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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평성 잃은 ‘은행 가산금리’/白汶一 기자(경제 프리즘)

    은행에서 돈을 빌린 뒤 1년만에 원금을 다 갚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보통 1년 또는 2년에 걸쳐 대출기간을 연장한다. IMF 체제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채무자들은 돈을 못갚는다는 ‘송구스러움’ 때문에 은행의 대출 연장 동의에 그저 ‘황송해’ 한다. 그러다 보니 개인고객들은 아주 중요한 점을 지나친다. 연장시 추가로 더해지는 금리다. 은행은 ‘기간 가산금리’라고 말한다. 1년 연장시 0.5∼1%포인트 금리를 올린다. 고객들은 ‘연장’ 자체가 관심이기 때문에 은행의 요구에 순순히 응한다. 과연 은행의 요구는 정당한가. 금융감독위원회는 최근 중소기업 대출연장시 가산금리를 적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실물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이다. 그렇다면 소비진작을 위해 개인고객에게도 똑같은 ‘룰’을 적용하는게 공평하지 않는가. 은행들은 유동성(현금)을 장기간 빌려주는 데 따른 ‘위험관리’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인고객들이 은행 돈을 떼먹는 경우가 흔한가. 기업들은 부도로 은행 대출금을 못갚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실채권이 바로그렇다. 개인고객들은 적은 금액이라도 연대보증이나 담보를 설정해야 한다. 더욱이 처음부터 우대금리(프라임레이트)보다 4∼6%포인트 높은 금리를 적용받는다. 백보 양보해서 기간 가산금리를 물린다고 하더라도 이자를 연체하는 불량고객에게만 한정해야 한다.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원금까지 일부 갚는 우량고객에게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것은 은행의 ‘횡포’다.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은행에 대출의 원천을 제공해 주는 근본은 예금을 창출하는 디수의 개인고객임을 명심해야 한다.
  • 日 ‘강한 엔’ 만들기 나선다

    ◎자민당 외국인 투자촉진방안 정부건의 방침/내년 출범 유로화 견제­달러영향권 탈출 의도 【도쿄=黃性淇 특파원】 일본 정부와 자민당이 ‘엔의 국제화’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엔을 미국 달러처럼 상품이나 자본 거래의 수단으로 이용하게 하고 각국이 보유비율을 늘리도록 해 세계경제에서 엔의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속셈이다. 집권 자민당은 14일 ‘엔 국제화 소위원회’를 열고 외국인 투자가들의 엔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한 4가지 조치를 정부에 제안키로 했다. 단기할인국채(TB) 등에 대한 원천징수과세를 없애고 비거주자(외국인투자가)가 취득하는 국채 이자에 대한 원천징수를 폐지하는 게 골자다. 지금은 국채를 사들이는 외국인들에게 18%의 세금을 원천징수하고 있어 투자를 꺼리게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국제 통화로서 엔은 유로화나 달러와 함께 국제 금융시스템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국제화의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속셈은 따로 있다. 내년 1월 탄생할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를 미리 견제하고 달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다. 최근 경제위기의 영향중 엔의 국제화 미비도 한몫을 했다는 생각이다. 달러화와 유로화의 틈바구니에서 엔의 영향력과 가치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깔려있는 것이다. 대장성 등이 검토중인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IMF)격인 ‘아시아금융기구’(AMF)의 창설,아시아 국가에 대한 300억달러 제공 방안도 엔의 이용을 높이겠다는 구상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엔의 국제화는 두가지 요인에 성공여부가 달려있다.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강력히 견제하고 있는 미국이 용인해줄 지와 엔의 국제화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일본경제가 되살아날 수 있을지가 그것이다.
  • “실리냐 명분이냐” 한나라 고심/‘총재회담’ 강·온 두기류

    ◎朴熺太 총무,조기추진 주도/辛卿植 총장 “구걸 인상” 제동/이회창 총재 접점모색 부심 여야 총재간 청와대회담을 둘러싸고 한나라당 내부 기류가 두갈래로 엇갈리고 있다.총재회담을 조기 추진해야 한다는 실리론에 맞서 총재회담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명분론이 제기되고 있다. 전자가 그동안 당내 분위기를 주도했다.몇가지 이유가 있다.‘국정 파트너’로서 위상을 되찾겠다는 것이다.또 李會昌 총재가 金潤煥 부총재나 李基澤 전 총재대행 등 사정(司正)의 도마에 오른 중진을 ‘나 몰라라’할 수 없는 처지다.당사자들도 총재회담을 통한 ‘정치적 절충’을 바라는 ‘따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후자는 선명 야당론을 내세운다.이런저런 속사정으로 총재회담을 구걸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면 소탐대실(小貪大失)할 수 있다는 우려다.특히 단기전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정국의 큰 흐름을 놓치지 않는 장기 포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온건 기류는 朴熺太 총무 등이 이끌고 있다.朴총무는 14일 “여권 내 강경론이 있지만 최종 판단은 金大中 대통령이 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접지 않았다.“총재회담을 미룰수록 정국 파행에 따른 여권의 부담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강경쪽에는 辛卿植 사무총장이 있다.辛총장은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장외투쟁으로 여론이 우리 쪽으로 쏠리고 있다.총재회담에 목을 멜 이유가 없다”며 제동을 걸었다. 결국 최종 선택은 李총재 몫이다.李총재는 이날 주요 당직자회의 직전 공개 석상에서 “한나라당이 총재회담에 매달리고 있다는 일부 언론보도 내용은 잘못”이라고 쐐기를 박았다.그렇다고 李총재가 강경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오히려 총재회담의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접점을 찾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총재가 경제원로들의 훈수를 구한것도 맥을 같이 한다. 이날 蔡汶植 金在淳 전 국회의장,李哲承 高在淸 전 국회부의장 등과 저녁 회동을 가졌다. 야당 총재로서의 위상 굳히기도 겸했다.
  • 金宇中 회장과 재벌빅딜(경제 프리즘)

    “대기업끼리 모여서 이만큼 한 적 있었습니까. 발전적 시작이라고 평가해 주십시요. 서서히 개선해 가야지 한번에 바로 되겠습니까” 지난 7일 5대 재벌의 구조조정안이 발표된 뒤 金宇中 전경련 회장이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알맹이가 없다는 비난여론을 의식한 듯 기업간 합의도출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호의적인’ 보도를 부탁했다. 金회장은 “빅딜은 기업이 먼저 한다고 나선게 아니라 대통령이 말한 것을 우리가 자율적으로 하겠다고 받아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업계사상 최초의 자율 구조조정’‘경쟁력 제고를 위한 최선의 방안’ 등 여론과는 동떨어진 과분한 수식어들을 마구 쏟아냈다. 하지만 ‘정부와 여론이 왜 재계의 방안을 못마땅해 한다고 보는가’라는 핵심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물론 가진 것을 쉽사리 내놓을 기업인은 없을 것이다. 또 업체 자율 합의에 의한 ‘감량’(減量)의 역사도 전무하다. 하지만 이같은 이유를 내세워 ‘할만큼 했다’며 소박한 만족을 찾기에는 벼랑 끝 일보직전까지 내몰린 우리 경제의 현실이 너무도 암담하다. 자율이란 명분아래 계속되는 재벌들의 시간끌기를 마냥 기달릴 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다. 자율 구조조정을 주장했던 경제 전문가들조차 정부의 개입이 아쉬웠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이번 합의가 국가경제를 무시한 ‘재벌만의 빅딜’은 아니었는가 묻고 싶다. 이 부분에 대해 ‘재계의 총리’로서 金회장의 명확한 답변이 있어야 한다.
  • 북한의 통일소 폐사 시비(사설)

