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명예교수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계절감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합동 점검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임금인상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북유럽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300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하)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하)

    ●모래 위의 욕망 ‘한강의 기적’이란 이름으로…여의도보다 컸던 밤섬 희생되다 “한강개발계획을 세워라. 첫째, 여의도에 제방을 쌓아서 가능한 한 많은 택지를 조성한다. 둘째, 여의도와 마포·영등포를 연결하는 교량을 가설한다. 셋째,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의 제방도로를 연차적으로 축조함으로써 한강 홍수를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릴 수 있도록 한다.”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 여의도 건설을 주축으로 하는 한강개발 3개년계획이라는 것에 착안한 것은 1967년 8월이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3월에 기공한 한강연안도로(강변도로)가 모습을 드러내자 재미있는 현상이 김 시장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새로 생기는 도로와 기존 제방 사이에 새로운 택지가 조성됐는데 제방을 종전보다 안으로 들여 쌓은 결과였다. 여의도를 개발하면 엄청난 택지가 생기고 그것을 판 수익금으로 그동안 구상했던 일들을 한꺼번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김현옥의 머리를 스쳤다. 같은 해 9월 서울시는 한강개발 3개년계획을 수립했다. 주무부서인 건설부와의 협의를 통해 여의도와 영등포 사이에 샛강을 두되 소양강댐이 완공되면 폐쇄해 택지를 더 조성하고, 홍수방지 차원에서 한강 본류의 폭을 1300m로 유지하는 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여의도의 총면적은 127만평에서 샛강 면적 등 40만평을 뺀 87만평으로 확정됐다. 여의도 방죽(윤중제)의 높이는 15.5m, 제방 너비는 21m이며, 제방 안에 조성되는 택지는 강바닥에서 13m 높이로 정했다. 총 둘레는 7.6㎞였다. ‘여의도의 몇 배’라는 대한민국 면적의 기준치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한강 폭을 1300m로 한다는 건설부와 서울시의 합의는 참으로 교묘했다. 여의도를 개발하되 강물의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밤섬을 없애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방을 쌓으려면 엄청난 골재가 필요한 마당에 코앞 밤섬 폭파로 골재를 얻는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당시 밤섬의 면적은 1만 7393평으로 지금의 40배 크기였다. 어마어마한 골재가 채취됐다. 밤톨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은 밤섬(栗島)에는 78가구 443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조선 초기부터 17대를 살아온 마(馬), 판(判), 석(石), 인(印), 선(宣)씨 등 5개 희성 씨의 집성촌이었다. 이들은 토지보상비 838만원과 건물보상비 702만원을 지급받고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의 대지 1000평 연립주택으로 옮겨갔다. 사람들은 이곳을 ‘밤섬 마을’이라고 불렀다. 밤섬은 고려시대 유배지였으며 주민들은 길이 18m짜리 장도릿배와 15m짜리 조깃배, 12m짜리 늘배 등을 만드는 배 목수 일을 주로 했다. ‘배 제작술을 배우려면 밤섬으로 가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여의도에 제방을 쌓고 땅을 다지느라 한때 여의도보다 더 컸던 섬이 무참히 희생됐다. 밤섬은 1968년 2월 10일 오후 3시 폭파돼 시야에서 사라졌다. 방죽을 쌓는 와중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10만평의 부지에 국회의사당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여의도 입주신청 1호였다. 종묘 앞과 남산 등지를 전전하며 터를 구하지 못한 국회가 ‘신천지’ 여의도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이호철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신문 연재를 시작한 것이 1966년이었고 1968년 서울인구는 400만명에 이르렀다. 비록 1인당 국민소득은 123달러,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8층(소공동 반도호텔), 차량대수는 2만 5000대(승용차 1만대)에 불과했지만 모든 것이 광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였다. 서울의 교통난, 주택난, 급수난을 해결할 요술방망이가 필요했다. ‘한강의 기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10일 만에 제방 축조공사가 끝났다. 기적에 가까운 초스피드 공사였다. 홍수가 오기 전 완공이 유일한 목표였고, 생태나 환경은 돌볼 틈이 없었다. 개발연대기의 원초적 불행이었다. 여의도라는 섬은 사실상의 육지가 됐다. 지금 국회가 들어앉은 양말산(羊馬山)은 높이 190m로 양이나 말을 기르던 목축장이었는데 이때 완파돼 평평해졌다. ●모래 위의 도시 차는 지상·보행은 위층… 초현대적 입체도시 꿈꾸었던 여의도 새로 탄생한 하중도시(河中都市) 여의도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 남산 국회의사당 현상설계(1959년) 당선자이며, 워커힐호텔(1962년), 세운상가(1966년), 청계고가(1967년) 계획과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 김수근이 또 등장한다. 김수근은 김종필 국무총리, 김현옥 서울시장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건설기술종합 용역업체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라는 국영기업체의 부사장을 거쳐 사장으로 재직했다. 건축사무소는 문을 닫고 ‘공간’이라는 건축잡지만 발행했다. ‘문학청년’ 김현옥은 김수근에게 초현대적이며 후세에 길이 남을 예술적 설계를 요구했다. 국회에 이어 사법부와 서울시청이 입주해 여의도를 중심으로 하는 ‘제2의 서울’을 건설한다는 포부였다. 10층 이상의 스카이라인에, 자동차는 지상으로, 보행자는 2층으로 다니는, 지하도나 육교가 없는 초현대적 입체도시를 꾸미겠다고 발표했다. ‘여의도 개발 마스터플랜을 위한 전제와 가설’(공간 1969년 4월호)과 서울시에 제출한 ‘여의도 및 한강연안 개발계획’ 등을 종합해 보면 이 계획을 완성하는 데는 무려 20년이 걸리며 107억원의 서울시 선행투자와 1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민간투자가 필요했다. 1968년 당시 서울시의 일반회계 세입은 138억원이었고, 한강개발특별회계의 세입결산액은 11억원이었다. 