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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백범정신 되새겨 민족화합 실천을

    “현실이냐 비 현실이냐가 아니라 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가 관건이다” 동학의 2대 교주로부터 직접 임명된 ‘동학혁명군 청년장교'(1894),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인들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결행한 ‘치하포 사건'의 주인공(1896),교육 및 계몽운동가(1903∼1918),역사적인 ‘3·1 민족저항’으로 성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1919)·내무총장(1922)·국무령(1926),그리고 국가주석(1940.10.9∼1948.7.16),환국후에는 ‘남북회담'을 성사시킨 분단조국 최초의 통일운동가(1945.11.23∼1949.6.26)로서의 한 생애를 때로는 미풍처럼,때로는 질풍노도처럼 살다 간 백범 선생이 ‘인생의 나침반'처럼 간직했다는 글귀이다. 그가 떠난 지 반세기가 넘어 선 오늘 친필 ‘백범일지'가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각종 여론조사에서 남녀노소 모두로부터 ‘20세기 가장 존경받는 한국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가운데 22일 ‘백범기념관’이 개관하게 되었다. 백범기념관은 백범 선생에 대한 역사와 민족이 드리는 선물임과 동시에 ‘백범정신 실천' 도장의 개설을 의미하기에 참으로 축하할 일이다. 다만 백범 선생이 ‘민족적 공인'이듯 백범기념관 또한 ‘민족적 공기'임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천 직전 암살제보를 받을 때마다 백범 선생은 “내가 만일 어떤 자의 총에 맞아 죽는다면 이 이상 기쁜 일이 없겠다.밀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 같이 내가 죽은 후 나 이상의 애국자들이 많이 나오겠는 까닭이다.”는 유언을 남기며,분단조국의 ‘밀알'로서의 ‘자신의 길'을 떠날 채비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백범 선생을 존경하는 사람들,즉 관념적 ‘백범맨'은 많음에도 정작 ‘백범정신 실천'을 위해 나서는 인사들,다시말해 실천적 ‘백범맨'은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백범 선생의 유언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백범'이라는 호는 ‘105인 사건'으로 수감 생활을 하면서 옥중에서 자신이 직접 지은 것으로 ‘백정범부(白丁凡夫)'의 약칭이다.‘백범'이라는 말속에는 치자(治者)가 아니라 피치자(被治者)를,특권층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을,군림이 아니라 봉사의 길을 지향하였던 ‘백범사상'이 농축되어 있다.‘백범'의 뜻이 이러하거늘 혈통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백범 선생과 ‘불가분적 관계'에 있었던 인사들 중 일부가 적극적으로 독재정권에 기생하거나 심지어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로부터 ‘집단학살범' 및 ‘헌정질서 파괴범'으로 단죄되기에 이른 자들과 공생을 꾀하는,적극적 반백범 행태를 보인 경우 마저 있었다. 또한 백범은 생전에 ‘일제의 한반도 양분책략→미·소 분점→이질적 이념 및 체제 구축→동족상잔→일본의 전쟁특수→분단의 고착화→한반도 약소국화’를 꿰뚫어 보며 “이같은 일제의 책략을 저지하는 길은 ‘남북통일'이며,남북통일이 되지 않은 한 독립된 나라가 아니기에 통일운동은 ‘새로운 독립운동'이다.”고 역설한 바 있다.분단시대 백범정신은 ‘민족화합정신'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백범을 존경한다는 사람들이 ‘지역감정'이나 ‘남북화합' 문제에 관한 한 방관자적 자세로 취하는(소극적 반백범 행태) 경우가 비일비재할 뿐만 아니라,심지어는 ‘동서갈등'과 ‘남북분열'을 부추기는 일을 공공연히 자행해온 인사들마저 있었다. 역사적인 백범기념관의 개관을 계기로 백범정신을 사랑하는 이들이 ‘실천적 백범맨'으로 거듭나서,백범 선생의 유언은 물론 그의 소원인 ‘민족화합과 자주독립의 아름다운 문화국가'를 앞당겨 이룰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실로 간절하다. 홍원식 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 사무처장
  • 남남북녀/ ‘70년대형 미모’ 북녀들의 ‘男侵’

    ■'얼굴박사' 조용진교수가 본 北女신드롬 요즘 가장 유행을 탄 단어가 아마 ‘남남북녀’일 것이다.부산아시안게임에 참여한 북한의 응원단으로 ‘북녀(北女)’들이 경기장에,길거리에 모습을 드러낸 뒤 우리 사회에는 ‘북녀 신드롬’이 생겨났다.‘남남북녀’란 말은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북녀’가 예쁘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있는 것일까,‘북녀’들이 던져준 참신한 아름다움이 과연 외모에서만 비롯된 것일까,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분석해 보았다.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여한 북한 여성 응원단원들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높아졌다.‘역시 남남북녀’라는 둥 ‘때묻지 않은 자연미인’이라는 둥 온갖 찬사와 함께 이들은 아름다움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았다. 그들은 ‘북녀’이기 때문에 하나같이 예쁜 걸까.또 그들의 외모가 북한 여성을 대표하는 것일까.북한의 미모관(美貌觀)은 우리와 어떻게 다르고,북한미인의 특징은 무엇일까. 인물화가이면서 ‘얼굴박사’로 불리는 조용진(趙鏞珍·52) 서울교대 미술과 교수를 10일 교수실에서만났다.김 교수는 한국화가이면서 의과대 해부학 교실 조교로 취직해 해부학을 7년간 공부하면서 얼굴 연구에 매달린 얼굴전문가다. 김 교수는 우선 ‘남남북녀’란 말이 조선시대 이후 쓰인 것 같다고 추정했다.조선시대 기생들을 그린 인물화 등을 보며 얻은 결론이라는 것.당시의 미모관을 대표하는 기생 인물화가 조선 중기 이후 대부분 북쪽 내륙의 기생들을 대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시대 미인은 갸름한 얼굴,하얀 피부,가늘고 흐린 눈썹,검고 작은눈동자,긴 이마와 긴 코,긴 턱,작은 입,긴 허리를 갖춘 여성이라고 말한다.이러한 전통적 미모관은 500년 이상 이어져 왔는데,바로 북쪽 내륙 여성들이 이런 형태의 얼굴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따라서 남남북녀란 말도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났으리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번에 온 응원단원들 중에는 북방형 미인이 많지만 남방형 미인도 몇몇 섞여 있다고 했다.그래서 전통적인 조선시대 미인과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면서,아마 유전적인 요소보다는 사회주의 국가의 경직된 환경에서생활하느라 다소 긴장한 듯하면서도 똑똑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듯한 표정과 자세가 굳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미모관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북방형이었으나 이후 남방형으로 돌아섰으며,최근 10여년간 남방형으로 완전히 굳어졌다고 분석했다.그 예로 장미희 등 북방형 얼굴을 가진 연기자가 많았으나 점차 줄어들더니 요즘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했다. 남방형 미인은 큰 눈,짙은 눈썹,넓은 이마,두꺼운 입술 등이 특징으로 서구적 미모관과 비슷하다.김 교수는 김희선·채시라·이미연 등 스타 연기자들은 물론 TV에 막 얼굴을 내민 신인 연기자도 대부분 남방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남방형 미모관에 젖은 우리 사회에서 ‘과거형’인 북방형 미모를 갖춘 북한 응원단원들에게 열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남쪽 사람들의 뇌리에 아직 남아 있는 70년대 미인 이미지가,이번에 북방형 미인들을 한꺼번에 접하면서 되살아난 것이라고 풀이했다.물론 얼굴에 칼을 댄 ‘인공미인’이 적지 않은 우리현실에서 북쪽의 ‘자연미인’이 내비치는 참신한 아름다움이 관심을 부추겼을 것으로도 해석했다. 김 교수는 최근 들어 북한 미인들도 턱이 짧아지는 등 남방화·서구화하는 기미가 보인다고 설명했다.이번 북한 응원단원 중에서도 서구화한 미인들이 적잖게 눈에 뜨인다는 것이다.만약 북한 사회가 개방돼 북쪽에서도 남방형·서구형 미인이 자리잡게 된다면 ‘남남북녀’란 말은 한낱 과거의 유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 ■남남북녀 유래는 - 명확한 근거없는 속설 조선시대부터 쓰인듯 ‘남남북녀(南男北女)’의 사전적 의미는 ‘우리나라에서 남자는 남쪽 남자가 잘 났고,여자는 북부 지방 여자가 잘났다.’는 것인데 이러한 풀이에는 늘 ‘속설’이라는 부연설명이 뒤따른다.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문헌 상에도 ‘남남북녀’의 유래를 명확히 설명한 것은 없다.이 표현을 가장 먼저 기록한 책은 이능화(1869∼1943)의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1927년 간)’라는 것이 통설인데 여기에도 유래에 관해서는 특별한언급이 없다.‘얼굴박사’조용진 교수가 추정한 것처럼 조선시대 때 나온 것이 아닌가 할 뿐이다. 다만 ‘여자의 잘난 것’을 미모로만 국한해 평가한다면 북한 지역에는 미인의 산지로 이름 높은 곳이 여럿 있다. 흔히 ‘강계미인’‘회령미인’‘함흥미인’이라고들 말하는 땅이다. 반면 남쪽에는 미인의 산지로 꼽을 만한 데가 따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민속학자인 고 임종석은 ‘남남북녀’에 관해 설명하면서 “역사상 뛰어난 남자로 북부 지방 출신인 을지문덕·연개소문·온달·정지상·이성계가 있고,잘난 남쪽 여자로는 선덕여왕·허난설헌·신사임당·명성황후 등이 있다.”는 예를 들었다. 곧 남녀가 잘나기에는 출신지가 큰 의미없다는 말이다.따라서 그는 ‘남남북녀’란 “조잡한 관찰과 성급한 단정으로 사실의 일부를 무리하게 일반화한 개념”이라고 결론 지었다. 임창용기자 ■응원현장서 본 北女/ “외모보다 품성이 더 예뻐” ‘북녀(北女)’는 예뻤다. 부산 다대포항과 아시안게임 경기장을 오가며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북한여성응원단원들이 남쪽의 뭇남성들로부터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다.남남(南男)들의 마음은 빼어난 용모와 기지 넘치는 화술을 뽐내는 북녀들에게 온통 사로잡힌 듯하다.북녀들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접근하려는 장외 경쟁의 열기가 경기장 안보다 더욱 뜨겁다. 북한팀의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은 늘 관중들로 가득 찬다.경기 관람이나 응원을 하는 것보다는 북한 미녀들을 한번 볼 심산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이다.급기야 지난 6일 밤에는 다대포항에서 미녀들을 가까이서 보려는 수백명의 시민들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그녀들이 묵고 있는 만경봉호로 돌진,경찰과 충돌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기자의 눈에도 그녀들은 예뻤다.165㎝쯤 되는 키,갸름한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육감적인 몸매를 갖춘 과연 순수 천연미인이라고 할 만했다.가지런히 땋은 머리에 기초화장만 살짝한 뽀얀 얼굴엔 청순미도 풍기고 있었다. 이런 ‘북녀 신드롬’을 두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외모 지상주의와 언론 상업성의 합작품’이라거나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의 산물’이라는 비판이다.북한 사회에 대한 남한의 우월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두가 ‘미의 잣대’를 그저 눈에 보이는 겉모양새에만 둔 결과일 수 있다. 좀더 자세히 보면 북녀들에겐 ‘내면의 미(美)’가 더 빛을 발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북한 미녀들의 진정한 매력은 외모가 아니라 고운 품성인 듯했다.다소곳한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재치있는 말솜씨로 응대한다. 북한 여성응원단은 집요한 기자들의 질문에도 짜증내는 법이 없다.늘 미소를 띠며 반갑게 대한다.경기장에서 만난 한 여성응원단원은 접근을 막는 경호요원들과 안쓰러운 몸싸움을 하고 있던 기자에게 입모양과 손짓으로 “내 얼굴 봐뒀다가 경기 끝난 뒤 버스로 이동할 때 찾아오시라요.내 도와 줄게요.”라고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결혼한 뒤 시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조선의 미덕 아닙니까.” 한 취주악대 대원은 결혼관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국내에 팬클럽 사이트까지 생겨난 여성응원단의 리더 리유경(21)씨는 “예뻐서 뽑힌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음이 고와서 뽑힌 겁네다.” 라고 응수했다. 북한 여성응원단은 환영나온 시민들에게도 조금이라도 더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때문에 더욱 시민들의 마음을 끌고 있다.경기가 끝난 뒤 녹초가 된 몸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시민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손을 흔드는 것을 잊지 않는다.차창에 막혀 대화가 여의치 않을 때는 손짓과 필담으로 어떻게든 고마움을 전하려는 모습에서 고운 마음씨와 여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부산 이영표기자 tomcat@
  • ‘난타’ 美 브로드웨이 진출