    북한적십자회 이성로 위원장대리는 8일 鄭元植 대한적십자사 총재 앞으로 통지문을 보내 지난 6월 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이 기증한 소 가운데 71마리가 폐사했다고 주장하고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폐사했다는 소의 수의검역 자료와 사진까지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보내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북한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유감을 표시하고 남북 쌍방의 공동조사를 거듭 요구했다. 북한이 현대측과 폐사 원인에 대한 공동조사에 합의했고 아직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적십자 창구를 통해 통일소 폐사문제를 확대시키는 배경에는 몇가지 저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금강산관광 일정이 확정되면 출항 전에 현대의 소 501마리가 2차로 추가북송될 전망이다. 통일소 폐사문제를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1차 북송때 대대적인 의미를 부여했던 언론 보도와 국민적 관심을 둔화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로 볼 수 있다. 또한 통일소가 북송 3개월이 넘어 폐사했다는 점에서 소 관리 부실에 따른 그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우리측에 전가시키려는 속셈도 깔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금강산관광사업이 무산될 경우 통일소 폐사문제를 빌미로 한국측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명분 축적용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북한이 통일부와 안기부에서 의도적으로 불순물을 먹여 폐사시켰다는 주장에는 한국 정부를 배제한 채 민간 차원의 남북경협을 주도하겠다는 대남전략의 하나로 통일소문제를 이용하겠다는 저의도 읽혀진다. 북한의 이같은 의도들은 모두 남북관계 개선에 한계를 인식케 해주고 있다. 특히 북한의 통일소 폐사 시비 확대는 김정일체제 공식 출범 이후에도 계속되는 냉전적 대남전략과 맞물려 볼 때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북한은 국민의 정부를 반통일세력으로 공격하고 남북당국간 대화를 외면하면서 대남 비난의 강도와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적 실리 획득을 위한 민간 차원의 경제교류와 협력에는 적극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냉전적,이중적 대남정책은 10일 밝히게 될 노동당 창건 53주년 정책노선에서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이 통일소 폐사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나선 것은 기존의 통일전략전술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금강산관광사업이 실현될 경우에도 예상밖의 돌출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한 사전 대비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 시간 번 5대그룹 ‘五色 미소’/‘미완의 빅딜’ 재벌 손익

    ◎‘바람’ 全無 SK 최대수혜/현대 ‘버티기’로 實利 챙겨/삼성 외형상만 양보 생색 어느 재벌이 지금 웃고 있을까. 시간벌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선 5대그룹 모두가 흐믓해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피 한방울 흘리지 않은 SK그룹이 최대 수혜자. 중복·과잉업종이 없어 애초부터 구조조정할 것이 없다는 게 SK측 얘기지만 추가 구조조정도 없을 전망이어서 SK그룹은 구조개혁의 영향권에서 일단 벗어났다. 삼성 현대 대우 LG 등 4대 그룹은 명암이 다소 엇갈린다. 버티기로 성공한 현대는 ‘빙그레’다. 핵심업종인 반도체,발전설비,철도차량의 경영권과 사업권에서 실리를 톡톡히 챙겼다. 한화에너지도 건지고(인수) 항공분야에서는 사세의 열세에도 불구,삼성 대우와 단일법인을 이뤄냈다. 버티기 이면에는 鄭夢九·鄭夢憲 회장,鄭夢準 고문 등 2세들로 분할된 그룹의 경영구조와 이들의 경영권 집착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삼성은 삼성종합화학의 현대석유화학과의 합병,선박용 엔진사업의 한국중공업 이관,항공의 통합법인 편입 등으로 ‘양보’를 많이 한 편. 항공과 철도차량 등이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 대우그룹은 외형적으로는 양보했지만 이들 부문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큰 손해는 없다고 얘기한다. 대우중공업의 전체 매출이 지난해 5조6,000억원이지만 철도와 항공을 합해도 3,000억원으로 5%를 조금 넘는다. 철도차량의 경우 한진과 단일법인을 만들기로 한 것이 손해일 수 있지만 가칭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로 통합되면서 경쟁력제고가 예상돼 손해도,이득도 없다는 것. 반도체 부문만 걸려있는 LG는 일단 경영주체 선정이 11월말로 미루어져 아직은 손익을 평가할 수 없는 상황. LG그룹 한 임원은 “공동경영안은 어떻게 해서든 빅딜을 깨지 않기 위한 양보의 한 방책이었다”면서 “단독 경영의 명분이 선 만큼 오히려 잘 된 일이며,자신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의 웃음기가 언제 가실 지 모른다. 구조조정안이 매우 미흡하다는 게 정부평가여서 강제퇴출의 된서리가 내려질 공산이 크다.
  • 野 내주 등원 가능성/한나라 李총재 “상황 바뀌면 언제든 등원”

    ◎與선 “13일부터 국회 단독운영” 최후통첩 한나라당내에서 ‘원내외 병행투쟁론’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다음주중 국회정상화 여부가 주목된다. 국민회의·자민련의 여권은 8일 한나라당에 “등원을 거부할 경우 13일부터 본격적인 국회 단독운영을 하겠다”는 朴浚圭 국회의장 명의의 ‘최후통첩’을 보냈다.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도 “등원에 어떤 조건이나 형식,명분은 필요치 않다”는 입장을 제기,빠르면 다음주 중반인 14∼15일쯤 국회가 정상화 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이날 오후 朴浚圭 의장 사회로 국회 본회의를 열어 소속의원들의 5분발언을 통해 야당의원들의 조속한 국회복귀를 촉구했다. 양당은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 아들의 병역비리(兵風),국세청 불법모금사건(稅風),판문점 총격요청사건(銃風)등 이른바 ‘삼풍 사건’에 대한 한나라당의 사과와 등원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한나라당 李총재는 8일 의원총회 인사말을 통해 “국민의 대변기관이 될수 있다는 상황이라고 생각할 때는 언제든지등원할 것이며 등원에 어떤 조건이나 형식적인 명분은 소용이 없다”고 말해 등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야당총재를 국정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정권을 국정의 책임자로 인정할 수 없고,나아가 정권의 퇴진운동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대여(對與)강경투쟁 노선을 견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 李會昌 총재의 독선/吳豊淵 정치팀 차장(오늘의 눈)