서울시 재정상황은 직원 봉급주기도 빠듯한 지경이었다. 한마디로 실현불가능한 장밋빛 청사진이었고 실패한 도시계획의 전형이었다. 김수근의 여의도개발계획은 일제강점기 ‘백화점 왕’ 박흥식이 해방 후 재기를 노리며 세웠던 남서울 신도시계획안과 어딘가 닮았다는 느낌을 준다. 둘 다 천재였고, ‘강남시대’를 예견한 시대를 앞선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현실이라는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됐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모래 위의 광장 ‘비상용 활주로’ 5·16 광장… 거대한 집회장소 기억 남기다 ‘밤섬의 저주’였나. 밤섬 폭파 후 2년여 흐른 1970년 4월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3명이 죽고, 39명이 다쳤다. 공교롭게도 밤섬에서 강제이주한 주민들이 사는 밤섬 마을 바로 옆에서 초대형 사고가 터졌다. ‘건설은 나의 종교’를 외치던 김현옥은 물러났다. 같은 해 10월 여의도 한가운데에 12만평 규모의 ‘텅 빈’ 대광장을 만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졌다. 여의도계획에 잡혀 있는 상업·업무지구를 동서로 나누라는 허탈한 지시였다. 여의도 입체도시 건설의 꿈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5·16광장’ 건설로 여의도 계획은 뿌리째 뒤틀렸다.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1971년 8월 서울시는 서울시청사를 1976년까지 여의도에 건립하며, 여의도 전역을 미관지구로 지정하고, 통행금지 해제지역으로 지정하며, 여의도를 통과하는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여의도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김수근보다 더 허황했지만 불가피했다. 투입 예산은 50여억원인데 수입은 국회 제공 부지 10만평을 평당 1만원에 판 10억원이 전부였다. 대법원지구로 예정된 땅 전부와 시청이 들어설 땅 절반에 시범아파트를 지어 팔기로 했다. 후임 양택식 시장을 비롯한 시 간부들이 거리로 나서서 시범아파트를 선전하는 홍보전단을 돌렸다. 분양이 쉽지 않았다. 서울시민들은 110일 만에 급조한 여의도 제방의 안전이 미덥지 못했고 모래섬 위에 사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이 찾아왔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고를 내세운 시범아파트가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민영아파트도 따라 들어섰고 택지도 덩달아 팔려나갔다. 서울시청 건설예정부지였던 지금의 산업은행 자리도 팔았다. 국회와 방송 3사, 증권거래소 입지가 결정적이었다. 서울시는 투자한 54억원을 뽑고 30억원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여의도는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도시를 포기한 대가로 빈사상태의 서울시 재정난을 회생시켰다. 이 중 10억원이 지하철 건설비로 계상됨으로써 지하철 건설의 역사가 돛을 올렸다. 후에 드러난 일이지만 박 대통령이 의도한 여의도광장 조성은 전시 비상용 활주로 용도였다. 여의도는 1916년 간이비행장이 생긴 이래 1961년 김포공항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서울의 국제관문이었다. 공군의 발상지였으며 1971년 성남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공군 K16 비행장이었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서울 침입, 울진·삼척 무장공비사건 등 안보위기가 겹치면서 여의도는 예상치 못한 운명을 맞았다. 같은 해 북악스카이웨이가 개통되고, 다음 해 서울시민 30만명이 대피할 수 있는 지하대피용 남산1, 2터널이 굴착되는 등 이때부터 일련의 남북체제 대결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1971년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 TV중계를 통해 처음 선보인 여의도와 여의도 광장의 엄청난 규모에 온 국민은 놀랐다. 이후 반공궐기대회와 대통령 유세, 취임식 등이 광장의 주요 용도였다. 1973년 닷새 동안 200만명이 모인 빌리 그레이엄목사 서울전도대회를 시작으로 국풍, 이산가족 찾기, 부처님 오신 날, 천주교 200주년 행사 등이 잇따르면서 매번 집회 참가인원 신기록을 갈아 치웠다. 텅 빈 광장은 소통의 광장이 아니라 ‘아고라포비아’(Agorafobia·광장공포증)를 유발한다는 비판도 따랐다. 1999년 조순 초대 민선 서울시장이 100억원을 들여 광장을 시민공원으로 바꿨다. 여의도와 여의도광장은 한국 현대사의 영욕이 담긴 기억저장소이다. joo@seoul.co.kr
  • 서대문구는 ‘평강공주’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을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가장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 사는 것)라고 표현했다. 서대문구는 오는 31일 오후 2시 구청 대회의실에서 ‘에우다이모니아를 꿈꾸는 평생학습도시’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한다. 행복한 삶을 뒷받침하기 위한 교육정책이 중요하다는 취지다. 실제로 구는 교육정책에서 지역공동체의 몫을 강조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이날 포럼은 평생교육 전문가와 일반 주민이 함께 학습을 통한 좋은 삶, 행복한 삶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지낸 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역공동체 평생학습운동’이라는 주제로 기조 강연을 한다. 성공회대 김민웅·상지대 최돈민 교수와 한국직업능력개발연구원 김미숙 선임연구위원, 우수학습동아리 정성순 회장이 종합토론을 벌인다. 질의응답 시간도 갖는다. 구는 행복한 초·중학교 생활을 돕는 사업도 추진한다. 학생에게 교과목 위주의 성적 경쟁에서 벗어나 배우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구는 ▲학생들의 인성 함양과 진로적성 계발을 위한 프로그램 ▲학교폭력과 성폭력 예방, 다문화 이해 등 복리증진을 위한 프로그램 ▲학부모특강 등 학교와 연계해 진행할 수 있는 연극, 공예, 음악치료 등 교육 프로그램을 공모한다. 교과목 수업은 제외된다. 교육 기간은 다음 달부터 내년 2월까지다. 방과 후 시간이나 주말, 겨울방학 등에 운영할 예정이다. 아동청소년 프로그램 관련 수행 경험이 있는 서울시 소재 개인(사업자등록자), 법인, 대학을 포함한 기관 및 단체 등이 응모할 수 있다. 문석진 구청장은 “이번 포럼을 통해 전문가와 주민 의견을 경청하겠다”며 “앞으로도 평생학습 등 행복한 생활을 거드는 교육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부고] ‘재외동포학 선구자’ 이광규 명예교수 별세

