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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학자들 ‘MB노믹스’에 쓴소리

    경제학자들 ‘MB노믹스’에 쓴소리

    국내 경제학자들이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해 추진 동력을 잃은 ‘MB노믹스(이명박 경제철학)’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13일 서울대에서 한국국제경제학회 주최‘MB정부의 대외경제정책:평가와 전망’ 정책토론회에서였다. 고환율 정책, 쇠고기 개방 등 새 정부 경제정책의 강도높은 대응책을 주문했다. ■ “美선 신자유주의 타당성 잃어” 조순 “FTA에 너무 매달려”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글로벌 경제와 미국경제’라는 기조강연을 통해 새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에 대해 일갈했다. 조 명예교수는 공기업 민영화, 교육 자율화 등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관련,“미국에서도 신자유주의는 이미 정책으로서의 타당성을 잃었다.”며 미국경제가 한국의 모델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한국이 새삼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의 모델을 그대로 들여올 경우 한국경제는 그 하중에 눌려 견디지 못할 것이고 사회는 끊임없는 내부파열에 시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은 금융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모방하면 선진국이 되는 줄 알고 있다.”면서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인적·물적·제도적 인프라 등 갖춰야 할 기본을 먼저 닦고 국민 생활이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나라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자유무역협정(FTA)에 매달리고 있다.”면서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과의 FTA가 모두 타결되면 엄청난 부자유(不自由)에 묶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고환율정책은 물가에 치명적” 최창규 “고금리 대응책 필요” 최창규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정책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정부의 고환율 정책을 비판했다. 최 교수는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상승)상황에서 무리한 고환율 정책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치명적이고 내수회복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물가가 환율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의도적으로 환율을 올리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급격한 원화절하 정책은 물가 상승 뿐 아니라 내수 위축과 그에 따른 고용 악화 효과도 가져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 “소규모 개방경제하에서 물가안정목표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환율의 자유로운 변동을 허용하는 것이 옳다.”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질 경우 오히려 고금리정책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쇠고기 파문은 투명성 부족 탓” 이경태 “추진 배경에 의구심”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성난 민심’은 정부가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해 발생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경태 국제무역연구원 원장은 “우리나라가 동시다발적 FTA을 추진해 긍정적 효과를 얻었지만 외형적 팽창에 치중하면서 절차적 투명성, 여론 수렴 등에 소홀해 치르지 않아도 될 비용을 지불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한·미 FTA의 경우 공개적 논의 없이 갑자기 협상 개시를 발표해 국민들에게 추진 배경에 대한 의구심을 심어줬고 심각한 국론 분열을 초래했다.”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싼 여론의 반대도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의 역할, 그리고 제언

    먹거리 문제부터 교육, 육아, 건강, 연금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여성학회가 14일 고려대에서 개최하는 제24차 춘계학술대회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당면한 다양한 이슈들을 다룬다. 주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젠더·계층·세대의 정치학’. 이번 대회에서는 특히 페모크라트(femocrat, 국가관료조직 안에서 일하는 여성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는 자리가 마련돼 주목된다. 정부의 정책 활동에 참여했던 여성운동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페모크라트들이 어떻게 국가와 여성계 사이에서 바람직한 소통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살펴 보는 자리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 균형인사비서관으로 일했던 조현옥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초빙교수는 ‘페모크라트, 첩자인가 배신자인가’라는 글에서 당시의 경험과 실상을 이렇게 밝힌다. 조 교수는 “각 부처의 힘은 겉으로는 대단했지만 실제로는 결정적인 일은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마이너 역할이었고 관료사회였기 때문에 상관인 수석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구조였다.”고 주장한다. 상명대 행정학과 김영미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여성 인력 개발을 위한 정책 제언을 내놓는다. 이밖에 조장은 명지대 사회학과 교수의 ‘홍대 여성 클러버들의 새로운 하이퍼 섹슈얼리티’, 이화여대 여성학과 강사인 민가영씨의 ‘신자유주의 시대 신빈곤층 10대 여성’ 등 다양한 주제의 논문이 발표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각계 전문가 ‘인적 쇄신’ 조언

