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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생활개혁 방향/전문가 대담(문민정부 후반기 과제:5·끝)

    ◎젊은 세대에 안전·책임의식 심자/교통·환경 등 절실한 문제부터 풀어야/주행세 도입해야 생할패턴도 달라져/시설·제도 마련은 정부가… 운영은 공동체가 책임지게/「지자체간 갈등」 조정기구 신설필요/사회 모든 구성원·세대간 「역할분담」 중요/파급효과 골고루 퍼지는 「3쿠션」 개혁을 문민정부 후반기는 국민들에게 개혁이 열매를 골고루 나눠주는 사회·생활개혁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인본」·「시민중심」의 개혁을 지향하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어느때보다 강하게 읽혀진다. 이제 더이상 우리사회에 적당주의와 기회주의적인 사고나 관행이 발붙이지 못하고 장인정신과 신뢰가 꽃피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움을 틔우고 있다. 국민생활고 직결된 사회와 생활을 위한 개혁의 새 지평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정의 실천 시민운동 연합 유재현 사무총장과 서울대 이달곤 교수의 대담을 통해 사회·생활개혁의 핵심은 무엇이고 중앙정부와 자치단체가 해야할 일은 어떤 것인지,그리고우리가 힘써야 할 이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짚어본다. ▲유재현 사무총장=2년반전 문민정부가 첫 출범했을 때 국민들의 기대는 매우 컸습니다.정통성시비에 휘말려 독재와 반독재,민주와 반민주의 이념적인 대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전의 정부와는 달리 현정부가 불필요한 논쟁을 끝내고 생활정부로서 제 몫을 다해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지자제 선거를 비롯한 정치적 갈등관계가 많이 표출되면서 집권초기에 싹을 틔웠던 생활정치가 점차 퇴색하고 정치인 중심의 정치문제가 다시 부상하는 것 같아 아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달곤 교수=그동안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직접 피부로 느낄수 있는 교통·환경·소비생활 등 각 부문의 개혁은 이제 시작인 것 같습니다.이는 민주화 과정에서 생겨난 사회체제의 다원화로 여러 집단의 이해가 표출되면서 과거 권위주의 정부때처럼 일사불란한 행정집행이 어려웠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가 너무 많아 정부가 사회·생활개혁에 우선순위를 둘 수 없었기 때문 아닌가 여겨집니다.국민을 대형참사로부터 보호하고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는 등 절실하고 시급한 사회 개혁을 우선 해결하기 위해 이제부터라도 힘써야 할 것입니다.개혁의 요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총장=문민정부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 가운데 가장 높이 평가할만한 것은 지방자치선거를 훌륭히 치러낸 것입니다.정부가 사회·생활개혁에 역점을 둬야 하는 배경을 지자제와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모든 정책을 중앙정부에서 결정하고 지방단체는 이를 시행하기만 하던 때는 국민의 관심이 자연히 중앙정치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지만 지자제가 본격 실시되면서 이제 국민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지역의 생활문제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최근 경기도 군포 쓰레기매립지를 둘러싸고 발생한 지역주민들의 집단반발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따라서 정부는 전반적인 생활개혁을 이룩할 수있는 큰 틀을 마련하는 것을 후반기 주요 과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교수=지자제 실시로 우리 사회도 이제 생활개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셈입니다.중앙정부의 변화가 필요해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일상 생활의 안전·부정부패·공해문제등에 대한 개혁조치들을 행정력을 동원해 제때 제때 신속히 해결해야 합니다.법규하나를 뜯어고치기 위해 중앙정부와 국회의 승인을 거치는데만 평균 2년정도 걸립니다.문제점 인식에서 해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셈이죠.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을 최대한 살려 개발이익환수금 제도,쓰레기처리장등 당면현안을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해결해야 합니다.종래의 권력체계를 그대로 답습해서는 올바른 지방자치를 실현할 수 없다고 봅니다. ▲유총장=지역이기주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불특정다수의 이득을 위해 특정 소수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에 대해 특정 소수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이를 지역이기주의로 몰아세울 수만은 없습니다.문제는 지금까지 특정 지역주민들로부터 반발을 살수있는 정책을 밀실에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발표해온 정부의 태도입니다.쓰레기장등 혐오시설물을 설치할 때는 공개 협의를 거쳐 구체적인 지원책과보상책을 마련해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얻어낸다면 지자제의 부작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이교수=생활개혁은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참여·토론·비판을 통해서 가능합니다.실제로 집행능력이 있는 정부투자기관·각종 단체및 협회·공단 등 모든 단체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합니다.지방단체를 생활단체로 바꾸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정부는 시설과 제도를 만들고 운영은 공동체에 넘겨주는 새로운 행태의 창출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유총장=시민단체가 앞장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 올바른 틀을 마련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예를 들면 쓰레기문제도 시민단체들이 아무리 분리수거를 하자고 캠페인을 벌여도 선의의 시민들만 이에 따를뿐 별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그러나 정부가 종량제를 도입한뒤 분리수거는 잘되고 있습니다.교통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캠페인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자동차보유세나 주행세등 사회 지침과 약속을 만들어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시민들만 자가용을 소유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즉 정부가 제도개혁을 통해 생활패턴을 바꿔놓을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개인들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교수=그런 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사회전체의 의식개혁일 겁니다.대형참사때마다 지적된 안전관리 문제만 해도 현정부 출범이후 중앙에서 수없이 강조하고 지시도 내렸고 심지어 안전진단을 위해 기획단을 구성하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그러나 이는 상층부의 개혁일 뿐 아래에서는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기성 사회인이나 앞으로 사회 일원이 될 젊은 세대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이를 위한 재정지원도 늘려야 합니다.또 지속적인 사회변혁을 가능하게 하기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세력과 세대사이의 적절한 안배와 기능분담구조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유총장=지자제가 실시되고는 있지만 아직 중앙정부가 개입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진정한 지자제의 실시라고 볼수는 없습니다.지방자치단체끼리 갈등이생겼을때 정부는 직접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지자체에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해 스스로 타협점을 찾도록 이끄는 구실을 맡아야 합니다.대신 지자체끼리의 갈등을 조정하는 기구를 따로 신설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이교수=이 점에서 정치지도층이 각성해야 합니다.투표가 어떻고 지역구도가 어떻고 하는 얘기만 오가는 구습을 탈피하고 직접 발로 뛰는 행정과 정치을 통해 생활개혁에 한걸음 더 다가서야 합니다.사회개혁은 기존의 관행대신 새로운 기술적 접근이 필요합니다.분위기를 바꿔 사회개혁의 우선순위를 파악하기 위해 행정책임자들이 양복과 넥타이를 벗어버리고 잠바를 입고 일선 현장에 직접 나가야 합니다.책상 앞에 앉아 통계만 다루는 행정은 이제는 지나갔습니다.임기중에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려 하기보다 비용은 비싸지만 서서히 안정된 효과를 보는 「한방치료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유총장=삼풍백화점 붕괴사고때 한달동안 텐트를 치고 구조작업을 도왔습니다.그때 엄청난 사고가 일어났는데도 막상 책임지는 사람은하나도 없는 것에 놀랐습니다.이것은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사고 원인도 광범위하고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입니다.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공무원과 시민 개개인이 포괄적인 책임의식을 갖는 의식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사회·생활개혁의 요체이기도 하고요. ▲이교수=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잘해도 종합적으로 의논해서 할때는 제대로 안되는 우리사회의 고질병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 직선적인 지시에 의한 개혁은 이룰 수 없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여러 지점을 거쳐 목표에 도달하는 당구의 「쓰리쿠션」을 응용한 「쓰리쿠션」 개혁이 필요합니다.한 곳만을 쳐서는 안되고 이것이 간접적으로 우회적인 효과를 가져와 사회 여러부분에 고루 퍼질때 전체적으로 소기의 성과를 이룰수 있다는 것입니다.물론 기본적인 변화의 주체는 공동체가 되어야죠.그러나 정부는 물론 준정부기관도 함께 움직여야 하고 시민들에게 정보도 공개해야 합니다. ▲유총장=앞으로 남은 후반기동안 정부는 차기정권 재창출을 위한정치문제에 밀려 사회·생활개혁의 지표가 실종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시민·공무원단체등 비정치적인 조직이 앞장서 교통과 안전문제등 생활개혁을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특히 대통령은 남은 임기동안 정치지도자보다는 행정책임자로서의 위치를 강화하는데 진력하는 것이 사회·생활개혁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훗날 역사의 평가에 맡기는 자세 없이는 지루하고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사회·생활개혁을 추진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 평화협정 체제의 전제(사설)

    한미양국이 군사정전위 수석대표에 다시 한국군 이석복소장을 임명한 것은 정전체제를 와해시키려는 북한의 기도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한때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를 미군장성으로 교체하는 문제가 검토됐으나 한국군장성이 계속 맡도록 결정된 것은 의미가 크다.북한의 거부가 예상되지만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한반도방위의 한국화」는 시대적 요구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정부를 배제시킨채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만 획책해 왔고 이를 위해 정전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려는 정치적 공세를 수년간 자행해 왔다.91년 유엔군사령부가 정전위수석대표를 한국군장성으로 바꾼 이후 정전위소집을 거부해왔고 체코와 폴란드를 중립국감독위에서 억지로 철수시켰다.그리고 군사정전위 중국대표의 철수도 관철시킨 바 있다. 북한이 정전체제를 무력화시키려는 속셈은 뻔하다.주한미군철수와 한미안보조약의 폐기를 겨냥한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이다.한마디로 적화통일의 기반을 다져보겠다는 노림수다.우리도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협정의 대체를 반대하지 않는다.그러나 그 당사자는 남북한이어야 한다.91년 12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남과 북은 정전상태를 남북사이의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따라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자간 회담이 선행되어야 하며 남북이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까지는 정전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 현 단계의 남북관계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대화를 통한 신뢰회복이다.이를 위해서는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김영삼대통령도 광복50주년 경축사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등 남북간의 합의는 존중돼야 함을 강조했다.북한 당국은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한반도 관련의 모든 문제는 남북한 당사자에 의해서만 해결될수 있는 것이다.
  • 김영삼 정부 30개월/김 대통령 어록

