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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 인사이드] 까면 깔수록 신통방통한 식품포장의 과학

    [주말 인사이드] 까면 깔수록 신통방통한 식품포장의 과학

    더위가 찾아오면 주부들에겐 음식 관리하는 것도 일이다. 냉장고에 넣어놓는 것을 깜박하거나 국이나 찌개를 보르르 다시 끓여 놓지 않으면 한나절도 못 가 쉰내가 펄펄 난다. 마시다 만 우유는 말할 것도 없다. 이 대목에서 이상한 점이 있다. 마트나 가게 등에서 파는 먹거리는 잘 쉬거나 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몰래 방부제라도 듬뿍 쳐놓은 걸까. 답은 식품 포장 기술에 있다. 식품업계가 포장에 투자하는 비용은 전체 생산비의 4% 정도다. 심지어 콜라나 사이다, 우유 등의 음료 업체는 패키징에만 전체 생산비의 50% 이상을 쏟아붓는다. 맛과 선도를 유지하는 데 있어 식품 포장은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신선한 우유와 주스를 마실 수 있는 것도, 냉장육을 먹을 수 있는 것도, 3분이면 카레밥이 가능한 것도 모두 포장 기술이 발전한 덕이다. 먹는 것을 감싸던 봉지를 넘어 자신의 영역을 무섭게 넓혀 나가는 식품 포장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국내에 즉석밥이 등장한 지 딱 20년이다. 1993년 천일식품에서 내놨던 냉동 볶음밥이 국내 최초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상품이었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밥맛이 문제였다. 냉동 과정을 거치면 쌀에 있는 수분이 날아가기 때문에 밥이 푸석푸석해지기 마련인데 고객은 귀신같이 차이를 짚어냈다. 그 후 3년 뒤인 1996년 CJ제일제당의 햇반이 등장하면서 즉석밥 시장은 획기적인 전기를 맞았다. 일본의 ‘무균 포장’ 기술을 그대로 도입한 것인데 이 기술은 상온에 밥을 놔둘 수 있는 시간을 무려 6개월로 늘렸다. 밥하는 과정이나 재료도 다르지 않다. 무균 포장 기술의 포인트는 즉석밥 안에 일체의 미생물이 들어갈 수 없도록 포장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밥을 짓는 취사부터 포장재에 밥을 넣은 충진, 포장 과정까지 모두 엄격하게 무균시설 안에서만 진행한다. 밥공기 역할을 하는 보관 용기는 산소를 차단하기 위해 3층 구조로, 뚜껑 노릇을 하는 비닐은 4겹으로 만들었다. 평범한 식품 공장과는 달리 반도체 공장 수준의 클린룸 등을 갖춰야 하기에 당시 초기 설비 투자비만 100억원 이상이 들었다. 새 기술은 갓 지은 밥과의 맛 간극을 줄여 놨다. 제품 가격은 1050원(210g 소비자가격 기준). 당시 일반 음식점의 공깃밥 한 그릇 값이 1000원 선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그리 싼 가격이 아니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제품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즉석밥은 지난해 국내에서 1억 3772만 8571개가 팔렸다. 국민 한 사람당 두세개씩 먹은 셈이다. 얼리지 않고 육류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특별한 장치도 있다. ‘가스 치환 포장(MAP: Modified Atmosphere Packaging) 방식’ 이 대표이다. 명절 고급 한우 선물세트 등에는 이 포장법이 이용된다. MAP는 포장 속 공기를 모두 없애고 나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질소 등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다시 넣는 방식이다. 고기 속에서 호흡하는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시켜 진공포장보다 3일가량 더 선도를 유지해 준다. 덕분에 7일 정도는 부패를 막을 수 있다. 모든 육류는 근육 단백질인 미오글로빈이 있다. 이 단백질은 산소와 결합하면 며칠간 선홍색을 띤다.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붉은빛으로 고기의 식감을 높여 주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고기는 점점 암적색을 띠게 된다. 과학 시간에 배운 산화 현상이다. MAP 포장은 이런 산화를 막고 세균과 곰팡이의 생육도 억제한다. 제과점의 신선함과 경쟁해야 하는 제빵업계에서도 MAP 방식을 도입한다. 우리나라에선 샤니와 삼립식품 등이 발 빠르게 이 방식을 적용했다. 꿀호떡, 호빵, 백설기 등 쉬 상할 만한 제품에 이 기술을 도입했는데 일부 제품에선 포장 하나 바뀐 덕에 매출이 1.5배나 뛰었다. 맛 이상으로 향이 중요한 식품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커피인데 향을 잃으면 가치의 반을 잃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로스팅 과정을 거친 원두커피는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차츰 감소된다. 공기 중에 노출되면 원두 향이 이산화탄소와 함께 날아가 버리고, 산소와 습기를 만나면 산화되기 마련이다. 결국 볶은 원두 포장은 신선도 유지를 위해 습기나 빛, 공기를 차단하는 게 관건이다. 밸브포장, 진공포장, 질소포장 등이 주로 사용된다. 밸브포장은 커피 포장지에 밸브를 달아 내부의 기체는 외부로 나올 수 있지만 외부의 공기는 내부로 들어갈 수 없게 하는 방식이다. 스타벅스가 쓰는 ‘향 보존 팩’은 원두의 향은 보존하되 원두에서 나오는 불필요한 가스는 밖으로 배출한다. 커피 포장에서 쓰이는 질소는 과자 포장에도 쓰인다. 과자는 적고 질소만 많다는 뜻에서 최근 ‘질소 과자’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지만 과자 봉지 속 질소는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이 있다. 과자의 부서짐과 산화를 막는 일이다. 봉지에 담긴 과자는 기름에 튀긴 것이 많은데 기름은 공기를 접하면 쉽게 산화 반응을 일으킨다. 그만큼 맛과 색이 쉽게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비활성기체인 질소는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아 비교적 오랫동안 고유의 맛을 유지할 수 있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보통 과자의 유통기간은 6개월 정도인데 질소 충전을 했을 때 가장 오래 제대로 된 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면서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질소 충전이 단순히 양을 부풀려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유불급인 법. 환경부는 “소비자를 현혹할 소지가 있다”며 오는 7월부터 과자 봉지 내 빈 공간이 전체 공간의 35%면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우유처럼 상하기 쉬운 제품을 지금처럼 종이 팩에 담아 먹을 수 있는 건 1952년 스웨덴에서 개발된 테트라팩 덕이 크다. 폴리에틸렌수지와 종이, 알루미늄 코팅 등을 교대로 겹쳐 만든 테트라팩은 우유부터 주스, 두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자외선과 산소, 수증기 등의 투과를 막아 천연 음료도 7주~6개월가량 상온 보관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분야의 독점적 지위 덕에 지난해 테트라팩이 전 세계에서 번 돈은 111억 6000만 유로(약 16조 5066억원)다. 늘어난 유통기간만큼 수출입도 늘었다. 음료시장에 다국적 기업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포장기술 덕이다. 지금은 너무 흔해져 구닥다리처럼 여기지만 통조림과 알루미늄 캔도 산업혁명 이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위대한 발명품이다. 포장에는 첨단 기술도 도입된다. 일부 포장은 스스로 식품의 신선도나 상태를 나타내는 신호등 역할을 하기도 한다. 포장에 붙은 특수 표시부(인디케이터)가 김치 같은 발효 식품의 숙성도를 나타내거나 고기, 야채의 신선도를 보여주는 식이다. 선진국에선 일부가 실용화 중이다. 일례로 유럽에선 유통기간이 지나면 포장지에 붙은 바코드 표시가 자동적으로 사라지도록 한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유통기간이 지난 물건이니 사지도 팔지도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허도 투자도 연구도 부족해 매년 해외에 로열티만 무는 게 현실이다. 김재능 연세대 패키징학과 교수는 “식품을 포함한 세계 포장산업 시장은 755조원 규모지만 국내 시장은 아직 4%를 겨우 넘는 수준”이라면서 “선진국의 기술력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정부 지원과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한국인 女교수, 예일대 수학과 312년 금녀의 벽 깨다