    각계 전문가 ‘인적 쇄신’ 조언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할 인적쇄신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쇄신의 바구니에는 어떤 내용물이 담겨야 할까. 김영삼 정부의 김용태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노무현 정부의 박남춘 전 청와대 인사수석, 시민운동가인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 여론조사 전문가인 김형준 명지대 교수 등이 11일 조언에 참여했다. ●“책임·상징성 결합하는 인적쇄신을” ▶이명박 대통령이 단행할 인적쇄신의 폭과 방향은 어떠해야 할까. 김용태 전 실장 대폭 쇄신이 돼야 한다. 일부 교체로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 실력이 검증된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 위화감을 줄 정도의 재산가는 배제해야 한다. 윤여준 전 장관 국무총리와 비서실장(대통령실장)을 포함해 내각과 청와대를 전면 개편해야 국민이 납득할 것이다.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쇄신이 돼야 한다. 박남춘 전 수석 왜 민심이 돌아섰는지는 인사권자가 제일 잘 안다. 원인부터 살피고 책임질 사람을 따져야 한다. 도덕성이나 전문성은 차후의 문제다. 손혁재 교수 국면전환용으로 수석, 장관 몇 사람 바꾸는 쇄신이라면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의 잘못을 거울 삼아 국정을 어떻게 운영할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김형준 교수 청와대에서 국정을 총괄했던 사람과 쇠고기 협상 관련 부처 장관을 포함해 대폭 쇄신이 돼야 한다.‘강부자’,‘고소영’ 내각 이미지를 씻기 위해 감동을 줄 수 있는 입지전적 인물이 포함돼야 한다. 김영삼 정부 때 이회창씨, 노무현 정부 때 강금실씨 처럼 상징적 인물을 찾아야 한다. ●“국정공백 운운할 단계 넘었다” ▶쇄신 폭이 너무 크면 국정공백이나 인재 구인난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김 전 실장 지금 일신하지 않으면 성난 민심을 달래지 못할 것이다. 제2의 촛불집회가 생길 수도 있다. 윤 전 장관 국정공백은 걱정할 게 없다. 지금까지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나. 자기와의 인연을 중심으로 사람을 쓰니 인재풀이 좁아지는 것이다. 박 전 수석 능력이 안 되고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사람을 계속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손 교수 인사 폭이 중요한 게 아니다. 민주적 합의절차를 무시한 대통령의 독단으로 쇠고기 문제가 일어난 만큼 국정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지를 먼저 정하는 게 중요하다. 김 교수 국정공백 운운할 단계를 넘었다. 중폭이나 소폭 쇄신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큰 폭으로 해서 국민이 변화를 실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효율성이 아니라 상징성이 중요하다. ▶한나라당으로부터 정치인들의 대거 입각 요구가 나오는데. 김 전 실장 능력 있는 의원이라면 위기를 타개할 방안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낙천·낙선자들을 내각에 임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회의원도 못됐는데, 국민을 다스리는 내각에 임명하는 것은 좀 모순이다. 윤 전 장관 정치인이 들어간다고 반드시 정치력이 발휘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들이 정치력이 있었다면 정당에서 역할을 발휘했어야 했다. 박 전 수석 정치인의 장점은 민심 파악과 국정 조정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특히 정권 초기 복잡한 여론을 수렴하고 정책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는 정치인이 유리하다. 손 교수 정치인도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정치인과 비정치인 간 권력다툼이 나타나면 좋지 않다. 김 교수 특수 상황에서 소관부처를 완벽히 통제, 조정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정치인이 들어갈 필요성은 있다. 행정안전부나 보건복지부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대통령실장은 학습하는 자리 아니다 ▶대통령실장을 교체해야 할까. 바꾼다면 어떤 인물이 적합할까. 김 전 실장 대통령실장은 정무를 아우르고 도덕성과 전문성을 고루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윤 전 장관 대통령실장을 바꾸지 않으면 국민 지지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대통령실장은 훈련된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은 누구나 처음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배워가면서 하지만, 대통령실장은 배우면서 하는 자리가 아니다. 손 교수 대통령이 집사 같은 실장을 원한다면, 교체한다 하더라도 계속 류우익 실장 같은 스타일밖에 안 된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하려는 ‘토털 리더십’을 버리고 방향만 제시해 주고 나머지는 위임하는 ‘서번트 리더십’을 지향해야 한다. 김 교수 류 실장은 전반적 국정조정에서 빈약했다. 책임질 수 밖에 없다. 대통령실장은 ‘컨트롤타워’ 기능이 가능한 정치적 역량과 행정경험을 겸비해야 한다. ●총리는 정치·행정 아우를 수 있어야 ▶국무총리도 인적쇄신 대상에 포함해야 할까. 김 전 실장 인사라는 게 사람이 괜찮다고 해서 교체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민심수습책으로 대두되면 경질할 수 있는 것이다. 윤 전 장관 주요 언론 논조대로 교체해야 한다고 본다. 손 교수 전부 다 쇄신 대상이 돼야 한다. 김 교수 포함되는 게 좋다. ▶여권 일각에서 ‘박근혜 총리론’이 나오는데. 김 전 실장 박 전 대표의 행정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 정치형 총리를 두기보다는 대통령이 정치를 해야 하고, 총리는 정치와 행정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윤 전 장관 당이 안정되는 것은 긍정적 측면이다. 그러나 이 경우 대통령과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 조심해야 한다. 손 교수 박 전 대표의 능력 때문이라면 모를까 당내 화합용 카드라면 좋지 않다. 지금 사태는 친이·친박 갈등 때문에 빚어진 게 아니다. 김 교수 지나치게 정치적인 생각이다. 두 사람이 여러 면에서 갈등관계를 갖지 않았나. 공유하고 있는 철학이 뭐냐. 대통령은 미래가 없는 사람이고 박 전 대표는 미래가 있는 사람이다. 당연히 갈등이 있을 것이다. 효율성 있겠나.DJP가 성공했나. 내각도 친이, 친박으로 나뉠 것이다. 둘다 죽는다. 행정에 몰입해야지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려 해선 안된다. ▶기획재정부 장관을 포함한 경제팀 쇄신 필요성도 제기되는데. 김 전 실장 갈아야 한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소영 내각으로 지목됐다. 아무리 세계 경제환경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민생을 놓쳤다. 경제팀을 안 건드리면 민심이 인적쇄신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윤 전 장관 강만수 장관의 환율 대처에 문제가 있었다. 국민총생산(GNP) 성장에는 기여했을지 몰라도 물가상승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손 교수 환율 등 현 경제팀이 한 게 하나도 없다. 기본적 경제 밑그림도 없다. 문제가 많다. 김 교수 국정기획수석과 장관, 경제수석 등의 역할 분담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모르겠다. 강만수 장관 이름만 들린다. 전체의 흐름이 안 보인다. ●“대통령 친형은 직언하는 역할해야” ▶쇄신 대상이 쇄신 주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는데, 대통령은 이 시점에서 누구와 인적쇄신을 논의해야 하나. 윤 전 장관 종교지도자, 사회지도자 등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수렴하면 된다. 손 교수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싫어한다고 하는데, 국회가 국민 대표기관이니 그 의견을 듣고 국민 의견도 당당하게 들어야 한다. 김 교수 특정인이 인사를 주무를 게 아니라 미국처럼 국세청, 국정원 등에서 경쟁적으로 검증해 대통령에게 직보하게 해야 한다. ▶인적쇄신과 별개로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월권 논란도 있는데, 그의 역할과 처신은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김 전 실장 내가 그의 입장이면 국회의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이 신중을 기해도 말이 난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나라를 위해 가만히 있었으면 한다. 윤 전 장관 그 자리가 딱 오해받기 좋은 자리다. 한번 그렇다고 인식되면 아무리 본인이 오해라고 해도 소용없다. 김현철씨 비리 의혹이 불거졌을 때 김영삼 대통령이 내게 납득할 수 없다고 하길래 “그게 진실이 아닐지라도, 국민이 믿고 있는 게 진실이라고 전제하고 수습책을 내야 한다.”고 진언했다. 박 전 수석 노무현 대통령은 아들, 딸을 미국으로 보냈었다. 왜 그랬을까. 손 교수 정치 원로, 대통령 친형으로서 대통령의 잘못에 쓴소리 하는 역할을 해야지 자기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안 좋다. 김 교수 이 전 부의장의 역할은 철저히 친이와 친박의 교량으로 가야 한다. 이종락 김상연 김미경 홍희경 김지훈기자 carlos@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5) 병자호란이 일어나다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75) 병자호란이 일어나다 Ⅱ