    [부고] ‘재외동포학 선구자’ 이광규 명예교수 별세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을 지낸 이광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1세. 인천 태생으로 1960년 서울대 사학과, 1966년 오스트리아 빈시립대를 거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교수를 지냈다. ‘재일한국인’ ‘재미한국인’ ‘세계의 한민족’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사회’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재외동포학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고인은 재외동포학계의 선구자로 꼽힌다. 이런 학문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2003년에는 민간 출신으로는 처음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으로 임명돼 3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재외한인학회장, 세계한민족포럼 상임공동대표, 동북아평화연대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영희(77) 단국대 명예교수와 이용식(48) 전남대 교수 등 4남이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31)787-1500.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부고] ‘한국학의 대가’ 김열규 명예교수 별세

    한국학의 대가인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가 22일 오전 10시 별세했다. 81세. 고인은 한 달 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통원 치료를 받아 오다 이날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경남 고성군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1932년 고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국문학 및 민속학을 전공했다. 서강대 국문학 교수, 하버드 옌칭연구소 객원교수를 지낸 고인은 연구 인생 60여년 동안 한국인의 질박한 삶의 궤적을 조명해 왔다. 특히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와 ‘한국인의 자서전’을 통해 한국인의 죽음론과 인생론을 완성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정년 6년을 남긴 1991년 자연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삶을 살고자 낙향했다. 그곳에서 인제대 교수, 계명대 석좌교수, 지리산고등학교 강사 등을 지내며 해마다 한 권 이상의 책을 집필하고 강연을 해 왔다. 저서로는 ‘한국민속과 문학 연구’, ‘한국인 우리들은 누구인가’, ‘한국신화와 무속연구’, ‘한국문학형태론’, ‘독서’, ‘노년의 즐거움’, ‘그대, 청춘’, ‘공부’, ‘행복’ 등 다수가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상욱(수필가) 여사와 아들 진엽(서울대 미학과 교수)·진황(현대고 교사)씨, 딸 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23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02)2072-2010.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한국 이민문학 110년 연구서…대산문화재단 캐나다서 출간

    대산문화재단이 한국 이민문학 110년 역사를 아우른 연구서를 캐나다 출판사를 통해 출간했다. 재단은 한국 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류선모 경기대 명예교수의 ‘한국계 미국문학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 Korean American Literature)를 캐나다 버라이어티크로싱 출판사에서 출간했다고 22일 밝혔다. 책은 1921년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최초의 영문 소설인 ‘한수의 일기’(Hansu’s Journey)를 쓴 서재필을 비롯해 40명이 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시대별, 장르별, 세대별로 나눠 분석했다. 재단은 “이 분야의 연구서가 영미권에서 발간된 것은 처음”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02)721-3203. www.daesan.or.kr
  • [부고]

    ●이병구(원광대 명예교수)병노(회사원)병우(건국대 관재처장)씨 모친상 18일 건국대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 40분 (02)2030-7901 ●이영인(전 연합뉴스 정보통신국장)씨 별세 18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 (02)2258-5940 ●안은주(대우증권 파트장)은경(현대증권 대리)씨 부친상 김용준(사업)씨 장인상 18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 10분 (02)2227-7591 ●김삼모(자영업)익모(자영업)재모(자영업)씨 모친상 김원태(대신증원 포항지점 부지점장)씨 장모상 18일 포항의료원, 발인 20일 오전 8시 30분 (054)245-0420 ●육정환(서울아산병원 위암센터장)기환(차의과학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강화(홍치과 원장)씨 모친상 최윤미(중앙보훈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씨 시모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 30분 (02)3010-2265
  • 효령상 수상자 3명 선정

    전주이씨효령대군파종회인 사단법인 청권사(이사장 이명의)와 효령상심사위원회(위원장 이현재 전 국무총리)는 제16회 효령상 수상자로 문화부문에 안휘준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 재단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언론부문에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위원, 사회봉사부문에 안희진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을 각각 선정했다고 17일 밝혔다.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중)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중)