    ‘국회 등원(登院)’을 거부하고 있는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위험’한 발상은 언제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 단연 첫 번째 화두(話頭)이다. 여야 의원들과 정당 출입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이면 이 화제가 으례히 등장한다. 도대체 李총재의 ‘속내’를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이른바 ‘세풍(稅風)사건’ 및 ‘총풍(銃風)사건’에 휘말려 있는 李총재가 빼든 칼에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수사 결과 드러난 객관적인 사실까지도 ‘李會昌 죽이기’로 몰며,정치공세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대선 당시 1,000만표 가까운 ‘표’를 얻었고,지난 8월31일 열린 전당대회에서도 압도적인 표차로 총재에 당선된 것을 감안하면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李총재가 퇴로를 차단한 채 ‘독선(獨善)’을 부려 더 큰 문제가 파생되고 있다. 李총재는 지난 7일 당 비상대책회의에서 “등원이 협상의 전제조건이 될 수 없다”고 미리 쐐기를 박았다. 바로 전날 金大中 대통령이 모 일간지 창간기념 회견에서 밝힌 ‘무조건 등원’에 대한 답변이었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李총재는 그러면서 유아독존(唯我獨尊)적으로 대여(對與),대국민(對國民) 메시지를 띄웠다. “국회 등원은 전적으로 내가 결정한다. 등원할 시기라고 판단되면 당이나 소속 의원들이 반대해도 등원하고,등원을 강요해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들어가지 않는다”고 다른 참석자들의 입을 막았다. 辛相佑 국회부의장만 원내외 병행투쟁론을 제기했을 뿐,다른 참석자들은 대부분 묵묵부답이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강성기류가 계속 흐르다 보니 8일 열린 의총에서도 등원여부는 전적으로 李총재의 결정에 맡기기로 했다. 李총재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주류들의 목소리가 주효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李총재는 이날 의총에서 한발 뺐다. “등원하는데 어떤 조건이나 형식적인 명분은 소용이 없다”고 말해 처음으로 퇴로를 열었다. 때는 못박지 않았지만 ‘등원’을 시사한 것이다. ‘등원거부’나 ‘장외투쟁’도 한 방편일 수 있다. 그러나 ‘원내외 병행투쟁론’쪽으로 당내 기류가급격히 옮겨가고 있는 것을 李총재는 알아야 한다.
  • 한나라당 登院 수순 밟기/“원내투쟁”확산·무작정 장외투쟁도 부담

    ◎司正 끝내기 단계… 일부 요구 수용 자평 한나라당이 ‘국회 등원(登院)’을 위한 수순밟기에 들어갔다. 여권을 겨냥한 공세의 고삐는 늦추지 않고 있지만 당내 기류 변화는 확연하다. 李會昌 총재가 스스로 퇴로를 텄다. 李총재는 8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통해 “국회 등원에 어떤 조건이나 형식적 명분은 필요치 않다”고 말해 종래의 강경 태도에서 한발 물러섰다. 소속 의원들도 등원의 시기를 총재에게 일임했다. ‘적절한 시기’에 李총재의 ‘정치적 결단’의 형태로 등원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의미다. 朴熺太 총무는 “의원빼내가기나 사정(司正)이 어떤 이유에서든 끝내기 단계에 들어가 결과적으로 우리의 요구사항중 일부가 수용된 셈”이라며 “이제는 풀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시기는 다음주 중반쯤으로 예상된다. 13일 여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가 열리면 하루,이틀 뜸을 들이다가 전격 등원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李총재의 벼랑끝 선택은 당내 일부의 등원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비주류는 물론 일부 측근 의원 사이에서도 ‘원내 투쟁론’이 힘을 얻고 있다. 국정감사나 대정부질문,상임위 활동 등을 통해 현 정권의 실정(失政)을 따지고 ‘세풍(稅風)’,‘총풍(銃風)’ 등 ‘야당 말살 공작’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9월말과 추석연휴 직전 등 李총재가 몇차례의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무작정 장외투쟁을 계속하는 것도 부담이다. 그러나 ‘총격요청 사건’ 등 첨예한 현안에는 사안별로 강력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吳靜恩 張錫重씨 등 ‘총격요청 3인방’의 가족과 주변인물의 기자회견을 주선,‘고문조작설’을 집중 부각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욕심·고집… 빅딜없는 밥그릇 싸움/표류하는 5大그룹 구조조정협상