    한국을 대표하는 비언어(논버벌) 퍼포먼스 ‘난타’가 국내 최초로 개런티를 받고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진출한다. PMC프로덕션은 12일 “2004년 3월22일부터 4월25일까지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위치한 뉴욕 뉴 빅토리 극장에서 ‘난타’를 공연하기로 확정했다.”고 밝혔다.개런티는 20만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8년 ‘명성황후’가 뉴욕 링컨센터 무대에 서긴 했지만 대관료 40만달러를 지불했다.개런티를 받고 초청형식으로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소연기자 purple@
  • 탤런트 드라마 1회 출연료 1년새 5배 껑충

    탤런트들의 드라마 한 회 출연료가 ‘1000만원+α’시대를 열었다.요즘 방송가에서는 누가 몸값 기록을 얼마나 경신했다는 이야기가 최고의 화제가 되고 있다. ◇1년사이 몸값 최고 5배 껑충= 탤런트 고수는 내년 초 KBS2와 중국 CCTV에서 함께 방송할 예정인 20부작 한·중 합작 드라마 ‘북경 내사랑’에 회당 ‘1000만원+α’를 받기로 하고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 메이저엔터테인먼트측은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고수가 ‘1000+α’의 돈을 받고 ‘북경 내사랑’에 출연한다.”면서 “제작진이 인격을 모독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에는 언제든지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이례적인 조항도 넣었다.”고 밝혔다. 송승헌도 내년 SBS에서 방영 예정인 GM기획의 20부작 드라마(제목 미정)에 회당 1000만원을 받고 주연으로 나온다. 이처럼 고액의 개런티는, 그러나 방송사 규정에는 없다.MBC의 경우 출연료를 18등급으로 분류해 지급한다.최고 등급인 18등급에는 준주연급이 속해 있는데 이들의 출연료는 주말극 기준으로 회당 106만원 수준.실제 주연은 회당 200만∼300만원인 등급외 대우를 받는 게 관례다.이제 출연료 1000만원대시대가 열리면서 몸값은 최고 5배까지 오른 셈이다. ◇실질소득은?= 배우들의 몸값 경쟁은 지난해 SBS ‘여인천하’의 강수연과 KBS ‘명성황후’의 이미연이 각각 회당 500만원을 받기로 하면서 시작됐다.그 결과 강수연은 ‘여인천하’(150부작)를 찍으면서 모두 7억5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세금을 공제받는 필요경비를 1억원으로 가정할 때,강씨가 받은 돈은 종합소득세를 제외한 4억9300만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자유직업 소득자인 배우는 종합소득세를 낼 때 소득이 8000만원 이상이면 주민세를 포함해 39.6%의 세율을 적용받는다.때문에 고액 몸값을 받는 배우가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출연료의 60% 정도다. 방송사 관계자는 “출연료가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회당 1000만원을 받는 배우는 없다.”면서 “연기자측에서 몸값을 부풀려 그런 얘기가 도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타가 소속된 기획사가 직접 드라마를 만들어 방송국에 갖다주는 외주제작이관행화된 만큼,스타급이지만 아직 연륜이 부족한 기획사 소속 배우의 출연료는 대부분 부풀려진다는 설명이다. ◇방송사 자중지란= 방송사들은 대형기획사들이 스타급 연기자들을 대거 포섭하면서 ‘몸값 띄우기’에 앞장선다고 성토한다. 그러나 출연료가 급상승한 것은 대형기획사 말고도 방송사간 출혈경쟁이 빚은 자중지란이란 지적이 많다.시청률 경쟁에 혈안이 돼 인기가 보장된 몇몇 스타에만 매달리다 보니 그들의 몸값은 자연히 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수가 주연으로 나온 SBS ‘순수의 시대’는 극 중반이후 스토리가 유치하다는 시청자들의 평가와 함께 평균 시청률 13.8%라는 초라한 성적을 냈다.원미경 유인촌 강석우 등 A급 중견 스타가 총출동한 MBC 월화드라마 ‘고백’도 방송 내내 저질 시비와,진부하다는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고전(평균 시청률 16.3%)했다. 한 드라마 연출자는 “스타에만 의존하는 것은 무모한 데다 드라마 한두 편으로 스타가 된 배우에게 거액의 몸값을 주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관행”이라면서 “작품성으로 승부를내겠다는 감독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
  • 책/ 조선침략의 원흉 베일 벗기다, 이토 히보부미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름이지만 정작 그의 실체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구한말 한국통감으로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실,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당했다는 정도가 고작일지 모른다.그것은 무엇보다 국내 학계가 그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은 데에 그 원인이 있다. 한국통감으로서 3년6개월 동안 사실상 한국을 통치한 인물이라는 점만으로도 이토는 연구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하지만 강단사학자들은 이토 연구를 빈칸으로 남겨두었는데 한 재야사학자가 이를 메워 관심을 모은다.언론인 출신인 정일성(61)씨가 주인공.그가 최근 내놓은 ‘이토 히로부미’(지식산업사 펴냄)는 한국인 시각에서 한국말로 쓴 첫 이토 히로부미 평전이란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더욱이 국치일(8월29일)을 앞둔 시점이어서 한·일양국의 근현대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미 ‘황국사관의 실체’‘후쿠자와 유키치-탈아론을 어떻게 펼쳤는가’등의 저작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와 일본 근대화의 본질을 파헤친 전문가.‘이토 히로부미’에서는 이토라는 역사 인물을 집중 조명,한민족을 탄압한 그의 죄상을 낱낱이 고발한다.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화도 곁들여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토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죄악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안중근 의사가 재판과정에서 그를 사살한 이유로 내세운 죄목만도 열다섯 가지.저자는 그중에서도 가장 죄질이 나쁜 것으로 ‘민족성 왜곡’을 꼽는다.그는 한민족지도층을 위협하고 금품으로 매수하거나 스파이를 양성하는 등의 방법으로민족 이간을 노렸다.저자는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 반세기가 넘도록 민족분열과 친일문제 등을 청산하지 못한 것은 이토의 한민족 분열공작에 그뿌리가 있다고 분석한다. 이토는 우리 민족에게는 ‘공적(公敵)1호’이지만 일본 쪽에서 보면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대표적인 정치가이다.마흔네 살에 초대 내각 총리에 올라 메이지정부의 실권을 장악했다.추밀원 의장 자리도 그가 테이프를 끊었다.총리를 네번이나 지내면서 헌법을 제정하고국회를 개설했다.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하급무사 가문인 이토가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메이지유신의 중심세력인 조슈번(長州藩)출신이란 점과무관하지 않다.실제로 메이지 정부는 조슈와 사쓰마(薩摩)의 정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이곳 출신들이 정부와 군의 요직을 독점했다.조슈번 출신들과 조선의 악연은 한일합병까지 이어진다.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은 이토의 정치적 성공은,유연하고 신중하며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성격의 ‘팔방미인주의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그러나 저자는 ‘평범한 일로는 공을 세울 수 없다.’는 소신을 지닌 이토야말로 호전적이고 계산적인 인물의 전형,기방(妓房)유희가 유일한 취미인 인면수심의 호색한으로 규정한다. 독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대목은 명성황후 시해(1895년 10월8일).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국제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일본의 노력은 변함이 없다.전후 일본은 조작된 기록과 황국사관에 젖은 역사학자들을 동원해 명성황후 시해를 조선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소행이라고 강변해 왔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조금만 되짚어 보면 이토 정권이 총체적으로 관여했음을 금세 짐작할 수 있다. 이토가 비서관을 통해 거액의 돈을 주고 ‘뉴욕 헤럴드’기자를 매수,유리한 기사를 주문한 사건은 그 한 단서다.저자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을,“청일전쟁으로 국내 정치위기를 넘긴 이토 정권이 조선경영의 걸림돌을 제거하려고 꾸민 살인극”이라 결론짓는다. 이 책은 두 가지 민감한 주제를 다룬다.‘이토가 막부의 정신적 기둥이던 고메이(孝明)왕을 죽이고 부하를 메이지텐노(明治天皇·명치천황)로 삼았다.’는 설과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암살범이 따로 있다.’는 주장이 그것.일본학계는 고메이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시 발표대로 ‘병사’로 받아들이지만 이를 그대로 인정하기엔 풀어야 할 의혹이 너무 많다.이에 대해 저자는 “메이지왕에 관한 수수께끼는,일본 궁내성이 기록을 완전 공개해야 풀릴것”이라고 전망한다. 안중근이 진짜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혹은 이토의 수행원인 무로다 요시후미(室田義文)귀족원 의원의 발언으로 부풀려졌다.망명 한국인 단독으로는 결코 대 정치가의 암살을 실행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그러면 무로다의 ‘범인 복수설’의 진의는 무얼까.저자는 일본 역사학계의 이같은 논란 역시 자국중심의 황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힌다. 한국인에게는 ‘악’의 상징,그러나 일본에서는 ‘국제사회에 발을 내디딘 흥륭(興隆)일본,그 자체’로 칭송되는 이토 히로부미.이 엄청난 인식의 괴리 앞에 우리는 당혹감을 느끼고,일본인의 역사적 심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저자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일본 근대화 바로보기 작업은 이러한 일본의 ‘역사왜곡벽’을 시정해보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김종면기자 jmkim@