    ◎“개혁중단 주장은 손으로 강물 막으려는 것”­93년 4월 15일/“세계화는 구각 탈피,새로 태어나려는 결단”­95년 1월 26일/깨끗한 부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이 될것­93년 8월 12일/국제사회엔 적도 친구도 없고 경쟁자만 있다­94년 11월 10일 문민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개혁과 변화」에 대한 대통령의 열의가 높았다.그래서인지 시선을 끈 대통령의 「말」도 유달리 많았다.김영삼 대통령의 「말」을 살피면 문민정부의 통치이념과 철학을 엿볼 수 있으며 국정의 전반적인 기류도 읽을 수 있다.집권 전반기 김대통령의 어록을 간추려본다. ▷93년◁ ▲『부정부패의 척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고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한다.신한국 창조에는 눈물과 땀이 필요하고 고통이 따른다』­2월25일 대통령 취임사. ▲『부처간 이기주의나 책임을 방기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2월27일 첫 국무회의. ▲『추석 때 떡값은 물론 찻값도 받지 않겠다』『정치자금을 포함해 어떠한 이유로도 돈을 한푼도 받지 않겠다』­3월5일 기자간담회. ▲『혁명은 누구를 제척하거나 떼어낼 수 있지만 개혁은 모든 것을 끌어안아야 한다』­4월1일 동아일보 회견. ▲『공직사회에서 돈많은 사람이 부끄러운 시대가 오고 있다』­4월13일 재외공관장을 위한 연설회. ▲『「개혁을 중단해야 한다」,「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이는 「손으로 강물을 막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4월15일 대전의 주요인사 접견. ▲『토지·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4월16일 신경제계획민간위원 조찬. ▲『5·18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은 훗날 역사에 맡기는 것이 도리라고 믿는다』­5월13일 5·18관련 담화문. ▲『우리사회의 부정부패는 뿌리가 깊어 단시일안에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따라서 개혁은 결코 일과성,또는 한시적인 것일 수가 없다』『5·18 문제는 「잊지는 말되 용서하자」는 방향으로 매듭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7월16일 전남일보 회견. ▲『금융실명제 없이는 정치와 경제의 검은 유착이 단절될 수 없으며 활력이 넘치는 자본주의도 꽃피울 수 없다.이제 깨끗한 부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이 될 것이다』­8월12일 금융실명제 실시 담화문. ▲『정당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정치개혁을 위해 정치자금은 투명해야 하고 정치지도자들도 자기희생이 필요하다』­9월21일 정기국회 연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갖가지 배타적인 집단 이기주의가 분출하고 있다.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집단행동은 한국병 중의 한국병이다』­10월5일 신경제추진회의. ▷94년◁ ▲『개가 짖는다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공허한 논쟁에 매달릴게 아니라 실질적인 일에서 옳은 것을 구해야 한다』­1월1일 신년 하례서. ▲『세계화와 국제경쟁은 이제 더 이상 사치스런 말이 아니라 우리 앞에 다가온 현실이다』­1월6일 연두기자회견문. ▲『정치권이 거듭나지 않고는 진정한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더 이상 허송세월할 여유가 없다』­2월15일 민자당 창당 기념연설. ▲『가야할 길은 멀고 달라져야 할 것은 너무도 많은데 지난 날의 체질과 관행이 우리의 발목을잡고 있다』­2월25일 취임1주년 기자회견문. ▲『야망을 가진 사람에게 무한경쟁은 절호의 기회다.그러나 야망은 잠자지 않고 있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꿈이다』­2월26일 서울대졸업식 치사.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집단에게는 멸망의 길밖에 없다』­4월17일 신한국인과의 오찬. ▲『나는 필사즉생,필생즉사의 각오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4월28일 현충사 다례행제. ▲『교육개혁은 국민학교 교실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5월2일 전국교육장 연수. ▲『경제외적인 이유로 기업이 고통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정치적 배려로 특혜를 받는 예는 더욱 없을 것이다.그러나 국가와 국민에 누를 끼치는 기업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6월22일 건설진흥촉진대회. ▲『정부는 기본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8월9일 신경제 추진회의. ▲『세무조사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되며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엄정한 조사를 받아야 한다』­8월17일 국세행정 실무자 오찬. ▲『모든 것이 다 깨끗하게되기는 참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이 나라의 부정부패는 너무도 뿌리가 깊게 박혔다.로마제국이 망한 것은 외침이 아니라 내부의 부정부패 때문이었다』­9월17일 세계한인 상공인 접견. ▲『비용이 많이 드는 정치는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를 수반할 수 밖에 없다』­10월14일 전국여성대회 치사.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점에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이제 「빨리빨리」와 「적당히 그냥」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10월24일 특별담화문. ▲『오늘의 국제사회에서는 적도 없고 친구도 없으며 오직 경쟁자만이 있다』­11월10일 APEC정상회담 출국인사. ▲『모든 나라들이 오늘을 살아남기 위해,또 차세대의 번영을 위해 뛰고 있다.이 대열에서 한발짝이라도 뒤지면 우리는 후손들에 의해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다』­11월19일 APEC정상회담 귀국인사. ▲『위대한 국민일수록 역사를 창조하고 불행한 국민은 역사에 끌려다닌다』­12월24일 청와대 국무회의. ▷95년◁ ▲『내가 야당을 하던 시절에는민주주의가 없고 언론의 자유도 없었다.지금은 언론의 자유가 너무 많고 아무거나 쓴다』­1월6일 연두기자회견. ▲『세계화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옛 껍질을 깨고 새로 태어나고자」하는 결단이며 차세대를 위한 개혁이다』­1월26일 세계화구상 관련 연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후회하는 사람이다.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지난 2년동안 혼신의 힘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2월25일 취임2주년 기자간담회. ▲『지방선거는 정치인이 아니라 살림꾼을 뽑는 것이다.지방자치제가 결코 정치투쟁의 무대가 돼서는 안된다』­4월17일 서울시순방. ▲『가장 개혁이 안된 곳이 정치와 언론이다.언론은 오보하고도 사과하지 않는다』­4월25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오찬. ▲『임기동안 헌법을 개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4월26일 기자간담회. ▲『신문사들은 20∼50%를 무가지로 찍어 전부 쓰레기로 버리고 있다.신문사가 쓰레기를 줄이자고 한 말은 거짓이다』­6월9일 확대경제장관회의. ▲『차기 대통령은 세대교체된 새인물 중에 나올 것이 확실시된다.또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는 강력한 대통령제가 적절하다』­6월19일 미국 타임지 인터뷰. ▲『지방선거의 결과는 내 부덕의 소치다.변화와 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국민과 함께 하겠다』­7월5일 민자당 의원과의 청와대 조찬. ▲『국민의 대다수가 정치지도층의 세대교체를 갈망하고 있다.국민적 열망에 비춰 이를 실현하는 것이 나의 책무다』­7월21일 미국 비즈니스위크 인터뷰. ▲『개혁으로 소수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싸워서 이겨야 한다』­7월27일 워싱턴주재 한국특파원과의 간담회. ▲『두려움없이 변화와 개혁을 통해 대도와 정도를 걸어가겠다는 생각에 변함없다』­8월1일 민자당 상근당직자 및 당무위원 초청 조찬회.
  • “식민지 지배·침략 통절히 반성”/일 총리 종전50주년 담화/전문

    ◎전후문제 성실히 처리… 아태국에 신뢰 쌓을터 지난 대전이 종말을 고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다시금 그 전쟁으로 인하여 희생되신 내외의 많은 분들을 생각하면 만감에 가슴이 저미는 바입니다. 패전후 일본은 불타버린 폐허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 왔습니다.그것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그것을 위하여 기울인 국민 여러분 한분 한분의 영지와 꾸준한 노력에 대하여 저는 진심으로 경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여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진 지원과 협력에 대하여 다시 한번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또 아시아·태평양 근린제국,미국,나아가 구주제국과의 사이에 오늘날과 같은 우호관계를 구축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본은 평화롭고 풍요로워졌지만 우리는 자칫하면 이 평화의 존귀함과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특히 근린제국의 국민들과 협조하여 아시아·태평양지역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배양해 나가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정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히 현대화에 있어서 일본과 근린 아시아제국과의 관계에 관한 역사연구를 지원하고 각국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하여 이 두 가지를 축으로 하는 평화 우호교류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또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전후처리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와 이들 나라와의 신뢰관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저는 앞으로도 성실히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전후 50주년을 계기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에의 길을 그르치지 않는 것 입니다. 우리나라는 멀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제국의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또 역사가 초래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패전의 날로부터 50주년을 만지한 오늘,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서서 독선적인 민족주의를 배척하고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협조를 촉진하고 그것을 통하여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나가야 합니다.동시에 우리 나라는 유일한 피폭국으로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를 지향하며 핵확산금지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긴요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이며 희생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의지할 곳은 신의만한 것이 없노라」고 합니다.이 기념할 만한 때에 즈음하여 신의를 시정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내외에 표명하며,저의 다짐의 말씀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 지자체장 인기영합 말라(사설)

    민선단체장시대 출범이후 쓰레기와 불법주차단속 등 기초질서가 무너지고 그린벨트훼손 등 불법행위가 급증하고 있어 우려된다. 지자제의 참뜻은 기초적 민주주의를 통해 주민들의 복지와 편의를 증진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그러나 최근 전국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기초질서 문란행위는 지자체의 느슨한 단속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대상이다. 지난 1월에 실시,정착단계에 들어선 쓰레기 종량제가 7월들어 단속소홀을 틈타 규격봉투 미사용,골목에 함부로 버리는 행위 등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한다.단속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서울시의 경우 7월 이후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건수는 4∼5월에 비해 25∼50%가량 줄었고 불법주차단속도 완화돼 하루 최고 1만5천건에서 3천여건으로 감소했다.말할것도 없이 민선 구청장들의 그릇된 인기영합 행정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일관되게 지켜온 그린벨트의 규제도 최근들어 수도권지역에서 불법건축물 증·개축,쓰레기 매립장 불법설치 등 훼손사례가 현저하게 늘어나고 있다.그동안 우리가 합의에 의해 공들여 쌓아올린 「공동의 이익」을 무너뜨릴 수 있어 걱정스럽다. 단체장들은 주민들의 표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선거기간중 주민들에게 많은 공약을 한 것은 사실이다.따라서 선거구민들을 위해 편의와 이익을 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그것이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잘못된 행정」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그런 행정은 법과 질서를 뒤흔들어 혼란을 자초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방의 어느 단체장은 「쓰레기 규격봉투 폐지론」을 편 일까지 있다.국가적인 중요정책목표가 단체장들의 일시적 인기공세에 밀리거나 훼손되어서야 되겠는가.단체장 취임이후 징후를 보이고 있는 지나친 「지역 이기주의」와 함께 앞으로 크게 경계해야 할 과제다.지역주민을 위해서는 「인기행정」이 아니라 「봉사행정」이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한통노조 중재안 받아들여라(사설)