    ◎절충점 찾기보다 기존입장만 되풀이/지리한 ‘대리인 전쟁’… 협상력에 한계 재계 빅딜이 업체들의 치열한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돼 재계가 진정 구조조정 의지를 갖고 있는 지 의심받고 있다. 구조조정의 대가로 세금 감면이나 대출금의 출자 전환,부채 탕감,장기부채의 단기 전환 등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만 늘어놓았지 정작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반도체 등 쟁점 사안에서 업체들이 보여온 대결 양상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오는 7일에도 결과를 못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외부 실사를 의뢰하고 느긋하게 ‘시간을 끌던’ 철도차량까지 정부 반대에 부딪쳐 자율적으로 경영주체를 정하게 돼 구조조정의 진통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다. 해당기업들은 그동안 구조조정 협상테이블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밀어붙이기’식 전술로 일관해 왔다. 절충점을 찾기 보다 그룹에서 결정된 부분을 상대방에게 재확인시켜주는 수준에 그쳤다. 특히 협상력에 한계가 있는 구조조정본부장들만이 지리한 ‘대리전쟁’을 계속했다.문제를 풀기 위해 오너들이 마주앉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경영개선계획서 제출시한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난 1일 최종 협상에서도 반도체,발전설비 부문의 이해 당사자들은 전혀 새로운 카드를 내놓지 못했다. 반도체의 경우 현대전자는 생산 규모와 시장점유율을 들어 경영권 확보를 주장했고,LG반도체는 선발업체와 계열사 산업 연관성을 들어 50대 50 공동경영을 고수했다. 발전설비에서는 한국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각각 시장점유율과 수출경쟁력이라는 명분을 녹음기처럼 틀어댔다. 경영권을 내 줄 경우,기업 내부 사정이 경쟁업체에 노출되는 데 대한 우려도 협상의 발목을 잡았다. 전경련 관계자는 “남에게 드러내 보일 수 없는 경영상의 치부를 많이 갖고 있는 기업사정도 경영권을 고수하려는 주된 이유”라고 말했다. 자율적인 ‘딜’을 이룰지,정부와 채권단의 ‘메스’를 빌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재계. 그러나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기타 쟁점/발전설비­일원화 자체 백지화 가능성도/선박용엔진­3社 단일법인­現重체제 재편 자율조정을 택할 것인가,타율적인 구조조정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5대 그룹이 사업구조조정 협상의 와중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오는 6일까지 협상을 타결짓지 못하면 미합의 업종은 불가피하게 금융권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처리될 공산이 커졌다. 특히 금융당국은 공동법인과 같은 지분나누기식 구조조정에는 금융지원을 않겠다는 방침이어서 이미 의견접근이 이뤄진 업종에도 변수로 작용할 것같다. ◇발전설비=현대와 한국중공업간 이견이 크다. 한중민영화와 연계돼 있는 문제다. 현대와 한중이 서로 경영주체가 되겠다고 버티고 있다. 현대가 한중에 발전설비를 넘길 것인가가 관건이며 6일까지 경영주체를 결정해야 한다. 때문에 발전설비 일원화 자체가 백지화될 가능성도 있다. ◇철도차량=현대정공,대우중공업,한진중공업이 단일법인의 지분율과 경영주체를 6일까지 결정키로 했다. 당초 경영주체 선정을 맥킨지컨설팅사에 맡기기로 하고 계약까지 했으나 시간이 걸린다는 당국의 지적에 따라 백지화시켰다. ◇선박용엔진=한국중공업과 삼성중공업,대우중공업 등 3사 대표는 1일 오후 한국중공업을 중심으로 삼성,대우 등이 참여하는 선박엔진 단일법인을 만들기로 하고 각서에 서명했다. 단일법인의 책임경영주체는 한국중공업이 맡되 지분율은 추후 논의키로 했다. 한진중공업이 단일법인 참가의사를 밝혀올 경우 허용할 방침이다. 따라서 선박용 엔진은 이들 3사간 단일법인과 현대중공업의 2사 체제로 재편되게 됐다. ◇정유·항공·석유화학=이들 3개 업종은 큰 쟁점은 없다. 현대정유의 한화에너지 인수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항공과 석유화학도 해당그룹이 단일법인을 설립,전문경영인체제로 나가기로 했다. 항공·석유화학업종은 외자유치를 통해 외국인도 대주주나 경영주체가 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李憲宰 금감위장 관훈토론 일문일답/“지분 나누기식 빅딜 지원 못해”/회생 어려운 기업 여신중단 통해 정리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은 2일 관훈클럽초청 토론회에서 “지분나누기식 5대 그룹의 사업교환에는 자금을 지우너할수 없다”고 밝혔다. ­5대 그룹의 빅딜이 지분나누기식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조금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업교환은 과잉·중복됐거나 잘못 투자한 부분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컨소시엄 형태는 그런 측면에서 잘못될 소지가 있다. 이런 방식의 사업교환에 정부가 금융지원을 하면 국내·외에서 특혜시비가 일 수 있다. ­5대 그룹의 구조조정 방향은. ▲주력업종이 아니거나 중소기업에 적합한 사업은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 외국에 매각하거나 합병·합작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사업교환 등으로 신설될 법인은 아웃소싱이나 ‘매니지먼트 바이 아웃(MBO)’을 통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춰야 한다. ­추가 퇴출기업은. ▲내부 지원없이 회생이 어려운 기업은 반드시 정리한다. 그러나 퇴출기업의 일괄 발표는 없을 것이다. 주채권은행별로 기업의 신용에 맞춰 단계적으로 여신중단 등을 통해 정리할 것이다. ­은행의 소유구조는. ▲법에서 지나치게 규제하고 있다. 소유지분을 4%에서 10%나 20%까지 풀 수는 있되 투자나 대출 등 경영의 투명성을 감독하는 데 치중할 필요가 있다. 이사회 구성에 관한 제한규정도 완화해야 한다. ◎전경련 孫炳斗 부회장 문답/“6일 마지노선으로 타결 노력”/금융·기업 구조조정 맞물려 합의 지연 孫炳斗 전경련 부회장은 “6일까지를 마지막 시한으로 잡고 구조조정안 타결에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6일까지 시한을 늦춘 이유는. ▲금융기관 구조조정과 기업 구조조정은 맞물려 있다. 5대 그룹의 재무구조개선 약정서와 부실계열사 퇴출 등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 지난달 30일을 시한으로 잡았는 데 합의가 지연돼 일정이 1주일 늦춰진 셈이다. ­6일까지 안되면. ▲기업구조조정은 금융부문 구조개혁과 연계돼 있다. 따라서 타결되지 않으면 주채권은행과 협의과정이 이어지게 된다. ­1일 밤 마라톤회의에서 발표를 연기키로 한 것인가. ▲당초에는 각사가 자구계획서를 내 제3 전문평가기관의 평가를 받기로 가닥을 잡았으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번 더 협상하기로 했다. ­정부측 반응은. ▲진행된 상황을 보고했고 1주일만 여유를 달라고 부탁했다. 정부도 동의했다. ­삼성,대우가 한중과 함께 선박용 엔진에서 단일법인을 만들기로 했다는데 이번 발표에서 제외된 것은. ▲산업자원부 쪽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 지 모르지만 5대 그룹간 논의에서는 삼성의 선박용 엔진사업의 한국중공업 이관만이 논의됐다.
  • 국민안보의식 해이 우려/丁海龜 세종硏 연구위원·정치학(기고)

    ◎권력장악 노린 ‘적과의 내통’ 충격 보도된 바에 따르면 지난 15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의 비선 조직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인사를 만나 판문점에서 총격전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좀더 구체적인 사실이 보다 분명하게 밝혀져야겠지만,현재 보도 내용대로라면 충격적인 일이다. 이미 우리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특정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안기부까지 개입된 ‘북풍(北風)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와 유사한 사례가 더 있으리라는 의구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래도 설마했던 것이 우리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므로 선거승리를 위해 ‘적과 내통’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판문점에서 총격전까지 요구했다는 것은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 뿐이다. 한편 이번 일이 여야 정쟁이 가장 극심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개되었다는 점도 미심쩍은 일이다. 물론 사건의 수사과정상 정치와는 무관하게 공개된 것이라고 검찰은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여야가 ‘서울역 집회 방해사건’ 등을 놓고 대치중인 상황이 아닌가. 아무튼 적에게 총격전을 요구하는 일이나 여야의 끊임없는 정쟁 등 속된 말로 ‘막가파’식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들이 있다. 언젠가부터 권력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다할 수 있다는,이를테면 ‘적과의 내통’뿐만 아니라 적에게 총격전까지 요구할 수 있는 ‘권력물신주의’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 누구를 지적하기 이전에,지난 몇번의 선거를 통해 권력을 향한 줄서기가 얼마나 성행했는지 우리는 익히 안다. 하나의 단적인 예지만 이러한 사태들이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얼마나 재촉했는가. 특히 정치권에서 남북관계를 이런 식으로 일상적으로 이용할 때 궁극적으로 국민 안보의식의 해이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적극적 도발을 ‘정치권 사주’로 치부해버리는 분위기가 생길까 걱정된다. 또 하나 지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이 사건에 거론된 인물들이 비교적 젊은 사람들로 이른바 똑똑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자기 책임을 넘어선 국제통화기금(IMF)고통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 고통분담에 땀흘리고 있다. 그러나 권력 주변에 맴도는 똑똑한 친구들의 ‘한탕주의’가 언젠가부터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외면적으로 탈독재 민주화가 이뤄졌음에도 민주적 절차와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지키기보다는 독재시대보다 더못한 정치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 정치문화도 그 공동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권력 장악을 위해 적과의 내통까지 마다하지 않은 정치문화는 명분도 실리도 없는 이전투구의 정쟁만을 이어가는 현재의 정치문화와도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 사건의 내용이 공개된 이상,정부와 검찰은 분명한 진상을 밝히고 그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며,동시에 그 과정에 정략적 동기가 개재되어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마땅히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해방후 최대 정치테러”/한나라당 시각