    한국인 女교수, 예일대 수학과 312년 금녀의 벽 깨다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수학과에서 브라운대 수학과로 자리를 막 옮긴 오희(44) 교수에게 국제소포가 도착했다. 서울대 수학과 시절 지도교수였던 이인석 교수가 보낸 소포에는 오 교수의 1991년 대수학Ⅱ 중간고사 답안지가 들어 있었다. 당시 학생운동을 하느라 수업을 거의 듣지 않았던 오 교수는 답안지에 문제풀이 대신 “이 땅의 민중을 위해서 옳은 길로 가려고 합니다. 사랑스러운 제자로 기억해 주세요”라고 적었다. 이 교수는 동봉한 편지에 “오 교수가 그때 참 명문을 썼던 것 같다”면서 “한국으로 오라”고 적었다. 하지만 브라운대와 갓 계약한 처지라 스승의 부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오 교수는 “이곳에서 한국의 위상을 떨치는 것이 한국 수학계를 위하는 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같은 결정을 했던 그가 오는 6월부터 미 예일대 수학과에서 ‘종신직 교수’를 맡게 됐다. 1701년 설립된 예일대 수학과 312년 역사상 여성이 종신직 교수가 된 것은 처음이다. 29일 서울 성북구 청량리동 고등과학원에서 만난 오 교수는 “머리가 좋은 학생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겸손해했다. 그는 2008년부터 고등과학원의 펠로(겸임교수)를 맡아 1년에 2~3개월씩 한국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가 수학자가 된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는 “서울대 의대에 지원하면서 2지망으로 뭘 택할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경희대 대학원에 다니던 오빠에게 도움을 청했다”면서 “오빠 지도교수님이 ‘수학을 하면 좋겠다’고 조언해 그대로 했다”고 말했다. 뒤늦게 알게 된 일이지만, 당시 그 지도교수는 김중수 현 한국은행 총재였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학생운동으로 눈길을 돌렸다. 명절 귀향버스를 인솔했던 법대 학생회장(법무법인 태평양 상하이 오기형 대표변호사)의 언변에 반한 이유가 컸다. 학생운동을 하고, 사회과학 수업을 들으면서 그는 수학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사회과학에는 최선과 차선만 있었다”면서 “정답이 없다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수학이 내 길이라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고 설명했다.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오클라호마 주립대, 프린스턴대 등 내로라하는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그의 연구분야는 정수론이나 기하학의 문제들을 고전적인 방법이 아닌 동역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현대수학이다. 이 분야를 일컫는 ‘호모지니어스 다이내믹스’는 아직 한국어 표현도 정립되지 않았다. 그는 “학문과 집안 모두에서 롤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유학시절 결혼해 11살과 6살 두 아이를 두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도 여성 수학자는 흔치 않고, 여성을 뽑기를 꺼려 한다”면서 “이 같은 고정관념에 도전하기 위해 여성은 남성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예일대뿐 아니라 하버드(0명), 프린스턴(1명), 브라운(3명) 등 유명대 수학과에서 여성 교수는 희귀한 존재다. 공부를 잘하는 비결을 묻자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서점에 가면 공부 잘하는 법에 대한 책이 수없이 많지만, 사람들은 그걸 읽을 뿐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고 그 사람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한다”면서 “재능으로만 공부하는 사람은 분명한 한계가 있고, 가장 뛰어난 학자는 그 분야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조언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틈만 나면 전통시장 방문… 몸 낮춘 행장님

    틈만 나면 전통시장 방문… 몸 낮춘 행장님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지난 2월 이후 전통시장을 네 번 방문했다. 매월 한 번씩 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의 애로 사항을 듣고, 금융 상담을 해주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김 행장은 틈만 나면 “2013년을 전통시장 살리기 원년으로 삼겠다”고 말한다. 시중은행들이 너나없이 전통시장 활성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과거처럼 명절 일회성 방문의 수준이 아니라 상인들에게 꾸준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약속하고 있다. 전통시장에 대한 영업 활동 강화를 통해 서민경제를 살리고 사회공헌에 힘쓴다는 긍정적 이미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시장 상인들은 “일과성 행사보다는 높은 은행 문턱을 낮춰주는 게 우선”이라며 실질적인 지원책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전국 37개 전통시장을 영업점과 연계해 금리와 수수료를 우대하는 지원 방안을 내놨다. 시장 상인이나 종사자에게 신용대출은 1.0% 포인트, 담보대출은 0.5% 포인트의 금리를 깎아주고 적금을 들 때는 0.2% 포인트 우대한다. 자동화기기(CD/ATM) 수수료도 면제해 준다. 지난 20일부터는 이동식 점포를 선보였다. 시장 상인들이 가게를 비울 수 없어 은행을 찾지 못한다는 점을 듣고 도입한 서비스다. 이성곤 하나은행 서민금융부 팀장은 “은행의 사회적 책임 경영 실천 방안의 하나로 전통시장 활성화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올해 ‘중소기업·소상공인 참사랑 금융지원 20대 추진과제’를 선정했다. 차기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이순우 행장은 앞서 올 초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을 찾아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지원책을 올해 최대 화두로 삼겠다”고 말했다. 전통시장 점포나 골목상권에서 나들가게를 운영하는 사업자에게 총 1000억원을 저리로 대출해 줄 계획이다. 신호원 우리은행 중소기업지원센터 팀장은 “관련기관과 협의를 거쳐 상반기 중에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은행은 부산상인연합회 소속 105개 시장에서 일하는 상인들에게 싼 이자로 운영자금을 지원한다. 또한 가게를 새로 여는 상인에게는 창업자금도 대출할 계획이다. 부산신용보증재단의 보증이 필요할 경우에도 재단에 직접 방문할 필요 없이 은행 영업점에서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신한은행은 영업점 방문이 어려운 상인들을 위해 ‘개인 이동 브랜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방송된 텔레비전 광고는 ‘서민금융’이란 메시지를 담아 시장 상인들이 손을 붙잡고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은행들이 전통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올해 금융권 화두인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경제 민주화, 갑을(甲乙) 관계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몸을 낮추려는 것이다. 하지만 상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도는 은행들의 전략과는 괴리가 크다. 전통시장 상인들의 상당수가 낮은 신용도 때문에 돈 빌리는 것 자체가 차단돼 있는 상황에서 ‘못 먹는 떡’을 싸게 판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람이 많다. 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의 유명수(72) 관리실장은 “은행들이 전통시장을 방문해 많이 도와줄 것처럼 말하지만 상당수 상인들은 은행 대출 자격이 안 돼 돈을 빌리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은행들이 시늉만 할 게 아니라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해주고, 만일 그게 안 된다면 미소금융만이라도 가능하도록 대출 자격을 완화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면목동 층간소음 살인사건 국민참여재판 가보니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죄송하다’는 말로 일관했는데 두 아들과 남편을 잃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던 아랫집 여성의 내연남이 휘두른 흉기에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어머니 박모씨는 국민참여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두 아들을 보낸 뒤 19일 만에 남편까지 잃었다. 중풍으로 평소 혈압이 높고 당뇨까지 앓던 남편은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박씨는 가해자와 얼굴을 마주칠 자신이 없어 한사코 증언을 거절해 왔다. 재판부는 박씨가 증언하는 동안 가해자를 법정 밖에 대기시키기로 약속하고 박씨를 증언대에 세울 수 있었다. 박씨는 “피고를 죽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내 아들들이 소중하듯이 사람 목숨은 다 귀중하기 때문”이라며 흐느꼈다. 명절인 설을 하루 앞둔 지난 2월 9일 발생한 ‘면목동 층간소음 형제 살인사건’의 공판이 24일 서울 북부지법에서 국민참여재판 형태로 열렸다. 피고인 김모(45)씨는 내연녀 박모(49)씨의 아파트 앞 화단에서 박씨 집 위층에 사는 노부부의 아들 김씨 형제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 2월 15일 구속됐다. 이날 재판의 쟁점은 김씨가 범행을 시인한 만큼 김씨의 유죄 여부가 아닌 양형에 모아졌다. 10명의 배심원단과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 서류들과 양측 증인들의 증언 등을 면밀히 살펴 김씨의 범행에 계획성이 있었는지를 판단했다. 양측 증인들의 진술은 차이가 있었다. 내연녀 박씨는 숨진 김씨 형제가 먼저 욕설을 하고 밀치는 등 폭행을 해 우발적으로 범행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김씨 형제의 아버지는 생전 진술에서 “김씨가 처음부터 악질적으로 말하고 두 번씩이나 올라와 아들들을 데리고 나간 것으로 보아 계획적인 범행”이라고 지적했다. 배심원들은 목격자인 아파트 경비원과 인근 주민의 진술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 서류들을 객관적으로 검토했다. 검찰은 김씨가 범행에 사용한 길이 약 22㎝짜리 흉기의 날을 증거품으로 제시했다. 범행 과정에서 휘어지고 부러져 피해자의 주변에 떨어져 있던 것이다. 목격자들은 진술서에서 “김씨가 범행 직후 피해자의 얼굴을 수차례 발로 차고 나서 박씨의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말했다. 검사가 증거 자료로 피해자들의 부검 사진을 제시하자 방청석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일부 배심원들은 얼굴을 돌리고 눈길을 피하기도 했다. 재판장인 형사13부 황현찬 판사는 “배심원 여러분께 피해자의 사진을 보여 주는 것은 범인의 수법을 자세히 보고 계획적인지 우발적인지 판단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 집중해 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김씨가 심장 등 급소를 수차례 찌르는 등 범행수법이 매우 잔인하고 결혼 2개월 된 형과 3살 된 아들을 둔 동생을 살해해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죽게 하는 등 피해자 가정에 극심한 고통을 입혔다. 또 범행 뒤 도주하는 과정에서 유흥을 즐기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면서 사형을 구형했다. 재판정은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장은 “주말이나 공휴일에만 내연녀의 집에서 지냈던 피고인이 층간소음의 피해 당사자라고 볼 수 없고, 범행 수법이 잔인했으며, 피고가 운동화로 갈아 신고 흉기를 준비해 다시 피해자들을 찾아갔다는 점에서 범행에 계획성이 있었다고 판단된다”면서 “다만, 피고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랐음에도 평생 벌금형 외에 큰 전과가 없다는 점은 배심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예비배심원 1명을 제외한 9명의 배심원 중 6명은 김씨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1명은 사형, 2명은 징역 35년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층간소음이 김씨 범행의 직접적인 동기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이번 사건은 층간소음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 이후 층간소음을 둘러싼 이웃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대책들이 제안되기도 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일베, 노무현 前대통령 4주기가 명절이라고?