    ■한강 잔혹사 무동·백마도 10여개 섬, 택지 조성 위해 훼손 ‘양화진의 절경’ 선유봉, 깎이고 깎여 ‘섬’ 신세로 한강에는 10여개의 크고 작은 섬(하중도)들이 명멸(明滅)했다. 한강 2000년사 속에서 실재했던 뭇 섬들은 불과 50년 전에 뭍으로 변하거나 사라졌다. 큰 섬을 꼽으라면 팔당 하류부터 당정섬(미사리 섬), 석도(무학도), 잠실도(잠실섬), 뚝섬, 저자도, 율도(밤섬), 여의도, 난지도를 들 수 있다. 부리도, 무동도, 반포도(서래섬), 노들섬(중지도), 백마도도 당당했다. 이 중 석도, 무동도, 부리도, 저자도, 백마도는 한강변을 메워 택지를 조성하는 모래로 쓰이면서 파괴됐다. 밤섬과 당정섬도 같은 운명이었지만 20여년 만에 되살아나고 있다. 잠실도와 뚝섬, 서래섬, 여의도, 난지도는 이름만 섬(도)일 뿐 육지가 됐다. 밤섬과 함께 ‘강의 기적’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당정섬은 경기 하남시 산곡천과 한강이 만나는 팔당대교 하류 미사리 조정경기장 옆에 있다. 석도는 고덕천과, 잠실도와 부리도는 성내천과 탄천이 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각각 형성됐다. 잠실도와 부리도는 별개의 섬이었지만 합쳐져 육지가 되었다. 무동도는 탄천이 흘러나오는 지금의 청담동쯤에 있었다. 반포 서래섬은 이름이나마 남았지만 무동도는 무자비한 채취에 흔적도 없다. 저자도는 청계천과 중랑천, 여의도와 밤섬은 만초천(욱천)과 봉원천, 난지도는 한강 이남의 안양천과 한강 이북의 홍제천과 불광천이 맞닿는 곳에 있었다. 노들섬은 1917년 한강인도교(한강대교) 건설 당시 이름이 없던 모래 언덕에 둑을 쌓으면서 만들어졌다. 노들이란 ‘백로(鷺)가 노닐던 징검돌(梁)’이라는 뜻이며 강 건너편 노들나루(노량진)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키로 했으나 한강대교를 오가는 차량이 내는 소음과 예산문제로 백지화되고 나서 텃밭으로 쓰이고 있다. 난지도는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33배나 더 큰 거대한 쓰레기 산이 됐다. 난초와 지초 향기가 진동하던 섬이 쓰레기 침출수의 악취를 풍기는 인공산이 된 셈이니 비극이 따로 없다. 백마도는 김포대교 아래 모래섬이었지만 신곡수중보 공사로 가라앉았다. ‘한강 잔혹사’는 섬을 없애기도 했지만 새로운 섬을 생성시키기도 했다. 선유도와 세빛둥둥섬이 새롭게 태어난 인공 섬이다. 선유도는 본래 높이 40m의 선유봉이었다. 지금의 합정동 절두산(잠두봉)과 마주 보고 서 있었으며 18세기 겸재 정선의 실경산수화 ‘선유봉’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양화진의 절경이었다. 한강제방 축조와 여의도 윤중제 조성용 골재로 조금씩 깎여 나가기 시작해 결국 섬 신세가 됐다. 1390억 원을 들여 반포한강공원에 지어진 3채의 세빛둥둥섬은 세계최대의 인공 섬이다. 강물에 휩싸여 떠내려가지 않도록 쇠사슬로 고정한 유리성(琉璃城)이다. 인간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없앤 자연섬에게 바치는 레퀴엠(진혼곡)인지도 모른다. 자연을 훼손한 대가가 얼마나 비싼지 생각게 한다. ■뚝섬 과거사 경상·충청·강원도 연결하는 도성 동남쪽 관문 다리 건너고 배로 한강 넘어야 닿아 섬으로 인식 한강 제방이 생기기 전 한강 강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제2차 한강종합개발이 완료된 1987년 이후 한강의 강폭은 최대 900m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강제방이 없었던 1960년대 이전의 한강은 서울~원산 간 경원선(지금의 중앙선 구간) 철길이 경계선을 이뤘다. 홍수 때면 여의도, 이촌, 신사, 잠원, 반포, 압구정, 뚝섬, 잠실 등 한강 양안이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홍수기 한강의 넓이는 평균 1800~2000m였고, 잠실섬을 중심으로 현재의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석촌호수 남단까지를 측정했을 때 최대 3500m에 이르렀다. 갈수기에는 한강대교를 기준으로 노량진과 흑석동 쪽에 붙어 흐르는 50~100m의 가느다란 물줄기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백사장이었다. 옛사람들은 왜 뚝섬을 섬으로 여겼을까. 긴 다리를 건너고 배를 타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뚝섬은 한양인 듯하지만 한양이 아니었다. 도성 밖 성저십리(城底十里)의 경계지점이자 도성의 동남쪽 관문이었다. 1751년에 제작된 도성삼군문분계지도(都城三軍門分界之圖)를 보면 뚝섬을 섬으로 그리지 않았다. 다만 살곶이다리를 건너 뚝섬, 광나루, 송파나루로 향하는 지점에다 ‘뚝섬’이라는 지명을 적어 놓았다. 중랑천을 건너서 다시 배를 타고 한강을 넘어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로 연결되는 뚝섬을 섬으로 여긴 까닭이다. 당시 강원도 가는 길은 경기도 광주를 거쳐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가려면 남한강 줄기를 따라 내려갔다. 3도의 물산이 모이는 광나루와 송파나루가 흥청대기 마련이다. ‘광주 가는 나루’라고 해서 광나루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양도성을 나서면 광희문~왕십리를 거쳐 개천(청계천)과 중랑천이 한강본류와 만나는 살곶이다리(箭串橋)를 건너야 뚝섬에 닿았다. 함흥에서 도읍으로 돌아오던 태조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태종에게 화살을 날렸던 바로 그 장소이며 조선에서 가장 긴 돌다리였다. 중랑천을 따라 도봉천과 만나는 지점까지 이어지는 동부간선도로를 생각해 보면 옛사람들이 뚝섬을 섬으로 여길 만했다. 뚝섬(纛島)이라는 지명은 태조 때 왕을 상징하는 깃발인 독기(纛旗)가 떠내려온 장소라고 하여 생겼다. 처음에는 독도라고 부르다가 이후 둑섬, 둑도, 뚝도를 거쳐 뚝섬으로 굳어졌다. 장안평이나 전관평(살곶이벌)처럼 넓은 벌을 형성하는 비옥한 땅이어서 한성부의 배후 농업지대 역할을 했다. 마장동(馬場洞)이나 면목동(面牧洞)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을 키우고 사냥을 하던 드넓은 목장이었다. 이곳에 경마장과 골프장이 생겼다가 없어지고 현재의 서울숲이 조성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뽕밭 변천사 홍수방지 제방쌓기서 택지·도로 조성으로 변질 잠실섬·부리도 육지화… 금싸라기 땅으로 개발 한강의 섬은 어떻게 없어졌으며 강변 백사장은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 물난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방을 쌓는 것이 1960년대 제1차 한강 개발의 주목적이었지만 차츰 택지조성과 제방 둑에 도로를 개설하는 사업으로 목적이 변질됐다. 이름하여 공유수면 매립공사로 불린 한강 제방쌓기가 이권사업으로 등장한 탓이다. 1960~1970년대 동부이촌동, 흑석동, 서빙고, 반포, 압구정동, 구의, 잠실 등이 주 대상지역이었다. 국유하천인 한강을 막아 제방을 쌓고 택지를 조성했다. 모래와 골재는 한강에 지천으로 널린 모래섬과 강변 암벽을 폭파해 메웠다. 그 결과 섬은 사라졌고, 한강제방에는 강변도로와 올림픽대로가 생겼고, 한강변은 아파트 단지가 됐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수주한 건설업체들은 재벌이 됐다. 잠실섬은 본래 광진구 자양동에 붙어 있던 땅덩어리가 ‘아득한 옛날’ 홍수 때 허리가 잘려나가 섬이 됐다고 한다. 이때 새로 흐르게 된 북쪽 물길이 신천(新川)이다. 또 잠실섬 서쪽에 부리도가 있었는데 갈수기에는 하나의 섬이었다가 강물이 불면 딴 섬이 되었다. 행정적으로 잠실섬은 고양군 뚝섬면, 부리도는 광주군 중대면으로 갈렸다. 잠실에는 16세기 무렵까지 뽕나무가 무성했지만 잦은 홍수로 피폐해졌다. 지금의 서초구 잠원동이 잠실의 역할을 대신했다. 1960년대 말까지 서울의 끝은 뚝섬과 광나루였다. 잠실섬의 존재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1969년 경기도 광주에 조성한 300만평 규모의 광주대단지(성남)에 집단이주한 주민 10만명의 교통불편 민원과 서울에서 소외됐다는 불만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강북의 기존 시가지와 광주대단지를 연결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잠실 공유수면 매립과 잠실섬의 육지화, 잠실대교의 개설이 최대 현안으로 부각됐다. 1971년 4월 한강 남쪽 본류인 삼개나루(삼전도) 쪽 흐름을 차단하는 물막이공사가 완료됐다. 잠실섬이 뭍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북쪽 지류인 신천 쪽을 막지 않고 남쪽 본류인 삼전도 쪽을 막은 것은 택지를 더 많이 조성하기 위해서다. 서울에서 유일한 호수인 석촌호수는 이때 막은 강물이다. 롯데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대비한다는 명목 아래 이 땅에 동서 390m, 남북 265m, 바닥면적 합계 56만㎡의 엄청난 건물을 지었다. 이렇게 탄생한 잠실 롯데월드는 여의도 63빌딩이나 삼성동 코엑스보다 4배 가까이 큰 덩치를 자랑한다. 석촌호수를 가로지르는 송파대로 좌우 동호(東湖)와 서호(西湖) 중 서호를 20년 장기 대여해 실외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있다. 동호 남쪽에 이곳이 옛 송파나루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고, 서호 옆에는 1639년 병자호란 때 세운 삼전도비(大淸皇帝恭德碑)가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뽕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 것을 이른다면 잠실의 변화는 ‘상전금지’(桑田地)란 신조어를 낳을만하다. 뽕밭이 금싸라기 땅(地)이 되었으니 말이다. 1972년 7월 잠실대교와 송파대로가 준공돼 서울과 성남시가 이어졌다. 1978년 잠실매립이 마무리되자 75만 평이 생겼다. 여기에 국유지와 시유지를 주축으로 대대적인 토지구획정리사업을 벌이자 무려 340만 평에 이르는 신생 도시 한 개가 생겼다. 이른바 잠실지구이며 올림픽유치의 꿈을 이룰 잠실 메인스타디움이 깃들 기회의 땅이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매립 당시 토사가 부족하자 개발업체 측이 ‘몽촌토성 언덕을 헐어 사용하면 어떻겠느냐’라는 제안을 했으나 서울시가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성백제의 역사를 한순간에 허물어 버릴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joo@seoul.co.kr
  • [부고]