    1636년 12월10일 압록강을 건넜다. 이렇다 할 저항이 없었다. 그들은 곽산(郭山)과 정주(定州)에 사실상 무혈 입성했다. 홍타이지는 투항해 온 곽산과 정주의 군민들을 해치지 말라고 유시하는 한편, 그들의 머리를 깎아 치발(髮)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버일러 두도(杜度)에게 정예병을 뽑아 철산(鐵山)과 가도, 운종도(雲從島) 일대를 공략하라고 지시했다.15년 동안 목에 걸린 가시처럼 청을 배후에서 위협했던 가도의 동강진(東江鎭)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동요하는 조선 조정 청군이 이미 안주를 지났다는 사실을 알리는 김자점의 장계가 조정에 들어온 것은 12월13일이었다. 인조는 대신들을 불러모았다. 영의정 김류는 경기 일대의 군사를 빨리 불러모아 어가(御駕)를 호위하여 강화도로 들어가자고 촉구했다. 하지만 인조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청군이 깊이 들어올 리가 없다며 좀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김류가 다시 재촉하자, 인조는 신하들 가운데 늙고 병든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내라고 지시했다. 청군의 철기(鐵騎)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인조의 판단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무슨 근거로 적이 깊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우선 청군의 침입 상황을 신속히 보고하지 않은 도원수 김자점의 책임이 컸다. 또 청군 침입 직전, 격렬하고 지루하게 이어졌던 척화·주화 논쟁을 거치면서 인조의 판단력이 흐려졌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튿날 청군 철기가 이미 개성을 지났다는 보고가 다시 날아들었다. 다급해진 인조는 원임 대신 윤방(尹昉)과 승지 한흥일(韓興一)을 시켜 종묘에 모셔진 역대 선왕들의 신주(神主)를 수습하고, 빈궁(嬪宮)과 왕자들을 호위하여 강화도로 들어가게 했다. 한성판윤 김경징(金慶徵)을 검찰사(檢察使)로 삼아 강화도의 민정과 방어 문제를 책임지게 했다. 또 이민구(李敏求)를 부검찰사로 삼아 강화도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선박의 관리와 왕실 인척들의 배행(陪行)을 맡도록 조처했다. 인조가 강화도로 들어가려 했던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워지고 있던 무렵이었다. 인조 일행이 숭례문(崇禮門)에 도착했을 때, 청군이 이미 양철평(良鐵坪)까지 왔다는 보고가 날아들었다. 양철평은 지금의 은평구 녹번동 부근이다. 인조 일행이 당황하고 있을 때 마부대(馬夫臺)가 이끄는 청군 선봉은 이미 홍제원(弘濟院)을 지나고 있었다. 인조는 숭례문 문루로 올라가고 훈련대장 신경진(申 景 )을 시켜 모화관(慕華館)으로 나아가 적을 막으라고 지시했다. 청군이 코앞에 들이닥치자 도성은 그야말로 공황 상태로 빠져 들었다. 인조 이하 신료들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는 와중에 피난하려는 백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최명길의 용기 인조는 결국 강화도로 들어가지 못했다. 청군 선봉이 시시각각 도성을 향해 옥죄어 오고 있는 데다 강화도로 이어지는 뱃길도 이미 차단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광해군 시절부터 유사시의 피난지로 점찍어 준비해 왔던 강화도였다. 상당한 양의 식량과 화약도 비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조는 정작 가장 절실했던 순간, 강화도로 들어가지 못했다. 허망한 일이었다. 당시 강화도까지 가려면 대략 이틀 정도가 걸렸다. 인조가 김자점의 장계를 받자마자 강화도행을 시도했으면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면 전쟁의 양상은 또 달라졌을 것이다. 청은 병자호란을 도발하기 전부터 조선을 깊이 연구했다. 그들은 유사시 조선 조정이 강화도로 들어가려 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모문룡(毛文龍)이 바로 자신들의 코앞에서 약을 올리고 있었음에도, 수군과 전함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굴렀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정묘호란 당시에도 비슷한 체험을 했다. 인조가 강화도로 들어가는 바람에 맥이 빠져 버렸다. 이번에는 달랐다. 아예 인조가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을 막아버렸던 것이다. 길이 막혔다는 소식에 인조와 조정 신료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허둥댔다. 바로 그때 최명길이 나섰다. 자신이 청군 진영으로 나아가 담판을 벌이겠으니 그 틈을 타서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라고 건의했다. 인조는 최명길에게 강화(講和)를 청하면서 시간을 벌어 보라고 지시했다. 절박한 위기의 순간, 인조는 다시 주화론 쪽으로 돌아섰다. 적장을 만나 시간을 벌겠다고 자청했던 최명길의 용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는 분명 전시(戰時) 상황이었다. 막 무악재를 넘어서려 하고 있던 마부대 일행에게 최명길의 출현은 ‘시간 끌기’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았다. 가자마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최명길은 적진으로 나아갔고, 그가 마부대와 담판을 벌이는 사이 인조 일행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화친으로 나라를 망친 자’라고 매도당했던 최명길이지만, 위기의 순간 신하로서 그가 보인 용기와 충성심은 참으로 대단했다. 최명길은 마부대에게 청군이 깊숙이 침입한 까닭을 물었다. 마부대는 ‘조선이 까닭 없이 맹약을 어겼으므로 새로 화약을 맺기 위해 왔다.’고 둘러댔다. 조선을 안심시키고, 자신의 배후에서 홍타이지가 대군을 이끌고 내려오고 있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포석인지도 몰랐다. 한편 인조가 도성을 빠져나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처연했다. 도성을 버리고 피난하는 것이 이괄의 난, 정묘호란의 뒤를 이어 벌써 세 번째였다. 구리재(銅峴)를 넘어 수구문(水口門)으로 이어지는 파천 길에는 어가 행렬과 백성들의 피난 행렬이 서로 뒤엉켰다. 인조를 호위하던 군사들부터 갈팡질팡하여 대오가 흩어졌다. 혼란의 와중에 가족과 떨어져버린 백성들의 통곡 소리가 넘쳐났다. 빨리 적을 피해야만 하는 황망한 상황에서 말이 제대로 준비될 리 없었다. 신료들 가운데는 말이 없어서 도보로 수행하는 자들이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기온은 더 떨어지고 남한산성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강화도로 가자는 논의가 다시 등장하다 인조 일행은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남한산성에 도착했다. 산성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논란이 벌어졌다. 영의정 김류는 인조에게 강화도로 가자고 다시 강청했다. 홍서봉(洪瑞鳳)과 이성구(李聖求)도 김류의 의견에 동조했고, 이홍주(李弘胄) 등은 위험하다고 반대했다. 김류는 강화도로 가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산성은 고립되어 양식과 말먹이가 부족하다. 강화도는 우리에게는 편리한 곳이나 저들에게는 침범하기 어려운 곳이다. 또 청의 본래 의도는 명을 치는 데 있으니 우리를 상대로 지구전(持久戰)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강화도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김류는 청군이 공유덕(孔有德) 등의 귀순을 통해 수군과 함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청군이 함선을 갖고 있고, 수군을 지휘했던 경험이 있던 공유덕 등이 이 전쟁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 강화도는 더 이상 안전한 곳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조는 김류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다. 인조는 귓속말로 김류에게 어느 길로 갈 것인지를 물었다. 김류는 수행 인원을 단촐하게 줄여 과천과 금천(衿川·시흥)을 경유하면 강화도로 갈 수 있다고 했다. 대제학 이식(李植)은 일단 인천까지 가서 배를 타자고 했다. 병력과 군량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남한산성의 상황이 불안했던 것일까? 인조는 김류 등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밀실에서 파천론이 다시 논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삼사의 언관들이 격렬히 반대했다. 1636년 12월15일 새벽, 인조 일행은 남한산성을 나와 강화도로 향했다. 하지만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고 비탈진 산길은 얼어붙었다. 말들이 미끄러지면서 어가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인조는 말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길이 국왕을 알아 볼 리 없었다. 인조도 수없이 넘어지고 자빠졌다. 신료들은 놀라 어가를 다시 돌렸다. 날씨마저 철저히 인조를 외면하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김형준 정치비평] ‘국민 성공,정부 실패’의 역설

    [김형준 정치비평] ‘국민 성공,정부 실패’의 역설

    쇠고기 재협상과 국정 쇄신을 둘러싼 이명박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대규모 ‘6·10´ 촛불 집회가 막을 내렸지만 촛불은 여전히 국민의 마음속에 켜져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 전체가 사의를 표명했고,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전원이 사표를 제출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일등 공신이자 복심(腹心)으로 불렸던 정두언 의원의 ‘청와대 권력 사유화’ 발언이 상당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대통령이 과연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대통령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은 국정 철학의 초심으로 돌아가 쇠고기 재협상에 대해 용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국정 철학의 핵심은 ‘창조적 실용주의’이다. 그 기저에는 ‘긍정적 사고’와 ‘현장 중심주의’가 깔려 있다. 대통령은 4월30일 청와대에서 근로자의 날 수상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비관적, 비판적 생각을 갖고는 뜻을 이룰 수 없으며 ‘된다’는 적극적, 긍정적 사고를 가져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3월24일 국토해양부 업무 보고에서는 “‘된다’는 것보다 ‘안 된다’는 것을 더 많이 정책에 남용했다는 점을 한번 깊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은 이어 “‘이것은 안 되겠습니다’라고 하지만 상대에게는 절망적으로 들릴 수 있다.”면서 “하다가 안 되더라도 같은 이야기면 ‘검토해 봅시다’라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기업인들은 이명박 대통령 리더십의 요체를 ‘경쟁과 효율, 실적, 그리고 탁상공론보다는 현장을 중시하는 실용주의’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은 “현장 가봤어?”라는 말로 유독 현장을 중시한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현장, 이천 냉동창고 화재현장, 숭례문 화재현장, 일산 경찰서 등을 일정을 바꾸면서까지 방문했다.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긍정적 사고와 현장주의 정신이다.“재협상을 요구하면 통상마찰 등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며 불가 입장을 견지하기보다는 재협상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는 인식의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배후 세력 운운하기 전에 촛불 집회 현장에 가서 민심의 소리를 생생히 듣는다는 심정으로 아고라(광장)에서 무엇이 메아리치고 있는지 역사와 대화하는 자세로 깊이 경청해야 한다. 대통령은 민심 수습의 일환으로 내각과 청와대의 대규모 인적쇄신을 예고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선 인적쇄신 후 쇠고기 파문 해소’라는 단계적 접근으로는 성난 민심을 결코 달랠 수 없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재협상이 인적쇄신보다 우선하고 이들을 서로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재협상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 단행되는 인적쇄신은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기간 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내세운 핵심 슬로건은 ‘국민성공 시대’였다. 정부가 국민의 요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국민이 원하는 것을 성실히 수행하면 그것이 바로 국민이 성공한 것과 같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성공 시대’의 이면에는 정부의 성공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현 상황에서는 정부는 실패하고 국민은 성공하는 역설이 형성되고 있다. 정부가 쇠고기 협상에 실패하면서 국민이 촛불 집회를 통해 성공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대통령에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대통령이 오판해서 또다시 실기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촛불이 세상을 밝힐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와 함께 쇠고기 재협상과 인적쇄신의 카드를 동시에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 “문학으로 정신세계 살찌우자”

    “문학으로 정신세계 살찌우자”

