직 대통령들과 계속 반목하면서 원칙만을 고집해야 옳을까? 그럴 경우뭇사람들은 이를 두고 정치보복이라고 할 것이다.김대통령의 선택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지역감정의 해소를 말하지 말아야 한다.김대통령은 지금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 전대통령은 공보다 과가 훨씬 많다.그러나 공과를 따지고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것과 동서갈등을 푸는 일은 별개라고 할 수 있다.왜냐하면 영남지역의 정서가 거기에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고 동서화합을 얘기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지금은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큰 마음으로 동서가 하나가 된 가운데 남북의분단구조를 청산하여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나가야 할 때라고 믿는다. 金 東 敏 한일장신대 교수·언론학
  • 대한생명 인수전 점입가경

    대한생명 인수전이 점입가경이다.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LG가 탈락한 가운데 한화와 미국의 암코(AMCO) 노베콘(NOVECON) 등의 ‘삼파전’으로 압축되는 양상이다.그러나 최순영(崔淳永)회장과 정부와의 ‘밀약설’이 제기돼 유찰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누가 유력한가 자금조달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힌 곳은 한화뿐이다.한화가지분 49%를 갖고 나머지 40%와 11%는 각각 일본의 오릭스생명과 교에이생명이 출자키로 했다.세계은행(IBRD) 산하기관인 국제금융공사(IFC)도 참여한다.그러나 인수금액 중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후순위 차입금이 포함됐으며 교에이생명의 경영이 좋지 않은 점 등은 마이너스 요인이다. 부동산 관리회사인 암코는 세계 최대의 부동산 개발 및 투자회사인 ‘쿠시맨 앤드 웨이크필드’를 자금조달 담당으로 끌어들였다.특히 미국 최대의 보험사인 푸르덴셜을 위탁경영회사로 삼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1차 입찰때 참여했던 인수합병(M&A) 전문기관 노베콘은 익명을 요구한 생보사 및투자자들과 투자자문사인 ‘터커 앤드 어소시에이트’를 파트너로 삼았다.터커는 금호생명과 합작의향서를 교환한 미국 하트포트생명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어 보험경영 능력이 있다. ●다른 참여자는 리젠트 퍼시픽 그룹은 600억달러를 운용하는 위스콘신 주정부 기금을 끌어들였으나 자금조달계획이 분명치 않다.일본 민단기업과 말레이시아 국영 투자기관인 LOFSA를 참여시킨 김철호(金澈鎬)회장의 명성과 자동차부품 제조회사인 신동양기공은 자본확충과 생보업 발전 등에서 미흡한것으로 알려졌다.미국의 부동산 펀드인 GAI는 확인되지 않은 투자펀드와 종금사로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홍콩의 부동산 지주회사인 DMK-SPE는 생보업과무관하다는 평이다. ●밀약설 최순영회장의 대리인이 정부와 밀약,이번 입찰에 참여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특히 한화 김승연(金昇淵)회장이 대리인들을 접촉했다고 언급,담합시비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한화는 최회장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 게 와전됐다고 해명했다.금감위는 최회장 대리인의 입찰참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밀약설은 금감위결정에 부담을 줄수 있는 요인이다. 백문일기자 mip@
  • 대한종금 간판내린다