    ◎시간대별 피해보고서 발표… 강경대응/“야당파괴 계속땐 국민적 저항” 경고 한나라당이 30일 ‘9·29 서울집회 사태’를 “해방 이후 최대의 정치테러 사건”이라고 규정,강경대응 방침을 밝혔다. 명칭도 ‘서울역 유혈 정치테러 사건’으로 못박았다. 李會昌 총재가 이날 경제기자회견을 전격 취소한 데서도 기류를 읽을 수 있다. 대신 辛卿植 사무총장이 ‘서울역 집회 폭력사례 폭로회견’을 가졌다. 당 3역 등은 오후 金鍾泌 총리를 항의 방문했다. A4용지 7장 분량으로 ‘서울집회 시간대별 상황과 피해사례’도 내놨다. “韓모 전문의원이 머리가 깨지는 등 당원 수십명이 몸에 문신을 새긴 폭력배에게 돌,유리병,각목 등으로 맞아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당초 李총재는 회견에서 경제난국 극복을 명분으로 국회 드원의 수순밟기에 들어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서울역 집회 이후 여의도 등지에서 전국 규모의 집회를 추진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李총재는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정부 여당이 평화적·합법적 집회를 수백명의 폭력배를 동원,조직적으로 방해한 폭거는 민주주의와 현정질서를 파괴한 중대사태로 과거 자유당 정권이나 군사정권 시절에도 경험하지 못한 반(反)민주적 폭거”라고 밝혔다. 李총재는 “폭력적 방법으로 노도와 같은 민심을 누르고 야당을 파괴한다면 엄청난 국민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金大中 대통령의 사과와 金正吉 행정자치부장관,金世鈺 경찰청장해임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고민도 없지 않다. 퇴로 없이 투쟁으로만 치닫기가 버겁다. 자금은 바닥이 났고 투쟁방식을 둘러싼 당내 이견도 부담이다. 추석 연휴이후 여권의 태도변화를 기대하는 눈치다.
  • 徐相穆 의원 체포안 처리가 大尾 될듯/여 “稅盜·개인비리 분리”

    ◎‘8일쯤 시도’ 가닥 잡아 한나라당 徐相穆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강행 처리가 정치권 사정의 대미(大尾)를 장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권이 ‘세도(稅盜)사건’과 개인비리사건을 분리,세도사건에 연루된 徐의원의 체포동의안 선(先)처리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국회에는 ‘세도사건’에 연루된 徐의원,개인비리 차원인 吳世應 白南治 의원 등 3명의 체포동의안 요구서가 제출돼 있다. 여권은 체포동의안을 처리할 것임을 천명하면서도 머뭇거려 왔다. 국민회의 자민련의 의석수가 과반수를 겨우 넘긴 155석에 불과,6표만 이탈해도 동의안 처리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회의가 세도사건과 개인비리사건을 분리,체포동의안을 처리키로 한 것은 이같은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도사건은 죄질이 나쁘고 개인비리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논리다. 동료 의식이 작용할 명분이 약해 체포동의안 처리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나라당 내의 미묘한 기류도 徐의원의 체포동의안 강행 처리방침에 한몫을 하고 있다. 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은 30일 “徐의원이 어제(29일) ‘동문인 李碩熙 전 국세청차장이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보고한 사실이 있다’고 발언한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李會昌 총재의 사전 인지설을 기정사실화했다. 李총재가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던 것과 배치된다는 설명이다. 여권은 徐의원의 발언 배경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날 것을 염려한 김빼기 작전,또는 李총재와 徐의원의 불화설 등 두 갈래로 파악하고 있다. 徐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는 빠르면 오는 8일 본회의에서 시도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吳世應 의원 등 개인비리 연루 현역 의원들의 체포동의안 처리는 불투명하다.
  • 여당의 현주소(대치정국 이대로는 안된다:2)

    ◎與,집권당답게 정치력 키워야/매끄러운 국정운영 미흡/정면돌파·한건주의 지양/집권당 좌표설정 새로이 50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신여권 앞에는 국정현안이 산적해 있다. 정치개혁은 물론 경제·사회개혁까지 그동안의 적폐를 청소하지 않고는 한치 앞으로도 나아갈 수 없다는 각오가 번득인다. 하지만 신여권은 집권 8개월을 맞았지만 여전히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제2 건국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DJ호’를 끌고가야 할 집권당으로서 ‘좌표 설정’에 실패하지 않았느냐는 우려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순간순간 상황타개에 몰두했던 ‘야당식 정치행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명분 하나로도 ‘정면돌파’가 가능했던 야당 때와는 달리 복잡한 변수가 곳곳에 숨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력 부재로 인한 불협화음과 한건주의에 급급한 정책추진으로 스스로 여권의 권위와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재 진행형인 사정정국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짚어보자. 청와대­검찰­당으로 이어지는 ‘대화채널’이 총체적 혼선을 빚으면서 필요 이상으로 야권을 자극한 측면이 강했다. 당 지도부가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청와대가 ‘성역없는 사정’을 외치고 있을 때 국민회의 내부에서 국회 정상화를 서두르다 하루만에 ‘전면 백지화’시키는 해프닝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초기 전략부재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국세청 세도(稅盜)사건’을 정치인 개인비리와 적절하게 분리하지 못했다. 薛勳 기조위원장은 “국정문란 사건을 제대로 부각하지 못해 표적사정이니,정치보복이니 하는 역공의 빌미를 줬다”고 시인했다. 총체적인 ‘마스터 플랜’없이 사정정국을 끌고가다보니 불필요한 형평성 시비에 휘말려 정치개혁의 의지가 손상되는 우를 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설익은 발상’을 그대로 여권의 정책으로 밀어붙였다가 국정운영 능력에 문제점을 드러냈다. 최근 ‘식수댐 건설 파문’이 대표적인 예다. 국민회의 金元吉 정책위의장은 지난 23일 청와대 주례보고 후 마치 金大中 대통령의 지시인 것처럼 확대 발표했었다. 환경부와 자민련 등은 “기존 팔당상수원 종합대책과 혼선을 빚는다”며 반발했고 환경단체들도 일제히 “환경오염을 선도하고 있다”고 가세했다. 급기야 청와대는 “식수전용댐은 와전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고 불과 며칠새에 백지화됐다. 정책정당을 자임하고 있는 국민회의로서 면밀한 대책도 없이 밀어붙인 야당식 한건주의가 빚은 결과였다. 최근 기아자동차 입찰을 둘러싼 여권의 접근법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엄정 중립에 서야 할 정치권이 “삼성자동차로 갈 수밖에 없다”며 정치권 개입의혹을 자초했고 공정집행자로의 능력을 의심받게 됐다. 최근 지방행정 개혁과 관련,4개 광역시 폐지 등의 개혁안을 제출했다가 서둘러 백지화시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집권당의 생명은 차질없는 국정운영이다. 그때그때 상황타개에 초점을 맞추는 야당체질로서는 안정감있게 집권당의 역할을 소화하지 못한다.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채 청와대의 향배에만 촉각을 세우면서 집권당의 위치 설정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다. ‘복창(復唱) 정치’와 ‘해바라기 정치’라는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행태를 떨쳐 버릴 때 비로소 집권당의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귀담아 들을 때다. □여권의 정책혼선 사례 ◆식수 전용댐 건설 ·과정:팔당 상수원과 별도의 식수댐 5∼6개 건설 ·결과:기존 정책(팔당 상수원 종합대책)과 마찰, 식수댐 불필요로 가닥 ◆월드컵 경기장 성명권 유치 ·과정:2002년 월드컵 경기장의 성명권을 외국기업에 팔아 자금 유치 ·결과:문화관광부의 반발로 전명 백지화 ◆그린벨트 재조정 ·과정:당안을 청와대 보고 ‘미흡 판정’ ·결과:건교부 독자적으로 작업 추진 ◆경제 청문회 증인 선정 작업 ·과정:재벌 총수 포함 등 범위 확대 ·결과:재벌 총수 배제 등 범위 축소
  • 野 등원거부 정당한가(대치정국 이대로는 안된다:1)