    노조 활동은 어디까지나 법테두리 안에서 진행되어야 보호받을 수 있다.실정법을 무시한 「치외법권적 투쟁」은 만용과 집단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특히 공익 사업장의 노조활동은 국민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법질서 안에서의 노동운동」이라는 대원칙이 생명이다.그렇지 못할 경우 여론의 지지나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지난 10여년간 우리 노동운동사에서 배운 값진 교훈이다. 한국통신노조가 올해 임금협상등에 대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재정안과 관련하여 30일 부산역 광장에서 규탄결의대회를 열고 앞으로도 장기적인 투쟁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노조는 임금인상률등 중재내용이 회사측이 제시한 수준보다 떨어져 내년 4월 총선까지 지구적인 대응에 나설 자세다.장기적인 통신불안이 우려되는 바다. 한통사태는 지난 5월 중순이후 국가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통신대란」의 우려를 불러 일으켜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또 장외투쟁으로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공권력이 투입돼 노사문제가 노사정과 종교계의 문제로 확대되는 등큰파문을 일으켰다. 노조는 사측의 중재 요청이 있기전부터 직권중재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중재가 결정나면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주장했었다.이번 중재재정 결정 이후의 사태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노조가 이미 파업을 결의한 상태고 그 시기와 방법을 확정하는 과정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중재재정은 법률상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만큼 이제 한국통신은 법률상 노동쟁의가 소멸된 상태고 노조측의 단체행동은 무조건 불법으로 간주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노조가 중재재정 내용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그럴 경우 노조는 중노위에 재심절차를 거치고 그 결과에도 불만일 때는 다시 15일안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합법적인 절차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이를 무시하고 단체행동에 나선다면 노동 관련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 삼풍유족들 이래선 안된다(사설)

    삼풍참사 희생자 합동위령제에 참석,헌화하던 조남호 서초구청장이 유가족들에게 20여분간 집단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으며 실명의 위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삼풍참사유족들의 아픔과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나 위령제에 참석,조의를 표하고 분향중이던 공직의 구청장을 집단 폭행한 것은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삼풍참사가 발생 한달이 넘도록 사망자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더욱이 1백여명이 실종상태로 남아 있어 희생자 유족들의 불만과 분노야 오죽하겠는가.구조작업의 지연,실종자 처리과정상의 오류,그리고 보상문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과 삼풍백화점 개설과 관련한 구청 공무원의 비리는 그동안 지탄을 받아 왔다.당국은 이같은 문제들에 대한 검증을 하고 있으며 현재 사법처리가 진행중이다. 조구청장이 삼풍백화점 매장 증설 인허가시 관선 구청장으로 재임했다는 사실이 이번 폭행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그러나 조구청장은 이미 이와 관련해 조사를 받은 바 있고 그에 대한 사법처리는 사법당국에 맡겨야 할 일이다. 더욱이 이날 합동위령제는 종교단체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행사이며 조구청장은 개인자격이 아닌 지역주민의 대표로 위령제에 참석한만큼 그에게 집단폭행을 가해서는 안되는 일이다.더욱이 조구청장은 상반신 알몸이 드러날 정도로 옷이 모두 찢긴 채 유족들에게 쫓겨 2백여m를 달아나다 지나가던 승용차를 잡아타고 피신해야만 했다.범죄자에 대해서도 이럴 수는 없다.TV를 지켜본 사람이면 누구나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동안 국민과 여론은 삼풍백화점건물 건축과 관리의 총체적 부실과 관련있는 책임자들에 대한 비판과 처벌,그리고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의 불행에 대한 동정으로 일관해 왔다.그러나 유족들이 지난번 폭력시위에 이어 이번처럼 법치정신을 무시한다면 그러한 국민적 동정과 성원에 동요가 생길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방사선기기 관리 잘해야(사설)

    부산의 방사성동위원소 감마선 조사기 도난사건은 위험한 방사선기기의 취급이 얼마나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유출되면 암유발등 인체에 치명적 위해를 가져오는 방사성물질이 노상에서 차량째 도난당할 정도라면 그 관리 허술의 실상을 알만하다. 방사선기기의 취급에는 당연히 방사성동위원소 취급면허나 감독면허 소지자가 입회,그 지시와 감독에 따르기로 규정돼 있으나 이번 사고에는 무면허 직원이 작업을 맡았던 것이다.말할 것도 없이 기본적 안전수칙 위반이다. 감마선조사기를 사용하는 비파괴검사업체나 방사성동위원소 취급업체가 최근 부쩍 늘어나 전국에 1천여개소나 된다.이에 비해 필수적인 감독면허나 일반면허 소지자는 2천7백여명에 불과해 절대수요에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결국 방사성동위원소 취급에 관한 안전수칙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더구나 대부분 영세업체인 탓으로 안전요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이들 업체들은 기술이 낙후한데다 과당경쟁으로 인해 효과적인 안전관리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방사성물질 사용의 필요성은 점점 확대되고 있으나 이에 따른 안전대책과 관리는 제자리걸음이어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방사성물질 취급업체에 대한 점검·관리는 현재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연1회 실시하고 있다.그러나 검사요원의 태부족으로 형식적인 검사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과기처 위탁기관인 안전기술원 한 군데서 전국 1천여 업체· 기관을 점검한다는 것도 무리한 일이다.그것도 고작 13명의 검사인원으로 어떻게 탄탄한 안전점검을 해낼 수 있겠는가.조사대상의 증가에 따라 검사요원의 증원도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방사성동위원소는 여러 분야에서 편리하게 이용되고 있지만 그 치명적인 위험성은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 일일일선운동을 생각해 본다(박갑천 칼럼)

    국민학교때의 교장선생님이 생각난다.자그만 몸집의 전형적 일본사람.그는 어느날의 조회에서 일일일선운동을 역설했다.하루에 좋은일 하나씩만 해나가자는 말이었다.멀쩡한 자기돈 1전짜리를 가지고 교장실에 들어가 운동장에서 주웠노라고 했던 「거짓말선행」이 민주스러워진다. 그는 어쩌면 고대로마의 황제 티투스의 행적을 읽었던 것인지도 모른다.인두세·통행세등 갖은 명목으로 세금을 거둬들이다가 나중에는 공중변소세까지 받자고한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영바람을 눌렀던 사람이다.그가 아버지 뒤를 이어받자마자 곧 저 유명한 베수비오화산 폭발이 일어난다.이때 헌신적으로 구제와 뒷수습에 나섬으로써 그는 국민들의 경모를 받는다. 이 티투스황제의 생활철학이 일일일선이었다.그는 국민을 위해 혹은 인류를 위해 이바지할수 있는 일을 하루 하나씩만이라도 해나가자고 마음먹었다.또 그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도 기울였다.그러나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어떤날 그런 뜻이 펴지지 않았다고 생각되었을때 그는 측근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푸념했다고 전해진다.『아미키,디엠 페르디디(Amici,diem perdidi:친구여,오늘을 헛되이 보냈구나)』 「명심보감」을 펼치면 그 첫머리 계선편에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한 마음이 스스로 싹터 일어나느니라』 그러기 때문에 날마다 착한 마음을 일으키라는 뜻이다.말하자면 일일일선운동의 탯줄을 이루는 말이었다고도 하겠다.그것은 바로 「하늘이 복으로써 갚는」(천보지이복)길을 여는 일이기도 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서 피어난 자원봉사하며 헌혈의 물결은 일일일선 아닌 십선·백선의 마음들이었다.설사 그런 재난의 현장에까지 마음쓰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서분서분한 마음들을 가꾸어 나갔으면 한다.굳이「거창한 선행」만을 생각할 일은 아니다.거리에서 쓰레기 하나 줍는 일이나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도 선행이라 못할 것이 없다.「명심보감」의 가르침 그대로 그러한 선의는 염의없고 주접스런 마음을 누르는데로 이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선을 행하면서 선임을 의식할때 벌써 선에서 멀어진다는 말은 지나치게 철학적이다.선을 의식하는 선이라도 얼마나 목마르게 기다려지는 오늘의 각박함인가.「자그만 선 하루 4천만가지」의 우리사회에는 명지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 스탈린·주은래 회담(모스크바 새 증언:26)