    영업정지된 대한종금의 영업인가가 취소될 전망이다.대한종금 고객의 예금은 6월10일을 전후해 예금보험공사가 대신 지급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위원회는 26일 대한종금의 자산·부채 실사결과 순자산가치가 마이너스 8,000억원을 웃돌고 해외매각 가능성도 희박해 6월11일 금감위 의결을거쳐 인가취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금감위 관계자는 “대한종금을 인수하겠다는 외국 투자기관이 있으나 자금조달 계획 등이 분명치 않아 현재로서는 영업인가 취소가 불가피하다”며 “6월10일을 전후해 개인고객 예금부터 우선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감위는 대한종금이 지난 3월 3,000억원을 증자하면서 대주주 등에 불법대출해 준 혐의를 포착,대주주의 개입 여부를 검찰에 수사의뢰하기로 했다. 성원건설과 성원산업개발 등 대주주에도 당시 자기자본의 50%로 한정했던여신한도를 초과해 대출한 사실을 확인,대한종금 임직원을 문책키로 했다. 금감위는 대한종금의 자산 규모가 2조원을 웃돌지만 회수불가능한 부실채권이 많아 3조원의 예금을 대지급할 경우 1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회수하지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지난해 8월1일부터 대한종금에 2,000만원 이상을 맡긴 고객은 이자를한푼도 받지 못해 예금보험공사의 대지급이 늦어질수록 고객은 그만큼 이자손실을 보게 된다. 대한종금은 오는 7월10일까지 영업이 정지됐다. 백문일기자 mip@
  • LG, 대한생명인수 전략과 업계 판도변화

    대한생명 인수전이 LG쪽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미국의 메트로폴리탄생명에 이어 프랑스의 AXA마저 대한생명 인수를 포기,LG의 독무대가 됐다.LG가 대한생명을 인수할 경우 보험업계의 ‘지각(地殼)변동’도 예상된다. ?擥맨渦耽窩? 판도는 LG가 대한생명을 인수할 경우 계열사와 협력업체를 상대로 한 기업(단체)영업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그동안 시장점유율은18.2%였으나 계속 강세를 보인 개인영업까지 정비되면 업계 2위인 교보생명(19.5%)과의 순위다툼이 치열해지고 삼성생명(33.8%)과의 격차도 좁힐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신동아화재(5.1%)까지 인수해 LG화재(11.7%)와 합병하면 손보업계는 LG가 현대해상화재(13.5%)를 제치고 2위로 뛰어올라 삼성화재(25.5%)와 선두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辣俟?로와 AXA의 포기 배경 대한생명과 1년여 가까이 외자유치 협상을 벌인 메트로측이나 최근 30여명의 실사팀을 보낸 AXA 모두 대한생명의 가치를 2조원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메트로측은 10억달러(1조2,000억원)를 웃도는 수준에서,AXA는 기껏해야 2조원 가까이 투자할 생각이었다.반면 금감위는 2조원 이상의 투자가치가 있다며 지나친 경쟁을 부추겼다.결국 2조원 이상을 투자할 경우 실익이 없다고판단,막판에 포기했다.AXA는 경영진의 결정을 이사회가 승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LG의 전략 당초 1조5,000억원 정도면 대한생명을 인수하겠다고 판단한 LG는 메트로측과의 공동인수 계획이 무산되고 뒤늦게 AXA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투자금액을 1조5,000억∼2조원으로 올렸다.동시에 AXA에는 LG가 인수한 뒤외자유치를 통한 합작을 제의,AXA의 인수의지를 흐리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AXA의 포기로 LG는 인수전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으나 5대 그룹의 생보진출 과정에서 특혜와 AXA와의 입찰담합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 ?辣茨별? 미국계 펀드는 일본계 자금의 출처가 분명치 않아 명성의 대한생명 인수는 거리가 멀다.그러나 김철호회장의 재기와 맞물려 재계 안팎의 관심이 높으며 일각에서는 대한생명이 확보한 신동아화재 지분을 염두에 뒀다는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계 J.E.로버트 펀드는자금력이 뒷받침되는 부동산 전문기관으로 LG와함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으나 최종 인수자로서 적격이 아니라는 평이다.인수합병 자문회사인 미국계 노베콘도 큰 변수가 되지 못할것으로 알려졌다.