    일베, 노무현 前대통령 4주기가 명절이라고?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4주기를 맞아 추모 열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극우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 회원들의 언행이 또 다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패러디를 일삼았던 일베 회원들은 4주기인 이날을 ‘중력절’이라고 이름지어 “명절인데 잘 쉬고 있느냐. 집에는 내려갔느냐”는 등의 농담을 주고 받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부엉위 바위에서 투신했다는 점을 들어 ‘중력이 최고조로 올라간 날’이라는 뜻으로 지어낸 용어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이 바위나 아파트 등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는 장면을 사진이나 플래시 화면으로 제작해 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일부 일베 회원들은 ‘중력절 금기사항 4가지’라는 제목의 글을 잇달아 올렸다. 여기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는다, 시계를 차지 않는다, 부엉이를 따라가지 않는다, 두부를 외상으로 사지 않는다’는 내용을 올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전후를 희화화했다. 또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의 업적 및 언행을 모아 실패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이런 글들을 접한 네티즌들은 “장난이 도를 지나쳤다”, ”대통령이 서거한 날을 명절이라고 하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갈수록 너무한다”는 등의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월 여야·노사 격돌 예상… 통상임금 핵심쟁점은?

    6월 여야·노사 격돌 예상… 통상임금 핵심쟁점은?

    ‘통상임금’ 문제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대니얼 애커슨 GM회장이 80억 달러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통상임금 문제의 해결을 요청하자 박 대통령이 “꼭 풀어나가겠다”고 답한 게 발단이 됐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지난 15일 “통상임금에서 상여금을 제외하는 것이 좋겠다”는 발언으로 논란에 불을 지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법원의 결정을 대통령과 주무 장관이 뒤집는다며 즉각 반발했고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도 탄핵감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현재 통상임금 관련 소송은 한국GM과 현대·기아차, 대우조선해양, 한국전력의 발전 자회사 등 초과근로가 많은 기업을 중심으로 대법원에 11건, 전국 법원에 100여건이 계류 중이다. 통상임금은 퇴직금부터 휴일수당이나 야간·연장 수당 등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따라서 통상임금이 올라가면 각종 수당이 늘어나기 때문에 노사가 첨예한 견해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또 지금 진행 중인 소송 말고도 퇴직한 직원들의 소급적용 소송도 줄을 이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재계는 통상임금 적용 범위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문제의 핵심은 정기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다. 정부의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보면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 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금액, 일급 금액, 주급 금액, 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을 말한다고 돼 있다. 이 중 ‘정기적이고 일률적’이란 표현의 해석을 두고 정부(고용노동부) 지침과 법원 판례가 대립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소정근로 또는 법정근로시간에 대해 근로자에게 지급하기로 정해진 기본급 임금과 정기적·일률적으로 임금산정기간(한 달 주기)에 지급하기로 정해진 고정급 임금이다. 따라서 국내 기업은 지난 30여년간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닌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는다는 고용부 지침에 따라 현 임금체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법원은 1996년부터 ‘1임금지급기를 초과하는 임금이더라도 그것이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라면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판결함으로써 행정부 해석과 거리를 뒀다. 최근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제1민사부(부장 최성배)는 경기 파주시 시설관리공단 직원 28명이 퇴직금 산정 시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일부 승소판결을 했다. 직원들은 상여금과 명절 휴가비 등이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된 고정임금인 만큼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통상임금이 늘었으니 퇴직금을 재산정해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또 한국GM은 2002년 연봉제 도입 이후 통상임금을 둘러싼 소송이 진행 중이며 현재 1, 2심에서 사측이 패소하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판결이 확정되면 한국GM은 8140억원을 직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이 다 비슷한 것이다. 따라서 재계는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할 뿐 아니라 임금 인상 효과로 경영상 부담이 늘 전망이다. 통상임금의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각종 수당까지 포함해 통상임금 문제를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15일 “통상임금 문제를 일본식으로 법제화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상여금만 갖고 얘기를 했지만 상여금이 아닌 각종 수당까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 수석은 “수당의 내용과 형태에 따라 어떤 것은 통상임금에 포함되고 어떤 것은 포함되지 않는지 노사정이 모두 모여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31회 교정대상 수상자] 교정 참여 인사

    [31회 교정대상 수상자] 교정 참여 인사

    │박애상│ 최양자 서울 남부구치소 교정위원 서울 사랑선교회 목사로 24년 넘게 수용자를 교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장애인의 날 다과를 마련하거나 어려운 수용자들의 영치금을 지원하는 등 각종 서적과 음식물을 지원했다. 성악과 교수를 초빙해 수용자들을 위한 음악회를 여러 차례 개최하는 등 수용자들의 심신 안정에도 이바지했다. 2009년 출소예정자 5명을 취업시키는 등 수용자들이 사회에 복귀하는 데 큰 공로를 세우기도 했다. 노인 환자들에게 신앙 봉사활동과 음식물, 기증품을 지원하는 등 지역사회 발전에도 힘쓰고 있다. │박애상│ 황숙 대구교도소 교정위원 에스더선교회 회장으로 13년 동안 교정위원 활동을 하면서 특히 수용자들의 재기를 뒷받침하는 데 힘써 왔다. 검정고시에 응시하는 수용자들을 위해 도시락을 지원하기도 했다. 대구교도소 내 형편이 어려운 수용자들의 영치금을 지원하거나 겨울 내의를 선물하는 등 각종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가족이 없는 경비교도대원과 자매결연을 하는 등 교정행정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2005년부터 지방자치단체와 종교단체 등과 연계해 선교활동 및 청소년교육 등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자비상│ 최숙희 서울구치소 교정위원 29년 동안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공연을 통해 수용자들을 치유하는 데 힘써 왔다. 1990년부터 23회에 걸쳐 교화공연을 해 문화적 소외계층인 수용자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선사했다. 노래를 가르치거나 불교 교리를 지도해 수용자들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불우 수용자들에게도 관심을 둬 교화도서나 내의 등을 매년 지원하고 있다. 명절이면 수용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체육대회를 열어 고향에 가지 못하는 이들을 달래기도 했다. │자비상│ 송원진 경북 북부 제1교도소 교정위원 대한불교 삼보종 총무원장으로 24년에 걸쳐 불교교리로 수용자들을 교화시켰다. 문제 수용자나 중점관리 대상자들은 집중적인 상담으로 교도소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왔다. 종교계의 명망 인사들이 교화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주선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는 음식물이나 생활필수품을 지원해 수용자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을 썼다. 한국청소년보호육성회 이사장을 겸해 청소년을 위한 장학기금 모금과 올바른 가치관 확립을 위한 교육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자애상│ 신희자 성동구치소 교정위원 대한적십자와 대한류머티즘협회의 보건 강사로 26년간 천주교 교리로 수용자를 교화하는 활동을 폈다. 1986년부터 주기적으로 교리지도를 해주고 수용자들과 상담을 통해 안정적인 수용생활을 이끌었다. 천주교 집회 때마다 음식물을 지원하고 수용자 체육대회 때도 상품을 내놓았다. 불우 수용자들에게는 영치금을 내주고 생필품을 지원했다. 성동 장애복지관의 정신지체장애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성교육과 보건교육 등으로 지역사회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자애상│ 김길순 목포교도소 교정위원 천주교회 여신도 회장으로 13년간 교정위원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미용봉사를 하는 등 여성수용자들을 위한 봉사에 힘써 왔다. 명절이나 성탄절에 음식물이나 상품을 지원하기도 하고, 불우 수용자들을 위해선 영치금을 대납해주거나 신앙 서적을 지원해줬다. 2009년 교도소 개청 100주년 행사에도 물품을 지원해 교도소 운영에 도움을 줬다. 평소에는 성모 마리아상, 텔레비전, 탁자 등을 지원했다. 청계 요양원 장애우들에게 간식을 제공하고 목욕 봉사를 펼치는 등 사회봉사에도 기여하고 있다. │공로상│ 김명달 의정부교도소 교정위원 법무부 범죄예방위원으로 약 12년 동안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용자들이 출소 후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교정위원과 취업위원을 겸임하면서 인근 업체와 손을 잡고 적극적인 취업 및 창업 지원 활동을 했다. 자신이 직접 경영하던 업체에 수용자를 채용하기도 했다. 창업을 준비하는 출소자에게는 창업비용을 지원하거나 물품을 지원해 도움을 주었다. 출소 예정자들의 신용회복이나 말소된 주민등록을 회복하기 위해 힘쓰기도 했다. 2007년부터는 매년 법무보호대상자 5쌍에 대한 합동결혼식을 지원하고 있다. │공로상│ 장희수 천안개방교도소 교정위원 신안전기공사 대표로 18년 동안 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매결연을 한 불우수용자들의 영치금을 내주거나 수용자 체육대회의 시상품 등을 지원하고 있다. 명절 땐 차례상 제수용품을 지원하고 생일을 맞은 수용자에겐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텔레비전 6대와 세탁기 10대를 기증해 수용자들의 생활 개선에 힘썼다. 수용자들의 사회 적응 훈련을 위해 교통 체험 교육용 신호제어기기를 기증하기도 했다. 천안시 신안동 주민자치위원장, 국제로터리클럽 관리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봉사상│ 홍혜랑 울산구치소 교정위원 대한민국 한울여성팔각회 이사로 약 15년간 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족 만남의 날 행사가 열릴 때마다 꾸준히 다과류를 지원해왔다. 수용자 체육대회나 교도소 내 독후감 발표대회 때에도 상품을 지원했다. 매월 한 번씩은 자매결연을 한 수용자들을 위해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경비교도대원들을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상담을 해주고 내무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부산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장학금과 생활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봉사상│ 이정수 진주교도소 교정위원 창신 자동차학원 공동대표로 약 17년간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용자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체육대회, 교화공연 때마다 시상품을 지원해왔다. 도서도 500권 이상 기부해 수용자들이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수용자들의 체력단련을 위해서 운동기구를 지원하기도 했다. 여자 수용자들에겐 음악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관련 기자재를 지원하기도 했다. 2007년부터 5년간은 진주교도소의 모범직원을 선정해 포상해왔다.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의료봉사나 김장 나누기, 경로위안잔치 등의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 건설업계 ‘구원투수’ 50년만의 아름다운 퇴장