    ●김영태(전 국방부)영준(전 서울강동구청 주택과장)영남(전 서울신문 판매국 부장)영식(전 서울시교육위원회 실장)씨 부친상 16일 적십자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 (02)2002-8437 ●이홍규(전 조양산업 회장)씨 별세 진형(해외 근무)씨 부친상 김성민(현대중공업 대리)씨 장인상 이봉규(전 삼미종합특수강 사장)학규(우석대 교수)씨 형님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03 ●안형모(정림의료기산업 사장)씨 모친상 황정옥(재미 목사)유해주(전 한국은행)이성열(전 대한지적공사 사장)김태정(서울대 공과대학 교수)최대용(전 유엔본부)씨 장모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9일 오전 (02)3410-3151 ●민한기(수원시의회 부의장)씨 부친상 15일 수원 연화장, 발인 18일 오전 8시 30분 (031)218-8787 ●김수평(가톨릭대 명예교수)현식(서울항공여행사 회장실)성식(MBC 시사제작1부장)씨 모친상 임문규(전 성남중앙병원 마취과장)김원희(SK증권 부장)씨 시모상 송영상(전 전주MBC 심의위원)육완민(전 두산 임원)씨 장모상 김동주(시온여성병원장)씨 조모상 16일 여의도성모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2)3779-1857 ●이원기(전 임광토건 상무이사)씨 별세 성구(사업)태석(쎌바이오텍 부장)씨 부친상 이대영(사업)전영묵(삼성생명 전무이사)씨 장인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2)3410-3151 ●차재선(전 단국대 교수)씨 별세 윤석(지오선교회 간사)승훈(FCI 수석연구원)씨 부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30분 (02)3010-2252 ●이용순(코스콤 시장운영부 팀장)씨 부친상 16일 서울 을지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970-8444 ●이현자(신양중 교장)씨 모친상 이상복(대건기계 상무)씨 장모상 1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8일 오전 5시 (02)2227-7569 ●김영진(전 농림부 장관)근진(강진읍농협 조합장)옥진(도암교회 목사)성진(사업)씨 모친상 의정(아시아나항공 부기장)씨 조모상 16일 전남 강진산림조합추모관, 발인 19일 오전 8시 (061)433-2300 ●정우호(대한아이에이 대표)기호(신용보증기금 팀장)씨 모친상 조영조(한국수출입은행 부장)씨 장모상 16일 경북 안동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54)840-0009
  • 대한민국 최고 체육상에 진종오

    대한민국 최고 체육상에 진종오

    한국 사격의 간판인 진종오(34)가 ‘대한민국체육상’을 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4일 제51회 대한민국체육상 수상자를 발표하고 최고의 영예인 ‘경기상’은 진종오가 수상한다고 밝혔다. 2002년 사격 국가대표가 된 진종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2회 연속 금메달을 땄다. 지난 7월 그라나다 월드컵사격대회에서도 2관왕에 올라 정상 실력을 재확인했다. 지난해 경기상은 체조의 양학선이 받았다. 지도상은 사격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는 변경수 감독이 받는다. 변 감독이 이끈 국가대표팀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무려 28개의 메달(금13, 은8, 동7)을 딴 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를 획득해 사격 종목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이 밖에 연구상은 남상남 한양대 교수, 공로상 서정복 전라남도축구협회장, 진흥상 탁정근 서울과학고 교사, 특수체육상 김의수 서울대 명예교수, 극복상은 김경묵 대한장애인탁구협회 선수가 각각 수상한다. 체육 훈포장 수훈자 142명도 확정됐다. 최고 영예인 체육훈장 청룡장은 체육발전 유공 부문에서 이규혁(스피드스케이팅), 김재범(유도), 이효정(배드민턴), 이창환·주현정(이상 양궁), 임수정(태권도), 오은석(펜싱) 등 선수 7명과 정훈(유도) 등 지도자 6명이 받는다. 대한민국체육상은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와 지도자, 전문 체육 및 생활체육 진흥에 공적이 있는 사람 등을 발굴해 7개 분야로 나눠 정부가 시상하는 체육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수여식은 15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열린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최초의 원시 동굴벽화 아티스트는 여자였다