  • 특별기고-私學의 자율성과 교원 단체활동

    우리나라의 사립학교,특히 사립중·고등학교는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정부가 아닌 민간이 설립자이면서도 국·공립학교와 거의 비슷한 통제를받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이다.평준화지역에서는 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추첨에 의해 신입생을 선발해야 하며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공납금도 공립학교와 동일하게 책정되어 있다.또 사학재단은 경영이나 재산운용에 있어 관할 행정기관으로부터 많은 규제를 받고 있으며 교과과정의편성과 운영도 획일적인 기준이 적용되고 있어 독자적인 건학이념을 살리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물론 이러한 통제의 반대급부로 중등사학은 정부로부터 표준예산소요에 비추어 부족한 경비를 지원받고 영세한 학교들은 평준화시책에 의해서 학생들을 배정받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그러나 이러한 여건 때문에 우리의 중등사학은 준(準)공립학교화하고 있어 사학의 존립의의를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올해 7월부터는 교원노동조합이 합법화되어 근로조건을 비롯한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서 중앙 및 지역단위의 사학재단 연합체와 단체교섭을 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되어 있다.비록 단체행동권은 유보되었고 개별사업장인 학교단위의 교원노조 결성과 활동이 금지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파장과 영향은 지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현행 교원노조법의 규정대로 단체교섭이 원만히 이루어질 것인지 의문이다.우선 사학재단연합체가 개별 사학재단의 교섭권을 위임받아 협약을체결할 만한 위상과 권능을 갖고 있는지부터 회의적이다.사학재단들이 연합체에 가입하기를 거부하거나 교섭권을 위임하지 않을 경우,또 체결된 협약을 개별 사학들이 준수하지 않을 경우에 어떻게 되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특히 사학교원들 중에서 교원노조에 가입하는 비율이 낮거나 특정한 사학의 경우 노조가입자가 전혀 없는 경우에도 지역단위 혹은 전국단위 교원노조가 체결한 협약을 사학재단들이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전체 교원 중 가입률이 과반수에도 못 미치는 경우에도 모든 교원들의 의사를 대표한다고 인정해야하는가? 복수의 교원노조가 생기고 전문직교원단체가 더 많은 회원을 갖고 있는 경우에 누가 대표성을 인정받아야 하는가? 노동조합 형태의 교원단체에만 단체교섭권을 인정하고 전문직 교원단체에게는 노동관계법상의 교섭권을 인정할 수 없다면 교원의 단체활동에 관한 근거법령과 적용대상을 이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우선 사립학교의 경우에는설립자가 민간의 개인 또는 단체로서 법인 이사장이 교원을 임용하고 있으므로 개별학교 단위에서 노사관계가 명료하게 성립된다.따라서 사립학교 교원들은 노동3권을 갖는 교원노조에 가입하여 단체교섭은 물론 단체행동까지도할 수 있도록 하고,사용자인 사학재단에 대해서도 일반산업체의 고용주에게부여하고 있는 권한을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사립학교 단위에서 독자적인 단체교섭및 협약이 실효를 거두려면 사학운영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되지 않으면 안된다.교원들의 보수나 근무조건을 학교마다 다르게 책정할 수 있으려면 재정운영의 자율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등록금의 차등화도 허용해야한다.이를 위해서는 정부에서도 계획하고 있듯이자립이 가능한 사립학교는 재정을 비롯한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물론 학생선발과 교육과정 운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자율성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희망하는 고등학교에 대해서는 평준화시책을 해제하는 방안도병행할 필요가 있다.다른 한편 국·공립학교의 경우에는 교직원의 신분이 공무원이므로 일반공무원에 준해서 단체활동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우리 공무원들도 이제는 단체 결성을 허용하고 있거니와 교육공무원들에게는 전문직 교원단체에 부여하고 있는 교섭·협의권까지를 인정해도 형평에 어긋나는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리고 국·공립학교 교원들의 임용권자 및 고용주는 교육부장관 또는 교육감이므로 그러한 교원단체의 교섭·협의는 학교단위보다는 중앙 또는 지역단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하고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 문예사조의 모든것 조명