    건설업계 ‘구원투수’ 50년만의 아름다운 퇴장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14일 퇴임했다. 2009년 9월 통합 LH 사장에 오른 지 3년 8개월, 건설업계에 몸담은 지 50년 만이다. 이 사장은 산·학·관에서 최고경영자(CEO)로 17년을 보낸 성공한 CEO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늘 험하고 고단한 자리의 CEO를 맡았지만 특유의 캐릭터로 어려운 고비를 헤쳐나가는 귀재였다. 이 사장의 캐릭터는 뚝심과 읍소(泣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대인관계로 요약된다. 국내 최고 건설사인 현대건설 CEO에 오른 것은 2003년. 30여년간 몸담았던 회사에서 영업본부 부사장을 지낸 뒤 물러났을 때다. 하지만 회사가 워크아웃으로 떨어지자 채권단과 회사는 그를 ‘구원투수’로 불렀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3년여 만에 회사를 만신창이에서 구했다. 뚝심은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휴일, 휴가도 반납하고 명절 휴가를 이용해 중동 건설현장을 다녀올 정도였다. 그렇다고 직원들을 호되게 몰아치기만 하는 CEO는 아니었다. 정도 많고 부드러웠다. 여직원들, 수십명의 출입기자들 이름까지 기억하는 CEO였다.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현대건설의 어려움과 향후 계획을 알리고 언론 브리핑을 하면서 읍소작전을 편 것은 업계에 유명한 일화다. 경기 김포 장기동에 대규모 아파트 사업을 펼칠 때 역시 언론에 읍소작전을 폈다. 결과는 대박을 터뜨리면서 자금사정이 호전됐다. 주채권은행이 빚을 천천히 갚으라고 할 정도로 경영정상화를 일궈낸 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때만 해도 그는 건설사의 성공한 CEO로만 기억했다. 하지만 그의 역량을 탐내는 사람이 많았고 이곳저곳에서 손을 잡아끌었다. 그런 연유로 그는 강원 고성 경동대, 경기 포천 경복대 총장을 맡았다. 그의 추진력은 학교 경영에서도 먹혔다. 경복대가 재학생 5000명을 유치하는 ‘5000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 교육계를 놀라게 했다. 그의 능력은 LH 초대 사장을 맡으면서는 더욱 빛이 났다.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이 사장은 ‘부채 공룡기업’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사명만 빼고 다 바꾸자’면서 조직과 사업 전반에 걸쳐 변화와 도전, 개혁 실천을 강조했다. LH의 사업구조조정은 이 사장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업성이 없는 신도시와 택지지구를 과감히 정리하는 과정에서 장관과 지역 국회의원, 지자체장들의 호통과 반발이 극에 다랐지만 그는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때로는 읍소작전도 폈다. 자리를 피하는 국회의원들을 만나기 위해 의원회관 사우나장까지 찾아갔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 사장은 공직자로서도 모범이 됐다. LH 퇴직금 5000여만원은 이날 노사통합 밑거름으로 쓰라고 기부했다. LH 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현대건설 재임시절 확보한 200억원 규모의 스톡옵션을 스스로 반납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퇴임식 직전 “원도 없고 한도 없이 일했다”고 회고한 뒤 “일정대로 LH 재무구조가 개선되게 정치권이 도와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정치인이나 정책 결정자들은 머리와 가슴, 입이 한결같아야 한다”며 오락가락하는 주택정책에 애정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통상임금訴 줄이어… 범위해석에 노사 ‘팽팽’

    통상임금訴 줄이어… 범위해석에 노사 ‘팽팽’

    통상임금의 범위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운데 향후 사법부의 판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최고 의결 기구인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명확하고 일관된 해석기준을 제시해 논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대법원 관계자는 12일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고 의견이 다양한 사안인 만큼 전원합의체에서 사건을 다룰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09년 대우자동차판매 근로자 10명이 4억 4000여만원을 돌려 달라고 제기한 소송 등 11건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전국 하급심 법원에서 진행 중인 관련 소송은 60여건으로, 파악되지 않은 소송까지 합치면 100건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임금을 뜻하는 통상임금은 현행 근로기준법상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 등의 기준이 된다. 통상임금의 범위가 확대되면 근로자가 받게 되는 각종 수당과 평균 임금이 오르기 때문에 이를 놓고 노사 간의 대립이 첨예하게 이뤄져 왔다. 대법원은 지난 20년간 통상임금의 범위를 점차 확대하는 판례를 내놨다. 1990년 서울대병원 노조가 야간·휴일근로 수당 등을 청구한 이른바 서울대병원 사건으로 통상임금의 개념은 ‘정기적·일률적으로 임금 산정기간에 지급하기로 정해진 고정급’으로 정립됐다. 1994년 대법원은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자녀가 있는 근로자에게는 조건 없이 지급하는 것이므로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며 육아수당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이후, 1996년 명절 떡값, 여름 휴가비와 함께 식비·교통보조비 등 복리후생비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매달 지급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수당은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3월 상대적으로 지급 액수가 큰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후 노동계에서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라”며 줄 소송을 내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기업에 38조원에 달하는 추가 임금을 떠안기고, 이로 인해 41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통상임금에 대한 명확한 해석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데다 해당 판결이 개별 사업장에만 효력이 미치는 탓에 혼란이 가중된다고 지적한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조차 행정해석 등을 이유로 정기 상여금을 비롯해 생활보조적·복리후생적으로 지급되는 통근수당, 차량유지비 등은 통상임금 범위에 넣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삼화고속 노조가 지난달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의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자는 취지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인천지법에 요청했지만 기각됐다. 한편 잇따르는 소송 덕분에 로펌들은 전담팀과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는 등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법무법인 광장은 지난해 곽현수 변호사와 주완 변호사를 공동팀장으로 전담팀을 꾸렸다. 전담팀에는 노동팀은 물론 송무팀과 외국팀 소속 변호사 8명이 참여하고 있다. 태평양도 지난해부터 전담팀을 꾸려 대비하고 있고, 화우는 노동조합·기업 등 소송 주체별로 3개의 소송단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전산 조작 밀어내기’ 확인땐 홍원식 회장도 수사 선상

    남양유업의 대리점 횡포·상납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2일 본사 등의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회계·전산 자료 분석을 바탕으로 조만간 회사 임직원 소환에 나서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전직 대리점주들이 다음 주 중 지점 3∼4곳을 추가 고소하기로 하면서 불공정 행위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전망이다. 추이에 따라서는 홍원식 회장 등 경영진에 대한 조사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중앙지검 형사 6부(부장 곽규택)는 남양유업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회계 자료, 전산 자료 등의 분석을 통해 남양유업 비리를 입증할 물증을 확보한 뒤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 핵심 관계자는 8일 “전산 시스템 조작, 밀어내기 강요, 리베이트 요구 등 남양유업과 관련해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낱낱이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남양유업 측이 대리점 업주들의 주문 물량을 멋대로 부풀려 기재했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검찰은 남양유업의 대리점 발주 시스템 등 전산 자료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대리점 업주들은 “6박스를 발주하면 전산 시스템을 거친 뒤 최종 발주량이 9박스로 늘어나는 등 이른바 ‘밀어내기’를 위한 시스템 조작이 횡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횡포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사전자기록변작죄에 해당, 최고 징역 5년 또는 1000만원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검찰은 남양유업이 밀어내기 물량을 반품하지 못하도록 업주들에게 마이너스 통장과 연계된 자동이체계좌(CMS)에 가입하게 하거나 사측이 통보한 신용카드를 만들게 해 물품 대금을 강제로 청구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명절 떡값이나 대리점 개설 명목으로 10만~500만원의 리베이트를 착복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리베이트를 제공하지 않을 때 대리점 계약 해지를 빌미로 협박한 의혹과 관련해 당시 상황과 발언 수준 등을 토대로 공갈 혐의가 적용되는지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남양유업의 증거인멸 여부도 살펴보고 있다. 남양유업은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지난달 19일 서울 청계천 근처 본사에서 경기 고양의 원당물류센터로 내부 보고 문건 등 관련 자료를 대량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같은 첩보를 입수, 지난 2일 원당물류센터도 전격 압수수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대리점 업주에게 폭언을 해 논란을 빚은 남양유업 전 영업사원 이모(35)씨는 지난 7일 “욕설을 한 부분이 악의적으로 편집됐다. 녹음 파일 유포자를 잡아 달라”며 서울경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경찰은 이씨의 거주지가 있는 서부서로 사건을 이첩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업무추진비로 상급기관 명절선물 ‘펑펑’