    ◎‘司正꼬투리’ 거리정치 명분없다/비리소환­처벌 회피의도 농후/과거 야당은 개헌저지 등 큰 뜻/장외투쟁보다 원내해결 힘써야 대치정국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일단 국회에 들어가 따질 것은 따지라’는 것이다. 시리즈를 통해 정국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살펴본다. ‘정기국회 파행’ 19일째인 29일,한나라당은 서울역에서 장외집회를 다시 강행했다. 대치정국의 끝은 어디인가. 재계는 정국불안이 경제난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IMF시련 기에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따가운 비판이 쏟아진다. 28일 시작된 여당 단독국회운영은 야당의 등원거부에서 비롯됐다. 한나라당은 ‘사정(司正)=야당파괴’라며 등원을 거부하고 있다. 이같은 논리는 명분도,정당성도 갖기 힘들다는 것이 원로정치인이나 학자들의 지적이다. 이른바 ‘세도(稅盜)사건’은 우리 정치사에 남을 치욕적인 일이라는게 일반인들의 공통인식이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담당할 당시 국세청을 동원,기업체마다 세금을 줄여주는 대신 정치자금을 얻어쓴 ‘엄청난’ 사건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이 비리사건 연루자의 검찰소환을 야당탄압으로 규정,당차원에서 장외투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한나라당은 정기국회 전 임시국회를 여러번 소집했다. 대부분 李信行 의원의 구속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했다. 야당의 장외투쟁은 과거의 것과 비교해서도 명분이 약하다. 90년 정기국회가 70일동안 공전됐을 때다. 야당 등원거부 명분은 3당통합의 인위적인 정계개편,여당의 법안날치기·지자제의 연기등 굵직한 사안이었다. 야당의원들은 의원직 사퇴서를 던진 뒤 의원회관에서 철수했으며 세비수령도 거부했다. 말과 행동이 일치,상당수의 국민이 그들의 주장에 공감했다. 정국의 실마리를 푼 쪽도 야당이었다. 단식중이던 金大中 평민당총재는 ‘국회내에서의 투쟁’을 내세워 정국돌파구를 열었다. 국정운영을 책임진 여당의 책임도 크다. 여권이 야당의 장외투쟁에 일말의 명분을 주었다는 책임론도 나온다. “사정대상에 누가누가 거론된다”는 여권 수뇌부의 발언들은 야당에 ‘기획사정’ 비난 근거를 제공했다.‘타협과 설득 기술의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80년대 이후 정기국회 공전사례 ▲12대(85년 129회 정기국회) ­정기국회는 정상적으로 개회. 직선제 개헌 요구와 관련,야당측이 고대앞 시위 강경대응을 이유로 20일동안 등원거부 ­10월28일에는 국회부의장 후보경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지명한 조연하 국회부의장 후보가 낙선하고,김영록 의원이 당선된 이른바 김역록 부의장 파동으로 7일간 공전 ▲13대(90년 151회 정기국회) ­3당 통합에 반발하고,지방자치제 실시를 요구하며 야당 정기국회등원 거부,의원직사퇴 및 세비수령거부 등 강력반발,11월18일까지 70일동안 여당 단독국회. 9차까지 본회의 진행 ▲14대(93년 165회 정기국회) ­국정조사 기간 연장과 국정조사에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증인 출석문제를 놓고 5일동안 공전 ▲14대(94년 170회 정기국회) ­성수대교 붕괴에 따른 야당인 민주당의 내각 총사퇴와 대국민사과 요구. 10월24일부터 3일간 공전 ­11월5일부터는 20일동안 검찰의 12·12사건 관련자 공소권 없음 결정에 야당 반발. 또 다시 표류 ▲15대(98년 198회 정기국회) ­검찰의 국세청을 동원한 한나라당 불법 대선선거자금 모금과 비리정치인 수사,야당의원의 여당행에 반발. 한나라당 등원거부,의원직사퇴,장외투쟁. 자민련 2여 단독국회, 2차 본회의 진행. 9월10일 개회식부터 20일동안 공전중
  • ‘파국’의 매듭 푼 4인방/은행 감원협상 타결 주역들

    ◎분규파장 경제부담 공동인식/고비마다 ‘대화의 끈’ 포기안해 은행의 인력감축 협상 타결에는 ‘4인방’의 역할이 컸다.朴仁相 한국노총위원장은 고비마다 중재에 나선 ‘일등공신’이며 柳時烈 제일은행장과 秋園曙 전국금융노련위원장은 끝까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李憲宰 금감위원장은 노사(勞使) 양측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강온 양면을 구사하는 유연성을 보였다. 朴위원장은 노사분규시 해외 언론의 부정적 반응과 그로 인한 대외신인도 하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난 26일 李위원장과의 회동을 요청,대화의 물꼬를 텄고 금감위로부터 ‘9개 은행이 노사협의를 바탕으로 이행계획서를 다시 내면 신축적으로 받아주겠다’는 확답을 얻어냈다. 朴위원장은 전국금융노련에 이같은 금감위의 양보를 알려주며 대화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秋위원장도 겉으로는 이행계획서의 백지화 등을 주장했으나 총파업에 대한 부담으로 대화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李위원장은 柳행장에게 금감위의 전권을 위임,秋위원장에게 대화 참여의명분을 줬다.이어 은행 연합회관에서 이들 4명은 ‘노사합의=금감위의 승인’이라는 원칙하에 오후 7시부터 9개 은행의 노조대표와 은행장이 일괄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경찰병력이 9개 은행 본점에 배치되면서 노조대표들이 반발하자 협상은 시작하기도 전에 차질을 빚었다.朴위원장은 금감위에는 경찰병력 철수를,노조에는 대화시작을 독려해 경찰이 일부 철수하기 시작한 하오 11시25분쯤 협상은 시작됐다.밤샘 협상에서 인력감축 비율을 놓고 은행측은 33%,노조측은 31%로 맞서 협상은 한때 파국으로 치닫는 듯이 비쳐졌다. 이때 李佑喆 금감위 기획실장이 눈을 붙이고 있던 朴위원장을 깨워 ‘SOS’를 요청했고 朴위원장은 柳행장과 秋위원장을 다시 만나 일괄협상이 안되면 개별협상으로도 파업을 막아야 한다고 설득했다.柳행장은 과감히 업무복귀를 선언,협상이 종지부를 찍게 됐다.
  • 英·佛 “獨逸을 짝궁으로 잡아라” 경쟁/유럽 역학구도 변화 조짐