  • 해외뮤지컬 봇물 藥일까 毒일까

    거세지는 해외 뮤지컬 열풍에 공연예술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약이 될까. 아니면 독이 될까. 여름이면 뮤지컬 3~4편이 무대에 올랐던 것에 비해, 올해는 크고 작은 뮤지컬 20편가량이 무대에 올랐거나 오를 예정이다. 정통 뮤지컬, 뮤직 퍼포먼스, 쇼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국내 순수 창작품은 찾아 보기 힘들다. ‘캐츠’‘지하철 1호선’‘난타’등 뮤지컬의 인기는 1990년대부터 서서히 높아졌다.급격한 전환점이 된 것은 ‘오페라의 유령’.제작비 110억원을 들여 브로드웨이의 스태프와 무대장치를 들여온 이 작품은 올 1월부터 6개월동안 공연해 19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한해 매출액이 140억원인 뮤지컬 시장의 규모 자체를 바꿔놓은 것.이제 뮤지컬은 황금알을 낳는 문화산업이 됐다. 이를 증명하듯 7월부터 뮤지컬이 쏟아져 나왔다.하지만 브로드웨이 무대를 배우까지 그대로 옮겨놓은 ‘레 미제라블’‘델라구아다’,저작권료를 내고 국내팀이 연출하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유린 타운’‘풋 루스’‘갬블러’등 해외 뮤지컬 일색이다. 창작품은 장기공연에 들어간 ‘난타’‘지하철 1호선’을 제외하면 4편뿐.그것도 쇼에 가까운 퍼포먼스 ‘칼라바쇼’와 ‘UFO’,85년 초연작 ‘사랑은 비를 타고’를 빼면 소극장 뮤지컬인 ‘달과 푸른 장미’만 남는다. 뮤지컬은 음악·연극·춤 등으로 지루하지 않은 여가시간을 선사한다.‘명성황후’의 제작사 에이콤의 윤호진대표는 “TV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뮤지컬은 다양한 시청각적 즐거움을 충족시켜 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해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대형 뮤지컬의 경우 입장료가 5만∼10만원.교육받은 중산층이 늘어 이들에게는 괜찮은 뮤지컬을 감상하는 것이 자신의 경제·문화적 지위를 확인하는 수단이 됐다는 주장이다.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교수는 “예술적 공감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뮤지컬이 ‘문화자본’으로 작용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형작품에만 관객이 몰리다 보니 창작 뮤지컬은 고사 위기에 놓였다.연일거의 매진되는 ‘델라구아다’는 현재 8월분 티켓의 70% 이상을 팔았다.23일 시작하는‘웨스트사이드…’는 예매율이 60%에 이른다.지난 4일 막을 내린 ‘레 미제라블’의 마지막 10회는 3800석 자리가 모자랄 정도였다. 반면 200석 규모의 소극장 무대에 올린 ‘달과…’는 관객점유율이 50%에 그쳤다.‘사랑은…’은 대형 기획사가 홍보를 맡았는데도 역시 관객점유율이 50%를 밑돌았다. SJ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담당자는 “해외 대형작의 성공으로 시장이 넓어진다면 장기적으로 창작 인프라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 해외 뮤지컬에 창작뮤지컬이 당해낼 수 없다.”고 말했다.연극평론가협회 임선옥사무국장은 “해외뮤지컬 성공이 창작뮤지컬의 토양을 키우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는데,특정작품만 돈을 벌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수입은 지나친 미국화를 반영한다는 지적도 있다.연극원 김광림원장은 “20∼30년 지나 폐기처분된 미국 뮤지컬에 엄청난 값을 지불하는 것”이라면서 “재미를 못 준 우리 공연계도 반성해야 하겠지만 미국 작품에 유행처럼 휩쓸려가는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동국대 연극영화과 김방옥교수는 “창작뮤지컬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이전에 들어온 미국 완제품은 자극을 줄 수도 있지만,간격만 더욱 벌려 놓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세계화시대에 해외작품을 막을 수 없는 것은 대세.‘난타’제작사 PMC프로덕션의 김종헌이사는 “다양한 해외작품이 들어와 교류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 “하지만 이제는 산업과 예술에 대한 명백한 구분과 차별화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문화관광부는 ‘공연작품 제작 지원’가운데 연극·뮤지컬 215편에 37억원을 지원했다.작품당 평균 1700만원을 지급한 셈이다.해당 시도에서 위촉한 심사위원이 선정하는데,신청 작품의 10% 수준에 그친다. 최근 대학로 연극의 제작비는 5000만∼7000만원,소규모 뮤지컬은 1억원선.지원금은 약간의 도움만 줄 뿐이다.대형 해외작품이 현란한 볼거리와 우수한 배우들로 관객을 사로잡는 동안,예술성 강한 순수 창작품은 점점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원 확대뿐만 아니라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연극원 김원장은 “대중의취향을 맞춘 흥미 위주의 공연과,예술성을 추구하는 작품을 구분해 이중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적어도 예술을 하고자 한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공연예술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소연기자 purple@ ■세종문화회관, 해외뮤지컬 우대? 대부분 국고로 운영되는 세종문화회관이 해외 뮤지컬에 공연장 부지를 ‘헐값’에 빌려준 것으로 알려져 국내 공연예술계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퍼포먼스 ‘델라구아다’의 제작사 엠컨셉트는 지난달 세종문화회관 뒷편 주차장 한쪽 250평 부지에 전용극장인 ‘세종 델라구아다홀’을 개관했다.21억원을 들여 3개월만에 완공한 이 공연장은 최대 75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 세종문화회관측은 부지를 제공한 대가로 3년 뒤 공연장을 기증받기로 했다.공연 수익금의 일정부분도 나눠 갖는 조건이다.세종문화회관의 한 관계자는“서울시가 건물 사용기간을 3년만 허가했기 때문에 그후에는 헐릴 수도 있다.”면서 “수익보다는 새로운 문화를 소개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에서 스태프·배우들까지 그대로 공수해 온 공연을,1년예산 200억∼300억원의 70%를 서울시로부터 지원받는 세종문화회관이 지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델라구아다’측은 공연장 부지뿐만 아니라,세종문화회관의 이름을 빌려 엄청난 홍보 효과까지 누리기 때문이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제작비가 90억원이나 든 ‘델라구아다’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사업”이라면서 “새로운 문화를 소개한다는 순수한 목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아울러 “할리우드 직배영화 전용관에 국고를 지원해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델라구아다’는 쇼나 다름없는 브로드웨이의 문화상품.외국상품에 특혜를 주는 동안 가뜩이나 창작 공연이 줄고 정부 지원금도 부족한 국내 공연예술계는 설 땅을 잃어간다. 김소연기자
  • 명성황후 시해 옹호 친일성향 작가 기소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가 정당하다는 내용의 책을 펴낸 작가가 사법처리됐다. 서울지검 형사9부(부장 辛南奎)는 14일 인터넷을 통해 명성황후를 비방하고 시해를 옹호하는 글을 올린 작가 김모(39)씨를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달 중순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7월 친일(親日) 인터넷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미친 불여우민비를 한국인들은 무슨 자주 독립의 순교자라도 되는 줄 착각하고 있다.이런 나쁜 X을 조용히 없애버린 일본의 처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라는 등 친일파를 찬양하는 글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올해 초 민씨 종친회의 고소에 따라 수사에 들어간 뒤 최고 사형까지 가능한 외환유치혐의(외국과 내통해 한국에 대항한 혐의)를 적용할 방안까지 검토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성기자 cho1904@
  • TV리뷰/ MBC ‘네 멋대로 해라’-새로운 영역 개척한 ‘명품’ 드라마