    ◎모,주은래 모스크바 파견… “휴전하자” 설득/“인명손실 막대… 김일성이 전쟁 원치 않는다”­주은래/“전쟁 끌면 끌수록 미에 불리” 강경입장 고수­스탈린 스탈린이 모택동,김일성 두사람의 거듭된 휴전 조기타결 요청을 묵살하자 모택동은 주은래를 모스크바로 보내 담판을 짓게했다.물론 이 노력도 스탈린의 마음을 돌려놓지는 못했다.다음은 A.비신스키와 N.페데렝코 두사람이 기록한 메모랜덤으로 52년 8월20일 스탈린·주은래 두사람의 회담내용이다.(러시아 국립문서소 관련 메모랜덤중 54∼72쪽) 스탈린의 입장을 잘 아는 주은래가 먼저 전쟁 옹호론부터 개진했다. 『주은래는 전쟁을 계속하는 게 유익하다는 모택동동지의 뜻을 전했음.왜냐하면 그럼으로써 미국이 새로운 세계대전을 준비하지 못하게 막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음.주는 그러나 김일성이 매일 당하는 인력손실이 우리가 미군으로부터 송환받으려는 포로숫자보다도 더 크기 때문에 전쟁계속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음. ○식량·무기 원조 약속 이 말을 들은 스탈린은 「모동지의 말이 옳다.이 전쟁은 미국에 큰 곤란을 안겨주고 있다.북한은 인명손실 외에는 잃는 것이 없다」고 답했음.특히 미국은 중국군이 조선에 참전한 뒤부터 이 전쟁을 서둘러 끝내고 싶어한다고 스탈린은 말했음.필요한 것은 인내라고 강조하며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계속했음.물론 많은 인명을 잃은 조선의 입장을 이해함.하지만 이 전쟁은 명분이 큰 전쟁임을 이해해야함.이번 전쟁으로 미군의 약점이 들어났음.24개국 군대가 전쟁을 오래 지탱할 수는 없음.조선동지들을 계속 도와주어야함. 주은래가 조선에 식량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자 스탈린은 빵 원조를 늘릴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주은래는 식량,의복등은 중국이 조선을 도와줄수 있지만 무기는 중국이 도와줄 수 없다고 말했음.그러자 스탈린은 추가무기원조를 해줄 수 있다고 확답했음.스탈린은 「조선에 대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음』 이 메모랜덤은 이어서 두 사람의 대화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했다. 『주은래=우리는 협상에서 미국에 어떤 양보도 하지 않겠음. 스탈린=만약 미국이조금이라도 양보하면 받아들이고,그리고는 다른 문제를 계속 다룰 것. 주은래=적어도 1∼2년은 전쟁을 계속할 준비를 갖추어야함. 스탈린=동의함. 주은래=미국이 전쟁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는 동지의 분석은 전적으로 옳음.이 전쟁에 전위역할을 함으로써 중국은 세계대전을 방지하고 있음.만약 우리가 조선에서 미국을 저지하면 최소한 15∼20년을 세계대전을 연기시키는 것임.그 다음 미국은 3차대전을 일으킬 힘을 영원히 잃게될 것임. 스탈린=옳은 말임.미국은 조선전쟁 이후 큰 전쟁을 일으킬 능력을 잃게 됨.그들의 힘은 공군력,원자탄에 있음.영국이 미국을 위해 싸우지는 않을 것임.미국이 만약 이번 전쟁에서 패하지 않으면 중국은 절대로 대만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할 것.미국인들은 모두 장사꾼이고 미군들은 모두 투기꾼들임.전쟁에서도 그들은 사고파는 일을 함.독일이 프랑스를 정복하는 데 30일이 걸렸음.미국은 벌써 2년이 지났는데도 작은 조선땅을 점령치 못하고 있음.미국의 무기는 스타킹,담배 따위의 물건임.미국은 세계를 점령하겠다고 하면서 작은 조선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음.원자탄,공습에 의존할 수 있겠으나 그런 방식으로 전쟁을 이길 수는 없음.지상군이 필요한데 미군은 지상군 숫자도 적고 허약함. 주은래=조선동지들은 남조선을 공습하는 방안을 생각중이나 옳은 일인지 확신치 못하고 있음. ○공군력 사용엔 반대 스탈린=공군은 국가의 것임.중국의용군이 국가 소유인 공군력을 사용해선 안됨』 주은래는 이어 북한의 입장이라며 새로운 공세작전을 시작하는 방안을 스탈린에게 타진했다.그러면서 중국은 김일성에게 새로운 공세작전 개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스탈린에게 밝혔다. 『스탈린=협상진행중 전략,전술을 막론하고 공격작전을 시작해서는 안됨. 주은래=중국정부는 판문점의 협상을 계속해야한다고 생각함.아울러 중국은 2∼3년 더 전쟁을 계속할 준비를 하고 있음.중국은 소련이 비행기,포,탄약을 추가지원해 주기를 바람. 스탈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겠음.조선내 사기는 저조한지. 주은래=매우 저조함.압록강의 발전소가 폭격당한 뒤 특히 나빠졌음.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휴전을 하고 싶어함』 스탈린은 미국이 제일 즐겨하는 전략이 위협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미국은 중국에 위협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조선동지들은 겁을 먹었는지 물었다.주은래는 조선동지들이 조금 불안해하고 있다고 답했다.그는 『일부 조선지도자들이 겁에 질려 있다』고 말했다.스탈린은 자기도 김일성이 모택동 앞으로 보낸 전문을 읽어 그런 사실을 잘알고 있다고 했다.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게 스탈린의 주도로 끝났다. 사실 스탈린은 1년 전 전황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던 때부터 이같은 입장을 주장했다.51년 8월29일에도 그는 모택동앞으로 전문을 보내 휴전회담에 중립국 대표를 감독으로 참여시키자는 모의 제의를 일축한바 있다.(전문번호N49 54). 『협상성사를 더 원하는 쪽은 미국임.따라서 감독자격으로 중립국 대표들을 협상에 참여시키는 동지의 제의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함.그런 제의를 하면 자칫 우리가 협상타결을 더 원하는 것으로 미국에 비쳐져 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가 있음』 당시 이 전문을받은 모택동은 바로 이튿날 답전을 보내 중립국 감독대표 참여방안을 철회한다고 밝혔다.이후에도 스탈린은 기회만 닿으면 전쟁을 끌수록 미국에 불리해진다는 논리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다시 52년 상황으로 돌아가보자.9월14일에는 유엔기들의 평양시 공습이 있었고 협상교착으로 인한 무고한 인명피해는 날로 늘어만 갔다.그러나 스탈린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52년 11월2일 소련은 당정치국 결의문을 채택,전쟁계속을 거듭 천명했다.(정치국결의안NBP2/19N2) ○전쟁계속 거듭 밝혀 『소련과 미국이 비밀협상을 진행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함.미국은 세계 여론에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이 소문을 굳이 부인하려하지 않음.우리는 공개적으로 이 소문을 부인해야함.왜냐하면 조선에서 적대행위를 계속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유익하기 때문임』 반면 직접 의용군을 직접 참전시킨 모택동은 스탈린과 달리 1년전부터 휴전의 필요성을 완곡하게 내비쳤다.51년 11월11일 모택동은 스탈린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전문번호N25 902) 『지난 2개월간 전선에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고 미국내에서 군사행동을 중지해야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어 미국이 휴전조건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아졌음.그럼에도 미국정부는 아직 국제상황을 긴장상태로 유지하려고 함.미국은 적극적인 정보활동과 유화 제스처를 병행하면서 실제로는 회담을 지연시키려하고 있음.…중략…적은 현전선을 휴전선으로 만들자고 요구하고 우리는 이에 반대하고 있음.다만 우리는 38도선 휴전문제를 정치협상 개시 때까지 유보할 의향은 있음.왜냐하면 현재 38도선 이남에 우리가 점령중인 서해안의 강 하구 구릉지대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임.이곳은 농업생산량이 풍부할뿐 아니라 서울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되기 때문임.…중략… 우리는 금년중 군사행동 중단을 성사시키고자 함.또한 적이 휴전회담을 지연시키고 결렬시킬 경우에 대비하고 있음.또한 휴전회담이 반년 내지 1년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현위치를 고수하기 위한 인적,물적 자원을 비축하고 있음.협상을 통한 평화달성이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사실임.하지만 우리가 협상지연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님』 모택동이 보낸 전문에서 알 수 있듯 휴전협상과 관련,모택동과 스탈린 두사람은 분명히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있었다.모택동이 현상황에서 휴전이 유익하다고 솔직히 말한 반면 스탈린은 휴전을 더 바라는 쪽은 미국이니 협상에서 절대 양보하지 말고 밀어부치라는 강경입장을 고수했던 것이다. ◎새로 밝혀진 사실/스탈린,종전요청 끝까지 거절/한국전쟁 이용 미에 대응 속셈 이번 회에는 전쟁중인 52년 8월 주은래가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하여 스탈린과 회담하였다는 사실이 나온다.물론 최초로 공개되는 사실이다. 주은래의 갑작스런 모스크바 방문은 중소간에 커다란 견해차가 있었음을 의미한다.그것은 전쟁의 계속 여부 문제였다.주은래는 중국의 의견은 일단 접어둔 채 김일성과 북한의 입장을 들어 완곡하게 전쟁의 종결을 건의하고 있다. 그러나 스탈린은 『북한은 잃는 것이 인명 뿐』이라며 이 전쟁이 미국에게 끼치는 큰 곤란을 들어 북한(과 중국)의 종전의사를 한마디로 거절하고 있다.스탈린의 의도와 차가운 성품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결국 주은래도 『이 전쟁에 전위역할을 함으로써 중국은 세계대전을 방지하고 있다』고 동의하고 있다.그러나 51년 11월11일 모택동의 전문은 『금년중 군사행동을 중단시키고자 한다』는 강한 종전의사가 분명하게 들어 있다.중국은 막대한 손실을 입으면서도 스탈린의 강한 전쟁지속 의도로 인해 어쩔 수없이 계속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스탈린은 교묘하게도 중국의 대만통일 의지를 이용하여 이번 한국전쟁에서 미국을 패배시켜야만 중국의 통일이 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기까지 하고 있음도 밝혀졌다. 스탈린의 모든 전략전술의 초점은 한반도 통일이나 동북아 정세가 아니라 오직 미국에 대한 대응과 세계적 규모의 대립의 방지를 위해 한국전쟁을 이용하는데 놓여 있었다.이 문제와 관련,52년 11월2일의 소련공산당 정치국 결의는 충격적이다.『조선에서 적대행위를 계속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 북한,대화에 성실 보여라(사설)

    제2차 남북한 쌀회담이 3차회담을 오는 8월10일에 갖기로 합의했을뿐 구체적인 결실을 얻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그러나 우리는 이번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3차회담을 갖기로 함으로써 남북한 당국간 대화채널을 계속 가동할 수 있게 된 점,문서화하지는 않았으나 북한대표가 우성호선원의 조기송환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우리가 제공한 쌀을 다른 목적으로 전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점 등이 긍정적인 요소들이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대표들이 비교적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협상자세를 변화의 조짐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일본쌀을 받아들이고 미국과의 본격적인 관계정상화를 위한 통과의례로 이 회담을 이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3차회담 장소도 우리 땅이 아닌 북경으로 한 것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같은 핏줄끼리 쌀을 주고 받는 민족 내부의 문제를 어째서 외국땅에서 계속 논의해야 한단 말인가. 어쨌든 북한당국은 쌀 추가제공 여부가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명심해야한다.우리는 북한 당국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고 있다.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식량난의 북한에 쌀을 제공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그러나 북한도 이에 상응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따라서 북한당국은 일체의 대남비방을 중단하고 우성호선원도 3차회담 이전에 돌려보내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말로서의 약속뿐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귀중한 쌀을 북한 동포들을 위해 조건없이 보내주고 있는 데도 북한 당국이 죄없는 우성호선원들을 계속 억류하고 우리 정부에 대해 마냥 욕설만 퍼붓는다면 우리 국민 감정이 쌀제공을 더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그렇게되면 우리정부도 국민감정을 무시하고 쌀제공을 계속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쌀 회담이 경제협력등 남북관계개선의 물꼬를 트는 돌파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그런 의미에서도 북한 당국의 슬기로운 선택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 6·27 선거결과가 말하는것/이성복 건국대교수·행정학(기고)