    최초의 원시 동굴벽화 아티스트는 여자였다

    인류 예술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수만년 전 동굴속 페인팅이 대부분 여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학자들은 고대 동굴 페인팅이 남자들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해왔다. 이같은 믿음은 대부분의 동굴 예술이 사냥과 관련이 있고, 사냥은 선사시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한 저명한 고고인류학자가 동굴에 남아 있는 손자국들을 측정한 결과를 토대로 당시 동굴 예술가들은 대부분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고 허핑턴포스트가 13일 보도했다. 미국 펜 주립대 고고인류학 명예교수인 딘 스노우 박사는 지난 10여년간 2만~4만년 전에 걸쳐 분포된 동굴 페인팅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 연구했다고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전했다. 스노우 교수의 연구결과는 최근 학술저널 ‘American Antiquity’에 실렸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동굴에 남아 있는 손자국의 4분의 3은 여성의 것이었다. 스노우 박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을 통해 “오랫동안 문학.예술 분야에 남성 편향이 있었다”면서 “사람들은 이런 것들(페인팅과 핸드프린트)을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추정만 무성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사냥이 남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곧 남성들만 동물을 다루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그는 설명한다. 사냥한 동물을 동굴로 끌고와 처리하는 데는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참여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스노우 박사는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생물학자인 존 매닝 박사의 연구를 읽으면서 동굴예술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매닝 박사는 여자는 약지와 집게 손가락 크기가 같은 반면 남자는 약지가 더 크다는 리포트를 냈다. 스노우 박사는 이를 토대로 동굴에 남아 았는 손자국을 복사해 손가락 길이를 재는 방법으로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수백개의 손자국을 조사했다. 그중 스페인의 엘 카스틸로 동굴에서 16개, 프랑스 가르가스 동굴에서 6개, 페크 멀 동굴에서 5개 등 총 32개가 연구에 사용 가능했다.그리고 연구 결과 32개중 24개가 여성의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이와 관련 진화 생물학자인 데일 구스리 박사 등 일부 학자들은 스노우 박사의 연구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언급한다. 구스리 박사도 동굴속 손자국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대부분이 10대 소년들의 것이었다는 결론을 내기도 했다. 스노우 박사는 “지금까지 이번 연구결과에 대한 반응이 대부분 긍정적이라는 사실”이라면서 “4만년 전에 왜 여성들이 예술적 역할을 맡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연구자들이 나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임창용 기자 sdragon@seoul.co.kr
  • ‘민주+정의당+안철수’ 新야권연대 급물살

    ‘신(新)야권연대’ 논의가 구체성을 띠기 시작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지난 9일 국정원 개혁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범야권 연대기구’ 구성을 처음 제안한 이후 천호선 정의당 대표가 환영의 뜻을 밝혔으며 안철수 의원측 송호창 무소속 의원도 “현안별로 연대할 수도 있다”고 참여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번 주중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시민사회 인사들이 민주당에 국민연대를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오는 19일 민주당과 정의당, 시민·종교·노동단체 등이 참여하는 연대기구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첫 장외 집회를 열 예정이다. 관심은 내년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선에서 연대기구를 통한 야권 연대가 재가동되느냐다. 일단 참여하는 세력 모두 “정치 연대체가 아니라 국정원 개혁에 한정된 활동”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민주당은 “연대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고, 천 대표도 “당장 선거 연대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의당의 다른 의원도 13일 “당 차원이 아니라 개인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이후의 연대 가능성도 열려는 있지만, 정치적 결사체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안 의원도 최근 토크 콘서트에서 “공식 제안이 오면 사안별로 말씀드리겠다”면서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출범 초부터 선거 연대를 강조할 경우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른 연대 추진으로 공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진보당과 총선 연대를 한 것에 대해 지금도 새누리당의 ‘책임론’ 추궁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모임도 민주당이 아니라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김 대표는 이와 관련, “민주당이 모이자고 하면 모양이 자연스럽지 않을 수도 있으니 시민사회 대표자와 원로들께서 마중물 역할을 해 달라고 제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그동안 창당 등 독자세력화 의지를 강조해 온 안 의원으로서도 야권 연대라는 틀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안 의원측은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과 광역자치단체장 등을 놓고 본격적으로 겨뤄야 하는데 야권 연대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안 의원측 핵심 관계자는 “정치적 결사체를 만들 일은 아니다. 원칙과 목표가 필요하다. 아무 원칙도 없이 선거 때가 되면 연대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마포구 교육발전, 주민 1000명 지혜 모은다

    서울 마포구가 어려움을 겪는 중앙도서관 건립 추진을 위한 대대적 공청회를 연다. 추진동력 재확인을 위해서다. 구는 16일 오후 3시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교육발전을 위한 구민 대토론회’를 연다고 10일 밝혔다. 박홍섭 구청장과 지역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교육전문가뿐 아니라 학부모와 학교 관계자 등 1000여명이 모이는 최대 규모 공청회다. ‘마포중앙도서관 및 청소년 교육센터’ 건립은 성산동 옛 구청 부지 활용법을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마포가 교육 분야에서 뒤처진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박 구청장은 “그런 말을 들으니 이제 아이들에게 제대로 투자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 반응도 좋았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찬성률이 70~80%대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때마침 당인리발전소 지하화에 따른 지원금 130억원 등 재원문제에도 숨통이 트였다. 지하 2층, 지상 6층 연면적 1만 7414㎡에 모두 427억원을 들인다. 4~6층에는 장서 20만권과 열람석 900석을 갖춘 마포구 대표 도서관을 만들고, 1~3층엔 청소년들이 끼와 재능을 마음껏 펼 수 있는 교육센터를 운영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이 방안이 왜 한곳에만 짓느냐는 이유를 든 주민들끼리의 갈등으로 휘청댔다. 토론회에선 이런저런 문제를 털어낼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교육시설을 어떻게 잘 지을 것인가를 집중 논의한다. 정유성 서강대 교육문화학과 교수의 기조발제에 이어 김신복 서울대 명예교수의 사회 아래 오진아 구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토론을 벌이고, 질의응답을 갖는다. 박 구청장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학부모, 청소년, 지역민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이뤄져야 하는 만큼 적극적인 참가와 좋은 의견을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日, 작년 위안부 사죄금 지급하려 했다”