    TV리뷰/ MBC ‘네 멋대로 해라’-새로운 영역 개척한 ‘명품’ 드라마

    “어제 드라마에서…” 각박한 시절에 아침부터 드라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것은 친구 없고,시간 많고,할일 없는 한심한 청춘임을 스스로 광고하는 일일 수도 있다.그러나 요즘 방송 담당기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앞다투어 입에 올리는 드라마가 있다.MBC의 ‘네 멋대로 해라’(수·목 오후 9시55분). 회를 더해갈수록 인기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처음부터 이 드라마가 관심을 끌 것으로 생각한 이는 드물었다. 재기발랄하고 달착지근한 드라마가 대세인데, ‘소매치기의 시한부 인생’이라는 소재는 지나치게 어둡고 우울했다.게다가 박성수 PD는 “일단 한번 보고 판단하세요.”라면서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드라마가 대박이다.첫 방송부터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KBS2 ‘명성황후’를 너끈하게 제치더니 지난주에는 역시 같은 시간의 SBS ‘순수의 시대’를 따돌렸다. 지난달 말에 시작한 KBS2 ‘태양인 이제마’(수·목 오후 9시50분)에 비해서는 아직 부족하지만 20∼30대 젊은 마니아 층을 형성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또 영화전문 인터넷사이트인 키노네트가 벌인 ‘영화화해도 좋을 것 같은 드라마’라는 설문조사에서 ‘피아노’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현재 방영되는 드라마로는 유일하게 꼽힌 것이다. 신데렐라식 스토리도,꽃미남도,얽히고 설킨 원한 관계도 없는데 무엇이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것일까? 지난주 방송 분을 보자.어머니에게 구두를 선물하고,그 구두 때문에 발이 아플 것을 염려해 주물러주는 복수(양동근),복수를 위해 대신 소매치기를 하겠다고 자처하는 경(이나영),항상 당당하지만 복수를 경에게 뺏기고 좌절하는 미래(공효진)….요즘 안방극장을 점령하는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상황설정과는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파격’과 얼굴로 승부하는 요즘 드라마의 대세와는 거꾸로 또다른 파격을 시도한 제작진의 의지가 주효한 게 아닐까.전혀 시도되지 않은 소재,드라마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주인공으로 새로운 드라마 장르를 개척해내 시청자의 호응을 얻은 것이다. 최근 MBC ‘인어아가씨’가 iTV에서 방영한 중국드라마 ‘안개비연가’와,SBS ‘라이벌’이 일본만화 ‘해피’와 설정이 비슷해 말이 많았다.또 꽤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KBS2 ‘태양인 이제마’도 ‘허준’과 비슷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드라마 PD들은 이에 대해 “드라마의 기본 줄거리가 비슷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 “또 쓸 만한 배우들이 모두 영화쪽으로 빠져 배우 구하기가 힘들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네 멋대로 해라’는 이런 식의 푸념을 일축하게 만드는,작지만 명품인 드라마이다. 이송하기자 songha@
  • ‘토요일 밤의 열기’ 연출·제작 윤석화씨

    그의 말은 자체가 1인극이다.이야기하는 도중 기자 손을 덥석 잡는가 하면,가슴에 담긴 말이 나올 때면 눈물이 소르르 맺혔다가,꿈을 말하면서는 소녀처럼 화사한 미소가 번진다. 배우이자 월간 ‘객석’의 발행인인 윤석화(46).그가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의 연출가 겸 제작자로 나선다. 오는 10월에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모노드라마 ‘꽃밭에서’를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토요일…’는 ‘객석’을 제대로 운영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에요.물론 돈 때문만은 아닙니다.전 정말 이 뮤지컬을 좋아해요.지금은 아름답다고 회상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청춘,건너기 싫어도 건너야만 하는 젊음을 그리고 싶어요.”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배우로,연출가로 다시 서게 되기까지 스스로 건너야 한 아픈 과거 때문이 아니었을까.“이제는 화해했다.”고 말하지만 그는 여전히 5년전 ‘명성황후’사건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아니,매일매일 되뇌이며 악에 받쳐 더 열심히 미래를 가꾸는지도 모를 일이다. “후배에게 얼마든지 자리를 내줄 수 있어요.하지만 저를 ‘연극계 스타’로 내세웠으면 명예롭게 떠나도록 해줘야 되는 것 아닌가요.” 뉴욕 공연을 앞두고 한마디 상의 없이 주연이 바뀌고,그것조차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을 때 그는 배신감에 떨었다. ‘가창력이 떨어진다.’‘개런티를 많이 요구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제작사 대표를 고소했지만 “피땀 흘려 연습한 배우들의 공연을 막을 수 없어”중재를 받아들였다. “어리고 순한 백성들 어디로 갔는가∼.”갑자기 노래 솜씨를 뽐낸다.하지만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 있다.그 사건 이후 술을 배웠다는 윤씨는,술만마시면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을 피해 청주로 내려갈 때 나오는 이 노래를 목놓아 불렀단다.“제게는 ‘백성’이 ‘관객’으로 다가왔죠.” 10월10일부터 한달여간 무대에 오를 ‘꽃밭에서’는 그런 그의 아픔과 희망의 이야기를 5가지 에피소드에 담는다.드라마와 노래가 어우러지는 연극이다.물론 명성황후의 노래도 부른다. 이 연극은 ‘객석’건물 1·2층에 공사중인 240여석 규모의 소극장 ‘정미소’에서 공연된다.정성스럽고 아름답게 꾸민 장소란 의미의 ‘精美所’.공연으로 돈을 모으면 조금씩 더 꾸며서 2년안에 번듯한 극장을 완성할 예정이다.그 때가 그가 월간 ‘객석’을 떠날 때다. 윤씨는 최근 쏟아지는 외국의 대형 뮤지컬에 대해 악평도 쏟았다. “그 정도 수준에 엄청난 로열티를 지불하는 것은 이해가 안됩니다.그 돈을 우리 연극인들에게 줘 봐요.그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어요.” ‘토요일…’의 아시아 판권은 오랜 협상을 거쳐 비교적 싼 가격인 8만달러에 5년 기간으로 사들였다.24일까지 배우 오디션 신청을 받고,내년 봄 쯤에 공연한다.(02)3673-2162. 김소연기자
  • 미국인 남편 론 브랜튼·한국인 부인 김향란씨 “우리는 찰떡궁합 재즈부부”