    ◎英­친분 이용 3국 연대 거론 등 ‘구애 손짓’/佛­위기감속 獨 총리 유럽국가중 첫 초청 요즘 유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을 먼저 짝궁으로 삼기 위해 필사적이다.독일의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유럽의 헤게모니 구도에 틈이 보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흐름을 먼저 눈치챈 것은 영국.프랑스와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던 헬무트 콜 총리 정부가 퇴진하자 영국이 재빨리 틈새를 파고 들었다. 유럽은 누가 뭐래도 영국과 프랑스,독일의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인다고 분석된다.황금의 삼각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만약 셋중 둘이 조금이라도 가깝다면 유럽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유럽의 현실. 영국이 게하르트 슈뢰더 차기 독일 총리라면 콜 총리의 지원아래 독주해온 프랑스를 제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더구나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슈뢰더와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터.명분으로 영·독·불 중도좌파정권 동맹을 내걸었다. 블레어 총리는 슈뢰더의 승리가 확정되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각국 지도자들 중 가장 먼저 축하전화를 걸었다.그리고 세나라 중도좌파 정부가 공조하는 ‘3자연대’을 거론하며 독일에 구애의 화살을 쐈다. 로빈 쿡 외무장관은 보다 노골적이었다.슈뢰더는 과거 독일과 프랑스의 밀월관계를 떠받쳐온 축에 해당되지 않는 신세대 인물이기 때문에 영국에 보다 우호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애써 감추지 않는다. 영국은 ‘유럽의 삼각구도’에서 물론 프랑스를 밀어낼 생각은 없다고 했지만 프랑스로서는 불안하기만 할 것이다“자신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보다(토니 블레어의)신 노동당에 가깝다”는 슈뢰더의 영국에 대한 화답은 프랑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국가에선 처음으로 슈뢰더를 초청했다. 영국과 독일의 움직임에서 비롯됐다.정치적으로 대처식 자유시장 경제를 고수하는 블레어보다는 리오넬 조스팽의 전통적 사회주의쪽에 가깝다는 게 프랑스로서는 유리하다. 결국 열쇠는 독일의 슈뢰더가 쥐고 있는 상황이다.패전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유럽의 중심축이 되어 보겠다는 게 전통적인 독일의 외교 전략.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등거리 전략을 구사해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 삼성전자 초경량 휴대폰

    삼성전자가 반으로 접고 펼 수 있는 폴더형 휴대폰 2종(PCS,셀룰러용)을 개발,10월부터 본격 출시한다. 삼성전자는 3세대 휴대폰으로 불리는 이 제품이 명함 크기에 무게 98g의 초경량이면서도 전세계 휴대폰 가운데 가장 넓은 화면(5라인)을 가졌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또 이 휴대폰은 펼쳐 사용할 때 마이크와 스피커간 거리가 14㎝여서 한국인의 체형에 가장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40억원의 개발비가 들어간 이 제품에는 전자수첩과 200명분의 전화번호부기능 등이 포함돼 있다.
  • ‘은행파업’ 타결 조짐/금감위,인원조정 등 노조요구 수용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금융노련)이 대규모 인원감축에 반발,29일부터 파업을 강행하기로 한 가운데 인원감축 대상인 조흥 상업 한일 외환 제일 서울 평화 강원 충북 등 9개 은행 노조원들의 요구사항이 전면 받아들여 질 것으로 보여 교착상태에 빠진 노사협상이 급진전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위원회는 27일 “李憲宰 위원장이 전날 오후 롯데호텔에서 9개 은행장들과 만나 경영정상화 이행계획서 중 인력조정부분은 수정이 필요할 경우 보완, 제출토록 하고 해직에 따른 특별위로금은 노사합의에 따라 시행토록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금감위가 인력감축규모와 퇴직위로금 지급수준 등을 노사협의에 의해 자율결정토록 한 것으로 노조의 요구사항을 전면 수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29일로 예정된 노조의 파업명분이 사라졌으나 이같은 금감위의 결정에 秋園曙 금융노련위원장이 “입장정리가 되지 않았다”며 협상을 거부,파행강행 여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만약 파업이 강행될 경우 월말 결제수요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입·출금 및 어음·수표 교환이 차질을 빚는 등 금융질서에 대혼란이 우려된다. 파업준비중인 은행과 거래하는 고객들은 필요한 자금을 미리 찾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금융노련 움직임=금융노련은 27일 9개 은행 전조합원들이 29일 집단으로 연월차 휴가원을 내고 파업에 들어가며 9개 은행 이외의 나머지 은행 노조원들도 점심시간을 동시에 사용하는 등 준법투쟁에 나서도록 지침을 내렸다.28일에는 근무를 마친 뒤 서울과 수도권 및 각 지역본부별 집결장소에 모여 파업 출정식을 가진뒤 철야농성에 들어갈 계획이다. 노총에 머물던 금융노련 秋園曙 위원장과 의장단은 이날 하오 9개 은행 노조대표들과 함께 명동성당으로 옮겼다. ◇은행의 파업 대비=은행들은 노조원들이 파업에 들어가면 일선창구에 본점 인력과 퇴직사원을 파트타임(시간제)으로 재고용해 배치할 방침이다.차장급 이상 비조합원(총 인원의 10분의 1 가량)들로 업무를 꾸리기 위해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 숙지토록 했다.
  • 親日의 군상:8/월북무용가 崔承喜(정직한 역사 되찾기)