    ◎「지역 할거」 정치현실 그대로 표출/지방정부 관리경험 축적한 「정치 엘리트」 충원 길 트고 6·27 선거결과에 대한 평가가 분석되기 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과 신당의 출현 등이 발생,국민들을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선거는 여당인 민자당에게 국정운영에 대한 반성과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져다 주었으며 야당인 민주당과 자민련에게는 집권에의 기대를 가져다 주었다.이는 지역분열주의와 여당의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나타난 결과다. 이번 선거는 정계은퇴 및 지방자치를 중단시킨 정치인이 재기하게 만든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이들은 지방선거와 관련이 없는 정부형태까지 거론하며 국민들에게 지역기반 확인을 강요했다.또한 선거결과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면서 지방선거 이후 정당의 창당 등을 통해 정계의 지각변동을 가져다 주고 있어 35년만에 시작된 지방분권체계의 진행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혼돈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신당의 출현에 대하여 반대여론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지만 절대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계층이 있으며 정확한 지지분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신당의 창당이 옳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한 판정은 국민들이 내년 4월의 국회의원 선거와 내후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판정을 유보하려 한다. 6·27선거는 지역주의의 심화를 가져다 주고 일부 정치인들이 지역분열을 선동하는 발언으로 국민에게 투표를 요구하였으며 실제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선거 결과가 나타났다.따라서 합리적인 가치의 판단이 요구되는 발전된 정치형태하고는 거리가 먼 결과가 발생되었지만 한국정치의 현재 수준이라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정치지도자들은 스스로 국가적인 지도자에서 지역의 지도자로 격하되는 형태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7선거가 갖고 있는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다.가장 의미가 있는 것은 지방자치를 통하여 행정관료의 행태가 봉사행정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국민주권 국가의 성립과정이 선진국가와는 상이하게 전개돼 행정관료가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의미가 다른 각도에서 해석되고 있다.절대왕권,식민통치 및 군부통치시대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행정관료집단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행태가 실제적으로 지배하는 가치로서 제도화 되는 것이 존재하지 못했다.따라서 어떤 정부형태가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행정관료집단의 존재여부가 정치발전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또 다른 의미는 다양한 학연을 배경으로 하는 정치엘리트 집단이 이번 선거를 통하여 충원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중앙보다 적은 지방정부의 관리경험을 축적하게 됨으로써 국가경영을 담당할 수 있는 세력을 학습시키는 기반을 조성하였다. 지방분권의 이러한 측면을 정치인들은 인식해야만 한다.국민들의 기대를 정치집단이 저버리게 될 때 국민들은 다음 선거에서 투표를 통하여 정치인들을 심판하려고 할 것이다. 지난 91년 걸프전쟁으로 인기가 올라갔던 부시 전미국대통령이 그다음해 선거에서 패배하였고 93년의 개혁정치로 인기가 올라갔던 김영삼대통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패배를맛본 것은 국민들이 정치집단의 행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6·27선거에서 나타난 결과를 진솔하게 수긍해 대처하지 못하는 정치집단은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맞을 것인가는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특정지역에 의존하는 정파가 있으면 있을수록 그에 반하는 다른 정파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과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만에 빠진 세력이 있으면 있을수록 국민의 심판은 정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정치집단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정부의 형태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정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며 이를 명심하고 있는 정치집단이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국민이 기대하는 정치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대학교수채용 비리 청산돼야(사설)

    가장 청렴해야 할 대학사회에서 아직도 교수채용 전제의 금품수수 관례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서울의 두 전문대학교 학장을 비롯한 교수 5명이 전임강사 채용을 조건으로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거나 수배된 사건은 개혁의 최우선 순위인 교육개혁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불거져 나왔다는 점에서 대학의 자율능력을 의심케 한다. 교육개혁의 핵심인 자율화는 대학의 양심과 책임을 전제로 한다.이를 전제로 그동안 정부가 직접 관리하거나 간섭해 오던 신입생선발권 등 입시행정과 총학장 선임권및 교수채용권 등 학사행정들이 각 대학에 되돌려졌다.대학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커졌음에도 구태의연한 대학비리가 상존하고 있다면 대학의 민주화 의지나 자율능력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문민정부 출범 2년반 가까이 정부가 성역없는 사회비리 척결에 역점을 두어 왔음에도 진리와 양심의 표상인 대학에 대해서는 그 특수성 때문에 자율정화와 민주화에 큰 기대를 걸어 왔음을 부인 못한다.그러나 일부 사립대를 중심으로 한 예체능계 입시부정과 강사채용 비리는 독버섯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한해 국내외 박사학위자들이 6천여명 배출되나 강단에 서는 사람은 2천여명에 불과해 비리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교수채용의 기준은 능력과 실력 그리고 인품이어야지 돈일 수는 없다. 대학이 맑아야 사회도 맑아진다.사회 각 분야에서 각종 비리가 횡횡하고 이로 인한 부실행정으로 대형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일부 사학의 강사채용비리는 대학사회 전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자초할 우려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대학의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인 만큼 대학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이 시대적 책임감을 통감하고 다시는 이같은 비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국민이 대학을 불신할 때 우리 교육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쌀추가제공,북한도 협조해야(사설)

    쌀 추가제공을 위한 남북한 당국자회담이 15일 중국 북경서 개최된다.이번에는 멀고 번잡스런 북경보다는 판문점이면 했으나 다시 북경으로 가게 되어 우선 아쉬움을 느낀다.주의제는 물론 쌀 추가제공 문제지만 우리측은 관계개선을 위한 북한의 성의도 촉구할 것으로 보여 북한의 대응이 주목된다. 1차제공 쌀수송이 인공기사건으로 한때 위기를 맞았으나 북한의 공식사과등 신속한 건설적 대응으로 순조로운 진행을 보이고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북한이 쌀수용 항구를 청진에서 남포등 5개 항구로 확대하는데 동의하는등 협조적 자세를 보인 것도 고무적 조짐이다.이같은 자세가 이에 그치지 않고 더욱 확대·발전되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북한도 우리의 쌀제공이 단순히 쌀이 남아돌아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식량난의 북한동포들을 돕겠다는 순수한 동포애 차원의 인도주의도 작용하고 있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개선을 바라는 소망에서라는 사실을 명심해주기 바란다.온국민이 모두 찬성하는 것도 아니며 일부국민의 반대도 강하다.우리 정부는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에 쌀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북한의 요구대로 우리 배에 국기도 달지않고 돈들여 표시없는 부대까지 만들어 쌀을 보내고 있는데도 북한이 대남 비방만 계속하고 있다면 우리 체면은 무엇이며 국민여론은 어떻게 되겠는가.크게 나빠지고 있다.이런것은 우리가 요구하지 않아도 북한이 알아서 시정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무조건의 쌀제공이지만 북한도 그럴 수 있는 분위기는 만들어주어야 한다.우선 비방중지와 그동안 우리가 해온 인도주의적 제의들에 대한 최소한의 호응이라도 보여야 할 것이다.우리측은 이번 회담에서 우성호 선원 송환을 촉구하고 남북 신뢰회복과 화해협력 분위기 조성을 위한 이산가족 상봉및 문화예술단 교환등을 제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의 성의있는 호응이 있길 기대한다.
  •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미 상원외교위 증언

    ◎가까운 장래의 미 외교정책 목표/미국은 한·일·중과 불필요한 대결말라 헨리 키신저 전미국국무장관은 13일 미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가까운 장래의 미국 외교정책목표」에 관해 증언했다.키신저의 증언을 요약한다. 냉전이후의 외교정책 방향을 어떻게 세워야할 것인가의 문제는 진정 미국이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난제중의 하나이다.냉전 때의 문제보다도 덜 위험하지만 한층 복잡해 거의 모든 기본요소가 동시에 사라져버린 세계에서 방향감각을 되찾는 것과 흡사하다. 너무도 많은 미국인들이 외교적으로 이뤄져야 할 일들이 모두 달성되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세계는 지금 틀을 짜면서부터 미국이 배제된 결정들이 가면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다.이같은 추세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미국은 건설적인 세계질서의 틀을 잡아갈 능력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제한없는 선택의 장으로 외교정책을 여기고 있고 국제적 약속에 대해 참여나 철회의 결정을 언제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이해한다.냉전에서 이긴 미국인들은 외교란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점점 줄어드는 대신 경제와 기술의 중요성은 급속도로 높아져 간다.현재 세계에는 비군사적 결정에서 힘을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6,7개의 주요국가들이 있다. 이같은 국제질서에서는 한 국가의 지배적 우세 아니면 힘의 균형 등 두가지 길만이 안정을 보장한다.그런데 국민 여론을 통한 미국의 정치는 곤란하게도 이 두가지 접근 모두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여왔다.헤게모니는 힘의 소진을,힘의 균형은 끝없는 긴장을 뜻하기 때문이다.새로운 세계질서는 균형개념에 바탕을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 판단이다.과거에는 정복을 통해서만 균형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경제와 기술이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미국 뿐아니라 모든 주요국가들은 지금 과도기에 놓여있다.이럴 때 이론적으로 미국은 지난 19세기 최강국 영국이 취했던 「아주 특별한 경우외에는 특정 편을 들지 않고 모두와 좋게 지내고자 한」「멋있는 고립주의」를 추구할 수 있으나 걸림돌이 너무 많다.또 미국은 자신들이 믿는 가치가 전세계에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다는 신념이 강한 국가다.세대간에 역사적 경험의 상이함이 정책결정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데 결국 배타적이지 않는 국익바탕 주의냐 아니면 소위 다자간 국제주의냐의 갈등으로 귀결된다고 할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외교노선은 다자간주의 쪽에 기울어져 있다.심한 국수적 고립주의자가 아니라면 국익과 국제 콘센서스를 양 극단으로 구별하지 않는다.실제 세계에선 뉘앙스의 차이일 따름이다.이런 점들을 명심한 뒤 유럽과 함께 현 미국 외교정책의 「사고지역」이라 할 아시아를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은 최근 수년간 때로 불필요하게 중국·일본등 여러 아시아국가들과 동시에 불화에 휩싸임으로써 아시아정세에서 나오는 이득을 얻는데 실패했다.미국은 아시아 주요국가들과 동시에 대결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외교정책의 좌우명으로 삼아야한다. 현재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은 극도로 취약해지고 있으며 대부분 국가는 과도기에 처해 있고 이같은 변형은 내부적으로 민족주의와 국제주의간의 긴장을 조성한다.기존의 동맹관계도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정치제도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꿔지는 중이며 외교정책의 방향도 똑같이 그럴 전망이다.자신을 낮추고 숨기는 정치시대는 끝나 한층 민족적이 되고 지금보다 훨씬 「정치적」이 될 것이다. 중국은 등소평으로부터 차세대 지도층으로의 권력이행이 거의 완료된 것으로 짐작된다.그럼에도 등이후가 안정되는 데는 수많은 변수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경제적 성장은 어쩔수 없이 정치체제로 하여금 최소한 산업정보사회에 발맞추는 시늉을 내도록 할 것이다. 한국은 통일에 대한 욕망과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마음을 휘어잡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아시아에서 경제의 세계화가 요구하는 국제주의와 정치적 결속에 큰 효과를 발휘하는 민족주의간에 긴장을 야기하고,미국의 정책이 변화의 와중에 있음을 감지한 결과등으로 현존의 동맹및 우방정책에 대한 재고압력을 일으키고 있다. 최후로 남아있는 분단국인 한국은 통일문제에 국가의 온 신경이 집중될 것이다.합법적인 상대로 취급해 주지 않으려는 북한의 전략과 맞서야 하는데 핵문제 때와 같이 북한은 미국과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미국은 북한의 경직성이 세계경제에서 배제된 데서 연유한 만큼 접촉을 통해 그들의 고립감을 풀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나 한국은 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갖고있어 충돌의 소지마저 안고 있다.나아가 한국은 중국 그리고 일본까지 자신의 통일추구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해서 민족주의적 성향을 확대하고 있다.따라서 중국과 미국이 계속 지금처럼 사이가 좋지 않다면 한반도의 상황도 나쁜 국면으로 빠질 수 있다. 미·중 관계가 조속하게 회복되지 않고 대립이 심화되면 미국의 일본에 대한 영향력은 극적으로 감소할 것이며,한국은 어쩌면 화염통으로 변할는지 모른다.
  • 미·중마찰의 악영향 우려한다(사설)