    남편은 재즈 작곡과 편곡·연주를 맡고 부인은 공연을 기획·홍보하는 ‘재즈 부부’.파란눈의 미국인 론 브랜튼과 공연 기획자 김향란을 만났다.브랜튼은 오는 10일 오후8시 서울 마포 이원문화센터에서 ‘Jazz for Summer’공연을 갖는다. ◇한국 멜로디의 재즈화= 브랜튼은 워싱턴포스트지로부터 ‘매우 시적인 피아니스트’라는 평(1995년 6월)을 받은 바 있는 재즈 아티스트.메릴랜드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워싱턴에서 레코딩 세션,작곡과 편곡,재즈클럽 연주를 해왔다.1999년 초부터는 국내에 머물며 음반제작과 정기공연을 시작했다. 2대 명성황후인 소프라노 김원정의 목소리를 빌려 만든 ‘Between the Notes’에는 오페라 ‘리날도’의 ‘나를 울게 하소서’등 클래식 말고도 이미자의 ‘아씨’,현제명의 ‘고향생각’등 우리 노래를 재즈로 편곡해 담아 화제를 낳았다. 음악평론가 김진묵씨는 “한국정서를 재즈화하는 데 성공한 고마운 아티스트”라면서 “‘Between the Notes’가 메이저 음반사에서 출시됐다면 세계명반 대열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 완벽함을 격찬했다. ◇부인 김향란의 내조가 없었다면 =재즈에는 변방이라고 할 우리나라에서 브랜튼이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부인 김향란의 적극적인 내조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김씨가 브랜튼의 공연 기획과 홍보는 물론 음반에도 투자해 주기 때문. 김씨는 비언어 퍼포먼스 ‘난타’의 해외수출을 성사시키는가 하면 지난 6월까지 성황리에 공연한 영국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Phantom of the Opera)’의 서울공연을 따낸 베테랑 프로모터. 두 사람은 인터넷에서 만났다.지난 97년초 김씨는 영어실력을 늘리려고 펜팔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브랜튼을 만나 메일을 주고받았다.800여통의 글을 주고 받은 1년 뒤 뉴욕에서 처음 만났고 98년 5월 브랜튼이 한국으로 날아와 청혼을 해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둘 사이에는 33개월짜리 딸이 있다. ◇재즈의 저변확대가 목표= 브랜튼 부부는 “우리나라의 재즈 공연은 비싸고 유명한 그룹이 아니라면 공연 자체가 성사되기 어려워 대중적으로 즐기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브랜튼의 공연은 중간 규모의 깊이 있는 무대로 마련한다고 설명했다.지난해부터 이뤄진 그의 공연은 마이크 조차 사용하지 않아 어쿠스틱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동요를 재즈로 편곡해 최근 출시한 김원정의 ‘낮에 나온 반달’을 제작했으며,오는 12월 출시 예정으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주인공 토니 역을 맡은 성악가 유정한의 음반을 작업중이다.앞으로는 국악도 재즈화할 계획이다. 올들어 이원문화센터에서 ‘론 브랜튼과 재즈트리오’(피아노 론 브랜튼,비브라폰 크리스 바가,베이스 허진호)라는 이름으로 다섯차례 공연하는데 오는 10일 공연은 그 세번째.음악평론가 김진묵씨의 해설을 곁들이며,관객 중 한두명에게 깜짝 협연을 하는 기회도 준다.(02)525-2295. 주현진기자 jhj@
  • 러박물관에 구한말 유물 수두룩?

    구한말의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수집한 궁중 공예품들이 러시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표트르대제박물관이 소장한 한국문화재에 대해 일제 학술조사를 벌였다.지난 6월 7∼26일 공동조사를 실시한 결과 633건 1691점의 한국문화재를 확인했다. 이 박물관이 소장한 한국문화재는 베베르와 1900년대 활동한 민속학자 큐네르의 수집품이 중심이며,1950년 이후 북한에서 기증받은 유물도 있었다. 베베르의 수집품으로는 고종와 명성황후의 측근으로 활동하면서 하사받은 철제 은입사 촛대와 방석의 일종인 행보석(行步席)등 궁중과 양반계층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많았다. 특히 베베르가 수집한 한약재 46건은 약재와 함께 처방전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한의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듯.고려시대 청동정병과 햇무리굽 대접 및 철화문매병 등의 고려자기,북송백자도 확인됐다. 연구소는 지난해 모스크바 동양예술박물관에 이어 이번에 표트르대제박물관을 조사함으로써 러시아의 한국문화재 소장처에 대한 조사를 일단락지었다. 서동철기자
  • 셰익스피어 고전 ‘제대로 맛보기’,뮤지컬 ‘한여름 밤의 꿈’ 새달 11일까지 해오름극장

    고전을 알지 못한 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만을 감상하는 것은,데생을 배우지 않고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리겠다고 덤비는 것과 같다. MBC 주최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새달 11일까지 공연하는 뮤지컬 ‘한여름 밤의 꿈’은 고전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 관객들을 위한 무대이다.물론 원작은 연극이지만,연극적 요소를 최대한 살리면서 접근하기 쉽게 음악을 가미했다. 연출은 1975년부터 셰익스피어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전문 극단도 갖고 있는 영국의 패트릭 터커가 맡았다.“셰익스피어 초판에 나온 정보를 배우들에게 정확히 제공해 작가가 의도한 표현을 이끌어내겠다.”고 밝힌 연출 의도대로,작품은 고전에 담긴 해학과 축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되살렸다. 무대는 고풍스러우면서도 환상적이다.요정들이 뛰어노는 숲은 파스텔 톤의 거대한 꽃이 무대 양옆을 겹겹이 장식하고,푸른 달빛이 은은하게 무대 중앙에 비친다.달빛과 등불만이 비치는 가운데 등장인물을 실루엣으로 처리한 장면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배우들의 연기와 춤은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흥겹다.대사는 원작보다는 현대인의 언어에 맞게 각색했지만 대부분 의미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피아노·신시사이저·드럼·베이스로 연주되는 음악은 때로는 웅장하고 때로는 경쾌하게 극의 분위기를 이끈다.경박하지 않고,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 대사와 음악을 들려주는 것. 요정의 왕 오베론 역에는 탤런트 박상원과 ‘레 미제라블’‘웨스트사이드스토리’에 출연한 조남희가 더블 캐스팅됐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명성황후’의 서영주와 ‘지하철1호선’‘택시드리벌’의 배해선 등 뮤지컬계스타 배우들도 만날 수 있다. ‘가족 뮤지컬’이라고 내세우지만 고전에 충실하기 때문에 어린이 관객에게는 좀 지루할 듯.오히려 연인이나 청소년 이상의 관객이 본다면 한여름 밤의 추억을 한아름 안고 돌아갈 수 있을 듯싶다.화·수 오후 3시,목·금 오후 3시·7시,토·일 오후 2시·6시.13일부터 25일까지는 한전아츠풀센터로 무대를 옮긴다.2만∼3만 5000원.(02)368-1515. 김소연기자 purple@
  • 뮤지컬로 만나는 ‘로미오와 줄리엣’, 새달 17일부터 예술의 전당