    한국과 일본 정부가 이명박 정부 말기인 지난해 가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보상 문제의 정치적 해결 방안을 두고 최종 합의 직전까지 갔다가 일본 국회 해산 등으로 마무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민간 기금이 아닌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피해자 한 명당 사죄금 300만엔(약 3300만원)을 지급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8일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인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당시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된 이후 한국 측에서 일본을 방문해 위안부 문제 협의를 요구했다. 앞서 지난해 3월 노다 요시히코 당시 총리는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차관을 한국으로 보내 위안부 문제의 정치적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주한 일본대사의 사과와 한·일 정상회담에서 노다 총리가 이를 설명하는 것, 보상금 등 인도적 자금 지원은 100% 일본 정부 자금으로 충당한다는 세 가지 조건가 들어 있었다. 우리 정부는 여기에 일본 총리가 피해자에게 서신을 보내는 방안을 추가, 양측이 표현 수위 등을 놓고 협의하기도 했다. 이후 재개된 협상에서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정부 특별예산을 편성해 1인당 사죄금 300만엔을 지급하려 했다. 일본 정부가 민간 차원에서 기금을 모금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위로금 200만엔을 지급한 ‘아시아 여성기금’과는 달리 정부의 예산으로 지급하려 한 셈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이 돈의 성격에 대해 ‘위로금’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우리 정부는 ‘사죄금’으로 사용하라고 요구, 일본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양국 정부는 외교채널로 대화 진전을 이루지 못하자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민간채널이 직접 나서 양국 간 이견을 좁히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막바지 협의를 하던 중 노다 총리가 갑자기 중의원(하원)을 해산하겠다고 밝혔고 한국도 대통령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서 타협은 무산됐다. 이 관계자는 “정치적인 일정만 없었다면 과거사에 대한 양국 간 대타협이 이뤄져 한·일 관계가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으로는 치닫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이종락 기자 jrlee@seoul.co.kr
  • 임효재 교수 日문화유산 평가

    임효재 교수 日문화유산 평가

    임효재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본 오키노시마 제사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10일부터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제5차 유네스코 국제전문가회의에 참석한다. 동아시아고고학회장인 임 교수는 현지에서 현장을 탐사해 가치를 평가하고, 전북 부안군 죽막동 제사 유적과의 관련성도 논의한다.
  • “북한은 믿을 수 없어… 테러 잊혀져 안타까워”

    “북한은 믿을 수 없어… 테러 잊혀져 안타까워”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83년 10월 9일 오전 10시 27분 당시 미얀마 수도 양곤. 주변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는 굉음과 함께 독립운동가 아웅산 장군 묘역의 목조건물이 한꺼번에 붕괴했다. 미얀마를 공식 방문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노린 북한 정찰국 특수부대원들의 소행이었다.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 대통령은 예정보다 3분 늦게 숙소에서 출발한 덕에 화를 면했다. 당시 이기백(전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의 부관(중위)으로 현장에 있던 전인범(55·육사 37기·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소장에게도 운이 따랐다. 폭발 5분 전 카메라 건전지를 교체하러 행사장을 잠시 비운 것. 전 소장은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00~400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굉음이 울린 순간 솔직히 혼이 다 나갔다”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고 무서웠는데 나도 모르게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현장은 아비규환 속에 시신이 나뒹굴었고, 부상자들은 신음을 내뱉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 전 장관 역시 머리와 배에 파편이 박히고 다리가 서까래에 깔렸다. 전 소장은 “(이기백) 장관님의 두피 부분은 다 벗겨져 있었고, 의식도 가물가물했다”면서 “서둘러 후송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테러범 3명 중 신기철 대위는 사살됐고, 체포된 진모 소좌는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처형됐다. 범행을 자백한 강민철 대위는 미얀마 교도소에서 25년간 복역하다 2008년 5월 사망했다. 전 소장은 “돌아가신 분들은 누군가의 가장이고, 사랑하는 남편이었다”면서 “북한 정권에 대해 결코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또 “안타까운 건 아웅산 테러가 점점 잊혀진다는 것”이라면서 “명백한 테러임에도 애매하게 표현하거나 실체를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의 방한 등 한·미얀마 관계 개선에 힘입어 지난 3월에는 추모비 건립을 위한 민관위원회가 출범했다. 생존자인 이 전 장관은 물론, 유수경(고 서석준 부총리의 부인) 국민대 명예교수, 함재봉(고 함병춘 비서실장의 아들) 아산정책연구원장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연말까지 테러 현장에서 100m쯤 떨어진 아웅산 묘역 입구에 7억 3000만원을 들여 추모비를 세우기로 했다. 한편 9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린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부고]

    ●변민식(평강시스템·평강포럼 대표)도윤(전 여성부 장관)씨 모친상 윤정란(한울내과·엔디스요양원)이혜경(잠실고 정보부장)씨 시모상 김종욱(굿모닝 대표)씨 장모상 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2)2227-7556 ●정영대(사업)영만(전 삼성화재손해사정서비스 대표)씨 부친상 6일 마산삼성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55)290-5641 ●우영섭(부천대 이사·전 경기대 부총장)씨 별세 신경란(전 홍은중 교장)씨 남편상 우정훈(보건산업진흥원 미국지사장)재순(미국 켈시-시볼드 클리닉 전문의)재연(백영고 교사)재윤(은평구청)씨 부친상 웨인 하이트(미국 세인트 루크병원 전문의)박순용(낙생고 교사)씨 장인상 이영지(이천소망병원 전문의)씨 시부상 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0일 오전 6시 (02)2227-7550 ●정환영(한양의대 명예교수)씨 부인상 천기(서울의대 교수)순기(가천대 부장)효경(성형외과 원장)씨 모친상 김응국(충북의대 교수)씨 장모상 김현아(한림의대 교수)씨 시모상 6일 서울대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10분 (02)2072-2022 ●조애순(국전 서예부문 입선작가)씨 별세 김정평(전 재현고 교사)승평(수원대 교수)인평(사업)옥평(영화사 오름 회장)씨 모친상 정영식(전 교장)박영재(전 기업은행 지점장)씨 장모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4시 30분 (02)3410-6915 ●최원창(프로축구 수원 삼성 홈경기 운영팀 차장)씨 부친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3410-3151 ●김상철(전 한화투자신탁운용 감사)상익(전 선경인더스트리 부장)수연(자영업)씨 모친상 우제호(자영업)씨 장모상 김동희(서울중앙지법 판사)광희(수원시수영연맹 이사)씨 조모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 (02)3410-6920 ●김석준(전 건설부 국장)씨 별세 형욱(외환은행 SRM지점장)상욱(도현개발 대표이사)은덕(미국 플로리다주립대 교수)씨 부친상 7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30분 (02)2258-5940 ●이단웅(육군 51사단 부사관)나리(중앙대병원 임상병리사)씨 부친상 전명훈(연합뉴스 스포츠부 기자)씨 장인상 7일 중앙대병원, 발인 9일 오전 11시 (02)6299-2466 ●김지철(충남도의회 교육의원)씨 모친상 6일 천안 하늘공원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10시 (041)621-8011 ●남궁영(충남도 기획관리실장)씨 모친상 7일 충남 부여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9시 (041)835-9816 ●맹수영(샘스튜디오 대표)씨 부친상 김진배(보명실업 과장)윤종혁(지원산업 대표)문승호(SK하이닉스 기장)씨 장인상 박지영(한국거래소 홍보부 과장)씨 시부상 7일 고려대 안산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31)411-4441 ●김영호(뉴데이즈 대표이사)씨 모친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2)3010-2237
  • 실시간검색어 1위 정경화는 누구?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실시간검색어 1위 정경화는 누구?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뜨겁다. 8일 네이버, 다음 등 각종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정경화’가 1위에 올랐다. 정경화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다.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의 누나이기도 하다. 지휘자 정명훈,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셋은 ‘정트리오’라는 애칭으로 유명하다. 6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접한 뒤 빠져들어 9살 때 이미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멘델스존의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였다. 13세 때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67년 미국의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 우승한 뒤 1970년 영국 런던에서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연주로 데뷔해 일약 세계적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발돋움했다. 2007년 모교 줄리어드 음악원에 교수로 초빙됐고 지난해부터 이화여대 명예교수직도 겸하고 있다. 정경화는 18일부터 중국 베이징을 시작으로 마카오, 홍콩 등 중화권 7개 도시에 순회공연에 나선다. 그 전에 12일에 울산, 다음달 2일 고양, 8일과 12일 서울, 10일 부산 등 국내 순회 공연도 함께 진행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키아벨리 ‘군주’ 500주년