    문예사조는 나라마다 다양한 양태를 띠며 전개돼 왔다.르네상스는 이탈리아적인 현상으로 나타났고 고전주의는 프랑스에서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그런가하면 낭만주의는 독일과 영국에서 일찍이 발달했으며 상징주의는 몇몇예외는 있지만 프랑스적인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문예사조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사회적·역사적 조건 속에서 탄생하는가.문학평론가 김병걸씨가펴낸 ‘문예사조,그리고 세계의 작가들’(전2권·두레)은 르네상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각 문예사조의 내용과 배경을 알기 쉽게 풀이하고있어 일반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문예사조란 어떤 중요한 문학의 유파나 집단,운동이 지니는 사상적·예술적 특색을 포괄하는 흐름을 말한다.문예사조의 개념이 우리 문학에 적용되기시작한 것은 근대문학 이후부터.그러나 문예사조에 관한 그릇된 이해는 적잖은 역기능을 낳기도 했다.서구 문예사조를 절대시한 나머지 한국 근대문학사를 서구문학의 이식사로 본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같은 문예사조라 할지라도 민족과 나라에 따라 어떤 편차를 보이는가를 구체적 사례를 들어 살핀다. 저자가 먼저 주목하는 것은 르네상스다.중세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는 르네상스의 복합적인 성격부터 밝힌다.르네상스는 문예에 국한된 운동이라기보다는 보다 포괄적인 사회문화적 현상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는 문예사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르네상스의 기간은 보통 15세기에서 17세기 초까지로 보지만 그 한계는 분명치 않고 또 나라마다 다르다.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초는 135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단테가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오는 과정의 인물이라면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는 르네상스의 이정표가 된 고전의 부흥에 불을 당긴 선구자다.이 책에서 다루는 문예사조론은 각 시대를 산 작가들의 삽화적인 삶과 더불어 소개되고 있어 흥미를 끈다. 김종면기자 jmkim@
  • KBS ‘시사터치‘ 정치풍자 코너 중도 폐지 논란

    개그맨 김형곤의 정치풍자 코너가 갑자기 중도폐지되면서 방송가가 시끌벅적해지고 있다.KBS가 봄철 프로개편을 하면서 매주 목요일 밤 방송되는 코미디프로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의 한 코너인 ‘굿 뉴스 배드 뉴스’코너를 4일부터 폐지키로 한 것.그러나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프로그램은 같은시간대에 여전히 방송한다.김형곤은 그동안 이 코너에서 세풍 총풍 등 정치현안을 빗댄 코미디를 내보냈다. KBS의 이같은 조치와 관련,김형곤이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논란이 빚어지고있다.김형곤과 자민련측에 따르면 코너의 중도하차는 자민련 당적을 가진 그의 출연을 한나라당 측이 문제삼자 방송위원회가 ‘시비의 소지가 있다’고유권 해석함으로써 이뤄졌다는 것이다. 김형곤은 지난달 29일 이같은 주장과 함께 마지막 녹화분 촬영을 거부했다. 그는 “한국 정치풍자 코미디의 발전을 위해 강력히 문제를 제기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자민련 측도 당적보유를 이유로 방송출연을 금지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난다며 방송사에 원상회복 등의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프로의 책임연출자인 김영선부주간은 이같은 김형곤 등의 반발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다.그는 “김형곤코너의 분당 시청률이 다른 코너보다 5% 정도나 떨어져 중지키로 한 것일 뿐 정치적 압력은 전혀 없었다”면서 “김형곤과 프로의 폐지를 2주전 합의했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만약 그같은 주장 때문에 김형곤을 다시 기용한다면 그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압력”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적 압력설은 시사풍자프로의 출연자가 교체될 때마다 되풀이돼왔다.이번 코너의 중도하차가 외압 때문인지,아니면 시청률 때문인지 분명치 않지만 우리의 방송현실에서 정치풍자를 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한번알수 있게 해준다.허남주기자