    “마음을 사로잡는 싱그러운 봄향기도,밤이 되어 귀에 안기는 꾀꼬리 울음소리의 애련함도,활짝 피어나는 장미의 요염함도,모두 고스란히 이 작품 속에 담겨 있다.” 영국 극평가 사뮈엘 콜리지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수백년간 지구촌 젊은이들을 사랑의 열병으로 앓게 한 ‘로미오와 줄리엣’.그 영원한 셰익스피어의 고전이 국내에선 처음 뮤지컬로 탄생한다. 서울예술단은 새달 17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애틋한 사랑의 향연을 펼쳐놓는다.원작의 고풍스러움을 살리면서도 뮤지컬에 맞게 역동성을 가미한 작품이다. 파티장에서 로미오가 줄리엣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는 원작에 없는 요정‘맵 여왕’이 등장해 젊은이들에게 사랑의 마법을 건다.아프리카 리듬의 신나는 음악으로 청소년 관객을 즐겁게 할 예정.내용은 슬픈 사랑이지만 흥겨운 춤과 노래로 가족 관객을 끌어안으려는 의도다.또 거리의 악사들이 나와 재미를 더한다. 뮤지컬 ‘명성황후’‘겨울나그네’ 등에 출연한 배우 유희성이 연출가로서 출사표를 던졌다.유씨는“올리비아 허시가 주연한 영화의 청순하고 풋풋한 이미지를 재연하고 싶었다.”면서 “춤과 노래가 어우러져 쉽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음악은 1988년 서울예술단의 ‘99태풍’에서 인연을 맺은 체코 데니악 바르탁이 작곡했다.서사적이고 장엄한 세미클래식을 바탕으로 37곡에 다양한 색깔을 입혔다.로미오와 줄리엣이 부르는 듀엣곡은 발라드풍의 아름다운 선율로 관객의 마음을 촉촉히 적신다.공연이 시작되기 전 먼저 CD로 제작,출시할 예정이다. 서울발레시어터의 상임안무가인 제임스 전의 안무는 등장인물들의 춤에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무대미술은 일본무대미술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하다노 가즈에가 맡았다.로미오 역에는 ‘바람의 나라’에서 호동 역을 맡은 송영두와 오페라 ‘돈조반니’에 출연한 민영기가 더블캐스팅됐다.줄리엣은 6회 한국 뮤지컬 대상 여우신인상을 받은 김선영과 신인 조정은이 열연한다.평일 오후 3시·7시30분,토·일 오후 3시·7시(월 쉼).(02)523-0984. 김소연기자 purple@
  • 이범진열사 순국비 러서 제막

    대한제국 시절 러시아 주재 초대공사 등을 지내다 국치를 견디다 못해 자결한 이범진(李範晋·1852∼1911) 열사의 추모행사가 러시아에서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러시아 정부와 공동으로 29∼30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사의 순국비 제막식과 공동학술회의 등을 연다.제막식에는 이재달(李在達) 국가보훈처장과 야코블레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등 300여명이 참석,추모사와 함께 열사의 뜻을 기린다.순국비는 약 2m 높이로 열사의 독립운동 활동을 한글과 러시아어로 각인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 열리는 추모 학술회의에는 러시아와 국내 역사학자 등이 참석,‘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과 ‘이범진 열사와 아관파천’등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열사는 서울 태생으로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어명을 받고 러시아 공사와 협의,아관파천을 주도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복더위 식히는 ‘뮤지컬 바람’, ‘노틀담의 꼽추’ ‘풋루스’ 우리 연출력으로 국내초연

    ‘오페라의 유령’이후 공연계에 뮤지컬 바람이 거세다.특히 ‘노틀담의 꼽추’와 ‘풋루스’는 원작이 외국작품이지만,우리의 연출력으로 새롭게 탄생한 국내 초연작들이다. 한전아츠풀센터에서 첫 자체 제작으로 27∼8월11일 내놓는 ‘노틀담의 꼽추’(연출 박성찬)는 온가족이 즐길 만한 뮤지컬이다.앤서니 퀸의 영화로도,디즈니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잘 알려진 이 작품의 원작은 빅토르 위고의 ‘노틀담 드 파리’.프랑스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번 무대는 원작에 나타난 자유·평등·박애 정신을 누구나 쉽게 보고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롤러브레이드를 탄 광대들,축제 신에서 펼치는 환상적인 마술쇼,서커스 같은 퍼포먼스 등을 도입해 볼거리를 풍성하게 했다.‘명성황후’에서 대원군 역을 맡은 이희정이 콰지모토로,‘코러스라인 ’‘아가씨와 건달들’에 출연한 임선애가 에스메랄다로 출연한다.평일 오후 2시·5시 토·일 오후1시·4시·7시(월 쉼).2만∼5만원.(02)3486-0145. 뮤지컬컴퍼니 대중은 98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지컬 ‘풋루스’(연출 이종훈)를 9월29일까지 연강홀 무대에 올린다.원작은 케빈 베이컨이 출연해 대성공을 거둔 84년 영화.당시 케니 로긴스가 부른 경쾌한 주제곡은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춤을 사랑하는 주인공 청년 렌이 보수적인 시골마을로 이사한 뒤 마을 목사와 갈등을 겪다가 결국 춤을 통해 화해한다는 이야기.격렬한 원작의 춤을 소화하기 위해 원 안무자인 A.C.시울라의 수제자인 한국인 사라 변을 안무가로 초빙했다.렌 역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등에 출연한 최성원과 아역배우 출신의 김수용이 더블캐스팅됐다.화·목 오후7시30분 수·금·토·일 오후 4시·7시30분.3만5000∼5만5000원.(02)76 6-8551. 김소연기자 purple@
  • 신의 이제마/이수광/일송-북/천민 출신 醫聖 파란의 삶

    19세기말 격동기에 천민이라는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어 사상의학을 완성한 동무(東武)이제마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문학적으로 복원한 이수광의 소설 ‘신의 이제마’(일송-북)가 출간됐다. 이제마는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의 그늘에 가려져 왔으나 한의학을 주체적으로 완성하고 종합했다는 점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업적을 쌓은 인물로 평가된다.해서 한의학계에서는 허준과 이제마,침술의 대가인 사암도인을 묶어 3대 의성(醫聖)으로 자리를 정해 놓았을 정도. 소설은 청일전쟁과 동학농민운동의 현장을 지키며 인술을 펴는 그의 행적을 통해 ‘치병제중(治病濟衆:병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에 신명을 바치는 그의 투철하고도 따뜻한 생애가 그럴 듯하게 그려져 있다. ‘격치고’‘동무유고’‘동의수세보원’등 사상의학의 이론과 실제를 낱낱이 기록한 명저를 남긴 그의 의학세계가 현장감 있는 필치로 묘사돼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때마침 KBS2TV가 ‘명성황후’후속으로 그의 일생을 극화한‘태양인 이제마’를 방영하기로 했다.이수광은 1983년 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나는 조선의 국모다’등을 펴낸 중견작가.전2권 각 7800원. 심재억기자
  • KBS ‘명성황후’ 시해 촬영/ 日자객에 호통 의연한 죽음

    “다레가 조센노 오이카.(누가 조선의 왕비냐).” 사무라이 복장의 자객 사사키가 명성황후와 상궁·나인들을 향해 칼을 겨눈다.붉은 대례복 차림의 명성황후는 의자에 앉아 무서운 기세로 자객을 노려본다.잠시동안 명성황후의 기개에 기가 죽어 있던 사사키가 명성황후를 향해검을 내려치려고 하자 나인들이 막고 나선다.사사키는 나인들을 단칼에 벤다. “모두 물러서거라.” 상궁 나인을 물리친 명성황후는 의연한 목소리로 호통을 친다. “내가 너희 만행을 다 내 눈 속에 담아서 갈 것이니 내 백성이 어찌 오늘의 일을 잊겠느냐.” 사사키는 명성황후의 머리를 향해 칼을 내리치고 관 아래로 붉은 피가 흐른다. KBS 수·목 드라마 ‘명성황후’ 중에서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에게 호통을치며 당당한 죽음을 맞는 장면 촬영이 한창인 지난 1일 경기도 수원 KBS 제작센터.하이라이트를 촬영하는 현장답게 긴장감이 돌았다.4일 방영될 이 장면의 촬영현장에서 명성황후 역의 최명길은 리허설이 진행되는 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그는 “120회째 대본을 받아들고극에 담긴 서러움과 회한 때문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면서 “끝까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몸살까지 났다.”고 털어놓았다.이어 “아침에 집에서 나오는데 남편(김한길전 문화관광부장관)이 ‘통곡하지 말고 의연한 죽음을 맞으라.’고 농담삼아 말했지만 슬픔을 참기가 너무 어렵다.”고 덧붙였다. ‘명성황후’의 신창석PD는 “한국 대표팀이 월드컵 4강까지 오른 것도 다 명성황후의 응원 덕분”이라고 농담을 건넨 뒤 “일제 식민사관 아래 ‘요녀’쯤으로 폄하된 명성황후가 이 드라마를 통해 제 위상을 되찾게 된 데 일조한 것 같아 흐뭇하다.”고 말했다. 이송하기자 songha@
  • 예상 깬 흥행성적 ‘오페라 유령’이 남긴것