    마키아벨리 ‘군주’ 500주년

    올해는 마키아벨리(14 69~1527)의 대표작 ‘군주’가 완성된 지 500주년이 되는 해다. 단테의 ‘신곡’을 제치고 가장 많이 번역된 이탈리아어 고전인 ‘군주’는 1513년에 탈고됐지만 정식 출간은 마키아벨리 사후인 1532년에 이뤄졌다. 지난 500년 동안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는 시대의 변화와 필요에 따라 크게 엇갈렸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사꾼이란 비난에서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애국자로,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선 근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선구자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군주’ 탄생 5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서 마키아벨리 관련 전시와 강연 등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서적 출간과 학술 대회 등 마키아벨리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마키아벨리 연구로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 공동소장은 이탈리아어 원문을 직접 번역해 텍스트 중심으로 ‘군주’를 재조명한 ‘지배와 비지배’(민음사)를 최근 출간했다. 곽 소장은 마키아벨리의 텍스트는 모순어법과 수사적 장치, 의도적 왜곡, 사실과 허구의 혼재 등으로 오독의 여지가 가장 많은 고전이며, 이로 인한 오역과 오해로 지금까지 이 책에 대한 해석은 늘 반쪽짜리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힘에 대한 통찰력은 ‘지배’가 아니라 ‘자유’가 정치의 목적이 되는 길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군주의 교본’을 넘어 ‘시민의 교본’으로 ‘군주’를 읽을 것을 제안한다. 학술대회도 잇따라 열린다. 마키아벨리 군주 500주년 기념위원회와 플라톤아카데미, 한국밀레니엄연구원은 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2013년 한국 정치, 왜 마키아벨리인가’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마키아벨리와 한국 민주주의’), 곽준혁 소장(‘민주적 리더십: 군주의 가려진 진실’), 김상근 연세대 교수(‘마키아벨리와 그의 시대’)가 주제 발표자로 나선다. 기념위원회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마키아벨리의 ‘정치’에 대한 통찰력이 다시금 검토되고, 그의 정치철학이 2013년 한국정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폭넓은 토론이 전개되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정치사상학회, 한국정치학회, 아산정책연구원은 오는 19일 종로구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마키아벨리 군주론 저술 50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연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착한학자금대출’ 올해 말까지 대출조건 완화 시행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착한학자금대출’ 올해 말까지 대출조건 완화 시행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공동위원장 양승규 서울대 명예교수, 김규복 생명보험협회 회장)와 사회연대은행은 올 연말까지 대학(원) 재학생, 휴학생을 대상으로 학자금 전환 및 대출 조건 완화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2년 간 200억 원 규모로 대학생 학자금 부채상환 지원사업을 실시해 오고 있는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와 사회연대은행은 대학(원)생이 학자금 부채로 인한 금융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고 안정적인 학업수행을 지원하기 위해 ‘착한 학자금 대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착한 학자금 대출’은 지난 9월말까지 총 2,014명에게 100억 원의 대출을 저금리로 지원했으며, 오는 12월 사업종료 시점이 다가옴에 따라 더 많은 수혜 혜택을 주기 위해 대출조건을 완화했다. 이번에 개선된 대출조건은 성적기준(기존 C학점 이상)을 폐지하고, 대출금리(기존 연 3.0%/페이백 1.5%)를 연 2.0%/페이백 1.0%로 대폭 낮췄다. 변경된 대출 조건은 10월 1일부터 적용되며 대출신청 마감은 오는 12월 20일까지다. 학자금(등록금) 대출 및 전환대출은 소득 7분위(월소득 약 450만원) 이내 가정의 대학(원) 재학생과 휴학생이면 누구나 가능하고, 사회연대은행 콜센터(1588-4413)나 인터넷 홈페이지(http://liscc.bss.or.kr)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대출한도는 1인당 최대 1천만원(전환대출과 학자금 대출 합산)까지 이며, 성실 상환자에 대해 이자납부 총액의 50%를 대출자에게 환급하는 혜택도 제공한다. 상환조건은 전환대출은 3년 거치 3년 상환이고, 신규 학자금 대출은 5년 거치 5년 상환으로 원리금 균등분할 상환방식이 적용된다. 한편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는 국민의 성원과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2007년부터 20년 간 1조 5천억원을 조성, 생명보험업계 공동의 사회공헌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조성된 재원은 저출산 해소 및 미숙아 지원, 금융보험 교육, 장학사업, 청년층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 지원, 희귀난치성질환 지원, 자살 예방 지원, 사회복지단체 차량지원, 저소득치매노인 지원 등 전 연령을 아우르는 사회공헌활동에 쓰여지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