    이등휘 대만총통의 방미허용으로 표면화한 미국과 중국간의 불편한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중국은 그 보복으로 인권운동가인 중국계 미국시민권자인 해리 우씨를 전격 구속한데 이어 이미 허가했거나 서명단계에 있는 2개 미국회사의 대중투자 프로젝트를 철회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이에 맞서 미국도 중국에 대한 역보복 조치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은 이미 지난달 17일 주미 중국대사를 소환해놓고 있어 양국간에는 무대사관계라는,외교적으로 대단히 불행한 사태를 맞고 있다.79년 수교이래 최대의 외교적 불상사다. 우리는 한반도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갖고있는 두나라간의 이러한 마찰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염려하지 않을수 없다.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사태는 없을까 하는 것이다.양국간 불편한 관계의 뿌리는 옛소련 붕괴와 중국이 최근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데 따른 미국의 대중국 견제심리와 중국의 맞대응이다. 72년 상해공동성명 이래 양국관계의 일대 시련기라 할 수 있다.미국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중국 봉쇄론」이 제기되기도 하나 미국이 당장 중국 봉쇄 정책을 쓰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중국에 대한 봉쇄정책을 택할 객관적인 근거가 희박하다. 그러나 양국간에는 당장은 아닐지라도 마찰과 충돌의 가능성이 항상 내재해 있다.우리는 그러한 사태를 상정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우리는 미·중관계 악화가 동북아의 안정에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미·중은 동북아안정 유지가 양국의 국익에도 부합되는 동시에 공동의 책임이라는 것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아무튼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비하는 것은 않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며 최선의 방어책은 결국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이다.남북합의서 정신의 복구를 위한 노력이 요망되는 것이다.
  • “안전한 건설문화 다져 나가자”/민병열 (발언대)

    외국의 언론이나 국내의 언론에서 한국의 건설인들이 외국건설공사에서는 세계가 깜짝 놀랄정도의 성과와 성실시공으로 찬사를 받은바 있으나 국내 건설공사에서는 왜 부실공사라고 하는 명제가 항상 따라 다니고 있는지 의아해 하고 있다.건설공사에 따른 제도적 문제 기술자의 자질 혹은 자재의 문제 등 어딘가에 빈 구멍이 있는 것이다.우리는 이 빈 구멍을 빨리 찾아야 한다.혹자는 건설도 하나의 문화이기에 하루 아침에 변화될 수 없는 고질적인 병폐라고 치부할지 모르나 안전한 건설문화의 정착은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건설공사의 안전은 간단하다.정밀한 설계와 섬세와 시공,철저한 유지관리를 통하여 얼마든지 안전하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이와같은 논리를 모르는 건설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그러면 무엇이 문제이며 왜 대형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가. 건설인의 한 사람인 나 자신과 모든 건설인에게 묻고 싶다.구조물 설계시 내집을 설계하는 마음으로 기술자적 양심으로 정밀한 설계를 수행하였으며,성실한시공과 철저한 유지관리를 통하여 안전한 건설공사를 수행해 왔는지,외부의 압력과 금욕에 못이겨 적당히 타협한 일은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안전은 몇몇 관심있는 전문가의 소유물이 아니다.정부·기업인·근로자들이 다 함께 명심해야 할 대목을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건설공사의 초기단계인 구조물의 설계단계에서 지반조사·주변환경 등 충분한 사전조사가 이루어지고 그 조사결과에 따라 충분한 기간을 갖고 설계를 하는 것이 기본상식이다.그것도 짧은 기간내에 설계가 수행되므로 부실한 설계가 될 수 있으며 아울러 제도적인 문제로서 사전설계 심사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 시공의 문제로서 공사계약제도의 문제점과 현장에서 원도급자와 하도급자간 유기적 관계가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시공의 질적 문제보다는 짧은 기간내에 공정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작업 위주의 시공을 수행함으로써 공사의 품질 저하는 물론,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따라서 안전시공을 위해서는 근로자의 안전의식 고취,적정한 공사기간의 책정,건설안전제도의 정착과 의무화 및 현장안전관리를 체계화함으로써 공사의 품질향상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에 부가하여 정기적인 유지관리가 필요하다.영구적 구조물이란 존재할 수 없다.구조물이 완성된 후에도 천재지변이나 공기오염 등 여러요인에 의해서 구조물이 손상을 입게 되고 붕괴가 되는 경우가 있다.따라서 구조물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안전점검 및 진단을 통하여 보수·보강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이상에 언급한 사항은 극히 일반적인 문제점 및 개선방안이지만 건설공사 및 구조물의 안전성 확보에는 정책적인 문제·기술적인 문제·경제적인 문제·건설자재·건설기술자의 자질향상 등 검토해야 할 사항이 매우 많다. 사고발생후 책임의 전가,임시방편의 제도개선 및 대책보다는 이미 발생한 각종 사고의 요인을 철저히 분석하여 정부는 정부대로 보다 합리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사업주 또한 안전설계·시공·관리로 사회에 공헌하고 자사의 이익이 된다는 안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다져야 한다.또한 건설인들도이번 삼풍백화점 사고를 통하여 많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각 분야에서 기술자적 양심과 건설기술자로서의 긍지를 갖고 최선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건설안전은 정부·기업인·근로자 및 건설인 모두의 관심속에,그리고 지속적으로 시행되어야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말아야 할텐데라는 말이 정말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 사범대학의 눈물Ⅱ/신경호 화가·전남대교수(굄돌)

    오늘도 사대생들은 대학본부로 몰려갔다.연전이나 지금도 걸핏하면 총장은 동네북이다.아무나 제 맘에 안맞으면 앞뒤없이 두들긴다.정말이지 어른이 없는 세상에서 대학이라고 무슨 중뿔나는 재주가 있는가,속도 모르고 위 아래 없이 안팎없이 시끄럽다고 난리다.사대생들이여! 세상을 바꾸자 하면 그대들로 부터 생각을 바꾸어보아라.세상 천지에 어느 대학에서 대학만 나오면서 교직학점 채우기만 하면 교사자격증 주는 데가 사대 말고 또 있더냐,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국가가 책임지고 발령내주는 데가 또 어디 있더냐? 어딘들 시험을 거치지 않고는 안되는 법.그 좋은 시절 다 보내고 교원고시랍시고 쥐꼬리만큼 뿐 자리가 없다는 이 암담한 현실을 직시해 보라.어느 누구가 이 모양을 만들었느냐 묻지 말자.이럴줄 모르고 그대들 사범대학생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으리. 바야흐로 교육입국의 근원으로 거슬러 초심으로 바라보건데,오늘의 이 몸부림을 그대들 사범대학의 존립이라는 명분에 얽매어 좁은 관점에서 파악한다면 결국은 집단 이기주의라는 사시적 질타를 면할 길이 없음을 냉철하게 명심하여야 한다.모든 것은 변한다.더 큰 세상을 소유하기 위하여 지금은 과감한 변신을 감행해야 할 때임을 직시할 일이다.십수년전 미술교육과를 없애고 예술대학으로 통폐합하고자 하였을 때,오로지 우리들의 밥그릇 하나라도 챙겨야 한다는 일념으로 반대하였고,그 결과가 어떠했는가를 따져보면 지금도 그것은 추호도 부끄러운 판단이 아니었음을 알겠다.그러나 이제는 아니다.지금은 혁파의 선언을 해야할 때,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헌신하려는 누구라도 더 좋은 여건에서 연찬하여 나가도록 우리도 스스로의 벽을 허물고 더 넓은 바다에 뛰어들 때,언제 어떻게라도 내가 몸담을 수 있는 강단의 섬은 있다.그것은 이제 국가의 몫이 아닌 우리의 몫일 뿐,추호라도 잊지 않는다면 지금 그대들 사대생의 눈물은 눈부신 보석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믿자.
  • 떠오르는 휴전론(6·25내막/모스크바 새 증언:19)