    ‘국내에서도 뮤지컬의 롱런이 가능할까?’기대와 우려 속에서 지난해 12월2일 막을 올린 ‘오페라의 유령’이 예상을 깬 흥행 성적을 거두고 오는 30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와 7개월간의 장기공연이라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공연계는 개막전부터 그 성공 여부에 관심을 모았다.연간 관객 30만명에 연 매출 140억원에 불과한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대세였다.그러나 폐막을 10여일 앞둔 현재의 성적은 당당히 ‘합격’이다. 최종 매출액은 192억원.제작비·로열티·문예진흥기금 등을 제외한 순수익은 20억원 수준으로 금액 자체는 크지 않다.하지만 관객 규모는 어마어마하다.지난 7개월간 94%의 유료 객석점유율을 유지했다.30일 공연까지 포함한다면 총 244회 공연에약 24만명의 관객이 몰려든 셈이다. 이같은 흥행 성공에는 아홉 차례 오디션 끝에 선발한 출연진과 오리지널 스태프의 기술,원작 자체의 음악성과 작품성 등 작품의 질과 완성도가 가장 큰 몫을 했다.아울러 철저한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한 제작사 RUG와 제미로의 치밀한 마케팅 전략도 주효했다.국내에서는 드문 공연 예매제를 고집했고,이는 월드컵 같은 ‘악재’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다. 시장성의 입증은 뮤지컬도 하나의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그동안 꾸준히 뮤지컬에 투자해온 코리아픽처스 외에도 지난해 말 설립된 SJ엔터테인먼트와 스타맥스 등이 투자에 새로 뛰어들었다.또 인터넷 영화·공연 티켓 예매대행사인 맥스무비도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서울시립뮤지컬 강대진 단장은 “잘 만든 뮤지컬만 있다면 언제든지 관객은 볼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시장 규모를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우려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연극계는 가뜩이나 취약한 처지가 뮤지컬의 거대화로 더 좁아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눈치다.또 외국 뮤지컬이 대량 수입되면 자칫 창작 뮤지컬의 자생력을 약화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연극평론가 김미도씨는 “곧 무대에 오르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레 미제라블’처럼 비싼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뮤지컬이 줄줄이 들어온다면 ‘명성황후’이후 창작뮤지컬이 큰 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에서 더 침체될 수도 있다.”면서 “창작뮤지컬이 경쟁력을 갖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반면 문화 개방화 시대에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평가도 많다.에이콤 윤호진대표는 “어차피 문화상품에는 나라의 경계가 없어졌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이 들어온다면 국내 관객에게도 감상의 기회가 늘고,창작 뮤지컬계도 자극을 받아 좋은 작품을 만드는 등 상승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미로는 이번 ‘오페라의 유령’성공을 발판 삼아 내년 2월 예술의전당에서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의 오리지널팀이 출연하는 뮤지컬 ‘캐츠’를 공연할 계획이다. 김소연기자 purple@
  • 방송 3사 ‘7월은 드라마 전쟁’

    ‘월드컵이 끝나면 드라마 전쟁이 시작된다?’ 지상파 방송 3사가 월드컵 폐막후인 다음달 동시에 새 드라마로 승부를 건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어 주목된다.방송3사의 예정된 드라마만도 KBS 5개,MBC 4개 SBS 3개 등 모두 12개.특히 방송사들이 월드컵 열기를 의식해 후속 드라마의 방영을 미루고 있어 다음달 안방극장에 새 드라마들이 쏟아질 전망이다. KBS는 ‘거침없는 사랑’(월∼화 오후 9시50분)‘새엄마’(월∼금 오전 8시)‘여자는 왜’(월∼금 오후 9시20분)‘명성황후’(수∼목 오후 9시50분)‘사랑은 이런거야’(월∼금 오후 8시25분)등의 드라마가 모조리 새롭게 바뀐다.현재 후속 드라마가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3개.새 일일드라마 ‘당신 옆이 좋아’는 70∼80년대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결혼관과 인생관을 가진 네 자매의 이야기를 그렸다.하희라가 주인공 문희 역으로 출연하다. 새 월화미니시리즈 ‘인어공주’는 해녀와 재벌 2세의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로 SES의 유진이 주인공을 맡았다.또 사상의학을 완성시킨 이제마를 주인공으로 하는 ‘태양인 이제마’가 ‘명성황후’의 뒤를 잇는다. MBC의 경우 ‘위기의 남자’(월∼화 오후 9시50분)‘매일 그대와’(월∼금 오후 8시25분)가 이미 종영된 상태이지만 월드컵 중계 탓에 후속 드라마를 내보내지 않고 있다.7월중 종영될 수목드라마 ‘로망스’(수∼목 오후 9시50분)와 아침드라마 ‘내 이름은 공주’(월∼금 오전 9시5분)까지 모두 물갈이된다.‘위기의 남자’ 후속으로는 원미경,유인촌 등이 주인공을 맡은 ‘고백’이 선보일 예정.새로 방영될 ‘인어아가씨’는 결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가족드라마.장서희가 주인공을 맡았다.‘로망스’의 후속편인 ‘네 멋대로 해라’는 양동근 이나영을 주연으로 내세워 젊은 층을 겨냥한 드라마이다. SBS는 드라마 ‘여인천하’(월∼화 오후 9시50분)‘나쁜 여자들’(수∼목 오후 9시50분)‘유리구두’(토∼일 오후 9시50분)가 막을 내린다.이가운데 ‘나쁜 여자들’ 후속으로 고수와 김민희 주연의 생기발랄한 트렌디 드라마 ‘러빙 유’(가제)만이 확정됐을 뿐 나머지 두 작품의 후속은 구상중에 있다. 그러나 이같은 드라마 홍수와 관련해 방송가에서는 월드컵 열기에 밀려나 있던 드라마가 안방극장에 대거 등장하게 되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는 있겠지만,방송사간 지나친 경쟁과 소재부족으로 인한 함량미달 사태가 다시 재연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송하기자 songha@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 (9)고종-니콜라이2세 특별한 관계