    지방공기업들이 업무추진비로 상급 감독기관의 공무원들에게 명절 선물을 돌리는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12월~올해 2월 기초자치단체 산하 16개 지방공기업을 대상으로 행동강령 이행 실태를 점검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8일 밝혔다. 조사에서 표본으로 선정된 16개 지방공기업 중 업무추진비 예산으로 상부기관 공무원 등에게 명절 선물을 제공한 곳은 단 2곳을 제외한 14곳이었다. 이 가운데 10개 기관은 영전 축하 등 명목으로 화환을 구입해 감독기관의 공무원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 행동강령’에 따르면 임직원은 이익을 목적으로 직무와 관련있는 공무원, 정치인 등에게 선물 또는 향응을 제공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권익위는 “명절 선물 관행이 이어지는 14곳의 경우 지난 설 명절 전후로 과일·건어물 세트 등 선물을 구입하는 데 올해 업무추진비로 배정된 3억 275만원 중 10%에 해당하는 3117만원을 썼다”고 지적했다. 이 금액 가운데서도 약 30%(910만원)는 감독기관 공무원 226명에게 들어갔다. 공기업 10곳에서는 감독기관의 공무원 56명에게 영전 축하 화환을 보냈다. 현금이나 마찬가지인 선불 하이패스 카드를 돌리기도 했다. 권익위는 관련자 11명에게 주의 조치를 내리고, 점검 결과를 해당 공기업에 통보해 시정을 요구했다. 황수정 기자 sjh@seoul.co.kr
  • “남양유업,떡값·대리점 개설비등 갖은 명목 돈뜯고 협박”

    “남양유업,떡값·대리점 개설비등 갖은 명목 돈뜯고 협박”

    “CJ대한통운에 계약에 따른 보증금과 운임을 달라고 소송까지 하고 있지만 아직 받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법 적용이 안 된다고, 고용노동부는 개인사업자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권익위원회는 특수화물사업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만 답하고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개인이 대기업과 맞서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두 아이를 둔 모자 가정의 가장인데 아이들에게 상처만 준 것 같아 자살까지 생각했다. 힘들고 고통스럽다.” CJ대한통운 전 여수지사 수탁원 노혜경씨는 7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재벌·대기업 불공정·횡포 피해사례 발표회’에서 이같이 말하다가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발표회는 경제민주화포럼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공동으로 연 행사였다. 행사에서는 최근 영업사원의 폭언사건과 제품 떠넘기기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남양유업뿐만 아니라 CJ대한통운, 사조그룹, 농심, GM, 롯데백화점, 크라운베이커리 등의 대리점에 대한 불합리한 요구와 편법, 탈법 행위 등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이창섭 남양유업대리점 피해자협의회 대표는 “남양유업은 명절이 되면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대리점마다 10만~30만원의 돈을 요구하고 망한 대리점이 있으면 새로운 대리점을 개설해 대리점 개설비라는 명목으로 200만~500만원을 내야 한다”면서 “판매 장려금, 육성지원비 등의 리베이트 명목으로 10~30%, 임직원 퇴직위로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영업사원의 욕설 녹취록을 공개한 대리점주 김모씨의 호소문을 대신 읽기도 했다. 김씨는 호소문에서 “2009년 리베이트 명목으로 현금 300만원, 2010년 대리점 개설비로 200만원을 현금으로 갈취해 가고, 내 여신을 도용해 본사 마음대로 다른 대리점으로 출고를 했다. 말일이 되면 500만원 이상의 밀어내기를 하고 마감을 못 하면 욕설과 협박에 시달렸다”면서 “남양유업은 개선해야 할 기업이 아니라 없어져야 할 기업”이라고 분노했다. 유제만 크라운베이커리 천안 직산점주는 크라운베이커리가 2010년 6월, 당초 전날 오후 9~10시였던 케이크와 선물류의 주문 마감 시간을 낮 12시로 일방적으로 변경해 예측 주문을 해야 했고 이로 말미암은 재고와 반품은 점주들의 손실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경제민주화포럼 대표인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재벌·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와 ‘슈퍼 갑’의 횡포로 인해 피해를 겪는 사례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우리 사회에 갑을관계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면서 “시대정신인 경제민주화는 경제적 불평등 해소라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경제를 매개로 하는 갑을 관계, 즉 인권까지 포함하는 더 큰 개념이 될 수 있도록 경제민주화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檢 ‘대리점 불법강매 의혹’ 남양유업 본사 압수수색

    檢 ‘대리점 불법강매 의혹’ 남양유업 본사 압수수색

    ‘욕설 파문’에 이어 제품 불매운동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남양유업 본사를 검찰이 압수수색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곽규택)는 지난 2일 대리점주들에게 자사 물품을 불법 강매한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 남양유업 본사 사무실과 지점 등 3곳을 압수수색했다고 6일 밝혔다. 검찰은 남양유업의 전산 거래 자료와 회계자료, 내부 보고 문건 등을 확보해 분석한 뒤 남양유업 관계자를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대리점주들로 구성된 ‘남양유업 대리점 피해자 협의회’는 지난달 “남양유업이 전산 데이터를 조작해 제품을 강매했다”며 홍원식 회장, 김웅 대표이사 등 남양유업 고위 임원 및 관계자 10여명을 검찰에 고소했다. 남양유업은 대리점에서 발주하는 물품보다 많은 양을 배송하고 대금을 청구하는 이른바 ‘밀어내기’를 위해 인터넷 발주 전산 프로그램을 임의로 조작해 물품을 강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협의회 측은 밀어내기 과정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대리점에 내려보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남양유업이 명절 때마다 ‘떡값’ 명목으로 대리점마다 현금을 걷고, 각종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요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물량을 무차별적으로 배송하는 ‘보복성 밀어내기’를 하거나 대리점 계약 해지를 언급하는 등의 발언으로 대리점주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3년 전 대리점주에게 막무가내로 “물건을 받으라”며 폭언·욕설을 하는 상황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남양유업 측은 지난 4일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해당 영업사원이 이 문제로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사태의 엄중함을 감안해 즉각 수리했다”고 밝혔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대리점주 물품 강매·폭언’ 남양유업 본사 압수수색

    ‘대리점주 물품 강매·폭언’ 남양유업 본사 압수수색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곽규택 부장검사)는 지난 3일 대리점주에게 자사 물품을 불법 강매한 의혹을 받고 있는 남양유업의 본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고 6일 밝혔다. 검찰은 서울 남대문로 남양유업 본사와 지점 사무실 등 2곳에서 전산자료와 이메일, 내부 보고서 등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앞서 대리점주 10여명으로 구성된 ‘남양유업 대리점 피해자 협의회’는 “남양유업이 전산 데이터를 조작해 제품을 강매했다”면서 지난달 검찰에 고소장을 냈다. 피해자 협의회는 남양유업이 명절마다 이른바 ‘떡값’ 명목으로 대리점마다 현금을 떼어가는가 하면 각종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요구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과 고발인 조사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남양유업 관계자를 차례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남양유업은 지난 4일 영업관리소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물량을 떠넘기면서 폭언과 욕설을 퍼붓는 내용이 담긴 통화내용이 인터넷에 공개돼 논란에 휩싸였다. 회사측은 논란이 커지자 공식 사과문을 올리고 해당 사원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맹수열기자 iseoul@seoul.co.kr
  • 부하 직원에게서 떡값 챙긴 기관장

    명절 때마다 부하 직원들에게서 ‘떡값’을 받고 친구 아들을 부정 채용한 지방자치단체 산하 기관장이 적발됐다. 국민권익위원회 부패조사점검팀은 29일 충남도 산하의 한 기관장이 부하 직원들에게서 수백만원을 상납받고 친구와 전직 간부들의 인사청탁을 들어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권익위에 따르면 이 기관장은 2011년 9월부터 올 2월까지 설과 추석, 휴가철 등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부하 직원들에게서 230만원을 받았다. 직원들은 허위로 타낸 출장비를 기관장에게 건넸다. 기관장은 또 친구로부터 주소지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아들을 채용시켜 달라는 청탁을 받고 위장전입을 도와준 뒤 직원으로 채용했다. 전직 팀장의 아들은 무기 계약직으로 채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1년 동안 직원들이 초과근무를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모두 330만원의 수당을 가로챈 사실도 드러났다. 권익위는 기관장 외에 이 기관 직원 30여명이 초과근무 내역을 허위로 올려 매년 수천만원의 예산을 부당하게 타낸 의혹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권익위는 조사 내용을 충남도에 통보, 관계자 문책과 환수 조치를 요구하고 실태를 조사할 방침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 펴낸 前국가인권위원장 안경환