    ◎“전세 불리”… 김일성,중·소 극비 방문/북경 이어 모스크바서도 “휴전유익” 의견 일치/소,대미협상 우위 노력 중 비행사단 투입 요구 전황이 크게 불리해지는 가운데 모택동은 전선이남으로 불시공격을 가해 적에게 타격을 가한 뒤 신속히 북으로 후퇴하는 식의 게릴라전법을 써보자고 스탈린에게 제의했다.그러나 스탈린은 이 전법이 한두번은 써먹을 수 있으나 위험부담이 커 그 이상은 곤란하다고 답했다.『영·미군은 금방 이 작전을 눈치챌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으로 후퇴하기 전 큰 손실을 입게 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스탈린은 한번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총공세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스탈린이 51년 5월29일자로 모택동에게 보낸 이 전문내용은 다음과 같다(전문번호 N3282.소련군총참모부 제8총국.대통령문서소 보관). ○“대규모 작전 필요” 이런 전술은 공격작전완료 뒤 주력군이 안전하게 철수하도록 후방방어를 훌륭하게 해줄 전력을 갖추었을 때 가능함.그러나 본인이 아는 한 인민군은 그런 전력을 갖추지못했음.영·미군은 북진하면서 차근차근히 새로운 방어선을 확고히 구축할 것임.이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며 이 또한 바람직한 일이 아님.모동지가 중국공산당이 장개석군대를 상대로 이 전술을 구사했음을 참고로 든 데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음.영·미군은 장개석군대 같은 오합지졸군대가 아님을 명심하기 바람.그들은 모동지가 임의대로 자기들의 병력을 하나하나 궤멸시키도록 절대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임.만약 평양이 다시 적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이는 조선인민군의 사기저하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적의 사기를 크게 올려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임.적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대규모의 전면작전을 준비해야 할 것임. 6월에 접어들며 전황이 점차 더 인민군에 불리해지고 있는 가운데 모택동은 스탈린 앞으로 다음의 전문을 보냈다.6월4일자로 팽덕회가 모앞으로 보내온 전황보고서였다.특기할 것은 이 보고서에서 팽이 전력의 열세가 점차 뚜렷해져 정면대결의 승산이 희박하다고 보고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전을 시작하겠다는 뜻을 밝힌 점이다(전문번호 N20406). 적은 다량의 포·탱크·항공기를 동원해 공세를 계속하고 있음.반면 아군은 이에 맞설 확고한 방어망을 구축하지 못했음.7월말까지 소총·대전차포·대공무기를 추가공급받으면 적극적으로 게릴라투쟁을 전개하겠음.적이 병력을 대규모로 증가시키지 않고 아군이 예측치 못한 작전미스를 범하지 않는다면 전선을 평양이남에서 저지할 수 있음.…중략… 적이 대규모의 병력·항공기·탱크·막강한 포를 보유한데다 사기까지 드높아 현상황에서 적을 차례로 격파하기는 쉽지 않음.따라서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해 전력을 흐트러뜨릴 필요가 있음.적이 전진할 때까지 당분간 기다렸다가 전진하면 후방에 게릴라부대를 투입시키겠음. 그러나 바로 같은 날 팽덕회는 전병력에게 총퇴각명령을 하달했다.이 명령문은 『전선이 너무 확대됐다.수송수단이 부족해 식량·탄약보급조차 힘들다.병력은 지쳤고 이제 남으로 더 진격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제5차 공격작전의 제2단계를 예정보다 앞당겨 종결짓고 병력을 제5차 작전의 제1단계를 시작한 지점으로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그곳에서 1개월 반 내지 2개월동안 병력을 재정비,강화한 다음 새로운 전투에 대비,훈련을 쌓도록 하겠다』는 비장한 어투를 담고 있다. ○휴전추진 모에 맡겨 팽덕회로부터 이 퇴각명령문을 보고받은 모택동은 이의 사본을 같은 날 즉각 스탈린에게 보고했다(대통령문서소.전문번호 N20412.모택동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 명령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이 휴식기간에 중국의용군사령부는 다음 사항을 이행한다.…중략… (2)우리군 내부에 심각히 만연된 우익풍조를 일소함.…중략… (4)항공기·대전차예비병력·대공포부대를 전선에 투입시킬 준비를 갖춤.(5)적의 후방에 게릴라부대 투입,전선을 확장해 적의 전력을 분산시킴.그렇게 해서 향후 아군 주력군이 작전을 펼치는 데 용이하게 함.아군병력은 6∼7일간 진격하고 나면 식량·탄약이 부족해지고 병력은 지치기 시작했음.반대로 적은 미리 대규모 기계화병력을 준비해 아군의 공격작전시 진격과 퇴로를 모두 중도에서 차단했음.우리는 이런 점을 미리 고려치 못했음.도보로 걷는 아군은 차량으로 이동하는 적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음. 이런 이유 때문에 공세작전 수행시에도 1차·2차·3차의 방어선을 만들어야 했음.새로 전선에 투입되는 병력은 훌륭한 장비를 갖춘 적을 상대로 싸운 경험이 없었음.특히 방어전경험은 전무했음.하급지휘관들의 질이 특히 형편없었음.기술적으로 잘 무장된 적을 상대로 용기 하나만으로 맞서 싸울 수는 없음.용기와 합리적인 리더십이 함께 갖추어져야 함.모택동 동지는 소규모전투에서 적을 패배시킴으로써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나아가 대규모패배를 안겨주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주문했음.지금같이 모험적인 공세를 계속하는 적을 상대로 해서는 이같은 전술이 가장 바람직한 것임. 이 명령문은 게릴라식 소규모전투를 통해 적을 괴롭히자는 전술변화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총퇴각결정이었다.이후 중·조선연합군은 적극적 방어전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이같은 상황악화로 인해 중공·인민군은 마침내 탈출구를 모색하기에 이른다.휴전문제가 북조선·중국 양측에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스탈린도 이를 무시할 다른 방도가 없었다.물론 휴전협상을 모색하면서도 동시에 전력을 강화하고 한치라도 땅을 더 차지하기 위한 소규모전투를 계속 수행해나갔다.아울러 이들이 내건 휴전협상조건도 매우 비현실적이고 적극적인 협상의지를 담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스탈린은 또한 자신이 직접 휴전협상에 나서기를 거부하고 이를 모택동에게 맡겼다.아울러 전쟁이 파장기미를 보이며 스탈린과 모택동 두 사람 사이에는 소련의 군사적 지원과 군사고문단 추가파견문제를 놓고 줄다리기가 벌어졌다.모택동은 끊임없이 새로운 원조요청을 내놓았고 스탈린은 갖은 이유를 달아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려고 했다.팽덕회의 철수명령이 떨어진 바로 이튿날인 51년 6월5일모택동은 스탈린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띄웠다(대통령문서소 보관.전문번호 N20448.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 ○“최소 8개사 보내라” 필리포프 동지께.조선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재정문제,바로 우리국경에서 군사작전을 벌이는 문제,적이 바로 우리 영토 후방에서 상륙작전을 벌이는 등 여러 심각한 문제를 겪었음.조만간 고강 동지를 모스크바로 파견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동지의 지시사항을 듣고자 함.현재 김일성 동지가 북경에 와 있음.김일성동지도 고강 동지와 함께 스탈린 동지를 찾아가 이 문제들을 의논하고 싶어함. 이 전문에 이어 김일성은 고강과 함께 모스크바를 방문했다.전쟁중 고위지도자의 동정과 관계되는 일은 모두가 극비였지만 특히 이 당시 김일성이 북경을 방문해 모택동을 만났고 이어서 모스크바로 가 스탈린을 만난 사실은 지금까지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극비사항이다. 김일성·고강의 방문을 받은 뒤 스탈린은 모택동 앞으로 전문을 보내 방문결과를 통보해주었다(51년 6월13일.스탈린이 모택동에게 보낸 전문.전문번호 N3557). 오늘 본인은 모택동 동무가 보낸 대표단과 조선대표단(김일성과 고강)을 만났음.이 자리에서 3가지 문제가 제기됐음.첫째 휴전문제.현상황에서 휴전은 유익하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음.둘째군사고문단문제.군사고문단이 그렇게 필요하다면 보내주겠음.셋째 60개 사단에 필요한 무기공급문제.우리는 이에 반대하지 않음.대표단들이 귀국즉시 동지께 보고할 것이기 때문에 상세한 사항은 이 전문에서 언급치 않겠음. 이와 함께 스탈린은 모택동에게 중국 비행사단 16개중에서 최소 8개 비행사단을 신속히 전선에 투입해줄 것을 요청했다.조만간 시작될 휴전협상에 앞선 일전에 대비하기 위한 전력강화의 일환이었다. ◎새로 발혀진 사실/김,51년 6월초 모·스탈린과 연쇄 대좌/휴전협상 문제 북·중·소 협의사실 판명 우리는 스탈린과 모택동의 전술적 이견이 단순치 않았다는 점을 이번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모택동은 장개석군대와의 내전때와 같은 게릴라전술을 주장하였으나 스탈린은 영미군은 장개석 군대가 아니라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대규모의 전면적인 작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이것은 ⑴전쟁의 결정 ⑵중국군의 참전문제 ⑶전세 역전 후의 북한정부의 구제여부 ⑷참전중국군에 대한 지원문제등한국전쟁과 관련한 결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자주 이견을 보여온 스탈린과 모택동이 휴전회담의 개시를 놓고 다시 한번 의견의 차이를 보였음을 의미한다. 자국의 병력으로 싸우기 때문에 모택동은 제한적인 전쟁을 하려했던데 반해 배면에 숨어서 중국군과 북한군으로 하여금 싸우게 하고 있는 스탈린은 대규모의 전쟁까지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회의 내용에서 밝혀진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전쟁중 김일성의 북경과 모스크바 방문사실이다.전쟁중 김일성이 북경과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모택동과 스탈린을 만났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특히 그것이 휴전협상의 개시를 앞둔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전쟁중의 휴전협상의 개시가 이들 공산3국의 깊숙한 논의와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전쟁을 결정할 때와는 달리 김일성은 이번에는 모택동을 먼저 방문하고 그다음에 스탈린을 방문하는 순서를 밟았다.아마도 스탈린의 결정을 수용하여 그대로 전쟁을 수행하기보다는 직접 참전하여 공동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모택동의 견해를 먼저 들어 둘의 의견합치를 본 뒤에 이를 갖고 스탈린의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북한의 전쟁 결정과 진행이 중국 및 소련과의 긴밀한 협의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들어 전쟁중 언젠가 김일성이 모택동과 스탈린을 방문하지 않았을까 추론을 하기는 하였으나 그동안 이를 증명할 자료는 물론 이러한 사실조차 한번도 증명되거나 공개된 적이 없었다.따라서 이번에 공개된 사실은 앞으로 한국전쟁을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중대한 기여를 할 것이 틀림없다 하겠다.
  • 서예가 여초 김응현(이세기의 인물탐구:77)