    ◎日帝에 국방헌금 내고 ‘舞踊報國’ 맹세/15세때 日 유학… 귀국후 세계순회공연하며 대활약/1942년 6개월간 만주 돌며 130여회 日軍 위문공연/해방후 前歷 비난 피해 남편과 월북… 北韓정권 참여 □엇갈리는 親日 평가 “예술위해 불가피” “자의적 친일 활동” 근대 이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중에서 ‘스타중의 스타’는 누구일까? 1930년대 당시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무용가 崔承喜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崔承喜는 세계적인 무용가라는 찬사를 받은 ‘전설적 예술가’였다. 바로 그 崔承喜가 최근 우리사회에서 ‘부활’하고 있다. 지난 6월 북한국적의 재일교포 무용수 白香珠씨가 내한공연을 통해 崔承喜의 춤사위를 완벽에 가깝게 복원한데 이어 한달 뒤인 7월에는 그의 이름이 국내 한 일간지에 대서특필되었다. 崔承喜(1911∼?). 언제적 이름인가. 그의 이름 앞에 ‘월북무용가’란 수식어가 필요할만큼 우리 귀에 낯선 이름 崔承喜. 해방후 남편을 따라 월북,북한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는 반세기 가까이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왔다.그가 ‘최모(某)’에서 ‘崔承喜’라는 이름 석자를 되찾은 것도 90년대 들어서다. 암울한 일제하 미국과 유럽·중남미 등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식민지 조선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던 ‘조선의 꽃’ 崔承喜. 그러나 그는 남한에서는 ‘월북예술가’라는 이유로,북한에서는 ‘반(反)혁명분자’로 낙인찍혀 남북한 모두에서 외면당해 왔다. 격동의 우리 현대사가 지하창고에 가둬 뒀던 한 천재 예술가를 ‘역사의 양지녘’으로 이끌어내 보자. 崔承喜는 한일병합 이듬해인 1911년 서울 종로에서 양반집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26년 숙명여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당초 도쿄음악학교에 진학할 작정이었으나 연령미달로 입학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던중 큰 오빠 崔承一의 권유로 당시 일본 최고의 무용수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을 관람한 것이 계기가 돼 그의 문하에 입문했다. 해방후 그에게 쏟아진 ‘친일파’라는 비난은 그의 출생시점과 그가 일본으로 무용공부를 떠나면서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열여섯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3년간이시이 문하에서 무용공부를 한 崔承喜는 29년 귀국,서울 적선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차렸다. 이듬해 2월 그는 경성(京城)공회당에서 제1회 신작발표회를 가졌는데 첫 공연 치고는 성공작이었다. 이 때 공연한 한국무용 ‘영산춤’ 등은 한국인이 춘 최초의 독자적 춤공연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무용사에 한 획을 그은 일로 기록되고 있다. 이듬해인 1931년 그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가이자 당시 와세다대학 재학생이던 安漠(본명 安弼承)과 결혼,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최승희연구가 鄭昞浩(중앙대·무용과) 명예교수는 그들의 결혼배경을 두고 “崔承喜는 공연기획 분야에서 천재적인 安漠의 능력을,安漠은 崔承喜의 인기를 사회주의 건설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 분석했다. 해방후 崔承喜의 월북은 그의 남편 安漠의 권유가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安漠은 북한정권에서 평양음악학교장·문화선전부 부부장(차관)을 지냈으나 58년 숙청의 비운을 맞았다. 한편 崔承喜는 33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이 문하로 들어갔다. 남편 安漠이 ‘조선독립음모사건’으로 구속되자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곤란까지 겹쳐 더이상 국내에서는 활동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두번째 일본행은 의외로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쿄로 돌아온지 두 달만에 그는 한 잡지사 주최 여류무용대회에서 ‘신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 때 그가 춘 춤은 ‘에하라 노아라’라는 전통 조선무용으로 술에 취한 자기 아버지의 굿거리 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1934년 도쿄에서 개최된 그의 제1회 신작발표회를 통해 그는 명실공히 ‘톱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는 “崔여사가 추는 조선무용을 보면 일본의 서양무용가들에게 민족의 전통에 뿌리박으라는 강력한 가르침을 볼 수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인 최초의 무용가’라는 점이 의외로 일본사회를 강타하여 그에게 광고모델 요청이 쇄도했다. 하늘을 찌를듯한 그의 인기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여세를 몰아 그는 마침내 해외공연을 추진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이듬해인 38년 2월 그는미국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시작으로 해외공연길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프랑스 파리 공연에 이어 스위스·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 등 유럽공연을 마쳤다. 이무렵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40년 브라질 공연을 시작으로 우루과이·아르헨티나·페루·칠레·멕시코 등 중남미지역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40년말 2년여 해외공연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오자 일제 당국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인기를 군국주의 전쟁에 활용할 속셈이었다. 결국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친일대열에 들어서게 된다.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崔承喜 부부는 궁성(宮城),메이지신궁(神宮),야스쿠니신사(神社)을 참배하고는 ‘무용보국(報國)’을 맹세하였다.(‘報知新聞’40년 12월7일) 며칠 뒤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구미(歐美)공연 때 마음이 든든한 것은 위대한 일본의 국력 덕분이었는데 새삼 조국에 감사하는 마음을 강하게 가졌다”며 친일성향을 드러냈다. 그의 친일과 관련,빼놓을 수 없는 일화 한토막.아사히신문 41년 2월5일자에는 ‘일독(日獨)헌금 교환,독일인 기사와 崔承喜씨’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내용인즉 일본회사에 근무하던 한 독일인 기사가 귀국하면서 여비의 일부를 국방헌금으로 써달라고 이 신문사에 기탁한 일이 있은 후 이번에는 유럽공연을 다녀온 崔承喜가 두 차례의 독일공연에서 생긴 수입금을 독일육군병원에 헌금하려고 가져왔다는 것. 이 무렵 崔承喜는 일본을 ‘조국’이라고 불렀다. 또 춤을 통해서도 그의 친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일본춤의 비중이 점차 증가한데다 춤동작에서도 일본 전통춤인 ‘노(能)’가 차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공연 수익금의 일부,혹은 전부를 국방헌금으로 바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부터다. 그는 수 차례에 걸쳐 일본군부와 조선군사령부 등에 국방헌금을 바쳤다. 41년말 ‘대동아전쟁’(소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예술가들까지도 전선(戰線)으로 내몰았다.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42년 2월초 그는 일본군 위문공연차 만주·중국으로 향했다. 8월까지 6개월 동안에 무려 130여 차례의 위문공연을 하였는데 당시 그의신분은 일본 육해공군 촉탁이었다. 해방때까지 그의 일본군 위문공연은 계속됐다.그는 상하이 주둔 한 일본군 부대에서 위문공연을 하다가 일본패망 소식을 접했다. 해방이 되자 그에게는 중국 현지에서부터 ‘친일파’란 비난이 쏟아졌다. 이듬해 5월 귀국해 보니 사정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일전력(前歷) 때문에 그는 남한 땅에서는 설 땅이 없었다. 결국 그는 귀국한지 두 달도 채 안돼 남편을 따라 월북하였다.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공과(功過)가 교차된 崔承喜의 일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여기에는 변호와 비판이 엇갈리기 마련이다. 무용학자 鄭昞浩 교수는 崔承喜의 친일행적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는 예술을 위해 친일을 했을 뿐”이라며 그가 한국무용사에 남긴 업적에 무게를 실어준다. 반면 金鍾旭(서지연구가·60)씨는 “崔承喜는 도일 직후부터 본명 대신 일본식 이름(崔承子,사이쇼코)으로 활동한 열성 친일파”라며 그의 친일성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전성기 시절 ‘반도의 무희(舞姬)’‘민족의 꽃’으로 불리며 조선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崔承喜. 식민지시대와 분단기를 거치면서 그에게 씌워진 ‘친일(親日),친공(親共)’의 굴레가 ‘역사의 화해’를 볼 날은 과연 언제일까. ◎崔承喜의 知人들/동서양 명사들과 골고루 교분/美 소설가 존 스타인벡/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화가 피카소·시인 장콕토/周恩來 등과도 친교 전성기 당시 崔承喜는 ‘톱스타’답게 각국의 최정상급 명사·예술인들과 교류를 맺고 있었다. 우선 일본 체류시절 그를 후원해준 사람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와 민예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등 당대 일본 최고의 지성인들이었다. 그와 교류한 서양인으로는 미국공연 시절 사귄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소설가 존 스타인백·루이스 레에나·존 그로프,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화가 피카소를 비롯하여 시인 장 콕토,소설가 로맹 롤랑·미셀 지몽,영화배우 샬 보아에이 등이 그와 친교를 맺고 있었다. 또 중국인으로는 周恩來 총리,무용가 梅蘭芳 등이그의 후원자이자 벗이었다. 국내에서는 呂運亨·宋鎭禹 등 민족진영 인사와 남편의 동지이기도 한 朴英熙·韓雪野 등 카프계열 작가들이 그와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 파리공연 때 그는 피카소로부터 그림 한 점을 선사받은 적이 있다. 시가로 수억대를 호가하는 이 그림의 행방을 두고 安씨집안(시댁)과 崔씨집안(친정)간에 한 때 불화가 있었던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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