  • 中·日정부 보관 한국자료 공동활용

    동아시아 각국의 국가기록보존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관계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정부기록보존소는 13일부터 14일까지 정부 대전청사에서 열리는 동아시아기록보존협력기구(EASTICA) 이사회에서 소장자료 상호 활용방안을 협의한다고12일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는 기록물을 효율적으로 조사·활용하기 위한 ‘기록물교환위원회’와 기록물의 공동이용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기록물자동화위원회’운영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이번 회의에는 우리나라와 중국·일본·몽골·마카오·홍콩 등 6개국의 정부기록보존기관 관계자가 참석하지만,북한은 회원국이면서도 참석하지 않아자료교류에 참여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동아시아 각국의 기록보존기관에는 한국관계 기록물이 상당수 소장돼 있는것으로 알려져 왔으나,그동안 정부차원의 활용대책은 마련되지 못했다. 특히 중국의 국가기록보존기관인 당안관에는 임오군란 당시의 대원군 납치,개항 이후 조선의 외교문서 및 항일활동기록 등 방대한 한국관련 기록물이 소장돼 있다. 일본의 국립공문서관에도 명치유신 이후 정부 각 부처의 한국관련 정책 수립 및 집행과정에 대한 문서가 다량 소장돼 있다. 또 몽골·홍콩·마카오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에 대한 조사가 가능해짐에 따라 새로운 한국관련 자료 발굴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기록보존소 관계자는 “회의가 끝나는 대로 각국의 기록보존기관에 연구원들을 파견해 자료를 조사하는 작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면서 “각국자료에 대한 본격적인 활용이 시작되면 한국 근대사 연구에 상당한 기여를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동아시아기록보존협력기구는 지난 93년 창설됐으며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6개국 및 북한 등 7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 [돋보기]국제대회면 무조건 출전하나…경솔한 KBL

    한국농구연맹(KBL)이 개최가 분명치 않은 국제대회에 성급하게 프로올스타팀의 출전을 약속,물의를 빚고 있다. 칼 멘키 칭 아시아농구연맹회장은 2일 잠실체육관에서 개인자격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6월 5일부터 두달여에 걸쳐 9개국이 출전하는 가칭 ‘아시아농구수퍼리그’를 열 계획이라며 “KBL은 이미 참가를 약속했고 나머지 국가들과는 협의중”이라고 밝혔다.그러나 칭회장은 대회 일정과 스폰서는 미정이며 우승상금 6만달러 등 경비는 개인적으로 부담할 예정이라는 등 상식밖의 발언으로 일관해 강한 의구심을 자아냈다. 회견을 지켜 본 농구인들은 “10여년전부터 거론됐던 얘기로 성사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설사 성사되더라도 명분과 실리 어느것도 얻을 것이 없다”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수퍼리그의 주최가 칭회장이 대표로 있는 이벤트회사인데서 보듯 장사가 목적인 대회에 올스타를 내보낼 명분이 없고 두달여에 걸친 격전을 치러 우승한다해도 엔트리 18명에게는 평균 3,300달러정도만이 돌아갈뿐이어서 ‘재주만 부리는 꼴’이라는 지적이다.아시아농구연맹 등 14개단체의 대표직함을 명함에 새겨 눈길을 끈 칭회장은 국내 농구인들로부터 ‘믿을 수 없는 인물’로 꼽혀왔다. 농구인들은 또 “늦어도 7월초부터는 아시아선수권대회(8월28∼9월5일·일본)에 대비한 대표팀의 훈련이 시작돼야 하는 마당에 대부분이 국가대표인프로올스타를 파견할 수 있겠느냐”며 “대회의 성격과 경중을 고려하지 않은채 무작정 출전부터 공약한 KBL의 태도는 아무래도 경솔했던 것 같다”고입을 모았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친일의 군상(31)문명기