    서울신문사와 김달진 문학상 운영위원회가 공동 주최하는 제19회 ‘김달진 문학상’ 시상식이 5일 오후 안암동 고려대 백주년기념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올해 수상자인 시 부문 신대철 국민대 교수와 평론 부문 김종회 경희대 교수를 비롯해 문학평론가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 최유찬 연세대 교수, 김선학 동국대 교수,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최동호 고려대 교수, 소설가 서영은·김형경씨, 정진규·박주택·이문재 시인, 친지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시상식은 노진환 서울신문 사장의 축사에 이어 수상자들에 대한 상패 및 메달 증정, 신 시인과 김 교수의 수상 소감, 축하공연, 신대철 시인의 시 ‘바이칼 키스’ 낭송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노 사장은 축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풍요로운 물질 문명을 구가하고 있지만 인간의 정신세계를 살찌우는 문학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월하 김달진 선생은 인간이 구현해야 할 정신주의 영역을 일관되게 추구한 이 시대의 사표가 될 만한 분”이라며 김달진 선생의 업적과 문학혼을 기렸다. 시 부문 수상자인 신 시인은 “직관이나 관조, 혹은 무연한 자기 응시를 통해 구도적인 은자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김달진 시인의 시 세계에 합류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평론 부문 수상자인 김 교수는 “제 글의 성과라기보다는 앞으로 더많은 글을 쓰라는 훈도로 받아들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학술플러스] ‘민주주의의 현재와’ 토론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6월 민주항쟁 21주년을 맞아 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경제사회적 환경 변화에 직면한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점검하는 학술토론회(주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한가’)를 개최한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경제 양극화와 민주주의’란 제목으로, 이종오 명지대 교수가 ‘선진적 사회정책의 미래를 위하여’란 제목으로 발제한다.
  • [Seoul In] 기후변화 대응 환경포럼 ‘성황’

    송파구(구청장 김영순) 4일 구청 3층 대회의실에서 구청 직원, 서울환경연합 CO3/8위원회 등이 참가한 가운데 ‘건물 부문 기후변화대응 방안’을 주제로 제5회 송파환경포럼을 가졌다. 전의찬 세종대 교수의 진행으로 열린 포럼에는 이명주 명지대 건축학과 교수와 안진한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서운종 서울환경연합 위원 등이 발제자로 나서 에너지절약형 건축 설계 및 확대방안, 건물과 가정에서 에너지 절약방안, 시민참여행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환경과 410-3370.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4) 병자호란이 시작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74) 병자호란이 시작되다(Ⅰ)

    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까지 조정에서는 청과의 관계를 복원할지, 그것과 관련하여 사신을 보낼지를 놓고 격심한 논란이 빚어졌다. 척화파는 명분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절교가 불가피하다고 했고, 주화파는 이렇다 할 준비 없이 전쟁을 벌이는 것의 위험성을 들어 끝까지 청을 기미(羈)해야 한다고 맞섰다. 사람들은 대체로 척화파의 논의가 높고 깨끗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높고 깨끗한 논의’만으로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갈팡질팡하는 사이 전쟁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준비 없이 갈림길에 서다 당시 ‘명분’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던 조선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인물은 명 감군 황손무(黃孫茂)였다. 그가 귀국 길에 보낸 서한이 10월24일 조정에 도착했다. 그는 청천강과 압록강, 그리고 평안도의 험준한 지형은 하늘이 준 것이니 병사들을 조련하고 화약과 총포 등을 제대로 갖추면 적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 신료들이 현실을 모른다고 야유했다.‘경학(經學)을 연구하는 것은 장차 이용(利用)하기 위한 것인데 나는 귀국의 학사와 대부들이 읽는 것이 무슨 책이며 경제(經濟)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소. 뜻도 모르고 웅얼거리고 의관(衣冠)이나 갖추고 영화를 누리고 있으니 국도(國都)를 건설하고 군현(郡縣)을 구획하며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 세금을 경리하는 것은 과연 누가 담당한단 말이오?’ 황손무의 비판은 신랄했고 진단은 냉정했다.‘귀국의 인심과 군비(軍備)를 볼 때, 저 강한 도적들을 감당하기란 결단코 어렵습니다. 일시적인 장유(奬諭)에 이끌려 그들과의 화친을 끊지 마십시오.’ 조선을 찬양하고 청과의 싸움을 독려하는 내용을 담은 황제의 유시문을 들고 왔던 그였다. 조선을 다독여 청과 싸움을 붙이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지만, 황손무가 본 조선은 전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오히려 청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말라고 충고했던 것이다. 청 역시 마지막까지 조선의 본심을 떠보려고 시도했다. 역관 박인범(朴仁範) 등이 들어갔을 때, 용골대는 새로운 제안을 내밀었다. 자신들에게 협력하여 명을 공격하는 데 동참하고, 화친을 배척한 신하를 넘겨주고 왕자를 볼모로 보내라는 요구였다. 박인범 등은 반발했다. 그러자 용골대 등은 왕자와 척화신만 보내주면 청군이 비록 압록강에 이르더라도 침략을 당장 중지하고 두 나라가 혼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다시 제의했다. 박인범 등이 ‘예의의 나라로서 차마 들을 수 없고, 또 전달할 수 없는 말’이라고 거듭 반발하자 용골대 등은 돌아갔다. 좀처럼 좁히기 어려운 서로의 입장 차이를 다시 확인했던 것이다. ●홍타이지, 침략 결심을 하늘에 고하다 1636년 11월25일 홍타이지는 신료들을 이끌고 환구에서 제사를 지냈다. 황천(皇天)과 후토(后土)를 향해 자신이 조선 정벌에 나서게 된 까닭을 고하는 자리였다. 홍타이지는 축문을 통해 조선이 ‘저지른’ 잘못들을 열거했다.1619년 명을 도와 자신들을 공격하는 데 동참한 것,1621년 이후 자신들이 요동을 차지했을 때 도망하는 한인들을 받아들여 명에 넘긴 것, 정묘년에 맹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누차 그것을 어긴 것, 후금으로 귀순하는 공유덕과 경중명 일행을 공격했던 것, 명에는 병선(兵船)을 제공했으면서도 그것을 빌려 달라는 자신들의 요구는 거부한 것, 인조가 평안감사 홍명구(洪命耉)에게 유시문을 보내 자신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운운 한 것 등이었다. 조선에 대해 품었던 불만이 모두 나열되었다.‘청의 힘과 역량이 명 못지않게 커졌는데 조선은 명만 편들고 자신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만의 요점이었다. 공유덕 등의 귀순을 저지하려 시도하고, 명에만 병선을 제공한 것에 대한 불만이 특히 도드라져 보였다. 홍타이지는 곧이어 누르하치의 신주를 모신 태묘(太廟)에도 나아가 자신의 결심을 고했다. 홍타이지는 11월29일 여러 장수들을 모아놓고 유시문을 내렸다. 조선을 정벌해야 하는 까닭을 다시 강조했다. 위에서 언급한 ‘허물’에 더하여 조선이 청에서 보낸 국서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도 추가했다. 조선 조정이 몽골 버일러들이 내민 편지를 퇴짜놓았던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홍타이지는 평안감사 홍명구에게도 ‘유시문’을 보냈다.‘조선이 패만하고 무례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의병(義兵)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병’들에게 조선에서의 행동 지침을 하달했다.‘인명을 함부로 살상하지 말 것, 대군이 통과하는 지역의 사묘(寺廟)를 파괴하지 말 것, 저항하지 않는 자를 죽이지 말 것, 항복한 자를 죽이지 말고 치발(髮)할 것, 망명해 오는 자를 받아들여 보호할 것, 사로잡은 백성들의 가족을 서로 이산시키지 말 것, 부녀를 폭행하지 말 것’ 등이 그것이었다. 12월1일 조선 원정에 동참할 몽골 버일러들이 병력을 이끌고 심양에 집합했다. 홍타이지는 이날, 정친왕(鄭親王) 지르가랑(濟爾哈朗)에게 심양에 남아 도성을 방어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아지게(阿濟格)를 우장(牛莊)에 배치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했다. 조선을 공격하는 와중에 혹시라도 명군이 배후에서 역습해 오는 상황을 우려한 조처였다. 우장은 압록강과 발해만으로 연결되는 전략 요충이었다. 당시 청은 명이 수군을 이용하여 발해만으로 들어와 내지에 상륙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조선 침략에 나서면서도 여전히 명의 위협을 염려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2월2일 오전 홍타이지는 대군을 출발시키기에 앞서 당자(堂子)에 나아가 삼배구궤두례(三拜九頭禮)를 행했다. 당자는 까치를 신성시하는 만주족 샤머니즘 신앙의 상징물이었다. 이어 팔기의 깃발들을 도열해 놓고 주악을 울리며 다시 배천례(拜天禮)를 행했다. 홍타이지는 이어 도도(多鐸)와 마부대 등에게 병력 1300명을 따로 주었다. 그들 가운데 300명은 상인으로 변장시켰다. 그들을 신속히 서울로 진격시켜 궁궐을 포위하려는 깜냥이었다.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 홍타이지의 생각이었다. ●무너진 통신체계 조선 침략에는 만주와 몽골군뿐 아니라 명에서 귀순한 한족 출신 장졸(-漢軍)들도 대거 동참했다. 공유덕, 경중명, 상가희(尙嘉喜)를 비롯하여 석정주(石廷柱), 마광원(馬光遠) 등 한군 지휘관들이 그들을 이끌었다. 청은 조선을 공략하기 위해 만몽한(滿蒙漢)의 모든 역량을 사실상 총동원했던 것이다. 한군들은 특히 홍이포(紅夷砲), 대장군포(大將軍砲)를 비롯한 중화기의 운용과 운반을 맡았다. 12월9일 의주부윤 임경업(林慶業)은 청군이 압록강을 건너 몰려오는 상황을 인지했다.‘병자록’에 따르면 이미 12월6일부터 청군과 관련된 이상 징후를 알리는 봉화(烽火)가 여러 차례 올랐지만, 도원수 김자점(金自點)은 그 상황을 서울에 제때 알리지 않았다. 그는 적이 겨울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또 봉화가 알려질 경우, 서울에서 소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9일 적군이 이미 순안(順安)을 통과하여 안주를 향해 내달리는 상황에서야 김자점은 장계를 올렸다. 청군은 질풍같이 내달렸다. 조선은 청군의 철기(鐵騎)와 야전에서 맞서서는 승산이 없다고 여겨 주로 산성에 들어가 방어하는 전술을 구상했다. 하지만 청군은 조선군이 대비하고 있는 산성을 공격하여 시간을 허비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서울로 돌격하는 전술을 택했다. 사실 의주 부근의 백마산성도, 평양 부근의 자모산성도 서울로 이어지는 대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대로에서 적 기병을 차단하려 들지 않았던 것은 치명적이었다. 그나마 봉화마저 제때 올리지 않았고, 평안도 각지에서 올린 변보(邊報)는 청군 기마대에 의해 차단되었다. 그 같은 상황에서 인조와 조정은 강화도는커녕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시간적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다. 전쟁은 이렇게 시작부터 음울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조숭재, 佛오픈 주니어 8강 진출