    ◎비학과 첩학을 접목한 온자한 서풍/우리 전통서예 존중,「옛것」 부활 노력/동방연서회 설립… 후학 7천명 양성/보통학교때 붓글씨 시작… 단 1점의 타작도 안써 「고졸하나 우둔하지 않고 활달하나 법도가 있고 염미하나 속되지 않고 웅혼하나 패도하지 않아 강과 유가 서로 돕고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룬다」,즉 『글자마다 생동미 넘치는 운필은 자연스러운 리듬과 균형미에 따라 「중화의 기」가 흐른다』는 뜻이다.이는 여초 김응현 서법에 대한 종명선 교수(서안교대)의 평이다.종교수는 현재 중국서협 학술위원이며 평론가,중국서법대가의 한 사람이다.지난 92년 한·중건교기념 김응현서법전에 붙여진 이 찬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경사범대 교수이며 당대 명서법가로 명성을 떨치는 계공은 여초의 서법을 전대의 대가인 추사와 비유하는데 아무 주저함이 없다.우선 두 사람이 모두 「금석고고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 비학과 첩학의 접목을 중시하여 자재로운 천취를 얻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단지 추사의 글씨가 「바람을 끼고 비를 몰고오듯 유유자적하게 걸어나오는 데 비해 여초의 서법은 유고유아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70년대 북경서 초대전 널리 알려지다시피 여초는 우리 서예계에서 옛것을 존중하여 전통을 부활시키며 이를 연구하여 마침내 새로운 것을 이뤄내는 데 전생애적 노력을 기울여온 원로다. 그는 일찍이 국제무대로 눈을 돌려 70년대 중반에 대북과 도쿄에서 각각 초대전을 가졌고 80년대말에는 본격적으로 중국본토에 진출하여 북경의 계공,상해의 사치유·왕북악등과 교분을 트면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북경 천안문광장 혁명기념관에서 개인전을 개최,연변·장춘·심양등을 순회하여 그곳 서예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중국여행중 발표한 「당대의 해서가 동국에 미친 영향」 「안진경이 한·일서법에 끼친 영향」제하의 논문은 「중원시대의 문자와 단군시대의 문자,중원서법과 고구려의 인연관계」를 정밀하게 파헤쳤고 「동방의 금석은 자발적으로 진전됐으며 서체 또한 중국 영향권에만 있어왔다는 통념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여 한·중 학자간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그러나 「심도 있는 견해와 견실한 입론,광활한 사로로 펼쳐진 그의 문장은 추호의 빈틈 없는 치학태도」로 평가되어 오히려 중국 서법가들의 공감과 호감을 산 바 있다. 여초의 초기의 서법은 주로 진의 왕희지,당의 구양순,원의 조맹부에 영향을 받아 「새벽바람 속의 잔월(효풍잔월) 같은 청려,대해파도 같은 웅호,뜬구름 스치듯한 표일,고하고 졸하며 기하고 위한 여러 글씨체를 지나」비학을 통한 광개토왕비체와 훈민정음체를 탐구하면서 「화려와 아첨(유미)을 몰아낸 강건한 주경을 성취」한 것으로 대찬되고 있다. 그는 18대째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대부명가의 후손이다.그의 증조부는 구한말 종일품벼슬을 지내다 경술국치때 순국한 김석진 학자이며 조부는 비서원승직을 지낸 동강 김영한,창문여고 설립자인 김윤동씨의 5남3녀중 3남으로 태어나 숭인보통학교에 다니면서 그는 벌써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고 휘문중시절 동몽선습과 명심보감,율곡의 격몽요결 등 옛명현의 시문에 접근해 있었다.그러다가 1944년 아무 연고없이 일경에 연행됐다가 풀려나온 데 대한 후유증으로 도봉동 초가에 묻혀 그때부터 법첩으로 독학한 것이 친형인 김충현·창현 등과 함께 서예의 길을 걷게 된 동기다. ○불의에 타협않는 성품 성품이 꼿꼿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그는 50년대 중반 「평론 없는 분야는 독립된 분야로 성립될 수 없다」는 자각에서 60년대초까지 스스로 필봉을 휘둘러 「붓에 먹을 찍어서 종이에 긋기만 하면 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문의 뜻도 모른 채 쓰거나 글씨를 그림그리듯 하거나 남의 글씨를 임서하거나 손끝의 재주로 숙달된 필체」가 아닌,「오랜 서법에 의해 연마되고 탁마된 고매한 인격에서 우러나온 작품」을 주장해왔고 국전 서예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선현의 가언경구나 명문장을 선택하여 민족의 나갈 바를 열어주는 진취성 있고 주체적인 내용」,그리고 「아무리 원로라도 공부하지 않는 원로」는 심사위원으로 추대할 수 없으며 「추호의 사정이 깃들이지 않은 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심사원 선출」을 역설하여 서예계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서예계의 난맥상을 쇄신한다는 차원에서 56년 체계적인 서예연구와 보급을 위해 지금의 동방연서회를 창립,전예해행초 오체의 철저한 연구와 훈련끝에 그동안 배출한 서예인만도 7천여명,서예전문지 「서통」을 지난 30년간 개인의 힘으로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다. 그가 평생을 두고 신조로 삼는 것은 노자의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라는 글귀다.「스스로의 만족됨을 알게 된다면 부끄러움이 있지 아니하고 그칠 바를 알아서 위태롭지 아니하여 오랠 수 있다」는 경구다. 그런 그에게 사욕이란 있을 수 없다.더구나 지난 91년 봄 손위 형인 창현씨가 「대화도중 갑자기 쓰러져 타계」하는 것을 보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인생」에 무상을 절감한 나머지 그해 여름 자신의 사재 18억원을 출연,「사람은 사라져도 세상에 무엇인가 의미있는 것」을 남긴다는 취지와 함께 동방연서회를 재단법인으로 재출범시켰다. 그는 지금도 새벽이면 도봉동에 있는 그의 집을 나와 아침 8시 서실이 있는 동방연서회에 도착,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서실은 글씨를 쓰는 책상외에 방안 가득히 서법에 관한 서적이 산적해 있고 행길가인데도 난향과 수석과 녹차향 때문일까,온자한 서풍이 감도는 속에서 그는 「오늘은 심선이 그려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엄숙히 자문해본다.낙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라도 그는 한점의 타작도 용납치 않으려는 주의다.그래서 한평생 붓을 잡으면서도 지금까지 아무 때나 기분내키는대로 가볍게 붓을 잡은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한다.심기가 평화롭고 사방이 청결하고 날씨가 화창하면 그날은 왠지 일점일획에도 오차가 없는 「정수」가 탄생될 것을 기대해 볼 뿐이다. ○세속적 취향과는 멀어 전보다 많이 옳은 말을 줄이고 일체의 세속적 취향에 타협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골프를 하고 싶어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에 일조」하는 것같아 철저히 외면한다.물론 서예와 관련된 모든 잡사에도 끼어들지 않는다.하오에는 문중 사람을 더러 만나지만 특별히 친분 있는 사람도,그렇다고 서로 소원할 필요도 없이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시기다.다만 그의 개인전을 집중적으로 주선해온 동방화랑의 서정철사장과는 30여년간 난향 같은 청교를 나눈다.가족은 부인 강영순 여사와 5남매,서예를 잇는 자녀는 없다.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안되는 것이 글씨다.서법은 쓰는 사람의 내면의 성숙과 외율의 조화이기 때문에 천질만으로도 부족하고 노력만으로도 미치지 못한다.따라서 서예는 미숙만이 있을 뿐 영원한 프로는 있을 수 없다」.이는 여초의 변이다. 그러나 그 서체가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어 「천외천,예술외 예술」로 찬사되고 있는 시점에 서 있다.명지대 진태하 교수의 평처럼 「고희를 내년으로 앞둔 여초의 세계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넘치는 가운데 원숙과 창로의 경지에 들어 혼연천성하고 묘합자연하여 자신만의 서법언어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이제 그로서는 「예술이상과 예술도에 이른 자신의 지음을 눈부신 지면에 향기로 뿌리는 일만이 남았다. □연보 ▲1927년 서울 출생 ▲46년 휘문중 졸업 ▲51년 고려대 졸업 ▲50∼61년 국회보 주간,국회도서관 창설참여 ▲56년 동방연서회 창립멤버 ▲60년 국전 추천작가 ▲69년동방연서회 이사장 ▲70년 숙대·홍대·성균관대 강사 ▲71년 동방연서회 회장 ▲74년 방화전(중국국립 고궁박물원) ▲75년 국전 초대작가,한중 서법학대회 대회장 ▲76년 현대화랑초청 개인전 ▲78년 동방화랑초청 개인전 ▲79년 국제서도연맹초청 개인전(도쿄),중국국립 역사박물관 초청 개인전(대북) ▲80∼현재 한국전각학회 회장 ▲82년 동방화랑초청 개인전 ▲83년 신가파 중화서화협회고문 ▲84년 이마미술관 초청 개인전 ▲86년 중앙일보사 초청 개인전 ▲89∼현재 사단법인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본부 이사장,동방연서회 서법교류 방중단단장 ▲90년 김응현서법전(중국북경 천안문광장 혁명기념관),신가파 제1회 국제서법교류대전 ▲91년 염황예술관이사회 명예이사,절강성박물관·서호서원 명예원장,서안 중국서법예술박물관·종남인사 예술고문,서안서학원 특격원위 ▲92년 김응현·김종길시화전,죽산 조봉암 선생 추모의전(추모의전),김응현서법전(서안 중국서법예술박물관 및 상해) ▲93년 산동대학 동방서화연구원 고문겸 교수,김응현서법전(정주 하남성서화원),하남성서화원 고문 ▲94년 김응현·계공서법전(북경 영보재) 김응현서법전(서울 동방화랑) ▲95년 7월3일부터 8월7일까지 한·중·일 산경 서법전(한국 김응현·중국 계공·일본 임금동 일본 동경 선샤인문화회관)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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