    [저자와의 차 한잔]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 펴낸 前국가인권위원장 안경환

    여기 문제적 인간이 있다. 족적만 살펴보자. 대구사범학교를 다니다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독서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중국에 끌려간다. 광복군의 일원으로 해방 조국에 돌아와 교육에 매진하다 부산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이 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을 용기있게 보도해 4·19 혁명에 불을 당긴다.   대구사범 동기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나 조국의 암울한 현실에 공분, 5·16 쿠데타와 이후 조국 근대화의 밑그림을 그린다. 미국의 반대 따위는 없을 것이라며 박정희를 부추긴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방송사 사장에까지 오른다. 곧바로 주체세력의 암투에 휘말려 나락을 경험한다. 1964년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 상호 체제 인정” 등을 월간 ‘세대’에 실었다가 구속된다. 이후 40여년의 삶은 ‘함께 혁명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에 오롯이 바쳐진다.  황용주(1918-2001년) 전 문화방송 사장. 그가 평생 남긴 40여권의 일기를 유족에게서 건네받은 안경환(65) 서울대 법대 교수가 여러 인사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쓴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까치 펴냄)를 냈다. 진보진영에 속하며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안 교수이기에 의외로 비칠 여지도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책을 내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10년도 전에 일기를 입수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산 지식인이 그렇게 무덤도 없이 간 것에 대해 아련한 마음이 있었죠. 우리 문화나 정체성이 4·19 이후에야 시작됐다고 보며 일제시대는 우리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게 대세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윗세대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나 일제 말기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학병 세대들을 전체적으로 엮어서 시대사를 써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려니까 벅차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그런데 (황용주씨) 부인(이창희 여사·프랑스 거주) 나이가 90이 넘었으니 기왕 하는 거 10주기에 맞춰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제 평가를 배제하고 그 사람 목소리를, 그 분 입장에서 재현해봐야겠다 그렇게 된 거고요. 그래서 ‘인물전기’라고, ‘평(評)’ 자를 넣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의 기록들을 보니까 다행히 그 시대 분위기를 공부해야 하고, 특히 일본 관련 책들을 많이 봤죠.   일제 말기 사람들의 지적 역량이나 스케일, 능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높더라. 일본 제국의 지적 수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정하기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잘못됐다고 생각해버립니다. 후세대들은 내가 모르는 옛날 건 중요하지 않은 거고, 나쁜 거다, 은연 중에 생각하게 됐어요. 후속 세대는 더하더라고요.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그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운동가나 정치가는 그럴 수 있겠지만 지식인들이 정보나 지식을 선택적으로 취해 경박하게 판단하는 것을 보고 전 많이 불편했습니다. 요새 말로 좌든 우든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사람들이 공부를 덜하는구나, 균형 감각이 덜하구나, 우리는 완전히 체화되기 전에 들어오면 말로 다 풀어버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그렇듯 이 작업에만 매달린 건 아니고 다른 책도 준비하면서 조금씩 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쯤 낼 수 있었는데 박정희 문제가 걸려 있기에 선거전에 이슈가 되는 건 원치 않아 이번에 내게 된 것입니다.  →황용주와의 첫 만남은?  -1987년에 처음 교수가 된 뒤 찾아 뵜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느라 비었던 공백을 채우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학생들이 왜 저런 구호를 내걸까 궁금증이 있었고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랄까, 그런 차원에서 이문열도 그때쯤 다시 만났고요.  당시 이미 황 선생은 형편이 어려워 제가 ‘문예춘추’ 몇개월치 모아서 드리기도 하고 프랑스 문학 얘기도 나누며 일년에 서너 번, 명절 뒤 인사도 드리고 바둑도 두고 했습니다.  →두 분이 (경남 밀양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정치 얘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이 학생 때도 문학을 공부했고, 부산일보 시절 영화제도 만들고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제가 공유한 취향을 한 세대 앞서 가지신 분입니다. 난 내 얘기하고, 응 그러냐 그런 거죠. 황용주 하면 떠오르는 게 박정희니까,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으로나 교양인으로서의 제 이미지와 제가 만나본 많은 원로 가운데 가장 잘 맞는 분이었어요.   →역시 자료 수집하고 증언 채취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10년 동안 꾸준히 조금씩 하신 것이네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묻기도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기도 했습니다. ‘세대’지 관련해서는 많이 증언을 들었습니다. 가능하면 증언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으려 노력했고 정 안될 때는 그냥 증언만 실었지만.  인권위원장 그만 둔 뒤인 2010년, 사모님(이창희 여사) 증언 받으러 프랑스를 며칠씩 두 차례 다녀왔죠. 딸(황용주는 프랑스를 동경해 이름을 ‘란서’라 지었다)에게는 단편적으로 한 게 아니라 너 써라, 무조건 써달라고 해서 대학노트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 양반에게는 단순한 딸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이상의 표현이자 상징이었잖아요. 그런 딸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데도 프랑스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도록 한 것도 조국 근대화에 기여하라는 뜻이었을 정도였다.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정희야, 란서야’라고 외친 것도 상징성이 크다.  →10년을 매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시대 사람들의 고민과 열정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거겠지요.  -네, 크게 보면 김윤식 교수가 해온 일과 비슷합니다. 제가 진보진영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황용주는 나쁜 인간으로 평가돼 있습니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그렇지만 그 사람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만약 법률가로서 누구의 변호를 맡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의 다른 얘기를, 판사의 판단을 받기 위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책을 쓰면서 100% 공감이 안 가서 힘든 구석은 없었는지.  -예를 들어 5.16은 어쨌든 헌법학자 입장에서는 쿠데타입니다. 헌법이 그렇게 정리가 되고. 그걸 혁명이란 이름으로 내세워서, 군인이 권력을 잡아 출세를 하겠다, 사심을 채우겠다고 달려든 사람도 있었겠지만, 황용주는 적어도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한 국가를 전체적으로 개발하는 로드맵으로서 높게 생각하고 정당화시키는데 헌법학자로선, 쿠데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쿠데타의 결과로서 산업화에 기여한 역사는 현 시점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또 10월 유신(등에 눈 감거나 박정희가 죽은 뒤에) 추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두환을 찬양하고 나아가 노태우까지 그러는 건 동의할 수 없었죠.  →다투거나 한 건 아니시죠.  -그러진 않았고요. (웃음) 일제시대의 훌륭한 군인들 얘기 많이 하잖습니까? 그 때 장군들의 스케일과 지적 역량, 신화같은 얘기들.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박정희의 유업을 이어가려면 군인이 더 집권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전혀 용납할 수 없죠. 서로 시대가 다른 사람 얘기하는 거니깐.  그 때마다 바둑이나 두고, 뭐 이렇게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웃음) 저도 대학생 때 1급이었는데 나이 차도 있으니까 제가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안 그렇더라고요.  →프랑스를 동경해 딸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일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 분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얘기한 것은 극히 모순되는데.  -그건 이해가 가는 것이 한국이란 사회가 식민 지배 이후 아무것도 없었지 않습니까.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누가 먼저 썼는지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군대가 집권해서 공업화를 서두르고 남북한이 유엔 동시가입한 뒤 통일로 간다, 이런 로드맵을 만든 것은 완전히 황용주의 머릿속에서 나온 겁니다. 사회 변혁을 이끌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룹은 군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신생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그 사람은 본 거지요. 4·19 다음에 대한 기대가 많았겠죠. 당당히 4·19의 연장이란 주장을 하게 되고 당시 그런 생각에 호응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요.    황용주는 평생 ‘국민’이나 ‘시민’이라 하지 않고 ‘한반도 주민’이라 불리길 열망했다. 그렇게 평소에 증오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즈음에 그가 흥분했던 모습을 안 교수는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책을 읽으면서 1947년 마크 게인(281쪽)과 1979년 황용주(459쪽)의 경고는 지금 정확히 들어맞는데요.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전 역사를 길게 보고 낙관하는 쪽이에요. 연초에 이문열씨와 한 케이블 채널에 출연해 대담하면서 느낀 건데 결국은 진보와 보수 모두 역사의 완결성을 믿지 않잖습니까. 우리 역사가 이만큼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성공한 양상과 속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더 괜찮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무엇이냐?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옆으로 챙기고 같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전 박근혜 시대에 반감 같은 건 없어요. 개인적으로 박정희 체제에 당했느냐와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연좌제 피해를 받은 사람이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니까 안된다’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건 정치적 연좌제인 거죠. 반대로 박근혜씨는 아버지의 영광만 누리려 하지 말고 ‘그늘’도 같이 받아라고 칼럼에 적었던 것이지요.  →이병주(1921~92년) 평전을 내겠다고 했는데 마음의 빚이라도 있나.  -앞에 학병시대를 얘기한 것처럼 그를 작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평론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며칠 잠을 못 잘 정도로 큰 감명을 받았는데 지금 보면 문단에 그의 자리는 없다. 중학교 다닐 때 주필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당시 국제신문 주필이 이병주였다. 부산일보 사설과 비교하며 읽고 친구들에게 떠들곤 한 기억이 있다.  대학 때 건방지게 문단에서 대들고 한적도 있는데 다 받아주고 했다. 그런데 5·16 이후 문단이 완전 진보 쪽으로 정리돼 경상도 출신 작가는 모두 전두환과 도매금이 됐다. 또 이병주씨는 문단이나 대학에서 패거리를 이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뚝 서 있던 거인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를 정리하는 건 좌와 우가 함께 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가장 맞춤하다는 데 공감대가 맞춰져 있고 은근히 압력도 가해지곤 한다.    오는 8월 정년퇴임하는 그는 “아무 것도 안하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느라 무척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거리라면 그동안 읽은 책들을 처분하는 문제, 저자 서명이 담긴 수천 권의 책을 어떻게 처분하느냐 고민하고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황용주의 진지한 믿음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황용주의 진지한 믿음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여기 문제적 인간이 있다. 