    고교생 조숭재(18·마포고)가 프랑스오픈테니스 주니어 8강에 진출했다. 국제테니스연맹(ITF) 주니어 랭킹 44위의 조숭재는 3일 파리에서 벌어진 프랑스오픈테니스 주니어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9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라이언 해리슨(미국·10위)에 2-1 역전승을 거두고 8강이 겨루는 4회전에 올랐다. 첫 세트를 내주긴 했지만 0-4의 열세에서 강력한 포핸드로 내리 3게임을 따라붙어 역전의 가능성을 확인한 조숭재는 2세트에서 해리슨의 범실을 놓치지 않고 6-3으로 이겨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승기를 잡은 조숭재는 3세트에선 일방적인 경기를 펼친 끝에 단 1게임만 내주고 100여분에 걸친 접전을 마무리했다. 테니스 4개 메이저대회 가운데 유일하게 클레이코트에서 벌어지는 프랑스오픈에서 한국 선수로 주니어 8강에 오른 건 조승재가 처음. 지난 2005년 호주오픈 준우승을 차지한 김선용(21·명지대)이 16강에 오른 게 이전까지 이 대회 최고 성적이었다. 조숭재의 다음 상대는 2번 시드의 세자르 라미레스(멕시코·2위). 다소 벅찬 승부가 예상되지만 두 차례나 쟁쟁한 시드권자를 제압한 터라 다시 최고 성적을 경신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국 주니어의 역대 메이저대회 최고 성적은 전미라(1994년·윔블던 준우승)와 김선용(2005년·호주오픈 준우승)이 갖고 있다. 성인코트 여자부에서는 세계 2위 아나 이바노비치(세르비아)가 패티 슈나이더(스위스·11위)를 2-0으로 완파하고 4강에 선착, 생애 첫 메이저 정상을 향해 질주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서우철학상 윤병태 교수

    한국 철학계의 거두 고(故) 서우(曙宇) 최재희 전 서울대 교수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서우철학상운영이사회는 제20회 서우철학상 저술부문 수상자와 수상작으로 윤병태 연세대 교수의 ‘개념논리학´(2000년)과 ‘삶의 논리´(2005년)를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또 번역부문 수상자와 수상작으로는 명지대 철학과 임석진 명예교수의 ‘정신현상학 1·2´(2005년)를 선정했다.
  • [이대통령 취임 100일] 脫여의도 벌써 ‘위기’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유권자들에게 누누이 약속한 ‘탈(脫) 여의도 정치’가 취임 100일도 안돼 위기를 맞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청와대 수석 및 각료 인선과정에서부터 최근 한·미 쇠고기 협상에 이르기까지 기성 정치권과는 거의 소통이 없었다. 크고 작은 정책을 둘러싸고 당·정·청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청와대의 일방통행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나라당이 청와대의 정무기능 부재를 지적하고, 국정쇄신 필요성을 제기할 때 청와대는 이를 일축했다. 정치권의 관례도 무시되기 일쑤였다. 통합민주당 손학규 공동대표와 가진 여야 영수회담이 그랬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만날 때도 그랬다. 최소한의 사전조율도 없이 무턱대고 만났다가 번번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다 보니 ‘알맹이 없는 회동’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다. 익명을 요구한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MB가 지난해 ‘탈 여의도 정치’를 선언했을 때, 많은 국민들은 기성 정치권의 악습·부조리·부패와 단절을 선언한 것이라고 믿고 지지했다.”면서 “그러나 대통령 취임 이후 기성 정치권과는 철저하게 거리를 두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에서도 강한 반발에 직면하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 대통령의 탈 여의도 정치가 기성 정치권의 가치를 폄훼하고, 정치인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한 뒤 “중요한 것은 소통의 자세”라며 “대통령을 믿고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은 곤란하다.”고 말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부고]

    이규성(현대백화점 부사장)승진(AD WIN 대표)영준(월트디즈니코리아 차장)씨 부친상 김인숙(주한호주대사관 문화공보실장)씨 시부상 2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1일 오전 8시 (02)3010-2231전영복(국회사무처 부이사관)씨 부친상 이춘고(사업)이근덕(우리은행 용인지점 부지점장)씨 빙부상 29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31일 오전 9시 011-223-1475하영보(윈시스템즈 전무이사)영상(미국 거주)씨 모친상 윤청목(전 GPS 회장)노기태(전 국회의원)구자봉(전 해성산업 감사)신덕수(세중전자 사장)씨 빙모상 28일 여의도성모병원, 발인 31일 오전 6시 (02)3779-2193전광인(현대산업개발 부장)씨 부친상 2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1일 오전 6시30분 (02)3010-2291유주영(뱅뱅 근무)씨 모친상 은수(설곡교회 담임목사)은구(뉴스터디 중계 원장)은길(한국경제TV 부동산팀 기자)씨 조모상 29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31일 오전 9시 (02)923-4442이정환(인천국제공항운항본부 시설팀장)정일(회사원)씨 부친상 박경선(육군본부 근무)장병국(KT전남본부 홍보담당)서우상(삼성생명 차장)씨 빙부상 28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30일 오전 10시 (062)250-4409 최태철(전 서륭산업 부사장)영철(현대해업 대표)순철(화진데이크로 공장장)형철(한국일보 종합편집부 차장대우)종철(화진데이크로 팀장)씨 부친상 안소상(전 부산은행 지점장)이한수(경남 대곡중 근무)김제춘(남울산 보람병원 물리치료실장)씨 빙부상 28일 마산삼성병원, 발인 30일 오전 6시30분 (055)290-5643조승훈(수원중 교사)아미(명지대 교수)선미(숙명여대 예산기획팀장)씨 모친상 이재용(이재용치과의원 원장)유광호(콩나물닷컴 이사)씨 빙모상 28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 (02)2227-7556송태헌(전 동양그룹 부사장)씨 별세 재경(포에시스 대표)재성(크라이슬러코리아 상무)씨 부친상 29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31일 오전 9시 (02)590-2538박상후(MBC 베이징특파원)상원(LG화학 과장)씨 부친상 김한기(자영업)씨 빙부상 29일 분당 차병원, 발인 31일 오전 8시 (031)780-6167김혜영(부부산부인과 원장)씨 부친상 조영래(경북대병원장)씨 빙부상 29일 경북대병원, 발인 31일 오전 9시 (053)420-6144 구본상(호주 거주)씨 모친상 차성철(GINSTEC 감독관)박종린(동국대 역경원 역경위원)씨 빙모상 2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1일 오전 9시30분 (02)3010-2261차재용(전 동아건설 상무)씨 별세 두현(삼종화 대표)병현(진화기술공사 사장)석현(플러스서비스 고문)씨 부친상 28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31일 오전 7시 (02)590-2660김억(사업)백(철도대학 교수)씨 모친상 박노석(한전 사옥건설처장)씨 빙모상 2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1일 오전 8시 (02)3410-6912
  • DMZ 철책선 따라 들리는 생명의 노래