    ◆경북 영덕 최고부자 文明琦 잊을만 하면 한번씩 기자를 찾아와 친일파·현대사 인물 등에 관한 자료(정보)를 제공해주는 분이 한 분 계신다.겨우 이름 정도를 알고 있을 뿐 그 분의 신상에 대해선 자세히 알 길이 없다.다만 그 분이 건넨 자료 가운데는 대단히 우수한 것들이 많음에 번번이 놀랄 뿐이다.자료와 함께 동봉한 메모를통해 그 분의 방대한 독서량과 해박한 지식에 대해서도 혀를 내두를 뿐이다. 특히 누구는 누구의 부친이고,누구는 누구와 사돈간이고… 등등의 ‘사람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이런 이야기는 공간(公刊)된 자료나 문헌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으로 때로는 문헌자료 이상의 귀중한 가치를 가진다.지난 겨울에 찾아와 건넨 그 분의메모 속에는 일제때 상하이(上海)에서 일본군에 군납(軍納)을 하면서 떼돈을 번 손창식(孫昌植)을 비롯해 여러 명의 친일파가 등장한다.그런데 그중 한명은 한 때 자신이 그의 ‘괴짜인생’을 교훈으로 삼을 뻔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70년대 초반 어느 신문에서 그 사람의 출세비화를 다룬 적이 있는데그때는 그의 친일행적을 전연 몰랐다는 것이다.이야기는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일제때 경북 영덕 읍내 영덕경찰서장집 마당에 아침마다 팔뚝만한 삼치 한마리가 떨어져 있곤 했다.이를 이상히 여긴 그 집 식모가 어느날 아침 이를서장에게 고하자 서장은 주인공을 찾아보라고 하였다.며칠 만에 식모가 삼치를 떨어뜨리는 주인공을 잡고 보니 그는 지게에 생선을 지고 다니며 파는 생선장수였다.마침내 서장이 나와 무슨 연유로 매일 아침 마당에 생선을 놓고가느냐고 묻자 그 생선장수는 “서장님께서 치안을 잘 유지시켜 주시니 덕택에 저 같은 사람도 생업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달리 보답할 길은 없고 해서제가 파는 생선이나마 드려서 아침 밥상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에 탄복한 서장이 “내가 뭐 도울 것은 없소?”하고 묻자 그는 “특별한 부탁은 없습니다만…밑천이 달려 물건을 많이 받아올 수가 없어서 겨우 지게꾼 행상을 하는 것이…”하고는 말끝을 흐렸다.그러자 서장이 “그럼내가 생선도매점에 소개장을 하나 써주겠소” 하고 약속을 하였다. 당시만 해도 거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던 경찰서장의 소개장 덕에 그는 이 일대에서 생선장사로 큰 돈을 벌게 되었다.생선을 미끼로 출세길을 튼 이사람은 일제 당시 경북 영덕 일대 최대의 부자 문명기(文明琦·창씨명 文明琦一郞)였다.일제로부터는 ‘애국옹(愛國翁)’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민족사에서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해보자. 문명기는 1878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문승환(文承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씨 부자가 언제,어떤 경로로 경북 영덕에 뿌리를 내리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조선총독부가 시정 25주년 기념으로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朝鮮功勞者銘鑑)’(1935년 간행)에 따르면 그는 29세 때인 명치 40년(1907년)쯤 제지업을 시작한 것으로 나와있다. 생선장사로 돈을 모은 그가 제지업에 눈을 돌린 것은 이 일대가 종이원료가 풍부한 것이 계기가 된 듯하다.그는 자기 공장에서 종이를 생산하면서 다른 공장의 종이를 사서 이를 만주로 내다팔기도 하였다.사업이 번창해지자 그는 제지업계의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목하에 광제회(廣濟會)라는 재단법인을만들어 종이 생산·판매에서 주도권을 확보하였다.아울러 그는 이같은 이권단체를 통해 일제 관헌과 조직적으로 유착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산업과 제지업에서 자본을 축적한 그는 당시 유행하던 금광사업에투자하였다.일제 당시 대부분의 기간산업은 일본인들이 독차지하고 있어서조선인들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운(運)을 담보로 한 금광사업 정도였다. 따라서 이 분야는 조선인 사업가들이 일제로부터 별 간섭 없이 진출할 수 있던 분야이자 조선인 토착자본의 집중 투기대상이기도 했다.1932년 영덕군 지품면 도계에 있던 금은광산을 인수,자신의 이름을 따 ‘문명광산’으로 명명하였는데 그는 이 광산에서 ‘노다지’를 캐 향후 사업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경북지방의 모퉁이인 영덕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그가 중앙무대에 얼굴을 내민 것은 1935년 그가 육·해군기 각 1대씩 비용으로 10만원을 헌납하면서부터다.