    ■두帝國 ‘마지막 황제' 친서외교 10여년 고종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침탈외교사에서 다소 의외라고 여겨질 만큼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종(1852∼1919)은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강제로 대한제국의 황제자리를 아들 순종에게 양위했지만 조선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다.니콜라이 2세(1868∼1918) 또한 1917년 2월 혁명에 의해 퇴위당한 뒤 유배지에서 처형당한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다.두 사람이 조선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정서가 통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황제 대 황제의 동격 관계는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꺼져가는 국운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은 고종이 일본을 밀어내기 위해 러시아에 매달리는 입장이었다면 니콜라이 2세는 만주에서의 이익 등 국익에 반하지 않는 수준에서 ‘외교적’으로 고종을 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밀월관계의 출발은 아관파천(1896년 2월11일∼1897년 2월25일)이었다.초대 서울주재 대리공사로 10년 넘게 서울에 주재하면서 고종과 두터운 친분을 쌓은 베베르가다리를 놓았다.대(大) 러시아제국의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에게는 저 멀리 극동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왕이 자국 공사관에 1년이상 몸을 의탁한 채 도움을 요청하자 애처로움과 동시에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다. 이같은 관계의 성립은 니콜라이 2세의 자상한 성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해 보인다.니콜라이 2세는 전제군주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잔정이 많았다.해외 각국에 파견돼 있는 외교관들의 상주서에 일일이 답하는 것은 물론 건강까지 체크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중에는 고종과 니콜라이 2세가 친서를 주고 받은 사실이 30차례 가까이 등장한다.대부분은 고종이 보내고 니콜라이 2세가 받는 형식이었지만 니콜라이 2세도 여러 통의 친서를 보냈다.비공식 친서로는 1895년 7월 고종이 조선군 병참관 권동수(權東壽)를 연해주 지사 운테르베르게르 장군에게 보내 러시아 황제의 후원을 요청한 것이 있다.그러나 고종은 이후 문제가 야기되자 파견사실을 부인했다. 고종이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첫 공식친서는 1896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민영환(閔泳煥) 특사를 통해 전한 다음 친서이다. 짐의 나라는 관습은 물론 언어와 문자도 고유해 외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불행하게도 짐 나라의 동쪽 이웃나라가 일본이다.일본은 섬나라이며 관습은 짐의 나라에서 유래됐고 문자와 제도도 짐의 나라에서 가르쳐주었다.…그 때문에 일본은 짐의 나라를 자기의 조상과 주인의 나라로서 섬겼다.…최근에 일본이 서양의 제도를 흉내내고 배워 동양의 맹주가 되려한다.…짐은 폐하가 짐의 나라의 실정을 동정하고 정의를 토대로 세계 열강제국이 짐의 나라에 대한 일본의 불법적인 행위를 꾸짖고 나라의 독립을 침해하지 못하게 모든 조약규정 위반을 즉시 중지하도록 권고하여 주시길 바라고 바란다.끝으로 짐은 눈물로 폐하께 호소하며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고종의 ‘눈물의 편지’를 읽은 니콜라이 2세의 마음이 움직였는지 러시아는 1896년 10월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을 파견했다.그리고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으로의 국호변경과 황제 즉위 등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자 열강 중 가장 먼저 이를 승인하고 축하전문을 보내왔다.눈치를 보던 일본,미국,프랑스,영국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고종은 혹시 러시아가 거부할 지 몰라 노심초사했으며 “승인을 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거부하지 말고 현재의 호칭(대군주 폐하)으로 대해주기를 바란다.”고 연막을 쳤던 터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두 사람간의 밀착관계는 1898년 조선이 러시아 군사교관단 및 재정고문 알렉세예프의 본국소환을 요청하자 금이 가는 것처럼 보였다.고종은 “재정고문과 군사교관단의 소환으로 야기된 일련의 사태가 그동안 베푼 황제의 호의에 아무 영향이 없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러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에게 변함없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안심하도록 진정시키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일단 무마됐다. 니콜라이 2세는 내심 불쾌했지만 복심(腹心)은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도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이나 대한제국 정부가 앞으로도 러시아의 지지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지 문의하라.”는 칙령을 내리는 등 고종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하지만 고종을 공사관으로 피신시키겠다는 제2,제3의 아관파천 공작을 서울주재 공사관에서 보고하자 “그런 일은 현재의 정치여건 아래서는 지극히 위험한 사태를 몰고올 수도 있다.”면서 발을 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02년 고종의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니콜라이 2세가 베베르를 특사로 파견키로 하면서 절정에 올랐다.니콜라이는 고종에게 축하친서와 함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성 안드레이 사도 1급훈장 등 러시아 최고 훈장을 선물로 보냈다.이에 앞서 고종은 대한제국 최고 훈장인 금척대훈장을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바있다.안드레이 1급훈장은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 최고의 훈장으로 명예는 물론 당시 가격으로 5000루블을 호가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그러나 기념식이 콜레라 창궐로 연기되는 바람에 수여되지 않았다. 고종이 “기념식은 연기됐지만 베베르를 서울에 체류토록 해달라.”고 요청하자니 콜라이 2세는 “폐하의 요청을 받고 짐은 만약 뜻밖의 어려움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폐하의 재위 경축식이 다시 열리는 내년 4월17일까지 베베르의 서울체류에 동의한다.”는 친서를 보내는 등 서로의 돈독함을 공개적으로 내비췄다. 이후 1903년부터 1904년 사이 두 사람은 명헌태후 서거애도 친서,니콜라이 2세의 황태자 득남축하 친서 등을 주고 받았다.고종은 “황제께서 황태자를 생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고자 한다.이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축전을 치는 것이 도리였으나 외부의 방해 때문에 할 수 없이 이제 서한으로 축하를 드리게 됐다.”고 기술했다.니콜라이 2세는 “감사함을 전하라.”고 공사관에 지시했다. 러·일전쟁(1904∼1905)이 일어나자 고종은 “러시아의 승리를 확신하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기를 바란다.”는 친서를 띄웠고 “러·일전쟁 발발시 중립준수를 요청한다.”는 니콜라이 2세의 친서를 전달받자 곧바로 중립선언문을 작성,일본을 비롯한 열강에 보내 화답했다.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자 일본은 보란 듯이 강제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했다.이로써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으로부터 벗어나려던 고종의 전략은 한계에 부딪힌다. 러시아는 모든 열강이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무력으로 독립과 불가침권을 침탈한 데 대해 견해를 밝힌 바 있다.러시아 외무부는 일본정부가 고종을 일본으로 이송,미리 준비한 비밀장소에 연금시킨다는 계획을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러시아는 천인공노할 일본의 계획에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1905년 5월10일 외무부가 해외 러시아 공관에 보낸 회람전문) 니콜라이 2세도 이 전문상단에 “일본의 그런 행위는 어떻게든 예방돼야 한다.”고 지시하는 등 고종의 안위를 지켜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덕분에 고종의 일본강제 이송 및 연금계획은 무산됐다. 고종 개인에 대해서는 우정을 유지했지만 기울어진 대세는 니콜라이 2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을사늑약체결 직후 고종이 “일본은 미리 작성해 온 조약문에 국새를 강탈해 날인하고 짐의 서명을 강요하였으나 단호히 거절했다.황제께서는 유럽 문명국에 일본의 만행을 알려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시길 거듭 앙망한다.”고호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국내문제로 더 이상 대한제국을 도와줄 수 없다.”고 냉정하게 거절한 것이다. 이후 헤이그밀사파견(1907) 등 고종의 거듭되는 친서와 러시아에로의 정치망명 요청 등에 대해 러시아는 포츠머스강화조약(1905) 준수와 극동질서를 강조하는 등 계속 딴전을 피웠다.1905년 ‘피의 일요일’사건으로 러시아혁명이라는 폭풍앞에 선 니콜라이 2세로서도 동방의 소국에 더이상의 잔정을 줄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종황제는 병이 들어 나약하고 병력이 없는 군부대신은 허수아비처럼 서 있고 다른 각부 대신은 일본인에 복종하고 있다.노쇠한 황제는 고통스러운 감금의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대궐안팎은 일본인의 감시와 경비가 삼엄하다. 알현이 제한된 것은 물론 제3자를 통한 연락도 제한을 받고 있다.”는 1908년 12월8일자 소모프 총영사의 고종 및 대한제국에 대한 근황보고서는 두 마지막 황제의 관계가 대한제국의 몰락과 함께 종극(終劇)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주석기자 joo@ ■러시아가 본 조선王家 서울에 주재한 제정 러시아의 외교관들은 대한제국의 왕가(王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이번에 새로 발굴된 제정 러시아시대의 외교문서를 보면 러시아 외교관들은 고종과 주위의 대신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순종을 비롯해 엄비와 대원군,다음 왕위를 노리는 왕자들을 못마땅해 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오래전에 자주적인 통치력을 상실한 고종은 측근에게조차 권위가 없다.또 우유부단한 상태에서 대한제국 지배계급의 어느 한 집단이나 혹은 끊임없이 교체되는 명칭만 요란한 독립협회,황국협회,만민공동회,친러파,친일파,친미파,친영파 그리고 친독파로 구성되는 대신들에 의지하고 있다.(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 고종황제 자신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물이나 많이 쇠약해져 있다.황실에서는 고위직과 하위직을 막론하고 음모,뇌물수수,매수가 만연돼 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서 임용이 결정된다.(1903년 베베르 초대 대리공사) 명성황후의 시해이후 10여년동안 사실상 왕비의 역할을 한 엄비(嚴妃)가 서거하자 “엄비는 평민출신으로 양반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당의 굿에 의존했다.(1903년 베베르).”고 힐난한 대목도 나온다. 대원군에 대해서는 실제 이상으로 부정적이다.틈만 나면 고종 암살기도설 등을 정보보고하고 있다.1896년 베베르는 “고종은 부친 대원군을 숙청할 생각을 갖고 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러시아가 대원군을 아무르주 혹은 사할린으로 이주시켜 주기를 바라는 고종의 소망을 실현시키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일이다.”라고 적고 있다.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황제의 친모인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민씨가 80세를 일기로 서거하자 “고종은 모친을 몹시 사랑했다.고종은 성품이 선량하고 동정심이 많고 나약한 점이 모친을 닮았다.(1898년 쉬테인)”고 애도하기도 했다. 1898년 대원군이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그로데코프에게 보낸 편지도 흥미롭다.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편지에서 대원군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부모와 자식간에는 화목하게 산다.그런데 수십년전 4명의 신하가 고종 임금앞에서 늙은 아비를 비방한 일이 있었다.하늘에 맹세코 말하지만 우둔한 자들이 음모를 꾸며 부자지간을 이간시켜 놓음으로써 나는 지금도 아비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종은 천성은 선량하나 나쁜 신하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러시아에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하고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한 러시아 외교관들의 차가운 시선에는 애처로움이 느껴질 정도다. 순종의 즉위식이 8월27일 거행됐으나 고종과 세자는 참석하지 않았다.순종은 카키색의 군복을 입고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꺼렸다.황제의 인상은 침울하고 창백하며 놀란 듯한 두 눈에 얼굴은 병으로 부어 환자처럼 보였다.(1908년 소모프 총영사). 고종황제의 왕위를 이을 후계자에 대해 주목하면서 일일이 인물평을 늘어놓았다. 의화군 이강(李堈·후의 의친왕)을 유럽파견 공사로 임명했다고 조선정부가 통보해왔다.이강은 왕비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궁인(귀인 장씨)에게서 얻은 왕자로 젊고 유능하며 쾌할한 성격이다.일부 사람들은 그가 앞으로 세자로 책봉될 것이며 좀 우둔한 세자(순종)보다는 덕망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고종은 세자를 더 사랑한다.(1895년 베베르) 또 1906년 1월1일 고종황제와 황실가족과의 신년 경축 알현식에 참석한 플란손 총영사는 “장자인 황태자는 30세로 명성황후의 적자이며 법통 후계자다.의친왕(李堈))은 17세이며 명성황후 생존시 상궁소생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삼자 영친왕(李垠)은 9세이며 엄비 소생으로 영특하고 야심만만하다.”라고 평가했다. 노주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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