    DMZ 철책선 따라 들리는 생명의 노래

    2만 31일. 총부리를 겨눴던 남과 북이 휴전협정을 맺고, 동시에 한반도를 횡으로 가르는 155마일 비무장지대(DMZ) 철책을 세운 날로부터 오늘에 이른 시간이다. 반세기가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상처받고 훼손됐던 ‘죽음의 땅’은 스스로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DMZ는 이제 발길 닿는 곳마다 생명의 울림이 깃드는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비무장지대로의 여행은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고 반공을 외치는 안보관광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DMZ를 포함한 동서횡단 여행 코스가 새로운 여행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치의 현장에서 화해의 장으로, 그리고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하는 여행지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 아주 특별한 땅에서 만난 열쇠전망대 DMZ(demilitarized zone)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각각 2㎞씩 뒤로 물러서 형성된 공간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 지역. 비극과 통한의 현장이긴 하지만, 희소가치 때문에 관광상품으로서의 매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경기도 연천의 열쇠전망대를 찾았다. 몇 발짝 뒤 후방지역과 같은 산, 같은 물인데도 DMZ로 향하는 민간인통제지역의 그것들에서는 왠지 모를 무거움이 느껴진다. 영화의 한 장면인 듯, 시간을 초월한 공간처럼도 느껴진다. 화약냄새 무성했을 반세기 이전에도 산자락 곳곳마다 민들레가 무시로 피고 지고, 산새들은 아침을 노래했을 게다. ‘강한 친구’ 육군 이모 상병이 간단한 신분확인 절차를 마친 뒤 전망대로 향하는 바리케이드를 열었다. 방문객에게 단정한 웃음을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DMZ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었다. 요즘은 많이 변했다. 신분증만 있으면 어지간한 전망대는 손쉽게 출입할 수 있다. 대북방송용 확성기가 치워진 것은 이미 오래고,‘견즉필살’ 등 섬뜩한 구호 일색이던 수색대대 담장은 ‘컬러풀’한 벽화가 대신하고 있다. 강원도 철원군 평화전망대의 경우 전망대 오르는 길에 모노레일까지 깔아 뒀다. 열쇠전망대는 북녘땅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터를 잡았다.‘통일의 열쇠’가 되겠다는 의지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철책선 아래 넓게 펼쳐진 DMZ의 신록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관광객 중 일부는 통일을 바라는 마음에 민들레 씨앗을 날려보내기도 하고, 리본에 구호 등을 적어 가시 돋친 철사에 매달기도 했다. # 철책 따라 여행해 볼까 DMZ를 평화생명지대(PLZ·Peace Life Zone)로 탈바꿈시켜 관광상품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관광공사는 ‘분단과 화해’를 테마로 4개 시범코스를 제시했다. 아직 공식 상품화된 것은 아니지만, 시범코스대로 DMZ를 돌아보는 것도 훌륭한 테마여행이 될 듯하다. ‘분단의 판문점에서 화해의 개성까지’ 코스는 서울을 출발해 북한 개성과 판문점, 연천 열쇠전망대 등을 1박2일 동안 돌아본다.‘평화가 흐르는 한강 뱃길’ 코스는 서울 여의도에서 애기봉, 초치진 등 김포와 강화 지역을 돌아오는 당일 일정.‘전쟁이 만든 생태를 만나다’는 철원 평화전망대와 금강산 철교, 칠성전망대, 수달보호구역 등 철원, 화천, 양구 지역을 돌아보는 1박2일 코스다. 인제와 고성, 금강산 등을 묶은 ‘설악과 금강의 아름다운 만남’은 금강산과 통일전망대, 화진포, 외설악 등을 돌아보는 3박4일 일정으로 짜여졌다. DMZ관광주식회사는 비무장지대 전문여행사다.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www.dmztourkorea.com,(02)706-4851. 글 사진 연천·철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전방지역 주요 전망대 ● 경기도 ▲오두산통일전망대 : 임진강 하류 너머 황해도 땅이 보인다. 자유로를 타고 가다 성동리 나들목에서 빠져나간다. 당일 방문이 가능하고 신분증은 필요없다. 오전 9시∼오후 5시.(031)945-3171. ▲도라산전망대 : 임진강 자유의 다리 너머 도라산역 앞에 있다. 개성의 송악산, 김일성 동상, 북의 선전촌인 기성동, 개성시 변두리, 개성공단 등이 보인다. 임진각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가면 편리하다.30명 이상 단체만 가능하고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오전 9시20분∼오후 3시.(031)940-8347. ▲태풍전망대 : 한국전쟁 격전지로 유명한 베티고지와 노리고지가 지척이다.3번 국도를 따라 전곡을 지나 322번 지방도로로 갈아탄 뒤 백학 방면으로 진행한다. 군 초소에 신분증만 제출하면 출입할 수 있다. 오전 9시∼오후 5시.(031)839-2789. ▲열쇠전망대 : 비무장지대에서 가장 너른 들판과 마주할 수 있다. 철책에 소망 리본을 달아 놓을 수도 있다. 경원선 대광리역에서 마전리 초소를 지나 들어간다. 신분증 지참. 오전 9시∼오후 5시.(031)839-2789. ● 강원도 ▲철원 평화전망대 : 철원평야에서 북한의 평강고원, 낙타봉 등으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대가 압권이다. 인근에 백마고지 전적비, 노동당사, 월정리역 등 유적지들이 산재해 있다. 고석정에 있는 한탄강관광사업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 허가(화요일 제외)를 받아야 한다. 하루 네 번 출입.(033)450-5558. ▲승리전망대 : 휴전선 155마일의 정중앙에 자리해 있다. 금강산철도,43번 국도 결절점, 광삼평야, 아침리 마을 등이 보인다.43번 국도를 타고 김화까지 가 마현리 입구를 찾는다. 철원군청에서 운영하는 승리전망대 매표소가 있다. 방문 요령은 철원 평화전망대와 동일하다.(033)450-5900. ▲칠성전망대 : 중동부 전선 백암산 기슭에 있다. 북한 금성천 변이 조망된다. 자유 관광 불가.7사단 칠성부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청서는 관람 일주일 전 화천군청 민군협력계를 통해 낸다. 오전 10시30분∼오후 5시.(033)440-2307. ▲을지전망대 : 전망대 앞으로 스탈린 고지가 보인다. 날씨만 좋으면 금강산 비로봉·차일봉·월출봉 등도 볼 수 있다. 해발 1049m.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북쪽 능선 위에 있다. 근처에 제4땅굴이 있다. 양구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가다 453번 지방도로 갈아탄다. 통일관에 대표자 1인의 신분증과 출입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오전 9시∼오후 5시30분.(033)480-2674. ▲통일전망대 :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에 있다. 해금강 대부분 지역이 눈에 들어오는 곳.7번 국도를 타고 명호리까지 가면 된다. 통일안보공원에서 출입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오전 8시30분∼오후 6시.(033)682-0088.
  • 프로배구 대한항공 진준택 감독 선임