족적만 살펴보자. 대구사범학교를 다니다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독서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중국에 끌려간다. 광복군의 일원으로 해방 조국에 돌아와 교육에 매진하다 부산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이 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을 용기있게 보도해 4·19 혁명에 불을 당긴다.   대구사범 동기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나 조국의 암울한 현실에 공분, 5·16 쿠데타와 이후 조국 근대화의 밑그림을 그린다. 미국의 반대 따위는 없을 것이라며 박정희를 부추긴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방송사 사장에까지 오른다. 곧바로 주체세력의 암투에 휘말려 나락을 경험한다. 1964년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 상호 체제 인정” 등을 월간 ‘세대’에 실었다가 구속된다. 이후 40여년의 삶은 ‘함께 혁명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에 오롯이 바쳐진다.  황용주(1918-2001년) 전 문화방송 사장. 그가 평생 남긴 40여권의 일기를 유족에게서 건네받은 안경환(65) 서울대 법대 교수가 여러 인사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쓴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까치 펴냄)를 냈다. 진보진영에 속하며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안 교수이기에 의외로 비칠 여지도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책을 내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10년도 전에 일기를 입수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산 지식인이 그렇게 무덤도 없이 간 것에 대해 아련한 마음이 있었죠. 우리 문화나 정체성이 4·19 이후에야 시작됐다고 보며 일제시대는 우리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게 대세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윗세대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나 일제 말기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학병 세대들을 전체적으로 엮어서 시대사를 써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려니까 벅차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그런데 (황용주씨) 부인(이창희 여사·프랑스 거주) 나이가 90이 넘었으니 기왕 하는 거 10주기에 맞춰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제 평가를 배제하고 그 사람 목소리를, 그 분 입장에서 재현해봐야겠다 그렇게 된 거고요. 그래서 ‘인물전기’라고, ‘평(評)’ 자를 넣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의 기록들을 보니까 다행히 그 시대 분위기를 공부해야 하고, 특히 일본 관련 책들을 많이 봤죠.   일제 말기 사람들의 지적 역량이나 스케일, 능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높더라. 일본 제국의 지적 수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정하기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잘못됐다고 생각해버립니다. 후세대들은 내가 모르는 옛날 건 중요하지 않은 거고, 나쁜 거다, 은연 중에 생각하게 됐어요. 후속 세대는 더하더라고요.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그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운동가나 정치가는 그럴 수 있겠지만 지식인들이 정보나 지식을 선택적으로 취해 경박하게 판단하는 것을 보고 전 많이 불편했습니다. 요새 말로 좌든 우든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사람들이 공부를 덜하는구나, 균형 감각이 덜하구나, 우리는 완전히 체화되기 전에 들어오면 말로 다 풀어버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그렇듯 이 작업에만 매달린 건 아니고 다른 책도 준비하면서 조금씩 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쯤 낼 수 있었는데 박정희 문제가 걸려 있기에 선거전에 이슈가 되는 건 원치 않아 이번에 내게 된 것입니다.  →황용주와의 첫 만남은?  -1987년에 처음 교수가 된 뒤 찾아 뵜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느라 비었던 공백을 채우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학생들이 왜 저런 구호를 내걸까 궁금증이 있었고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랄까, 그런 차원에서 이문열도 그때쯤 다시 만났고요.  당시 이미 황 선생은 형편이 어려워 제가 ‘문예춘추’ 몇개월치 모아서 드리기도 하고 프랑스 문학 얘기도 나누며 일년에 서너 번, 명절 뒤 인사도 드리고 바둑도 두고 했습니다.  →두 분이 (경남 밀양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정치 얘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이 학생 때도 문학을 공부했고, 부산일보 시절 영화제도 만들고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제가 공유한 취향을 한 세대 앞서 가지신 분입니다. 난 내 얘기하고, 응 그러냐 그런 거죠. 황용주 하면 떠오르는 게 박정희니까,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으로나 교양인으로서의 제 이미지와 제가 만나본 많은 원로 가운데 가장 잘 맞는 분이었어요.   →역시 자료 수집하고 증언 채취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10년 동안 꾸준히 조금씩 하신 것이네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묻기도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기도 했습니다. ‘세대’지 관련해서는 많이 증언을 들었습니다. 가능하면 증언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으려 노력했고 정 안될 때는 그냥 증언만 실었지만.  인권위원장 그만 둔 뒤인 2010년, 사모님(이창희 여사) 증언 받으러 프랑스를 며칠씩 두 차례 다녀왔죠. 딸(황용주는 프랑스를 동경해 이름을 ‘란서’라 지었다)에게는 단편적으로 한 게 아니라 너 써라, 무조건 써달라고 해서 대학노트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 양반에게는 단순한 딸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이상의 표현이자 상징이었잖아요. 그런 딸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데도 프랑스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도록 한 것도 조국 근대화에 기여하라는 뜻이었을 정도였다.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정희야, 란서야’라고 외친 것도 상징성이 크다.  →10년을 매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시대 사람들의 고민과 열정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거겠지요.  -네, 크게 보면 김윤식 교수가 해온 일과 비슷합니다. 제가 진보진영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황용주는 나쁜 인간으로 평가돼 있습니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그렇지만 그 사람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만약 법률가로서 누구의 변호를 맡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의 다른 얘기를, 판사의 판단을 받기 위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책을 쓰면서 100% 공감이 안 가서 힘든 구석은 없었는지.  -예를 들어 5.16은 어쨌든 헌법학자 입장에서는 쿠데타입니다. 헌법이 그렇게 정리가 되고. 그걸 혁명이란 이름으로 내세워서, 군인이 권력을 잡아 출세를 하겠다, 사심을 채우겠다고 달려든 사람도 있었겠지만, 황용주는 적어도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한 국가를 전체적으로 개발하는 로드맵으로서 높게 생각하고 정당화시키는데 헌법학자로선, 쿠데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쿠데타의 결과로서 산업화에 기여한 역사는 현 시점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또 10월 유신(등에 눈 감거나 박정희가 죽은 뒤에) 추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두환을 찬양하고 나아가 노태우까지 그러는 건 동의할 수 없었죠.  →다투거나 한 건 아니시죠.  -그러진 않았고요. (웃음) 일제시대의 훌륭한 군인들 얘기 많이 하잖습니까? 그 때 장군들의 스케일과 지적 역량, 신화같은 얘기들.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박정희의 유업을 이어가려면 군인이 더 집권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전혀 용납할 수 없죠. 서로 시대가 다른 사람 얘기하는 거니깐.  그 때마다 바둑이나 두고, 뭐 이렇게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웃음) 저도 대학생 때 1급이었는데 나이 차도 있으니까 제가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안 그렇더라고요.  →프랑스를 동경해 딸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일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 분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얘기한 것은 극히 모순되는데.  -그건 이해가 가는 것이 한국이란 사회가 식민 지배 이후 아무것도 없었지 않습니까.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누가 먼저 썼는지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군대가 집권해서 공업화를 서두르고 남북한이 유엔 동시가입한 뒤 통일로 간다, 이런 로드맵을 만든 것은 완전히 황용주의 머릿속에서 나온 겁니다. 사회 변혁을 이끌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룹은 군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신생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그 사람은 본 거지요. 4·19 다음에 대한 기대가 많았겠죠. 당당히 4·19의 연장이란 주장을 하게 되고 당시 그런 생각에 호응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요.    황용주는 평생 ‘국민’이나 ‘시민’이라 하지 않고 ‘한반도 주민’이라 불리길 열망했다. 그렇게 평소에 증오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즈음에 그가 흥분했던 모습을 안 교수는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책을 읽으면서 1947년 마크 게인(281쪽)과 1979년 황용주(459쪽)의 경고는 지금 정확히 들어맞는데요.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전 역사를 길게 보고 낙관하는 쪽이에요. 연초에 이문열씨와 한 케이블 채널에 출연해 대담하면서 느낀 건데 결국은 진보와 보수 모두 역사의 완결성을 믿지 않잖습니까. 우리 역사가 이만큼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성공한 양상과 속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더 괜찮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무엇이냐?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옆으로 챙기고 같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전 박근혜 시대에 반감 같은 건 없어요. 개인적으로 박정희 체제에 당했느냐와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연좌제 피해를 받은 사람이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니까 안된다’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건 정치적 연좌제인 거죠. 반대로 박근혜씨는 아버지의 영광만 누리려 하지 말고 ‘그늘’도 같이 받아라고 칼럼에 적었던 것이지요.  →이병주(1921~92년) 평전을 내겠다고 했는데 마음의 빚이라도 있나.  -앞에 학병시대를 얘기한 것처럼 그를 작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평론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며칠 잠을 못 잘 정도로 큰 감명을 받았는데 지금 보면 문단에 그의 자리는 없다. 중학교 다닐 때 주필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당시 국제신문 주필이 이병주였다. 부산일보 사설과 비교하며 읽고 친구들에게 떠들곤 한 기억이 있다.  대학 때 건방지게 문단에서 대들고 한적도 있는데 다 받아주고 했다. 그런데 5·16 이후 문단이 완전 진보 쪽으로 정리돼 경상도 출신 작가는 모두 전두환과 도매금이 됐다. 또 이병주씨는 문단이나 대학에서 패거리를 이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뚝 서 있던 거인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를 정리하는 건 좌와 우가 함께 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가장 맞춤하다는 데 공감대가 맞춰져 있고 은근히 압력도 가해지곤 한다.    오는 8월 정년퇴임하는 그는 “아무 것도 안하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느라 무척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거리라면 그동안 읽은 책들을 처분하는 문제, 저자 서명이 담긴 수천 권의 책을 어떻게 처분하느냐 고민하고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北, 위협 수위 낮추고 ‘출구찾기’ 나섰나