그는 자신이 경영하고 있던 금광을 일제 당국의 주선으로 일본유수의 미쓰코시(三越)측에 12만원을 받고 매각하고는 그 대금 가운데 10만원을 비행기 헌납금으로 내놓은 것이다.어림잡아도 현재의 10억원 규모의 거액을 비행기 헌납금으로 내놓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일제는 그를 ‘애국옹(愛國翁)’이라고 치켜세우며 대대적으로 선전에 활용하면서 그가 헌납한 돈으로 구입한 비행기를 ‘문명기호(文明琦號)’로 명명하였다.경성비행장에서 열린 명명식에는 일본의 해군대신 대리가 참석하였고 행사 후 해군기 6대가 축하비행을 하는 등 요란을 떨었다(매일신보 1935.4. 7). 이후 그는 곧바로 영덕 국방의회 회장에 취임하였고 다시 재향군인회 특별회원,일본적십자사 특별회원 등에 선임되었다.일약 이 지역의 명사로 등장한 그는 뒤 이어 경북도회 의원,중추원 참의에 피선돼 전국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다.명성과 함께 그의 친일 행위는 더욱 노골화되어 갔다. 그는 조선 전역에서 ‘1군(郡) 1대(臺) 헌납운동’을 펴자고 주창하고는 조선국방비행헌납회를 만들어 여기에 1만원을 기부하면서 대대적인 헌납운동을전개했다.이후 전국에서 군 단위나 단체별로 헌납 주체의 이름을 딴 ‘애국기헌납운동’이 꼬리를 물고 뒤따랐다.밀양 지역의 ‘밀양호 (密陽號)헌납운동’의 경우 총모금액은 10만원,모금대상은 전 밀양주민인 것으로 나와 있다. 한편 당시 ‘헌납병 환자’ 또는 그의 이름을 빗댄 ‘야만기(野蠻琦)’ 등으로 불린 그는 두 차례의 헌납에 이어 다시 육군과 해군에 각각 2만원,4만원을 헌납하였다.또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에는 비행기로는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이번에는 ‘헌함(獻艦)운동’을 제창하고는 솔선하여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동광(銅鑛) 3개를 기부하였다(매일신보 1943.1.24).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일제의 강요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수동적·소극적 친일을 한 반면 그의 친일은 다분히 의도적·적극적이라는 데 분명한 차이가있다.중일전쟁이 발발(1939.7.7)하자 그는 황군(皇軍·일본군) 위문차 북지(北支·북중국)로 가는 도중 평양에서 강연회를 개최,전쟁 미화를 골자로 한친일연설을 하였으며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경부선 주변 각도시를 순회하며위문결과 보고대회를 가졌다. 이듬해에는 의남(義男)단원을 강제로 모집,수많은 조선청년을 북지의 전쟁터로 내몰았으며 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상임이사,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일어판 친일지 ‘조선신문’사장,중추원 참의 등을 지내면서 일제의 침략전쟁협조에 광분하였다. 그의 대표적 친일행각 중 하나는 그가 전시하 황도(皇道)선양을 목적으로조선 내 각 가정에 ‘가미다나(神棚)비치운동’을 전개한 사실이다.‘가미다나’란 일본의 개국신(開國神)인 아마데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영부(靈符)를 안치한 것으로,이를 집안 높은 곳에 비치해 조상신으로 모시고는 아침저녁으로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전국으로 보급하기 위해 광제회라는 보급단체를 조직,자신이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며 경성부윤(현 서울시장)을 명예회장에 추대,남산 조선신궁에서 가미다나 분포식을 거행하고는 1차로 서울시내 각 정회 총대(町會 總代,동장) 130여명에게 가미다나를 나눠주었다.이후로 조선 내 각 가정에서는 신사참배와 함께 일본황실의 조상을 강제로 받들어야만 했다. 평소 일본 신도(神道)의 철저한 맹신자였던 그는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한것으로도 유명하다.집안 치장이나 의복·언어는 물론 생활방식까지도 전부일본식으로 개조하여 철저한 일본인이 되고자 하였다.1943년 7월 그는 황도선양회를 만들어 자신이 회장에 취임하였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1949.1.29)돼 심판대에 올랐던 그는,호적에 따르면 이후 행방불명돼 생사확인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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