    프로배구 대한항공이 문용관 감독의 후임으로 진준택(59) 한중대 여자배구팀 감독을 선임했다. 진 감독은 지난 1986년부터 1998년 외환위기로 구단이 해체될 때까지 12년 동안 ‘배구 명가’ 고려증권을 이끌며 슈퍼리그에서 4번 우승시킨 명장이다. 명지대를 졸업한 진 감독은 대한항공 창단 이후 첫 ‘비 인하대 출신 감독’이 됐다.
  • 원내 교섭권 확보 보수+진보 ‘궁여지책’

    원내 교섭권 확보 보수+진보 ‘궁여지책’

    23일 전격 성사된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의 원내교섭단체 합의는 정치권에 적지않은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제3의 교섭단체가 등장하면서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양당 중심 체제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자유선진당은 지난 4·9총선에서 교섭단체 구성 요건에 2석 모자라는 18석에 그쳐 청와대의 야당 대표 초청에서 배제되는 등 비교섭단체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창조한국당은 3석을 얻었지만 이한정 당선자의 구속과 문국현 대표의 검찰수사로 위기에 처했다. 결국 이들의 연대는 원내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18대 개원을 앞둔 상황에서 여야의 역학관계에 대규모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한나라 “위장결혼” 비판 야권은 나쁘지 않다. 이들의 연대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야당 의석은 102석(통합민주당 81석 포함)이 됐다. 개헌저지선과 국회 소집권을 요구할 수 있는 100석을 넘긴 것이다. 여야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쇠고기 파동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개원에 대비한 명분쌓기 성격이 짙다. 정치컨설팅업체 포스의 이경헌 대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해 여당의 강공 드라이브에 맞서는 견제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한나라당은 부담이다.18대 초반 원만한 원구성 협상은 물론 각종 현안에 대한 합의도출 과정이 녹록지 않다. 최근 재점화된 개헌논의 또한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전체 야당과 함께 논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재섭 대표가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끼리 자기 이익을 좇아서 위장결혼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한 말에서도 불편한 심기가 녹아 있다. ●“정체성·지지세력 다르다” 장외 친박(親朴) 인사들의 복당 문제가 변수다. 한나라당이 조기·일괄복당 조치를 한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의 연대를 ‘낙동강 오리알’로 만들면서, 중량감이 커진 야권을 제압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들의 연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냉소적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창조적 진보와 정통 보수가 어색하게 만났다.‘잘못된 만남’을 예감한다.”면서 “정체성과 지지세력이 전혀 다른 두 당의 만남은 ‘당리당략’적 조합 이외에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들의 조합을 ‘정치적 기형’이라고 꼬집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당원도 몰래 지도부들이 극비리에 추진해서 연대체가 이뤄진 것만으로도 정당정치의 심각한 훼손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차제에 원내교섭단체 중심의 의회정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참여가 가능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육의전터 보존

    육의전터 보존

    서울 탑골공원 옆의 건물 신축 부지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육의전 유적이 빌딩 지하에 일종의 ‘유적 박물관’의 형태로 조성되어 보존된다. 건축주인 이영길 영동시티개발 대표와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21일 공동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은 내용의 육의전터 보존 방안을 공개했다. 두 사람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종로2가 40번지 일대에서 드러난 조선시대 상점거리인 육의전의 시전행랑 유적은 새로 지어지는 빌딩의 지하 1층에 보존되고, 윗부분은 유리로 덮어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게 된다. 또 유적이 위치할 지하 1층은 종로 일대 운종가의 역사를 설명하고, 서울의 발전과정을 시대별 지도로 보여주며, 현장의 토층도 그대로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새로 지어질 건물의 이름도 당초 예정한 ‘영동빌딩’에서 ‘역사성에 걸맞게 ‘육의전빌딩’으로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육의전 유적 아래로 지하 2층과 3층은 개발하여 임대공간과 기계시설을 둔다는 계획이어서 엄밀한 의미의 보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종로1가의 르메이에르빌딩 부지에서는 같은 유적이 나왔음에도 그대로 건물이 지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보존 결정은 종로 일대 유적 보존에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는 평가이다. 이 유적은 명지대 한국건축문화연구소가 지난해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발굴지도위원회에서 보존 결정이 내려진 데 이어 지난 1월29일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도 보존을 결정했다. 이후 이 대표가 황 소장과 상의한 결과 유적도 보존하고 건물의 신축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방안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보존 방안은 3월28일 문화재위 매장문화재분과에서 통과되었고, 지난 2일에는 문화재위 문화경관분과에서도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문화경관분과는 민간인이 자비로 전시관을 만들어 유적으로 보존하는 데 앞장서는 만큼 지하 1층의 건축이 가능하도록 유적의 높이를 80㎝가량 낮추어 보존할 수 있도록 했다. 육의전빌딩 부지는 앞으로 기존의 유적 아래로 또 다른 유적이 없는지 추가발굴이 이어지게 되며, 추가발굴이 끝나면 1년 6개월 정도의 공사기간을 거쳐 건물이 지어질 예정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명지대 농구부 감독 박상관씨

    명지대 농구부 사령탑에 박상관(39) 코치가 승진, 임명됐다. 박상관 신임 감독은 대경상고와 명지대를 거쳐 실업 삼성전자, 프로농구 삼성과 동양(오리온스의 전신)에서 뛰었다.03∼04시즌까지 현역으로 뛴 뒤 2004년 3월부터 모교인 명지대 코치를 맡아왔다.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2) 절체절명의 시간들