    동해안 지역에 미사일 이동식 발사대를 배치하는 등 연일 위협 수위를 높여 왔던 북한이 최근 대남 위협 수위를 낮추고 인민군 창건 81주년(25일)도 차분한 분위기에서 맞고 있어 주목된다.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기 위한 국제사회의 대화 노력이 계속되고, 미국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 재개까지 검토하고 나서자 북한도 출구를 찾기 위해 숨 고르기에 나선 모습이다. 지난주 국방위원회 등 각종 기관을 동원해 연달아 발표한 대남·대미 비난 성명도 이번 주 들어 1건으로 줄었고, 이마저도 미국이 최근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문제 삼은 데 대한 외무성 대변인의 의례적인 입장 발표였다.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가능성까지 제기된 인민군 창건기념일 행사도 우려와 달리 조촐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열병식 등 대규모 행사를 벌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인민군 창건기념일을 하루 앞둔 24일 북한 주민 대표들이 인민군 부대를 찾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군인들에게 보내는 선물을 전달했으며, 군인들과 함께 체육·오락 경기를 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등 격려했다고 전했다. 우리의 국방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도 군 창건일을 앞두고 지난 23일 북한 주재 외국무관단 등을 초청해 연회를 여는 등 예년 수준의 사전 행사를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 15일 최대의 명절로 여기는 김일성 주석의 101회 생일도 열병식 없이 비교적 작은 규모로 치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4월 말까지 북한 각 기관의 대남·대미 압박성 성명이나 담화 발표가 간간이 있을 수 있지만 미사일 발사 등 실질적인 긴장 고조 행위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전반적인 흐름이 관망기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다음 달 7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화 국면이 열리면 북한과 미국이 각각 새로운 제안을 갖고 비공식 외교 경로인 ‘뉴욕채널’을 통해 물밑 접촉을 시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CEO칼럼] 한류 열풍과 수출 농업/김재수 aT 사장

    [CEO칼럼] 한류 열풍과 수출 농업/김재수 aT 사장

    최근 가수 싸이는 ‘강남스타일’의 말춤에 이어 ‘젠틀맨‘이라는 뮤직비디오를 발표해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스타일의 노래가 세계인의 취향에도 맞아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한류 열풍’에 불을 지핀 ‘K팝’은 무엇 때문에 전 세계 젊은이를 열광시키는가. 많은 이론이 있으나 한국인의 신바람 정서에 기인하고 있다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일부 학자는 “한류 음악은 한국 특유의 신바람 춤이 가미된 댄스뮤직이며 신바람 춤과 댄스뮤직은 주로 버스 안의 광기 어린 춤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한국인, 행락철에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즐기던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한때는 이런 행동을 우리 스스로 추하고 부끄러운 행태로 여긴 적도 있었다. 우리가 부끄럽게 여겼던 버스 안의 춤이 한류의 뿌리가 된다니 놀랍다. 한류 열풍이 부는 데는 한국 음식이 크게 한몫하고 있다.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뉴욕 시민을 상대로 한식에 대한 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2009년에 9%에서 2011년에는 41%로 높아졌다고 한다. 세계의 다양한 음식이 모여 있어 ‘식품합중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이다. 미국에서도 한식이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2005년 미국 대사관에서 농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세계 각국 외교관을 초청해 한국 음식 시식회를 열었다. 많은 참석자들이 한국 음식에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면서 조리법을 문의했다. 한국 음식의 다양성·건강성·기능성 등을 자랑했다. 미국뿐만 아니다. 필자가 최근 만난 동남아시아 싱가포르의 한 식당 주인은 한국 식당 수가 불과 2~3년 사이에 세 배나 증가했다고 했다. 한류 열풍의 기본은 한국 문화다. 한국 문화의 진수는 한국 음식이 단연 으뜸이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드라마 ‘대장금’에서 나타난 한국 문화의 특징은 음식이다. 한국 음식의 기본은 이른바 ‘약식동원’(藥食同原)이다. ‘약과 음식은 근본이 동일하다’는 것으로 음식 먹는 것이 배를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몸을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서양 의사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히포크라테스는 환자 치료의 근본이 식이요법에 있다고 하면서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음식을 중요시했다. 김치, 장, 젓갈 등 발효 음식과 최고의 건강 요리인 나물은 재료의 다양성·동물성과 식물성의 균형 면에서 놀랍다. 속 풀고 마음도 풀자는 해장국, 한민족의 깊은 맛이 담긴 설렁탕 등은 다양한 문화적 특성을 가진다. 돌상, 제사상, 혼례음식, 명절 상차림 등 다양한 격식과 법도를 중시한 상차림이나 궁중 상차림은 조화미의 극치를 이룬다. 또 한식은 기본적으로 천천히 먹는 슬로푸드다. 식품의 세계적인 트렌드인 슬로푸드의 원조가 바로 한국 음식인 것이다. 음식에 관한 한 우리 민족은 축복받은 민족이고 세계적으로 각광받게 돼 있다. 이슬람 문화권의 검은 장막도 뚫고 들어가는 것이 한류이고, 예술 중심지 파리를 달구는 것도 한류다. 이제는 한류 열풍의 깊은 정수를 깨닫고 한국 음식에 빠져드는 의미와 무게를 알아야 한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식량 부족을 걱정하고 먹을거리 안전도 우려한다. 한국 음식으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 기아와 굶주림도 극복하자. 과거 부끄러워했던 우리의 행태가 이제 새로운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 우리 음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한국에서 ‘음식 르네상스’를 일으켜 세계인의 식탁에 한식을 올리자. 한류 열풍으로 한국 식품의 수출도 크게 늘어났다. 2000년에 30억 달러였던 농식품 수출액이 2012년에는 80억 달러를 넘어섰다. 김, 음료, 라면이 지난해 각각 2억 달러를 능가하는 수출 실적을 보였다. 농식품 수출이 100억 달러를 넘어 1000억 달러를 달성하는 시대가 다가온다. 한류 열풍으로 ‘수출농업 시대’를 열어 가자.
  • “황금연휴 쏟아질 것” 기대감… 재계는 “추가부담 생기는데” 우려

    공휴일과 주말이 겹치면 평일에 하루를 대신 쉬는 ‘대체휴일제’ 도입이 눈앞에 다가왔다. 대체휴일제가 도입되면 ‘황금연휴’가 쏟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많다. 하지만 재계는 기업들의 추가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19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여야 의원 7명이 각각 대표발의한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 개정안’을 의결, 전체회의로 넘겼다. 안행위 법안소위 위원장인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휴일이 일요일에 해당되는 경우는 평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안과, 2대 명절인 설날과 추석 명절이 토요일인 경우는 목요일을, 일요일인 경우는 화요일을 휴일로 추가하는 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렇게 해서 연평균 3일이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고 덧붙였다. 대체휴일제는 박근혜 정부가 지난 2월에 발표한 140개 국정과제에 포함된 사안이다. 게다가 여야 모두 비슷한 법안을 발의하고 이견이 없어 4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부는 재계와 서비스 분야의 반론 등을 이유로 아직 입장을 확실히 정리하지 못한 상태다. 황 의원은 “정부가 전체회의가 열리는 다음 주 화요일(23일)까지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올해 어린이날(5월 5일)이 휴일인 일요일이다. 이런 경우 대체휴일제가 도입되면 월요일인 6일에 대신 쉴 수 있게 된다. 법안이 4월 임시국회를 통과하면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대체휴일제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올 하반기에는 휴일과 공휴일이 겹치는 날이 없어 본격적인 시행은 내년 이후가 된다. 외국에서도 대체휴일제를 시행하는 나라가 많다. 미국은 ‘월요일 공휴일법’을 도입해 공휴일이 주말과 겹칠 경우 월요일에 쉬도록 한다. 일본도 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치면 월요일에 쉰다. 중국은 ‘총휴일보장제’를 실시한다. 공휴일이 토·일요일과 겹치면 평일에 쉬고 징검다리 휴일이 생기면 일단 연달아 쉬되, 대신 그 다음 주말에 근무하도록 한다. 영국, 러시아, 호주도 토·일요일이 공휴일과 겹치면 평일에 쉬도록 한다. 하지만 재계는 법안 통과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소위 의결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근로자의 날을 포함한 우리나라 공휴일은 16일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호주 등 선진 6개국 평균 11일보다 많다”면서 “일부 근로자의 휴일 확대를 명분으로 기업 경영환경을 악화시키고 취약계층의 소득감소로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안행위는 어버이날(5월 8일)과 제헌절(7월 17일)을 공휴일에 추가하는 안은 채택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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