    [병자호란 다시 읽기] (72) 절체절명의 시간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직전, 인조는 나름대로 분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 자책하는 내용을 담은 교서를 반포하여 실책을 사과하고, 내외 신료들에게 구국의 방책 마련을 위해 협조를 당부했다. 신료들도 인조의 호소에 답하여 이런저런 개혁안과 방책들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는 노비의 수를 줄여 군역에 충당해야 한다는 등의 근본적인 개혁안도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청과의 관계에 못을 박다 1636년 5월26일, 인조는 다시 교서를 내렸다. 나름대로 자신감이 넘치고 무엇인가 해보겠다는 결의가 엿보였다.‘우리는 수천 리의 국토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 어찌 움츠리고만 있을 것인가? 지난 번 용골대를 보니 겁 많고 꾀가 없는 것이 우리보다 더하더라.’ 인조는 이어 수령들에게 안민(安民)의 정치를 펼 것과 변방의 장수들에게 군졸들을 무휼(撫恤)하라고 촉구했다. 청렴하고 능력 있는 수령과 장수들은 상을 주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사형에 처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어 내탕(內帑, 왕의 개인 금고)에서 목면 1000필을 풀어 평안도에서 장졸들을 선발하는 비용으로 쓰라고 지시했다. 평소 내수사(內需司)와 관련된 비판만 나와도 고개를 돌리던 그가 스스로 내탕을 푼 것은 이례적이었다. 6월17일 홍타이지의 국서에 답하는 글을 의주로 보냈다. 격문(檄文) 형식이었다. 정묘년에 맺은 맹약이 깨지게 된 것은 조선 탓이 아니라 청나라 탓임을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귀국은 군사강국이지만 우리는 궁벽진 곳에 위치한 농업국가일 뿐이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 귀국을 능멸하고 스스로 맹약을 깨겠는가?’라는 반문으로 시작되는 국서의 핵심은 세 가지였다. 먼저 조선이 명을 섬겨 배신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정묘 당시 합의된 약속임을 상기시켰다. 그러므로 조선이 한인들과 접촉하는 것을 문제삼는 청의 태도는 수긍할 수 없다고 했다. 조선은 이어 변방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청 영내로 몰래 들어가 산삼을 캔 것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마지막으로 차하르(察哈爾) 버일러들은 이미 망한 나라의 포로들이니 청과 똑같이 예우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조선은 ‘명나라의 동번(東藩)’으로서 강약(强弱)과 성패(成敗) 때문에 신하의 절개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마지막 내용이 흥미롭다.‘군사도, 재물도 없는 우리는 오로지 대의와 하늘만을 믿는다. 과거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말로를 보라. 자중지란이 일어나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조선을 침략했던 그의 부하들은 다 죽었다. 반면 우리와 우호를 유지한 도쿠가와씨는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 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으면서도 청의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황손무의 충고 방어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하던 7월, 가도에서 명군 부총병(副摠兵) 백등용(白登庸)이 서울로 들어왔다.7월27일 인조는 남별궁(南別宮)으로 직접 거둥하여 그를 만났다. 평소 같으면 아무리 명나라 관원이라도 부총병 급의 인물을 국왕이 숙소까지 직접 찾아가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아마 답답한 마음에서 그랬을 것이다. 침략은 예고되어 있는데 신료들의 의견은 분분하고, 대책 마련은 여의치 않았다. 백등용은 인조에게 조선이 비록 오랑캐와 절교하기로 결정했지만, 그들을 기미(羈)하는 차원에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면 노력하라고 충고했다. 조선의 사정이 딱하게 보였던 것일까? 사실 조선은 청에 대해 공식적으로 절화(絶和)를 선언했지만 일각에서는 다시 화친을 도모하는 것에 미련이 없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실마리를 과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것인가? 8월27일 주강(晝講)이 끝난 직후, 지경연(知經筵) 최명길이 입을 열었다.“병법에는 권모술수가 없을 수 없습니다. 추신사(秋信使)는 보내지 않더라도 우선 역관을 들여보내 청 내부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단 역관이라도 보내 대화 재개의 실마리를 풀어보자는 제안이었다. 시독관(侍讀官) 조빈이 당장 제동을 걸었다. 그는 ‘정묘호란을 겪은 뒤 자강(自强)하지 못한 것은 화의(和議)가 병이 되었기 때문이며, 강화를 하더라도 어차피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니 차라리 대의를 밝히고 절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명길의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9월1일, 명의 감군(監軍) 황손무(黃孫茂)가 황제의 칙서를 받들고 입경했다. 인조는 인정전(仁政殿)에서 황제의 칙서에 절을 올렸다. 칙서는 조선이 청의 협박에 굴하지 않은 것을 찬양한 뒤, 속히 명과 협력하여 오랑캐를 토벌하라고 격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틀 뒤 황손무는 인조에게 글을 보내 이런저런 훈수와 요구를 늘어놓았다. 그는 조선이 청과 가까운 몽골 세력을 회유할 것과 간첩을 보내 청의 내부 사정을 정탐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또 조선은 수천 리나 되는 큰 나라라고 강조한 뒤, 의주의 옛 성을 다시 쌓고 가도의 동강진과 협조하는 태세를 유지하면 오랑캐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슬쩍 청에서 귀순해 오는 한인들을 조선이 받아줄 것과 명에 말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인조는 황손무에게 조선이 군사력이 약해 오랑캐를 막기 어려우니 ‘부모의 나라’에서 구원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황손무는 조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선이 지독한 숭문주의(崇文主義)에 빠져 무비(武備)를 갖추는 데 소홀했고, 병농(兵農)이 구별되지 않아 군사력이 약해졌다고 진단한 뒤,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데 힘쓰라고 촉구했다. ●최명길, 평안도에 지휘본부 설치를 촉구 9월5일, 최명길이 차자를 올렸다. 그는 사간원 관원들이 ‘청과 척화하되 직접 나가서 싸워 이길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인조에게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여 전쟁을 피할 계책을 마련하든지, 아니면 사간원 신료들의 주장대로 직접 나가서 싸울 계책을 마련하든지 속히 택일(擇一)하라고 촉구했다. 그렇지 않고 우물쭈물하면서 적의 침략을 맞게 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경고했다. ‘하루아침에 적의 기마병이 휘몰아오면 체찰사는 강화도로 들어갈 것이고, 원수는 황주(黃州)의 정방산성(正方山城)으로 물러날 것이니 청천강 이북의 모든 고을은 적의 수중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안주성도 온전할 수 없으니 생령(生靈)은 어육이 되고, 종사는 파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최명길의 예측이었다. 당시 의주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적의 진격 루트 가운데 방어 준비를 그나마 갖추고 있는 곳이 안주성이었다. 하지만 전쟁 지휘부가 강화도로 들어가고, 도원수가 산성으로 들어갈 경우 안주성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최명길의 생각이었다. 실제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최명길의 예언은 거의 그대로 들어맞았다. 최명길은 이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마지막 계책을 진언했다. 먼저 도체찰사와 도원수를 평안도로 보내 지휘 본부를 설치하고, 평안병사를 의주로 들여보내 장졸들에게 오로지 진격만 있을 뿐 후퇴는 없다는 결의를 보여주라고 촉구했다. 그런 다음 심양에 국서를 보내 군신의 대의를 밝히고, 추신사를 파견하지 않은 이유를 알려주고, 청 내부의 정황을 탐지하라고 건의했다. 만일 그들이 혹시라도 답장을 보내오면 그 내용을 살핀 다음 우리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자고 했다. 청이 우리의 충심을 받아주면 관계를 계속 유지하되, 그렇지 않을 경우 국경에서 결전을 벌여 승부를 내자는 주장이었다. 인조는 답하지 않았다. 전진하여 승부를 내는 것이 겁났던 것일까? 인조는 입을 다물었고, 삼사 관원들이 들고일어났다. 절체절명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김형준 정치비평] 이명박 정부에 필요한 ‘소통의 기술’

    [김형준 정치비평] 이명박 정부에 필요한 ‘소통의 기술’

    이명박 정부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협상에 대한 국민의 비난 여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박근혜 전 대표와의 신뢰 회복을 위한 실마리도 풀리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경제침체, 고유가와 고물가 등으로 경제회생을 위한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20%대로 급락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48.7%의 득표율로 1150여만표를 얻은 것을 감안하면 대선 후 다섯달만에 250만표 이상이 이탈한 것이다. 여론이 악화되고 민심이반이 가속화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꺼내 들었다. 최근에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은 “국민과 역사 앞에 교만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면서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고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아무리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더라도 소통할 내용과 자세가 잘못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지적대로 정부가 불량한 제품을 만들어 아무리 포장을 잘해서 소통하려고 해도 ‘국민은 물건이 제대로 됐나, 진짜인가’를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약해지면 그만큼 정부와 국민간의 소통은 멀어진다. 그런데, 정부의 신뢰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인은 정직, 겸손, 배려이다. 정부가 잘못한 것을 국민에게 정직하게 고백하지 않거나, 오만한 자세로 국민들을 끊임없이 꾸짖고 무시하거나, 야당과 정치적 경쟁자를 배척하면 국민은 정부를 불신하게 되고, 소통은 끊기게 된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국민과의 진솔한 소통을 통해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직성을 회복해야 한다. 대통령이 대국민 기자회견을 해서라도 왜 쇠고기 협상을 조기에 성사시켜야만 했는지, 협상에서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간과했는지 국민에게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 이를 계기로 “한·미 FTA가 체결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통령직을 걸고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겠다.”는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둘째, 민심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겸손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울신문과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지난 3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미 민심 이반의 징조가 발견되었다.‘이전에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현재는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이명박 이탈층’이 12.5%나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생각이 ‘나빠졌다.’는 비율도 34.0%로 ‘좋아졌다.’(14.9%)는 응답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핵심 지지층이 이탈하고 대통령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현상이 발생한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사전에 대처했다면 국민과의 소통 부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정책에 반대하는 야당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하는 영수회담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서의 예우를 갖추고, 야당의 기능과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1992년 미국 대선에서 경제 살리기를 화두로 집권한 클린턴 대통령도 집권 초기에 군대 동성애 허용, 미숙한 의료 개혁 추진 등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했지만, 대대적인 인사개편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더구나, 집권 6년 동안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업무시간의 70%를 야당 인사와 만나 국가 현안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결과적으로 퇴임 직전 지지도가 정권 출범 직후 지지도보다 높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도 집권 초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세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국정 쇄신책이 필요 없다.”는 편의주의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청와대와 내각을 대폭 교체해서라도 국민과의 소통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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